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하정우의 두번째 에세이집. 이번 에세이는 몇년 전 영화제에서 수상공약으로 내걸었던 국토종단 공약을 이행하면서 걷기에 빠지게 된 내용을 위주로 주로 걷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가볍게 읽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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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왜 하루하루 더 즐겁게 걷지 못했을까.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더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했을까. 어차피 끝에 가서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텐데.
내 삶도 국토대장정처럼 길 끝에는 결국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 이름 붙여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무無’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많은 사람들이 길 끝에 이르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농담처럼 시작된 국토대장정은 걷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가 길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 몸의 땀냄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꿉꿉한 체취, 왁자한 소리들, 먼지와 피로, 상처와 통증.... 오히려 조금은 피곤하고 지루하고 아픈 것들이지 모른다. 그러나 이 별건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p181. 꼰대가 되지 않는 법
영화감독이란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로구나. 각 파트에서 알아서 하게끔, 자연스럽게 굴러가게끔 조율하고 가이드하면 족한 것이구나. 굳이 제일 앞에 나서서 모니터 가려가면서 목청 높이고 스태프들에게 지시할 필요가 없는 거로구나. 새삼스레 감독의 일에 대해 깨달은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작자는 촬영 현장에 놓인 자신의 의자마저 슬쩍 뒤로 빼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좋은 제작자는 촬영 현장이나 모니터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서 스태프나 배우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제작자는 자신의 자리를 비우고 뒤로 물러나서 감독, 프로듀서, 배우들에게 스스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을 독려하고 그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일 뿐, 사실 제작자가 이렇게 뒤로 물러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칫 현장에서 본인이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연기를 하고 감독은 연출을 하고 스태프들은 각 파트의 일을 한다. 그런데 제작자는 현장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이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어? 이 영화를 총괄하는 사람은 난데, 왜 내가 할 일이 없지?' '저 사람들이 나를 잊어먹은 거 아냐?'
이때 많은 제작자가 자격지심 때문에 '참견'을 하기 시작한다. 나도 이 현장에서 역할이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서 괜한 잔소리를 툭툭 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자가 불필요한 참견을 하게 될 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연기에 대해 지적받은 배우는 당연히 마음이 불편해지고, 감독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이런 순간들이 자꾸 쌓이다보면 제작자는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된다. 그럼 그 제작자가 이런 분위기를 눈치채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려고 주의할까?
절대 아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냉랭할수록 어떻게든 더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
제작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할지 잘 알아야 한다. 아무리 영화의 허점과 결점이 눈에 띄더라도 입을 열 타이밍이 따로 있다. 그 타이밍이 오기 전에는 절대 입을 떼면 안 된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영화에 뛰어든 각 파트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각자의 꽃을 만개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억지로 꽃봉오리를 벌리고 꿀벌을 밀어 넣어서 될 일이 아니다. 제작자의 사명은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자리를 잘 마련해주고 그 영역을 지켜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