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에 혜민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이런 소리를 했었다. 당시는 혜민이 뜨기 시작하던 때라 큰 논란은 되지 않았지만 몇 년이 지나 혜민의 풀소유의 본색(혜민의 실제 삶이 어떠했는지는 조금만 검색해봐도 나오니 여기선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이 드러나면서 과거 발언까지 소환되서 두드려 맞았고 이때 법정 스님이 재조명 되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1116/103986522/2

 

혜민스님 “돈 있어야 무소유 가능” 법정스님 저격 부메랑

혜민 스님이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건물을 소유하고 사업에 열중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무소유’가 아닌 ‘풀소유’라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그의 과거 행적들도 논란의 대상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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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과연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삶의 실체는 무엇인가? 법정 스님은 2010년 3월11일에 입적하셨는데 이 즈음에 법정스님의 삶을 조명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특이하게도 무소유와 가장 거리가 먼 조선일보 기사가 많았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13/2010031300109.html

 

"매년 2월 말이면 인세 독촉… 처음엔 법정스님을 오해했어요"[바로잡습니다 첨부]

매년 2월 말이면 인세 독촉 처음엔 법정스님을 오해했어요바로잡습니다 첨부 샘터사 김성구 대표 우리 형편 어려울때마다 인세 미뤄받거나 안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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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혜민의 저 발언 이전에 법정 스님의 입적 당시 지인들이 과거를 회고하면서 인세를 어떻게 써오셨는지에 대한 기사도 난 적이 있으니 혜민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입을 놀린 것이다.

법정스님이 기부를 해오셨던 것이 알려진 계기는 1993년 김영삼 정부때 실시한 금융 실명제 때문이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6/2010042602201.html

 

법정스님, 여동생·빠삐용 의자·거액의 인세…

법정스님, 여동생·빠삐용 의자·거액의 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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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13/2010031300104.html

 

[법정스님 입적] 소리없는 기부

법정스님 입적 소리없는 기부 평생 책 인세로 받은 수십억원 법정 스님, 형편 어려운 학생들에게 베풀어 관도 없이, 가사만 걸친 법정 스님 가실때도 無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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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원의 인세로 다른 사람을 돕던 스님이지만 정작 자신은 말년에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비가 없었다.

당시 스님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 중이었는데 이를 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부인 홍라희 씨가 그 병원비를 대납해줬다.

https://www.yna.co.kr/view/AKR20100312068900003

 

홍라희씨, 법정 스님 병원비 6천여만원 `대납' | 연합뉴스

홍라희씨, 법정 스님 병원비 6천여만원 `대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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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입적 후 장례는 진정한 무소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마지막 발자취였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13/2010031300063.html

 

[법정스님 입적] 과일 하나, 떡 한 조각 없는 빈소… 조사(弔辭)도 만장(輓章)도 없습니다

법정스님 입적 과일 하나, 떡 한 조각 없는 빈소 조사弔辭도 만장輓章도 없습니다 법정스님 송광사로 운구 내가 어떻게 가는지 봐라 가장 간소한 장례 부탁 오늘 인근 야산서 다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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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자가 몇 마리의 새끼 사자를 낳아서 기르는 몇년 간의 기간을 촬영한 동물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사냥을 위해 사냥감이 되는 동물들의 이동과 함께 사자 무리도 이동을 하는 중에, 새끼 사자 중 한 마리가 도중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어미는 뒤처지는 새끼 사자를 애처롭게 몇 번을 뒤돌아보다가 결국은 버려둘 수 밖에는 없었다.

고고학자들이 선사 시대의 인류의 유적지를 발굴하다가, 두개골의 뒷쪽이 함몰된 해골들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보통은 나이가 든 여인들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인死因은 정착생활을 하기 이전, 수렵과 채집을 위해 이동을 해야하는 생활을 하던 때, 이동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 특히 약한 여인들의 머리를 석기 등으로 가격했던 흔적으로 학자들은 예상한다고 한다.

유교적 공통의 전통을 가지는 동양(특히 한,중,일)에서는 충忠과 효孝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그 중에 효는 서양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동양적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개념이다.

공자孔子에게 제자가 효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이때 공자는 이런 대답을 한다.

"그저 자식이 어찌될까, 항상 전전긍긍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를 애지중지하는 내리사랑은 자연스럽게 자식을 감화하고,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며, 더 나아가 그 자식이 다시 자식을 낳아서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을 애지중지하는 마음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

 

우리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이러한 관계를 당연시하지만, 역사의 기록으로만 봐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그저 본능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인 전염병이나 대기근이 덮친 때에,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잔인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도 생존이 위협받게 되면, 야만의 본능이 살아나 짐승이 될 수 있다.

인류가 야만을 벗어나, 문명을 이룬 삶의 정수精髓는, 비싼 집에 살며, 멋진 옷을 입고, 폼나는 차를 타고 나가 훌륭한 식당에서 맛난 요리를 즐기는 외형적인 삶에 있지 않다. 

인류가 이룬 문명의 진정한 위대함은, 대부분 위대한 사상 혹은 그들의 작품 속에 집약되어 있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뉴턴,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추사 김정희, Queen, 등등..

 

이 중에서도 동,서양의 위대한 사상가인 예수, 석가모니, 공자와 같은 성현들이 베푼 가르침의 근본은 

바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궁극적 가치에 헌신하고,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하며, 생존의 본능을 뛰어넘어 약자를 보호한다는 이타적 박애를 인류기 지켜야 할 궁극의 가치로 삼았다는 것이다.

 

과연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러한 가치들을 수천 년 전에 설파한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에 비해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인간은 본성적으로는 반동反動적이다.

역사는 문명에로의 진보와 본능에로의 퇴보 사이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현재까지는 앞으로 나아간듯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의 궤적의 경향성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많은 수의 하얀 백조가 있어왔다 하더라도, 검은 백조 한마리의 존재만으로도 시스템은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성에 의해 원시적 본능을 뛰어넘어오며, 사랑, 평화, 박애, 연대와 같은 우리 안의 선한 본성이 결국 승리하리라고 하는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파멸의 공포앞에서 과연 의연함을 견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희생을 치루고라도 과연 결연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지가 과연 인류라는 집단내에서 발현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상황에 닥쳤을 때만이 증명 가능한 것으로, 오직 그 순간에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동학 혁명, 3.1 독립만세 운동, 4.19 의거, 5.18 광주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일어난 민중의 봉기와 그에 따른 희생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서구의 혁명과 다른 점은 우리의 민중항쟁에서 그 결과로 항쟁의 원인이 된 권력자에 대한 처단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4.19 당시에도 이승만은 처벌받지 않고 하와이로 망명했을 뿐 아니라, 죽고나서는 국립묘지에 묻히기 까지 한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피를 먹고 자라지만, 그 마무리는 혁명의 원인이 된 부폐한 권력자의 처단으로 완성된다.

 

 한국은 '정情'이라는 개인적 미덕을, 혁명이라는 지극히 공적 이벤트에 적용하는 우愚를 범함으로 인해 제대로 된 혁명의 완성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러므로 향후 대한민국의 적폐 청산에는 필수적으로 해당 적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대로 된 '처벌'이란 최소한 법에 의해 선고된 형량(그것이 사형이든, 무기징역이든)에 대해 '정'에 치우친 주저함이 없이 냉엄한 사법적 절차를 엄정하게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100%의 최선을 다해도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그러면 200%, 300%, ... 1000%의 노력을 바쳐 헌신한다.

그래도 벽에 부딪히면, 조용히 무릎을 꿇고 겸허한 마음으로 '신'에게 빈다.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영화 HER는 주인공인 테오도어(호아킨 피닉스)가 연예편지를 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테어도어의 직업은 연예편지를 대필해주는 사람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그가 사용하는 입출력 인터페이스(I/O)는 음성인식 기반이다. 그가 말한 내용을 인식한 A.I는 모니터에 손편지지 모양의 프레임에 손글씨의 폰트를 이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1995년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의 기념비적인 작품중의 하나인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에서는 인간들이 강화된 신체(Enhanced body)로 일부 혹은 전체가 사이보그화 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인간과 컴퓨터간의 여러가지 인터페이스 방법이 나오는데 매트릭스에서처럼 인간의 신체에 코드를 꽂아서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방법과, 위의 영상처럼 강화된 손가락을 이용해서 개량된 키보드를 이용하여 입력의 속도를 높이는 방법등이 보여진다.

 

내가 처음 PC를 접한 것은 80년대 후반으로, 당시에 컴퓨터 자판의 입력방법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 특히 한글 자판 입력에 있어서 두벌식이냐 세벌식이냐라는 문제가 컴퓨터 잡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문제였다. 전통적인 두벌식 자판에 대해 세벌식은 한글의 원리에 맞고, 입력의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취지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나는 컴퓨터 자판을 익히는 시기에 두벌식으로 배웠다. 그리고 여태까지 세벌식엔 관심을 가져본 일조차 없고 아마도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한 세벌식엔 별 관심을 둘 일이 없을 것이다.

 

영어자판의 경우 쿼터(QWERTY)라고 하는 자판이 가장 널리 사용되는데, 이 자판 역시 입력 효율성의 문제로 영어권에서는 이미 훨씬 효율적인 개량된 자판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한글에서 개량된 세벌식보다는 여전히 두벌식이 더 널리 사용되는 것과 같이, 영어자판 역시 쿼티가 여전히 대세이다.

쿼티가 타수(분간의 입력글자의 숫자로 타자의 속도를 의미)에 비효율적인 면이 있는 이유는 이 자판이 기계식 타자기(Typewriter) 시절에 개발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기계장치로 엮여있는 타자기의 초기자판(쿼티랑 다른)은 너무 빠르게 칠 경우 타이프바가 얽혀서 타이프쨈(Type Jam)과 같이 타자기가 고장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타자를 치는 사람이 너무 빠르게 글자들을 칠수 없도록 하기 위해 자판을 수정한 결과 쿼티 자판이 나오게 된 것이다.

 

기계식 타자기에서 피씨로 입력장치가 바뀌면서 나온 전자식 키보드에서는 기계식에서 있었던 타이프쨈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었다. 따라서 쿼티 자판처럼 일부러 속도를 제한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자판의 속도를 더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개량 자판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쿼티보다 성능이 개선된 개량 자판을 만든 결과는 한글에서 세벌식 자판이 개발됐어도 두벌식이 여전히 사용되는 것과 비슷했다.

사실 그 이유는 매우 자명하다. 기존 자판을 배운 수억(혹은 수십억) 명에 이르는 기존의 사용자들로서는 새로이 수개 월 이상을 투자해서 새로운 자판을 배우는 편익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주 전문적으로 타이프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혹시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분당 200타를 치나 분당 500타를 치나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물론 아주 도전정신이 뛰어나거나 자신의 타이프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려는 소명을 느끼는 사람은 아마도 적극적으로 배우려 들 것이긴 하지만.

 

위의 2개의 영상에서 보듯이, 미래에는 두벌식이냐 세벌식이냐 혹은 쿼티냐 개량자판이냐는 문제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강화된 신체를 통해서 새로운 입력방법이 신체에 이식되거나, 아예 음성인식을 통해 A.I는 인간이 구술한 것을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입력하고 그대로 출력까지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 문명이 궁극으로 가면 우리는 I/O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고민(물론 컴퓨터 아키텍트를 하는 사람은 계속 고민을 하겠지만)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I/O의 대상이 되는 내용물(Contents)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A.I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남는 본질은 내용물에 있다. 궁극의 물음은 이 내용물을 과연 A.I가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이다. 최근에 A.I를 이용한(주로 패턴인식에 따른 머신러닝 기법이 적용된) 작곡, 소설의 창작, 회화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이것은 초보적인 모방으로 볼 수 있다. 모든 창조는 모방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지만, A.I의 모방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방과 같은것인가? 그리고 그 모방으로부터 A.I는 결국 새로움을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인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인류가 문명의 어떤 전환점에 와 있다는 느낌은 매우 강하다. 커즈와일이 이야기한 특이점(Singularity)의 도래를 수십 년 내로 볼 수 있게 될까? 흥미진진하기도, 두렵기도 한 순간이다.

 양자물리학의 초창기 역사에서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벌인 논쟁은 현대 물리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장면이었다.

 코펜하겐 해석이란 미시세계에서의 양자의 거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주로 이 해석에 담긴 양자적 거동에 대해, 물리학과에서는 양자역학 첫시간에 영의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서 이 내용을 배우게 된다(영의 이중슬릿 실험은 일반물리 시간에도 파동의 회절, 입자의 파동성 등의 성질에 대한 부분에서도 배우게 된다).

 코펜하겐 해석에서 우리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가장 이상하고 어려운 내용 중의 하나는, 하나의 전자가 두개의 슬릿 구멍 중 어디를 통과할지는 전자의 마음이라는 것이다(양자역학 이전의 뉴톤의 고전역학적 입장은 전자의 초기상태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 전자가 두개의 슬릿 구멍 중 어디로 통과할지를 안다는 것이다).

 전자의 마음대로라는 용어는 물론 약간은 과장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전자가 생명이 가진 마음이 있다고 의인화한 면에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진짜 전자란 살아있는 우리 생명과도 같은 것인지?),  슬릿 구멍 중 어디를 통과할지는 "전자의 마음대로"라는 것은 양자역학적 현상을 우리의 일상의 언어로 치환했을 때 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며 보어와 그의 제자 하이젠베르크가 새로이 구축한 양자역학의 체계를 인정하지 않았다(아이러니 한 것은 광전효과에 대한 설명으로 노벨상을 수상했고, 이를 통해 양자역학이라는 분야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 바로 아인슈타인이라는 사실이다. 내로남불까지는 아닐지언정 어떤 면에서는 자기부정이라고나 할까).

그로부터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물리학 뿐 아니라 생물, 화학, 지리, 천문, 인지학, 심리학, 진화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의 발전과 기여를 통해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깊어져 갔다. 이에 따라 근대의 위대한 지성- 로크, 데카르트, 뉴턴과 같은 합리적 기계론에 따른 - 에 의해 구축된 결정론적 셰계관은 여기저기에서 균열을 보이며 한계를 보이고 있다.

 과학이 종교의 도그마에 억압된 암흑의 베일을 벗겨낸 것은 신의 위세를 등에 업고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고 오만을 떨던 신의 대리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에게, 무지의 지(너 자신을 알라)라는 고대 현인의 무기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과학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가에서 출발하여, 그 무엇을 구체화하고, 구체화된 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밝혀냄으로써 세상을 작동시키는 신의 의도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과학이 밝힌 신의 의도는 바로 미래는 신을 포함하여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신은 그 자신도 한치 앞의 미래도 예측하지 못하도록 세상을 혼돈의 상태 그 자체로 설계했다는 것을, 두 개의 구멍 중 전자 한개가 어디로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로서 우리에게 밝힌 것이다.

오직 확률적으로만 무수한 전자의 다발들이 모였을 때, 그 주변 조건들(이를 전문적인 용어로는 경계조건-boundary condition-이라 한다.)에 의해 대충의 경향(tendency)정도는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시의 세계에서는 한치 앞도 알수 없게 설계되어 있는 기저(base)의 집합체인 거시세계는 어느 정도의 경향성이라는 예측 가능한 성질을 통해 미천한 우리 인간들이 그럭저럭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뒷문 정도를 마련해 두신 것이리라.

이 세상은 한치앞도 알 수 없는 혼돈의 앙상블로 이루어졌으며, 신은 주사위 놀이를 자연의 본성으로 정해놓았지만, 우리가 수 많은 주사위를 던지면 6개의 눈 중 어느 하나가 나올 경향성은 1/6로 수렴되는 것을 아는 것처럼 대충의 방향성이라는 것을 지혜의 눈으로 어림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놓으셨다.

그러기에 인간은 항상 겸손하며, 우리의 무지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오늘도 우리가 원하는 숫자가 나오기를 기원하며 열심히 주사위를 굴리는 것이다.

인간은 성공보다는 실패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대한민국의 진보는 민주주의의 부활을 꿈꿀 수 있었고, 이명박의 4대강과 자원외교라는 국가적 사기행위를 당하고 나서야 지도자의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았으며, 박근혜 시절의 세월호 사태를 겪고, 국정농단의 실체를 보고 나서야 지도자의 무능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검찰총장이 직속상관인 법무부 장관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조차 콧방귀도 안뀌는 안하무인을 보고 나서야 대한민국 검찰이 얼마나 썩어빠진 집단인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 소외 받은 이웃인 아서 플렉이 비참한 몰락의 끝에서 절대악인 조커로 거듭 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사회에서 서로 돕고 사는 "연대"라는 가치가 왜 중요한 것인가를 반면교사로 재삼 깨닫게 되는 것처럼.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을 명심하여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인간다울 수 있는 최후의 미덕이다.

 아쉬움.

말하고 싶으나, 말하여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던가.

보여주고 싶으나, 보여지지 않는 것이 그 얼마나 많던가.


재가 되어 사그라들어 새까맣게 타들어간 마음들은 또 그 얼마나 많던가

퉁퉁 부을 정도로 흘러내린 피눈물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 

형용할 길 없이 아름답게 흩어져 간 노래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종래에 이 모든것이 지나가 아쉬운 한숨에도 미치지 않을 인생이,

너무나 가련하고 애달퍼서 오늘도 난 애처로운 안타까움에 눈물외엔 남길 것이 없다.


어슴프레 지는 노을,  빠알간 감미로움마저 슬픔에 젖은 가슴을 할퀴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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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정현종 님의 시에 영향을 받은 듯 한데, 무슨 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네.

갑자기 울컥해서 떠오른데로 지어봤다.

하늘에서 툭 떨어지네.

칼날 하나.

땅에는 먹먹한 피가 베누나.

유시민이 권하는 글쓰기를 위한 전략적 독서목록 32권

1.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문예출판사)
2.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3.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 읽었음.
4.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 읽었음.
5. 리처드 파이만 강의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학 이야기> (승산)
6.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 반쯤 읽다 말았음.
7.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다락원)
8.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우물이있는집)
9. 스티븐 핑커 외 <마음의 과학> (와이즈베리)
10.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바오) -> 생각만 하다가 못읽었음.
11. 신영복 <강의> (돌베개)
12. 아널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동서문화사)
13.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한국경제신문사) -> 읽다 말다가,, 반쯤 읽었음.
14.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 책은 20년째 소장중.
15.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문예출판사)
16.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홍신문화사)
17.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18.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 읽다 말았음.
19.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문학사상) -> 일었음.
20.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어크로스)
21.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갈라파코스)
22.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23.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홍신문화사)
24.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25.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26.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책세상)
27.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 역시 읽다 말았음. 소장해야 할 책으로 생각함.
28. 케이트 밀렛 <性 정치학> (이후)
29.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서해문집)
30.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 역시 소장해야 할 책. 안읽었음.
31.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은행나무)
32.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내가 보기에 여기 나열된 32권은 모두 소장을 필히 해야 할 책들이다. 한,두번 읽어서 그 내용을 깨우칠 만한 글들이 아니다.

2017년 2월5일, 일요일, 눈/비, 기온은 영상 2도


이주일 이상 주차장에 세워놨던 차를 오랜만에 닦아줬다.

이주전쯤부터 2차례 정도 눈이 내려 한창 쌓인 후에 조카와 차위에 쌓인 눈으로 자그마한 눈사람 만들기를 한 후에 여기저기 푹 패인 모습이 보기 안좋아서 계속 세차해줘야지 하면서도 춥다는 핑계로 그대로 방치해두었다. 중간에 한차례 눈속에 파묻힌 와이퍼만 세워둔채 추위와 눈속에 차는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일요일 늦은 아침 어머니가 끓이는 시금치 국 냄새를 맡으며, 우리 아파트의 정기적인 쓰레기 분리수거차 내려가면서 차키를 챙겼다.

적절한 날씨에 보슬 내리는 비에 몸을 적신 차는 적당히 때가 불은 상태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슥슥삭삭, 차 운전석 옆 보조박스에 처박아두었던 걸레는 이미 바싹 말라있었고 그 바싹 마른 털들은 차체에 머금은 빗물들을 새까만 먼지들과 함께 허겁지겁 빨아들이며 까맣게 자기 몸을 물들여가고 있었다.

문득 든 생각 "배가 들어올때 노를 젓는다와 같네"

아주 심한 비가 내리지 않고 보슬 내리는 비 정도에는 세차를 하는 것이 참 좋다는.

행복해질 것 같은 하루다.

최고의 누군가. 혹은 좋은 누군가보다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직전에 박근혜가 개헌에 관하여 언급을 한 적이 있고, 새누리가 현재 여당이 궤멸당하기 일보직전의 위기상황을 타계하기 위하여 대통령 탄핵->국민의당과의 연대->내각제 개헌등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 알려진 상황이다.


도올 김용옥의 최근 도서 '시진핑을 말한다'의 내용중,

"우리나라의 경우 어리석게도 조금 뭘 안다고 하는 사람이면 흔히 '개헌' 운운하면서, 5년제 대통령 임기가 너무 짧기 때문에 미국식으로 4년 중임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떠든다. 우리가 5년제 단임에 합의를 본 것은 종신제라 말할 수 있는 '유신헌법'의 악폐를 너무도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거개의 집권세력이 '1인독재'의 제도화를 갈망하는 그런 성향을 보여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쐐기를 박기 위해 '5년단임'에 합의한 것이다.(중략)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 5년 단임이라는 제도조차 국민이 가치있다고 느낄 만한 모범을 보인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헤 이들 모두가 5년의 집정이 지겹게 길다는 느낌이 들 만큼, 정치의 비전이나 위인의 역량이 빈곤했으며, 실정을 계속했고,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혁신적 정강정책이 부재했다. 우리나라 정치지도자에게는 5년이 짧은 것이 아니라 너무도 긴 것이다. 이런 수준의 지도자라고 한다면, 4년 중임이 아니라, '2년 단임'정도로 되면 더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에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이 가진 권력이 너무 막강하다는데 있다. 일단 한 번 대통령을 뽑아놓으면 5년동안은 그가 무슨짓을 해도(전 국토를 파헤치고, 멀쩡한 강물에 녹조를 둥둥뚜게 만들고, 청와대에서 뽕을 맞으며 굿을 하고, 섹스파티를 벌여도.. 정도 되면 진짜 무슨짓을 해도라는 말도 부족하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이 없다.

이것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대통령의 임기를 2년으로 제한하여 2년마다 국민의 선거를 통해 제한하는 방법이 현실적으로도 국민의 주권을 강화하고 너무나 강력한 정치권력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캄보디아가 공산화된후 크메르르주 치하에서의 처참한 현실을 다룬 영화 킬링필드를 개봉 당시 대한극장에서 봤을 때, 어린 마음에도 엔딩에 흐르던 imagine을 들으며  이 음악의 아름다움에 넋이 빠졌던 기억이 든다.(실제로 이 곡과 영화가 더 기억에 남던 이유는 당시 반에서 부반장이었던 성실한 놈이랑 같이 이 영화를 봤는데, 엔딩곡에 흐르는 이매진을 들으며 이곡 제목이 뭐냐라고 물어보는 그 놈을 놀라서-이렇게 유명한 곡도 몰라?- 쳐다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음악도 안듣고 공부만 하던 성실한 놈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얘기 듣기론 서울대 의대를 갔다가 졸업하고 다시 법대를 가서 법의학인가를 했다는데 그 시기에 그런거 하는 넘이 그리 많진 않았을텐데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Aha-ah...

천국이 없는 것을 상상해봐요.
당신이 노력한다면 그것은 쉬운 일이죠.
땅 아래로는 지옥이 없고, 우리 위로는 오직 하늘뿐이죠.
모든 사람들이 오늘은 위해 사는 것을 상상해봐요.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세상에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봐요.
그것은 어렵지 않아요.
죽이거나 죽일 일도 없어요
그리고 종교도 없죠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삶을 상상해봐요, 당신.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부르죠.
그러나 나는 하나가 아니죠.
난 언젠가 당신이 우리와 함께하리라 희망하죠.
그리고 세상은 하나가 될거에요.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을 상상해봐요
당신이 그것을 해낸다면 나는 감탄할거에요.
탐식할 필요도 배고플 필요도 없죠.
인간은 모두 형제에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공유하는 것을 상상해봐요, 당신.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부르죠.
히자만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
난 당신이 언젠가 우리와 함께하리라 희망해요.
그리고 세상은 모두 함께 살아가겠죠.



존 레논의 사상은 2차 대전이후 피폐해진 유럽의 지식인들로부터 나온 반성과 후회의 철학으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평화와 공존을 위해서는 우리는 기존의 틀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자각하에, 인간이라는 종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다다른 결론은  용서,화해의 길은 다름을 인정하며 어떤 주의나 주장이 아닌 사랑의 길뿐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수 천년전부터 인류의 예지자들로부터 내려오는 결론과 같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국가, 종교, 소유에 대한 철학이 변화되어야 하며 그것을 존레논은 노랫말로 인류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류의 역사는 여전히 사랑과 평화의 역사이기보다는 미움과 투쟁 그리고 반목과 질시로 피로 얼룩진 역사라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오늘을 살기보다 어제를 후회하며, 내일을 걱정하고,
국가와 민족간에 반목하며, 자신이 가진 믿음을 위해 신이라는 이름하에 서로의 가슴에 칼을 꽂고,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남들을 헤치며,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외치는 이들을 몽상가라 비웃는다.

우리는 피와 땀으로 열심히 오늘도 이 땅위에 천국이 아닌 지옥을 건설하고,  신에게 돌리는 영광이라는 미명하에 하늘을 불태우며, 국가와 민중을 위한다는 핑계로 일부의 권력자들이 어리석고 힘없는 자들을 착취하고 짓밟는다. 제대로 된 철학과 비젼을 대중(multitude)이 공유하고 이를 연대하여 권력의 평등한 분배(Isonomia)를 이루어내는 것만이 인류사에 뿌리깊은 치우침의 폐해를 막고 인류가 공생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바로 나부터 그것을 믿고 실천하는 길만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일제시대 태평양 전쟁에 끌려간, 지금은 할머니가 되신, 당시 10대에서 20대의 조선의 처자들을 종군위안부라고 부르고 그에 대한 일본의 사과등의 문제가 지속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속칭 정신대(挺身隊)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유는, 청년들이 모두 전쟁에 차출되어 군수물자를 생산할 공장에서 일할 인원이 모자라자, 일본은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女子挺身勤勞令)을 공포하여 여성인력을 차출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차출된 여성들중 젊은여자들은 전투의 최전선으로 끌려가 군인들의 위안부가 되었으며, 당시 많은 여성들이 성병등으로 희생되었고, 45년 태평양 전쟁의 종전이후에 부끄러운 마음에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동남아등지에서 숨어서 여생을 보낸 인원들이 20만명 가량이다.

挺身이라는 의미는 전쟁터와 같은 위험한 곳에서 선봉에 서서 공을 세운다는 의미가 있다. 즉, 국가가 위급한 순간에 있으니 앞장서 나라를 지키라는 독려가 그 단어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나라가 없는 설움속에 식민지의 백성으로서 자신을 노예로 여기는 주인의 국가를 위해 억지로 전쟁의 선봉에 서기를 강요받고 희생받은 것도 서러운 그들이 차마 더렵혀진 몸이 부끄러워 고국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돌아온 이들은 수십년간 이웃과 정부의 무관심에 힘들게 살아왔으며, 그나마 남은 100여명 남짓도 호호 할머니가 다 되어 이제 천국에서 먼저 간 이들과 만날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해방이 70년도 더 지났건만, 이러한 애끓는 할머니들의 한마저도 풀어주지 못하고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나라를 독립이 됐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노릇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부가 국가 및 국민 전체에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일부에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되어 간다. 

그 이유는

첫째. 생산성 증가의 결과가 일부 직종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로 현대화에 성공한 대부분의 국가의 생산성은 증가해왔다. 하지만 그 생산성의 증가가 곧바로 임금의 상승에 반영되는데는 직종 및 직업에 따른 차별이 행해져왔다.

현대에 있어서는 첨단과학기술 종사자, 금융업 등 소위 고도의 전문적 직능을 갖고 있는 직업군의 임금이 타업종과 대비해서 수십~수백배에 이를만큼 격차가 있으며, 또한 같은 직업군내에서도 소위 최고수준의 임원(CEO등)과 일반 사원의 연봉차 역시 이 정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즉, 개인적 능력차에 따라 임금격차가 과거에 비해 워낙 크기 때문에 이에 따른 부의 집중화가 발생하다.


두번째. 저금리로 인해 자본 레버리지를 이용할 줄 아느냐에 의해 부의 차이가 발생한다.

브레튼우즈 협정을 닉슨이 무효화시킨 이후, 전세계는 지속적인 유동성 증가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한 통화의 팽창으로 인해 돈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지만, 1998년과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노선의 유동성 팽창에 의한 경기침체 활성화라는 조치가 지속적으로 취해지면서 금리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존의 돈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절하되며, 부를 늘리기 위해서는 돈을 은행에 저축하는 이보다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무언가에 투자 혹은 사업을 하는 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경제가 바뀌어버렸다.

즉, 빛을 빌려 그것으로 무언가에 투자하는 이들이 결국은 위너가 되는 그런 양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실하게 직장에 다니면서 한푼두푼 착실히 저축하는 것으로 그럭저럭 삶을 꾸려갈 수 있었던 1960년대 이후의 서민들의 삶은, 2008년 이후로는 그저 꿈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아직도 시냇가 건너 동구밖에는 과일이 주렁 걸린 나무들이 있고,  

오후 햇살이 익어가는 갈대밭 뒤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철길이 있던 시절, 

동네 구멍가게의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지루한 노래에 장단 맞춰 흥얼거리는 아지메.

다방구와 술래잡기로 먼지를 뽀얗게 쓴 어린 얼굴들에는 땀방울이 흘러 뗏국물 자욱을 내고,

이윽고 붉은 노을이 먼 산에 걸릴라치면, 골목에는 한줄기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 이에 땀을 식히고

재잘대던 아이들은 하나둘 병아리 마냥 각자 집으로 쪼르르 돌아가버렸다. 

집 마당에 들어서면 흰 솜뭉치같은 강아지가 방방거리고 꼬리를 흔들고,

엄마의 몸에서는 고소한 밥 내음이 살랑거리고 있다.

  

"어린 아이의 하루와 한 해는 농밀하다. 점과 점의 틈새에서 다시 무수한 점이 빽빽하게 차있을 만큼 밀도가 높고, 정상적인 시간이 착실한 속도로 착착 진행된다. 어린 아이는 순응성이 뛰어나고 후회를 알지 못하는 생활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간 일은 냉혹할 만큼 싹둑 잘라내고, 하루하루 다가오는 광채나 변화에 지조라고는 없을 만큼 대담하게 전진하고 변화해 간다.

 그들에게는 '그냥 어쩌다보니 지나가는 시간' 같은 건 없다.


 어른의 하루와 한 해는 덤덤하다. 단선 선로처럼 앞뒤로 오락가락하다가 떠민 것처럼 휩쓸려간다. 전진인지 후퇴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모양새로 슬로모션을 '빨리 감기'한 듯한 시간이 달리가 그린 시계처럼 움직인다. 

 순응성은 떨어지고 뒤를 자꾸 돌아보고 과거를 좀체 끊지 못하고 광채를 추구하는 눈동자는 흐려지고 변화는 좋아하지 않고 멈춰서고 변화의 빛이라고는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지나가는 시간'이 덧없이 흘러간다."

-릴리 프랭크, 도쿄가족 중-


-Salvador Dali,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MoMA, New York.-


시간이란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지만, 이미 인간은 4차원의 시공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본능적으로 시간이 누구에게나 같은 것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달리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이 1931년이니 그가 과학쪽에 조예는 깊지 않았을지라도 당시에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아인슈타인이나 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해 조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그림에서 그러한 영향을 받았다고는 단정할 수 없게지만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처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고 부단히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그래도 하루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서 칠흙같은 어둠이 세상을 덮기라도 하면 조금은 초조해지고 조금은 미안해지는 이 희미한 우울함만은 어쩔수가 없는 일이다.




댄브라운의 인페르노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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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랭던이었다. "케케묵은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다윈의 이론을 배우며 자라난 나로서는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촉진하려는 시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로버트" 시에나가 여전히 강력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유전공학은 진화 과정을 촉진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것 자체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전개 과정의 일부라고요! 당신은 버트런드 조브리스트라는 사람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진화'라는 사실을 잊고 있어요. 그의 탁월한 지능이야말로 다윈이 설명한 바로 그 과정의 산물이에요.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온 진화의 일부라는 거죠. 유전학에 대한 버트런드의 남다른 통찰력은 어느 순간 신의 성스러운 영감 때문에 번쩍하고 나타난 게 아니에요. 수많은 세월을 두고 축적되어온 지성의 진보가 그런 천재를 만들어낸 거에요."

 시에나의 그 말은 랭던을 또 한 번 깊은 상념으로 밀어 넣었다.

"다윈주의자라면 누구나 자연이 인구를 일정한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한 사건들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거에요." 시에나의 논리는 거침이 없었다. "흑사병, 기근, 대홍수, 다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이렇게 물어보면 어때요? 이번에는 자연이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낸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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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생물학은 왓슨의  DNA의 나선구조의 발견, 그리고 그 이후 게놈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생물을 유전자레벨에서 재정의할 수 있는 기술을 인간에게 선사하였다. 물리학에서 상대론과 양자역학의 이론 체계의 수립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첨단 과학들은 과거 우리가 신의 영역으로 치부했던 범우주적 시스템이 돌아가는 원리에 인간이 접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윈이 자연선택이라 했던 그러한 선택을 우리 인간은 이제 우리의 손으로 직접 콘트롤하고 수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의미이다. 

유전자 조작에 대해 아직까지도 종교나 도덕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신의 뜻에 반한다거나, 윤리원칙에 입각했을때 비인간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있으나 결국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인간은 결국 진화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길을 택할 것은 현대의 기술의 발전과정을 지켜봤을때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장애가 없어지고, 불치병이 없어질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는데 그 수혜를 거부할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러한 좋은 면과 마찬가지로, 인구의 증가로 인해(과거 지구 생태학적 관점에서 지구의 환경이 순환하면서 견딜 수 있는 인구의 맥시멈이 200억이라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그 출처는 확실치 않다. 아마 만화였을지도.) 결국은 지구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최대치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며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도 늘어나고 출생율에 비해 사망율이 줄어들게 되면서 결국 인구는 우리가 사는 터전인 지구가 견딜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하는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우리의 기술로 인구를 억제하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게 단순히 피임약이나 콘돔과 같은 걸로 해결된다면 다행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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