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유태인 정신의학자라는 특별한 이가 쓴 회고록이자 로고테라피라는 정신 분석/치료법의 핵심을 요약한 내용. 전 세계적으로 250만 부 정도가 판매된 스테디 셀러이다.
내용은 당연히 너무 좋다. 수용소의 회고록이라는 부분은 여태 내가 본 책들은(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 모두 재미었다.) 다 재밋었다. 이 책은 수용소의 에피소드를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연결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던 듯 싶다.
어려운 개념들은 바로 비유적인 에피소드와 연결해서 이해하기도 쉽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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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얘기하건대 언젠가는!-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p19.
니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p57.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인간이 더 이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서와 감정의 둔화를 의미하는 무감각은 수용자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의 두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징후이다. 수감자들은 마침내 매일같이 반복되는 구타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진다. 이런 무감각을 수단으로 사람들은 곧 자기 주위에 꼭 필요한 보호막을 쌓기에 이른다.
구타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 일어났으며, 어떤 때는 전혀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빵이 작업장까지 배달되면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그런데 한번은 내 뒤에 섰던 사람이 그 줄에서 약간 밖으로 빠져 나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줄이 삐뚤어졌다는 사실이 감시병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나는 내 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고, 감시병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머리통을 두 번이나 강타하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나는 몽둥이를 휘두른 감시병이 내 옆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 이것은 어른들이나 벌을 받는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인데 -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다.
정말로 이상한 것은 흔적도 남지 않은 단 한 방의 구타가 어떤 상황에서는 그보다 심한 흔적을 남긴 구타보다 더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나는 눈보라를 맞으며 철로 위에 서 있었다. 험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에 있는 사람들은 일을 계속해야 했다. 나는 자갈을 가지고 철로를 고치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일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딱 한순간 숨을 돌리기 위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삽에 몸을 기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운 나쁘게도 감시병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내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그가 나에게 준 고통은 무례한 행동이나 주먹질이 아니었다. 넝마 같은 옷에 초라한 몰골을 하고 서 있는 나를 인간의 형체를 한 물건쯤으로 여겼는지 말은 물론 욕지거리도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욕을 하는 대신 그는 장난하듯이 돌맹이 한 개를 집어 나에게 던졌다. 그 행동이 나에게는 맹수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가축들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자기와는 닮은 점이 전혀 없어서 벌을 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짐승을 향해 하는 행동같이 느껴졌다.
구타를 당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주는 모멸감이었다. 한번은 얼어 붙은 철로 위로 길고 무거운 도리를 옮겨야 할 때가 있었다. 만약 한 사람이 미끄러지면 그 자신은 물론 함께 도리를 옮기던 모든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내 오랜 친구 중에 엉덩이가 선천적으로 기형인 장애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선별 과정에서 그와 같은 장애인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난히 무거운 도리를 들고 철로 위에서 절뚝거렸다. 자기가 넘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넘어뜨릴 것 같았다. 마침 그때 나는 도리를 옮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그를 도와 주기 위해 달려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등으로 한 방이 날라왔다. 감시병이 나에게 심하게 욕을 하면서 내 자리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나를 때린 그 감시병은 불과 몇 분 전에 우리를 향해 멸시하는 투로 너희 같은 '돼지들'에게는 동지애가 전혀 없다고 욕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p75.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수용소에서는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는 원시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영적인 생활을 더욱 심오하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밖에 있을 때 지적인 활동을 했던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많은 고통(그런 사람들은 흔히 예민한 체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을 겪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내면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게 손상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체력이 강한 사람보다 수용소에서 더 잘 견딘다는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도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우리는 작업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구령 소리가 들렸다.
"차렷! 앞으로 갓! 왼발 둘, 셋, 넷. 왼발 둘, 셋, 넷. 첫째 줄 주의! 왼발 그리고 왼발 그리고 오른발, 왼발, 모자 벗어!"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소리다.
'모자 벗어!'라는 구령이 떨어질 때, 우리는 마침 수용소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탐조등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민첩하게 행진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가차 없이 발길질이 가해졌다. 춥다고 허락 없이 모자를 귀까지 눌러 쓴 사람은 더 큰 벌을 받았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큰 돌멩이를 넘고 커다란 웅덩이에 빠지면서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었다. 호송하던 감시병들은 계속 고함을 지르면서 총의 개머리판으로 우리를 위협했다. 다리가 아픈 사람은 옆 사람의 팔에 의지해서 걸었다. 한 마디도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 때문에 누구든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이 세운 옷깃으로 입을 감싸고 있던 옆의 남자가 이렇게 속삭였다.
"만약 마누라들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면 어떨까요?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수용소에 잘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고."
그 말을 듣자 아내 생각이 났다.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수없이 서로를 부축하고,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면서 몇 마일을 비틀거리며 걷는 동안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모두가 지금 아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가고, 아침을 알리는 연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리 속으로 그렸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진솔하면서도 용기를 주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실제든 아니든 그때 그녀의 모습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났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과 설파하는 숭고한 비미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p78.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앞에 있던 남자가 비틀거리자 뒤에 오던 사람들이 그 위에 넘어졌다. 감시병이 달려와서 가지고 있던 채찍을 휘둘렀다. 그래서 내 생각이 잠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그 후 곧 내 영혼은 수감자 신세에서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을 찾아 되돌아갔다. 나는 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물으면 그녀가 대답했다. 다음에는 반대로 그녀가 묻고 내가 대답했다.
"정지."
드디어 작업장에 도착했다. 모두들 더 좋은 연장을 차지하기 위해 캄캄한 광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곡괭이와 삽을 들고 나왔다.
"이 새끼들.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해?"
곧 우리는 전날 일했던 배수구로 위치를 찾아서 갔다. 얼어붙은 땅이 곡괭이 끝에서 깨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불꽃이 일어났다. 모두들 말이 없었고, 머리는 마비되어 있었다.
그때도 내 마음은 여전히 아내의 영상에 매달려 있었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나는 아내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때서야 내가 깨달은 것이었는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아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랐다.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수용소에는 오는 편지도 가는 편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내 사랑의 굳건함, 내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때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에 내 자신을 바쳤을 것이다. 나와 그녀가 나누는 정신적 대화 역시 아주 생생하고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한 것이라오."
p82.
그날도 우리는 참호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잿빛 새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 위에 있는 하늘도 잿빛이었고, 창백한 새벽빛에 반사되는 눈도 잿빛이었다. 동료가 걸치고 있는 넝마 같은 옷도 잿빛이었고, 얼굴도 잿빛이었다. 나는 또 다시 아내와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당시 나는 내 고통에 대한, 그리고 내가 서서히 죽어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곧 닥쳐올 절망적인 죽음에 대해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음울한 빛을 뚫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절망적이고 의미 없는 세계를 뛰어넘는 것을 느꼈으며,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어디선가 "그렇다"라고 하는 활기찬 대답 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수평선 저 멀리에 그림처럼 서 있던 농가에 불이 들어왔다. 바바리아의 동트는 새벽의 초라한 잿빛을 뚫고 불이 켜진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나니.' Et lux in tenebris lucet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나는 몇 시간 동안 얼어 붙은 땅을 파면서 서 있었다. 감시병이 지나가면서 욕을 했고, 나는 또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자 점점 더 그녀가 곁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으며, 그녀는 정말 내 곁에 있었다. 그녀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손을 뻗쳐서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다. 그녀가 정말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가 파놓은 흙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p88.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개인 감상 : 이는 행복, 사랑의 기쁨같은 유쾌한 감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지만 긍정적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과 달리 부정적 감정은 마음에 달라 붙어 오랜동안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기쁨보다는 고통이라는 감정이 인간의 정신에 끼치는 영향은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p102.
수용소에 살아남은 사람들, 여전히 일할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야만 했다. 그들은 절대로 감상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전적으로 감시병들의 기분 - 운명의 노리개라고나 할까? - 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들 자신을 환경이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으로 만들었다.
p104.
다시 두번째로 환자 호송 계획이 세워졌다. 하지만 이때는 이 계획이 환자들의 남은 노동력 - 비록 14일 동안이지만 - 을 쥐어짜려는 것인지 아니면 가스실로 데려가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요양소로 가는 것인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 저녁 10시 15분 전에 평소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주치의가 다가오더니 넌지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직실에 얘기를 잘 해두었고. 당신을 리스트에서 빼도록 했으니 10시까지 당직실로 가보시오."
나는 그에게 이것이 내 길이 아니라고, 나는 운명이 정해 놓은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나는 내 친구들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의 눈이 연민의 빛을 띠었다. 마치 내 운명을 알고 있기나 하는 것처럼. 그는 말없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것은 삶을 위한 악수가 아니라, 삶과 작별하는 악수였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막사로 돌아왔다. 막사에는 친한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 정말로 그 사람들과 함께 가기를 원하나?"
그가 슬픈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네. 나는 갈 거야."
그러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런 다음 할 일이 있었다. 유언을 하는 것이었다.
"잘 듣게. 오토. 만약 내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네가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전해 주게. 내가 매일같이 매시간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두번째로 내가 어느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따는 것. 세번째로 내가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짧은 결혼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해 주게."
오토.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아직 살아있나? 우리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 후 자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자네 아내를 다시 만났나? 그리고 기억하나? 자네가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자네에게 내 유언을 한마디 한마디 외우게 했던 것을.
(개인 감상 : 아아.. 너무 슬프다..)
p126.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당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우리는 언제 석방되는지를 몰랐다(내가 있던 수용소에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수형 기간은 불확실했으며, 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저명한 연구전문 심리학자는 강제수용소의 이런 삶을 '일시적인 삶' provisional existence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마디 더 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수용소 환경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 다른 수용소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고, 어떤 수용소로 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수용소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의 불확실성은 결말이 났지만, 이번에는 결말에 대한 불확실성이 뒤를 잇는다. 이런 형태의 삶이 끝날 것인지 말 것인지, 끝난다면 과연 언제 끝날 것인지 미리 예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고,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퇴행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고, 목표를 세울 수도 없다. 실직한 광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그들이 아주 기이한 형태의 변형된 시간 감각 - 내면의 시간 -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것은 실직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감자들 역시 기인한 '시간 감각'을 경험했다. 시시때때로 자행되는 폭력과 배고픔이 하루를 꽉 채우고 있는 수용소에서는 하루라는 작은 단위의 시간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보다 긴 단위의 시간, 예를 들자면 일주일은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수용소에서 내가 한번은 동료에게 하루가 일주일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고 얘기하자 그 친구도 내 말에 동의한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의 시간 감각이 얼마나 역설적이었던가!
이와 관련해서는 예리한 심리학적 관찰이 돋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토마스 만은 서로 비슷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 즉 폐결핵에 걸려 요양소에서 언제 나가게 될지 모르는 환자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영적인 발달단계를 얘기하고 있다. 그들도 똑같은 상태, 미래도 없고 삶의 목표도 없는 생존의 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수용소 동료 중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역에서부터 수용소까지 길게 줄을 서서 행진해 들어왔는데, 그 행진이 마치 자기의 장례식 행렬같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삶은 전혀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자기가 이미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삶이 날아간 것 같은 이런 느낌은 다른 요인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갇혀 있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사실 수감자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부분이다)과, 갇혀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 그 요인이다. 철조망 밖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손이 닿을 수 없는 것 그래서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곳에 이루어지는 모든 정상적인 삶은 수감자들에게는 유령과 같은 것이었다. 만약 그가 바깥 세계를 볼 수 있다면 그에게는 그것이 마치 저 세상에서 온 사람이 바라보는 이승과 같이 비쳐졌을 것이다.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앞에서 우리는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수감자들이 공포로 가득 찬 현재를 덜 사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현실에서 현재를 박탈하는 행위에는 어떤 일정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예외적으로 어려운 외형적 상황일 뿐이며,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수용소의 어려운 생황을 자신의 정신력을 시험하기 이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렇게 위대한 영적인 고지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세상일에서의 실패와 죽음을 통해서도 이런 위대함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들은 평범한 환경에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낸다.
평범하고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p131.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병리적 상처를 정신요법이나 정신 위생학적 방법을 이용해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수감자들 중에 몇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그런 목표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으로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sub specie aeternitatis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날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의 극심한 통증(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겼다)을 겪으며 긴 행렬에 끼여서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우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는 우리의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만약 특별배급으로 소시지가 나온다면 그것을 빵을 바꾸어 먹을까? 2주일 전에 상으로 받았던 담배 한 개비를 수프 한 그릇과 바꾸어 먹을까? 한쪽 신발끈이 끊어졌는데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하지? 시간 안에 작업장에 가서 평소에 내가 일하던 작업반에 낄 수 있을까? 그렇지 않고 다른 작업반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고약한 감독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매일 긴 행렬에 끼어서 작업장에 가지 않고 대신 수용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는 카포는 없을까? 그 카포와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다가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햇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자신과 문제는 내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라고 했던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미래 - 그 자신의 미래 - 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행태를 띠고 일어난다.
수용소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이런 징후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우리 친구때문에 우리는 모두 이 순간을 두려워했다. 대체로 이런 현상은 아침에 수감자가 옷 입고 세수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아니면 연병장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간청과 주먹질, 위협도 효과가 없다. 그냥 누워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이런 위기가 병 때문에 생긴 것일 경우 그는 병실로 옮겨지는 것을 거부하고, 그밖에 도움이 되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한다.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자기가 싼 배설물 위에 그냥 그렇게 누워 있으려고만 한다.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도 더 이상 간섭 받지 않고.
p134.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언젠가 나는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이런 위험한 자포자기가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아주 극적인 사례를 보았다.
F. 우리 구역의 고참 관리인인 그는 그 전에는 꽤 유명한 작곡가이자 작사가였다. 그가 어느 날 나에게 고백했다.
"의사 선생.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어떤 목소리가 소원을 말하라는 거예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하래요. 그러면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무얼 물어보았는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서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이냐고 물어보았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의사 양반? 나를 위해서 말이요. 저는 언제 우리가, 우리 수용소가 해방될 것인기, 우리의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언제 그런 꿈을 꾸었소?"
내가 물었다.
"1945년 2월에요."
그가 대답했다. 그때는 3월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그래, 꿈 속의 목소리가 뭐라고 대답합디까?"
그가 내 귀에다 나직하게 속삭였다.
"3월 30일래요."
F는 희망에 차 잇었고 꿈 속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의 날이 임박했을 때 우리 수용소로 들어온 전쟁 뉴스를 들어 보면 그 약속한 날에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3월 29일. F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열이 아주 높게 올랐다. 3월 30일, 그의 예언자가 그에게 말해 주었던 것처럼 그에게서 전쟁과 고통이 떠나갔다. 헛소리를 하다가 그만 의식을 잃은 것이다. 3월 31일에 그는 죽었다. 사망의 직접적인 요인은 발진티푸스였다.
인간의 정신상태 - 용기와 희망 혹은 그것의 상실 - 와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의 갑작스런 상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내 친구의 죽음을 초래했던 결정적인 요인은 기대햇던 해방의 날이 오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몹시 절망했으며, 잠재해 있던 발진티푸스 균에 대항하던 그의 저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거의 믿음과 살고자 하는 의지는 마비되었고, 그의 몸은 병마의 희생양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꿈 속의 목소리가 했던 말이 맞기는 맞았던 것이다.
내가 이 경우를 통해 관찰하고 도출해낸 결론은 후에 수용소 주치의로부터 들었던 말과도 일치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 동안 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조건이나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p137. 살아야 할 이유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수용소에서 사람이 정신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 니체가 말했다.
"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 말은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와 정신위생학적 치료를 하려는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다. 수감자들을 치료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 - 목표 - 를 얘기해 주어야 한다. 슬프도다!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이여!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이런 사람에게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공부해야 했고, 더 나아가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따.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제들, 즉 살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도, 그와는 다른 사람, 그와는 다른 운명과 비교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각각의 상황은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때로는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갈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반면에 어떤 때에는 더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할 때도 있다. 각각의 상황들은 각각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갖는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단 하나만 있는 법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 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p139.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우리 같은 수감자들에게 이런 생각들은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사색적인 이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이 생각들은 우리가 살아서 그곳을 나올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때에도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다. 오래전에 우리는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단계를 통과했었다. 그 순수한 물음은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창조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 것으로 삶을 이해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는 삶과 죽음, 고통 받는 것과 죽어가는 것까지를 폭넓게 감싸 안는 포괄적인 것이었다.
시련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명백하게 밝혀지면서 우리는 수용소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무시하거나 거짓 상상을 하거나 억지로 만들어낸 낙관적인 생각을 즐기는 것으로 그것이 주는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릴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라는 시를 쓴 것도 아마 시련 속에 이런 기회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릴케는 마치 '작업을 완수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믈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면서 자기가 운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번은 부종 때문에 고생하던 동료에게 어떻게 나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실컷 울어서 조직 밖으로 몰아냈지."
p142. 집단 치료의 경험
당연한 일이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집단을 대상으로 정신치료를 할 기회는 제한되어 있엇다. 말로 하는 치료보다는 오히려 올바른 모범을 보여 주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다. 공정하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아 수용소 편이 아닌 것이 분명한 한 고참 관리인은 자기 담당구역 사람들에게 지대한 도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무수히 많이 가지고 있엇다.
행동을 통해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대개는 말보다 훨씬 효과적인 법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말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어떤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이 폭이 넓어졌을 경우이다. 나는 어떤 외부적인 조건으로 이런 정신적 수용력이 넓어졌을 때, 우연히 막사에 있던 모든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정신요법을 시도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아침 점호 시간에 반란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가 수없이 나열되었다. 만약 지금부터 이런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그 범죄행위 중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낡은 담요에서 조각(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을 잘라내는 행위와 '좀도둑질'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전에 반쯤 굶어 죽게 된 한 수감자가 감자 창고를 부수고 들어가 거기에서 감자 몇 파운드를 훔친 적이 있었다. 절도가 잇었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고, 수감자 중 몇 명은 그 '도둑'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수용소 당국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죄를 진 사람이 누군지 불지 않으면 수용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루 동안 굶기겠다고 했다. 2,500명의 사람들은 물론 굶는 쪽을 선택했다.
하루 종일 꼬박 굶어야 했던 그날 저녁, 우리는 막사에 누워 있었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몇 마디 말이 오갔을 뿐 이고 한마디 말조차도 신경에 거슬렷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불이 나가버렸다. 기분이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 고참 관리인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를 입밖에 냈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병이나 자살로 죽어간 수많은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 죽음의 진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희생자들이 이런 최악의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어떤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했다.
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정신의학에 대해 설명하거나 설교를 하고 싶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을. 동료들을 상대로 정신과적 치료를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춥고, 배고프고, 짜증스럽고, 피곤했다. 하지만 나는 노력해야 했다.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이런 기회를 활용해야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절실한 때였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의 위로의 말부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여섯번째 겨울을 맞지만 지금 유럽의 정세를 살펴보면 우리 처지가 그렇게 최악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련을 겪어오면서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잃은 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의외로 그들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희망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건강, 가족, 행복, 전문적인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 - 이것은 모두 나중에 다시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공정하게 얘기해서 미래가 가망 없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적은지에 대해서도 모두 생각을 같이 했다. 우리 수용소에는 아직 발진티푸스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살아남을 확률을 20명 중의 한 명으로 점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잃거나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그들에게 들려 주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바로 한 시간 후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며칠 안에 전쟁 상황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적어도 각 개인에게는 얼마나 엄청난 기회가, 그것도 아주 갑자기 찾아오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래에 대해서만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 미래에 드리워져 있는 장막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또한 나는 과거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과거에 있었던 그 모든 즐거운 일들과, 그 빛이 현재의 어둠 속에서도 얼마나 밝게 빛나고 있는지를. 이때 나는 또 시를 인용했다. 내 스스로 설교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경험뿐이 아니다. 우리가 그 동안 했던 모든 일, 우리가 했을지도 모르는 훌륭한 생각들,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비록 과거로 흘러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간직해 왔다는 것도 하나의 존재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가장 확실한 존재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내 동료(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가 가끔 한숨을 쉬던)를 향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를 갖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삶의 무한한 의미에는 고통과, 임종, 궁핍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어둠 속에서 내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불쌍한 신의 피조물들에게 우리가 처한 가혹한 현실을 과감하게 직면하자고 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고, 우리들의 가망 없는 싸움이 삶의 존엄성과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 - 친구나 아내, 산 사람, 혹은 죽은 사람, 혹은 하느님 - 각각 다른 시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은 우리가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의연하고 비굴하지 않게 시련을 이겨내고, 어떤 태도로 죽어야 하는지를 알기를 바란다고.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의 희생에 대해서 얘기했다. 희생은 어떤 경우에나 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희생은 그 특성상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물질적인 성공이 중요한 세계에서는 틀림없이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질 희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희생에는 의미가 있었다. 나는 진솔한 말투로 말했다. 우리 중에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한 동료가 하늘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런 종말로부터 구원받도록 해달라는 기도였다. 이런 사람에게 고난과 죽음은 의미 있는 것이다. 그의 희생은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닌 희생이다. 그는 헛되게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바로 그곳, 그 막사에서, 실제로 가망이 없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들의 삶이 갖고 있는 충만한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이 말을 했다. 내 말은 효과가 있었다. 불이 다시 들어와 주위가 밝아지자 누추한 몰골을 한 동료들이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나에게 다가와서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당시 나는 고통 받고 있는 내 동료들의 마음 속에 그렇게 대단한 정신력을 심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히 나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텐데 내가 그것을 그냥 놓쳐버리고 만 것이 틀림없다.
p148. 수용소의 여러 가지 인간 군상.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으며,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들은 사회의 모든 집단에 들어가 있다.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악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순전히 한 부류'의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수용소 감시병 중에도 가끔씩은 좋은 사람이 끼어 있을 수도 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성에서도 선과 악의 혼합이라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발견되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을 관통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단층은 아주 심오한 곳까지 이르러 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강제수용소라는 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p156.
자유를 찾은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수용소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가기 위해 꽃들이 만발한 들판을 지나 시골길을 걸었다.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주변 몇 마일 안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대지와 하늘, 종달새의 환호 그리고 자유로운 공간만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그런 다음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은 물론 이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단 한 가지만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그때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말을 되풀이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잇었다. 바로 그 날, 바로 그 순간부터 새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p156. 해방 이후 나타난 현상들.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며칠 동안 견뎌야 했던 극도의 정신적 긴장(예를 들어 게슈타포의 혹독한 심문 같은 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길이 아무런 장애 없이 순탄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정신적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게 심한 정신적 압박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받았던 사람에게는 자유를 얻은 후에도 그 전과 똑같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히 그런 정신적 억압상태에서 갑자기 벗어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위험은 정신위생학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잠수병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 속의 잠함에서 일하던 잠수부가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이런 심리적 단계에서 원색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야만성의 영향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 자유를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제는 억압을 받는 쪽이 아니라 억압을 하는 쪽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이제 폭력과 불의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이런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 자주 발생한다.
어느 날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들을 가로질러 수용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이 나타났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내 팔을 잡고 나를 밭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어린 농작물을 짓밟지 말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짜증을 냈다.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만큼 빼앗았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 내 아내와 아이는 가스실에서 죽었어. 그것으로 더 이상 할 말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도 자네는 내가 귀리 몇 포기 밟는다고 뭐라고 하다니!"
이런 사람들은 아주 천천히 평범한 진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진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귀리 수천 포기를 잃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한 친구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른손 주먹을 내 코 밑에 갖다대며 이렇게 소리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내가 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면 내 손을 잘라버리고 말테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말을 한 친구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나, 그 후에도 나의 가장 친한 동료였다.
p174. 정신의 역동성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기보다는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라는 니체의 말에는 이런 예지가 담겨져 있다. 이 말에서 정신치료에도 유용한 어떤 좌우명을 찾을 수 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수감자 중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쓴 또 다른 사람들도, 그리고 일본과 북한, 북 베트남의 포로수용소에서 실시한 정신치료 연구조사도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아우슈비츠에 처음 잡혀 갔을 때 나는 출판을 위해 집필 중이었던 원고를 압수당했다.
이 이야기에서도 알 수 이는 것처럼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그 동안 숨어 있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homeostasis',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더 효력이 있다. 낡은 아치를 튼튼하게 할 때, 건축가는 오히려 아치에 얹히는 하중을 늘린다. 그래야만 아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들이 서로 잘 밀착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심리요법가는 삶의 의미를 갖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마음에 어느 정도 긴장을 유도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 것이 환자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얘기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요즘 수많은 환자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생각, 즉 자신의 삶 전체가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가져다 조는 악영향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환자들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그들은 내적인 공허, 자신 안의 허무가 늘 따라다니는 것을 느낀다. 앞에서 내가 '실존적 공허'라고 얘기했던 바로 그런 상황에 갇혀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p177. 실존적 공허
실존적 공허는 20세기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현상으로 인간이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된 후에 겪어야 했던 두 가지 손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의 엯하가 시작될 때,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의 일면을 잃게 되었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그런 동물적 본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낙원에서나 얻을 수 있는 그런 안전함은 이제 영원히 인간에게 것이 되었으며, 인간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서 근래에 들어 인간은 또 다른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 동안 자기 행동을 지탱해 주던 전통이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본능도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전통도 없다. 어떤 때는 그 자신조차도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동조주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전체주의)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 조사를 해보았더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유럽 학생들 중 25퍼센트가 크든 작든 실존적 공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학생들은 25퍼센트가 아니라 무려 60퍼센트가 이런 공허감을 느끼고 있었다.
실존적 공허는 대개 권태를 느끼는 상태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고민보다는 권태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며, 이 문제 때문에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앞으로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동화 과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여가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애석한 것은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 얻게 된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데에 있다.
'일요병'을 한번 예로 들어 보자. 일요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한 주일을 보내고 내면의 공허감이 밀려올 때, 자신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이 겪는 일종의 우울증이다. 자살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실존적 공허 때문에 일어난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적 공허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연금생활자나 나이든 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 역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실존적 공허는 가면을 쓰거나 위장을 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으로 그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에 대한 욕구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된 곳에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가 대신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실존적 과절을 겪은 사람들이 종종 성적 탐민ㄱ에서 그 보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신과 환자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특정한 유형의 피드백 기재feedback mechanism와 악순환의 고리vicious circle formation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징후들이 공허한 상태에 있는 실존에 침입해 들어와서는 계속 번성해나가는 것을 수없이 볼 수 있다. 이런 환자의 경우, 이것은 누제닉 노이로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환자에 대한 심리요법에 로고테라피를 보완하지 않으면 환자가 자기 상황을 극복하도록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실존적 공허에 무언가를 채워 넣으면, 더 이상 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코테라피는 앞에서 얘기한 노이로제noogenic뿐만 아니라 심인성 노이로제psychogenic은 물론 신체성somatogenic(의사pseudo) 신경질환에도 두루 적용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모든 치료법은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로고테라피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매그더 B. 아들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p181.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p183.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psyche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특성을 나는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이라고 이름지었다. 이 말은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떤 것, 혹은 그 어떤 사람을 지향하거나 그쪽으로 주의를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성취해야 할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대면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의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첫번째를 완수하고 달성하는 방법은 아주 분명하다. 하지만 두번째와 세번째에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사람의 의미를 찾아내는 두번째 방법은 어떤 것 - 선이나 진리, 아름다움 - 을 체험하는 것,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거나(마지막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즉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p184. 사랑의 의미.
사랑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 가장 깊은 곳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사랑으로 인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함으로써 이런 잠재능력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사랑을 소위 승화라는 의미에서의 성적 충동이나 본능의 단순한 부수현상(일차적 현상의 결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사랑은 섹스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근원적인 하나의 현상이다. 섹스는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섹스는 그 안에 사랑이 담기는 순간, 아니 사랑이 담겨 있을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신성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랑을 섹스의 부산물 정도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섹스를 사랑이라 불리는 궁극적인 합일의 경험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은 시련을 통해서이다.
p186. 시련의 의미.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상황을 더 이상 바꿀 수 없을 때에 - 수술이 불가능한 암 같은 불치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자 -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명백한 사례를 하나 들어 보겠다. 한번은 나이 지긋한 개업의 한 사람이 우울증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다. 내가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그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을 제와하고는 말을 될 수 있는 대로 자제했다.
"선생님. 만약 선생께서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말했다.
"오 세상에! 아내에게는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요?"
내가 말했다.
"그것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런 고통을 면하신 겁니다. 부인에게 그런 고통을 면하게 해주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그 대가로 지금 선생께서 살아남아 부인을 애도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조용히 일어서서 내게 악수를 청한 후 진료실을 나갔다. 어떤 의미에서 시련은 그것의 의미 - 희생의 의미 같은 - 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정상적인 의미의 치료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첫째 그의 절망은 병이 아니었으며, 둘째 내가 그의 운명을 바꿀 수 없었고, 그의 아내를 살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는 바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이제 그는 최소한 자기가 겪고 있는 시련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p199.
광장공포증과 같은 신경성 노이로제는 철학적 해법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로고테라피에서는 이런 경우도 함께 치료할 수 있는 특수한 기법을 개발했다. 이 기법이 사용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서 신경질환 환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증상인 소위 예기 불안anticipatory anxiety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이 증상의 특징은 환자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면 바로 그 증상이 정말로 나타난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커다란 방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은 실제로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훨씬 더 얼굴이 빨개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원은 생각의 아버지'라는 말을 '공포는 사건의 어머니'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컬하게도 공포 때문에 진짜로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꼭 하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그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도한 의도, 즉 과잉욕구hyper-intention는 성적인 문제로 고생하는 환자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남자가 거의 정력을 과시하려고 하면 할수록, 여자가 오르가즘에 이르는 능력을 보여 주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떨어지게 된다. 쾌락은 어떤 행위의 부산물로, 파생물로서 얻어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얻어져야만 한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정도가 되면 그것은 파괴되고, 망가진다.
앞에서 얘기한 과잉욕구 외에 지나친 주의집중, 즉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는 과잉투사hyper-reflection가 발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병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과 같은 임상보고를 보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한 젊은 여성이 나를 찾아와 불감증을 호소했다. 병력을 살펴보니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받은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녀가 불감증을 느끼는 것은 충격적인 경험 그 자체 때문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환자가 그 동안 정신분석에 관한 책을 읽고 자신의 충격적인 경험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 살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런 예기불안은 자신의 여성다움을 확인하고 싶다는 과도한 의욕과 함께 상대편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과도하게 주의를 집중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그녀가 성적인 쾌락의 절정에 오를 수 없었던 충분한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상대편에게 대가없이 헌신하고 자기 몸을 맡김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오르가즘을 느껴야 하는데, 오르가즘 자체가 의욕과 주의집중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 동안 로고테라피 치료를 받은 후, 오르가즘을 체험하는 능력에 집중되었던 환자의 과잉의도와 주의집중은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는 '역투사'dereflected의 상태가 되었다. 그녀의 주의가 적절한 대상, 즉 그녀의 파트너에게 맞추어지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오르가즘을 느끼데 되었다.
p210.
인간이 유일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경학과 정신의학 두 분야를 전공한 교수로서 나는 인간이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환경에 어느 정도까지 굴복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강제수용소를 네 곳이나 전전하다 살아 돌아온 사람으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용감하게 저항하고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것도 사실입니다.
p213.
자유는 이야기의 부분이고, 절반의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 책임이라는 적극적인 측면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극적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자유는 방종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내가 동부 해안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보완이 되도록 서부 해안에 책임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214.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의학
아주 오랜 기간 동안 - 실제로 반세기 동안 - 정신의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만 보았고, 그 결과 정신질환 치룔르 하나의 테크닉으로만 간주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런 종류의 꿈은 충분히 꾸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수평선 너머로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심리학의 얼굴을 한 의술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의학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역할을 그저 하나의 기능인으로 생각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환자를 병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기계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여러 개의 사물 속에 섞여 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사물들은 각자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p221.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p226.
집단 신경 증후군의 두번째 요소인 공격성과 관련해서는 캐롤린 우드 셰리프가 주관했던 한 실험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그녀는 인위적인 방법을 써서 보이스카우트 그룹들이 서로 공격성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런 다음 관찰해 보니 소년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지고 행동할 때에만 공격성이 누그러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공동의 목표란 자기들이 먹을 음식이 실려 있는 차를 진흙구덩이에서 꺼내는 일 같은 것을 말한다. 공동의 목표가 생기자마자 그들은 자신들이 달성해야 할 목표의 도전을 받았고, 그래서 서로 협동하게 되었다.
p229.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방법을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샬롯 뷜러가 말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사람들의 삶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며 공부하는 것뿐이다."
p233.
하지만 만약 피할 수 있는 시련이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시련을 견디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p236.
한번은 한 미국 여자로부터 이런 비난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은 어떻게 아직도 책을 독일어로 쓸 수가 있지요? 그건 아돌프 히틀러가 쓰던 말 아닙니까?
이 말에 응수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자기 집 부엌에 칼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가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당황스럽고 놀랍다는 제스처를 쓰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살인자들이 칼을 가지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찌르고 죽였는데 어떻게 아직도 칼을 사용할 수가 있지요?"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더 이상 내가 독일어로 책을 쓰는 것은 비난하지 않았다.
p237.
삶의 순간들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시간들이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으며, 지나간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일회성이야말로 우리에게 삶의 각 순간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분명 그렇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권한다.
"두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p238.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런 유용성은 그 사람이 사회에 이로운 존재인가 아닌가 아는 기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람이 이루어낸 성과를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 특히 젊은 사람을 숭배하는 것이 요즘 사회의 특징이다.
실제로 이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가치는 무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과, 인간의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차이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든다.
만약에 이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인간의 가치가 오로지 현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히틀러의 계획에 따라 자행된 안락사, 즉 나이가 들어서, 불치의 병에 걸려서,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해서, 혹은 고통스러운 어떤 장애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사람들을 죽였던 '자비로운' 행위에 대해 변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오로지 개인적인 모순의 탓으로 돌려 버린다.
p241.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이렇게 주장한 적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굶주림에 시달리도록 해보자. 배고픔이라는 절박한 압박이 점점 커짐에 따라 각 개인의 차이는 모호해지고, 그 대신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표현하는 단 하나의 목소리만 나타나게 된다."
감사하게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강제수용소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몰랐다. 그의 환자는 빅토리아 풍으로 호화롭게 디자인된 침상에 누워 있었지 아우슈비츠의 오물더미 위에 누우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말과는 달리 강제수용소에서 '개인적인 차이'가 모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 차이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가면을 벗고, 돼지와 성자의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그런 것을 경험한 후, 우리는 더 이상 '성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맥시밀리언 콜베 신부를 생각한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결국 석탄산 주사를 맞고 살해되었다. 그리고 1983년에 성자로 추대되었다.
여러분은 원칙에 어긋나는 예외적인 경우만 들었다고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Sed omnia 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그러나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실현시키는 것도 힘들다)" 스피노자 <윤리학>의 마지막 문장이다.
여러분은 우리가 굳이 '성자'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저 '훌륭한'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의지를 본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미사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