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들이 젊은 세대로 소비의 주체 및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전 60~80년대생들과 본질적으로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낀 필자가 몇년 여에 걸쳐서 이 주제를 파고 들면서 준비한 책.

현재 진행형의 변화이기 때문에 정확히 이렇다고 정의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는  90년대생 이후 세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 책을 출간 당시에 한 번 봤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직원들에게 권장도서로 추천하면서 다시 유명해졌기에 함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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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기간제 일자리는 물론 노동법의 규율에서 벗어난 각종 특수 고용 형태 일자리가 넘쳐나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전체 노동자의 46퍼센트가 비정규직인 기형적 고용 구조는 일상이 됐다. 지금 산업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일은 시키되 고용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유노동 무책임'이다. 그러니 1990년대 출생 취업 준비생들이 직업을 고를 때 안정성을 가장 큰 가치로 꼽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직업 안정성이 높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같은 국가기관이다.

 

 게다가 최근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된 덕에 생애소득이 높아서, 기존의 인식과는 다르게 오히려 대기업보다 많은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재학 중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퇴직할 때까지 사기업 취업자보다 최소 3억 3,605만 원에서 최대 7억 8,058만 원까지 더 많은 누계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의 임금인상율은 연평균 7퍼센트대 수준으로 대기업의 6.2퍼센트보다 높고, 공무원 퇴임 연령 역시 평균 56~59세로 대기업 평균인 52세보다 높다. 이제 공무원은 '가늘고 길게'가 아니라 '굵고 길게'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공무원은 구조조정의 공포가 없다. 한국 정부가 수립된 1953년 이래로 단 한 번도 공무원 구조조정을 진행한 적은 없다. 정부가 가장 모범적인 고용주인 셈이다. 공무원으로서 특별한 결격 사유가 생기지 않는 한 직장을 잃을 걱정은 없는 것이다. 그 공포에서의 해방은 현대 사횡에서 최소한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한다.

 

p32.

 

 2008년 두산그룹을 새로운 재단으로 맞이하게 된 중앙대학교의 경우, 구조조정과 함께 교양 필수 과목으로 '회계와 사회'라는 회계학 수업을 개설했다. 학생들이 전공과 상관없이 졸업을 위해서 회계학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덕진 서울대학교 교수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학문을 왜 학생들이 자기 돈 내고 배워야 하는가"라고 맹비난했다. 대학이 "학문적 가치가 아닌, 기업에 맞춰진 인재만을 양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당시 박용성 이사장은 "인문계든 자연계든 대학 졸업후 직장을 얻게 되면 처음 부닥치는 것이 현금 흐름에 대한 이해"라며 "회계학을 필수 교양 과목으로 한 것은 학생들의 장래를 위한 하나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사회 진출이 대부분 기업과 연계되지만, 모든 학생의 진로가 똑같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기업가의 성향과 입김이 학교 운영에까지 적용된 사례다. 하지만 여러 학내의 비판에도 대졸 실업자들의 지속적인 증가는 대학의 직업교육기관화를 부추기고 있다. '2015년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2014년 청소년(9~24세)의 48.6퍼센트가 대학 이상 교육의 주목적이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능력과 소질개발'은 36퍼센트, '인격이나 교양을 쌓는 것'은 1.8퍼센트에 그쳤다.

 

p43.

 

 90년대생들은 자신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특정 이상을 실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현 시대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p53.

 

 국내에서는 현재까지도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을 하나로 묶어서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한민국의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존 세대에 비해서 출생률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기존 세대에 비해서 출생률이 떨어졌다는 것은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비교해 굉장히 큰 차이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그 숫자를 바탕으로 강력한 소비층으로 성장한 것에 반해 한국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세대가 이전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교체될 수 있을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바로 합계 출산율이다. 세대가 교체되는 데에 필요한 대체출산율은 선진국의 경우 2.1명이다. 하지만 미국이 2000년대 후반까지 2.05명 수준을 유지한 것에 반해, 한국은 1983년 2.06명을 나타낸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0명을 넘어선 적이 없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출산 제한 정책 때문이다. 한국은 6.25전쟁 전후인 1955년 합계 출산율이 6.33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1970년 합계 출산율이 4.53명을 기록하는 등 지속적으로 한 가정에서 평균 4명 이상의 아이를 낳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강력한 출산 억제 정책을 폈다. 정책의 캐치프레이즈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이마저도 다시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으로 바뀌었다. 1981년에는 인구증가억제 종합시책이 체택되었고, 1985년도에도 자녀 수에 따른 주민세, 의료보험료 등이 차등으로 부과됐다. 이런 정부 정책의 결과였을까? 지금은 현실은 OECD국가중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정부는 출산장려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판국이다. 1970년 이후 한국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84년 최초로 합계 출산율이 2명 이하(1.74명)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1980년대생들은 둘 이상의 형제자매를 가진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생들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강력한 소비층이 될 밀레니얼 세대의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p67.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반세기 전, 청년이 미래를 선도하는 사회를 전망했다. 기성세대가 청년에게 배워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하리라는 것이었다. 증거는 당시 미국의 경험이었다. 미국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세대별로 상이한 적응력을 보였다.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하여 이주해온 기성세대(이주 1세대)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컸지만, 미국에서 성장한 자녀(이주 2세대)들은 부모보다 더 빨리 적응했다. 이런 사실에 착안하여 미드는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보다 그로부터 자유로운 청년이 더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따라서 젊은 세대에게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할 때가 올 것이라 전망하였다. 살아본 적 없는 미래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이주민'인 셈이다.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한겨례> 인터뷰에서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라는 촌철살인으로 화제가 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오늘날이 '먼저 안 게 오류가 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농경 사회에서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는 겁니다"라며,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입니다. 먼저 안 건 전부 오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되죠"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과거 경험이 이젠 판단의 기초 혹은 가르침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p95.

 하지만 미래에도 책이 디지털 미디어 혁명에서 비켜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출판사와 유통업자들도 디지털 생산과 유통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다른 미디어 회사들이 그랬던 것만큼이나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득이란 잉크와 종이를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인쇄 비용이 들거나 트럭에 무거운 책들을 실어 보낼 필요도 없으며, 재고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은 곧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전자책이 인쇄된 책의 절반 가격에 판매되는 상황이 드문 일은 아닌데, 이는 일정 부분 전자책 리더기 생산 업체들에 주어지는 보조금 때문이기도 하다. 이 엄청난 할인 혜택은 사람들이 종이에서 픽셀로 옮겨 가도록 하는 강력한 유인책으로 작용했다.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소수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사적인 표준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노스웨스턴대학교 교수 그룹은 2005년 <Annual Review of Sociology>에서 우리의 독서 습관에 있어 최근의 변화들은 '대중적인 독서의 시대'가 우리 지적 역사에 있어 짦은 '예외'였음을 암시한다고 했다. 대중적인 독서는 예전의 사회적 기반, 즉 독서 계층이라 부를 수 있는 소수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2017년 국회에서 발표한 <독서와 시민의 품격>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사람의 뇌는 본래 독서에 적합하게 진화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독서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독서를 사람들이 계속하는 이유는 독서가 가져다주는 이득 때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마존의 최고 경영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킨들을 소개할 당시 스스로를 찬향하는 듯이 말했다. "책과 같이 매우 진화한 물건을 택해 개선하는 것은 참으로 진취적인 일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읽는 방식까지 바꿀 것이다." 이는 거의 확실하다. 사람들이 읽고 쓰는 방식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바뀌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글이 인쇄된 종이에서 빠져나와 기술의 생태계 속에 정착됨에 따라 계속될 것이다.

 

p107.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슬로가 말년에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바꿨다는 사실을 모른다. 욕구단계설에서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장 꼭대기에 올려놓았던 매슬로는 말년에 인생 최고 경험을 '자기초월', 즉 자아보다 더 높은 목적을 위한 삶에서 찾았으며, 본인이 종전에 최고 수준의 욕구로 꼽았던 자아실현이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이야기했다.

 

p154.

 기존 세대에게 신입 사원들은 자기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이고, 새로운 세대에게 기존 세대들은 이미 회사에 믿음을 상실했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충성하는 꼰대들로만 보일 뿐이다. 사실 이렇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관련한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90년대생들만의 일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갈등은 훨씬 이전부터 일어났다. 1965년 이후 출생한 X세대는 1990년대부터 회사에 진출하면서, 이전의 베이비붐 세대와 갈등을 보였다. 이들은 직장에서의 성공과 돈버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던 젊은(Young) 도시의(Urban) 전문직(Professional) 즉 여피 Yuppies과는 다르게 젊고(young), 개인주의적이며(Individualistic), 자유분방하고(Free-minded),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수도 적은(Few), 즉 이피족 Yiffie으로 불렸다.

 이들은 일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결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회사에 충성하려 하지 않아, 회사에 대한 충성을 높게 사는 기존 세대나 관리자들이 이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기업들은 이때부터 기존의 전통적인 HR정책에 변화를 두고 새로운 세대에 맞는 인재 관리 방법을 재정립하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생들이 기업에 유입됨에 따라, 야근과 주말 근무를 요구하는 기존 베이비붐 세대들과 새로운 세대와의 갈등이 일어나곤 했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아이디어는 많지만 애사심과 팀워크가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성과급 제도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신세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원대한 기업 철학을 내세움으로써 이들의 관심을 최사로 돌리는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으니, 결국 회사에 충성을 하면 그 대가가 승진과 몸값 상승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을 가정했다는 것이었다.

 90년대생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공식을 배격한다. 새로운 세대는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는 인터넷상의 '직장 계명'에 동의하고, 이를 넘어서 충성의 대상이 '회사'여야 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한다. 찰스 핸디는 <코끼리와 벼룩>에서 오늘날의 충성심이란 것은 "첫째가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것, 둘째가 자기 팀과 프로젝트에 대한 것, 마지막이 회사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p157.

  믈론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던 가난한 나라를 지금과 같이 일으킨 건 성실한 노동자의 헌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회사가 열심히 일한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1997년 IMF 이후로 열심히 일해온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내팽겨쳐졌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그러니 90년대생들에게 근명, 성실을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p169.

 2012년에 회사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배모 씨(1990년생)는 2012년부터 2년간 본인에게 주어진 모든 휴가를 빠지지 않고 모조리 사용했다. 그에게 중요한 가치는 연차 수당과 같은 돈이 아니라 인생의 여유였다.

 

 "본인에게 주어진 휴가를 다 쓰지 않고 휴가를 다녀오지 않은 것이 마치 더 일을 열심히 한 듯이 으스대는 선배들을 볼 때면 얼간이같이 느껴져요. 내 휴가를 내가 사용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얼마 전에 팀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휴가가 너무 잦은 거 아닌가?'라고 하는데 기분이 안 좋았죠. 지적하려면 업무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페이스북에 '젊은 사원의 휴가 사유'라는 이름의 짤이 떠돌았다. 사원이 적은 휴가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다음 날이 쉬는 날이어서." 이처럼 이들은 본인에게 주어진 휴가 기간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용할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만약 황금연휴가 아닐지라도, 징검다리 휴일이 있다면 그들은 휴가를 붙여서 자체적으로 황금연휴를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에 맞춰서 최근 기업들은 징검다리 연휴가 있는 주는 조직 전체 사원에게 연차나 월차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p176.

 조직학의 대가 아미타이 에치오니 Amitai Etzioni가 지적했듯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결정을 방어적으로 회피하거나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인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책임 회피를 위해 꼭 필요한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안을 검토하는 하급자는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를 거듭하며 불확실성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필요 이상의 복잡한 결재 단계에서 시간을 끌기도 한다. 이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급자도 마찬가지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보고서의 사소한 오류나 정보 부족을 탓하며 재작업을 지시해 시간을 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라는 격언이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의사결정은 없다'라는 격언을 압도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쉬는 것은 아니다. 모두 정보를 수집하며 바쁘게 뛰고 있다. 보고서 버전은 끝없이 올라간다. 그렇게 돌다리를 두드리던 순간 경쟁사는 이미 그 돌다리를 건너 신제품을 내놓는다. 남은 것은 완벽한, 그러나 이미 쓸모 없는 보고서와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씁쓸한 자위뿐이다.

 

 p180.

 지금은 종용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2013년 '무도를 부탁해' 에피소드에서 개그맨 박명수는 이렇게 말한다.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이는 기성세대, 즉 꼰대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꿈은 크게 꿔야 된다'는 말에 대한 반발과 같았다. 90년대생들은 이제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꼭 꿈이 있어야 되나?'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로 유명한 웹툰 작가 주호민 씨는 본인의 2008년작 <무한동력>의 명대사로 꼽혔던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가 이제는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꿈이 꼭 없어도 되는데 너무 꿈을 강요한 건 아니었을까?"라고 말이다. 새로운 세대는 꿈을 좇으라는 기성세대의 충고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다.

 

p215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Walter Mischel은 마시멜로 실험으로 유명하다. 취학 전 어린이들을 상대로 작은 책상에 마시멜로 두 개와 종 하나를 올려놓고 인내심과 순간의 욕구, 성공과의 관계를 알아본 실험 말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실시된 2차 연구에서, 마시멜로의 유혹을 이겨낸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몸매가 날씬하고 사회 적응을 잘하게 됐을 뿐 아니라, SAT에서 210점이나 더 많은 점수를 받았다.

 이렇다 보니 마시멜로 이야기는 회사 생활에서 가장 흔한 조언인 '참고 견디라'의 가장 대표적인 근거로 쓰인다. 그런데 정말 마시멜로 이야기가 '참을성이 강하면 성공한다'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일까? 마시멜로 이야기가 잘 알려진 건 어떠졈 사람들이 재밌어하면서도 가장 궁금해하는 문제, 즉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단순한 공식으로 환원했기 때문일 수 있따. 여기서 단순한 공식이란 '성격은 타고난 것'이며 '인내는 미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013년 로체스터대학교의 홀리 팔메리Holly Palmeri와 리처든 애슬린 Richard Aslin 은 잡지 <코그니션Cognition>에 <합리적 간식 먹기Rational Snacking>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에 의하면 "첫 번째 마시멜로를 빨리 먹은 아이들 중 일부는 참을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돌아오면 하나를 더 주겠다'는 연구원의 말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며,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일수록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좀 더 오래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많은 연구자가 미셸의 실험 결과를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람들은 복잡한 이야기를 읽으려 하지 않고, 동기부여 강사들이 하는 단순한 이야기를 듣는다. 많은 동기부여 강사들은 마시멜로 실험을 들먹이며 여전히 '네 살짜리도 인생의 성공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참을성이다'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하지만 오랫동안 참은 대가로 두 번째 마시멜로를 먹은 어린이들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들이 선천적으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자질을 갖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로체스터대학교의 연구진이 말한 바와 같이 어떤 어린이는 단지 연구자의 말을 믿지 못해서 오래 기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는 그날따라 배가 고팠을 수도 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단순한 참을성이 인생의 성공 비결일 수는 없다. 세상의 수천 가지 요인들이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p220

 

 80년대와 그 이전 출생 세대들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설정하는, 소위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 그러나 90년대생들은 지금의 인생이 어떤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삶의 유희를 추구한다. 이와 함께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오로지 '흥미'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흥미가 중요한 90년대생들에게 회사는 어떠한 의미일까?

 

 "회사에서도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잉기를 회식 시간에 팀원들에게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대리님이 '즐거움은 돈을 내고 찾아. 회사는 엄연히 돈을 받고 일을 하러 오는 곳잉. 그런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게 말이 되니?'라고 답하더군요. 회사에서 일을 안 하고 높고 싶다는 뜻이 아니에요. 단지 어차피 할 일이면, 즐겁게 하고 싶다는 말이죠. '열심히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잘도 하면서 왜 회사를 즐겁게 만들려는 생각은 안 하는 거죠?"

 

 얼마 전까지 회시에서 즐겁게 지내고 싶다는 말은 임금을 받고 근무하는 회사원의 입장에서 일종의 반동과 같은 것이었다. 즐거움은 돈을 내고 사는 것이고, 이와 반대로 돈을 받은 곳은 절대 즐거움의 장소가 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물론 90년대생들에게도 회사란 노동을 하러 오는 곳이다. 다만 그들은 어디에서라도 '유희'를 즐기고 싶을 뿐이다. 유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회사는 일터로서의 매력을 잃게 된다.

 

p236

 

 글로벌 전자상거래가 점차 발달하면서 2000년대 초에 다나와, 에누리 같은 최저가 비교 사이트들이 등장했다. 가격 비교의 맹점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최저가 사이트가 소비자의 생산자 간 정보의 비대칭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당시 소비자 모두가 최저가로 합리적인 구매를 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기업들은 온라인에서조차 소비자의 가격 비교를 방해하는 장치를 마련했기 대문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사이트에 일부러 제품을 혼란스럽게 설명하고,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버전의 모델을 등록하여 가격 비교를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가 하면, 저가형 미끼 상품을 검색 상위에 올리거나 광고 창에 게시하여 소비자를 자기 웹 사이트로 유인한 다음 결국 더 비싼 제품을 사게 만들었다.

 

p241

 

 보드리야르는 1970년에 발간한 <소비의 사회 La societe de consommation>를 통해 현대 소비사회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산업 자본주의를 지나며 생산수단과 생산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룬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과잉생산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갖게 된다. 끊임없이 소비하지 않으면 생산은 멈추게 되고 자본주의 역시 멈추게 될 운명을 맞는 것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소비'가 필요하게 된 소비 자본주의는 '고객의 니즈를 창출해야 한다'는 구호를 만들어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없는 소비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마케터는 소비를 꿈꾸게 하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되었다.

 

p246

 

 하지만 이러한 고객만족도가 곧바로 고객충성도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75,0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매튜 딕슨Matthew Dixon, 캐런 프리먼Karen Freeman, 니컬러스 토먼Nicholas Toman의 2010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객만족과 브랜드 로열티는 상관관계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기 위한 각종 서비스는 충성도 제고에 기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과할 경우 오히려 고객의 기대수준을 높여 충성도를 약화할 수 있다. 나아가 고객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제품의 질이나 가치와 같은 핵심 편익이지 부가적인 서비스가 아니며, 고객들이 지닌 핵심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줄 때 고객충성도가 강화된다고 하였다.

 

 연구자들은 2010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 "고객을 기쁘게 하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라 Stop trying to delight your customers"에서 고객충성도 제고를 위한 새로운 측정 지표로 '고객노력지수Customer Effort Score, CES'를 제안했다. 기존 기업들이 관리하고 있는 '고객만족도 지표Customer Satisfaction, CSAT'는 고객의 재구매 및 지출 증가에 대한 예측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2000년대 중반 제너럴일렉트릭 등의 기업들이 체택하면서 인기를 끌고 기존의 고객만족도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순추천지수Net Promote Score, NPS'는 보통 수준의 예측력을 보여주었다. 

 CES는 '당신이 처한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었느냐?'라는 질문의 답을 5점 척도로 측정해서 관리한다. '거의 노력이 들지 않았다'면 1점을,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면 5점을 체크한다. 점수가 낮으면 낮을수록 고객이 브랜드와 관련하여 불필요하게 소모하는 노력이 적은 것이다. 이는 고객충성도 제고에 이바지하게 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력을 적게 들인 사람들의 94퍼센트가 재구매 의향을 드러냈다고 하니, 고객 충성도에 대한 예측력이 꽤 높은 지표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와 같은 개념이 반드시 90년대생에게만 해당하는 조사 결과는 아니지만, 이와 같은 번거로움의 제거와 최소화는 누구보다 90년대생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요소다.

 

p248

 

 HMR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는 반대로, 시장이 겹치게 된 패스트푸드와 패밀리 레스토랑은 점차 HMR 제품과의 경계가 사라짐과 동시에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80년대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전성시대를 열었던 패밀리 레스토랑의 경우, 2000년대 중반 이후 경기침체 장기화로 인한 청년 실업 증가와 혼인율, 출산율 저하 등으로 인구구조가 급속히 변화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생들의 소비 패턴 양극화는 몰락의 결정타가 되었다. 연인이나 가족과의 기념일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즐기던 80년대생들과 달리, 90년대생들은 평소에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특별한 날에는 호텔처럼 더 화려하고 고습스러운 곳을 찾게 된 것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90년대생들에게 더 이상 특별한 장소도 아니고,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도 아니게 된 것이다.

 

p300

 

 그런데 이렇게 배달앱 시장이 성장하게 된 것은 단순히 간편성 때문만은 아니다. 1996생 김모 씨는 이렇게 말했다.

 

 "배달앱은 분명 간편성도 있긴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배달앱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달앱의 가장 큰 특징은 후기를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화로 주문을 하면 서비스가 엉망인 경우가 많았죠. 쿠폰을 빼먹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이제는 꼭 후기를 남깁니다. 소비자인 우리의 피드백이 솔직히 반영된다는 것이 앱을 통한 주문의 이유입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바로 '인형뽑기방'이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인형뽑기방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2017년에는 전국에 2만 개가 넘을 정도로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인형뽑기방이 창업 아이템으로 인기를 끈 데에는 적은 비용으로도 개업이 가능하다는 게 한몫을 했다. 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 데다 대당 200~300만 원대인 경품 기계 몇 대면 손쉽게 창업이 가능했다. 1,000~2,000원이면 연령 제한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즐겨 찾으며 전국적인 열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불야성을 이루던 인형뽑기방은 이제 파리만 날리는 곳이 많아졌다. 빠른 성장세만큼 폐업도 빨라졌다. 이유는 바로 인형뽑기방에서 '확률을 조작'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든 인형뽑기방이 확률을 조작하지는 않았지만 인기는 급격히 식어버렸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2016년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144개 뽑기방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101개소(70퍼센트)가 관련 규정 위반 업소로 적발됐다. 이 중 12개소(8.4퍼센트)가 기계 개,변조를 통해 뽑기 확률을 조작했다. 인형뽑기방의 주요 타깃 고객이었던 90년대생들은 이러한 확률 조작 사실을 알고 그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1992년생 김모 씨는 "인형뽑기방이 기계로 장난치는 것을 안 이후에 절대 가지 않습니다. 더 이상 그런 호구가 되기는 싫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90년대생들은 직원으로 일하든 소비자로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뢰'를 꼽곤 한다. 배달앱의 후기처럼 신뢰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이 있으면 하나의 큰 성공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신뢰를 잃어버리면 그 많던 인기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그들은 광고를 차단하기 바쁘다.

스타벅스는 국내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커피 프랜차이즈다. 그렇다면 스타벅스의 매출은 어느 정도일까? 스타벅스의 2017년 매출은 1조 2,634억 원이다. 국내 2위에서 6위까지의 5개 회사(투썸플레이스, 이디야커피, 커피빈, 엔제리너스, 할리스커피)의 매출을 모두 합해도 스타벅스 한 곳에 턱없이 못 미친다. 2~6위 다섯 회사 매출은 모두 합해도 8,200억 원에 불과했다.

 이렇게 국내 1위의 커피전문점으로 성장했지만 스타벅스의 광고를 본 사람은 없다.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은 마케팅 예산의 대부분을 제품 광고와 프로모션에 쓴다. 지금까지 마케팅의 목표인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를 높이거나 시장 점유율과 매출을 늘리는 데에 실제로 광고와 프로모션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90년대생 소비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를 차단하기 바쁘다. 어쩌다 노출된 광고 또한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스타벅스의 인사팀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담당자는 스타벅스의 성공을 광고와 프로모션이 아닌 브랜딩에 대한 투자와 내부 직원을 첫 번째 고객으로 두고 아끼는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고를 하지 않는 대신 브랜딩과 조직 관리에 힘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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