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6년만에 나온 신작. 하루키 작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얼마되지 않아 '익숙한 스토리와 구성인데?'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도시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부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그대로 떠올리게 된다.

소설 말미에 작가후기에서도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중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1980년 문예지 '문학계' 발표)를 처음 다듬어서 쓴 장편이 1996년에 나온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다고 밝혀놨다.

작가는<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는 다른 대응이 또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속마음으로는 아마도 조금은 미진하거나 걸리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도 든다.

개인적으로도 1996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세계의 끝>은 최근(2년 전쯤)에 들어서야 읽어봤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다.  다 읽고 나서도 뭔가 빠진 부분이 있다고나 할까?

이 작품도 그리 개운하진 않다. 카페 여주인과의 스토리를 좀 더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데 급작스럽게 끊겨버리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세계의 끝>보다는 진일보한 작품이란 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후기 말미에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이다 - 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 = 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하루키의 주요한 작품은 크게 3개라고 본다.

1. 양 3연작 시대(초기)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2. 노르웨이의 숲

3.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이후 

 

특히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이후의 작품은 거의 동일한 모티프의 변주이고 그 중 최고의 작품은 <태엽 감는 새 연대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번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여전히 내겐 2% 정도 부족해보이는데, 70대가 넘는 노작가가 아직도 그의 작품 세계의 결말을 내지 않고 정진하는 모습은 어떤 면에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도 있다.

나온지 꽤 된 소설이고 출간 당시에는 베스트셀러였다. 집에 굴러다닌지 오래된 책인데 책정리 차원에서 버리기 전에 읽어봤다.

책의 초반부는 흥미를 일으킬만한 요소가 있지만 중후반 이후로 힘이 확 떨어진다.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존 그리샴의 다른 작품을 영화화한  펠리컨 브리프를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그런 킬링타임용 스릴러물 정도라고나 할까?

출간 당시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굳이 읽어볼만한 소설은 아니다.

 

 

유시민 작가님의 추천사를 듣고 보게 된 책.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딸과 빨치산 출신의 아버지가 인생의 기나긴 갈등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재밋고 그리고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

p136

 구례는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전장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친척과 친구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적으로 아는 사람도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고향에서 사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몇년에 한번씩 바뀌는 정보과 담당 형사들과도 허물없이 농을 주고받으며 두루두루 잘 지냈다. 감시하는 형사와 술잔을 나누고 싶냐는 내 비아냥도.

 "순겡은 사램 아니다냐?"

 아버지는 대수롭잖게 받아넘겼다.

 "몰르는 사람잉게 총질을 해대제 구례 사램들끼리는 안 그랬어야. 뽈갱이든 퍼랭이든 노상 얼굴 보고 살았는디 총이 겨놔지가니. 구례는 해방 직후에 친일파 숙청도 지대로 못했당게."

 고씨 집안사람 하나가 친일파였다. 친일로 제법 돈을 모았고, 일본에 헌납도 한 모양이었다. 해방 직후 면의 젊은이들이 그를 당산나무 아래로 끌고 왔다. 쳐 죽이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혈기왕성한 젊은이 하나가 낫을 들고 다가가자 누군가 빽 소리를 쳤다. 젊은이의 어머니였다.

 "그 어른이 아니었으면 니가 시방 산 목심이 아니어야!"

 젊은이가 어린 시절 이질로 죽어갈 때 고씨가 병원비를 댄 것이다. 사람들이 한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우리 애기 학벵 끌레가게 생겼는디 고씨 어른이 손을 써줬그마요."

 고씨 성토장이 이내 미담장으로 변했다. 쳐 죽이자고 했던 젊은이들도 그만 머쓱해져서 흐지부지 흩어지고 말았다.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자신도 고씨처럼 인심을 잃지 않았으니 빨갱이라도 고향서 살 수 있다는 의미인 듯했다. 한때 적이었던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살아가는 아버지도 구례 사람들도 나는 늘 신기했다.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 사람에게 늘 뒤통수를 맞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지도 몰랐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우리가 안중근이 이토에게 총을 쏜 사건의 의미를 얼마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지를 재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안중근이 이토를 쏜 후, 사형을 당하기까지의 짧은 기간동안 일본, 한국의 정치적 현실 그리고 한국 천주교의 입장, 한국 민중들의 반응에 대해 입체적으로 농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안중근 의사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뒤로 갈수록 가슴이 너무나 먹먹해지고 답답해진다.

-----------------

p17

 제2차 한일협약 때, 병력으로 조선 황궁을 포위하고 조선 황제와 대신들을 헌병으로 협박하기는 했지만, 병력을 부딪치지 않고 도장을 받아내서 오백 년이 넘은 나라의 통치권을 인수한 이토의 역량을 메이지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러시아를 도모할 때까지도 이토는 그것이 도장으로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나, 그후 조선 사대부들과 자주 상종할수록 이토의 뜻은 도장 쪽으로 기울었다. 왕권의 지근거리에서 세습되는 복락을 누린 자들일수록 왕조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갈 때는 새롭게 다가오는 권력에 빌붙으려 한다는 사실을 이토는 점차 알게 되었다. 도장의 힘은 거기서 발생하고 있었다. 도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살육을 피할 수 있고, 조선에서 밀려나는 서양 여러 나라들의 간섭을 막을 수 있고, 사후 처리가 원만할 것이었다. 도장을 찍어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스스로 넘긴다는 것은 보도 듣도 못한 일이었으나, 조선의 대신들은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직함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도장의 힘은 작동되고 있었으나, 조약 체결을 공포한 후 분노하는 조선 민심의 폭발을 이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체 높은 사대부들이 비통한 글을 남기고 잇달아 자결했다. 그들은 독약을 마셨고 물에 뛰어들었다. 조선 황제는 자살한 신하들에게 표창을 내려서 충절을 기렸다. 오백 년을 지탱해온 나라의 관리와 식자 몇 명이 치욕을 못 견디어 자결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토는 이 죽음에 따른 민심의 동태를 주시하면서도 못 본 체했다. 이 동시다발적인 죽음들은 무력하기는 했으나 충忠의 반열에 올랐다.

 이토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결이 아닌 무지렁이 백설들의 저항에 경악했다. 왕권이 이미 무너지고 사대부들이 국권을 넘겼는데도, 조선의 면면촌촌에서 백성들은 일어나고 또 일어섰다.

 

p69

 안중근이 서울에 도착하기 며칠 전에 한국 통감 이토는 한국 군대를 해산했다. 강제해산 당한 한국군이 일본군과 도심지에서 싸우고 있었다. 이토는 한국 대신들을 겁박했고, 대신들은 황제를 몰아붙여서 군대 해산의 윤허를 받아냈다. 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가 무장해제의 과정을 지휘했다. 하세가와는 맨손체조 훈련을 하겠으니 서울의 한국군 병력은 모두 비무장 상태로 훈련원으로 모이라고 명령했다. 부대 지휘관들이 맨손의 병력을 인솔해서 훈련원에 모였다. 무장한 일본군이 맨손의 한국군을 에워싸고 해산을 통고했다. 훈련원에서 일본군 대대장의 구령에 따라 해산식이 진행되는 동안에 일본 군대가 병력이 없는 한국군 부대를 접수해서 무기를 가져갔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군인들을 달랬다.

 - 너희들은 나의 뜻을 헤아려서 각자 맞는 일거리를 찾아서 살아라.

 황제는 이어 내각에 지시했다.

 - 군대를 해산시킬 때 폭동에 미리 대비하라. 혹시 폭동을 진압할 일이 있으면 이토 통감에게 의지하고 부탁하라.

 이토는 전국의 한국군 지방 병력을 해산시키라고 각 도의 경찰관서에 지시했다. 여러 고을의 연병장에서 한국군 병력이 총검을 내려놓고 맨손체조를 하는 동안에 경관들이 무기를 수거했다.

 군대가 해산되기 한 달 전에, 고종 황제가 헤이그에 밀사를 보낸 사실을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이토는 고종을 꾸짖어 퇴위시키고 그 아들 순종을 황제에 자리에 앉혔다. 새 황제가 해산하는 군인들에게 은사금을 내렸다. 하사에게 팔십원, 일 년 이상 근무한 병사에게 오십원, 일 년 미만자에게 이십오원이었다. 병사들이 돈을 찢으면서 통곡했다.

 시위侍衛 1연대 1대대장 박승환이 명을 받지 않고 자살했다. 참위 남상덕이 부대원을 이끌고 거리로 나가서 일본군과 싸웠다. 일본군이 숭례문 문루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쏘았다. 거리에 시체가 쌓였다. 한국군 병사들이 흩어져서 민가로 숨었다. 일본 군인들이 일본 여자를 앞세워서 민가의 내실을 수색했다. 잡히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때려죽였다. 달아나던 한국군 병사들은 고립된 일본 군인들을 만나면 묶어놓고 때렸다. 때려서 죽였다. 일본군이 대궐 문 양쪽에 기관포를 설치하고 한국 대신들의 집에 헌병을 세웠다. 일본군은 일본인 밀집 거주지역인 진고개의 경비를 강화했다. 한국 고관들이 가족들을 진고개 안쪽으로 옮겼다.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 부대에 가세했다. 의병들은 전국 산골, 도회지, 섬에서 싸우다 죽었다. 져서 자살했고, 잡혀가 죽임을 당했다.

 

p78

 이토는 후임 통감에게 주는 문서를 비서관에게 맡기고 나서, 경시총감을 불러서 지시했다. 

 - 위생에 관한 명령이다. 서울 도성 안 거리에서 방분, 방뇨를 금하라. 아동들도 포함시켜라. 집안의 분뇨를 길에 버리지 못하게 하라. 분뇨는 반드시 수거해서 처리장에 버리도록 행정을 조직해서 시행하라. 걸인과 부랑자들의 문전걸식을 금한다. 이들을 도성 밖에 수용하라. 훈령으로 알리고 병력으로 단속하라. 같은 명령이 반복되면 권위가 훼손되어서 시행하기 어려워진다. 분뇨의 문제는 거듭 말하지 않겠다. 이번에 엄단해서 통감의 뜻을 보여라.

 이토는 서울에 처음 부임했을 때 똥냄새에 질겁을 했다. 어른과 아이들이 길바닥에서 엉덩이를 까고 앉아 똥을 누었고, 집집에서 아침마다 요강을 길바닥에 쏟았다. 장마 때는 변소가 넘쳐서 똥덩이가 떠다녔다. 똥냄새는 마을 골목마다 깊게 배어 있었고 남대문 거리, 정동 거리에도 똥 무더기가 널려 있었다. 통감부 직원들이 밤길을 돌아다니다가 똥을 밟고 미끄러졌다는 얘기를 이토는 요정에서 술 마시다가 기생들한테 들었다. 

이토는 덕수궁에서 만난 조선 대신들을 불러 세우고 거리의 똥을 치우라고 말했다. 통감이 똥 문제를 이야기하자 조선 대신들은 얼굴을 돌렸다.

 - 통감 각하의 살피심이 이처럼 세밀하시니 두렵습니다.

 - 분뇨의 문제는 인의예지에 선행하는 것이오. 이것이 조선의 가장 시급한 당면 문제요. 즉각 시정하시오.

 이토는 통감부와 조선 조정을 거듭 다그쳤으나 거리는 여전히 똥바다였다. 똥은 틀어막을 수가 없었고, 먹고 누는 일을 금할 수가 없었다. 통감부를 떠나면서 이토는 서울 도심에 공중변소를 늘리고 분뇨를 길에 버리는 자들을 엄단하라고 거듭 지시를 내렸다. 목숨의 안쪽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똥이란 당하기 어렵다... 라고 이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날마다 새 똥이 거리에 널려 있었다.

 

p127

 전쟁의 결과가 섬멸적인 압승일수록 제삼국의 개입을 차단하기가 쉽고 새로운 판도를 기존 질서로 정립시키기가 쉽다는 것을 이토는 청일전쟁이 끝나고 서양 여러 나라들과 외교 분쟁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수십만의 주검을 치르고 얻은 피의 교훈이었다.

 

p184

 범인이 안중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뮈텔은 황해도 산골에서 길을 안내하던 안중근과 대학교를 세워달라고 들이대던 안중근을 떠올렸다. 이토가 죽은 뒤에 안중근이 천주교인인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뮈텔은 안중근은 이미 천주교인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개인들의 영성이 꽃처럼 피어나면 그 꽃들이 모여서 문명을 이루고 하느님의 나라가 그 위에 세워지는 평화의 구도를 뮈텔은 아직도 이 황잡한 세상에 필 수가 없었다. 적개심에 가득찬 자에게 평화를 말할 수는 없었다.

 총으로 쏘아 죽이는 방식으로 증오를 표출한 천주교인의 죄악에 뮈텔은 상심했다. 백 년이 넘는 박해의 세월을 견디면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는 순교의 피 위에 세속의 거점을 겨우 확보한 조선 교회가 또다시 세속 권력과 충돌한다면 교회의 틀이 위태로워질 것을 뮈텔은 걱정했다. 뮈텔은 자신의 걱정을 신부와 신도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안중근은 사제를 능멸했고 교회의 가르침을 배반했으며, 교회 밖으로 나가서 살인의 대죄를 저질렀으므로, 그가 비록 영세를 받았다 해도 더이상 교회의 자식이 아니라고 뮈텔은 하느님께 고했다. 하느님은 세속의 일에 관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p196. 19장.

 이토의 영결식은 11월 4일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열렸다. 이토의 관은 아침 일찍 아카사카 레이난자카의 관저를 떠났다. 기마헌병대, 군악대, 의장대가 운구 대열의 선두를 이끌었다. 그 뒤로 대령급 군인 열두 명이 이토가 받은 훈장 스물네 개를 받들었고, 이토의 관 둘레를 육군 해군 장성들이 경위했다.

 장례위원회는 통나무를 새로 벌목해서 히비야 공원에서 임식 막사 마흔 동을 새로 지었다. 껍질 벗긴 새 나무의 향기가 식장에 가득찼다.

 이토의 관이 중앙에 놓이고 그 앞에 훈장 스물네 개가 늘어섰다. 법의를 걸친 승려들이 독경했고 러시아정교회의 주교가 금빛 십자가를 들고 입장했다. 일본 황태자 내외의 어사, 한국 태황제의 어사, 한국 황제의 어사, 한국 황태자의 어사들이 차례로 입장했다. 보병, 기병, 포병 2개 사단이 식장 외곽을 경비했고 해군이 의장을 맡았다.

 메이지는 이토의 장례 절차와 규모에 대해서 소상히 보고받고 윤허했다. 메이지는 이토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메이지는 이토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심회를 발설하지 않았다. 대신들은 메이지의 침묵 앞에서 침묵했다. 시종들은 멀리서 메이지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같은 날 서울 장충단에서 한국 황실과 내각과 민간인들이 합동으로 관민 추도회를 열었다.

 흰 베로 장막을 치고 그 안에 이토의 위폐를 모셨다. 위패에 '문충공文忠公'의 시호를 써붙였다. 황족과 각부 대신, 고위 관리, 한성부민회 임원들, 각 지역 대표들이 이토의 위패에 절했다. 서울의 모든 학교가 수업을 중지했다. 교사들이 학생을 인솔해 와서 절했다. 수도 거주민들은 대문 앞에 삼베를 감은 반기半旗를 걸었다. 이토의 위패 앞에는 조선의 예법에 따라서 이쪽에서 저쪽까지 밥, 국, 떡, 육포, 푸성귀, 나물, 과일, 생선, 고기가 펼쳐져 있었다.

 

p204

 이토의 장례식을 치르기 전부터, 서울에 이토의 송덕비와 동상을 세우자는 건의들이 통감부에 접수되었다. 통감부는 허가하지 않았따. 통감부는 건의한 자들을 불러들여서 충정은 이해하나 바닥 민심이 어수선하니 경거망동을 삼가라고 경고했다.

 이토의 동상을 세운다고 모금을 해서 돈을 떼어먹으려던 자들이 경시청에 검거되었다. 한국 황제의 어명을 받은 조문 사절을 사칭하는 자들이 대련으로 건너가서 이토의 관을 실은 배를 향해서 절했다.

 

 지방 군수와 서생들 중에서 힘있는 자들이 사죄단, 위문단을 구성해서 일본으로 가면서 그 여행 비용을 주민들에게 걷었다. 뜻있는 자들이 모여서 이토의 죽음을 사죄하러 일본에 가려고 13도 인민 도일渡日 대표단을 결성했다.

 도쿄의 한국 황태자 이은은 태사인 이토의 죽음을 애도해서 삼 개월 복을 입고 식음을 간소히 했다.

 서울의 무당 수련은 태황제의 총애를 입어서 궁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대궐을 드나들었다. 수련은 원구단에서 가까운 자리에 굿판을 벌이고 노래하고 춤추어서 총 맞아 죽은 이토의 혼백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빌었다. 태황제는 늘 수련에게 상금 명목으로 많은 돈을 주었다. 이날 굿판에 육백여 명이 모여서 먹고 마셨는데, 비용은 모두 수련이 자비로 부담했다.

 

 일본 신문들은 이토의 죽음을 맞은 도쿄 화류계의 슬픔을 소상히 보도했다. 슬픔은 고요하고 단정했다. 도쿄 아카사카의 게이샤 우메코梅子는 이토의 여행길을 여러 번 모셔서 화류계의 선망을 받아왔다. 이토가 죽은 다음날, 우메코는 요정으로 몰려온 기자들을 만나지 않고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요정의 늙은 마담이 기자들 앞에 나와서

 - 우메코는 어른을 모신 일을 발설하지 않는다. 우메코는 지금 화장을 지우고 슬픔에 잠겨 있다. 인터뷰에 응할 수 없는 슬픔으로 인터뷰를 대신한다.

 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우메코의 슬픔의 품격을 평가하는 기사를 썼다. 이 요정의 주방장 아베는

 - 어른의 식성은 늘 깔끔했다. 요란한 상차림을 싫어하셨다. 생선회, 은행구이, 야채 절임과 된장국 정도였다. 계절에 민감하시어, 철마다 생선을 바꾸어 드렸다. 기름진 생선은 드시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이토의 식성을 기사로 썼다.

 진자의 게이샤 하나코는 

 - 십여 년 전에 연회에서 처음 뵌 후 자주 사랑받았다. 저의 누추한 집에도 가끔 오셨다. 술 드시면서 늘 서화와 문장을 말씀하셨다. 많이 취하시면 야한 말씀도 잘하시고 저를 간지럼 태우면서 노셨다.

 라고 말했다.

 교토 화류계의 슬픔은 더 깊고 우아했다.

 ..... 이토 공작 각하께서는 국사로 바빠서 주로 도쿄에 계셨지만 공작 각하의 마음은 늘 교토의 풍류를 그리워하시었고, 틈만 나면 교토에 오셔서 저희들을 사랑해주시었다.... 공작 각하께서는 저희들 앞에서 국사를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나라의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는 포도주를 드시고 나라의 일이 어렵게 꼬일 때는 위스키를 드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눈치로 알고 있었다.... 공작 각하께서 저희들의 교태에 눈길을 주지 않으시고, 깊은 시름에 잠겨서 독한 위스키를 거푸 드시면 저희들은 마음이 아팠다..... 이런 속마음의 깊이는 풍류의 본향이 교토의 게이샤가 아니면 알 수가 없다..... 라고 기온의 늙은 게이샤가 말했다고 지방신문이 인물란에 썼다.

 

p229

 재판 과정에서 안중근의 정치적 동기를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내 보이고, 문명한 절차에 따라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 일본 외무성의 방침이었다. 우덕순에 대한 사법적 처리도 이 방침 안에 있었다. 외무성은 이 방침을 관동도독부 고등 법원에 전문으로 지시했다. 외무성의 전문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도착했다. 고등법원은 외무성의 방침을 지방법원에 구두로 하달하고 전보로 접수한 공문을 극비로 보관했다.

 재판장 마나베는 안중근과 우덕순 사이에 지휘 복종의 관게를 설정하기가 어려웠다. 검찰관 미조부치가 법원에 제출한 신문조서에서도 그 관계는 분명하지 않았다. 우덕순은 안중근의 제안에 따라 범행에 가담했지만 하수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고, 자신의 동기를 논리적으로 진술하지도 않았다.

 재판장 마나베가 안중근에게 물었다.

 - 이 일을 하기 위해 우에게 뭐라고 말했나?

 - 이토가 하얼빈에 오는데, 함께 가서 죽이자고 말했다.

 - 그것이 언제인가?

 - 우라지를 출발하기 이틀 전이다.

 - 우는 동의했나?

 - 동의했다.

 - 다른 의견을 말하지 않았는가?

 - 다른 말은 없었다.

 -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언제였나?

 - 그날 밤이었다.

 - 그래서 즉시 떠났는가?

 - 다음날 역으로 갔더니 기차가 이미 떠나서 그다음날 출발했다.

 

 마나베는 우덕순에게 물었다.

 - 그대는 안중근과 나랏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 없다.

 - 그대는 안중근과 한국의 독립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 없다.

 - 그대는 안과 동행하기로 약속했는가?

 - 나는 이토를 죽일 목적이었다.

 - 안은 왜 이토를 죽이려 했는가?

 - 그것을 안중근에게 들을 필요는 없었다. 모든 한국인이 이토를 증오하고 있다.

 - 안의 제안에 대해서 그대는 뭐라고 말했나?

 - 다만, 함께 가자고 했다.

 - 그 밖에 그대의 의견을 말하지 않았나?

 - 어떤 상의도 하지 않았다.

 - 안중근은 의병으로서 한 일이라고 하는데, 그대는 의병과 관련이 있는가?

 - 나는 다만 일개의 국민으로서 했다. 의병이기 때문에 하고, 의병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그대는 안의 명령에 따른 것인가?

 - 아니다. 나는 안에게 명령을 받을 의무가 없다. 또 명령을 받을 의무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명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한 것이다.

 - 이토 공은 고관으로 수행원과 경호원이 많은데, 그대는 암살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가?

 - 그것은 사람의 결심 하나로 되는 일이다. 결심이 확고하면 아무리 경호가 많아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통역관이 우덕순의 진술을 일본말로 옮겼다. 방청석이 고요했다.

 마나베는 자신의 질문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우덕순은 마음속의 사실을 들이대며 질문에 답했고, 사실을 들이대며 질문을 부수었다. 우덕순은 행위와 관련된 사실을 말했고, 동기와 관련된 사실을 말했다. 우덕순은 마나베의 질문이 미리 설정한 틀에 갇히지 않았다.

 안중근의 진술과 우덕순의 진술을 행위의 미세한 대목까지 일치했다. 마나베는 두 피고인의 진술의 상이점을 찾아내서 그 틈새를 파고들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마나베는 안중근에게 물었다.

 - 그대는 공명정대한 일을 한다면서 어째서 검찰관 신문 때 공모자 우덕순의 일을 숨기고 말하지 않았는가?

 - 우덕순이 말하기 전에 내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일만 말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이 피고인에게 접수되지 않은 채 튕겨져 나왔다. 마나베는 동기의 정치성을 부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마나베는 안중근에게 물었다.

 - 어디를 겨누었는가?

 - 심장을 겨누었다.

 - 거리는?

 - 십보 정도였다.

 - 이토 공의 수행원에게도 쏘았는가?

 - 누가 이토인지 몰랐기 때문에 이토의 오른쪽으로도 쏘았고 그다음에 왼쪽으로 쏘았다.

 - 성공하면 자살할 생각이었는가?

 - 아니다.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서는 단지 이토를 죽인 것만으로는 죽을 수 없다.

 - 그런 원대한 계획이었다면 범행 후 체포당하지 않으려 했을 텐데, 도주할 계획을 세웠는가?

 - 아니다.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므로 도주할 생각은 없었다.

 

 질문이 답변을 누르지 못했다. 질문과 답변이 부딪쳐서 부서졌고, 사건의 내용을 일정한 방향으로 엮어나가지 못했다. 답변이 질문 위에 올라탈 기세였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힘주어 말했다. 진술은 유불리를 떠나 있었다.

 마나베는 검찰관 미조부치가 신문 과정에서 안중근에게 처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는 기록을 떠올렸다. 마나베는 그것이 실속 있는 신문 기법이라고 생각했다. 마나베는

 - 그대의 범죄와는 관계없지만 참고로 알려준다.

 라고 서두를 꺼내고, 김아려와 어린 분도가 이미 미조부치의 신문을 받았다고 안중근에게 말했다.

 - 그대의 처는 그대와 부부 사이라는 것을 끝내 부인했다. 그러나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사진을 보고 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대의 처는 끝까지 부인하고 있지만 나는 그들이 그대의 처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나베는 안중근의 얼굴을 쳐다보며 사건과 관련 없는 사실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안중근은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나베는 검찰에서 넘어온 증거물을 제시했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증거물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마나베가 말했다.

 - 유리한 증거가 있으면 말하라.

 안중근이 말했다.

 - 없다.

 우덕순이 말했다.

 - 없다.

 안중근이 이어서 말했다.

 - 나는 헛된 일을 좋아해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나는 이토를 죽인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   ... 이제부터 그 사유를 말하고자 한다.

 마나베는 더이상 재판을 공개하면 공공의 안녕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다고 선언하고 방청객에게 퇴정을 지시했다. 변호사가 마나베에게 안중근의 의견을 서면으로 접수해달라고 요청했다. 

 마나베가 안중근에게 말했다.

 - 그대의 정치적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하면 어떤가?

 - 나는 말하기 좋아서 여러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거사는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다. 공개를 금지한 이상 진술할 필요는 없다.

 - 앞으로도 진술하지 않겠는가?

 - 방청객이 없으면 진술하지 않겠다.

 

 - 그렇다면 앞으로 진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를 지금 진술하라.

 -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된 자는 이것을 위해서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토는 통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태황제를 폐위시키고 현 황제를 자기 부하처럼 부렸다. 또 타국민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십수만 한국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였다. 이토, 이자는 영웅이 아니다. 기회를 기다려 없애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하얼빈에서 기회를 얻었으므로 죽였다.

 검찰관은 내가 이토를 오해해서 죽였다고 말하는데, 나는 검찰관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해해서 죽인 것이 아니다. 검찰관이 내 다섯 살 난 아들에게 내 사진을 보여주니까 아버지라고 말했다고 조서에 썼다. 그 아이가 세 살 때 내가 집을 떠났으니 아이가 내 얼굴을 알 방도가 없다. 이로써 검찰 취조가 엉터리임을 알 수 있다.

 - 유리한 증거가 있으면 말하라.

 - 나는 증거물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다. 다만 나의 목적에 대해서 할말이 있다.

 - 대개 진술하지 않았는가?

 - 그렇지 않다. 십분의 일도 말하지 못했다.

 - 여기는 의견을 재판하는 자리가 아니다. 사실관계에 있어서 말할 필요가 있다면 간추려서 말하라. 사실관계 이외의 말을 하면 제지시키겠다.

 - 필요한 몇 가지를 말하겠다. 내가 이토를 죽인 까닭은 이토를 죽인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오늘 기회를 얻었으므로 말하겠다.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중장 가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토가 한국 통감이 된 이래 무력으로 한국 황제를 협박하여 을사년 5개 조약, 정미년 7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싸우고 있고 일본 군대가 진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전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렇게 깊이 나간다면 공개를 제지할 수밖에 없다. 방청인들은 모두 퇴정....

 

 진술을 제지하고 방청객들을 내보낼 때마다 마나베는 위기를 느꼈다. 사실관계를 파고들수록 정치성이 드러나고 있었고, 외국 언론들의 관심은 높아졌다. 마나베는 서둘러서 모든 일을 끝냈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정치범이 아니고 사전 공모에 따라 범행한 살인범이라고 미조부치는 결론지었다. 미조부치는 안중근에게 사형을, 우덕순에게 징역 이 년을 구형했다.

 

  마나베는 안중근이 이토를 살해한 죄에 사형을 선고하고, 이미 사형을 결정했으므로 안중근이 이토의 수행원에 대해 저지른 세 건의 살인미수죄에 대해서는 형을 과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또 우덕순에게는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비교적 가벼운 삼 년 형에 처한다고 선고했다. 수사와 재판은 모두 끝났다.

 간수가 안중근과 우덕순에게 용수를 씌우고 마차에 실어서 여순감옥으로 끌고 갔다. 마차가 법원 마당을 떠날 때 방청객들이 몰려와서 구경했고, 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최근 영화 한산을 보고 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읽어봤다. 읽은지 10년이 넘어가고 이순신 장군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진 탓인지 소설의 내용이 더욱 절절히 마음에 와닿는다.

 

문장의 농밀함과 문맥에 흐르는 힘은 김훈 작가의 글솜씨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이순신 장군님의 인생에 흐르는 비장함에 기인한 바도 적지 않을 것이다.

--------------------------

p107

 임진년에 여러 포구에서 이겼을 때, 매번 적병의 숫자를 장계에 써보낸 것이 오 년이 지난 정유년에 조정에서 문제가 되었다. 전공을 허위로 보고해서 임금을 기만하고 조정을 능멸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죽어야 할 죄목의 하나였다. 견내량에서 이겼을 때부터 나는 장계의 적병의 숫자를 적지 않았다. 그날 견내량 싸움을 끝내고 한산 통제영으로 돌아와 장계를 쓸 때, 나는 그 숫자가 어느 날 나를 죽이게 되리라는 예감에 몸을 떨었다. 그날 밤 나는 종사관을 물리치고 밤새도록 혼자 장계를 썼다. 한산 통제영에서 장계를 쓰던 임진년의 여름밤은 달이 밝았다.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고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 한산 통제영에서 그리고 그후의 여러 포구와 수영에서 나는 자주 식은땀을 흘렸고, 때때로 가엾고 안쓰러워서 칼을 버리고 싶었다.

 

p108

 명량의 장계를 보낸 지 두 달 만에 논공행상이 내려왔다. 선전관은 오지 않고, 조정의 명을 받을어 도원수부가 시행됐다. 거제 현령 안위가 정삼품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고 전투에 참가했던 여러 읍진 수령과 군관들이 승진했다. 나에게는 상금으로 은전 스무 냥을 보내왔다. 스무 냥의 무게와 질감은 섬뜩했다. 그 스무 냥 속에서 남쪽 바다를 들여다보는 임금의 눈은 가늘게 번뜩이고 있었다.

 스무 냥이 내려온 지 이틀 뒤에, 임금이 보낸 선전관 이원길이 목포 앞바다 고하도 수영에 도착했다. 이원길은 수하를 거느리고 병영 막사 공사장까지 나를 찾아왔다. 서울 출신 문관인데, 바다를 평생 처음 본다고 했다. 몸매가 가냘폈고 흰 손가락이 길었다. 먼 길을 온 사람 같지 않게 그는 의관이 번듯했고 여독의 기색이 없었다. 수군 병영의 온갖 너저분한 풍경에 그는 자주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공사장 천막에서 그를 맞았다. 나는 인사했다.

- 객고가 크시겠소, 전하께서 수군을 이처럼 염려하여주시니 감읍할 뿐이오.

- 전하의 근심이 실로 깊소이다. 달아난 배설 말이오.

 명량 전투 직전에 탈영 도주한 경상 우수사 배설을 체포해서 끌고 가는 것이 임무라고 그는 밝혔다. 그가 데리고 온 부하들 중에는 무관들이 섞여 있었다. 배설은 이미 수군에서 도망쳤는데, 배설을 체포하는 일로 선전관이 남해의 수군 수영에까지 온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 배설은 이미 달아났지 않소? 배설을 잡으려면 이리로 오실게 아니라 그의 본가 마을로 가셔야 하지 않겠소? 경상도 성주 말이오.

- 통제공, 그게 그리 간단치가 않소이다. 성주에도 군사들을 보냈으나 잡지 못했소. 배설이 성주에 들어온 흔적도 찾지 못했소. 배설이 비록 달아났다 하나 본래 담력 있는 무장이었소. 따르던 장졸들도 많았던 것으로 아오. 이자가 달아나서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전하의 근심이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오.

 나는 겨우 알았다. 임금은 수군통제사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명량 싸움의 결과가 임금은 두려운 것이다. 수영 안에 혹시라도 배설을 감추어놓고 역모의 군사라도 기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것이 임금의 조바심이었다.

 이원길은 열흘 동안 수영에 머물렀다. 이원길은 데리고 온 수하들을 풀어 병영 안을 모두 뒤졌고 수영 인근 백성들의 마을 헛간까지 뒤졌다. 이원길은 명량 전투 이전과 이후의 장졸들의 숫자를 점검했고 각 읍진의 탈영자 숫자를 확인했다. 이원길의 수하들이 수영의 모든 군관들을 불러서 배설의 탈영 경위와 탈영 직전 상황을 수사했다. 이원길의 수사의 초점은 배설이 수영에서 탈영했느냐 아니냐에 맞추어져 있었다. 이원길은 귀로에 우수영, 벽파진, 삼지원까지 뒤지고 돌아갔다.

 

 

 이원길이 돌아간 지 보름 뒤에 임금이 보낸 면사첩(免死帖)을 받았다. 도원수부의 행정관이 면사첩을 들고 왔다. '면사' 두 글자뿐이었다. 다른 아무 문구도 없었다.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임금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에 대하여 죽음을 면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면사첩을 받던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 고 임금은 멀리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면사' 두 글자 속에서, 뒤척이며 돌아눕는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글자 밑의 옥새는 인주가 묻어날 듯이 새빨갰다. 칼을 올려놓은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이 없었다.

 

 

 종사관 김수철이 저녁때 막사 신축 공정과 수군 징모 실적을 보고하는 일로 내 숙사에 들었다. 서안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김수철은 실눈을 뜨고 담벽에 걸린 면사첩을 들여다보았다. 김수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되었을 때 김수철은 내 함거의 뒤를 따라 서울까지 걸어서 올라왔었다. 내가 하옥되었을 때, 김수철은 임금을 대면했다. 일개 지방 수영의 종사관에 불과한 그가 어떻게 임금을 대변할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아마 영의정 류성룡이 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김수철은 임금 앞에서 이마로 대전 마루를 찧으며 울었다. 나를 심문하던 위관들이 김수철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그때 김수철은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

- 전하. 통제공의 죄를 물으시더라도 그 몸을 부수지 마소서. 전하께서 통제공을 죽이시면 사직을 잃으실까 염려되옵니다.

 임금이 대답했다.

- 너희들이 남쪽 바다에서 사직을 염려했느냐?

 김수철은 수영을 이탈한 죄로 곤장 쉰 대를 맞고 풀려났다.

 김수철의 시선은 오랫동안 면사첩에 박혀 있었다. 그가 눈물을 떨구었는데, 그의 얼굴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환갑연의 덕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나으리. 오래오래 사십시오.

- 알았다. 내 그럴 작정이다.

- 보고는 내일로 미루리다. 편히 주무십시오.

- 그래라. 피곤하니 물러가라.

 김수철은 들고 왔던 문서 두루마리를 펼치지 않은 채 그대로 들고 나갔다.

 

p253

 정탐이 돌아가던 날 저녁에 남해도 현감의 급보가 수영에 도착했다. 명의 도사부都司府 담종인이 나에게 보낸 문서가 남해도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남해 현감은 배를 탄 전령을 띄워 담종인의 문서를 나에게 전했다. 전령을 태운 협선은 열 명이 노를 저어 급히 수영에 도착했다.

 명군의 통신 축선이 적이 일부를 장악한 남해도에까지 닿아 있고 명군의 문서 연락병들이 남해도에까지 드나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붉은 비다으로 싼 그 두루마리는 개전 이후 명군 최고사령부가 나에게 보낸 최초의 문서였다. 종사관 김수철을 방안으로 불러들여 문서를 함께 읽었다.

 

  이제 일본군 수뇌부들이 속속 귀순하고 있으니 그 마음이 실로 어여쁘다. 왜는 본래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종자들이거니와, 우리 천자의 크고 깊은 교화의 덕이 저 금수와도 같은 왜에게까지 미쳐 일본군은 이제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려 하고 있으니 실로 천자의 덕이 아니고서야 바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제 함대를 해산하도 군사를 풀어헤쳐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인간은 인간이므로 마땅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럿이 창생의 슬픔과 고통을 지극히 헤아리는 천자의 뜻이다. 이제 너희는 일본군 진영에 가까이 가서 공연한 싸움을 일으키지 말고 천자의 변방 남쪽 바다를 소란케 하지 말라. 내, 너희들의 수영을 한번 들여다보고 스다듬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멀어서 가지 못하고 이제 글을 전하니 내가 친히 너희에게 간 것과 무엇이 다르랴. 대저 천자의 무장은 정한을 가벼이 드러내는 일을 삼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리 알라.

 

 읽기를 마치고 김수철은 말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썰물은 갯벌 위에 새들이 내려앉고 있었다. 바람과 물결이 함께 먼 바다로 몰려나가서 바다는 비어 있었다. 섬 너머 수평선 쪽에서 바람 속을 날뛰는 물결이 하얗게 일어섰다. 빈 바다에는 시간의 흔적이 없었고, 지나간 싸움의 흔적이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의 오지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 수철아, 고향으로 돌아가겠느냐?

 김수철의 시선은 바다 쪽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 나으리, 이미 돌아갈 고향이 없습니다..

 - 일본군과 명군은 돌아갈 고향이 있을 것이다.

 김수철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나으리, 이 문서는 장졸들에게 발설치 마십시오.

 - 너도 발설치 마라. 조정이 가엾구나. 우리는 가엾지 않다.

 

 

작게는 재일 조선인의 디아스포라. 넓게는 소외받는 모든 이들은 위한 찬가.

 세계인 모두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이 작품에 있다.

-------

1권.

p21

 하숙인들은 가게에 갔다가 신문을 읽을 줄 아는 남자들한테서 들었다며 대공황인지 뭔지가 전 세계를 덮쳤다는 이야기를 식사 시간에 자주 꺼냈다. 불쌍한 미국인들이 가련한 소련인들과 중국인들 못지않게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는 이약였다. 심지어 천황의 은총 아래 무탈하게 지내던 일본인들도 배를 곯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 겨울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약삭빠르고 강인한 이들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소식들이 너무나 많았다. 어린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여자 아이들은 국수 한 그릇에 몸을 팔았으며, 노인들은 젊은이들이라도 먹고 살 수 있게 죽을 곳을 찾아 남몰래 떠나버렸다.

 

p69

 "어디를 가든 썩어빠진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야. 아주 나쁜 사람을 보고 싶니? 그럼 평범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성공을 안겨줘 봐. 언제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한번 보는 거야."

p249

 선자는 항상 밭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에서 어머니의 하숙집에는 부엌 뒤쪽에 작은 텃밭이 있어서 하숙인들이 내는 돈보다 두 배는 더 많이 먹을 때도 음식을 제공할 수 있었다. 신선한 식품의 가격은 계속 올랐고, 노동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살 여유도 없었다. 최근에는 몇몇 손님들이 김치 한 포기를 통째로 살 수가 없어서 반으로 쪼개서 조금만 살 수 있는지 묻기도 했다

p267

 조선인들이 일본이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하지만 일본의 적이 이긴다면 조선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밥그릇이나 잘 챙기자는 것이 조선인들이 남모래 품고 있는 속마음이었다. 가족을 구하고, 자기 배를 채우고, 관리자들을 경계하자. 조선의 독립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셋길을 열어주자. 적응해서 살자. 이만큼 간단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p271

 그러나 노아가 이 모든 비밀들보다 더 비밀스럽게 품고 있는 은밀한 소망은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카이노에 살면서 절대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노아의 가장 큰 꿈이었다.

 

p280

 공장주인 시마무라는 비품실 크기만 한 유리로 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투명한 유리창 덕분에 소녀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감시할 수 있었다. 일을 잘 못하는 여자아이를 발견하면 요셉을 불러 들여서 그 아이에게 주의를 주라고 시켰다. 두 번 주의를 받으면 6일 동안 열심히 일해도 주급을 받지 못했다. 시마무라는 파란 천으로 장정한 원장에다 소녀들의 이름을 기입해놓고 그 옆에 경고 횟수를 기록해두었다. 감독관인 요셉은 직원들에게 벌을 주기 싫어했지만 시마무라는 그것이 조선인의 약한 기질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라고 생각했다. 시마무라는 모든 아시아 국가를 일본인의 효율성과 치밀함, 높은 조직 수준으로 다스린다면 아시아 전체가 번영하고 발전해서 저 무도한 서구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다른 대부분의 친구들과는 달리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신이 아무 마음씨 좋고 공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은 흐리멍덩하게 일을 한다고 지적하면 시마무라는 일본인들이 그들에게 무능과 태만을 혐오하라고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이 뭘 배우겠냐고 반박했다. 뿐만 아니라 후세를 위해서 규범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아가 딱 한 번 공장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시마무라는 그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한 일 년 전에 경희가 열병으로 시장에서 기절을 하자 노아가 요셉을 데리러 왔었다. 시마무라는 마지못해서 요셉에게 아내를 돌봐주라고 했지만, 다음 날 아침 다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요셉에게 말했다. 기계로 돌아가는 공장 두 개를 유능한 정비공 없이 어떻게 돌릴 수 있겠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요셉의 아내가 또 아프거나 하면 그때는 동네 사람이나 다른 가족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요셉은 근무 시간에 공장을 떠날 수 없었다. 비스킷 생산은 전쟁 명령이었고, 전쟁 명령은 즉각 수행해야 했다. 남자들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으니 모든 가족이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

2권.

p326

 "그래, 멍청이들은 계속 널 건드리고 네 아버지가 파친코 주인이라는 걸 알아차릴 거야. 사람들이 어떻게 그걸 알겠어?"

 "전 말한 적 없어요."

 "모두 다 알고 있어, 솔로몬. 일본에서는 부자 조선인, 아니면 가난한 조선인이야. 네가 부자 조선인이라면 파친코와 관련이 있는 거지."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세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직하고요."

 "그래, 분명 그런 분일거야." 가즈는 여전히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서 솔로몬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솔로몬이 주저하다가 결국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폭력배가 아니에요. 나쁜 짓을 하지 않아요. 평범한 사업가죠. 세금을 모두 내고 모든 일을 규칙대로 처리해요. 그런 사업을 불법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버지는 한 치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고 도덕적인 분이에요. 파친코를 세 개 운영하고 있지만 그건...."

 가즈가 안심하고 말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자기 것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아요. 돈에도 크게 관심이 없어요. 많은 돈을 기부하고...."

 애쓰코는 모자수가 직원들 몇 명을 위해서 양로원 비용을 지불해줬다고 말했다.

 "솔리, 솔리. 그러지마. 변명할 필요 없어. 조선인들에게는 일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너희 아버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파친코를 선택한 게 분명해. 아마 훌륭한 사업가겠지. 네 포커 기술이 무에서 나왔다고 생각해? 네 아버지는 후지나 소니에서 일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회사에서는 조선인을 고용하지 않잖아. 알지? 어이, 컬럼비아 대학생 청년, 사실 너도 고용해줄지도 의심스러워. 일본의 많은 곳에서 아직도 조선인들을 교사와 경찰, 간호사로 고용하지 않아. 넌 돈을 많이 버는데도 도쿄에서 방을 빌릴 수도 없잖아. 빌어먹을 1989년! 뭐, 네가 그 모든 것을 공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잘못된 거야. 난 일본인이지만 멍청하지 않아. 미국과 유럽에서 오랫동안 살았어. 일본인들이 이 땅에서 태어난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에게 하는 것은 미친 짓이야.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야. 너희들은 혁명을 일으켜야 해. 그런데 그다지 항의를 하지 않잖아. 너와 네 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어. 그렇지?"

 솔로몬은 가즈가 왜 저렇게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가 청부 살인자라 해도 난 신경 안 써. 네 아버지를 고발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청부 살인자가 아닌데요."

 "어이, 애송이. 그거야 당연히 아니지." 가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자친구한테 가봐. 여자친구가 매력적이고 똑똑하다며, 그건 잘된 일이야. 결국에는 머리가 조흔 게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거든." 가즈가 웃으며 말했다.

 가즈는 택시를 불러서 솔로몬에게 먼저 타고 가라고 했다. 다들 가즈가 일반적인 상사 같지 않다고 했는데 그 말이 진짜라고 솔로몬은 생각했다.

 

p340

 "아버지도 가게를 파는 게 어때요? 은퇴하는 거죠. 아버지도 이제 그럴 때가 되지 않았어요? 파친코는 일이 너무 많잖아요."

 "뭐라고? 사업을 그만두라고? 파친코 사업으로 식탁에 음식을 올리고 널 학교에 보냈어. 난 은퇴하기에는 아직 젊어!"

 솔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게다가 내 가게를 팔면 어떻게 되겠니? 직원들이 해고될지도 몰라. 그럼 나이 든 직원들이 어디로 가겠니? 우리는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있어. 일본에서 파친코는 자동차 제조업보다 큰 사업이야."

p360

 피비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솔로몬은 하나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하나는 깨어 있었다. 라디오에서 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댄스음악 덕분에 나이트클럽처럼 생기가 돌아싸.

 "벌써 돌아왔어? 진짜 내가 그리웠던 모양이네. 솔로몬."

 솔로몬은 하나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했고, 하나는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들어주었다.

 "넌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야 해."

 "파친코를?"

 "그래, 파친코. 안 될 게 뭐 있어? 파친코에 대해서 나쁜 소리를 해대는 멍청이들은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네 아버지는 정직한 사람이야. 사기를 쳤다면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부자가 됐잖아. 고로도 좋은 사람이야. 야쿠자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난 상관 안 해. 고로가 야쿠자가 아니더라도 야쿠자에 대해서 잘 알 거야. 이 세상은 더러워, 솔로몬. 깨끗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살아가는 건 더러워지는 거야. 좋은 가문 출신 IBJ(일본산업은행, BOJ(일본은행)에서 일하는 근사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어. 그 인간들은 침대에서 구역질이 나는 짓을 하는 걸 좋아해.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하면서 나쁜 짓을 하지만 잡히질 않지.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인간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의 것을 훔쳤어. 그 인간들은 너무 겁이 많아서 진짜 야망을 품지도 못해. 잘 들어, 솔로몬. 여기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 알겠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이고 이 멍청아."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넌 나의 멍청이지."

 하나가 놀리자 솔로몬은 우울해졌다. 솔로몬은 예전에 이토록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일본은 절대 변하지 않아. 외국인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내 사랑, 넌 언제나 외국인으로 살아야 할 거라고. 저래 일본인이 되지 못해. 알겠어? 자이니치는 여행을 떠날 수 없는 거 알지? 하지만 너만 그런 게 아냐. 일본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도 다시 받아주지 않아. 나 같은 사람들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지. 우리는 일본인인데도 말이야! 난 병에 걸렸어. 오래된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어떤 일본인 남자한테서 옮은 병이야. 그 남자는 죽었어.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 여기 의사들도 내가 떠나버리기를 바라고 있어. 잘 들어, 솔로몬, 넌 여기 머물러야 해.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안돼. 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야 해. 부자가 되면 무엇이든 원하는 걸 할 수 있어. 하지만 아름다운 솔로몬, 저들은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아.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나가 솔로몬을 노려보았다. "내가 말한 대로 해."

 

개인적으론 그리 재밋게 본 작품은 아니다. 추리소설 장르긴 하지만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플롯의 기교라든가 스토리의 기발함같은 맛은 느끼기 어렵다. 작품 자체는 평범한데 무슨 대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보게 된 바가 크다.

이번에 아야세 하루카 주연으로 드라마화가 되었는데 드라마화 하기에는 좋을 수도 있다고 보인다.

소설은 평범하지만 작가의 이력은 그리 평범하지 않다.

작가인 신카와 호타테(新川帆立)는 1991년생으로 도쿄대 법학부를 나온후 24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감명을 받아 작가를 꿈꿨다고 한다. 

이제 32살밖에 안됐지만 신카와 작가의 약력을 보면 나이에 비해 꽤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

고등학교 시절에 바둑부 활동을 했으며 전국대회에 출전한 경력이 있고, 마작에도 흥미를 가졌고 이후 성인이 된 후에 프로마작선수 시험에 합격해서 1년간 프로마작 선수로 활동한 바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작가를 꿈꾸면서 작가가 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전문직을 갖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둑과 마작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고 마작에는 소질이 있어서 프로마작선수로도 활동했던 것 같다.

도쿄대학교 의학부에 전기에 지원했으나 떨어지고, 후기에 법학부에 합격한다.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24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들어가는데, 이 사법연수 기간에 프로마작 선수로 합격해서 1년간 프로마작 선수로도 활동한다.

2017년에 변호사가 되서 법률사무소에서 들어간다. 법률사무소에서 월 150시간이 넘는 잔업(1주일에 6일 근무라고 쳐도 하루에 6시간 잔업이니까 하루 평균 14시간 근무를 한다는 얘기니까 아무리 젊은나이라고 해도 장난이 아님)을 하던 중에 쓰러지게 된다. 이를 계기로 법률사무소를 관두고 요양을 겸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수업을 시작한다.

어쨋든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 기업의 법무팀에 취직해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면서 작가의 꿈을 키워나가다가 2020년 '이 미스테리가 대단해'라는 출판사 주최 미스테리 소설대회에 <전남친의 유언장>을 투고해서 대상을 수상한다.

2021년 <전남친의 유언장>이 출간되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이를 계기고 회사를 관두고 전업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전남친의 유언장>만 번역,출간되어있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이 작품의 후속작으로 <파산상속 그녀(倒産続きの彼女)>, <켄모치 레이코의 하룻밤 추리(剣持麗子のワンナイト推理>를 발표했으며, <켄모치 레이코의 하룻밤의 추리>의 경우는 현재 일본 추리소설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있다.

작가 본인이 동경대 법대 출신에 사법고시를 패스한 변호사 출신이라는 이력 자체가 화제성이 어느 정도 있고, 작품 자체도 꽤 재밋기 때문에 이를 일본 출판계에서 띄워주는 마케팅이 성공한 케이스라고 본다.

결혼을 했으며 남편도 같은 동경대 법학부 출신의 변호사다. 작가의 이름인 신카와 호타테는 필명인데 본명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킬링타임용으로 부담없이 읽을 만한 소설이다. 

 

무라카미의 장편소설 중 유일하게 보다 말았던 작품인데, 도서관에서 하드커버의 양장본을 보고선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돼서 왜 여태 이 작품만 읽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재미가 없었다. 2주간에 걸쳐서 겨우겨우 꾸역꾸역 읽어나가고 말았다.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설 전체적으로 두근두근함이라든가 힘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키의 작품은 확실히 상실의 시대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듯 하다.

 

 난 청소년 시절에 독서라는 걸 거의 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시절에 가끔 머리를 식힐 때 헤세의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수레바퀴 밑에서를 떠올리면 상큼한 사과쥬스의 향이 여전히 느껴지고,  데미안은 웬지 모르게 수척하고 날카로운 하얀 얼굴이 떠오른다. 헤세라는 작가에 대한 인상은 조금은 나르시스적이며 나약한 지식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선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기존에 읽었던 작품들이 헤세의 전성기와 그 이후의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나는 헤세의 중후반기에 대한 인상만을 가졌던 것 같다.

 이 작품은 낭만과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고색창연하지만 아직 전쟁(1차 대전)의 위협이 가시화되기 이전, 유럽에 평화가 공기와 같이 감돌고 이러한 여유에 의해 인간과 사랑에 대한 탐구에만 젊음의 고민이 집중되던 시절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카멘친트의 유소년기부터 중장년기까지의 30~40년 정도를 담아낸 듯 보이지만, 이 소설은 헤세가 26살에 쓴 소설이기에 그 내부에 흐르는 정서는 격렬하면서도 따뜻하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일단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에세이와 소설이 혼재해있다.

어떤 에피는 완전히 소설이지만, 어떤 에피는 에세이로 시작해서 거의 에세이로 끝날뻔 하다가 한 패러그래프 정도가 소설로서의 체면치례를 하고 있다.

 

전반부 작품들은 모호하지 않고 꽤 명확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친절한 느낌마저 든다.

 

뒤의 3개의 작품(사육제,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일인칭 단수)은 조금은 모호하다.

 

지금까지 봐왔던 하루키의 여러 작품들에서 어디선가 삐져나온 단편들을 모은 듯, 이거 어디선가 봤을듯한 느낌인데 하는 소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의, 음악이 몇 개 등장하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사육제'편에 등장한 슈만의 사육제이다. 잠시 유툽으로 들어봤는데 그리 인상적이진 않다.

헤드폰으로 조용히 제대로 함 들어보면 다를지도.

 

-----------------------------------------------

 

p24

 그럼에도 그들은 증인석에 설 준비가 되어 있다. 정직하고 공정한 증인으로서. 그러나 그렇게 인내심 강한 말들을 갖춰서, 혹은 찾아내서 훗날에 남기기 위해 사람은 때로 스스로의 몸을, 스스로의 마음을 조건 없이 내놓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의 목을, 겨울 달빛이 내리비치는 차가운 돌베개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p169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 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 볼 줄 알았어 - 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 살던 사람이니까."

 

 그녀는 사실은 '추한 가면과 아름다운 민낯 - 아름다운 가면과 추한 민낯'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필시 자신의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면을 쓰고 있는 사이 얼굴에 들러붙어서 뗄 수 없어진 사람도 있을 수 있겠네." 내가 말했다.

 

------------------------------------------

이 소설의 네번째 작품인 위드 더 비틀즈(With the Beatles)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톱니바퀴'의 일부 구절이 나온다. 그래서 그 작품을 읽어봤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쓴 작품같은 인상이다. 이 작품을 쓴 후 얼마 안있다가 아쿠타카와는 자살을 했다는데 작품 자체에 상당히 쫓기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풍긴다.

그 소설에 이런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수릉여자(壽陵如子)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서 유행하는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자신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엉금엉금 기어서 귀향했다는 <한비자>속의 청년 수릉의 고사 '한단지보(鄲之步)'와 관련된 말이다.

 

 

 소설의 기본 구성은 중년 남성의 위기?를 하루키식으로 변주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파악하는 의미는, 국경의 남쪽은 일종의 파라다이스 혹은 오아시스를 의미하며, 태양의 서쪽은 사막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서는 사실 희망적인 부분은 거의 없어보이고, 아주 건조하다. 그것은 그것대로 하루키의 매력이기도 하고.

 

--------------------------------

p40

 이곳은 이미 새로운 세계이고, 일찍이 존재했던 세계로 통하는 배후의 문은 벌써 닫혀버렸다. 나는 이 새로운 나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어떻게든 나를 확립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p114

 우리는 이른바 운동권 세대로서,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전반에 거친 치열한 학원투쟁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였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았다.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건 전후 한 시기에 존재했던 이상주의를 배경으로 탐욕스럽게 살쪄가는 고도의, 보다 복잡하고 보다 세련된 자본주의의 논리에 맞서 주장했던 노(No)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인식했다. 그것은 전환기 사회의 격렬한 발열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세계는 이미, 더욱 고도의 자본주의 논리에 의하여 성립된 세계였다. 결국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세계에 꿀꺽 집어삼켜지고 만 것이다.

 

p226

 "하지메, 사진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그건 단지 그림자 같은 거야. 진짜 나는 다른 곳에 있어. 그런 건 사진에는 나오지 않아."

 

p243

 타인을 위해서 올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나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이었고, 나 자신을 위해 울기에는 너무 나이 들어 있었다.

 

 

 

 장르는 소설의 형식을 취하지만 내용은 논픽션이다.

읽는 느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과 매우 유사하다. 그만큼 재밋기도 하다.

이 소설집은 선생께서 여기저기에 부탁 등을 받고 써주었던 당시의 소회, 에피소드를 모은 것으로, 책 말머리에도 쓰여 있지만 본인도 이 글을 내가 썼던건가 갸우뚱 거릴 정도로 본인에겐 잊혀진 글이라고 한다. 

무라카미도 장편을 쓰고 난 후의 휴식기에 정신적 휴식을 취하는 시기에 단편을 쓰거나 번역일을 하는 등의 가벼운 작업을 한다고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글들의 내용은 에피소드 지향적으로 논픽션이라는 점을 빼면 소설 그 자체의 성격을 가진다.

가볍게 읽을 만한 내용이다.

 

---------------------------

 

p76

 두 번째로 품은 닭이 "낙서落書"였다. 낙서는 봉혜의 7대손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고생을 했다. 봉혜의 씨가 말라, 봉혜의 적손들이 사는 지눌의 집에서 입양을 해왔는데, 기존의 패거리들에게 엄청 "왕따"를 당했다. 어려서부터 쪼임을 당했고, 모이를 먹을 때도 모이통에 대등하게 머리를 디밀지 못했다. 딴 놈들이 먹으면서 흐트러놓은 모이가 주변의 땅바닥에 떨어지면 빙글빙글 돌면서 재빨리 주워 먹곤 했다. 성경에도 시로페니키아의 여인이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있다(막7:28). 그 광경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일본의 중 · 고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극심한 왕따현상, 결국 우리나라까지 오염되고 말았지만, 그 왕따현상은 일본사회의 독특한 문화에서 유래하는 기풍이 아니라, 동물세계에서 아주 흔하게 목격되는 원초적 생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물세계의 원초성이 인간세의 도덕성보다 더 순박하고 아름다운 측면도 있지만, 인간세의 발전은 바로 약자를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한다고 하는 협동의 국면으로부터 그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 전기는 이미 수렵 · 채집경제사회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수렵은 공동체 성원의 협력(cooperation)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수렵으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니까 타인에 대한 복지나 관회關懷가 없으면 그것은 문명이라 말할 수 없다. 닭사회의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오히려 협력을 거부하는 문명 이전의 상태로 퇴락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인류사회의 한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문명퇴폐의 한 극상極相이다.

 

p147

 그러나 그 험난한 등반여정의 중간 길목에 있는 "깔딱고개"를 코앞에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깔딱고개만 넘으면 그래도 나머지 등반이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깔딱고개는 너무도 숨이 차서 못 넘을 수도 있다. 그러면 결국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깔딱고개란 본시 숨이 차도 무리해서라도 내친 걸음으로 힘차게 행보해야만 넘을 수 있는 것이다.

 

p198

 씨렉은 씨 섹션 c. section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씨 쎅션의 씨(c)는 "씨세리안cesarian"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로마의 황제 "씨이저"라는 말의 형용사형이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암시하는 아주 애매한 예수의 말이 나오고 있다. 여기 "가이사"는 영어 "씨이저"의 로마 원발음에 가까운표기이다. 이 "가이사"를 중국인들은 "개살凱撒"이라고 표기했다. 이것을 북경만다린으로 읽으면 "카이사"가 된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때만 해도 "씨쎅"이라는 말은 없었고 "개왕절개"라는 말만 있었다. 개왕凱王은 곧 씨이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제왕절개"라는 말도 썼다. 개왕凱王은 로마의 황제였으므로 "제왕帝王"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레코-로망 세계를 나이브한 공화체제에서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체제로 전환시킨 가이우스 줄리우스 씨이저Gaius Julius Ceaser라는 인물이 과연 씨쎅으로 태어났는가? 씨쎅의 발상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씨쎅은 과도한 출혈과 패혈증으로 반드시 산모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줄리우스 씨이저는 기원전 100년 7월 12일에 태어났다. 7월을 "줄라이July"라고 부르는 것은 씨이저의 탄생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본따서 명명한 달력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줄리우스 씨이저는 아버지는 조실했지만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씨이저의 산모는 죽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개왕절개의 신화는 엉터리인 것이다. 의학사학자들은 로마의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애기 낳다가 죽은 여자는 반드시 복부를 칼로 갈러보고 매장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것이 후대에 로마황제 씨이저의 칙령으로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개왕절개"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추론하기도 한다.

 

 

p371

 나를 떠받쳐 주었던 물리적 관계가 전혀 나의 존재를 보장해주는 실상이 아닌 허상이었다는 자각에 함몰한다. 그 자각의 결론은 심각한 고독감이다. 그런데 고독이란 인간의 관계없이는 불치의 병이다.

 

 

통통 튀는 트렌디 드라마처럼 시작했다가, 한자와 나오키 같은 비즈니스 심리 스릴러로 끝난다.

이 맥락의 변화가 너무 생경해서 같은 소설인가 싶을 정도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꽤 재밋었다.

워라벨이라는 주제는 그저 구색일 따름이고, 회사 생활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심리에 촛점이 맞춰져 있고 그것이 꽤 사실적이다. 한국적 사고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회사 생활이라는 것은 비슷한 면이 꽤 많구나라는 것도 알 수 있다.

 

 

 하루키의 초기 3연작의 마지막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과 이어지는 작품이다. 연작이긴 하지만 개별 작품마다 완결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번이 재독인데 작품의 길이에 비해서 무언가 어정쩡하게 끝나는 느낌이 있다. 내가 읽은 작품은 개정판 이전의 단권으로 나온 책(1995년 출판)인데 2009년 개정판은 무엇이 바뀐 게 있을지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하루키 자신도 양을 쫓는 모험이 나중에 좀 미흡한 느낌이었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

 

p97

 "어쨌든 그는 그 돈으로 정당과 광고를 장악했고, 그 구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 그가 표면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야. 광고업계와 집권 정당의 중추를 장악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 없거든. 광고를 장악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자네는 알겠나?"

 "아니."

 "광고를 장악한다는 건  출판과 방송의 대부분을 장악한 게 되는 거야. 광고가 없는 곳에는 출판과 방송이 존재할 수 없지. 물이 없는 수족관과 같다고나 할까. 자네가 보게 되는 정보의 95퍼센트까지가 이미 돈으로 매수되어서 선별된 것이라구."

 "아직 잘 모르겠어"라고 나는 말했다.

 "그 인물이 정보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어덯게 그가 생명 보험 회사의 PR지에까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지? 그건 대형 대리점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맺은 계약이잖아."

 내 친구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 완전히 식어 버린 보리차를 마셨다.

 "주식이야. 놈의 자금원은 주식이거든. 주식 조작, 매점매석, 탈취, 뭐 그런 거지. 그를 위한 정보를 그의 정보 기관이 수집하고, 그것을 그가 취사 선택하는 거야. 그중 매스컴에 흘러 나오는 것은 극히 일부고, 나머지는 선생꼐서 자신을 위해서 쥐고 있는 거지. 물론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협박 비슷한 짓도 하지. 협박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 그 정보는 매치 펌프용으로 정치가에게 흘리는 거야."

 "어느 회사든 약점 한두 가지쯤은 있다 이거군."

 "어떤 회사든 주주 총회에서 폭탄 선언 같은 걸 듣는 건 원치 않거든. 그러니 대개는 하라는 대로 하게 돼 있지. 다시 말해서 선생께서는 정치가와 정보 산업과 주식이라는 삼위 일체 위에 군림하고 있는 셈이지. 이젠 이해하겠지만 PR지 하나쯤 뭉개버린다든지 우리를 실업자로 만드는 일쯤은 그에겐 삶은 달걀 껍질 까기보다도 간단한 일이라구."

 

p101

 우리는 우연의 대지를 정처 없이 방황할 수도 있다. 마치 어떤 식물의 날개 달린 종자가 변덕스런 봄바람에 날려오듯이.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연성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은 명확하게 일어나 버린 일이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직 명확하게 일어나 버린 일이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직 명확하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배후의 '모든 것'과 눈앞의 '제로' 사이에 끼인 순간적인 존재고, 거기에는 우연도 없고 가능성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두 가지 견해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것은(대개의 대립되는 견해가 그렇듯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똑같은 요리 같은 것이다.

 

p157

 나는 두 잔째 위스키를 제일 좋아한다. 첫 잔째의 위스키로 한숨 돌린 기분이 되고, 두 잔째의 위스키로 머리가 정상이 된다. 석 잔째부터는 맛 따위는 없다. 그저 위(胃) 속에 들어부을 뿐이다.

 

p165

 그러나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것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네. 정직과 진실의 관계는 선두(船頭)와 선미(船尾)의 관계와 비슷하지. 먼저 정직함이 나타나고, 마지막에 진실이 나타나는 거야. 그 시간적인 차이는 배의 규모에 정비례하고, 거대한 사물의 진실은 드러나기 어려운 법일세. 우리가 생애를 마친 다음에야 겨우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 그러니까 만약에 내가 당신에게 진실을 드러내지 않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책임도 당신의 책임도 아니네."

 

p184

 '의지 부분'은 아무도 욕심을 내지 않아. 아무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지. 이것이 내가 말하고 있는 분열의 의미야. 의지는 분열될 수 없네. 100퍼센트 계승되거나 100퍼센트 소멸되는 것들 중 하날세.

 

p259

 "맞아요. 나는 지금 당신과 이렇게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만족스러울 때에는 메시지는 오지 않죠. 그러니까 우리는 스스로 양을 찾을 수밖에 없어요."

 

p284

 "근대 일본의 본질을 이루는 어리석음은, 우리가 아시아의 다른 민족과의 교류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거라네. 양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지. 일본에서의 면양 사육이 실패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양모 · 식육의 자급 자족이라는 관점에서만 파악되었기 때문이고, 생활에서의 사상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었던 거네. 시간을 따로 떼어 결론만을 효율적으로 훔쳐내려고 한 거야. 모든 일이 그래. 다시 말해서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은 거지. 전쟁에 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21회 전격문고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약 2시간 정도내로 다 읽히는 중편정도의 내용으로 아주 직관적이며 재밋고

적당히 교훈적이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따뜻함이 흐른다. 그것이 이 글에 흡입력을 더한다.

각박한 세상의 축축함 속에서 무언가 따뜻한 건조기같은 푹신함이 물씬 배어나오는 듯한

포근한 느낌의 소설이다. 

180페이지 정도의 세미장편 정도로 분류된다. 집중하면 3~4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2016년 10월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나온지 2년이 되어간다. 간혹 이 책의 소문을 언뜻 들을 기회가 그간 많았으나,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어로 이슈가 되는 적이 많고, 주요 포탈의 게시판에서도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논쟁을 댓글들로 읽으면서 흥미를 잃었기에 읽지 않고 지나갔다.

최근 이 책의 내용을 원작으로 드라마화가 결정되고, 그 드라마에 여주인공에 내정된 여배우의 SNS가 집중포화를 당하면서 결국 SNS를 폐쇄하고 말았다. 그 사태를 보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리도 남자(난 60년대 말에 태어나 80년대 후반 대학을 나온 전형적 386세대의 남자이다)들에게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의 약자로서 여성의 사회적 차별을 과장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과도한 여성들의 피해의식에 대한 조롱조의 의미이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슈가 되는가에 결국 최근에 읽어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내용을 꼴페미로 규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82년생의 김지영의씨의 삶은 40년대에 태어나서 나의 어머니가 되신 세대들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닮아있다는 것은 같다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는 다르나 조선시대부터 유구히 내려온 남아선호와 사회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차별받는 프레임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40년대의 여성과 80년대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로 상승한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 사회 기저에 흐르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차별의 프레임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남자로서,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학교를 다니고,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해온 남자인 나의 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도 책에서 나오는 김지영씨의 경험과 고민은 대부분 충분히 공감되는 내용이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최대한 그녀의 삶의 모습을 진솔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묘사하려 노력했다고 느낀다. 또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차별 받는 혹은 손해를 받는 주요한 에피소드에서는 객관적인 인용(기사와 같은)의 출처를 밝혀서 최소한의 객관성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그런 수고로움을 하는 것을 별로 보지는 못했다. 이런 노력의 이면에는 여성작가로서 이 소설이 그저 하나의 페미니스트 소설로 한계 지워져버리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로서 작동하지 않았나 한다.

이 소설의 명확한 주제가 사회,관습,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거에는 그것이 차별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던)을 구체화시키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드물게 맥락이 튀면서 "아,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좀 심하다."라는 대목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주어진 주제에 대해 사실을 재구성하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생경함 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남자인 내가 여성의 삶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이해의 모자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여성의 삶과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남자들이 알 수 없는 여성들의 내밀하고 복잡한 마음의 일단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남편과 아내, 혹은 애인 사이에서도, 혹은 아들과 어머니가, 혹은 딸과 어머니가 같이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좋은 내용이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젠더의 대립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 변화하는 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그 때문에 남녀간의 대립이 점점 심화되어가는 지금, 이 책의 내용이 더욱 소중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작가는 중년 남자 의사를 통해 아직 이 사회의 남성들이 여성의 문제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마무리로서 약간의 여운과 아쉬움도 남긴 하지만 남성들의 시각을 바라보는 여자의 느낌이 이런거구나 하는 어느 선 같은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의 서평에 어느 여성학자의 글이 있는데, 사실 좀 너무 이 책의 내용을 사회적 차별에 대한 젠더 대립으로 몰고 가는 듯 해서 안타까운 면이 있었다. 책의 마지막 서평이 도리어 이 책을 둘러싼 논란을 키우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

책의 내용중, 임신을 한 김지영씨에게 지하철에서 여자 대학생이 상처를 주는 부분이 있다. 서평을 쓴 여성학자도 도리어 이 책의 수준과 내용을 서평을 통해 도리어 폄훼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는 젠더의 대립보다는 한 여성으로서 김지영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안타까움만이 짙게 묻어나온다.

좋은 책이다.


 2018년 한경신춘문예 당선작.(처음엔 제목에 끌려서 집었는데, 읽는 중에 표지의 조그만 글자를 보고 알았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사회적 문제라면 역시 일자리일 것이다.(물론 나이든 사람에게도 중요하지만, 절박함이라는 측면에선 역시 

젊은이들이 더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대 중반의 여주인공(이 소설은 주요 인물이 모두 여자이다. 남자는 그저 겉절이 정도의 비중으로 나온다.)

주희의 일자리, 연애등 가장 일반적이지만 절실한 고민들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젊은 여자들(주요 인물은 주인공을 포함해서 20대 여자 3명, 30대 초반의 여자 1명이 나온다.)의 개인/사회적 고민과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

과정이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묵직한 우울함으로 그려진다. 


 길지 않은 중편정도(장편이라고는 하는데, 기준이 뭔진 잘모르겠다. 내 기준으로 400페이지는 넘어야 장편이 아닐까 싶은데.)의 분량이다.

작가도 역시 젊기 때문에 그 또래의 통통튀는 가벼움들이 문장에서 드러난다. 그 가벼움속에서도 무게감 있는 사회적 현실을 그려가면서도

젊음의 희망을 잃지 않는 풋풋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입부는 재밋으며, 말미에서 약간 스텝이 꼬이듯 도입부의 필력이 떨어지는 느낌이지만 그리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다.

싯다르타는 부처님의 출생시의 이름이다. 


이 책이 뒷부분을 보면 헤세가 이 책을 쓴 이유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진리는 가르칠 수 없다는 것. 이 깨달음을 나는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그 시도가 바로 싯다르타이다.


이 책은 고타마 싯다르타(Siddhārtha Gautamamm) - 고타마는 성이며, 싯다르타는 이름이다 - 싯다르타는 모든 소원을 다 성취한 사람이라는

뜻이며(당연히 국왕인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며, 아들의 이름을 좋은 뜻으로 짓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적 싯다르타에 대한 배경 설명) - 소설에는 나오지 않으나 이 배경을 알면 소설을 보는데 도움이 된다.

싯다르타는 28세에 고귀한 신분으로서 약속된 미래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후 7년의 고행을 시작한다. 

이 7년간의 고행이후 육체적 고행만을 통해서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나서 고행으로 지친 몸을 추스리고, 

40일간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통해 대각을 한다. 35세에 대각을 얻은 싯다르타는 45년간 인도를 유랑하며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주로 이야기를 통해 설법으로 남긴다. 부처가 남긴 이 설법은 당시의 언어인 산스크리트말로 구전된다. 즉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었다.

그리고 300년 정도가 지난후 인도에서 스리랑카 지역으로 전승되면서 스리랑카 지역언어인 팔리어로 비로서 필사되어 기록된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은 최초로는 산스크리어가 아닌 팔리어로 기록되었다.(이건 전문적인 이야기이므로 별로 알 필요는 없지만

알아둬서 나쁠 것도 없다.) 이 팔리어로 남겨진 부처님의 육성 설법 내용이 바로 아함경이다. 이 팔리어 기록은 영국 식민지 시절에

발견되었다(즉, 1900년대 초반에 발견되었다.). 그래서 영국의 학자들이 달라붙어 수십년간 이 아함경을 처음으로 번역해서 세상에

알렸고, 이후 동양에서는 일본의 석학 한분이 이 영어 번역과 팔리어 원본을 참고하여 일본어로 아함경을 번역하였다.

이후 한국에서도 고익진과 같은 학자에 의해 1980년대 이후 이 아함경이 번역되어 소개된다.  


-----

(감상)


헤르만 헤세는 젊은 시절(1911년 34살)에 3개월에 걸쳐 인도차이나 반도여행을 한 적이 있다. 즉, 인도를 직접 방문한 일은 없다.

헤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중국과 인도철학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헤세도 불교에 대한 내용을

접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불교의 교리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없다. 아트만이라는 용어는 나오지만 그것에 대해 불교적 해설이 구체적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소설은 불교에 대해서 몰라도 상관은 없을 것이라 본다.


소설의 주인공인 싯다르타는 어느날 출가를 결심하고 그의 시종이자 절친인 고빈다와 유랑을 시작한다. 소설의 초반에는 고빈다는 그저 싯다르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역할로만 보이지만, 후에 고타마라는 깨달은 사람 즉, 부처를 만나면서부터는 싯다르타, 고타마, 고빈다의 관계는 하나의 인물에 대한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를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싯다르타는 고행도 헛되고, 인생사의 쾌락과 명성 그리고 부유함 모든 것이 헛되다는 자각을 한 후에 강가에서 뱃사공인 바주데바를 만나서 뱃사공의 일을 하며 단순한 삶을 영위하면서 삶의 터전인 '강'으로부터 지혜를 깨달아나가기 시작한다.

강을 통해 싯다르타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서 어떤 장소에도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는 덧없음, 그리고 끝없는 변화, 그리고 이어지는 물의 흐름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통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이미 미래의 부처였던 고타마는 설법을 통한 인생을 마치고 있고, 과거의 부처인(즉 고뇌하는 인간인) 고빈다는 그런 고타마의 입적을 보기 위해 가던 길에 강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를 다시 재회한다. 고타마 부처를 본 적이 있던 고빈다는 싯다르타를 통해 고타마의 모습을 다시 보고 감격하며 그에게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한다.

불교의 연기란 통시적 공간에서의 인과론을 의미한다. 윤회나 열반과 같은 개념적 설명보다도 모든 만물이 시간과 공간의 고리속에서 모두 얽혀서 무한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자연스럽게 '아'니 '무아'니 하는 것들을 벗어나 길가에 풀한포기와 구르는 돌 하나에서도 '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그안에 있다.

헤세가 이 작품을 쓸 때, 1부가 마무리 된 시점에서 2부는 시간을 두고 썼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불교에 대한 이해의 바탕을 넓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하나의 성장소설로서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조금 더 그 깊은 내용을 음미하고 싶다면 불교의 기본적이 교리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안 이후에 보면 좋을 것 같다.

불교의 기본 교리에 대한 이해는 무슨 딱딱한 책을 보는 것은 더 도움이 안된다.

추천하는 책은 도올이 쓴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과 그 1권의 해설에 해당하는 도올의 불교강의(27강인가? 된다.)를 들으면 불교의 핵심적 내용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다빈치 코드로 세계적인 스릴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댄 브라운의 최신 작품.

책을 잡자마자 순식간에 200페이지 가까이를 단숨에 읽을 수 있을만큼 간결한 문체와 높은 가독력을 가진 작품이다.

도입부에만 거의 12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할애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하게 생동감 있게 전개되는 감이 있다.(내가 스페인에서 모두 가봤던 배경이라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마드리드의 팔라시오와 빌바오의 구겐하임 등, 아직 후반부를 읽지 못했는데 책표지에도 나오는 바르셀로나는 아쉽게 아직 가보진 못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로버트 랭던과 1명의 미녀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플롯인데, 한가지 구별되는 점은 이번에는 윈스턴이라는 이름의 AI가 조력자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이 AI가 이 소설의 전개와 결말에 큰 역할을 할 것 같은 느낌이 강력하게 든다.

댄 브라운의 소설이 영화화 된 작품은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 그리고 인페르노의 세 편이 있는데, 오리진도 역시 영화화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의 작품중 최고는 역시 아직까지는 다빈치 코드이다.

다 읽고 나서의 감상은 이후에 이어 쓸 예정이다.


(감상)

그간 댄 브라운의 미스터리 스릴러는 유명한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작품 역시 그렇다.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는 공간은 스페인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빌바오, 몬세라트로 관광지로도 이미 이름이 높은 곳이며, 

도시에서 나오는 주요한 건물 역시 지명도가 높은 건물이기 때문에 한번쯤은 가볼 수도 있을 것이고, 가보진 못해도 거기가 어딘지는

알만한 도시들이 나온다. 확실히 영화화하기에도 좋은 작품인데 랭던역의 톰 행크스는 이 작품이 영화화되면 출연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아직 영화화는 결정되지 않았다.

영화의 줄거리에 주요 요소는 소설의 제목 그대로 오리진 즉, 기원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 기원을 풀어나가면서 진화, 과학, 종교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도 높게 다루어지고, 특히 A.I가 이 소설에서 극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최근에 나온 사피엔스, 호모데우스등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 소설도 그런 맥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보인다.


특히 스페인의 주요도시를 샅샅히 돌아보면서 고증을 한 듯, 매우 디테일한 묘사들이 소설의 현실감과 박진감을 높이는 효과를 준다.

다빈치 코드와 같은 임팩트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소설적인 재미는 좋은 편이며, 영화화를 기대할만큼 비쥬얼한 묘사들이 좋다.

킬링타임용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나오듯이 현대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다분히 종교가 쇠퇴하는 느낌이 강하다. 젊은사람들은 점점 교회나 성당을 기피하고, 신을 믿는다는 행위는 점점 고리타분해지고 있다. 아직도 기독교는 낙태, 동성애와 같은 이미 문명사회라면 당연히 받아들이는 쟁점들에 대한 편견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언제나 고인것들을 썩기 마련이고 썩은 것은 버려지게 마련이다.

이 소설에서도 딱히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종교, 즉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정의에 걸맞게 시대에 맞춰 종교도 교리와 생각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병든 이들을 고치셨으며, 모든 계명중에 사랑이 으뜸이라 하셨다. 오직 사랑만이 최후까지 올바른 몇 안되는 가치중의 하나이다.

 이 소설은 테드 창의 중단편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에 포함된 80페이지 길이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Arrival(그 영화의 감상도 본 블로그에 있다. http://lachezzang.tistory.com/592?category=773782)의 원작이며 그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관심이 생겨서 보게 되었다.

테드 창(Ted Chiang)은 1967년 생으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중국인으로 중국이 공산화될때 대만으로 건너갔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브라운 대학의 물리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으며, 졸업후 테크니칼 리뷰와 소설 창작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미국 벨베뉴, 워싱턴에 거주중이다.

1990년 졸업후 거의 동시에 등단했으며, 첫 단편 바빌론의 탑으로 네뷸러 상을 수상했다. 현대 SF계에서는 꽤 유명한 작가이다.

본인은 SF영화는 즐겨보지만, 소설은 거의 보지 않은 탓에 잘 몰랐지만 이 작품으로 꽤 그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감상)

 영화 Arrival의 뼈대가 되는 내용은 거의 같다.(세부 설정과 등장 인물의 이름이 약간씩 상이한 부분이 있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강의하고 언어 전문가인 루이스 뱅크스 교수에게 어느날 군인인 웨버 대령과 물리학자인 게리 도널리 박사가 찾아온다.

 얼마전 지구 궤도상에 정체 불명의 외계 우주선이 내려왔고, 지구 곳곳의 목초지에는 그 외계 우주선의 출현과 동시에 높이가 10피트(3미터 정도), 너비가 12피트(3.6미터 정도) 되는 반원형의 거울과 같은 구조물이 나타난다. 이 구조물을 지구에선 체경(looking glass)라 명명했다.- 정확히는 미국에서 9군데, 전 세계적으로는 112개가 있다라는게 소설의 설정이다. 숫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정부기관은 외계인과 접촉하면서 언어적인 소통 문제에 접하자, 112군데의 체경 각각에 언어전문가와 물리학자라는 조합으로 모든 체경을 상대로 컨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주로 이야기는 루이스 뱅크스와 게리 도널리 박사가 맡은 site에서 이루어지는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외계인은 Arrival 영화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7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지구에서는 이들을 편의상 헵타포드(7개의다리)라 부른다. 그들과의 대화를 위해 루이스 교수는 외계인을 대상으로 서로의 언어를 습득하고 가르치려는 과정을 진행한다. 그를 통해 그들의 음성언어(소설에서는 이를 헵타포드 A라 한다)와 그들의 글자언어(헵타포드 B) 2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통 우리의 언어(우리는 글을 써놓고 그것을 그대로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된다.)와 달리 그들의 음성언어와 글자언어의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자언어, 즉 헵타포드 B는 일종의 상형문자같은 그림의 형태이나 그 형태의 변화를 통해 다양한 뜻을 나타낸다고 하는 가정이 깔려있다.-소설에서는 작가는 이를 지구의 수학, 음악의 음표와 같은 것이라 설명하지만 수학이나 음악이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표기법이라고 할때 그들의 헵타포드 B는 더 범용적인, 즉, 일반적으로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범용의 형태 표기법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상징문자로 표현되는 헵타포드 B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헵타포드 B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면에서 볼때, 통시적이면서 공시적인 사건의 모든 면을 전달하는 언어라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외계인인 헵타포드의 언어를 외계인과의 교류를 통해 습득해나가면서 사고의 구조가 변하고 이를 통해서 일종의 각성을 하게 된다. 그 각성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는 루이스는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연결해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사실 그것을 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그 언어를 깨달음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데이타의 분석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라고해야 할지..인데 말로 설명하긴 그리 쉽지 않다. 소설을 보면 그 부분은 그냥 그런 설정으로 되어 있다.)

 이런 설정을 통해서 쉽게 '우리가 이미 미래를 알고 있을때, 그 미래는 과연 미래라고 할 수 있나?', '혹은 알려진 미래를 위해 우리가 개입한다면 미래를 변하게 될 것인가?' 같은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소설은 이러한 의문을 공기중에서 물로 입사될 때의 빛의 굴절(스넬의 법칙) 현상을 통해 이를 현상론적으로 보는 가, 아니면 페르마의 원리처럼 빛의 입장에서 목적론적으로 보는가에 차이라는 견해를 보여준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사실 이 내용은 맥락적으로는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물리학 분야에서 다루어졌던 과학철학적 딜레마와 그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불거졌던 내용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작가가 브라운 대학교 물리학과를 잠시 다닌 경력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이 소설을 보면 꽤 흥미진진한 부분이 있다.

한,두번 더 보면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내용이다.


-----


(주요 발췌)

p176.

세 번째 가설, 헵타포드들이 진정한 문자로서의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비선형적 체계를 쓰고 있을 가능성이었다.


p177.

 군은 체경이 있는 지점 부근에 우리의 사무실 공간이 들어가 있는 트레일러 하나를 설치해놓았다. 나는 트레일러를 향해 걸어가는 게리를 보고 달려갔다. 

 "의미표시 문자였어요." 그를 따라잡자마자 내가 말했다.

 "뭐라고요?" 게리가 되물었다.

 "와요, 직접 보여줄 테니." 나는 게리를 내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나는 칠판으로 곧장 가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사선을 그어 반으로 나눴다. "이게 무슨 뜻이죠?"

 "출입금지?"

 "맞아요." 나는 칠판에 '출입금지'라는 단어를 썼다. "이것도 같은 뜻을 전달하죠. 하지만 둘 중에서 실제의 발화를 나타내고 있는 건 하나뿐이에요."

 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언어학자들은 이런 글자를-" 나는 이렇게 말하며 내가 쓴 글자를 가리켰다. "입으로 한 말을 표현한다고 해서 '음성표시' 문자라고 칭해요. 인간의 문자언어는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가죠. 하지만 이 기호는-" 나는 원과 사선을 가리켰다. "발화와는 전혀 무관하게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의미표시' 문자라고 해요. 이 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은 특정한 음성과 아무런 조응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까 헵타포드의 문자는 모두 이런 거란 뜻인가요?"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그래요. 그림문자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훨씬 복잡해요. 문장을 구성하는 자체적인 규칙들이 있으니까. 그들의 음성언어의 구문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시각적 구문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시각적 구문법? 예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중략)

 이건 본질적으로 2차원적 문법이에요.

 게리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사무실 안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문자 체계에서 이것과 조금이라도 닮은 것이 있나요?"

 "수학의 방정식이나 음악과 무용의 표기법이 있죠.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극히 전문화되어 있어요. 그런 것들을 써서 우리가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를 기록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아주 잘 알게 된다면 이 대화를 헵타포드의 문자 체계를 써서 기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들의 언어는, 언어로서 완성된 하나의 범용 그래픽 언어라고 생각해요."


p203.

 '헵타포드 B'를 습득하는 동안 나는 그에 못지않게 이질적인 경험을 하고 있었다. 나의 사고가 도형의 형태로 코드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는 이따금 꿈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져, 나의 사고가 마음속 목소리로 표현되는 대신,, 유리창에 서리가 끼듯이 생겨나는 어의문자로 대체되는 광경을 마음속 눈으로 보곤 했다. 

 내가 이 언어를 점점 더 유창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이 의미표시 형태들은 완성된 형태로 나타났고, 나는 복잡한 개념들까지도 일거에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결과 나의 사고 과정이 예전보다 빨라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앞을 향해 질주하는 대신, 나의 마음은 어의 문자들의 기반을 이루는 대칭성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부유하고 있었다. 어의문자들은 단순한 언어를 넘어선 무언가처럼 보였다. 거의 만다라에 가까웠다. 나도 모르게 명상 상태에 빠져 전제조건과 결론을 호환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숙고하고 있다는 사실 퍼뜩 깨달을 때도 있었다. 각 명제들 사이의 관게에 고유한 방향성은 없었고, 특정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사고의 맥락'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유에 관여된 모든 요소의 힘은 동등했고, 모두가 동일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p209

 보르헤스풍의 우화적 이야기를 통해 반론을 전개해보겠다. 과거와 미리에 걸친 모든 사건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세월의 책> 앞에 한 여자가 서 있다고 치자. 원본을 작게 복사한 것이지만, 이 책은 여전히 거대하다. 한 손에 확대경을 든 이 여자는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티슈처럼 얄따란 책장을 넘긴다. 자신이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을 기록한 대목을 찾아낸 그녀는 다음 대목으로 넘어간다. 그곳에는 그날 그녀가 나중에 하게 될 일들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녀가 책에서 읽은 정보를 바탕으로 경주마인 '될 대로 되라'에 100달러를 걸고 스무 배에 달하는 배당금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정말 그렇게 할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청개구리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탓에 그녀는 경마에 돈을 걸지 않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세월의 책>은 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책의 시나리오는 어떤 사람이 가능한 미래가 아닌 실제의 미래에 관한 지식을 제공받는다는 전제에 입각해 있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 비극이었다면 운명을 회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반 사정에 의해 결국 그 운명에 따라 행동한다는 식으로 얘기가 흘러갈 것이다. 어차피 그리스 신화의 예언은 모호하기로 악명이 높다. 이에 비해 <세월의 책>은 극히 명확하고, 책에 명시된 식으로 그녀가 경주마에 돈을 걸도록 강용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모순이 생겨난다. <세월의 책>은 절대 옳아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이 뭐라든지 그녀는 그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두가지 사실을 양립시킬 수 있을까?

 양립할 수 없다. 가 통상적인 대답이다. <세월의 책>은 논리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위에서 언급한 모순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조금 관대한 입장을 취해, 독자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한 <세월의 책>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특별 컬렉션의 일부이고, 이것을 열람할 권리는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자유의지의 존재는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의지란 의식의 본질적인 일부인 것이다.

 아니, 정말로 그런 것일까? 미래를 아는 경험이 사람을 바꿔놓는다면? 이런 경험이 일종의 절박감을. 자기 자신이 하게 될 행동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불러일으킨다면?


p212


 The rabbit is ready to eat. 이 문장에 관해 생각해보자. 여기서 rabbit을 eat의 목적어로 해석한다면 이것은 저녁식사가 곧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문장이 된다. 그러나 rabbit을 eat의 주어로 본다면 이것은 이를테면, 어린 소녀가 퓨리나사의 애완용 토끼사료 봉지를 열 작정임을 자기 어머니에게 알리는 경우에 맞는 암시에 해당한다. 이 둘은 완전히 상이한 언술이다. 사실 한 가정 안에서 이 두 언술이 공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 타당한 해석이다. 문맥이 이 문장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할 뿐이다. 

 빛이 한 각도로 수면에 도달하고, 다른 각도로 수중을 나아가는 현상을 생각해보자. 굴절률의 차이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꿨다고 설명한다며, 이것은 인류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빛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면, 당신은 헵타포도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해석이다.

 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이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상이한 두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언술에 해당한다. 한 가지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다. 

 인류와 헵타포드의 조상들이 맨 처음 자의식의 불꽃을 획득했을 때 양측은 모두 동일한 물질세계를 지각했다. 하지만 지각한 것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달랐다. 세계관의 궁극적인 상이함은 이런 차이가 낳은 결과였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킨 데 비해, 헵타포드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p218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었따. 나로 하여금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은 내가 미래를 아는 것 또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와는 반대로 미래를 아는 지금, 내가 일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행위를 포함해서, 나는 결코 그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아는 사람들은 미래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세월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p218

 나는 헵타포드들이 이 대화의 최종적인 결말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열성적으로 이 대화에 임했다. 

 만약 아직 진상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가 이 광경을 묘사했다면, 이런 질문이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헵타포드들이 자신이 말하거나 들은 얘기를 이미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다면, 그들이 언어를 사용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타당한 의문이다. 그러나 언어란 단지 의사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어는 행위의 한 형태이기도 했다. 언어행위이론에 의하면 "당신은 체포되었습니다." "나는 이 배를 이렇게 명명하노라" 혹은 "약속하겟어" 따위의 서술문들은 모두 수행문이다. 발화자가 이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 말을 입 밖에 내서 말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 행위의 경우, 앞으로 어떤 말이 나올지 알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결혼식 하객들은 누구나 "이제 이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실제로 목사가 그 말을 할 때까 결혼의 의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수행문적 언어에서, 말하는 것은 그것을 실행하는 것과 등가인 것이다.

 헵타포드의 경우 모든 언어는 수행문이었다. 정보 전달을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대신, 그들은 현실화를 위해 언어를 이용했다. 그렇다. 어떤 대화가 됐든 헵타포드들은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p223

 보통 '헵타포드 B'는 단지 내 기억에만 영향을 끼친다. 나의 의식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시간 선을 따라 기어가듯이 전진하는 가느다란 담뱃불이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억의 재가 뒤뿐만 아니라 앞쪽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진짜로 타오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따금 '헵타포드 B'가 진정한 우위를 점하면서 일별의 순간이 올 때, 나는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경험한다. 나의 의식은 시간 밖에서 타다 남은 반세기 길이의 잿불이 된다. 이런 경험을 할 때 나는 세월 전체를 동시에 지각한다. 이것은 나의 남은 생애와 너의 모든 생애를 포함하는 기간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