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호사카 유지 교수는 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학부는 도쿄대 금속공학과를 들어갔으나, 대학 재학 시절중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알고 이로부터 일본이 왜 아시아를 침략했는가에 대한 주제에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대학졸업후 고려대 한국어학당에 들어간 후, 고려대 정치학과에 편입한다. 이후 동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정치학 박사가 된다. 이후 세종대 교수가 되고 독도문제 연구소 소장에 이른다.

한일 근대사에 대한 전문가이며, 개인적으로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와 뉴스공장을 통해 접하게 되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아베정권의 뿌리와 그로부터 현재 한일갈등에 이르기까지를 일본 근대사의 계보로부터 그 연원을 풀어나가는 내용으로 현재의 한일 갈등에 대한 근본을 풀어주는 내용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필독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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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인들이 왜 히틀러와 나치당을 지지하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1934년 6월 미국의 사회학자 세어도 아벨이 실시한 연구 성과가 좋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기 이전에 이미 나치당원이 된 581명에 대해 작문 형식의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물을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마클 교수가 다시 조사해 발표했다.

 '왜 자신이 나치당원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약 30%가 '독일이라는 질서의 와해에 대한 충격과 독일 내 혁명론자들에게 반론하기 위해서'였다고 대답했다. 독일 내 혁명론자란 황제 제도를 폐지하여 독일을 공화제로 바꾼 사람들을 가리킨다. 다음은 어느 나치당원의 글이다.

 "1918년 11월9일(독일혁명으로 황제가 퇴위해 독일공화국이 성립된 날), 그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일이 되어 나를 습격했는지, 나는 표현조차 할 수 없다. 비애국자들이 갑자기 고향에 주둔해 있던 군인들을 끌어내리고 완장을 찢어버렸고, 그동안 전쟁의 공로로 얻은 훈장을 가슴에서 떼어내버렸다. 그들은 수백만의 독일인이 그 아래에서 싸워 목숨을 바친 우리의 흑,백,홍의 국기를 하수구로 내던지고 있었다. 이런 독일 국민 모두에게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상징들을 모욕하는 사람들과는 평생 어떤 공통점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p27.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해반 후 연합국으로부터 받은 제재에 비하면,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패배한 후 연합국으로부터 받은 제재는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그런 조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다시 패배한 독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연합국들이 영토에 대해 야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일본에 대해서는 고대로부터 일본 영토만을 인정했고 연합국으로서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일연의 조치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히틀러와 나치당과 같은 괴물이 다시 탄생하지 않도록 하는 연합국의 배려였다. 

 그러나 일왕은 인간 선언으로 '살아 있는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왔고, 절대군주에서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권력을 빼앗겼다. 이에 극우파를 중심으로 일왕을 다시 절대군주로 복귀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패전 후 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 23명이 결정되었는데, 그들 중 7명에 대해서는 사형이 집행되었고 7명은 옥사했다. 이후로도 일본에는 전범이 없다면서 A급 전범의 복권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나타났다.

p29.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의 독일인처럼 일본 극우세력은 전쟁 패배로 빼앗긴 대일본제국의 제체와 신사들, 호전적인 교과서 등의 상징물을 모두 부활시키려 하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한국에 적대감을 드러내며 일본 국민들을 선동하여 혐한 감정을 확산시키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과 같은 국가적 분위기를 만들어 히틀러를 출현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그들에게 있어 정치적, 혈통적으로 보아 아베 신조만큼 이에 적합한 인물은 없다.

p32.

 이런 상황에서 관료들은 총리나 총리 주변이 좋아할 일을 무조건 해야만 한다. 반대로 총리 관저의 불평을 살 우려가 있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총리에게 정확한 정보가 올라오지 않게 될 우려가 커졌다. 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현실에서 유리되어버린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인사권을 ㅌ오한 공포 지배를 실시한 국가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다.

p45.

 차기 총리 후보 중 한 사람인 현직 자민당 국회의원 이시바 시게루가 2019년 8월23일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는데, 넷우익들에게 심한 공격을 받았다.

 "한일 관계는 문제 해결의 가망이 전혀 없는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중략) 우리나라(일본)가 패전한 후 전쟁 책임과 제대로 마주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뿌리가 되어 그것이 오늘날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된 것 같습니다."

 이에 인터넷에서는 '이시바는 매국노다', '절대로 총리로 뽑으면 안 된다'는 과격한 댓글들이 넘쳤다. 일본은 지금 혐한 여론에 반대 의견을 제기하면 매국노 취급을 받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p48.

 "전후 70년이나 되었는데,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아베 정권의 죄는 크다. 피해를 준 측이 그 사실을 잊거나 무신경한 발언을 하고 피해자들의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다. 조부모 세대의 분노는 그다음 세대로 오히려 증폭되어서 계승되어간다. 그러므로 일본 시민들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현재 전쟁을 모르는 세대는 조선이나 대만에 대한 식민 지배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역사 수정주의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다."

 미즈시마 아사호 와세다대 교수는 아베 정권과 일본의 혐한 분위기를 이와 같이 비판한다. 이런 양심적인 생각을 가지는 일본인들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p53.

 아베 아키에 총리 부인이 2018년 4월21일 오사카에서 열린 차별 주의 단체 재특회(재일 한국인에 대한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임)가 일으킨 시위에 '편향 보도에 지지 마라! 아베 정권 힘내라 대행진 in 오사카!'에 뜨거운 응원 메시지를 보낸 것이 데모 주최자에 의해 밝혀졌다. 일본 총리의 부인이 배외주의를 호소하는 차별주의자들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개별적으로 메시지를 보내 응원했다면, 총리 부인이 차별주의 단체 리더들과 깊은 관계에 있다는 이야기다. 아키에 여사가 차별주의적 사고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재특회라는 차별주의자와도 친하다고 하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완전히 넘어선 셈이다.

 내각총리 부인이라는 일본의 퍼스트레이디가 차별주의 단체 재특회의 교토 지부장인 우치코시 젠지로가 주도한 시위에 '아베 정권을 응원해준다'는 이유로 무분별한 응원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는 국가로서 차별을 용인하고, 차별주의 단체에 보증을 주는 행위이며, 근대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다. 우치코시 젠지로라는 인물은 이전부터 재일 한국인의 '특권'이 있고 그것을 일소하자는 차별주의 단체 재특회가 조작한 유언비어를 신봉하는 차별주의자이다.

p54.

 2016년 3월18일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당시 민주당의 아리타 요시오 의원이 아베 총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이것을 보면, 재특회를 비롯한 일본의 혐한 세력들이 나치 독일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타 :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 씨가 인터넷상에서 특정 민족에 대해 헤이트 스피치에 해당하는 언동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용납되는가? [예를 들어] 2013년 2월17일 도쿄 신 오쿠보에서 혈린 혐한 시위에서는, 그들의 플래카드에 '집단 학살'을 상기시키는 혐한 표현들이 많았다. 지역에서도 나치 독일의 깃발 하켄크로이츠를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을 전국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가스실을 만들라'라는 말까지 외치고 있었다. 오사카의 츠루하시에서는 "츠루하시 대학살을 하자"라고 당시 열네 살의 소녀가 외치고 있었다.(후략)

 아베 정권은 내셔널리즘을 부추겨서 한일 관게를 의도적으로 악화시켜 내정 문제 등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다른 나라로 돌리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아베 신조가 재특회를 이용해 재일 한국인이나 조총련 등에 강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꾸며 자민당 신봉자나 우익 보수주의자들이나 국수주의자들을 늘려 미국과의 전쟁에 가담시키거나, 최종적으로는 아시아에서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인다.

p56.

 구한말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당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친일단체로 거론되는 '일진회'가 결성되었다. 일진회 구성원 중에는 서재필이 만든 독립협회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독립협회와 민중들의 염원이었던 민회 설립 운동을 테러로 무자비하게 파괴해버린 고종 독재 정권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수 없다며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생각한 것은 '일본과의 연합을 통한 새로운 국가 만들기'였다.

 당시 일본 세력은 대한제국의 지식인들에게 "일본과 대한제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합방하자"고 회유했고, 일본의 다루이 토키치라는 학자는 새로운 나라를 '대동(大東)'이라고 명명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일진회 회원들은 그런 일본 측 전략에 말려들어갔다. 일진회로 대표되는 일부 한국인들은 고종 정권이 타도되고 일본과 한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합방한다면 좀더 나은 나라에서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대등한 '합방'이 아니라 일본이 대한제국을 속국으로 만드는 '병합'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에 분노한 일진회 회장 이용구는 억울한 나머지 분사했고, 많은 일진회 회원들이 일본인 회원들에게 거짓 주장의 책임을 지고 할복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진회의 잘못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정확한 비전이 결여된 데다, 새 국가 건설의 동기 자체가 일본을 무비판적으로 긍정하고 대한제국의 절망적인 상태를 너무 비관한 데서 비롯됐다. 더불어 일본의 교활함을 간파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p58.

 현재 일본 내의 극우파 단체들은 친일파 지원 기금 제도를 만들어 한국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유명한 단체는 사사가와 재단(현, 니폰 재단)이다. 이런 극으파 단체들의 돈을 받고 사실상 일본의 논리를 한국 사회에 침투시키려는 일본 앞잡이가 된 한국인들이 의외로 많다. 

 어떤 학자는 1년에 30번 정도 일본을 출입국 한다. 일본 측에서 부르기 때문이다. 부르는 사람들은 일본 정부 모 부처, 공안, 일본 보수 단체 등 여러 곳이다. 그들은 주로 비공개 회의에 참석시켜서 질의응답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게 한다고 한다. 그는 교통비, 체재비뿐만 아니라 사례비로 한 회당 500~1,000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일본을 왕래하면서 1년에 적게는 1억5,000만 원 정도, 많게는 3억 원 정도를 버는 셈이 된다.

 이런 유혹에 빠지면 일본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비판력을 상실해 버릴 것이다. 혹은 일본의 망언이나 경제 보복 같은 사건이 일어나도 그런 한국인들은 오히려 일본을 옹호하는 편에 설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담은 도서를 발간하고,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일본 측 논리를 퍼뜨리기도 한다.

p81.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에게 지불하려는 10억 엔은 배상금이 아니라 보상금이었다. '보상'이라는 것은 합법적인 과정에서 일어난 손해를 보존해주는 것이다. 보상에는 '합법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일본이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것은 위안부 문제는 사실상 합법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박근혜 정권은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합법적이었다는 데 합의하고 말았다.

 필자는 이때 두 정부 사이에 뒷거래가 오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아베 정권은 박근혜 정권에 위안부 문제를 보상 수준으로 해결해주지 않으면 경제 보복을 가하겠다고 계속 협박했을 것이다. 최근의 한일 관계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때까지 지속적으로 법적 책임과 배상 책임을 강하게 요구해오던 박근혜 정권이 한순간에 인도적 책임 정도로 문제를 일단락하려고 한 정황은 아베 정권이 '경제 보복'으로 박근혜 정권을 협박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때부터 일본 아베 정권은 박근혜 정권을 친일 정권으로 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은 2016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등 일본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위안부 합의 이후 박근혜 정권과 아베 정권은 관계가 꽤 좋아졌다.

p82.

 문재인 정권은 위안부 합의를 검증했고 외교적 문제는 없지만, 피해자들의 의견을 무시해서 맺은 합의였다고 밝혔다. 파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합의에는 이면 합의로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그리고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이사들의 사임으로 인해 운영이 중지되었고 2019년 7월 해산 절차를 모두 끝내 정식으로 해산되었다.

p97.

 한국 정부의 한일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한국 내에서는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우려를 나타냈고, 진보 언론들은 환영했다. 이렇게 의견이 양분되는 근본적 원인은 한일 지소미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소미아가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우선 한일 지소미아는 한일 군사동맹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016년 지소미아를 체결하는 이유로 거론된 것은 한일 간에 북한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라는 내용뿐이었다. 마치 그것이 지소미아 목적의 모든 것인양 보도되었다. 그러나 북한 관련 정보 교환은 한일 지소미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북한 관련 정보는 지소미아 체결 이전에도 한,미,일 간에 공유되어 왔다. 즉, 북한 정보 교환은 지소미아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한일 지소미아의 본질은 한일 악사(ACSA)와 함께 보면 쉽게 이해된다. 악사란 군사 물자 교환 협정이다. 이것은 전쟁터나 분재 지역에서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가 무기를 비롯한 여러 군사 물자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이다. 한때 남수단에서 한국군이 일본 자위대로부터 만발 정도의 탄환을 공급받은 적이 있었는데, 한일 간의 협정이 없는 상황인데도 공급을 받았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한일 지소미아와 한일 악사 체결이 한꺼번에 추진된 적이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체결되면 누가 봐도 한일 양국이 군사동맹으로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권은 국민들의 반발을 고려해서 체결 1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서명을 보류하기로 했다. 그런 경위가 있어서 박근혜 시절에는 지소미아와 악사를 분리해서 체결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한일 지소미아 체결 다음은 한일 악사 체결이 순서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시 미국은 오바마 정권이었는데, 오바마 정권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라 칭하면서 북한과 중국 포위망을 구축해 나갔다. 그 일환으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했고, 사실상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을 추진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가는 단계가 한일 지소미아와 한일 악사인데, 결국 이 두 개의 협정은 무력으로 북한과 중국을 굴복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가장 피해를 입을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일본 아베 정권은 제2의 6.25가 일어나면 다시 일본의 경제적 도약을 기대할 수 있어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일본이 목표로 삼은 것은 미일 군사동맹에 예속되는 한국의 지위다. 이제는 한국을 경제적으로 망가뜨리는 것뿐 아니라 제2의 6.25로 아예 남북한을 무너뜨려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목표로 한다는 악마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베 정권을 비롯한 일본의 극우 세력이다. 

 한일 지소미아는 유사시 일본 자위대와 한국군의 전시 암호체계를 교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는 유사시 하나의 군대처럼 움직일 수 있게 설계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지소미아가 체결된 지 이틀 후인 2016년 11월25일, 일본이 한국에 요구한 첫 번째 군사정보는 '부산 한국군의 배치도'였다. 북한 정보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부산 한국군의 정보를 왜 일본이 첫 번째 군사정보로 한국에 요구했을까? 한국 내 한국군의 배치도 전체가 일본 측에 넘어간다면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의 적성국가가 될 경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p105. 한일청구권 협정

 최근 한일 외교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시발점이 된 사건이 있다. 바로 강제 징용자 판결 문제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려는 이유가 경제 보복이 아닌 안보 문제 또는 한국의 수출 관리 문제뿐이라고 계속해서 말을 바꾸며 둘러대고 있지만, 사실 한국 대법원에서 내린 강제 징용자 판결 문제가 직접적인 이유라는 걸 상식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실제로 세코 히로시케 일본 경제 산업성장관은 지난 7월1일 트위터에 "구조선 반도 출신 노동자(강제 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G20까지(한국정부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 신뢰 관계가 현저히 손상됐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사실상 경제 보복을 인정한 증거를 트위터에 손수 남긴 것이다.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도 강제 징용자 판결 문제로 한일 양국의 신뢰 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실시한다고 분명히 언급했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은 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한일기본조약과 4개의 한일협정을 체결했고, 그중 하나가 한일청구권 협정이었다. 이때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게 무상으로 3억 달러, 유상으로 2억 달러를 지급하는 데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굴욕적인 협정이라며 대학생과 시민들을 중심으로 한일기본조약 반대 시위가 심하게 일어났다. 더군다나 일본 정부는 우리에게 현금을 직접 주기보다는 사람들의 노동력이나 기자재 등을 제공하고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식으로 보상 처리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합계 5억 달러 지불의 명목이 경제 협력이었지 배상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 일부] 양 체결국은 ... 양 체결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 협정문에서 이 문장을 근거로 삼아 국민간의 청구권, 즉 일본과 한국의 모든 국민이 가진 청구권이 1965년 6월22일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즉 원고의 승소 판결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아베 정권은 1965년에 이미 끝난 문제를 들춰내서 일본 정부에게 돈을 내라고 요구했으니, 이것은 한국과 일본 간의 조약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 이번 판결은 사법부의 판단이므로 행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그리고 이번 소송 자체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이지 한국이라는 국가가 일본이라는 국가에게 배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므로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피해자였던 개인이 가해자였던 일본 기업(기업도 법적으로 개인에 속함)을 상대로 낸 소송이므로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의 결론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국가는 이번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 쪽의 반달이 끊이지 않자 한국 정보는 한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2019년 6월19일까지 나온 판결에 대해 일본 기업이 성실하게 배상을 한다면 이후에는 한일 관련 기업들이 기금을 조성해 강제 징용 피해자를 구제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한국 내 피해자들도 그렇게 하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한국 정부의 해결방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 재판의 본질적 쟁점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되었는가?'에 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은 이미 1991년에 답을 내렸다. 그때 일본 국회에서 당시 일본 외무성의 조약국장은 세 번에 걸쳐 똑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포기했음을 확인한 것이고 소위 개인의 재산,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뜻으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

 이 답변의 의미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문에 국민의 청구권이 해결되었다고 적혀 있지만 그것은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는 외교보호권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지, 개인 청구권 자체가 소멸되었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었을 때 일본 외무상인 고노 타로도 11월14일의 일본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개인 청구권이 남아있으나 구제를 받지 못한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개인의 배상 문제가 1965년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견해를 살펴보자.

 고쿠타 위원(일본 공산당 고쿠타 게이지 의원) : ...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전 징굥공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판정했습니다. 이 개인의 청구권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국회 답변 등에서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한일 양국 간 청구권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피해를 입은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해 왔습니다. ..,

 고노 다로 외상 :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만, 개인 청구권을 포함해 한일 간 재산 청구권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 한일 청구권 협정에 있어서 청구권의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고, 개인의 청구권은 법적으로 구제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입니다. ...

 고쿠타 위원 : .. 한국 대법원 판결은, 원고가 요구한 것은 미지불 임금이나 보상금이 아니라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전제로 한 강제 동원에 대한 위자료, 이것을 청구한 것이라고 돼 있다. 그리고 한일청구권 협정 교섭 과정에서 일본 정보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다고 지적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강제 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현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시 한국 측으로부터 제출 받은 대일 청구 요강, 이른바 8개 항목에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이라고 기술되어 있고, 합의 의사록에는 이 대일 청구 요강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돼 있다고 하는데, 그 안에 위자료 청구권은 들어 있습니까?

 미카미 정부 참고인(외무성 국제법 국장) : 대답해 드립니다. 그런 청구권도 포함해서 전부 대상이 되었다는 입장입니다. ...

 고쿠다 위원 : 언제부터 그렇게 범위가 확대되었나요? 그런 이야기는 안 쓰여 있는데요. [외무성의] 야나이 조약 국장은... "쇼와 40년(1965년) 이 협정을 체결해서 그것으로 우리나라[일본]에서 한국과 한국 국민의 권리, 여기서 말하는 '재산, 권리 및 이익'에 대해 일정한 것을 소멸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지만 그런 것들 중에 이른바 위자료 청구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고는 기억하지 않습니다."라고 분명히 위자료 청구라는 것이 들어 있지 않았다, 들어 있었다고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어쨋든 간에 쇼와40년(1965년) 이 협정을 체결해서 우리나라(일본)에서 한국과 한국 국민의 권리, 여기에 말하는 재산,권리 및 이익에 대해서 일정한 것을 소멸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인데, 그런 것들 중에 이른바 위자료 청구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고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분명히 이 일련의 청구권 협정과 관련된 협상 과정에서 이뤄진 문제에 대해 위자료 청구권은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몇 차례 분명히 했다. 이것이 그동안의 답변 아닌가요? 그 답변을 부정한다는 말씀입니까?

 미카미 정부 참고인 : ... 야나이 국장의 답변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본 내에서 법률을 만들어서 그 실체적인 재산,권리,이익에 대해서는 소멸시킨 것입니다. 그러니 청구권이라는 것은 그런 재산,권리,이익과 같은 실체적 권리와 다른 잠재적인 청구권이기 때문에 그것은 국내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야나이 국장은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법으로 소멸시킨 것은 실체적인 채권이라든가, 이미 그 시점에서는 확실한 재산, 권리 , 이익이므로 그 시점에서 실체화되지 않았던 청구권은 여러 가지 불버 행위라든가 재판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는 소멸되지 않았다. 따라서 처음 말씀드렸듯이 권리 자체는 소멸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에 갔을 때 그것은 구제받지 않는다. [구제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양국이 약속했다고 생각합니다.

 고쿠다 위원 : ... 분명히 이 문제 대해서는 위자료 청구권은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 답변으로 지극히 명백해졌스니다. 게다가 당시의 답변은 그대로였다는 것을 확인해 두고 싶습니다.

 이상의 인용문을 보면 2018년 11월 시점에서도 일본 정보는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고 배상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인정했다. 그런데도 재판에서 개인은 구제를 받지 못한다고 궤변을 늘어놓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한국이 1965년에 일본과 맺은 약속을 어기고 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한국은 한일청구권 협정의 약속을 지키고 있고 그때 소멸되었다는 외교보호권을 발동하지 않았다. 단지 국가가 아니라 한국의 개인이 남아 있는 개인 청구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최근 일본 정부에서 내놓는 답변이나 의견 자체가 상당히 왜곡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언론조차도 이에 대한 비판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p116. 개인 청구권 효력의 유지

 최근 한일청구권 협정을 두고 일본 정부의 말 바꾸기 문제가 심각하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깊이 파헤쳐 보도록 하자.

 일본 국회 회의록을 보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개인 청구권이 아니라 국가의 외교보호권이 소멸되었다는 내용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다. 다음은 1991년 8월 27일 국회에서 나눈 질문과 답변의 일부를 원문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의 대표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나이 순지 조약국장 :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 그 의미는 한,일 양국간의 국민의 청구권을 포함해서 해결했다는 것이지만, 이것은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상호 포기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서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 양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낸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 양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여 거론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발언을 같은 해 12월5일에 역시 국회에서 야나이 순지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이 한 번 더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

  야당 의원 : 한,일 간에는 목돈을 들여서 일단 국가 차원에서는 처리한 경위가 있다. 그러나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개인 청구권을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상호 포기했지만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 따라서 청권권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야나이 순지 조약국장 : 청구권의 포기가 의미하는 바는 외교보호권의 포기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의 청구권에 대해 일본 정부에 청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 청구권이 국내법적인 의믜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다.

 같은 해 12월13일에도 일본 국회에서 야나이 순지 조약국장이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했다. 

 이들 규정은 양국 국민 간의 재산,청구권 문제에 있어서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포기했음을 확인한 것이고 소위 개인의 재산,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뜻으로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 말씀드린 대로다. 이것은 소위 조약상의 처리의 문제다.

 위의 자료처럼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일본 국내에서만이라도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국내법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1965년 일본의 국내법 법률 제144호로 이른바 '재산권 조치법'이라고 불린다.

 [법률 제144호] 1. (전략)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의 재산권이자,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 해결 및 경제 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 사이에 협정 체 2조3의 재산,권리 및 이익에 해당되는 것은 1965년 6월22일에 소멸되었다.

 이 법률에 있는 1965년 6월22일은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된 날짜이다. 이때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자기들끼리 국내법을 만들어 정해버렸다. 전술하 바와 같이 2018년 11월14일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일본 정부 외무성 국제법 국장 미카미 씨는 "일본 내에서 법률을 만들어서 그 실체적인 재산,권리,이익에 대해서는 소멸시킨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 법률 제144호를 뜻한다. 그러나 이 법률에서도 소멸시킨 것은 한국인의 '재산,권리 및 이익에 해당되는 것'으로 불법 행위에 관한 배상금이나 위자료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사항은 이 법률로 일본 정부는 일본인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 국내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에 해당되는 개인 청구권만 소멸시키고 일본인의 개인 청구권은 그대로 남겨놓았다. 이런 면에서 이 국내법은 매우 불공평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대한민국은 자국의 국내법으로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의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키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국내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개인 청구권을 활용해 충분히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2005년 노무현 정권 때 가동한 청구권 협정에 관한 관민합동위원회에서도 재산,권리 및 이익에 관한 보상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종결되었으나 개인의 배상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2018년 10월 내려진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 명령, 즉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명령은 정당한 사법적 판단이었다.

p120.

 우선 2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선고했다.

 "일제강점기는 불법이며, 불법 강제 노동에 대한 개인의 손해배상은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선고에 따르면 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는 일본이 '배상금'이 아닌 '보상금'을 낸 것이다. 보상금과 배상금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고, 불법으로 강제 노동에 동원했으므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강제 징용자, 여자 근로 정신대 등 일제강점기의 피해자에 대해서 일본 기업은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위자료는 배상금의 개념이다. 1965년 청구권 협정 때나 2015년 위안부 합의 때 일본에서 한국 쪽에 건넨 돈은 모두 보상금이었다.

 여기서 보상금과 배상금의 개념을 다시 정리해보자. 보상금이라는 것은 적법 행위 과정에서 손해가 생기면 그것에 대해 지급하는 금전이고,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보상금은 전체적인 과정은 합법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내는 돈이다. 하지만 배상금이라는 것은 전체적인 행위 자체가 위법 행위였고, 그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해서 지급하는 금전을 말한다. 지금까지도 일본은 일제강점기를 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측에 단 한 번도 배상금을 지급한 적이 없었다.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본이 항상 일제강점기를 합법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를 보면 1998년 10월 한,일 양국은 파트너십을 선언했다. 이 파트너십 선언에서 일본은 과거에 한국에 피해를 입힌 가해자였다고 인정했고,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사과했다. 이처럼 서로 인정하고 사과한 내용을 공식 문서에 적었다. 일본이 가해자였고 한국이 피해자였음을 선언하는 것은 일본이 위법 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것이고, 따라서 일제 강점기는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이런 의미에서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문은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다는 하나의 근거가 되는 문서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 아베 정권은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강제 징용자 판결 문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 이러한 발언 자체가 일본 기업들에게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강압적 메시지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1991년 당시 일본 정부가 스스로 인정한 외교보호권의 소멸을 지금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외교보호권을 발동하고 있어 문제가 크다. 2012년 5월 한국대법원이 신일본제철에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을 때 신일본제철 측은 처음 한국 법원의 판결을 따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뒤에서 계속 막아왔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부당한 외교보호권의 발동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7월1일부터 시작된 아베 정권의 경제 보복도 외교보호권의 부당한 발동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2019년 3월13일 아소 다로 부총리는 일본 국회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강제 징용자 판결로 인해 일본 기업에 피해가 생길 경우 "관세를 올리는 일에 한정하지 말고 한국으로의 송금 정지, 비자 발급 정지 등 여러 가지 보복 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한국 대사를 역임했지만 대표적인 혐한파로 알려진 무토 마사토시는 2018년의 한국 대법원 판결 직후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핵심 부품을 규제한다든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수입하는 제품에 관세를 올리겠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했다. 이들 중 반도체 핵심 부품은 이미 수출규제가 되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일본이 부당한 외교보호권을 강하게 발동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1991년 일본 정부가 스스로 입 밖으로 낸 사실, 즉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한일 양국의 외교보호권이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어기는 셈이 된다. 한,일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는 나라는 다름 아닌 일본인 것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제소한 재판 결과에 대해 기본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이는 삼권 분립의 원칙을 지키는 올바른 자세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 일본 아베 정권은 자국도 아닌 타국, 즉 한국의 사법주가 내린 판단에 개입하려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행위와 마찬가지이고 있을 수 없는 무례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은 한국의 정당함과 일본의 부당함을 계속 세계에 알려야 한다. 앞으로 일본의 보복 행위 자체를 막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일본에 그리고 국제 사회에 일본의 부당성과 한국의 정당성을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p129.

 2005년 정부가 강제 징용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관민 합동위워뇌의 자료를 확인해보면 '한일청구권 협정은 채권,채무 관계를 해겨라기 위한 것이었다. 반인도적 불법 행위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되어 있고 당시 백서에는 '피해자 개인들이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2005년 관민합동위 자문 위원이었던 조시현 씨는 "일본 정부와 기업이 책임질 때까지 피해자의 고통을 경감시킬 인도적인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보상조치를 실시하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하는 조치였다."고 당시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을 지급했다고 2019년 7월17일 MBC 뉴스에서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대법원의 2018년 판결은 정당하고, 2005년 노무현 정권의 입장과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팩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일보 등은 2019년 7월,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보상은 이미 끝났고, 이 내용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확인했다는 기사를 냈다. 이 기사의 결론은 한국이 일본에 더 이상 보상을 요구하면 안 된다는 함의가 들어 있다. 아무리 보상이 끝났다는 말이 옳다고 치더라도 조선일보 등은 '배상'문제는 남아 있다는 점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기사를 일본어판 신문에도 게쟇했다. 남아 있는 '배상' 문제를 숨기고 일본 정부의 판단이 옳다는 잘못된 기사를 왜 태연하게 일본어로도 발신했는지 그들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p137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일본이 우세했지만 미드웨이 해전(1942)을 계기로 전세가 미국으로 기울었다.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각각 투하되면서 1945년 8월15일 일본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패전 후 연합국의 점령 통치를 받던 일본은 1951년 연합국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해 패전과 전범을 정한 국제재판의 판결을 인정하는 대신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와 동시에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고 반공 진영에 편입되었다.

 일본에서 이러한 샌프란시크코 강화조약을 수용한 세력이 바로 '보수 본류'이다. 보수 본류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일본이 침략 국가이자 전범국가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보수 세력이라고 해도 보수 본류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나라임을 기본적으로 인정한다. 둘째, 평화헌법을 지키려고 한다. 1946년 미국의 주도로 제정된 일본국헌법은 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제9조에 일본이 전쟁을 포기하고 전쟁의 수단으로서 군대를 가질 수 없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보수 본류는 특히 헌법 제9조를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보수 본류는 마지막으로 미국과 협력하려 한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전후 일본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55년 체제''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950년대 전반 보수 정당의 일부 국회의원들이 전쟁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1955년 사회당의 좌파와 우파는 평화헌법 유지와 미,일 안전보장조약 강화 반대를 내걸고 다시 손을 잡아 사회당을 통합했다. 이에 대항해 일본의 보수 세력이었던 자유당과 일본 민주당도 자유민주당(자민당)으로 통합되었다.

 일본 국민들은 보수 정당인 자민당과 진보 정당인 사회당이 서로 견제하는 양당 체제를 이루게 되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했고, 사회당이나 공산당 등 야당은 정치의 중심에서 소외되었다. 이러한 정치 체제를 '55년 체제'라고 부른다. '55년 체제'는 자민당 1당 우위 체제였다. 그런데 1993년 자민당 보수 본류에 속하는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면서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해 '55년 체제'는 38년 만에 붕괴되었다.

 일본 보수에는 보수 본류와 대비해서 또 하나의 세력인 '보수 비주류'가 있다. 현재 자민당에서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극우파 세력이 원래는 보수의 비주류였다. 보수 비주류의 대표적인 인물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이다. 현재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의 외조부이기도 한 기시 노부스케를 일본 보수 비주류, 즉 극우파의 시작으로 본다. 지금은 비주류를 '극우파'라고 부른다.

 극우파는 보수 본류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주장해 왔다. 우선 극우파 사람들은 일본이 침략 국가였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들은 '역사 수정 주의자'로 불리며 역사를 상당히 왜곡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극우파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도 변경하고자 한다.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일본을 전범국가 또는 적성국가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가져왔다. 또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위대가 아닌 정식 군대인 '일본군'을 부활시키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협력하려고 한다. 이 부분은 보수 본류와 일치하기는 하지만 협력하고자 하는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들은 미국과 함께 전쟁을 치르려고 한다.

p148.

 1996년 6월 자민당은 사회당과의 연립 내각을 탄생시켰다. 이때 자민당-사회당 연립정권의 총리는 당시 사회당 당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1924~)였다. 자민당은 사회당을 끌어들여서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는데, 사회당이 캐스팅 보드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당에서 총리가 탄생한 것이다. 자민당-사회당 연립정권에서는 자민당의 국회의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연립정권으로 정권을 잡을 계획으로 사회당의 의석 수를 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 사회당의 당수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총리가 되었다. 이제 자민당 단독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나 이후 연립 여당으로 자민당은 정권을 잡게 된다.

 하지만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사회당 출신으로 상당히 리버럴한 사상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무라야마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게 되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1995년 8월15일 전후 50주년 기념식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세계를 향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 담화는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공식 사죄로 평가되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하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하지만 자민당 내 극우파 세력은 이 담화에 격렬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극우파들은 당 내에 역사검토위원회를 조직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아시아를 백인 지배하에서 구원한 '해방 전쟁'이라는 주장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자민당 안에 많이 남아 있었던 비주류 세력이 이제 자민당 내 주류가 되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민당 내 역사검토위원회는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담화 발표에 맞춰서 [대동아전쟁의 총괄]이라는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에서 자민당 내 극우파 사람들은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일본은 침략 전쟁이 아닌 해방 전쟁을 했으며 일본은 절대 전범국가가 아니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피력했다.

p180.

 한편 불행하게도 간 나오토 정부 시절 일본에서 큰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때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하면서 연안 지역은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 일본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으로 사망자는 약 2만 명, 실종자는 약 2,500명에 이른다.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도시 가운데 하나가 이와테현(岩手県)이다. 

 이와테현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해 쓰나미가 일어났는데 가장 높은 쓰나미는 15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반면 이와테현 바닷가의 제방 높이는 10미터에 그쳤다. 이와테현에는 예부터 쓰나미가 자주 발생했고 그동안 쓰나미의 최고 높이는 5.7미터였기 때문에 10미터 제방으로 충분히 쓰나미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현의 당국자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10미터를 넘는 거대한 쓰나미가 제방을 넘어 도시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이렇게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역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재난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에 의해 이와테현 남쪽에 위치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시설이 파손되어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원전 사고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면서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 피해의 등급이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의 최고 레벨인 7이었다. 1986년 발생한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등급과 같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는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로 방사능 피해가 사방 약 600킬로미터에 미친다고 했다. 그러므로 당시 구소련은 체르노빌 원전을 콘크리트로 막았다. 따라서 같은 레벨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사방 약 600킬로미터에 방사능 피해를 준다고 볼 수 있다. 후쿠시마에서 도쿄까지가 약 30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오사카까지 약 60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니 사실상 일본열도 중 매우 넓은 영역에서 방사능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구소련에서는 체르노빌의 원전을 콘크리트로 모두 막아서 밀폐시킨 후 100년 이상 지나야 방사능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 진단했다. 지금까지도 체르노빌은 주변 30킬로미터 내에는 출입 금지구역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은 콘크리트로 막는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쿠시마에서는 원전의 반경 20킬로미터 내를 출입 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 콘크리트로 막지도 않았는데 출입 금지구역이 체르노빌보다 좁다.

 일본 정부는 체르노빌처럼 사람들이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 다시 살지 않을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원전을 콘크리트로 막아버리는 대신 방사능 수치를 낮추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간 나오토 정부의 실책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일본 국민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정부의 조치에 계속 불안을 느끼면서 간 나오토 정부의 지지율도 계속 떨어졌다.

 p190.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사람 중 한 사람으로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1833~1877)라는 인물이 있따. 이 사람은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1828~1877),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1830~1878)과 함께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메이지유신 삼걸'로 불린다.

 기도 다카요시는 한국과도 관련이 깊다. 1875년 일본은 운요호사건을 일으켜 이듬해에 강화도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는데, 기도 다카요시는 운요호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다. 기도 다카요시는 1868년 메이지 정부를 성립시킨 후 "조공하지 않는 조선에 위약의 죄를 물어 공격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원조 정한파다. 요시다 쇼인의 왜곡된 사상의 영향으로 기도 다카요시는 에도시대에 12번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조선통신사를 조공사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도 초슈번 출신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메이지 헌법을 기초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본 헌정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당시의 일본 국회읜 제국의회를 개설하는 공로를 세웠으며, 무려 여섯 번이나 총리를 역임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국민적 영웅이었지만, 말년에 한국에 건너와서 을사늑약을 강요한 조선 침략의 원흉이 되었다. 1909년 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살되었다. 당시 일본에서의 영웅들은 한국이나 아시아에 있어서는 침략자들이었다.

 이토 히로부미와 매우 가까웠떤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1836~1915)는 청.일 전쟁 당시 조선 공사로 부임했다. 그는 일본을 위해 조선에서 공작 활동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노우에 가오루의 추천으로 미우라 고로(三浦梧楼, 1846~1926)라는 군인이 그의 후임으로 조선 공사로 부임했다. 

 미우라 고로는 일본공사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조용한 인물로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했다. 친로파가 된 명성황후 때문에 대한제국이 러시아로 넘어갈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이노우에 가오루-미우라 고로 라인에서 명성황후 시해를 결정해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그들은 명성황후 시해 계획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문서를 남기지 않는 작전을 썼기 때문에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

p197.

 요시다 쇼인의 핵심 주장에는 아시아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다. 그는 저서 [유수록(幽囚錄)}(1854)에서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등을 주창해 일본 메이지 정부의 팽창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음은 [유수록]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다.

 무력 준비를 서둘러 군함과 포대를 갖추고 즉시 에조(蝦夷=훗카이도)를 개척하여 제후를 봉건하여 캄차카와 오호츠크를 빼앗고, 유구(琉球=오키나와)에 말하여 제후로 만들고 조선을 책하여 옛날처럼 조공을 하게 만들고 북으로는 만주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대만과 필리핀 루손 일대의 섬들을 노획하여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

p201.  야스쿠니 신사의 기원, 초슈번 초혼장.

 초슈번의 젊은 지도자들은 스승 요시다 쇼인의 뜻에 따라 전쟁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초슈번 무사들의 위령제였다. 이 위령제는 현재 야스쿠니 신사의 기원이 되었다. 위령제를 고안한 인물은 요시다 쇼인이 가장 아꼈던 애제자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晋作, 1839~1967)였다. 그는 근대 일본군의 모체가 된 기병대를 만들고 지휘했고, 에도막부 타도를 주도하기도 했다. 

 다카스키 신사쿠는 아베 신조와도 관련이 깊다. 아베 신조(安部晋三)의 이름에서 '신(晋)'은 다카스키 신사쿠의 이름에서 따왔다. 아베 신조는 다카스키 신사쿠처럼 자신도 요시다 쇼인의 첫 번째 제자라는 생각을 갖고 활동한다고 이야기해 왔다. 아베 신조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部晋太郎) 역시 다카스키 신사쿠의 이름에서 '신'을 따왔다. 아베 신타로도 스스로를 쇼인의 첫 번째 제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들 신조가 아버지의 입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초슈번의 군대와 에도막부 군이 불가피하게 수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희생되는 초슈번의 무사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카스키 신사쿠는 죽은 초슈번 무사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위령제를 거행했다. 위령제를 거행하는 장소인 초혼장은 초슈번 안에 시모노세키의 사쿠라야마 초혼장을 비롯해 총 열여섯 군데나 있었다. 이 초혼장들을 운영했던 중심 인물이 다카스키 신사쿠였다.

 초슈번에서는 쉬지 않고 위령제를 지내 죽은 무사들의 영혼을 달랬다. 위령제의 주된 목적은 에도막부와의 전쟁에서 초슈번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었다. 마침내 초슈번과 사쓰마번은 에도막부를 타도해 메이지 정부를 세우게 되었고, 메이지 2년이 되는 해인 1869년 초슈번 사람들은 초슈번에 있던 초혼장을 모체로 도쿄에 큰 초혼장을 건립했다. 이렇게 해서 도쿄 초혼사(招魂社)가 만들어졌다. 10년 뒤인 1879년 도쿄 초혼사는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로 명칭을 바꿨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의 기원은 초슈번의 초혼장인 셈이다. 초슈번 계열인 아베 신조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속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98.

 아베 신조와 혐한 세력, 그리고 일본회의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은 침략 국가가 아니었다. 백인 지배하에 놓인 아시아를 해방해 줬을 뿐이다. 일본군은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 위안부 제도는 합법적인 제도였고 일본 병사들이 현지 여성들을 강간하지 않도록 만든 훌륭한 제도였다. 위안부는 모두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상업적 여성들이었다. 강제 연행이나 강제 동원은 거짓말이다. 난징 대학살은 연합군이 만든 날조다. 일본군은 어디로 가도 환영받았다. 앞으로도 일본군은 적극적 평화주의로 아시아에 평화를 실현할 것이다. 그리고 대일본제국은 식민지였던 조선이나 대만을 근대화해 주었다. 조선인이나 대만인을 평등하게 대해주었고 교육했고 차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한국인들이다. 그들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다고 강조하고 여성들을 강제 연행해서 위안부라는 이름의 성 노예로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한국인을 강제적으로 동원해 보상금이나 배상금을 버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아름다운 일본'을 '더러운 일본'으로 왜곡, 날조해 가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있으면 안 되는 존재다. 그들을 일본에서 쫓아내야 하고 한국에서도 못 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일본에 머리 숙여 굴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 대한 혐한은 당연한 행위다. 혐한을 진실을 밝히는 정당행위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이 갖는 불만의 분출구로 한국과 한국인을 이용해야 한다.... "

 극우파들은 계속 외친다.

 "일본의 아래에 있어야 할 한국이 요새 너무 성장해 버렸다. 다 일본 덕분인데 은혜도 모르고 이제 일본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추월하려고 한다. 용납할 수 없다. 제2의 한국전쟁을 일으켜서라도 한국을 무너뜨려야 한다. 한국은 항상 아름다운 일본의 아래에 있어야 한다."

 이런 극우파들을 결국 심판할 사람들은 양식이 있는 일본인들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너무 행동력이 없다. 국민의 50%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위를 해도 조금밖에 모이지 않는다. 그러나 극우파가 일본을 망가뜨렸다고 깨달은 일본인들이 조만간 나타나 선거에서 자민당을 패배시켜 아베 신조를 총리 자라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극우파들은 이제 거대한 세력이 되었다. 아베 신조의 정책 집단이자 행동 부대인 일본회의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신사 본청은 국가의 승인을 받으면 다시 45년까지의 국가신도로 복원된다. 야스쿠니 신사도 국가신도의 중심적인 전쟁 수행 신사로 거듭난다. 혐한 분위기는 계속 확대되어 한국의 신친일파들을 동원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을 교란시킬 것이다.

 이런 일본의 도전에 적절히 대응하려면 한국에도 거대한 대(對) 일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세를 깨달은 한국인들이 그런 네트워크를 조속히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네트워크는 일본에 관한 남남 갈등을 해결해야 하고 일본의 극우파 논리를 극복해 그들을 굴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일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일본은 러일전쟁 전후로부터 한국에 친일파를 양성해 왔다. 우리 대한민국은 120년의 적폐를 청산해 나가야 한다.

 

 

 

 

 우치다 타츠루의 시사 만평 모음집.

일본의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는 언론인이라 일본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꽤나 유익하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사회의 변화에 대한 일본 진보지식인의 감상과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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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6. '고학'을 권함

 일본 대학의 수업료는 비싸도 너무 비싸다. 국립대학도 첫해 납입금이 80만 엔을 넘는다. 수업료 감면이나 장학금 등 구제 대책은 있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학생 스스로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1970년에는 국립대학 입학금이 4000엔, 한 학기 수업료가 6000엔.... 창구에 1만 엔 지폐를 내면 학생증을 받을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시급이 600엔이었으니까 2시간 일하면 한 달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학생들은 부모의 지갑에 손대지 않고 고학苦學할 수 있었다.

 그 후 교육행정 지도에 의해 학비는 급커브를 그리며 상승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고학생'이 사라졌다.

 고학이 불가능해진 탓에 사회는 엄청나게 변했다. 하나는 진로 결정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자식이 '하고 싶은 일'과 부모가 '시키고 싶은 일'은 대개 다르기 마련이다. 고학이 불가능해졌다는 말은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부모가 절대로 동의해주지 않을 것 같은 분야)'를 단념하는 아이들이 아마 수백만 명 단위로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본의 지적 생산성을 얼마나 떨어뜨렸던 것일까? 그것 때문에 잃어버린 지적 자산은 수업료의 인상으로 국고에 거두어들인 금액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2009년 3월9일)

p168. 조직이 바라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많은 학생들은 취직 준비를 수험 공부와 비슷하다고 여긴다. 성적이 우수하고, 말솜씨가 빼어나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뽑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떨어진다고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채용 여부의 기준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모든 조직은 집단의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는 사람을 원한다. 조직이 바라는 인간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마음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자질은 반드시 '능력'과 일치하지 않는다.

 아무 조건 없이 리더를 지원해주는 '예스맨'의 능력ㄷ, 집단 내부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분위기 메이커'의 능력도, 논쟁이 달아오를 때 삐딱한 역설을 통해 찬물을 끼얹는 '심통쟁이'의 능력도, 하나같이 집단이 건전하게 기능하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수험 경쟁을 통해 배운 것은 탁 까놓고 말해 '타자의 능력 발휘를 방해하고 그 평가를 깍아내리는' 기술이다. 그런 능력은 현실 사회로 나갔을 때 백해무익하다. 경쟁 상대를 필사적으로 떨어뜨리려고 발버둥치는 학생은 경쟁 심리 때문에 면접관에세 낮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쳐주지 않는다.(2009년 4월20일)

p170. 될수록 캠퍼스에 오래 머물라.

 신학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신입생에게 학생 생활의 기본적인 요령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될수록 오랜 시간을 캠퍼스에서 지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수강신청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 대학생의 수업은 강의 1시간 당 예습과 복습에 드는 2시간을 더해야 한다는 전제 때문이다.(15주 동안 이렇게 3시간이 들어가는 강의를 1학점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것이 빈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시간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두어 배 시간을 더 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은 경험상 맞는 말이다.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고 밥을 먹은 뒤에 '휴식'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식이 온몸에 속속들이 퍼지게 하려면 앞뒤로 그 정도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또 하나의 요령은 될수록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생은 '가난을 기본으로' 생활을 설계해야 한다. 가난하면 캠퍼스를 떠돌아다니는 정도밖에 할 일이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예배 시간에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고, 정원에서 꽃을 바라보고, 교사 사이를 산책한다. 그러는 동안 만약 학생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아름다운 것' '지적인 고양을 느끼게 하는 것'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이미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심신의 감도를 높일 수 있는 곳이야말로 학교라는 공간이다. 또한 이것이 대학이 학생들에게 제공해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다. 건투를 빈다.(2009년 5월4일)

p210. 정치인들이 실언을 반복하는 이유.

 자, 청중을 이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방금 즉흥적으로 생각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이 방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요즘의 예능인이다.

p238. '일시적으로나마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듣고 싶다.

 민주당의 대표 선거가 끝나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이 발족했다. 이 내각의 긴급한 과제는 당내 통합과 야당과의 협조다.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최우선의 정치 과제인 것이다. 이 선택에는 현재 일본에 만연한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는 동안 어떻게든 되겠찌'하는 체념과 어렴풋한 희망이다.

 대지진의 피해, 쓰나미,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국나의 위기 직후에는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편에 착수해야 한다는(분노와 슬프이 뒤섞인) 목소리가 일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후 반년 동안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의 졸렬한 대응, 정보의 조작과 은폐, 기득권층의 반격 같은 흐름 속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차츰차츰 잦아들었다. 시스템의 기능 저하가 지나차게 심각한 상태라서 근본적인 재편 같은 것은 바랄 수도 없다는 현실을 뼛속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치가, 관료, 경제인, 방송인 등을 통틀어 일본의 지배 체제에는 신뢰할 만한 인물이 없다. 일본 국민은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들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으리나는 깊은 절망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장 전략 없이 재정의 재건은 있을 수 없다.' 오늘도 신문에는 이 말이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 말을 쓴 장본인도 '성장 전략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달리 쓸 말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성정 전략 없는 재정 재건'이란 '오로지 가난해 질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필시 그렇게 되리라고 마음속 깊이 생각한다. 다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면 '중뿔나 보이기'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다.

 따라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중뿔나게 나서지 않는' '귀에 거슬리는 말은 하지 않는' 총리의 등장은 '시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불가피하게 가난하고 활기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도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파국을 맞이하는 시기를 연기할 수는 있다. 그렇게 해서 '시간 벌기'를 하는 동안 외부로부터 생각하지 못한 어떤 계기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일본인은 이렇게 미미한 기대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하다못해 '일시적으로나마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2011년 9월12일)

p260. 백성의 안녕은 지고의 법

 국회 질문에서 아베 총리는 민주당 의원에게 인권에 대한 조문을 질문받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자, 총리는 일본국 헌법에서 포괄적인 인권 보장을 정한 조문이 몇 조인지 알지 못한다고 이해해도 좋겠습니까?"하고 질타당하는 인상 깊은 사건이 있었다. 개헌파의 우두머리가 '숙적'과 같은 포괄적 인권 보장을 정한 조문을 잊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그런 것은 없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라면 언젠가 그것의 존재 자체가 흐릿해지기도 하는 법이다. 어쩌면 총리가 생각하는 일본국 헌법은 벌써 불확실한 것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헌법 13조의 조문은 이렇다. "모든 국민은 개인으로서 존중받는다. 생명,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공공복지에 반하지 않는 한 입법 등 국정 안에서 최대의 존중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자민당의 헌법 개정 초안은 이렇다. "모든 국민은 사람으로서 존중받는다.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공익 및 공공질서에 반하지 않는 한 입법 등 국정 안에서 최대한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금의 '공공복지'를 개정안이 '공익 및 공공질서'로 바꾼 것이다. '공공복지'는 기본적 인권을 정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근거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랫동안 헌법학의 논쟁거리였고, 지금도 단일화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자민당의 개정안은 여기에 '공익 및 공공질서'라는 한정적이고 일의적인 해석을 부여한 것이다.

 '공공복지'라는 말의 용례는 저 멀리 법에 관한 키케로(Cicero)의 격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성의 안녕 salus populi은 지고의 법이다" 법치국가는 이것에 위배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그러나 '백성의 안녕'과 '공익 및 공공질서'는 말뜻이 다르다. 라틴어 salus는 '건강,행복,안녕,무사,생존'이라는 내포하기 때문이다. '공익과 공공질서'의 유지는 '백성의 안녕'을 위한 요건의 일부이기는 해도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공익과 공공질서를 지키기 위해 백성의 행복과 생존을 희생시키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통치자는 역사상 무수히 많았고, 지금도 많다.(2013년4월15일)

p263.

 공인의 적성은 '자신의 반대자를 포함해 집단을 댚해내겠다는' 각오에 달려 있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데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지지하고 동의하는 사람만 대표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리 거대한 조직을 이끈다고 할지라도 '권력을 가진 사인私人'일 따름이다. 나는 '공인'이 통치자의 사리에 오르기를 바란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 Jose Ortega y Gasset는 자유민주주의를 "적과 함께 살아가고, 반대자와 함께 통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역설적이고, 이토록 우아하고, 이토록 곡예와 비슷하고, 이토록 반자연적인 것을 생각해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참으로 잘 짚어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말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어떤 정치적 이상이 있다고 할 수 있을가?

p268. 귀담아들어야 할 자연과학지의 조언

 영국의 종합학술잡지 <네이처>가 (2013년) 9월5일자에 '핵 에러'라는 제목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문제를 다룬 논설을 게재했다. 그 글은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처리가 부적절하다는 점을 상당히 날카롭게 지적했다. 자연과학 학술지가 한 나라의 정부와 민간 기업이 저지른 그릇된 행적을 대상으로 논란을 벌이는 일은 지극히 예외적이다.

 '무책임하다고까지는 못해도 부주의한' 도쿄전력의 감시 시스템에 의해 오염수 탱크에서 새어나온 누수를 체크하지 못했다는 점. 당초에 '단순한 이상'이라고 경시한 누수가 실은 사고 이후 최대 규모의 '진짜 위기'였다는 점. 위기를 언제나 과소평가하고 정보를 불충분하게 제공해왔다는 점에 그 논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일본정부나 도쿄전력이나 과학자의 시각으로 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무시해왔다.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 세계적인 환경 문제에 파급을 미치지는 않을까, 국제사회는 진심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은 일본이 전세계 연구자의 지원과 전문적인 조언을 바탕으로 국력을 기울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런데도 이 나라 사람들은 올림픽 유치와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들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자력발전소 문제에 대해 매스컴이 집중적으로 질문을 퍼붓자 올림픽 유치위원회 이사장은 초조한 나머지, "도쿄와 후쿠시마는 250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후쿠시마의 사고를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으로 여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세계적으로 드높아지고 있을 때, 일본인은 태연하게 '후쿠시마의 사고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말해버린 꼴이다. 아베 총리는 "오염수의 영향은 원자력발전 사고가 일어난 항만 내로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고 하고, "지금까지도 그렇고, 현재나 미래에도 건강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앞의 논설을 이렇게 서술한다. "일본은 지원을 위한 조언을 얻기 위해 국제적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 연구와 오염 제거를 위한 국제적인 연대는 모니터링과 위기관리의 유용성과 유효성을 둘러싸고 산산히 무너진 공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산산이 무너진 공적 신뢰'를 회복할 셈인가? 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2013년 9월23일)

p276. 진심으로 '전쟁'을 의식하고 있는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 관련법, 특정비밀보호법, 공모죄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은 아베 정권이 진심으로, '전쟁'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일본 국민이 '진심으로 전쟁을 개시할 마음이 있는 정부를 받든 것은 전후 처음이다. 최근 2개월 동안 일본은 법제적으로 '언제라도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말았다.

 만약 내각총리대신이 센카쿠 열도 근처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군사적 충돌을 '영해 침입, 불법 상륙 사안'으로 인정한다면, 그래서 '신속하고 적절한' 군사 행동을 개시함으로써 전투 행위가 벌어진다면,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할 것"이라는 헌법 9조는 사실상 폐기된다.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떤 정보가 올라가고, 어던 논의가 이루어지고, 무엇을 결정했는가에 대해 국민에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곳에서 논의한 것은 '국가의 안전 보장에 관련된 특정 비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동중국해에서 어떤 중대 사안이 발생했고, 정부가 그것에 신속하게 적절하게 대응했다'는 '대본영의 발표'를 얼빠진 표정으로 듣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 일이 없다.

 10월에 열린 자위대 열병식에서 아베 총리는 "방위력은 그 존재만으로 억지력이 된다는 종래의 발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핵 억지력은 '상호확증파괴'에 의해 성립한다. 핵을 사용하면 어느 쪽이든 멸망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서로 억지하도록 기능하겠다는 합의가 핵전략을 '정당화'해왔다. 아베 총리가 상정하는 것은 서로 확실하게 파괴한 적이 없는 수준의 전쟁이다. 완전하게 '통제 아래'있는 전쟁, 말하자면 비전투원도 죽이지 않고, 도시도 파괴하지 않ㅎ고, 매스컴이 호전적인 여론을 떠들기만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위신만 과시할 수 있는 '계획적이고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전쟁'말이다. 아베 총리는 과연 그런 전쟁이 가능하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사용할 수 있는 억지력'이라는 발상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일본 국민은 두 번에 걸친 국정 선거를 통해 '민주당을 따끔하게 혼내주겠다'든지 '결정할 수 있는 정치'라든지 '뒤틀림 해소'같은 일상어로 정치를 논했다. 그러는 동안 비일상적인 상황으로 빠져들고 말았다.(2019년12월30일)

p279.

 애초부터 오키나와에 기지가 들어서야 할 지정학적 이유는 없다. 미군 기지가 훗카이도에 없고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소련'을 적국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소련군이 훗카이도를 통해 남하하면서 일본 열도의 방어 거점을 모조리 파괴하더라도 미군의 주력이 주둔한 오키나와만큼은 온전하게 남는다. 오키나와 기지는 이를 위한 포진이다. 따라서 미국의 가상 적국인 소련이 사라진 오늘날, 미군이 오키나와에 꼭 있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p280.

 비상사태가 발생해 모든 재산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몸 하나만 달랑 도피하려고 할 때, 금이라면 최대 10킬로그램(약 4500만엔, 2019년 11월6일 현재 대한민국 기준 5.5억원)쯤 소지할 수 있다. 그래도 걷고 달리는 동안 허리가 아프고 원망스러울 것이다.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의 한도는 기껏해야 이 정도다. 그것을 실감으로 표상해내는 것이 금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거렸다. 분수에 넘치게 자산을 갖고 있으면 거추장스러워진다. 그렇다면 '희사'하는 것이 좋다. 희사하기 싫은 사람은 병에 넣어 땅에 파묻어도 좋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살아있는 인간의 몸으로 제어할 수 없는 돈은 타인에게 주는 것 말고는 사용할 길이 없다. 이렇게 하면 부의 편재는 해소할 수 있다.

p286. '개헌파'가 아니라 '폐헌파'라고 이름 붙여야

 헌법기념일에 자민당의 헌법개정추진본부장 후나다 하지메(船田元)는 "9조 개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위기적 상황을 생각하면 해석의 확대에 의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명문 개헌의 방향은 어디까지나 유지한다고 한다. 즉 "임시변통일지도 모르지만 이해하기 쉬운 환경권 등을 부가하는 것을 첫 번째 국민투표에 부치고, 그 다음 사람들이 개정에 익숙해지고 나서 9조 개정에 착수하고 싶다." 솔질한 발언이다.

 해석 개헌으로 나갈 수 있는 데까지 나가고, 그것이 무리라면 명문 개헌으로 나가려는 정치가는 헌법 이념의 실현보다 그가 속한 정당의 정책 실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헌법을 철저하게 경시할 수 있는 정치가들이 뻔뻔한 낯짝으로 헌법 운운하고 이야기하는 꼴을 보면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아베 총리대신은 헌법 99조가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공무원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헌법에 결점이 있다드니, 애초부터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드니 하면서 헌법의 실질적인 공동화空洞化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속한 당의 개헌 초안 102조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국민은 이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 즉 국민 전체에게 헌법을 준수할 의무와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다는 이러한 헌법관이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순조롭게 개헌에 성공한 뒤 그가 현행 헌법을 대한 것처럼 국민이 신헌법을 대할 때, 총리는 어떤 논리로 그것을 금지할 생각인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나는 공문원이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지만, 제군은 내가 정한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해야 한다." 이런 요구를 관철하려면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헌법은 그때마다 정부의 형편에 따라 지킬 수도 있고 폐지할 수도 있는 일개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나는 이런 리얼리즘도 '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머릿속에 있는 생각에 맞추어 정당의 강령도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싶다.

 차라리 '헌법 폐지'가 낫지 않겠는가? 긴요한 사안은 내각회의에서 결정해서 주저 없이 실시하면 그뿐이다. 입법부의 심의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 헌법 조문을 내각의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 이것을 통치의 이상으로 삼는 사람들을 '개헌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폐헌파'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타당하리라.(2014년 5월19일)

p320.

 이러한 사고방식의 밑바탕에는 글로벌리스트의 공통적인 생각, 즉 '모든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인간관이 깔려있다.

 그러나 일정한 비율로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인간'이 없다면 나라는 멸망한다.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인간'은 그런 의미에서 '나라의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돈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하지만, 어떤 사람이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국제적인 공통성이 없다. '이곳에서만 통하는' 국지성이 최후의 순간에 한 나라의 토대를 받쳐주는 것이다.(2011년 3월7일)

p322. 다시, 폐를 끼치는 삶을 배우자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孫正義 사장이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자 구제를 위해 100억 엔과 공무원의 보수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한 발언이 화제로 올랐다. 그전에는 야나기 다다시柳井正 유니클로 사장(유니클로 창업자)이 개인적으로 10억 엔, 프로골퍼 이시카와 료石川遼 씨가 2억 엔을 '목표'로 상금을 기부하겠다고 한 것을 매스컴이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평소였다면 이런 기사에 반드시 '냉소적'인 어조가 감돌았겠지만 이번 보도에서는 누구나 냉소를 삼갔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위선적'이라는 둥, '이름을 판다'는 둥, '잘못을 무마하려는 면피용'이라는 둥...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이러한 상투적인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커다란 흐름 변화가 아닐까 한다. '공공의 복리를 위해 사재를 터는 행위'는 메이지, 다이쇼 시대까지만 해도 '성공을 거두고 이름을 날린' 인물이 짊어진 의무였다. 그때는 다들 한 사람이 거둔 사회적 성공이 무수한 사람들의 지원 덕분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성공을 자신의 노력이 거둔 결과로 보고 독점하려는 태도는 '잘못'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생각이 상식으로 통하지 않게 된 지 반세기가 흘렀다. 그후 오랫동안 사람들은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이 나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모범적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풍요롭고 안전한 시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는 또다시 '남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고 남이 나한테 폐를 끼치기도 하는' 삶을 학습해야 했다. 옛날에도 그럴 수 있었으니까 오늘날에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2011년 4월18일)

p325.

 인생은 어긋남의 연속이다. 우리는 대학도 잘못 선택하고, 취직할 회사도 잘못 선택하고, 배우자도 잘못 선택한다. 그럼에도 어떻게 상황을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 "자원봉사자의 선의와 현장의 요구가 어긋난다고 해서 풀이 죽을 것은 없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젊은 건축가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피해 지역에 갈게요. 그 사람들이 다소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라도 커튼 치는 일을 계속할게요."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는거야.(2011년 5월2일)

p328. '만사는 돈 문제'라는 사람의 속마음.

 대지진의 피해가 발생한 직후 블로그에 '소개

 우치다 타츠루의 시사 만평 모음집.

 

일본의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는 언론인이라 일본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꽤나 유익하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사회의 변화에 대한 일본 진보지식인의 감상과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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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6. '고학'을 권함

 

 일본 대학의 수업료는 비싸도 너무 비싸다. 국립대학도 첫해 납입금이 80만 엔을 넘는다. 수업료 감면이나 장학금 등 구제 대책은 있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학생 스스로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1970년에는 국립대학 입학금이 4000엔, 한 학기 수업료가 6000엔.... 창구에 1만 엔 지폐를 내면 학생증을 받을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시급이 600엔이었으니까 2시간 일하면 한 달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학생들은 부모의 지갑에 손대지 않고 고학苦學할 수 있었다.

 

 그 후 교육행정 지도에 의해 학비는 급커브를 그리며 상승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고학생'이 사라졌다.

 

 고학이 불가능해진 탓에 사회는 엄청나게 변했다. 하나는 진로 결정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자식이 '하고 싶은 일'과 부모가 '시키고 싶은 일'은 대개 다르기 마련이다. 고학이 불가능해졌다는 말은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부모가 절대로 동의해주지 않을 것 같은 분야)'를 단념하는 아이들이 아마 수백만 명 단위로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본의 지적 생산성을 얼마나 떨어뜨렸던 것일까? 그것 때문에 잃어버린 지적 자산은 수업료의 인상으로 국고에 거두어들인 금액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2009년 3월9일)

 

p168. 조직이 바라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많은 학생들은 취직 준비를 수험 공부와 비슷하다고 여긴다. 성적이 우수하고, 말솜씨가 빼어나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뽑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떨어진다고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채용 여부의 기준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모든 조직은 집단의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는 사람을 원한다. 조직이 바라는 인간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마음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자질은 반드시 '능력'과 일치하지 않는다.

 

 아무 조건 없이 리더를 지원해주는 '예스맨'의 능력ㄷ, 집단 내부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분위기 메이커'의 능력도, 논쟁이 달아오를 때 삐딱한 역설을 통해 찬물을 끼얹는 '심통쟁이'의 능력도, 하나같이 집단이 건전하게 기능하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수험 경쟁을 통해 배운 것은 탁 까놓고 말해 '타자의 능력 발휘를 방해하고 그 평가를 깍아내리는' 기술이다. 그런 능력은 현실 사회로 나갔을 때 백해무익하다. 경쟁 상대를 필사적으로 떨어뜨리려고 발버둥치는 학생은 경쟁 심리 때문에 면접관에세 낮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쳐주지 않는다.(2009년 4월20일)

 

p170. 될수록 캠퍼스에 오래 머물라.

 

 신학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신입생에게 학생 생활의 기본적인 요령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될수록 오랜 시간을 캠퍼스에서 지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수강신청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 대학생의 수업은 강의 1시간 당 예습과 복습에 드는 2시간을 더해야 한다는 전제 때문이다.(15주 동안 이렇게 3시간이 들어가는 강의를 1학점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것이 빈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시간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두어 배 시간을 더 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은 경험상 맞는 말이다.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고 밥을 먹은 뒤에 '휴식'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식이 온몸에 속속들이 퍼지게 하려면 앞뒤로 그 정도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또 하나의 요령은 될수록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생은 '가난을 기본으로' 생활을 설계해야 한다. 가난하면 캠퍼스를 떠돌아다니는 정도밖에 할 일이 없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예배 시간에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고, 정원에서 꽃을 바라보고, 교사 사이를 산책한다. 그러는 동안 만약 학생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아름다운 것' '지적인 고양을 느끼게 하는 것'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이미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심신의 감도를 높일 수 있는 곳이야말로 학교라는 공간이다. 또한 이것이 대학이 학생들에게 제공해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다. 건투를 빈다.(2009년 5월4일)

 

p210. 정치인들이 실언을 반복하는 이유.

 

 자, 청중을 이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방금 즉흥적으로 생각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이 방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요즘의 예능인이다.

 

p238. '일시적으로나마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듣고 싶다.

 

 민주당의 대표 선거가 끝나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이 발족했다. 이 내각의 긴급한 과제는 당내 통합과 야당과의 협조다.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최우선의 정치 과제인 것이다. 이 선택에는 현재 일본에 만연한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는 동안 어떻게든 되겠찌'하는 체념과 어렴풋한 희망이다.

 

 대지진의 피해, 쓰나미,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국나의 위기 직후에는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편에 착수해야 한다는(분노와 슬프이 뒤섞인) 목소리가 일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후 반년 동안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의 졸렬한 대응, 정보의 조작과 은폐, 기득권층의 반격 같은 흐름 속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차츰차츰 잦아들었다. 시스템의 기능 저하가 지나차게 심각한 상태라서 근본적인 재편 같은 것은 바랄 수도 없다는 현실을 뼛속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치가, 관료, 경제인, 방송인 등을 통틀어 일본의 지배 체제에는 신뢰할 만한 인물이 없다. 일본 국민은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들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으리나는 깊은 절망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장 전략 없이 재정의 재건은 있을 수 없다.' 오늘도 신문에는 이 말이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 말을 쓴 장본인도 '성장 전략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달리 쓸 말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성정 전략 없는 재정 재건'이란 '오로지 가난해 질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필시 그렇게 되리라고 마음속 깊이 생각한다. 다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면 '중뿔나 보이기'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다.

 

 따라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중뿔나게 나서지 않는' '귀에 거슬리는 말은 하지 않는' 총리의 등장은 '시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불가피하게 가난하고 활기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도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파국을 맞이하는 시기를 연기할 수는 있다. 그렇게 해서 '시간 벌기'를 하는 동안 외부로부터 생각하지 못한 어떤 계기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일본인은 이렇게 미미한 기대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하다못해 '일시적으로나마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2011년 9월12일)

 

p260. 백성의 안녕은 지고의 법

 

 국회 질문에서 아베 총리는 민주당 의원에게 인권에 대한 조문을 질문받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자, 총리는 일본국 헌법에서 포괄적인 인권 보장을 정한 조문이 몇 조인지 알지 못한다고 이해해도 좋겠습니까?"하고 질타당하는 인상 깊은 사건이 있었다. 개헌파의 우두머리가 '숙적'과 같은 포괄적 인권 보장을 정한 조문을 잊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그런 것은 없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라면 언젠가 그것의 존재 자체가 흐릿해지기도 하는 법이다. 어쩌면 총리가 생각하는 일본국 헌법은 벌써 불확실한 것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헌법 13조의 조문은 이렇다. "모든 국민은 개인으로서 존중받는다. 생명,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공공복지에 반하지 않는 한 입법 등 국정 안에서 최대의 존중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자민당의 헌법 개정 초안은 이렇다. "모든 국민은 사람으로서 존중받는다.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공익 및 공공질서에 반하지 않는 한 입법 등 국정 안에서 최대한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금의 '공공복지'를 개정안이 '공익 및 공공질서'로 바꾼 것이다. '공공복지'는 기본적 인권을 정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근거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랫동안 헌법학의 논쟁거리였고, 지금도 단일화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자민당의 개정안은 여기에 '공익 및 공공질서'라는 한정적이고 일의적인 해석을 부여한 것이다.

 

 '공공복지'라는 말의 용례는 저 멀리 법에 관한 키케로(Cicero)의 격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성의 안녕 salus populi은 지고의 법이다" 법치국가는 이것에 위배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그러나 '백성의 안녕'과 '공익 및 공공질서'는 말뜻이 다르다. 라틴어 salus는 '건강,행복,안녕,무사,생존'이라는 내포하기 때문이다. '공익과 공공질서'의 유지는 '백성의 안녕'을 위한 요건의 일부이기는 해도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공익과 공공질서를 지키기 위해 백성의 행복과 생존을 희생시키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통치자는 역사상 무수히 많았고, 지금도 많다.(2013년4월15일)

 

p263.

 

 공인의 적성은 '자신의 반대자를 포함해 집단을 댚해내겠다는' 각오에 달려 있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데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지지하고 동의하는 사람만 대표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리 거대한 조직을 이끈다고 할지라도 '권력을 가진 사인私人'일 따름이다. 나는 '공인'이 통치자의 사리에 오르기를 바란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 Jose Ortega y Gasset는 자유민주주의를 "적과 함께 살아가고, 반대자와 함께 통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역설적이고, 이토록 우아하고, 이토록 곡예와 비슷하고, 이토록 반자연적인 것을 생각해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참으로 잘 짚어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말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어떤 정치적 이상이 있다고 할 수 있을가?

 

p268. 귀담아들어야 할 자연과학지의 조언

 

 영국의 종합학술잡지 <네이처>가 (2013년) 9월5일자에 '핵 에러'라는 제목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문제를 다룬 논설을 게재했다. 그 글은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처리가 부적절하다는 점을 상당히 날카롭게 지적했다. 자연과학 학술지가 한 나라의 정부와 민간 기업이 저지른 그릇된 행적을 대상으로 논란을 벌이는 일은 지극히 예외적이다.

 

 '무책임하다고까지는 못해도 부주의한' 도쿄전력의 감시 시스템에 의해 오염수 탱크에서 새어나온 누수를 체크하지 못했다는 점. 당초에 '단순한 이상'이라고 경시한 누수가 실은 사고 이후 최대 규모의 '진짜 위기'였다는 점. 위기를 언제나 과소평가하고 정보를 불충분하게 제공해왔다는 점에 그 논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일본정부나 도쿄전력이나 과학자의 시각으로 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무시해왔다.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 세계적인 환경 문제에 파급을 미치지는 않을까, 국제사회는 진심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은 일본이 전세계 연구자의 지원과 전문적인 조언을 바탕으로 국력을 기울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런데도 이 나라 사람들은 올림픽 유치와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들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자력발전소 문제에 대해 매스컴이 집중적으로 질문을 퍼붓자 올림픽 유치위원회 이사장은 초조한 나머지, "도쿄와 후쿠시마는 250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후쿠시마의 사고를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으로 여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세계적으로 드높아지고 있을 때, 일본인은 태연하게 '후쿠시마의 사고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말해버린 꼴이다. 아베 총리는 "오염수의 영향은 원자력발전 사고가 일어난 항만 내로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고 하고, "지금까지도 그렇고, 현재나 미래에도 건강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앞의 논설을 이렇게 서술한다. "일본은 지원을 위한 조언을 얻기 위해 국제적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 연구와 오염 제거를 위한 국제적인 연대는 모니터링과 위기관리의 유용성과 유효성을 둘러싸고 산산히 무너진 공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산산이 무너진 공적 신뢰'를 회복할 셈인가? 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2013년 9월23일)

 

p276. 진심으로 '전쟁'을 의식하고 있는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 관련법, 특정비밀보호법, 공모죄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은 아베 정권이 진심으로, '전쟁'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일본 국민이 '진심으로 전쟁을 개시할 마음이 있는 정부를 받든 것은 전후 처음이다. 최근 2개월 동안 일본은 법제적으로 '언제라도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말았다.

 

 만약 내각총리대신이 센카쿠 열도 근처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군사적 충돌을 '영해 침입, 불법 상륙 사안'으로 인정한다면, 그래서 '신속하고 적절한' 군사 행동을 개시함으로써 전투 행위가 벌어진다면,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할 것"이라는 헌법 9조는 사실상 폐기된다.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떤 정보가 올라가고, 어던 논의가 이루어지고, 무엇을 결정했는가에 대해 국민에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곳에서 논의한 것은 '국가의 안전 보장에 관련된 특정 비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동중국해에서 어떤 중대 사안이 발생했고, 정부가 그것에 신속하게 적절하게 대응했다'는 '대본영의 발표'를 얼빠진 표정으로 듣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 일이 없다.

 

 10월에 열린 자위대 열병식에서 아베 총리는 "방위력은 그 존재만으로 억지력이 된다는 종래의 발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핵 억지력은 '상호확증파괴'에 의해 성립한다. 핵을 사용하면 어느 쪽이든 멸망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서로 억지하도록 기능하겠다는 합의가 핵전략을 '정당화'해왔다. 아베 총리가 상정하는 것은 서로 확실하게 파괴한 적이 없는 수준의 전쟁이다. 완전하게 '통제 아래'있는 전쟁, 말하자면 비전투원도 죽이지 않고, 도시도 파괴하지 않ㅎ고, 매스컴이 호전적인 여론을 떠들기만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위신만 과시할 수 있는 '계획적이고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전쟁'말이다. 아베 총리는 과연 그런 전쟁이 가능하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사용할 수 있는 억지력'이라는 발상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일본 국민은 두 번에 걸친 국정 선거를 통해 '민주당을 따끔하게 혼내주겠다'든지 '결정할 수 있는 정치'라든지 '뒤틀림 해소'같은 일상어로 정치를 논했다. 그러는 동안 비일상적인 상황으로 빠져들고 말았다.(2019년12월30일)

 

p279.

 

 애초부터 오키나와에 기지가 들어서야 할 지정학적 이유는 없다. 미군 기지가 훗카이도에 없고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소련'을 적국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소련군이 훗카이도를 통해 남하하면서 일본 열도의 방어 거점을 모조리 파괴하더라도 미군의 주력이 주둔한 오키나와만큼은 온전하게 남는다. 오키나와 기지는 이를 위한 포진이다. 따라서 미국의 가상 적국인 소련이 사라진 오늘날, 미군이 오키나와에 꼭 있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p280.

 

 비상사태가 발생해 모든 재산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몸 하나만 달랑 도피하려고 할 때, 금이라면 최대 10킬로그램(약 4500만엔, 2019년 11월6일 현재 대한민국 기준 5.5억원)쯤 소지할 수 있다. 그래도 걷고 달리는 동안 허리가 아프고 원망스러울 것이다.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의 한도는 기껏해야 이 정도다. 그것을 실감으로 표상해내는 것이 금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거렸다. 분수에 넘치게 자산을 갖고 있으면 거추장스러워진다. 그렇다면 '희사'하는 것이 좋다. 희사하기 싫은 사람은 병에 넣어 땅에 파묻어도 좋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살아있는 인간의 몸으로 제어할 수 없는 돈은 타인에게 주는 것 말고는 사용할 길이 없다. 이렇게 하면 부의 편재는 해소할 수 있다.

 

p286. '개헌파'가 아니라 '폐헌파'라고 이름 붙여야

 

 헌법기념일에 자민당의 헌법개정추진본부장 후나다 하지메(船田元)는 "9조 개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위기적 상황을 생각하면 해석의 확대에 의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명문 개헌의 방향은 어디까지나 유지한다고 한다. 즉 "임시변통일지도 모르지만 이해하기 쉬운 환경권 등을 부가하는 것을 첫 번째 국민투표에 부치고, 그 다음 사람들이 개정에 익숙해지고 나서 9조 개정에 착수하고 싶다." 솔질한 발언이다.

 

 해석 개헌으로 나갈 수 있는 데까지 나가고, 그것이 무리라면 명문 개헌으로 나가려는 정치가는 헌법 이념의 실현보다 그가 속한 정당의 정책 실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헌법을 철저하게 경시할 수 있는 정치가들이 뻔뻔한 낯짝으로 헌법 운운하고 이야기하는 꼴을 보면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아베 총리대신은 헌법 99조가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공무원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헌법에 결점이 있다드니, 애초부터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드니 하면서 헌법의 실질적인 공동화空洞化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속한 당의 개헌 초안 102조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국민은 이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 즉 국민 전체에게 헌법을 준수할 의무와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다는 이러한 헌법관이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순조롭게 개헌에 성공한 뒤 그가 현행 헌법을 대한 것처럼 국민이 신헌법을 대할 때, 총리는 어떤 논리로 그것을 금지할 생각인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나는 공문원이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지만, 제군은 내가 정한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해야 한다." 이런 요구를 관철하려면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헌법은 그때마다 정부의 형편에 따라 지킬 수도 있고 폐지할 수도 있는 일개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나는 이런 리얼리즘도 '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머릿속에 있는 생각에 맞추어 정당의 강령도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싶다.

 

 차라리 '헌법 폐지'가 낫지 않겠는가? 긴요한 사안은 내각회의에서 결정해서 주저 없이 실시하면 그뿐이다. 입법부의 심의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 헌법 조문을 내각의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 이것을 통치의 이상으로 삼는 사람들을 '개헌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폐헌파'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타당하리라.(2014년 5월19일)

 

p320.

 

 이러한 사고방식의 밑바탕에는 글로벌리스트의 공통적인 생각, 즉 '모든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인간관이 깔려있다.

 

 그러나 일정한 비율로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인간'이 없다면 나라는 멸망한다.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인간'은 그런 의미에서 '나라의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돈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하지만, 어떤 사람이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국제적인 공통성이 없다. '이곳에서만 통하는' 국지성이 최후의 순간에 한 나라의 토대를 받쳐주는 것이다.(2011년 3월7일)

 

p322. 다시, 폐를 끼치는 삶을 배우자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孫正義 사장이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자 구제를 위해 100억 엔과 공무원의 보수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한 발언이 화제로 올랐다. 그전에는 야나기 다다시柳井正 유니클로 사장(유니클로 창업자)이 개인적으로 10억 엔, 프로골퍼 이시카와 료石川遼 씨가 2억 엔을 '목표'로 상금을 기부하겠다고 한 것을 매스컴이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평소였다면 이런 기사에 반드시 '냉소적'인 어조가 감돌았겠지만 이번 보도에서는 누구나 냉소를 삼갔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위선적'이라는 둥, '이름을 판다'는 둥, '잘못을 무마하려는 면피용'이라는 둥...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이러한 상투적인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커다란 흐름 변화가 아닐까 한다. '공공의 복리를 위해 사재를 터는 행위'는 메이지, 다이쇼 시대까지만 해도 '성공을 거두고 이름을 날린' 인물이 짊어진 의무였다. 그때는 다들 한 사람이 거둔 사회적 성공이 무수한 사람들의 지원 덕분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성공을 자신의 노력이 거둔 결과로 보고 독점하려는 태도는 '잘못'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생각이 상식으로 통하지 않게 된 지 반세기가 흘렀다. 그후 오랫동안 사람들은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이 나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모범적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풍요롭고 안전한 시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는 또다시 '남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고 남이 나한테 폐를 끼치기도 하는' 삶을 학습해야 했다. 옛날에도 그럴 수 있었으니까 오늘날에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2011년 4월18일)

 

p325.

 

 인생은 어긋남의 연속이다. 우리는 대학도 잘못 선택하고, 취직할 회사도 잘못 선택하고, 배우자도 잘못 선택한다. 그럼에도 어떻게 상황을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 "자원봉사자의 선의와 현장의 요구가 어긋난다고 해서 풀이 죽을 것은 없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젊은 건축가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피해 지역에 내갈게요. 그 사람들이 다소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라도 커튼 치는 일을 계속할게요."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는거야.(2011년 5월2일)

 

p328. '만사는 돈 문제'라는 사람의 속마음.

 

 대지진의 피해가 발생한 직후 블로그에 '소개疎開를 권함'이라는 글을 올렸다. 찬반양론이 있었다. 내 귀에 들린 목소리는 거의 다 '찬성'(이라기보다는 '벌써 소개했다')이었다.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혼란을 부채질하지 말라'는 비판이 있었다. 내가 한 말은 이것뿐이었다. "임산부나 어린이, 노인과 병자 등 대혼란이 일어났을 때 자력으로 탈출하기 힘든 사람들은 교통과 통신 인프라가 기능하는 동안 빨리 안전한 곳으로 소개하는 것이 좋다." 무조건 '다들 도망가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 이런 반론이 들려왔다. "소개 때문에 인구가 줄어들면 경기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수도권에 머물면서 평소처럼 소비활동을 계속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나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반면, 그들은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톱니가 맞아 들어갈 리 없다.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대책이 지지부진한 까닭은 '국토의 보전과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할 정계와 재계의 관리들이 실은 그것을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국토의 보전과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돈을 어떻게 충당할까?'하는 생각이 가득 차 있다.

 그들에게 최우선 과제는 방사선량의 측정이나 원자력발전의 멜트스루melt-through에 대처하는 기술적인 대응이 아니라 추경예산과 국채다. 그것은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는 리얼리즘을 채용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돈만 있으면 어떤 곤경도 처리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을 고백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만사는 돈 문제'라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은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은 돈이 없는 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로 '돈만 있으면(돈은 없지만) 모든 것은 잘 풀린다(풀릴 것이다)'는 조건법 구문을 통해 이 세계가 그렇게 부조리하지 않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법의 돈'을 두고 정신없이 주판알을 튕기는 동안에만 그들은 공포의 대상에서 눈을 떼고 한때의 평안을 후무릴 뿐이다.(2011년 7월4일)

 p338. '이기적'으로 굴 수 있는 까닭

 1970년 이후 42년 만에 국내의 모든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정지시켰다. 나는 올해가 '원자력발전 제로 원년'으로서 오랫동안 국민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마이니치신문>(2012년) 5월8일자 여론조사에서 올해 여름 원자력발전을 중단한 탓에 전력이 부족하리라고 에측하고, "절전과 정전에 따른 불편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하는 물음에 74퍼센트가 '참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얼마나 씩씩하고 믿음직한 국민인가?

 원자력발전 재가동 추진파 사람들이 보기에 이것은 뜻밖의 숫자가 아닐까? 왜냐하면 74퍼센트 중에는 전력을 마음껏 사용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의 위기를 깨닫더라도 '딴 일에는 마음을 쓸 수 없는' 절체절명의 리얼리즘에 굴복할 것이라고 재가동 추진파는 예측했을 것이다. 국토가 오염되는 위기에 빠지든말든, 후손에게 핵폐기물 처리 비용을 떠넘기든 말든, 그들은 그런 것보다 '당장 내일 먹을 끼니'를 걱정한다. 지금 당장만 좋으면, 나만 좋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재가동 추진파는 그런 자포자기의 리얼리즘으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셀제로는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는 금방 알 수 있다. 같은 설문조사를 보면 "당신은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정부의 설명을 믿습니까?"라는 물음에 77퍼센트가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마음... 이것이 불편함을 참겠다는 국민적 결단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좋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도리에 어긋난 이기적인 언사를 떠들어댈 수 있는 경우는 역설적으로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공공의 복리를 생각하고 비이기적으로 행동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때뿐이다. 고속도로가 정체되어 있을 때 갓길로 달리는 운전자는 자기 이외의 다른 운전자가 긴급 차량을 위해 갓길을 비워둔 경우에만 편익을 취할 수 있다. 

 일본 국민은 '일단 나 혼자만이라도 비이기적으로 행동하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웃전'의 선의나 양식을 더 이상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2012년 5월27일)

p341.

 원자력발전 사고를 거친 이래 일본 시스템은 치명적으로 낙후하고 있다.

p342.  이 나라에 '어른'은 있는가?

 원자력발전 사고 직후 미국정부는 군용기로 방사선을 측정하고 상세한 '오염 지도'를 작성했다. 지도는 방사성 물질이 북서 방향으로 띠 모양으로 튀어 흩어진다는 것을 밝혔다.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보안원과 문부과학성은 그 데이터를 공표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총리 관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에도 전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잘못된 방향으로 피난을 떠난 많은 주민들이 피폭당하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했다.

 '말단 벼슬아치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들을 지배하는 원칙은 '규정으로 정해놓지 않은 사안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것과 맞닥뜨렸을 때 그들은 판단을 보류하고 웃전의 지시를 기다린다.

 웑자력발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본의 관청은 실효 있는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았다. 원자력발전 사고는 '일어날 리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고는 일어났다. 모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관리들은 판단을 보류했다.

 관리들도 '오염 지도'의 중요성은 금방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활용해 주민의 피폭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행동한 관리는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 좀 놀랄 필요가 있다. '원자력발전 사고가 일어나면 외국 정부가 제공해준 데이터를 어떻게 취급할까?'에 대한 규정이 예규집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규정상 그들의 행동(이라기보다는 비행동)에 하자는 없다. 그러나 요직에 있는 사람은 때로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지에 대해 적절한 기준이 없을 때 적절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 나라에서는 예부터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불렀다.

 일본 관리의 열등함은 제도적인 문제가 아니다. 업무 규정을 세밀화하고, 근무 고과를 엄격하게 정하면 어떻게든 정상화되리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질 자체가 열등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제대로 생각할 줄 아는 '어른'을 등용할 수 있을까? 무엇을 기준으로 '제대로 된 어른'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식별할 수 있을까? 문부과학성과 경제산업성은 '직업교육'이나 '글로벌 인재 육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내부에는 왜 어른이 없을까?'를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2012년 7월2일)

p352. 제국의 수도 하늘은 지금보다 파랗고...

 (2013년) 10월6일 조간에는 1940년에 작성한 '환상의 도쿄 올림픽' 영어판 계획서를 발견한 어느 수집가의 기사가 났다. 도청과 박물관에도 없는 귀중한 사료라고 한다. 나는 이 계획서의 불어판을 읽은 적이 있다. 스위스 로잔에 있는 올림픽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자료실 '일본' 코너 책장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1964년 도쿄 올림픽 계획서라고 생각하고 펼쳐보았는데, 거기에 나온 수도의 사진이 내가 아는 도쿄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래서 새삼 표지를 다시 보았더니 1940년 올림픽 계획서였다. 해가 저물 때까지 열람실에서 읽어나갔다. 실현하지 못한 행사 계획서는 현실과 몽상 중간에 머무는 반투명한 유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올리픽의 도쿄 개최가 정해진 것은 1936년이었다. 다음해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1938년에 개최가 취소되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과 1944년(런던이 개최 예정 도시였다.)은 올림픽이 없었다.

 '환상의 도쿄 올림픽'에 대해 나는 그런 계획이 있었다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치의 정치 쇼였던 베를린 올림픽과 비슷하게 이데올로기 색채가 강한 야외극을 구상했을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했다.

 그러나 계획서를 읽어보니 뜻밖에도 꽤 진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런 비상시에 스포츠에 열광할 여유가 있어?'하고 말할지도 모르는 군부와 여론에 마음을 쓴 탓인지, 신규 건축물은 적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경기장과 선수촌 사진을 보고 나는 특히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1930년대 제국의 도시 하늘은 무척 넓고 파랗다는 것(흑백사진이지만 '투명하고 깨끗한 창공'이라는 점은 알 수 있었다.). 둘째 이때 올림픽에 출전할 운동선수 대다수는 그 후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열람실 책상에 팔꿈치로 턱을 괴고 나는 '1940년에 도쿄 올림픽을 개최한 세계'를 공상해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나오는 '평행세계'적인 공상이다. 그 다음에는 미국과의 전쟁을 회파한 대일본제국을 상상했다. 제국의 수도 하늘이 지금보다 파랗고, 청년들이 지금보다 조용하고 수수한 일본을 상상했다.(2013년 10월21일)

 짐 로저스가 일본의 저널리스트 오노 가즈모토(초예측도 이 사람이 유명 작가들과의 대담을 엮은 것)와 대담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그의 최신 세계 동향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고, 특히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한국에 대한 견해를 자세히 밝혀놓았다.

원제가 "お金の流れで讀む日本と世界の未來 世界的投資家は豫見する, 돈의 흐름으로 읽는 일본과 세계의 미래, 세계적 투자가는 예견한다." 로 책의 내용을 아주 잘 요약하고 있다.

일본의 미래는 상당히 어둡게 예상했고, 한국은 북한과의 통일이라는 이벤트가 진척된다는 전제하에 매우 밝게 묘사해놨다.

 

국내에 번역된 수필만 수 십권이 되는 관록의 여류 수필가.(이 책 보면서 첨 알았다.)

1931년 생으로 88살이다. 여전히 거의 매년 수필집 한 권씩은 내놓는 분이다.

이 수필집은 1970년 작품으로 39살에 썼다.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이룩한 나이에 지난 삶을 돌아보는 내용 위주로 채워져있다. 수필의 특성상 부담없이 읽을만하다.

2차 대전을 거치고, 일본의 패망 이후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가 느끼는 페이소스랄까? 그런것이 있다.

사실 수필은 동시대적인 느낌이랄까 그런것이 강하게 작용하는 장르라서 50년 정도가 지나면 사고가 낡은 느낌이 들기 쉽다. 이 책은 전혀 그런게 느껴지지 않는다. 상당히 리버럴하면서도 과격한 부분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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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8.

 지금 세상에 범람하고 있는 연애가 식어서 불어터진 라면같이 된 것은 부모나 선생이나 선배나 이웃이 젊은 사람들의 연애를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p86.

 인간은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이 없이는 자신의 존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용서하게 될 것이다.

p118.

 고통은 함께하지 않으면 남이 된다.

p154.

 하지만 자신에 대해 가장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뿐이다.

p156.

 인생은 괴로움을 촉각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서두에도 써놨듯이 그간의 도올 선생님의 책이 어렵다는 불만(?)이 많아서 작심하고 쉽게 쓰셨다고 한다.

쉽긴 하다. 선생 글의 특징인 기나긴 서론과 말미에 축약된 주제의 구성은 역시 변함이 없다.

반야심경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의 불교와의 인연, 그리고 반야심경을 이해하기 위한 불교사적인 배경 지식,

한국 근대사의 불교의 모습과 그런 모습에 이르기까지 조선사에 흐르는 한국 불교의 전통에 이르기까지 막힘없이 술술 풀어나가는 선생의 이야기 솜씨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바가 있다.

선생님의 불교 관련 서적이 금강경 강해,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3권)의 2책(권수로는 4권)이 있었는데 이 책으로 어느 정도 불교에 대한 선생의 생각도 정리가 된 듯 하다.

개인적으론 선생이 아직 힘이 있으실 때, 조선역사에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사상사를 한 번 정리해주시면 좋겠다라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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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엄마의 공안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용옥아! 왔구나!" 그 말씀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아들 용옥이만 보였지, 승복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 순간 종교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41. 서산의 입적시

 팔십년전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전에는 거시기가 난 줄 알았는데

 팔십 년을 지나고 보니 내가 거시기로구나!"

아주 간단하고 간결한 명제입니다. 자기 자신의 화상(畵像 )을 놓고 하는 말이니 거시기는 객체화된 "자기Ego"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나의 모습이 나의 밖에 객체로서 걸려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인식이 자기 "밖"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어 철들고 보니 여기 살아있는 나가 곧 거시기, 즉 거시기는 주체적인 나의 투영일 뿐, 영원히 살아있는 실상은 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p43. 거시기와 예수, 거시기의 철학

 거시기를 "예수"로 바꾸어 놓고 보아도 똑같습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상이 신앙의 대상으로서 거시기화 되어 있는 것입ㄴ니다. 그러나 신앙의 궁극에 도달한 자는 깨달을 것입니다. 예수가 나의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곧 예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죠. 내가 곧 십자가를 멘 예수가 될 때에만이 그리스도(=구세)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p68. 사람이 없다.

 깨달음이란 타인에게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전한다는 것은, 타인이 나의 깨달음과 같은 경지에 있을 때 그 깨달음의 경지가 스스로 이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나의 깨달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공감의 전입이 가능한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그만큼 경허의 깨달음은 지존한 것이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이것은 진정 성우 경허의 대오의 경지를 나타내는 확철한 고독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p82. 머슴살이 김 서방, 이 서방이 모두 부처님이외다.

 "절간에 재물이 쌓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외다. 이 돈으로 인근 30리 굶주린 백성들에게 양식을 나눠주시는 것이, 훗날 강 선생님께서 극락왕생하시는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사님, 저도 이 천장사 부처님께 시주를 해서 복을 좀 지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은 이 천장사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머슴살이 하는 김 서방, 이 서방, 농사직소 사는 박 첨지, 서 첨지, 이들이 다 부처님이오이다.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께 시주하는 것과 똑같은 것, 머슴이나 하인이나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시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불공입니다."

p131. 아트만이 없다=실체가 없다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아(我)는 서양철학언어를 빌리면 "실체Substance"에 해당됩니다. 아주 간닪히 얘기하면 모든 사물을 실체가 없다. 즉 자기동일적 분별태가 없다. 모든 사물은 본질이 없다. 실체라는 것은 "아래에sub-" "놓인 것stance"이라는 의미이니까,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 본체, 영원한 이데아를 의미합니다. 모든 존재하는 사물에는 그러한 아트만이 없다는 것이죠.

p136. 무전연기와 환멸연기

 유전연기流轉緣起(생성적 인과) :  고제苦諦 과果 / 집제集諦 인因

 환멸연기還滅緣起(소멸적 인과) : 멸제滅諦  과果 / 도제道諦 인因

 p139. 불교사의 특징 : 전대의 이론을 포섭하여 발전

 사성제의 진리이론도 매우 간단한 듯이 보입니다. 인생은 고통스럽고, 그 고통에는 집적된 원인이 있고, 그 집착을 없애면 열반적정에 든다. 그런데 그 멸집滅執에 8가지 방법이 있다. 그 8가지 방법을 요약하면, 계.정.혜 삼학이다.

계戒 sila : 정어定語  정업定業  정명定命

samadhi : 정념定念 정정正定                  이 모두를 실행하는 정정진正精進

혜慧 panna : 정견定見 정사유正思惟`

p142. 자기 삶의 화두만 유효하다.

 득도라는 것은 오직 자기 삶의 느낌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느낌의 심화는 "혜"의 공부에서 생기는 것이지 "간화看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삼학에 이미 선종과 교종이 다 들어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대장경이 다 들어있는 것이죠.

p153.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지명 하나, 인명 하나, 나라이름 하나를 그냥 적당히 넘어가면 생동하는 역사의 흐름의 핵을 유실하게 됩니다. 

P155.

 이러한 확대과정에 역행하여 극도의 축약화작업이 이루어집닏. 그리고 이 축약은 단순한 축약이 아니라 단행본으로서 자체의 유기적 독립성을 갖는 단일경전이 되는 것이죠. 이 반야경 중에서 독립적 단일경전으로 대표적인 것이 <금강경>과 <반야심경>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따로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두 경전은 동일한 반야경전그룹 내의 두 이벤트일 뿐입니다. <금강경>도 <금강반야바라밀경>이고 <반야심경>도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입니다. 둘 다 "반야바라밀"이라는 주제를 설파한 경전들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금강경>은 현장의 <대반야경>체제 속에 편입되어 있는데 반해(600권 중에 577권이 <금강경>이다), <반야심경>은 극히 짧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반야경>에 포섭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만큼 <반야심경>은 독자적 성격이 강했다고 말할 수 있지요.

P179. 기독교역사는 대승기독교를 허락치 않았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도 일정한 권위의 틀 속에서만 머문 것이고 진정한 대승의 종교혁명을 이룩하지 못했습니다. 아나밥티스트들Anabaptists(자각적이지 못한 유아세례는 무효라는 것을 주장한 사람들)의 주장도 수용하지 못하고 박해했으며, 토마스 뮌처Thomas Muntzer, 1489~1525(종교개혁시대의 래디칼한 신비주의 설교자. 루터에 반대)의, 성경은 단지 과거의 영적 체험의 잔재일 뿐, 그것이 내 마음속에서 영적 생명력을 갖지 않는 한 휴지쪽일 뿐이라는 주장을 이단으로 간주했습니다. 뮌처는 비참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되었습니다.

P186. 6바라밀의 등장

 새로운 대승의 실천원리가 이른바 "6바라밀六波羅蜜 "(육도六度)이라고 하는 것이죠. 1)보시布施 2)지계持戒 3)인욕忍辱 4)정진精進 5)선정禪定 6)지혜智慧(혹은 智惠)라는 것인데, 250계율과 같은 것에 비하면 매우 일반화 되고 추상화 되고 유연성 있는 원칙이 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6번째의 지혜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반야"인데, 6바라밀은 반야의 바라밀에서 완성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서 앞의 5바라밀은 제6바라밀을 위한 전 단계에 불과한 것이죠.

p190.

 타율적 계율이 느슨하게 되면 인간의 자율적 지혜는 고도의 자기 조절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인간이 자율적 자기컨트롤 능력이 없을 때는 당연히 타이트한 계율 속에서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대승의 발전은 계율의 느슨함을 초래함과 동시에 지혜의 특별한 수행, 특별한 자각적 바라밀다, 완성의 길을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p192.

 결국 "지혜의 완성" "지혜의 배를 타고 피안으로 고해를 건너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바로 아상我相을 죽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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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원문(나무위키 + 도올선생 해석)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을 건너느니라.

(도올) 관자재보살께서 심원한 반야의 완성을 실천하실 때에 오온이 다 공이라는 것을 비추어 깨달으시고, 일체의 고액을 뛰어넘으셨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도 그러하니라.

(도올) 사리자여! 오온개공이라는 말이 과연 무엇이겠느냐? 색이 공에 다르지 않고, 공이 색이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나머지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는 뜻이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형태는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도올) 사리자여! 지금 내가 깨달은 세계, 반야의 완성을 통해 조견한 세계, 제법이 공한 이 모습의 세계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다.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고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도 없으며,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無意識界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무의식계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도,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도올) 그러므로 공의 모습 속에는 색도 없고, 수도 없고, 상도 없고, 행도 없고, 식도 없다. 따라서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고, 또한 안식계에서 의식계에 이르는 모든 식계도 없다.

無無明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멸집도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다. 

(도올) 뿐만이냐! 싯달타께서 깨달으셨다고 하는 12연기의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도 없다. 이렇게 12연기의 부정은 노사의 현실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니 노사도 없고 노사가 사라진다는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러한 12연기를 요약적으로 표현한 고.집.멸.도 또한 없는 것이다.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무소득이기 때문이다.

(도올) 앎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다. 반야 그 자체가 무소득이기 때문이다!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도올) 보리살타 즉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다.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는 고로, 공포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도된 의식과 꿈같은 생각들을 멀리 벗어나 버리고, 끝내 열반에 도달한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무상의 정등각을 얻는다.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고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도올)그러므로 그대들은 다음의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반야바라밀다야말로 크게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더 이상 없는 주문이며, 비견할 바 없는 뛰어난 주문이라는 것을! 이 주문이야말로 일체의 고를 제거할 수 있다. 진실한 것이요,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니 이러하니라.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깨달음을 이루자

(도올)마지막으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겠습니다. 곧 그 주문은 다음과 같이 설하여집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추가 해석)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

=>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오노가즈모토가 일본의 시사잡지 보이스에서 저명학자들과의 인터뷰를 베이스로 엮은 책.

원제 "未來を讀む AIと格差は世界を滅ぼすか 미래를 읽는다. AI와 격차는 세계를 망가뜨릴 것인가"

에서 드러나듯 최근의 이슈화되는 인공지능, 부의 양극화, 계급의 격차, 수명연장, 핵 문제들을 각각의 전문가와 함게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고 되어 있다. 

개인적으론 유발하라리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 정도가 공감된다. 하지만 이것도 하라리와 다이아몬드의 기존의 책의 주장의 반복이기 때문에 굳이 이들의 주요 작품을 본 사람에겐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맨 뒤의 윌리엄 페리는 특히 동북아시아에서의 정세, 그 중 북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1990년대의 북핵 상황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최근 남북 관계 개선과 북미의 핵협상으로 이 부분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데 윌리엄 페리보다는 한국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책이 훨신 내용도 많고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인터뷰어이자 편집자가 일본인이라 그런지 마지막 한국정세에 관한 문제에선 조금은 편향된 시각이 읽힌다. 어떤면에선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 어떤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시사대담같은 내용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전작(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어보고 나서 새로 출간된 작품이 있기에 읽어본 작품. 개인적으론 철학은~ 보다는 더 좋은 것 같다.(철학은~에 비해서 주제가 명확하고 내용도 조리있다. 철학은~ 뒤로 갈수록 주제가 내용이 뭘 말하려는건지가 애매해지는 느낌이다.)

저자가 대학을 나오고 나서 사회생활을 한 이후에 쌓은 커리어에서 필요한 내용들은 모두 독학으로 습득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독학이 필요한 이유와 사회인으로서 필수교양을 쌓기 위한 11가지 분야와 그 분야별로 저자의 추천도서가 수록되어 있다.

 

일본의 대표적 진보인사(이 책 보고 알았음)인 우치다 다쓰루와 좀 더 젊은 진보적 지식인 시라이 사토시와의 대담집.

주로 우치다 다쓰루가 거의 이야기를 다하고 시라이 사토시가 추임새를 넣는 정도로 보면 된다.

일본 지식인들의 일본에 대한 혼네(본 마음)를 알 수 있다.

아주 가끔 한국에 대한 감상도 나오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조금 틀리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로

생각할 꺼리를 주긴 한다.

또한 나치에 협력했던 프랑스 비시 정부에 대해서도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다.

일본에 관심이 있고 현재 한일관계의 문제점 그리고 왜 한일관계가 어려운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읽으면 좋을 내용이다. 

 

박경리 선생이 일본에 대한 소회를 강연이나 잡지 기고를 통해서 밝히신 내용을 모아놓은 에세이집.

일반적인 신변잡기라기보다는 일본 소론에 가깝다.

박경리 선생께서는 1926년 생으로 20살 청년기까지의 삶을 일본 식민지배하에서 사셨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 문화 그리고 국가의 정체성 및 국민들의 집단심리에 이르기까지 외면과 내면적인 부분에 있어서 일본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실 수 밖에는 없을셨을 것이고, 평생동안 선생은 한민족이 일본을 극복하는 문제에 천착해오셨던 것 같다. 

선생의 역작 토지로 식민시대를 배경으로 한민족의 애환을 담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박경리 선생은 식민시대를 살아온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마지막 세대로서 일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후세에 전해야겠다는 책임과 소명을 느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선생은 그 꿈을 이루진 못하셨다.

이 책은 모음집이므로 편집을 그런식으로 했겠지만, 일본의 고대사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일본 정신의 원형을 엿보고, 일본 제국주의 시대와 패망후의 일본의 정신사에 대한 고찰과 비판이 담겨있다.

박경리 선생이 일본에 대한 생각의 아웃라인 정도를 이 책의 내용에서 엿볼 수 있다.

아쉬우나마 이런 글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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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7

 

 얼마 후 잡지 <문예> 하계호가 일본에서 왔다. 그들이 말한 대로 인터뷰는 취급하지 않았고 가와무라 씨의 '반일과 향수의 틈새'라는 평론에 내 얘기가 삽입되어 있었다. 제목이 몹시 불쾌했지만 내용은 날카롭고 일단은 공정한 입장에서 성실하게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한국의 반일에는 항상 역사를 동반하며 그것을 증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유의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들 일본인은 소위 역사적 교훈을 배우지 않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혹은 역사는 역사로서 현재와 무연한 것으로, 방편으로 씌여지는 정신적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만세일계를 주장해온 천황의 역사, 다시 말하자면 역사로서의 천황을 의미하고 있으며 같은 일본인의 '역사성'이야말로 근린제국(近隣諸國), 제민족(諸民族)에게는 지극히 수상쩍게 보일 것이다."

 가와무라 씨의 지적은 타당하고 평론가로서의 신뢰감을 내게 안겨주었다. 바로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인근 민족에게만 수상쩍은 것은 아니다. 일본인 자신에게도 수상쩍은 것이다. 일본인의 역사성이 인근 민족에게 피해를 준 것처럼 일본인의 의식을 꽁꽁 동여맨 허위의 포승으로 피해자인 것은 매일반이다.

 

 "박경리 씨의 『토지』는 근원적으로 '대지(大地)'를 소유하고 사용한다는 근대적인 토지소유의 관념 그 자체에 대한 의의를 머금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국유지라는 개념의 확대 부연하면 경작자로서의 조선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은 일본제국주의에의 비판이기도 하지만 그 기층에 있는 것은 토지란 누구의 것이냐 하는 근대적인 경제사회 그 자체를 흔들어대는 물음인 것이다."

『토지』를 농민소설로 간주하려 드는 일부 시각에 늘 쓰거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고 구차스럽게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도 그러는 내 자신에 짜증을 내곤 했었는데 작가의 의중을 여실히 표현해준 가와무라 씨가 고마웠다. 그러나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하여 그 구절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 조선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은 일본제국주의에의 비판이기도 하지만 그 기층에 있는 것은 토지란 누구의 것인가 하는 근대적인 경제사회 그 자체를 흔들어대는 물음이라는 가와무라 씨의 말, 여기에는 미묘한 뉘앙스가 있지만 다른 표현으로 되풀이해 보면 민족주의 반일의 동기와 민족주의 반일의 목적, 그것에는 다 사람의 생존을 저해하는 것에 대한 저항의 필연성이 있는 것이다. 즉 삶의 터전인 땅이 토지의 소유라는 개념으로 변하면서 역사는 투쟁과 터전인 땅이 토지라는 소유의 개념으로 변하면서 역사는 투쟁과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고 작게는 개인에서 민족, 크게는 인류 모두가 피해자의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한일합방을 전후해서 제2차 세계대전 종결까지, 제국주의 식민지시대는 가장 가혹한 땅의 유린과 생명 학살의 도가니였고 우리 민족은 살아남기 위해 민족주으의 불꽃을 간직해야만 했다. 그러면 광복 후 우리는 민족주의를 극복해야만 했는가. 그렇지가 않다.

 역사는 시작되었고 근세, 반세기 동안 약자는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국토가 유린당하고 민족이 살육당했던 제국주의 식민시대 죽지 않기 위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우린 민족주의 반일사상의 불꽃을 간직해야만 했다. 그러나 광복 후 과연 민족주의 반일사상은 쓸모없이 되었는가? 그렇지가 않다. 세계의 현실은 여전히 약자의 호주머니를 강자가 털어내고 있으며 아흔아홉 섬의 곡식을 가진 자가 한 섬 가진 자로부터 빼앗아 백 섬을 채우려는 이것이 오늘날의 민족과 민족 간의 현실인 것이다.

 뿐인가, 영토의 침략보다 더욱 악성인 것은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장본인은 누구인가. 이득을 많이 챙기는 자다. 많이 벌어들이는 만큼 땅을, 지구를 파괴하고 황폐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팽창주의는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 그 해악도 다를 것이 없다.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혹은 무관심을 나타내는 일부 지식층의 이상주의 혹은 지성을 나는 지적 허영으로 본다. 토지의 일본인 오가타 지로(緒方次郎)는 코스모폴리탄이다. 그는 강자편에서, 가해자 편에서 양심을 지켜 비판하는 세계주의자다. 그러나 피해자가 불이익을 안고 과연 평등의 세계주의로 갈 수 있는 걸까? 허구요 망상이다. 한국인의 반일이 모두 그런 논리에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분풀이라는 본능적 감정인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정치적 차원이지만 일본인의 의식도 간과할 수 없는 만틈 일본은 왈가왈부할 처지가 못된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보다 오늘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인의 분을 풀어주지 않았다.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그들은 거의 보상하지 않았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통분이 무슨 사과인가? 그러고도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뻔뻔스런 일이다. 가와무라 씨는 한글세대는 반일이라는 대전제를 전면에 새우고 있으나 구체적 체험과 연구 관찰이라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만 반일이라는 민족교육으로 길러진 지식과 근본적 이미지에 의해 일본을 단죄, 규탄하는 태도를 가지기 일쑤다 했는데 동감이다. 그러나 동감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도식적인 교육을 떠나 생생한 역사적 사실 역사적 입김에 접할 수 있다면 한글세대는 무조건 감정적 시비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넘어가는 사상적 강화(强化)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전후세대도 우리 한글세대에 대한 불만을 사실에 입각하여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관찰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대로(大路)는 결코 일방통행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가와무라 씨의 성실한 우려를 나타낸 말이 있다.

 "그것은 커다란 틀 속을 말한다면 서로 근대화를 절대로 하고 그것에서 뒤떨어지는 정도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비웃는 것 같은 구조가 극동의 아시아 속에 낭질(狼疾)과도 같이 끼워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양국 간의 증오가 지극히 저질 상태인 것을 말하려고 했다기보다 그것은 엄청난 문화의 후퇴를 의미한다. 그것은 결코 민족 간의 대립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세계가 그릇된 방향으로 파멸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물질보다 정신의 측면에서 우려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에서 나는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하고 경제적 동물로, 의식의 야만시대로 뒷걸음치고 있는 것을 말한다.

 

p75

 사실 광복을 기념하는 우리들의 국경일 8.15는 해마다 그 감격과 의의가 희석되어가는 반면, 히로시마 원폭 기념행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열기가 높아가는 것 같고 분함과 보복의 칼을 가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하는데, 그러나 그보다 좀 더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이 일본의 피해의식이다. 그것은 가해자라는 또 하나의 피해의식을 상쇄하는 데는 안성맞춤의 전략적인 것이기도 해서 대충 넘어가려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왜 하필 일본에 핵폭탄이 떨어졌는가. 그 원인을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

 

 다만 열심인 것은 원폭의 기념탑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하고 그들 자신이 피해자임을 세계만방에 고하는 일이다.

 그러면 핵폭탄과 현재의 일본, 그 함수관계는 어떤 것일까. 전쟁 말기 청소년들을 자살 비행으로 내몰던 가미카제를 나는 기억한다. 사이판 유황도 등, 그들의 거점이 무너질 때마다 비전투원에게까지 소위 그 옥쇄라는 것을 강요했고 차마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을 아들이 목졸라 죽였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그 무렵 일본은 본토 결전을 각오했으며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서 옥쇄한다는 것이 흔들 수 없는 명제였다. 그러나 일왕은 깊고 깊은 지하에서 무조건 항복을 녹음했으며 군인들은 궁성으로 난입하여 항복을 막으려 했다. 어쨌거나 핵폭탄의 투하는 일본인 전원 옥쇄 전에 전쟁을 끝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원폭 세례의 원인을 만든 것은 일본이다. 원폭으로 하여 일본이 지구상에 살아남았다는 것도 신빙성이 있다는 얘기다. 끔찍스럽고도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

 

 옛날 일본은 아시아에서 고도(孤島)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고아 같은 존재였다. 기능적이며 공리적은 특성은 차라리 서쪽에 가깝다. 그리고 일본은 서쪽을 등에 업고 동쪽을 배신한 유일한 나라다.

 그러면 뭐가 다른가. 우리는 칸트, 헤겔을 위시하여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독일인인 것을 기억한다. 베토벤, 괴테 같은 숱한 예술가의 모국이 독일인 것을 알고 있다. 그들 철학자, 예술가들은 거짓의 토양에서는 자랄 수가 없다. 진실을 추구하는 그들 후예들이 나치의 범죄를 보상하고 오욕을 씻어낸 것이다. 일본은 거짓의 두 기둥을 박아놓고 국민을 가두어왔다. 하나는 천조의 상속권 주장인 만세일계요, 다른 하나는 현신인으로 왕을 치장한 신도(神道)다. 각일각 변화하는 생명과 만상의 원리를 어기고 어찌하여 일문이 만세에 걸쳐 군림할 수 있을까. 나고 죽는 우주 질서에서 일왕도 예외가 아니거늘 어찌하여 신으로 칭하는 걸까. 거짓은 만사를 거짓으로 만든다. 그곳은 그러나 진실을 추구하는 철학과 예술, 창조를 이룩할 수 없는 허방인 것이다. 그 체제를 변호하는 한, 그 체제가 존속하는 한 일본에 지성인은 존재하기 어렵다. 지성인은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상이 약하고 유리알 속의 유희 같은 탐미주의가 예술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일본이 진실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며, 청산하는 독일과 청산하지 않는 일본의 차이점도 바로 그곳에 있다.

 일본 전설에 우라시마라는 어부 얘기가 있다. 용궁에서 옥함 하나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고향에는 모두 낯선 사람뿐이요, 외로워진 그는 열지 말라는 당부를 어기고 바닷가에서 옥함을 여는 순간 백발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백발은 정확한 시간의 표상이다. 그러나 일본은 옥함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열어야 한다. 백발이 되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질서이며 진실이기 때문이다.

 

p82

 일본 문학에서 탐미주의가 정점을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썩어가는 육체, 괴기스러움에 대한 쾌락, 그것은 일종의 도피다. 자살의 미학도 실은 일그러진 사디즘을 포장해낸 것에 불과하고 삶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의 결여로 볼 수 있다. 산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또 아름다운 것도 없다. 진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실의 추구야말로 문화의 시발점인 동시, 발전의 과정이기도 하다.

 

p84

 참고가 될까 싶어서 와타베(渡部良三)라는 분이 쓴 글을 발췌하여 소개할까 한다. 그는 전쟁 말기 학도병으로 전선에 나갔다가 신병 훈련용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세워놓고 십여 명의 신병이 차례차례 돌격하여 찌르는데 그러고 나면 인간은 걸레 조각같이 되고 마는 것을 목격했다. 와타베 씨는 그 훈련을 거절한 탓으로 기막힌 고초를 겪다가 패전을 맞이한 사람이다.

 

 "일본인이 피해자라는 의식을 가진다면 원폭피습보다 천황의 권력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층, 특히 구(舊) 군부와 관료 중에서 사법 관료, 일본 자본주의 자본, 천황 일족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이 지상에 없다. (중략) 사랑이 있는 군비, 자유가 있는 전쟁 같은 것은 없다."

 "천황은 신에게 기도드리며 일본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분입니다. 그것이 일본의 전통입니다. 이따위 말을 일류 대학 교수가 했지만 소화(昭和) 천황이 전쟁을 선포했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인 사실은 지울 수 없다."

 

p86

 그들은 조선, 맍, 타이완을 반환했다는 말 대신 잃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얼마 전 독도 망언이 있었을 때 반환이 아닌 잃었다는 그들의 발상을 생각하며 쓰게 웃은 일은 있었지만 사람의 일로써는 설명이 안 되고 오로지 만사형통인 신의 세계에서만이 있을 수 있는 일. 왜냐하면 그것에는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

 그렇다면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나 지식인이 뭣에 필요하단 말인가. 와타베 씨의 말이지만 전쟁을 성전(聖戰)이라는 세계사적 신어(新語)를 만들어서 정당화하는 것, 그것 역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에는 신을 모셔오는 것이다. 참 편리하고도 생광스런 물건이다.

 

p173

 자비(自卑)하는 것이 비천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월감의 과시도 비천한 것이며 해악적(害惡的) 요소인 것이다.

 

 

p204

 작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근간은 같습니다. 운영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두 가지 모두 운명은 탁습니다. 똑같이 벽에 부딪혔습니다. 지구는 공해 때문에 멸망직전입니다. 두 가지 모두 공범자예요. 이제는 궤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자본이니 공산주의니 떠드는 것은 모두 구시대적이비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모두가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낼 지방자치에 대해서도 박씨의 논리는 분명했다.

 "단위가 적어지면 시민의식을 보다 잘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각 지방이 제멋대로 놀고 있어요. 앞으로는 지방민의 감시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럴려면 의식이 높아져야겠죠. 당연히 문화가 높아져야 의식이 높아집니다. 공해를 막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지방자치는 뿌리내려야 합니다. 바로 눈앞의 것을 감시할 수 있게 됩니다."

 

 철학으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철학에 대한 강의라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측면에서 자기 계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현역의 기업 경영 컨설턴트로서 경영에 관한 기업 강연에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 2013년 이후부터 13권의 책을 으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철학에 대한 강의라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측면에서 자기 계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현역의 기업 경영 컨설턴트로서 경영에 관한 기업 강연에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 경험을 살려서 주로 경영에 관한 내용으로 2013년 이후부터 13권의 책을 내놨다.(국내에는 6권이 발간됨.) 

 

 주요한 철학자 혹은 사상가(혹은 과학자) 50명의 주요한 사상적 컨셉트 50개를 가지고 사람, 조직, 사회, 사고라는 4가지의 카테고리에서 삶의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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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이 책의 초반부에 이 책에서는 칸트를 다루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요점은 닭을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핵심은 철학적 논점이 아니라 그 논점이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너무 어려운 이야기는 지양했던 것 같다.(그래도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딸리고 논점이 불명확한 것들이 있다고 느껴진다.)

 이 책 서두에서 밝히듯 철학의 물음은 크게 what, how의 2가지인데 what에 대한 철학의 논의들은(그것이 오래된 것일수록) 현재에는 이미 진부하거나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이 책에서 주목할 것은 how인데 how는 주로 일의 진행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 책의 주요한 부분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지는데 경험지식을 얻기에 그렇게 에피소드가 풍부하다거나 하긴 힘들다. 

 그래도 이 책은 초반부는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있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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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내용 요약)

서문) 옥스포드 대학의 간판학부는 PPE : Philosophy, Politics, Economics 중 철학이 필두

1부. 무기가 되는 철학

1949년 시카고 대학 총장인 로버트 허친수(Robert Hutchins) "교양없는 전무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다."

-철학은 배움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

1)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2)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3) 어젠다를 정한다

; 과제를 정하고 나서야 방법도 계획도 혁신도 있다. 유명한 혁신가들은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과제가 있어서 일을 했다. "혁신이 정체되어 있다."라는 말이 나온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정체를 초래하는 가장 큰 장애요인 즉, 병목현상을 유발하는 요인은 아이디어와 창조성의 결여가 아니라 애초에 해결하고 싶은 과제 또는 어젠다가 없다는 사실에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몸에 익힐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안목을 길러주는 것이 바른 공간축과 시간축에서 지식을 확산하는 일,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다. 교양은 상식, 기존의 고정관념을 자신의 시각으로 다시 보는 렌즈 같은 것.

4) 같은 비유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요 카테고리는 '사람', '조직', '사회', '사고'

"어떤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인가?"

→ 물음 자체가 큰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치즘', '스탈리니즘', '문화대혁명', '폴 포트', '옴 진리교'(이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옴진리교가 하나의 예로 나왔다. 그런데 앞의 군국주의와 독재파쇼적 예들과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을 맞추려면 일본 제국주의가 나오는게 맞을 듯. 이 정도의 책을 쓰는 저자도 일본역사를 제대로 안배워서 그런건지 아니면 일본 제국주의는 좋은거다라고 배운건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은 지식인들도 동아시아 역사에 대해선 무식하거나 아니면 균형감각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등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한 운동'은 모두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 지옥으로 가는 길은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선의로 깔려있다. (도그마의 폐해)

-물음의 종류 'what'과 'how' / 배움의 종료 '프로세스'와 '아웃풋'

2부. 지적 전추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 사상.

1장. '사람' 왜 이사람은 이렇게 행동할까?

1) 니체 - 르상티망(Ressentiment)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은 질투,원한,증오,열등감등이 뒤섞인 감정. 시기심으로 요약되며 여우의 신포도가 그 전형.

→ 해소방법은 허영심의 충족(명품의 소비 같은 방법을 통해), 거짓달관(거짓선지자, 위선자, 종교적 도피, 현실감을 잃은 종교는 위험하다)

2) 칼 융 - 페르소나

외부와 접촉하는 외적 인격. 페르소나란 한 사람의 인간이 어떠한 모습으로 밖으로 드러내는가에 관한, 개인과 사회 사이의 타협.

▶(개인감상) 사회생활의 정신적인 노동의 강도는 자기의 본질과 너무 떨어진 페르소나를 유지해야 할 때 더욱 강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직위가 높아질수록 조직이 커질수록 기계적, 작위적 위계의 관계의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이 될수록 조직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사회,가정,집단에서 서로 다른 페르소나를 가짐으로써 전체적인 인격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mobile의 등장으로 이 경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 

→ 이로 인해 각 영역간(가정,소속집단,사회)에 유지되오던 간격이 무너지면서 영역간의 서로 다른 페르소나를 가짐으로써 유지해오던 인격의 균형이라는 것이 무너진다. 이때 위협받는 인격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도피이다.

▶(개인감상) 아이들의 왕따에서 해방되는 길은 학교를 관두거나 자살,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직장을 관두거나 자살하는 것도 비슷한 전략이다.

3) 성과급으로 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가?

-성과급이 문제해결에 재미를 느껴 몰입하는 자발적 동기를 저하시킴. 또는 성과급이 기대되는 행동만을 하도록 유도함.

→ 대가를 약속받으면 높은 성과물을 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많은 대가를 얻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게 됨. 더불어 스스로 과제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도전적 과제가 아니라 대가가 높은 과제를 선택.

존 볼비(영국의 심리학자) - 안전기지(secure base) : 애착관계가 강한 아이가 호기심이 강하며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경향이 강함. → 실패해도 도전을 격려하는 미국이 창의와 도전정신이 강한 이유.

 개인이나 조직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리스크를 무릅쓰고 나아가는 데는 당근도 채찍도 효과가 없다. 다만 자유로운 도전이 허용되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러한 풍토속에서 사람이 주저없이 리스크를 무릅쓰는 것은 당근을 원해서도 채찍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그저 단순히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4)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리스토델레스 - 수사학

설득 << 이해 <<<...< 공감, 말<<머리<<<..<가슴, Logos(논리)<<Ethos(윤리)<<<..<Pathos(열정)

소크라테스, "리더야말로 레토릭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진실에 이르는 길은 거기에 없다."

▶(개인감상)코리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 1절~2절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5) 노력하면 구원발을 수 있다고 신을 말하지 않았다.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 - 예정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세계 사상사의 중요한 대목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맥락적 해설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이라든가, 칼뱅에서 막스베버로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발전배경과 같은. 다른 철학서에서 잘 못보던 부분이다.)

'노력→결과→평가→대가'는 기업의 인사평가가 전제하고 있는 기본구조이다. 얼핏 합리적이고 단순해 보이는 이 인관관계가 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협화음을 만들고 성숙하게 정착하지 못했을가?

 자신의 노력이 정확히 평가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알기 쉬운 체계라면 인간은 열심히 일한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다. 고용 문제를 다룬 책을 읽어 보면 대개 그렇게 쓰여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노동과 대가가 정확하게 수직적 상관관계를 보인다면 인간은 아마도 일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설렘도 기쁨도 없을 테니까. -우치다 다쓰루, 나카자와 신이치 <일본의 배경과 상황, 日本の文脈>-

6) 타고난 능력이란 없다. 경험을 통해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존 로크-통치론

타불라 라사(Tabula lasa) : 빈 서판(Blank slate)와 같은 의미, 스티븐 핑커의 저명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어서 읽어야 할텐데라며 사놓고 몇 년째 보지를 못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연역적 사과와 플라톤의 이데아를 부정→경험론을 지지.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 서구 인권 사상에 영향을 줌 →미국 독립선언, 프랑스 인권선언

7) 자유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을 동반한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기억나는 것들)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유를 도리어 힘들어한다.(맞는 말이다. 직장 생활 10년 정도만 되면 일주일의 휴가의 첫날에도 무엇을 해야 하나하고 멍해질 따름이다. 20년차 정도가 되면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가고 싶어한다.)

8) 불확실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 버러스 프레데릭 스키너 - 대가

스키너의 쥐의 행동실험

먹이가 나오는 조건에 따라 쥐가 버튼을 누르는 횟수는 ④ > ③ > ② > ①

① 고정간격 스케쥴 : 버튼을 누르는 것과 상관없이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먹이가 나옴.

② 변동간격 스케쥴 : 버튼을 누르는 것과 상관없이, 불규칙한 간격으로 먹이가 나옴.

③ 고정비율 스케쥴 : 버튼을 누르면 반드시 먹이가 나옴.

④ 변동비율 스케쥴 : 버튼을 누르면 불확실하게 먹이가 나옴.

→ 인간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 무언가 불확실성이 있는 것에 인간은 끌린다. 모험/탐험심.

9) 인생을 예술작품으로 대한다면. 장 폴 사르트르 - 앙가주망, 실존주의

사르트르, "앙가주망'하라.

참여의 의미

① 우리 자신의 행동 → '인간은 자유의 형벌에 처해있다.'

② 세계 : 세계 즉 외부의 현실과 나는 불가분의 관계. 현실을 자신의 일로 구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태도. 즉, 앙가주망이 필요. (촛불혁명과 같은 위대한 시민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운동에 대한 사상적 기반)

10) 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한나 아렌트 - 악의 평범성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개인감상) 무라카미 잡문집 중에서 이스라엘에서 문학상을 받을 때 수상소감이 있다. 그 글중에 기억이 남는 것은, "나는 개인과 시스템이 대립하는 일이 있을때, 어떤 일이 있어도 시스템에 대항하여 인간의 편을 들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아마도 이것은 진실과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11)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일수록 인맥이 넓지 않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 - 자이실현적 인간

장자, <산목>편

'군자의 교제는 물과 같이 담백하여 영원히 변함이 없고, 소인배의 교제를 단 술과 같아 오래가지 못한다.

12)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꺼이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 리언 페스팅어(Leon Festinger) - 인지부조화

 우리는 신념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과관계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인지부조화 이론은 시사한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행동이 일어나고 나중에 그 행동이 합치되도록 의사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합리적인 생물이 아니라 나중에 합리화를 도모하는 생물이라는 것이 페스팅어가 내놓은 답이다.

→ 고된 일을 시키고 보너스를 조금 준다면 일에서 보람을 더 느꼈다고 인지부조화를 줄이는 사고를 할 가능성?

13) 개인의 양심은 아무런 힘이 없다. 스탠리 밀그램 - 권위에의 복종

 밀그램의 실험(일명 아이히만 실험)은 악한 행동을 하는 주체자의 책임소재가 애매하면 애매할 수록 사람은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제심과 양심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현상은 아주 위험하다.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양심이나 자제심이 작동하기 어려워진다면 조직이 비대해진 만큼 악행의 규모 또한 비대화되기 때문이다.

 한편 밀그램 교수가 실시한 아이히만 실험은 우리에게 희망의 빛도 함께 가져다준다. 인간은 권위에 놀랄 정도로 취약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 권위에 대항하는 약간의 반대의견 또는 양심과 자제심을 부추기는 작은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간성에 근거해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이는 조직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이것은 잘못된게 아닌가!" 라고 맨 먼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14) 언제 일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 몰입

 

2장. 조직 - 왜 이 조직은 바뀌지 않을까?

15) 뛰어난 리더의 조건. 마키아벨리-마키아벨리즘(군주론)

 마키아벨리는 더 나은 통치를 위해서는 비도덕적인 행위도 허용된다고 즉, 그 행위가 더 나은 통치라는 목적에 부합한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비도덕적인 행위가 허용될 만큼 더 나은 통치를 지양했던 예가 역사에 있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는 마키아벨리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결과에 의해 수단이 정당화된다는 뜻이다. 보통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을 양아치라고 한다.)

16) 끝까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존 스튜어트 밀 - 악마의 대변인

 조직에서 의견 교환이 기탄없이(우수한 집단지성의 아웃풋이 나오려면 보장되어야 할 전제. 하지만 실제로 how가 매우 어렵다.) 오가면 오갈수록 결정의 질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수 많은 실증연구에서 밝혀졌다.

 어떤 아이디어의 옳고 그름은 그 시대의 엘리트가 통치하는 대로 결정되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다면적인 사고를 거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집단의 문제해결 능력은 동질성과 이율배반의 관계에 있다. 아무리 개인의 지적 수준이 높아도 동질성이 높은 사람이 모이면 의사결정의 질이 현저히 저하된다는게 밝혀졌다.

 조직론에 관한 수 많은 연구에서 다양한 이견에 따른 인지부조화가 질 높은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요컨대 아무리 지적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도 비슷한 의견이나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지적 생산의 질은 더 낮아진다. 

17) 붕괴된 가족과 공동체의 새로운 대안. 

페르디난드 퇴니에스 - 게마인샤프트, 게젤샤프트

-게마인샤트프(Gemeinschaft) : 지연, 혈연의 자연발생 커뮤니티, 공동체, 공동사회

-게젤샤트프(Gesellschaft) : 이익사회, 이익/기능/역할에 의해 연결된 인위적 커뮤니티, 회사 등

게마인샤프트에서 게젤샤프트로의 사회구조 변화로 인해 소외,고독,연대의 단절의 사회문제. 게마인샤프트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는 현대사회지만 사회의 발전의 압력은 전통적 게마인샤프트의 붕괴로 이어짐. 동호회등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통의 관심사나 생각이 동질한 사람들간의 유대가 새로운 대안으로 중요해짐.

18)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 쿠르트 레빈 - 변화과정

해동(Unfreezing)→혼란(Moving)→재동결(Refreezing)

19) 권위를 만드는 세 가지 요소. 막스베버 - 카리스마

▶(개인감상) 기업의 창업자는 창업의 성공으로 기업 경영에 대한 정당성=카리스마를 갖게 된다. 2세,3세로 갈수록 기업(특히 대기업)경영에 문제가 되는 것은 후계자들이 부적절한 혹은 인위적 카리스마를 추구하다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의 이재용은 아버지 이건희의 반도체 신화와 같은 성공 히스토리를 갖고 싶어했다. 그러다가 무리하게 터진 것이 이번 삼성바이오 사태이다.(이재용 입장에선 미래 사업인 바이오와 이를 이용해서 실적을 뻥튀기-분식회계-하고 삼성그룹의 지배권도 확보하는 일석이조, 꿩먹고 알먹고의 아주 기막힌 계획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재까진 성공을 했는데 문제는 이 불법 사실을 대중들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재용에 의해서 삼성은 아주 더러운 회사라는 이미지를 굉장히 오랫동안 가지게 될 것이다. 이재용이 삼성이라는 회사에 진정한 애정이 있다면 이 즈음에서 죄를 시인하고 감옥에 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는 삼성지배에 대한 정당성도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창업자의 능력은 창업이라는 리스크를 딛고 일어서면서 발휘된 것이다. 그러한 리스크를 무릅쓸 필요가 없는 후계자들은 헛된 카리스마의 추구보다는 논리적 합리성과 겸손함으로 기업을 경영해 나가면 된다.

20)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일해야만 하는 이유. 에마뉘엘 레비나스-타자의 얼굴

"타자는 깨달음의 계기다."

인터넷에 의한 섬우주(島宇宙)화 :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 교수가 정의한 개념으로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집단을 만들어 그 내부에서만 소통하는 현상. → 우물안 개구리

21)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진다. 로버트 킹 머튼 - 마태효과

 선점의 효과. 결과와 성과에만 몰리는 현상을 경계.

22) 협조할 것인가, 배신할 것인가? 존 내쉬 - 내시 균형(게임이론)

23) 왜 기장이 조종할 때 사고 발생 확률이 더 높을까? 헤이르트 호프스테더 - 권력거리

 신입과 하위계층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열어야 한다.

24) 안정이 계속될수록 축적되는 리스크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 반 취약성(앤티 프레자일)

Anti Fragile : 절식(絶食)이나 운동이라는 부하(負荷)를 걸면 오히려 건강해지거나 강해지는 것.

 만약 속해 있던 조직과 커뮤니티가 소멸된다 하더라도 소속된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면 그 사람의 사회자본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고 아메마형으로 분산되어 유지될 수 있다.

3장. 사회 :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5) 어떻게 시스템은 인간을 소외시키는가?

칼 마르크스 - 소외 → 시스템에 휘둘린다의 의미

경제학 철학 소고에 쓰인 4가지 소외

①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②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③ 유적(類的) 소외 : 부품인간

④ 타인으로부터의 소외 : 경쟁, 물욕

→ 목적과 시스템의 전도,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

26) 독재 vs 자유 / 질서 vs 무질서

토마스 홉스 - 리바이어던

27) 구글은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될 수 있을까

장 자크 루소 - 일반의지

28)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애덤 스미스 - 보이지 않는 손

: 휴리스틱(heuristic)에 의한 선택, 질서

29)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찰스 다위 - 자연도태 ; 우연의 긍정정(우발에서의 가능성)

30) 업무 방식 개혁 앞에 놓인 무서운 미래

에밀 뒤르켐 - 아노미, <사업분업론>, <자살론>

31) 경제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관계

마르셀 모스 - 증여

32) 성 편견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 - 제2의 성

33) 재빨리 도망칠 줄 아는 사람이 승리한다

질 들뢰즈 - 파라노이아(편집증)와 스키조프레니아(분열증)

사람들은 으레 착각하곤 하는데, 도망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가 있기에 도망칠 수 있는 것이다.

34) 공평한 사회일수록 차별에 의한 상처가 깊다.

세르주 모스코비치 - 격차, <군중의 시대>, <다수를 바꾸는 소수의 심리학>

35) 감시당하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

미셸 푸코 - 페놉티콘,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36) 사람들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보이기 위해 돈을 쓴다

장 보드리야르 - 차이적 소비, 소비의 사회

① 기능적 편의 → ② 정서적 편의 → ③ 자아실현적 편익

37) 보이지 않는 노력도 언젠가는 보상받는 다는 거짓말

멜빈 러너 - 공정한 세상 가설

4장. '사고', 어떻게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38) '결국 이런 뜻이죠?' 라고 말하면 안되는 이유.

소크라테스 - 무지의 지

오토 샤머 교수 - U 이론, <본질에서 답을 찾아라>

커뮤니케이션에서 듣는 방법의 깊이 4단계

1단계 : 자신 내면의 시점에서 생각 - 주관적, 발전X

2단계 : 시점이 자신과 주변의 경계에 있음 - 객관적, 본질X

3단계 : 자신의 외부에 시점이 있다. 고객의 입장, 비즈니즈 거래O

4단계 : 자유로운 시점. 이론의 축적이 아닌 지금까지 살아온 체험과 지식을 연결할 수 있는 지각 능력

39) 이상은 이상일 뿐. 현상에 사로잡히지 말지어다.

플라톤 - 이데아

40) 오해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 - 우상, 영국 경험론의 시조, 아는 것이 힘이다.

오해나 편견으로 오는 인식의 오류 → 4가지 우상

① 종족의 우상(자연,성질에 의한 우상) - 착각

② 동굴의 우상(개인 경험에 의한 우상) - 독선

③ 시장의 우상(전문,轉聞,에 의한 우상) - 거짓말, 전해들은 말

④ 극장의 우상(권위에 의한 우상) - 편견

41) 생각은 아웃소싱할 수 없다

르네 데카르트 - 코기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결국 차세대로 이어지는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으로 체택되지 않음.

42) 진보는 나선형 발전으로 이루어진다.

게오르크 헤겔 - 변증법

43)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어휘력을 길러라.

페르니당 드 소쉬르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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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p7

 시카고 대학교 총장이었던 로버트 허친스는 리더가 교양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교양 없는 전문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다.
 ● 전문 능력이 있다고 해서 교양이 없거나 매사에 무지해도 되는 것일까?

 참으로 강렬하다. 철학을 배우면 어떤 일에 도움이 된다거나 멋있어 보인다거나 현명해진다는 것이 아니고, 철학을 배우지 않고 사회적 지위만 얻으면 문명을 위협하는 존재, 한마디로 '위험한 존재'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핀란드의 교육제도를 언급)

 지금 전 세계는 교육 혁명 중이다. 그중 핀란드가 단연 독보적이다. 핀란드는 고정적인 학년별 커리큘럼을 없애거나 교과별 수업을 하지 않는 추세다. 학교 수업이라 하면 같은 연령의 아이들이 같은 교실에 모여 같은 교과목을 공부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우리에게는 핀란드의 교육 제도는 기이하게 여겨질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스템과는 다른, 무언가 새로운 시스템이 생겼나구나 하는 정도로만 이해하기 쉽다.

 일정 연령의 아이들을 같은 장소에 모아 단위 시간을 구분해 똑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교육 제도는 메이지 시대의 부국강병 정책 아래서 수많은 아이에게 획일화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인류는 탄생 이래 줄곧 아이들을 교육해 왔고 그 역사는 수만 년에 이른다. 이 오랜 역사 속에서 현대 교육 시스템은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체택된 제도일 뿐이다.

=> 읽을 만한 책, 피터 살베리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p8

 나는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조직을 만드는 법>을 집필할 때, 사회에서 혁신가로 인정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그들 중 처음부터 '혁신을 일으키겠어!'라고 마음먹은 이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일은 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구체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과제가 있어서 일을 했다. "혁신이 정체되어 있다"라는 말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정체를 초래하는 가장 큰 장애 요인, 즉 병목현상을 유발하는 요인은 아이디어나 창조성의 결여가 아니라 애초에 해결하고 싶은 과제 또는 어젠다가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처럼 중요한 과제 설정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열쇠는 '교양'에 있다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현실로부터 과제를 선택해 끌어내려면 반드시 상식을 상대화해서 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풍습과 생활문화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일본의 풍속에 대해 '왜 이런 걸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외국의 풍습과 생활문화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런 점이 이상해요 일본인!> 같은 유형의 제목을 단 책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종종 보는데 이러한 콘텐츠는 일본인에게는 아주 당연한 습관이 외국인에게는 무척 이상해 보이는 상황을 포착하고 그에 대해 당사자인 일본인들이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네'라며 공감하는 구도를 바탕으로 한다. 지리적인 공간이나 역사적인 시간의 폭을 넓은 시야로 볼 줄 아는 사람일수록 눈앞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혁신은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 다시 말해 상식을 의심하는 것에서 비로소 혁신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을 사사건건 의심한다면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 왜 신호등의 진행  표시는 초록색이고 정치 표시는 빨간색일까, 왜 시곗바늘은 오른쪽으로 돌아갈까 등을 하나하나 깊이 생각하다가는 일생생활이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흔히 접하는 '상식을 의심하라'라는 메시지의 맹점이 있다.

 혁신하기 위해 상식을 버리라거나 상식을 의심하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이러한 조언에는 '세상에 상식이라는 것이 왜 생겨났으며 한번 굳어진 상식은 왜 바꾸기 어려운가'에 관한 통찰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상식을 의심하는 행휘에는 사실 상당한 비용이 든다. 반면 혁신을 실행하려면 상식에 대한 의문이 필요하므로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이 역설을 푸는 열쇠는 하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몸에 익힐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이러한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 바로 공간축과 시간축에서 지식을 확산하는 일,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이 교양을 갖춰야 하는 이유)

 교실 안에 있는 철학자가 세상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일찍이 사르트르나 마르크스가 발휘했던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 지적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실무를 다루며 매일매일 생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즉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다. 이는 이 책의 한나 아렌트 부분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세계적인 비극의 장본인은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아돌프 히틀러도 캄보디아 킬링필드 주범인 폴 포트도 아닌, 그들을 리더로 따르기로 선택한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 의해 거대한 악이 자행되었다고 한다면 과거의 철학자들이 인류가 지불한 비싼 수업료의 대가로 남긴 문헌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배우는 데는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실무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개인의 체험을 통해 얻은 편협한 지식에 의거해 세계상을 그리는 일이 많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자기만의 세계상을 품은 사람들로 인해 갖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묵인할 수는 없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 이론>에서 자신의 잘못된 이론을 내세우면서 흡족해하는 실무자를 이렇게 비판했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자는 대부분 실패한 경제학자의 노예다.

 신랄한 지적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반복해 온 비극을 우리는 또다시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지불한 비싼 수업료의 값어치를 살려 더욱 높은 수준의 지성을 발휘하는 인류, 이른바 새로운 유형의 인류로 살아갈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과거의 비극을 토대로 얻은 교훈을 얼마만큼 배워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p16

 부를 경멸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너무 신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부를 얻을 가망이 없는 사람들이 부를 경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부를 얻게 되면 그들만큼 상대하기 곤란한 사람은 없다.

 저자 호리 마사타케(堀正岳、일본 발음으로는 호리 마사'다'케이다)북극지방의 기후변동을 연구하는 이학박사라는 경력의 약간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원제목도 그대로 지적 생활의 설계이다.

 책의 제목 그대로 지적생활을 설계하기 위한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지적생활의 의미와 가장 중요한 지적 축적과 지적 발산(지식의 나눔, 넓게는 공유 그리고 지식 마켓팅까지)에 대한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지적 소비에서 시작하여(대부분 이 단계에서 머물고 말지만), 꾸준한 지적생활을 통하여 지적 축적이 어느 단계까지 이르면서 지적생활이 생활 혹은 직업상의 생산성 증대에까지 이르는 생활의 팁과 구조화된 방법들을 다루고 있다.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독서라든가 강연회를 보러 가는 등의 활동을 하는데 뭔가 이대로 괜찮을걸까 하는 2% 부족한 이들에게 자신의 지식활동을 재점검하고 향후의 방향과 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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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키워드 및 내용 요약

1. 계획과 실적에 대한 정기적 점검, 이를 통한 피드백을 다시 계획에 반영하는 것. 분기/반기/년간 등의 일정으로.

: 마치 회사에서 실적 정리하는 것을 생각하면 될 듯. 그것보다는 더 가볍고 간략하게.

2. 우메사오 다다오 <지적 생활의 기술>

"정보 정리는 일반적인 정리,정돈과는 다른 것. 정보정리는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상태를 의미."

3. 이노우에 미츠하루(井上光晴) <소설을 쓰는 법(小説の書き方)>

: 연습노트 ABC

A : 일기, 하루의 일

B : 그날 읽은 기사, 책 내용

C : 자신의 창작, 의견

4. 세이브 포인트

: 동시에 여려 권의 책, 혹은 여러가지 일이나 공부를 할 때 유용. 책을 읽은 부분까지 감상/내용을 요약. 나중에 이 세이브포인트 메모/요약을 연결하면 감상문이나 구조화된 메모가 된다.

5. 지적 생활에 필요한 도구와 습관

- 체계적 시간관리, 짜투리 시간의 활용,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와 실생활 접목, 습관화

- 미래를 위해 나의 현재 인풋의 5%를 할당, 여기서 미래란 새로운 분야 ,새로운 기술을 의미

- 나만의 습관, Routine, 아침 한잔의 커피, 산책, 의식(ritual), 운동 등

: 참고가 될 만한 서적, 메이스 커리(Mason Currey)의 리추얼(Daily Rituals)

6.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 아침형 인간르로는 빅토르 위고,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형 인간으로는 피카소, 카프카

- 아침형이나 저녁형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성격,체력,상황 등을 고려하여 자신이 가장 잘 집중하는 시간대를 발견하는 것과 그 시간대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시간 배분이 중요하다.

*직장이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아침형 인간이 바람직하다.

- 아침형 인간은 대부분 일어나자 마자, 자신의 일이나 본업에 2,3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온다.

- 수면 시간은 집중력과 기억력뿐 아니라 몸의 컨디션을 위해서도 중요.

*개인적인 경험으로 수면시간은 최소 7시간은 확보하고 8시간이 베스트이다. 이보다 적거나 많거나 모두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 낮에 너무 졸릴 경우는 10,20분 잠시 낮잠을 자는 것도 괜찮다.

7. 월 수입의 5%를 지적 투자에 투입.

와타나베 쇼이치 <지적 생활의 발견>, 자신이 구입한 책으로 도서관을 만들면서 책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고 함. 자신이 번 돈을 써보면서 판단력이 향상.(*맞는 말임. 이리저리 재보고 심사숙고 끝에 사는 행위 자체가 안목을 높이게 됨)

8. 개인적 공간이 서재가 필요하다.

- Sanctuary의 의미가 있음.

- 지적 축적을 위해서도 중요

- 일상 생활에서 지적 생활로의 모드 전환이라는 의미로서도 중요.

*개인적 서재를 갖출 능력,환경이 안되는 경우는 도서관, 독서실, 카페 등을 활용하는 대안을 생각한다.

9. 건강 관리

- 장기적인 관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

조깅을 한시간 하면 7시간의 수명을 연장한다.(*자신의 수명보다 그만큼 더 살 수 있다는 통계적 연구 결과) 6시간 이하의 수면을 지속하는 사람은 6~8시간의 수면을 취하는 사람에 비해 12퍼센트 일찍 사망한다.

10. 마무리.

 지식의 양 그 자체가 아닌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지적 축적을 목표로 살아가야 합니다.

→ * 축적된 지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사고의 프레임이 확장되고 확장된 프레임 속에서 지식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고도의 이해와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이 생기게 되는 과정 - 통섭 - 이 일어난다. 지식인이란 바로 이러한 생각을 정리하여 인류의 지식과 사고의 내연을 깊게 하고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궁극적인 역할이다.

 웨인 그레츠키의 아버지의 일화.

" 퍽(혹은 볼)이 있는 곳을 쫓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이 향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교보 분류에는 세계사로 분류되어 있다. 내용상 과학/과학사로 분류하는게 맞을 듯.

유구한 역사를 가진 금부터 시작해서 현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의 재료인 실리콘까지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준 12가지 재료에 대해 역사적 의의, 재료의 특성, 활용 분야에 이르기까지 너무 무겁지 않은 내용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저자 본인이 이화학 박사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들도 비교적 쉽게 풀이하여 설명을 해줘서 그런지 읽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이 사람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의 교양서로도 좋을 것 같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용으로 딱 알맞은 내용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 그리고 작가가 되서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와 그에 따른 실무적인 안내가 들어있다.

실무서의 가장 큰 덕목이 쉽게 잘 읽혀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굉장히 잘 되어 있다.

글을 읽은 이들의 서평도 의외로 꽤 많고 모두 좋다. 우리나라에 글을 쓰려는 이들의 니즈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보게 된 계기는 얼마전 해피투게더에서 강주은 씨가 남편인 최민수랑 나온 에피소드를 재밋게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되어서다. 

 이 책은 2017년에 출간되었다.

 책은 편집자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강주은씨의 개인적인 삶, 남편과의 만남 이후의 결혼생활, 그리고 아이들의 육아의 이야기로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장 많은 부분은 역시 남편 최민수씨와의 파란만장(?)한 결혼생활의 이야기들이며, 겉으로 보여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라는 것 자체로도 이 책은 읽을만하며, 진지한 삶의 철학을 가진 건강하고 슬기로운 중년여성의 지혜의 이야기로서 큰 가치가 있다.

 인생의 행복과 성공이라는 것에 쉬운 길이 없겠지만, 그녀가 겪은 길이 대중이 보던 것처럼 흐드러진 꽃길만이 아니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고, 배우 최민수가 대다수의 대중이 알듯이 그렇게 화려하기만 하고 철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사이토 다카시의 책은 부담없이 보기에 좋은 간식 같은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깊은 맛은 없지만 활력이 필요할 때 강장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원제는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신을 만드는 방법(他人に 振り回れない自身の作り方)으로

책의 제목처럼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1장. 자존감은 기술과 연습이다

2장. 사람의 거리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3장. 몸과 마음은 함께 움직인다

4장. 내 인생은 내가 정하고 내가 걷는다.

의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챕터마다 제목의 주제로 내용이 이루어져있다.

2019년의 트렌드가 가성비를 넘어서 가심비라고 하던데 가심비가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물리학에 대한 많은 저작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물리학자인 미치오 카쿠의 최신작.

인류의 행성 진출이라는 주제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발전과정과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인류를 개척해나갈 것인지를 과학 기반 아래 현실적인 고려를 통해 예측해나가고 있다.

현대물리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한 권의 흥미진진한 탐험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21회 전격문고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약 2시간 정도내로 다 읽히는 중편정도의 내용으로 아주 직관적이며 재밋고

적당히 교훈적이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따뜻함이 흐른다. 그것이 이 글에 흡입력을 더한다.

각박한 세상의 축축함 속에서 무언가 따뜻한 건조기같은 푹신함이 물씬 배어나오는 듯한

포근한 느낌의 소설이다. 

 이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끌던 2009년 이후로 10년 간 핵심 증인으로 12번의 증언을 했지만, 결국은 사건의 핵심 피의자들은 여전히 잘먹고 잘살고 있다.

새로운 정권에서 다시 한 번 국민청원에 의해 새로운 수사를 시작하고, 핵심증인인 윤지오씨가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13번 째의 증언을 했다.

그 10년 간 윤지오씨가 개인적으로 이 사건에 얽혀서 겪었던 아픔에 대한 기록이다.

보면서 무거워지는 마음과 울분으로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리 긴 내용은 아닌데, 우리 시대의 가장 부끄러운 기록 중의 하나라 그런지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저자인 윤지오씨도 이 사건으로 너무나도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걸 재삼 알게 되었다.

장자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윤지오씨가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었으면 한다.

 


2014년 대한항공 갑질 폭로의 서막이 되었던, 대한항공 회장 조중훈의 개망나니 장녀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의

최대의 피해자였던 박창진 사무장의 지난 5년간의 기록이다.


이 사태 이후로, 대한항공 일가의 상상할 수 없었던 갑질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고, 대한항공 오너 일가 뿐 아니라

그러한 비윤리적, 비도덕적, 비상식적 갑질을 감싸왔던 내부 관리직급에 대한 각성의 촉구를 유발하는 사회적 연대의 움직임이

거세졌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아직도 우리의 사법부는 대한항공의 비리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재벌과 권력자들에 대해 제대로 된 법체계를 세우지 못한 임법부의 책임이자, 우리나라 사법체계의 한계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최근 양승태를 위시한 사법농단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나라 사법부 또한 지금 현재 대한민국을 갑질의 천국으로 만든 한 악의 축이라는

것에도 그 원인이 있다.


한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불이익과 그로 인한 피해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처해있으면서도 그가 책의 말미에 밝힌

인간으로서의 존엄(dignity)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담히 그러나 눈물겹게 그리고 있다.


현재의 사회분위기로는 박창진 씨가 대한항공 일가와 회사 내의 충성 세력과 무관심한 이들에게 승리를 거두기란 요원한 일이다.

오직 사회적인 연대를 통해 국민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힘을 실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일단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싶다.


집중하면 2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다.



부동산 투자의 기본에 관해서 꽤 알찬 인사이트 들을 제공한다.

부동산 관련 애널리스트로 10년 이상의 경험을 통해 부동산 특히 아파트를 투자로서 접근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실 거주지로서든 투자자로서든 아파트 매매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봐두면 좋을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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