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의 뉴요커에 대한 그리고 뉴욕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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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뉴요커는 이민 이후의 생존 경험을 통해, 주변 사람의 부러운 시선이나 허울 좋은 체면치레 같은 것은 생존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진정한 자유와 존재감은 경제적 자립에서만 온다. 이것이 뉴요커의 행복 공식이다.

 우리가 부모 세대의 기대치, 사회의 이목에서 자유로워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부모를 포함해서 모든 타인에게 돈 때문에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겨엦적 자립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첫 단추는 질긴 생존력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내 행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뉴요커가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인생학 레슨이다.

 

p27

 

 겉치레가 쌓이면서 인생에 피로라는 때가 끼게 된다.

 

p30

 "하나씩만, 그리고 제대로 하라."

 

p48

 세상에는 머리가 좋아 뛰어난 논문을 발표하는 사람도 있고, 뛰어난 안목으로 인스타그램에 아름다운 사진을 올려 인정받는 사람도 있으며, 개인 방송으로 인기를 끄는 사람도 있다. 돈을 버는데만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언가를 만드는 데만 재능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재능도 한눈 팔지 않고 갈고 닦아야 빛이 나고, 그래서 한 가지만 제대로 이루어 내기도 힘들다. 뉴요커는 바로 이러한 점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반면에 학창시절부터 전 과목 점수를 평균 내는 교육 제도에서 수행평가까지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우리 한국인은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에 더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10과목에서 만점이 나와도 한과목의 점수가 낮으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일까? 사람은 원래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많기 마련인데, 우리 사회는 모두가 성격이 좋고, 외모도 준수하고, 공부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10가지를 잘해도 하나가 부족한 타인을 평가할 때도 잔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타인의 장점보다 단점을 보고 자신도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다 보니 인생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혼자 다 해낼 수 있는 능력자만 모여 사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세상에 사람은 많다. 그리고 제각각 다른 분야에 남다른 재주가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한 명의 역할이 아닌 10명의 역할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며 불필요한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많은 장점을 가진 타인이 가진 단 하나의 단점만을 보려고 할까? 뉴요커들처럼 인간은 원래 완벽해질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하나의 장점에 집중해서 나만의 고집과 집념을 가지고 실행 가능하도록 밀어붙이는 배짱이 생길 것이고 타인의 여러 장점에 집중해 나와 어떻게 서로 보완하며 살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어 다른 사람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p77

 파리와 뉴욕의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작품의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뉴욕과 파리 예술의 차이를 한마디로 대변하는 일화가 있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유명 작곡가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이 파리에서 프랑스 클래식 음악 대가 드뷔시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고 한다. 드뷔시의 절제미와 부드러운 선율에 깊이 감동한 거슈윈은 관계자에게 드뷔시를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거슈윈은 드뷔시를 만나자 자기가 지금까지 작곡한 것은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이 공연을 보며 깨달았다며, 견습생으로 들어가 드뷔시 밑에서 레슨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침묵하던 드뷔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브로드웨이에서 작곡을 하면 얼마나 벌어요?"

 거슈윈이 솔직히 대답하자, 드뷔시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저를 뮤지컬 작곡 제자로 받아주시죠."

 

 물론 이것은 줄리어드 음대생과 교수들 사이에 도는 우스갯소리다. 하지만 이 일화는 세계 예술의 중심지로서 파리와 뉴욕의 차이점을 단순 명쾌하게 말해준다. 뉴욕을 포함한 미국의 예술가들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프랑스 예술의 깊이에 무한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마돈나와 존 말코비치 같은 할리우드의 예술인도 파리에 자택을 두고 자주 기거하는 경우가 많고, 유럽 안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동네에 살아보려고 한다. 그에 비해 프랑스 예술가들은 고지식한 전통에서 벗어나 파격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는 뉴욕의 자유로움과, 시장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이런저런 평론가의 잔소리를 듣는 대신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는 뉴욕의 예술시장 시스템에 대한 매력과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p93

 뉴요커의 민간 영웅담은 무법자를 경외의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뉴욕의 명소에는 마피아, 마약 거래, 성매매로 유명해진 장소가 포함되어 있고 DUMBO(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 맨해튼 다리의 고가도로 밑)도 그중 하나다. 1989년 마피아 보스인 존 고티John Gotti는 체포되어 수갑을 차고 끌려가면서도 번듯한 새 양복 차림에 여유로운 웃음으로 당시 뉴욕에서 최고의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150여 년 전에 뉴욕시 전체를 타락시킨 보스 정치의 대명사 윌리엄 트위드William M. Tweed는 지금도 많은 영화에서 카메오로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 역할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뉴요커는 이런 사람을 '색채가 강한 인물Colorful Character'로 여겨 그들과 관련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는 매진 행렬을 이루기도 한다.

 그렇다면 뉴요커의 윤리 나침반이 고장이라도 난 걸까? 그들은 왜 이런 무법자를 좋은 쪽으로 기억하려는 걸까?

 그 이유는 뉴요커 중 많은 사람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소수자 출신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뉴요커는 낯선 나라에 이민을 와서 어려운 일을 많이 겪은 사연 많은 사람들이다. '절박함 앞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라는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가 뉴욕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 극작가, 영화 감독이 주목하는 스토리 라인이다.

 1970년대 브루클린 남부에서 발생한 한 강도 사건은 뉴요커 사이에서 '들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연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보여준다.

 1972년, 세 명의 괴한이 브루클린 남쪽에 위치한 체이스맨해튼 은행 지점에 총을 들고 습격해 돈을 요구했다. 이들의 이름은 존 보이토비츠John Woitowicz, 살바토레 나투랄레Salvatore Naturale 그리고 로버트 웨스텐베르그Robert Westenberg다. 웨스텐베르그는 경찰이 출동하자 홀로 도주했다. 나머지 두 명은 14시간 동안 은행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의 회유와 위협에 저항햇다. 결국 나투랄레는 FBI의 총에 사살되고, 보이토비츠는 체포되어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사연은 정말로 기구했다. 보이토비츠는 폴란드계 아버지와 이탈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마도 보수적인 천주교 가정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청년기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나라를 위해 싸웠고, 은행 지점 창구에서 일한 적도 있다. 22살이 되던 해에 카멘 비풀코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해서 두 명의 아이까지 낳았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결혼 4년째가 되던 어느 날, 보이토비츠는 이탈리아계 이민자에게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인 산 제나로San Gennaro 축제에 참석했다가 엘리자베스 이든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와 사귀는 동안 보이토비츠는 점차 자기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다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나 깊었는지 헤어지지 않으려고 엘리자베스가 성전환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서 보이토비츠는 수술비를 구하려고 친구들과 모의해 은행을 털기로 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뉴욕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반인륜적이고 엽기적인 범죄를 다루는 미디어의 가십면에나 올랐을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과는 무관한 엽기적인 사건이라며 무시당하지 않았을까? 보이토비츠의 어리석은 선택을 손가락질하거나 인간 말종이라고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이것 봐, 이민자들은 범죄 가능성이 높다니까" 하면서 이탈리아나 폴라드인의 민족성 또는 종교를 문제 삼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뉴욕의 예술인들은 이 스토리를 세계인의 칭송을 받는 걸작 영화로 만들었다. 뉴욕의 <라이프>지는 존 보이토비츠의 기구한 사연을 상세히 실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활동하던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Sidney A. Lumet은 그 이야기를 <개 같은 날의 오후Dog day afternoon>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었다. 대본을 쓴 프랭크 피어슨은 아카데미 극본상까지 받았다. 물론 할리우드는 보이토비츠에게 그의 인생사를 영화로 만들 권리를 돈으로 샀다. 비극적이게도 보이토비츠의 애인 엘리자베스 이든은 그 돈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자 그를 떠나서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에이즈로 사망하자, 보이토비츠가 추도 연설을 했을 만큼 두 사람의 사랑은 특별했다.

 

p96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럽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인간의 본질적 모습을 벌거숭이처럼 드러낸다. 이것이 <위대한 개츠비>(살인을 저지른 부자), <렌트Rent>(에이즈로 죽어가는 예술가) 등 뉴욕의 걸작이 가진 공통적 테마다.

 

p98

 이처럼 뉴요커는 기구한 인생을 사랑한다. 그래서 새로운 콘텐츠가 끊이지 않는다. 내가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파리 외곽에 사는 알제리, 모로코 이민자 출신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곳의 높은 범죄율과 문맹률을 보고 "역시 프랑스 사람과 알제리 사람은 달라"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니다. 프랑스의 주류층은 자기가 비주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뉴요커는 인간의 공통점을 믿는다. 극단적인 상황에 많이 처해본 도시에서 뉴요커는 인간이 압박을 받으면 이상한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사회가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그와 내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일 뿐이라는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한 선택은 내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역지사지'라는 우리의 옛말처럼, 미국에도 '남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에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교육수준, 사회계층, 문화권의 사람과는 역지사지 할 수 있지만, 존 보이토비츠와 같은 사람은 사연을 들어볼 가치조차 없다며 무시한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가 획일적이이서 창의적인 콘텐츠를 찾기가 어렵고 내 사고가 좁다고 느낀다면 그처럼 비참하고 엽기적인 사연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발성되지 않는 목소리들이 바로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갈구하던 '새로운 콘텐츠'인 것이다. 새로운 콘텐츠는 남의 스토리가 나에게 중요할 때 가장 잘 발견된다. 선입견을 내세우지 않고 일단 귀를 여는 것, 이것이 바로 뉴욕 문화 파워의 근원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p123

 뉴욕의 사교육 경쟁은 엄마의 임신 때부터 시작된다. 얼마 전에 뉴욕에 사는 내 친척이 아기를 낳았다. 그 엄마는 아기를 임신하는 순간부터 비상이었다. 일단 미국에서는 유급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이 없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급료가 나오지 않는다. 또 회사 지원 의료보험도 정지된다. 그래서 의료보험료로 한 달에 우리나라 돈으로 수백만 원씩 내야 한다. 휴가 기간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지만, 이런 문제때문에 출산 후에는 가급적 빨리 직장에 복귀한다. 따라서 아기를 보육시설에 맡기기 전까지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친척은 양가 부모님이 아직 일을 하고 계셔서 아기를 장기간 대신 맡아줄 형편이 못되었다. 그런데 뉴욕에는 육아를 위탁할 수 있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뉴욕에서 아기를 괜찮은 보육시설에 보내려면 임신 초기부터 신청하고 대기를 하더라도 엄마의 출산휴가 일정에 맞추어서 입학 허가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중산층 이상은 임신 후 적절한 시기를 보아서 괜찮은 어린이집 여러 군데에 신청을 해둔다. 내 친척은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어린이집 중 하나에서 입학을 취소한 아이가 생겨 빨리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마치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듯 좋아했다. 그런데도 입학할 때까지 출산 후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비용도 문제다, 안전하고 교육 프로그램이 좋은 곳에서는 보통 한 달 보육료로 400~700만 원을 받는다. 그 비용에도 아기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돌봐준다. 부모 중 한 명은 칼퇴근을 해야 맡길 수 있는 것이다. 보육료는 수요 공급에 맞추어 변동되기 때문에 이달에는 400만 원이던 것이 다음 달부터는 갑자기 500만 원으로 뛰기도 한다.

 이런 열악한 자녀 교육 환경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뉴욕에서 나간다. 뉴욕의 좁은 아파트보다 낮은 가격으로 인근 외곽지역의 정원 딸린 집을 사서, 아이들에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뛰어 놀도록 하고 부모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 하지만 일부 뉴요커는 굳이 아기를 뉴욕에서 키운다. 좁은 집 안에 칸막이를 설치해 아기방을 만들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내내 을이 되어 산다.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게다가 뉴욕에서는 아이가 10대가 된 후에도 경제적인 고통이 계속된다. 대부분의 뉴욕 부모는 충분한 돈을 벌어 자식을 트리니티나 레지스, 호라스만, 리버데일 가은 검증된 사립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제적인 능력이 뒤따라야 한다. 뉴욕에서 가장 좋은 사립학교 중 하나인 트리니티는 졸업반의 1년 학비가 2017년 기준으로 5만 달러(6천만 원)에 이른다. 아마 지금은 더 올랐을 것이다. 뉴욕 상류층 가정 자녀들의 방탕한 삶을 그려 화제가 된 미국 드마라 <가십 걸>은 나이팅게일-밤포드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몇몇 스캔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학교의 1년 학비는 약 10년 전에 4만 6,500달러였다. 아이비리그 대학교의 학비와 비슷하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 학비만 내는 것이 아니다. 부수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 정도 학비라면, 일반 중산층 가정의 맞벌이 부부 수입으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p136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은 아시아인이 서양인에 비해 '인 그룹(나와 잘 아는 사람들의 그룹)'과의 소통에 훨씬 적극적인 반면, '아웃 그룹(나와 사회적으로 관계가 먼 사람들의 그룹)'과의 소통은 서양인에 비해 소극적이라고 <생각의 지도>라는 책에서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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