현재 대한민국 축구 최고의 스타.

손흥민의 첫 에세이집. 유럽리그 진출의 10년간에 대한 그의 주요 기억들을 다루고 있다.

에피소드 자체가 잘 알려져 있어서 친숙하고 술술 읽힌다. (아마도 편집자가 잘 다듬어 준 것일 듯 하다)

축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면 상당히 재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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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4.

 몸은 무겁고 경기도 풀리지 않는 상태로 2010-11 시즌이 막을 내렸다. 개인 기록은 시즌 15경기(선발 8회) 3골이었다. 만족할 만한 기록은 아니어도, 프로 데뷔전에서 골을 넣었고 국가대표팀에 뽑혀 아시안컵에도 다녀왔다. 타지에서 2년 넘게 버틴 고생을 생각하면 나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족도 그리웠고 집밥도 실컷 먹고 싶었다. 아시안컵에서 친해진 형들과 만나서 놀고도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아버지를 설득해야 했다. 시즌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아버지가 "나는 자존심 상해서 못 돌아간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아시안컵 직후 무너진 밸런스와 (SNS의 재미를 알아버린?) 나의 태도가 아버지의 분노를 샀다. 아버지가 무서워서 나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았다.

 

 고민 끝에 아버지를 붙잡고 사정사정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테니 제발 돌아가자고, 무슨 훈련을 하라고 하든, 힘들어서 죽든 말든, 무슨 말이든 다 들을 테니까 제발 아버지... 나는 한국에 너무 돌아가고 싶었고, 무너진  내 밸런스도 되찾고 싶었다. 아버지는 기나긴 충고와 훈계를 주시면서 겨우 귀국에 동의했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만 가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귀국하자마자 춘천으로 갔다. 대표팀에서 알게 된 선후배, 친구들에게 일단 나중에 보자고 메시지를 남겼다. 아버지의 훈련이 영원히 이어지진 않을 테니까.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휴가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죽었다. 아침 8시에 밥을 먹고 체력 단련장에 가서 아버지와 함께 근력 운동을 했다. 그리고 뒷산의 높다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웨이트가 끝나면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축구공 20개를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위치를 옮겨 가면서 슛을 때리기 시작했다. 매일 1천 개씩. 그렇다. 1천 개다. 같은 골문을 향해서 오른발 500번, 왼발 500번 슛을 때렸다. 내가 슛 능력을 타고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의 슈팅은 2011년 여름 지옥훈련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성미 급한 초여름 햇살이 내 정수리를 열정적으로 찔러 댔다. 죽을 것 같았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마켓에서 사온 초콜릿과 바나나를 입안에 욱여넣어 떨어진 당을 채웠다. 서 있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매일 아버지의 성에 찰 때까지 슛 훈련은 계속되었다. 입에서 신맛이 났다. 페널티박스 지점마다 오른발로 감아 차고 왼발로 감아 찼다. 적당히 하는 것 같다 싶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버지에게 나는 분데스리가 유망주가 아니라 그냥 철부지 축구선수일 뿐이었다. 옛날에 봤던 <공포의 외인구단>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척박하기 짝이 없는 독일 클럽하우스 숙소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훈련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자마자 쓰러져 자기 바빴다. 스마트폰을 들어 올릴 힘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SNS는 끊긴 지 오래였다. 대표팀 형들의 각종 경조사도 모두 스킵했다. 혹시나 사람들이 내가 건방 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누워서 그런 걱정을 하다가 이내 잠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일어나면 지옥훈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5주를 보냈다. 하루도 쉬지 않았다.

 

 함부르크의 여름 프리시즌 훈련 일정에 맞춰 독일로 향했다. 아버지는 다른 일이 있었던 탓에 나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5주 훈련은 지옥 같았지만 그 과정을 버틴 몸은 천국의 날개 달린 천사처럼 가벼웠다. 살면서 이런 컨디션은 처음이었다. 함부르크 국제공항에 내리자 익숙한 독일의 공기 내음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분데스리가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확실했다. 힘든 기억밖에 없어도 익숙한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공항으로 티스(손흥민 에이전트)가 마중 나오기로 했다. 게이트를 빠져 나오자 티스가 보였다. 손을 들어 인사를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시즌 막판에 몸 관리에 실패했다고(이전 내용 보충 : 귀국 전 아시안컵 국가대표로 차출되었을 때 오랜만에 접한 한식에 정신이 빼앗겨, 시합기간 동안 몸무게가 4kg 증가. 이후 복귀한 리그에서도 불어난 체중으로 컨디션이 저하되어서 활약이 저조했음) 티스도 화가 많이 나 있었는데 아직 풀리지 않았나? 다시 손짓을 했다. 티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티스는 좀비라도 본 것처럼 "Oh man! 한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며 넋을 일었다. 살이 빠져 얼굴이 반쪽이 된 데다 땡볕에 새카맣게 탄 바람에 티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후 내용 보충 : 복귀한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을 하게 된다.)

 

p105.

 시간이 흐른 뒤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첫 시즌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구단에서는 나를 거의 포기했다고 한다. 내부적으로 '손흥민은 이제 끝났다. 저렇게 불어난 체중에 휴가까지 다녀오면 절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라고 진단했다. '반짝 유망주'로 끝날 것이라는 자체 판단이었다. 에이전트인 티스는 이런 분위기에 관해서 우리 가족에게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구단에서는 나의 격변이 큰 화제였다. 아버지의 지옥훈련 내용을 살짝 알려주자 다들 혀를 내둘렀다. 구단에서는 "아버지가 너를 살렸다"라고 말했다.

 

p113.

 세상 어디에나 편견이 있다. 유럽에 온 한국인 선수는 '축구 못하는 동네에서 온 녀석'이라는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 유럽 기준으로 동양 선수들은 의사 표현이 소극적인 편이이서 만만하게 보기도 한다. 인종 차별과는 약간 다르다. 유럽의 '축구 부심'이 샛길로 빠졌다고 해야 할까.

 

 나도 독일에 처음 왔을 때 그런 편견과 싸워야 했다. 팀 동료들은 내게 패스를 주지 않았다. 말도 잘 걸지 않았다. 내가 먼저 가서 볼을 빼앗아 와야 했고, 내가 먼저 다가가 독일어로 말을 걸어야 했다. 마음의 담을 무너트리려면 경기장 안에서 실력을 입증해야 하고, 밖에서는 '내가 너희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 중이다'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가끔 세게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소위 '썩은 사과'와 맞닥뜨릴 때다. 한국이든 독일이든 '썩은 사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 내가 행동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

 

 2012-13 시즌 프리시즌 훈련 중 팀 동료와 한판 붙은 적이 있다. 그날따라 훈련을 시작하기 전부터 라이코비치(세르비아 선수로 2019년 현재 세리에 리그의 팔레르모에서 뛰고 있다.)가 약을 올렸다. 당연히 이유는 몰랐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 줬는데 훈련이 진행되면서 그 친구의 실언이 계속되었다. 안에서 서서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임계점에 도달했다. 라이코비치가 먼저 내게 달려들자 나도 펑 하고 터졌다. 나는 그를 피하면서 킥(격투기로 따지면 미들킥 정도?)을 날렸다. 둘이 마구 엉키자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달라붙어 둘을 말렸다. 그 와중에 라이코비치의 주먹이 나를 말리던 동료의 이마를 스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단짝 톨가이 아슬란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눈이 뒤집혔지만 동료들에게 온몸이 포박(?)당한 탓에 분을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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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라이코비치는 리저브팀으로 쫓겨났다. 나는 벌금을 내야 했다. 정당방위든 뭐든 일단 주먹다짐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장기영 대표는 "잘했다"라고 하면서도 "그래도 두 번은 안 된다."라고 충고했다. 특히 유럽에서 미들킥은 절대 안 된다고!

 

p155.

 

 프리시즌의 마무리는 레버쿠젠의 한국 방문이었다.  LG전자가 주선해서 성사된 투어에서 우리는 FC서울과 친선경기를 갖게 되었다. 긴 인연은 아니지만 FC서울 산하 유스인 동북고가 나의 마지막 한국 축구와의 연결고리였기 때문에 내심 반가웠다. 팀 동료들에게 한국을 보여 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한국 방문 직전에 아버지가 한 언론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 사생활을 찍은 사진의 공개 여부를 놓고 모종의 제안을 해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 아들이 범죄라도 저질렀는가?"라면서 모두 거절했다. 레버쿠젠이 한국에 도착하던 날에 맞춰 파파라치 사진들이 공개되었다. 악마적 타이밍이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부연 설명 : 당시 걸그룹 멤버와 터진 열애설을 의미한다.) 멀리 한국까지 온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레버쿠젠 투어 3박4일 내내 가시방석에서 지냈다. 동료들에게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여 가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은 산산이 조각났다. 마음 같아선 호텔 방에 콕 박혀 있고 싶었지만 한국 투어 중 잡힌 각종 행사에서 나는 항상 주인공 역할을 해야 했다. 속으로 울면서 겉으로 관객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독일로 돌아가서도 축구선수인 나는 축구와 무관한 기사들의 주인공으로 끊임없이 소환되었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언론사들까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정보를 짜맞춰서 기사를 쏟아냈다. 새 시즌 준비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일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너무 화가 났다. 이 일은 우리 가족에게 언론의 어두운 면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공식 기자회견을 제외한 인터뷰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출발점이었다.

 

p209.

 지금 감사하며 즐겨야 한다. 나의 행복 철학이다. 그라운드에서 서서 축구공과 함께 있는 순간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 행복이다. 어제를 떨치지 못하거나 내일을 걱정하는 삶은 오늘의 행복을 방해한다. 영국에서 나는 '스마일 보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동료들도 "어떻게 너는 매일 아침 웃으면서 돌아다닐 수 있는 거냐?"라면서 신기해한다. 간단하다. 웃어서 행복한 거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라고 다짐한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소노 아야코의 최근 수필집. 어려서부터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며, 정치성향은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극우파에 해당한다. 1931년 생으로 젊은 시기에 일본의 패망을 맞은 노인세대라 그런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인종차별과  독재옹호, 그리고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꼴통발언으로 이슈가 되었으나 일본내에서의 입지는 확고한 듯 하다. 소위 일본에서 잘 나가는 극우파 작가이다. 

학력이나 쓴 글을 보면 무식해서 극우파가 된 건 아닌 듯 하고 자라난 환경 자체가 그런듯하다.

이 작가의 수필은 이것까지 포함해서 2편(누구를 위해 사랑하는가는 작가의 최고의 베스트셀러)을 봤는데 글 자체는 상당한 관록과 경지를 보여주며 그리고 엄격한 가운데 얼마간의 따뜻함도 느껴진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사회정치적으로 상당한 꼴통 발언을 한다는 자체를 보면 인간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나 할까?

현재 나이는 88세로 이번 작품은 필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요점만 짧게 1,2페이지로 정리해서 읽기는 매우 쉽다.

그러나 결국 언행의 일치와 도덕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글이 아무리 뻔지르해도 작가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면 그 가시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이며, 곳곳에서 그런 것이 느껴진다.

 

국내에 번역된 수필만 수 십권이 되는 관록의 여류 수필가.(이 책 보면서 첨 알았다.)

1931년 생으로 88살이다. 여전히 거의 매년 수필집 한 권씩은 내놓는 분이다.

이 수필집은 1970년 작품으로 39살에 썼다.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이룩한 나이에 지난 삶을 돌아보는 내용 위주로 채워져있다. 수필의 특성상 부담없이 읽을만하다.

2차 대전을 거치고, 일본의 패망 이후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가 느끼는 페이소스랄까? 그런것이 있다.

사실 수필은 동시대적인 느낌이랄까 그런것이 강하게 작용하는 장르라서 50년 정도가 지나면 사고가 낡은 느낌이 들기 쉽다. 이 책은 전혀 그런게 느껴지지 않는다. 상당히 리버럴하면서도 과격한 부분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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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8.

 지금 세상에 범람하고 있는 연애가 식어서 불어터진 라면같이 된 것은 부모나 선생이나 선배나 이웃이 젊은 사람들의 연애를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p86.

 인간은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이 없이는 자신의 존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용서하게 될 것이다.

p118.

 고통은 함께하지 않으면 남이 된다.

p154.

 하지만 자신에 대해 가장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뿐이다.

p156.

 인생은 괴로움을 촉각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박경리 선생이 일본에 대한 소회를 강연이나 잡지 기고를 통해서 밝히신 내용을 모아놓은 에세이집.

일반적인 신변잡기라기보다는 일본 소론에 가깝다.

박경리 선생께서는 1926년 생으로 20살 청년기까지의 삶을 일본 식민지배하에서 사셨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 문화 그리고 국가의 정체성 및 국민들의 집단심리에 이르기까지 외면과 내면적인 부분에 있어서 일본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실 수 밖에는 없을셨을 것이고, 평생동안 선생은 한민족이 일본을 극복하는 문제에 천착해오셨던 것 같다. 

선생의 역작 토지로 식민시대를 배경으로 한민족의 애환을 담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박경리 선생은 식민시대를 살아온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마지막 세대로서 일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후세에 전해야겠다는 책임과 소명을 느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선생은 그 꿈을 이루진 못하셨다.

이 책은 모음집이므로 편집을 그런식으로 했겠지만, 일본의 고대사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일본 정신의 원형을 엿보고, 일본 제국주의 시대와 패망후의 일본의 정신사에 대한 고찰과 비판이 담겨있다.

박경리 선생이 일본에 대한 생각의 아웃라인 정도를 이 책의 내용에서 엿볼 수 있다.

아쉬우나마 이런 글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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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7

 

 얼마 후 잡지 <문예> 하계호가 일본에서 왔다. 그들이 말한 대로 인터뷰는 취급하지 않았고 가와무라 씨의 '반일과 향수의 틈새'라는 평론에 내 얘기가 삽입되어 있었다. 제목이 몹시 불쾌했지만 내용은 날카롭고 일단은 공정한 입장에서 성실하게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한국의 반일에는 항상 역사를 동반하며 그것을 증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유의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들 일본인은 소위 역사적 교훈을 배우지 않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혹은 역사는 역사로서 현재와 무연한 것으로, 방편으로 씌여지는 정신적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만세일계를 주장해온 천황의 역사, 다시 말하자면 역사로서의 천황을 의미하고 있으며 같은 일본인의 '역사성'이야말로 근린제국(近隣諸國), 제민족(諸民族)에게는 지극히 수상쩍게 보일 것이다."

 가와무라 씨의 지적은 타당하고 평론가로서의 신뢰감을 내게 안겨주었다. 바로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인근 민족에게만 수상쩍은 것은 아니다. 일본인 자신에게도 수상쩍은 것이다. 일본인의 역사성이 인근 민족에게 피해를 준 것처럼 일본인의 의식을 꽁꽁 동여맨 허위의 포승으로 피해자인 것은 매일반이다.

 

 "박경리 씨의 『토지』는 근원적으로 '대지(大地)'를 소유하고 사용한다는 근대적인 토지소유의 관념 그 자체에 대한 의의를 머금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국유지라는 개념의 확대 부연하면 경작자로서의 조선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은 일본제국주의에의 비판이기도 하지만 그 기층에 있는 것은 토지란 누구의 것이냐 하는 근대적인 경제사회 그 자체를 흔들어대는 물음인 것이다."

『토지』를 농민소설로 간주하려 드는 일부 시각에 늘 쓰거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고 구차스럽게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도 그러는 내 자신에 짜증을 내곤 했었는데 작가의 의중을 여실히 표현해준 가와무라 씨가 고마웠다. 그러나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하여 그 구절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 조선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은 일본제국주의에의 비판이기도 하지만 그 기층에 있는 것은 토지란 누구의 것인가 하는 근대적인 경제사회 그 자체를 흔들어대는 물음이라는 가와무라 씨의 말, 여기에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지만 다른 표현으로 되풀이해 보면 민족주의 반일의 동기와 민족주의 반일의 목적, 그것에는 다 사람의 생존을 저해하는 것에 대한 저항의 필연성이 있는 것이다. 즉 삶의 터전인 땅이 토지의 소유라는 개념으로 변하면서 역사는 투쟁과 터전인 땅이 토지라는 소유의 개념으로 변하면서 역사는 투쟁과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고 작게는 개인에서 민족, 크게는 인류 모두가 피해자의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한일합방을 전후해서 제2차 세계대전 종결까지, 제국주의 식민지시대는 가장 가혹한 땅의 유린과 생명 학살의 도가니였고 우리 민족은 살아남기 위해 민족주으의 불꽃을 간직해야만 했다. 그러면 광복 후 우리는 민족주의를 극복해야만 했는가. 그렇지가 않다.

 역사는 시작되었고 근세, 반세기 동안 약자는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국토가 유린당하고 민족이 살육당했던 제국주의 식민시대 죽지 않기 위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우린 민족주의 반일사상의 불꽃을 간직해야만 했다. 그러나 광복 후 과연 민족주의 반일사상은 쓸모없이 되었는가? 그렇지가 않다. 세계의 현실은 여전히 약자의 호주머니를 강자가 털어내고 있으며 아흔아홉 섬의 곡식을 가진 자가 한 섬 가진 자로부터 빼앗아 백 섬을 채우려는 이것이 오늘날의 민족과 민족 간의 현실인 것이다.

 뿐인가, 영토의 침략보다 더욱 악성인 것은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장본인은 누구인가. 이득을 많이 챙기는 자다. 많이 벌어들이는 만큼 땅을, 지구를 파괴하고 황폐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팽창주의는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 그 해악도 다를 것이 없다.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혹은 무관심을 나타내는 일부 지식층의 이상주의 혹은 지성을 나는 지적 허영으로 본다. 토지의 일본인 오가타 지로(緒方次郎)는 코스모폴리탄이다. 그는 강자편에서, 가해자 편에서 양심을 지켜 비판하는 세계주의자다. 그러나 피해자가 불이익을 안고 과연 평등의 세계주의로 갈 수 있는 걸까? 허구요 망상이다. 한국인의 반일이 모두 그런 논리에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분풀이라는 본능적 감정인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정치적 차원이지만 일본인의 의식도 간과할 수 없는 만틈 일본은 왈가왈부할 처지가 못된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보다 오늘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인의 분을 풀어주지 않았다.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그들은 거의 보상하지 않았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통분이 무슨 사과인가? 그러고도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뻔뻔스런 일이다. 가와무라 씨는 한글세대는 반일이라는 대전제를 전면에 새우고 있으나 구체적 체험과 연구 관찰이라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만 반일이라는 민족교육으로 길러진 지식과 근본적 이미지에 의해 일본을 단죄, 규탄하는 태도를 가지기 일쑤다 했는데 동감이다. 그러나 동감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도식적인 교육을 떠나 생생한 역사적 사실 역사적 입김에 접할 수 있다면 한글세대는 무조건 감정적 시비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넘어가는 사상적 강화(强化)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전후세대도 우리 한글세대에 대한 불만을 사실에 입각하여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관찰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대로(大路)는 결코 일방통행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가와무라 씨의 성실한 우려를 나타낸 말이 있다.

 "그것은 커다란 틀 속을 말한다면 서로 근대화를 절대로 하고 그것에서 뒤떨어지는 정도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비웃는 것 같은 구조가 극동의 아시아 속에 낭질(狼疾)과도 같이 끼워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양국 간의 증오가 지극히 저질 상태인 것을 말하려고 했다기보다 그것은 엄청난 문화의 후퇴를 의미한다. 그것은 결코 민족 간의 대립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세계가 그릇된 방향으로 파멸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물질보다 정신의 측면에서 우려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에서 나는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하고 경제적 동물로, 의식의 야만시대로 뒷걸음치고 있는 것을 말한다.

 

p75

 사실 광복을 기념하는 우리들의 국경일 8.15는 해마다 그 감격과 의의가 희석되어가는 반면, 히로시마 원폭 기념행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열기가 높아가는 것 같고 분함과 보복의 칼을 가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하는데, 그러나 그보다 좀 더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이 일본의 피해의식이다. 그것은 가해자라는 또 하나의 피해의식을 상쇄하는 데는 안성맞춤의 전략적인 것이기도 해서 대충 넘어가려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왜 하필 일본에 핵폭탄이 떨어졌는가. 그 원인을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

 

 다만 열심인 것은 원폭의 기념탑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하고 그들 자신이 피해자임을 세계만방에 고하는 일이다.

 그러면 핵폭탄과 현재의 일본, 그 함수관계는 어떤 것일까. 전쟁 말기 청소년들을 자살 비행으로 내몰던 가미카제를 나는 기억한다. 사이판 유황도 등, 그들의 거점이 무너질 때마다 비전투원에게까지 소위 그 옥쇄라는 것을 강요했고 차마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을 아들이 목졸라 죽였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그 무렵 일본은 본토 결전을 각오했으며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서 옥쇄한다는 것이 흔들 수 없는 명제였다. 그러나 일왕은 깊고 깊은 지하에서 무조건 항복을 녹음했으며 군인들은 궁성으로 난입하여 항복을 막으려 했다. 어쨌거나 핵폭탄의 투하는 일본인 전원 옥쇄 전에 전쟁을 끝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원폭 세례의 원인을 만든 것은 일본이다. 원폭으로 하여 일본이 지구상에 살아남았다는 것도 신빙성이 있다는 얘기다. 끔찍스럽고도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

 

 옛날 일본은 아시아에서 고도(孤島)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고아 같은 존재였다. 기능적이며 공리적은 특성은 차라리 서쪽에 가깝다. 그리고 일본은 서쪽을 등에 업고 동쪽을 배신한 유일한 나라다.

 그러면 뭐가 다른가. 우리는 칸트, 헤겔을 위시하여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독일인인 것을 기억한다. 베토벤, 괴테 같은 숱한 예술가의 모국이 독일인 것을 알고 있다. 그들 철학자, 예술가들은 거짓의 토양에서는 자랄 수가 없다. 진실을 추구하는 그들 후예들이 나치의 범죄를 보상하고 오욕을 씻어낸 것이다. 일본은 거짓의 두 기둥을 박아놓고 국민을 가두어왔다. 하나는 천조의 상속권 주장인 만세일계요, 다른 하나는 현신인으로 왕을 치장한 신도(神道)다. 각일각 변화하는 생명과 만상의 원리를 어기고 어찌하여 일문이 만세에 걸쳐 군림할 수 있을까. 나고 죽는 우주 질서에서 일왕도 예외가 아니거늘 어찌하여 신으로 칭하는 걸까. 거짓은 만사를 거짓으로 만든다. 그곳은 그러나 진실을 추구하는 철학과 예술, 창조를 이룩할 수 없는 허방인 것이다. 그 체제를 변호하는 한, 그 체제가 존속하는 한 일본에 지성인은 존재하기 어렵다. 지성인은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상이 약하고 유리알 속의 유희 같은 탐미주의가 예술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일본이 진실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며, 청산하는 독일과 청산하지 않는 일본의 차이점도 바로 그곳에 있다.

 일본 전설에 우라시마라는 어부 얘기가 있다. 용궁에서 옥함 하나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고향에는 모두 낯선 사람뿐이요, 외로워진 그는 열지 말라는 당부를 어기고 바닷가에서 옥함을 여는 순간 백발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백발은 정확한 시간의 표상이다. 그러나 일본은 옥함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열어야 한다. 백발이 되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질서이며 진실이기 때문이다.

 

p82

 일본 문학에서 탐미주의가 정점을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썩어가는 육체, 괴기스러움에 대한 쾌락, 그것은 일종의 도피다. 자살의 미학도 실은 일그러진 사디즘을 포장해낸 것에 불과하고 삶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의 결여로 볼 수 있다. 산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또 아름다운 것도 없다. 진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실의 추구야말로 문화의 시발점인 동시, 발전의 과정이기도 하다.

 

p84

 참고가 될까 싶어서 와타베(渡部良三)라는 분이 쓴 글을 발췌하여 소개할까 한다. 그는 전쟁 말기 학도병으로 전선에 나갔다가 신병 훈련용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세워놓고 십여 명의 신병이 차례차례 돌격하여 찌르는데 그러고 나면 인간은 걸레 조각같이 되고 마는 것을 목격했다. 와타베 씨는 그 훈련을 거절한 탓으로 기막힌 고초를 겪다가 패전을 맞이한 사람이다.

 

 "일본인이 피해자라는 의식을 가진다면 원폭피습보다 천황의 권력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층, 특히 구(舊) 군부와 관료 중에서 사법 관료, 일본 자본주의 자본, 천황 일족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이 지상에 없다. (중략) 사랑이 있는 군비, 자유가 있는 전쟁 같은 것은 없다."

 "천황은 신에게 기도드리며 일본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분입니다. 그것이 일본의 전통입니다. 이따위 말을 일류 대학 교수가 했지만 소화(昭和) 천황이 전쟁을 선포했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인 사실은 지울 수 없다."

 

p86

 그들은 조선, 맍, 타이완을 반환했다는 말 대신 잃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얼마 전 독도 망언이 있었을 때 반환이 아닌 잃었다는 그들의 발상을 생각하며 쓰게 웃은 일은 있었지만 사람의 일로써는 설명이 안 되고 오로지 만사형통인 신의 세계에서만이 있을 수 있는 일. 왜냐하면 그것에는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

 그렇다면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나 지식인이 뭣에 필요하단 말인가. 와타베 씨의 말이지만 전쟁을 성전(聖戰)이라는 세계사적 신어(新語)를 만들어서 정당화하는 것, 그것 역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에는 신을 모셔오는 것이다. 참 편리하고도 생광스런 물건이다.

 

p173

 자비(自卑)하는 것이 비천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월감의 과시도 비천한 것이며 해악적(害惡的) 요소인 것이다.

 

 

p204

 작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근간은 같습니다. 운영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두 가지 모두 운명은 탁습니다. 똑같이 벽에 부딪혔습니다. 지구는 공해 때문에 멸망직전입니다. 두 가지 모두 공범자예요. 이제는 궤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자본이니 공산주의니 떠드는 것은 모두 구시대적이비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모두가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낼 지방자치에 대해서도 박씨의 논리는 분명했다.

 "단위가 적어지면 시민의식을 보다 잘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각 지방이 제멋대로 놀고 있어요. 앞으로는 지방민의 감시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럴려면 의식이 높아져야겠죠. 당연히 문화가 높아져야 의식이 높아집니다. 공해를 막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지방자치는 뿌리내려야 합니다. 바로 눈앞의 것을 감시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을 보게 된 계기는 얼마전 해피투게더에서 강주은 씨가 남편인 최민수랑 나온 에피소드를 재밋게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되어서다. 

 이 책은 2017년에 출간되었다.

 책은 편집자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강주은씨의 개인적인 삶, 남편과의 만남 이후의 결혼생활, 그리고 아이들의 육아의 이야기로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장 많은 부분은 역시 남편 최민수씨와의 파란만장(?)한 결혼생활의 이야기들이며, 겉으로 보여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라는 것 자체로도 이 책은 읽을만하며, 진지한 삶의 철학을 가진 건강하고 슬기로운 중년여성의 지혜의 이야기로서 큰 가치가 있다.

 인생의 행복과 성공이라는 것에 쉬운 길이 없겠지만, 그녀가 겪은 길이 대중이 보던 것처럼 흐드러진 꽃길만이 아니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고, 배우 최민수가 대다수의 대중이 알듯이 그렇게 화려하기만 하고 철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끌던 2009년 이후로 10년 간 핵심 증인으로 12번의 증언을 했지만, 결국은 사건의 핵심 피의자들은 여전히 잘먹고 잘살고 있다.

새로운 정권에서 다시 한 번 국민청원에 의해 새로운 수사를 시작하고, 핵심증인인 윤지오씨가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13번 째의 증언을 했다.

그 10년 간 윤지오씨가 개인적으로 이 사건에 얽혀서 겪었던 아픔에 대한 기록이다.

보면서 무거워지는 마음과 울분으로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리 긴 내용은 아닌데, 우리 시대의 가장 부끄러운 기록 중의 하나라 그런지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저자인 윤지오씨도 이 사건으로 너무나도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걸 재삼 알게 되었다.

장자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윤지오씨가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었으면 한다.

 


2014년 대한항공 갑질 폭로의 서막이 되었던, 대한항공 회장 조중훈의 개망나니 장녀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의

최대의 피해자였던 박창진 사무장의 지난 5년간의 기록이다.


이 사태 이후로, 대한항공 일가의 상상할 수 없었던 갑질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고, 대한항공 오너 일가 뿐 아니라

그러한 비윤리적, 비도덕적, 비상식적 갑질을 감싸왔던 내부 관리직급에 대한 각성의 촉구를 유발하는 사회적 연대의 움직임이

거세졌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아직도 우리의 사법부는 대한항공의 비리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재벌과 권력자들에 대해 제대로 된 법체계를 세우지 못한 임법부의 책임이자, 우리나라 사법체계의 한계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최근 양승태를 위시한 사법농단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나라 사법부 또한 지금 현재 대한민국을 갑질의 천국으로 만든 한 악의 축이라는

것에도 그 원인이 있다.


한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불이익과 그로 인한 피해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처해있으면서도 그가 책의 말미에 밝힌

인간으로서의 존엄(dignity)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담히 그러나 눈물겹게 그리고 있다.


현재의 사회분위기로는 박창진 씨가 대한항공 일가와 회사 내의 충성 세력과 무관심한 이들에게 승리를 거두기란 요원한 일이다.

오직 사회적인 연대를 통해 국민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힘을 실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일단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싶다.


집중하면 2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나파 밸리 부근에서 1978년 부터 살고 있다. 와인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면서 또한 그와 관련된 글도 쓰고 있다고 한다.

책의 초중반은 거진 와인과 관련된 에세이들로 재밋기도 하면서 수준 높은 글의 향기가 넘쳐난다.(1978년에 20대였다고 해도 현재 60대 정도일 것이고

필력을 보면 필자의 나이도 그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와인 관련 지식이나 에페소드들도 와인초보자가 보면 도움이 될 내용이 많다. 와인 입문서들이 딱딱하고 잘 와닿지 않는 것에 비해 실제나 역사적

에피소드와 관련된 내용으로 와인 전문가가 옆에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듯한 기분이 들고 내용 자체에 몰입이 잘 된다.


 와인 관련된 에세이와 실무지식이 혼재되어 있어서 에세이로 분류했지만, 와인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된다.


 내 개인적으론 책 제목과 달리, 햇빛 좋은 어느 지중해 바닷가 파라솔밑에서 상큼한 상파뉴 한잔과 함께 보면 좋겠다 싶은 책이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래 단 한번도 권력형 비리에 대해 제대로 된 단죄를 한 역사가 없다.

한 개인이 권력의 정점에 선 이에 대한 비리의 실상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발린 기록을

제공하는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사법이 이명박을 단죄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경찰과 검사

그리고 판사들은 모두 국민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집단 자결을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미국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면 주진우는 벌써 퓰리처상을 받았을 것이고, 이명박은 

감방에서 죽을때까지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이 정도까지 한 인간의 비리를 추적해온 주진우 기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여러 분야의 사회명사들이 쓴 내 인생 후회되는 한가지라는 주제로 쓴 수필을 모은 책.


여러 분야의 인사들의 수필이라 글의 내용과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박목월 시인의 장남인 박동규 작가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다.


어려웠던 시절, 겨울 김장을 위해 시장에서 배추를 고르기 위해 몇 일을 어머니랑 시장통을 돌아다닌 일과 배추 100포기를 사고 나서도, 어머니가 시장통이 문을 닫을때까지 기다려 배추쪼가리를 주워오던 장면, 그게 창피해서 저녁 밥상에서 그 이야기를 한 일, 그로 인해 아버지인 박목월 시인께서 언짢아 하시면서 아내에게 핀잔을 주고 그로 인해 시인의 아내이자 작가의 어머니가 늦은 밤 부엌 부뚜막에서 눈물을 훔치던 일.

마치 수 십년전의 한국의 어느 가정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연기 오르는 굴뚝이 달린 가정집 처마에서 어느 집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애틋했다.

읽고 있노라면 마치 겨울날 서설에 밟히는 내 첫발자국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저 제목에 끌려서 본 책.

자신의 전공인 건축에 대한 내용을 주로해서, 여행지에서 느꼈던 실시간의 감정들을 여백의 미와 함께

담담하게 적어나갔다.


라스베가스, 찬디가르, 생 페테르부르그, 나도 이 중에 2군데를 가봤지만 저자처럼 여유롭게 즐겨보지 못했던 듯 하다.


번잡할 때 무언가 마음을 비우고 싶을때 읽는다면 괜찮을 듯 하다.


꽤 마음에 드는 책이다.


1961년생인 저자가 퇴직후 제2의 인생을 살면서 꿈꿔오던 산티아고 순례길 31일간의 기록.

나보다 6살 위의 저자, 그리고 퇴직후 산티아고를 꿈꾼다는 점에서 웬지 동질감을 느껴 읽게 된 책.

다른 산티아고 순례기에 비해 그리 특별한 건 아니지만, 하루하루의 순례길을 걸은 평범함 기록들이

모여서 산티아고 대성당에서의 완주를 하는 과정들에서 담담한 감동이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 산티아고의 조개껍질이 새겨진 그 길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1994년 출판된 이문세의 에세이.


당시 별밤지기이자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시기에 나온 에세이집.

가벼운 에피소드 중심으로 그의 유년시절, 데뷰, 그리고 친했던 연예인들과의 소소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부담없이 읽을 만한 거리이다.


나도 별밤을 듣긴 했지만, 나는 이문세보다는 한 세대 앞선 김기덕이나 이종환의 음악프로를 듣던 세대이다.

86년인가 87년인가에 나온 이문세의 4집을 계기로 그를 기억하기 때문에 디제이로서보다는 가수로서의 이문세를

더 기억하는 편이다.


요즘들어 이렇게 헌책방을 다니면서 우연히 구한 옛날 책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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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동의 공연 , 잼 콘서트




이 책을 처음 보면서 든 느낌은, 웬 의사가 왜 이리 글을 잘 써? 였다.

저자인 폴 칼라티니는 1977년생으로(2015년 우리 나이로 39살, 만일 암에 걸리지 않았으면, 

레지던트를 마치고,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신경외과 외래와 연구교수직을 맡았을 한 마디로 이제부터

인생의 고생이 다 끝나고 창창한 앞날이 바로 펼쳐질 그 순간에 닥친 일이다.)

책의 맨 뒤 사진과 책의 내용을 보니 인도계 미국인으로 보인다.


스탠포드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영문학 교수가 될 꿈도 꾸었으나 문학,철학,과학,생물학등

여러 방면에 가지고 있던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의대를 택하여 의사의 길을 걸었다.


이 책은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에서 읽고 추천을 한 것으로 이슈가 되었다고 들었으나, 책을 보면 그런 추천이

없었어도 확실히 뜰 수 밖에 없는 책이라고 느껴진다.


인생의 최정점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자신이 가장 잘아는 암에 걸린 이후, 겪는 고뇌, 일상의 변화, 인생에대한 반추,

존재에 대한 성찰, 가족의 소중함, 새로운 생명 탄생에 대한 경이와 기쁨,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등이

짧지도 길지도 않은 분량에 밤하늘에 뿌려진 별과 같이 반짝거리며 녹아있다.


지하철에서 이 책의 말엽을 보게 되었는데, 병세가 악화되면서 시작되는 책의 말미와, 

더 이상 그 뒤의 내용을 자신이 잇지 못할 때, 부인이자 그의 평생의 동반자였던

루시가 써내려간 에필로그는 눈시울을 붉어져, 황망히 책장을 덮고 눈을 감으며 마음을 추스릴 수 밖에 없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생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저자는 그것까지 예상하듯

독자를 따스하게 품어주는 글귀들을 이 책 곳곳에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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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의 서문)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았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나.


-브루크 풀크 그레빌 남작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 책의 서문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서문을 그냥 멋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서문의 짧은 몇 줄의 문장으로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이 서문은 인생의 허무함속에 영속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이 풀크 그레빌이라는 이의 시집은 국내에 번역된 것이 없다. 한 번 보고 싶은데 말이다.)


이 글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에머슨의 다음과 같은 시의 귀절이 생각난다.


잠은 잠이 아니고, 죽음도 죽음이 아니다.

죽은 것 같은 사람도 살아 있으니, 내가 태어난 집과 소꿉친구들, 노인들, 아가씨들.

하루의 수고와 그 보상마저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허망한 이야기일 뿐.

그 어느 것도 머물지 않으니.

-랠프 월도 에머슨-


김어준이 쓰던 표현으로 하자면, 인생 뭐 있냐? 좃도 없어. 쫄지마 씨바.. 이런 이야기다.

(좀 더 성스러운 표현으로 하자면,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도 비슷한 뉘앙스다)



1장의 서문)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에제키엘서 37장 1~3절-


=> 이 이후의 내용을 보면 이 구절이 인용하는 당시의 저자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이후의 내용)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이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 저자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인도계가 아닌가?) 어릴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신에 대한 회의로 종교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암에 걸리고 죽음을 앞두고서는 신과 종교에 대해 관점을

바꾼다.(이 부분이 약간 미묘한데, 책에 내용에 나오니 그 부분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그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라는

관점보다는 인간적인 면에서 신을 믿는 것이 낫다?.. 어렵다. 다시 그 부분에서 이야기해야겠다.)


이 부분에서는 죽음을 앞둔 그가 하느님께 절실하게 무언가를 갈구하는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p200~


 대학 입학 이후 오랫동안 하느님과 예수에 대한 내 생각은 점잖게 말하자면 좀 심드렁했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시절, 나는

경험적 근거가 없다는 논리로 기독교 신앙을 공격했다. 기독교의 가르침보다는 계몽된 이성이 더 논리 정연한 우주를 보여주었다.

(중략)


 비록 나는 밤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신이나

영혼, 긴 옷을 입고 흰 피부에 수염을 기른 남자 같은 구시대적인 개념을 배제한, 완벽한 형이상학을 완성해줄 궁극의 과학적인 세계관,

물질적인 개념의 현실이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이십 대의 많은 시간을 이런 생각의 틀을 짜는 데 바쳤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과학을 형이상학의 결정권자로 보면 세상에서 신뿐만 아니라 사랑, 증오,의미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이런 의미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인생의 의미를 믿으면 반드시 신도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이 신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공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거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인생 자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실존적 주장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곧 모든 지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과학방법론은 인간이 만든 산물이기에 영원불변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손쉽게 조작하기 위해, 현상을 다루기 쉬운 단위들로 축소하기 위해 과학 이론을 만든다. 과학은 재현 가능성과 인위적인 객관성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물질과 에너지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을 내세울 때는 탁월하지만, 고유하고 주관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이고 본능적인 성질에 과학 지식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중략)


 많은 무신론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프랑스 생물학자인 자크 모노의 말은 이런 계시적인 측면과 상충된다. 

"고대의 계약은 산산조각났다. 인간은 우연히 생겨난 우주라는 냉혹한 광대무변함 속에 가지 혼자라는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되었다."

(중략)


 나는 예수가 전하려던 주된 메시지는 자비가 항상 정의를 이긴다는 것이라고 믿었다.

(중략)


 또한 원죄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늘 죄책감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맥락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선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만, 항상 거기에 맞춰 살지는 못한다." 결국 이것이 신약성경의 메시지이다. 설사 당신이 구약성경의

<레위기>를 잘 안다 해도 그대로 따르며 살 수는 없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다.


=>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저자의 인생 전반에 걸쳐 믿음에 대한 가치관, 생각등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음미할 만하다.


p204


 결국 우리 각자는 커다란 그림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의사가 한 조각, 환자가 다른 조각, 기술자가 세 번째, 경제학자가

네 번째, 진주를 캐는 잠수부가 다섯 번째, 알코올 중독자가 여섯 번째, 유선방송 기사가 일곱 번째, 목양업자가 여덟 번째, 인도의

거지가 아홉 번째, 목사가 열 번째 조각을 보는 것이다. 인류의 지식은 한 사람 안에 담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생성되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리는 이 모든 지식 위 어딘가에 있다.


 씨 뿌리는 이가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과연 "씨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 이가 다르다."는 말이 옳다. 

 나는 너희가 애쓰지 않은 것을 수확하라고 너희를 보냈다. 사실 수고는 다른 이들이 하였는데, 너희가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 이 책의 내용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다.


p214

(아직 갓난 아기인 딸 케이디에게 보내는 폴의 마지막 인사,,,, 눈물이 앞을 가려서 몇 줄 되지 않는 문장을 읽는데 힘이 들었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

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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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의 불꽃은 사그라들기 직전에 가장 밝게 타오른다고 한다. 저 밑바닥 침묵과 고요의 심연에 놓여있던 신비한 영혼의 속삭임이

이 밝음에 의해 잠시나마 드러났다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갔음에 감사한다.



도올 선생께선 사실 글을 쉽게 접할 수 있게 쓰시진 않는다. 특히 용어적인 부분에서 한학자이시다보니

한자용어가 꽤 나오는 편이며 사서삼경을 배웠을리가 없는 일반인들이 대하기에는 이해가 안되는 용어도 꽤 있는

편이다. 그리고 문체는 현대적이라고 보기엔 힘들고 어느 정도는 올드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래도 다른 책들에 비해선 사랑하지 말자, 중국일기, 시진핑을 말한다(이건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의하신 내용을

기본으로 저술하신 책)와 같은 수필 및 역사서는 노자,맹자,논어,중용보다는 훨씬 재밋고 읽기가 쉽다.


계림수필은 자택에서 키우기 시작한 닭(봉혜)을 관찰하시면서 느끼는 일상의 감상과, 당시의 정치적 현황, 그리고

한학을 공부하시면서 떠오르는 생각들로 집필한 내용이다.


도올 선생의 일상적인 생각들을 접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중요한 편린이 모여있는 책이라, 선생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추천하고 싶다. 





시인 김인육 지음.


 후레자식


고향집에서 더는 홀로 살지 못하게 된

여든 셋, 치매 앓는 노모를

집 가까운 요양원으로 보낸다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

거기가 외려 어머니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1년도 못 가 두 손 든 아내는

빛 좋은 개살구들을 골라

여기저기 때깔 좋게 늘어놓는다, 실은

늙은이 냄새, 오줌 지린내가 역겨워서고

외며느리 병수발이 넌덜머리가 나서인데

버럭 고함을 질러보긴 하였지만, 나 역시 별수 없어

끝내 어머님 적소(適所)로 등 떠민다


애비야, 집에 가서 같이 살면 안 되나?

어머니, 이곳이 집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나는 껍질도 안 깐 거짓말을 어머니에게 생으로 먹이고는


언젠가 나까지 내다버릴지 모를

두려운 가족의 품속으로 허겁지겁 들어온다


고려장이 별거냐

제 자식 지척에 두고 늙고 병든 것끼리 쓸리어

못 죽고 사는 내 신세가 고려장이지


어머니의 정신 맑은 몇 가닥 말씀에, 폐부를 찔린 나는

병든 개처럼 허정거리며

21세기 막된 고려인의 집으로 돌아온다

천하에 몹쓸, 후레자식이 되어

퉤퉤, 돼먹지 못한 개살구가 되어



The Almitra spoke again and said, "And What of Marrige, master?"

And he answered saying:

You were born together, and together you shall be forevermore.

You shall be together when white wings of death scatter your days.

Aye, you shall be together even in the silent memory of God.

But let there be spaces in your togetherness.

And let the winds of the heavens dance between you.

Love one another but make not a bond of love.

Let it rather be a moving sea between the shores of your souls.

Fill each othere's cup but drink not from one cup.

Give one another of your bread but eat not from the same loaf.

Sing and dance together and be joyous, but let each one of you be alone.

Even as the strings of a lute are alone though they quiver with the same music.

Give your hearts, but not into each other's keeping.

For only the hand of Life can contain your hearts.

And stand together, yet not too near together.

For the pillars of the temple stand apart.

And the oak tree and the cypress grow not in each other's shadow.


알미트라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스승님, 결혼은 무엇인가요?"

그가 대답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니, 영원토록 함께일 것이다.

죽음의 흰 날개가 삶의 나날들을 흩어버릴 때도 함께일 것이다.

아, 그대들은 함께일 것이다.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도.

허나 함께 있어도 거리를 두라.

천국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출 수 있게.

서로 사랑하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사랑이 두 영혼의 육지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하나의 잔만을 비우지 말라.

서로가 빵을 나누되, 하나의 빵조각에서만 취하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즐기되, 각자 홀로 있게 하라.

비록 같은 음악을 울릴지라도 현악기의 줄들이 서로가 달리 있듯이.

서로의 마음을 주되, 소유하려 하지 말라.

그대들의 마음은 오직 생명의 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니,

함께 서 있으되,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

신전의 기둥이 서로 떨어져 있듯이,

그리고 참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가 서로의 그늘에서 자랄 수 없듯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있기에 본 에세이집.

작가의 이름은 나에겐 아직 생소하다. 차분하면서도 일상의 평범한 사건과 사물들에서 자신만의 기억을 자신만의 언어로
그려냈다는 느낌이 든다. 그가 그려낸 풍경과 분위기는 질박하면서도 삶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매 에피소도는 많아야 3페이지를 넘지 않아서 일단 내용의 양적인 면에서 매우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에세이의 특성상 그때 그때 떠오르는 단상들을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정리한 듯한 인상도 있다.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간혹 빛이 나오려는 부분도 있으나 비범함까지는 미치지 않는것 같다.

사실 에세이에서 그런걸 바란다는 건 무리인 면도 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 연결된 현대인들에겐 무한의 자유가 주어진 것 같지만, 도리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 자유의 과잉으로 인해 개인의 소외는 알게 모르게 깊어져간다.

이러한 역설속에서 자신의 핵심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이 책의 가르침은 놀랍도록 명징하다.

몇가지의 사실적인 에피소드와 그 에피소드속에서 찾아야만 하는 핵심주제를 살짝 비틀어서 최대한 명확하게 보여주려는 저자의 글솜씨 역시 이 책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이다.

자신을 잃어가고 항상 바쁘게 무엇에 쫓겨간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잠시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짧지만 지속되는 여유를 줄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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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찾아 또다시 떠나고 싶어지면 나는 다른 어디도 아닌 뒷마당을 돌아볼 거에요. 그곳에 없다면 애초에 잃어버린 적도 없을 테니까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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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너드 코언이 훗날 내게 힘주어 말했던 것처럼, 아무데도 가지 않는 행위는 세상에 등을 돌리고 집안에 틀어박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좀더 명료하게 바라보고 더 깊이 사랑하려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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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도 더 전에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다시피, 우리는 만드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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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는「햄릿」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항상 좋거나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네. 다 생각하기 나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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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면, 우리가 어디에 갔는지 보지 말고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살펴보라.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 경험이 의미를 획득하고 내 자아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일어난다. 집에 가만히 앉아, 내가 본 것들을 오래 지속되는 통찰력에 차곡차곡 담을 때 비로소 그 경험은 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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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신으 일지에 이렇게 썼다. "당신이 어디를 여행했는지, 얼마나 멀리 여행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멀리 갈수록 대개 더 나쁘다. 그보다는 당신이 얼마나 살아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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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靜)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동(動)이야말로 가장 풍성한 감각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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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경험은, 가본 적은 없지만 존재한다고 알고 있던 곳에서 누군가 나를 소리쳐 보르는 것과 다소 비슷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수도사들이 불쑥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진짜 삶의 느낌을, 다시 말해 쉽 없이 변하는 생각 뒤에서 변하지 않고 오롯이 버티는 것을 찾아내려면 발전하지 말고 기억을 더듬으라고. 정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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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언은 가장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가장 위대한 여행은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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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바탕으로 쓴 『승려와 철학자』는 프랑스에서 50만 부가량 팔렸다. 아버지로터 물려받았음이 분명한 유려한 글솜씨와 데카르트적 명료함을 살려 불교의 '정신과학'을 전달한 데 힘입은 결과였다. 가령, 이 세상에 태어나 행복을 손에 넣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불구덩이에 뛰어들면서 화상을 입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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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는 내부에서
 그 크기를 이끌어낸다
 중심의 분위기에 따라
 이것은 공작이거나 난쟁이.

 - 에밀리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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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미국 기업 중 3분의 1이 '스트레스 경감 프로그램'을 시행중이다. 그런 회사는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 직원들이 정신의 혈관이 뻥 뚫리는 느낌이 얼마나 신나고 행복한지 깨달았다는 점이 이러한 증가의 원인이다. 대형 의료 서비스 기업인 애트나에서 이 프로그램에 가입한 직원들 가운데 3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고작 한 시간 요가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수치가 3분의 1가량 떨어지는 효과를 체험했다. 컴퓨터 반도체 칩 제조사인 인텔은 '조용한 시간(Quiet Period)'이라는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시행했다. 회사는 엔지니어와 중간 관리자 300명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네 시간 동안 이메일 계정을 로그 아웃하고 휴대폰 전원을 끈 뒤, 사무실 문에 '방해하지 마시오' 팻말을 걸어두게 했다. 언플러그 상태가 되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취지였다. 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이에 사측은 맑고 명료한 정신으로 사고하는 분위기를 장려하기 위해 정식으로 8주짜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제너럴밀스에서는 이와 비슷한 7주짜리 프로그램을 수행한 후 임원의 80퍼센트가 의사결정 능력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고 보고했다. 아울러 89퍼센트는 상대의 말을 더 잘 경청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로 미국 기업들은 연간 3000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었다. '스트레스가 21세기의 유행병이 될 것'이라는 세계 보건기구의 발표가 널리 인용되는 세상에서, 이런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스트레스의 예방약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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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에 울림과 형태를 부여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쉼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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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는 전염된다. 이것은 엄연한 연구 결과다.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과중한 부담을 떠안은 엄마가 남편이나 친정어머니나 친구에게 하루에 30분이라도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그녀는 분명 그 30분 후 아이들을 돌보거나 일을 할 때 더 즐겁게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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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의 말처럼 이동과 연결과 공간의 시대가 되었지만, 정작 우리의 일상은 시간에 잡아먹혀버렸다. 물론 마르크스가 이 말을 한 맥락은 지금과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느 곳에나 연결될 수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지리적인 제한이 사라지자마자 시간이 점점 더 우리에게 횡포를 부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릴수록 나 자신과 소통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일본의 뒷골목에서 살기 위해 뉴욕을 떠날 때만 해도 나는 가진 돈은 물론 즐거움과 친목생활, 여러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 거라 각오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더욱 풍요로워졌다. 바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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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유대 신학자였던 에이브러햄 죠수아 헤셸이 정의한 것처럼, 안식일은 "공간이 아닌, 시간에 세운 대성당"이다. 우리가 주중에서 비운 하루는 빛으로 가득찬 노트르담대성당의 통로처럼 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이 서성거릴 수 있는 거대한 빈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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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를 보내는 시간의 양에는 관심을 기울였지만 시간의 질에는 소홀했다. 나는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을 일과 관련한 독서를 하거나, 극장에 걸려 있을 때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던 영화를 보거나, 일할 때처럼 미친듯이 나 자신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울 기회로 삼았다. 리카르가 비행을 보내는 작은 안식일로 여길 수 있다고 했을 때, 나는 그런 일은 30년 동안 히말라야 산중에서 수행을 한 승려나 할 수 있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리라 여겼다.



고3에 대학은 자기 인생의 ROI가 안나올것 같다는 판단에,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읽고, 지금이 아니면 해볼 수 없다는 두려움에 세계여행을 떠난 미친 고3의 이야기.

일단 재밋다. 그리고 점점 글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책을 읽어가면서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젊은 시절 여행만큼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성장시키는 것도 없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부러운 마음이었다.

오늘도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들도 물론 대한민국의 중요한 재원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길거리에 차고 넘칠만큼 많다.

그런 세상에 반기를 들고 이렇게 후련하게 자기의 길을 일찍이 가는 청년들이 많아질 수록,

조금은 더 이 나라가 희망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 보니 여행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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