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이 일본에 대한 소회를 강연이나 잡지 기고를 통해서 밝히신 내용을 모아놓은 에세이집.

일반적인 신변잡기라기보다는 일본 소론에 가깝다.

박경리 선생께서는 1926년 생으로 20살 청년기까지의 삶을 일본 식민지배하에서 사셨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 문화 그리고 국가의 정체성 및 국민들의 집단심리에 이르기까지 외면과 내면적인 부분에 있어서 일본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실 수 밖에는 없을셨을 것이고, 평생동안 선생은 한민족이 일본을 극복하는 문제에 천착해오셨던 것 같다. 

선생의 역작 토지로 식민시대를 배경으로 한민족의 애환을 담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박경리 선생은 식민시대를 살아온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마지막 세대로서 일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후세에 전해야겠다는 책임과 소명을 느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선생은 그 꿈을 이루진 못하셨다.

이 책은 모음집이므로 편집을 그런식으로 했겠지만, 일본의 고대사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일본 정신의 원형을 엿보고, 일본 제국주의 시대와 패망후의 일본의 정신사에 대한 고찰과 비판이 담겨있다.

박경리 선생이 일본에 대한 생각의 아웃라인 정도를 이 책의 내용에서 엿볼 수 있다.

아쉬우나마 이런 글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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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7

 

 얼마 후 잡지 <문예> 하계호가 일본에서 왔다. 그들이 말한 대로 인터뷰는 취급하지 않았고 가와무라 씨의 '반일과 향수의 틈새'라는 평론에 내 얘기가 삽입되어 있었다. 제목이 몹시 불쾌했지만 내용은 날카롭고 일단은 공정한 입장에서 성실하게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한국의 반일에는 항상 역사를 동반하며 그것을 증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유의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들 일본인은 소위 역사적 교훈을 배우지 않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혹은 역사는 역사로서 현재와 무연한 것으로, 방편으로 씌여지는 정신적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만세일계를 주장해온 천황의 역사, 다시 말하자면 역사로서의 천황을 의미하고 있으며 같은 일본인의 '역사성'이야말로 근린제국(近隣諸國), 제민족(諸民族)에게는 지극히 수상쩍게 보일 것이다."

 가와무라 씨의 지적은 타당하고 평론가로서의 신뢰감을 내게 안겨주었다. 바로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인근 민족에게만 수상쩍은 것은 아니다. 일본인 자신에게도 수상쩍은 것이다. 일본인의 역사성이 인근 민족에게 피해를 준 것처럼 일본인의 의식을 꽁꽁 동여맨 허위의 포승으로 피해자인 것은 매일반이다.

 

 "박경리 씨의 『토지』는 근원적으로 '대지(大地)'를 소유하고 사용한다는 근대적인 토지소유의 관념 그 자체에 대한 의의를 머금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국유지라는 개념의 확대 부연하면 경작자로서의 조선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은 일본제국주의에의 비판이기도 하지만 그 기층에 있는 것은 토지란 누구의 것이냐 하는 근대적인 경제사회 그 자체를 흔들어대는 물음인 것이다."

『토지』를 농민소설로 간주하려 드는 일부 시각에 늘 쓰거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고 구차스럽게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도 그러는 내 자신에 짜증을 내곤 했었는데 작가의 의중을 여실히 표현해준 가와무라 씨가 고마웠다. 그러나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하여 그 구절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 조선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은 일본제국주의에의 비판이기도 하지만 그 기층에 있는 것은 토지란 누구의 것인가 하는 근대적인 경제사회 그 자체를 흔들어대는 물음이라는 가와무라 씨의 말, 여기에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지만 다른 표현으로 되풀이해 보면 민족주의 반일의 동기와 민족주의 반일의 목적, 그것에는 다 사람의 생존을 저해하는 것에 대한 저항의 필연성이 있는 것이다. 즉 삶의 터전인 땅이 토지의 소유라는 개념으로 변하면서 역사는 투쟁과 터전인 땅이 토지라는 소유의 개념으로 변하면서 역사는 투쟁과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고 작게는 개인에서 민족, 크게는 인류 모두가 피해자의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한일합방을 전후해서 제2차 세계대전 종결까지, 제국주의 식민지시대는 가장 가혹한 땅의 유린과 생명 학살의 도가니였고 우리 민족은 살아남기 위해 민족주으의 불꽃을 간직해야만 했다. 그러면 광복 후 우리는 민족주의를 극복해야만 했는가. 그렇지가 않다.

 역사는 시작되었고 근세, 반세기 동안 약자는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국토가 유린당하고 민족이 살육당했던 제국주의 식민시대 죽지 않기 위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우린 민족주의 반일사상의 불꽃을 간직해야만 했다. 그러나 광복 후 과연 민족주의 반일사상은 쓸모없이 되었는가? 그렇지가 않다. 세계의 현실은 여전히 약자의 호주머니를 강자가 털어내고 있으며 아흔아홉 섬의 곡식을 가진 자가 한 섬 가진 자로부터 빼앗아 백 섬을 채우려는 이것이 오늘날의 민족과 민족 간의 현실인 것이다.

 뿐인가, 영토의 침략보다 더욱 악성인 것은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장본인은 누구인가. 이득을 많이 챙기는 자다. 많이 벌어들이는 만큼 땅을, 지구를 파괴하고 황폐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팽창주의는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 그 해악도 다를 것이 없다.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혹은 무관심을 나타내는 일부 지식층의 이상주의 혹은 지성을 나는 지적 허영으로 본다. 토지의 일본인 오가타 지로(緒方次郎)는 코스모폴리탄이다. 그는 강자편에서, 가해자 편에서 양심을 지켜 비판하는 세계주의자다. 그러나 피해자가 불이익을 안고 과연 평등의 세계주의로 갈 수 있는 걸까? 허구요 망상이다. 한국인의 반일이 모두 그런 논리에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분풀이라는 본능적 감정인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정치적 차원이지만 일본인의 의식도 간과할 수 없는 만틈 일본은 왈가왈부할 처지가 못된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보다 오늘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인의 분을 풀어주지 않았다.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그들은 거의 보상하지 않았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통분이 무슨 사과인가? 그러고도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뻔뻔스런 일이다. 가와무라 씨는 한글세대는 반일이라는 대전제를 전면에 새우고 있으나 구체적 체험과 연구 관찰이라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만 반일이라는 민족교육으로 길러진 지식과 근본적 이미지에 의해 일본을 단죄, 규탄하는 태도를 가지기 일쑤다 했는데 동감이다. 그러나 동감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도식적인 교육을 떠나 생생한 역사적 사실 역사적 입김에 접할 수 있다면 한글세대는 무조건 감정적 시비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넘어가는 사상적 강화(强化)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전후세대도 우리 한글세대에 대한 불만을 사실에 입각하여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관찰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대로(大路)는 결코 일방통행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가와무라 씨의 성실한 우려를 나타낸 말이 있다.

 "그것은 커다란 틀 속을 말한다면 서로 근대화를 절대로 하고 그것에서 뒤떨어지는 정도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비웃는 것 같은 구조가 극동의 아시아 속에 낭질(狼疾)과도 같이 끼워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양국 간의 증오가 지극히 저질 상태인 것을 말하려고 했다기보다 그것은 엄청난 문화의 후퇴를 의미한다. 그것은 결코 민족 간의 대립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세계가 그릇된 방향으로 파멸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물질보다 정신의 측면에서 우려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에서 나는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하고 경제적 동물로, 의식의 야만시대로 뒷걸음치고 있는 것을 말한다.

 

p75

 사실 광복을 기념하는 우리들의 국경일 8.15는 해마다 그 감격과 의의가 희석되어가는 반면, 히로시마 원폭 기념행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열기가 높아가는 것 같고 분함과 보복의 칼을 가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하는데, 그러나 그보다 좀 더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이 일본의 피해의식이다. 그것은 가해자라는 또 하나의 피해의식을 상쇄하는 데는 안성맞춤의 전략적인 것이기도 해서 대충 넘어가려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왜 하필 일본에 핵폭탄이 떨어졌는가. 그 원인을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

 

 다만 열심인 것은 원폭의 기념탑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하고 그들 자신이 피해자임을 세계만방에 고하는 일이다.

 그러면 핵폭탄과 현재의 일본, 그 함수관계는 어떤 것일까. 전쟁 말기 청소년들을 자살 비행으로 내몰던 가미카제를 나는 기억한다. 사이판 유황도 등, 그들의 거점이 무너질 때마다 비전투원에게까지 소위 그 옥쇄라는 것을 강요했고 차마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을 아들이 목졸라 죽였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그 무렵 일본은 본토 결전을 각오했으며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서 옥쇄한다는 것이 흔들 수 없는 명제였다. 그러나 일왕은 깊고 깊은 지하에서 무조건 항복을 녹음했으며 군인들은 궁성으로 난입하여 항복을 막으려 했다. 어쨌거나 핵폭탄의 투하는 일본인 전원 옥쇄 전에 전쟁을 끝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원폭 세례의 원인을 만든 것은 일본이다. 원폭으로 하여 일본이 지구상에 살아남았다는 것도 신빙성이 있다는 얘기다. 끔찍스럽고도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

 

 옛날 일본은 아시아에서 고도(孤島)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고아 같은 존재였다. 기능적이며 공리적은 특성은 차라리 서쪽에 가깝다. 그리고 일본은 서쪽을 등에 업고 동쪽을 배신한 유일한 나라다.

 그러면 뭐가 다른가. 우리는 칸트, 헤겔을 위시하여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독일인인 것을 기억한다. 베토벤, 괴테 같은 숱한 예술가의 모국이 독일인 것을 알고 있다. 그들 철학자, 예술가들은 거짓의 토양에서는 자랄 수가 없다. 진실을 추구하는 그들 후예들이 나치의 범죄를 보상하고 오욕을 씻어낸 것이다. 일본은 거짓의 두 기둥을 박아놓고 국민을 가두어왔다. 하나는 천조의 상속권 주장인 만세일계요, 다른 하나는 현신인으로 왕을 치장한 신도(神道)다. 각일각 변화하는 생명과 만상의 원리를 어기고 어찌하여 일문이 만세에 걸쳐 군림할 수 있을까. 나고 죽는 우주 질서에서 일왕도 예외가 아니거늘 어찌하여 신으로 칭하는 걸까. 거짓은 만사를 거짓으로 만든다. 그곳은 그러나 진실을 추구하는 철학과 예술, 창조를 이룩할 수 없는 허방인 것이다. 그 체제를 변호하는 한, 그 체제가 존속하는 한 일본에 지성인은 존재하기 어렵다. 지성인은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상이 약하고 유리알 속의 유희 같은 탐미주의가 예술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일본이 진실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며, 청산하는 독일과 청산하지 않는 일본의 차이점도 바로 그곳에 있다.

 일본 전설에 우라시마라는 어부 얘기가 있다. 용궁에서 옥함 하나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고향에는 모두 낯선 사람뿐이요, 외로워진 그는 열지 말라는 당부를 어기고 바닷가에서 옥함을 여는 순간 백발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백발은 정확한 시간의 표상이다. 그러나 일본은 옥함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열어야 한다. 백발이 되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질서이며 진실이기 때문이다.

 

p82

 일본 문학에서 탐미주의가 정점을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썩어가는 육체, 괴기스러움에 대한 쾌락, 그것은 일종의 도피다. 자살의 미학도 실은 일그러진 사디즘을 포장해낸 것에 불과하고 삶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의 결여로 볼 수 있다. 산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또 아름다운 것도 없다. 진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실의 추구야말로 문화의 시발점인 동시, 발전의 과정이기도 하다.

 

p84

 참고가 될까 싶어서 와타베(渡部良三)라는 분이 쓴 글을 발췌하여 소개할까 한다. 그는 전쟁 말기 학도병으로 전선에 나갔다가 신병 훈련용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세워놓고 십여 명의 신병이 차례차례 돌격하여 찌르는데 그러고 나면 인간은 걸레 조각같이 되고 마는 것을 목격했다. 와타베 씨는 그 훈련을 거절한 탓으로 기막힌 고초를 겪다가 패전을 맞이한 사람이다.

 

 "일본인이 피해자라는 의식을 가진다면 원폭피습보다 천황의 권력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층, 특히 구(舊) 군부와 관료 중에서 사법 관료, 일본 자본주의 자본, 천황 일족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이 지상에 없다. (중략) 사랑이 있는 군비, 자유가 있는 전쟁 같은 것은 없다."

 "천황은 신에게 기도드리며 일본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분입니다. 그것이 일본의 전통입니다. 이따위 말을 일류 대학 교수가 했지만 소화(昭和) 천황이 전쟁을 선포했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인 사실은 지울 수 없다."

 

p86

 그들은 조선, 맍, 타이완을 반환했다는 말 대신 잃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얼마 전 독도 망언이 있었을 때 반환이 아닌 잃었다는 그들의 발상을 생각하며 쓰게 웃은 일은 있었지만 사람의 일로써는 설명이 안 되고 오로지 만사형통인 신의 세계에서만이 있을 수 있는 일. 왜냐하면 그것에는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

 그렇다면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나 지식인이 뭣에 필요하단 말인가. 와타베 씨의 말이지만 전쟁을 성전(聖戰)이라는 세계사적 신어(新語)를 만들어서 정당화하는 것, 그것 역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에는 신을 모셔오는 것이다. 참 편리하고도 생광스런 물건이다.

 

p173

 자비(自卑)하는 것이 비천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월감의 과시도 비천한 것이며 해악적(害惡的) 요소인 것이다.

 

 

p204

 작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근간은 같습니다. 운영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두 가지 모두 운명은 탁습니다. 똑같이 벽에 부딪혔습니다. 지구는 공해 때문에 멸망직전입니다. 두 가지 모두 공범자예요. 이제는 궤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자본이니 공산주의니 떠드는 것은 모두 구시대적이비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모두가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낼 지방자치에 대해서도 박씨의 논리는 분명했다.

 "단위가 적어지면 시민의식을 보다 잘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각 지방이 제멋대로 놀고 있어요. 앞으로는 지방민의 감시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럴려면 의식이 높아져야겠죠. 당연히 문화가 높아져야 의식이 높아집니다. 공해를 막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지방자치는 뿌리내려야 합니다. 바로 눈앞의 것을 감시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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