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년 전쯤인가? 이 분이 확 떴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에 2012년도에 방송한 SBS의 아이러브인이라는 교양프로그램에서 김정운 씨가 강연했던 프로그램을 봤다. 엄청 재밋어서 이 분 책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이 분은 몇년 전에 대학교수직을 관두고 갑자기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대중에게 잊혀져 갔는데, 최근에 돌아와서 여수에 작업실을 만들어 정착(가족들과는 따로)을 한 모양이다. 

 외딴 섬에서 여러가지 단상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내놨다.

 일반적인 에세이랑은 좀 다른게, 심리학 박사이기 때문인지 어떤 주제나 현상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 독특하다. 그리고 간혹 날카로울 때가 있다.

 이 책의 주된 주제는 공간, 저자가 50대 이후 새로운 그의 인생의 의미를 찾기 시작해서 궁극적으로 도달한 자신의 공간에 대한, 그리고 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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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시선은 곧 마음이다. 내 시선이 내 생각과 관심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 눈의 흰자위가 그토록 큰 이유는 시선의 방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흰자위와 대비되어 시선의 방향이 명확해지는 검은 눈동자를 통해 인간은 타인과 대상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함께 보기 joint-attention' 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바로 이 '함께 보기'에 기초한다. 다른 동물들은 시선의 방향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눈 전체가 거의 같은 색이거나 흰자위가 아주 작다. 소통이 아니라 사냥하기 위해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시선의 방향이 드러나지 않아야 사냥에 더 유리하다.(이제까지 살면서 '눈 적은 사람'이 만만했던 적은 없다. 흰자위가 다 드러나는 '눈 큰 사람'은 대개 참 편안했다. 뭐 내 개인적 편견이다.)

 

p41

 '물때'다 여수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밀물과 썰물이 하루 두 번씩 반복되는 건 알았지만, 만조와 간조 시각이 매일 정확히 49분씩 늦어진다는 것은 몰랐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시간이 24시간 49분이기 때문이다. 매일 물이 들락거리는 속도도 달라지고, 물의 양도 달라진다. 물이 가장 많이 들고 빠지는 때가 '사리'다 물이 가장 조금 들고 빠지는 때는 '조금'이다. 사리 때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 물이 빠지면 수백 미터 앞까지 바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배를 끌고 나갔다가는 바다에서 몇 시간을 그냥 떠 있어야 한다.

 

p44

 시간은 기울어져 흐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바꿔가며 시간이 흐르는 이유도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울어져 흐르는 시간이 못마땅하다고 지금 당장 기둥을 수직으로 곧추세우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을 배제한 평등은 가짜다. 50대 50의 공간적 평등은 없다는 이야기다. 흐르는 시간에 따라 권력의 주체가 기울고 바뀌어야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다. 이내 또 기울 것을 알아야 겸허해진다.

==> 지구의 자전축은, 지구의 공전궤도의 중심축에 대해 23.5도 기울어져 있다. 때문에 태양을 공전하면서 태양과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태양에너지를 받는 면적과 시간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 차이로 인해서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기후변화가 생겨나며, 북반구가 여름일 때(태양에너지를 받는 면적 및 시간이 최대일때) 남반구는 겨울이 된다.(태양에너지를 받는 면적과 시간이 최소). 

 만일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궤도의 중심축과 평행했다면 지구의 적도는 지금보다 훨씬 뜨거웠을 것이고, 남극과 북극은 지금보다 훨씬 차가울 것이다. 이런 차이가 사실 현재보다 더 나쁠지 좋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과 같은 전지구적인 기후 다양성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기후 다양성이 줄어든다면 아마도 생물의 다양성도 줄어들게 될 것이고, 지구의 모습은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

 

p57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섬의 내 작업실 공사는 그해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내 고독한 결정의 기준은 분명했다. '교환가치 Tauschwert'가 아니라 '사용가치 Gebrauchswert'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망했지만,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한 경제학자 마르크스의 가치론은 여전히 유효하고 탁월하다. 각 개인의 구체적 필요에 의해 생산된 물건이 '화폐'라는 '교환가치'에 의해 평가되면서 자본주의의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마르크스는 진단한다. 이른바 '사용가치'라는 '질적가치'와 '교환가치'라는 '양적 가치' 사이의 모순이다.

 '교환가치'는 내 구체적 필요와는 상관없는, 지극히 추상적 기준일 뿐이다.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은 무엇보다도 주택이 '사는 곳(사용가치)'이 아니라 '사는 것(교환가치)'이 되면서부터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십 대 후반이 나이가 되도록 난 한 번도 내 구체적 '사용가치'로 결정한 공간을 갖지 못했다. 이 나이에도 내 '사용가치'가 판단기준이 되지 못하고, 추상적 '교환가치'에 여전히 마음이 흔들린다면 인생을 아주 잘못 산 거다. 추구하는 삶의 내용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섬 작업실 공사의 경제학적 근거는 이렇게 간단히 정리했다.

 '정말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에 대해서는 심리학적으로 더욱 간단히 정리했다.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regret of action'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 regret of inaction'로 구분해야 한다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심리학과의 닐 로스Neal J. Roese 교수는 주장한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한 행동, 그 단 한가지 변인만 생각하면 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심리적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비된다.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이야기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이 그토록 오래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 이 섬의 미역창고에 작업실을 짓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할 것임이 분명하다. 반대로 섬에 작업실이 완공되어 습기와 파도, 바람 때문에 아무리 괴롭고 문제가 많이 생겨도 난 내가 한 행동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얼마든지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섬에서 왜 행복한가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낼 것이다.

 

p78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이 진짜다. 다른 사람의 귀를 의식하는 허세가 사라지는 까닭이다.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때 나는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리트Lied>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 Sebastian Bach의 <평균율 Das wohltemperierte Klavier>를 가능한 한 심각한 표정으로 듣는다. 폼 난다. 그러나 '아재용 넥밴드'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은 죄다 '7080 가요'다 우연은 아니다. 평생 좋아하며 듣게 되는 음악은 청소년기가 끝나고 청년기가 시작되는 20세 전후에 들었던 것이 대부분이라는 심리학 연구 결과가 여럿 있다.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한 시절에 듣는 음악인 까닭이다.

 

p83

 

 '공연한 불안'의 개념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 개념들을 '가나다순'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것도 좋다.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는 것은 '개념의 개념화', 즉 '메타 개념화'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생각'인 '자기 성찰' 또한 이런 메타 기념화'의 한 형태다. 개념화된 불안을 다시 한 번 상대화하면 불안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진다. 더 이상은 정서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힘으로 도무지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불안과 걱정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이가 주위에 참 많다. 잘나가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한들 밤마다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성공인가. '96퍼센트의 쓸데없는 걱정'에서 자유로워야 성공한 삶이다.

 

 자주 웃고, 잠 푹 자는 게 진짜 성공이다!

 

p85

 

 수시로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전제들을 성찰하며 상대화해야 명함이 사라져도 당황하지 않는다. '탈맥락화Dekontextualisierung'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탈맥락화'는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철학에서는 '자기 성찰'이라 하고, 심리학에서는 '메타 인지meta-cognition'라 한다. 미술에서는 '추상Abstraktion'이라고 한다.

 

p95

 

 흥미롭게도 프로이트나 아들러 모두 '유대인'이라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내 일상의 유치한 열등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매일같이 경험하는 인종차별로 인한 뿌리 깊은 열등감의 상처를 유대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결했다. 우선 독일인보다 더 철저한 '독일인'이 되는 방식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가스를 개발한 유대계 독일인 프리츠 하버Fritz Haber 같은 이다. 암모니아 합성 비료를 발명한 그는 자신의 발명품이 독가스로 사용되는 것에 적극 동조했다. 그의 아내는 이를 반대하며 자살까지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그의 독가스는 결국 히틀러에 의해 자신의 유대인 친척까지 살해하는 데 사용되었다.

 

 두 번째는 시오니즘이다. 유럽에서 그토록 멸시받느니 스스로를 격리하여 '유대 국가'를 세우자고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계 작가 테오도어 헤르츨Theodor Herzl은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기원이 된다. 시오니즘은 주로 '동유대인Ostjuden'이라 불렸던 동유럽 출신 유대인들에 의해 지지되었다. 그러나 시오니즘이라는 인종 갈등 뒤에는 가난한 '동유대인'과 부유한 '서유대인Westjuden' 사이의 계급 갈등이 숨겨져 있었다. 1980년대 한국 사회의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을 둘러싼 논쟁처럼 20세기 초반의 유대인 문제는 하나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문제였다.

 

 독일인이 되기도 거부하고, 히틀러식 인종주의의 또 다른 극단인 시오니즘도 거부하며 '평화로운 유럽인'이 되고자 했던 유대인들도 있었다. 프로이트와 아들러는 물론 카를 크라우스Karl Kraus,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와 같은 이들이다.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들의 깊은 인문학적 사유의 원천은 이들이 끝까지 부둥켜안고 씨름해야 했던 '유대인 열등감'이다. 유대인이 위대한 이유는 노벨상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다. 인종적 열등감을 풍요로운 상상력의 원천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을 만드는 것은 가장 게으른 방식이다. 내면을 향한 칼끝을 바깥으로 향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 이슈든 양극단에 치우친 이들의 이해하기 힘든 공격성과 적개심에는 이같은 '투사Projektion'의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부와 권력을 한 손에 쥐고도 여전히 적을 만들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이들이다. 그러다 죄다 한 방에 훅 간다. 열등감은 외부로 투사하여 적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적'은 또 다른 '적'을 부르기 때문이다. 타인들과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깊이 박힌 대못'처럼 그저 성찰의 계기로 품어야 한다.

 

p110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 제발 '좋은 것'과 '비싼 것'을 혼동하지 말자! 자신의 '좋은 것'이 명확지 않으니 '비싼 것'만 찾는 거다.

 

p114

 

 나와 아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저자의 책을 읽었다. 『불행 피하기 기술』의 저자 스위스의 롤프 도벨리Rof Dobelli다. 원어 제목은 '좋은 삶의 비결DSie Kunst des guten Lebens'이다 지구 반대편에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참 즐겁다. 저자의 주장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좋은 삶guten Leben'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기는 힘들어도, '나쁜 삶'이 어떤 것인지는 누구에게나 분명하다는거다. '신이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신이 그렇지는 않다'고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는 중세 '부정의 신학negative theology'의 방법론처럼 우리도 '나쁜 삶'의 요인들을 하나씩 제거하면 행복해지지 않겠냐는 거다.

 

 '좋은 것'을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각론의 부재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나쁜 것', '불편한 것'을 제거하자는 생각은 독일의 오래된 실용주의 전통이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에서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FFF Form folgt Funktion '의 디자인 원칙이 강조되었다. 삶을 불편하게 하는 불필요한 장식을 죄다 제거하자는 이야기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는 아예 "장식은 죄악이다"라고 했다. 현대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인 디자이너 디터 람스Deter Rams도 자신이 추구하는 디자인을 한마디로 '좋은 디자인gutes Design'이라고 정의했다. "적지만, 더 좋은 Weniger, aber Besser"이라는 그의 디자인 철학은 오늘날 애플의 모든 스마트 기기 디자인에 적용되었다. 여기서 미니멀리즘이란 무조건 줄이는 게 아니다. '나쁜 것'을 줄이는거다!

 

p130

 개별적 사건과 경험들에 대한 기억은 주체적 관심에 따라 서로 연결되며 의식의 차원으로 올라온다. 인간의 의식 또한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다 '입자'와 같은 개별 사건들을 연결하는 그 행위가 바로 '의미 부여'다 개별 사건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순한 '팩트'에 불과한 사건들을 연결하는 그 '의미 부여'가 의식의 본질이다.

 

p139

 

 습관적으로 '나쁜 이야기'만 소셜 미디어로 보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과 '친구'를 맺으면 아주 고통스럽다. 밤새 '나쁜 이야기'만 쌓여 있기 때문이다. 죄다 남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이야기뿐이다. 희한하게 '사회정의'로 정당화하며 즐거워한다. '나쁜 이야기'에 서로 '좋아요'를 죽어라 눌러댄다. 각자의 소셜 미디어에 쌓이는 '나쁜 이야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모여 앉아도 남 욕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러고 사는 걸까?

 

 타인의 관심을 얻기에 '나쁜 이야기'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원시시대를 한번 생각해보자. '저기 바나나가 있다'는 정보와 '저기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정보 중에 내가 지금 살아남는 것과 관련해 어느 이야기가 더 중요할까? 당연히 '저기 호랑이가 있다'는 '나쁜 이야기'다. 바나나는 내일 먹어도 된다. 그러나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무시하면 바로 잡아먹힌다. '나쁜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보다 생존에 훨씬 더 중욯했다.

 

 우리가 '나쁜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는 바로 이 원시적 본능이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잠시만 한눈팔아도 못굼이 날아가던 원시시대 이야기다. 문명화된 사회란 날것의 위험들을 제어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갖춰진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도 사방에 '나쁜 이야기'들뿐이다.

 

 '나쁜 이야기'에 끌릴 수밖에 없는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불안한 인간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불안한 이들이 불안을 유포해 혼자만 불안하지 않으려는 아주 웃기는 현상이다.

 

p144

 

 공연히 불안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그곳은 불안을 극복한 인류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하는 느닷없는 질문으로 조급해진다면 음악회를 찾는 게 좋다. 몸으로 느껴지는 음악은 삶의 시간을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p171

 

 지난주에는 독일 공영방송인 체데에프ZDF에서 하는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이 직접 찍은 영상을 모아 보여주고, 그들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평양의 그로테스크한 풍경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러나 독일 내레이터의 마지막 코멘트는 충격이었다. 남과 북 모두 '같은 민족'이라며 통일하겠다고 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저토록 다른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같은 민족'이냐는 거다. 아차 싶었다.

 

 '민족'은 원래 없었다. 단어 자체가 아예 없었다. '민족'은 메이지 시대에 이와쿠라 사절단 일원으로 구미 각국을 여행한 구메 구니타케久米邦武가 1878년 펴낸 『미구회람실기米歐回覽實記』에 처음 나타난 표현이다. 그 후 독일제국의 국가론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민족'은 '국가Nation'와 '종족Volk'이 결합한 뜻으로 본격 사용되기 시작한다. '국민', '민족', '종족'의 의미론은 이때부터 마구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 메타포'는 아주 기막혔다. 특히 일본에서 고안된 '민족' 개념과 무척 잘 어울렸다. '민족'에 내재한 '가족 메타포'는 동양에선 아주 쉽게 이해되고 실천되었다. 분단의 한반도에서 '민족=가족' 이데올로기의 파워는 더욱 강력해졌다. 서구가 수백 년 걸린 근대화 과정을 수십 년 만에 해치울 수 있었던 그 엄청난 저력도 '흩어진 가족'과 같은 민족의 '한恨'이었다. 어떻게든 돈 많이 벌어 흩어진 가족이 다시 모여야 했다. 그래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민족의 분단은 항상 '이산가족'의 슬픔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 스스로 한번 확인해봐야 한다.

 

 정말 우리가 분단을 이산가족의 슬픔처럼 느끼고 있느냐는 거다.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을 내 가족처럼 느낄 수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독일 통일 현장을 경험한 나로서는 지극히 비판적이다. 심리적 통일까지 이루려면 분단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 과연 우리는 북한 사람들을 위해 칠팔십 년 넘는 세울을 인내할 수 있을까?

 

 더 구체적으로, 김정은이 나타나면 감격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박수 치고 눈물까지 흘리는 저 북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 각자는 그 엄청난 '통일세'를 수십 년 동안 기꺼이 낼 수 있을까? 통일 후,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의 오만함에 분노하여 '김정은 시절이 더 좋았다'며 '조선노동당'을 다시 창당하면 도대체 무슨 느낌이 들까? 그 '조선노동당'이 북한 지역에서 몰표를 얻어 대한민국 국회의 한구석을 당당히 차지하는 모습을 '가족처럼' 편안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이는 독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이제 남북한 '단일민족'의 이념과 '통일'이라는 '무의식적 전제'들을 '숭고한 멜랑콜리'로 바라볼 때가 되었다. '민족'이라는 '당연한 젼제'를 해체하면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는 아주 달라진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옵션도 확연히 넓어진다.

 

p184

 

 '사회주의적 계몽'은 '자본주의적 욕망'을 결코 이길 수 없다.

 

p195

 

 은퇴하면 바로 죽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은퇴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기준이 바로 그 시절의 가치에 맞춰져 있다. 삼십여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우리 모두가 지금 아무 생각 없다. 바로 앞선 세대의 '노욕老慾'을 보면서,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던 것이 '짤리고 보니' 다 이해된다고도 했다. 특히 정치, 경제권에서 '저렇게까지 하고 싶을까' 했던 선배들에게 주어진 그 '기회'가 부럽다고도 했다. 이렇게 오래 살 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첨예한 갈등 배후에는 죄다 '느닷없는 생명 연장'이 숨겨져 있다. 단순한 이념적 갈등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평균 수명 50세도 채 안 되던 지난 세기의 낡은 사회 설명 모데로 한국 사회를 설명할 수는 없다(이건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이 엄청난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롤 모델'도 전혀 없다. 각자 '용감하게' 찾아야 한다. '손'으로 하는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프로이트의 '콤플렉스'와 더불어 현대인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면 마르크스의 '소외Entfremdung'다. 자신이 만든 생산물과는 아무 관계없이, 그저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으로 살아야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 심리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노동의 결과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 삶을 마르크스는 '소외된 삶'이라 했다. 정신이 자연에 변화를 가져와 자아실현이 가능해진다는 헤겔의 낭만적 '외화Entäußerung' 개념을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맥락에 맞춰 비판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개념들은 대부분 공허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심리학적으로 그의 '소외론'은 여전히 통찰력 있고 의미 있다.

 

 사무직에서 일했던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배우는 것이 좋다. 두 번째 인생에는 노동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판단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을 해야 심리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교수, 기자, 선생과 같이 말과 글로 먹고 산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말년의 성품이 무난해지며 '꼰대'를 면할 수 있다. 아니면 컴컴한 방에서 혼자 인터넷에 악플이나 달며 삼십여 년을 더 살아야 한다. 달리 할 일이 있는가? 그래서 아직 체력 좋은 범재에게는 '용접 일'이 만장 일치로 추천되었다.(진지하게 나눈 이야기다. 우리 모두 대학 사 년 그렇게 대충 다니고 삼십 년 가까이 잘 먹고 잘살았으면 감사해야 한다. 앞으로 삼십여 년을 더 살려면 뭔가를 처음부터 새롭게 배우는 게 당연하다.)

 

p201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 내가 서울에서 운전하며 가장 괴로울 때는 차선을 바꿀 때다. 다들 '차선 바꾸겠다는 신호'를 '빨리 달려오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잽싸게 달려들어 차선을 바꿀 여유를 절대 안 준다. 어어, 하다 보면 뒤에서 빵빵거리며 난리 난다. 정신이 혼미해지며 그냥 울고 싶어진다. 주로 남자들이 그렇다. 한국 남자들은 자기 자동차 앞을 양보하면 인생 끝나는 줄 안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

 

 자동차 안이 유일한 자기 공간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집의 안방은 아내 차지가 된 지 오래다. 아이들도 이제 안방을 '엄마 방'이라고 한다. 거실은 TV와 뜬금없이 커다란 소파가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코를 심하게 골아 같이 잠을 못 자겠다는 아내의 불평에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한 지 이미 수년째다. 수면 무호흡으로 이러다 죽겠다 싶어 새벽에 잠을 깨면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래서 자동차 안이 그렇게 행복한 거다. 한 평도 채 안 되지만 그 누구도 눈치 볼 필요 없는 나만의 공간이다. 밟는 대로 나가고, 서라면 선다. 살면서 이토록 명확한 '권력의 공간'을 누려본 적 있는가? 그러니 도로에서 누가 내 앞길을 막아서면 그토록 분노하는 거다.

 

p211

 

 더 중요한 자유가 있다. '시선의 자유'다. 이건 한국 사내들에게 매우 절박한 자유다. 평생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기 때문이다.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것처럼 치명적인 것은 없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누군가 지켜본다고 생각하며 평생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p214

 

 '관찰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맘대로 '볼 수 있는 자유'가 행복의 핷미이다.

 

p218

 

 '하염없음'은 시간이 정지되고, 유체 이탈처럼 '또 다른 나'가 공중 부양하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경험이다. 철학적 '자기 성찰'이란 심리학적으로는 '경외감'과 '하염없음'으로 야기되는 '인지적 전환cognitive shift'이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대자연 앞에서 내가 갖고 있는 현재의 인지 체계로는 그 어떠한 설명과 해석도 불가능하다. 남은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내 인지 체계를 통째로 바꾸는 일이다. 인간의 모든 미학적 경험은 이 같은 '인지적 전환'과 깊이 관계되어 있다.

 

p221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조승연의 뉴요커에 대한 그리고 뉴욕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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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뉴요커는 이민 이후의 생존 경험을 통해, 주변 사람의 부러운 시선이나 허울 좋은 체면치레 같은 것은 생존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진정한 자유와 존재감은 경제적 자립에서만 온다. 이것이 뉴요커의 행복 공식이다.

 우리가 부모 세대의 기대치, 사회의 이목에서 자유로워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부모를 포함해서 모든 타인에게 돈 때문에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겨엦적 자립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첫 단추는 질긴 생존력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내 행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뉴요커가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인생학 레슨이다.

 

p27

 

 겉치레가 쌓이면서 인생에 피로라는 때가 끼게 된다.

 

p30

 "하나씩만, 그리고 제대로 하라."

 

p48

 세상에는 머리가 좋아 뛰어난 논문을 발표하는 사람도 있고, 뛰어난 안목으로 인스타그램에 아름다운 사진을 올려 인정받는 사람도 있으며, 개인 방송으로 인기를 끄는 사람도 있다. 돈을 버는데만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언가를 만드는 데만 재능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재능도 한눈 팔지 않고 갈고 닦아야 빛이 나고, 그래서 한 가지만 제대로 이루어 내기도 힘들다. 뉴요커는 바로 이러한 점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반면에 학창시절부터 전 과목 점수를 평균 내는 교육 제도에서 수행평가까지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우리 한국인은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에 더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10과목에서 만점이 나와도 한과목의 점수가 낮으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일까? 사람은 원래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많기 마련인데, 우리 사회는 모두가 성격이 좋고, 외모도 준수하고, 공부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10가지를 잘해도 하나가 부족한 타인을 평가할 때도 잔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타인의 장점보다 단점을 보고 자신도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다 보니 인생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혼자 다 해낼 수 있는 능력자만 모여 사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세상에 사람은 많다. 그리고 제각각 다른 분야에 남다른 재주가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한 명의 역할이 아닌 10명의 역할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며 불필요한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많은 장점을 가진 타인이 가진 단 하나의 단점만을 보려고 할까? 뉴요커들처럼 인간은 원래 완벽해질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하나의 장점에 집중해서 나만의 고집과 집념을 가지고 실행 가능하도록 밀어붙이는 배짱이 생길 것이고 타인의 여러 장점에 집중해 나와 어떻게 서로 보완하며 살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어 다른 사람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p77

 파리와 뉴욕의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작품의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뉴욕과 파리 예술의 차이를 한마디로 대변하는 일화가 있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유명 작곡가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이 파리에서 프랑스 클래식 음악 대가 드뷔시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고 한다. 드뷔시의 절제미와 부드러운 선율에 깊이 감동한 거슈윈은 관계자에게 드뷔시를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거슈윈은 드뷔시를 만나자 자기가 지금까지 작곡한 것은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이 공연을 보며 깨달았다며, 견습생으로 들어가 드뷔시 밑에서 레슨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침묵하던 드뷔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브로드웨이에서 작곡을 하면 얼마나 벌어요?"

 거슈윈이 솔직히 대답하자, 드뷔시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저를 뮤지컬 작곡 제자로 받아주시죠."

 

 물론 이것은 줄리어드 음대생과 교수들 사이에 도는 우스갯소리다. 하지만 이 일화는 세계 예술의 중심지로서 파리와 뉴욕의 차이점을 단순 명쾌하게 말해준다. 뉴욕을 포함한 미국의 예술가들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프랑스 예술의 깊이에 무한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마돈나와 존 말코비치 같은 할리우드의 예술인도 파리에 자택을 두고 자주 기거하는 경우가 많고, 유럽 안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동네에 살아보려고 한다. 그에 비해 프랑스 예술가들은 고지식한 전통에서 벗어나 파격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는 뉴욕의 자유로움과, 시장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이런저런 평론가의 잔소리를 듣는 대신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는 뉴욕의 예술시장 시스템에 대한 매력과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p93

 뉴요커의 민간 영웅담은 무법자를 경외의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뉴욕의 명소에는 마피아, 마약 거래, 성매매로 유명해진 장소가 포함되어 있고 DUMBO(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 맨해튼 다리의 고가도로 밑)도 그중 하나다. 1989년 마피아 보스인 존 고티John Gotti는 체포되어 수갑을 차고 끌려가면서도 번듯한 새 양복 차림에 여유로운 웃음으로 당시 뉴욕에서 최고의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150여 년 전에 뉴욕시 전체를 타락시킨 보스 정치의 대명사 윌리엄 트위드William M. Tweed는 지금도 많은 영화에서 카메오로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 역할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뉴요커는 이런 사람을 '색채가 강한 인물Colorful Character'로 여겨 그들과 관련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는 매진 행렬을 이루기도 한다.

 그렇다면 뉴요커의 윤리 나침반이 고장이라도 난 걸까? 그들은 왜 이런 무법자를 좋은 쪽으로 기억하려는 걸까?

 그 이유는 뉴요커 중 많은 사람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소수자 출신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뉴요커는 낯선 나라에 이민을 와서 어려운 일을 많이 겪은 사연 많은 사람들이다. '절박함 앞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라는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가 뉴욕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 극작가, 영화 감독이 주목하는 스토리 라인이다.

 1970년대 브루클린 남부에서 발생한 한 강도 사건은 뉴요커 사이에서 '들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연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보여준다.

 1972년, 세 명의 괴한이 브루클린 남쪽에 위치한 체이스맨해튼 은행 지점에 총을 들고 습격해 돈을 요구했다. 이들의 이름은 존 보이토비츠John Woitowicz, 살바토레 나투랄레Salvatore Naturale 그리고 로버트 웨스텐베르그Robert Westenberg다. 웨스텐베르그는 경찰이 출동하자 홀로 도주했다. 나머지 두 명은 14시간 동안 은행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의 회유와 위협에 저항햇다. 결국 나투랄레는 FBI의 총에 사살되고, 보이토비츠는 체포되어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사연은 정말로 기구했다. 보이토비츠는 폴란드계 아버지와 이탈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마도 보수적인 천주교 가정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청년기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나라를 위해 싸웠고, 은행 지점 창구에서 일한 적도 있다. 22살이 되던 해에 카멘 비풀코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해서 두 명의 아이까지 낳았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결혼 4년째가 되던 어느 날, 보이토비츠는 이탈리아계 이민자에게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인 산 제나로San Gennaro 축제에 참석했다가 엘리자베스 이든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와 사귀는 동안 보이토비츠는 점차 자기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다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나 깊었는지 헤어지지 않으려고 엘리자베스가 성전환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서 보이토비츠는 수술비를 구하려고 친구들과 모의해 은행을 털기로 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뉴욕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반인륜적이고 엽기적인 범죄를 다루는 미디어의 가십면에나 올랐을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과는 무관한 엽기적인 사건이라며 무시당하지 않았을까? 보이토비츠의 어리석은 선택을 손가락질하거나 인간 말종이라고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이것 봐, 이민자들은 범죄 가능성이 높다니까" 하면서 이탈리아나 폴라드인의 민족성 또는 종교를 문제 삼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뉴욕의 예술인들은 이 스토리를 세계인의 칭송을 받는 걸작 영화로 만들었다. 뉴욕의 <라이프>지는 존 보이토비츠의 기구한 사연을 상세히 실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활동하던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Sidney A. Lumet은 그 이야기를 <개 같은 날의 오후Dog day afternoon>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었다. 대본을 쓴 프랭크 피어슨은 아카데미 극본상까지 받았다. 물론 할리우드는 보이토비츠에게 그의 인생사를 영화로 만들 권리를 돈으로 샀다. 비극적이게도 보이토비츠의 애인 엘리자베스 이든은 그 돈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자 그를 떠나서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에이즈로 사망하자, 보이토비츠가 추도 연설을 했을 만큼 두 사람의 사랑은 특별했다.

 

p96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럽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인간의 본질적 모습을 벌거숭이처럼 드러낸다. 이것이 <위대한 개츠비>(살인을 저지른 부자), <렌트Rent>(에이즈로 죽어가는 예술가) 등 뉴욕의 걸작이 가진 공통적 테마다.

 

p98

 이처럼 뉴요커는 기구한 인생을 사랑한다. 그래서 새로운 콘텐츠가 끊이지 않는다. 내가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파리 외곽에 사는 알제리, 모로코 이민자 출신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곳의 높은 범죄율과 문맹률을 보고 "역시 프랑스 사람과 알제리 사람은 달라"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니다. 프랑스의 주류층은 자기가 비주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뉴요커는 인간의 공통점을 믿는다. 극단적인 상황에 많이 처해본 도시에서 뉴요커는 인간이 압박을 받으면 이상한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사회가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그와 내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일 뿐이라는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한 선택은 내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역지사지'라는 우리의 옛말처럼, 미국에도 '남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에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교육수준, 사회계층, 문화권의 사람과는 역지사지 할 수 있지만, 존 보이토비츠와 같은 사람은 사연을 들어볼 가치조차 없다며 무시한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가 획일적이이서 창의적인 콘텐츠를 찾기가 어렵고 내 사고가 좁다고 느낀다면 그처럼 비참하고 엽기적인 사연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발성되지 않는 목소리들이 바로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갈구하던 '새로운 콘텐츠'인 것이다. 새로운 콘텐츠는 남의 스토리가 나에게 중요할 때 가장 잘 발견된다. 선입견을 내세우지 않고 일단 귀를 여는 것, 이것이 바로 뉴욕 문화 파워의 근원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p123

 뉴욕의 사교육 경쟁은 엄마의 임신 때부터 시작된다. 얼마 전에 뉴욕에 사는 내 친척이 아기를 낳았다. 그 엄마는 아기를 임신하는 순간부터 비상이었다. 일단 미국에서는 유급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이 없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급료가 나오지 않는다. 또 회사 지원 의료보험도 정지된다. 그래서 의료보험료로 한 달에 우리나라 돈으로 수백만 원씩 내야 한다. 휴가 기간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지만, 이런 문제때문에 출산 후에는 가급적 빨리 직장에 복귀한다. 따라서 아기를 보육시설에 맡기기 전까지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친척은 양가 부모님이 아직 일을 하고 계셔서 아기를 장기간 대신 맡아줄 형편이 못되었다. 그런데 뉴욕에는 육아를 위탁할 수 있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뉴욕에서 아기를 괜찮은 보육시설에 보내려면 임신 초기부터 신청하고 대기를 하더라도 엄마의 출산휴가 일정에 맞추어서 입학 허가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중산층 이상은 임신 후 적절한 시기를 보아서 괜찮은 어린이집 여러 군데에 신청을 해둔다. 내 친척은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어린이집 중 하나에서 입학을 취소한 아이가 생겨 빨리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마치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듯 좋아했다. 그런데도 입학할 때까지 출산 후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비용도 문제다, 안전하고 교육 프로그램이 좋은 곳에서는 보통 한 달 보육료로 400~700만 원을 받는다. 그 비용에도 아기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돌봐준다. 부모 중 한 명은 칼퇴근을 해야 맡길 수 있는 것이다. 보육료는 수요 공급에 맞추어 변동되기 때문에 이달에는 400만 원이던 것이 다음 달부터는 갑자기 500만 원으로 뛰기도 한다.

 이런 열악한 자녀 교육 환경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뉴욕에서 나간다. 뉴욕의 좁은 아파트보다 낮은 가격으로 인근 외곽지역의 정원 딸린 집을 사서, 아이들에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뛰어 놀도록 하고 부모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 하지만 일부 뉴요커는 굳이 아기를 뉴욕에서 키운다. 좁은 집 안에 칸막이를 설치해 아기방을 만들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내내 을이 되어 산다.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게다가 뉴욕에서는 아이가 10대가 된 후에도 경제적인 고통이 계속된다. 대부분의 뉴욕 부모는 충분한 돈을 벌어 자식을 트리니티나 레지스, 호라스만, 리버데일 가은 검증된 사립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제적인 능력이 뒤따라야 한다. 뉴욕에서 가장 좋은 사립학교 중 하나인 트리니티는 졸업반의 1년 학비가 2017년 기준으로 5만 달러(6천만 원)에 이른다. 아마 지금은 더 올랐을 것이다. 뉴욕 상류층 가정 자녀들의 방탕한 삶을 그려 화제가 된 미국 드마라 <가십 걸>은 나이팅게일-밤포드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몇몇 스캔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학교의 1년 학비는 약 10년 전에 4만 6,500달러였다. 아이비리그 대학교의 학비와 비슷하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 학비만 내는 것이 아니다. 부수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 정도 학비라면, 일반 중산층 가정의 맞벌이 부부 수입으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p136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은 아시아인이 서양인에 비해 '인 그룹(나와 잘 아는 사람들의 그룹)'과의 소통에 훨씬 적극적인 반면, '아웃 그룹(나와 사회적으로 관계가 먼 사람들의 그룹)'과의 소통은 서양인에 비해 소극적이라고 <생각의 지도>라는 책에서 쓴 적이 있다.

 

 

 

 

90년대생들이 젊은 세대로 소비의 주체 및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전 60~80년대생들과 본질적으로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낀 필자가 몇년 여에 걸쳐서 이 주제를 파고 들면서 준비한 책.

현재 진행형의 변화이기 때문에 정확히 이렇다고 정의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는  90년대생 이후 세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 책을 출간 당시에 한 번 봤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직원들에게 권장도서로 추천하면서 다시 유명해졌기에 함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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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기간제 일자리는 물론 노동법의 규율에서 벗어난 각종 특수 고용 형태 일자리가 넘쳐나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전체 노동자의 46퍼센트가 비정규직인 기형적 고용 구조는 일상이 됐다. 지금 산업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일은 시키되 고용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유노동 무책임'이다. 그러니 1990년대 출생 취업 준비생들이 직업을 고를 때 안정성을 가장 큰 가치로 꼽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직업 안정성이 높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같은 국가기관이다.

 

 게다가 최근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된 덕에 생애소득이 높아서, 기존의 인식과는 다르게 오히려 대기업보다 많은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재학 중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퇴직할 때까지 사기업 취업자보다 최소 3억 3,605만 원에서 최대 7억 8,058만 원까지 더 많은 누계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의 임금인상율은 연평균 7퍼센트대 수준으로 대기업의 6.2퍼센트보다 높고, 공무원 퇴임 연령 역시 평균 56~59세로 대기업 평균인 52세보다 높다. 이제 공무원은 '가늘고 길게'가 아니라 '굵고 길게'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공무원은 구조조정의 공포가 없다. 한국 정부가 수립된 1953년 이래로 단 한 번도 공무원 구조조정을 진행한 적은 없다. 정부가 가장 모범적인 고용주인 셈이다. 공무원으로서 특별한 결격 사유가 생기지 않는 한 직장을 잃을 걱정은 없는 것이다. 그 공포에서의 해방은 현대 사횡에서 최소한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한다.

 

p32.

 

 2008년 두산그룹을 새로운 재단으로 맞이하게 된 중앙대학교의 경우, 구조조정과 함께 교양 필수 과목으로 '회계와 사회'라는 회계학 수업을 개설했다. 학생들이 전공과 상관없이 졸업을 위해서 회계학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덕진 서울대학교 교수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학문을 왜 학생들이 자기 돈 내고 배워야 하는가"라고 맹비난했다. 대학이 "학문적 가치가 아닌, 기업에 맞춰진 인재만을 양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당시 박용성 이사장은 "인문계든 자연계든 대학 졸업후 직장을 얻게 되면 처음 부닥치는 것이 현금 흐름에 대한 이해"라며 "회계학을 필수 교양 과목으로 한 것은 학생들의 장래를 위한 하나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사회 진출이 대부분 기업과 연계되지만, 모든 학생의 진로가 똑같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기업가의 성향과 입김이 학교 운영에까지 적용된 사례다. 하지만 여러 학내의 비판에도 대졸 실업자들의 지속적인 증가는 대학의 직업교육기관화를 부추기고 있다. '2015년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2014년 청소년(9~24세)의 48.6퍼센트가 대학 이상 교육의 주목적이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능력과 소질개발'은 36퍼센트, '인격이나 교양을 쌓는 것'은 1.8퍼센트에 그쳤다.

 

p43.

 

 90년대생들은 자신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특정 이상을 실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현 시대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p53.

 

 국내에서는 현재까지도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을 하나로 묶어서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한민국의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존 세대에 비해서 출생률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기존 세대에 비해서 출생률이 떨어졌다는 것은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비교해 굉장히 큰 차이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그 숫자를 바탕으로 강력한 소비층으로 성장한 것에 반해 한국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세대가 이전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교체될 수 있을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바로 합계 출산율이다. 세대가 교체되는 데에 필요한 대체출산율은 선진국의 경우 2.1명이다. 하지만 미국이 2000년대 후반까지 2.05명 수준을 유지한 것에 반해, 한국은 1983년 2.06명을 나타낸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0명을 넘어선 적이 없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출산 제한 정책 때문이다. 한국은 6.25전쟁 전후인 1955년 합계 출산율이 6.33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1970년 합계 출산율이 4.53명을 기록하는 등 지속적으로 한 가정에서 평균 4명 이상의 아이를 낳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강력한 출산 억제 정책을 폈다. 정책의 캐치프레이즈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이마저도 다시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으로 바뀌었다. 1981년에는 인구증가억제 종합시책이 체택되었고, 1985년도에도 자녀 수에 따른 주민세, 의료보험료 등이 차등으로 부과됐다. 이런 정부 정책의 결과였을까? 지금은 현실은 OECD국가중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정부는 출산장려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판국이다. 1970년 이후 한국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84년 최초로 합계 출산율이 2명 이하(1.74명)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1980년대생들은 둘 이상의 형제자매를 가진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생들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강력한 소비층이 될 밀레니얼 세대의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p67.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반세기 전, 청년이 미래를 선도하는 사회를 전망했다. 기성세대가 청년에게 배워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하리라는 것이었다. 증거는 당시 미국의 경험이었다. 미국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세대별로 상이한 적응력을 보였다.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하여 이주해온 기성세대(이주 1세대)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컸지만, 미국에서 성장한 자녀(이주 2세대)들은 부모보다 더 빨리 적응했다. 이런 사실에 착안하여 미드는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보다 그로부터 자유로운 청년이 더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따라서 젊은 세대에게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할 때가 올 것이라 전망하였다. 살아본 적 없는 미래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이주민'인 셈이다.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한겨례> 인터뷰에서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라는 촌철살인으로 화제가 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오늘날이 '먼저 안 게 오류가 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농경 사회에서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는 겁니다"라며,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입니다. 먼저 안 건 전부 오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되죠"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과거 경험이 이젠 판단의 기초 혹은 가르침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p95.

 하지만 미래에도 책이 디지털 미디어 혁명에서 비켜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출판사와 유통업자들도 디지털 생산과 유통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다른 미디어 회사들이 그랬던 것만큼이나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득이란 잉크와 종이를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인쇄 비용이 들거나 트럭에 무거운 책들을 실어 보낼 필요도 없으며, 재고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은 곧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전자책이 인쇄된 책의 절반 가격에 판매되는 상황이 드문 일은 아닌데, 이는 일정 부분 전자책 리더기 생산 업체들에 주어지는 보조금 때문이기도 하다. 이 엄청난 할인 혜택은 사람들이 종이에서 픽셀로 옮겨 가도록 하는 강력한 유인책으로 작용했다.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소수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사적인 표준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노스웨스턴대학교 교수 그룹은 2005년 <Annual Review of Sociology>에서 우리의 독서 습관에 있어 최근의 변화들은 '대중적인 독서의 시대'가 우리 지적 역사에 있어 짦은 '예외'였음을 암시한다고 했다. 대중적인 독서는 예전의 사회적 기반, 즉 독서 계층이라 부를 수 있는 소수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2017년 국회에서 발표한 <독서와 시민의 품격>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사람의 뇌는 본래 독서에 적합하게 진화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독서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독서를 사람들이 계속하는 이유는 독서가 가져다주는 이득 때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마존의 최고 경영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킨들을 소개할 당시 스스로를 찬향하는 듯이 말했다. "책과 같이 매우 진화한 물건을 택해 개선하는 것은 참으로 진취적인 일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읽는 방식까지 바꿀 것이다." 이는 거의 확실하다. 사람들이 읽고 쓰는 방식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바뀌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글이 인쇄된 종이에서 빠져나와 기술의 생태계 속에 정착됨에 따라 계속될 것이다.

 

p107.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슬로가 말년에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바꿨다는 사실을 모른다. 욕구단계설에서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장 꼭대기에 올려놓았던 매슬로는 말년에 인생 최고 경험을 '자기초월', 즉 자아보다 더 높은 목적을 위한 삶에서 찾았으며, 본인이 종전에 최고 수준의 욕구로 꼽았던 자아실현이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이야기했다.

 

p154.

 기존 세대에게 신입 사원들은 자기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이고, 새로운 세대에게 기존 세대들은 이미 회사에 믿음을 상실했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충성하는 꼰대들로만 보일 뿐이다. 사실 이렇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관련한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90년대생들만의 일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갈등은 훨씬 이전부터 일어났다. 1965년 이후 출생한 X세대는 1990년대부터 회사에 진출하면서, 이전의 베이비붐 세대와 갈등을 보였다. 이들은 직장에서의 성공과 돈버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던 젊은(Young) 도시의(Urban) 전문직(Professional) 즉 여피 Yuppies과는 다르게 젊고(young), 개인주의적이며(Individualistic), 자유분방하고(Free-minded),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수도 적은(Few), 즉 이피족 Yiffie으로 불렸다.

 이들은 일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결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회사에 충성하려 하지 않아, 회사에 대한 충성을 높게 사는 기존 세대나 관리자들이 이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기업들은 이때부터 기존의 전통적인 HR정책에 변화를 두고 새로운 세대에 맞는 인재 관리 방법을 재정립하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생들이 기업에 유입됨에 따라, 야근과 주말 근무를 요구하는 기존 베이비붐 세대들과 새로운 세대와의 갈등이 일어나곤 했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아이디어는 많지만 애사심과 팀워크가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성과급 제도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신세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원대한 기업 철학을 내세움으로써 이들의 관심을 최사로 돌리는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으니, 결국 회사에 충성을 하면 그 대가가 승진과 몸값 상승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을 가정했다는 것이었다.

 90년대생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공식을 배격한다. 새로운 세대는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는 인터넷상의 '직장 계명'에 동의하고, 이를 넘어서 충성의 대상이 '회사'여야 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한다. 찰스 핸디는 <코끼리와 벼룩>에서 오늘날의 충성심이란 것은 "첫째가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것, 둘째가 자기 팀과 프로젝트에 대한 것, 마지막이 회사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p157.

  믈론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던 가난한 나라를 지금과 같이 일으킨 건 성실한 노동자의 헌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회사가 열심히 일한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1997년 IMF 이후로 열심히 일해온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내팽겨쳐졌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그러니 90년대생들에게 근명, 성실을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p169.

 2012년에 회사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배모 씨(1990년생)는 2012년부터 2년간 본인에게 주어진 모든 휴가를 빠지지 않고 모조리 사용했다. 그에게 중요한 가치는 연차 수당과 같은 돈이 아니라 인생의 여유였다.

 

 "본인에게 주어진 휴가를 다 쓰지 않고 휴가를 다녀오지 않은 것이 마치 더 일을 열심히 한 듯이 으스대는 선배들을 볼 때면 얼간이같이 느껴져요. 내 휴가를 내가 사용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얼마 전에 팀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휴가가 너무 잦은 거 아닌가?'라고 하는데 기분이 안 좋았죠. 지적하려면 업무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페이스북에 '젊은 사원의 휴가 사유'라는 이름의 짤이 떠돌았다. 사원이 적은 휴가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다음 날이 쉬는 날이어서." 이처럼 이들은 본인에게 주어진 휴가 기간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용할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만약 황금연휴가 아닐지라도, 징검다리 휴일이 있다면 그들은 휴가를 붙여서 자체적으로 황금연휴를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에 맞춰서 최근 기업들은 징검다리 연휴가 있는 주는 조직 전체 사원에게 연차나 월차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p176.

 조직학의 대가 아미타이 에치오니 Amitai Etzioni가 지적했듯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결정을 방어적으로 회피하거나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인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책임 회피를 위해 꼭 필요한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안을 검토하는 하급자는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를 거듭하며 불확실성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필요 이상의 복잡한 결재 단계에서 시간을 끌기도 한다. 이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급자도 마찬가지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보고서의 사소한 오류나 정보 부족을 탓하며 재작업을 지시해 시간을 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라는 격언이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의사결정은 없다'라는 격언을 압도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쉬는 것은 아니다. 모두 정보를 수집하며 바쁘게 뛰고 있다. 보고서 버전은 끝없이 올라간다. 그렇게 돌다리를 두드리던 순간 경쟁사는 이미 그 돌다리를 건너 신제품을 내놓는다. 남은 것은 완벽한, 그러나 이미 쓸모 없는 보고서와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씁쓸한 자위뿐이다.

 

 p180.

 지금은 종용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2013년 '무도를 부탁해' 에피소드에서 개그맨 박명수는 이렇게 말한다.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이는 기성세대, 즉 꼰대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꿈은 크게 꿔야 된다'는 말에 대한 반발과 같았다. 90년대생들은 이제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꼭 꿈이 있어야 되나?'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로 유명한 웹툰 작가 주호민 씨는 본인의 2008년작 <무한동력>의 명대사로 꼽혔던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가 이제는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꿈이 꼭 없어도 되는데 너무 꿈을 강요한 건 아니었을까?"라고 말이다. 새로운 세대는 꿈을 좇으라는 기성세대의 충고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다.

 

p215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Walter Mischel은 마시멜로 실험으로 유명하다. 취학 전 어린이들을 상대로 작은 책상에 마시멜로 두 개와 종 하나를 올려놓고 인내심과 순간의 욕구, 성공과의 관계를 알아본 실험 말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실시된 2차 연구에서, 마시멜로의 유혹을 이겨낸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몸매가 날씬하고 사회 적응을 잘하게 됐을 뿐 아니라, SAT에서 210점이나 더 많은 점수를 받았다.

 이렇다 보니 마시멜로 이야기는 회사 생활에서 가장 흔한 조언인 '참고 견디라'의 가장 대표적인 근거로 쓰인다. 그런데 정말 마시멜로 이야기가 '참을성이 강하면 성공한다'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일까? 마시멜로 이야기가 잘 알려진 건 어떠졈 사람들이 재밌어하면서도 가장 궁금해하는 문제, 즉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단순한 공식으로 환원했기 때문일 수 있따. 여기서 단순한 공식이란 '성격은 타고난 것'이며 '인내는 미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013년 로체스터대학교의 홀리 팔메리Holly Palmeri와 리처든 애슬린 Richard Aslin 은 잡지 <코그니션Cognition>에 <합리적 간식 먹기Rational Snacking>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에 의하면 "첫 번째 마시멜로를 빨리 먹은 아이들 중 일부는 참을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돌아오면 하나를 더 주겠다'는 연구원의 말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며,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일수록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좀 더 오래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많은 연구자가 미셸의 실험 결과를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람들은 복잡한 이야기를 읽으려 하지 않고, 동기부여 강사들이 하는 단순한 이야기를 듣는다. 많은 동기부여 강사들은 마시멜로 실험을 들먹이며 여전히 '네 살짜리도 인생의 성공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참을성이다'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하지만 오랫동안 참은 대가로 두 번째 마시멜로를 먹은 어린이들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들이 선천적으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자질을 갖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로체스터대학교의 연구진이 말한 바와 같이 어떤 어린이는 단지 연구자의 말을 믿지 못해서 오래 기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는 그날따라 배가 고팠을 수도 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단순한 참을성이 인생의 성공 비결일 수는 없다. 세상의 수천 가지 요인들이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p220

 

 80년대와 그 이전 출생 세대들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설정하는, 소위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 그러나 90년대생들은 지금의 인생이 어떤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삶의 유희를 추구한다. 이와 함께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오로지 '흥미'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흥미가 중요한 90년대생들에게 회사는 어떠한 의미일까?

 

 "회사에서도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잉기를 회식 시간에 팀원들에게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대리님이 '즐거움은 돈을 내고 찾아. 회사는 엄연히 돈을 받고 일을 하러 오는 곳잉. 그런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게 말이 되니?'라고 답하더군요. 회사에서 일을 안 하고 높고 싶다는 뜻이 아니에요. 단지 어차피 할 일이면, 즐겁게 하고 싶다는 말이죠. '열심히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잘도 하면서 왜 회사를 즐겁게 만들려는 생각은 안 하는 거죠?"

 

 얼마 전까지 회시에서 즐겁게 지내고 싶다는 말은 임금을 받고 근무하는 회사원의 입장에서 일종의 반동과 같은 것이었다. 즐거움은 돈을 내고 사는 것이고, 이와 반대로 돈을 받은 곳은 절대 즐거움의 장소가 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물론 90년대생들에게도 회사란 노동을 하러 오는 곳이다. 다만 그들은 어디에서라도 '유희'를 즐기고 싶을 뿐이다. 유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회사는 일터로서의 매력을 잃게 된다.

 

p236

 

 글로벌 전자상거래가 점차 발달하면서 2000년대 초에 다나와, 에누리 같은 최저가 비교 사이트들이 등장했다. 가격 비교의 맹점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최저가 사이트가 소비자의 생산자 간 정보의 비대칭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당시 소비자 모두가 최저가로 합리적인 구매를 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기업들은 온라인에서조차 소비자의 가격 비교를 방해하는 장치를 마련했기 대문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사이트에 일부러 제품을 혼란스럽게 설명하고,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버전의 모델을 등록하여 가격 비교를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가 하면, 저가형 미끼 상품을 검색 상위에 올리거나 광고 창에 게시하여 소비자를 자기 웹 사이트로 유인한 다음 결국 더 비싼 제품을 사게 만들었다.

 

p241

 

 보드리야르는 1970년에 발간한 <소비의 사회 La societe de consommation>를 통해 현대 소비사회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산업 자본주의를 지나며 생산수단과 생산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룬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과잉생산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갖게 된다. 끊임없이 소비하지 않으면 생산은 멈추게 되고 자본주의 역시 멈추게 될 운명을 맞는 것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소비'가 필요하게 된 소비 자본주의는 '고객의 니즈를 창출해야 한다'는 구호를 만들어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없는 소비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마케터는 소비를 꿈꾸게 하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되었다.

 

p246

 

 하지만 이러한 고객만족도가 곧바로 고객충성도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75,0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매튜 딕슨Matthew Dixon, 캐런 프리먼Karen Freeman, 니컬러스 토먼Nicholas Toman의 2010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객만족과 브랜드 로열티는 상관관계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기 위한 각종 서비스는 충성도 제고에 기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과할 경우 오히려 고객의 기대수준을 높여 충성도를 약화할 수 있다. 나아가 고객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제품의 질이나 가치와 같은 핵심 편익이지 부가적인 서비스가 아니며, 고객들이 지닌 핵심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줄 때 고객충성도가 강화된다고 하였다.

 

 연구자들은 2010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 "고객을 기쁘게 하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라 Stop trying to delight your customers"에서 고객충성도 제고를 위한 새로운 측정 지표로 '고객노력지수Customer Effort Score, CES'를 제안했다. 기존 기업들이 관리하고 있는 '고객만족도 지표Customer Satisfaction, CSAT'는 고객의 재구매 및 지출 증가에 대한 예측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2000년대 중반 제너럴일렉트릭 등의 기업들이 체택하면서 인기를 끌고 기존의 고객만족도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순추천지수Net Promote Score, NPS'는 보통 수준의 예측력을 보여주었다. 

 CES는 '당신이 처한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었느냐?'라는 질문의 답을 5점 척도로 측정해서 관리한다. '거의 노력이 들지 않았다'면 1점을,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면 5점을 체크한다. 점수가 낮으면 낮을수록 고객이 브랜드와 관련하여 불필요하게 소모하는 노력이 적은 것이다. 이는 고객충성도 제고에 이바지하게 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력을 적게 들인 사람들의 94퍼센트가 재구매 의향을 드러냈다고 하니, 고객 충성도에 대한 예측력이 꽤 높은 지표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와 같은 개념이 반드시 90년대생에게만 해당하는 조사 결과는 아니지만, 이와 같은 번거로움의 제거와 최소화는 누구보다 90년대생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요소다.

 

p248

 

 HMR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는 반대로, 시장이 겹치게 된 패스트푸드와 패밀리 레스토랑은 점차 HMR 제품과의 경계가 사라짐과 동시에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80년대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전성시대를 열었던 패밀리 레스토랑의 경우, 2000년대 중반 이후 경기침체 장기화로 인한 청년 실업 증가와 혼인율, 출산율 저하 등으로 인구구조가 급속히 변화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생들의 소비 패턴 양극화는 몰락의 결정타가 되었다. 연인이나 가족과의 기념일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즐기던 80년대생들과 달리, 90년대생들은 평소에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특별한 날에는 호텔처럼 더 화려하고 고습스러운 곳을 찾게 된 것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90년대생들에게 더 이상 특별한 장소도 아니고,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도 아니게 된 것이다.

 

p300

 

 그런데 이렇게 배달앱 시장이 성장하게 된 것은 단순히 간편성 때문만은 아니다. 1996생 김모 씨는 이렇게 말했다.

 

 "배달앱은 분명 간편성도 있긴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배달앱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달앱의 가장 큰 특징은 후기를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화로 주문을 하면 서비스가 엉망인 경우가 많았죠. 쿠폰을 빼먹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이제는 꼭 후기를 남깁니다. 소비자인 우리의 피드백이 솔직히 반영된다는 것이 앱을 통한 주문의 이유입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바로 '인형뽑기방'이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인형뽑기방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2017년에는 전국에 2만 개가 넘을 정도로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인형뽑기방이 창업 아이템으로 인기를 끈 데에는 적은 비용으로도 개업이 가능하다는 게 한몫을 했다. 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 데다 대당 200~300만 원대인 경품 기계 몇 대면 손쉽게 창업이 가능했다. 1,000~2,000원이면 연령 제한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즐겨 찾으며 전국적인 열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불야성을 이루던 인형뽑기방은 이제 파리만 날리는 곳이 많아졌다. 빠른 성장세만큼 폐업도 빨라졌다. 이유는 바로 인형뽑기방에서 '확률을 조작'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든 인형뽑기방이 확률을 조작하지는 않았지만 인기는 급격히 식어버렸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2016년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144개 뽑기방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101개소(70퍼센트)가 관련 규정 위반 업소로 적발됐다. 이 중 12개소(8.4퍼센트)가 기계 개,변조를 통해 뽑기 확률을 조작했다. 인형뽑기방의 주요 타깃 고객이었던 90년대생들은 이러한 확률 조작 사실을 알고 그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1992년생 김모 씨는 "인형뽑기방이 기계로 장난치는 것을 안 이후에 절대 가지 않습니다. 더 이상 그런 호구가 되기는 싫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90년대생들은 직원으로 일하든 소비자로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뢰'를 꼽곤 한다. 배달앱의 후기처럼 신뢰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이 있으면 하나의 큰 성공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신뢰를 잃어버리면 그 많던 인기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그들은 광고를 차단하기 바쁘다.

스타벅스는 국내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커피 프랜차이즈다. 그렇다면 스타벅스의 매출은 어느 정도일까? 스타벅스의 2017년 매출은 1조 2,634억 원이다. 국내 2위에서 6위까지의 5개 회사(투썸플레이스, 이디야커피, 커피빈, 엔제리너스, 할리스커피)의 매출을 모두 합해도 스타벅스 한 곳에 턱없이 못 미친다. 2~6위 다섯 회사 매출은 모두 합해도 8,200억 원에 불과했다.

 이렇게 국내 1위의 커피전문점으로 성장했지만 스타벅스의 광고를 본 사람은 없다.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은 마케팅 예산의 대부분을 제품 광고와 프로모션에 쓴다. 지금까지 마케팅의 목표인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를 높이거나 시장 점유율과 매출을 늘리는 데에 실제로 광고와 프로모션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90년대생 소비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를 차단하기 바쁘다. 어쩌다 노출된 광고 또한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스타벅스의 인사팀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담당자는 스타벅스의 성공을 광고와 프로모션이 아닌 브랜딩에 대한 투자와 내부 직원을 첫 번째 고객으로 두고 아끼는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고를 하지 않는 대신 브랜딩과 조직 관리에 힘쓴다는 것이다.

 

 

 

 

차범근 에세이집 2번째.  1권인 슈팅 메시지가 분데스리가 시절의 선수생활 시절의 에피소드 위주였다면, 이번 2권인 그라운드 산책은 귀국 후와 귀국 후 프로팀 감독과 대표팀 감독 시절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글은 투박하지만, 오랜 축구 생활의 경험과 그 비하인드를 통해 좀 더 축구라는 세계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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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스위스에는 생 모리츠와 함께 세계적인 고급 휴양지로 꼽히는 제어마트(Zermatt)라는 스키 휴양지가 있다.

 1년 내내 스키를 탈 수 있는 곳이고 마테 호른을 볼 수 있어서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몰려오는 관광객도 꽤 많은 곳인데 겨울이면 스키 손님으로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다.

 저녁이면 기차역 구내며 골목 등에 벗어서 팽개쳐 놓은 듯한 스키와 부츠 등으로 어지러운데 아무도 집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그곳 경찰관에게 괜찮으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부터는 우리 식구들도 어느 한 귀퉁이에다가 스키를 벗어놓고 그 다음날 찾아 신을 만큼 곧 익숙해졌는데, 의심하지 않고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었고 바로 그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게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관계를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그것은 물질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말, 생각, 그리고 행동에 이르기까지 내가 상대방을 믿을 수 있을 때 편안한 관계가 유지되고 스트레스도 훨씬 덜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서로가 좀더 믿을 수 있어야 한다.

 

 

 p72. 콜 독일 수상에 관한 추억

 

 1990년 봄.

 동서독이 아직 완전한 통일은 되지 않고 화해의 분위기가 한창 뜨거울 때 드레스덴 시에서는 유적지 보수 기금 마련 자선 축구 대회가 있었다.

 나는 그 때 세계 선발로 그 대회에 참가했었는데 드레스덴의 운동장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성하고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본부석의 자리 역시 널빤지였는데 초대 손님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놓으면 그것이 곧 지정석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앉았던 자리 바로 앞에는 'Dr. Kohl'이라고 이름표가 붙어 있었는데 경기가 시작하기 조금 전에 남녀 수행원 한 명씩과 함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널빤지에 안증ㄴ 사람은 바로 거인처럼 몸집이 큰 독일 수상 콜이었다.

 그 후 몇 차례 가까이에서 뵐 기회가 있었지만 그 때는 처음이라서 사실 흥분이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널빤지에 앉은 수상이 이상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우리 식으로 생각한다면 본부석 전체도 고칠 판이지만 다만 널빤지 몇 줄을 걷어내고 안락한 의자 몇 개쯤 갖도 놓는 게 뭐 그리 어려웠을까. 하프타임이 되었을 때 동독의 축구 팬들은 콜 수상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서 몰려왔고 그것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짓말 같은 모습이었다.

 윗저고리에서 읷훅하게 사인펜을 꺼내서 옆에 앉은 드레스덴 시장과 함께 담소를 하면서 사인을 해주던 모습이 아줌마 수행원이 조심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응원을 하던 모습과 함께 지금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러운 일로 가끔씩 떠오르곤 한다

 언젠가 수상 관저에 초대받은 꼬마 중 하나가 '콜 아저씨'라고 부르는 바람에 그 다음날 신문과 독자들을 상당히 즐겁게 해주었는데 아마도 앞에서 얘기한 콜 수상의 그런 분위기가 그 꼬마에게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느껴지게 한 모양이었다.

 그 뿐 아니다. 지금은 치매로 독일 국민들을 가슴아프게 하는 전 수상 슈미트 씨의 경우에는 의전 상의 시효가 지나 부인이 1등석을 탈 수 없게 되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남편과 떨어져 비좁은 자리에 앉아 여행하는 당당함.

 바로 그런 모습이 초라해 보이기는커녕 지금도 수십 명씩을 끌고 골프장에 행사하는 우리네 힘깨나 쓰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하고 근사해 보이는 것은 내가 외국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p73. 축구 열기에 부는 이혼 바람

 

 독일 대사관의 야닉시 부부와 식사를 하는데 로타 마테우스가 두 번째 부인과 또다시 헤어졌다는 얘기를 했다.

 남의 얘기니까 서로 부담 없이 낄낄거리며 화제에 올리기는 하지만 사실 급작스럽게 불어닥친 독일 스타플레이어들의 이혼 바람은 우리들 세대에서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1990년 월드컵 우승 멤버 중 베켄바워 감독을 위시해서 로타 마테우스, 뮐러, 리트바르스키 같은 꽤 많은 인기 선수들이 이혼을 했다고 한다. '1990년 월드컵 챔피언 팀은 이혼도 챔피언이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씩 독일을 방문하는 나에게도 발생한다. 운동장에서 마주치면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게 보통인데도 이제는 "부인과 얘들은 잘 있느냐?"는 인사를 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1980년대 내가 선수 생활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분데스리가 선수들의 평균 급여가 3배쯤 늘었다.

 거기다 90년 월드컵 우승을 전후해서 이탈리아로 팀을 옮겨간 국가 대표급 선수들은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수입을 올렸다. 물론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때에도 휠첸바인이나 그라보브스키 같은 노장 선수들은 우리 젊은 선수들이 자신들의 시대에 비해 너무 많이 받는다고 노골적으로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 5년 동안 불어닥친 연봉의 급등 현상은 가족 관계에까지 이상 현상을 나타낼 만큼 변화가 심했다.

 우리는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생활의 여유가 가정을 파괴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 젊은 선수들, 앞으로 우리 축구 시장도 분명히 더 좋아지리라고 생각할 때 이런 선례를 알고 자신을 추스르는 것도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p84. 삼풍 참사와 코리아 컵 교훈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에 어느 건설업자가 다리공사를 1억 원에 입찰 받았다고 하자. 좀더 튼튼한 다리를 놓고 싶은 욕심(?)에 한푼 흘리지 않고 받은 돈을 고스란히 다리 건설에만 사용했다고 할 때 오늘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과연 그 양심적인 업자에게 다시 또 다리를 건설할 기회가 돌아갈까 하는 것이었다.

 다리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원칙이, 양심이 무시되고 오히려 배척 당하다가 막상 다리가 무너지고 말자 왜 원칙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따진다. 삼풍백화점도 마찬가지다. 자재난에 허덕이던 시점에서 만약에 누군가가 온전한 골재를 사용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버티고 나섰다면 그 융통성 없는 잘난(?) 기술자는 분명히 무시당하거나 멀찌감치 떨려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백화점이 무너지고 나자 손가락처럼 가는 철근을 억지로 지탱하던 흙 콘크리트를 부서뜨리면서 사람들은 그들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분노하고 나무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꼭 지켜야만 하는 이 원칙은 사고가 난 후에 책임을 물을 때만 필요한 것인지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말하자면 우리의 현실은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기준이 원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융통성을 사랑하고 원칙을 배척하는 우리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 비도덕적이고 무원칙해도 고쳐져야 할 부분들이 잘한 일로 평가되는 우리 사회.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이 가장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도덕과 원칙이 이 사회를 지배하지 않는다면 '최고급 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한국'이라는 세계인의 비웃음 속에서 우리의 세계화는 정말 요원할 것이다.

==> 2019년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의 기조가 결과 지향에서 과정 지향으로 변해간다는 징조들이 사회 곳곳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정 지향만을 통해 원리와 원칙에 함몰되는 것도 효율이라는 측면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한다. 7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30여년 간 초압축 성장의 과정 상에서 결과가 옳으면 모든 것이 옳다는 목적 지향의 사회기조는 눈부신 경제발전이라는 큰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큰 성과의 뒤안길에서는 소수의 승자를 위해 고통받는 다수의 대중의 알려지지 않은 희생이 있었다. 1998년 IMF와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발생한 경제하락의 과정에서는 그간 희생해왔던 다수의 희생이 강요되며, 혜택받던 소수는 이 희생을 피해나가게 되었다. 대중은 경제위기가 표면화되면서, 이러한 비대칭의 경제혜택의 부조리를 목도하게 되었다. 이는 소수의 혜택받은 이들의 모럴 해저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이는 그간 경시되었던 과정의 윤리와 도덕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결과보다는 과정의 투명성에 대중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난 촛불혁명과, 올해 조국 사태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교육,경제에 대한 양극화에 국민 전체가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과정의 투명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데 대한 대중의 분노가 그 모티브였다. 또한 조국 개인과 그 가족에 대한 검찰의 과도한 월권은 과도한 국가 권력을 민주주의의 원칙에 맞게 제한해야 한다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p97. 비자금 파문, 공짜 밝히지 말자

 

 처음 서독에 갔을 때 나는 프로 선수들의 쩨쩨함에 놀란 적이 있다. 원정 경기를 멀리 가게 되면 보통 새벽 두세 시경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때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수고비를 거둬주는 돈이 1인당 3~5마르크(1500~2500원)였던 것이다.

 이 액수는 그곳에서 콜라 한잔 값에 해당되는데 이것도 이긴 날이나 거두지 늘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서 나는 몇 푼 안돼 보이는 그 돈 역시 결코 작은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누구를 막론하고 월급 외에는 단 한푼도 만져볼 수 없는 그곳 사회에서 비록 작은 돈이지만 스물 댓 명이 거두는 그 돈은 그나마 프로 선수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만져볼 수 있는 꽤 짭짤한 액수였다.

 여기에 비한다면 우리는 그 액수나 범위가 너무 크고 넓다. 어디를 가도 봉투는 가장 보편적인 인사 방법이다. 지금 노태우 전대통령의 4천억, 5천억 비자금 때문에 기를 박박쓰는 사람들도 촌지의 액수가 작으면 쩨쩨하다. 많으면 역시 통이 크고 멋있다고 상대방을 평가해 본적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의 월급이나 수입과 비례해서 봉투를 의심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치자금, 정치자금, 비자금, 품위유지비... 이런 돈이 이 땅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걸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처럼 철저하게 원칙과 도덕을 따지는 사람도 소위 품위 유지비라고 할 수 있는 비자금이 꼭 필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나 역시 따로 주머니를 차고 있다. 물론 자금의 출처가 정확한 것이기는 하지만 집안의 생활과 내가 써야하는 돈의 비율이 비등해지는 현실에서 매번 마누라에게 달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향에 찾아가 동네사람들이 모여 공을 차는데 한번 들러도 맨손(?)으로는 곤란하고 그 액수 역시 만만치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문화이고 관습이다. 나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비자금으로 야기된 사태를 지켜보면서 좀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인심과 환심을 사야 하는 정치인들로서는 비자금의 필요성과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받는 쪽이 먼저 변해야 이 잘못된 문화는 없어질 수 있고 그 위에 도덕정치가 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p111. 악습 교정과 선수 기 살리기

 

 지난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 한국 최고의 골게터인 최용수가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온 국민들이 바짝 긴장했던 적이 있다.

 일반 팬들의 입장에서는 워낙 중요한 선수가 빠지게 되니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고 축구를 잘 아는 전문가나 열성팬들의 경우는 중요한 고비에서 팀을 어렵게 만드니 화가 났던 것 같다.

 그날 밤도 방송을 하러 MBC에 갔더니 스포츠 보도국의 정국장님이 큼지막하게 써놓고 퇴근한 대본에는 도저히 방송으로 내보낼 수 없는 흥분한 문구로 꽉 차 있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최용수를 만나면 너무 순진하고 귀여워서 도무지 과격한 행동이 이해가 안 갈 때가 있다. 본인의 변명으로는 투지가 넘치다보니 그게 잘 안된다고 하는데 나는 최용수를 볼 때면 또 생각나는 선수가 있다.

 현대 송주석 선수인데 그는 스피드와 기량으로 볼 때 한국 무대에서는 최고의 제목인데도 불구하고 기량만큼 크지 못하는 선수였다.

 내가 그만 두고 고재욱 감독이 팀을 맡으면서 주석이의 플레이가 좋아지기는 했는데 마침내 지난 시즌 끝날 무렵에 상대 팀의 라커룸으로 쳐들어가서까지 한바탕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주석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여러 명의 상대 선수가 다리가 부러지고 부상을 당해서 나는 아주 강경하게 나와 함께 일하는 동안 주석이는 어딘지 모르게 위축돼 있는 것 같았다.

=> 이런 애매한 문장을 보면 스포츠 신문에 연재할 때 편집자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이런 문맥일 것 같다. 

 주석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그의 거친 플레이로 여러 명의 상대 선수가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부상을 자주 당했다. 나는 이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강경하게 그를 꾸짖었다. 그때문인지 나와 함께 일하는 동안 주석이는 심적으로 위축돼 있던 것 같다.

 내가 주석이의 이런 부분 때문에 고민을 하자 아내는 "만희 씨(현 전북코치) 보고 욕을 빼고 말을 하라고 하니까 당신 앞에서는 말이 잘 안되고 더듬거리잖아요. 똑같은 거지요 뭐!" 하면서 참견을 했는데 그 옆에 있던 최만희 코치의 부인이 "고것이 정답이네요" 하면서 즉각 거들고 나서는 것이었다.

 몸에 익힌 습관. 이것은 나이가 들어서 고치기는 힘든 모양이다. 바로 이렇게 힘든 남들의 습관을 꼭 모범 답안으로 고쳐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습관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고약하기는 똑깥을 것이다.

 

p113. 고교 감독은 로비스트(?)

 

 KBS-TV에서 우리 나라 운동선수들의 문제점들을 취재 보도한 적이 있다. 이날 얘기들은 진학에 얽힌 비리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비교적 완곡한 수준에서 취급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학생의 증언처럼 "부모님들이 나를 대학 보내는 데까지 그랜저 수십 대 값이 들었다"고 하는 식의 자극적인 증언도 있었지만 왜곡돼 있는 현실과 비교해 본다면 대체적으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 중 가장 힘든 건 고등학교 감독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지도자라기 보다는 차라리 로비스트라고 해야 옳을 만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어떻게 해서든 대학 감독들과 끈을 맺어서 한 명이라도 더 대학에 보내는 게 중요한 임무가 돼버렸다.

 가장 많이 배워야 하는 연령의 아이들을 지도해야 할 감도들의 임무를 생각한다면 한국 축구로서는 이만저만 손실이 아니다. 그러나 대학 진학이 지상 목표가 돼버린 현실에서 부모들 역시도 당연히 이 작업에 적극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보면 진학 과정이 비리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이미 완벽하게 갖추어 졌다고 봐야할 것이다.

 지금 고등학교 지도자들의 봉급 수준은 몇몇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형편없는 평균이하의 수준이다. 1백만 원이 채 안되는 감독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들에게 자가용에 핸드폰은 기본일 뿐더러 거의 매일 이어지는 사람 만나기(접대) 비용 역시 이들의 수준을 이미 벗어난 지 오래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학부모들의 몫이고 어찌 보면 아이를 대학으로 보내기 위한 지원금인지도 모른다. 물론 더러는 이런 현실을 이용해 아주 악질의 지도자가 없지는 않지만 바로 이런 행위를 힘들고 괴로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안쓰러운 감독들도 적지 않다.

 내 밑에서 공을 차자 지도자로 나선 선수들도 꽤 있는데 바로 이런 짓(?)이 적성에 맞아 신바람내는 경우도 있는 하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지도자의 부인은 "우리 아기 아빠는 고스톱을 못하고 술을 못해서 걱정"이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늘어놓기도 한다.

 언젠가 운동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한다는 부담감으로 자살을 했던 아버지도 있었다. 외국에서 볼을 차다가 귀국한 선수들의 부모는 한 달에 수십만 원씩 들어가는 비용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 나라처럼 많은 돈이 들어간다면 축구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는 축구를 시킬 수 있는 부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한푼의 돈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지금 우리 나라의 어느 부문에 손을 대도 썩은 고름이 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 검찰의 탄식. 그러나 그들에게 벌을 주기 이전에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도덕불감증'을 강요당하며 괴로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깨끗한 사회로의 변화가 더 급하고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p122.

 여름, 겨울 휴가를 마친 뒤 한 차례씩은 반드시 열흘 정도의 합숙을 아주 조용한 곳으로 떠났었다. 이 기간은 그야말로 먹고 훈련하고 곯아떨어지는, 더 이상의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내야하는 힘든 기간이지만 이 훈련을 마치고 나면 다시 경기를 할 수 있는 몸이 만들어지는 게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했었다. 일단 몸이 만들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가벼운 반복 훈련만으로도 기능이 유지되는데 그게 바로 매일 운동을 조금씩이라도 하는 사람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이런 훈련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체력이 불충분하면 근육 사이 이외에 또 하나의 체내 에어지 공급처인 뇌와 간에 축적된 에너지를 우리 몸이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뇌는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지시할 수 없고 간은 구토를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서 기술이나 전술훈련은 아무 의미가 없고 잦은 패스미스 역시도 정신 집중 이외에 바로 이런 부분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p134. 문화 따라 코치 역할도 다르다.

 

 이랜드의 이영무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의 코치직을 사퇴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비쇼베츠에게도 비교적 호감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영무 감독과도 각별한 사이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가 돌아가는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별로 편하지 않았다.

 더구나 문제의 근원이 어느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서 더욱 그랬다. 우리 나라에서는 감독이 자신의 의견보다는 모든 사람과 의견을 나누고 주위의 의견을 잘 받아들일 때 겸손한 감독,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서양에서의 감독은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고 그것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갈 때 훌륭한 지도력을 가진 감독으로 꼽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코치의 비중이 높고 그 역할 또한 유럽에 비해 중요한 편이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코치는 단순한 어시스턴트에 불과할 뿐 어떠한 권한이나 영향력도 갖지 못한다. 바로 여기에서 이영무 감독과 비쇼베츠의 문제가 시작되었다.

 감독은 바깥 정치(?)를 주로 하고 코치는 가르치는 일을 해왔던 지금까지의 역할에 익숙한 이영무 감독으로서는 감독이 휘슬을 직접 물고 지도하는 비쇼베츠 감독의 단순한 보조자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혼자서도 능히 올림픽 대표 팀을 끌고 갈 수 있는 이영무 감독의 능력 역시 유럽식 코치의 단순한 임무를 맡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비쇼베츠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역할 분담이다. 감독의 개성과 지도력, 그리고 자신만의 축구가 없이는 능력 있는 감독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유럽에서 모든 스태프는 감독을 돕기 위해서 존재할 뿐인데 그들의 의견을 꼭 들어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우리들의 감독 역할이 유럽 사람들 눈에는 매우 우유부단하고 책임감 없는, 무능한 지도자로 보일 뿐이다.

  "잘모르겠는데요."

 "한번 의논해 보지요."

 바로 이런 말들이 겸손으로 받아들여지는 동양과 무능으로 취급되는 서양의 차이가 이영무 감독의 올림픽 코치직 사퇴를 낳게 한 것이다.

 

 p138. 스포츠 세계화 - 폭력 추방부터

 

 우리는 지금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다.

 그 의미가 세계적인 수준과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각 분야의 질적 향상도 되겠지만 그 보다는 세계인과 섞여 사는데 무리가 없는 한국이 되는 게 더 먼저인성 싶다.

 예의범절, 도덕성, 정직성 그리고 순화된 인성도 세계인이 되는데는 큰 몫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TV로 보도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호소를 접하면서 일반적인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국민이 저토록 잔인한가?'하는 괴로운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

 보고 듣기가 민망할 정도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실제로 나는 우리 나라 국민들이 비교적 성격이 급하고 폭력과 가깝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특히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남북한이 번갈아 가며 보여 온 폭력과 비신사적인 행위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사건들을 별 무게 없이 취급하는 언론 역시도 이 부분에 놀라울 정도로 관대(?)한 편인 것 같다.

 83년 본선 진출권을 얻은 북한이 FIFA로부터 징계를 받음으로써 한국의 세계 4강 신화를 이룰 수 있었던 기회를 제공해준 당시 북한 팀의 경기장 난동 장면을 나는 독일에서 신문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대형 사진을 통해 보았었다. 그러나 귀국 후 보니 우리들 주변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그라운드의 폭력이 별 문제시되지 않고 있다.

 지난 겨울 일화의 이종화 선수가 월드컵 대표 팀의 전지 훈련에 합류했다가 연습 경기 중 비신사적인 행위를 했다고 해서 FIFA로부터 징계를 받고 국내 리그에도 참여하지 못한 적이 있다. 이것 역시도 우리들의 자체 징계가 아니고 FIFA의 징계였던 것이다.

 스포츠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갖는 것은 그 바탕이 '페어 플레이'로 정치에서 기대할 수 없는 친선과 교육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세계 무대에 태극기를 달고 나간 우리 선수들 중 어떤 이유에서라도 비신사적인 행위나 폭력을 사용했을 때는 귀국 후 아주 엄한 징계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 무대에서의 그런 모습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깍아 내리고 세계화와는 정반대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p146. 윤정환, 고정수와의 전쟁이 시작되다.

 

 윤정환, 고정수.

 지금도 이들 둘만 생각하면 어려운 숙제를 끌어안은 듯 답답함을 느낀다. 앞으로 반 년여 동안 이들 두 녀석을 길들이고 '차범근화'하기 위해 해야 할 기력 소모를 생각하면 올 겨울에는 보약 한 재 정도는 넉넉히 먹어 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이들 둘은 게으르고 꾀가 많은, 사이좋은 선후배 관계다. 그러나 고종수는 좀 나은 편이다. 야단도 맘껏 칠 수 있고 여차하면 볼기짝도 패줄 수 있는, 소위 성격상 다루기가 쉬운 유형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정환은 많이 다르다.

 말 수도 별로 없는 데다가 붙임성이 좋은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서로 간의 마음을 열 수 있는 통로가 썩 원활하지 못한 케이스다.

 선수들 중에는 여러 가지 부류가 있다. 우선 늘 열심이면서 자기 일을 틀림없이 해내는 완전한 프로는 성격의 색깔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런 선수들인데 대표팀 선수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하고 나 역시 이런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만들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러나 수 십 명의 선수 중 모두가 다 그럴 수는 없다. 고종수나 김병치처럼 꼭 튀는 선수가 있다. 그나마 이들은 맘껏 야단치고 요리할 수 있어서 목이 아프고 힘은 들지언정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선수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이 늘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는 부류다. 직장이고 어디고 반드시 있을 것이다. 힘든 훈련과 치열한 경쟁으로 주전, 비주전을 가리는 대표팀의 예민한 분위기 속에서 바로 이런 선수들은 감독을 엄청나게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팀 분위기를 망쳐 놓는다. 더구나 고참 급에 속하는 노장 선수가 그렇다면 그것은 대책 없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이제 윤정환, 고종수와의 전쟁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다. 지금 이들의 상태로는 내가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한국보다 더 높은 기량을 가진 팀들과의 경기 뿐인데 11로 전원이 자기 몫을 해줘도 기량 면에서 부족한 게 우리들의 현실인데, 자신의 몫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준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둘은 변신에 성공하면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면 수비가 우선적으로 안정되야 공격력이 살아난다는 축구관을 가진 나로서는 과감하게 도태시킬 수밖에 없다. 이들은 우선 세계적인 팀들의 미드필더들이 얼마나 많이 뛰는지를 TV나 경기 비디오 테이프로 계속 보아야 한다.

 그들의 기량이 자신들보다 훨씬 높음에도 불구, 더 나은 자신이 역할을 위해 얼마나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악착을 부리는 지를 진심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충분히 인식되고 공감할 수 있으면 그 다음은 훈련장에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인내와 노력으로 이것이 성공한다면 이건 틀림없이 한국 축구와 팬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인내하고 참는 것이라면 항상 자신이 있다. 그래서 이미 그들에게 도전장을 던져 놓았다. 성공 여부는 그들의 몫이다.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p151. 오버래핑을 차단하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던 때였다.

 81독일 선수권 대회의 결승전이 있던 날이었다. 전통적으로 맨투맨 수비를 쓰는 독일에서 최전방 공격수와 전담 마크맨의 1대1 싸움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할만큼 중요한 전술 부분이다. 이때 상대방의 간판 수비수인 브리겔은 올림픽 10종 경기 국가 대표 출신답게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선수였는데 거기다 그는 남아도는 힘과 스피드로 공격에 가담해 스스로 득점을 하는 아주 위협적인 존재였다.

 경기 전 부흐만 감독은 나에게 특별 지시를 내렸다. 90분 내내 절대 한 자리에만 머무르지 말아라. 공을 차지 않아도 좋으니 국가 대표 수비수인 브리겔을 몰고 전후좌우로 다니면서 브리겔의 공격력을 무력화시키라는 것이었다. 나는 쉬지 않고 움직였고 브리겔은 씩씩거리며 따라다녔다.

 결국 이 틈바구니에서 공격수 출신 풀 백인 노이어베르거가 선취 득점을 했고 우리는 2대 0으로 리드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반 종반 쯤 원래 움직이는 사람보다 따라다니는 게 더 힘든 법이이서 지쳐 있는 브리겔을 따돌리고 내가 점프 헤딩 슛으로 3대 0을 만드는 것까지 성공했다.

 이날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치고 달리며 공을 다루는 시간이 적은 내 경기에서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대만족이었다. 물론 브리겔의 체력 저하로 내가 득점까지 얻어내자 작전의 성공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서 더욱 통쾌했겠지만 바로 이런 경우 운동장 밖에서 별볼일 없는 선수가 감독에게는 아주 중요한 무기가 되어 주는 것이다.

 내가 대표팀을 맡고 노르웨이와 첫 경기를 치르던 날, 독일의 친구들은 노르웨이 풀 백의 오버래핑과 득점은 가공할만하다면서 거푸거푸 주의를 주었다. 덴마크 프로팀 소속으로 독일에 와서 유럽 선수권 대회를 치르는데 슈팅 그 자체가 대표 같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하석주에게 단단히 일렀다. 물론 당시 상황으로는 먹지 않는 게 무엇보다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공격에 가담하지 않아도 좋으니 상대방이 오버래핑하지 못하도록 미리 차단하고 절대로 슈팅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 석주는 완벽하게 해냈다. 다만 TV에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뿐이었다. 바로 이런 경우 감독에게는 성공하고 선수에게는 실패처럼 보이는 경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도쿄에서 한일전이 끝나고 나는 고정운에게 많은 칭찬을 해줬다. "너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였지만 전술적으로는 대단히 만족스럽다. 결과적으로 너는 온르 나에게는 성공한 선수다." 이날 정운이에게는 줄기차게 많이 뛰어서 공격 가담을 늘리는 상대방을 철저히 무디게 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더구나 그곳은 적지였기 때문에 상대방의 기를 살려 놓는다는 것은 기름을 부어 주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보았듯이 같은 팀이지만 정운이가 대퇴부 근육 이상으로 도쿄서만큼 움직여 주지 못하고 서정원이가 반대쪽 공격을 저지해주지 못하자 실점을 한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을 통해 공격수들의 수비 능력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팬들은 치고 들어가서 슈팅을 하고 문전에서 움직이는 그런 모습을 기억해 낸다.

 그러나 감독은 바로 저 순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있는 선수들의 수비 나태가 더욱 불만스러운 것이다. 상대가 강팀일 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전의 우리 선생님 한분은 그런 선수를 가리켜 "팬들을 기만하는 선수"라고 혹독하게 야단친 것을 본적이 있다.

 팬들을 기만하는 선수는 팀 전력에 실질적인 보탬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팬들은 그를 기억하는 게 감독을 고민케 하는 또 하나의 짐이다.

 

p169.

 선수의 부상은 정신력이 흐트러지거나 최고의 컨디션이 아닐 때 자주 나타난다. 나 자신이 아픈 선수나 컨디션이 안 좋은 선수보다는 기량이 좀 떨어지더라도 완전한 몸을 가진 선수를 내보내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도 부상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우즈베키스탄 전을 마치고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가능한 이번 경기는 그 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던 것인데 그것은 "한 번쯤 뛰고 싶다"는 정신력이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것보다 우위일 것이라는 판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쉽지가 않았다. 지난 한 주 내내 훈련 결과가 좋지 않았던 최용수였다. 그러나 홈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그동안 가장 공을 많이 세운 용수에게 주중 훈련이 부실했다고 스타팅에서 제외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목숨을 걸고 이겨야 하는 경우였으면 나 역시 좀 더 냉정했을 것이다.

 지금도 경기에 졌기 때문에 용수의 출장이 아쉬운 게 아니라 바로 그런 훈련 상태서 부상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내보 낸 나의 냉정치 못한 결정이 용수의 코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으로 이어지자 바로 그것이 아쉬운 것이다. 고정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허리가 아프고 시합 전날도 근육이 한번 뜨끔했다는 얘기를 팀 닥터로부터 전해 들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일텐데 본인이 괜찮다며 기어이 출전하고 싶어하는 것을 보자 "우즈베키스탄 전에서 모처럼 골을 넣었으니 그 뒤풀이도 하고 싶을텐데 한 번 들어가서 소원 풀어봐라"하는 냉정치 못한 판단으로 출장을 허락했다. 근육 이상은 날씨가 추우면 더욱 위험률이 높아진다. 결국 한번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근육 부상만 악화되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p180. 너무나 길고 힘들었던 3년 간

 89년 독일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 교육 과정을 공부하면서 가장 존경하는 스승인 네덜란드의 리누스 미셸 선생님에게 "지도자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직업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지도자 과정을 공부하면서도 한국적 지도자 모습에는 스스로 자신이 없던 터라 귀국 후 꼭 팀을 맡아야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 선생님은 수 십년 간의 경험에서 오는 확신으로 단호히 얘기해 주셨다. "열심히 일하는 감독만이 성공할 수 있다. 감독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는 선수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덧붙여 "선수 기용은 절대로 소신대로 정당하게 해야 하며 이것이 무너지면 결국 자살골을 넣게 되고 만다"면서 "특히 너처럼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은 책임도 그만큼 크기 때문에 팀을 맡을 때는 주변 정리를 완벽하게 하고 반드시 소신껏 일할 분위기가 되었을 때만 팀을 맡으라"는 충고도 거급거듭 해주셨다.

 그리고 1년 후.

 내가 현대팀을 맡아 바닥에 있는 팀을 준우승시키면서 감독 취임 첫 해부터 스포츠 서울과 일간 스포츠에서 주는 '올해의 감독' 상을 받을 때만 해도 정말 나는 지금처럼 재미있게 일했다. 큰돈을 들여서 선수들을 사들이는 데는 별 흥미가 없는 나는 어린 선수들이 쑥쑥 크는 재미로 힘든 줄 몰랐고, 당시 단장이셨던 윤국진 현 울산시 축구협회장님은 나의 명예를 걸고 하는 그 일에 신뢰와 지지를 아낌없이 보내주었던 정말 신명나는 한 해였다. 그러나 그해 겨울, '왕회장'님께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시면서 윤국진 단장님이 선거관리 본부책임자로 불려나가시자 나는 한쪽 날개가 완전히 떨어져나가 버린 꼴이 되었고, 그 후 3년은 그야말로 매순간 그만두고 싶었던 너무나도 힘든 그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내가 처음 현대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당시 고려대학교 동문회 회장이신 정세영 회장님은 "우리 동문중 가장 자랑스러운 인물인 차범근과 이명박을 현대가 갖게 돼서 너무 영광이다"면서 단장님에게 "잘 도와서 감독으로서도 훌륭히 키워줘야 한다"며 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보통의 감독 대우 이상으로 예우를 해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장님이 선거 때문에 떠나자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올라 갈 때마다 공항으로 내보내주던 회사 차도 "택시 타라고 그래"하면서 끊어버렸고 합숙 중 술담배를 하지 않는 우리 코칭스태프들이 디저트로 먹는 호텔의 2천원짜리 아이스크림마저 "왜 300원짜리를 사다주지 비싼 걸 먹게 하느냐"며 구단 직원들을 윽박지르는 간접 인신 공격과 자존심을 뭉개는 비하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며 당시의 3년은 너무나 길고 힘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바로 이런 것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나의 결정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표팀 감독을 맡을 때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이상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너무나 열심히 신명나게 일만했다.

 그래서 더욱 행복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서 UAE 감독관이 거푸 배정되자 사실 별 것이 아닌데도 "말도 안된다"면서 바꿔달라고 신경질을 부렸다. 협회는 부랴부랴 FIFA에 편지를 보내서 해결해주었다. 왠지 마음이 편했다.

 경기가 끝나자 오완건 부회장님, 김원동 부장, 가삼현 부장에게 슬그머니 미안해졌다. 바로 이런 축구협회의 분위기가 우리 선수들과 나에게는 안심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돼주었다.

p212.

 '샤덴 프로이데'라는 심리학 용어가 말해주듯이 인간은 남의 불행을 보면 본능적으로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있다.

 

p241.

 얼마 전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선배들과 모여 앉아 잡담을 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무엇을 할까"를 서로 얘기했던 모양인데 녀석은 "다시 태어나도 축구 선수를 하겠다"고 했더니 모두들 "돌았다"고 하더란다.

 말하자면 이미 이 연령(고등학생)이 되면 축구를 정말 하고 싶다는 즐거움이 없어져 버린다는 얘긴데 얼마 전 조사된 초등학교 축구 선수들의 경우도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온 모양이다. 초등학교 축구 선수들이 축구를 하기 싫은 첫 번째 이유는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처럼 구타가 무서워서였다고 한다.

 두 번째가 훈련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세 번째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였다고 한다. 

 

p254. 운동장도 없는 축구 교실

 

 언젠가도 소외된 자들의 대변인으로서 바른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는 일을 대표적으로 나서서 하던 사람이 불법으로 집을 짓고 마당을 넓히는 등 정작은 옳지 않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게 문제가 돼 시장이 된지 며칠만에 그만 둔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참담한 기분이었는데 어린이 심장재단에 관여했던 L씨(부연 설명 : 뽀빠이 이상용 씨를 말함. 이 사건은 누명으로 밝혀져서 이상용씨는 법적으로 무죄를 입증했다. 자세한 것은 검색해보면 많이 나온다.)의 경우는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을 뿐 아니라 15~16년 전만 해도 그나 나나 꼬마들의 사랑을 듬뿍 받던 때라 "나중에 너랑 나랑 대통령 선거에 나가서 누가 더 인기가 있는지 알아보자"는 농담을 자주 했을 만큼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믿어왔기 때문에 허탈감이 더했다.

 그러는 중에도 "단체를 운영하려면 비자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 분의 인터뷰 내용은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올 만큼 공감이 가는 부분이기도 했다.

 축구교실 운영을 좀더 체계 있게 하기 위해서 7년쯤 저 사단법인 허가를 신청했을 때의 일이다. 법인 신청을 하기 위해 우리 사무실에서 열심히 준비해서 갖다 준 서류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퇴짜를 맞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독일에서 귀국한 직후였고 운영 자체가 내 개인의 광고 모델료나 방송 출연료 같은 것으로 되고 있었기에 내가 그들에게 상을 받았으면 받았지 사정(?)을 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거의 1년여를 '차범근이 직접 오라'면서 끌던 것을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당시 박철언 체육부장관이 '팬'이라면서 반가워하는 바람에 체육부에서 퇴짜를 맞고 있는 서류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일이 일사천리로 끝났던 적이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아이들이 연습할 운동장을 빌려쓰는 데서부터 어느 한 곳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는 것이 우리 나라의 현실이다.

 얼청난 정부 예산으로 유명 선수 축구교실을 지원하는 경우에도 지도자들의 보수를 지불해서 더 어려운 곳을 개설해 달라는 요청은 무시하고 지난 해에는 현실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 물품으로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면서 운동자도 없는 축구교실에다 기가 막히게도 골대를 지원하겠다고 품목을 적어보냈다.

 우리 축구교실에서는 연구 끝에 그 골대를 운동장에 있는 곳에 보내주고 우리는 그 운동장을 빌려 써야겠다고 아이디어를 짜보았지만 1년이 넘는 지금까지 수 차례 독촉에도 골대는 나타나지 않고 올해는 그나마도 1천여 명이 넘는 우리 축구교실에는 그 엄청난 예산 중 공 100개만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차범근 감독이 글을 좀 더 조리있게 쓰셨다면 해결될 일이 많았을 지도 모르겠다. 좀 억울한 사연에는 할말은 많은데 마음이 앞서는지 글을 이렇듯 맥락 파악하기가 어렵게 쓰시는 경우가 있다.)

 또 몇 달 전 집사람에게 사정사정해서 얻어낸 돈 몇 천만 원으로 여의도에 만들어 놓은 미니 축구장도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몇 달째 사용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바로 이럴 때 원칙만 따지는 사람은 열만 받거나 포기해 버리는 것이고 능력 있는 사람은 비자금을 동원, 매끄럽고 쉽게 처리하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못 믿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사는 산소 같은 누군가가 존재하기를 바라고 그런 이들을 사랑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의 생활도 더욱 밝고 투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바로 이런 대상이 주는 실망. 이것은 세상을 냉소주의에 빠뜨리게 하는 가장 큰 독성을 지닌 혐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년 간 현업에서 치과 의사로서 경험했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그간 치대에서 배워왔던 지식들의 오류와 우리가 상식적이라고 생각해왔던 고정관념들의 잘못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그간 건강에 대한 상식들이 넓어지면서 일반 병원 치료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와 생각들이 있었지만, 비교적 치과에 대해서는 그러한 논의와 생각들이 적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책은 특히 유치에서 영구치로 이갈이를 시작한 연령대의 아이를 둔 부모들과, 교정이나 양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치료를 받기 전에 읽으면 큰 도움이 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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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

 

 이렇게 치아의 배열이 불규칙하거나 위턱과 아래턱의 맞물림이 바르지 않은 상태를 '부정교합'이라고 합니다. 초등학생의 60%가 부정교합이라는 통계자료도 있지만 더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정교합을 갖고 있습니다. 유치를 적절한 시기에 빼지 않아서 부정교합이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치아가 바르게 배열될 사람과 불규칙하게 배열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림 1-A처럼 앞니 사이가 벌어진 상태가 정상적인 유치의 배열이고, 이는 턱의 크기가 적절함을 의미합니다. 유치보다 영구치가 더 크기 때문에 영구치가 바르게 나오려면 앞니 사이가 어느 정도 벌어진 상태여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 가운데 앞니 사이의 공간이 있는 아이는 거의 없고 그림 1-B처럼 유치 앞니가 촘촘하게 배열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유치 사이에 공간이 없으면 영구치의 배열이 불규칙해질 가능성이 높고, 미리 유치를 빼주어도 영구치가 바르게 배열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물론 유치 앞니들이 촘촘히 배열되어도 영구치가 바르게 배열될 수 있으며, 또 영구치 배열이 불규칙해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게든 치아는 배열되고 아이는 잘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까요? 영구치 배열이 불규칙한 우리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어릴 때부터 치과에 다니며 유치를 뽑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30~40대 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부모님이 빼주셨거나 자신이 직접 뺐을 것입니다.

 그럼 치아가 불규칙한 사람들은 유치를 제때 뽑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유년 시절에 치과를 많이 다닌 현재의 20대 이하 젊은이들의 치아 배열이 가장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저렴해진 교정 비용, 외모 지상주의 등의 이유도 있지만 치아 교정을 가장 많이 받는 세대가 현재의 젊은 세대입니다. 치과에 오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1960년 이전 출생자 중 배열이 불규칙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는 치과에 가서 유치를 빼는 경우가 없었는데도 대부분 가지런한 치아를 갖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p30.

 

 그림 1-A는 '씹는면 충치', 그림 1-B는 '사이 충치'를 보여줍니다.

 식생활, 구강위생 등의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씹는면 충치는 그냥 방치해도 괜찮은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치료를 한다면 보험 적용이 되는 저렴한 재료로 때워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치 사이에 충치가 생기면 음식물이 끼어서 아이가 아파하기 때문에 치료를 하게 됩니다. 씹는면 충치와 달리 사이 충치는 레진, GI 등의 치과 재료로 때워도 재료가 잘 탈락되거나 주변이 다시 썩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유치 어금니에 사이 충치가 생기면 그림 1-C처럼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SS크라운으로 씌웁니다. 치과의사의 성향, 아이의 생활 습관, 충치의 정도에 따라 씹는면 충치도 크라운으로 씌우기도 합니다. 

 이렇게 치아 사이가 썩어서 SS크라운으로 씌울 때는 충치의 진행 정도에 따라 신경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반응을 살펴 부분 마취나 수면 마취를 합니다. 이처럼 유치의 사이 충치는 때워도 잘 떨어지기 때문에 힘들어도 처음부터 씌우는 것이 교과서적인 방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SS크라운을 하지 않고도 유년기를 잘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보겠습니다. 

 

 그림2의 어린이는 초등학교 1학년 이후 유치 사이가 썩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치과에서 '레진'이라는 재료로 때웠습니다. 3학년 때는 유치 어금니 사이가 썩어 필자의 치과에서 GI라는 재료로 때웠습니다. 4학년 때 유치 어금니에 있던 레진이 떨어져 GI로 때웠고, 다른 유치 어금니는 사이 충치가 심해져서 신경 치료를 한 뒤 SS크라운을 씌우는 대신 GI로 때우고 치료를 마무리했습니다. 6학년이 되면서 검진차 내원했는데 유치 어금니에 이어 영구치 작은 어금니들이 잘 나왔고, 신경 치료를 하고 때우기만 했던 유구치는 곧 빠질 상황이었습니다. 영구치가 나올 때까지 잘 버텨주어 영구치를 위한 공간 유지 기능이라는 유치의 업무를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앞의 예처럼 유치 사이가 썩었을 때 GI라는 재료로 때운 뒤에 떨어지면 다시 때우기를 반복하거나, 더 썩어서 신경 치료를 한 뒤 SS크라운으로 씌우지 않고 GI로 때우기만 해도 영구치가 나올 때까지 유치는 잘 버티다 때가 되면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SS크라운을 하지 않고 GI 등의 재료로 때우기만 하는 방식은 일부 아이들에게만 가능합니다. 미취학 어린이 중에 유치 어금니가 여러 개 썩었고, 아이의 치료 협조도가 좋지 않으며 가정에서 음식물 관리가 안 된다면 SS크라운으로 씌우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 초등학교 1학년 이상의 아이 중 한두 개의 유구치에만 사이 충치가 있는 경우라면 SS크라운 없이 때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이 충치를 때울 때 레진이 좀 더 좋은 재료지만 비용 등의 이유로 GI를 사용하는데 짧게는 1개월, 길게는 1년 정도 버티다가 떨어집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이 충치를 때우기만 하고 SS크라운을 하지 않는 이유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데다 마취를 피할 수 있고 치아를 삭제하지 않으며 치과에 대한 공포감을 줄이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치과의사들이 유치 사이가 썩으면 유치의 통증 여부와 상관없이 신경 치료를 해서 씌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마취를 하게 되고 아이는 아파합니다. 하지만 GI로 때우고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유치가 깊이 썩고 잇몸이 부었다면 오히려 신경 치료가 쉽습니다. 이미 신경이 많이 죽어 있으므로 마취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덜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충치를 방치하는 것도 아이가 고통 없이 치료받는 또 다른 방법이 됩니다.

 사이 충치가 생긴 유치를 SS크라운으로 씌우지 않고 GI같은 재료로 때웠을 경우, 재료가 떨어지면 유치의 크기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아진 유치에 비해 이어서 나오는 영구치는 크기 때문에 삐뚤게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치과의사들은 유치의 크기를 유지하기 위해 SS크라운을 권합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의 90% 이상은 이전 세대보다 턱의 크기가 작아 처음부터 치아가 제대로 배열되기 어렵고 위턱과 아래턱의 맞물림도 정상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SS크라운으로 치료를 받았어도 영구치가 나올 공간이 부족해 영구치가 바르게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따라서 '열심히 SS크라운을 해서 영구치 배열을 완벽하게 하겠다'거나 '유치 사이 충치를 때우기만 하다 재료가 떨어진 것을 방치하면 유치 크기가 줄어들어 큰일 난다'는 생각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세가 정해진 상황에선 너무 열심히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열심히 해야 할 일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턱의 크기를 키우는 교정 치료나 식생활을 개선하는 근본적인 치료입니다. 치과의사와 보호자는 모든 충치를 완벽히 제거하고 확실하게 씌워야만 제대로 된 치료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완벽한 제거는 오히여 아이들을 힘들게 할 뿐 장기적으로 보면 방치하거나 대강 치료한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p35. 실란트의 상식

 

 아이들이 구강 검진을 받을 때, 어금니에 실란트라는 재료가 발려 있지 않으면 부모들은 실란트 예방 치료를 권유받습니다. 실란트sealant는 밀폐제, 밀봉제, 방수제 등을 뜻하며 치과에서 사용하는 '치과용 실란트'를 이용한 예방 치료를 '치아 홈 메우기'라고 합니다. 치아를 관찰하면 어금니의 씹는 면에 주름을 볼 수 있습니다. 연령과 사람에 따라 주름의 깊이와 양은 다르지만 아이들의 입안에 새로 올라온 영구치는 주름이 많고 깊이가 깊습니다. 이 주름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잘 끼는데, 요즘 아이들의 경우 단 음식, 가공식품, 부드러운 음식을 자주 먹고 치아의 질도 낮은 경우가 많아서 충치가 잘 생깁니다. 따라서 충치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주름을 실란트로 막는 '치아 홈 메우기'를 권합니다

 과거에는 실란트가 비보험 진료였으나, 현재는 만 18세 이하에게 영구치 1번큰어금니(제1대구치)와 2번큰어금니(제2대구치)에 한하여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1번큰어금니는 만 6세쯤 나오고, 2번큰어금니는 만 12세쯤 나오기 때문에, 이때쯤 실란트를 발라주는 것이 좋다고 권합니다. 치아의 상태에 따라 '유치 어금니'나 '영구치 작은어금니'에 바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실란트를 바를 때 중요한 점은 '아직 썩지 않은 깨끗한' 영구치에 바르는 것입니다. 이미 썩은 치아라면 충치를 제거하고 레진, 아말감, GI등으로 때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p37.

 실란트는 크게 두 가지 제품군으로 나뉩니다. GI(글라스 아이오노머)가 주성분인 실란트와 비스페놀 A가 주성분인 실란트입니다. 주로 쓰이는 실란트는 비스페놀 A가 주성분입니다. 비스페놀 A는 식품이나 음료 캔의 보호용 코팅재, 장난감, 물병, 젖병, 컵 등 다양한 용도로 쓰입니다. 비스페놀 A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저렴해서 폭넓게 사용되는데 비스페놀 A가 흘러나와 체내에 흡수되면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결합하여 호르몬처럼 작용합니다. 즉 비스페놀 A는 환경호르몬(내분비계 교란 물질)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비스페놀 A가 들어간 포장재로 싼 식품을 섭취하여 인체로 유입되지만 유아나 어린이의 경우 비스페놀 A가 함유된 제품을 손, 입, 코 등으로 접촉하면서 유입됩니다. 소아에게는 아주 적은 양이라도 해로우므로 성인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BPA free가 표기된 영수증이나 반찬통 등이 있는데, 이는 비스페놀 A를 함유하지 않으니 안심하라는 뜻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비스페놀 A의 유해성에 대한 수많은 기사와 자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비스페놀 A를 함유한 치과용 실란트에 대한 연구들도 있습니다.

 

 서울치대 예방치의학 연구팀은 치아에 실란트와 레진을 네 개 이상 갖고 있는 어린이 62명을 대상으로 구강 내 타액 중 비스페놀 A 함량을 조사했습니다.(2012년 9월) 그 결과, 평균 0.92㎍/L로 치아에 충전재를 한 개도 넣지 않은 어린이의 0.40㎍/L보다 2배 이상 높았습니다. 현재 폴리카보네이트의 비스페놀 A 용출 기준치는 600㎍/L입니다. 용출 기준치로만 보면 이 실험의 검출량은 극히 적습니다. 그러나 비스페놀 A 함량이 많은 상위 10% 그룹만 놓고 봤을 대 입안에 실란트와 레진을 네 개 이상 보유한 비율은 비스페놀 A 함량이 가장 적은 하위 10% 그룹에 비해 4.6배나 높았습니다. 이 결과는 실란트와 레진이 체내에서의 비스페놀 A 수치 상승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비스페놀 A를 함유한 실란트나 레진이 치아 에나멜 형성을 저해하거나 어린이 행동, 정서 장애, 유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들도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결과를 반박하는 자료들도 있습니다. 미국치과의사협회ADA는 실란트 안전 홍보 자료를 통해 치과용 실란트에는 0.09ng(나노그램)의 비스페놀 A가 포함되어 있는 반면, 공기 8ng, 화장품 22ng, 먼지 58ng, 영수증 138ng, 음식물에 5800ng의 비스페놀 A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치과용 실란트에서 나오는 비스페놀 A는 유해한 수준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p39. 실란트가 필요한 아이들은?

 필자는 실란트를 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비스페놀 A의 유해성 때문이 아닙니다. 보험 적용이 되므로 큰 부담이 없는 공인된 충치 예방 방법을 권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충치에 대한 생각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치아의 씹는면에 생긴 충치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어서 '중상위권' 어린이에게는 방치해도 되고, 중요한 문제인 사이 충치는 실란트로 예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상위권'은 어떤 수준인지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전제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집필 의도는 치과에 덜 가고, 가더라도 치아를 덜 건드리고, 치료를 받는다면 제대로 받되 그에 대한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함입니다. 그렇데 되려면 우리 스스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양치를 제대로 하고, 가공식품을 습관적으로 먹지 않는 아이라면 실란트를 받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아이가 '중상위권'입니다. 반면 설탕이나 화학물질이 주성분인 음료수, 과자, 사탕 같은 가공식품을 매일 먹으면서 양치질을 제대로 하지 않는 '하위권' 어린이라면 그냥 치과에 다니면서 실란트를 비롯한 여러 치료를 받는 편이 낫습니다.

 

p45.

 수돗물 불소화 반대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유명 해외 저널에 실린 논문들도 많습니다. 국내에서는 www.no-fluoride.net에 에 잘 정리되어 있고, 이 사이트에 있는 글 몇 개만 읽어도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불소의 충치 예방 효과에 대한 의문 외에도 불소로 인한 문제점 몇 가지를 제시하면 치아 불소증(치아 표면에 갈색이나 흰색의 반점 또는 줄무늬가 생기는 현상), 뼈의 부서짐, 갑상선 저하증, IQ 감소, 행동 장애 등 뇌에 미치는 악영향과 발암 관련성 등이 있습니다.

 

 사실 치과의사들도 대부분 수돗물 불소화를 반대합니다. 불소 때문에 치료할 충치가 사라져 수입이 줄어들까 걱정되어서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마시는 물조차 내 마음대로 선택 할 수 없다'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그 바탕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수돗물 내 불소 투입으로 인한 부작용을 지적해도 불소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찬성자들의 치아가 건강하다면 불소 수돗물을 마셔서가 아니라 불소와 상관없이 치아가 좋거나 관리를 잘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담긴 주장들 중 하나가 '충치에 아무리 신경써도 결국 잇몸병으로 고생한다. 충치는 생각만큰 심각한게 아니다. 충치가 문제 되는 이유는 오히려 과도한 충치 치료와 기본을 무시한 생활 습관 때문이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수돗물 불소화는 잇몸병을 예방하는 것도 아니고 충치 예방의 본질적인 방법도 아닙니다. 이 시대의 질병은 과잉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결핍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p48.

 3~5세 아이들은 평균 15%, 성인은 12.7% 정도의 불소 성분이 칫솔질을 마친 뒤에도 입안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시판되고 있는 성인 치약 속의 불소 함량은 1000ppm(유아용은 500~700ppm) 이상입니다. 1000ppm이라는 것은 치약 1g 중에 1mg의 불소가 함유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용하는 치약의 양에 따라 달라지지만, 가령 1000ppm의 불소가 함유되어 있다고 하면, 1회당 입안에 남는 것은 유아가 0.05mg 성인은 0.06mg입니다. 하루 3회 불소가 들어간 치약을 사용하면 성인은 0.18mg이 되는데, 이것은 녹차 190ml에 함유되어 잇는 불소의 양과 거의 비슷합니다. 불소는 공기, 토양, 물, 바닷물 등 자연계에 널리 분포하고 있습니다. 해산물, 특히 조개류, 뼈까지 먹는 새우와 말린 정어리에는 30~50ppm, 건조한 녹차 잎에는 200~500ppm 정도 함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치약에 들어 있는 양 정도로는 건강에 피해를 줄 걱정은 없습니다. (가야마 시게루, 『이만 잘 닦아도 비만, 치매 막는다』)

 

 불소치약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불소 사용을 권하는 위 글을 인용한 이유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불소 식품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소에 대한 불안감 속에 주의를 기울이며 불소 도포를 받거나 불소치약을 사용할까 말까 고민하기보다는 위에 언급된 식품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불소를 섭취하면서 치아와 뼈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본질적인 충치 예방법입니다. 자연은 이미 우리에게 좋은 것을 마련해주었습니다.

p51. 검진을 자주 받을수록 충치 개수가 오히려 증가

 

 요즘 아이들 중에서 치과에 가보지 않은 아이는 없습니다. 치아가 아파서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프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유치 발치도 하고, 실란트 및 충치 치료도 받고, 불소 도포도 받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관리를 했는데도 치과에 가면 치료받아야 할 치아가 여전히 많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K는 4학년 때 '학생 치과 주치의 사업'을 통해 학교 구강 검진을 담당하는 A치과에서 구강 검진, 실란트 처치, 불소 도포, 양치질 교육 등을 받았습니다. 5학년이 되면서 다시 A치과에 가서 매년 실시하는 학교 구강 검진을 받았는데, 충치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심이 생겨 필자의 치과에 왔습니다. 검진 결과, 치아들이 깨끗했기 때문에 상담만 하고 보냈습니다. 이후 6학년이 되어 A치과에서 또 구강 검진을 받고 여전히 충치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다시 필자의 치과에 왔지만 여전히 치료할 부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치과의사마다 충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지만, 4학년 때 전체적으로 예방 처치를 받았고, 눈에 띄는 검은 부위가 없어도 치교할 치아가 많다면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치과를 불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등학생 L은 어렸을 때부터 정기적으로 B치과에 다녔습니다. 치과에서 하라는 치료는 다 받았습니다. 유치를 포함한 대부분의 치아에 실란트와 레진이 있었습니다. 잘 다니던 치과를 놔두고 필자의 치과에 온 이유는 레진 치료가 되어 있는 어금니 한 개에 아주 작은 충치가 생겨 치료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필자는 치료할 필요가 없는 미세한 점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보호자 입장에서 볼 때는 지금까지 열심히 치료받았고 해당 어금니는 치료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다 아주 작아 보이는 점인데, 이걸 치료하는 게 맞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치료 후 1년도 안 지나 다시 충치 치료를 해야 한다면 치료했던 치과의사가 오히려 미안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사례들은 넘쳐납니다.

 충치를 제거한 후 치과 재료로 때워도 치과 재료와 치아 사이에는 미세한 틈이 존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틈은 커지고 검게 변합니다. 이것이 실제 충치일 수도 있고 착색으로 볼 수도 있는데, 검진을 자주 받을수록 충치 발견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는 충치 탐색 전문가의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반복되는 검진과 충치 치료가 의미 있는 행위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해마다 구강 검진을 받으면서 충치 개수는 달라지고, 20대가 되면 치료받았던 치아가 아파서 다시 치과를 찾기 때문입니다.

 

 p65. 금으로 때워도 사이 충치는 막지 못해요

 

 우선 가장 비싸지만 가장 많이 하고 내구성이 가장 좋은 것으로 인정받는 '금인레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어금니 충치를 제거하고 본을 떠서 모형을 만든 후 금을 주조해 만든 충전물을 금인레이gold inlay라고 합니다. 환자의 사례를 보면서 금인레이의 한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림 1의 20대 환자는 어렸을 때 어금니 네 개를 아말감으로 때웠고, 1년 전 어느 치과에 갔다가 충치가 있다고 해서 어금니 전부를 금으로 때우기로 결정하고, 우선 오른쪽 위, 아래 어금니 네 개만 금으로 때웠습니다. 반대쪽 어금니들도 치료받기로 했다가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중 필자의 치과에 방문했습니다.

 그림 1을 보면 오른쪽 어금니 두 개에는 씹는면과 옆면에 금인레이가 있습니다. 반면 왼쪽 어금니의 씹는면은 과거에 때웠던 아말감이 떨어진 상태이고, 맨 뒤 어금니의 씹는면은 충치가 방치된 상태입니다. 환자는 아말감이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맨 뒤 어금니의 충치도 별다른 증상이 없습니다.

 환자가 필자의 치과에 온 것은 1년 전에 금인레이로 때운 어금니 사이가 썩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치과의사들은 아말감이 떨어진 어금니와 그 뒤 충치가 있는 어금니의 충치를 제거한 후 금으로 때우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금은 튼튼하면서도 물리적인 성질이 치아와 유사해서 힘을 많이 받는 어금니 부위에 가장 좋은 충전물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레진이나 세라믹 같은 재료를 권하기도 합니다). 1년 전에 금으로 때웠지만 사이가 썩은 어금니는 금인레이를 뜯어내고, 사이 충치도 말끔히 제거한 후 다시 금인레이로 하라고 권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아래 어금니 네 개 모두에 금인레이가 부착될 것입니다.

 이제 정리해보겠습니다. 이 환자가 치과에 온 것은 1년 전에 치료받은 어금니, 그것도 가장 비싼 금인레이를 장착한 치아에 생긴 사이 충치 때문입니다. 씹는면 충치를 방치한 어금니들은 아무 증상이 없는 반면, 금으로 때운 어금니에는 사이 충치가 생겼습니다. 실란트가 사이 충치의 발생을 막지 못한 것처럼 비싼 금인레이도 사이 충치를 막지 못합니다. 따라서 씹는면 충치를 굳이 비싼 금인레이로 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방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금인레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치아를 금 가게 하거나 부러뜨리는 것입니다. 가장 비싼 충치 치료가 치아를 금 가게 해서 신경 치료를 받아야 하거나 결국 치아까지 뽑게 되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p72.

  

 씹는면의 깊이가 얕거나 크기가 작은 충치는 그냥 두어도 되고, 굳이 치료를 받겠다면 금이 아닌 레진과 같은 직접 채워 넣는 재료로도 충분합니다. 작은 충치를 금으로 때우는 것은 비경제적일뿐더러, 큰 충치를 금으로 때우면 치아 균열이나 금인레이의 탈락이 일어납니다.

 

 그림 5는 다른 치과에서 어금니의 씹는면과 옆면 충치를 제거하고 금인레이를 했지만 몇 년이 지나 탈락된 후 즉시 필자의 치과에 온 환자의 사진입니다. 금인레이로 때울 때 분명히 충치를 깨끗이 제거했을 텐데 속은 여전히 검게 변해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충치를 때운 것 같아도 시간이 흐르면서 재료와 치아 사이에는 미세한 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충치를 완벽하게 제거하다 보면 치아의 구멍(와동cavity)이 커지고, 충전물의 크기도 커집니다. 그에 따라 치아와 재료 사이의 경계 부위도 커지고, 충전물이 받는 저작력도 커지기 때문에 충전물이 변형되기 쉽고 틈은 점점 커집니다. 그래서 충치가 다시 생길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아집니다. 그래서 충치가 다시 생길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아집니다. 금인레이가 떨어진 상황에서 검은 부분을 갈고 다시 금으로 때우는 것은 치아를 약화시키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검은 부분을 꼼꼼히 제거하다 보면 신경이 노출되면서 아프지 않았던 어금니까지 신경 치료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꼼꼼하고 과도하게 충치를 제거한 후 커다란 금인레이를 어금에 장착하면 금인레이를 둘러싼 치아의 두께가 얇아지면서 어금니에 금이 가거나 치아가 부러질 수 있다는 점은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따라서 치아가 부러지기 전에 금인레이가 탈락되는 것이 치아에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탈락된 금인에리를 다시 부착하기보다는 오히려 금보다 약한 재료(레진, 세라믹, GI)로 때우는 방법이 더 안전합니다. 충치의 크기가 너무 크면 때우지 못하고 크라운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p74. 금인레이가 필요한 경우

 

 어금니의 씹는면에 충치가 생겼을 때 튼튼한 것이 좋다고 해서 금인레이로 때워도 정작 중요한 사이 충치는 막지 못합니다. 오히려 튼튼한 금인레이가 치아를 금 가게 하고 부러뜨립니다. 금인레이는 탈락하기 쉬운데, 탈락 후 충치가 있다고 자꾸 갈고 때우는 과정에서 치아는 점점 약해집니다. 금인레이 후 치아가 약간 썩거나 부러져도 그 부분만 수리할 수 없고, 전부 뜯어낸 뒤 새로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환자가 입을 벌린 상태에서 '씹는면 충치'에 레진 등의 재료를 채워 넣는 작업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어금니 '사이 충치'를 직접 때우는 작업은 난이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 때문에 사이 충치는 본을 떠서 모형을 만든 뒤 충전물을 만드는 인레이 방식을 많이 사용합니다. 오래전부터 금인레이가 사용되었으며 요즘에는 레진 인레이, 세라믹 인레이 등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재료는 치아 색과 유사하고 금속이 아니어서 생물학적으로도 유익하지만 금인레이에 비해 치과의사가 다루기 까다롭고 재료가 부러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레진이나 세라믹 등의 재료가 부러지는 것은 어쩌면 좋은 현상입니다. 재료가 부러졌다는 것은 치아가 힘을 많이 받는다는 뜻인데 앞서 설명했듯이 금인레이를 했을 경우, 과도한 힘이 금인레이를 통해 치아에 전달되면 치아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금은 치아를 희생시키지만, 레진이나 세라믹 같은 다소 약한 재료는 치아를 보호하면서 자신을 희생시킵니다. 따라서 어금이늬 사이 충치 치료 때 금인레이도 좋지만 치아 보호 측면에서 레진 인레이나 세라믹 인레이가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재료들을 사용할 대도 충치 제거 과정에서 치아가 지나치게 많이 삭제된다면 금인레이가 유발하는 부작용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p77.

 

 사실 오래전부터 대다수 치과의 주 수입원은 금인레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정, 임플란트, 치아 성형등에 관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충치에는 관심이 많고, 늘 걱정합니다. 이 때문에 정기적으로 구강 검진을 받고, 충치로 아픈 치아뿐만 아니라 아프지 않은 충치들도 치료합니다. 그리고 환자나 치과의사 모두 금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거부감 없이 치아에 금을 끼워 넣습니다. 레진 등으로 직접 때우는 과정은 치과의사가 환자 옆에서 10분 이상 직접 힘들게 작업해야 하지만, 금인레이는 치과의사가 치과용 드릴로 잠깐 동안 치아를 갈기만 하고 그다음 과정은 직원들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료 속도도 빠릅니다. 그리고 치료 후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불편함이 바로 나타나는 레진이나 세라막에 비해 금인레이는 불편함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앞에서 설명한 금인레이의 문제점들은 몇 년이 지나서야 나타납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문제가 생기고 환자들은 어느 치과에서 어떤 치아를 치료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치료한 치과에 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거나 다른 치과를 찾아갑니다. 임플란트, 교정, 치아 성형과 달리 사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치과의사 입장에서는 편한 치료입니다. 다시 말해 가장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치료가 금인레이이고, 인레이를 많이 하는 치과가 돈을 잘 버는 치과가 됩니다. 사람들은 환자가 많으면 치료를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약이 힘들어도 그런 치과를 찾아가 금인레이로 충치 치료를 받습니다.

 

p99.

  잘 씹는 것은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유체역학적 에너지를 발생시켜 머리와 얼굴의 뼈 전체로 골수 조혈을 촉진시킨다. 다시 말하면 살아 있는 동안에 호흡과 저작에 의해 두개골 전체가 골수 조혈을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잘 씹을 수 없게 되면, 뇌의 세포호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치매에 걸릴 수가 있는 것이다.

 - 니시하라 가츠나리, 『면역력을 높이는 생활』

p159. 17장. 사랑니는 쓸모없는 치아가 아니다.

 

 사랑니는 최후의 기둥

 

 치과의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니를 빼는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사랑니를 빼는 것이 정상일까요? 치과대학에서는 사랑니의 효용과 가치에 대해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랑니를 '범죄자', '퇴화의 산물'로 취급하며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가르칠 뿐입니다. 사랑니가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치기에 이런 대우를 받는 걸까요?

어금니의 옆구리를 파고든 위,아래 사랑니

 그림1은 매복된 사랑니가 일으키는 문제를 보여줍니다.

 아주 드물게 사랑니 주변에 물혹이나 종양이 생기기도 하지만, 사랑니 앞에 있는 2번어금니의 옆구리가 썩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문제가 흔하다 보니 치과의사들은 미리미리 사랑니를 뽑으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왜 옆 치아에 충치가 생겼을까요? 기본적으로 사랑니가 똑바로 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똑바로 나오지 못했을까요? 위턱과 아래턱이 작아졌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이전 출생자는 사랑니가 바르게 나온 빈도가 높지만, 1970년대 이후 출생자들부터 그 빈도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사랑니로 인한 문제가 흔하고, 사랑니 자체가 없ㄷ는 경우도 많다 보니 사랑니는 없는 것이 정상이고, 사랑니가 나오면 뽑는 것을 정상으로 여깁니다. 심지어 선천적으로 사랑니가 없는 것을 좋아하기까지 합니다. 사랑니가 매복되어 있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한쪽 사랑니를 뽑으면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반대쪽 사랑니를 함께 뽑기도 합니다. 이번 장에서는 사랑니의 소중함에 대해 알아보면서 우리의 턱이 얼마나 축소되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림 2의 74세 환자는 어금니 씹는면의 마모 문제로 필자의 치과에 왔습니다. 마모된 부분은 GI로 때웠습니다. 몇 년 전 앞니가 빠져 브릿지로 씌운 것 외에 치과 치료를 받은 적이 없으며 사랑니 네 개를 포함해 31개의 자연치아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정상입니다. 텐탈아이큐라는 것이 있다면 이분은 치아 천재라고 할 만합니다. 만약 이분이 젊었을 때 치과에 갔다면 사랑니를 뽑혔을 것입니다. 아니라고요?

 

 그림 3의 환자는 10대 시절에 금으로 씌운 아래 왼쪽 큰어금니가 불편해서 어느 치과에 갔는데, 치료해야 할 충치가 많고 사랑니 네 개를 모두 뽑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필자의 치과에 왔습니다. 어렸을 때 레진으로 어금니들은 모두 때웠고 약간의 착색만 있는 정도인데 다시 해야 할까요? 이렇게 많이 때웠는데 다시 때우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사랑니는 모두 바르게 나온 상태입니다. 바르게 나온 사랑니를 왜 빼야 할까요? 치과에 가면 빼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뿐 합리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사랑니에 있는 씹는면 총치가 사랑니를 아프게 할까요? 씹는면 총치는 중요하지 않다고(치아 건상상 꼭 치료를 해야 할 정도로 치명적이 아니다는 의미) 여러 차례 설명했습니다. 이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니 부위를 청결하게 해서 최대한 오래 보존하는 일입니다. 바르게 난 32개의 치아를 가진 이 청년은 현대인 중에서 천연 기념물 같은 존재입니다.

 

 

 그림 4의 환자는 교정 전문 치과에서 발치 교정을 받은 후 사랑니 네 개를 뽑으러 필자의 치과에 왔습니다. 20대인데도 모든 어금니가 레진과 금으로 때워져 있습니다. 32개의 치아 중 이미 작은어금니 네 개를 뽑았고 사랑니 네 개까지 뽑으면 24개만 남습니다. 필자는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사랑니를 뽑지 않기 때문에 이 환자의 경우 누워 있는 아래 사랑니 두 개만 뽑았습니다. 그러나 아래만 뽑아도 위 사랑니는 저작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24개만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발치 교정 후 20대부터 24개의 치아로 살아가는 환자들이 의외로 아주 많습니다. 아무리 질기고 거친 음식을 먹지 않는 세대라곤 하지만 과연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발치 교정을 받은 환자들은 갸름한 턱, 오목한 입, 가지런한 앞니 등에 만족하지만 어금니들의 맞물림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또 교정 치료를 받으면서 충치 치료까지 꼼꼼히 받기 때문에 20~3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금에는 금, 레진, 크라운 등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어금니 2~4개를 뽑았기 때문에 어금니 갯수는 12~14개입니다. 교합도 좋지 않고 충전물도 많고 어금니 개수도 적은 까닭에 치아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가중되면서 내부 충치나 잇몸병으로 인해 뒤쪽 어금니들이 하나씩 아프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가까스로 사랑니 네 개가 나와서 엉성하게라도 서로 만나 저작력의 일부를 감당한다면 치아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랑니를 필요 없다고 빼면 사랑니 앞에 있는 어금니들이 받는 저작력이 커져서 좀 더 빨리 망가집니다. 이와 반대로 남아 있는 사랑니들이 자기 주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그림 5의 80세 환자는 위 오른쪽 큰어금니가 불편해서 필자의 치과에 왔습니다. 치료를 해도 상태가 호전될 것 같지 않아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쓰다가 많이 아프면 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80세임에도 불구하고 브릿지를 포함하여 28개의 치아가 있습니다. 왼쪽 위,아래 큰어금니들(동그라미)은 20년 전에 뽑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왼쪽 위,아래 사랑니들(화살표)이 저작력을 버텨내면서 다른 치아들이 받는 힘을 줄여주고 있습니다.

 어금니가 많을수록 개별 어금니가 받는 저작력은 줄어들어 치아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16개 어금니보다 사랑니를 포함한 20개의 어금니가 더 유리합니다. 기둥이 16개일 때보다 20개일 때 건물이 더 튼튼하고, 톱니바퀴가 28개일 때보다 32개일 대 분쇄 효율이 좋습니다. 발치 교정을 받았거나, 개방교합, 과개교합, 비대칭 등의 부정교합이 있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사랑니가 바르게 나왔다면 양치질을 잘해서 최대한 보존하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사랑니 발치는 질병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사랑니가 바르게 나오고 나머지 치아들의 배열도 어느 정도 바르다면 치아 문제로 고생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그러나 좋은 치아를 가지고 있지만 건강에 대한 자만으로 구강위생은 소홀히 하고 술, 담배 등을 즐기면서 받은 복을 차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니 없이 28개의 치아만으로 60대까지 치아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혼재된 상황 때문에 사랑니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최근의 치아 교정은 턱을 작게 하고 입을 뒤로 넣기 위해 치아들을 뒤로 보내는 데 주력하기 때문에 사랑니를 걸림돌 혹은 장애물로 여깁니다. 또 사랑니가 나오면서 앞에 있는 치아들을 밀어 가지런한 배열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해 사랑니를 반드시 뽑으라고 합니다. 필자 역시 치과대학에서 이런 교육을 받은터라 과거에는 사랑니를 열심히 뽑았습니다. 지금은 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치의학은 충치를 가만두지 않기 때문에 사랑니에 작은 점이라도 있으면 뽑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르게 나온 사랑니의 씹는면 충치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며 구강위생을 소홀히 해서 아주 많이 썩은 경우에나 약간의 통증을 일으킬 뿐입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뽑으면 되고 상황에 따라 신경 치료를 해서 살릴 수도 있습니다.

 사랑니 주변의 잇몸이 부으면 사랑니를 범죄자 취급하며 뽑아버리지만 범인은 작아진 턱일 뿐 사랑니는 아무 최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사랑니를 잘 뽑는 치과의사를 명의라고 칭찬합니다. 필자 역시 한때 사랑니를 뽑으면서 자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깊숙히 매복된 사랑니를 빠르고 아프지 않게 뽑는 치과의사가 명의인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위험한 사랑니 발치를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을 받고 최고로 빠르게 빼는 한국의 실력있는 치과의사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랑니가 없거나 사랑니가 삐뚤게 있는 입안은 완벽한 치아 건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사랑니는 보통 20대 전후에 나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근골격이 굳어진 성인이 되어 단단하고 질긴 것을 먹을 때 뒤에 있는 사랑니로부터 도움을 받으라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사랑니는 치과 용어로 제3대구치(3번 큰어금니)라고 부릅니다. 즉, 정식적인 어금니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이름은 '막니'입니다. 생김새도 엉성하고 나온 모양도 이상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수도 있고, 막일이나 거친 노동을 하는 데 적합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바르게 나온 사랑니를 쉽게 뽑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필자는 무척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치아 건강을 악화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니를 뽑고 치과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치아의 병은 시작됩니다.

 사랑니 때문에 잇몸이 안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20~30대 중 사랑니 주변의 잇몸이 붓고 아프다면 사랑니가 삐뚤게 나와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미 전체적인 치아 배열이 이상적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랑니를 뽑아도 사랑니 앞에 있는 어금니들은 시간이 지나면 잇몸병으로 고생합니다. 40~50대 환자 중 사랑니가 바르게 나온 경우가 종종 있는데 잇몸 문제로 치과에 가면 사랑니 때문에 음식물이 끼고 잇몸이 좋지 않으니 빼라고 합니다. 물론 빼야 할 상황이면 빼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니가 바르게 나와서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사랑니 덕분에 나머지 치아들이 이제까지 건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니를 빨리 빼서 치아가 건강해진다면 사랑니를 모두 뽑은 사람들의 잇몸이 좋아야 하는데 40대 이후에도 여전히 사랑니 팡에 있는 어금니들은 뽑히고 임플란트로 대체됩니다. 그것은 유치 발치를 빨리 해야 영구치가 바르게 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치와 교정 환자들이 넘쳐나는 것과 같습니다.

 교합과 관련해서도 사랑니는 교합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에 무조건 빼야 한다고 주장하는 치과의사들도 있는데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복잡한 교정 치료나 보철 치료를 할 때 사랑니가 있으면 치료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브릿지나 틀니를 만들 때 맨 뒤에 있는 사랑니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어금니가 많이 없을 때 사랑니를 통해 보철물의 크기나 높이를 결정할 수 있어 치과 치료가 편해지기도 합니다.

 사랑니가 바르게 나와 있고 이를 최대한 보존하려고 노력한다면 사랑니가 없을 때보다 치아 수명이 10년은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인체에는 필요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니는 사랑입니다.

 

p170.

 잇몸병은 잇몸뼈(치조골)가 줄어드는 현상입니다. 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는 건강한 성인의 경우 평균 46세(남 43세, 여 49세)에 잇몸병이 악화되고, 이후 나이가 들면서 계속 악화된다고 발표했습니다. 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 이유 중 첫 번째가 감기이고 두 번째는 잇몸병입니다. 감기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푹 쉬면 낫습니다. 약을 먹든 그냥 쉬는 시간이 지나면 감기는 사라지고 몸은 회복됩니다. 그럼 잇몸병은 어떨까요? 30대 이하라면 잇몸 치료, 약물 복용 여부와 상관없이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으나, 그 이후의 연령대는 사람마다 속도는 다를 뿐 계속 진행됩니다. 사람의 뼈는 평균 25세부터 소실되기 시작하고 잇몸뼈 역시 이때부터 줄어듭니다. 잇몸병은 기본적으로 노화 현상입니다. 나이 드는 것을 약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잇몸약은 노화 현상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잇몸약이 치료제가 아니라 영양제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습니다.

 

p173.

 잇몸약 광고는 늘 접하지만 충치약 광고는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충치는 해결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식생활을 개선하면 충분히 예방되고, 씹는면 충치는 방치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사이 충치를 비롯해 심한 충치들이 여러 개 있어도 갈고 때우고 씌우면 해결됩니다. 이처럼 충치는 쉽게 치료되기 때문에 충치약은 판매되지 않습니다. 반면 잇몸병은 그 원인을 치석이라 생각하여 치석을 제거해도 구조적 결함은 남아 있기 때문에 잇몸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치과를 다녀도 치아를 빼야 할 상황에 처한 환자는 어떻게든 발치를 피하고 싶어 약국에 갑니다. 이런 이유로 잇몸약이 팔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잇몸약도 구조적 결함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환자는 결국 치과에 와서 치아를 뽑게 됩니다.

 

p175

 치과의 과잉 진료는 주로 치아를 갈고 때우는 충치 치료에서 일어납니다. 많이 받으면 비용도 올라갑니다. 반면 잇몸 치료는 보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여러 번 받아도 큰 부담이 되지 않고 치아 삭제 등의 되돌릴 수 없는 상태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필자 역시 다른 치과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치석을 제거하는 스케일링이나 치근활택술 등의 잇몸 치료는 권합니다.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도 잇몸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을 못 자거나 심한 육체적 피로 또는 정신적 괴로움을 겪으면서 잇몸뼈가 무너지고 치아들이 빠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 역시 노화와 마찬가지로 치과의사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p208

 

 그림 3의 환자는 어렸을 때 어금니 여러 개를 아말감으로 때웠습니다. 30대 초에 구강 검진을 위해 치과에 갔다가 아말감을 금으로 교체할 것을 권유받고 아래 큰어금니에 금인레이를 부착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쯤 스케일링을 하러 또 다른 치과에 갔다가 위 큰어금니에도 금인레이와 레진을 부착했고, 사랑니도 레진으로 때웠습니다. 이후 입안의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작은어금니들이 아파서 다시 치과에 갔습니다. 치과의사는 때운 부분을 조정(삭제)했습니다. 이후 얼굴의 좌우 모양이 바뀌고, 치아들이 불규칙해지면서 귀의 통증과 이명 증상까지 생겼습니다. 여러 치과를 다니면서 교정을 고민하다가 필자의 치과에 왔습니다.

 교합 접촉점을 확인해보니 그림 3처럼 큰어금니 부위에 교합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즉 꽉 씹을 때 위,아래 앞니만 닿고, 위,아래 큰어금니들은 살짝 떠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랑니를 포함해 12개의 큰어금니를 금인레이와 레진으로 때우면서 큰어금니의 높이가 원래보다 그림 1처럼 '서서히'가 아니라 '갑자기' 낮아진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교합 지지의 상실'이라고 합니다. 건물의 기둥들이 전체적으로 갑자기 낮아진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어금니들의 높이가 줄어들면서 위,아래 앞니가 서로 닿게 되었습니다. 어금니의 높이가 낮아지면 앞니가 많이 닿기도 하지만, 꽉 씹다 보면 아래턱은 뒤로 밀리고 저작근이 긴장되면서 턱관절이 압박을 받습니다. 이렇게 되면 턱관절을 비롯한 얼굴 부위 등에 통증이 생깁니다.

 

 그럼 4-A처럼 정상적으로 교합 접촉점이 형성되어야 하지만, 어금니를 때우다 보면 그림 4-B처럼 교합 접촉점이 상실되기 쉽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단 한 개의 큰어금니라도 충치 치료를 하지 않았거나, 위,아래 중 한쪽만 때웠다면 교합 접촉점이 살아있었을 텐데, 사랑니를 포함하여 모든 큰어금니를 때우면서 교합접촉점을 제대로 회복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작은어금니, 앞니, 턱관절이 부담을 받으면서 통증을 느낀 것입니다.

 이 환자는 가지런히 배열된 32개의 치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치아도 깨끗한 편이어서 충치가 아닌 잇몸 질환만 신경 쓰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씹는면을 아말감으로 때우고 20~30대에 금과 레진으로 바꾸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어렸을 때 아말감으로 때우지 않았거나 아말감을 금으로 교체하지 않았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필자는 이 환자의 큰어금니 두 개에 있던 금인레이를 제거한 후 GI로 때우면서 교합 접촉점을 다시 만들어주었고 환자의 증상은 좋아졌습니다. 기존의 낮아진 금인레이와 레진을 모두 제거하고 새로 레진으로 때우면서 교합 접촉점을 살려주는 것이 좋으나, 환자가 만족해서 이 정도로 마무리했고 정기 검진차 3년 후 다시 만났을 때도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례처럼 충치 치료 후 교합 접촉점이 변해서 턱관절 문제를 호소하는 환자들을 보면 많은 충치 치료를 시간 간격을 두고 받았거나 한꺼번에 많이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치아의 외형을 복구해주고 교합 접촉점을 회복해주면 좋아지기도 하지만 애초에 치아 배열이 좋지 않고, 턱의 비대칭 등이 심한 경우 교정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복잡한 교정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인체의 자가치유력 덕분에 교합 접촉점을 회복해주면 환자의 증상이 어느 정도 개선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런 희망마저도 저 멀리 날려버리는 행위가 있는데 바로 '교합 조정'입니다.

 

p212

 40대 중반의 환자는 몇 년 전 스케일링을 받으러 치과에 갔습니다. 스케일링을 받으면서 아래 양쪽 큰어금니의 아말감 상태가 안 좋으니 금인레이로 교체하라고 권유받았습니다. 조언대로 아말감을 제거하고 금인레이로 교체했습니다. 그 후 치아가 시리고 불편해서 다시 치과에 갔습니다. 치과의사는 교합이 잘 맞이 않아서 치아가 시린 것이라면 교합 조정을 해주겠다고 한 뒤, 몇 개의 어금니를 약간씩 갈았습니다. 이후 환자는 훨씬 더 심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교합 조정을 해주었던 치과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고, 환자는 교합을 잘안다는 다른 치과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치과의사가 스플린트를 제작해주었지만 통증은 여전했고, 그러자 제대로 교합 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환자는 그 말을 믿고 다시 교합 조정을 받았습니다. 치과의사는 어금니들을 또 갈았고, 송곳니 유도(제 12장에서 설명함)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위 송곳니에 레진을 부착했습니다. 그러나 환자의 증상은 더 악화되어, 결국 필자의 치과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 환자는 약간 불규칙하고 안으로 경사진 위앞니, 말할 때 잇몸이 보이는 거미 스마일, 아래턱이 왼쪽으로 틀어지고 후퇴한 무턱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이런 모습은 환자의 위턱과 아래턱이 퇴행한 상태로 처음부터 치아 교합과 턱관절이 불안정했음을 의미합니다. 환자의 입안과 치아는 깨끗하고 충치가 생기지 않는 체질로 보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 씹는면을 아말감으로 때우지 않았거나 40대에 아말감을 금으로 교체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금으로 바꾸면서 씹는면의 형태가 바뀌고, 어금니의 높이가 '갑자기' 변하면서 잠재해 있던 불안정이 드러났습니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거나 금인레이를 제거하고 다시 잘 때웠다면 회복될 수 있었지만, 수복물이 아닌 자연치아를 갈아버리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교합지로 검사해보니 위,아래 맨 뒤에 있는 큰어금니끼리만 닿고 있었습니다.(그림 5 화살표) 여기저기 갈아내는 과정에서 교합 접촉점이 사라진 것입니다. 필자는 갈아낸 교두 부분들과 미세한 부분들을 여러 차례 레진으로 때우고 수정했습니다. 이후 저작근의 불편과 통증, 불면증 등 환자의 증상이 개선되었습니다.

 

  교합 조정 이후에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레진으로 때워서 증상이 개선된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치아가 불규칙하고, 입안에 수복물도 많으며, 교합 조정을 받은 치아의 수가 많아서 원래 형태로 복원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레진으로 때우고 크라운을 교체하는 등의 작업으로 해결되지 않고, 교정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또 그런 치료로도 증상이 사라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충치 치료와 교합 조정을 받을 때 자연치아를 갈아내는 행위에 극도로 신중해야 합니다. 특히 턱관절 문제로 고생하는 환자들은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턱 문제로 고생하는 환자들 중 많은 분이 교합 조정을 하면서 질병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턱관절 환자들은 턱 비대칭 등 위턱과 아래턱의 부조화가 심해서 자연치아를 갈면 구조적 불안정성이 폭발합니다.

 

p232

 사람들은 기도의 축소와 자세의 변화가 무슨 문제냐고 반문합니다. 알레르기, 부비동염, 입 호흡, 수면 무호흡, 심혈관 질환, 비만, ADHD, 만성 피로, 이갈이, 상기도 저항 증후군 등 과거에는 드물었지만 현대에는 흔한 질병들이 편안하지 못한 호흡과 그에 따른 자세 변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치과의사들은 입을 넣어 예쁜 얼굴을 만들어주겠다며 발치 교정을 하고 있으며, 환자들도 입이 들어가고 턱이 작은 것을 예쁜 얼굴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극소수의 치과 의사들만 호흡이나 자세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발치 교정 강국으로 유명합니다. 유명한 치과의사인 미국의 행 Hang과 겔브 Gelb가 쓴 호흡 치의학에 관한 논문에서 발치 교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로 한국을 지목했을 정도입니다. 한국인의 건강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p233

 요즘 여성들 사이에서 턱을 깍는 수술이 유행이다. 턱이 갸름하면서 여성스럽기는 하지만 지구력이나 추진력이 약해진다. 당장은 예뻐 보여도 인상학적으로는 50세가 넘어서면 좋지 않다고 본다. 피부에 탄력이 있을 때야 괜찮지만 탄력이 떨어지는 중년 이후가 되면 살이 빠지면서 자신이 원했던 얼굴형이 아닌 초라한 모습이 되기 쉽다. 

- 주선희, 『얼굴 경영』 -

 

p235

 (교정용)헤드기어의 유해성과 부작용에 대한 연구들은 www.righttogrow.org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사이트의 내용 중 일부를 요약하면 "헤드기어는 얼굴의 전방 성장을 억제하여 호흡과 자세에 악영향을 끼친다. 머리 전방 자세 Forward Head Posture 및 거북목을 유발한다.  위턱뼈와 나비뼈(접형골)를 비롯한 두개골을 변형시킨다. 헤드기어로 밀린 위턱과 아래턱은 폐쇄성 수면 무호흡을 야기한다"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최신 의학은 폐쇄성 수면 무호흡이 뇌졸중, 암, 사망의 위험률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으며 각종 전신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봅니다. 수면 무호흡 환자의 얼굴 특징은 위턱과 아래턱이 작고, 혀는 뒤로 위치하여 기도가 좁아진 상태입니다. 발치 교정과 헤드기어는 위턱과 아래턱을 뒤로 밀어 기도를 좁게 하고 그에 따라 자세가 변화되면서 수면 무홉이 생깁니다. 위 내용에 비추볼 때 위턱을 좁게 하거나 뒤로 미는 치과 치료 행위들이 전신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자녀가 이런 치료를 받기 전이거나 받고 있는 중이라면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p243

 구강위생, 불소화, 치아 관리가 개선되면 예방과 치료에 유익한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의 건강한 구강 환경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 턱과 이빨 크기가 맞지 않아 생기는 덧니가 좋은 예다. 과거 사람들은 연구하면 우리의 이빨이 턱에 비해 너무 큰 게 아니라 턱이 이빨에 비해 너무 작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치아 교정의는 발치 교정으로 이빨의 부피를 줄이기보다는 턱뼈를 늘이는 데 중점을 두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 피터 S. 엉거, 『이빨』 -

 

p255

 충치는 여전히 기승을 떨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충치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대니얼 리버먼, 『우리 몸 연대기』 -

 

p256

 농경이 도입되면서 인류의 입안에는 뮤탄스균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뮤탄스균은 치아 표면에 남은 당류, 탄수화물을 분해해 젖산을 생성하고 젖산은 치아의 딱딱한 부분을 부식시켜 충치를 유발합니다. 인류가 보리, 밀 등 탄수화물이 풍부한 무른 곡식을 먹게 되면서 충치균이 구강 생태계의 '터줏대감'이 된 것입니다. 이후 수천 년간 뚜렷한 변화가 없던 입안 생태계는 산업혁명 때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겼습니다. 제분,제당 산업 등이 발달하고 가공 곡물과 당류의 섭취가 급증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유익한 세균들은 거의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충치 및 잇몸병과 관련된 세균들이 차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농업과 산업화를 통해 식량은 이전보다 많아졌지만 영양소의 질과 다양성이 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섭취한 열량의 대부분은 쌀, 옥수수, 감자 등에서 온 것입니다. 대량 생산된 작물과 가공식품은 열량이 풍부하고 오래 저장하기에 용이하지만 고대인이 먹었던 음식에 비해 비타민과 미네랄이 적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전염병이나 영양실조 등은 감소했으나 심장병, 뇌졸증, 2형 당뇨병, 골다공증, 알레르기, 특정 종류의 암, 비만 등의 새로운 비감염성 만성 질환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치, 잇몸 질환, 턱관절 장애는 이런 비감염성 만성 질환의 한 종류입니다. 할머니가 아기에게 뽀뽀를 해서 충치균에 감염되어 충치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식생활로 인해 이미 우리 몸의 세균종이 바뀐 상태이며 과량으로 섭취된 탄수화물을 대사하기 위해 뼈와 치아에서 미네랄이 빠져나가면서 뼈와 치아가 부질해진 것입니다.

 

p257

 가공식품으로 병드는 몸

 

 산업의 발달과 수입품의 증가 등으로 한국에서도 1960년대부터 식생활의 급격한 볂화가 일어났습니다. 생활 수준 향상과 충분한 음식 섭취는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었지만 생활이 편해지면서 움직임은 줄어들고 가공식품들이 넘쳐나면서 많이는 먹는데 영양은 오히려 부족해지고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질병들로 고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들은 화학적으로 처리되고 정제되었으며, 방부제가 첨가되고, X선으로 살균 처리되고 , 인공 영양분이 첨가되어 생명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병이 생기지 않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우리 몸은 가공식품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식품첨가물이 수많은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공되지 않은 음식을 찾기 어렵고, 바쁜 삶 속에 빠르고 간편한 식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늘도 가공식품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조금씩 병약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치과의사 웨스턴 프라이스 Weston A. Price sms 1939년에 쓴 책 『영양과 신체의 퇴행』에서 가공식품의 문제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프라이스는 1930년대 초에 건강한 치아를 보장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특별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구상의 고립된 지역을 10년 이상 여행하면서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치아의 불규칙한 배열을 야기하는 치열궁의 변화(구조적 결함)과 충치 등의 질환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결함이 아닌 영양 결핍으로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박사는 오지들을 탐험하면서 전통적인 음식을 먹고 사는 원주민들은 치아 및 전신 건강이 좋았고, 현대적인 음식을 먹기 시작한 원주민들은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서구의 현대 음식을 먹는 원주민들의 경우 구강 질환은 물론 관절염, 결핵 같은 퇴행성 질환과 감염성 질환이 나타났습니다. 태평양의 같은 섬 거주민이라 해도, 외부와의 교류가 없는 내륙 지방에 사는 원주민들의 건강과 현대적인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항구 근처에 사는 원주민들의 건강 사이에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현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아 현지의 토속 음식만 먹는 내륙 지방의 원주민들은 넓은 치열궁, 고른 치열, 잘 발달된 턱, 잘 생긴 얼굴, 건강한 몸을 갖고 있었으나, 서구의 가공식품을 먹는 항구 근처에 사는 원주민들은 좁은 치열궁, 불규칙한 치아, 작은 턱, 길고 좁은 얼굴, 병에 쉽게 걸리는 몸을 갖고 있었습니다.

 퇴행성 질환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데는 식단의 완전한 변화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상업 제품들이 영양가 높은 전통 음식들을 내몰고 식단에 추가된 것만으로도 퇴행성 질환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흔한 수입 식품은 흰 밀가루, 도정된 쌀, 설탕, 식물성 오일, 통조림 제품들이었고, 프라이스는 수입 식품들을 퇴행성 질환의 주범으로 판단했습니다.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식단은 지역에 따라 많이 달랐지만 모두 가공식품이 아닌 자연 식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오지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설탕, 정제된 탄수화물, 가공된 식물성 오일 등을 전혀 먹지 않았습니다.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즉석 식품은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음식은 집에서 만든 것으로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했습니다.

 프라이스는 원시 종족들의 음식을 분석하여 이와 동일한 음식이나 영양소가 유사한 음식을 심한 충치를 가진 자신의 환자들에게 먹이고 이를 통해 치아 조직을 재생하는 치료를 했습니다. 치열궁이 좁고 치아가 불규칙한 환자들은 치열궁 확대 장치를 이용해 교정 치료를 했습니다. 이렇게 시대를 앞선 치료법을 제시한 것 외에도 프라이스가 뛰어난 이유 중 하나는 중안모 발달의 중요성과 중안모 퇴행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가공식품을 먹기 시작하면서 충치가 생기고, 잇몸병으로 치아가 빠지며, 각종 퇴행성 질환으로 고생하는 원시 종족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얼굴과 치열의 변화(부정교합)를 관찰하고, 주원인을 중안모의 전방 성장 부족으로 파악했습니다.

 당시뿐 아니라 현대의 치과의사들은 중안모의 퇴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위턱을 포함한 중안모의 발달은 치아 배열, 호흡, 자세, 전신 건강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현대인들은 나쁜 식생활로 인해 중안모와 아래턱이 퇴행된 상태로 태어나고, 나쁜 식생활이 지속되면서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ㄴ에 빠져 있습니다.

 서양과 한국이라는 지역적 차이, 20세기 초와 21세기 초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어서 프라이스가 말하는 식생활과 몸의 퇴행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 등을 지금의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얼마나 생명력을 잃었는지, 그에 따라 우리의 얼굴과 치아가 얼마나 퇴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여서 소개했습니다.

 

p263

 충치, 잇몸병, 턱관절 장애는 세 가지를 경고하는 신호입니다. 우리의 얼굴이 구조적 결함이 있는 퇴행된 상태라는 것, 식생활이 나쁘다는 것 그리고 구강위생 등 생활 습관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치아, 턱, 얼굴의 구조적 결함은 전신의 구조적 불균형을 뜻하고, 나쁜 식생활로 치아가 약해진 것은 몸의 다른 부분도 손상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치과에 가서 치료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생활을 개선하고, 규칙적인 운동과 함께 무절제한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입니다.

 

p265

 전문가가 말할 때면 우리는 마치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는 듯하다. 이는 정말이지 무서운 일이다. 그럼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 노리나 허츠, 『누가 내 생각을 움직이는가』 -

 

p266

 술을 마시면 입안에 있던 락토바실러스와 같은 유익균이 감소하고 잇몸병을 악화시키는 유해균이 증가합니다.

 흡연을 하면 담배의 니코틴과 일산화탄소 등 수많은 유해 성분이 입안의 말초혈관을 수축하고 혈류 속도를 늦춰 잇몸 질환이 잇어도 겉으론 피가 나지 않아 잇몸병이 악화되는 것을 못 느낍니다. 그러나 잇몸 속은 염증 때문에 계속 곪고 잇몸뼈는 줄어들어 40대가 되면 치아를 뽑게 됩니다. 담배는 염증 치유 속도를 늦추고 잇몸뼈의 재생도 방해합니다. 그래서 금연하지 않으면 잇몸 치료나 임플란트 등의 치과 치료가 실패하게 됩니다. 차이에 국한된 질병 외에도 술과 담배를 하면 구강암이나 인두암의 발병 확률이 4~15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3-3 법칙에 따른 양치질이 어렵다면 하루 2번, 2분 동안 이라도 세삼하게 양치질을 잘하기 바랍니다.(치약은 세제와 같은 것이므로 아주 조금만 사용하고, 대신 많이 헹구는 것이 좋습니다.) 잇몸이 좋지 않다면 치실, 치간 칫솔, 구강 세정기 등을 사용해 치아 사이를 더 깨끗이 해야 합니다. 술, 담배, 가공식품을 인생의 낙이라 생각하고 포기할 수 없다면 치과 치료비가 비싸다고 불평하거나 치료에 실패해서 치과의사를 비난하는 일은 삼가기 발바니다. 구조적 결함을 가진 얼굴로 태어났음에도 생활 습관의 변화 없이 많은 치료를 받으면서 치과 치료비가 비싸다고, 양심적인 치과가 없다고 불평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양심적인 행동입니다. 치과의사는 여러분의 치아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치아는 당신의 것입니다.

  

p270

 신경 치료는 보험 치료이기 때문에 치과마다 비용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MTA 등의 신재료를 이용하는 치과의 경우 더 비싼 비용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반면 신경 치료 실력은 치과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를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는 낮은 보험 수가입니다. 해외의 신경 치료비는 국내의 2~15배에 이릅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치과의 보험 치료비는 원가의 5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말은 신경 치료 등의 보험 치료는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난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경 치료를 직원에게 시키면서 대충대충 하는 치과의사가 있는가 하면 최신의 지식,기술,장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신경 치료를 하는 치과의사도 있기 때문에 치료의 질적 차이가 생깁니다. 치과의사가 매일 하면서도 늘 어렵게 느끼는 치료가 바로 신경 치료입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신경 치료가 잘되어야 크라운을 오래 사용하는데 우리는 그저 크라운 가격으로 치과를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2차대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유태인 정신의학자라는 특별한 이가 쓴 회고록이자 로고테라피라는 정신 분석/치료법의 핵심을 요약한 내용. 전 세계적으로 250만 부 정도가 판매된 스테디 셀러이다.

 

 내용은 당연히 너무 좋다. 수용소의 회고록이라는 부분은 여태 내가 본 책들은(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 모두 재미었다.) 다 재밋었다. 이 책은 수용소의 에피소드를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연결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던 듯 싶다. 

 

 어려운 개념들은 바로 비유적인 에피소드와 연결해서 이해하기도 쉽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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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얘기하건대 언젠가는!-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p19.

 

 니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p57.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인간이 더 이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서와 감정의 둔화를 의미하는 무감각은 수용자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의 두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징후이다. 수감자들은 마침내 매일같이 반복되는 구타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진다. 이런 무감각을 수단으로 사람들은 곧 자기 주위에 꼭 필요한 보호막을 쌓기에 이른다.

 구타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 일어났으며, 어떤 때는 전혀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빵이 작업장까지 배달되면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그런데 한번은 내 뒤에 섰던 사람이 그 줄에서 약간 밖으로 빠져 나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줄이 삐뚤어졌다는 사실이 감시병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나는 내 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고, 감시병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머리통을 두 번이나 강타하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나는 몽둥이를 휘두른 감시병이 내 옆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 이것은 어른들이나 벌을 받는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인데 -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다.

 정말로 이상한 것은 흔적도 남지 않은 단 한 방의 구타가 어떤 상황에서는 그보다 심한 흔적을 남긴 구타보다 더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나는 눈보라를 맞으며 철로 위에 서 있었다. 험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에 있는 사람들은 일을 계속해야 했다. 나는 자갈을 가지고 철로를 고치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일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딱 한순간 숨을 돌리기 위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삽에 몸을 기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운 나쁘게도 감시병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내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그가 나에게 준 고통은 무례한 행동이나 주먹질이 아니었다. 넝마 같은 옷에 초라한 몰골을 하고 서 있는 나를 인간의 형체를 한 물건쯤으로 여겼는지 말은 물론 욕지거리도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욕을 하는 대신 그는 장난하듯이 돌맹이 한 개를 집어 나에게 던졌다. 그 행동이 나에게는 맹수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가축들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자기와는 닮은 점이 전혀 없어서 벌을 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짐승을 향해 하는 행동같이 느껴졌다.

 구타를 당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주는 모멸감이었다. 한번은 얼어 붙은 철로 위로 길고 무거운 도리를 옮겨야 할 때가 있었다. 만약 한 사람이 미끄러지면 그 자신은 물론 함께 도리를 옮기던 모든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내 오랜 친구 중에 엉덩이가 선천적으로 기형인 장애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선별 과정에서 그와 같은 장애인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난히 무거운 도리를 들고 철로 위에서 절뚝거렸다. 자기가 넘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넘어뜨릴 것 같았다. 마침 그때 나는 도리를 옮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그를 도와 주기 위해 달려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등으로 한 방이 날라왔다. 감시병이 나에게 심하게 욕을 하면서 내 자리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나를 때린 그 감시병은 불과 몇 분 전에 우리를 향해 멸시하는 투로 너희 같은 '돼지들'에게는 동지애가 전혀 없다고 욕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p75.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수용소에서는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는 원시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영적인 생활을 더욱 심오하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밖에 있을 때 지적인 활동을 했던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많은 고통(그런 사람들은 흔히 예민한 체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을 겪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내면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게 손상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체력이 강한 사람보다 수용소에서 더 잘 견딘다는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도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우리는 작업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구령 소리가 들렸다.

 "차렷! 앞으로 갓! 왼발 둘, 셋, 넷. 왼발 둘, 셋, 넷. 첫째 줄 주의! 왼발 그리고 왼발 그리고 오른발, 왼발, 모자 벗어!"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소리다.

 '모자 벗어!'라는 구령이 떨어질 때, 우리는 마침 수용소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탐조등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민첩하게 행진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가차 없이 발길질이 가해졌다. 춥다고 허락 없이 모자를 귀까지 눌러 쓴 사람은 더 큰 벌을 받았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큰 돌멩이를 넘고 커다란 웅덩이에 빠지면서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었다. 호송하던 감시병들은 계속 고함을 지르면서 총의 개머리판으로 우리를 위협했다. 다리가 아픈 사람은 옆 사람의 팔에 의지해서 걸었다. 한 마디도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 때문에 누구든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이 세운 옷깃으로 입을 감싸고 있던 옆의 남자가 이렇게 속삭였다.

 "만약 마누라들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면 어떨까요?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수용소에 잘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고."

 그 말을 듣자 아내 생각이 났다.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수없이 서로를 부축하고,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면서 몇 마일을 비틀거리며 걷는 동안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모두가 지금 아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가고, 아침을 알리는 연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리 속으로 그렸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진솔하면서도 용기를 주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실제든 아니든 그때 그녀의 모습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났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과 설파하는 숭고한 비미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p78.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앞에 있던 남자가 비틀거리자 뒤에 오던 사람들이 그 위에 넘어졌다. 감시병이 달려와서 가지고 있던 채찍을 휘둘렀다. 그래서 내 생각이 잠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그 후 곧 내 영혼은 수감자 신세에서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을 찾아 되돌아갔다. 나는 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물으면 그녀가 대답했다. 다음에는 반대로 그녀가 묻고 내가 대답했다.

 "정지."

 드디어 작업장에 도착했다. 모두들 더 좋은 연장을 차지하기 위해 캄캄한 광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곡괭이와 삽을 들고 나왔다.

 "이 새끼들.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해?"

 곧 우리는 전날 일했던 배수구로 위치를 찾아서 갔다. 얼어붙은 땅이 곡괭이 끝에서 깨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불꽃이 일어났다. 모두들 말이 없었고, 머리는 마비되어 있었다.

 그때도 내 마음은 여전히 아내의 영상에 매달려 있었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나는 아내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때서야 내가 깨달은 것이었는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아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랐다.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수용소에는 오는 편지도 가는 편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내 사랑의 굳건함, 내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때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에 내 자신을 바쳤을 것이다. 나와 그녀가 나누는 정신적 대화 역시 아주 생생하고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한 것이라오."

 

p82.

 

 그날도 우리는 참호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잿빛 새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 위에 있는 하늘도 잿빛이었고, 창백한 새벽빛에 반사되는 눈도 잿빛이었다. 동료가 걸치고 있는 넝마 같은 옷도 잿빛이었고, 얼굴도 잿빛이었다. 나는 또 다시 아내와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당시 나는 내 고통에 대한, 그리고 내가 서서히 죽어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곧 닥쳐올 절망적인 죽음에 대해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음울한 빛을 뚫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절망적이고 의미 없는 세계를 뛰어넘는 것을 느꼈으며,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어디선가 "그렇다"라고 하는 활기찬 대답 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수평선 저 멀리에 그림처럼 서 있던 농가에 불이 들어왔다. 바바리아의 동트는 새벽의 초라한 잿빛을 뚫고 불이 켜진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나니.' Et lux in tenebris lucet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나는 몇 시간 동안 얼어 붙은 땅을 파면서 서 있었다. 감시병이 지나가면서 욕을 했고, 나는 또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자 점점 더 그녀가 곁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으며, 그녀는 정말 내 곁에 있었다. 그녀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손을 뻗쳐서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다. 그녀가 정말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가 파놓은 흙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p88.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개인 감상  : 이는 행복, 사랑의 기쁨같은 유쾌한 감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지만 긍정적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과 달리 부정적 감정은 마음에 달라 붙어 오랜동안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기쁨보다는 고통이라는 감정이 인간의 정신에 끼치는 영향은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p102. 

 

 수용소에 살아남은 사람들, 여전히 일할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야만 했다. 그들은 절대로 감상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전적으로 감시병들의 기분 - 운명의 노리개라고나 할까? - 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들 자신을 환경이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으로 만들었다.

 

p104.

 

 다시 두번째로 환자 호송 계획이 세워졌다. 하지만 이때는 이 계획이 환자들의 남은 노동력 - 비록 14일 동안이지만 - 을 쥐어짜려는 것인지 아니면 가스실로 데려가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요양소로 가는 것인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 저녁 10시 15분 전에 평소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주치의가 다가오더니 넌지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직실에 얘기를 잘 해두었고. 당신을 리스트에서 빼도록 했으니 10시까지 당직실로 가보시오."

 나는 그에게 이것이 내 길이 아니라고, 나는 운명이 정해 놓은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나는 내 친구들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의 눈이 연민의 빛을 띠었다. 마치 내 운명을 알고 있기나 하는 것처럼. 그는 말없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것은 삶을 위한 악수가 아니라, 삶과 작별하는 악수였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막사로 돌아왔다. 막사에는 친한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 정말로 그 사람들과 함께 가기를 원하나?"

 그가 슬픈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네. 나는 갈 거야."

 그러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런 다음 할 일이 있었다. 유언을 하는 것이었다.

 "잘 듣게. 오토. 만약 내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네가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전해 주게. 내가 매일같이 매시간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두번째로 내가 어느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따는 것. 세번째로 내가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짧은 결혼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해 주게."

 

 오토.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아직 살아있나? 우리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 후 자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자네 아내를 다시 만났나? 그리고 기억하나? 자네가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자네에게 내 유언을 한마디 한마디 외우게 했던 것을.

 

(개인 감상 : 아아.. 너무 슬프다..)

 

p126.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당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우리는 언제 석방되는지를 몰랐다(내가 있던 수용소에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수형 기간은 불확실했으며, 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저명한 연구전문 심리학자는 강제수용소의 이런 삶을 '일시적인 삶' provisional existence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마디 더 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수용소 환경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 다른 수용소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고, 어떤 수용소로 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수용소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의 불확실성은 결말이 났지만, 이번에는 결말에 대한 불확실성이 뒤를 잇는다. 이런 형태의 삶이 끝날 것인지 말 것인지, 끝난다면 과연 언제 끝날 것인지 미리 예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고,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퇴행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고, 목표를 세울 수도 없다. 실직한 광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그들이 아주 기이한 형태의 변형된 시간 감각 - 내면의 시간 -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것은 실직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감자들 역시 기인한 '시간 감각'을 경험했다. 시시때때로 자행되는 폭력과 배고픔이 하루를 꽉 채우고 있는 수용소에서는 하루라는 작은 단위의 시간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보다 긴 단위의 시간, 예를 들자면 일주일은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수용소에서 내가 한번은 동료에게 하루가 일주일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고 얘기하자 그 친구도 내 말에 동의한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의 시간 감각이 얼마나 역설적이었던가!

 이와 관련해서는 예리한 심리학적 관찰이 돋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토마스 만은 서로 비슷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 즉 폐결핵에 걸려 요양소에서 언제 나가게 될지 모르는 환자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영적인 발달단계를 얘기하고 있다. 그들도 똑같은 상태, 미래도 없고 삶의 목표도 없는 생존의 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수용소 동료 중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역에서부터 수용소까지 길게 줄을 서서 행진해 들어왔는데, 그 행진이 마치 자기의 장례식 행렬같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삶은 전혀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자기가 이미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삶이 날아간 것 같은 이런 느낌은 다른 요인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갇혀 있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사실 수감자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부분이다)과, 갇혀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 그 요인이다. 철조망 밖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손이 닿을 수 없는 것 그래서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곳에 이루어지는 모든 정상적인 삶은 수감자들에게는 유령과 같은 것이었다. 만약 그가 바깥 세계를 볼 수 있다면 그에게는 그것이 마치 저 세상에서 온 사람이 바라보는 이승과 같이 비쳐졌을 것이다.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앞에서 우리는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수감자들이 공포로 가득 찬 현재를 덜 사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현실에서 현재를 박탈하는 행위에는 어떤 일정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예외적으로 어려운 외형적 상황일 뿐이며,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수용소의 어려운 생황을 자신의 정신력을 시험하기 이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렇게 위대한 영적인 고지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세상일에서의 실패와 죽음을 통해서도 이런 위대함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들은 평범한 환경에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낸다.

 

 평범하고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p131.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병리적 상처를 정신요법이나 정신 위생학적 방법을 이용해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수감자들 중에 몇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그런 목표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으로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sub specie aeternitatis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날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의 극심한 통증(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겼다)을 겪으며 긴 행렬에 끼여서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우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는 우리의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만약 특별배급으로 소시지가 나온다면 그것을 빵을 바꾸어 먹을까? 2주일 전에 상으로 받았던 담배 한 개비를 수프 한 그릇과 바꾸어 먹을까? 한쪽 신발끈이 끊어졌는데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하지? 시간 안에 작업장에 가서 평소에 내가 일하던 작업반에 낄 수 있을까? 그렇지 않고 다른 작업반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고약한 감독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매일 긴 행렬에 끼어서 작업장에 가지 않고 대신 수용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는 카포는 없을까? 그 카포와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다가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햇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자신과 문제는 내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라고 했던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미래 - 그 자신의 미래 - 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행태를 띠고 일어난다.

 수용소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이런 징후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우리 친구때문에 우리는 모두 이 순간을 두려워했다. 대체로 이런 현상은 아침에 수감자가 옷 입고 세수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아니면 연병장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간청과 주먹질, 위협도 효과가 없다. 그냥 누워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이런 위기가 병 때문에 생긴 것일 경우 그는 병실로 옮겨지는 것을 거부하고, 그밖에 도움이 되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한다.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자기가 싼 배설물 위에 그냥 그렇게 누워 있으려고만 한다.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도 더 이상 간섭 받지 않고.

 

p134.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언젠가 나는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이런 위험한 자포자기가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아주 극적인 사례를 보았다.

 F. 우리 구역의 고참 관리인인 그는 그 전에는 꽤 유명한 작곡가이자 작사가였다. 그가 어느 날 나에게 고백했다.

 "의사 선생.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어떤 목소리가 소원을 말하라는 거예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하래요. 그러면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무얼 물어보았는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서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이냐고 물어보았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의사 양반? 나를 위해서 말이요. 저는 언제 우리가, 우리 수용소가 해방될 것인기, 우리의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언제 그런 꿈을 꾸었소?"

 내가 물었다.

 "1945년 2월에요."

 그가 대답했다. 그때는 3월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그래, 꿈 속의 목소리가 뭐라고 대답합디까?"

 그가 내 귀에다 나직하게 속삭였다.

 "3월 30일래요."

 F는 희망에 차 잇었고 꿈 속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의 날이 임박했을 때 우리 수용소로 들어온 전쟁 뉴스를 들어 보면 그 약속한 날에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3월 29일. F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열이 아주 높게 올랐다. 3월 30일, 그의 예언자가 그에게 말해 주었던 것처럼 그에게서 전쟁과 고통이 떠나갔다. 헛소리를 하다가 그만 의식을 잃은 것이다. 3월 31일에 그는 죽었다. 사망의 직접적인 요인은 발진티푸스였다.

 

 인간의 정신상태 - 용기와 희망 혹은 그것의 상실 - 와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의 갑작스런 상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내 친구의 죽음을 초래했던 결정적인 요인은 기대햇던 해방의 날이 오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몹시 절망했으며, 잠재해 있던 발진티푸스 균에 대항하던 그의 저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거의 믿음과 살고자 하는 의지는 마비되었고, 그의 몸은 병마의 희생양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꿈 속의 목소리가 했던 말이 맞기는 맞았던 것이다.

 내가 이 경우를 통해 관찰하고 도출해낸 결론은 후에 수용소 주치의로부터 들었던 말과도 일치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 동안 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조건이나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p137. 살아야 할 이유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수용소에서 사람이 정신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 니체가 말했다.

 

 "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 말은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와 정신위생학적 치료를 하려는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다. 수감자들을 치료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 - 목표 - 를 얘기해 주어야 한다. 슬프도다!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이여!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이런 사람에게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공부해야 했고, 더 나아가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따.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제들, 즉 살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도, 그와는 다른 사람, 그와는 다른 운명과 비교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각각의 상황은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때로는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갈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반면에 어떤 때에는 더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할 때도 있다. 각각의 상황들은 각각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갖는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단 하나만 있는 법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 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p139.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우리 같은 수감자들에게 이런 생각들은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사색적인 이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이 생각들은 우리가 살아서 그곳을 나올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때에도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다. 오래전에 우리는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단계를 통과했었다. 그 순수한 물음은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창조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 것으로 삶을 이해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는 삶과 죽음, 고통 받는 것과 죽어가는 것까지를 폭넓게 감싸 안는 포괄적인 것이었다.

 시련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명백하게 밝혀지면서 우리는 수용소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무시하거나 거짓 상상을 하거나 억지로 만들어낸 낙관적인 생각을 즐기는 것으로 그것이 주는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릴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라는 시를 쓴 것도 아마 시련 속에 이런 기회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릴케는 마치 '작업을 완수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믈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면서 자기가 운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번은 부종 때문에 고생하던 동료에게 어떻게 나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실컷 울어서 조직 밖으로 몰아냈지."

 

p142. 집단 치료의 경험

 

 당연한 일이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집단을 대상으로 정신치료를 할 기회는 제한되어 있엇다. 말로 하는 치료보다는 오히려 올바른 모범을 보여 주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다. 공정하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아 수용소 편이 아닌 것이 분명한 한 고참 관리인은 자기 담당구역 사람들에게 지대한 도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무수히 많이 가지고 있엇다.

 행동을 통해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대개는 말보다 훨씬 효과적인 법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말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어떤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이 폭이 넓어졌을 경우이다. 나는 어떤 외부적인 조건으로 이런 정신적 수용력이 넓어졌을 때, 우연히 막사에 있던 모든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정신요법을 시도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아침 점호 시간에 반란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가 수없이 나열되었다. 만약 지금부터 이런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그 범죄행위 중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낡은 담요에서 조각(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을 잘라내는 행위와 '좀도둑질'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전에 반쯤 굶어 죽게 된 한 수감자가 감자 창고를 부수고 들어가 거기에서 감자 몇 파운드를 훔친 적이 있었다. 절도가 잇었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고, 수감자 중 몇 명은 그 '도둑'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수용소 당국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죄를 진 사람이 누군지 불지 않으면 수용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루 동안 굶기겠다고 했다. 2,500명의 사람들은 물론 굶는 쪽을 선택했다.

 

 하루 종일 꼬박 굶어야 했던 그날 저녁, 우리는 막사에 누워 있었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몇 마디 말이 오갔을 뿐 이고 한마디 말조차도 신경에 거슬렷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불이 나가버렸다. 기분이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 고참 관리인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를 입밖에 냈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병이나 자살로 죽어간 수많은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 죽음의 진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희생자들이 이런 최악의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어떤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했다.

 

 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정신의학에 대해 설명하거나 설교를 하고 싶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을. 동료들을 상대로 정신과적 치료를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춥고, 배고프고, 짜증스럽고, 피곤했다. 하지만 나는 노력해야 했다.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이런 기회를 활용해야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절실한 때였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의 위로의 말부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여섯번째 겨울을 맞지만 지금 유럽의 정세를 살펴보면 우리 처지가 그렇게 최악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련을 겪어오면서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잃은 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의외로 그들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희망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건강, 가족, 행복, 전문적인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 - 이것은 모두 나중에 다시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공정하게 얘기해서 미래가 가망 없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적은지에 대해서도 모두 생각을 같이 했다. 우리 수용소에는 아직 발진티푸스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살아남을 확률을 20명 중의 한 명으로 점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잃거나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그들에게 들려 주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바로 한 시간 후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며칠 안에 전쟁 상황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적어도 각 개인에게는 얼마나 엄청난 기회가, 그것도 아주 갑자기 찾아오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래에 대해서만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 미래에 드리워져 있는 장막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또한 나는 과거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과거에 있었던 그 모든 즐거운 일들과, 그 빛이 현재의 어둠 속에서도 얼마나 밝게 빛나고 있는지를. 이때 나는 또 시를 인용했다. 내 스스로 설교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경험뿐이 아니다. 우리가 그 동안 했던 모든 일, 우리가 했을지도 모르는 훌륭한 생각들,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비록 과거로 흘러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간직해 왔다는 것도 하나의 존재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가장 확실한 존재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내 동료(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가 가끔 한숨을 쉬던)를 향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를 갖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삶의 무한한 의미에는 고통과, 임종, 궁핍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어둠 속에서 내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불쌍한 신의 피조물들에게 우리가 처한 가혹한 현실을 과감하게 직면하자고 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고, 우리들의 가망 없는 싸움이 삶의 존엄성과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 - 친구나 아내, 산 사람, 혹은 죽은 사람, 혹은 하느님 - 각각 다른 시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은 우리가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의연하고 비굴하지 않게 시련을 이겨내고, 어떤 태도로 죽어야 하는지를 알기를 바란다고.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의 희생에 대해서 얘기했다. 희생은 어떤 경우에나 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희생은 그 특성상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물질적인 성공이 중요한 세계에서는 틀림없이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질 희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희생에는 의미가 있었다. 나는 진솔한 말투로 말했다. 우리 중에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한 동료가 하늘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런 종말로부터 구원받도록 해달라는 기도였다. 이런 사람에게 고난과 죽음은 의미 있는 것이다. 그의 희생은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닌 희생이다. 그는 헛되게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바로 그곳, 그 막사에서, 실제로 가망이 없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들의 삶이 갖고 있는 충만한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이 말을 했다. 내 말은 효과가 있었다. 불이 다시 들어와 주위가 밝아지자 누추한 몰골을 한 동료들이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나에게 다가와서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당시 나는 고통 받고 있는 내 동료들의 마음 속에 그렇게 대단한 정신력을 심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히 나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텐데 내가 그것을 그냥 놓쳐버리고 만 것이 틀림없다.

 

p148. 수용소의 여러 가지 인간 군상.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으며,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들은 사회의 모든 집단에 들어가 있다.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악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순전히 한 부류'의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수용소 감시병 중에도 가끔씩은 좋은 사람이 끼어 있을 수도 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성에서도 선과 악의 혼합이라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발견되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을 관통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단층은 아주 심오한 곳까지 이르러 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강제수용소라는 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p156.

 

 자유를 찾은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수용소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가기 위해 꽃들이 만발한 들판을 지나 시골길을 걸었다.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주변 몇 마일 안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대지와 하늘, 종달새의 환호 그리고 자유로운 공간만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그런 다음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은 물론 이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단 한 가지만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그때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말을 되풀이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잇었다. 바로 그 날, 바로 그 순간부터 새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p156. 해방 이후 나타난 현상들.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며칠 동안 견뎌야 했던 극도의 정신적 긴장(예를 들어 게슈타포의 혹독한 심문 같은 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길이 아무런 장애 없이 순탄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정신적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게 심한 정신적 압박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받았던 사람에게는 자유를 얻은 후에도 그 전과 똑같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히 그런 정신적 억압상태에서 갑자기 벗어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위험은 정신위생학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잠수병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 속의 잠함에서 일하던 잠수부가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이런 심리적 단계에서 원색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야만성의 영향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 자유를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제는 억압을 받는 쪽이 아니라 억압을 하는 쪽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이제 폭력과 불의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이런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 자주 발생한다.

 

 어느 날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들을 가로질러 수용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이 나타났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내 팔을 잡고 나를 밭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어린 농작물을 짓밟지 말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짜증을 냈다.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만큼 빼앗았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 내 아내와 아이는 가스실에서 죽었어. 그것으로 더 이상 할 말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도 자네는 내가 귀리 몇 포기 밟는다고 뭐라고 하다니!"

 

 이런 사람들은 아주 천천히 평범한 진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진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귀리 수천 포기를 잃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한 친구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른손 주먹을 내 코 밑에 갖다대며 이렇게 소리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내가 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면 내 손을 잘라버리고 말테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말을 한 친구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나, 그 후에도 나의 가장 친한 동료였다.

 

p174. 정신의 역동성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기보다는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라는 니체의 말에는 이런 예지가 담겨져 있다. 이 말에서 정신치료에도 유용한 어떤 좌우명을 찾을 수 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수감자 중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쓴 또 다른 사람들도, 그리고 일본과 북한, 북 베트남의 포로수용소에서 실시한 정신치료 연구조사도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아우슈비츠에 처음 잡혀 갔을 때 나는 출판을 위해 집필 중이었던 원고를 압수당했다.

 이 이야기에서도 알 수 이는 것처럼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그 동안 숨어 있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homeostasis',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더 효력이 있다. 낡은 아치를 튼튼하게 할 때, 건축가는 오히려 아치에 얹히는 하중을 늘린다. 그래야만 아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들이 서로 잘 밀착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심리요법가는 삶의 의미를 갖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마음에 어느 정도 긴장을 유도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 것이 환자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얘기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요즘 수많은 환자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생각, 즉 자신의 삶 전체가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가져다 조는 악영향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환자들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그들은 내적인 공허, 자신 안의 허무가 늘 따라다니는 것을 느낀다. 앞에서 내가 '실존적 공허'라고 얘기했던 바로 그런 상황에 갇혀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p177. 실존적 공허

 

 실존적 공허는 20세기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현상으로 인간이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된 후에 겪어야 했던 두 가지 손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의 엯하가 시작될 때,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의 일면을 잃게 되었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그런 동물적 본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낙원에서나 얻을 수 있는 그런 안전함은 이제 영원히 인간에게 것이 되었으며, 인간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서 근래에 들어 인간은 또 다른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 동안 자기 행동을 지탱해 주던 전통이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본능도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전통도 없다. 어떤 때는 그 자신조차도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동조주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전체주의)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 조사를 해보았더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유럽 학생들 중 25퍼센트가 크든 작든 실존적 공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학생들은 25퍼센트가 아니라 무려 60퍼센트가 이런 공허감을 느끼고 있었다.

 실존적 공허는 대개 권태를 느끼는 상태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고민보다는 권태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며, 이 문제 때문에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앞으로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동화 과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여가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애석한 것은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 얻게 된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데에 있다.

 

 '일요병'을 한번 예로 들어 보자. 일요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한 주일을 보내고 내면의 공허감이 밀려올 때, 자신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이 겪는 일종의 우울증이다. 자살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실존적 공허 때문에 일어난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적 공허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연금생활자나 나이든 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 역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실존적 공허는 가면을 쓰거나 위장을 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으로 그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에 대한 욕구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된 곳에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가 대신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실존적 과절을 겪은 사람들이 종종 성적 탐민ㄱ에서 그 보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신과 환자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특정한 유형의 피드백 기재feedback mechanism와 악순환의 고리vicious circle formation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징후들이 공허한 상태에 있는 실존에 침입해 들어와서는 계속 번성해나가는 것을 수없이 볼 수 있다. 이런 환자의 경우, 이것은 누제닉 노이로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환자에 대한 심리요법에 로고테라피를 보완하지 않으면 환자가 자기 상황을 극복하도록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실존적 공허에 무언가를 채워 넣으면, 더 이상 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코테라피는 앞에서 얘기한 노이로제noogenic뿐만 아니라 심인성 노이로제psychogenic은 물론 신체성somatogenic(의사pseudo) 신경질환에도 두루 적용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모든 치료법은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로고테라피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매그더 B. 아들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p181.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p183.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psyche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특성을 나는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이라고 이름지었다. 이 말은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떤 것, 혹은 그 어떤 사람을 지향하거나 그쪽으로 주의를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성취해야 할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대면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의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첫번째를 완수하고 달성하는 방법은 아주 분명하다. 하지만 두번째와 세번째에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사람의 의미를 찾아내는 두번째 방법은 어떤 것 - 선이나 진리, 아름다움 - 을 체험하는 것,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거나(마지막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즉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p184. 사랑의 의미.

 

 사랑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 가장 깊은 곳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사랑으로 인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함으로써 이런 잠재능력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사랑을 소위 승화라는 의미에서의 성적 충동이나 본능의 단순한 부수현상(일차적 현상의 결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사랑은 섹스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근원적인 하나의 현상이다. 섹스는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섹스는 그 안에 사랑이 담기는 순간, 아니 사랑이 담겨 있을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신성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랑을 섹스의 부산물 정도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섹스를 사랑이라 불리는 궁극적인 합일의 경험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은 시련을 통해서이다.

 

p186. 시련의 의미.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상황을 더 이상 바꿀 수 없을 때에 - 수술이 불가능한 암 같은 불치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자 -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명백한 사례를 하나 들어 보겠다. 한번은 나이 지긋한 개업의 한 사람이 우울증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다. 내가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그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을 제와하고는 말을 될 수 있는 대로 자제했다.

 

 "선생님. 만약 선생께서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말했다.

 "오 세상에! 아내에게는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요?"

 내가 말했다.

 "그것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런 고통을 면하신 겁니다. 부인에게 그런 고통을 면하게 해주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그 대가로 지금 선생께서 살아남아 부인을 애도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조용히 일어서서 내게 악수를 청한 후 진료실을 나갔다. 어떤 의미에서 시련은 그것의 의미 - 희생의 의미 같은 - 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정상적인 의미의 치료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첫째 그의 절망은 병이 아니었으며, 둘째 내가 그의 운명을 바꿀 수 없었고, 그의 아내를 살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는 바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이제 그는 최소한 자기가 겪고 있는 시련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p199.

 

 광장공포증과 같은 신경성 노이로제는 철학적 해법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로고테라피에서는 이런 경우도 함께 치료할 수 있는 특수한 기법을 개발했다. 이 기법이 사용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서 신경질환 환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증상인 소위 예기 불안anticipatory anxiety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이 증상의 특징은 환자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면 바로 그 증상이 정말로 나타난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커다란 방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은 실제로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훨씬 더 얼굴이 빨개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원은 생각의 아버지'라는 말을 '공포는 사건의 어머니'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컬하게도 공포 때문에 진짜로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꼭 하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그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도한 의도, 즉 과잉욕구hyper-intention는 성적인 문제로 고생하는 환자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남자가 거의 정력을 과시하려고 하면 할수록, 여자가 오르가즘에 이르는 능력을 보여 주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떨어지게 된다. 쾌락은 어떤 행위의 부산물로, 파생물로서 얻어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얻어져야만 한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정도가 되면 그것은 파괴되고, 망가진다.

 

 앞에서 얘기한 과잉욕구 외에 지나친 주의집중, 즉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는 과잉투사hyper-reflection가 발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병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과 같은 임상보고를 보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한 젊은 여성이 나를 찾아와 불감증을 호소했다. 병력을 살펴보니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받은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녀가 불감증을 느끼는 것은 충격적인 경험 그 자체 때문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환자가 그 동안 정신분석에 관한 책을 읽고 자신의 충격적인 경험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 살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런 예기불안은 자신의 여성다움을 확인하고 싶다는 과도한 의욕과 함께 상대편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과도하게 주의를 집중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그녀가 성적인 쾌락의 절정에 오를 수 없었던 충분한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상대편에게 대가없이 헌신하고 자기 몸을 맡김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오르가즘을 느껴야 하는데, 오르가즘 자체가 의욕과 주의집중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 동안 로고테라피 치료를 받은 후, 오르가즘을 체험하는 능력에 집중되었던 환자의 과잉의도와 주의집중은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는 '역투사'dereflected의 상태가 되었다. 그녀의 주의가 적절한 대상, 즉 그녀의 파트너에게 맞추어지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오르가즘을 느끼데 되었다.

 

p210. 

 

 인간이 유일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경학과 정신의학 두 분야를 전공한 교수로서 나는 인간이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환경에 어느 정도까지 굴복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강제수용소를 네 곳이나 전전하다 살아 돌아온 사람으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용감하게 저항하고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것도 사실입니다.

 

p213.

 

 자유는 이야기의 부분이고, 절반의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 책임이라는 적극적인 측면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극적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자유는 방종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내가 동부 해안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보완이 되도록 서부 해안에 책임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214.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의학

 

 아주 오랜 기간 동안 - 실제로 반세기 동안 - 정신의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만 보았고, 그 결과 정신질환 치룔르 하나의 테크닉으로만 간주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런 종류의 꿈은 충분히 꾸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수평선 너머로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심리학의 얼굴을 한 의술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의학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역할을 그저 하나의 기능인으로 생각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환자를 병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기계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여러 개의 사물 속에 섞여 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사물들은 각자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p221.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p226.

 

 집단 신경 증후군의 두번째 요소인 공격성과 관련해서는 캐롤린 우드 셰리프가 주관했던 한 실험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그녀는 인위적인 방법을 써서 보이스카우트 그룹들이 서로 공격성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런 다음 관찰해 보니 소년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지고 행동할 때에만 공격성이 누그러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공동의 목표란 자기들이 먹을 음식이 실려 있는 차를 진흙구덩이에서 꺼내는 일 같은 것을 말한다. 공동의 목표가 생기자마자 그들은 자신들이 달성해야 할 목표의 도전을 받았고, 그래서 서로 협동하게 되었다.

 

p229.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방법을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샬롯 뷜러가 말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사람들의 삶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며 공부하는 것뿐이다."

 

p233.

 

 하지만 만약 피할 수 있는 시련이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시련을 견디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p236.

 

 한번은 한 미국 여자로부터 이런 비난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은 어떻게 아직도 책을 독일어로 쓸 수가 있지요? 그건 아돌프 히틀러가 쓰던 말 아닙니까?

 이 말에 응수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자기 집 부엌에 칼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가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당황스럽고 놀랍다는 제스처를 쓰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살인자들이 칼을 가지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찌르고 죽였는데 어떻게 아직도 칼을 사용할 수가 있지요?"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더 이상 내가 독일어로 책을 쓰는 것은 비난하지 않았다.

 

p237.

 

 삶의 순간들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시간들이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으며, 지나간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일회성이야말로 우리에게 삶의 각 순간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분명 그렇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권한다.

 

 "두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p238.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런 유용성은 그 사람이 사회에 이로운 존재인가 아닌가 아는 기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람이 이루어낸 성과를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 특히 젊은 사람을 숭배하는 것이 요즘 사회의 특징이다.

 실제로 이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가치는 무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과, 인간의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차이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든다.

 만약에 이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인간의 가치가 오로지 현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히틀러의 계획에 따라 자행된 안락사, 즉 나이가 들어서, 불치의 병에 걸려서,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해서, 혹은 고통스러운 어떤 장애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사람들을 죽였던 '자비로운' 행위에 대해 변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오로지 개인적인 모순의 탓으로 돌려 버린다.

 

p241.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이렇게 주장한 적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굶주림에 시달리도록 해보자. 배고픔이라는 절박한 압박이 점점 커짐에 따라 각 개인의 차이는 모호해지고, 그 대신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표현하는 단 하나의 목소리만 나타나게 된다."

 

 감사하게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강제수용소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몰랐다. 그의 환자는 빅토리아 풍으로 호화롭게 디자인된 침상에 누워 있었지 아우슈비츠의 오물더미 위에 누우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말과는 달리 강제수용소에서 '개인적인 차이'가 모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 차이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가면을 벗고, 돼지와 성자의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그런 것을 경험한 후, 우리는 더 이상 '성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맥시밀리언 콜베 신부를 생각한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결국 석탄산 주사를 맞고 살해되었다. 그리고 1983년에 성자로 추대되었다.

 여러분은 원칙에 어긋나는 예외적인 경우만 들었다고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Sed omnia 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그러나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실현시키는 것도 힘들다)" 스피노자 <윤리학>의 마지막 문장이다.

 

 여러분은 우리가 굳이 '성자'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저 '훌륭한'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의지를 본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미사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

 

이책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2009년부터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해가 바뀌면 항상 연초에 읽어야 할 필독서처럼 되어버렸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며 지나간 트렌드와 새로운 트렌드의 대비를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인사이트를 키우려는 이들에게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듯 하다.

이 책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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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 배송 서비스

 국내 새벽 배송 시장의 규모는 2015년 100억 원에서 2018년 4천억 원으로 3년 새 40배나 성장했다. 2019년은 2018년 대비 2배 증가한 8천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켓컬리가 '샛별배송'으로 포문을 연 새벽 배송의 판은 더욱 커져가는 중이다. 헬로네이처, 쿠팡 등 온라인 기반 커머스 업체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백화점, 홈쇼핑 등 전통적인 유통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새벽 배송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새벽 배송을 넘어 당일에 배송을 해주거나 시나 분 단위의 총알 배송까지 배송 서비스의 영역이 확장되는 모양새다. 이마트는 물류 스타트업 '나우픽'과 손잡고 30분 배송을 시작했다. 자체 간편식 브랜드인 피코크 상품을 나우픽의 도심물류센터에 보관했다가 고객의 주문이 떨어지면 문 앞까지 30분 내에 배송을 완료하는 것이다. 티몬은 1시간 배송을 내세웠고, 롯데마트는 오후 8시 전에 주문하면 당일 자정까지 배달해주는 야간 배송으로 차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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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에어프라이어와 삼신가전.

 2019년 가전 시장에서는 에어프라이어와 삼신가전(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의류건조기)이 단연 인기였다. ~~~

 

p38.

 하이트진로에서 병 모양과 색깔, 라벨 사이즈까지 과거 디자인을 복원해 내놓은 '진로소주'는 2019년 4월 출시된 지 두 달 만에 누적 판매량 1천만 병을 넘겼다.~~~

 

p59. 유머로 승부하는 펀셉팅의 향연

 2019년 한국 소비 시장에서 발견된 컨셉팅의 마지막 현상은 바로 유머와 재미를 강조한 '펀셉팅funcepting'이다. ~~~

p100.

 이와 같은 비건 사회로의 진입은 자연스럽게 동물복지에 대한 각별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물복지 개념이 반려동물이나 야생동물의 범주를 넘어 가축과 물고기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영역으로까지 논란이 번져 나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정읍시의 소싸움 대회다. 23회째를 맞이한 정읍민속 소싸움 대회에서 정읍시가 추경예산 1억1,360만 원을 편성하려다 무산된 것이다. 정읍시의회가 "소싸움은 동물 학대로 즐거움을 얻는 비윤리적 행위"라는 동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사단법인 한국민속소싸움협회는 "우리 조상의 혼과 숨결이 살아 있는 전통 유산을 왜 훼방 놓느냐"는 입장이고 동물보호단체는 "초식동물인 소에게 억지로 뱀탐과 개소주를 먹이고 훈련을 시키는 게 학대가 아니고 뭐냐"는 의견을 내며 팽팽하게 맞섰다.

 강원도 산천어 축제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축제장을 찾아와 "산천어 집단 살상 현장"이라며 반대 집회를 연 것이다. 이들 보호단체는 강릉 주문진 오징어 축제, 양양 연어 축제, 영덕 대게 축제 등 수산물을 테마로 한 모든 축제에서 '맨손 잡기 체험'을 퇴출시키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찬반 논란이 있지만 환경과 동물에 대한 관심은 이전과는 확실하게 다른 양상의 논란과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p109.

 자신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것은 캐릭터뿐만이 아니다. 불편한 감정을 대해애주는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연인과 이별하려 할 때 당사자 대신 이별을 통보해주는 '이별 대행 서비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때 필요한 비용은 보통 5만 원에서 10만 원 선이다. 이름, 나이, 사귄 기간 등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주면 '이별'이라는 곤란하고 복잡한 상황을 정리해준다. 국내의 한 이별 대행 서비스 관계자는 "6년 넘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고객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보통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의뢰하고 대다수의 고객들은 이 서비스에 만족했따"고 밝혔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사직서를 내는 것조차 두려운 직장인들을 위해 퇴사 과정을 처리해주는 '퇴사 대행 서비스'도 등장했다. 직장 생활 중 가장 불편하고 어려운 순간인 퇴사를 대신해주는 서비스로, 사직서만 대신 내주는 것이 아니라 퇴사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퇴사 이후의 생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관리해준다. 우선 고객과의 상담을 통해 희망하는 퇴사일을 정하고 퇴사 과정 중의 위험 요소를 미리 확인한다. 이후 회사의 인사 담당자에게 사직 의사를 전달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해준다. 회사 측이 사직서를 수리하면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짐까지 집으로 배송해주며 전 과정에 걸쳐 고객의 퇴사를 세심하게 돕는다. 퇴사 대행 서비스 업체에 따르면 이 서비스의 주된 고객은 퇴사 과정 중에 회사 측과 마찰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는 직장인들이다.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가 이를 거부하거나, 타 회사에서 이직 제의를 받았으나 현 직장으로부터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끝내고 퇴사하라고 종용받는 경우 등이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이직과 퇴직이 잦아지면서 상사와 대면해서 퇴사 절차를 밟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20~30대 직장인들의 니즈를 반영한 비대면 대행 서비스 시장은 더 다양한 생활밀착형 콘텐츠로 무장해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p148.

 밀레니얼 가족은 가족공동체를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부부 개인의 니즈를 존중한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2019년 8월 한국의 성인 남녀 4,83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에서도 개인을 중시하는 밀레니얼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생의 밀레니얼 세대는 성공적인 인생의 모습을 '수입은 적지만 좋아하는 일, 취미 활동을 즐기면서 사는 삶'을 1순위로 꼽았다.(27.5%) 반면, 1970년대생인 X세대인 경우 '큰 걱정 없이 안정된 수입으로 가족과 화목한 삶'이 1위를 차지했다.(66.2%) 가족을 1순위로 두는 기성 세대와 달리, 가족 안에서도 개인이 존중받길 원하는 밀레니얼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p150.

 우선 이들은 외부 기기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사 노동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본인이 직접 처리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기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과거 필수가전으로 꼽혔던 TV나 대형 냉장고는 이제 선택가전이 된 반면, 집안일을 도와주는 의류건조기, 식기세척지, 로봇청소기는 신이 내려주신 가전이란 의미로 '삼신神가전'이라 불리며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실제로 이들 세 가전은 온라인 쇼핑 사이트 G마켓, 옥션에서 높은 매출 신장률을 보였는데 2018년 의류건조기의 G마켓 매출은 3년 전인 2016년 대비 934% 성장했고, 옥션의 경우 974%라는 놀라운 신장률을 기록했다.

 

p165.

 

 "손님은 왕이다!"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처음 이 말을 한 사람은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리츠칼턴의 창업자 세자르 리츠라고 한다. 1898년 그는 파리의 베르사유궁전을 모방해 만든 리츠호텔을 오픈했는데, 당시 이 호텔의 주요 고객은 진짜 왕족이나 귀족이었다. 그야말로 왕이 손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리츠는 "평민이라도 우리 호텔에 투숙하고 돈을 쓰는 고객이라면 그야말로 왕처럼 모신다"라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서비스 정신을 담은 이 문구를 만들었다. 이후 이 표현을 많은 기업들이 고객만족 경영의 모토로 삼으며 현재까지 두루 활용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객을 평등하게 대하겠다는 이 좋은 의미가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다. 손님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왕처럼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서비스 종사자들을 향한 일부 고객들의 비매너 행동이 점점 심해지면서 현대사회의 또 다른 갑질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p171.

 

 일보에서도 노쇼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숙제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보고서에 의하면 무단 예약 취소로 인한 일본 음식 업계의 피해액이 연간 약 2천억 엔(약 2조2,600억 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이에 무단 예약 취소에 따른 손해를 보증하는 회사가 등장할 정도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가르시아'는 지난 2017년부터 식당과 미용실 등을 대상으로 무단 취소 피해 보증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의 무단 취소가 발생했을 때 예약대금 전액을 가게에 보장한다. 2019년 기준으로 이 서비스에 가입한 음식점만 3만여 곳에 이른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월 1만 엔 미만의 비용을 내면 1건당 평균 5만~10만 엔 정도의 노쇼 피해 배상액을 받는다고 한다. 심지어 한 변호사는 무단 취소로 발생한 피해분을 직접 회수하는 서비스도 개시했다. 노쇼가 발생했을 때 변호사가 고객에게 직접 연락해 피해분을 받아내는 것이다. 시험 단계에서만 회수 성공률이 80%에 달했으며, 변호사 수수료는 30% 정도다. 이제 우리나라도 고객 노쇼를 막을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들을 다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고객 스스로 노쇼가 음식점 업주뿐만 아니라 선의의 소비자에게도 피해가 가는 비매너 행동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p182. 2020 나라 살림

 

 2019년 8월, 기획재정부는 2020년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며 '국민중심, 경제강국'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대내외 경제 여건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도 국민의 생활과 복지를 증진하고 사회안전망을 보강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를 위한 총지출은 513.5조 원(작년 대비 9.3% 증가)으로, 2년 연속 9% 대 증가율을 유지하며 최대한의 확장적인 재정 운용을 계속 이어나갈 전망이다. 2020년 예산안의 세부 목표는 ①핵심 소재, 부품, 장비산업의 조기 공급 안정에 총력 지원, ② AI 사회로의 전환을 이끌 DNA+BIG3에 집중 투자, ③ 수출, 투자, 내수 보강 등 경제 활력 제고, ④ 사회, 고용, 교육 안전망 보강 및 취약계층 맞춤형 지원, ⑤ 국민 생활의 편의, 안전, 건강 증진 투자 확대다. 이는 일본 수출 규제 등 경기 하락의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핵심 소재, 부품, 장비의 수입 의존도를 낮춰 경제 제칠을 개선함과 동시에 미래 성장 동력을 확충하여 혁신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중점을 둔 목표라 할 수 있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일자리 예산이 포함된 보건, 복지, 노동 분야의 예산이 가장 크게 증액되어 181.6조 원으로, 총지출 중 35.4%를 차지한다. 증감률로 보면 산업, 중소기업, 에너지 분야 예산이 작년 대비 27.5%로 가장 크게 증가하여 23.9조 원이 책정되었다.

 

 특히 2020년은 미래의 혁신 성장을 가속화하면서도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할 전망이다. 일자리 창출에는 기존의 예산을 더욱 늘려 최대 규모인 25.8조 원이 투입되었다. 이는 전년 대비 21.3% 증가한 수치다. 소비자들의 편의와 안전을 증진하기 위한 예산을 살펴보면, 신기술을 위한 '스마트 인프라' 확충, 노후 시설을 보수하여 재난에 대비하는 '안전 투자' 강화, 그리고 미세먼지 저감 및 건강 증진을 위한 투자를 확대해나갈 전망이다. 나아가 정부는 '포용국가'의 기반을 공고화하기 위해 보건, 복지 분야의 예산을 확대 편성했다. 이를 통해 사회, 고용, 교육 안전망을 보강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아끼지 않을 전망이다.

 

p196.

 

 그 해답으로서 현대인들이 다양하게 분리되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직장에서의 정체성과 퇴근 후의 정체성이 다르고, 평소의 정체성과 덕질할 때의 정체성이 다르며, 일상에서의 정체성과 SNS를 할 때의 정체성이 다르다. SNS도 그것이 카카오톡이냐, 트위터냐, 유튜브냐, 인스타그램이냐에 따라 모두 다른 정체성으로 메시지를 올린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정체성의 분리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은 큰 변화다. 과거에는 '지킬과 하이드'처럼 정체성이 분리되는 것을 해리성 '인격 장애'라고 불렀다. 일종의 정신 질환으로 취급된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정체성의 분리는 아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 됐다. 마치 중국의 변검배우가 가면을 순간순간 바꿔 쓰듯이 말이다. 이 가면을 학술적으로 '페르소나persona'라고 한다.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고, 상황에 맞게 꺼내 쓴다." - 칼 구스타프 융 -

 

 페르소나는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지칭하는 용어다. 원래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구스타프 융이 이것을 심리학에 차용해 인간은 1천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바꿔가며 산다고 설명했다.

 페르소나는 오래된 용어지만, 현대사회처럼 복잡하고 개인화된 다매체 사회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새삼 떠오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최근 몇 년간 나타나고 있는 많은 트렌드를 관통하는 동인은, "사람들이 자기 상황에 맞는 여러 개의 가면을 그때그때 바꿔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복수複數의 가면을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 즉, '여러 개의 가면'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멀티 페르소나는 말하자면 본서의 여러 트렌드는 물론이고 최근의 사회 변화를 이해하는 '만능키'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개념과 배경, 그리고 시사점에 대해 알아보자.

 

p208. 멀티 페르소나의 여러 모습

 양면적 소비의 증가

 

 "앞으로는 초저가와 프리미엄만 살아남을 것이다."

 초저가의 '노브랜드 버거'와 프리미엄 가격대의 '자니로켓 버거'를 동시에 취급하는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 이렇게 강조했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소비의 양극화는 꽤 오래전부터 진행돼왔다. 중요한 점은 "왜 그런가?"다. 예전에는 부유한 소비자는 비싼 프리미엄 상품을, 가난한 소비자는 초저가 상품을 구매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한 사람의 소비자가 저가와 프리미엄 버거를 모두 소비한다. 간단하게 한 끼를 때워야 할 때는 가성비 버거를, 근사한 데이트를 할 때에는 프리미엄 버거를 구매하는 식이다. 이제 소비의 양극화보다는 양면화라는 표현이 더 적확해 보인다. 이들 두 얼굴을 가진 로마신화의 신, 야누스Janus의 빗대 '야누스 소비'라고도 한다.

 

 야누스 소비는 이름을 바꾸며 다양한 형태로 시장에 나타난다. 한 가지 명품에 집중하는 '일품명품주의' 혹은 '일점호화소비'도 자신이 좋아하는 한두 품목에서 럭셔리를 추구하고 나머지는 극도로 절약한다는 측면에서 양면적 소비의 한 예다. '가성비' 트렌드와 '프리미엄' 트렌드가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도 양면성의 반영이다. 이런 양면적 소비를 '멀티 페르소나' 개념을 사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소비자가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고, 그 페르소나의 성격에 따라 가성비냐 프리미엄이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p215.

 

 젊은 사람들이 혼자 여행을 갈 때 자주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저녁마다 술과 노래가 있는 조촐한 파티가 열린다. 제각각 다른 곳에서 온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놀랍도록 솔직하고 내밀한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어차피 나중에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게스트하우스 파티효과'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익명이 보장되거나 느슨한 연대라고 느낄 때, 사람들은 훨씬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가 런닝 크루, 살롱, 소셜다이닝 등 오프라인의 '느슨한 취향 모임'에 빠지는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온라인과 SNS 관계가 상대적으로 강화되면서 생겨나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p221.

 

 라스트핏 이코노미의 도래는 기존의 가격비교 중심의 의사결정이 바뀌고 있음을 예고한다. 소비자들은 이제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꺼려한다. 제품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면 그 이후의 행동은 '즉시 구매'로 이어진다. 가격이 조금이라도 더 싼 채널을 탐색하기 위해 투입하는 노력보다, 유료 멤버십에 가입한 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다음 날 새벽 대문 앞에 물건이 도착해 있는 편리성이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한다. 소비자의 의사결정 기준이 가격 대비 효용에서 노력 대비 효용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2020 전망편, '편리미엄' 키워드 참조). 그래서인지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가성비 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이 차츰 줄어들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소비자의 구매 의사결정 기준이 상품의 효용에서 서비스의 질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고객의 최적화된 만족이 더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p223.

 

 마켓컬리의 경우 상품 카테고리는 많지 않지만 백화점 식품관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일반 마트에서는 구입하기 힘든 상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돈코츠 라멘은 있어도 오뚜기 진라면은 없는 것이 마켓컬리가 내세우는 전략이다.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는 신선식품을 배송하는 데 꼭 필요한 냉장차량의 수요가 가장 낮은 시간대가 새벽이라는 사실과 30대 직장 여성들이 배송을 받기에 집을 비우는 낮 시간보다는 새벽이 더 좋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새벽 배송' 서비스를 내놓았다. 새벽이라는 시간대의 상업적 수요와 고객의 니즈에서 접점을 찾은 것이다.

 

p232.

 

 최근에서는 언박싱에서 진화해 '하울haul'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하울은 주로 특정 제품을 구매한 후 제작자 나름의 방식에 따라 소개하며 솔직한 사용 후기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 브랜드나 물건명, 하울의 대상이 되는 카테고리 뒤에 '하울'을 붙여 '여행 기념품 하울', '스킨로션 하울', '명품 하울'등과 같이 사용되고 있다. 하울은 영상 제작자가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구매한 뒤 박스 개봉 과정을 분석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언박싱 영상과는 차이가 있지만, 포장을 풀고 제품을 처음 만지는 순간, 즉 라스트 터치를 간접 경험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하다.

 

p244.

 

 "뒷문으로 승차해도 괜찮습니다!"

 아침 등교 시간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 내부로 진입하는 셔틀 버스의 줄은 언제나 길다. 버스기사가 승차 시간을 줄이고자 학생들에게 일부는 뒷문으로 타도 괜찮다고 외치지만, 어느 누구도 열린 뒷문으로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똑같이 줄을 섰는데 누군가가 뒷문으로 승차해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은 '극협(극도로 혐오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줄 중간에 아는 친구를 만나 뒷사람의 양해를 구하고 그 친구와 함께 중간에 서는 일도 학생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새치기'에 극도록 민감하다.

 

 이런 현상은 단지 위 인터뷰의 젊은 직원이나 줄 서는 대학생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위 조작 논란, 모여고의 시험지 유출 논란, 교수 자녀의 논문 특혜 논란,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탄일팀 논란 등의 사례에서 보듯 요즘 젊은 세대가 분노하는 경우는 모두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여길 때다.

 

p259.

 

 한국 사회 내의 불평등성이 과거에 비해 점차적으로 개선되어왔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인관, 박현준은 2019년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 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투자와 기회 증가로 부모의 계급이 자녀의 계급에 미치는 상관관계가 점차 감소해왔음을 밝히기도 했다. 1950~1984년 코호트를 거치며 부모 계급과 자녀 계급 사이의 사회적 지위 이동이 훨씬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객관적인 격차가 아니다. 객관적인 부의 격차가 점차 개선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체감하는' 공정성 결핍은 왜 점점 더 강해지는가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성이 낮아졌기 때문에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오히려 증가한 것이라는 역설적인 주장도 있다. 19세기 전반에 활약한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토크빌에 따르면 사회적 신분 차이가 정해져 있던 봉건시대에는 서로의 처지를 비교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반면 사회제도의 발달로 신분 차별이 없어지면 표면상으로는 누구나 상위층에 속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공정성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토크빌의 지적은 우리가 공정한 사회를 추구할 때 직면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모순을 들춘다. 만약 우리 사회가 완전하게 공정하다면, 빈민이나 실패자 등 하위계급에 놓인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사회 탓으로 돌릴 명분이 없어진다. 사회 시스템이 불공정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남들보다 열등하기 때문으로밖에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한 평가 기준이 있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이 공평하지 않다."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열등성을 부정할 수 있다. 평등을 추구할수록 공정성에 대한 욕구가 더욱더 커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p265.

 

 한편 공정함 뒤에 숨어 있는 부정적 측면도 간과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위계 조직과 달리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책임질 사람이 부재하다는 필연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실제로 요즘 직장인들을 두고 소통은 수평적이길 원하지만 책임은 수직적이길 원하고, 업무에 대한 욕심은 많은데 정작 수행하는 방식은 잘 모른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높다. 전문성과 책임감을 보강할 수 있는 조직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p278.

 

 미국 스타트업 '후치Hooch'는 매달 9.99달러를 내면 수백 개의 맨해튼 술집에서 매일 칵테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비슷한 서비스로 국내에는 '데일리샷'이 있다. 한 달에 9,900원의 비용으로 제휴 술집에서 매일 술 한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이 서비스는 출시된 지 1년 만에 누적 회원 수 5천 명을 돌파했다. 집으로 배달되는 술 추천 스트리밍 업체도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6월 설립된 '퍼플독'은 소믈리에 등 와인 전문가들이 고객 취향에 맞춰 선별한 와인을 매달 한 차례 배송한다. 와인 라벨과 원산지, 음용 방법, 관련 스토리 등을 담은 콘텐츠도 함께 보내준다. '술담화'는 전통주를 경험해볼 수 있는 서비스다. 월 3만9천 원에 한 달에 한 번씩 전통주 두 병을 골라 보내주는데, 론칭 7개월 만에 구독자 수가 1천 명이 넘었다. 술담화는 단순히 술을 파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온라인으로 유통 가능한 900여 종의 전통주 중에서 소비자의 취향과 계절에 어울리는 술을 추천해주고 이와 함께 술에 대한 정보, 어울리는 음식, 술에 얽힌 역사 등 다채로운 정보도 제공한다.

 

p285. 삶을 유영하는 노마드 가치관

 

 스트리밍 라이프의 배경에는 정주하지 않고 유동하는 노마드nomad, 즉 유목민의 가치관이 자리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가타리는 1980년에 출간한 『천 개의 고원』에서 홈 파인 공간과 매끈한 공간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홈 파인 공간이 정주의 공간이라면 매끈한 공간은 경계가 없는 유목의 공간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유목의 개념이 적용되는 공간을 노모스라고 칭했는데, 자유롭게 경계를 허무는 현대인의 삶은 노모스에 더 가깝다. 어디서나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되 언제든 다른 스트리밍으로 갈아탈 수 있어야 한다. 시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은 스트리밍 라이프로의 전환을 더 가속화한다.

 

 유목적 삶의 관점에서 일하는 방식이나 형태가 바뀌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인터넷 환경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한 공간에 모여 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프리랜서 직군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거점으로 이동하는 주거 스트리밍이 성장하는 측면도 있다.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Z세대는 평생 17개의 직장과 5개의 직업, 15번의 주거지를 갖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노마드적 가치관이 일부의 특이한 취향이 아니라 현대인을 정의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p295. 초개인화 기술의 3단계

 

 초개인화 기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① 고객 접점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분석 가능한 형태로 데이터화하고, ② 해당 데이터를 AI의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하며, ③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p311. 

 실상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 수집과 인공지능의 활용은 플랫폼 시장을 장악한 GAFA ; Google-Amazon-Facebook-Apple, BATH ; Baidu-Alibaba-Tencent-Hwawei 같은 미국과 중국의 극소수 파워 유저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p354.

 국내 아웃도어 인구가 증가하면서 아웃도어 의류 시장이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인 유통의 두 강자,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의 엇갈린 실적이 눈길을 끈다. 남대문 시장에는 아웃도어 의류와 캠핑 용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늘어났고, 반면 동대문 시장은 클라이밍 전문 장비에 주력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반 손님들로 장사를 이어가던 남대문에는 현재 관련 매장 3곳 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객단가가 높은 마니아와 단골손님을 확보한 동대문에는 30여 곳이 성업 중이다. 크고 넓은 시장을 겨냥했던 남대문 시장보다, 전문 장비에 특화한 동대문 시장이 더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특화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p357.

 

 "한 우물을 파라. 샘물이 나올 때까지."

 

 슈바이처 박사의 유명한 이 좌우명은 특화에 몰입하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일임을 시사하고 있다. 사람은 축적해놓은 것이 있으면 자신감이 붙는다. 한 우물을 집요하게 파는 일은 시간과 노력을 담보로 자신감을 키우는 일이다. 특화에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p372.

 

 오팔세대의 일상적 시간을 공략하면 산업의 지형도까지 바꿀 수 있다. 일례로 가성비 좋은 시간 활용법을 찾는 신중년층 남성들이 죽어가던 당구 시장을 일으켰다. 회식 문화가 변화하면서 저녁시간 활용을 고민하는 중장년 직장인과 퇴직 후 여가 활동 거리를 찾는 남성들이 젊은 시절 자주 찾았던 당구장에 모인 것이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시간을 때우는 곳이 아니라 동문 간 교류와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게임을 즐기는 곳으로 거듭나면서 당구장마다 고교별, 대학별 동문친선대회가 열릴 정도다. 2016년부터는 매년 한 방송사 주도로 '고교 동창 3쿠션 최강전'도 개최되고 있다. 국민생활체육참여 실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참여 활동이 있는 상위 10종목'에서 당구는 2016년 10위에서 2018년 7위로 세 계단 뛰어올랐다. 신중년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속도라고 할 수 있다.

 

p380.

 

 코글린 교수는 연구를 통해 남성은 노후를 바라볼 때 '독립,휴가,충족' 등을 떠올리며 결과지향적인 반면, 여성은 '계획,저축,보험' 등을 떠올리며 과정지향적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이를 한국적인 사례로 생각해본다면 오팔 남성들이 언젠가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반면, 여성들은 베란다에 상추를 키울지언정 그러한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오팔세대가 '바로 지금' 필요한 서비스나 개선점을 알고자 한다면 여성에게, 미래의 '로망'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남성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p383.

 

 편리성이 프리미엄의 요소로 편입되는 배경은 시대적이다.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현대의 젊은 소비자들은 다른 한편으로 그 시간을 다양한 경험과 자기성장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 더구나 옆집이나 친지에게 사소한 부탁도 할 수 없게 된 '약한 연대의 사회'에서는 작은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여러 이유로 소비자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줄여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일자리는 부족해지는 가운데 구직 청년은 물론이고 은퇴 후의 '가교노동'을 원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이다. 이들이 플랫폼화하는 노동시장으로 별 제약 없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p385.

 

 최근 변화 양상을 보면 소비자들이 시간 부족에 허덕이면서 생활의 효율을 극도록 중시하게 되었고, 인간관계의 유대가 약화되면서 삶의 문제를 모두 개인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원자화된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에 더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한 앱 경제는 그 확산 속도가 무척 빠르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2020년의 프리미엄은 소비자의 '편리'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소비자가 원하는 '편리'를 잘 발굴해 이에 기반한 상품,서비스 전략을 기획한다면, 가격 상승에 대한 소비자의 지불 의향을 이끌어내는 '프리미엄' 전략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에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편리가 프리미엄의 핵심 요소가 된다는 측면을 강조해 '편리미엄'으로 명명하는 트렌드를 제안한다.

 

p387.

 

 편리미엄의 첫 번째 전략은 소비자가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줄여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동영상 재생 전에 나오는 프리롤pre-roll 광고 영상을 5초 후에 스킵할 수 있도록 만든 유튜브의 '건너뛰기' 광고 전략이다. 최근에는 연속으로 광고 2개를 시청해야 하거나 건너뛰기를 할 수 없는 15초 광고도 늘었다. 이러한 시간조차 아끼고 싶은 사람들은 '유튜브 프리미엄'을 찾는다. 월 7,900원을 지불하면 광고 없이 바로 영상을 볼 수 있는 유료 서비스다. 동영상 다운로드 등 다른 서비스도 이용이 가능하지만 이 서비스의 핵심은 광고 제거다. 건너뛰는 시간마저 아까운 이들에게는 불필요한 광고 시청보다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p392.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도 고객의 노력을 덜어주는 신개념 서비스들이 프리미엄 셀링 포인트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파트 조식 서비스다. 국내 최초로 커뮤니티 시설에 조식 제공 서비스를 도입한 곳은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서비스 업체를 선정해 조식과 중식을 제공해왔다가 최근에는 저녁까지 제공하는 올데이 All day 다이닝 서비스로 확대했다. 조식 서비스 외에도 고급차 카셰어링이나 하우스 키핑 서비스, 비즈니스 라운지, 북카페, 사우나 등의 편의시설을 입주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다. 또한 서울 반도퐁 반포리체, 서울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서울 서초동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수원 광교 더샵 레이크파크, 성남 위례신도시 자연앤래미안e편한세상, 대구 수성구 SK리더스뷰 등도 식사 서비스를 잇따라 도입했다고 한다. 특히 서울 평창동 롯데캐슬로잔은 입주민에게 주 1회 세차 서비스와 월 1회 침대,소파,카펫의 살균 및 건식 청소 등 호텔식 룸 메이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의 종류에 따라 특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각양각색이다. 개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수고를 덜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대신 해줄 사람을 찾는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강아지를 돌봐주는 펫시터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들 수 있다. 반려견 돌봄 플랫폼인 '도그메이트'나 '와요'를 이용하면 '도그워커(전문 반려견 산책인)'를 1시간에 2만 원 내외의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다. 나물을 먹고 싶지만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움 때문에 꺼렸다면 이제 나물을 데쳐주는 나물 큐레이팅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세차와 같은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다. '인스타워시' 앱을 이용해 세차 서비스를 예약하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세차를 받을 수 있다.

 현대에 인간에게 노출되어 있는 독소적 성분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루고 있다.

독소가 몸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이를 해독하는 방법에 그 초점이 맞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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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 면역계의 기초

 

 면역계는 우리 몸을 지키는 군대와 같다. 서로 다른 5개 부문이 협력하여 면역계를 이루는데, 군대에 비유하자면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연안경비대라 할 수 있다.(의사들은 이를 자가면역반응 또는 항체 IgA, IgG, IgE, IgM, IgD라고 부른다.) 각각 역할이 다르다. 또 체내에는 4가지 다른 면역계가 있다. 각각은 별개로 작동하지만, 같은 매뉴얼에 따르면서 서로 소통한다. 가장 큰 면역계는 소화관(장)으로 전체 면역력의 70~85%를 좌우한다 또 다른 면역계는 간의 쿠퍼 세포(Kupffer cell)이고, 세 번째 면역계는 혈액에 들어 있는 백혈구 세포이다.

 마지막으로 체내의 가장 강한 면역계는 뇌 안에 있는 교세포다. 교세포는 뇌 안으로 들어가는 물질을 여과하는 혈액뇌장벽(Blood Brain Barrier) 바로 안쪽에서 고성능 라이플총을 들고 어떤 외부 물질도 침투하지 못하게 감시한다. 교세포는 체내에서 가장 강력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데, 6연발 권총 정도가 아니라 바주카포를 들고 돌아다니는 셈이다.

 생각하는 능력 덕분에 인간이 지구상에서 '지배종'이 되었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고 영역을 관장하는 대뇌 피질은 인간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이는 대뇌 피질을 보호하는 교세포가 무려 608억 4천만 개에 달한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뇌 피질을 구성하는 뉴런 개수는 163억 4천만 개다. 그러니까 이 넓은 피질에서 교세포와 뉴런의 비율은 거의 4대 1로 유지된다.(정확히는 3.72 대 1이다). 즉, 사고 세포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근육 및 명령중추인 소뇌로 가면 상황이 역전된다. 교세포보다 뉴런 수가 더 많다.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등 뇌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자가면역질환이 운동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4가지 면역계는 적어도 두 종류씩 무기를 가지고 있다. 세포성/선천성 면역계와 체액성/적응성 면역계다. 세포성 면역계는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아주 오래된 면역계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생화학 총탄을 발사하고 염증을 형성하는 보호용 권총 역할을 한다. 반면 체액성 면역계는 백업용 지원 시스템으로, 더 강한 염증을 만들 필요가 있을 때 소환되는 대포에 해당한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기생충, 바람직하지 않은 식이단백질과 펩티드, 심지어 화학물이나 약물 등 어떤 환경적 독소에 노출되든 간에 세포성/선천성 무기는 최초로 반응하는 생화학 총탄이라 할 수 있는 사이토카인(cytokines)을 형성한다. 사이토카인은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무엇이든 찾아내서 파괴하는데,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면역계는 위협 요인에 따라 어떤 사이토카인을 분비할지 결정한다.

 만일 세포성 무기의 방어 전략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면역계는 대포를 소환한다. 이때 체액성/적응성 면역계가 발동하고 군사들이 '항체'라는 표적 미사일을 대령한다. 항체는 노련하게 특정 표적을 뒤쫓다가 어디에서든 침입자를 발견하면 미사일을 발사한다. 혹시 혈액 검사 결과에 '항체 수치 상승'이나 항체 표시 옆에 'H'라고 적혀있다면, 기본 면역계가 이미 제압당해 대포가 나섰다는 의미다. 항체는 혈류를 순환하며 훈련받은 대로 환경적 독소를 찾아 공격한다. 그런데 항체는 불결한 병원균이나 음식물, 손상된 세포를 찾아 파괴한 후에도 2~6개월 동안 계속 혈류에 머문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도 항체 수치가 높다면 면역계가 위협 요인을 발견하고 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처리하려고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신호다.

 또 선천성 면역계(최초 반응자)가 피로해져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에도 항체가 증가한다. 면역계는 우리의 잡다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에 대응하는 역할만으로도 지칠 수 있다. 생화학적 요인(음식 과민성, 환경적 독소 등)이든, 구조적 요인(안 좋은 자세와 장 투과성)이든, 정서적 스트레스든, 전자기장이든 간에 지속적으로 항원이 밀려들면, 우리의 최초 반응자(선천성 면역계)는 녹초가 되어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거나 탄산음료를 마시거나 달콤한 음식을 먹어왔던가? 이런 습관 때문에 몸이 손상되어 툭하면 감기에 걸리거나 건망증을 보이거나 오후 세 시만 돼도 기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이다. 이런 경미하지만 성가신 건강 문제는 선천성 면역계가 지쳐서 약해졌음을 시사한다.

 

p38.

 우울증은 뇌의 전두엽에서 흔히 발생하는 염증의 한 예다.

 

p39.

 미국 알츠하이머병 연구센터의 노화연구소를 운영하는 데일 브레드슨 박사는 현재 알츠하이머병을 호전시키는 치료를 진행 중이다. 그는 2014년 11월 의학저널 <에이징 Aging>에 발표한 최초 논문에서 10명의 알츠하이머병 환자 중 9명을 5년 만에 완전히 회복시킨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의 환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거나 연구소에서 나와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완전히 원래 상태를 회복했는데,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p46.

 피로감, 에너지 부족, 기억력 감퇴, 감정 기복 등의 증상이 반복되는 것은 면역계에서 우리에게 어딘가 균형이 깨졌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독속에 노출되어 점차 죽어가고 있고, 우리 몸의 군대가 몸을 보호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뇌 증상들도 스펙트럼상에서 발생한다. 가벼운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힘을 쥐어짜내야 한다는 의미이고, 언젠가는 완전히 기능이 상실되어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는 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p51. 뇌의 해부학

 

 뇌는 대뇌, 소뇌, 뇌간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대뇌는 뇌에서 가장 큰 부위로, 대뇌 피질이라고도 불린다.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뇌기능인 '생각'이 바로 대뇌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뇌를 떠올릴 때,, 그려지는 것이 대뇌다. 대뇌는 불룩하게 접힌 회백질이 모여있는 부위로, 대장처럼 주름져 좁은 공간 안에 매우 넓은 표면적이 들어있다. 대뇌는 기억, 주의, 인식, 사고, 언어, 의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소뇌는 대뇌의 아래쪽과 뒤쪽에 위치한 공 모양의 조직이다. 소뇌는 감각 정보(촉각과 균형 감각 등)를 해독하고 근육과 결합하여 움직임을 조절한다. 소뇌에서 보내는 메시지 덕분에 인간은 다른 종과 다른 방식으로 몸을 구부리거나 비틀 수 있다. 내가 오래전에 삼림 감시원에게 들었는데, 인간은 언덕의 비탈을 가로질러 곧장 달릴 수도 있지만, 곰은 언덕을 위아래로만 달릴 수 있다고 한다. 끝으로 뇌간은 뇌와 척수를 연결한다. 뇌간은 심박동수, 혈압, 호흡 같은 신체 기능을 제어한다.

 

 

 대뇌 아래에는 변연계를 구성하는 몇 가지의 작은 구조가 있다. 변연계는 뇌에서 가장 원초적인 부위로, 공포, 분노, 쾌락 등의 정서와 동기를 해독하는 데 관여한다. 또 변연계의 특정 구조들은 기억을 생성하고 유지하는 데도 관여한다. 그중 하나인 편도체는 기억을 뇌의 어디에 어떻게 저장할지를 결정한다. 해마는 단기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로, 알츠하이머에 영향을 받는 뇌의 주요 영역 중 하나다.

 시상하부는 감정, 섭식, 수면을 조절한다. 시상은 척수에서 뇌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뇌 부위들은 다음 장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다음 장에서는 장내의 박테리아가 뇌의 다양한 영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예를 들어, 장내 박테리아의 불균형은 혼란스러운 감정, 수면 부족, 단기 기억 상실 등을 초래한다. 이 내용은 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각각의 뇌 영역은 신경들로 이루어진다. 신경은 뉴런으로 구성된다. 뉴런은 뇌 작업의 기본 단위로, 다른 신경세포나 근육, 샘세포(gland cell)로 정보를 전달하도록 설계된 특수한 세포다. 뇌에는 1천억 개의 개별 뉴런이 있으며, 우리 몸은 끊임없이 오래되고 손상된 뉴런을 제거하고 새로운 뉴런을 생성한다. 뉴런은 뇌 호르몬인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서로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한다. 이런 일련의 시스템에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손상되면 뉴런의 메시지가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제대로 이동하지 못한다. 이 내용을 기억해두어야 다음 장에서 신경전달물질 정보의 흐름을 향상시키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해가 될 것이다.

 신경은 미엘린 수초(myelin sheath)라는 일종의 비닐랩 같은 물질로 보호된다. 미엘린 수초는 전선을 감싸는 소재와 매우 유사한 절연체로, 신경이 화학성 메시지를 다음 신경에 전달할 때까지 이를 보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자동차 배터리에서 헤드라이트까지 연결된 전선을 생각해보라. 전선 일분의 절연체를 벗겨내면 전선이 외부에 노출된다. 그렇게 노출된 전선이 자동차 프레임에 닿으면 라이트가 켜졌다 꺼지며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전선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라이트에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절연체가 손상되어도 라이트가 깜빡이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이 뇌에서 벌어질 때 우리는 다발성경화증(MS)으로 향하는 스펙트럼상에 놓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초염기성단백질(MBP)과 미엘린 희소돌기아교세포 당단백질(MOG)에 대한 항체의 생체지표 검사는 매우 중요하다. 이 검사는 신경의 절연체가 파괴되는 메커니즘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검사 결과 수치가 상승하면 다발성경화증으로 향하는 자기면역 스펙트럼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뇌는 지속적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뇌척수액과 혈액, 혈관으로 둘러싸여있고, 모세혈관이라 불리는 혈관들은 각 뉴런에 연결되어있다. 모세혈관의 길이를 끝에서 끝까지 재보면 400마일(약 644km)에 달한다. 일부 모세혈관은 너무 가늘어서 한 번에 단 하나의 적혈구만 통과할 수 있다. 혈액은 매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고, 온몸 구석구석을 순환하는데, 20~25%는 언제 어느 때든 머리 쪽에 몰려있다. 많은 혈액이 뇌에 집중되는 것은 뇌가 매 초당 수만 개의 메시지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연료를 혈액에서 계속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p54. B4 : 혈액뇌장벽 손상

 

 이번 주제인 혈액뇌장벽(뇌척수액과 혈액을 분리하는 장벽) 손상(B4)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다. 우리는 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장에서 시작된다. 혈액의 성분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통해 받아들이는 것, 피부와 눈, 귀를 통해 흡수하는 것 그리고 섭취한 음식에 의해 결정된다.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온 물질들은 우선 소화관을 통과하며 분해, 소화, 흡수되고, 그 결과 생명을 유지하는 유익한 영양분이 되어 혈액 속으로 들어가 몸 전체를 순환한다. 이 과정에서 소화계는 불완전하게 소화된 음식은 물론, 독소와 자극물이 혈액에 흡수되는 것을 막는데, 1차 방어벽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소장 상피이다. 이것이 일종의 거름망 기능을 하여 아주 작은 분자만 혈류로 들어갈 수 있다.

 뇌 안에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자체 보호 거름망이 있다. 구성 물질로 거의 동일하다. 혈액뇌장벽(BBB)이라는 이 방어벽의 주된 역할은 큰 분자들이 혈액을 통해 뇌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뇌의 거름망은 소장의 거름망에 비해 훨씬 미세하다. 그런데 장 내벽이 찢어지면 창자가 새어나올 수 있듯, 뇌의 거름망이 찢어지면 뇌가 새어나올 수 있다. 학자들은 이렇게 찢어진 상태를 혈액뇌장벽 손상(Breach of the Blood-Brain Barrier)이라 하고, 나는 'B4'라 부른다.

 뇌 누수(leaky brain)는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특히 머리가 외상을 입는 경우에 그렇다. 뇌진탕을 입으면 뇌의 거름망이 약간 찢어진다. 더 작은 외상을 반복적으로 입어도 거름망이 찢어질 수 있다. 외상으로만 혈액뇌장벽이 찢어지는 것은 아니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shaken baby syndrome)이나 과격한 운동도 뇌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마라톤, 트라이애슬론 같은 지구력 운동의 장기적 효과에 대해 의문이 든다. 물론 나도 젊어서는 마라톤을 했고, 이 책을 쓰는 지금도 왜 주자들이 달릴 때의 기분을 쿵쾅거리며 거리를 누빈다고 표현하는지 잘 안다. 적당량의 운동은 뇌기능에도 도움이 되고 혈액뇌장벽을 강화하며 혈류에 있을지 모를 종양 세포가 뇌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다. 결국 균형의 문제이다. 혈류로 들어간 식품 거대 분자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면역계가 만든 항체로 인한 염증도 혈액뇌장벽을 손상시킬 수 있다. 가장 악명 높은 식품은 밀과 유제품이다. 기생세균, 바이러스성 기생충,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원인으로 생겨난 염증 역시 혈액뇌장벽을 손상시킬 수 있다. 심지어 설탕을 입혀 바삭하게 만든 빵 껍질이나 크램 브륄레 표면도 최종당산화물(AGEs)이란 새로운 분자를 생성하는데, 이것 역시 장과 뇌의 거름망을 손상시켜 B4를 유발한다. 새까맣게 탄 고기를 물론 바비큐 껍데기도 우리 뇌에 작은 구멍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보통 혈액뇌장벽은 4시간 이내에 빠르게 치료된다. 그러나 외상이 반복되면 B4 상태가 유지되어 거대 분자가 민감한 뇌에 침툭하게 된다. 그 결과 평소에는 조용한 뇌 면역계의 교세포들이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과민반응하며 바주카포를 계속 발사해대어 많은 부수적 손상을 입히고 만다. 부수적 손상이 발생하면 면역계는 일단 혈액뇌장벽을 통과하는 거대 분자에 대한 항체뿐 아니라 손상된 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항체도 생성하는데, 이 항체는 혈액뇌장벽에 대한 항체가 증가하면 문제가 발생하고, 뇌 안에서 염증성 연쇄 반응을 부추기게 된다.

 간단한 혈액 검사를 통해 당신이 B4 척도에서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응급실에서 혈액뇌장벽의 심한 외상을 치료할 때 사용하는 두 가지 생체지표는 S100B과 뉴런특이적 에놀라아제(NSE)이다. 두 지표의 수치가 높으면 S100B와 NSE가 혈류로 새어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혈류 속에 S100B와 NSE가 오랫동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면, 몸은 그 초과분을 제거하기 위해 S100B와 NSE에 대한 항체를 만든다. 따라서 S100B와 NSE에 대한 항체 수치가 높으면 혈액뇌장벽이 계속 찢어져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두 가지 수치는 신체적인 외상뿐 아니라 어떤 원인으로든 혈액뇌장벽이 손상되었음을 알려주는 매우 정확한 생체지표다. 이런 지표들은 혈액뇌장벽이 뚫려서 거대 분자가 뇌 안으로 침투할 수 있고 그 결과 면역 반응이 활성화되어 염증이 생겨 뇌 안개, 건망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발작, 불안, 우울, 조현병, 양극성 장애와 종국에는 치매,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알츠하이머병 등이 발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단 B4를 겪게 되면 뇌 안의 모든 조직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독소에 노출되었으며 그 독소가 어디에 축적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유전적 특성을 물려받았는지가 당신의 약한 고리를 결정한다. 결국 그것이 당신이 걸리기 쉬운 가장 취약한 질병이 된다. 유일한 차이는 분자 모방이 어느 부위에서 발생하느냐는 것뿐이다. 만약 밀의 A-A-B-C-D가 소뇌와 유사하게 보이면, 소뇌에 대한 항체가 증가하여 소뇌 조직이 파괴되고, 소뇌 변성이 징후가 나타날 것이다. 만약 유제품의 A-A-B-C-D가 미엘린 수초와 유사하게 보이면, 수초에 대한 항체가 증가하여 수초 조직이 파괴되면서 수초 변성의 징후가 나타나고 운동 기능이 상실되어 다발성경화증으로 번질 것이다. 독성 화학물질인 비스페놀 A에 대해 분자 모방이 일어난다면, 뇌의 여러 부위에 대한 항체가 증가할 것이다. 옥수수, 토마토, 시금치, 콩, 담배에 대해 분자 모방이 일어난다면, 뇌신경과 시신경에 있는 아쿠아포린-4 세포에 대한 항체가 증가하여 뇌기능장애와 함께 시력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메커니즘은 대부분의 만성 뇌기능장애에서 매우 유사하게 나타난다. 먼저 혈액뇌장벽 손상이 발생한다. 그러면 우리가 노출된 독소가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계의 반응을 자극하여 해당 독소에 대한 항체가 증가하는데, 그런 독소는 우리 몸의 조직과 매우 유사하여 항체들이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게 된다. 이런 메커니즘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공격받은 조직이 더 이상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증상이 나타나며, 미미하던 증상이 점차 악화되는 것이다.

 자녀의 주의력 결핍 장애, 부모님의 기억력 상실, 본인의 만성적인 뇌피로 등 어떤 문제로 고민하든 간에, 이 메커니즘을 해결해야 치유, 재생, 뇌기능 개선이 가능해진다. 애당초 우리가 물에 빠져 하류로 흘러가다 폭포를 타고 떨어져 증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A-A-B-C-D는 무엇이었을까? 수은, 밀, 유제품, 유독한 공기였을까? 무엇이 체내에 축적되어 뇌 안에 염증을 일으키는 것일까?

 구명조끼가 익사를 막아주겠거니 기대하며 무작정 증상에 대한 약만 복용하는 실수를 막기 위해, 우리는 먼저 B4가 발생했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혈액뇌장벽을 복원하고 노폐물이 뇌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고 염증성 연쇄반응을 진정시키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것이 알츠하이머병과 그 밖의 뇌기능 악화를 역전시키는 근본적인 지침이다. 유발 인자를 파악하여 제거하고, 최상의 신경을 재생하기 위한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뇌 건강을 회복하는 길이다.

 

 

-----(여기서부터는 일단 앞글만.. 뒤에 다시 보충)

 

 

p60. 관류 저하는 혈액 순환이 감소된다는 의미다.

 

 심장 기능이 뇌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 

 

p63. 네오에피토프 : 자가면역 스펙트럼이라는 최초 인식

 

 면역계가 뇌에서 자가면역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아주 흔한 유발인자는 네오에피토프(neo-epitope)이다.

 

p66. LPS에 대한 몇 마디

 

 동맥경화증은 심장을 오가는 혈류를 감소시키는 메커니즘 중 하나로, 면역계에서 우리 몸을 보호하려는 또 다른 시도다.

 

p71. 알츠하이머병의 재정의

 

 알츠하이머병은 자가면역과 뇌의 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워낙 이용할 만한 연구 자료가 많아 이 책 전반에서 언급될 것이다.

 

p79.

 

 복통은 제산제를 복용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중요한 건 거름망은 여전히 찢어져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더욱이 제산제는 오늘날 네 번째로 흔하게 처방되는 약물임에도 소화기관에 큰 혼란을 일으킨다. 제산제는 염산의 생성량을 극적으로 줄이는데, 사실 HCL은 우리에게 유익하고 필요하다. 지나치게 양이 많아질 때 문제가 되는 것뿐이다. 그런데 PPI로 HCL을 대폭 감소시키면, 바람직하지 않은 박테리아가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처럼 바람직하지 않은 박테리아가 장을 압도하는 상황을 장내세균 불균형이라고 부른다.

 

p82.

 

 마이크로바이옴 구성물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에 따라 건강한 면역 반응을 형성할 수도, 몸을 질병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불균형한 마이크로바이옴은 장 투과성 또는 장 누수를 유발하는 염증성 환경을 조성한다. 장 누수는 뇌와 관련해서도 나쁜 염증을 일으키고 뇌 호르몬 생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울증, 불안, 인지 기능장애, 사회적 기능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뇌와 신체 전반에서 염증이 증가하여 알츠하이머병, 불안, 기억력 상실, 뇌 안개, 감정 기복 등이 나타날 위험이 높아진다. 또 분자 모방이 발생하는 환경을 만들어, 해로운 음식과 분자 구조가 비슷한 자신의 뇌 영역들이 공격하게 만든다.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뇌 호르몬의 불균형을 화학적으로 무효화하여 일시적으로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 이런 약물은 훌륭한 구명조끼다. 약이 필요하다면 복용하라. 그렇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내면의 격렬한 폭포에 맞서 허우적댈 것이다. 애초에 호르몬 불균형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84.

  

 뇌 호르몬은 두뇌 속도부터 감정 기복과 신진대사까지 뇌의 각종 작동 방식을 제어한다. 만약 현재 우울증을 앓거나 불안감을 느낀다면, 장에서 시작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모든 세로토닌의 90%가 뇌가 아니라 장에서 분비되고 저장된다.

 

p88.

 

 연령 스펙트럼에서 노인의 반대편에 있는 자폐 아동에게서 글루텐에 대한 항체가 발견되었다. 우리는 앞서 2장에서 자폐증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폐증이 관류 저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알아보았다. 자폐증은 워낙 복잡한 병이라 이제 막 여러 가지 원인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자폐증은 뇌에 영향을 미치는 식품 과민성 측면에서 분자 모방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다. 나는 <영양 신경과학> 저널에 발표한 한 연구 논문에서 자폐 아동의 87%가 글루텐, 달걀, 유제품에 대한 항체를 보유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비해 자폐가 아닌 아동은 1%만이 그런 항체를 보유하고 있었다. 항체 및 그와 관련된 염증이 초래하는 손상이 아마도 자폐 아동이 보이는 몇 가지 신경 증상의 원인일 것이다.

 

p89. 해로운 빵.

 

 곡물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식량 자원으로 인간의 행동과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92. 켈리를 만나보자.

 

 켈리는 내 환자는 아니었지만, 나는 켈리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

 

p94. 소젖에는 문제가 너무 많다.

 

 장 누수와 뇌 누수를 일으킬 수 있는 식품은 밀뿐만이 아니다. ~~~~~

 

p106.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의 최신보고서는 식량과 담수 부족 확대, 극단적인 기상 현상, 해수면 상승, 생물 다양성 감소, 지구 곳곳의 인간 거주 가능 지역 축소에 따른 인류의 집단 이동, 분쟁, 유혈 사태등을 기후 변화와 연결 짓는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 식량이 부족해지면, 특히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부족해지면 우리 식단에서 항산화물질이 결핍될 것이다. 항산화물질과 폴리페놀은 염증의 불을 끄는 소화기 역할을 하는 만큼, 두 가지가 결핍되면 염증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진화하기가 매우 힘들어질 것이며 궁극적으로 혈액뇌장벽 손상(B4)이 발생하고 뇌기능이 저하될 것이다.

 

p109.

 

 독소가 뇌에 도달하면 그 결과는 정말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자폐증 및 발달장애 모니터링 네트워크는 2014년 미국 어린이의 68명 중 1명꼴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앓고 있다고 보고했다. 내가 1980년에 치료를 시작하던 때 자폐증 유병률은 대략 1만 명중 1명꼴이었다.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의 스테파니 세네프 교수는 살충제의 광범위한 사용에 따른 글리포세이트 노출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연구하면서, '현재의 속도대로면 2025년에는 2명 중 1명의 어린이가 자폐증을 앓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몸의 해독 시스템을 혹사시키는 유독성 식품과 화학적 독소 때문에 오늘날 자폐증 발병률이 그토록 높은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p124. 염소 필터 샤워기 --> 알아보자.

 

p125.

 

 독소 노출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작은 변화는 많다. 예를 들어 동네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받을 때 컵 뚜껑이 덮여있으면 즉시 뚜껑을 버리거나 처음부터 뚜껑 없이 달라고 요청하자. 왜 그럴까? 뜨거운 커피에서 나온 김이 BPA로 제조된 컵 뚜껑 아랫면까지 올라갔다가 응결되어 비스페놀 A가 가득한 채로 다시 커피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

 

p131.

 

 인체에서 가장 보호받는 조직은 엄마 뱃속에서 있는 태아다. 엄마 몸에서 해독 및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아기에게 전해지는 물질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요즘 태아들이 엄마의 혈액에서 수은을 흡수하고 특히 뇌의 수은 농도는 엄마보다 40%나 높아서 신경계 발달에 치명적이라니,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감이 올 것이다. 아기 몸의 수은은 대부분 엄마의 치아 충전재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가임기 여성들이 임신 전에 수은 충전재를 제거하고 반드시 해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p161.

 

 ApoE4 변종은 다양한 인종 집단에서 만발성 알츠하이머병의 가장 큰 유전적 위험인자로 알려져있다. ~~~~

 

p165.

 

 장 투과성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으면 가장 약한 고리에서 계속 손상이 발생하고, 그 부위는 주로 뇌인 경우가 많다. 유감스럽게도 장 투과성이 완치된 경우에도 우리 몸은 한 번 임게점을 넘었고 밀이 문제가 되었던 사실을 기억한다. 그래서 밀에 대한 기억B 세포를 생성하여 밀 과민성을 평생 유지한다.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하고 글루텐을 피해야 한다. 조금만 임신할 수 없듯, 조금만 밀을 먹을 수도 없는 것이다.

 

p185.

 그의 결론은 항상 동일했다. 환자가 "왜" 현재의 증상을 가지고 있는지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p188. 뇌건강을 위한 실천 항목

1. 운동량 늘리기(구조)

2. '3대 유해식품'인 밀, 유제품, 설탕을 배제하고 채소, 과일, 자연산 어류를 늘린 식단으로 변화(생화학)

3. 다음과 같은 해독용 영양소 보충(생화학)

1) 엽산(비타민 B9) : 엽산(Folate)이란 이름은 나뭇잎을 의미하는 라틴어 '폴리움(folium)'에서 유래했다. 실제로 잎이 많은 채소들이 엽산의 최고 공급원이다. 활성 상태의 엽산은 약칭으로 5-MTHF이다.

2) 코발라민(비타민 B12) : 여러 형태의 비타민 B12 가운데 메틸코발라민은 해독 과정에 조금 더 도움이 된다.

3) 비타민 D3 : 충분한 양의 비타민 D3를 섭취하면 혈액 검사에서 비타민 D3 농도는 50~75ng/ml(나노그램/ml)이 나온다. 내 생각에는 적절한 수준의 비타민 D3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의 가장 중요한 지표이므로 정기 검진으로 매년 점검해야 한다.

4) 생선기름(물고기에서 짜낸 기름) : 생선기름의 좋은 지방은 몸에 유익하다. 뇌세포를 생성하여 뇌기능을 향상시키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안정시키며, 장 투과성을 치유하는 유전가를 활성화시킨다. 또 자가면역질환을 줄이거나 때로는 호전시키기도 한다.

4. 체중 감량과 해독을 위해 간헐적 단식 도입하기(생화학)

5. 밤에 잠자는 동안 집에서 무선 라우터 꺼두기(전자기장)

6. 잠자는 동안 알람이 필요하더라도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기(전자기장)

7. 수면 개선 : 필요하면 멜라토닌 보충제 복용하기(하룻밤에 2~5밀리그램)(마음가짐)

8. 명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스트레스 줄이기(마음가짐)

 

p194.

 금단증상을 줄이려면,

1.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자. 밀, 유제품, 설탕 섭취를 중단하면 이뇨 효과가 나타난다. 섭취 중단 첫 주에 체중이 줄어든다면, 아마도 과도한 염증으로 인한 수분이 감소한 탓일 것이다.

2. 음식에 평소보다 약간 많은 양의 소금을 추가하자(바다소금을 권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주 다리에 쥐가 나는데, 소량의 바다소금으로 이를 막을 수 있다. 별것 아니다. 그냥 매일 소금만 조금씩 더 먹으면 상태가 좋아진다(의사가 달리 지시하지 않는 한). 소금을 혀에 직접 넣어보라. 만약 우리가 나트륨이 부족하고 '소금은 무조건 몸에 나쁘다'는 믿음(사실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을 버릴 수 있다면, 소금이 정말 맛있어서 조금 더 먹고 싶어질 것이다. 약간의 소금으로 즐거운 만족감을 얻는다면 우리 몸이 '감사하다'고 말할 것이다.

3. 침착성을 유지하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기에는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지 말자. 편안하다고 느낄 때 시작해야 바디버든을 줄이고 금단 증상도 줄일 수 있다.

4. 계속 움직이자. 운동은 증상에 대한 잡념을 떨져버리고 훨씬 건강한 방법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엔도르핀을 생성한다.

 

p199. 애나를 만나보자.

 

 이 이야기는 내 환자의 사례는 아니지만, 내가 진심으로 관심 있게 지켜본 연구다. 나는 1990년에 이 연구가 발표된 이래로 내 모든 진료실에 이 연구 보고서의 사본을 보관해왔다. 왜냐하면 이 연구는 근골격계 치료가 왜 그토록 많은 다른 건강 문제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전체 플랫폼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연구 보고서를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이야기에는 만성적인 골반 통증과 소변 문제를 호소하며 의사를 찾아온 39세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를 애나(Anna)라고 부르자.  애나의 골반 통증은 오래전 근가 18세일 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직후에 시작되었다. 통증은 몸의 오른쪽에서 시작되어 점차 왼쪽에서도 나타났다. 애나의 첫 번째 의사는 그녀가 맹장염에 걸렸다고 추측했기 때문에 애나는 맹장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추후 병리학 보고서에 따르면 그녀의 맹장은 정상이었고, 골반의 통증은 여전했다.

 몇 달 후 애나는 생리 주기가 심하게 고통스러워졌고, 골반 통증이 계속되었으며, 자꾸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애나는 검사와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고, '스트레스에 따른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자, 이것은 어떤 종류의 진단인가? '스트레스에 따른'이라는 증상이 본질적으로 정신질환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애나의 머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그녀의 과민한 대장이었다. 애나가 병원에서 퇴원할 때도 대장 기능에는 차도가 없었고, 애나는 평생 이 병과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며, 그러지 않으려면 스트레스를 줄일 방법을 찾으라는 말을 들었다.

 2~3년이 지나자 애나는 질 분비물을 경험했고 방광과 질 감염이 반복되었다. 여러 가지 항생제를 사용한 치료를 받았지만,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될 뿐이었다. 애나는 음순과 음핵 양측에서 생식기 통증이 나타났다. 성관계는 극도로 불편해졌고 오르가즘은 불가능했다. 극심하게 고통스럽던 생리는 과도한 출혈로 더욱 심해지고 불규칙해졌다. 애나는 생리 주기를 조절하기 위해 에스트로겐 요법을 처방받았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애나는 26세가 되었을 때 임신을 했다. 그녀는 요통과 양쪽 허벅지의 간헐적인 통증을 겪었고, 감각 마비와 따끔거림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애나는 오랜 진통 끝에 정상적인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2년 후 애나는 다시 임신했지만 5개월 반 만에 자연 유산을 겪었다. 몇 달 후 애나는 다시 임신했지만 똑같은 증상을 보였다. 이번에는 임신 7개월까지 임신 상태를 유지하다가 딸아이를 조산했다. 

 이 출산 후 애나의 골반과 음부 통증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세 차례나 탐색적 복부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첫 번째 수술에서 만성 설사와 비교적 새로운 증상인 지속적인 완전 요폐, 즉 소변을 전혀 볼 수 없는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증상을 설명해줄 만한 어떤 비정상적인 점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애나는 일부 증상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며 부분 자궁 절제술에 동의했다. 하지만 자궁 절제술 후에도 방광 기능이나 질 주변의 감각 상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로 퇴원했다.

 그 후 10년 동안 이 모든 증상은 지속되고 악화되었다. 하지만 전통 의학에서 더 이상 시도해볼 방법이 없자, 한 친구가 애나에게 척추지압사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맨 첫 번째 검사에서 척추지압사는 그녀에게 다양한 운동을 시켰고 그녀는 약간의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검사가 끝나자 척추지압사는 애나가 자각 증상은 없지만 확연한 L5 디스크 돌출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만약 어떤 의사든 애나의 등을 엑스레이로 찍는다면, 디스크 문제를 발견했을 터였다.

 애나는 성실히 치료법에 따르면서 나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거의 25년간의 고통이 4주 만에 사라졌다. 반복되던 방광염이 끝났고, 소변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만성 설사는 사라졌고, 고통 없이 완전한 기능으로 남편과 성관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척추지압사가 무슨 치료를 한 것일까? 허리 아래쪽의 척추를 조절하고 아주 부드럽게 견인했을 뿐이다. 애나가 겪은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애나의 모든 증상은 18세 때 계단에서 떨어진 시점에서 시작됐다. 애나는 그때 등에 불균형이 생겼던 것이다. 이 상태가 뇌에서 신경을 통해 골반 부위까지 보내는 메시지에 영향을 미쳤다.

 이 여성이 수십 년간 얼마나 심하게 고통 받았는지를 생각해보라. 그녀는 유산을 했다. 20년도 넘는 인생을 고통과 기능장애 속에서 보냈다. 계단에서 떨어져 등이 균형을 잃었는데도 그녀가 만난 어떤 의사도 그녀의 척추를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몸의 세포는 신경에 의해 조절된다. 뇌는 모든 세포에 방향을 제시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어떤 이유로든 뇌의 메시지 전달이 중단되면, 그 세포는 메시지를 명확히 수신하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애나가 경험했던 모든 증상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애나의 경우, 척추 불균형이 해소되자 신경이 관절의 빈 구멍을 통해 척추 아래로 전달하는 뇌의 메시지를 다시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조광 스위치를 최고의 조도로 올려놓자 뇌에서 흘러나오는 '원기'가 최대한의 출력으로 전달된 것이다.

 척추지압요법으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어리석다. 하지만 척추지압요법으로 어떤 병이든 고쳐볼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지극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다. 대니얼 파머(Daniel Palmer) 박사는 1895년에 척추지압요법이 왜 실질적으로 치료 효과를 내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에 척추지압사라는 직업을 만들었다. 파머 박사는 척추 불균형이 척추로부터 멀리 떨어진 다른 신체 부위의 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최초로 입증한 사람이다. 그 후 수천만 명의 환자가 척추지압요법으로 치료를 받았고, 요통, 두통, 뇌기능장애, 근육통부터 장기 기능장애까지 다양한 질병이 호전되고 개선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의 건강 피라미드에서 구조의 불균형이 문제라면, 어느 부위에서 증상을 경험하든지 간에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p204

 만일 목에 염증이 생기면, 그 염증은 눈, 귀, 혀, 미뢰, 심지어 심장으로 가는 메시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로는 척추에서 오는 메시지를 처리하면 소화 문제와 속 쓰림 증상이 해결된다. 

 염증은 때때로 전선 중 하나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그러면 맨 뒤쪽 오른쪽에 있는 집들은 괜찮다. 만약 구획으로 들어오는 중계회선인 메인 케이블(뇌)이 손상된다면, 맨 오른쪽에 있는 집(신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맨 왼쪽에 있는 집(쓸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것이 나이 들수록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를 포함하여 최적의 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p210

 가장 좋은 수면 자세는 반듯이 누워 자는 것이다. 머리에 베고 자던 베개를 빼서 무릎 밑에 집어넣자. 그리고 수건을 돌돌 말아서 고무줄로 고정시킨 다음에 목 밑에 넣어라. 수건이 베개가 된다. 그렇게 무릎 아래에는 베개를, 목 아래에는 수건을 넣고 10분간 있어보자. 만약 10분 내에 잠들지 않으면 수건을 바닥에 내던지고 예전 자세로 돌아가 다시 잠을 자자. 매일 밤 10분씩 똑같은 자세로 잠을 청해보자. 결국에는 그런 자세로 잠들게 될 것이다.

 이 방법은 척추와 목의 근육, 인대, 힘줄의 이완을 유도하여 원래 설계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한다. 점차 작은 수건에서 큰 수건으로 옮겨가면 척추 전만이 깊어진다. 그러면 전만 방향으로 곡선 형태를 띄는 정형 외과 베개로 바꿀 수 있다. 이 베개는 돌돌 말은 수건과 같은 위치가 곡선 형태로 불룩하다. 이제 좀 더 유연해진 목은 정상적인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 6개월 후에는 목 아래에 정형외과 베개, 무릎 아래에 일반 베개를 베고 잠들게 되는데, 이제는 목이 똑바로 정렬되어 전보다 훨씬 푹 자게 된다. 이것은 목 요가와 같은 효과가 있다.

 

p213. 신발 뒤축을 살펴보자.

 너무 흔한 일이지만 만약 신발 뒤축의 바깥쪽이 닳아있다면, 발 구조가 균형을 잃어 척추가 더 빨리 마모되고 염증을 일으키며 훨씬 이른 나이에 관절염에 걸릴 것이다. 발을 디딜 때마다 갑자기 관절에 무리를 가하며 균형을 잃는 상태가 계속되어, 그 충격이 목뼈랑 연결된 머리까지 ㅣ올라올 것이다. 

해결책 : 척추지압사를 찾아가자. 단기적으로는 신발 굽을 갈거나 새 신발을 신자.

 

p214. 운동시 적정 심박수.

 먼저 1분당 180회에서 본인 나이를 빼고 5회를 더하거나 뺀 수치를 심박 모니터의 목표 범위로 설정한다. 만약 평소 맥박이 72회 이하라면 72와의 차이만큼 180에서 빼고 계산하고, 혹시 진단받은 질환이 있다면 5회만큼 더 차감하자. 예를 들어, 나는 65세이고 건강하므로 나의 목표 범위는 180-65±5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 유산소 범위는 분당 110~120회 정도인데, 내 목표는 운동하는 30분 동안 계속 이 범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잠깐, 내 평송의 맥박은 분당 58회다. 그러면 나는 먼저 180에서 14를 빼고 시작해야 한다. 일단 180-14=166이고 여기에서 내 나이 65를 빼고 5를 더하거나 빼면 96~106이 나의 목표 범위가 된다. 이것이 내가 매일 30분씩 도달하고 싶은 범위다.

 

 목표 맥박 범위 내에서 운동하면 다음과 같이 뇌기능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게 된다.

1) 학습 능력과 신경 가소성을 향상시킨다. 신경 가소성은 나이 들어서도 계속 적응하고 배울 수 있게 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2) 치매 등 여러 신경퇴행성 질환의 발병과 악화를 지연시킨다.

3) 신경이 퇴화되기 시작한 후에도 기능 저하 속도가 느려진다.

4) ApoE4 유전자(알츠하이머병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을 보호한다.

5) 새로운 뉴런의 수를 증가시키고, 새로운 세포의 생존을 촉진한다.

 

 마지막으로 운동하기 전에, 운동 중에, 그리고 운동이 끝나고 나서 수분을 보충하는 것을 잊지 말자. 깨끗하고 여과된 물을 마시는 것은 염증을 예방하는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체중 450g당 최소 1/2온드(1kg 당 약 30ml)의 물을 마셔야 한다. 계속 체내에 수분을 공급하여 독소를 씻어버리자. 독소를 몸 밖으로 배출해야 한다.

 

p220

 건강 문제가 발생하는 한 가지 이유는 우리 몸이 항상 교감신경계가 지배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얇은 교감신경이 적절한 절연재 없이 과도하게 사용되면, 말 그대로 지치기 시작하여 염증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뇌, 신경계, 그 밖의 어디에서든 유전 사슬의 약한 고리에 대한 항체가 증가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우리의 신경계는 부교감신경 지배 상태(태어날 때)에서 교감신경 지배 상태로 변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충분히 오래 지속되면, 얇은 교감신경계가 원래의 용도보다 훨씬 더 자주 사용되어 마모되기 시작하면서 교감신경계 지배 상태에서 교감신경계 피로 상태로 변하여, 우리는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스트레스가 계속된다면 교감신경계 피로 상태에서 교감신경계 탈진 상태로 바뀔 것이고, 여전히 '투쟁(fight), 겁에 질림(fright), 도피(flight)' 반응이 계속된다면 결국에는 교감신경계 소진 상태로 이어지게 된다.

 퇴행성 질환은 교감신경계 소진 상태에서 발생한다. 부교감신경계 지배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유전 사슬의 약한 고리에서 생기는 어떤 질병에든 극도록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더 많이, 더 자주 영향을 미친다. 온몸이 녹초가 된 기분이라면, 실제로 그런 상태인 것이다. 뇌의 회복력도 형편없이 떨어져, 우리는 인생의 어떤 상황에 처하든 적응하기가 힘들어진다.

 

p223

 심지어 2015년에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은 위약 효과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위한 노력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위약 효과는 신경전달 물질과 관련된 복잡한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과... 측정 가능한 뇌의 특정 관련 부위들(예를 들어 위약 통각상실증의 경우 전두엽 피질, 전측 뇌섬엽, 입쪽전방대상피질, 편도체 등)의 활성화에 의존한다." 이는 우리가 뇌에 미치는 위약 효과를 측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물에 영향을 받는 동일한 경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위약 효과에 대한 '나쁜 소문'은 대부분 자사의 약품을 복용하는 편이 약을 먹지 않는 편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 애쓰는 제약업계에서 나온다. 여기서 진실을 밝히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 그것을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의 전반적인 인생관이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그런 호르몬에 따라 모든 약효나 부작용이 결정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온몸이 탈진하게 된다. 반면 긴장을 완화하는 부교감신경 호르몬이 분비되면 심장박동이 진정되고 호흡이 깊어지며 평화로운 뇌파가 우세해진다. 이것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명상에서 얻는 기본적인 효과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지가 궁금해진다. 어떻게 결과를 상상하는 것으로 실제 몸이나 뇌가 돌아가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걸까? 우리의 유전자가 곧 우리의 운면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정말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은 실제로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믿음에 따라 달라지는 건강 결과를 조사한 과학적 연구들도 있다. 2007년의 한 연구에서는 청소 업무를 담당하는 호텔 직원 84명을 두 집단으로 나눴다. 한 집단은 그들의 청소 업무가 의사들이 권장하는 운동의 조건에 부합하여 건강한 생활방식의 일환이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집단은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자 첫번째 집단은 체중, 혈압, 체지방, 허리 - 엉덩이 비율, 체질량 지수가 모두 감소하여 운동이 부분적으로나 전적으로 위약 효과를 통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진의 가설을 뒷받침했다. 단지 청소가 운동이라는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청소를 그저 일로만 생각했던 집단과 달리 실질적이고 확실한 건강상의 개선을 보인 것이다.

 

 뇌 건강의 경우에도 우리의 태도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1998년에 항우울제의 효능을 테스트하는 데 사용된 19건의 실험에 대한 메타분석이 실시되었다. 측정된 치료 효과의 25%만이 약물의 작용에 기인한 반면, 연구 전반에서 75%의 의 위약 효과가 확인되었다. 이에 대한 후속 연구로 2008년에 다시 검토가 진행되었는데, 이때에는 미발표된 연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미국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호소해야 했다. 제약업계에서는 그런 연구 결과를 감추려 들었기 때문이다. 2008년의 검토에서는 이런 누락된 연구들을 데이터에 포함시켰을 때 항우울제가 위약 효과를 능가하는 경우는 46건의 실험 중에 20건뿐이었다.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위약에 비해 항우울제의)  우월한 효과가 임상적 유의성에 대한 허용 기준보다 낮다. 이 검토는 항우울제를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만큼 그 효능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항우울제의 부작용인 체중 증가, 성욕 상실, 혈전 감소, 위 출혈과 자궁 출혈의 위험 증가 등을 고려하지 않았는데도 그러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개인의 이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정책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우리의 인생 경험을 직접적으로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는 대단히 많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 치료의 선구자 니콜라스 곤잘레스(Nicholas Gonzalez) 박사는 공포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치료 프로토콜도 파괴할 수 있는 전염성 질병이며, 믿음은 아무런 프로토콜 없이도 질병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치료 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몸의 자생력에 대한 믿음이 질병을 호전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란 얘기다. 임상전신과의사이자 기능의학자인 켈리 브로건(Kelly Brogan)은 저서 <당신 자신의 마음(A mind of Your Own)>에서 만약 우리가 건강 여행을 호기심, 자아성찰, 그리고 불균형 상태에 대처하라는 초대의 수락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에너지를 질병 상태가 아니라 더 새롭고 건강한 자신이 되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도 나처럼 건강을 변화시키는 힘은 우리가 그렇게 믿는 한 우리 안에 내재한다고 믿는다. 

 

 한 번에 한 걸음씩, 꾸준히 안타만 쳐도 야구 경기에서 이긴다. 우리는 홈런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우리 몸과 삶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p227

 모든 행동을 변화시키는 핵심은 자각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며 더욱 평온해질수록, 현재의 건강 상태를 자각하고 미래의 건강 목표를 세우기가 더욱 쉬워진다. 우리는 비판단적인 태도로 현실에 대한 자각에 이르러야 한다. 예를 들어 글루텐 프리 식품을 먹는다는 자각은 검사 결과 우리 면역계에서 가급적 피하려고 애쓰는 작은 독소를 우리 몸속에 집어넣는 대신, 새로운 선택이 몸에 이롭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의미다. 자각은 글루텐 프리 식품을 먹는 습관을 단지 처벌이나 의무로 보지 않고 우리 몸속에 건강한 연료를 제공하는 습관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자각이란 심장 박동에 대한 이해부터 글루텐 프리 식품을 먹을 때 얻게 되는 이점까지 우리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우리가 내리는 결정을 더 잘 안다는 의미가 아니다. 몸의 물리적 상태를 자각하고 공감과 친절로 그 자각을 수용하는 것이다.

 

p231

 마음 챙김(mindfulness)에 기초한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마음 챙김이란 경험에 반응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현재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개방적이고 수용적으로 자각하고자 하는 정신적 연습이다. 마음 챙김 수련의 목적은 명시적으로 경험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맺는 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 삶에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방아쇠를 바꿀 수는 없어도 그런 방아쇠에 반응하는 방법은 바꿀 수 있고, 그러면 그 방아쇠가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도 변하게 된다. 마음 챙김은 다양한 만성 질환과 정신 건강 문제에 개입하는 데 유용한 방법이다. 일례로 한 연구에서는 마음 챙김이 만성 우울증의 재발률을 감소시키고 불안과 우울증의 초기 치료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해병대의 회복탄력성 훈련 프로그램(Reflection Training Program)은 마음 챙김 기법이 개인에게 마음을 재정비할 시간을 주어 스트레스 받는 사건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반응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2012년의 한 중요한 연구에서는 마음 챙김을 다른 건강 증진 프로그램(다이어트, 운동, 약물 등)과 비교한 결과 마음 챙김 훈련이 염증성 반응을 현저히 감소시키고, 설령 외부의 방아쇠에 반응하여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더라도 염증성 반응이 줄어드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p237

 이들은 공저인 <자기혁신 프로그램(Changing for Good)>에 심리치료 없이도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1,000명 이상의 사삶을 연구한 끝에 얻은 결론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변화가 행운이나 의지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변화가 행운이나 의지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변화가 행운이나 의지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변화는 그것의 작동 기제를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과정이다. 일단 우리가 변화의 5단계 중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면, 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 실제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변화의 5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무관심  :이 단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생활방식이 건강과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사실을 모른다.

2. 심사숙고 : 이 단계의 사람들은 건강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기꺼이 인정하며, 그 가능성 때문에 변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이들은 보통 매우 양면적이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지켜만 본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이 변화에 성공할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냉소주의적("나는 이것을 믿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태도보다는 회의주의적("나는 이것을 믿지 않지만 더 많은 정보를 살펴볼 용의가 있다") 태도의 유무다. 심사숙고는 변화를 향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태도다.

3. 준비 : 이 단계의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에 자신의 생활방식을 개선하고자 진지하게 시도할 것이다. 이들은 (예컨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충분한 정보를 얻은 후에 행동을 변화해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고 확신하므로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고 기꺼이 노력한다.

4. 실행 : 이 단계의 사람들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몇 주 후에 결과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이전의 성공만큼 새로운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없다. 계획을 실행한 사람은 그 효과를 맛보고 건강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5. 유지 : 나는 항상 환자들에게 지구상에서 효과가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도 그것을 그만두는 유일한 종은 인간뿐이라고 말한다. 영구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오랜 세월에 걸쳐 새로운 행동 패턴을 만들고 계속 유지해야 한다. 몇 달 동안 글루텐 섭취를 끊어서 상태가 좋아지고 나면 다시 글루텐이 들어있는 생일 케이크나 블루베리 머핀 한 조각을 먹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단 그것을 먹고 나면, 장담하건대 다시 상태가 나빠졌음을 느끼게 되고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노력의 가치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나쁜 습관이나 오래된 즐거움으로 돌아가는 얼빠진 짓을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 엉망이라고 느끼고,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가서, 상태가 좋아진다. 이처럼 쓰러졌다가 다시 벌떡 일어서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 후에야 생일 케이크의 유혹("딱 한 입만 먹어야지")이 사라질 것이다. 새로 선택한 생활방식을 6개월 동안만 유지하고 나면, 유혹에 안전할 수 있다.

 

p253. 케토시스를 향상시켜 인지력 상실을 예방하고 상황을 역전시키자.

 

 만약 이미 인지력 상실이나 기억력 장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예를 들어 자동차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자주 궁금해한다면), 단기간(1~3개월) 동안 케톤 생성 식단(ketogenic diet)를 택할 것을 추천한다. 케톤은 음식물 공급이 부족하여 에너지를 얻기 위해 몸에서 지방을 분해할 때 생성되는 부산물인데, 뇌와 신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효율적인 백업 시스템이 된다. 저장된 지방세포를 연소시켜 케톤을 생성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며칠이나 몇 주씩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우리는 '케토시스'라는 과정을 통해 케톤에 접근할 수 있는데, 케토시스는 특히 이미 혈당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뇌세포에 연료를 공급하는 쉽고 대안적인 방법으로 알려졌다.

 만약 뇌기능 증상이 나타난다면, 당신의 뇌가 염증 유발 인자에 반응하면서 이미 포도당을 연료로 사용하는 능력을 일부, 많으면 24%까지 상실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의 뇌는 말 그대로 굶주리고 있고, 그 결과 더 많은 염증이 생기고 더 많은 뇌기능이 손상된다. 이로써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러나 몸을 케톤 생성 상태로 유지하면 뇌세포에 연료를 더 잘 공급할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뇌기능과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케톤 생성 상태를 유지하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억력과 인지력이 모두 향상된다고 알려졌다. 케톤 생성 상태가 관류 저하를 줄이고 뇌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진정한 케톤 생성 식단은 당신에게 모든 탄수화물을 피하도록 시킬 것이다. 그러나 인체는 영원히 탄수화물 없이 살 수 없다. 나는 당신이 이 식단을 1~3개월 동안 시도해보고, 얼마나 믿기 힘들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서서히 덜 제한적인 식단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그때쯤에는 그동안 케톤 생성 식단을 통해 경험한 뇌기능 향상과 체중 감량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더 건강한 탄수화물 식품을 추가하되 글루텐, 유제품, 설탕은 반드시 피하면서 간헐적 단식을 도입하기에 좋은 시점이 될 것이다. 식단에 소량의 탄수화물을 다시 첨가하면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살펴라. 탄수화물을 다시 먹기 시작한 후에 증상이 재발하거나 향상된 뇌기능이 흐려지기 시작한다면, 그 정도의 탄수화물 양을 다시 섭취할 준비가 아직 안 된 것이다. 다시 1주나 2주 정도 식단에서 탄수화물을 제외시킨 다음, 더 적은 양의 탄수화물을 추가하여 반응을 살펴보자.

 케톤 생성 식단은 좋은 결과를 낳지만 전체 프로그램의 일환일 뿐이다. 일반적인 구명조끼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하루 빨리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영원히 탄수화물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 몸은 탄수화물을 일차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체중 감량 프로그램의(요요현상이 계속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타기와 달리, 뇌 건강 프로그램을 영구히 유지하는 방법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근본 원인, 유발 요인,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다.

 케톤 생성 식단을 성공키시고 뇌 건강에 영구적인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은 이 식단을 지금부터 이번 장에서 소개할 나의 다면적 영양 접근법과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면 식품 과민성, 환경 독소 노출, 이미 진행 중인 누적된 손상도 해결할 수 있다. 거기에 단헐적 단식을 실천하고 중쇄지방산(MCT) 오일과 그 밖의 중요한 영양분을 보충하여 적절한 음식을 꾸준히 섭취한다면 최고의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일례로 코코넛 오일과 야자 오일에서 발견되는 중쇄지방산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야자 오일은 건강에 좋지 않다.(야자 오일은 팜유를 의미하며, 현재 우리나라 라면-아마 외국도-의 대부분이 이 팜유로 튀겨낸다) 절대 사용하지 말라.(그러니 라면을 먹을때 라면을 한번 끓여서 기름성분을 우려낸 후 먹는 것이 좋다. 귀찮긴 하지만 건강을 위한다면 특히 그렇다. 특히 라면 먹으면 몸에 이상 증상이 생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팜유로 인한 것이다.) 중쇄지방산은 미토콘드리아라는 모든 뇌세포의 강력한 에너지 발전소에 쉽게 접근하 수 있는 연료를 공급한다.

 

GMO에 대한 몇 마디

 

 식품 건강 문제와 관련하여 나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유전바 변형 식품 및 생물체, 일명 GMO의 보급이다. 유전자 변형 식품은 1994년부터 대대적으로 상용화되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오늘날 40가지가 넘는 유전자 변형 식물종이 있는데 쌀, 콩, 옥수수 등의 세 가지 곡물이 가장 널리 분포 되어있다. 2012년에는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 콩, 면화의 90% 가까이가 GMO 품종이었다.

 현재 시판 중인 유전자 변형 식용작물은 콩, 옥수수, 면화(오일), 카놀라(오일), 사탕무에서 얻은 설탕, 주키니 호박, 노란 호박, 하와이 파파야, 알팔파 등 9종이다. 유전자 변형 곡물은 주로 가축들에게 먹이는데, 유제품, 달걀,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기타 동물성 식품에 영향을 미친다. 원료의 일부는 토마토소스, 아이스크림, 땅콩버터 같은 다양한 '천연' 가공 식품에도 추가된다. 유전자 변형 옥수수나 콩은 청량음료뿐 아니라 일부 향신료와 조미료 혼합물에도 첨가된다. 실제로 식물성 오일이나 아침용 시리얼 등 모든 가공식품의 80% 이상에 유전자 변형 성분이 포함된다.

 GMO 밀도 곧 우리의 주방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동안 밀은 수년에 걸쳐 자연 번식 기술을 통해 교잡되어 더욱더 많은 글루텐과 FODMAP이란 발효성 탄수화물 등의 기타 유해 성분이 함유되었다. 대부분의 GMO 작물처럼 밀에도 라운드업(Roundup)이라는 제초제가 뿌려지는데, 라운드업의 활성 성분인 글리포세이트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인체의 잠재적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미국에서는 밀을 수확하기 몇 주 전에 라운드업을 살포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제초제를 뿌리면 죽은 밀밭이 콤바인을 가로막지 않기 때문에 수확 작업이 더 용이하다. 둘째, 독성 화학물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은 생존하기 위해 토양으로부터 더 많은 영양분을 빨아들인다. 이런 영양분이 밀 씨앗으로 흡수되어 더 많은 글루텐을 함유한 밀이 탄생한다. 따라서 미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밀 제품에는 더 많은 글루텐이 함유되는 것은 물론, 암을 유발하는 글리포세이트의 자취가 있다.

 

 각종 동물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GMO가 면역계, 간, 신장에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라운드업은 장내 미생물군을 변화시키고 장 투과성을 증가시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라운드업과 간 해독 능력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면서, 이 화학물질이 항상성을 파괴하고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에 과도한 염증을 일으키는 것을 비롯해 각종 자가면역반응을 유도한다며, 환경 유발 요인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GMO는 또 위장질환, 비만, 우울증, 자폐증, 불임, 암, 알츠하이머병과도 관계가 있다. 글리포세이트가 식품 생산에 도입된 후로 뇌졸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런 이야기가 충격적이고 언짢다는 것을 알지만 이런 정보는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질병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p259. 좋아하는 신선 식품을 즐기자

 

 당신은 모든 종류의 과일, 채소, 향신료, 견과류를 먹을 수 있다. 신선한 제철 식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항상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으라고 추천하지만, 사실 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냉동 과일과 채소는 잘 익은 과일과 채소를 수확한 뒤 냉동한 것으로, 산화방지제와 폴리페놀의 완전한 성분이 함유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허용된다. 가능하면 유기농 농산물을 선택하고 현지에서 재배하는 품종을 고르자. 설탕이나 소금을 이용해 보존되었을지 모르는 통조림 과일과 채소는 피한다. 볶은 땅콩에는 생땅콩보다 더 많은 레스베라트롤이 함유되어 있는데, 레스베라트롤은 뇌와 심혈관 계통을 보호한다고 알려진 적포도주에서도 발견되는 유익한 성분이다. 단 땅콩 외의 모든 견과류는 날것으로 먹어야 한다. 

 

 많은 신선 식품이 위장을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고 알려져있다. 이 식품들은 천연적으로 항염증성이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선택지다. 매일매일 다음의 목록에서 한 가지라도 먹도록 하자.

 

1) 계피

2) 십자화과채소(브로콜리, 방울양배추, 콜리플라워, 양배추, 청경채) : 대장의 염증을 낮추는데 특히 유용한 강력한 폴리페놀인 글루코시놀레이츠라는 필수 영양소군이 함유되어 있다.

3) 베리, 체리, 적포도 등 폴리페놀 함량이 높은 짙은 색 과일

4) 녹차 : 프리바이오틱이다.

5) 오메가3 지방산 : 인체에서 합성되지 않으므로 식이요법을 통해 얻어야 한다.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좋은 기능을 하는데, 특히 위장의 염증을 낮추는 유전자를 활성화시킨다. 오메가3가 많이 함유된 식품은 풀을 먹인 소고기, 냉수성 어류, 해산물, 흑호두, 피칸, 잣, 치아씨, 아마씨, 바질, 오레가노, 정향, 마조람, 타라곤 등이다.

6) 파슬리

7) 토마토 쥬스

 

p263

 혈당지수가 높은 식품으로는 아이스크림, 빵, 그 외 모든 밀가루 제품, 감자, 건포도, 감자칩, 알코올음료, 백미 등이 있다. 실제로 <밀가루 똥배>의 저자인 윌리엄 데이비스 박사에 따르면 밀 제품의 혈당지수는 모든 식품 중에서 가장 높다. 반면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이 더 영양가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대부분의 다른 과일, 채소, 콩류가 이에 해당한다.

 

 혈당지수는 확실히 더 나은 식품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며, 소위 건강한 식품의 몇 가지 문제도 지적한다. 예를 들어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통밀빵은 한 쪽만 먹어도 혈당지수가 69로 높은 편이다. 땅콩 덕분에 혈당지수가 42에 불과한 스니커즈보다 훨씬 높다.

 

 저혈당으로 알려진 과일(살구, 자두, 사과, 복숭아, 배, 체리, 베리)은 탁월한 선택이다. 베리 같은 일부 과일은 몸에 좋지만, 우리가 당분을 너무 많이 먹는데 죄책감을 느끼다 보니 우리의 혈당 조절 체계는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다. 

 

p264. 견과류와 씨앗

 

 견과류와 씨앗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밀가루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견과류와 씨앗의 가루와 버터도 있다. 특별한 알레르기나 과민성이 없는 한, 생견과류나 씨앗 중에 먹어선 안될 것은 없다. 땅콩과 코코넛도 좋은데, 둘 다 엄밀히 따지면 견과류나 씨앗은 아니다. 땅콩은 콩류에 속하고 코코넛은 과일이다.

 

 그렇다고 삼절 진열대의 아무 견과류바나 먹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항상 재료와 성분표시 라벨을 주의 깊게 읽고, 설탕이나 유제품으로 만든 바와 글루텐 프리 표시가 없는 바는 피해야 한다. 유기농 가공식품과 글루텐 프리 가공식품도 건강에 좋지 않은 재료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좋은 씨앗과 견과류의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아몬드, 호주너트, 너도밤나무 열매, 흑호두, 브라질너트, 버터너트, 캐슈, 밤, 치아씨, 중국 아몬드, 중국 밤, 개암, 아마씨, 헤이즐넛, 대마씨, 호두, 콜라 너트, 타이거 너트, 마카다미아, 피칸, 잣, 피스타치오, 양귀비씨, 호박씨, 홍화씨, 참깨씨, 해바라기씨, 인도 너도밤나무 열매

 

p265. 채소

 채소는 적용할 수 있는 요리가 아주 많다. 채소는 날것으로 먹거나 살짝 데치거나 구워 먹거나, 볶아서 간식, 반찬, 메인 요리로 즐길 수 있다. 수프, 칠리소스, 스튜, 구이, 샐러드, 볶음, 캐서롤에도 넣을 수 있다. 가능하면 구할 수 있는 최고 품질의 채소를 구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자. 이 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기농, 로컬, 산지 직송 제품을 구하라는 의미다.

 

p277. 건강한 지방

 

 코코넛과 코코넛 제품은 건강한 지방이 가득한 식품으로 상온에서도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다. 코코넛의 크림 같은 질감은 유제품 프리 음식을 만들기에 좋다. 코코넛 밀크는 지방 함량이 높아서 어떤 레시피에도 유제품을 대체할 수 있다. 코코넛을 이용한 식품은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 코코넛 오일에는 중쇄지방산(MCT)이 함유되어 신경보호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있다. 중쇄지방산은 몸에 쉽게 흡수되어 에너지로 사용되고, 또 간에서 쉽게 신진대사가 되어 뇌의 대체 연료인 케톤으로 전환되므로, 혈당에 대한 의존도도 줄일 수 있다. 또한 코코넛에 들어있는 페놀 화합물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에서 핵심 과정인 베타아밀로이드 반점의 축적을 막는다.

 

 가장 적게 가공한 요리용 오일에는 '엑스트라버진'이나 '콜드프레스'같은 라벨이 붙어있다. 자외선 차단되는 병에 담아 판매하는 오일을 찾아보자. 그런 오일이 빨리 상하지 않는다. 오일을 사용해 요리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연기가 날 때까지 가열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오일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면, 오일이 산화되면서 다량의 유리기가 생성된다. 그래서 가열점이 높아 연기가 쉽게 나지 않는, 건강에 좋은 오일을 찾아야 한다.

 건강에 좋은 오일로 추천할 만한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아보카도 오일, 코코넛 오일, 기(ghee) 버터, 마카다미아 오일, 올리브 오일

 

p289. 유제품을 먹지 않는 방법

 

 소젖의 단백질 구조는 인간 모유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크기의 8배에 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소젖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염소젖의 단밸질 구조는 인간의 모유보다 6배 크기다. 소젖보다는 낫지만 역시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구할 수만 있다면 몇몇 종류의 동물 유제품은 잘 소화시킬 수 있다. 2007년 <알레르기 및 임상 면역학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동물 젖이 인간 모유 단백질과 62% 이상 비슷한 단백질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그 젖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이런 동물성 유제품이 실제로 존재한다. 일부 민속 특산품 가게에서는 낙타유, 순록유, 당나귀유 등 소젖의 좋은 대용품을 판매한다. 나는 얼마 전에 낙타유를 먹어봤는데, 소젖을 먹을 때 생기는 전형적인 점액 생성 부작용이 없었다. 나는 동물성 유제품을 부어 시리얼 한 그릇을 먹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낙타유는 그 갈망을 충분히 채워주었다. 

 

 그 외에도 우유를 대체할 수 있는 많은 동물성 유제품이 있다. 나는 유기농 제품이라도 두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콩의 장단점을 보여주는 여러 연구가 있는데, 식물성 에스트로겐의 영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콩에서 나오는 식물성 에스트로겐 분자들은 체내의 수용체 부위에 결합하여 약한 에스트로겐 호르몬처럼 작용한다. 에스트로겐이 결핍된 상태라면 콩을 추가로 섭취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트로겐이 적절하거나 과도한 상태라면, 콩은 남녀 모두에게 나쁠 수 있다. 더욱이 콩의 장점을 보여주는 연구는 아시아 연구 기관들에서 주로 나오는데, 그곳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이 전지 대두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유 대용품은 코코넛 밀크로, 여기에는 HDL콜레스테롤을 향상시키는, 심장 건강에 좋은 포화 지방인 라우르산이 풍부하다. 견과류나 쌀로 만든 유제품도 있다. 어쨌든 원칙적으로 항상 무가당 제품을 선택하라. '플레인' 우유 대용품에는 실제로 1컵당 6g의 설탕이 첨가되어 있다. 맛이 가미된 제품은 1컵에 12g에서 20g까지 첨가될 수 있다. 성분표시 라벨에서 '무가당' 표시를 찾으면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바닐라 맛을 찾을 수 있다.

 

p296

 

 알코올 노출은 장에서 그람 음성 박테리아의 성장을 촉진하여 내독소가 축적되게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람 음성 박테리아와 장내 상피세포에 의한 알코올 대사 작용으로 아세트알데히드가 축적될 수 있는데, 이는 다시 치밀 결합 및 부착 결합 단백질의 타이로신 인산화를 증대시켜 내독소의 장 투과성을 높일 수 있다. 또 알코올로 인해 생성된 산화질소는 튜불린과 반응하여 내독소의 투과성 향상에 일조할 수 있고, 그 결과 미세관 세포골격에 손상을 입히고 장 방어벽 기능을 붕귀시킬 수 있다.

 

 내가 왜 이 대목을 인용했을까? 알코올 섭취는 튜불린(tubulin, 모든 신경 세포 내의 비계)을 손상시켜 튜불린에 대한 많은 항체를 생성하므로, 튜불린 항체 수치는 뇌염의 생체지표 중 하나가 된다. 이는 장 질환이 뇌염과 혈액뇌장벽 손상의 원인이 되는 예이다.

 

 알코올은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장을 손상시켜 장 투과성을 초래하고, 장내 세균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혹시 장 누수를 치료하는 중이라면, 장 내벽이 치유되는 동안 알코올을 완전히 피해야 한다.

 

p305

 또 장 누수의 자연적인 치료법으로 초유를 추천한다. 초유는 출산 후 처음 3~5일 동안 나오는 젖으로 모유와는 전혀 다르다. 초유는 출산 과정에서 모든 포유류의 젖샘에서 분비된다. 초유에는 신생아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필요한 항체가 포함된다. 초유는 지구상의 어떤 물질과도 다른 방식으로 유전자를 조절한다. 이제는 이것이 모든 면에서 장 건강을 위한 최고의 치료법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초유에는(자궁 내에서 완전히 투과되었던) 미성숙한 장벽의 치밀결합을 강하게 하는 데 필요한 성장 인자와 호르몬이 포함된다. 성인의 경우 역시, 초유는 같은 유전자를 활성화시켜 장 내벽 손상을 복구하고 장을 온전하게 회복하며, 느슨해진 치밀결합을 단단하게 조여 장내 염증성 유전자의 1차 조절자 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 유익한 박테리아로 장의 재생성을 촉진한다.

 

 초유는 전체 고형물 중 대략 4분의 1이 항체로, 신생아는 이 항체들을 마이크로바이옴에 착생시켜야 한다. 초유에 포함된 IgG는 아기를 벌레,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균류, 기생충으로부터 즉각 보호해준다. 성인의 경우도 이런 침략자들로부터 몸을 보호해줄 것이다. 또 초유는 미세 융모를 복원하는 유전자를 활성화시켜 셀리악병에 걸리면 닳아 없어지는 털을 다시 자라게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유 권위자인 앤드류 키치 박사는 글루텐 서밋에서 이렇게 말했다. "건강보조식품 판매점에는 손상된 장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악기 연주자들이 많이 있지만, 오직 초유만이 전체 교향곡을 연주할 수 있다."

 

p388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획기적인 연구가 일상적인 병원 치료에 적용되기까지 평균 17년씩 걸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새로운 생각에 대한 저항이다. 실제 학자들이 콜레스테롤을 동맥경화증의 원인으로 처음 지목한 때부터 일반 의사들이 환자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처음 확인한 때까지 평균 17년이 걸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은 자명하다. 

 

1) 1950년대에 미국 서부와 남서부 일대의 신문들은 원자폭탄의 여파가 '안전하다'고 강조하는 정부 과학자들의 말을 1면에 보도했다. '걱정할 것 없다'는 것이 그들의 요지였다.

2) 1960년대에 담배가 '안전하다'고 설파했다. 실제로 카멜은 '의사들이 가장 추천하는' 담배 브랜드였다.

3) 1970년대에 젖소에 인간 성장 호르몬을 투입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했다.

4) 1980년대에 마가린이 '건강에 좋다'고 했다. => 나 어릴 때 빵에 마가린 발라서 많이 먹었다. T_T;;

5) 1990년대에 휴대전화가 '안전하다'고 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머리 옆에 배터리를 놔두어서 좋을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6) 2000년대에 정부는 GMO 식품이 '안전하고' 농작물에 뿌리는 극심한 독성 화학물질도 인간에게 '안전하다'고 했다.

 

 1979년에 나는 고압선에서 0.25마일(약 402m) 이내에 거주할 경우 소아 백혈병이 증가한다고 밝힌 연구 논문을 우연히 접했다. 이때가 내가 전자기장의 건강 위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1982년에 고압선과 성인 암의 상관관계를 밝힌 또 다른 논문을 읽었다. 1991년에는 밤새 전기담요를 덮고 자면 유방암 위험이 31%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후 세상에 점점 더 많은 전선이 연결되었고, 우리가 노출되는 전자기 오염은 극도로 심해졌다. 각종 질병이 증가하고 지구상의 생명이 사라져져가는 최근의 무시무시한 수치를 보고 있자면, 과도한 독소 노출을 줄이기 위해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을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작은 가전제품의 미약한 독소에 노출되는 일이 어째서 그토록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전자기방사선은 늘 같은 속도로 이동하며, 빛처럼 파동으로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 에너지는 전기와 자기를 동시에 띠는데, 파동은 전기적으로 양극에서 음극으로, 자기적으로는 북극에서 남극으로 빠르게 번갈아 나타난다.

 모든 전원에서 방출되는 전자기방사선은 주변 지역을 투과하며 전자기장을 형성한다. 전자기장은 전원 근처에서 가장 강하고 멀리 떨어질수록 약해지다가 점차 측정이 불가능해진다. 강한 전자기장은 멀리 있는 강한 방사선 발생원 때문일 수도 있고, 가까이 있는 약한 방사선 발생원 때문일 수도 있다. 머리맡에 놔둔 스마트폰의 전자기장이 0.25마일 떨어진 휴대전화 기지국의 전자기장보다 훨씬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 다 암 발병과 관련이 있다.

 투과는 전자기방사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된 주요 이슈다. 일부 형태의 전자기방사선은 다른 형태보다 더 투과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전등 불빛은 공기, 물, 유리는 투과할 수 있어도 벽돌이나 금속판은 투과할 수 없고 인간의 살 속으로 깊이 투과하지 못한다. 손전등으로 손을 비추는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면, 빛이 피부를 투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X선은 쉽게 인체를 투과한다.

 

 우리 가정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부 전자기 방사선은 투과력이 매우 강하다. 초저주파는 콘크리트 기둥과 금속판은 물론, 인간의 살과 뼈도 투과한다. 그런데도 이 방사선은 비교적 약한 편이라 짧은 거리에만 전자기장이 측정된다.

 전기와 방사선에 다량으로 노출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원자 폭탄을 생각해보자. 전기는 많은 다른 파장과 주파수를 가로질러 이동한다. 건강 문제와 관련되어 우리가 가장 친숙한 전자기파는 X선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X선에 노출되면 암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의사들이 엑스레이 촬영 준비를 마치면 얼마나 빨리 그 방에서 나가는지 보았는가? 의사들은 아무리 약하더라도 자주 노출되면 대단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태양 플레어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방사선의 예다.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이 거대한 폭발은 전자기장을 형성하고, 이 전자기장은 지구에 태양 방사선을 대량으로 퍼붓는다. 플레어는 태양 흑점 주기와 발생 빈도가 일치한다. 11년 주기로 정점에 달한다. 태양 방사선은 대기층에서 여과되므로현대에 인간에게 노출되어 있는 독소적 성분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루고 있다.

 

독소가 몸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이를 해독하는 방법에 그 초점이 맞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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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 면역계의 기초

 

 

 

 면역계는 우리 몸을 지키는 군대와 같다. 서로 다른 5개 부문이 협력하여 면역계를 이루는데, 군대에 비유하자면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연안경비대라 할 수 있다.(의사들은 이를 자가면역반응 또는 항체 IgA, IgG, IgE, IgM, IgD라고 부른다.) 각각 역할이 다르다. 또 체내에는 4가지 다른 면역계가 있다. 각각은 별개로 작동하지만, 같은 매뉴얼에 따르면서 서로 소통한다. 가장 큰 면역계는 소화관(장)으로 전체 면역력의 70~85%를 좌우한다 또 다른 면역계는 간의 쿠퍼 세포(Kupffer cell)이고, 세 번째 면역계는 혈액에 들어 있는 백혈구 세포이다.

 

 마지막으로 체내의 가장 강한 면역계는 뇌 안에 있는 교세포다. 교세포는 뇌 안으로 들어가는 물질을 여과하는 혈액뇌장벽(Blood Brain Barrier) 바로 안쪽에서 고성능 라이플총을 들고 어떤 외부 물질도 침투하지 못하게 감시한다. 교세포는 체내에서 가장 강력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데, 6연발 권총 정도가 아니라 바주카포를 들고 돌아다니는 셈이다.

 

 생각하는 능력 덕분에 인간이 지구상에서 '지배종'이 되었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고 영역을 관장하는 대뇌 피질은 인간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이는 대뇌 피질을 보호하는 교세포가 무려 608억 4천만 개에 달한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뇌 피질을 구성하는 뉴런 개수는 163억 4천만 개다. 그러니까 이 넓은 피질에서 교세포와 뉴런의 비율은 거의 4대 1로 유지된다.(정확히는 3.72 대 1이다). 즉, 사고 세포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근육 및 명령중추인 소뇌로 가면 상황이 역전된다. 교세포보다 뉴런 수가 더 많다.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등 뇌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자가면역질환이 운동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4가지 면역계는 적어도 두 종류씩 무기를 가지고 있다. 세포성/선천성 면역계와 체액성/적응성 면역계다. 세포성 면역계는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아주 오래된 면역계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생화학 총탄을 발사하고 염증을 형성하는 보호용 권총 역할을 한다. 반면 체액성 면역계는 백업용 지원 시스템으로, 더 강한 염증을 만들 필요가 있을 때 소환되는 대포에 해당한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기생충, 바람직하지 않은 식이단백질과 펩티드, 심지어 화학물이나 약물 등 어떤 환경적 독소에 노출되든 간에 세포성/선천성 무기는 최초로 반응하는 생화학 총탄이라 할 수 있는 사이토카인(cytokines)을 형성한다. 사이토카인은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무엇이든 찾아내서 파괴하는데,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면역계는 위협 요인에 따라 어떤 사이토카인을 분비할지 결정한다.

 

 만일 세포성 무기의 방어 전략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면역계는 대포를 소환한다. 이때 체액성/적응성 면역계가 발동하고 군사들이 '항체'라는 표적 미사일을 대령한다. 항체는 노련하게 특정 표적을 뒤쫓다가 어디에서든 침입자를 발견하면 미사일을 발사한다. 혹시 혈액 검사 결과에 '항체 수치 상승'이나 항체 표시 옆에 'H'라고 적혀있다면, 기본 면역계가 이미 제압당해 대포가 나섰다는 의미다. 항체는 혈류를 순환하며 훈련받은 대로 환경적 독소를 찾아 공격한다. 그런데 항체는 불결한 병원균이나 음식물, 손상된 세포를 찾아 파괴한 후에도 2~6개월 동안 계속 혈류에 머문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도 항체 수치가 높다면 면역계가 위협 요인을 발견하고 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처리하려고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신호다.

 

 또 선천성 면역계(최초 반응자)가 피로해져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에도 항체가 증가한다. 면역계는 우리의 잡다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에 대응하는 역할만으로도 지칠 수 있다. 생화학적 요인(음식 과민성, 환경적 독소 등)이든, 구조적 요인(안 좋은 자세와 장 투과성)이든, 정서적 스트레스든, 전자기장이든 간에 지속적으로 항원이 밀려들면, 우리의 최초 반응자(선천성 면역계)는 녹초가 되어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거나 탄산음료를 마시거나 달콤한 음식을 먹어왔던가? 이런 습관 때문에 몸이 손상되어 툭하면 감기에 걸리거나 건망증을 보이거나 오후 세 시만 돼도 기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이다. 이런 경미하지만 성가신 건강 문제는 선천성 면역계가 지쳐서 약해졌음을 시사한다.

 

 

 

p38.

 

 우울증은 뇌의 전두엽에서 흔히 발생하는 염증의 한 예다.

 

 

 

p39.

 

 미국 알츠하이머병 연구센터의 노화연구소를 운영하는 데일 브레드슨 박사는 현재 알츠하이머병을 호전시키는 치료를 진행 중이다. 그는 2014년 11월 의학저널 <에이징 Aging>에 발표한 최초 논문에서 10명의 알츠하이머병 환자 중 9명을 5년 만에 완전히 회복시킨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의 환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거나 연구소에서 나와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완전히 원래 상태를 회복했는데,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p46.

 

 피로감, 에너지 부족, 기억력 감퇴, 감정 기복 등의 증상이 반복되는 것은 면역계에서 우리에게 어딘가 균형이 깨졌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독속에 노출되어 점차 죽어가고 있고, 우리 몸의 군대가 몸을 보호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뇌 증상들도 스펙트럼상에서 발생한다. 가벼운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힘을 쥐어짜내야 한다는 의미이고, 언젠가는 완전히 기능이 상실되어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는 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p51. 뇌의 해부학

 

 

 

 뇌는 대뇌, 소뇌, 뇌간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대뇌는 뇌에서 가장 큰 부위로, 대뇌 피질이라고도 불린다.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뇌기능인 '생각'이 바로 대뇌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뇌를 떠올릴 때,, 그려지는 것이 대뇌다. 대뇌는 불룩하게 접힌 회백질이 모여있는 부위로, 대장처럼 주름져 좁은 공간 안에 매우 넓은 표면적이 들어있다. 대뇌는 기억, 주의, 인식, 사고, 언어, 의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소뇌는 대뇌의 아래쪽과 뒤쪽에 위치한 공 모양의 조직이다. 소뇌는 감각 정보(촉각과 균형 감각 등)를 해독하고 근육과 결합하여 움직임을 조절한다. 소뇌에서 보내는 메시지 덕분에 인간은 다른 종과 다른 방식으로 몸을 구부리거나 비틀 수 있다. 내가 오래전에 삼림 감시원에게 들었는데, 인간은 언덕의 비탈을 가로질러 곧장 달릴 수도 있지만, 곰은 언덕을 위아래로만 달릴 수 있다고 한다. 끝으로 뇌간은 뇌와 척수를 연결한다. 뇌간은 심박동수, 혈압, 호흡 같은 신체 기능을 제어한다.

 

 

 

 

 

 대뇌 아래에는 변연계를 구성하는 몇 가지의 작은 구조가 있다. 변연계는 뇌에서 가장 원초적인 부위로, 공포, 분노, 쾌락 등의 정서와 동기를 해독하는 데 관여한다. 또 변연계의 특정 구조들은 기억을 생성하고 유지하는 데도 관여한다. 그중 하나인 편도체는 기억을 뇌의 어디에 어떻게 저장할지를 결정한다. 해마는 단기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로, 알츠하이머에 영향을 받는 뇌의 주요 영역 중 하나다.

 

 시상하부는 감정, 섭식, 수면을 조절한다. 시상은 척수에서 뇌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뇌 부위들은 다음 장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다음 장에서는 장내의 박테리아가 뇌의 다양한 영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예를 들어, 장내 박테리아의 불균형은 혼란스러운 감정, 수면 부족, 단기 기억 상실 등을 초래한다. 이 내용은 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각각의 뇌 영역은 신경들로 이루어진다. 신경은 뉴런으로 구성된다. 뉴런은 뇌 작업의 기본 단위로, 다른 신경세포나 근육, 샘세포(gland cell)로 정보를 전달하도록 설계된 특수한 세포다. 뇌에는 1천억 개의 개별 뉴런이 있으며, 우리 몸은 끊임없이 오래되고 손상된 뉴런을 제거하고 새로운 뉴런을 생성한다. 뉴런은 뇌 호르몬인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서로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한다. 이런 일련의 시스템에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손상되면 뉴런의 메시지가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제대로 이동하지 못한다. 이 내용을 기억해두어야 다음 장에서 신경전달물질 정보의 흐름을 향상시키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해가 될 것이다.

 

 신경은 미엘린 수초(myelin sheath)라는 일종의 비닐랩 같은 물질로 보호된다. 미엘린 수초는 전선을 감싸는 소재와 매우 유사한 절연체로, 신경이 화학성 메시지를 다음 신경에 전달할 때까지 이를 보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자동차 배터리에서 헤드라이트까지 연결된 전선을 생각해보라. 전선 일분의 절연체를 벗겨내면 전선이 외부에 노출된다. 그렇게 노출된 전선이 자동차 프레임에 닿으면 라이트가 켜졌다 꺼지며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전선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라이트에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절연체가 손상되어도 라이트가 깜빡이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이 뇌에서 벌어질 때 우리는 다발성경화증(MS)으로 향하는 스펙트럼상에 놓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초염기성단백질(MBP)과 미엘린 희소돌기아교세포 당단백질(MOG)에 대한 항체의 생체지표 검사는 매우 중요하다. 이 검사는 신경의 절연체가 파괴되는 메커니즘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검사 결과 수치가 상승하면 다발성경화증으로 향하는 자기면역 스펙트럼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뇌는 지속적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뇌척수액과 혈액, 혈관으로 둘러싸여있고, 모세혈관이라 불리는 혈관들은 각 뉴런에 연결되어있다. 모세혈관의 길이를 끝에서 끝까지 재보면 400마일(약 644km)에 달한다. 일부 모세혈관은 너무 가늘어서 한 번에 단 하나의 적혈구만 통과할 수 있다. 혈액은 매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고, 온몸 구석구석을 순환하는데, 20~25%는 언제 어느 때든 머리 쪽에 몰려있다. 많은 혈액이 뇌에 집중되는 것은 뇌가 매 초당 수만 개의 메시지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연료를 혈액에서 계속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p54. B4 : 혈액뇌장벽 손상

 

 

 

 이번 주제인 혈액뇌장벽(뇌척수액과 혈액을 분리하는 장벽) 손상(B4)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다. 우리는 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장에서 시작된다. 혈액의 성분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통해 받아들이는 것, 피부와 눈, 귀를 통해 흡수하는 것 그리고 섭취한 음식에 의해 결정된다.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온 물질들은 우선 소화관을 통과하며 분해, 소화, 흡수되고, 그 결과 생명을 유지하는 유익한 영양분이 되어 혈액 속으로 들어가 몸 전체를 순환한다. 이 과정에서 소화계는 불완전하게 소화된 음식은 물론, 독소와 자극물이 혈액에 흡수되는 것을 막는데, 1차 방어벽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소장 상피이다. 이것이 일종의 거름망 기능을 하여 아주 작은 분자만 혈류로 들어갈 수 있다.

 

 뇌 안에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자체 보호 거름망이 있다. 구성 물질로 거의 동일하다. 혈액뇌장벽(BBB)이라는 이 방어벽의 주된 역할은 큰 분자들이 혈액을 통해 뇌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뇌의 거름망은 소장의 거름망에 비해 훨씬 미세하다. 그런데 장 내벽이 찢어지면 창자가 새어나올 수 있듯, 뇌의 거름망이 찢어지면 뇌가 새어나올 수 있다. 학자들은 이렇게 찢어진 상태를 혈액뇌장벽 손상(Breach of the Blood-Brain Barrier)이라 하고, 나는 'B4'라 부른다.

 

 뇌 누수(leaky brain)는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특히 머리가 외상을 입는 경우에 그렇다. 뇌진탕을 입으면 뇌의 거름망이 약간 찢어진다. 더 작은 외상을 반복적으로 입어도 거름망이 찢어질 수 있다. 외상으로만 혈액뇌장벽이 찢어지는 것은 아니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shaken baby syndrome)이나 과격한 운동도 뇌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마라톤, 트라이애슬론 같은 지구력 운동의 장기적 효과에 대해 의문이 든다. 물론 나도 젊어서는 마라톤을 했고, 이 책을 쓰는 지금도 왜 주자들이 달릴 때의 기분을 쿵쾅거리며 거리를 누빈다고 표현하는지 잘 안다. 적당량의 운동은 뇌기능에도 도움이 되고 혈액뇌장벽을 강화하며 혈류에 있을지 모를 종양 세포가 뇌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다. 결국 균형의 문제이다. 혈류로 들어간 식품 거대 분자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면역계가 만든 항체로 인한 염증도 혈액뇌장벽을 손상시킬 수 있다. 가장 악명 높은 식품은 밀과 유제품이다. 기생세균, 바이러스성 기생충,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원인으로 생겨난 염증 역시 혈액뇌장벽을 손상시킬 수 있다. 심지어 설탕을 입혀 바삭하게 만든 빵 껍질이나 크램 브륄레 표면도 최종당산화물(AGEs)이란 새로운 분자를 생성하는데, 이것 역시 장과 뇌의 거름망을 손상시켜 B4를 유발한다. 새까맣게 탄 고기를 물론 바비큐 껍데기도 우리 뇌에 작은 구멍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보통 혈액뇌장벽은 4시간 이내에 빠르게 치료된다. 그러나 외상이 반복되면 B4 상태가 유지되어 거대 분자가 민감한 뇌에 침툭하게 된다. 그 결과 평소에는 조용한 뇌 면역계의 교세포들이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과민반응하며 바주카포를 계속 발사해대어 많은 부수적 손상을 입히고 만다. 부수적 손상이 발생하면 면역계는 일단 혈액뇌장벽을 통과하는 거대 분자에 대한 항체뿐 아니라 손상된 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항체도 생성하는데, 이 항체는 혈액뇌장벽에 대한 항체가 증가하면 문제가 발생하고, 뇌 안에서 염증성 연쇄 반응을 부추기게 된다.

 

 간단한 혈액 검사를 통해 당신이 B4 척도에서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응급실에서 혈액뇌장벽의 심한 외상을 치료할 때 사용하는 두 가지 생체지표는 S100B과 뉴런특이적 에놀라아제(NSE)이다. 두 지표의 수치가 높으면 S100B와 NSE가 혈류로 새어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혈류 속에 S100B와 NSE가 오랫동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면, 몸은 그 초과분을 제거하기 위해 S100B와 NSE에 대한 항체를 만든다. 따라서 S100B와 NSE에 대한 항체 수치가 높으면 혈액뇌장벽이 계속 찢어져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두 가지 수치는 신체적인 외상뿐 아니라 어떤 원인으로든 혈액뇌장벽이 손상되었음을 알려주는 매우 정확한 생체지표다. 이런 지표들은 혈액뇌장벽이 뚫려서 거대 분자가 뇌 안으로 침투할 수 있고 그 결과 면역 반응이 활성화되어 염증이 생겨 뇌 안개, 건망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발작, 불안, 우울, 조현병, 양극성 장애와 종국에는 치매,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알츠하이머병 등이 발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단 B4를 겪게 되면 뇌 안의 모든 조직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독소에 노출되었으며 그 독소가 어디에 축적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유전적 특성을 물려받았는지가 당신의 약한 고리를 결정한다. 결국 그것이 당신이 걸리기 쉬운 가장 취약한 질병이 된다. 유일한 차이는 분자 모방이 어느 부위에서 발생하느냐는 것뿐이다. 만약 밀의 A-A-B-C-D가 소뇌와 유사하게 보이면, 소뇌에 대한 항체가 증가하여 소뇌 조직이 파괴되고, 소뇌 변성이 징후가 나타날 것이다. 만약 유제품의 A-A-B-C-D가 미엘린 수초와 유사하게 보이면, 수초에 대한 항체가 증가하여 수초 조직이 파괴되면서 수초 변성의 징후가 나타나고 운동 기능이 상실되어 다발성경화증으로 번질 것이다. 독성 화학물질인 비스페놀 A에 대해 분자 모방이 일어난다면, 뇌의 여러 부위에 대한 항체가 증가할 것이다. 옥수수, 토마토, 시금치, 콩, 담배에 대해 분자 모방이 일어난다면, 뇌신경과 시신경에 있는 아쿠아포린-4 세포에 대한 항체가 증가하여 뇌기능장애와 함께 시력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메커니즘은 대부분의 만성 뇌기능장애에서 매우 유사하게 나타난다. 먼저 혈액뇌장벽 손상이 발생한다. 그러면 우리가 노출된 독소가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계의 반응을 자극하여 해당 독소에 대한 항체가 증가하는데, 그런 독소는 우리 몸의 조직과 매우 유사하여 항체들이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게 된다. 이런 메커니즘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공격받은 조직이 더 이상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증상이 나타나며, 미미하던 증상이 점차 악화되는 것이다.

 

 자녀의 주의력 결핍 장애, 부모님의 기억력 상실, 본인의 만성적인 뇌피로 등 어떤 문제로 고민하든 간에, 이 메커니즘을 해결해야 치유, 재생, 뇌기능 개선이 가능해진다. 애당초 우리가 물에 빠져 하류로 흘러가다 폭포를 타고 떨어져 증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A-A-B-C-D는 무엇이었을까? 수은, 밀, 유제품, 유독한 공기였을까? 무엇이 체내에 축적되어 뇌 안에 염증을 일으키는 것일까?

 

 구명조끼가 익사를 막아주겠거니 기대하며 무작정 증상에 대한 약만 복용하는 실수를 막기 위해, 우리는 먼저 B4가 발생했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혈액뇌장벽을 복원하고 노폐물이 뇌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고 염증성 연쇄반응을 진정시키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것이 알츠하이머병과 그 밖의 뇌기능 악화를 역전시키는 근본적인 지침이다. 유발 인자를 파악하여 제거하고, 최상의 신경을 재생하기 위한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뇌 건강을 회복하는 길이다.

 

 

 

 

 

-----(여기서부터는 일단 앞글만.. 뒤에 다시 보충)

 

 

 

 

 

p60. 관류 저하는 혈액 순환이 감소된다는 의미다.

 

 

 

 심장 기능이 뇌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 

 

 

 

p63. 네오에피토프 : 자가면역 스펙트럼이라는 최초 인식

 

 

 

 면역계가 뇌에서 자가면역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아주 흔한 유발인자는 네오에피토프(neo-epitope)이다.

 

 

 

p66. LPS에 대한 몇 마디

 

 

 

 동맥경화증은 심장을 오가는 혈류를 감소시키는 메커니즘 중 하나로, 면역계에서 우리 몸을 보호하려는 또 다른 시도다.

 

 

 

p71. 알츠하이머병의 재정의

 

 

 

 알츠하이머병은 자가면역과 뇌의 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워낙 이용할 만한 연구 자료가 많아 이 책 전반에서 언급될 것이다.

 

 

 

p79.

 

 

 

 복통은 제산제를 복용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중요한 건 거름망은 여전히 찢어져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더욱이 제산제는 오늘날 네 번째로 흔하게 처방되는 약물임에도 소화기관에 큰 혼란을 일으킨다. 제산제는 염산의 생성량을 극적으로 줄이는데, 사실 HCL은 우리에게 유익하고 필요하다. 지나치게 양이 많아질 때 문제가 되는 것뿐이다. 그런데 PPI로 HCL을 대폭 감소시키면, 바람직하지 않은 박테리아가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처럼 바람직하지 않은 박테리아가 장을 압도하는 상황을 장내세균 불균형이라고 부른다.

 

 

 

p82.

 

 

 

 마이크로바이옴 구성물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에 따라 건강한 면역 반응을 형성할 수도, 몸을 질병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불균형한 마이크로바이옴은 장 투과성 또는 장 누수를 유발하는 염증성 환경을 조성한다. 장 누수는 뇌와 관련해서도 나쁜 염증을 일으키고 뇌 호르몬 생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울증, 불안, 인지 기능장애, 사회적 기능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뇌와 신체 전반에서 염증이 증가하여 알츠하이머병, 불안, 기억력 상실, 뇌 안개, 감정 기복 등이 나타날 위험이 높아진다. 또 분자 모방이 발생하는 환경을 만들어, 해로운 음식과 분자 구조가 비슷한 자신의 뇌 영역들이 공격하게 만든다.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뇌 호르몬의 불균형을 화학적으로 무효화하여 일시적으로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 이런 약물은 훌륭한 구명조끼다. 약이 필요하다면 복용하라. 그렇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내면의 격렬한 폭포에 맞서 허우적댈 것이다. 애초에 호르몬 불균형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84.

 

  

 

 뇌 호르몬은 두뇌 속도부터 감정 기복과 신진대사까지 뇌의 각종 작동 방식을 제어한다. 만약 현재 우울증을 앓거나 불안감을 느낀다면, 장에서 시작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모든 세로토닌의 90%가 뇌가 아니라 장에서 분비되고 저장된다.

 

 

 

p88.

 

 

 

 연령 스펙트럼에서 노인의 반대편에 있는 자폐 아동에게서 글루텐에 대한 항체가 발견되었다. 우리는 앞서 2장에서 자폐증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폐증이 관류 저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알아보았다. 자폐증은 워낙 복잡한 병이라 이제 막 여러 가지 원인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자폐증은 뇌에 영향을 미치는 식품 과민성 측면에서 분자 모방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다. 나는 <영양 신경과학> 저널에 발표한 한 연구 논문에서 자폐 아동의 87%가 글루텐, 달걀, 유제품에 대한 항체를 보유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비해 자폐가 아닌 아동은 1%만이 그런 항체를 보유하고 있었다. 항체 및 그와 관련된 염증이 초래하는 손상이 아마도 자폐 아동이 보이는 몇 가지 신경 증상의 원인일 것이다.

 

 

 

p89. 해로운 빵.

 

 

 

 곡물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식량 자원으로 인간의 행동과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92. 켈리를 만나보자.

 

 

 

 켈리는 내 환자는 아니었지만, 나는 켈리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

 

 

 

p94. 소젖에는 문제가 너무 많다.

 

 

 

 장 누수와 뇌 누수를 일으킬 수 있는 식품은 밀뿐만이 아니다. ~~~~~

 

 

 

p106.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의 최신보고서는 식량과 담수 부족 확대, 극단적인 기상 현상, 해수면 상승, 생물 다양성 감소, 지구 곳곳의 인간 거주 가능 지역 축소에 따른 인류의 집단 이동, 분쟁, 유혈 사태등을 기후 변화와 연결 짓는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 식량이 부족해지면, 특히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부족해지면 우리 식단에서 항산화물질이 결핍될 것이다. 항산화물질과 폴리페놀은 염증의 불을 끄는 소화기 역할을 하는 만큼, 두 가지가 결핍되면 염증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진화하기가 매우 힘들어질 것이며 궁극적으로 혈액뇌장벽 손상(B4)이 발생하고 뇌기능이 저하될 것이다.

 

 

 

p109.

 

 

 

 독소가 뇌에 도달하면 그 결과는 정말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자폐증 및 발달장애 모니터링 네트워크는 2014년 미국 어린이의 68명 중 1명꼴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앓고 있다고 보고했다. 내가 1980년에 치료를 시작하던 때 자폐증 유병률은 대략 1만 명중 1명꼴이었다.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의 스테파니 세네프 교수는 살충제의 광범위한 사용에 따른 글리포세이트 노출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연구하면서, '현재의 속도대로면 2025년에는 2명 중 1명의 어린이가 자폐증을 앓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몸의 해독 시스템을 혹사시키는 유독성 식품과 화학적 독소 때문에 오늘날 자폐증 발병률이 그토록 높은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p124. 염소 필터 샤워기 --> 알아보자.

 

 

 

p125.

 

 

 

 독소 노출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작은 변화는 많다. 예를 들어 동네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받을 때 컵 뚜껑이 덮여있으면 즉시 뚜껑을 버리거나 처음부터 뚜껑 없이 달라고 요청하자. 왜 그럴까? 뜨거운 커피에서 나온 김이 BPA로 제조된 컵 뚜껑 아랫면까지 올라갔다가 응결되어 비스페놀 A가 가득한 채로 다시 커피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

 

 

 

p131.

 

 

 

 인체에서 가장 보호받는 조직은 엄마 뱃속에서 있는 태아다. 엄마 몸에서 해독 및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아기에게 전해지는 물질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요즘 태아들이 엄마의 혈액에서 수은을 흡수하고 특히 뇌의 수은 농도는 엄마보다 40%나 높아서 신경계 발달에 치명적이라니,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감이 올 것이다. 아기 몸의 수은은 대부분 엄마의 치아 충전재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가임기 여성들이 임신 전에 수은 충전재를 제거하고 반드시 해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p161.

 

 

 

 ApoE4 변종은 다양한 인종 집단에서 만발성 알츠하이머병의 가장 큰 유전적 위험인자로 알려져있다. ~~~~

 

 

 

p165.

 

 

 

 장 투과성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으면 가장 약한 고리에서 계속 손상이 발생하고, 그 부위는 주로 뇌인 경우가 많다. 유감스럽게도 장 투과성이 완치된 경우에도 우리 몸은 한 번 임게점을 넘었고 밀이 문제가 되었던 사실을 기억한다. 그래서 밀에 대한 기억B 세포를 생성하여 밀 과민성을 평생 유지한다.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하고 글루텐을 피해야 한다. 조금만 임신할 수 없듯, 조금만 밀을 먹을 수도 없는 것이다.

 

 

 

p185.

 

 그의 결론은 항상 동일했다. 환자가 "왜" 현재의 증상을 가지고 있는지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p188. 뇌건강을 위한 실천 항목

 

1. 운동량 늘리기(구조)

 

2. '3대 유해식품'인 밀, 유제품, 설탕을 배제하고 채소, 과일, 자연산 어류를 늘린 식단으로 변화(생화학)

 

3. 다음과 같은 해독용 영양소 보충(생화학)

 

1) 엽산(비타민 B9) : 엽산(Folate)이란 이름은 나뭇잎을 의미하는 라틴어 '폴리움(folium)'에서 유래했다. 실제로 잎이 많은 채소들이 엽산의 최고 공급원이다. 활성 상태의 엽산은 약칭으로 5-MTHF이다.

 

2) 코발라민(비타민 B12) : 여러 형태의 비타민 B12 가운데 메틸코발라민은 해독 과정에 조금 더 도움이 된다.

 

3) 비타민 D3 : 충분한 양의 비타민 D3를 섭취하면 혈액 검사에서 비타민 D3 농도는 50~75ng/ml(나노그램/ml)이 나온다. 내 생각에는 적절한 수준의 비타민 D3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의 가장 중요한 지표이므로 정기 검진으로 매년 점검해야 한다.

 

4) 생선기름(물고기에서 짜낸 기름) : 생선기름의 좋은 지방은 몸에 유익하다. 뇌세포를 생성하여 뇌기능을 향상시키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안정시키며, 장 투과성을 치유하는 유전가를 활성화시킨다. 또 자가면역질환을 줄이거나 때로는 호전시키기도 한다.

 

4. 체중 감량과 해독을 위해 간헐적 단식 도입하기(생화학)

 

5. 밤에 잠자는 동안 집에서 무선 라우터 꺼두기(전자기장)

 

6. 잠자는 동안 알람이 필요하더라도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기(전자기장)

 

7. 수면 개선 : 필요하면 멜라토닌 보충제 복용하기(하룻밤에 2~5밀리그램)(마음가짐)

 

8. 명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스트레스 줄이기(마음가짐)

 

 

 

p194.

 

 금단증상을 줄이려면,

 

1.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자. 밀, 유제품, 설탕 섭취를 중단하면 이뇨 효과가 나타난다. 섭취 중단 첫 주에 체중이 줄어든다면, 아마도 과도한 염증으로 인한 수분이 감소한 탓일 것이다.

 

2. 음식에 평소보다 약간 많은 양의 소금을 추가하자(바다소금을 권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주 다리에 쥐가 나는데, 소량의 바다소금으로 이를 막을 수 있다. 별것 아니다. 그냥 매일 소금만 조금씩 더 먹으면 상태가 좋아진다(의사가 달리 지시하지 않는 한). 소금을 혀에 직접 넣어보라. 만약 우리가 나트륨이 부족하고 '소금은 무조건 몸에 나쁘다'는 믿음(사실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을 버릴 수 있다면, 소금이 정말 맛있어서 조금 더 먹고 싶어질 것이다. 약간의 소금으로 즐거운 만족감을 얻는다면 우리 몸이 '감사하다'고 말할 것이다.

 

3. 침착성을 유지하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기에는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지 말자. 편안하다고 느낄 때 시작해야 바디버든을 줄이고 금단 증상도 줄일 수 있다.

 

4. 계속 움직이자. 운동은 증상에 대한 잡념을 떨져버리고 훨씬 건강한 방법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엔도르핀을 생성한다.

 

 

 

p199. 애나를 만나보자.

 

 

 

 이 이야기는 내 환자의 사례는 아니지만, 내가 진심으로 관심 있게 지켜본 연구다. 나는 1990년에 이 연구가 발표된 이래로 내 모든 진료실에 이 연구 보고서의 사본을 보관해왔다. 왜냐하면 이 연구는 근골격계 치료가 왜 그토록 많은 다른 건강 문제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전체 플랫폼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연구 보고서를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이야기에는 만성적인 골반 통증과 소변 문제를 호소하며 의사를 찾아온 39세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를 애나(Anna)라고 부르자. 애나의 골반 통증은 오래전 근가 18세일 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직후에 시작되었다. 통증은 몸의 오른쪽에서 시작되어 점차 왼쪽에서도 나타났다. 애나의 첫 번째 의사는 그녀가 맹장염에 걸렸다고 추측했기 때문에 애나는 맹장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추후 병리학 보고서에 따르면 그녀의 맹장은 정상이었고, 골반의 통증은 여전했다.

 

 몇 달 후 애나는 생리 주기가 심하게 고통스러워졌고, 골반 통증이 계속되었으며, 자꾸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애나는 검사와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고, '스트레스에 따른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자, 이것은 어떤 종류의 진단인가? '스트레스에 따른'이라는 증상이 본질적으로 정신질환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애나의 머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그녀의 과민한 대장이었다. 애나가 병원에서 퇴원할 때도 대장 기능에는 차도가 없었고, 애나는 평생 이 병과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며, 그러지 않으려면 스트레스를 줄일 방법을 찾으라는 말을 들었다.

 

 2~3년이 지나자 애나는 질 분비물을 경험했고 방광과 질 감염이 반복되었다. 여러 가지 항생제를 사용한 치료를 받았지만,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될 뿐이었다. 애나는 음순과 음핵 양측에서 생식기 통증이 나타났다. 성관계는 극도로 불편해졌고 오르가즘은 불가능했다. 극심하게 고통스럽던 생리는 과도한 출혈로 더욱 심해지고 불규칙해졌다. 애나는 생리 주기를 조절하기 위해 에스트로겐 요법을 처방받았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애나는 26세가 되었을 때 임신을 했다. 그녀는 요통과 양쪽 허벅지의 간헐적인 통증을 겪었고, 감각 마비와 따끔거림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애나는 오랜 진통 끝에 정상적인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2년 후 애나는 다시 임신했지만 5개월 반 만에 자연 유산을 겪었다. 몇 달 후 애나는 다시 임신했지만 똑같은 증상을 보였다. 이번에는 임신 7개월까지 임신 상태를 유지하다가 딸아이를 조산했다. 

 

 이 출산 후 애나의 골반과 음부 통증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세 차례나 탐색적 복부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첫 번째 수술에서 만성 설사와 비교적 새로운 증상인 지속적인 완전 요폐, 즉 소변을 전혀 볼 수 없는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증상을 설명해줄 만한 어떤 비정상적인 점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애나는 일부 증상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며 부분 자궁 절제술에 동의했다. 하지만 자궁 절제술 후에도 방광 기능이나 질 주변의 감각 상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로 퇴원했다.

 

 그 후 10년 동안 이 모든 증상은 지속되고 악화되었다. 하지만 전통 의학에서 더 이상 시도해볼 방법이 없자, 한 친구가 애나에게 척추지압사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맨 첫 번째 검사에서 척추지압사는 그녀에게 다양한 운동을 시켰고 그녀는 약간의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검사가 끝나자 척추지압사는 애나가 자각 증상은 없지만 확연한 L5 디스크 돌출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만약 어떤 의사든 애나의 등을 엑스레이로 찍는다면, 디스크 문제를 발견했을 터였다.

 

 애나는 성실히 치료법에 따르면서 나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거의 25년간의 고통이 4주 만에 사라졌다. 반복되던 방광염이 끝났고, 소변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만성 설사는 사라졌고, 고통 없이 완전한 기능으로 남편과 성관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척추지압사가 무슨 치료를 한 것일까? 허리 아래쪽의 척추를 조절하고 아주 부드럽게 견인했을 뿐이다. 애나가 겪은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애나의 모든 증상은 18세 때 계단에서 떨어진 시점에서 시작됐다. 애나는 그때 등에 불균형이 생겼던 것이다. 이 상태가 뇌에서 신경을 통해 골반 부위까지 보내는 메시지에 영향을 미쳤다.

 

 이 여성이 수십 년간 얼마나 심하게 고통 받았는지를 생각해보라. 그녀는 유산을 했다. 20년도 넘는 인생을 고통과 기능장애 속에서 보냈다. 계단에서 떨어져 등이 균형을 잃었는데도 그녀가 만난 어떤 의사도 그녀의 척추를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몸의 세포는 신경에 의해 조절된다. 뇌는 모든 세포에 방향을 제시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어떤 이유로든 뇌의 메시지 전달이 중단되면, 그 세포는 메시지를 명확히 수신하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애나가 경험했던 모든 증상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애나의 경우, 척추 불균형이 해소되자 신경이 관절의 빈 구멍을 통해 척추 아래로 전달하는 뇌의 메시지를 다시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조광 스위치를 최고의 조도로 올려놓자 뇌에서 흘러나오는 '원기'가 최대한의 출력으로 전달된 것이다.

 

 척추지압요법으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어리석다. 하지만 척추지압요법으로 어떤 병이든 고쳐볼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지극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다. 대니얼 파머(Daniel Palmer) 박사는 1895년에 척추지압요법이 왜 실질적으로 치료 효과를 내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에 척추지압사라는 직업을 만들었다. 파머 박사는 척추 불균형이 척추로부터 멀리 떨어진 다른 신체 부위의 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최초로 입증한 사람이다. 그 후 수천만 명의 환자가 척추지압요법으로 치료를 받았고, 요통, 두통, 뇌기능장애, 근육통부터 장기 기능장애까지 다양한 질병이 호전되고 개선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의 건강 피라미드에서 구조의 불균형이 문제라면, 어느 부위에서 증상을 경험하든지 간에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p204

 

 만일 목에 염증이 생기면, 그 염증은 눈, 귀, 혀, 미뢰, 심지어 심장으로 가는 메시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로는 척추에서 오는 메시지를 처리하면 소화 문제와 속 쓰림 증상이 해결된다. 

 

 염증은 때때로 전선 중 하나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그러면 맨 뒤쪽 오른쪽에 있는 집들은 괜찮다. 만약 구획으로 들어오는 중계회선인 메인 케이블(뇌)이 손상된다면, 맨 오른쪽에 있는 집(신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맨 왼쪽에 있는 집(쓸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것이 나이 들수록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를 포함하여 최적의 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p210

 

 가장 좋은 수면 자세는 반듯이 누워 자는 것이다. 머리에 베고 자던 베개를 빼서 무릎 밑에 집어넣자. 그리고 수건을 돌돌 말아서 고무줄로 고정시킨 다음에 목 밑에 넣어라. 수건이 베개가 된다. 그렇게 무릎 아래에는 베개를, 목 아래에는 수건을 넣고 10분간 있어보자. 만약 10분 내에 잠들지 않으면 수건을 바닥에 내던지고 예전 자세로 돌아가 다시 잠을 자자. 매일 밤 10분씩 똑같은 자세로 잠을 청해보자. 결국에는 그런 자세로 잠들게 될 것이다.

 

 이 방법은 척추와 목의 근육, 인대, 힘줄의 이완을 유도하여 원래 설계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한다. 점차 작은 수건에서 큰 수건으로 옮겨가면 척추 전만이 깊어진다. 그러면 전만 방향으로 곡선 형태를 띄는 정형 외과 베개로 바꿀 수 있다. 이 베개는 돌돌 말은 수건과 같은 위치가 곡선 형태로 불룩하다. 이제 좀 더 유연해진 목은 정상적인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 6개월 후에는 목 아래에 정형외과 베개, 무릎 아래에 일반 베개를 베고 잠들게 되는데, 이제는 목이 똑바로 정렬되어 전보다 훨씬 푹 자게 된다. 이것은 목 요가와 같은 효과가 있다.

 

 

 

p213. 신발 뒤축을 살펴보자.

 

 너무 흔한 일이지만 만약 신발 뒤축의 바깥쪽이 닳아있다면, 발 구조가 균형을 잃어 척추가 더 빨리 마모되고 염증을 일으키며 훨씬 이른 나이에 관절염에 걸릴 것이다. 발을 디딜 때마다 갑자기 관절에 무리를 가하며 균형을 잃는 상태가 계속되어, 그 충격이 목뼈랑 연결된 머리까지 ㅣ올라올 것이다. 

 

해결책 : 척추지압사를 찾아가자. 단기적으로는 신발 굽을 갈거나 새 신발을 신자.

 

 

 

p214. 운동시 적정 심박수.

 

 먼저 1분당 180회에서 본인 나이를 빼고 5회를 더하거나 뺀 수치를 심박 모니터의 목표 범위로 설정한다. 만약 평소 맥박이 72회 이하라면 72와의 차이만큼 180에서 빼고 계산하고, 혹시 진단받은 질환이 있다면 5회만큼 더 차감하자. 예를 들어, 나는 65세이고 건강하므로 나의 목표 범위는 180-65±5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 유산소 범위는 분당 110~120회 정도인데, 내 목표는 운동하는 30분 동안 계속 이 범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잠깐, 내 평송의 맥박은 분당 58회다. 그러면 나는 먼저 180에서 14를 빼고 시작해야 한다. 일단 180-14=166이고 여기에서 내 나이 65를 빼고 5를 더하거나 빼면 96~106이 나의 목표 범위가 된다. 이것이 내가 매일 30분씩 도달하고 싶은 범위다.

 

 

 

 목표 맥박 범위 내에서 운동하면 다음과 같이 뇌기능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게 된다.

 

1) 학습 능력과 신경 가소성을 향상시킨다. 신경 가소성은 나이 들어서도 계속 적응하고 배울 수 있게 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2) 치매 등 여러 신경퇴행성 질환의 발병과 악화를 지연시킨다.

 

3) 신경이 퇴화되기 시작한 후에도 기능 저하 속도가 느려진다.

 

4) ApoE4 유전자(알츠하이머병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을 보호한다.

 

5) 새로운 뉴런의 수를 증가시키고, 새로운 세포의 생존을 촉진한다.

 

 

 

 마지막으로 운동하기 전에, 운동 중에, 그리고 운동이 끝나고 나서 수분을 보충하는 것을 잊지 말자. 깨끗하고 여과된 물을 마시는 것은 염증을 예방하는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체중 450g당 최소 1/2온드(1kg 당 약 30ml)의 물을 마셔야 한다. 계속 체내에 수분을 공급하여 독소를 씻어버리자. 독소를 몸 밖으로 배출해야 한다.

 

 

 

p220

 

 건강 문제가 발생하는 한 가지 이유는 우리 몸이 항상 교감신경계가 지배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얇은 교감신경이 적절한 절연재 없이 과도하게 사용되면, 말 그대로 지치기 시작하여 염증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뇌, 신경계, 그 밖의 어디에서든 유전 사슬의 약한 고리에 대한 항체가 증가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우리의 신경계는 부교감신경 지배 상태(태어날 때)에서 교감신경 지배 상태로 변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충분히 오래 지속되면, 얇은 교감신경계가 원래의 용도보다 훨씬 더 자주 사용되어 마모되기 시작하면서 교감신경계 지배 상태에서 교감신경계 피로 상태로 변하여, 우리는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스트레스가 계속된다면 교감신경계 피로 상태에서 교감신경계 탈진 상태로 바뀔 것이고, 여전히 '투쟁(fight), 겁에 질림(fright), 도피(flight)' 반응이 계속된다면 결국에는 교감신경계 소진 상태로 이어지게 된다.

 

 퇴행성 질환은 교감신경계 소진 상태에서 발생한다. 부교감신경계 지배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유전 사슬의 약한 고리에서 생기는 어떤 질병에든 극도록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더 많이, 더 자주 영향을 미친다. 온몸이 녹초가 된 기분이라면, 실제로 그런 상태인 것이다. 뇌의 회복력도 형편없이 떨어져, 우리는 인생의 어떤 상황에 처하든 적응하기가 힘들어진다.

 

 

 

p223

 

 심지어 2015년에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은 위약 효과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위한 노력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위약 효과는 신경전달 물질과 관련된 복잡한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과... 측정 가능한 뇌의 특정 관련 부위들(예를 들어 위약 통각상실증의 경우 전두엽 피질, 전측 뇌섬엽, 입쪽전방대상피질, 편도체 등)의 활성화에 의존한다." 이는 우리가 뇌에 미치는 위약 효과를 측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물에 영향을 받는 동일한 경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위약 효과에 대한 '나쁜 소문'은 대부분 자사의 약품을 복용하는 편이 약을 먹지 않는 편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 애쓰는 제약업계에서 나온다. 여기서 진실을 밝히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 그것을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의 전반적인 인생관이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그런 호르몬에 따라 모든 약효나 부작용이 결정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온몸이 탈진하게 된다. 반면 긴장을 완화하는 부교감신경 호르몬이 분비되면 심장박동이 진정되고 호흡이 깊어지며 평화로운 뇌파가 우세해진다. 이것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명상에서 얻는 기본적인 효과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지가 궁금해진다. 어떻게 결과를 상상하는 것으로 실제 몸이나 뇌가 돌아가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걸까? 우리의 유전자가 곧 우리의 운면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정말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은 실제로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믿음에 따라 달라지는 건강 결과를 조사한 과학적 연구들도 있다. 2007년의 한 연구에서는 청소 업무를 담당하는 호텔 직원 84명을 두 집단으로 나눴다. 한 집단은 그들의 청소 업무가 의사들이 권장하는 운동의 조건에 부합하여 건강한 생활방식의 일환이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집단은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자 첫번째 집단은 체중, 혈압, 체지방, 허리 - 엉덩이 비율, 체질량 지수가 모두 감소하여 운동이 부분적으로나 전적으로 위약 효과를 통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진의 가설을 뒷받침했다. 단지 청소가 운동이라는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청소를 그저 일로만 생각했던 집단과 달리 실질적이고 확실한 건강상의 개선을 보인 것이다.

 

 

 

 뇌 건강의 경우에도 우리의 태도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1998년에 항우울제의 효능을 테스트하는 데 사용된 19건의 실험에 대한 메타분석이 실시되었다. 측정된 치료 효과의 25%만이 약물의 작용에 기인한 반면, 연구 전반에서 75%의 의 위약 효과가 확인되었다. 이에 대한 후속 연구로 2008년에 다시 검토가 진행되었는데, 이때에는 미발표된 연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미국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호소해야 했다. 제약업계에서는 그런 연구 결과를 감추려 들었기 때문이다. 2008년의 검토에서는 이런 누락된 연구들을 데이터에 포함시켰을 때 항우울제가 위약 효과를 능가하는 경우는 46건의 실험 중에 20건뿐이었다.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위약에 비해 항우울제의) 우월한 효과가 임상적 유의성에 대한 허용 기준보다 낮다. 이 검토는 항우울제를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만큼 그 효능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항우울제의 부작용인 체중 증가, 성욕 상실, 혈전 감소, 위 출혈과 자궁 출혈의 위험 증가 등을 고려하지 않았는데도 그러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개인의 이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정책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우리의 인생 경험을 직접적으로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는 대단히 많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 치료의 선구자 니콜라스 곤잘레스(Nicholas Gonzalez) 박사는 공포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치료 프로토콜도 파괴할 수 있는 전염성 질병이며, 믿음은 아무런 프로토콜 없이도 질병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치료 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몸의 자생력에 대한 믿음이 질병을 호전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란 얘기다. 임상전신과의사이자 기능의학자인 켈리 브로건(Kelly Brogan)은 저서 <당신 자신의 마음(A mind of Your Own)>에서 만약 우리가 건강 여행을 호기심, 자아성찰, 그리고 불균형 상태에 대처하라는 초대의 수락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에너지를 질병 상태가 아니라 더 새롭고 건강한 자신이 되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도 나처럼 건강을 변화시키는 힘은 우리가 그렇게 믿는 한 우리 안에 내재한다고 믿는다. 

 

 

 

 한 번에 한 걸음씩, 꾸준히 안타만 쳐도 야구 경기에서 이긴다. 우리는 홈런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우리 몸과 삶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p227

 

 모든 행동을 변화시키는 핵심은 자각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며 더욱 평온해질수록, 현재의 건강 상태를 자각하고 미래의 건강 목표를 세우기가 더욱 쉬워진다. 우리는 비판단적인 태도로 현실에 대한 자각에 이르러야 한다. 예를 들어 글루텐 프리 식품을 먹는다는 자각은 검사 결과 우리 면역계에서 가급적 피하려고 애쓰는 작은 독소를 우리 몸속에 집어넣는 대신, 새로운 선택이 몸에 이롭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의미다. 자각은 글루텐 프리 식품을 먹는 습관을 단지 처벌이나 의무로 보지 않고 우리 몸속에 건강한 연료를 제공하는 습관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자각이란 심장 박동에 대한 이해부터 글루텐 프리 식품을 먹을 때 얻게 되는 이점까지 우리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우리가 내리는 결정을 더 잘 안다는 의미가 아니다. 몸의 물리적 상태를 자각하고 공감과 친절로 그 자각을 수용하는 것이다.

 

 

 

p231

 

 마음 챙김(mindfulness)에 기초한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마음 챙김이란 경험에 반응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현재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개방적이고 수용적으로 자각하고자 하는 정신적 연습이다. 마음 챙김 수련의 목적은 명시적으로 경험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맺는 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 삶에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방아쇠를 바꿀 수는 없어도 그런 방아쇠에 반응하는 방법은 바꿀 수 있고, 그러면 그 방아쇠가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도 변하게 된다. 마음 챙김은 다양한 만성 질환과 정신 건강 문제에 개입하는 데 유용한 방법이다. 일례로 한 연구에서는 마음 챙김이 만성 우울증의 재발률을 감소시키고 불안과 우울증의 초기 치료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해병대의 회복탄력성 훈련 프로그램(Reflection Training Program)은 마음 챙김 기법이 개인에게 마음을 재정비할 시간을 주어 스트레스 받는 사건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반응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2012년의 한 중요한 연구에서는 마음 챙김을 다른 건강 증진 프로그램(다이어트, 운동, 약물 등)과 비교한 결과 마음 챙김 훈련이 염증성 반응을 현저히 감소시키고, 설령 외부의 방아쇠에 반응하여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더라도 염증성 반응이 줄어드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p237

 

 이들은 공저인 <자기혁신 프로그램(Changing for Good)>에 심리치료 없이도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1,000명 이상의 사삶을 연구한 끝에 얻은 결론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변화가 행운이나 의지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변화가 행운이나 의지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변화가 행운이나 의지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변화는 그것의 작동 기제를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과정이다. 일단 우리가 변화의 5단계 중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면, 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 실제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변화의 5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무관심 :이 단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생활방식이 건강과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사실을 모른다.

 

2. 심사숙고 : 이 단계의 사람들은 건강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기꺼이 인정하며, 그 가능성 때문에 변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이들은 보통 매우 양면적이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지켜만 본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이 변화에 성공할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냉소주의적("나는 이것을 믿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태도보다는 회의주의적("나는 이것을 믿지 않지만 더 많은 정보를 살펴볼 용의가 있다") 태도의 유무다. 심사숙고는 변화를 향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태도다.

 

3. 준비 : 이 단계의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에 자신의 생활방식을 개선하고자 진지하게 시도할 것이다. 이들은 (예컨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충분한 정보를 얻은 후에 행동을 변화해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고 확신하므로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고 기꺼이 노력한다.

 

4. 실행 : 이 단계의 사람들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몇 주 후에 결과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이전의 성공만큼 새로운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없다. 계획을 실행한 사람은 그 효과를 맛보고 건강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5. 유지 : 나는 항상 환자들에게 지구상에서 효과가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도 그것을 그만두는 유일한 종은 인간뿐이라고 말한다. 영구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오랜 세월에 걸쳐 새로운 행동 패턴을 만들고 계속 유지해야 한다. 몇 달 동안 글루텐 섭취를 끊어서 상태가 좋아지고 나면 다시 글루텐이 들어있는 생일 케이크나 블루베리 머핀 한 조각을 먹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단 그것을 먹고 나면, 장담하건대 다시 상태가 나빠졌음을 느끼게 되고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노력의 가치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나쁜 습관이나 오래된 즐거움으로 돌아가는 얼빠진 짓을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 엉망이라고 느끼고,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가서, 상태가 좋아진다. 이처럼 쓰러졌다가 다시 벌떡 일어서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 후에야 생일 케이크의 유혹("딱 한 입만 먹어야지")이 사라질 것이다. 새로 선택한 생활방식을 6개월 동안만 유지하고 나면, 유혹에 안전할 수 있다.

 

 

 

p253. 케토시스를 향상시켜 인지력 상실을 예방하고 상황을 역전시키자.

 

 

 

 만약 이미 인지력 상실이나 기억력 장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예를 들어 자동차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자주 궁금해한다면), 단기간(1~3개월) 동안 케톤 생성 식단(ketogenic diet)를 택할 것을 추천한다. 케톤은 음식물 공급이 부족하여 에너지를 얻기 위해 몸에서 지방을 분해할 때 생성되는 부산물인데, 뇌와 신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효율적인 백업 시스템이 된다. 저장된 지방세포를 연소시켜 케톤을 생성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며칠이나 몇 주씩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우리는 '케토시스'라는 과정을 통해 케톤에 접근할 수 있는데, 케토시스는 특히 이미 혈당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뇌세포에 연료를 공급하는 쉽고 대안적인 방법으로 알려졌다.

 

 만약 뇌기능 증상이 나타난다면, 당신의 뇌가 염증 유발 인자에 반응하면서 이미 포도당을 연료로 사용하는 능력을 일부, 많으면 24%까지 상실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의 뇌는 말 그대로 굶주리고 있고, 그 결과 더 많은 염증이 생기고 더 많은 뇌기능이 손상된다. 이로써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러나 몸을 케톤 생성 상태로 유지하면 뇌세포에 연료를 더 잘 공급할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뇌기능과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케톤 생성 상태를 유지하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억력과 인지력이 모두 향상된다고 알려졌다. 케톤 생성 상태가 관류 저하를 줄이고 뇌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진정한 케톤 생성 식단은 당신에게 모든 탄수화물을 피하도록 시킬 것이다. 그러나 인체는 영원히 탄수화물 없이 살 수 없다. 나는 당신이 이 식단을 1~3개월 동안 시도해보고, 얼마나 믿기 힘들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서서히 덜 제한적인 식단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그때쯤에는 그동안 케톤 생성 식단을 통해 경험한 뇌기능 향상과 체중 감량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더 건강한 탄수화물 식품을 추가하되 글루텐, 유제품, 설탕은 반드시 피하면서 간헐적 단식을 도입하기에 좋은 시점이 될 것이다. 식단에 소량의 탄수화물을 다시 첨가하면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살펴라. 탄수화물을 다시 먹기 시작한 후에 증상이 재발하거나 향상된 뇌기능이 흐려지기 시작한다면, 그 정도의 탄수화물 양을 다시 섭취할 준비가 아직 안 된 것이다. 다시 1주나 2주 정도 식단에서 탄수화물을 제외시킨 다음, 더 적은 양의 탄수화물을 추가하여 반응을 살펴보자.

 

 케톤 생성 식단은 좋은 결과를 낳지만 전체 프로그램의 일환일 뿐이다. 일반적인 구명조끼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하루 빨리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영원히 탄수화물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 몸은 탄수화물을 일차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체중 감량 프로그램의(요요현상이 계속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타기와 달리, 뇌 건강 프로그램을 영구히 유지하는 방법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근본 원인, 유발 요인,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다.

 

 케톤 생성 식단을 성공키시고 뇌 건강에 영구적인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은 이 식단을 지금부터 이번 장에서 소개할 나의 다면적 영양 접근법과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면 식품 과민성, 환경 독소 노출, 이미 진행 중인 누적된 손상도 해결할 수 있다. 거기에 단헐적 단식을 실천하고 중쇄지방산(MCT) 오일과 그 밖의 중요한 영양분을 보충하여 적절한 음식을 꾸준히 섭취한다면 최고의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일례로 코코넛 오일과 야자 오일에서 발견되는 중쇄지방산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야자 오일은 건강에 좋지 않다.(야자 오일은 팜유를 의미하며, 현재 우리나라 라면-아마 외국도-의 대부분이 이 팜유로 튀겨낸다) 절대 사용하지 말라.(그러니 라면을 먹을때 라면을 한번 끓여서 기름성분을 우려낸 후 먹는 것이 좋다. 귀찮긴 하지만 건강을 위한다면 특히 그렇다. 특히 라면 먹으면 몸에 이상 증상이 생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팜유로 인한 것이다.) 중쇄지방산은 미토콘드리아라는 모든 뇌세포의 강력한 에너지 발전소에 쉽게 접근하 수 있는 연료를 공급한다.

 

 

 

GMO에 대한 몇 마디

 

 

 

 식품 건강 문제와 관련하여 나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유전바 변형 식품 및 생물체, 일명 GMO의 보급이다. 유전자 변형 식품은 1994년부터 대대적으로 상용화되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오늘날 40가지가 넘는 유전자 변형 식물종이 있는데 쌀, 콩, 옥수수 등의 세 가지 곡물이 가장 널리 분포 되어있다. 2012년에는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 콩, 면화의 90% 가까이가 GMO 품종이었다.

 

 현재 시판 중인 유전자 변형 식용작물은 콩, 옥수수, 면화(오일), 카놀라(오일), 사탕무에서 얻은 설탕, 주키니 호박, 노란 호박, 하와이 파파야, 알팔파 등 9종이다. 유전자 변형 곡물은 주로 가축들에게 먹이는데, 유제품, 달걀,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기타 동물성 식품에 영향을 미친다. 원료의 일부는 토마토소스, 아이스크림, 땅콩버터 같은 다양한 '천연' 가공 식품에도 추가된다. 유전자 변형 옥수수나 콩은 청량음료뿐 아니라 일부 향신료와 조미료 혼합물에도 첨가된다. 실제로 식물성 오일이나 아침용 시리얼 등 모든 가공식품의 80% 이상에 유전자 변형 성분이 포함된다.

 

 GMO 밀도 곧 우리의 주방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동안 밀은 수년에 걸쳐 자연 번식 기술을 통해 교잡되어 더욱더 많은 글루텐과 FODMAP이란 발효성 탄수화물 등의 기타 유해 성분이 함유되었다. 대부분의 GMO 작물처럼 밀에도 라운드업(Roundup)이라는 제초제가 뿌려지는데, 라운드업의 활성 성분인 글리포세이트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인체의 잠재적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미국에서는 밀을 수확하기 몇 주 전에 라운드업을 살포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제초제를 뿌리면 죽은 밀밭이 콤바인을 가로막지 않기 때문에 수확 작업이 더 용이하다. 둘째, 독성 화학물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은 생존하기 위해 토양으로부터 더 많은 영양분을 빨아들인다. 이런 영양분이 밀 씨앗으로 흡수되어 더 많은 글루텐을 함유한 밀이 탄생한다. 따라서 미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밀 제품에는 더 많은 글루텐이 함유되는 것은 물론, 암을 유발하는 글리포세이트의 자취가 있다.

 

 

 

 각종 동물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GMO가 면역계, 간, 신장에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라운드업은 장내 미생물군을 변화시키고 장 투과성을 증가시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라운드업과 간 해독 능력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면서, 이 화학물질이 항상성을 파괴하고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에 과도한 염증을 일으키는 것을 비롯해 각종 자가면역반응을 유도한다며, 환경 유발 요인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GMO는 또 위장질환, 비만, 우울증, 자폐증, 불임, 암, 알츠하이머병과도 관계가 있다. 글리포세이트가 식품 생산에 도입된 후로 뇌졸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런 이야기가 충격적이고 언짢다는 것을 알지만 이런 정보는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질병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p259. 좋아하는 신선 식품을 즐기자

 

 

 

 당신은 모든 종류의 과일, 채소, 향신료, 견과류를 먹을 수 있다. 신선한 제철 식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항상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으라고 추천하지만, 사실 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냉동 과일과 채소는 잘 익은 과일과 채소를 수확한 뒤 냉동한 것으로, 산화방지제와 폴리페놀의 완전한 성분이 함유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허용된다. 가능하면 유기농 농산물을 선택하고 현지에서 재배하는 품종을 고르자. 설탕이나 소금을 이용해 보존되었을지 모르는 통조림 과일과 채소는 피한다. 볶은 땅콩에는 생땅콩보다 더 많은 레스베라트롤이 함유되어 있는데, 레스베라트롤은 뇌와 심혈관 계통을 보호한다고 알려진 적포도주에서도 발견되는 유익한 성분이다. 단 땅콩 외의 모든 견과류는 날것으로 먹어야 한다. 

 

 

 

 많은 신선 식품이 위장을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고 알려져있다. 이 식품들은 천연적으로 항염증성이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선택지다. 매일매일 다음의 목록에서 한 가지라도 먹도록 하자.

 

 

 

1) 계피

 

2) 십자화과채소(브로콜리, 방울양배추, 콜리플라워, 양배추, 청경채) : 대장의 염증을 낮추는데 특히 유용한 강력한 폴리페놀인 글루코시놀레이츠라는 필수 영양소군이 함유되어 있다.

 

3) 베리, 체리, 적포도 등 폴리페놀 함량이 높은 짙은 색 과일

 

4) 녹차 : 프리바이오틱이다.

 

5) 오메가3 지방산 : 인체에서 합성되지 않으므로 식이요법을 통해 얻어야 한다.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좋은 기능을 하는데, 특히 위장의 염증을 낮추는 유전자를 활성화시킨다. 오메가3가 많이 함유된 식품은 풀을 먹인 소고기, 냉수성 어류, 해산물, 흑호두, 피칸, 잣, 치아씨, 아마씨, 바질, 오레가노, 정향, 마조람, 타라곤 등이다.

 

6) 파슬리

 

7) 토마토 쥬스

 

 

 

p263

 

 혈당지수가 높은 식품으로는 아이스크림, 빵, 그 외 모든 밀가루 제품, 감자, 건포도, 감자칩, 알코올음료, 백미 등이 있다. 실제로 <밀가루 똥배>의 저자인 윌리엄 데이비스 박사에 따르면 밀 제품의 혈당지수는 모든 식품 중에서 가장 높다. 반면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이 더 영양가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대부분의 다른 과일, 채소, 콩류가 이에 해당한다.

 

 

 

 혈당지수는 확실히 더 나은 식품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며, 소위 건강한 식품의 몇 가지 문제도 지적한다. 예를 들어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통밀빵은 한 쪽만 먹어도 혈당지수가 69로 높은 편이다. 땅콩 덕분에 혈당지수가 42에 불과한 스니커즈보다 훨씬 높다.

 

 

 

 저혈당으로 알려진 과일(살구, 자두, 사과, 복숭아, 배, 체리, 베리)은 탁월한 선택이다. 베리 같은 일부 과일은 몸에 좋지만, 우리가 당분을 너무 많이 먹는데 죄책감을 느끼다 보니 우리의 혈당 조절 체계는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다. 

 

 

 

p264. 견과류와 씨앗

 

 

 

 견과류와 씨앗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밀가루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견과류와 씨앗의 가루와 버터도 있다. 특별한 알레르기나 과민성이 없는 한, 생견과류나 씨앗 중에 먹어선 안될 것은 없다. 땅콩과 코코넛도 좋은데, 둘 다 엄밀히 따지면 견과류나 씨앗은 아니다. 땅콩은 콩류에 속하고 코코넛은 과일이다.

 

 

 

 그렇다고 삼절 진열대의 아무 견과류바나 먹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항상 재료와 성분표시 라벨을 주의 깊게 읽고, 설탕이나 유제품으로 만든 바와 글루텐 프리 표시가 없는 바는 피해야 한다. 유기농 가공식품과 글루텐 프리 가공식품도 건강에 좋지 않은 재료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좋은 씨앗과 견과류의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아몬드, 호주너트, 너도밤나무 열매, 흑호두, 브라질너트, 버터너트, 캐슈, 밤, 치아씨, 중국 아몬드, 중국 밤, 개암, 아마씨, 헤이즐넛, 대마씨, 호두, 콜라 너트, 타이거 너트, 마카다미아, 피칸, 잣, 피스타치오, 양귀비씨, 호박씨, 홍화씨, 참깨씨, 해바라기씨, 인도 너도밤나무 열매

 

 

 

p265. 채소

 

 채소는 적용할 수 있는 요리가 아주 많다. 채소는 날것으로 먹거나 살짝 데치거나 구워 먹거나, 볶아서 간식, 반찬, 메인 요리로 즐길 수 있다. 수프, 칠리소스, 스튜, 구이, 샐러드, 볶음, 캐서롤에도 넣을 수 있다. 가능하면 구할 수 있는 최고 품질의 채소를 구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자. 이 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기농, 로컬, 산지 직송 제품을 구하라는 의미다.

 

 

 

p277. 건강한 지방

 

 

 

 코코넛과 코코넛 제품은 건강한 지방이 가득한 식품으로 상온에서도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다. 코코넛의 크림 같은 질감은 유제품 프리 음식을 만들기에 좋다. 코코넛 밀크는 지방 함량이 높아서 어떤 레시피에도 유제품을 대체할 수 있다. 코코넛을 이용한 식품은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 코코넛 오일에는 중쇄지방산(MCT)이 함유되어 신경보호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있다. 중쇄지방산은 몸에 쉽게 흡수되어 에너지로 사용되고, 또 간에서 쉽게 신진대사가 되어 뇌의 대체 연료인 케톤으로 전환되므로, 혈당에 대한 의존도도 줄일 수 있다. 또한 코코넛에 들어있는 페놀 화합물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에서 핵심 과정인 베타아밀로이드 반점의 축적을 막는다.

 

 

 

 가장 적게 가공한 요리용 오일에는 '엑스트라버진'이나 '콜드프레스'같은 라벨이 붙어있다. 자외선 차단되는 병에 담아 판매하는 오일을 찾아보자. 그런 오일이 빨리 상하지 않는다. 오일을 사용해 요리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연기가 날 때까지 가열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오일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면, 오일이 산화되면서 다량의 유리기가 생성된다. 그래서 가열점이 높아 연기가 쉽게 나지 않는, 건강에 좋은 오일을 찾아야 한다.

 

 건강에 좋은 오일로 추천할 만한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아보카도 오일, 코코넛 오일, 기(ghee) 버터, 마카다미아 오일, 올리브 오일

 

 

 

p289. 유제품을 먹지 않는 방법

 

 

 

 소젖의 단백질 구조는 인간 모유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크기의 8배에 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소젖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염소젖의 단밸질 구조는 인간의 모유보다 6배 크기다. 소젖보다는 낫지만 역시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구할 수만 있다면 몇몇 종류의 동물 유제품은 잘 소화시킬 수 있다. 2007년 <알레르기 및 임상 면역학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동물 젖이 인간 모유 단백질과 62% 이상 비슷한 단백질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그 젖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이런 동물성 유제품이 실제로 존재한다. 일부 민속 특산품 가게에서는 낙타유, 순록유, 당나귀유 등 소젖의 좋은 대용품을 판매한다. 나는 얼마 전에 낙타유를 먹어봤는데, 소젖을 먹을 때 생기는 전형적인 점액 생성 부작용이 없었다. 나는 동물성 유제품을 부어 시리얼 한 그릇을 먹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낙타유는 그 갈망을 충분히 채워주었다. 

 

 

 

 그 외에도 우유를 대체할 수 있는 많은 동물성 유제품이 있다. 나는 유기농 제품이라도 두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콩의 장단점을 보여주는 여러 연구가 있는데, 식물성 에스트로겐의 영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콩에서 나오는 식물성 에스트로겐 분자들은 체내의 수용체 부위에 결합하여 약한 에스트로겐 호르몬처럼 작용한다. 에스트로겐이 결핍된 상태라면 콩을 추가로 섭취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트로겐이 적절하거나 과도한 상태라면, 콩은 남녀 모두에게 나쁠 수 있다. 더욱이 콩의 장점을 보여주는 연구는 아시아 연구 기관들에서 주로 나오는데, 그곳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이 전지 대두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유 대용품은 코코넛 밀크로, 여기에는 HDL콜레스테롤을 향상시키는, 심장 건강에 좋은 포화 지방인 라우르산이 풍부하다. 견과류나 쌀로 만든 유제품도 있다. 어쨌든 원칙적으로 항상 무가당 제품을 선택하라. '플레인' 우유 대용품에는 실제로 1컵당 6g의 설탕이 첨가되어 있다. 맛이 가미된 제품은 1컵에 12g에서 20g까지 첨가될 수 있다. 성분표시 라벨에서 '무가당' 표시를 찾으면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바닐라 맛을 찾을 수 있다.

 

 

 

p296

 

 

 

 알코올 노출은 장에서 그람 음성 박테리아의 성장을 촉진하여 내독소가 축적되게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람 음성 박테리아와 장내 상피세포에 의한 알코올 대사 작용으로 아세트알데히드가 축적될 수 있는데, 이는 다시 치밀 결합 및 부착 결합 단백질의 타이로신 인산화를 증대시켜 내독소의 장 투과성을 높일 수 있다. 또 알코올로 인해 생성된 산화질소는 튜불린과 반응하여 내독소의 투과성 향상에 일조할 수 있고, 그 결과 미세관 세포골격에 손상을 입히고 장 방어벽 기능을 붕귀시킬 수 있다.

 

 

 

 내가 왜 이 대목을 인용했을까? 알코올 섭취는 튜불린(tubulin, 모든 신경 세포 내의 비계)을 손상시켜 튜불린에 대한 많은 항체를 생성하므로, 튜불린 항체 수치는 뇌염의 생체지표 중 하나가 된다. 이는 장 질환이 뇌염과 혈액뇌장벽 손상의 원인이 되는 예이다.

 

 

 

 알코올은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장을 손상시켜 장 투과성을 초래하고, 장내 세균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혹시 장 누수를 치료하는 중이라면, 장 내벽이 치유되는 동안 알코올을 완전히 피해야 한다.

 

 

 

p305

 

 또 장 누수의 자연적인 치료법으로 초유를 추천한다. 초유는 출산 후 처음 3~5일 동안 나오는 젖으로 모유와는 전혀 다르다. 초유는 출산 과정에서 모든 포유류의 젖샘에서 분비된다. 초유에는 신생아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필요한 항체가 포함된다. 초유는 지구상의 어떤 물질과도 다른 방식으로 유전자를 조절한다. 이제는 이것이 모든 면에서 장 건강을 위한 최고의 치료법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초유에는(자궁 내에서 완전히 투과되었던) 미성숙한 장벽의 치밀결합을 강하게 하는 데 필요한 성장 인자와 호르몬이 포함된다. 성인의 경우 역시, 초유는 같은 유전자를 활성화시켜 장 내벽 손상을 복구하고 장을 온전하게 회복하며, 느슨해진 치밀결합을 단단하게 조여 장내 염증성 유전자의 1차 조절자 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 유익한 박테리아로 장의 재생성을 촉진한다.

 

 

 

 초유는 전체 고형물 중 대략 4분의 1이 항체로, 신생아는 이 항체들을 마이크로바이옴에 착생시켜야 한다. 초유에 포함된 IgG는 아기를 벌레,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균류, 기생충으로부터 즉각 보호해준다. 성인의 경우도 이런 침략자들로부터 몸을 보호해줄 것이다. 또 초유는 미세 융모를 복원하는 유전자를 활성화시켜 셀리악병에 걸리면 닳아 없어지는 털을 다시 자라게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유 권위자인 앤드류 키치 박사는 글루텐 서밋에서 이렇게 말했다. "건강보조식품 판매점에는 손상된 장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악기 연주자들이 많이 있지만, 오직 초유만이 전체 교향곡을 연주할 수 있다."

 

 

 

p388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획기적인 연구가 일상적인 병원 치료에 적용되기까지 평균 17년씩 걸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새로운 생각에 대한 저항이다. 실제 학자들이 콜레스테롤을 동맥경화증의 원인으로 처음 지목한 때부터 일반 의사들이 환자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처음 확인한 때까지 평균 17년이 걸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은 자명하다. 

 

 

 

1) 1950년대에 미국 서부와 남서부 일대의 신문들은 원자폭탄의 여파가 '안전하다'고 강조하는 정부 과학자들의 말을 1면에 보도했다. '걱정할 것 없다'는 것이 그들의 요지였다.

 

2) 1960년대에 담배가 '안전하다'고 설파했다. 실제로 카멜은 '의사들이 가장 추천하는' 담배 브랜드였다.

 

3) 1970년대에 젖소에 인간 성장 호르몬을 투입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했다.

 

4) 1980년대에 마가린이 '건강에 좋다'고 했다. => 나 어릴 때 빵에 마가린 발라서 많이 먹었다. T_T;;

 

5) 1990년대에 휴대전화가 '안전하다'고 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머리 옆에 배터리를 놔두어서 좋을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6) 2000년대에 정부는 GMO 식품이 '안전하고' 농작물에 뿌리는 극심한 독성 화학물질도 인간에게 '안전하다'고 했다.

 

 

 

 1979년에 나는 고압선에서 0.25마일(약 402m) 이내에 거주할 경우 소아 백혈병이 증가한다고 밝힌 연구 논문을 우연히 접했다. 이때가 내가 전자기장의 건강 위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1982년에 고압선과 성인 암의 상관관계를 밝힌 또 다른 논문을 읽었다. 1991년에는 밤새 전기담요를 덮고 자면 유방암 위험이 31%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후 세상에 점점 더 많은 전선이 연결되었고, 우리가 노출되는 전자기 오염은 극도로 심해졌다. 각종 질병이 증가하고 지구상의 생명이 사라져져가는 최근의 무시무시한 수치를 보고 있자면, 과도한 독소 노출을 줄이기 위해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을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작은 가전제품의 미약한 독소에 노출되는 일이 어째서 그토록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전자기방사선은 늘 같은 속도로 이동하며, 빛처럼 파동으로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 에너지는 전기와 자기를 동시에 띠는데, 파동은 전기적으로 양극에서 음극으로, 자기적으로는 북극에서 남극으로 빠르게 번갈아 나타난다.

 

 모든 전원에서 방출되는 전자기방사선은 주변 지역을 투과하며 전자기장을 형성한다. 전자기장은 전원 근처에서 가장 강하고 멀리 떨어질수록 약해지다가 점차 측정이 불가능해진다. 강한 전자기장은 멀리 있는 강한 방사선 발생원 때문일 수도 있고, 가까이 있는 약한 방사선 발생원 때문일 수도 있다. 머리맡에 놔둔 스마트폰의 전자기장이 0.25마일 떨어진 휴대전화 기지국의 전자기장보다 훨씬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 다 암 발병과 관련이 있다.

 

 투과는 전자기방사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된 주요 이슈다. 일부 형태의 전자기방사선은 다른 형태보다 더 투과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전등 불빛은 공기, 물, 유리는 투과할 수 있어도 벽돌이나 금속판은 투과할 수 없고 인간우리의 살 속으로 깊이 투과하지 못한다. 손전등으로 손을 비추는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면, 빛이 피부를 투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X선은 쉽게 인체를 투과한다.

 

 

 

 우리 가정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부 전자기 방사선은 투과력이 매우 강하다. 초저주파는 콘크리트 기둥과 금속판은 물론, 인간의 살과 뼈도 투과한다. 그런데도 이 방사선은 비교적 약한 편이라 짧은 거리에만 전자기장이 측정된다.

 

 전기와 방사선에 다량으로 노출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원자 폭탄을 생각해보자. 전기는 많은 다른 파장과 주파수를 가로질러 이동한다. 건강 문제와 관련되어 우리가 가장 친숙한 전자기파는 X선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X선에 노출되면 암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의사들이 엑스레이 촬영 준비를 마치면 얼마나 빨리 그 방에서 나가는지 보았는가? 의사들은 아무리 약하더라도 자주 노출되면 대단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태양 플레어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방사선의 예다.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이 거대한 폭발은 전자기장을 형성하고, 이 전자기장은 지구에 태양 방사선을 대량으로 퍼붓는다. 플레어는 태양 흑점 주기와 발생 빈도가 일치한다. 11년 주기로 정점에 달한다. 태양 방사선은 대기층에서 여과되므로 우리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혹시 산 정상에서 하이킹을 하거나 스키를 타면 지상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금방 햇볕에 탄다는 것을 알아챘는가? 높은 고도에서는 보호 대기층이 얇아 방사능에 더 노출되고 쉽게 햇볕에 그을리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3만 5,000피트 상공을 비행할 때도, 보호 대기층이 매우 희박하고 비행기의 주재료인  알루미늄이 납처럼 방사선을 여과시키지 못해 우리는 상당량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플레어의 11년 주기 중에 어느 시점인지에 따라 방사선 노출 수준이 달라질 것이다. 11년 주기 중에 방사선량이 낮은 시점에 비행한다면,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동안 흉부 엑스레이 1회 촬영하는 것보다 적은 방사선에 노출되지만, 태양 활동 극대기에 비행한다면, 흉부 엑스레이 회에 맞먹는 방사선량에 노출된다. 한 번 비행할 때마다 말이다. 그러니 조종사들이 모든 직종 가운데 림프종 발병율이 가장 높고, 승무원들이 모든 직종 가운데 호르몬 불균형과 임신 합병증 발생률이 가장 높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30년 동안 비행한 조종사나 승무원 중에서 피부가 좋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온갖 전자기장 오염으로 일찍 늙는다. 이는 직업 전문가들도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 모르는 환경적 위험요인으로, 그 결과 이들은 매일 근무하면서 염증이 증가하고 세포가 조기에 노화된다.

 전자기장이 우리를 비출 때 방사선은 우리에게 빛을 발한다. 그중 일부는 몇 인치 정도 우리 몸속으로 침투되고, 그중 일부는 우리 몸을 통과한다. 그러므로 전자기장이 신체의 모든 장기와 세포 수준에서 우리에게 피해를 준다. 모든 세포 안에는 미토콘드리아라고 불리는 작은 에너지 발전소가 있다. 산소가 체내로 흡수되면,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이용하여 몸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배기가스'의 일부가 활성산소라 불리는 여분의 산소 분자를 만들어내는데, 이 활성산소는 우리 세포의 외벽을 손상시키고, 조직과 장기의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보통 활성산소는 항산화 비타민과 활성산소를 흡수하는 폴리페놀에 의해 중화된다. 항산화 비타민은 다채로운 색깔의 과일과 채소를 먹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다른 색깔의 채소를 먹으라고 권한다. 각 색깔의 채소는 몸에 좋은 다양한 비타민, 폴리페놀, 항산화제를 함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식단에 항산화물질과 폴리페놀이 부족하거나 우리가 항원에 과다 노출되면, 활성산소가 축적되어 염증의 1차 메커니즘인 산화 스트레스가 초래되고, 그 결과 세포 손상이 발생하고 축적되어 조직 손상으로 이어진다. 조직 손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 장기 기능장애가 시작되고 결국 장기 질환으로 발전한다. 보통 이 시점에 진단을 받게 된다.

 

 방사선과 전자기장은 통제되지 않는 산화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다. 우리가 계속 불난 데 휘발유를 뿌리거나 민감한 음식을 먹어서 염증을 일으키거나 다른 환경 오염물질의 독소 축적량을 증가시키면, 산화 스트레스가 더 많은 염증을 부채질하여 결국 조직 손상, 기능장애, 마침내 질병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전자기장에 노출될 대마다 산화 스트레스가 증가한다. 비행기 여행으로 한 번 손상을 입더라도 3주 동안 비행을 하지 않으면, 몸이 저절로 치유되거나 손상의 충격 인자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비행을 한다면, 그 손상 결과가 축적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비행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비행 전 3일과 비행 후 3일 동안 항산화 비타민 권장량의 2~3배를 복용한다. 이는 내가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 해주는 방사선 방호 권고이기도 하다.

 

p392. 전자기장과 우리의 몸과 뇌.

 

 전자기장 노출에 따른 증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된다. 오랜 기간 뒤에 명백한 질환이 생긴다. 전자기장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허용된 안전 한계치보다 훨씬 낮은 노출 수준에서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근시안적인 기업, 로비스트, 과학자들이 한계치를 올리려고 기를 쓴 결과다.

 

 전자기파는 우리 몸을 투과할 때 체내에 전류를 유도한다. 우리 몸은 원래 다양한 목적으로 전기 자극을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전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세포, 혈액, 신체 조직, 장기에서 일어나는 화학 작용조차 모두 적절히 기능하려면 몸속 전하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체내에 전류를 일으키는 외부 전자기장은 체내의 많은 생물학적 과정을 방해할 수 있고, 실제로 방해한다. 다음은 과도한 전자기장 노출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이다.

 

 "불안, 집중 곤란, 우울증, 피로, 두통, 기억력 손상, 메스꺼움, 가슴 두근거림, 수면 장애 "

 

 물론 이런 증상은 전자기장 노출뿐 아니라 다른 요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래도 만약 당신이 이런 증상에 시달리는데 의사가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당신의 전자기장 노출을 검사해보고 가능하면 줄이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한다.

 

 전자기장 때문에 발생하는 가장 일반적인 건강 문제는 전자기파 과민성으로, 이미 인구의 3%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보건당국과 장애 관리자, 사례 담당자, 정치가, 법정 등이 문제로 인정했다. 전자기장은 다양한 알레르기성 및 염증성 반응을 자극하고 신체의 조직 복구 과정에 지장을 주어 면역 기능을 방해한다.

 

 당뇨병에 걸린 51세 남자가 컴퓨터 앞에서 혈당을 검사한 것이 있는데 검사 결과 혈당이 높게 나왔다. 혈당이 그의 유전 사슬의 약한 고리였다. 그런데 그가 컴퓨터에서 멀리 떨어지다 10분 만에 혈당이 10% 이상 떨어졌다. 컴퓨터 전자기장의 유독한 영향이 그의 혈당 조절체계에 반영된 것이다. 이 사례가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혈당 수치가 유독 빠르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새집증후군이 있는 학교에 전자기장을 차단하는 필터를 설치하면, 학교 직원과 학생들 모두 건강과 기력이 좋아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 학교에서는 천식으로 흡입기가 필요한 학생 수가 감소했고, 다른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ADD/ADHD 관련 행동이 좋아졌다. 앞서 당뇨병에 걸린 남자의 예처럼, 일부 당뇨병 환자의 혈당 수치는 주변 환경의 오염된 전자기 수준에 반응한다. 전자기적으로 깨끗한 환경에서 제1형 당뇨병을 앓는 사람은 보다 적은 인슐린을 필요로 하고, 제2형 당뇨병을 앓는 사람은 혈당 수치가 낮아진다.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은 사람도 몸의 균형이 나아지고 떨림이 줄어든다. 지팡이를 짚어야 걷던 사람들도 집에 전자기장 차단 필터를 설치하고 며칠에서 몇 주 뒤 지팡이 없이 걷게 되었다.

 

 

혐오의 프레임으로 적과 나를 가르는 전략은 우리 보수우파의 정치적 스탠스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후 줄곧 쓰이던 방법론이다.

 

대표적인 것이 빨갱이 프레임이며 이를 통해 친일보수우파는 매국노의 이미지를 상쇄시켜나갔다.

 

이 혐오의 프레임에 의해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사회,경제의 문제가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히 이 책은 한국 보수개신교가 중심이 된 혐오의 프레임에 대해 진정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에 위배되는 한국개신교의 도그마적 위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모든 혐오의 프레임을 벗어야 할 필요가 있는 때에 하나의 제시로서 이 책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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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5.

 제자들이 예수 십자가처형 사건을 전후로 배반자가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 말년의 행보는 이와는 완전히 결이 달랐다. 기록된 전승에 따르면 그들은 대부분 '순교'했다. 첫 번째 순교자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는 칼로 목이 베여 죽었고(사도행전 12:1-2), 마태는 칼에 맞은 후 시름시름 앓다 죽었으며,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는 돌 맞아 중상을 입은 가운데 끝내 참수당해 죽었고, 유다와 시몬은 예수처럼 십자가형을 당해 죽었고, 도마는 칼에 찔려 죽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30m 높이에서 던저졌고 그래도 살아 있자 곤봉에 맞아 죽었다. 이야기 들어보니 안드레는 십자가에서 죽을 때 "이 순간을 기다렸다"라며 행복해했다고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보다 더 고통스럽게 죽겠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사도들이 예수를 끝까지 따랐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 또는 설화로 보는 관점도 있다.

 

p101.

 열두 명의 남성 제자처럼 예수를 뒤따른 여성 제자가 적지 않아보인다. <누가복음> 8장 2-3절에 나온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라는 여성이 그렇다. 그들은 특정시기에 동네에 나타나신 예수를 한 차례 잘 대접한 정도가 아니다. 그를 수행하며 가사일까지 도운 것으로 추정된다. 식사, 빨래를 도맡아 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이중 요안나는 (세례자 요한을 처형했던 헤롯 영주 밑에서 일하던) 공직자를 남편으로 둔 고관의 아내였다.

 그렇다면 성서는 왜 이 여성들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온전한 존재이지만, 성서의 기자는 온전하지 못하다고 보면 된다. 고대 히브리어나 아람어는 여성을 일컫는 여성명사가 없다고 한다. 오병이어 사건만 보더라도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은 '장정인 남성'만 셈했다. 무엇을 의미하나. 여성은 투명인간이었다.

 하지만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은 <가난한 예수>(동녁, 2017)에서 "예수에게 여성 제자가 실제로 있었다. 그런데 여성제자를 가리키는 단어가 네 복음서에 없으므로 예수에게 여성 제자가 없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존재에서 출발하여 단어를 추적해야 옳은데, 단어에서 출발하여 존재를 추정하는 잘못된 방법을 그들은 택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p107.

 함석헌 선생이 고난에 대해 풀이했던 말이다.

 

 고난이란 무엇인가. 영이 물질에 대하여, 양심이 욕(망)에 대하여, 생명이 사망에 대하여 항쟁하는 일이다. 생명이 그 반대물을 완전히 극복하는 때까지 고난은 없을 수 없다. 고난이란 살았다는 말이요, 생명이 자란다는 말이다. 도덕적으로 진리적으로 자란다는 말이다. 고난 없이 혼의 완성은 있을 수 없다.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다. 고난을 견디고 남으로 생명은 일단의 진화를 한다. 핍박을 받음으로 대적을 포용하는 관대가 생기고, 궁핍과 형벌을 참음으로 자유와 고귀를 얻을 수 있다. 고난이 닥쳐올 때 사람은 사탄의 적수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친구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난은 육에서는 뜯어 가지만 영에서는 점점 더 닦아낸다. 고난이 주는 손해와 아픔은 한때이나, 보람과 뜻은 영원한 것이다. 개인에 있어서나 민족에 있어서나 위대한 성격은 고난의 선물이다.

 

p120.

 나는 성서에 기록된 역사를 진리로 믿는다. 그것은 사실로 규명돼서가 아니다.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념의 영역으로 넘어간 사안이다.

 

p125.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한길사, 2003)에서 외세에 기댔다가 단단히 낭패 본 비운의 한반도 역사를 적나라하게 짚었다. 요컨대 이러하다. 고구려를 제압하려고 외세 당나라를 끌어들인 통일신라, 끝내 우리 삶의 기반인 만주를 포기하고 말았다. 만주 잃은 '이빨 빠진 호랑이' 한민족은 거란족, 여진족 등 북방 민족 공세에 숱하게 시달렸다. 고려 윤관, 최영 장군이 꾸준히 북벌을 모색했지만, 반대세력 즉 사대주의 세력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좌절했다. 이로써 조선을 창건한 이성계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 머물고 말았다. 사대주의자들은 해방공간에서 분단세력으로 세력을 재편해 한반도의 허리를 70년 동안 끊어 그 틈을 점점 벌리고 있다. 기시감의 결정체가 역사라고 했던가.

 "남북 간 군사적 적대관계가 계속되는 한 먹을거리가 생기는 소위 방위산업체, 이렇게 냉전구조 하에서 번성했던 기득권 세력이 분단체제를 계속 연장하려 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진단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또 민족의 번영을 위해 함께 새 출발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이런 북한에 대한 의심의 눈길, 쉽게 지울 수 없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번번히 깬 데에는 미국 책임이 크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등에서 맺은 약속을 미국은 일방적으로 엎었다. 그래서 북한은 각각 협상파기, 핵실험으로 엇나갔다. 북한의 약속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과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 비핵화의 길을 가려는 미국의 의지는 단 한 번도 그 진정성을 입증받지 못했다.

 

p134.

 이승만이 독립운동과 담쌓은 점은 김상웅의 저서 <독부 이승만 평전>(책보세, 2012)을 요약한 블로거 '그노마' 님의 글로 정리된다. 다음은 윤문한 것이다.

 

 하와이에서 한인 소년병학교와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한 무장독립운동가 박용만 선생, 끝내 이승만에게 쫓겨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 전명운 의사가 친일파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하고 재판에 넘겨졌을 때 통역을 요청받았던 이승만은 그들을 살인자라고 규정하더니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변호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후에도 이승만은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테러라고 매도하며 임시정부에 대일 무장투쟁 중단을 요구했다. 하는 행보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렇게 일본의 이익에 빈틈없이 부합되는지 싶었다. 이뿐 아니다. 이승만은 상하이 임시정부라도 'president'라는 직함을 달라고 생떼를 뜨더니 스스로 대통령 명함을 파고 다녔다. 끝내 대통령 직함을 얻었음에도 임시수도 상하이를 떠나 있었다. 한술 더 떠 미국에 눌러앉아 위임통치론 같은 임시정부의 방침에 반하게 주장했다. 그래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았지만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았다"라고 탄식했다. 어쩌면 이 정도는 약과일 수 있다. 외교활동에 쓴다며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의 약 75%를 횡령해 관광 유람을 즐겼다고 하니 이승만 행각에 열불나지 않으면 성자라 할 것이다.

 

 때마침 일본이 패망했다. 독립국 한국의 최고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승만의 노욕이 불붙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승만에게는 국내 권력 기반이 없었다. 끝까지 임시정부를 지킨 민족지사 앞에서 초라하기만 했다. 그러나 임시정부가 일본을 몰아낸 게 아닌 터, 이승만은 승전한 미군의 수장, 맥아더에게 마음을 사는 것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 "내가 남한 지도자가 되도록 도와주면 충성을 다하겠다"며 이승만이 맥아더에게 다짐했으리라는 추정은 어렵지 않다. 맥아더는 한국을 지배하던 미군 사령관 하지 준장을 불러 이승만에게 예우할 것을 명한다.

 이승만을 잘 알지 못했던 하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만난 횟수가 더해갈수록 그에 대한 실망감을 노골화했다. 그러다보니 1947년 한국을 떠날 시점에는 이승만과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하지는 송별사에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기회주의적 정치가들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언급된 '기회주이적 정치가들'에 이승만이 포함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정용욱 서울대 교수는 하지가 1947년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내용을 소개했다.

 

 그 노인네가 작년에 한 배신행위는 내게는 힘들고 쓰라린 경험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곳에서 미국의 노력에 대해 입에 발린 말을 하고 다녔지만 나는 지난 몇 달씩 그가 뭔가 의심스러운 일을 크게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배신행위'라는 표현이 특정하는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배신의 행위자 즉 이승만만 주목하면 된다. 배신은 이승만에게 일상이었다. 미군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편지에는 이승만을 겨냥한 'son of a bitch'라는 욕도 담겨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지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이승만은 단독정부 대통령이 됐으니 승자는 이승만인 셈이다. 이승만의 '필살기'는 독립운동가와 미 군정의 틈을 최대한 벌린 것이다. 미국이 치 떨어야 하는 소련을 독립운동가들이 대변한다고 흑색선전을 편 적이다. 이승만의 간계는 통했다.

 그런 이승만은 집권하자마자 여수 순천 시민들을 학살했다. 함포사격도 했다고 했다. 남해에서 함선으로 여수 순천을 겨냥해 포격한 것이다. 여수 순천 사람은 다 죽어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여수순천사건은 토벌 즉 학살로 봐야 마땅하다.

 여수 순천 민중이 거역한 것은 대한민국 국체가 아니라 제주 토벌 명령이었다. 4.3 사건이 진행 중인 제주도에 가서 '민간인을 죽이라'는 지시 말이다. 여수 순천의 군인은 향토방위 체제에서 군사의 한 축이었던 민중의 뜻, 제주 진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4.3 사건은 그래서 여수순천학살의 연장전이다. 이승만은 당시엔 법에도 없던 계엄령을 선포한다. 그리고 수많은 제주도민을 학살했다. 무기를 손에 쥐지 않았던 제주 민간인을 군대가 제압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p172.

 나는 우리에게로 온 하나님의 아들을 과학이나 이성의 틀 위에서 사유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생애와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성서가 말하는 예수의 역사를 신앙으로써 믿으면서도, 그 믿음을 나의 고유한 신념체계 안에 묶어둔다.

 

p175. 인간의 육식

 이런 전제로 <창세기> 1장을 보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창세기 1:29-30-

 

 29절과 30절을 쉬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하나님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준다"(30절)라고 했다. 인간이나 동물 모두에게 초식을 명령한 것이다.

 그러다가 노아 홍수 사태 이후 조건부 육식을 허용했다. 조건은 기름과 피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독일성서공회의 관주성서는 이를 두고 "굶주린 인간이 행여 야만적으로 짐승을 살육할까봐 염려해 제한적으로 허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권도 창조 원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독일은 이미 세계 최초로 헌법에 동물권을 명시한 바 있다. 인간이 타인으로부터 고통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 할 수 있듯 동물에게도 비슷한 권리가 보장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동물 축제가 눈에 밟힌다.

 '성공한 지역 축제'로 꼽히는 화천 산천어축제는 외지의 산천어를 부화시킨 뒤 화천 내 좁은 호수로 들여와 그 안에 가둬놓고 사냥감이 되게 하는 축제다. 축제가 끝나면 살아남은 상당수 산천어조차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간다. 이와 관련, 2018년 6월 '동물 축제 반대 축제 기획단'은 동물을 이용한 축제의 84%가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제레미 리프킨이 쓴 <육식의 종말>(시공사, 2002)에서 본 것이다. 소를 뜻하는 영어 'cattle'은 자본은 뜻하는 'capital'과 어원이 같다고 한다. 중세까지 소는 신성한 동물이었고 그 고기가 밥상에 올라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힘들었지만 이는 시장이 형성되기 전 이야기. 어마어마한 수요가 이어졌고 공급도 이에 발맞추면서 양상이 전혀 달라졌다고 한다. 미국 축산업자들은 끝내 대규모 축산 단지 건설을 행했고 이에 상응해서 인디언은 생활터전을 상실해갔다.

 브라질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는 축산업자들의 남미 열대우림 파괴를 반대하다가 1988년 흉탄에 살해당했다. 그렇게 열심히 소의 고기를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생산하다가 인류는 광우병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광우병만인가, 닭에게서는 조류 인플루엔자, 돼지는 구제역으로 우리는 절기 행사처럼 역병을 치러야만 한다. 성서의 말씀을 존중한다면 과도한 육식은 삼가는 것이 옳다.

 

p177. 하려면 뚝심 있게

 <레위기>를 보면 굽 있는 짐승을 먹지 말라고 못 박았다. 굽 있는 짐승은 멀리서 찾을 것 없다. '고기의 대명사' 소와 돼지다. 20여 년 전 대학생 때 에피소드. 성서 통독 모임에서 강사 목사님은 "성서(레위기)에 나와 있는 대로 돼지고기 먹지 말라"고 해설했다. 굽 있는 짐승만인가, 비늘 없는 생선도 안된다는 성서의 엄명이 있다. 때마침 점심 공동식사가 이어졌다.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오징어 볶음이 식탁 위에 올랐다. 당시 그 목사님의 묘한 표정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식단에는 그다지 간섭 안 하신 듯 보였다. 

 성서가 동성애를 가증하게 여긴다며 맥락도 배경도 안 따지고 절대 율법시했던 신학교, 그 신학교의 구내식당 메뉴를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돼지고기볶음, 참치 김치찌개가 보였다. 굽 있는 돼지의 고기와 비늘 없는 생선 참치로 구성된 식단이었다. 지행합일, 언행일치도 볶아먹고 끓여 먹은 모양이다.

 

 왜 성서에서 지킬 것, 안 지킬 것을 자의적으로 구분하나. 무식하고 미련해도 지조 있고 용렬하게 '성서대로' 실천한다면 인정받기라도 한다. 성경에서 굽 있는 고기, 비늘 없는 생선 먹지 말라고 하면 뚝심 있게 소, 말, 양, 염소, 돼지, 꽁치, 가물치, 갈치, 넙치, 멸치, 참치, 오징어, 상어, 숭어, 홍어, 고등어 먹지 않아야 한다.

 <로마서> 13장 "모든 권력에 순종하라"해서 박정희 전두환 정부에 순종했다면 뚝심 있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도 순종해야 한다. 성경에서 "사랑하라"하면 저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뚝심 있게 동성애자뿐 아니라 빨갱이, 난민, 타종교인도 사랑해야 한다. 보수 신앙을 신주단지처럼 여기는 교인들, 어떤 건 맥락 무시하고 "옳다"가며 믿고, 어떤 건 이런저런 이유 붙여가며 "시대에 맞지 않는다" 하며 일축한다. 안 된다. (여담이다. 언제부터 기독교는 육식에 대해 아무 꺼리낌이 없어졌을까. 토마스 아퀴나스가 활동했던 중세였던 것 같다.)

 

p184.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하나님은 성서에서 자살한 사람을 죄인으로 정죄하지 않았다. 자살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이고도 정확한 의중은 '간곡한 만류'이다. <에스겔> 16장6절에 "핏덩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제발 살아만 달라고 했다"는 말씀이 있다. 이 메시지의 맥락은 극단적으로 소외되거나 절망감에 싸여도 '살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갓난아기가 탯줄을 절단받지 않았고 누구로부터도 씻김받지 않았으며 강보에 싸이지도 않은 채 들에 버려진 상태. 또 맹수가 물어가거나 요행히 그런 일이 없어 굶어 죽어도 관심조차 받지 못할 사정. 이 생각만 해도 참혹한 상황에서도 살라는 당부다. 요컨대 노회찬 형제가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목숨 끊은 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천국 아닌 다른 곳에 가게 되는 것일까. 목사였던 아버지는 40년 목회를 회고하며 가장 힘든 사역으로 자살자 추도예배를 꼽았다. 그래서 영정 앞에서 고인의 구원 여부 언급은 삼가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설교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자살자의 '천국행'에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구원할지 말지는 하나님이 결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좁은 헤아림에 갇혀 판단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사하게라도 '자살한 사람은 지옥 간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세상 떠난 이의 운명을 하나님에게 맡기고, 우리는 아픈 마음에 파르르 떠는 유가족을 돌보면 된다.

 

 현대 사회에서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살률이 급증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고 한다. <경향신문> 안호기 경제부장의 2014년 1월6일 자 칼럼 중 일부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은 노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구조조정 허울을 씌워 수많은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았다.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신빈곤층'이 크게 늘었다. 탈출구를 찾지 못한 일부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의 자살은 사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사회적 타살'이다.

 사실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 공동체성이 해체되면서 자본이 모든 물적 정신적 주도권을 제패하는 계기가 됐다. '비정규직' '정리해고'가 당연시되면서 '무능한 자' '가난한 자'는 거침없이 잔인하게 솎아졌다. 힘없는 일개인은 그저 '쫄리면 뒈지시던가?'하는 대접을 받았다. 자살자를 탓하려면 이 비정한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다. 삶의 활로가 다 막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송파구 세 모녀를 누가 정죄할 수 있단 말인가.

 

p186. 어떤 이타적 죽음.

 

 노회찬 형제 죽음은 그렇다면 전태일 열사의 자결과 같은가, 이렇게 물어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노회찬 형제가 정치자금법 위반 건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두려워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는 것, 의원직을 잃는 것이, 그보다 더한 험한 길을 걸어온 노회찬에게 죽음과 맞바꿀 고난일까? 김동호 목사가 한 말이 있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역경에 강하다."

 노회찬이 받은 돈의 액수는 매우 적은 것이었다. 대가성 따위도 없었으니 뇌물 수수로 보기 어렵다. 굳이 과실을 물으려 한다면 정치자금법 위반 정도다. 일의 전모가 이렇다면 극단적 선택의 이유를 다른 배경에서 찾음이 온당할 것이다. 혹시 가뜩이나 취약한 지지기반 위에 서 있는 정의당의 앞날 곧 진보정치의 미래가 혹시 자기 일로 인해 타격받지 않을까 염려함은 아니었을지. 노회찬 형제는 자신이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은 현실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허물이 곧 진보정치의 허물이 될까봐, 말하자면 '즈엉이당' 운운하는 자들로부터 진보정치가 통째로 부정당하게 될까봐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 손절매하려 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죽음을 결행하기에 앞서 노회찬 형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포괄적 뇌물죄 혐의를 받언 노 전 대통령, 자신의 허물로 비롯된 문제라면 그는 살아서 모든 책임을 졌을 것이다. 그에게는 감옥이 낯설지 않은 공간이다. 노동운동 때문에 수감된 이력이 있었으니까. 또한 자신이 변호사인지라 스스로 버리적 구제의 길을 모르지 않아을 것이다. 당시에도 '서초동' 주변에서는 노 전 대통령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긴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당시 대통령 이명박 씨도 노 전 대통령 명성과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게 목적이었지 그의 처벌 여부에 대해서는 별무관심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견디지 못하게 한 것은 '자신의 뇌물 수수 의혹 수사가 민주진보진영 전체를 폐족으로 만드는 도화선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죄가 없다면 그런 걱정을 왜 하느냐, 모든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지지 않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사법 영역에서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여론재판은 별개다. 법전에 있는 '무죄 추정 원칙'은 허울일 뿐이고, 짧으면 1년, 길게는 2-3년 동안 일국의 전직 대통령이 재판정에 끌려다니며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는 굴욕을 감내해야 하며, 설령 최종적으로 무죄가 난들 잃어버린 시간 또 사건 이전의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 여론재판이 이렇다. '심판받지 않는 권력' 검찰은 이렇게 다방면으로 그리고 치명적으로 한 인격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할 수 있다. 절대자다.

 실제 '노무현 수자'의 불똥이 튈까봐, 민주당 일각에서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굿바이'를 외치고, 심지어 진보언론에서는 '마지막 승부수'라는 표현을 써가며 극단적 선택을 압박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죽기 전 "자신은 더 이상 개혁의 전범이 될 수 없으므로 노무현을 버리고 가라"고 했다. 노회찬 형제도 "나는 멈추지만, 정의당은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노회찬 형제는 자기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왜, 노무현을 잃고 땅을 쳤으면서도, 노회찬에게 제2의 길이 있음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통탄하고 또 통탄한다.

 노회찬은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생을 포기하는 순간까지 자기 명예에 집착함이 없었다. 예수가 그러하지 않았는가. 예수는 죽음을 운명으로 알았다. 강만원 종교칼럼니스트는 "예수님이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고, 그가 또한 핏방울 떨어듯이 땀을 흘리시며 밤이 새도록 처절하게 기도하신 것은 결코 도피가 아니라 몸으 던져 행동하기 위한, 다시 말해 생명을 바쳐 순종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말했다. 병자 또 망자를 고치고, 수천 명을 먹이며, 미친 사람 머리에 침투한 악마를 몸 밖으로 끌어내는 초능력을 지닌 그가 피할 능력이 없어 소수의 로마병정에게 잡혀가 채찍질 등 모욕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렸겠는가. 그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으니 그것은 의롭고 선한 동기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결심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죽음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가. 기독교인은 이를 통해 인류가 죄와 율법,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 광명을 찾았다고 찬송한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을 일이라고 고백한다.

 

p233.

 세월호 마지막 두 실종자 중 한 사람의 어머니가 어느 성탄절엔가 팽목항에 모여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 팽목항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와 함께 계세요. 저 깊고 냄새나는 캄캄한 배에서 하나님은 우리 아이를 안고 계셔요. 우리는 그렇게 믿어요." 

 

川上未映子

가와카미 미에코(사진은 아마도 30대 정도의 모습일 듯. 꽤나 미인이다. 1976년생, 일본의 가수, 배우, 작가, 가수로 활동을 시작, 노래로는 지명도가 거의 없었지만 2008년 발표한 단편소설 젖과 알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이 알려진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인터뷰한 대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출간과 함께한 인터뷰와, 기사단장 죽이기의 출간과 함께한 인터뷰 로 이루어져 있다.

 

하루키의 작법이랄까? 그런 것에 대한 하루키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마지막에 인터뷰 후에 소감으로서 에필로그로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이 직접 써놓은 글을 봐서도 알 수 있지만, 하루키에게 상당한 깊이에 이르기까지 충실한 대답을 하도록 유도한 인터뷰어로서의 가와카미 에미코 작가의 능력도 대단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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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 캐비닛의 존재(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나오는 이야기로 하루키는 자기의 머릿속에는 캐비닛과 같이 소설을 쓸 때 꺼내 쓰는 저장소 같은게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책에서도 언급한 캐비닛 이야기가 이미지로도 멋집니다. 무라카미 씨 안에는 많은 캐비닛이 있다고요.

 무라카미 : 그렇죠. 제 안에는 커다란 캐비닛이 있고 서랍이 잔뜩 달려 있어요.

-그와 관련해 인용한 조이스의 '상상력이란 기억이다'라는 말도 흥미롭습니다. 의식한 것과 의식하지 않은 것 모두 한 덩어리씩 차곡차곡 캐비닛에 들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글을 쓰는 사람이건 쓰지 않는 사람이건 알고 보면 모두 캐비닛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죠.

 무라카미 : 다들 가지고 있죠, 제법 많이.

-누구나가 각자의 캐비닛을 가지고 있고, 그 안을 채워간다. 중요한 건 그것들이 필요할 때 어디 들었는지 즉각 알아내고 입체적으로 조립하는 일이다... 그건 결국 캐비닛 주인의 역량에 달렸을까요?

 무라카미 : 그렇죠. 소설을 쓰면서 필요한 때 필요한 기억의 서랍이 알아서 탁 열려줘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서랍이 아무리 많아도... 소설을 쓰다 말고 일일이 열어보며 어디에 뭐가 있는지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 저기 있다, 하고 그때 그때 서랍들이 자동으로 속속 열려주지 않으면 실제로는 쓸모가 없어요.

-자동으로 열린다고 하셨는데, 그건 훈련이나 노력으로 어떻게 되지 않는 부분일까요?

 무라카미 : 그렇다기보다 쓰는 중에 점점 요령을 터득해가는 거죠. 전업작가로 살다보면 항상 그런 것을 자연히 의식하고, 어디에 뭐가 들었는지 감으로 알게 됩니다. 이게 중요해요, 경험을 쌓고, 여러 기억을 효과적으로, 거의 자동으로 즉각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하죠.

-뒤집어 말하면, 조립하고 입체화하는 요령이 패턴화될 위험성은 없을까요?

 무라카미 : 어디 있는지 대강 알게 되는 것과 함께, 생각지 못한 순간 생각지 못한 서랍이 탁 열리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 의외성이 없으면 좋은 소설이 되지 못하죠. 소설 쓰기란 이른바 '액시던트'의 연속이니까요. 소설 속에서는 많은 일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여기서는 이런 에피소드를 써두자 하는 식으로 가다보면 당연히 이야기가 패턴화되겠죠.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것에 대응해서 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이야기가 생명을 잃어버려요.

-자질이 잇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자기 내부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캐비닛 앞에 서서도 아무 느낌이 없는 사람이라면 소설 쓰기는 좀...

 무라카미 : 특별한 조각 하나를 던져넣는 것만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크고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할 때도 있죠. 때에 맞춰 그런 조각을 찾아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것만은 특별한 기술이랄까, 타고나는 자질일지도 모르겠어요.

 

-무라카미 씨 작품의 특징 중 하나가 정교한 비유라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가요?

 무라카미 : 그렇죠. 예전에 한 평론가가 하루키는 아마 노트에다 온갖 비유를 써서 모아뒀을 거라고 했는데, 그렇진 않아요(웃음).

-저절로 튀어나오나요? 그때그때 필요한 것이.

 무라카미 : 나와요, 필요할 때, 제 발로 찾아오듯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 때는 비유를 쓰지 않아요. 억지로 만들려면 말에서 힘이 빠져버리니까.

-비유 역시 말의 조립이고, 서로 다른 것들끼리의 거리니까요. 곡예와도 같죠. 놀라움을 불러오지 않으면 비유가 되지 않고, 딱 들어맞아야 하고.

 무라카미 : 네. 뭐니뭐니해도 거리감이 중요하죠. 너무 붙어도 안되고 너무 떨어져도 안 되고. 그렇게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어려워져요. 비논리적인 게 제일이죠.

-하나하나의 표현을 끄집어내기도 어려운데, 저절로 나온다는 건... 그런 조합도 캐비닛에 들어 있다는 거죠?

 무라마키 : 들어 있을 겁니다. 전 비교적 간단하게 비논리적이 되거든요.

비유에 관한 건 대개 레이먼드 챈들러에게 배웠어요. 챈들러는 그야말로 비유의 천재니까요. 가끔 아니다 싶을 때도 있지만, 좋은 건 말도 안 되게 좋죠.

-챈들러에게 배운 게 비유의 구조라는 말씀인가요?

 무라카미 : 비유란 의미성을 부각하기 위한 낙차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낙차의 폭을 혼자 어느 정도 감각적으로 설정하고 나면, 여기에 이게 있으니 여기서부터 낙차를 역산하면 대략 이쯤이다하는 걸 눈대중으로 알 수 있어요. 역산하는 게 요령입니다. 여기서 쿵하고 적절한 낙차를 두면 독자는 눈이 확 뜨이겠지, 하는 식으로요. 독자를 졸게 만들 수는 없잖아요. 슬슬 깨워야겠다 싶을 때 적당한 비유를 가져오는 거죠. 문장에는 그런 서프라이즈가 필요해요.

 

... 아까 나온 비유 얘기처람, 가장 적당한 것이 자연스레 나와주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죠. 그러니 여러 가지를 불러들여야 해요. 글쓰기는 뭐가 됐든 그것을 이쪽으로 불러들이는 일이니까요. 무녀 같은 사람처럼, 집중하다보면 여러 가지가 제 몸에 와서 찰싹 달라붙습니다. 자석이 철가루를 모으듯이, 그 자력=집중력을 얼마나 지속하느냐가 관건이죠.

(이 얘기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1Q84에서 아오마메가 교주를 암살하러 신주쿠(아사쿠사?인가)의 호텔로 가서 교주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던 내용이 떠오른다. 이 부분에서 약간 주술적인 요소도 보인다고 할까? 그리고 이와 연관해서 하루키가 이런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유지하는 것이 달리기와 같은 운동을 통해서 이겠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p33.

 무라카미 : 리얼리티는 특징적인 게 아니라 종합적인 겁니다. 그리고 속속 변해가죠. '이건 이러하다'라고 단순하게 고정해서 단언할 수 없어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서문-이라고 기억되는데-에 보면 하루키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빵가게의 리얼리티는 밀가루 반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빵에 있다." 이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p41.

 무라카미 : 네, 자아 레벨, 지상 의식 레벨에서는 대개 보이스의 호응이 얕아요. 하지만 일단 지하로 내려갔다가 다시 나오면 언뜻 똑같아 보여도 배음의 깊이가 다르죠. 한번 무의식층에 내려갔다 올라온 재료는 전과는 다른 것이 됩니다. 담갔다 건지지 않고 처음 상태 그대로 문장을 만들면 울림이 얕아요. 그러니 제가 이야기, 이야기, 하는 건 요컨대 재료를 담갔다가 건지는 작업입니다. 깊이 담글수록 나중에 밖으로 나오는 것이 달라지죠.

 

p47.문장의 리듬, 고쳐 쓰기

-무라카미 씨의 단편에는 기술적인 부분, 길이나 줄거리 같은 것 말고도 읽고 난 후 짙게 남는 것이 있고, 많은 작가가 그것을 재현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낍니다. 개인적으로 <코끼리의 소멸>이라는 단편을 읽었을 때 '나도 이런 걸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막연하게 말하는 '이런 것'(웃음)은 역시 무라카미 씨 문장의 리듬에서 오는 것 같아요. 뭐라고 이름 붙이거나 설명할 수 없고, '이런 것'이라고 감각적으로만 느끼는 무엇.

 무라카미 : 말하자면 소설의 보이스와 독자의 보이스가 호응하는거죠. 그러면 물론 리듬이 생기고, 울림이 생기고, 호응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보이스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그건 결국 '고쳐 쓰기'에요. 처음에 일단 완성해놓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치고, 갈고닦고, 이대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손대는 과정에서 점점 나 자신의 리듬, 잘 울리는 보이스를 찾아가죠. 눈보다는 주로 귀를 사용하여 고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고쳐 쓰기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씀하셨는데요.

 무라카미 : 저의 고쳐 쓰기는, 제 입으로 말하기 뭣하지만, 꽤 대단하다고 봐요. 전 별로 자랑하는 편은 아닌데 이것만은 자랑해도 좋을 것 같군요.

-일단은 어찌됐건 끝까지 쓰는 편이죠? 돌아보지 않고, 어제 쓴 부분 정도는 다시 보지만 일단은 계속 써나간다. 거기가 어땠더라 하면서 거슬러 돌아가는 일도 별로 없고요.

 무라카미 : 나중에 고치면 되니까, 초고를 쓸 때는 다소 거칠더라도 어쨌건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것만 생각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순조롭게 올라타서 계속 전진하는 거죠. 눈앞에 나타난 것을 가장자리부터 붙들고 써나가요. 물론 그러기만 해서는 이야기 여기저기 모순이 생기지만 신경쓰지 않습니다. 나중에 조정하면 되니까. 중요한 건 자발성. 자발성만은 기술로 보충할 수 없어요.

-완성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엄청난 작업인데요.

 무라카미 : 네, 엄청난 작업이죠. 그래서 저는 장편소설을 전작으로만 씁니다. 잡지 연재는 절대 불가능해요. 혹시 한다면 이미 다 쓴 완성 원고를 나눠서 싣는 거죠. 그러다보니 다 쓸 때까지 몇 년씩 걸리기도 하고, 고독한 작업이니 말 그대로 기진맥진해요. 일단 잡지에 실어놓고 나중에 고치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게 안 돼요. 한번 활자화되어 다른 이의 눈에 닿았던 글은 더이상 순수하게 자신만의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작업하기가 불가능해져요. 그러니 어쨌거나 마음에 들 때까지 시간을 들여 고쳐 쓰고, 그다음에 비로소 활자화합니다. <양을 쫓는 모험> 이후로 오랫동안 그렇게 해와서 다른 식으로는 쓸 수 없어요.

 

... 아무튼 어릴 때부터 음악을 열심히 들었고 재즈카페를 칠 년쯤 운영했으니, 악기 연주는 못해도 리듬이나 보이스, 즉흥연주 감각은 제법 몸속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니 음악을 연주하는 감각으로 문장을 쓰는 면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귀로 확인해가며 문장을 쓴다고 할까요. 그리고 '벽 뚫고 나가기'와는 좀 다르지만, 정말 훌륭한 연주는 어느 대목에선가 홀연히 저편으로 '뚫고 나가'곤 하죠. 재즈의 긴 애드리브든 클래식이든 어느 시점에서 일종의 천국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번쩍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렇게 훌쩍 '저편으로 가버리는' 감각 없이는 진정으로 감동적인 음악이 되지 못해요. 소설도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감각'이고 '체감'이지 논리적으로 계측할 수는 없죠. 음악의 경우도, 소설의 경우도.

 

p57. 

 무라카미 : 데뷔 당시 문단에서 제일 싫었던 게 일종의 테마주의 였어요. 이런 주제를 다뤘으니 이건 순문학이다, 깊이가 있다, 그런 말이 제일 싫었죠. 그래서 소재나 주제를 전부 걷어내고, 그럼에도 깊이 있고 무게 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저뿐 아니라 다들 점점 그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옮겨가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그래서 그 대신 뭐가 나왔느냐하면 아직 명확하지 않죠.

 

p60.

 무라카미 : 열차가 멈추고, 한숨 돌리고, 머리를 식히고, 그뒤에 다시 원고를 읽어보면 '아, 여기가 틀렸군' '이쪽이 모자라군' 하는 부분이 차츰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열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편집자에게 원고를 내주면 안되요.

-재워둬야 하는군요. 멈추기 전에 넘기면 안 되고요?

 무라카미 : 안 되죠(웃음). 머리가 뜨거운 상태에서는 나쁜 부분이 안 보여요. 좋은 부분만 보이지.

-뭐든지 제정신이 돌아온 뒤에.

 무라카미 : 그런데 현실적인 마감일이 있다면 어렵겠죠.

-제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작가 입장에서는 말씀하신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리고 그런 환경은 어느 정도 스스로 만드는 것일 테고요.

 무라카미 : 그렇죠. 레이먼드 카버를 만났을 때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특히 그의 집필방식에 역시 그렇구나 하고 공감했습니다. 그 사람도 무척 면밀하게 고쳐 쓰는 편이니까요.

 

p64.

 무라카미 :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고베 지진이 일어나고,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원전 문제가 생겼죠. 전 그런 시련을 통해 일본이 좀더 세련된 국가로 나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명백하게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그게 제가 위기감을 느낀 이유이고,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60년대 후반에 우리가 싸웠던 건 결국 그 바탕에 이상주의가 있었기 때문이죠. 세상은 기본적으로 더 좋은 곳이 되어갈 것이고 그러기 위해 싸워야 한다. 대부분 그렇게 믿었어요. 뭐, 어찌 보면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지만 아무튼 그런 이상주의가 있었고 그것이 기능했죠. 그러다 그것이 통째로 무너져버리자 강한 환멸을 느꼈고. 하지만 이제는 거기서 한 바퀴 돌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최근에 들더군요. 언제까지고 똑같은 일만 할 수는 없고, 어떤 새로운 움직임에 들어서야 한다고.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 아니지만, 원칙적으로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에서 담담하게,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p92.

 사람은 싸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죠. 안 그러면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뿐이니까요.

 

p102.

-가와이 하야오 씨는 <그림자의 현상학>에서 그 예를 들며 집합적 무의식이라고 표현하셨죠. 나치 독일의 소행은 집단에 발생한 그런 그림자를 외부에 떠넘긴 결과라고 하셨던 게 생각납니다.

 무라카미 : 2차대전 이후 일본도 그랬는데, 많은 독일인은 전쟁이 끝난 뒤 자신들을 피해자 입장에 놓으려고 했어요. 우리도 히틀러에게 속았고, 마음의 그림자를 빼앗겼고, 그 탓에 혹독하게 고생했다는 막연한 피해자 의식만 남죠. 일본에서도 그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일본인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해서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인식은 자꾸 뒷전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세부적인 사실이 이렇다저렇다 하는 문제로 도피하죠. 그런 것도 '나쁜 이야기'가 낳은 일조의 , 뭐랄까. 후유증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들도 속은 거라는 말로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면이 있죠. 천황도 나쁘지 않다. 국민도 나쁘지 않다. 나쁜 건 군부다. 하는 식으로. 그게 집합적 무의식의 무서운 면입니다.

 

p106.

 무라카미 : 링컨이 말했듯이, 아주 많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도 있고 얼마 안 되는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이기는 불가능해요. 그것이 이야기의 기본 원칙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히틀러도 결국은 십 년 남짓밖에 권력을 유지하지 못했죠. 아사히라는 십 년도 가지 못했고. 대부분의 경우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를 준별하는 것은 시간의 역할입니다. 긴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준별 가능한 것도 있고요.

-하긴 개별적으로, 별로 오래가지 않을 듯한 '악'은 언제나 있으니까요. 사라지지는 않고 언제나 존재하는.

 무라카미 : 네, 인간은 기본적으로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런 것을 원하니까요. 좋은 일은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데 시간이 걸리거니와 귀찮고 따분한 경우가 많아요. 반면 '나쁜 이야기'는 대체로 단순하고 인간 심리의 표층에 직접적으로 호소하죠. 논리가 생략되었으니 이야기가 쉽게 받아들여져요. 거친 말을 쓴 헤이트스피치가 논리적이고 훌륭한 연설보다 귀에 잘 들어오는 법이고.

 

 얼마 전 집에 잇는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여러 연주자 버전으로 비교하며 들어봤어요. 총 열다섯 장 정도를요. 그랬더니 글렌 굴드의 연주가 다른 연주자들과 압도적으로 다르더군요. 그야말로 독보적인 경지랄까요. 어딘가 다른지 한참 생각하다가 겨우 깨달은 게, 보통 피아니스트는 오른손과 왼손의 콤비네이션을 생각하며 연주하잖아요.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다들 그럴 거에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글렌 굴드는 달라요. 오른손과 왼손이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겁니다. 오른손 왼손이 각자 자기 뜻에 따라 움직여요. 그런데 그 둘이 하나가 되면 누가 봐도 훌륭한 음악세계가 확립되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왼손은 왼손이 할 일만, 오른손은 오른속이 할 일만 생각한단 말이죠. 다른 피아니스트는 반드시, 직그히 자연스럽게 오른손과 왼손을 조화시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런 의식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굴드의 연주들을 비교해봐도 1955년 버전이 그 오른손과 왼손의 분리감이 훨씬 강하고요.

-그렇군요. 1981년 버전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나요?

 무라카미 : 물론 죽기 전에 한 연주도 분리감이 엄청나지만, 예전 것은 각기 완전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도 합해보면 정확히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요. 굴드가 프로그램하는 게 아니라 자연히 프로그래밍된 느낌이죠. 자연체라고 할까, 천연이라고 할까. 그 사람의 그런 분리감은 저도 감각적으로 잘 압니다.

 

p117.

 무라카미 : 음 있죠, 다시 한번 확인해두자면 제 문장은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비리얼리즘이죠. 그런 분리가 처음부터 떡하니 전제되어 있어요. 리얼리즘 문제를 철저하게 구사하며 비리얼리즘 이야기를 펼치는 게 제 목적이니까요. 전부터 자주 한 얘기인데, <노르웨이의 숲>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리얼리즘 문체로 리얼리즘 이야기를 쓰는 실험을 개인적으로 했어요. 그리고 '음, 됐다, 이제 쓸 수 있어'라는 확신이 들면서 그뒤의 작업들이 무척 수월해졌죠. 리얼리즘 문체로 리얼리즘 장편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면, 게다가 베스트셀러가 됐다면 무서울 게 없어요(웃음). 그뒤에는 원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제 뭐든 마음대로 쓸 수 있겠다 생각하고 얼마 후 <태엽 감는 새>를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의 정밀함을 지닌 리얼리즘 문체 위에 이른바 '상식을 깨는' 이야기를 얹으면 무척 재미있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을 그때 새삼 깨달았죠.

 

p126.

 아까 가와카미 씨가 말한, 플랜 없이 쓰다가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사람은 분명 '바로 지금'인 그때를 잡지 못한 거겠죠. 하나 더 들자면, 아마 문체가 완성되지 않은 것 아닐까요. 문체는 매우 중요하니까. 자신의 문체 없이 지하 깊숙이 내려가기는 불가능합니다. 굉장히 위험해요. 문체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개인적으로는 플랜 없이 쓰기 시작해서 작가 본인도 마지막까지 무얼 썼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작품은 보통 좀 혼잣말처럼 보이거든요.

 무라카미 : 당연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직접 내뱉지 않는 것이 소설의 기본이니까요.

-그러니 설사, 말이 좀 이상하지만(웃음), 지하 2층까지 내려갔다 해도 그곳에서 본 걸 독자와 공유하려면 문체가 필효하다는 거죠?

 무라카미 : 물론입니다. 저는 이래저래 벌써 사십 년 가까이 프로로 소설을 써왔는데, 그래서 그동안 무얼 했는가 하면 문체를 만드는 것, 그게 거의 다예요. 어쨋거나 조금이라도 좋은 문장을 쓰는 것, 나의 문체를 보다 탄탄하게 만드는 것, 보통은 그것만 생각합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스토리에 맞춰 글을 써가지만, 그때는 다른 쪽에서 날아오는 것을 리시브할 뿐이에요. 그러나 문체는 다른 쪽에서 와주지 않아요. 자기 손으로 준비해야죠. 그리고 날마다 진화해야 합니다.

-진화. 그러면 문체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요?

 무라카미 : 완성되는 것이 아니죠.

-변화해가는 것이다?

 무라카미 : 네. 문체는 점점 변화합니다. 작가가 살아 있으면 문체도 그에 맞춰 살아 숨쉬죠. 그러니 매일 변화를 수행할 테고요. 세포가 교체되는 것처럼. 그 변화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게 중요해요. 그러지 않으면 자기 손에서 떠나갑니다.

-어떤 부분을 써야 할 때가 오면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요.

 무라카미 : 바로 그거죠. 문장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도구로 쓸모가 있으면 그만이죠. 그러니 완성형 같은 건 있을 수 없어요. 저도 예전에는 쓰지 못했던 것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거의 쓰고 싶은대로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쓰지 못하는 건 없나요?

 무라카미 : 쓰고 싶은데 못 쓰는 건 없을걸요. 우회할 필요도 별로 없고. 다만 지금 당장 역사소설을 쓰라고 한다면 그건 좀 곤란하겠죠(웃음). 준비도 많이 필요하고.

-역사 고증이라든가(웃음).

 무라카미 : 네, 전문용어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현대 배경, 말하자면 제가 써온 이야기의 세계 안에서 기술적으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있는가라면, 아마 웬만한 건 어찌어찌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뭐, 꽤 오랫동안 글을 써왔으니까요.

 

 p128.

-이번 주인공은 그림 관련 일을 하는데요. 그 직업은 먼저 정해두셨나요? 화가 주인공은 처음이죠?

 무라카미 : 잇마년 전 미국 터프츠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수전 네이피언이라는 일본어과 교수님을 만나 그분 남편과 파티에서 대화할 기회가 있어어요. 초상화가로 일하는 미국인이었죠.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초상화가가 제법 흥미로운 직업이구나 생각했던 것이 어려풋이 머릿속에 남았어요. 그리고 이번에 주인공 직업을 뭘로 할까 하다가 초상화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그 다음에야 '아 참, 그러고 보니 수전 씨 남편이 초상화가였지' 하고 생각났습니다. 제 기억이란 게 대개 그런 식이에요.

 

 p133.

 무라카미 : 캐비닛이 작은 사람, 혹은 일에 쫓겨 서랍을 채울 시간이 없는 사람은 점점 고갈되어갑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시기에는 열심히 서랍을 채우려고 해요.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총력전이니 쓸 만한 건 뭐든 갖다 써야 하거든요. 서랍이 하나라도 많은 편이 좋아요.

 

p144.

 무라카미 : 그 신용거래가 성립하려면 이쪽에서도 최대한 시간과 수고를 들여 정성껏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독자들은 집합적으로는 정확히 간파해요. 이건 착실하게 공들여 썼거나. 이건 꼭 그렇지도 않구나. 대충 게으름 부리면서 쓴 건 긴 시간 속에서 반드시 지워집니다. 우리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을 존중하고 소중히 다뤄야 해요.

 

p156.

 무라카미 : 그렇죠, 멘시키 씨는 '원하는 것은 거의 전부 손에 넣었지만, 알고 보면 원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밖에 원하지 못한' 사람이니까.

 

p167.

 무라카미 : 전혀 의식하지 않앗어요. 그래도, 의식이란 것에 대해서는 꽤 자주 생각하는 편입니다. 인간의 의식이 등장한 건 인류 역사에서 훨씬 뒤의 일이에요. 그전에는 거의 무의식밖에 없었고, 그 무의식 중심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판단을 내리며 살았죠. 그리고 도시가 생기고 보다 고도의 조직과 시스템이 완성됨에 따라 '무의식'으로 행하던 일들이 점차 '의식'의 영역으로 격상됩니다. 보다 논리적이 되고요.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없으니까요. 

 그것과 같은 얘기라고 봅니다. 옛날에는 대개 무의식 속에서 처리하던 일들을 의식을 기반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언어체계가 정비된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무엇에 기대어 살아왔느냐 하면, 바로 예언이죠. 고대사회에는 무녀, 혹은 주술사 역할을 하는 왕이 있었어요. 그들은 무의식의 사회에서 더더욱 무의식을 갈고닦아, 벼락을 맞는 피뢰침처럼 여러 메시지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의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었고 가진다 한들 쓸데도 없었으니 그저 예언에 따라 무의식의 세계에서 살아가면 그만이었죠. 그것이 편하기도 했고요. 더이상 메시지를 받을 수 없게 된 왕은 죽임을 당하고, 새로운 왕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의식'화하면서 그런 무녀적인 존재는 점차 힘을 잃어가죠. 공기가 바뀌고 벼락을 잘 맞을 수 없게 됐어요. 이데아도 그와 비슷한지 모르겠군요. 정말로 순수한 것은 오로지 무의식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것을 보지 못하고, 대신 의식에 투영된 것을 보는 수밖에 없다. 방금 플라톤 이야기를 듣다보니 떠오른 생각입니다.

 

p194.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목적 없이 써둔 문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 1인칭 '나(와타시)'를 사용한 데는 당시 번역하던 챈들러 작품의 영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씀을 듣고 그도 그렇겠다. 무슨 분위기인지 알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오늘은 우선 <위대한 개츠비>와의 관계부터 얘기할까 합니다. 지형과 집의 묘사, 멘시키라는 인물의 조형, 그리고 '나'와의 거리, 관계성... 등은 닉 캐러웨이와 제이 개츠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건 당연히 의식하셨죠?

 무라카미 : 물론, 처음부터 의식했습니다. 골짜기 너머 건너편을 바라보는 구도는 두말할 것 없이 <위대한 개츠비>에서 거의 그대로 차용한 것이고, 멘시키 씨 조형에도 제이 개츠비의 캐릭터가 얼마간 들어갔습니다. 유복하고 비밀스러운 이웃 개츠비는 매일 밤 후미 건너편의 초록 불빛을 바라봅니다. 누구나 아는 유명한 장면이죠. 멘시키 씨 역시 밤마다 골짜기 건너편 집의 불빛을 바라봅니다. 홀로 고독하게. 이 부분은 말하자면 혼카도리(本歌取り : 와카和歌 작법, 현대 대중가요의 샘플링 기법과 유사)처럼, 피츠제럴드에 대한 개인적인 트리뷰트 같은 거에요. 그러니 '나'라는 1인칭 화자가 어느 정도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와 비슷한 포지션이 되리라는 점은 당연히 의식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이미지가 있었나요?

 무라카미 : 집필을 시작하고 골짜기 건너편에 사는 인물을 설정했을 때 '아, 이건 개츠비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건 아니지만요.

-나중에 깨달은 거군요.

 무라카미 : 네, 집의 위치를 만들고 골짜기를 만들고 그 건너편에 커다란 저택이 있다는 설정까지 나온 뒤 '아, 그런가. 이건 개츠비구나'라고 문득 깨달았어요.

-무라카미 씨의 문화적 캐비닛 속에는 워낙 다양한 요소가 들어 있으니 지금까지 작품을 쓰면서도 생각지 못한 것이 나오곤 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위대한 개츠비>였군요. 무라카미 씨에게 무척 특별한 소설인데요.

 무라카미 : 제가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한 건 예순이 되기 조금전이고,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도 비슷한 시기였는데, 더 나중이었던가?

-챈들러가 나중이었어요.

 무라카미 : 그랬죠? <위대한 개츠비>를 제 손으로 직접 한 줄 한 줄 공들여 일본어로 옮기는 작업은 그냥 읽는 일과 전혀 달랐어요. 몸속에 쌓이는 과정이 달라요. 소설의 세부가 앙금처럼 단단히 제 안에 쌓여가고, 그 침전이 구체적인 영감을 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극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죠. <위대한 개츠비>와 <기나긴 이별>을 번역한 건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신에게 특별한 작품을 그런 형태로 다시 한번 만나는 건 작가로서 기쁜 일이죠.

 무라카미 : 네,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은 그야말로 제 골격의 일부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을 나름대로 환골탈태할 수 있나느 건 무척 익사이팅한 일이죠. 꺼꾸로 말해, '재사용'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작품의 구조와 장치의 이행, 전용이 가능하다는 것도 문학 명작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 같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는 거죠.

-지난 주말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어봤는데, '데이지를 오후에 집으로 초청하고 자기도 불러줄 수 있겠느냐'는 대목이 상당히 겹치더군요.

 무라카미 : 그렇죠, 그 부분은 물론 저도 의식했습니다. 속으로 슬쩍 웃으면서 썼죠(웃음).

-좋은데요. 이전 작품에서도 본인에게 특별한 작품을,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게 등장시키곤 했죠.

 무라카미 : 몇몇 작품에서도 그런 적이 있어요. 유희이기도하고. 말하자면 트리뷰트처럼, 제 생각에, 한 사람이 인생에서 정말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혹은 감명받을 수 있는 소설은 몇 편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걸 몇 번이고 읽으며 찬찬히 곱씹죠. 소설을 쓰는 사람이건 쓰지 않는 사람이건,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소설은 평생 대여섯 권 정도 만나지 않을까요. 많아야 열 권 남짓일까. 그리고 결국 그 몇 안 되는 ㅊ책이 우리 정신의 대들보가 되어줍니다. 소설가의 경우는 그 스트럭처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바꿔 말하고 풀어 말하면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소설에 편입해갑니다. 우리 소설가들이 하는 일이란 결국 그런 게 아닐까요.

 호르헤 보르헤스라고 있죠. 그가 어느 날 시를 써서 친구 앞에서 읽어줬더니 "자네, 오 년 전에도 완전히 똑같은 시를 썼어"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보르헤스는 전에 그런 시를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죠. 이에 대해 보르헤스는 말합니다. "시인이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평생 대여섯 가지밖에 없어. 우린 그걸 다른 형태로 반복할 뿐이지." 듣고 보면 정말 그렇다 싶어요. 결국 우리는 대여섯 가지 패턴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뿐일지 모른다고. 다만 몇 년 단위로 반복하는 사이 형태나 질은 점점 변해가죠. 넓이와 깊이도 달라지고요.

-그때 작가가 두려워하는 건 아마 자기모방의 가능성이겠죠. 후퇴하지는 않았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걱정. 같은 대여섯 가지의 패턴을 되풀이하면서도 발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어떤 부분일까요?

 무라카미 : 문장입니다.

-문장?

 무라카미 : 네. 문장. 제게는 문장이 전부입니다. 물론 소설에는 이야기적 장치, 등장인물, 구조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문장으로 귀결합니다. 문장이 바뀌면, 새로워지면, 혹은 진화하면 설령 똑같은 내용을 몇 번씩 되풀이해도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작가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

 무라카미 : 네. 전혀 무서울 게 없어요. 문장이 정체하면 그저 똑같은 돌림노래겠지만, 문장이 업데이트된다면, 피와 살을 지니고 계속 움직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무라카미 씨는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리듬이라고 하셨느네, 문장을 변화시키는 것이란 즉 리듬을 연마하는 일이기도 하겠군요.

 무라카미 : 그렇죠. 울림, 리듬, 그런 것들이 전과 달라졌다는 확신이 없다면 역시 스스로 무서워지지 않을까요. 문장이 달라지면 같은 이야기여도 나아가는 방향성이 달라집니다. 작가는 그렇게 전진하는 수밖에 없어요.

-<스푸트니크의 연인>이 나왔을 당시 <광고비평>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의식적으로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고 하셨죠. 그때까지 선호하던 문체를 총결산하고 '이런 문체의 소설은 이제 그만 쓰자'는 생각으로 임했다고요.

 무라카미 : 네. 그때는 문장 스타일을 한번 완전히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전까지의, 이른바 무라카미 씨다운 문체를 모조리 써버리는 극단까지 갔다는 말이군요. <스푸트니크의 연인> 전까지는 문장이 전진하는 과도기였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무라카미 : 네, 그렇죠. 아무튼 나다운 문장, 혹은 그전까지 '무라카미 하루키다운 문장'이라 여겨졌던 것. 즉 비유를 많이 사용한 경쾌한 문장을 쓸 수 있는 만큼 써버리고, '이건 이제 됐다'하고 그뒤로 다른 문체가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로 갔죠. 이 <해변의 카프카>라는 소설은 그전까지의 문장으로는 쓸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른 문체를 끌어와야 했어요. 그래서 조금 색다른 문체를 쓰다보니 호시노군이나 나카타 노인 같은, 지금까지 그려본 적 없던 캐릭터가 자연히 등장한 겁니다. 그래도 그 단계까지 가려면 일단 일종의 총결산 같은 것을 해둬야 하죠.

 

p200. <노르웨이 숲>의 사라진 시나리오

-데뷔작과 그 다음 작품 때는 아직 소설을 잘 몰라서 자신의 스타일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뒤로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들여, 좀전에 무라카미 씨가 말씀하신 '나다운 문제'를 만들어갔고요. 그것을 일단 총결산하고 다음 문체로 넘어갈 때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구체적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무라카미 : 물론 문체를 총결산하고 새로 만들어낸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써보지 않은 근육을 갑자기 쓸수는 없으니까요. 그저 새로운 방향으로 문체를 전환하자는 마음가짐인 거죠. 새로운 문체가 새로운 이야기를 낳고, 새로운 이야기가 또 새로운 문체를 보강해갑니다. 그런 순환이 이뤄지면 제일 좋아요.

-작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신의 문체가 무엇인지 아는것, 자신만의 시그니처가 들어간 문체를 획득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이 좋은 문체인지 치밀하게 관찰할 필요도 있고요. 누가 봐도 무라카미 씨의 것임을 알 수 있는 문장을 쓰면서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 나아가 그것을 독자와 공유하기란 녹록지 않을 텐데요.

 무라카미 : 어쨌거나, 저는 문장을 쓰는 게 좋습니다. 늘 문장을 생각하고, 늘 어떤 문장을 쓰고 있고, 늘 여러 가지를 조금씩 시험해봐요. 문장이라는 도구가 제 손에 있는 것만으로 무척 행복하고, 그 도구의 여러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어요. 애써 손에 넣은 것이니까.

-무라카미 씨는 절대 발을 멈추지 않죠. 정체하기 않고 계속 움직이니까 가까이서도 그 변화를 알 수 있지만, 조금 물러서서 보면, 몇 년쯤 지나서 보면 유기적으로 뚜렷한 그러데이션이 드러나 있어요.

 무라카미 :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노르웨이의 숲>에서 끝까지 리얼리즘으로 소설을 쓰는 실험을 했습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그전까지의 문체를 총결산할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고요. 그뒤에 <애프터 다크>는 거의 영상 시나리오와 비슷한 방식으로 써봤죠. 그렇듯이 '조금 짧은 장편'에서는 늘 저 나름의 실험을 합니다. 이번에는 이런 걸 해보자 하고 도전하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제게는 다소 실험적인, 그룹을 묘사한 소설입니다. 그전에는 그렇게 써본 적이 없었어요. 쓰는 입장에서는 그 정도 길이의 소설이 제일 실험하기 좋죠.

 단편이라면 어느 정도 통합성이 필요하고, 긴 장편에서도 섣불리 시도할 수 없어요. 어설프게 실험적인 요소를 넣으면 수습이 힘들어지니까. 그래도 <스푸트니크의 연인>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또 <애프터 다크>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정도의 경장편에서는 비교적 깊이 있는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껏 감각을 해방하고 새로운 설정을 시도해볼 수 있어요. 제게는 아주 중요한 그릇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그 정도 사이즈의 소설은 대개 독자 평판이 좋지 않단 말이죠.

-뭐 짚이는 게 있으세요?(웃음)

 무라카미 : 모르겠군요. 무엇 때문일까(웃음). 단편은 단편대로 어느 정도 인정받고 긴 장편도 장편으로 인정받지만, 그 사이주의 소설을 적어도 출간 당시에는 왠지 혹평이 많은 느낌이에요. 대충 썼다. 지금까지와 똑같다. 아니면 반대로 새로운 시도에 실패했다 등등.

-아무래도 단편과 장편의 중간에 속하다보니, 좀더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기대하던 독자들이 어중간하다는 느낌을 받는 걸까요.

 무라카미 : 모르겠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작품 하나하나에 애착이 있고, 외국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평판이 좋은데 말이죠.

-단편소설을 읽은 뒤의 날카롭고 상쾌한 느낌과 긴 장편소설의 다이너미즘에 흠뻑 취하는 독서체험. 무라카미 씨의 독자는 그 양쪽을 다 알지만 다소 짧은 장편의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좀 망설여지는지도 모르겠네요.

 무라카미 : 독자 카드에 너무 비판적인 의견만 나와서 담당 편집자가 무척 침울해했어요. 보기 딱할 정도로(웃음). 그래도 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희안하게 재평가의 목소리가 나오거든요. "사실은 좋았습니다" 커밍아웃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중이 될수록 점점 평가가 좋아져요.

-"사실은 좋았습니다"라니, 왜 눈치를 보는 걸까요(웃음). 처음부터 말하면 될 걸.

 무라카미 : 아니면 읽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자극하는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반발을 사는 걸까요? 그래도 그런 분량의 장편소설에서만 가능한 것이 분명히 있고, 제게도 나름의 성과가 확실히 남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아도 딱히 걱정하진 않습니다. 머릿속에는 '자, 다음으로 가자'는 생각뿐이죠.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어떤 부분을 포착할 때는 미들클래스, 400자 원고지 사오백 매 내외의 작품 속에 커다란 실마리,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죠.

 무라카미 : 네, 그럴 거에요. 그 정도 분량이 소설이 고비가 되어, 다음 장편으로 그 성과가 이어지는 면이 확실히 있습니다. 저는 곧잘 함대에 비유하는데, 거대한 전함이 있고, 그다음에 순양함이 있고, 구축함이 있고, 뒤이어 더 작은 배나 잠수함이 함대를 이루죠. 제일 큰 전함이 제게는 긴 장편에 해당하는데, 대신 그만큼 움직임은 부자유스러워요. 작은 배가 단편이고, 좁은 데서도 꽤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화력이 아무래도 모자라죠. 그런 때 마침 중간 사이즈의 배가 있으면 굉장히 고마워져요.

-그런데 단편도 점점 분량이 늘어나는 추세에요. 2014년의 <여자 없는 남자들>의 수록작도 각각 팔십 매 전후잖아요. 물론 단편의 범주에 들긴 하지만 조금 긴 편이랄까요. 아주 짧은 작품은 요즘 들어 잘 없어요. 예전에는 많았는데.

 무라카미 : 그렇네요. 점점 길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언젠가 또 짧은 것도 쓰겠죠.

-<여자 없는 남자들> 때는 어땠나요?

 무라카미 : 음, 그때는 좀 긴 걸 쓰고 싶은 시기였어요. 쓰다보니 점점 이미지가 부풀어서, 쓰고 싶은 게 많았고, 그동안 길고 촘촘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도 했죠. 그런 게 재미있었어요.

-<세 가지의 독일 환상>처럼 짧고 시적인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것도 있었죠. 무라카미 씨 작품 중에서도 실험적인 단편이었어요.

 무라카미 : 옛날 작품이죠. 그렇게 감각적인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잡지에서 짧은 글을 원한 이유도 있지만. 지금은 잡지 청탁을 받아서 쓰는 일이 없으니까 보통 쓰고 싶은 만큼 쓰죠. 그래서 자꾸 길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때가 되면 또 짧은 이야기를 쓰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는 분량도 많지만 디테일 면에서도, 특히 1부는 매우 치밀하게 쓰였습니다. 패러프레이즈가 자유자재이고 마치 '문장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의지까지 느껴지는 밀도에요. 하나의 대상을 아주 끈질기게 묘사하고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그 시점이 또 조금 변한 인상이었습니다.

 무라카미 : 저는 원래 풍경 묘소 같은 데 서툰 편이었어요.

-초기에요?

 무라카미 : 아주 초기에. 대화나 행동 묘사는 그럭저럭 매끄럽게 나오는데, 움직임을 억제하고 구석구석 세세하게 묘사하기로 마음먹으면 아무래도 잘 안 되더군요. 그러다가 차츰 써지니까 좋아서 자꾸 써넣은 편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하긴 초기에는 그런 묘사보다 미니멀한 날카로움, 아포리즘의 이미지가 강했죠. 서툴렀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세번째 작품인 <양을 쫓는 모험>에서는 근사한 풍경 묘사가 나오잖아요.

 무라카미 : 그런가요.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산속 오두막으로 가면서 드넓은 초원을 걷는 장면이라든지. 꼭 자작나무 같은 걸 눈앞에 보는 기분이었는데요. 풍경이나 정경 묘사는 언제부터 만족스럽게 쓸 수 있게 됐다고 느끼세요?

 무라카미 : 언제일까요. 아주 최근처럼 느껴지는데, 풍경 묘사는 정말 옛날부터 잘 못했어요. 심리묘사는 더 못해지만(웃음).

-그런 때는 '여기 풍경 묘사를 좀 더 넣는 편이 좋겠는데 쓰기 싫다'는 느낌인가요?

 무라카미 : 그렇죠. 소설에는 본래 밸런스라는 것이 있으니까 '쓰기 싫지만, 귀찮지만, 여기서는 써야 한다' 싶죠.

<애프터 다크>를 쓸 때 가장 뚜렷하게 느꼈는데, 처음에는 대화만 슥슥 쓰고, 사이사이 간단한 지문을 메모해뒀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다 쓴 뒤 지문 부분을 '영차, 영차'하면서 정교한 문장을 만들어 써넣었죠. 그런 식으로 써보는 것도 제게는 좋은 공부가 됐어요.

 

p213.

 무라카미 : 그에 앞서, 리얼하게 쓰지 않으면 미스터리해지지 않습니다. 미스터리하게 쓰려 한다고 미스터리해지는게 아니니까. 최대한 리얼하게 써야지 하는데도 미스터리해진다면 결과적으로 미스터리한 인물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p227.

 무라카미 : 말이죠. 문장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규범은 제 생각에 기본적으로 두 가지뿐이에요. 하나는 고리키의 <밑바닥에서>에서 거지와 순례자의 대화. "내 말 듣고 있는거야?"하고 한 사람이 말하니까, 다른 사람이 "나 귀머거리 아니야"라고 답해요. 지금은 거지니 귀머거리니 하는 차별용어를 쓰면 안 되지만 그 시절에는 아니었어요. 전 이 책을 학창시절에 읽었는데, 보통 같으면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듣고 있어"로 끝날 대화죠. 그런데 그러면 드라마가 안 되는 겁니다. "귀머거리 아니야"라고 대답하니까 주고받는 말 속에 역동감이 생겨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못하는 작가가 세상에는 많거든요. 저는 항상 그 사실을 의식합니다.

 

 또하나는 비유. 챈들러가 쓴 비유 중에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라는 게 있어요. 에전에도 몇 번 예롤 든 문장인데, 만약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드물다"라고만 하면 독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죠. 예사롭게 획 읽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하면 '호오!' 싶잖아요. 그러고 보니 뚱뚱한 우편배달부는 본 적 없는데, 하고. 그게 살아 있는 문장입니다. 이렇게 반응이 생겨나고, 움직임이 생겨나죠. "귀머거리 아니야"와 "뚱뚱한 우편배달부". 이 두 가지가 제 글쓰기 모델입니다. 그 요령만 알면 제법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 거예요. 아마도.

 아무튼 독자가 간단히 읽고 넘어갈 문장을 쓰면 안 된다는 거죠.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문장으로만 채울 필요는 없지만, 몇 페이지에 하나쯤은 넣어줘야 해요. 아니면 독자가 좀처럼 따라와주지 않아요.

 

...

 

 오손 웰즈의 영화 <시민 케인>에서 이탈리아에서 온 음악 선생이 가수 지망생인 케인의 부인을 가르치다 말고 이런 말을 해요. "세상에는 노래를 할 줄 아는 인간과 못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유명한 대사인데, 어쩌면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거의 글다운 글을 쓰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노력하며 조금씩 이런저런 것들을 쓸 수 있게 돘죠. 단계적으로 발전해온 거죠.

 

p231.

-무라카미 씨는 곧잘 '처음에는 잘 쓰지 못했다'고 하시는데요. 아까 했던 노래 이야기처럼 내가 쓰고 싶은 건 이런 거다. 하는 확고한 이미지는 있었는데 본인이 보기에 멀다고 느꼈다는 뜻인가요?

 무라카미 : 한참 멀었죠. 당시 편집자에게 "제가 아직 문장력이 부족해서요" 했더니 "괜찮아요, 무라카미 씨. 다들 원고료 받아가면서 차차 좋아집니다" 하더군요. 하긴 맞는 말이었어요(웃음).

-자꾸 처음에는 나도 잘 못 썼다, 못 썼다 하시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잘만 썼잖아 싶은데요(웃음).

 무라카미 : 잘 쓸 수 있는 것만 썼고, 그것이 그것대로 잘 기능했다고 봐요. 그래도 제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것과는 조금 달랐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쓸 수 있게 된 건 훨씬 나중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해야 하나... 저는 데뷔 무렵부터 꽤 주목받았던 모양이에요.

 

p234.

-2015년 후쿠시마에서 열린 문학 워크숍에서 무라카미 씨가 제 창작 클래스에 잠깐 참석해주셨죠. 그때 수강자들에게 딱 한 가지 지적하셨는데. 귀로 들어서 알 수 없는 말은 쓸 때도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신인상 응모작 원고를 읽다 보면 다들 비교적 어려운 말을 자각 없이 쓰는 경향이 아직 엿보이거든요. 문자로나 소리로나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말을요.

 무라카미 : 네, 말의 울림은 중요합니다. 구체적이고 피짘컬한 울림. 설령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만 보더라도 울림이 잇어야 해요.

-주제나 내용은 어찌됐건 일단 문장 단위에서 리듬이 좋고 술술 읽히는 글도 생각해보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것도 일종의 궁합일 테지만요.

 무라카미 : 작가는 눈으로 울림을 들어야 합니다.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고, 소리내는 대신 눈으로 울림을 느낀다.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저는 항상 '음악에서 글쓰는 법을 배운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눈으로 보고, 울림을 느끼고, 그 울림이 더 아름답게 울리게끔 바로잡아가는 작업을 중요시해요. 마침표, 쉽표도 리듬이잖아요. 그런 게 무척 중요해요.

 

p236.

 사는 법을 가르칠 수 없는 것처럼, 글쓰는 법을 가르치기도 어려워요.

 

p238.

 무라카미 : 전에도 말했듯이 소설 쓰는 일은 일종의 신용거래고, 한번 잃어버린 신용을 되찾기는 매우 어려워요. 시간을 들여 '이 사람이 쓴 거니 돈 내고 사서 읽어보자'라는 신용을 쌓아나가고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문장을 정성껏 갈고닦는 일이 중요해요. 구두를 닦거나, 셔츠 다림질을 하거나, 칼날을 가는 것처럼.

 저는 문체가 거의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의 이른바 '순문학'계에서는 문체는 3순위나 4순위쯤 되는 듯합니다. 대개는 테마 제일주의로, 일단 테마 운운을 주목한 뒤야에 다른 여러 가지, 이를테면 심리묘사나 인물 설정 같은 관념적인 부분을 평가하고, 문체는 한참 뒷전이죠. 그러나 그게 아니다. 문체가 마음껏 활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p245.

 무라카미 : 스트록처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거의 의식하지 않아요. 그럴 필요도 없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자기 안에 이미 갖춰져 있어야 하니까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의 골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스트럭처 역시 일부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무라카미 : 그 형태가 어디서 생겨나느냐 하면, 주로 지금껏 자신이 읽어온 소설, 그리고 써온 소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미 자기 안에 자명하게 존재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새삼 생각할 일이 없어요. 대신 문체를 생각해야죠. 그리고 문체가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똑같아요. 캔버스에는 끝이 있죠 다들 그 안에 그림을 그립니다. 테두리 바깥에는 그릴 수 없어요. 그래도 화가는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않죠. 끝없이 이어지는 광대한 캔버스 없이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어떤 사이즈의 캔버스를 머릿속에 설정하면 그 안에서 세계가 완성되어갑니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쯤이 끝이겠다 싶은 부분이 대략적으로 보여요. 아니면 오천육백 매씩 쓰고도 아직 모자란다고 하겠죠. 즉 어느 정도 쓰는 사이 구조가 보이기 마련이에요. 위쪽 끝은 이쯤이고, 아래쪽 끝은 이쯤, 좌웅 양쪽은 여기까지. 그러니 구조나 골격을 두고 그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자연히 결정되니까요.

-지금까지 독서를 통해 쌓아온 것들에 구조의 재료가 모여있고, 그게 자연히 나오면서 작품에 따라 확실한 형태를 잡아간다는 말이군요. 무라카미 씨가 꾸준히 번역작업을 하는 것과도 적잖이 관계되는 것 같습니다. 번역이란 전체 구조뿐 아니라 문장구조 그 자체에 줄기차게 부딪히는 작업이니까요.

 

 

p323

 무라카미 : 필요 없죠. 저는 소설 쓰는 게 좋고 밖에 나가 노는 일이 잘 없어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나이트라이프라고는 전혀 없어요. 어떻게 그런 생활이 가능한가 하면, 소설을 쓰는 능력이 있어서죠. 저는 소설을 어느 정도 잘 쓸 수 있고, 저보다 잘 쓰는 사람은 객관적으로 봐서 뭐, 그렇게 많지는 않은 셈이잖아요. 이 세상에.

-좋은 말씀이 나왔습니다. "나보다 잘 쓰는 녀석은 적다!"

 무라카미 : 자랑이 아니라,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 어쨌거나 글쓰기에는 프로니까요. 사십 년 가까이 일선에서 프로로 글을 써왔고, 책도 어느 정도 팔리고, 실력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즐겁고요. 이 일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면 일하기가 즐거워요. 예를 들어 섹스도 나쁘지 않지만, 나보다 섹스를 잘하는 사람이야 아마 세상에 굉장히 많겠죠(웃음). 직접 본 일은 없지만.

-그, 그렇군요...(웃음) 그러나 소설은 다르다.

 무라카미 : 소섥은 다르다. 이런 건 아마 나밖에 하지 못할 거라고 실감합니다. '어때, 손해는 안 본댔지' 하는 거. 이 실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웃음).

-철학자 등이 현저히 그렇죠. 의문을 제기하는 단계도 그렇고, 어떤 명제에 대해 여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기존의 학설을 넘어서서 새로운 생각을 내놓았다는. 일종의 '성취감'과 '과시욕'이 없으면 지적인 작업을 할 수 없죠. 그런 것이 중요한 엔진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 그렇기에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요. 아무튼 지금 좋아서 소설가를 하고 있으니 계속 해보자. 그러다가 판매량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소설을 못 쓰게 되면 못 쓰는 대로, 곧바로 가게문 닫고 아오야마 근처에 재즈클럽을 내면되지. 그것 역시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요.

 

p343.

 무라카미 : 저는 아직 순수한 의미의 '악'을 쓴 적 없고 쓰려고 한 적도 아마 없을 테니 악이란 어떤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 제가 가장 큰 '악'이라고 보는 건 역시 시스템입니다.

-무라카미 씨가 생각하는 '악'의 이미지는 시스템이다.

 무라카미 : 좀더 분명히 말하면 국가나 사회나 제도 그 솔리드한 시스템이 불가피하게 양성하고 추출해가는 '악'이죠. 물론 모든 시스템이 '악'이라거나 시스템이 추출하는 것이 모조리 '악'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선한 부분도 당연히 많아요. 하지만 만물에 그림자가 있듯이 어떤 국가나 사회든 '악'이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교육 시스템도 그렇고, 종교 시스템에도 도사리고 있죠. 그런 '악'은 실제로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합니다. 저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인간이라 그런 시스템의 '악' 같은 것에 매우 민감한 편입니다. 그 실상을 좀더 그려나가고 싶지만 그러면 아무래도 정치적 메시지가 되기 쉽죠. 그것만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요. 제가 바라는 형태의 발신이 아니니까요.

 

p351

 무라카미 : 사악한 이야기의 한 전형이, 아사하라 쇼코(참고 : 옴진리교의 교주)가 펼쳐 보인 이야기죠.

 완전히 폐쇄된 장소로 사람을 끌어들여 철저하게 세뇌하고, 나아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죽이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기능한 건 최악의 형태를 취한 사악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회로가 폐쇄된 악의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다 넓고 개방적인 이야기를 작가는 만들어나가야 한다. 무언가를 둘러싸고 쥐어짜는게 아니라 서로를 받아들이고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을 세상에 제시하고 제안해나가야 한다. 저는 <언더그라운드> 취재를 통해 그렇게 절감했습니다. 피부로 느꼈어요. 이건 해도 너무한 일이라고.

 

p356. 인터뷰를 마치고(무라카미 하루키 에필로그)

 "따분하고 재미없는 대답만 해서 미안합니다. 따분하고 재미없는 질문에는 그런 대답밖에 나오지 않는 법이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작가생활을 해오면서 적지 않은 인터뷰를 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상황을 몇 번인가 경험했다.(물론 예의바른 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번에 가와카미 에미코 씨와 총 네 번에 걸쳐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정말이지 솔직하게,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신선하고 날카로운(때로는 묘하게 절실한) 질문이 속속 날아오는 통에 무심결에 식은땀을 흘릴 때가 잦았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끊임없는 공세'를 피부로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원래 작가끼리의 대담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데뷔 초기에는 몇 번 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그러나 인터뷰 형태로 다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제법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질문하는 쪽이든 대답하는 쪽이든, 상대를 잘 만나면 상당히 흥미로워지기 마련이다. 인터뷰라는 포맷에서는 인터뷰어의 책임과 인터뷰이의 책임이 뚜렷이 나뉘기 때문이다. 그런 깔끔함이 마음에 든다.

 2015년 7월 잡지 <MONKEY>의 청탁으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중심으로 가와카미 씨와 롱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 이 사람과는 좀더 오래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강한 여운이 남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만난 어떤 인터뷰어와도 다른 종류의 질문을 정면에서 던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망설임 없이 여러 각도에서 그 질문을 반복했다. 그런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하는 사이 지금까지 나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와 풍경을 내 안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랬던 터라 그 연장선상에서 다시 그녀와 인터뷰를 하면 어떨까, 나아가 가능하면 한 권의 책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거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창 <기사단장 죽이기>를 쓰고 있던 시기라 일단 대답을 미뤄두고 집필을 끝냈을 때 "혹시 아직 괜찮다면 하고 싶다"는 답을 보냈다. 이 작품을 놓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과연 어떤 인터뷰가 될지, 나로서도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따분할 틈이 없었다, 라고 한숨을 섞어 말할 수밖에 없다. 아니, 정말이지 따분해할 여유라고는 없었답니다. 헤밍웨이 씨.

 

차범근 감독(현재는 감독, 해설가 등의 활동이 없으나 요즘 부르기 제일 무난한 호칭이라고 생각함)이 주로 독일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에 대한 에피소드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스포츠 서울에 연재되던 칼럼을 모은 것이다. 칼럼의 연재연도는 1980년대 중후반으로 예상되는데, 실제 책은 1997년도에 출간했다.  거진 30년이 넘은 내용으로 당시의 축구계와 한국의 상황들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된다.

개인적으론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손흥민의 에세이를 보고 나서 당연히 차범근 감독도 이런 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찾아봤다.

차범근 감독의 축구에 대한 생각,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아마 당시는 전문편집자가 없었나하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글의 내용은 괜찮은데 가끔가다 문맥이 이해가 안되게 튀는 부분이 있다.

차범근 감독이 뛰는 모습을 기억하는 세대(나도 사실 차범근 감독의 선수시절 모습은 86년 월드컵에서 뛰던 모습 정도나 기억한다.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활약을 하는 것은 신문으론 봤지만 TV에서 경기모습을 볼 수는 없었던 시절이다.)

이 책은 지금 절판에다가 중고서점에서도 구하기 힘들다.(그래서 어렵게 도서관에서 찾아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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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나의 자랑스러운 둘째 형님

 처제들은 시골에 계시는 둘째 형님을 '일용씨'라고 부른다. 그 연속극을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처제들의 얘기인즉 [전원일기]에 나오는 '일용씨'의 모습이 둘째 형님의 모습하고 똑같다는 것이다. 형님은 지금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에서 버섯 농사를 짓고 있다. 가끔 고향집에 전화를 하면 밤 열한시가 넘었는데도 어머님과 함께 버섯을 다듬고 있다고 할 만큼 일이 많은 작업이다.

 그러나, 어머님, 형수님, 그리고 형님이 하루종일 매달려야 하는 엄청난 일의 양에 비해 일년에 떨어지는 돈이 칠백만원 정도라고 해서 나는 참 심란한 기분이 들었는데 정작 형님은 그만한 수입을 올린다는 것에 보통 자부심을 갖고 계시는 게 아니었다. 그런 천성 때문인지 형님은 한번도 도시 생활을 꿈꾸거나 계획한 적이 없는 분이다. 작은 운동구점 하나라도 동생 이름 걸고 하겠다고 할 법한데 여지껏 그런 생각은 꿈에서조다도 갖고 계시지 않은 것이다. 농사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아는 것도 아무 것도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는 형님이 지난번 만났을 때 "나는 말이여, 버섯을 하면서도 뭣을 조금씩 치면 일이 훨씬 수월한데 유명한 아우 생각을 하면 절대로 그렇게 못하겠어. 내 버섯은 정말로 아우 덕에 아무 것도 치지 않고 키우는거여"하며 느릿느릿 말씀하시는 것을 보며 말할 수 없는 고마움과 형의 인격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 얼마나 자랑스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형님은 자신의 인감도장조차도 마을일을 돌봐주는 '이장'에게 맡겨놓고 그 이장이 형님 몰래 오백만 원을 대출받아 썼는데도 몇 년씩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낼 만큼 순진하신 분이다. 그런 형님이 얼마 전 축구교실을 할 만한 아주 좋은 땅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도 머뭇거리는 나를 보자 내가 돈이 모자라서 그러는 줄 알고 몹시 딱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며칠 전 전화를 했더니 "범근아! 학교 뒷산에 있는 우리 밭을 팔면 한 사천만 원 된다는 데 내가 그걸 팔아서 보태주면 그 땅을 살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형이라고 해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우리 둘째 형님 말고 또 있을 수 있을까. 더구나 요즘 같은 세상에....

 고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신 형님.

 하루종일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의 농군 형님. 그러나 형님은 동생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기쁠 뿐이고 나는 그런 형님이 박사보다도 장관보다도 더 자랑스러울 뿐이다.

 

p21. 

 그 해 6월에는 사기꾼이 처가에 사기를 치려고 했던 적이 있다. 어떤 남자가 장모님께 전화를 걸어 "내가 축구감독 김호인데 이번에 독일에 갔다 오면서 차범근이가 장모님 갖다 드리라고 주는 선물을 갖고 왔다. 그런데 세관에서 통관세 21만원을 물으라고 하니까 내 온라인 구좌로 돈을 좀 보내달라"면서 구좌번호까지 불러주더란 것이다. 평소 나나 아내는 "괜히 세관 검사대에서 떳떳하지 못하고 피곤해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어 귀국할 때 변변한 선물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흔한 양주 한 병도 안 가지고 간다. 그래서 내 손아래 동서는 "형님! 비행기 안에서 파는 양주 한 병은 예의예요."하고 항상 불평을 하는 판이다.

 그런데 10년 동안 선물이라고는 한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장모님 생각에 "천지개벽이 아니고선 세금까지 물어야 할 변난 것을 사서 보내겠느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장모님은 궁금하지도 않으셨는지 전화 한 통화 안한 걸 보면 평소 교육(?)의 효과가 대단했던 것 같다.

 

 p23.

 남을 위해서 참는 것, 일을 위해서 인내하는 것, 그것은 일의 종류가 어떤 것이라고 해도 매우 귀중한 것만은 틀림이 없으리라.

 

 p29.

 유럽컵과 같은 공식 유럽축구연맹 주최 경기에는 팀에서 입는 일반 유니폼을 입지 못하게 되어 있다. 같은 모양에 광고를 없앤 유니폼을 사용해야 하는데 유럽에서 열리는 3대 유럽컵 결승전은 전 유럽에 중계가 된다.

 10년 전 내가 속해 있던 프랑크푸르트 팀은 UEFA(유럽축구연맹)컵 결승전에 올랐었다.

 물론 경기장에서는 흰색 상의에 까만 팬티를 입었는데 프랑크푸르트의 마크가 왼쪽 가슴에 조그많게 달린, 규정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복장이었다.

 6만이 꽉찬 운동장에서 결승전을 벌인 끝에 '샤웁'이란 선수가 한 골을 넣어 1대 0으로 승리, 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시상 준비를 하는 짧은 시간에 우리는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옷이 적어 감기에 걸릴까봐서"라며 우리가 평소에 입던 미놀타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적은 옷과 갈아 입으라는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의 환호소리에 끌려 다시 나왔을 때 수백명의 카메라맨들이 우승팀을 찍으려고 우리를 향해 몰려들었다.

 중계되는 가운데 시상식도 근사하게 끝마쳤다.

 컵을 앞에 놓고 찍은 '우승 팀 사진은 각국으로 보내져 스포츠 신문과 잡지를 장식했다.

 유럽축구협회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광고주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느긋하게 유럽축구협회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요청한 벌금만 대납해주면 되는 것이다. 

 200만원.

 생각보다 적은 액수다.

 해볼 만한 일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프랑크푸르트가 이 일을 해주고 얼마나 받았을까?

 나도 모른다.

 신문에도 없다.

 다만 효과가 있기에 그런 법석을 떨었을 것이란 점만은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p37. 별난 아들 이름 '세찌'

 "야! 차붐! 넌 드디어 진짜 축구 선수가 된거야! 위대한 축구 선수는 다 얘들이 셋이거든. 펠레가 그렇고 베켄바워, 루메니게, 브라이트너, 슈스너, 그리고 나 니켈...."

 셋째를 낳았다는 신문보도가 나자 프랑크푸르트의 옛 동료 니켈이 부리나케 집으로 전화를 걸어 한 말이다.

 세찌. 이곳 독일 친구들은 저마다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을 지어 이제 겨우 두리란 이름이 익숙해질 만하니까 "또 세찌를 외워야 하게 됐다고 투덜거리는데 이름 가지고 말이 많기는 서울도 마찬가지다.

 전화를 통해 "축하합니다"하고 점잖게 운을 떼고 난 [스포츠서울]의 방석순 기자는 두리 다음에 난 아기의 이름이 세찌라고 하자 "세상에 '찌'가 들어가는 이름이 어디 있어요. 그래 그 이름 호적에 올릴 참이요?"라면서 어이없어했다.

 그렇다고 이미 지어 놓은 이름, 게다가 신문에 나고 이곳 TV해설자까지 축구해설 도중 자세히 소개해 놓은 우리집 아이의 이름을 이제 와서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

 거기다 우리 세찌 녀석은 이름만 요란한 게 아니다.

 언젠가 신문지상을 통해 1986년 10월쯤 세찌가 태어날 것이라고 밝혔더니 어느 팬이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차 선수와 통화할 기회가 있거든 요즈음은 하나만 낳기 운동이 한창임을 꼭 일러주라"고 했더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제는 '모두가 하나'도 아니고 '한집 걸러 하나'의 추세라고 하니 우리 같은 경우는 아파트 한층의 애들을 몽땅 갖고 있는 셈이다.

 우리 한국 축구 선수들도 나이가 젊을수록 '하나만 낳고 끝'이라고 하는데 소위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수년을 산 가장 모법적이어야 할 영증(조영증)과 나만 애가 셋이니 사실 할 말이 없다.

 거기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곳 [익스프레지]지는 내가 한국 가족계획협회의 '둘만 낳기 운동'에 모델로 앞장섰다는 사실까지 알아내서 내가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유감없이 폭로하기까지 했다.

 

p64.

 그러기 때문에 더 배운 사람, 더 높은 사람,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항상 남들이 흉내내고자 하는 대상이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국에 있을 때, 많은 어른들을 뵙고 가까이에서 그분들의 생활을 보면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도 흉내낸 적이 있고, 또 옳지 않은 것도 높은 분이 하는 것은 근사해보였던 기억이 난다.

 남편의 권력을 등에 업고 열심히 땅장사하시던 어느 사모님, 바로 그분이 내가 독일로 온 뒤 장관 사모님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은 요즘 신문을 잃고 난 뒤의 씁쓰레한 뒷맛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한번은 우연히 만난 어느 재벌 총수님께 좋은 말씀 있으시면 한마디 해주십사 하고 부탁드린 적이 있다.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 대재벌 총수님은 거짓말 같게도 갑자기 내 귀에 입을 슬며시 대시더니 "돈 있으면 금 사!" 하시는 것이었다.

 하기야 내가 낮에 묻었던 축구화 바닥의 흙이 생각나서 자다가도 뛰쳐나와 손질을 해놔야 속이 시원한 것만큼이나 그분도 자나깨나 돈버는 궁리를 해서 대기업을 이룰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나이 어린 나에게 하는 충고치고는 분명히 야(?)했었다.

 

p68. 레버쿠젠시가 온통 차붐 축제

 8년만에 UEFA컵이 서독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내 품으로.

(참고 : 1987-88 UEFA 우승은 레버쿠젠이 차지. 당시 상대팀인 RCD에스파뇰은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차전 홈경기에서 3:0으로 승리. 레버쿠젠의 홈경기에서 4점차 이상으로 승리해야만 하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바로 이 절대절명의 2차전에서 차붐이 후반 81분 극적인 3번째 골을 넣으면서 3:0으로 레버쿠젠이 승리. 이후 1,2차전 동점/동률이 된 상황에서 연장전을 진행하지만 결국 양팀 모두 골을 넣지 못하고 승부차기로 간다. 승부차기에서 레버쿠젠이 3:2로 짜릿한 우승을 차지하며 일약 차붐은 레버쿠젠의 영웅이 된다.)

 뜨거워서 터질 것 같은 팬들의 열광과 환호는 8년 전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감격이었다.

 하늘에서는 [원더풀,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라는 왕츠가 높은 테너 가수의 음성으로 쏟아지고 관중들은 함성과 흥분으로 운동장을 덮고 있었는데 간간이 보이는 노란 바탕에 까만 붓글씨의 응원 플래카드는 나에게 또 다른 흥분을 더해 주었었다.

 '범근아, 너 알지 끝내줘라."

 나의 세 번째 골이 터졌을 때부터 UEFA컵은 내게 돌아오고 있었다.

 그 당시 내 나이 34세, 바로 그 감격스러웠던 순간에 나의 축구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던 충동은 너무 감상적인 것이기만 했을까.

 더 이상 바랄 것도, 바라고 싶은 것도 없었다.

 왁자지껄 집으로 몰려들었던 한국 손님들이 프랑크푸르트를 향해 떠난 것은 새벽 2시였다.

 도무지 잠자리에 들 수 없는 흥분 때문에 슬리퍼를 신은 채로 파티장에 다시 돌아갔을 때는 레버쿠젠 시도, 파티장도 온통 취해 있었다.

 깊은 밤에 빵빵거리면서 돌아 다니는 자동차, 어깨에 어깨를 걸고 훈훈한 초여름 밤을 맥주로 식히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무리들이 레버쿠젠을 온통 메우고 있었다.

 취한 경찰이 팬들과 어울려 [오! 미스터 나이스]를 신나게 부를 때 푸른 제복이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입는 것인지를 그들은 잊은 지 이미 오래된 듯해 보였다.

 "부미!"(감독이 부르는 나의 애칭)하고 집에서 입는 옷차림으로 파티장에 들어선 나를 끌어안은 감독과 부인의 벌겋게 젖은 눈은 지난 세월 동안 그와 우리가 나눈 고통의 밀담을 소리없이 생각나게 하고 있었다.

 눈물과 웃음이 결국은 같듯이 고통과 영광은 같은 무게로 우리의 인생에 매달려 있는 모양이다.

 손수건을 링 위로 던졌다는 신문들의 빈정거림 속에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던 바로 그 감독이 떠나기 1주일 전에는 레버쿠젠의 영웅이었다. "이 컵은 나의 이별의 왕관이다"라고 반쯤 취해서, 아니 하나도 안 취해 있던 감독은 소리쳤다.

 나는 그때 뭐라고 소리쳤을까.

 그 밤의 모든 일들이 꿈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오픈카를 타고 시민들 사이를 누비며 8년만에 안아본 UEFA컵은 어느새 살찐 아들 녀석처럼 훨씬 무거워져 있었다.

 

p87. 마라도나는 진짜 작은 거인

 1987년 크리스마스 전에 서독 축구 국가대표 팀이 남미원정 중 브라질 및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팀과 친선경기를 가졌었다. 독일에서는 한밤중에 중계가 되었는데 경기 내용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그 경기의 해설자는 연방 디에고 마라도나의 화려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지 않고 TV를 시청한 대가는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날 저녁 마라도나가 보여준 플레이는 기술이나 묘기라기보다 차라지 천진한 어린아이의 재롱 같아 보였다.

 수만 관중이 디에고를 외치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미칠 듯이 환호하는 것을 작은 키의 마라도나는 마치 우리 집 세찌가 도리도리 짝짜궁을 하면서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즐거워하고 있었다. 마치 긴장이 무엇인지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아이 같았다.

 그런데 1988년 초에 마라도나가 속해 있는 이탈리아의 나폴리팀과 언젠가 내가 가려고 했던 AC밀란과의 경기에서 나는 또하나의 작고 귀여운 '마스코트'를 보고는 나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그래서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단계를 벗어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1987년 유럽의 최우수 선수였던 네덜란드 출신의 머리를 갈래갈래 땋은 그 흑인 소년은 돌아가는 템포가 질러가는 상대 선수보다 빠를 만큼 스피드가 대단했다.

 그러나 그보다 개구쟁이 흑인 꼬마를 뻥튀기 기계에 올려놓고 튀겨놓은 것 같은 어른 개구장이의 천성이 내 눈엔 더욱 돋보이는 무기로 보였다.

 더욱이 요즘은 10년, 20년 전처럼 펠레는 영원히 브라질에, 베켄바워는 언제까지나 독일에 머무를 수 없는 세계 축구의 현실로 볼 때 이들의 낙천성이야말로 어느 곳에서든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인 듯했다.

 레버쿠젠 클럽에서 발간한 책에 실린 나에 관한 소개란에서 리벡 감독은 "그는 뛰어난 운동(육상)선수다. 그리고 그는 팀의 어느 곳에나 세울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유일한 선수"라고 얘기했다. 이와 비슷한 얘기는 나를 가르쳤던 감독 중 특히 부흐만과 크라마가 자주 했던 것 같다. 기초가 가장 완벽하다느니 가장 뛰어난 기술을 습득한 선수라느니 하는 식으로.

 그러나 나는 분데스리가 10년 넘은 경험을 통해 볼 때 내가 서 있는 이 위치에서 마지막 단게로 올라서기엔 성격적으로 담대하지 못하다는 크나큰 약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하는 경기에 대단한 손임이 오게 되면 마라도나처럼 즐겁고 신나는 게 아니라 부담스럽고 불편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내가 응원 많이 할 테니 잘하라"라든지 "한 골 넣어라"는 얘기는 일부러 안 들은 걸로 한다. 솔직히 말해 전혀 고맙거나 도움이 안되는 심리적인 부담만 쌓이기 때문이다.

노력으로 깰 수 없는 담, 늘 경기에 신중하게 임하는 나의 성격은 감독들 눈엔 만점일지 모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펠레나 마라도나처럼 한 단계 높은 더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p106.

 고등학교 시절 허리가 아파 쩔쩔매고 있을 때 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나 계신 장운수 선생님은 거액의 자비를 들여 나로 하여금 한의원에서 금침을 맞게 했다.

 머리카락보다도 더 가는 금침을 척추 부위에 집어넣었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그 이후 통증 없이 경기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담당 한의사의 말에 따르면 75년이 지나면 침 자체가 없어지고 효과도 사라진다는데 요즘은 이 금침이 온몸을 돌아 당시를 회상하게 만든다.

 금침은 종아리, 허벅지, 무릎, 어깨 등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는데 처음에는 무릎이나 종아리 같은 데서 전기가 오는 것처럼 당기고 아팠다. 그러나 이제는 통증이 있을 때마다 '아! 지금은 이 녀석이 이리로 왔구나!'하고 침이 있는 곳을 알게 된다.

 독일에 온 지 얼마 안돼서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 의사인 룬츠하이머가 하루는 기겁을 하고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달려왔다.

 척추 속에 쇠가 들어 있고 신장도 '쌍둥이 신장'인 때문이었다.

동양 침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척추에 왜 쇠가 들어가 있으며 또 어떻게 집어넣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기네 방식으로는 등을 째고 집어넣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은데 내 등에는 수술한 흔적도 없으니 금침의 효과는 접어두고서라도 침을 어떻게 넣었을까 하는 점부터가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신장이 양쪽에 두 개가 있다. 고무풍선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으면 얇아지듯이 두 개인 경우는 그 벽이 무척 얇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쉬 상하게 된다고 한다. 당시 나의 부상은 상당히 심해서 소변에 피가 계속 섞여 나오고 있었다.

 정상적인 신장을 가진 사람도 그 위험도가 상당히 높은데 나처럼 유난히 얇고 큰 신장을 가진 경우는 한층 더 위험하다는 의사들의 충고가 있었다.

 

p119. 배고픔.

 1985년 독일에 들른 고등학교 코치 두 분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모처럼 뵙는 한국 분들이라 반갑기도 했고 청소년 축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시골 아저씨 이름이 생각나는 것처럼 나를 깨우는 얘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축구 선수들에게 일기를 쓰게 해서 거두어 읽어봤더니 실컷 한 번 먹어봤으면 하는 얘기가 가장 많더라는 것이다.

 '배고픔'

 지금은 나 역시도 잊고 산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있어서도 가장 절실한 문제는 먹는 것이었다.

 언젠가 라도 한번 실컷 먹고 싶었던 라면. 운동을 마친 뒤 혜화동(참고 : 차범근이 나온 경신고등학교가 혜화동에 있음)에서 목욕하고 학교까지 올라가려면 골목골목에서 나는 찐빵, 만두 찌는 냄새, 단순한 군것질의 욕구가 아니라 성장기 청소년의 육체 바닥에서부터 나는 허기가 그것을 찾는 것이었다.

 기름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반찬에 밥. 그것도 상급생이 아닌 다음에는 먹고 싶어도 숟가락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으니 나에게도 그 당시 머리에 꽉 차 있는 욕구는 "먹고싶다. 실컷 한번 먹어봤으면"하는 것이었다.

 남자의 신체는 고등학교 과정을 지나는 동안 완성된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성장기의 자녀들에게 옷 사대기 신발 사대기가 힘들다고 투정하시겠지만 우리의 신체가 그만한 발달을 하려면 물만 먹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특별히 단백질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시기가 나는 이때라고 생각하다. 하루가 다르게 만들어지고 성장해 가는 신체의 세포들, 이 세포들의 양적 팽창과 지적(질적의 오타인듯) 향상을 도우려면 단백질, 쉽게 말해서 고기가 꼭 필요하다.

 작은 동양 사람과 큰 서양 사람, 작은 옛날 사람들과 큰 요즘 아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나처럼 영양실조다 뭐다 하면서도 179cm까지 자란 사람도 있지만 어쩌면 나도 그 당시 잘만 먹었으면 김재한 형만큼이나 컸을지도 모른다.(참고: 김재한은 1947년생으로 72년부터 79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키는 190cm이다)

 거짓말 같은 얘기지만 내가 26세에 독일에 왔는데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거의 2cm가 자랐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정말이다. 나는 180cm에 가깝다. 독일에 와서 처음에는 하루 저녁에 1kg의 쇠고기도 먹어치울 수 있었다. 남들은 놀랐지만 나는 먹을 수가 있어다.

 내 몸의 세포들은 피고 싶은 의지가 더 강했던지 청소년기에 다 피지 못한 것들이 늦게라도 화분에 물준 것마냥 핀 모양이다. 

 2cm. 키의 2cm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후배들 고등학교 선수들은 잘 먹고 잘 크고 그리고 축구에 기술 향상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두뇌 발달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숲의 나무를 잘 기르는 것과 같은 식이다. 낙엽을 긁지 않고 놔둬서 거름이 되게 하고 적당한 비가 수분이 되었으면 한다

 대전상고 선수들은 그 학교 출신 선배들이 한 명씩 선수를 맡아서 먹이고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배불리 먹게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축구인의 한사람으로서 참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이지면을 통해서도 그 도와주는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른 ㅎㄱ교에서도 더 많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도시락을 두 개씩 사와서 맛있는 반찬을 먹게 해줬던 고등학교 때의 내 짝 경일이한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p131. 훈련량과 위장병

 한국의 9월은 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하는 때다.

 7,8월 뒤통수가 띵할 정도로 더운 날 하루 세 번 훈련을 하고 나면 밥 먹기가 귀찮아 물에 말아 훌훌 마시는 것으로 한끼를 때우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우리 나라 축구 선수 중에는 위장병 환자가 유난히 많다.

 한때 독일에서 배구 선수로 활약했던 이희완 씨는 독일로 건너온 뒤 위장병이 없어지고 밥맛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나는 그 원인이 독일에서 훈련을 무리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믿는다.

 사실 나는 한국의 선배들을 뵐 때마다 우리나라 축구는 훈련량이 너무 많다고 말하지만 그럴 때마다 도리어 "한국의 사정을 너무 모르는 이상론"이라는 면박과 함께 다른 데 가서는 그런 소리 하지도 말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자동차의 경우 적재적량이 있어 너무 많이 실으면 고장이 나고 수명도 단축된다.

 나는 인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단순노동도 적정 노동시간을 초과하면 능률이 줄고 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데 하물며 고도의 기술과 정신집중을 요하는 운동에서 이미 지쳐 있는 몸과 마음으로 훈련을 계속할 때 부상이 속출하리라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웬만한 운동 선수치고 해마다 몇백만원씩 들여 보약을 복용하지 않는 선수가 거의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보약 값을 들이고 또 많은 양의 훈련을 하면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이 국제 대회만 나가면 왜 뒤떨어지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곧잘 "선천적으로 타고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체력이야 말로 적당한 운동과 휴식, 그리고 좋은 식사로 얼마든지 향상시킬 수 있다. 이제는 옛날같지 않아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연구 결과들이 우리로 하여금 효과적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 선수들에게 도움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해야 할 지금 적당한 훈련량, 효과적인 훈련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병난 위장에 몇백만원어치 보약을 쏟아넣는 것보다 건강한 위장에 사과 한 알이 우리 몸에는 더 유익하지 않겠는가.

 

 p153.

 내가 잘 아는 이탈리아의 한 친구는 "정신나간 듯해 보이는 포르노 배우를 국회의원으로 뽑는 너희도 참 한심한 나라다"라는 나의 공박에 천만의 말씀이라며 펄쩍 뛴다.

 이유는 '마피아가 판을 치는' 이탈리아에서 그것은 전체 정치인에 대한 일종의 침묵 시위라는 것이다. 마피아와 손잡는 정치인, 부정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우리는 도둑이나 강도보다는 차라리 미친 사람을 선택하겠다"는 뜻을 전하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p155. 독일에서 지켜본 대통령 선거.

 

 1987년 독일에서 고국의 대통령 선거를 TV로 지켜보았다.

 과정이나 결과에 무심할 수 없는 나로서는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최루탄이 터지는 등의 광경을 TV로 보고 더욱 착잡해지는 심정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정치에 무식하고 무관한 나 같은 사람도, 아니 어쩌면 초등학생 정도의 사고력만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두 사람에 한 사람 꼴로만 나가 싸웠으면 멋진 승부가 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대세가 나에게로 기울어졌다"며 저마다 자기 도취에 빠진 얘기를 들은 뒤 이들이 한결같이 참패를 당하고 난 후 생각해보면 한심한 생각이 들 뿐이다. 선거를 한다는 그 자체가 자못 신기하면서도 기특하고 또 한편으로는 선거가 있기까지 최루탄 속에서 잘 참아준 시민들이나 일부 열성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멋진 플레이를 발휘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축구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줄 알지만. 그래서 독일에서 1주일에 두 번씩 몰아서 오는 신문을 보기 위해서 1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구독을 했던 것이다.

 이제도 다 지나간 얘기다. '부정선거다' '관권 개입이다'하는 소리도 이제는 듣기 싫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라도 듣고 싶고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두 분이 다 많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잘못되었던 당시의 판단을 시인하는 것이다.

 어떤 친구는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귀신이 씌었나 보다고 한탄을 한다. 누가 돈을 먹었다는 식의 얘기보다는 훨씬 마음이 가는 한마디다. 많은 사람들의 말뜻조차도 애매하게 "그럴 줄 알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두 후보의 득표는 큰 것이었다. 

 '집안싸움'에 진력이 나서 떨어져 나간 숫자까지 합친다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을 외면한 것은 그분들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일단락 된 지금 나는 두 분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순수하고 젊은 우리 학생들이 더 이상 데모로 희생되도록 부추기거나 방치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부정선거를 따지기 전에 자신들의 판단 착오였음을 설명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정치가답게 새로운 정부에 강력히 반영시킬 것을 약속해야 한다. 이제는 하나와 두리도 TV를 볼 때마다 자꾸 묻는다.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이냐"고. 아이들이 커갈수록 대답이 자꾸 궁해지는 아빠들의 체면도 좀 생각해줬으면 한다.

 

p157. 참으성 심어주는 부모의 용기

 

 해발 3천400m에 있는 스키장까지 스위스의 전동식 톱니 기차로 올라가려면 30분은 족히 걸린다.

 그러니 플랫폼에 꽉 찬 스키꾼들 사이에서 애들이 자리라도 잡고 앉아서 가려면 여간 동작이 빨라야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미리부터 "하나야 두리야, 아빠가 너희들 스키 들고 갈테니까 너희들은 먼저 가서 앉아라"하고는 남들이 못 알아듣는 우리나라 말로 무진장 열심히 교육을 시켰다.

 그러고도 모자라 기차가 도착하자 괜히 마음이 조급해서 또 한 번 "하나야 두리번거리지 말고 앞으로 가"하고는 남들이 못알아듣는 소리지만 그래도 느낄까 봐 되도록 부드러운 멜로디로 다그쳤는데 내 뒤에 있던 꼬마 녀석도 마음이 급했던지 나를 헤집고 앞으로 갔다.

 그때 그 애의 아버지가 남부 사투리가 잔뜩 섞인 독일 말로 "천천히 타도되는데 뭘 그래"하면서 애를 끄집어 도로 내 뒤에 세우고는 "미안해요"하면서 자기 아들의 한쪽 팔을 꽉 붙드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세상 살다가 그때만큼 스스로 무안해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더구나 내 나름대로는 애들 교육을 제법 진지하게 시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우리 집에서 지내던 많은 한국분들도 애들 교육이 잘돼 있다고 칭찬을 해왔던 터라 그 충격은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가장 큰 고질병이라고 하는 조그함과 이기심을 나 자신은 얼마만큼 고쳤다고 믿어왔는데 자식에게까지 대물림을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도 했다.

 언젠가 우리 두리가 학교 학예회에서 시 낭송을 하게 돼 있었는데 그만 며칠 전에 감기를 앓는 바람에 선생님이 다른 아이를 대신 시키기로 한 적이 있었다.

 며칠만에 학교에 간 아들 녀석이 너무 실망하는 것 같아서 제 엄마가 선생님께 반반 나눠서 시키자고 부탁을 했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친한 이웃집 아줌마가 하나 엄마의 생각에 자기는 반대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두리가 예기치 않는 사건에 부딪쳐서 참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배우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는 얘기였다.

 "자기애가 그랬다면 가만있겠어?"하고는 꿍얼꿍얼거리던 하나 엄마가 두 손을 들고 만 일이 나중에 또 있었다.

 그 집 애하고 두리가 같이 축구를 하러 다니는데 시합이 있다고 해서 그 집 식구가 온통 몰려갔던 모양이다.

 갔다 와서는 코치가 토마스를 경기장에 내보내지 않아서 줄곧 벤치에서 울고 있었다는 엄마의 얘기를 듣고 왜 애들 축군데 좀 얘기해서 잠깐이라도 뛰도록 해주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물론 뛰는 것도 즐겁겠지만 참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좋은 경험이니까 배우도록 가만 놔뒀다는 것이다.

 정말 부모로서 대단하다고 할 만한 용기다.

 예기치 않은 불이익, 손해를 비켜나가도록 도와주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는 교육이란 게 부모가 돼 보니 참 쉽지가 않았다.

 정작 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 것 같다.

 

p162

 

 "어느 한 나라의 축구가 흥하고 안하고는 골목 축구에 달려있다"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베켄바워가 그랬었고 마라도나, 펠레가 모두 골목 축구로 시작했다. 가난한 집에서 변변한 장난감도 없이, 또 자기가 몸담고 꿈을 키울만한 방 하나도 없이 살다보니 길거리가 곧 자기 방이 되었고 아무 것도 필요없이 맨발로도 할 수 있는 것이 축구다 보니 닥치는 대로 발로 걷어찼을 것이다.

 

p193. 골프 대중화에 입맛 씁쓸

 

 '대중화'라는 말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대중'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았더니 '수가 많은 여러 사람, 민중, 많은 사람들' 그리고는 부연해서 '특히 노동자, 농민들의 일반 근로 계급'이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물론 꼭 사전을 찾지 않더라도 대중이라는 말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별 무리 없이 포함시킬 수 있는 비슷한 삶의 수준을 누리는 평범한 사람들'을 뜻한다는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신문을 통해 '골프의 대중화를 저해하는....' 이라는 기사를 대할 때면 솔직히 말해서 입 맛이 쓰다.

 엄청난게 비싼 장비에 물리는 세금과 골프장 입장료, 회원권, 캐디 팁 같은 것이 대중화를 저해 한다고 목청을 높이니까 대중화와 가장 거리가 먼 이 부분은 얘기하지 않기로 하더라도 한번 필드에 나가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18홀을 도는 데 필요한 네 시간에다 왔다갔다 하면서 소요되는 시간까지 합친다면 일반 대중에게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어느 날을 잡아도 쉽게 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거기다 멀찌감치 떨어져 위치한 골프장까지 한 짐이나 되는 골프채를 챙겨서 가려면 자가용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그들이 얘기하는 대중의 수준에 낄 수가 없게 된다.

 그뿐 아니라 우리 나라처럼 좁은 땅에 시립 공원 하나도 제대로 없는 판에 아무리 작은 골프장이라도 십만 평은 넘어야 하는 그 면적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 넓은 그림 같은 잔디밭에서 몇 사람이나 동시에 즐길 수 있겠는가?

 염치 없는 비교가 되겠지만 가장 작은 십만 평짜리 골프장도 국제 규격의 축구장 33개에 해당되는 면적이다.

 33개의 잔디 축구장에서 700여 명이 동시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뛰는 모습을 생각한다면 땅의 효용성에서도 골프는 대중화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거기다 골프를 치는 나의 입장에서 얘기해 본다면, 들이는 시간과 돈과 그 밖의 것들을 비교해 볼 때 실제적인 운동량에 있어서는 테니스나 탁구 또는 축구 같은 것들에 비해 형편 없이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골프는 분명히 재미있는 운동이다. 넓은 필드를 가로지르는 장타가 제대로 맞았을 때에 '딱'하는 소리는 통쾌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나도 가끔씩 필드에 나가곤 한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이것 자체가 특권이며 고마워해야 할 일인 줄 모르고 더 많은 기득권을 얻기 위해 대중화를 앞세우는 몰염치는 삼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골프장의 사람들을 대중이라고 부르면 오늘도 점심시간에 한강 다리 및 고수 부지에서 하루종일 구부렸던 다리를 모처럼 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즐겁게 볼을 차는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들에게는 붙여 줄 이름이 없지 않겠는가.

 

p198. '아침의 나라'의 인정을 아시나요

 

 1988년 어느 날 독일 여성지에 실린 슈미트 전 서독 수상 부부의 사진은 무척 보기가 좋았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얼굴 색도 좋아진 것 같고 표정도 밝고 아름다웠다.

 슈미트 씨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생전 처음 몇 백만 마르크를 모았노라는 자랑도 서슴지 않았다. 관직에만 있던 그로서는 돈을 벌 기회도 없었는데 이제는 책도 쓰고 강연회도 참석하면서 상당히 많은 인세와 사례비를 받는다고 했다.

 1회 강연 사례비가 2만 마르크. 한국 돈으로 8백만원이라고 하니 월급쟁이 생활에 길들여진 그분으로서는 엄청난 돈임에 틀림없다.

 그분이 수상직을 그만두고 첫 해외 여행할 때의 신문 기사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모처럼 공식 여행이 아닌 해외 나들이를 하면서 이 부부는 비행기의 서로 다른 칸에 떨어져 앉게 되었다.

 전직 수상에 대한 예우로 비행기의 1등석을 탈 수 있는 특전이 부인에게까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등석은 엄청나게 비싸다. 나도 가끔 공짜로 태워 줘서 타 보면 돈 있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존경심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슈미트 씨의 부인도 수상 시절에는 1등석이나 전용기를 탔을 것이다. 또 그 자신이 원하기만 했다면 아무리 월급쟁이 관료 노릇만 했다고 해도 설마 남편과 나란히 1등석에 앉을 만한 방법쯤이야 없어겠는가.

 나는 참 용기 있는 분이라고 느꼈다. 가식이나 허영보다는 정직과 진실을 더욱 자랑스럽게 여길 줄 아는 용감한 여성이었다. 

 싹둑 잘랐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분의 헤어스타일은 용기나 정직과 상당히 어울려 보였다. 결코 아름답게 치장하지도 다듬지도 않은 그분의 모습이 어느 날 유난히 눈 앞에 어른거렸다. 그것은 그 전날 뉴스에서 백담에서 은둔 중인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숨과 함께 눈가에 뜨뜻함을 느낀 것은 나뿐이었을까.

 5공화국이라면 눈을 길게 뜨고 째려보던 나였지만 그날 만큼은 그럴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개털 모자 같은 것을 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산사 같은 데서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많은 역사가들이 우리 민족이 우유부단하기만 한 바보 같은 정 때문에 역사가 걸러지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하더라도 바보 같은 정을 담은 그 우유부단한 피가 바로 내 속에서도 흐르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p217. 나눠진 땅 갈라진 이념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이북 방문을 허용하는 대통령의 발표가 있었을 때, 그 발표를 듣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호기심이 발동했었다. (참고 : 1988년 7월7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7.7선언을 의미한다. 이 선언의 6개항중 해외동포의 방북허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북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막상 법으로 이북 방문을 허용한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은근히 이북 사람들 축구하는 것도 한번 보고 싶고 절경 중에 절경이라는 금강산도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대사관, 한국 관광 공사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기대에 부풀기도 했었는데 불과 몇 달이 지난 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두려울 만큼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 것 같았다.

 동과 서로 갈린 나라의 서쪽 한편에서 한 10년 살아본 나는 "이 사람들은 남의 탓에 갈라져 살뿐이지 자기들끼리는 통일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나름대로 믿어왔었다.

 우선 자유롭게 서로 왕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올림픽이나 유럽의 각종 대회 때면 동독의 메달도 마치 통일된 독일의 것마냥 좋아하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랬다.

 얼음판의 여왕인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가 두 번째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을 제패했을 때 '우리의 카타리나'라는 표현으로 신문 1면 전체를 장식했었다.

 실제로 그녀는 서독 매스컴의 비중으로 친다면 테니스의 보리스 베커나 슈테피그라프에 못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1988년 겨울 뮌헨에서 시상하는 밤비상의 스포츠 부문 수상자로 결정되어 뮌헨에 도착했을 때 어떤 호텔에 묵으며 무엇을 하고 시상식에서는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하는 것까지 온통 사랑 어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TV앞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그녀는 '우리의 카타리나'라는 사랑이 듬뿍 담긴 얘기가 무색하도록 "당신네 나라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었다.

 나는 상당히 놀랐다. 그리고 곧 "내가 이쪽에서만 보았기 때문이었지 동독은 아직도 냉랭한 모양이구나"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나의 질문을 받은 꽤 많은 서독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동독을 이웃나라 중 하나 이상으로 생각지 않는 것 처럼 카타리나도 그렇게 믿기 때문에 '당신네 사람'이라는 말은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한 부분만 보고서는 내가 산 10년이란 숫자로 독일을 다 아는 것처럼 지레 믿은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북에 가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친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한번 가보고 싶은 이웃 나라였을까 아니면 누구처럼 내가 가서 통일의 물꼬를 터야만 한다는 어마어마한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저것도 아닌 나 같은 사람까지 뭐가 문지 모르고 구경하겠다고 날뛰니...

 

p221. 빛바랜 축구 명문 도시

 

 프랑크푸르트와 뒤셀도르프의 전력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약화되면서 관중이 줄어 팀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프로 축구는 단순한 관람객이 아닌 고정 팬을 많이 확보해야 원만한 팀 운영을 기대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두 도시는 수년 전부터 국제 도시로 탈바꿈, 깔끔하고 단정한 국제기업인들이 자리를 차지해 버리면서 축구팬을 잃게 됐다. 외국인들이 자꾸 늘어나는 현상 때문에 특유의 옷 색깔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향토팬은 줄어들고 대신 뜨내기 구경꾼들이 운동장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두 도시는 돈이 많아서인지 엄청난 돈을 들여 유치하는 이반 렌들이나 보리스 베커의 프로 테니스 시범 경기가 벌어질 때면 그 비싼 입장권이 몇달 전부터 매진되곤 한다.

 축구는 서민운동이다. 테니스와 달리 단순히 보는 것으로 즐기기보다는 '네편 내편'이 훨씬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어쩌면 이 편가름이 프로축구의 바탕인지도 모른다. 

 향토색이 짙은 지역일수록 좋은 팬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데 바이에른 뮌헨 같은 경우가 좋은 예다. 독일의 가장 남부에 있는 이 바이에른은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알프스 지역이다.

 날씨가 좋고 지역이 방대한 데 비해 뮌헨 팀만이 이 지역을 독점하고 있어 늘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특유의 사투리를 쓰는 그들의 커다란 생맥주 조끼가 말해 주듯 그곳 사람들의 낙천적인 농심이 많이 작용하고 있따.

 이와 달리 중부의 루르 지방에는 반경 150km가 채 안되는 좁은 지역 안에 분데스리가 팀(18개)이 반 수 이상 속해 있다.

 물론 뮌헨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규모가 작지만 이런 지역은 또 나름대로 팬을 모을 수 있는 요인을 갖고 있다.

 광산, 철광산업 등 늘 어두운 데서 노동하는 이 곳 주민들에게 토요일 늦게 벌어지는 축구 경기는 모처럼 소리도 지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노무자들이 대부분인 이 지역 특성대로 옆동네를, 혹은 이웃 광산을 이기고 싶은 심리가 발동, 거의 군 단위마다 팀을 만들어 놓고 있다는 것으로도 증명이 된다.

 도르트문트, 살케, 보쿰... 이런 팀들이 바로 이곳에 속해 있다. 아무튼 스포츠, 특히 축구는 양쪽 골대 뒤에서 편 갈라 싸우는 팬들이 있어야 신이 나고 구단으로서도 존재 가치가 있다.

동독에 갇혀 있는 서베를린이 수많은 세제 혜택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인들이 그 곳에서 살기를 피하자 이제는 외국인들의 도시처럼 되어 버렸다.

 그리고 뒤따라 나타난 자연적 현상은 그 막강하던 베를린의 팀들이 모두 2부 리그, 혹은 아마추어로의 전락이었다.

 이런 것과 비교하여 우리 나라를 보면 서울은 프로 축구가 뿌리를 내리기에 가장 부적합한 곳이며 영호남 지역이야말로 팬들과 호흡하는 축구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호남을 연고지로 하는 팀이 없어 다른 지역의 다섯 개 팀만으로 올 시즌 프로 축구 대회를 치르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보다 근본적인 지역 연고제의 정착, 나아가 진정한 팬 확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호남지역의 프로 팀 창잔이 선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p236. 한국 축구 활로 새 모델 창안뿐

 

 1990년 로마 월드컵이 끝난 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거기에 참가했던 상당히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카메룬'이라는 검은 대륙의 가난한 나라를 상당히 부러워하고 있다. 나 역시도 카메론의 검은 돌풍이 지나간 후 나름대로 호기심을 가지고 이책 저책 혹은 보도 자료를 뒤적이면서 그 이유나 비결(?)이 어디에 있는 관심을 가졌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카메룬을 흉내낸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의 오늘이 엄청난 투자, 과학적인 훈련, 정부 지원, 해외 연수 같은 데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흉내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파악한 카메룬 혹은 아프리카 축구의 비결은 그들이 못살고 덜 깬 덕분에 그 곳 아이들이 널려 있는 빈터에서 짚이나 잔디를 묶어서 맨발로 공을 찰 수 있는 여유(?)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로마 월드컵의 스타 한지 뮐러는 "우리는 브라질보다 훨씬 더 많은 인재들을 갖고 있다. 그 아이들은 공도 유니폼도 운동화도 없이 맨발로 공터에서 짚더미를 차고 있지만 고금만 도와준다면 우리는 세계적인 축구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했다. 이렇게 해서 키워진 선수들이 해외로 나가 더욱 다듬어지는 것은 그 다음 과정이다.

 나 역시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니가 굉장히 늦게서야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아 본 셈이다. 그러나 어렸을 적에 동네 앞마당에서 애들과 어울려 고무신 신고 짚이나 돼지오줌통으로 만든 공을 공부 걱정 안하고 맘껏 차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때의 경험이 같은 시기에 엄격한 훈련을 받은 다름 동료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아이들은 축구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하더라도 뛰어 놀 만한 '시간'과 '공간'이 없으니 그 시절에 키울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응용력을 키워 낼 수가 없고 그저 정해 주는 생각과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팬들은 우리 축구가 답답하다고 한다. 또 지도자들은 "독일 선수들은 위치 선정이 뛰어나다"면서 훈련 방법이나 지도비결이 있는가를 묻기도 한다.

 'ㅋ'으로 시작하는 카메룬과 콜롬비아가 1990년 월드컵 대회 첫 경기에 성공했다고 '코리아'도 벨기에를 이길 것이라는 엉뚱한 발상이 여지없이 웃음거리가 되어 버린 것처럼 세상의 모든 일을 천편일률적인 '감'이나 '방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맞는 이상적인 제도와 훈련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카메론의 방법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

 

p298. 비오는 날의 축구화

 

 비가 내리는 저녁 경기였다.

 레버쿠젠 팀에서 축구화 손질이며 유니폼 정리 같은 잡일을 하는 하랄드가 축구화의 양 사이드에 붙은 아디다스 3선에 열심히 흰색을 칠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같아 보여서 내 신발은 그냥 달라고 했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이었다. 흰줄이 잘 안보이면 아디다스에서 자기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들의 지독스러운 상혼에 고개가 숙여지는 면도 없잖았다.

 진땅에서 45분을 뛰고나면 흰 선은 커녕 축구화인지 발목인지조차 구분이 안되는데 TV앞에 앉아 자기네 상표가 화면에 몇 분이나 나오는지 스톱워치로 재고 있는 그들이고 보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닌게 분명하다.

 아디다스에서는 스타들에게 입힐 옷을 '프로모션'이라고 해서 따로 만드는데 공짜로 얻어 입는 그 옷에는 정말 염치 없으리만큼 그들의 상표를 붙일 만한 데는 다 붙인다. 심지어는 어깨 위에까지 붙어 있는데 TV카메라가 얼굴을 클로즈업 하더라도 가슴에 있는 것처럼 잘리지 않고 나올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다.

 그러나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TV쇼나 가족사진을 찍을 때는 공짜로 얻은 그 옷을 잘 입지 않는다.  그래서 아디다스는 선수 개인과 계약을 해서 TV나 신문에 꼭 아디다스를 입고 출연하는 조건으로 상당한 대가를 지불한다.

 내가 독일에 처음 왔을때에도 아디다스는 이같은 계약을 제시했다.

 광고를 위한 사진 테스트도 한 적이 있는, 당시 한국에서 아디다스의 판매가 저조했기 때문에 광고가 아닌 평상시 옷을 입고 다닌다는 계약만 하자고 해서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 후 테스트용으로 찍은 사진이 내 허락 없이 한국에서 광고,판촉용 포스터로 사용되었다. 물론 아디다스 같은 대기업이 장난을 치진 않았을 것이다. 중간에 누군가의 농간이라 생각하지만 불쾌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여지껏 아디다스에서 보내주는 애들 옷이랑 신발 등을 입히지만 탐탁치는 않다.

 얼마전 나는 눈이와서 길이 안좋은 때 400km 떨어진 뉘른베르크의 아디다스 공장을 다녀왔다. 그 동안은 클럽으로 공급되는 표준형 축구화를 문제없이 신었다. 그런데 신형 축구화가 나오고서는 내 발에 맞지 않아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구형을 요구하자, 어렵게 두 켤레를 갖다주었다. 하지만 구형 재고도 떨어졌는지 공장으로 와서 발 본을 떠서 전용 축구화를 공급해주겠다는 오퍼가 왔다. 내 발에 맞는 축구화를 신고 싶은 욕심에 못 이기는 체하고 멀리 떨어진 공장까지 가서 발모양을 떴다. 그런 다음 신발 속에 붙이는 보조 스펀지를 내가 원하는 대로 설명하고 요청했다. 신발 전문장인인 슈버거 씨가 "볼 잘 차는 선수들은 다 까다롭더라"면서 웃었다.

 축구화를 전용으로 만들게 되면 한 켤레에 340마르크, 한화 14만원 정도가 든다. 그러니 앞으로는 시합 전에 하랄드가 3선에 흰칠을 하고 있어도 아무말도 안해야겠다.

 아베의 경제보복 조치로 촉발된 반일의 분위기에 어느 정도 편승한 책이라는 감이 있다.

저자의 일본 생활(어느 정도 살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책에서 찾을 수는 없다.)에서 경험한 일본의 표리부동한 면과 아베 정권 이후 극우로 흐르는 일본의 분위기를 전하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듯 싶다.

뒤로 갈수록 계속 하던 말을 반복적으로 하며 내용은 빈약해지는 감이 있다. 아마도 물들어 올 때 노젓는다는 심정으로 쓴게 아닐까 싶게 뒤로 갈수록 마무리가 아쉽다.

요즘 한일 갈등 국면에서는 그래도 일독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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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 일본에게 대한민국은 철저한 을이다.

 일본이 다른 나라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 이른바 '갑을 문화' 때문이다. 일본은 갑과 을로 관계를 명확히 가르는 성향이 있다. 말 그대로 갑은 을에게 어떤 행위를 해도 용납이 되는 이른바 '갑질'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을은 갑의 의사에 반하는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 설사 갑의 의견 혹은 요구가 틀린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처럼 일본에는 을에게 불합리한 선택과 행동을 강요하는 특유의 갑을 문화가 존재한다. 이는 세계에서 오직 일본인만이 갖고 있는 '종특', 다시 말해 종족 특성이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보자. 일본인은 식당에서 나이에 상관없이 종업원에게 무조건 반말을 한다. 아주 어린 청년이 흰머리가 성성한 어르신에게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키며 거만한 태도로 "고레초다이(이거 저)"라고 외친다.

 우리로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지만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종업원도 그것에 대해서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손님과 식당 종업원이라는 '갑을 관계'가 확실히 성립이 됐기 때문이다.

 손님, 즉 '갑'으로서 식당을 방문한 이들도 자신들의 일터에서는 '을'로 취급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식당에서 어르신에게 "초다이"를 외치던 청년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식당에서 똑같이 대우를 받는 걸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손님의 언사를 아니꼬워하거나 자신보다 어린 학생에게 '왜 반말을 하느냐'고 따져 묻지 않는다. 한국, 아니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일본만의 문화다.

 한 가지 더, 일본 남성은 부인 혹은 여자친구를 '오마에お前‘라고 부른다. '오마에'는 '너'라는 뜻으로 상대방을 하대할때 사용하는 단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앞 전 前'자를 써서 한국말로 하면 "어이, 거기 앞에 있는 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일본 남성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오마에'를 부인이나 여자친구를 부를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남자가 갑이고, 여자를 을로 취급한 일본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일본 남성과 여성은 오래 전부터 갑을 관계가 확실히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을 하대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버블시대' 당시 잠시 페미니즘이 득세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깐일 뿐이었다. 여자들 역시 자신이 '오마에'라고 불린다고 해서 그것을 전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들도 자신이 을의 입장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일본은 사장이 직원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직원들은 별다른 불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시행하는 정책에 대해서 크게 반대하지 않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장이든 정치인과 같은 '높으신 분'이든 그들 문화에서는 철저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했을 때 한 미군 병사가 쓴 편지를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가미가제 특공대를 필두로 끝까지 저항했기 때문에 미군 병사는 점령군으로서 일본에 상륙하면서도 굉장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혹시 누군가 폭탄을 품에 안고 미군 주둔지에 오지는 않을까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너무나 예의 바르고 깍듯했다. 품 속 폭탄은커녕 자신들이 숨겨두 꿀단지까지 내놓을 만큼 납작 엎드린 태도를 보인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군과 패망한 일본 사이에 '갑을 관계'가 형성된 까닭이다.

 만약 같은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패했다면 미국은 우리의 철천지원수가 됐을 것이다. 우리나라 도시에 핵폭탄 두 방을 쏘는 바람에 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죽었다고 가정한다면 미국과는 평생 한 하늘을 이고 살지 못할 터다. 하지만 일본은 '찍소리'조차 하지 않는다. 전쟁에 이긴 미국은 갑이고 패배한 일본은 을이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매우 친절하게 미군을 '받들어 모신 것'이다.

 이렇게 갑을 관계를 확실히 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봤을 때, 일본이 우리에게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는 서글픈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제국주의를 표방한 일본은 강력한 나라, 즉 갑이었다. 일본이 식민지로 삼았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약한 나라, 즉 을이었다. 일본인이 생각하는 갑을 관계에서 한국은 철저한 을이기 때문에 강력한 갑이었던 일본에게 불만을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인이 다른 나라에 사죄를 하지 않는 것은 '섬'과 '갑을 문화'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두 가지야말로 근본적인 이유라고 확신한다. 일본인 기저에 깔린 가장 강한 본성이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31. 반려동물 살처분 세계 1위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모 동물권 단체 대표가 유기견을 무분별하게 안락사한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안긴 사건이 발생했다. 반려동물 1000만, 관련 시장 5조 원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물론 반려문화가 완벽하게 정착된 미국과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한 생명의 삶을 인위적으로 끝내는 안락사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그런데 일본은 안락사도 아닌 '살처분'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일본에서는 한 해에 개 10만 마리, 고양이 20만 마리가 살처분된다. 매년 30만에 이르는 무고한 생명이 강제로 자신의 삶을 강탈당하는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수치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모든 동물을 합쳐 약 2만 마리, 영국은 7000여 마리, 독일은 놀랍게도 0마리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독일에 비교하면 아직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문화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p36. 농약사용량 세계 1위

 전 세계에서 농약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언뜻 중국이나 미국을 떠올리기 쉽지만 일본이 농약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미국의 20배에 달하는 농약을 살포한다. '농약범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아이러니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듯 농약으로 키워 가공한 일본 식품의 안전성을 강하게 신뢰하려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해 '일본산 제품은 품질이 좋은 것'이란 막무가내식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물론 농약을 사용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잠재적 위험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본의 또다른 이중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p61.

 일본에서는 '탕 목욕 문화'가 일반적이다. 매일 탕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워 목욕을 하는 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과정이 복잡한 일본 탕 목욕 문화의 배경이 '청결함'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인은 생각보다 청결하지 않다. 지금까지 점심시간에 양치를 하는 일본인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인은 점심식사 후 너도나도 양치를 하는 데 반해 일본인은 곧바로 업무에 들어간다. 여름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땀으로 범벅이 돼 매캐한 체취를 풍기는 사람들 때문에 눈물이 날 정도다.

 일본에서 탕 목욕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바로 비효율적인 난방 시스템 때문이다. 전기세가 높고 난방 시설이 미흡해서 따뜻한 물은 채운 욕조에 몸을 담그는 문화가 일반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비싼 난방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선택한 궁여지책이다. 누군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이제 몸이 따뜻해졌어?"라고 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고물가 나라 중 하나다. 물론 아주 저렴한 프랜차이즈 덮밥집 같은 곳도 있지만 괜찮은 일본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를 하는 비용을 원화로 계산해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싼 경우가 많다. 2019년 현재는 한국의 일본 불매운동으로 인해 순위가 '떡락'했지만 지난해까지 '한국인이 선호하는 연휴 광광지 1위'에 선정된 오사카에서는 150그램도 안 되는 스테이크 한 덩이를 무려 4천 엔(약 4만 원)에 팔고 있을 정도다. "시간만 있으면 유럽을 가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경제주의를 체택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은 특히 돈이 없으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기 힘든 곳이다. 돈으로 생활의 질이 결정되는 일본인들이 새삼 안타까워지는 순간이다.

 p69.

 나는 일본 도박의 현재가 '제2차 세계대전'과 맞닿아있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미국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 상륙하는 동시에 GHQ(General Headquarter)라는 이름의 연합군 최고 사령부가 설치되었다. 이후 GHQ에서는 일본의 우민화 정책으로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는데 그 중 '3S 정책'이 일본에 도박이 만연해진 역사와 관련이 있다.

 3S는 'Sex, Sports, Screen'을 의미하는데, 스크린에는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그 외 모든 오락도 포함된다. 즉, 도박 역시 3S 정책의 핵심 중 하나였던  것이다.

 미국의 3S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자 일본인은 한층 더 국가에 순응하게 됐다. 도박을 유연하게 받아들인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패전 후 어떤 방식으로든 경제를 살려야 했기에 국가 차원에서도 도박을 장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도박 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200조 원에 이르는 일본 파친코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게 바로 재일교포들이라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로부터 역사가 시작된 재일교포는 직업을 선택할 때 제한을 받았다. 공무원은 물론이고 대기업은커녕 작은 기업에 취직하는 것도 낙타에게 바늘구멍처럼 극도로 힘들었다. 생존을 고심하던 재일교포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파친코 업계에 뛰어들었다. 소프트뱅ㅋ크 창업자인 손정의 집안도 파친코를 경영했다. 당시 대다수 재일교포들은 주로 직업 선택의 제한 때문에 파친코를 비롯해 대부업, 연예계, 스포츠 등 일반적이지 않은 직업을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시 재일교포들의 불가항력적인 파친코 업종 선택은 현재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파친코 사업으로 막강한 재력을 거머쥔 일본 재일교포들은 새로운 종교단체인 창가학회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이후 공명당 창당에까지 이른 것이다. 현재 공명당은 일본 보수정당인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세워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 우익이 한국과 재일교포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군의 우민화 정책과 재일교포의 불가피한 파친고 산업 투신이 비정상적인 현재로 이어진 모양이다.

 일본에서 도박 산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독과 같은 위험성 여부를 떠나 일본 경제 자체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인 까닭이다. 분명한 것은 일본의 도박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배울 점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p94.  여성이라는 이유로 야유받은 정치인의 눈물

 일본 도쿄도 의원인 시오무라 아야카는 위원회에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도중 남성 의원들에게 집중적인 야유 세례를 받았다. 다른 남성 도의원들이 "그렇게 남자가 좋으면 너나 결혼해라", "그 나이에 임신은 가능하냐?"와 같이 선을 넘은 야유를 퍼부은 것이다. 결국 시오무라 아야카는 자신이 준비한 것을 모두 풀어내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단상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보충)2014년 6월14일 일본 지방의회에서 야당 소속의 시오무라 아야카 의원의 발언 도중 자민당 측에서 나온 야유성 발언으로 이슈가 됨(하기 해당 동영상), 이후 자민당에서 공식 사과를 했음. 

시오무라 아야카(塩村 文夏), 1978년 7월6일생, 그라비아 아이돌 출신으로 탤런트, 방송작가를 거쳐 정치에 입문. 이 사건으로 아이러니하게 지명도를 얻었으며 올해(2019년) 참의원선거에서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됨.

  이후 시오무라 아야카는 자신의 트위터에 "여성으로서 안타까운 야유를 들었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 게시물에도 남성들의 무차별적인 비아냥이 이어졌다. 국민이 뽑은 도의원이지만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차이가 사회적 위치의 상하 가름으로 이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일본인의 이런 인권유린 사태는 비단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에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처우는 '인권 최빈국'이라는 평가조차 아깝게 느껴진다. 일본에는 구 우생보호법旧 優生保護法(1948년 제정, 1996년 모체보호법이라는 명칭으로 바뀜.) 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법률이 20여 년 전까지 존재했다. 구 우생보호법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베이비 붐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며 식량 및 각종 물자가 부족해짐에 따라 유전병과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강제로 불임이나 낙태를 시킬 수 있는 근거로 사용했다. 쉽게 말해 '장애인 출산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해 강제적으로 불임 및 낙태 수술을 시행할 수 있다'는 국가의 인식이 반영된 최악의 인권유린 법안인 셈이다.

 이로 인해 1945년부터 1996년까지 약 2만 5000명이 불임수술이나 중절수술, 정관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이 중 1만 6500명 이상은 본인 동의 없이 국가가 강제적으로 각종 수술을 시행했으며 여기에는 9살 어린이도 포함되었다.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법률이 시행됐다면 진즉 폭동 수준의 강렬한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하다못해 소송을 통한 거액의 피해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지난해 여성 피해자 2명의 소송으로 불거진 구 우생보호법 관련 재판의 판결이 엉뚱하게 나왔다. 한 사람당 7천만 엔(약 7억 원)을 배상해달라는 소송에 대해 일본 법정은 "구 우생보호헙은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 등을 정해놓은 헌법 13조를 위반한 위헌이지만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의 사법체계를 그대로 따라온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개판인 이유)

P100

 현재 일본 취업시장이 호황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결코 아베노믹스 효과 때문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단카이 세대'라고 부르는 1945년 전후 출생자의 은퇴가 수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에 해당하며 매년 200만 명가량 은퇴를 하고 있다. 일할 사람이 물리적으로 부족해진 것이다.

 반면 매년 취업시장에 유입되는 젊은 층의 수는 10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은퇴하는 단카이 세대의 절반 수준이다. 기업에서는 당장 2명의 직원이 필요한데 뽑을 수 있는 후보자가 1명뿐이니 능력이나 인성과는 상관없이 일단 채용하고 보는 것이다. '구직 희망자'가 품귀현상을 보이는 현재 일본에서는 누구나 쉽게 취업할 수 있다. 통계의 허점을 아베 정부가 교묘하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일본의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월등히 많을 정도다. 인구 감소는 곧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는 일본의 경제력 또한 점차 악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수년 사이에 일본으로 입국하는 해외 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별다른 스펙이 필요하지도, 뛰어난 능력을 요구하지도 않는 현재 일본은 취업에 힘겨워하는 해외 젊은층이 훌륭한 차선책으로 여기고 있다. 내가 교수로 재직했던 사이타마현의 모 대학교에는 수년째 취업률 99%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중국, 베트남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내가 직접 가르친 유학생들 모두 예외 없이 취업에 성공했다. 성적표를 C로 도배해도 취직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정신적으로 문제만 없으면 무조건 취직이 된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한국에서는 목숨처럼 여기는 스펙도 필요치 않다. 내가 담당한 학생들은 토익시험을 본 적도 없다. 유학생은 JPT, JLPT 2급만 따도 취업이 되고, 1급을 따면 좋은 조건으로 회사가 '모셔가는' 수준으로 채용이 된다.

 일본의 취업 기준은 한국에 비해 굉장히 낮다. 일본 대학 중 수준이 낮은 곳의 토익 평균은 겨우 400점대다. 600점만 되면 대기업 취직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800점은 넘어야 겨우 명함을 내민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800점을 넘으면 거의 미국인과 동급으로 대우받을 수 있다.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집에 컴퓨터가 없는 대학생도 흔할 정도다. 스마트폰으로 타이핑한 후 학교 컴퓨터로 프린트를 해서 과제를 제출하는 학생들도 많이 봤다.

 한국에서는 평균 스펙을 가진 대학생도 일본에 오면 엘리트로 인정받는다. 그만큼 대부분의 분야에서 수준이 매우 낮다.

 게다가 일본 청년들은 성공에 대한 의욕도 없고,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없다. 설사 대기업에 취직을 해도 해외 주재원이 되는걸 꺼린다. 적은 급여로 힘겨워도 자신만의 루틴으로 이뤄진 일상을 유지하면 된다는 '적당주의'가 팽배해 있는 까닭이다.

 물론 모든 직장이 대기업처럼 복지나 급여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일부 열악한 조건의 직장에 취업하는 경우도 꽤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취업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니다.

 문제는 취업 후에 직면한다. 일본 평균 초봉은 약 20만 엔 선, 우리나라 돈으로 200만 원 정도다. 세금을 제외하면 17만 엔 정도가 신입사원 손에 쥐어진다.

 만약 부자 부모 덕분에 자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경우가 아니라면, 매달 일정 금액의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팍팍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도쿄 시내에서는 정말 코딱지만 한 원룸도 월세가 최소 5~6만 엔이다. 세금과 월세를 빼면 12만 엔(약 120만 원) 정도가 통장에 남는 셈이다.

p152.

 그런데 왜 일본은 우리나라 영토를 대상으로 자꾸 분쟁을 일으키는 것일까? 꽤나 많은 부분을 정치적 이유가 차지하겠지만, 일본인 중에는 독도가 실제로 자기네 영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가 완벽하게 실효지배하고 있는 독도가 국내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왜 일본은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애써 만들어내는 것일까?

 숨겨진 속내는 국내 법적으로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독도를 분쟁지역화해서 국제적 문제로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국제적 분쟁을 담당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 소속된 전/현직 일본인 재판관은 이와사다 유지, 오다 시게루, 다나카 코타로, 오와다 히사시 등 무려 4명이다. 특히 마지막으로 언급한 오와다 히사시란 사람은 현재 일본 왕비인 마사코의 친아버지로, 2012년까지 국제사법재판소 소장을 역임했고 이후 2018년까지 재판관으로 재임했다. 이처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굉장히 크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많은 자금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까지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관을 배출하지 못했다.

 바로 이것이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로 독도영유권 문제를 끌고 가려는 의도다. 일본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독도를 분쟁지역화라혀는 다향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국내 법적으로 실효지배를 하고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영토분쟁의 상대 국가가 계속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지역이 '점유지'가 된다는 사실을 파고든 것이다. 일본이 지금처럼 끊임없이 독도에 관한 논란을 일으키면 '실효지배'가 아니라 '점유지'로 인식되기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속의 판단을 받아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본이 독도를 자꾸 국제적 문제로 키우려고 하는 수작인데, 우리가 이에 반응하면 일본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본의 독도 분쟁지역화 시도에 대해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p175.

 경제보족 조치는 종교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쳤다. 앞서 '도박 천국 일본'에서 다룬, 아베 총리와 자민당과 함께 연립여당을 구성한 '공명당'의 모체는 창가학회(Soka Gakkai International)라는 종교단체다. 창가학회는 세계 평화를 기본 철학으로 삼는다. 특히 한일관계와 평화를 중시하는 창가학회는 '일한관계', '일한평화'와 같이 일본을 단어 앞에 놓는 다른 일본인들과 달리 '한일관계', '한일평화'처럼 한국을 우선한다. 한국을 존경해야 하는 형님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 우호적인 이유는 창가학회의 기둥이 재일교포에 있기 때문이다. 창가학회는 재일교포의 재력과 노력으로 유지되고 있는 종교단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불매운동의 시작점인 '유니클로'의 야나이 회장은 대표적인 창가학회 신자다. 야나이 회장은 한국에 굉장한 호감을 가진 인물로 유명하다. 실제로 일본 본사에서 한국인 직원을 많이 뽑고 있으며 야나이 회장은 아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고 있는 사람이다. 다이소 역시 창가학회 계열의 기업이다.

 물론 "유니클로나 다이소의 회장은 한국을 사랑하는 창가협회와 공명당의 회원이니까 불매운동을 하지 마라"라는 말을 하겠다는 게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한국이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밝힌다.

 다만 이들 기업이 한국에서 입는 경제적인 피해를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대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공명당은 원래부터 자민당이 헌법을 개헌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를 만드려는 시도를 극렬하게 반대한 정당이다. 공명당과의 연정 덕북에 자민당이 현재의 힘을 가졌지만, 반대로 공명당이란 존재 덕분에 자민당의 폭거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한국의 불매운동이 이들 기업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다면, 공명당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민당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부가적으로 창가학회 회원들의 지지도 떨어져 나갈 게 뻔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불매운동은 계속돼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에서는 재일교포의 힘이 매우 강하다. ABC 마트의 창업자 미키 마사히로도 재일교포로 본명이 강정호로 밝혀졌다. 이외에도 재일교포 자본의 일본계 회사는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소비자 금융(대부업), 도박산업, 서비스산업 등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의 경제력은 엄청나다. 일본의 돈줄을 쥐고 있다는 표현이 그리 틀리지 않다.

 이번 경제보복 조치로 인해 발동한 불매운동 탓에 재일교포들이 피해를 입게 됐고, 이들이 한목소리로 아베 정권에 불만을 내뱉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베의 현재 상황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현재 대한민국 축구 최고의 스타.

손흥민의 첫 에세이집. 유럽리그 진출의 10년간에 대한 그의 주요 기억들을 다루고 있다.

에피소드 자체가 잘 알려져 있어서 친숙하고 술술 읽힌다. (아마도 편집자가 잘 다듬어 준 것일 듯 하다)

축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면 상당히 재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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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4.

 몸은 무겁고 경기도 풀리지 않는 상태로 2010-11 시즌이 막을 내렸다. 개인 기록은 시즌 15경기(선발 8회) 3골이었다. 만족할 만한 기록은 아니어도, 프로 데뷔전에서 골을 넣었고 국가대표팀에 뽑혀 아시안컵에도 다녀왔다. 타지에서 2년 넘게 버틴 고생을 생각하면 나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족도 그리웠고 집밥도 실컷 먹고 싶었다. 아시안컵에서 친해진 형들과 만나서 놀고도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아버지를 설득해야 했다. 시즌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아버지가 "나는 자존심 상해서 못 돌아간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아시안컵 직후 무너진 밸런스와 (SNS의 재미를 알아버린?) 나의 태도가 아버지의 분노를 샀다. 아버지가 무서워서 나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았다.

 

 고민 끝에 아버지를 붙잡고 사정사정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테니 제발 돌아가자고, 무슨 훈련을 하라고 하든, 힘들어서 죽든 말든, 무슨 말이든 다 들을 테니까 제발 아버지... 나는 한국에 너무 돌아가고 싶었고, 무너진  내 밸런스도 되찾고 싶었다. 아버지는 기나긴 충고와 훈계를 주시면서 겨우 귀국에 동의했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만 가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귀국하자마자 춘천으로 갔다. 대표팀에서 알게 된 선후배, 친구들에게 일단 나중에 보자고 메시지를 남겼다. 아버지의 훈련이 영원히 이어지진 않을 테니까.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휴가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죽었다. 아침 8시에 밥을 먹고 체력 단련장에 가서 아버지와 함께 근력 운동을 했다. 그리고 뒷산의 높다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웨이트가 끝나면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축구공 20개를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위치를 옮겨 가면서 슛을 때리기 시작했다. 매일 1천 개씩. 그렇다. 1천 개다. 같은 골문을 향해서 오른발 500번, 왼발 500번 슛을 때렸다. 내가 슛 능력을 타고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의 슈팅은 2011년 여름 지옥훈련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성미 급한 초여름 햇살이 내 정수리를 열정적으로 찔러 댔다. 죽을 것 같았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마켓에서 사온 초콜릿과 바나나를 입안에 욱여넣어 떨어진 당을 채웠다. 서 있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매일 아버지의 성에 찰 때까지 슛 훈련은 계속되었다. 입에서 신맛이 났다. 페널티박스 지점마다 오른발로 감아 차고 왼발로 감아 찼다. 적당히 하는 것 같다 싶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버지에게 나는 분데스리가 유망주가 아니라 그냥 철부지 축구선수일 뿐이었다. 옛날에 봤던 <공포의 외인구단>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척박하기 짝이 없는 독일 클럽하우스 숙소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훈련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자마자 쓰러져 자기 바빴다. 스마트폰을 들어 올릴 힘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SNS는 끊긴 지 오래였다. 대표팀 형들의 각종 경조사도 모두 스킵했다. 혹시나 사람들이 내가 건방 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누워서 그런 걱정을 하다가 이내 잠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일어나면 지옥훈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5주를 보냈다. 하루도 쉬지 않았다.

 

 함부르크의 여름 프리시즌 훈련 일정에 맞춰 독일로 향했다. 아버지는 다른 일이 있었던 탓에 나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5주 훈련은 지옥 같았지만 그 과정을 버틴 몸은 천국의 날개 달린 천사처럼 가벼웠다. 살면서 이런 컨디션은 처음이었다. 함부르크 국제공항에 내리자 익숙한 독일의 공기 내음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분데스리가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확실했다. 힘든 기억밖에 없어도 익숙한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공항으로 티스(손흥민 에이전트)가 마중 나오기로 했다. 게이트를 빠져 나오자 티스가 보였다. 손을 들어 인사를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시즌 막판에 몸 관리에 실패했다고(이전 내용 보충 : 귀국 전 아시안컵 국가대표로 차출되었을 때 오랜만에 접한 한식에 정신이 빼앗겨, 시합기간 동안 몸무게가 4kg 증가. 이후 복귀한 리그에서도 불어난 체중으로 컨디션이 저하되어서 활약이 저조했음) 티스도 화가 많이 나 있었는데 아직 풀리지 않았나? 다시 손짓을 했다. 티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티스는 좀비라도 본 것처럼 "Oh man! 한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며 넋을 일었다. 살이 빠져 얼굴이 반쪽이 된 데다 땡볕에 새카맣게 탄 바람에 티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후 내용 보충 : 복귀한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을 하게 된다.)

 

p105.

 시간이 흐른 뒤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첫 시즌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구단에서는 나를 거의 포기했다고 한다. 내부적으로 '손흥민은 이제 끝났다. 저렇게 불어난 체중에 휴가까지 다녀오면 절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라고 진단했다. '반짝 유망주'로 끝날 것이라는 자체 판단이었다. 에이전트인 티스는 이런 분위기에 관해서 우리 가족에게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구단에서는 나의 격변이 큰 화제였다. 아버지의 지옥훈련 내용을 살짝 알려주자 다들 혀를 내둘렀다. 구단에서는 "아버지가 너를 살렸다"라고 말했다.

 

p113.

 세상 어디에나 편견이 있다. 유럽에 온 한국인 선수는 '축구 못하는 동네에서 온 녀석'이라는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 유럽 기준으로 동양 선수들은 의사 표현이 소극적인 편이이서 만만하게 보기도 한다. 인종 차별과는 약간 다르다. 유럽의 '축구 부심'이 샛길로 빠졌다고 해야 할까.

 

 나도 독일에 처음 왔을 때 그런 편견과 싸워야 했다. 팀 동료들은 내게 패스를 주지 않았다. 말도 잘 걸지 않았다. 내가 먼저 가서 볼을 빼앗아 와야 했고, 내가 먼저 다가가 독일어로 말을 걸어야 했다. 마음의 담을 무너트리려면 경기장 안에서 실력을 입증해야 하고, 밖에서는 '내가 너희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 중이다'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가끔 세게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소위 '썩은 사과'와 맞닥뜨릴 때다. 한국이든 독일이든 '썩은 사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 내가 행동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

 

 2012-13 시즌 프리시즌 훈련 중 팀 동료와 한판 붙은 적이 있다. 그날따라 훈련을 시작하기 전부터 라이코비치(세르비아 선수로 2019년 현재 세리에 리그의 팔레르모에서 뛰고 있다.)가 약을 올렸다. 당연히 이유는 몰랐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 줬는데 훈련이 진행되면서 그 친구의 실언이 계속되었다. 안에서 서서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임계점에 도달했다. 라이코비치가 먼저 내게 달려들자 나도 펑 하고 터졌다. 나는 그를 피하면서 킥(격투기로 따지면 미들킥 정도?)을 날렸다. 둘이 마구 엉키자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달라붙어 둘을 말렸다. 그 와중에 라이코비치의 주먹이 나를 말리던 동료의 이마를 스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단짝 톨가이 아슬란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눈이 뒤집혔지만 동료들에게 온몸이 포박(?)당한 탓에 분을 삼켜야 했다

.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라이코비치는 리저브팀으로 쫓겨났다. 나는 벌금을 내야 했다. 정당방위든 뭐든 일단 주먹다짐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장기영 대표는 "잘했다"라고 하면서도 "그래도 두 번은 안 된다."라고 충고했다. 특히 유럽에서 미들킥은 절대 안 된다고!

 

p155.

 

 프리시즌의 마무리는 레버쿠젠의 한국 방문이었다.  LG전자가 주선해서 성사된 투어에서 우리는 FC서울과 친선경기를 갖게 되었다. 긴 인연은 아니지만 FC서울 산하 유스인 동북고가 나의 마지막 한국 축구와의 연결고리였기 때문에 내심 반가웠다. 팀 동료들에게 한국을 보여 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한국 방문 직전에 아버지가 한 언론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 사생활을 찍은 사진의 공개 여부를 놓고 모종의 제안을 해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 아들이 범죄라도 저질렀는가?"라면서 모두 거절했다. 레버쿠젠이 한국에 도착하던 날에 맞춰 파파라치 사진들이 공개되었다. 악마적 타이밍이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부연 설명 : 당시 걸그룹 멤버와 터진 열애설을 의미한다.) 멀리 한국까지 온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레버쿠젠 투어 3박4일 내내 가시방석에서 지냈다. 동료들에게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여 가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은 산산이 조각났다. 마음 같아선 호텔 방에 콕 박혀 있고 싶었지만 한국 투어 중 잡힌 각종 행사에서 나는 항상 주인공 역할을 해야 했다. 속으로 울면서 겉으로 관객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독일로 돌아가서도 축구선수인 나는 축구와 무관한 기사들의 주인공으로 끊임없이 소환되었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언론사들까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정보를 짜맞춰서 기사를 쏟아냈다. 새 시즌 준비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일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너무 화가 났다. 이 일은 우리 가족에게 언론의 어두운 면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공식 기자회견을 제외한 인터뷰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출발점이었다.

 

p209.

 지금 감사하며 즐겨야 한다. 나의 행복 철학이다. 그라운드에서 서서 축구공과 함께 있는 순간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 행복이다. 어제를 떨치지 못하거나 내일을 걱정하는 삶은 오늘의 행복을 방해한다. 영국에서 나는 '스마일 보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동료들도 "어떻게 너는 매일 아침 웃으면서 돌아다닐 수 있는 거냐?"라면서 신기해한다. 간단하다. 웃어서 행복한 거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라고 다짐한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소노 아야코의 최근 수필집. 어려서부터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며, 정치성향은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극우파에 해당한다. 1931년 생으로 젊은 시기에 일본의 패망을 맞은 노인세대라 그런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인종차별과  독재옹호, 그리고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꼴통발언으로 이슈가 되었으나 일본내에서의 입지는 확고한 듯 하다. 소위 일본에서 잘 나가는 극우파 작가이다. 

학력이나 쓴 글을 보면 무식해서 극우파가 된 건 아닌 듯 하고 자라난 환경 자체가 그런듯하다.

이 작가의 수필은 이것까지 포함해서 2편(누구를 위해 사랑하는가는 작가의 최고의 베스트셀러)을 봤는데 글 자체는 상당한 관록과 경지를 보여주며 그리고 엄격한 가운데 얼마간의 따뜻함도 느껴진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사회정치적으로 상당한 꼴통 발언을 한다는 자체를 보면 인간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나 할까?

현재 나이는 88세로 이번 작품은 필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요점만 짧게 1,2페이지로 정리해서 읽기는 매우 쉽다.

그러나 결국 언행의 일치와 도덕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글이 아무리 뻔지르해도 작가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면 그 가시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이며, 곳곳에서 그런 것이 느껴진다.

저자인 호사카 유지 교수는 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학부는 도쿄대 금속공학과를 들어갔으나, 대학 재학 시절중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알고 이로부터 일본이 왜 아시아를 침략했는가에 대한 주제에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대학졸업후 고려대 한국어학당에 들어간 후, 고려대 정치학과에 편입한다. 이후 동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정치학 박사가 된다. 이후 세종대 교수가 되고 독도문제 연구소 소장에 이른다.

한일 근대사에 대한 전문가이며, 개인적으로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와 뉴스공장을 통해 접하게 되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아베정권의 뿌리와 그로부터 현재 한일갈등에 이르기까지를 일본 근대사의 계보로부터 그 연원을 풀어나가는 내용으로 현재의 한일 갈등에 대한 근본을 풀어주는 내용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필독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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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인들이 왜 히틀러와 나치당을 지지하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1934년 6월 미국의 사회학자 세어도 아벨이 실시한 연구 성과가 좋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기 이전에 이미 나치당원이 된 581명에 대해 작문 형식의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물을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마클 교수가 다시 조사해 발표했다.

 '왜 자신이 나치당원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약 30%가 '독일이라는 질서의 와해에 대한 충격과 독일 내 혁명론자들에게 반론하기 위해서'였다고 대답했다. 독일 내 혁명론자란 황제 제도를 폐지하여 독일을 공화제로 바꾼 사람들을 가리킨다. 다음은 어느 나치당원의 글이다.

 "1918년 11월9일(독일혁명으로 황제가 퇴위해 독일공화국이 성립된 날), 그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일이 되어 나를 습격했는지, 나는 표현조차 할 수 없다. 비애국자들이 갑자기 고향에 주둔해 있던 군인들을 끌어내리고 완장을 찢어버렸고, 그동안 전쟁의 공로로 얻은 훈장을 가슴에서 떼어내버렸다. 그들은 수백만의 독일인이 그 아래에서 싸워 목숨을 바친 우리의 흑,백,홍의 국기를 하수구로 내던지고 있었다. 이런 독일 국민 모두에게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상징들을 모욕하는 사람들과는 평생 어떤 공통점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p27.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해반 후 연합국으로부터 받은 제재에 비하면,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패배한 후 연합국으로부터 받은 제재는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그런 조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다시 패배한 독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연합국들이 영토에 대해 야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일본에 대해서는 고대로부터 일본 영토만을 인정했고 연합국으로서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일연의 조치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히틀러와 나치당과 같은 괴물이 다시 탄생하지 않도록 하는 연합국의 배려였다. 

 그러나 일왕은 인간 선언으로 '살아 있는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왔고, 절대군주에서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권력을 빼앗겼다. 이에 극우파를 중심으로 일왕을 다시 절대군주로 복귀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패전 후 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 23명이 결정되었는데, 그들 중 7명에 대해서는 사형이 집행되었고 7명은 옥사했다. 이후로도 일본에는 전범이 없다면서 A급 전범의 복권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나타났다.

p29.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의 독일인처럼 일본 극우세력은 전쟁 패배로 빼앗긴 대일본제국의 제체와 신사들, 호전적인 교과서 등의 상징물을 모두 부활시키려 하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한국에 적대감을 드러내며 일본 국민들을 선동하여 혐한 감정을 확산시키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과 같은 국가적 분위기를 만들어 히틀러를 출현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그들에게 있어 정치적, 혈통적으로 보아 아베 신조만큼 이에 적합한 인물은 없다.

p32.

 이런 상황에서 관료들은 총리나 총리 주변이 좋아할 일을 무조건 해야만 한다. 반대로 총리 관저의 불평을 살 우려가 있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총리에게 정확한 정보가 올라오지 않게 될 우려가 커졌다. 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현실에서 유리되어버린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인사권을 ㅌ오한 공포 지배를 실시한 국가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다.

p45.

 차기 총리 후보 중 한 사람인 현직 자민당 국회의원 이시바 시게루가 2019년 8월23일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는데, 넷우익들에게 심한 공격을 받았다.

 "한일 관계는 문제 해결의 가망이 전혀 없는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중략) 우리나라(일본)가 패전한 후 전쟁 책임과 제대로 마주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뿌리가 되어 그것이 오늘날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된 것 같습니다."

 이에 인터넷에서는 '이시바는 매국노다', '절대로 총리로 뽑으면 안 된다'는 과격한 댓글들이 넘쳤다. 일본은 지금 혐한 여론에 반대 의견을 제기하면 매국노 취급을 받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p48.

 "전후 70년이나 되었는데,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아베 정권의 죄는 크다. 피해를 준 측이 그 사실을 잊거나 무신경한 발언을 하고 피해자들의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다. 조부모 세대의 분노는 그다음 세대로 오히려 증폭되어서 계승되어간다. 그러므로 일본 시민들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현재 전쟁을 모르는 세대는 조선이나 대만에 대한 식민 지배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역사 수정주의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다."

 미즈시마 아사호 와세다대 교수는 아베 정권과 일본의 혐한 분위기를 이와 같이 비판한다. 이런 양심적인 생각을 가지는 일본인들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p53.

 아베 아키에 총리 부인이 2018년 4월21일 오사카에서 열린 차별 주의 단체 재특회(재일 한국인에 대한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임)가 일으킨 시위에 '편향 보도에 지지 마라! 아베 정권 힘내라 대행진 in 오사카!'에 뜨거운 응원 메시지를 보낸 것이 데모 주최자에 의해 밝혀졌다. 일본 총리의 부인이 배외주의를 호소하는 차별주의자들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개별적으로 메시지를 보내 응원했다면, 총리 부인이 차별주의 단체 리더들과 깊은 관계에 있다는 이야기다. 아키에 여사가 차별주의적 사고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재특회라는 차별주의자와도 친하다고 하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완전히 넘어선 셈이다.

 내각총리 부인이라는 일본의 퍼스트레이디가 차별주의 단체 재특회의 교토 지부장인 우치코시 젠지로가 주도한 시위에 '아베 정권을 응원해준다'는 이유로 무분별한 응원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는 국가로서 차별을 용인하고, 차별주의 단체에 보증을 주는 행위이며, 근대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다. 우치코시 젠지로라는 인물은 이전부터 재일 한국인의 '특권'이 있고 그것을 일소하자는 차별주의 단체 재특회가 조작한 유언비어를 신봉하는 차별주의자이다.

p54.

 2016년 3월18일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당시 민주당의 아리타 요시오 의원이 아베 총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이것을 보면, 재특회를 비롯한 일본의 혐한 세력들이 나치 독일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타 :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 씨가 인터넷상에서 특정 민족에 대해 헤이트 스피치에 해당하는 언동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용납되는가? [예를 들어] 2013년 2월17일 도쿄 신 오쿠보에서 혈린 혐한 시위에서는, 그들의 플래카드에 '집단 학살'을 상기시키는 혐한 표현들이 많았다. 지역에서도 나치 독일의 깃발 하켄크로이츠를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을 전국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가스실을 만들라'라는 말까지 외치고 있었다. 오사카의 츠루하시에서는 "츠루하시 대학살을 하자"라고 당시 열네 살의 소녀가 외치고 있었다.(후략)

 아베 정권은 내셔널리즘을 부추겨서 한일 관게를 의도적으로 악화시켜 내정 문제 등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다른 나라로 돌리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아베 신조가 재특회를 이용해 재일 한국인이나 조총련 등에 강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꾸며 자민당 신봉자나 우익 보수주의자들이나 국수주의자들을 늘려 미국과의 전쟁에 가담시키거나, 최종적으로는 아시아에서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인다.

p56.

 구한말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당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친일단체로 거론되는 '일진회'가 결성되었다. 일진회 구성원 중에는 서재필이 만든 독립협회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독립협회와 민중들의 염원이었던 민회 설립 운동을 테러로 무자비하게 파괴해버린 고종 독재 정권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수 없다며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생각한 것은 '일본과의 연합을 통한 새로운 국가 만들기'였다.

 당시 일본 세력은 대한제국의 지식인들에게 "일본과 대한제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합방하자"고 회유했고, 일본의 다루이 토키치라는 학자는 새로운 나라를 '대동(大東)'이라고 명명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일진회 회원들은 그런 일본 측 전략에 말려들어갔다. 일진회로 대표되는 일부 한국인들은 고종 정권이 타도되고 일본과 한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합방한다면 좀더 나은 나라에서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대등한 '합방'이 아니라 일본이 대한제국을 속국으로 만드는 '병합'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에 분노한 일진회 회장 이용구는 억울한 나머지 분사했고, 많은 일진회 회원들이 일본인 회원들에게 거짓 주장의 책임을 지고 할복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진회의 잘못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정확한 비전이 결여된 데다, 새 국가 건설의 동기 자체가 일본을 무비판적으로 긍정하고 대한제국의 절망적인 상태를 너무 비관한 데서 비롯됐다. 더불어 일본의 교활함을 간파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p58.

 현재 일본 내의 극우파 단체들은 친일파 지원 기금 제도를 만들어 한국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유명한 단체는 사사가와 재단(현, 니폰 재단)이다. 이런 극으파 단체들의 돈을 받고 사실상 일본의 논리를 한국 사회에 침투시키려는 일본 앞잡이가 된 한국인들이 의외로 많다. 

 어떤 학자는 1년에 30번 정도 일본을 출입국 한다. 일본 측에서 부르기 때문이다. 부르는 사람들은 일본 정부 모 부처, 공안, 일본 보수 단체 등 여러 곳이다. 그들은 주로 비공개 회의에 참석시켜서 질의응답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게 한다고 한다. 그는 교통비, 체재비뿐만 아니라 사례비로 한 회당 500~1,000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일본을 왕래하면서 1년에 적게는 1억5,000만 원 정도, 많게는 3억 원 정도를 버는 셈이 된다.

 이런 유혹에 빠지면 일본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비판력을 상실해 버릴 것이다. 혹은 일본의 망언이나 경제 보복 같은 사건이 일어나도 그런 한국인들은 오히려 일본을 옹호하는 편에 설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담은 도서를 발간하고,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일본 측 논리를 퍼뜨리기도 한다.

p81.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에게 지불하려는 10억 엔은 배상금이 아니라 보상금이었다. '보상'이라는 것은 합법적인 과정에서 일어난 손해를 보존해주는 것이다. 보상에는 '합법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일본이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것은 위안부 문제는 사실상 합법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박근혜 정권은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합법적이었다는 데 합의하고 말았다.

 필자는 이때 두 정부 사이에 뒷거래가 오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아베 정권은 박근혜 정권에 위안부 문제를 보상 수준으로 해결해주지 않으면 경제 보복을 가하겠다고 계속 협박했을 것이다. 최근의 한일 관계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때까지 지속적으로 법적 책임과 배상 책임을 강하게 요구해오던 박근혜 정권이 한순간에 인도적 책임 정도로 문제를 일단락하려고 한 정황은 아베 정권이 '경제 보복'으로 박근혜 정권을 협박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때부터 일본 아베 정권은 박근혜 정권을 친일 정권으로 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은 2016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등 일본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위안부 합의 이후 박근혜 정권과 아베 정권은 관계가 꽤 좋아졌다.

p82.

 문재인 정권은 위안부 합의를 검증했고 외교적 문제는 없지만, 피해자들의 의견을 무시해서 맺은 합의였다고 밝혔다. 파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합의에는 이면 합의로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그리고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이사들의 사임으로 인해 운영이 중지되었고 2019년 7월 해산 절차를 모두 끝내 정식으로 해산되었다.

p97.

 한국 정부의 한일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한국 내에서는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우려를 나타냈고, 진보 언론들은 환영했다. 이렇게 의견이 양분되는 근본적 원인은 한일 지소미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소미아가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우선 한일 지소미아는 한일 군사동맹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016년 지소미아를 체결하는 이유로 거론된 것은 한일 간에 북한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라는 내용뿐이었다. 마치 그것이 지소미아 목적의 모든 것인양 보도되었다. 그러나 북한 관련 정보 교환은 한일 지소미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북한 관련 정보는 지소미아 체결 이전에도 한,미,일 간에 공유되어 왔다. 즉, 북한 정보 교환은 지소미아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한일 지소미아의 본질은 한일 악사(ACSA)와 함께 보면 쉽게 이해된다. 악사란 군사 물자 교환 협정이다. 이것은 전쟁터나 분재 지역에서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가 무기를 비롯한 여러 군사 물자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이다. 한때 남수단에서 한국군이 일본 자위대로부터 만발 정도의 탄환을 공급받은 적이 있었는데, 한일 간의 협정이 없는 상황인데도 공급을 받았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한일 지소미아와 한일 악사 체결이 한꺼번에 추진된 적이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체결되면 누가 봐도 한일 양국이 군사동맹으로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권은 국민들의 반발을 고려해서 체결 1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서명을 보류하기로 했다. 그런 경위가 있어서 박근혜 시절에는 지소미아와 악사를 분리해서 체결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한일 지소미아 체결 다음은 한일 악사 체결이 순서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시 미국은 오바마 정권이었는데, 오바마 정권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라 칭하면서 북한과 중국 포위망을 구축해 나갔다. 그 일환으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했고, 사실상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을 추진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가는 단계가 한일 지소미아와 한일 악사인데, 결국 이 두 개의 협정은 무력으로 북한과 중국을 굴복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가장 피해를 입을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일본 아베 정권은 제2의 6.25가 일어나면 다시 일본의 경제적 도약을 기대할 수 있어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일본이 목표로 삼은 것은 미일 군사동맹에 예속되는 한국의 지위다. 이제는 한국을 경제적으로 망가뜨리는 것뿐 아니라 제2의 6.25로 아예 남북한을 무너뜨려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목표로 한다는 악마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베 정권을 비롯한 일본의 극우 세력이다. 

 한일 지소미아는 유사시 일본 자위대와 한국군의 전시 암호체계를 교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는 유사시 하나의 군대처럼 움직일 수 있게 설계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지소미아가 체결된 지 이틀 후인 2016년 11월25일, 일본이 한국에 요구한 첫 번째 군사정보는 '부산 한국군의 배치도'였다. 북한 정보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부산 한국군의 정보를 왜 일본이 첫 번째 군사정보로 한국에 요구했을까? 한국 내 한국군의 배치도 전체가 일본 측에 넘어간다면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의 적성국가가 될 경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p105. 한일청구권 협정

 최근 한일 외교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시발점이 된 사건이 있다. 바로 강제 징용자 판결 문제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려는 이유가 경제 보복이 아닌 안보 문제 또는 한국의 수출 관리 문제뿐이라고 계속해서 말을 바꾸며 둘러대고 있지만, 사실 한국 대법원에서 내린 강제 징용자 판결 문제가 직접적인 이유라는 걸 상식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실제로 세코 히로시케 일본 경제 산업성장관은 지난 7월1일 트위터에 "구조선 반도 출신 노동자(강제 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G20까지(한국정부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 신뢰 관계가 현저히 손상됐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사실상 경제 보복을 인정한 증거를 트위터에 손수 남긴 것이다.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도 강제 징용자 판결 문제로 한일 양국의 신뢰 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실시한다고 분명히 언급했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은 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한일기본조약과 4개의 한일협정을 체결했고, 그중 하나가 한일청구권 협정이었다. 이때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게 무상으로 3억 달러, 유상으로 2억 달러를 지급하는 데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굴욕적인 협정이라며 대학생과 시민들을 중심으로 한일기본조약 반대 시위가 심하게 일어났다. 더군다나 일본 정부는 우리에게 현금을 직접 주기보다는 사람들의 노동력이나 기자재 등을 제공하고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식으로 보상 처리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합계 5억 달러 지불의 명목이 경제 협력이었지 배상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 일부] 양 체결국은 ... 양 체결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 협정문에서 이 문장을 근거로 삼아 국민간의 청구권, 즉 일본과 한국의 모든 국민이 가진 청구권이 1965년 6월22일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즉 원고의 승소 판결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아베 정권은 1965년에 이미 끝난 문제를 들춰내서 일본 정부에게 돈을 내라고 요구했으니, 이것은 한국과 일본 간의 조약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 이번 판결은 사법부의 판단이므로 행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그리고 이번 소송 자체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이지 한국이라는 국가가 일본이라는 국가에게 배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므로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피해자였던 개인이 가해자였던 일본 기업(기업도 법적으로 개인에 속함)을 상대로 낸 소송이므로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의 결론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국가는 이번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 쪽의 반달이 끊이지 않자 한국 정보는 한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2019년 6월19일까지 나온 판결에 대해 일본 기업이 성실하게 배상을 한다면 이후에는 한일 관련 기업들이 기금을 조성해 강제 징용 피해자를 구제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한국 내 피해자들도 그렇게 하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한국 정부의 해결방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 재판의 본질적 쟁점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되었는가?'에 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은 이미 1991년에 답을 내렸다. 그때 일본 국회에서 당시 일본 외무성의 조약국장은 세 번에 걸쳐 똑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포기했음을 확인한 것이고 소위 개인의 재산,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뜻으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

 이 답변의 의미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문에 국민의 청구권이 해결되었다고 적혀 있지만 그것은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는 외교보호권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지, 개인 청구권 자체가 소멸되었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었을 때 일본 외무상인 고노 타로도 11월14일의 일본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개인 청구권이 남아있으나 구제를 받지 못한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개인의 배상 문제가 1965년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견해를 살펴보자.

 고쿠타 위원(일본 공산당 고쿠타 게이지 의원) : ...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전 징굥공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판정했습니다. 이 개인의 청구권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국회 답변 등에서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한일 양국 간 청구권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피해를 입은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해 왔습니다. ..,

 고노 다로 외상 :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만, 개인 청구권을 포함해 한일 간 재산 청구권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 한일 청구권 협정에 있어서 청구권의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고, 개인의 청구권은 법적으로 구제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입니다. ...

 고쿠타 위원 : .. 한국 대법원 판결은, 원고가 요구한 것은 미지불 임금이나 보상금이 아니라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전제로 한 강제 동원에 대한 위자료, 이것을 청구한 것이라고 돼 있다. 그리고 한일청구권 협정 교섭 과정에서 일본 정보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다고 지적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강제 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현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시 한국 측으로부터 제출 받은 대일 청구 요강, 이른바 8개 항목에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이라고 기술되어 있고, 합의 의사록에는 이 대일 청구 요강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돼 있다고 하는데, 그 안에 위자료 청구권은 들어 있습니까?

 미카미 정부 참고인(외무성 국제법 국장) : 대답해 드립니다. 그런 청구권도 포함해서 전부 대상이 되었다는 입장입니다. ...

 고쿠다 위원 : 언제부터 그렇게 범위가 확대되었나요? 그런 이야기는 안 쓰여 있는데요. [외무성의] 야나이 조약 국장은... "쇼와 40년(1965년) 이 협정을 체결해서 그것으로 우리나라[일본]에서 한국과 한국 국민의 권리, 여기서 말하는 '재산, 권리 및 이익'에 대해 일정한 것을 소멸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지만 그런 것들 중에 이른바 위자료 청구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고는 기억하지 않습니다."라고 분명히 위자료 청구라는 것이 들어 있지 않았다, 들어 있었다고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어쨋든 간에 쇼와40년(1965년) 이 협정을 체결해서 우리나라(일본)에서 한국과 한국 국민의 권리, 여기에 말하는 재산,권리 및 이익에 대해서 일정한 것을 소멸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인데, 그런 것들 중에 이른바 위자료 청구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고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분명히 이 일련의 청구권 협정과 관련된 협상 과정에서 이뤄진 문제에 대해 위자료 청구권은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몇 차례 분명히 했다. 이것이 그동안의 답변 아닌가요? 그 답변을 부정한다는 말씀입니까?

 미카미 정부 참고인 : ... 야나이 국장의 답변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본 내에서 법률을 만들어서 그 실체적인 재산,권리,이익에 대해서는 소멸시킨 것입니다. 그러니 청구권이라는 것은 그런 재산,권리,이익과 같은 실체적 권리와 다른 잠재적인 청구권이기 때문에 그것은 국내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야나이 국장은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법으로 소멸시킨 것은 실체적인 채권이라든가, 이미 그 시점에서는 확실한 재산, 권리 , 이익이므로 그 시점에서 실체화되지 않았던 청구권은 여러 가지 불버 행위라든가 재판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는 소멸되지 않았다. 따라서 처음 말씀드렸듯이 권리 자체는 소멸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에 갔을 때 그것은 구제받지 않는다. [구제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양국이 약속했다고 생각합니다.

 고쿠다 위원 : ... 분명히 이 문제 대해서는 위자료 청구권은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 답변으로 지극히 명백해졌스니다. 게다가 당시의 답변은 그대로였다는 것을 확인해 두고 싶습니다.

 이상의 인용문을 보면 2018년 11월 시점에서도 일본 정보는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고 배상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인정했다. 그런데도 재판에서 개인은 구제를 받지 못한다고 궤변을 늘어놓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한국이 1965년에 일본과 맺은 약속을 어기고 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한국은 한일청구권 협정의 약속을 지키고 있고 그때 소멸되었다는 외교보호권을 발동하지 않았다. 단지 국가가 아니라 한국의 개인이 남아 있는 개인 청구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최근 일본 정부에서 내놓는 답변이나 의견 자체가 상당히 왜곡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언론조차도 이에 대한 비판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p116. 개인 청구권 효력의 유지

 최근 한일청구권 협정을 두고 일본 정부의 말 바꾸기 문제가 심각하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깊이 파헤쳐 보도록 하자.

 일본 국회 회의록을 보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개인 청구권이 아니라 국가의 외교보호권이 소멸되었다는 내용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다. 다음은 1991년 8월 27일 국회에서 나눈 질문과 답변의 일부를 원문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의 대표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나이 순지 조약국장 :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 그 의미는 한,일 양국간의 국민의 청구권을 포함해서 해결했다는 것이지만, 이것은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상호 포기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서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 양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낸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 양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여 거론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발언을 같은 해 12월5일에 역시 국회에서 야나이 순지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이 한 번 더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

  야당 의원 : 한,일 간에는 목돈을 들여서 일단 국가 차원에서는 처리한 경위가 있다. 그러나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개인 청구권을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상호 포기했지만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 따라서 청권권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야나이 순지 조약국장 : 청구권의 포기가 의미하는 바는 외교보호권의 포기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의 청구권에 대해 일본 정부에 청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 청구권이 국내법적인 의믜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다.

 같은 해 12월13일에도 일본 국회에서 야나이 순지 조약국장이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했다. 

 이들 규정은 양국 국민 간의 재산,청구권 문제에 있어서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포기했음을 확인한 것이고 소위 개인의 재산,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뜻으로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 말씀드린 대로다. 이것은 소위 조약상의 처리의 문제다.

 위의 자료처럼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일본 국내에서만이라도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국내법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1965년 일본의 국내법 법률 제144호로 이른바 '재산권 조치법'이라고 불린다.

 [법률 제144호] 1. (전략)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의 재산권이자,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 해결 및 경제 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 사이에 협정 체 2조3의 재산,권리 및 이익에 해당되는 것은 1965년 6월22일에 소멸되었다.

 이 법률에 있는 1965년 6월22일은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된 날짜이다. 이때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자기들끼리 국내법을 만들어 정해버렸다. 전술하 바와 같이 2018년 11월14일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일본 정부 외무성 국제법 국장 미카미 씨는 "일본 내에서 법률을 만들어서 그 실체적인 재산,권리,이익에 대해서는 소멸시킨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 법률 제144호를 뜻한다. 그러나 이 법률에서도 소멸시킨 것은 한국인의 '재산,권리 및 이익에 해당되는 것'으로 불법 행위에 관한 배상금이나 위자료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사항은 이 법률로 일본 정부는 일본인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 국내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에 해당되는 개인 청구권만 소멸시키고 일본인의 개인 청구권은 그대로 남겨놓았다. 이런 면에서 이 국내법은 매우 불공평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대한민국은 자국의 국내법으로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의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키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국내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개인 청구권을 활용해 충분히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2005년 노무현 정권 때 가동한 청구권 협정에 관한 관민합동위원회에서도 재산,권리 및 이익에 관한 보상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종결되었으나 개인의 배상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2018년 10월 내려진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 명령, 즉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명령은 정당한 사법적 판단이었다.

p120.

 우선 2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선고했다.

 "일제강점기는 불법이며, 불법 강제 노동에 대한 개인의 손해배상은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선고에 따르면 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는 일본이 '배상금'이 아닌 '보상금'을 낸 것이다. 보상금과 배상금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고, 불법으로 강제 노동에 동원했으므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강제 징용자, 여자 근로 정신대 등 일제강점기의 피해자에 대해서 일본 기업은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위자료는 배상금의 개념이다. 1965년 청구권 협정 때나 2015년 위안부 합의 때 일본에서 한국 쪽에 건넨 돈은 모두 보상금이었다.

 여기서 보상금과 배상금의 개념을 다시 정리해보자. 보상금이라는 것은 적법 행위 과정에서 손해가 생기면 그것에 대해 지급하는 금전이고,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보상금은 전체적인 과정은 합법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내는 돈이다. 하지만 배상금이라는 것은 전체적인 행위 자체가 위법 행위였고, 그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해서 지급하는 금전을 말한다. 지금까지도 일본은 일제강점기를 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측에 단 한 번도 배상금을 지급한 적이 없었다.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본이 항상 일제강점기를 합법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를 보면 1998년 10월 한,일 양국은 파트너십을 선언했다. 이 파트너십 선언에서 일본은 과거에 한국에 피해를 입힌 가해자였다고 인정했고,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사과했다. 이처럼 서로 인정하고 사과한 내용을 공식 문서에 적었다. 일본이 가해자였고 한국이 피해자였음을 선언하는 것은 일본이 위법 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것이고, 따라서 일제 강점기는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이런 의미에서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문은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다는 하나의 근거가 되는 문서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 아베 정권은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강제 징용자 판결 문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 이러한 발언 자체가 일본 기업들에게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강압적 메시지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1991년 당시 일본 정부가 스스로 인정한 외교보호권의 소멸을 지금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외교보호권을 발동하고 있어 문제가 크다. 2012년 5월 한국대법원이 신일본제철에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을 때 신일본제철 측은 처음 한국 법원의 판결을 따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뒤에서 계속 막아왔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부당한 외교보호권의 발동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7월1일부터 시작된 아베 정권의 경제 보복도 외교보호권의 부당한 발동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2019년 3월13일 아소 다로 부총리는 일본 국회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강제 징용자 판결로 인해 일본 기업에 피해가 생길 경우 "관세를 올리는 일에 한정하지 말고 한국으로의 송금 정지, 비자 발급 정지 등 여러 가지 보복 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한국 대사를 역임했지만 대표적인 혐한파로 알려진 무토 마사토시는 2018년의 한국 대법원 판결 직후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핵심 부품을 규제한다든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수입하는 제품에 관세를 올리겠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했다. 이들 중 반도체 핵심 부품은 이미 수출규제가 되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일본이 부당한 외교보호권을 강하게 발동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1991년 일본 정부가 스스로 입 밖으로 낸 사실, 즉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한일 양국의 외교보호권이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어기는 셈이 된다. 한,일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는 나라는 다름 아닌 일본인 것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제소한 재판 결과에 대해 기본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이는 삼권 분립의 원칙을 지키는 올바른 자세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 일본 아베 정권은 자국도 아닌 타국, 즉 한국의 사법주가 내린 판단에 개입하려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행위와 마찬가지이고 있을 수 없는 무례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은 한국의 정당함과 일본의 부당함을 계속 세계에 알려야 한다. 앞으로 일본의 보복 행위 자체를 막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일본에 그리고 국제 사회에 일본의 부당성과 한국의 정당성을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p129.

 2005년 정부가 강제 징용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관민 합동위워뇌의 자료를 확인해보면 '한일청구권 협정은 채권,채무 관계를 해겨라기 위한 것이었다. 반인도적 불법 행위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되어 있고 당시 백서에는 '피해자 개인들이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2005년 관민합동위 자문 위원이었던 조시현 씨는 "일본 정부와 기업이 책임질 때까지 피해자의 고통을 경감시킬 인도적인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보상조치를 실시하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하는 조치였다."고 당시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을 지급했다고 2019년 7월17일 MBC 뉴스에서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대법원의 2018년 판결은 정당하고, 2005년 노무현 정권의 입장과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팩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일보 등은 2019년 7월,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보상은 이미 끝났고, 이 내용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확인했다는 기사를 냈다. 이 기사의 결론은 한국이 일본에 더 이상 보상을 요구하면 안 된다는 함의가 들어 있다. 아무리 보상이 끝났다는 말이 옳다고 치더라도 조선일보 등은 '배상'문제는 남아 있다는 점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기사를 일본어판 신문에도 게쟇했다. 남아 있는 '배상' 문제를 숨기고 일본 정부의 판단이 옳다는 잘못된 기사를 왜 태연하게 일본어로도 발신했는지 그들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p137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일본이 우세했지만 미드웨이 해전(1942)을 계기로 전세가 미국으로 기울었다.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각각 투하되면서 1945년 8월15일 일본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패전 후 연합국의 점령 통치를 받던 일본은 1951년 연합국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해 패전과 전범을 정한 국제재판의 판결을 인정하는 대신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와 동시에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고 반공 진영에 편입되었다.

 일본에서 이러한 샌프란시크코 강화조약을 수용한 세력이 바로 '보수 본류'이다. 보수 본류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일본이 침략 국가이자 전범국가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보수 세력이라고 해도 보수 본류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나라임을 기본적으로 인정한다. 둘째, 평화헌법을 지키려고 한다. 1946년 미국의 주도로 제정된 일본국헌법은 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제9조에 일본이 전쟁을 포기하고 전쟁의 수단으로서 군대를 가질 수 없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보수 본류는 특히 헌법 제9조를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보수 본류는 마지막으로 미국과 협력하려 한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전후 일본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55년 체제''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950년대 전반 보수 정당의 일부 국회의원들이 전쟁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1955년 사회당의 좌파와 우파는 평화헌법 유지와 미,일 안전보장조약 강화 반대를 내걸고 다시 손을 잡아 사회당을 통합했다. 이에 대항해 일본의 보수 세력이었던 자유당과 일본 민주당도 자유민주당(자민당)으로 통합되었다.

 일본 국민들은 보수 정당인 자민당과 진보 정당인 사회당이 서로 견제하는 양당 체제를 이루게 되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했고, 사회당이나 공산당 등 야당은 정치의 중심에서 소외되었다. 이러한 정치 체제를 '55년 체제'라고 부른다. '55년 체제'는 자민당 1당 우위 체제였다. 그런데 1993년 자민당 보수 본류에 속하는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면서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해 '55년 체제'는 38년 만에 붕괴되었다.

 일본 보수에는 보수 본류와 대비해서 또 하나의 세력인 '보수 비주류'가 있다. 현재 자민당에서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극우파 세력이 원래는 보수의 비주류였다. 보수 비주류의 대표적인 인물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이다. 현재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의 외조부이기도 한 기시 노부스케를 일본 보수 비주류, 즉 극우파의 시작으로 본다. 지금은 비주류를 '극우파'라고 부른다.

 극우파는 보수 본류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주장해 왔다. 우선 극우파 사람들은 일본이 침략 국가였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들은 '역사 수정 주의자'로 불리며 역사를 상당히 왜곡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극우파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도 변경하고자 한다.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일본을 전범국가 또는 적성국가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가져왔다. 또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위대가 아닌 정식 군대인 '일본군'을 부활시키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협력하려고 한다. 이 부분은 보수 본류와 일치하기는 하지만 협력하고자 하는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들은 미국과 함께 전쟁을 치르려고 한다.

p148.

 1996년 6월 자민당은 사회당과의 연립 내각을 탄생시켰다. 이때 자민당-사회당 연립정권의 총리는 당시 사회당 당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1924~)였다. 자민당은 사회당을 끌어들여서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는데, 사회당이 캐스팅 보드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당에서 총리가 탄생한 것이다. 자민당-사회당 연립정권에서는 자민당의 국회의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연립정권으로 정권을 잡을 계획으로 사회당의 의석 수를 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 사회당의 당수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총리가 되었다. 이제 자민당 단독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나 이후 연립 여당으로 자민당은 정권을 잡게 된다.

 하지만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사회당 출신으로 상당히 리버럴한 사상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무라야마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게 되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1995년 8월15일 전후 50주년 기념식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세계를 향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 담화는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공식 사죄로 평가되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하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하지만 자민당 내 극우파 세력은 이 담화에 격렬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극우파들은 당 내에 역사검토위원회를 조직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아시아를 백인 지배하에서 구원한 '해방 전쟁'이라는 주장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자민당 안에 많이 남아 있었던 비주류 세력이 이제 자민당 내 주류가 되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민당 내 역사검토위원회는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담화 발표에 맞춰서 [대동아전쟁의 총괄]이라는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에서 자민당 내 극우파 사람들은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일본은 침략 전쟁이 아닌 해방 전쟁을 했으며 일본은 절대 전범국가가 아니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피력했다.

p180.

 한편 불행하게도 간 나오토 정부 시절 일본에서 큰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때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하면서 연안 지역은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 일본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으로 사망자는 약 2만 명, 실종자는 약 2,500명에 이른다.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도시 가운데 하나가 이와테현(岩手県)이다. 

 이와테현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해 쓰나미가 일어났는데 가장 높은 쓰나미는 15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반면 이와테현 바닷가의 제방 높이는 10미터에 그쳤다. 이와테현에는 예부터 쓰나미가 자주 발생했고 그동안 쓰나미의 최고 높이는 5.7미터였기 때문에 10미터 제방으로 충분히 쓰나미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현의 당국자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10미터를 넘는 거대한 쓰나미가 제방을 넘어 도시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이렇게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역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재난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에 의해 이와테현 남쪽에 위치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시설이 파손되어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원전 사고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면서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 피해의 등급이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의 최고 레벨인 7이었다. 1986년 발생한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등급과 같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는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로 방사능 피해가 사방 약 600킬로미터에 미친다고 했다. 그러므로 당시 구소련은 체르노빌 원전을 콘크리트로 막았다. 따라서 같은 레벨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사방 약 600킬로미터에 방사능 피해를 준다고 볼 수 있다. 후쿠시마에서 도쿄까지가 약 30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오사카까지 약 60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니 사실상 일본열도 중 매우 넓은 영역에서 방사능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구소련에서는 체르노빌의 원전을 콘크리트로 모두 막아서 밀폐시킨 후 100년 이상 지나야 방사능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 진단했다. 지금까지도 체르노빌은 주변 30킬로미터 내에는 출입 금지구역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은 콘크리트로 막는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쿠시마에서는 원전의 반경 20킬로미터 내를 출입 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 콘크리트로 막지도 않았는데 출입 금지구역이 체르노빌보다 좁다.

 일본 정부는 체르노빌처럼 사람들이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 다시 살지 않을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원전을 콘크리트로 막아버리는 대신 방사능 수치를 낮추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간 나오토 정부의 실책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일본 국민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정부의 조치에 계속 불안을 느끼면서 간 나오토 정부의 지지율도 계속 떨어졌다.

 p190.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사람 중 한 사람으로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1833~1877)라는 인물이 있따. 이 사람은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1828~1877),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1830~1878)과 함께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메이지유신 삼걸'로 불린다.

 기도 다카요시는 한국과도 관련이 깊다. 1875년 일본은 운요호사건을 일으켜 이듬해에 강화도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는데, 기도 다카요시는 운요호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다. 기도 다카요시는 1868년 메이지 정부를 성립시킨 후 "조공하지 않는 조선에 위약의 죄를 물어 공격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원조 정한파다. 요시다 쇼인의 왜곡된 사상의 영향으로 기도 다카요시는 에도시대에 12번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조선통신사를 조공사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도 초슈번 출신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메이지 헌법을 기초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본 헌정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당시의 일본 국회읜 제국의회를 개설하는 공로를 세웠으며, 무려 여섯 번이나 총리를 역임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국민적 영웅이었지만, 말년에 한국에 건너와서 을사늑약을 강요한 조선 침략의 원흉이 되었다. 1909년 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살되었다. 당시 일본에서의 영웅들은 한국이나 아시아에 있어서는 침략자들이었다.

 이토 히로부미와 매우 가까웠떤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1836~1915)는 청.일 전쟁 당시 조선 공사로 부임했다. 그는 일본을 위해 조선에서 공작 활동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노우에 가오루의 추천으로 미우라 고로(三浦梧楼, 1846~1926)라는 군인이 그의 후임으로 조선 공사로 부임했다. 

 미우라 고로는 일본공사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조용한 인물로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했다. 친로파가 된 명성황후 때문에 대한제국이 러시아로 넘어갈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이노우에 가오루-미우라 고로 라인에서 명성황후 시해를 결정해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그들은 명성황후 시해 계획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문서를 남기지 않는 작전을 썼기 때문에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

p197.

 요시다 쇼인의 핵심 주장에는 아시아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다. 그는 저서 [유수록(幽囚錄)}(1854)에서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등을 주창해 일본 메이지 정부의 팽창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음은 [유수록]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다.

 무력 준비를 서둘러 군함과 포대를 갖추고 즉시 에조(蝦夷=훗카이도)를 개척하여 제후를 봉건하여 캄차카와 오호츠크를 빼앗고, 유구(琉球=오키나와)에 말하여 제후로 만들고 조선을 책하여 옛날처럼 조공을 하게 만들고 북으로는 만주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대만과 필리핀 루손 일대의 섬들을 노획하여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

p201.  야스쿠니 신사의 기원, 초슈번 초혼장.

 초슈번의 젊은 지도자들은 스승 요시다 쇼인의 뜻에 따라 전쟁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초슈번 무사들의 위령제였다. 이 위령제는 현재 야스쿠니 신사의 기원이 되었다. 위령제를 고안한 인물은 요시다 쇼인이 가장 아꼈던 애제자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晋作, 1839~1967)였다. 그는 근대 일본군의 모체가 된 기병대를 만들고 지휘했고, 에도막부 타도를 주도하기도 했다. 

 다카스키 신사쿠는 아베 신조와도 관련이 깊다. 아베 신조(安部晋三)의 이름에서 '신(晋)'은 다카스키 신사쿠의 이름에서 따왔다. 아베 신조는 다카스키 신사쿠처럼 자신도 요시다 쇼인의 첫 번째 제자라는 생각을 갖고 활동한다고 이야기해 왔다. 아베 신조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部晋太郎) 역시 다카스키 신사쿠의 이름에서 '신'을 따왔다. 아베 신타로도 스스로를 쇼인의 첫 번째 제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들 신조가 아버지의 입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초슈번의 군대와 에도막부 군이 불가피하게 수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희생되는 초슈번의 무사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카스키 신사쿠는 죽은 초슈번 무사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위령제를 거행했다. 위령제를 거행하는 장소인 초혼장은 초슈번 안에 시모노세키의 사쿠라야마 초혼장을 비롯해 총 열여섯 군데나 있었다. 이 초혼장들을 운영했던 중심 인물이 다카스키 신사쿠였다.

 초슈번에서는 쉬지 않고 위령제를 지내 죽은 무사들의 영혼을 달랬다. 위령제의 주된 목적은 에도막부와의 전쟁에서 초슈번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었다. 마침내 초슈번과 사쓰마번은 에도막부를 타도해 메이지 정부를 세우게 되었고, 메이지 2년이 되는 해인 1869년 초슈번 사람들은 초슈번에 있던 초혼장을 모체로 도쿄에 큰 초혼장을 건립했다. 이렇게 해서 도쿄 초혼사(招魂社)가 만들어졌다. 10년 뒤인 1879년 도쿄 초혼사는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로 명칭을 바꿨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의 기원은 초슈번의 초혼장인 셈이다. 초슈번 계열인 아베 신조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속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98.

 아베 신조와 혐한 세력, 그리고 일본회의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은 침략 국가가 아니었다. 백인 지배하에 놓인 아시아를 해방해 줬을 뿐이다. 일본군은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 위안부 제도는 합법적인 제도였고 일본 병사들이 현지 여성들을 강간하지 않도록 만든 훌륭한 제도였다. 위안부는 모두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상업적 여성들이었다. 강제 연행이나 강제 동원은 거짓말이다. 난징 대학살은 연합군이 만든 날조다. 일본군은 어디로 가도 환영받았다. 앞으로도 일본군은 적극적 평화주의로 아시아에 평화를 실현할 것이다. 그리고 대일본제국은 식민지였던 조선이나 대만을 근대화해 주었다. 조선인이나 대만인을 평등하게 대해주었고 교육했고 차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한국인들이다. 그들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다고 강조하고 여성들을 강제 연행해서 위안부라는 이름의 성 노예로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한국인을 강제적으로 동원해 보상금이나 배상금을 버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아름다운 일본'을 '더러운 일본'으로 왜곡, 날조해 가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있으면 안 되는 존재다. 그들을 일본에서 쫓아내야 하고 한국에서도 못 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일본에 머리 숙여 굴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 대한 혐한은 당연한 행위다. 혐한을 진실을 밝히는 정당행위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이 갖는 불만의 분출구로 한국과 한국인을 이용해야 한다.... "

 극우파들은 계속 외친다.

 "일본의 아래에 있어야 할 한국이 요새 너무 성장해 버렸다. 다 일본 덕분인데 은혜도 모르고 이제 일본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추월하려고 한다. 용납할 수 없다. 제2의 한국전쟁을 일으켜서라도 한국을 무너뜨려야 한다. 한국은 항상 아름다운 일본의 아래에 있어야 한다."

 이런 극우파들을 결국 심판할 사람들은 양식이 있는 일본인들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너무 행동력이 없다. 국민의 50%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위를 해도 조금밖에 모이지 않는다. 그러나 극우파가 일본을 망가뜨렸다고 깨달은 일본인들이 조만간 나타나 선거에서 자민당을 패배시켜 아베 신조를 총리 자라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극우파들은 이제 거대한 세력이 되었다. 아베 신조의 정책 집단이자 행동 부대인 일본회의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신사 본청은 국가의 승인을 받으면 다시 45년까지의 국가신도로 복원된다. 야스쿠니 신사도 국가신도의 중심적인 전쟁 수행 신사로 거듭난다. 혐한 분위기는 계속 확대되어 한국의 신친일파들을 동원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을 교란시킬 것이다.

 이런 일본의 도전에 적절히 대응하려면 한국에도 거대한 대(對) 일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세를 깨달은 한국인들이 그런 네트워크를 조속히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네트워크는 일본에 관한 남남 갈등을 해결해야 하고 일본의 극우파 논리를 극복해 그들을 굴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일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일본은 러일전쟁 전후로부터 한국에 친일파를 양성해 왔다. 우리 대한민국은 120년의 적폐를 청산해 나가야 한다.

 

 

 

 

 우치다 타츠루의 시사 만평 모음집.

일본의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는 언론인이라 일본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꽤나 유익하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사회의 변화에 대한 일본 진보지식인의 감상과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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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6. '고학'을 권함

 일본 대학의 수업료는 비싸도 너무 비싸다. 국립대학도 첫해 납입금이 80만 엔을 넘는다. 수업료 감면이나 장학금 등 구제 대책은 있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학생 스스로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1970년에는 국립대학 입학금이 4000엔, 한 학기 수업료가 6000엔.... 창구에 1만 엔 지폐를 내면 학생증을 받을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시급이 600엔이었으니까 2시간 일하면 한 달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학생들은 부모의 지갑에 손대지 않고 고학苦學할 수 있었다.

 그 후 교육행정 지도에 의해 학비는 급커브를 그리며 상승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고학생'이 사라졌다.

 고학이 불가능해진 탓에 사회는 엄청나게 변했다. 하나는 진로 결정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자식이 '하고 싶은 일'과 부모가 '시키고 싶은 일'은 대개 다르기 마련이다. 고학이 불가능해졌다는 말은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부모가 절대로 동의해주지 않을 것 같은 분야)'를 단념하는 아이들이 아마 수백만 명 단위로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본의 지적 생산성을 얼마나 떨어뜨렸던 것일까? 그것 때문에 잃어버린 지적 자산은 수업료의 인상으로 국고에 거두어들인 금액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2009년 3월9일)

p168. 조직이 바라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많은 학생들은 취직 준비를 수험 공부와 비슷하다고 여긴다. 성적이 우수하고, 말솜씨가 빼어나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뽑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떨어진다고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채용 여부의 기준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모든 조직은 집단의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는 사람을 원한다. 조직이 바라는 인간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마음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자질은 반드시 '능력'과 일치하지 않는다.

 아무 조건 없이 리더를 지원해주는 '예스맨'의 능력ㄷ, 집단 내부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분위기 메이커'의 능력도, 논쟁이 달아오를 때 삐딱한 역설을 통해 찬물을 끼얹는 '심통쟁이'의 능력도, 하나같이 집단이 건전하게 기능하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수험 경쟁을 통해 배운 것은 탁 까놓고 말해 '타자의 능력 발휘를 방해하고 그 평가를 깍아내리는' 기술이다. 그런 능력은 현실 사회로 나갔을 때 백해무익하다. 경쟁 상대를 필사적으로 떨어뜨리려고 발버둥치는 학생은 경쟁 심리 때문에 면접관에세 낮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쳐주지 않는다.(2009년 4월20일)

p170. 될수록 캠퍼스에 오래 머물라.

 신학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신입생에게 학생 생활의 기본적인 요령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될수록 오랜 시간을 캠퍼스에서 지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수강신청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 대학생의 수업은 강의 1시간 당 예습과 복습에 드는 2시간을 더해야 한다는 전제 때문이다.(15주 동안 이렇게 3시간이 들어가는 강의를 1학점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것이 빈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시간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두어 배 시간을 더 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은 경험상 맞는 말이다.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고 밥을 먹은 뒤에 '휴식'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식이 온몸에 속속들이 퍼지게 하려면 앞뒤로 그 정도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또 하나의 요령은 될수록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생은 '가난을 기본으로' 생활을 설계해야 한다. 가난하면 캠퍼스를 떠돌아다니는 정도밖에 할 일이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예배 시간에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고, 정원에서 꽃을 바라보고, 교사 사이를 산책한다. 그러는 동안 만약 학생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아름다운 것' '지적인 고양을 느끼게 하는 것'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이미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심신의 감도를 높일 수 있는 곳이야말로 학교라는 공간이다. 또한 이것이 대학이 학생들에게 제공해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다. 건투를 빈다.(2009년 5월4일)

p210. 정치인들이 실언을 반복하는 이유.

 자, 청중을 이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방금 즉흥적으로 생각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이 방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요즘의 예능인이다.

p238. '일시적으로나마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듣고 싶다.

 민주당의 대표 선거가 끝나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이 발족했다. 이 내각의 긴급한 과제는 당내 통합과 야당과의 협조다.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최우선의 정치 과제인 것이다. 이 선택에는 현재 일본에 만연한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는 동안 어떻게든 되겠찌'하는 체념과 어렴풋한 희망이다.

 대지진의 피해, 쓰나미,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국나의 위기 직후에는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편에 착수해야 한다는(분노와 슬프이 뒤섞인) 목소리가 일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후 반년 동안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의 졸렬한 대응, 정보의 조작과 은폐, 기득권층의 반격 같은 흐름 속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차츰차츰 잦아들었다. 시스템의 기능 저하가 지나차게 심각한 상태라서 근본적인 재편 같은 것은 바랄 수도 없다는 현실을 뼛속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치가, 관료, 경제인, 방송인 등을 통틀어 일본의 지배 체제에는 신뢰할 만한 인물이 없다. 일본 국민은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들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으리나는 깊은 절망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장 전략 없이 재정의 재건은 있을 수 없다.' 오늘도 신문에는 이 말이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 말을 쓴 장본인도 '성장 전략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달리 쓸 말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성정 전략 없는 재정 재건'이란 '오로지 가난해 질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필시 그렇게 되리라고 마음속 깊이 생각한다. 다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면 '중뿔나 보이기'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다.

 따라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중뿔나게 나서지 않는' '귀에 거슬리는 말은 하지 않는' 총리의 등장은 '시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불가피하게 가난하고 활기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도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파국을 맞이하는 시기를 연기할 수는 있다. 그렇게 해서 '시간 벌기'를 하는 동안 외부로부터 생각하지 못한 어떤 계기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일본인은 이렇게 미미한 기대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하다못해 '일시적으로나마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2011년 9월12일)

p260. 백성의 안녕은 지고의 법

 국회 질문에서 아베 총리는 민주당 의원에게 인권에 대한 조문을 질문받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자, 총리는 일본국 헌법에서 포괄적인 인권 보장을 정한 조문이 몇 조인지 알지 못한다고 이해해도 좋겠습니까?"하고 질타당하는 인상 깊은 사건이 있었다. 개헌파의 우두머리가 '숙적'과 같은 포괄적 인권 보장을 정한 조문을 잊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그런 것은 없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라면 언젠가 그것의 존재 자체가 흐릿해지기도 하는 법이다. 어쩌면 총리가 생각하는 일본국 헌법은 벌써 불확실한 것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헌법 13조의 조문은 이렇다. "모든 국민은 개인으로서 존중받는다. 생명,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공공복지에 반하지 않는 한 입법 등 국정 안에서 최대의 존중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자민당의 헌법 개정 초안은 이렇다. "모든 국민은 사람으로서 존중받는다.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공익 및 공공질서에 반하지 않는 한 입법 등 국정 안에서 최대한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금의 '공공복지'를 개정안이 '공익 및 공공질서'로 바꾼 것이다. '공공복지'는 기본적 인권을 정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근거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랫동안 헌법학의 논쟁거리였고, 지금도 단일화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자민당의 개정안은 여기에 '공익 및 공공질서'라는 한정적이고 일의적인 해석을 부여한 것이다.

 '공공복지'라는 말의 용례는 저 멀리 법에 관한 키케로(Cicero)의 격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성의 안녕 salus populi은 지고의 법이다" 법치국가는 이것에 위배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그러나 '백성의 안녕'과 '공익 및 공공질서'는 말뜻이 다르다. 라틴어 salus는 '건강,행복,안녕,무사,생존'이라는 내포하기 때문이다. '공익과 공공질서'의 유지는 '백성의 안녕'을 위한 요건의 일부이기는 해도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공익과 공공질서를 지키기 위해 백성의 행복과 생존을 희생시키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통치자는 역사상 무수히 많았고, 지금도 많다.(2013년4월15일)

p263.

 공인의 적성은 '자신의 반대자를 포함해 집단을 댚해내겠다는' 각오에 달려 있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데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지지하고 동의하는 사람만 대표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리 거대한 조직을 이끈다고 할지라도 '권력을 가진 사인私人'일 따름이다. 나는 '공인'이 통치자의 사리에 오르기를 바란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 Jose Ortega y Gasset는 자유민주주의를 "적과 함께 살아가고, 반대자와 함께 통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역설적이고, 이토록 우아하고, 이토록 곡예와 비슷하고, 이토록 반자연적인 것을 생각해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참으로 잘 짚어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말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어떤 정치적 이상이 있다고 할 수 있을가?

p268. 귀담아들어야 할 자연과학지의 조언

 영국의 종합학술잡지 <네이처>가 (2013년) 9월5일자에 '핵 에러'라는 제목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문제를 다룬 논설을 게재했다. 그 글은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처리가 부적절하다는 점을 상당히 날카롭게 지적했다. 자연과학 학술지가 한 나라의 정부와 민간 기업이 저지른 그릇된 행적을 대상으로 논란을 벌이는 일은 지극히 예외적이다.

 '무책임하다고까지는 못해도 부주의한' 도쿄전력의 감시 시스템에 의해 오염수 탱크에서 새어나온 누수를 체크하지 못했다는 점. 당초에 '단순한 이상'이라고 경시한 누수가 실은 사고 이후 최대 규모의 '진짜 위기'였다는 점. 위기를 언제나 과소평가하고 정보를 불충분하게 제공해왔다는 점에 그 논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일본정부나 도쿄전력이나 과학자의 시각으로 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무시해왔다.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 세계적인 환경 문제에 파급을 미치지는 않을까, 국제사회는 진심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은 일본이 전세계 연구자의 지원과 전문적인 조언을 바탕으로 국력을 기울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런데도 이 나라 사람들은 올림픽 유치와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들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자력발전소 문제에 대해 매스컴이 집중적으로 질문을 퍼붓자 올림픽 유치위원회 이사장은 초조한 나머지, "도쿄와 후쿠시마는 250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후쿠시마의 사고를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으로 여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세계적으로 드높아지고 있을 때, 일본인은 태연하게 '후쿠시마의 사고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말해버린 꼴이다. 아베 총리는 "오염수의 영향은 원자력발전 사고가 일어난 항만 내로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고 하고, "지금까지도 그렇고, 현재나 미래에도 건강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앞의 논설을 이렇게 서술한다. "일본은 지원을 위한 조언을 얻기 위해 국제적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 연구와 오염 제거를 위한 국제적인 연대는 모니터링과 위기관리의 유용성과 유효성을 둘러싸고 산산히 무너진 공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산산이 무너진 공적 신뢰'를 회복할 셈인가? 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2013년 9월23일)

p276. 진심으로 '전쟁'을 의식하고 있는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 관련법, 특정비밀보호법, 공모죄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은 아베 정권이 진심으로, '전쟁'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일본 국민이 '진심으로 전쟁을 개시할 마음이 있는 정부를 받든 것은 전후 처음이다. 최근 2개월 동안 일본은 법제적으로 '언제라도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말았다.

 만약 내각총리대신이 센카쿠 열도 근처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군사적 충돌을 '영해 침입, 불법 상륙 사안'으로 인정한다면, 그래서 '신속하고 적절한' 군사 행동을 개시함으로써 전투 행위가 벌어진다면,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할 것"이라는 헌법 9조는 사실상 폐기된다.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떤 정보가 올라가고, 어던 논의가 이루어지고, 무엇을 결정했는가에 대해 국민에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곳에서 논의한 것은 '국가의 안전 보장에 관련된 특정 비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동중국해에서 어떤 중대 사안이 발생했고, 정부가 그것에 신속하게 적절하게 대응했다'는 '대본영의 발표'를 얼빠진 표정으로 듣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 일이 없다.

 10월에 열린 자위대 열병식에서 아베 총리는 "방위력은 그 존재만으로 억지력이 된다는 종래의 발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핵 억지력은 '상호확증파괴'에 의해 성립한다. 핵을 사용하면 어느 쪽이든 멸망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서로 억지하도록 기능하겠다는 합의가 핵전략을 '정당화'해왔다. 아베 총리가 상정하는 것은 서로 확실하게 파괴한 적이 없는 수준의 전쟁이다. 완전하게 '통제 아래'있는 전쟁, 말하자면 비전투원도 죽이지 않고, 도시도 파괴하지 않ㅎ고, 매스컴이 호전적인 여론을 떠들기만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위신만 과시할 수 있는 '계획적이고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전쟁'말이다. 아베 총리는 과연 그런 전쟁이 가능하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사용할 수 있는 억지력'이라는 발상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일본 국민은 두 번에 걸친 국정 선거를 통해 '민주당을 따끔하게 혼내주겠다'든지 '결정할 수 있는 정치'라든지 '뒤틀림 해소'같은 일상어로 정치를 논했다. 그러는 동안 비일상적인 상황으로 빠져들고 말았다.(2019년12월30일)

p279.

 애초부터 오키나와에 기지가 들어서야 할 지정학적 이유는 없다. 미군 기지가 훗카이도에 없고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소련'을 적국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소련군이 훗카이도를 통해 남하하면서 일본 열도의 방어 거점을 모조리 파괴하더라도 미군의 주력이 주둔한 오키나와만큼은 온전하게 남는다. 오키나와 기지는 이를 위한 포진이다. 따라서 미국의 가상 적국인 소련이 사라진 오늘날, 미군이 오키나와에 꼭 있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p280.

 비상사태가 발생해 모든 재산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몸 하나만 달랑 도피하려고 할 때, 금이라면 최대 10킬로그램(약 4500만엔, 2019년 11월6일 현재 대한민국 기준 5.5억원)쯤 소지할 수 있다. 그래도 걷고 달리는 동안 허리가 아프고 원망스러울 것이다.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의 한도는 기껏해야 이 정도다. 그것을 실감으로 표상해내는 것이 금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거렸다. 분수에 넘치게 자산을 갖고 있으면 거추장스러워진다. 그렇다면 '희사'하는 것이 좋다. 희사하기 싫은 사람은 병에 넣어 땅에 파묻어도 좋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살아있는 인간의 몸으로 제어할 수 없는 돈은 타인에게 주는 것 말고는 사용할 길이 없다. 이렇게 하면 부의 편재는 해소할 수 있다.

p286. '개헌파'가 아니라 '폐헌파'라고 이름 붙여야

 헌법기념일에 자민당의 헌법개정추진본부장 후나다 하지메(船田元)는 "9조 개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위기적 상황을 생각하면 해석의 확대에 의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명문 개헌의 방향은 어디까지나 유지한다고 한다. 즉 "임시변통일지도 모르지만 이해하기 쉬운 환경권 등을 부가하는 것을 첫 번째 국민투표에 부치고, 그 다음 사람들이 개정에 익숙해지고 나서 9조 개정에 착수하고 싶다." 솔질한 발언이다.

 해석 개헌으로 나갈 수 있는 데까지 나가고, 그것이 무리라면 명문 개헌으로 나가려는 정치가는 헌법 이념의 실현보다 그가 속한 정당의 정책 실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헌법을 철저하게 경시할 수 있는 정치가들이 뻔뻔한 낯짝으로 헌법 운운하고 이야기하는 꼴을 보면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아베 총리대신은 헌법 99조가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공무원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헌법에 결점이 있다드니, 애초부터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드니 하면서 헌법의 실질적인 공동화空洞化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속한 당의 개헌 초안 102조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국민은 이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 즉 국민 전체에게 헌법을 준수할 의무와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다는 이러한 헌법관이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순조롭게 개헌에 성공한 뒤 그가 현행 헌법을 대한 것처럼 국민이 신헌법을 대할 때, 총리는 어떤 논리로 그것을 금지할 생각인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나는 공문원이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지만, 제군은 내가 정한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해야 한다." 이런 요구를 관철하려면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헌법은 그때마다 정부의 형편에 따라 지킬 수도 있고 폐지할 수도 있는 일개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나는 이런 리얼리즘도 '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머릿속에 있는 생각에 맞추어 정당의 강령도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싶다.

 차라리 '헌법 폐지'가 낫지 않겠는가? 긴요한 사안은 내각회의에서 결정해서 주저 없이 실시하면 그뿐이다. 입법부의 심의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 헌법 조문을 내각의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 이것을 통치의 이상으로 삼는 사람들을 '개헌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폐헌파'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타당하리라.(2014년 5월19일)

p320.

 이러한 사고방식의 밑바탕에는 글로벌리스트의 공통적인 생각, 즉 '모든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인간관이 깔려있다.

 그러나 일정한 비율로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인간'이 없다면 나라는 멸망한다.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인간'은 그런 의미에서 '나라의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돈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하지만, 어떤 사람이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국제적인 공통성이 없다. '이곳에서만 통하는' 국지성이 최후의 순간에 한 나라의 토대를 받쳐주는 것이다.(2011년 3월7일)

p322. 다시, 폐를 끼치는 삶을 배우자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孫正義 사장이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자 구제를 위해 100억 엔과 공무원의 보수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한 발언이 화제로 올랐다. 그전에는 야나기 다다시柳井正 유니클로 사장(유니클로 창업자)이 개인적으로 10억 엔, 프로골퍼 이시카와 료石川遼 씨가 2억 엔을 '목표'로 상금을 기부하겠다고 한 것을 매스컴이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평소였다면 이런 기사에 반드시 '냉소적'인 어조가 감돌았겠지만 이번 보도에서는 누구나 냉소를 삼갔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위선적'이라는 둥, '이름을 판다'는 둥, '잘못을 무마하려는 면피용'이라는 둥...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이러한 상투적인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커다란 흐름 변화가 아닐까 한다. '공공의 복리를 위해 사재를 터는 행위'는 메이지, 다이쇼 시대까지만 해도 '성공을 거두고 이름을 날린' 인물이 짊어진 의무였다. 그때는 다들 한 사람이 거둔 사회적 성공이 무수한 사람들의 지원 덕분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성공을 자신의 노력이 거둔 결과로 보고 독점하려는 태도는 '잘못'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생각이 상식으로 통하지 않게 된 지 반세기가 흘렀다. 그후 오랫동안 사람들은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이 나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모범적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풍요롭고 안전한 시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는 또다시 '남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고 남이 나한테 폐를 끼치기도 하는' 삶을 학습해야 했다. 옛날에도 그럴 수 있었으니까 오늘날에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2011년 4월18일)

p325.

 인생은 어긋남의 연속이다. 우리는 대학도 잘못 선택하고, 취직할 회사도 잘못 선택하고, 배우자도 잘못 선택한다. 그럼에도 어떻게 상황을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 "자원봉사자의 선의와 현장의 요구가 어긋난다고 해서 풀이 죽을 것은 없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젊은 건축가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피해 지역에 갈게요. 그 사람들이 다소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라도 커튼 치는 일을 계속할게요."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는거야.(2011년 5월2일)

p328. '만사는 돈 문제'라는 사람의 속마음.

 대지진의 피해가 발생한 직후 블로그에 '소개

 우치다 타츠루의 시사 만평 모음집.

 

일본의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는 언론인이라 일본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꽤나 유익하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사회의 변화에 대한 일본 진보지식인의 감상과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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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6. '고학'을 권함

 

 일본 대학의 수업료는 비싸도 너무 비싸다. 국립대학도 첫해 납입금이 80만 엔을 넘는다. 수업료 감면이나 장학금 등 구제 대책은 있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학생 스스로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1970년에는 국립대학 입학금이 4000엔, 한 학기 수업료가 6000엔.... 창구에 1만 엔 지폐를 내면 학생증을 받을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시급이 600엔이었으니까 2시간 일하면 한 달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학생들은 부모의 지갑에 손대지 않고 고학苦學할 수 있었다.

 

 그 후 교육행정 지도에 의해 학비는 급커브를 그리며 상승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고학생'이 사라졌다.

 

 고학이 불가능해진 탓에 사회는 엄청나게 변했다. 하나는 진로 결정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자식이 '하고 싶은 일'과 부모가 '시키고 싶은 일'은 대개 다르기 마련이다. 고학이 불가능해졌다는 말은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부모가 절대로 동의해주지 않을 것 같은 분야)'를 단념하는 아이들이 아마 수백만 명 단위로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본의 지적 생산성을 얼마나 떨어뜨렸던 것일까? 그것 때문에 잃어버린 지적 자산은 수업료의 인상으로 국고에 거두어들인 금액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2009년 3월9일)

 

p168. 조직이 바라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많은 학생들은 취직 준비를 수험 공부와 비슷하다고 여긴다. 성적이 우수하고, 말솜씨가 빼어나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뽑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떨어진다고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채용 여부의 기준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모든 조직은 집단의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는 사람을 원한다. 조직이 바라는 인간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마음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자질은 반드시 '능력'과 일치하지 않는다.

 

 아무 조건 없이 리더를 지원해주는 '예스맨'의 능력ㄷ, 집단 내부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분위기 메이커'의 능력도, 논쟁이 달아오를 때 삐딱한 역설을 통해 찬물을 끼얹는 '심통쟁이'의 능력도, 하나같이 집단이 건전하게 기능하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수험 경쟁을 통해 배운 것은 탁 까놓고 말해 '타자의 능력 발휘를 방해하고 그 평가를 깍아내리는' 기술이다. 그런 능력은 현실 사회로 나갔을 때 백해무익하다. 경쟁 상대를 필사적으로 떨어뜨리려고 발버둥치는 학생은 경쟁 심리 때문에 면접관에세 낮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쳐주지 않는다.(2009년 4월20일)

 

p170. 될수록 캠퍼스에 오래 머물라.

 

 신학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신입생에게 학생 생활의 기본적인 요령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될수록 오랜 시간을 캠퍼스에서 지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수강신청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 대학생의 수업은 강의 1시간 당 예습과 복습에 드는 2시간을 더해야 한다는 전제 때문이다.(15주 동안 이렇게 3시간이 들어가는 강의를 1학점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것이 빈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시간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두어 배 시간을 더 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은 경험상 맞는 말이다.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고 밥을 먹은 뒤에 '휴식'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식이 온몸에 속속들이 퍼지게 하려면 앞뒤로 그 정도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또 하나의 요령은 될수록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생은 '가난을 기본으로' 생활을 설계해야 한다. 가난하면 캠퍼스를 떠돌아다니는 정도밖에 할 일이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예배 시간에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고, 정원에서 꽃을 바라보고, 교사 사이를 산책한다. 그러는 동안 만약 학생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아름다운 것' '지적인 고양을 느끼게 하는 것'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이미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심신의 감도를 높일 수 있는 곳이야말로 학교라는 공간이다. 또한 이것이 대학이 학생들에게 제공해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다. 건투를 빈다.(2009년 5월4일)

 

p210. 정치인들이 실언을 반복하는 이유.

 

 자, 청중을 이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방금 즉흥적으로 생각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이 방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요즘의 예능인이다.

 

p238. '일시적으로나마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듣고 싶다.

 

 민주당의 대표 선거가 끝나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이 발족했다. 이 내각의 긴급한 과제는 당내 통합과 야당과의 협조다.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최우선의 정치 과제인 것이다. 이 선택에는 현재 일본에 만연한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는 동안 어떻게든 되겠찌'하는 체념과 어렴풋한 희망이다.

 

 대지진의 피해, 쓰나미,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국나의 위기 직후에는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편에 착수해야 한다는(분노와 슬프이 뒤섞인) 목소리가 일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후 반년 동안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의 졸렬한 대응, 정보의 조작과 은폐, 기득권층의 반격 같은 흐름 속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차츰차츰 잦아들었다. 시스템의 기능 저하가 지나차게 심각한 상태라서 근본적인 재편 같은 것은 바랄 수도 없다는 현실을 뼛속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치가, 관료, 경제인, 방송인 등을 통틀어 일본의 지배 체제에는 신뢰할 만한 인물이 없다. 일본 국민은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들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으리나는 깊은 절망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장 전략 없이 재정의 재건은 있을 수 없다.' 오늘도 신문에는 이 말이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 말을 쓴 장본인도 '성장 전략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달리 쓸 말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성정 전략 없는 재정 재건'이란 '오로지 가난해 질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필시 그렇게 되리라고 마음속 깊이 생각한다. 다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면 '중뿔나 보이기'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다.

 

 따라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중뿔나게 나서지 않는' '귀에 거슬리는 말은 하지 않는' 총리의 등장은 '시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불가피하게 가난하고 활기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도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파국을 맞이하는 시기를 연기할 수는 있다. 그렇게 해서 '시간 벌기'를 하는 동안 외부로부터 생각하지 못한 어떤 계기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일본인은 이렇게 미미한 기대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하다못해 '일시적으로나마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2011년 9월12일)

 

p260. 백성의 안녕은 지고의 법

 

 국회 질문에서 아베 총리는 민주당 의원에게 인권에 대한 조문을 질문받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자, 총리는 일본국 헌법에서 포괄적인 인권 보장을 정한 조문이 몇 조인지 알지 못한다고 이해해도 좋겠습니까?"하고 질타당하는 인상 깊은 사건이 있었다. 개헌파의 우두머리가 '숙적'과 같은 포괄적 인권 보장을 정한 조문을 잊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그런 것은 없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라면 언젠가 그것의 존재 자체가 흐릿해지기도 하는 법이다. 어쩌면 총리가 생각하는 일본국 헌법은 벌써 불확실한 것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헌법 13조의 조문은 이렇다. "모든 국민은 개인으로서 존중받는다. 생명,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공공복지에 반하지 않는 한 입법 등 국정 안에서 최대의 존중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자민당의 헌법 개정 초안은 이렇다. "모든 국민은 사람으로서 존중받는다.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공익 및 공공질서에 반하지 않는 한 입법 등 국정 안에서 최대한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금의 '공공복지'를 개정안이 '공익 및 공공질서'로 바꾼 것이다. '공공복지'는 기본적 인권을 정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근거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랫동안 헌법학의 논쟁거리였고, 지금도 단일화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자민당의 개정안은 여기에 '공익 및 공공질서'라는 한정적이고 일의적인 해석을 부여한 것이다.

 

 '공공복지'라는 말의 용례는 저 멀리 법에 관한 키케로(Cicero)의 격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성의 안녕 salus populi은 지고의 법이다" 법치국가는 이것에 위배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그러나 '백성의 안녕'과 '공익 및 공공질서'는 말뜻이 다르다. 라틴어 salus는 '건강,행복,안녕,무사,생존'이라는 내포하기 때문이다. '공익과 공공질서'의 유지는 '백성의 안녕'을 위한 요건의 일부이기는 해도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공익과 공공질서를 지키기 위해 백성의 행복과 생존을 희생시키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통치자는 역사상 무수히 많았고, 지금도 많다.(2013년4월15일)

 

p263.

 

 공인의 적성은 '자신의 반대자를 포함해 집단을 댚해내겠다는' 각오에 달려 있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데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지지하고 동의하는 사람만 대표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리 거대한 조직을 이끈다고 할지라도 '권력을 가진 사인私人'일 따름이다. 나는 '공인'이 통치자의 사리에 오르기를 바란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 Jose Ortega y Gasset는 자유민주주의를 "적과 함께 살아가고, 반대자와 함께 통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역설적이고, 이토록 우아하고, 이토록 곡예와 비슷하고, 이토록 반자연적인 것을 생각해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참으로 잘 짚어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말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어떤 정치적 이상이 있다고 할 수 있을가?

 

p268. 귀담아들어야 할 자연과학지의 조언

 

 영국의 종합학술잡지 <네이처>가 (2013년) 9월5일자에 '핵 에러'라는 제목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문제를 다룬 논설을 게재했다. 그 글은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처리가 부적절하다는 점을 상당히 날카롭게 지적했다. 자연과학 학술지가 한 나라의 정부와 민간 기업이 저지른 그릇된 행적을 대상으로 논란을 벌이는 일은 지극히 예외적이다.

 

 '무책임하다고까지는 못해도 부주의한' 도쿄전력의 감시 시스템에 의해 오염수 탱크에서 새어나온 누수를 체크하지 못했다는 점. 당초에 '단순한 이상'이라고 경시한 누수가 실은 사고 이후 최대 규모의 '진짜 위기'였다는 점. 위기를 언제나 과소평가하고 정보를 불충분하게 제공해왔다는 점에 그 논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일본정부나 도쿄전력이나 과학자의 시각으로 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무시해왔다.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 세계적인 환경 문제에 파급을 미치지는 않을까, 국제사회는 진심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은 일본이 전세계 연구자의 지원과 전문적인 조언을 바탕으로 국력을 기울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런데도 이 나라 사람들은 올림픽 유치와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들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자력발전소 문제에 대해 매스컴이 집중적으로 질문을 퍼붓자 올림픽 유치위원회 이사장은 초조한 나머지, "도쿄와 후쿠시마는 250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후쿠시마의 사고를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으로 여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세계적으로 드높아지고 있을 때, 일본인은 태연하게 '후쿠시마의 사고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말해버린 꼴이다. 아베 총리는 "오염수의 영향은 원자력발전 사고가 일어난 항만 내로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고 하고, "지금까지도 그렇고, 현재나 미래에도 건강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앞의 논설을 이렇게 서술한다. "일본은 지원을 위한 조언을 얻기 위해 국제적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 연구와 오염 제거를 위한 국제적인 연대는 모니터링과 위기관리의 유용성과 유효성을 둘러싸고 산산히 무너진 공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산산이 무너진 공적 신뢰'를 회복할 셈인가? 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2013년 9월23일)

 

p276. 진심으로 '전쟁'을 의식하고 있는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 관련법, 특정비밀보호법, 공모죄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은 아베 정권이 진심으로, '전쟁'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일본 국민이 '진심으로 전쟁을 개시할 마음이 있는 정부를 받든 것은 전후 처음이다. 최근 2개월 동안 일본은 법제적으로 '언제라도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말았다.

 

 만약 내각총리대신이 센카쿠 열도 근처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군사적 충돌을 '영해 침입, 불법 상륙 사안'으로 인정한다면, 그래서 '신속하고 적절한' 군사 행동을 개시함으로써 전투 행위가 벌어진다면,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할 것"이라는 헌법 9조는 사실상 폐기된다.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떤 정보가 올라가고, 어던 논의가 이루어지고, 무엇을 결정했는가에 대해 국민에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곳에서 논의한 것은 '국가의 안전 보장에 관련된 특정 비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동중국해에서 어떤 중대 사안이 발생했고, 정부가 그것에 신속하게 적절하게 대응했다'는 '대본영의 발표'를 얼빠진 표정으로 듣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 일이 없다.

 

 10월에 열린 자위대 열병식에서 아베 총리는 "방위력은 그 존재만으로 억지력이 된다는 종래의 발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핵 억지력은 '상호확증파괴'에 의해 성립한다. 핵을 사용하면 어느 쪽이든 멸망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서로 억지하도록 기능하겠다는 합의가 핵전략을 '정당화'해왔다. 아베 총리가 상정하는 것은 서로 확실하게 파괴한 적이 없는 수준의 전쟁이다. 완전하게 '통제 아래'있는 전쟁, 말하자면 비전투원도 죽이지 않고, 도시도 파괴하지 않ㅎ고, 매스컴이 호전적인 여론을 떠들기만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위신만 과시할 수 있는 '계획적이고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전쟁'말이다. 아베 총리는 과연 그런 전쟁이 가능하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사용할 수 있는 억지력'이라는 발상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일본 국민은 두 번에 걸친 국정 선거를 통해 '민주당을 따끔하게 혼내주겠다'든지 '결정할 수 있는 정치'라든지 '뒤틀림 해소'같은 일상어로 정치를 논했다. 그러는 동안 비일상적인 상황으로 빠져들고 말았다.(2019년12월30일)

 

p279.

 

 애초부터 오키나와에 기지가 들어서야 할 지정학적 이유는 없다. 미군 기지가 훗카이도에 없고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소련'을 적국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소련군이 훗카이도를 통해 남하하면서 일본 열도의 방어 거점을 모조리 파괴하더라도 미군의 주력이 주둔한 오키나와만큼은 온전하게 남는다. 오키나와 기지는 이를 위한 포진이다. 따라서 미국의 가상 적국인 소련이 사라진 오늘날, 미군이 오키나와에 꼭 있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p280.

 

 비상사태가 발생해 모든 재산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몸 하나만 달랑 도피하려고 할 때, 금이라면 최대 10킬로그램(약 4500만엔, 2019년 11월6일 현재 대한민국 기준 5.5억원)쯤 소지할 수 있다. 그래도 걷고 달리는 동안 허리가 아프고 원망스러울 것이다.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의 한도는 기껏해야 이 정도다. 그것을 실감으로 표상해내는 것이 금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거렸다. 분수에 넘치게 자산을 갖고 있으면 거추장스러워진다. 그렇다면 '희사'하는 것이 좋다. 희사하기 싫은 사람은 병에 넣어 땅에 파묻어도 좋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살아있는 인간의 몸으로 제어할 수 없는 돈은 타인에게 주는 것 말고는 사용할 길이 없다. 이렇게 하면 부의 편재는 해소할 수 있다.

 

p286. '개헌파'가 아니라 '폐헌파'라고 이름 붙여야

 

 헌법기념일에 자민당의 헌법개정추진본부장 후나다 하지메(船田元)는 "9조 개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위기적 상황을 생각하면 해석의 확대에 의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명문 개헌의 방향은 어디까지나 유지한다고 한다. 즉 "임시변통일지도 모르지만 이해하기 쉬운 환경권 등을 부가하는 것을 첫 번째 국민투표에 부치고, 그 다음 사람들이 개정에 익숙해지고 나서 9조 개정에 착수하고 싶다." 솔질한 발언이다.

 

 해석 개헌으로 나갈 수 있는 데까지 나가고, 그것이 무리라면 명문 개헌으로 나가려는 정치가는 헌법 이념의 실현보다 그가 속한 정당의 정책 실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헌법을 철저하게 경시할 수 있는 정치가들이 뻔뻔한 낯짝으로 헌법 운운하고 이야기하는 꼴을 보면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아베 총리대신은 헌법 99조가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공무원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헌법에 결점이 있다드니, 애초부터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드니 하면서 헌법의 실질적인 공동화空洞化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속한 당의 개헌 초안 102조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국민은 이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 즉 국민 전체에게 헌법을 준수할 의무와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다는 이러한 헌법관이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순조롭게 개헌에 성공한 뒤 그가 현행 헌법을 대한 것처럼 국민이 신헌법을 대할 때, 총리는 어떤 논리로 그것을 금지할 생각인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나는 공문원이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지만, 제군은 내가 정한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해야 한다." 이런 요구를 관철하려면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헌법은 그때마다 정부의 형편에 따라 지킬 수도 있고 폐지할 수도 있는 일개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나는 이런 리얼리즘도 '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머릿속에 있는 생각에 맞추어 정당의 강령도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싶다.

 

 차라리 '헌법 폐지'가 낫지 않겠는가? 긴요한 사안은 내각회의에서 결정해서 주저 없이 실시하면 그뿐이다. 입법부의 심의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 헌법 조문을 내각의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 이것을 통치의 이상으로 삼는 사람들을 '개헌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폐헌파'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타당하리라.(2014년 5월19일)

 

p320.

 

 이러한 사고방식의 밑바탕에는 글로벌리스트의 공통적인 생각, 즉 '모든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인간관이 깔려있다.

 

 그러나 일정한 비율로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인간'이 없다면 나라는 멸망한다.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인간'은 그런 의미에서 '나라의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돈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하지만, 어떤 사람이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국제적인 공통성이 없다. '이곳에서만 통하는' 국지성이 최후의 순간에 한 나라의 토대를 받쳐주는 것이다.(2011년 3월7일)

 

p322. 다시, 폐를 끼치는 삶을 배우자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孫正義 사장이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자 구제를 위해 100억 엔과 공무원의 보수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한 발언이 화제로 올랐다. 그전에는 야나기 다다시柳井正 유니클로 사장(유니클로 창업자)이 개인적으로 10억 엔, 프로골퍼 이시카와 료石川遼 씨가 2억 엔을 '목표'로 상금을 기부하겠다고 한 것을 매스컴이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평소였다면 이런 기사에 반드시 '냉소적'인 어조가 감돌았겠지만 이번 보도에서는 누구나 냉소를 삼갔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위선적'이라는 둥, '이름을 판다'는 둥, '잘못을 무마하려는 면피용'이라는 둥...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이러한 상투적인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커다란 흐름 변화가 아닐까 한다. '공공의 복리를 위해 사재를 터는 행위'는 메이지, 다이쇼 시대까지만 해도 '성공을 거두고 이름을 날린' 인물이 짊어진 의무였다. 그때는 다들 한 사람이 거둔 사회적 성공이 무수한 사람들의 지원 덕분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성공을 자신의 노력이 거둔 결과로 보고 독점하려는 태도는 '잘못'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생각이 상식으로 통하지 않게 된 지 반세기가 흘렀다. 그후 오랫동안 사람들은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이 나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모범적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풍요롭고 안전한 시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는 또다시 '남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고 남이 나한테 폐를 끼치기도 하는' 삶을 학습해야 했다. 옛날에도 그럴 수 있었으니까 오늘날에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2011년 4월18일)

 

p325.

 

 인생은 어긋남의 연속이다. 우리는 대학도 잘못 선택하고, 취직할 회사도 잘못 선택하고, 배우자도 잘못 선택한다. 그럼에도 어떻게 상황을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 "자원봉사자의 선의와 현장의 요구가 어긋난다고 해서 풀이 죽을 것은 없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젊은 건축가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피해 지역에 내갈게요. 그 사람들이 다소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라도 커튼 치는 일을 계속할게요."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는거야.(2011년 5월2일)

 

p328. '만사는 돈 문제'라는 사람의 속마음.

 

 대지진의 피해가 발생한 직후 블로그에 '소개疎開를 권함'이라는 글을 올렸다. 찬반양론이 있었다. 내 귀에 들린 목소리는 거의 다 '찬성'(이라기보다는 '벌써 소개했다')이었다.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혼란을 부채질하지 말라'는 비판이 있었다. 내가 한 말은 이것뿐이었다. "임산부나 어린이, 노인과 병자 등 대혼란이 일어났을 때 자력으로 탈출하기 힘든 사람들은 교통과 통신 인프라가 기능하는 동안 빨리 안전한 곳으로 소개하는 것이 좋다." 무조건 '다들 도망가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 이런 반론이 들려왔다. "소개 때문에 인구가 줄어들면 경기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수도권에 머물면서 평소처럼 소비활동을 계속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나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반면, 그들은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톱니가 맞아 들어갈 리 없다.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대책이 지지부진한 까닭은 '국토의 보전과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할 정계와 재계의 관리들이 실은 그것을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국토의 보전과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돈을 어떻게 충당할까?'하는 생각이 가득 차 있다.

 그들에게 최우선 과제는 방사선량의 측정이나 원자력발전의 멜트스루melt-through에 대처하는 기술적인 대응이 아니라 추경예산과 국채다. 그것은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는 리얼리즘을 채용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돈만 있으면 어떤 곤경도 처리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을 고백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만사는 돈 문제'라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은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은 돈이 없는 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로 '돈만 있으면(돈은 없지만) 모든 것은 잘 풀린다(풀릴 것이다)'는 조건법 구문을 통해 이 세계가 그렇게 부조리하지 않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법의 돈'을 두고 정신없이 주판알을 튕기는 동안에만 그들은 공포의 대상에서 눈을 떼고 한때의 평안을 후무릴 뿐이다.(2011년 7월4일)

 p338. '이기적'으로 굴 수 있는 까닭

 1970년 이후 42년 만에 국내의 모든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정지시켰다. 나는 올해가 '원자력발전 제로 원년'으로서 오랫동안 국민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마이니치신문>(2012년) 5월8일자 여론조사에서 올해 여름 원자력발전을 중단한 탓에 전력이 부족하리라고 에측하고, "절전과 정전에 따른 불편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하는 물음에 74퍼센트가 '참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얼마나 씩씩하고 믿음직한 국민인가?

 원자력발전 재가동 추진파 사람들이 보기에 이것은 뜻밖의 숫자가 아닐까? 왜냐하면 74퍼센트 중에는 전력을 마음껏 사용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의 위기를 깨닫더라도 '딴 일에는 마음을 쓸 수 없는' 절체절명의 리얼리즘에 굴복할 것이라고 재가동 추진파는 예측했을 것이다. 국토가 오염되는 위기에 빠지든말든, 후손에게 핵폐기물 처리 비용을 떠넘기든 말든, 그들은 그런 것보다 '당장 내일 먹을 끼니'를 걱정한다. 지금 당장만 좋으면, 나만 좋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재가동 추진파는 그런 자포자기의 리얼리즘으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셀제로는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는 금방 알 수 있다. 같은 설문조사를 보면 "당신은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정부의 설명을 믿습니까?"라는 물음에 77퍼센트가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마음... 이것이 불편함을 참겠다는 국민적 결단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좋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도리에 어긋난 이기적인 언사를 떠들어댈 수 있는 경우는 역설적으로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공공의 복리를 생각하고 비이기적으로 행동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때뿐이다. 고속도로가 정체되어 있을 때 갓길로 달리는 운전자는 자기 이외의 다른 운전자가 긴급 차량을 위해 갓길을 비워둔 경우에만 편익을 취할 수 있다. 

 일본 국민은 '일단 나 혼자만이라도 비이기적으로 행동하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웃전'의 선의나 양식을 더 이상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2012년 5월27일)

p341.

 원자력발전 사고를 거친 이래 일본 시스템은 치명적으로 낙후하고 있다.

p342.  이 나라에 '어른'은 있는가?

 원자력발전 사고 직후 미국정부는 군용기로 방사선을 측정하고 상세한 '오염 지도'를 작성했다. 지도는 방사성 물질이 북서 방향으로 띠 모양으로 튀어 흩어진다는 것을 밝혔다.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보안원과 문부과학성은 그 데이터를 공표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총리 관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에도 전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잘못된 방향으로 피난을 떠난 많은 주민들이 피폭당하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했다.

 '말단 벼슬아치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들을 지배하는 원칙은 '규정으로 정해놓지 않은 사안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것과 맞닥뜨렸을 때 그들은 판단을 보류하고 웃전의 지시를 기다린다.

 웑자력발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본의 관청은 실효 있는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았다. 원자력발전 사고는 '일어날 리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고는 일어났다. 모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관리들은 판단을 보류했다.

 관리들도 '오염 지도'의 중요성은 금방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활용해 주민의 피폭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행동한 관리는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 좀 놀랄 필요가 있다. '원자력발전 사고가 일어나면 외국 정부가 제공해준 데이터를 어떻게 취급할까?'에 대한 규정이 예규집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규정상 그들의 행동(이라기보다는 비행동)에 하자는 없다. 그러나 요직에 있는 사람은 때로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지에 대해 적절한 기준이 없을 때 적절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 나라에서는 예부터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불렀다.

 일본 관리의 열등함은 제도적인 문제가 아니다. 업무 규정을 세밀화하고, 근무 고과를 엄격하게 정하면 어떻게든 정상화되리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질 자체가 열등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제대로 생각할 줄 아는 '어른'을 등용할 수 있을까? 무엇을 기준으로 '제대로 된 어른'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식별할 수 있을까? 문부과학성과 경제산업성은 '직업교육'이나 '글로벌 인재 육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내부에는 왜 어른이 없을까?'를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2012년 7월2일)

p352. 제국의 수도 하늘은 지금보다 파랗고...

 (2013년) 10월6일 조간에는 1940년에 작성한 '환상의 도쿄 올림픽' 영어판 계획서를 발견한 어느 수집가의 기사가 났다. 도청과 박물관에도 없는 귀중한 사료라고 한다. 나는 이 계획서의 불어판을 읽은 적이 있다. 스위스 로잔에 있는 올림픽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자료실 '일본' 코너 책장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1964년 도쿄 올림픽 계획서라고 생각하고 펼쳐보았는데, 거기에 나온 수도의 사진이 내가 아는 도쿄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래서 새삼 표지를 다시 보았더니 1940년 올림픽 계획서였다. 해가 저물 때까지 열람실에서 읽어나갔다. 실현하지 못한 행사 계획서는 현실과 몽상 중간에 머무는 반투명한 유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올리픽의 도쿄 개최가 정해진 것은 1936년이었다. 다음해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1938년에 개최가 취소되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과 1944년(런던이 개최 예정 도시였다.)은 올림픽이 없었다.

 '환상의 도쿄 올림픽'에 대해 나는 그런 계획이 있었다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치의 정치 쇼였던 베를린 올림픽과 비슷하게 이데올로기 색채가 강한 야외극을 구상했을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했다.

 그러나 계획서를 읽어보니 뜻밖에도 꽤 진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런 비상시에 스포츠에 열광할 여유가 있어?'하고 말할지도 모르는 군부와 여론에 마음을 쓴 탓인지, 신규 건축물은 적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경기장과 선수촌 사진을 보고 나는 특히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1930년대 제국의 도시 하늘은 무척 넓고 파랗다는 것(흑백사진이지만 '투명하고 깨끗한 창공'이라는 점은 알 수 있었다.). 둘째 이때 올림픽에 출전할 운동선수 대다수는 그 후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열람실 책상에 팔꿈치로 턱을 괴고 나는 '1940년에 도쿄 올림픽을 개최한 세계'를 공상해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나오는 '평행세계'적인 공상이다. 그 다음에는 미국과의 전쟁을 회파한 대일본제국을 상상했다. 제국의 수도 하늘이 지금보다 파랗고, 청년들이 지금보다 조용하고 수수한 일본을 상상했다.(2013년 10월21일)

 짐 로저스가 일본의 저널리스트 오노 가즈모토(초예측도 이 사람이 유명 작가들과의 대담을 엮은 것)와 대담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그의 최신 세계 동향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고, 특히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한국에 대한 견해를 자세히 밝혀놓았다.

원제가 "お金の流れで讀む日本と世界の未來 世界的投資家は豫見する, 돈의 흐름으로 읽는 일본과 세계의 미래, 세계적 투자가는 예견한다." 로 책의 내용을 아주 잘 요약하고 있다.

일본의 미래는 상당히 어둡게 예상했고, 한국은 북한과의 통일이라는 이벤트가 진척된다는 전제하에 매우 밝게 묘사해놨다.

 

국내에 번역된 수필만 수 십권이 되는 관록의 여류 수필가.(이 책 보면서 첨 알았다.)

1931년 생으로 88살이다. 여전히 거의 매년 수필집 한 권씩은 내놓는 분이다.

이 수필집은 1970년 작품으로 39살에 썼다.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이룩한 나이에 지난 삶을 돌아보는 내용 위주로 채워져있다. 수필의 특성상 부담없이 읽을만하다.

2차 대전을 거치고, 일본의 패망 이후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가 느끼는 페이소스랄까? 그런것이 있다.

사실 수필은 동시대적인 느낌이랄까 그런것이 강하게 작용하는 장르라서 50년 정도가 지나면 사고가 낡은 느낌이 들기 쉽다. 이 책은 전혀 그런게 느껴지지 않는다. 상당히 리버럴하면서도 과격한 부분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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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8.

 지금 세상에 범람하고 있는 연애가 식어서 불어터진 라면같이 된 것은 부모나 선생이나 선배나 이웃이 젊은 사람들의 연애를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p86.

 인간은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이 없이는 자신의 존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용서하게 될 것이다.

p118.

 고통은 함께하지 않으면 남이 된다.

p154.

 하지만 자신에 대해 가장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뿐이다.

p156.

 인생은 괴로움을 촉각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서두에도 써놨듯이 그간의 도올 선생님의 책이 어렵다는 불만(?)이 많아서 작심하고 쉽게 쓰셨다고 한다.

쉽긴 하다. 선생 글의 특징인 기나긴 서론과 말미에 축약된 주제의 구성은 역시 변함이 없다.

반야심경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의 불교와의 인연, 그리고 반야심경을 이해하기 위한 불교사적인 배경 지식,

한국 근대사의 불교의 모습과 그런 모습에 이르기까지 조선사에 흐르는 한국 불교의 전통에 이르기까지 막힘없이 술술 풀어나가는 선생의 이야기 솜씨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바가 있다.

선생님의 불교 관련 서적이 금강경 강해,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3권)의 2책(권수로는 4권)이 있었는데 이 책으로 어느 정도 불교에 대한 선생의 생각도 정리가 된 듯 하다.

개인적으론 선생이 아직 힘이 있으실 때, 조선역사에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사상사를 한 번 정리해주시면 좋겠다라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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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엄마의 공안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용옥아! 왔구나!" 그 말씀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아들 용옥이만 보였지, 승복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 순간 종교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41. 서산의 입적시

 팔십년전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전에는 거시기가 난 줄 알았는데

 팔십 년을 지나고 보니 내가 거시기로구나!"

아주 간단하고 간결한 명제입니다. 자기 자신의 화상(畵像 )을 놓고 하는 말이니 거시기는 객체화된 "자기Ego"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나의 모습이 나의 밖에 객체로서 걸려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인식이 자기 "밖"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어 철들고 보니 여기 살아있는 나가 곧 거시기, 즉 거시기는 주체적인 나의 투영일 뿐, 영원히 살아있는 실상은 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p43. 거시기와 예수, 거시기의 철학

 거시기를 "예수"로 바꾸어 놓고 보아도 똑같습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상이 신앙의 대상으로서 거시기화 되어 있는 것입ㄴ니다. 그러나 신앙의 궁극에 도달한 자는 깨달을 것입니다. 예수가 나의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곧 예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죠. 내가 곧 십자가를 멘 예수가 될 때에만이 그리스도(=구세)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p68. 사람이 없다.

 깨달음이란 타인에게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전한다는 것은, 타인이 나의 깨달음과 같은 경지에 있을 때 그 깨달음의 경지가 스스로 이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나의 깨달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공감의 전입이 가능한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그만큼 경허의 깨달음은 지존한 것이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이것은 진정 성우 경허의 대오의 경지를 나타내는 확철한 고독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p82. 머슴살이 김 서방, 이 서방이 모두 부처님이외다.

 "절간에 재물이 쌓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외다. 이 돈으로 인근 30리 굶주린 백성들에게 양식을 나눠주시는 것이, 훗날 강 선생님께서 극락왕생하시는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사님, 저도 이 천장사 부처님께 시주를 해서 복을 좀 지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은 이 천장사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머슴살이 하는 김 서방, 이 서방, 농사직소 사는 박 첨지, 서 첨지, 이들이 다 부처님이오이다.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께 시주하는 것과 똑같은 것, 머슴이나 하인이나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시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불공입니다."

p131. 아트만이 없다=실체가 없다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아(我)는 서양철학언어를 빌리면 "실체Substance"에 해당됩니다. 아주 간닪히 얘기하면 모든 사물을 실체가 없다. 즉 자기동일적 분별태가 없다. 모든 사물은 본질이 없다. 실체라는 것은 "아래에sub-" "놓인 것stance"이라는 의미이니까,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 본체, 영원한 이데아를 의미합니다. 모든 존재하는 사물에는 그러한 아트만이 없다는 것이죠.

p136. 무전연기와 환멸연기

 유전연기流轉緣起(생성적 인과) :  고제苦諦 과果 / 집제集諦 인因

 환멸연기還滅緣起(소멸적 인과) : 멸제滅諦  과果 / 도제道諦 인因

 p139. 불교사의 특징 : 전대의 이론을 포섭하여 발전

 사성제의 진리이론도 매우 간단한 듯이 보입니다. 인생은 고통스럽고, 그 고통에는 집적된 원인이 있고, 그 집착을 없애면 열반적정에 든다. 그런데 그 멸집滅執에 8가지 방법이 있다. 그 8가지 방법을 요약하면, 계.정.혜 삼학이다.

계戒 sila : 정어定語  정업定業  정명定命

samadhi : 정념定念 정정正定                  이 모두를 실행하는 정정진正精進

혜慧 panna : 정견定見 정사유正思惟`

p142. 자기 삶의 화두만 유효하다.

 득도라는 것은 오직 자기 삶의 느낌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느낌의 심화는 "혜"의 공부에서 생기는 것이지 "간화看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삼학에 이미 선종과 교종이 다 들어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대장경이 다 들어있는 것이죠.

p153.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지명 하나, 인명 하나, 나라이름 하나를 그냥 적당히 넘어가면 생동하는 역사의 흐름의 핵을 유실하게 됩니다. 

P155.

 이러한 확대과정에 역행하여 극도의 축약화작업이 이루어집닏. 그리고 이 축약은 단순한 축약이 아니라 단행본으로서 자체의 유기적 독립성을 갖는 단일경전이 되는 것이죠. 이 반야경 중에서 독립적 단일경전으로 대표적인 것이 <금강경>과 <반야심경>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따로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두 경전은 동일한 반야경전그룹 내의 두 이벤트일 뿐입니다. <금강경>도 <금강반야바라밀경>이고 <반야심경>도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입니다. 둘 다 "반야바라밀"이라는 주제를 설파한 경전들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금강경>은 현장의 <대반야경>체제 속에 편입되어 있는데 반해(600권 중에 577권이 <금강경>이다), <반야심경>은 극히 짧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반야경>에 포섭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만큼 <반야심경>은 독자적 성격이 강했다고 말할 수 있지요.

P179. 기독교역사는 대승기독교를 허락치 않았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도 일정한 권위의 틀 속에서만 머문 것이고 진정한 대승의 종교혁명을 이룩하지 못했습니다. 아나밥티스트들Anabaptists(자각적이지 못한 유아세례는 무효라는 것을 주장한 사람들)의 주장도 수용하지 못하고 박해했으며, 토마스 뮌처Thomas Muntzer, 1489~1525(종교개혁시대의 래디칼한 신비주의 설교자. 루터에 반대)의, 성경은 단지 과거의 영적 체험의 잔재일 뿐, 그것이 내 마음속에서 영적 생명력을 갖지 않는 한 휴지쪽일 뿐이라는 주장을 이단으로 간주했습니다. 뮌처는 비참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되었습니다.

P186. 6바라밀의 등장

 새로운 대승의 실천원리가 이른바 "6바라밀六波羅蜜 "(육도六度)이라고 하는 것이죠. 1)보시布施 2)지계持戒 3)인욕忍辱 4)정진精進 5)선정禪定 6)지혜智慧(혹은 智惠)라는 것인데, 250계율과 같은 것에 비하면 매우 일반화 되고 추상화 되고 유연성 있는 원칙이 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6번째의 지혜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반야"인데, 6바라밀은 반야의 바라밀에서 완성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서 앞의 5바라밀은 제6바라밀을 위한 전 단계에 불과한 것이죠.

p190.

 타율적 계율이 느슨하게 되면 인간의 자율적 지혜는 고도의 자기 조절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인간이 자율적 자기컨트롤 능력이 없을 때는 당연히 타이트한 계율 속에서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대승의 발전은 계율의 느슨함을 초래함과 동시에 지혜의 특별한 수행, 특별한 자각적 바라밀다, 완성의 길을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p192.

 결국 "지혜의 완성" "지혜의 배를 타고 피안으로 고해를 건너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바로 아상我相을 죽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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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원문(나무위키 + 도올선생 해석)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을 건너느니라.

(도올) 관자재보살께서 심원한 반야의 완성을 실천하실 때에 오온이 다 공이라는 것을 비추어 깨달으시고, 일체의 고액을 뛰어넘으셨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도 그러하니라.

(도올) 사리자여! 오온개공이라는 말이 과연 무엇이겠느냐? 색이 공에 다르지 않고, 공이 색이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나머지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는 뜻이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형태는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도올) 사리자여! 지금 내가 깨달은 세계, 반야의 완성을 통해 조견한 세계, 제법이 공한 이 모습의 세계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다.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고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도 없으며,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無意識界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무의식계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도,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도올) 그러므로 공의 모습 속에는 색도 없고, 수도 없고, 상도 없고, 행도 없고, 식도 없다. 따라서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고, 또한 안식계에서 의식계에 이르는 모든 식계도 없다.

無無明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멸집도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다. 

(도올) 뿐만이냐! 싯달타께서 깨달으셨다고 하는 12연기의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도 없다. 이렇게 12연기의 부정은 노사의 현실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니 노사도 없고 노사가 사라진다는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러한 12연기를 요약적으로 표현한 고.집.멸.도 또한 없는 것이다.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무소득이기 때문이다.

(도올) 앎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다. 반야 그 자체가 무소득이기 때문이다!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도올) 보리살타 즉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다.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는 고로, 공포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도된 의식과 꿈같은 생각들을 멀리 벗어나 버리고, 끝내 열반에 도달한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무상의 정등각을 얻는다.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고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도올)그러므로 그대들은 다음의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반야바라밀다야말로 크게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더 이상 없는 주문이며, 비견할 바 없는 뛰어난 주문이라는 것을! 이 주문이야말로 일체의 고를 제거할 수 있다. 진실한 것이요,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니 이러하니라.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깨달음을 이루자

(도올)마지막으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겠습니다. 곧 그 주문은 다음과 같이 설하여집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추가 해석)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

=>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오노가즈모토가 일본의 시사잡지 보이스에서 저명학자들과의 인터뷰를 베이스로 엮은 책.

원제 "未來を讀む AIと格差は世界を滅ぼすか 미래를 읽는다. AI와 격차는 세계를 망가뜨릴 것인가"

에서 드러나듯 최근의 이슈화되는 인공지능, 부의 양극화, 계급의 격차, 수명연장, 핵 문제들을 각각의 전문가와 함게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고 되어 있다. 

개인적으론 유발하라리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 정도가 공감된다. 하지만 이것도 하라리와 다이아몬드의 기존의 책의 주장의 반복이기 때문에 굳이 이들의 주요 작품을 본 사람에겐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맨 뒤의 윌리엄 페리는 특히 동북아시아에서의 정세, 그 중 북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1990년대의 북핵 상황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최근 남북 관계 개선과 북미의 핵협상으로 이 부분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데 윌리엄 페리보다는 한국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책이 훨신 내용도 많고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인터뷰어이자 편집자가 일본인이라 그런지 마지막 한국정세에 관한 문제에선 조금은 편향된 시각이 읽힌다. 어떤면에선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 어떤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시사대담같은 내용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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