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드라마가 유행하던 2010년 초에 나왔던 책. 당시까지는 유명인이 되기 전인 경찰대학 교수 시절의 표창원 씨가 저술한 책이다.

책의 내용은 과학수사의 기본적인 개념과 필요성을 실제 미제 사건 사례와 함께 소개하기 때문에 꽤 흥미롭다.

특히 오제이 심슨 사건과 김성재 살해 사건에 대해서 자세한 수사와 재판의 경위가 정리되어 있어서 자극적인 언론의 내용과는 차별화되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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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4

 기계에 의한 자동 검색, 각종 잠재 지문 현출 장비의 출현 속에서 '지문 전문가'의 역할을 무엇인가?

 

 지문을 컴퓨터 자료로 관리하고 그 자료를 자동으로 검색하는 장비를 개발하면서부터 지문 전문가의 중요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 같다. 지문 자동 식별 시스템(AFIS)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기초 지식만 습득하면 활용 여부에 따라서 누구나 지문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컴퓨터는 등록한 지문을 토대로 특징점을 추출해 주기 때문에 사용자는 육안으로 관찰한 후 맞지 않는 부분만 체크하면 되고, 컴퓨터가 입력된 값을 토대로 시스템에 등록된 자료와 비교 검토한 후 판단 결과를 보여 준다. 지문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단시간 내에 동일한 작업을 반복할 수 있다. 또한 자동 검색 시스템의 프로세스가 계속 개선되기 때문에 입력한 사람과 관계없이 프로그램의 정확도도 매우 높아진다.

 잠재 지문 현출 장비도 비슷하다. 사람에 관계없이 동일한 결과를 보여 준다. 한 예로 LUVIS를 들 수 있다. 현장에서 잠재 지문을 찾고자 할 경우, 기기를 작동시키고 매뉴얼에 있는 방법대로 조작한 뒤 현장을 돌아다니면 된다. 그럼 지문 전문가의 역할이 될까? '컴퓨터에 넣을 지문을 얼마나 좋은 품질로 현출해 내는가'다 현장에 제아무리 좋은 지문이 남겨져 있다 한들 그걸 체취하는 데 실패한다면 차후에 이루어지는 확인 과정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결국 첨단 장비를 개발해 현장에서 활용한다고 해도 사람이 수집한 증거물에 의해서 모든 과정이 진행되므로 지문 전문가의 역할은 항상 중요하다. 물론 지문 전문가가 자만심에 빠져서 최신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노력과 연구를 게을리 한다면 이미 지문 전문가의 자격을 잃은 셈이다.

 

 원제목처럼 세계사를 크게 움직인 13가지의 식물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가 식물학자이기 때문에 식물 자체에 대한 과학지식과 함께 이 식물에 얽힌 역사적 움직임을 재미있게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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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2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탐험 과정에 자주 부딪혔고 툭하면 분쟁과 마찰로 이어졌다. 사실 두 나라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하기 이전부터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여왔다. 그들은 자국의 배가 닿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분쟁을 멈추지 않았다. 두 나라 사이에 끊임없이 분쟁과 반목이 이어이자 마침내 카톨릭 교황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에 나섰다. 이때 교황이 제시한 중재안이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 : 지구의 바다를 둘로 갈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선을 정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하고 2년 뒤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대서양에는 경계선이 그어졌는데 서경 46도 37분 경계선 동쪽에서 새로 탐험한 땅은 모두 포르투갈령, 경계선 서쪽에서 탐험한 땅은 스페인령으로 삼기로 했다. 결국 포르투갈은 지배력을 다져가던 아프리카를 손에 넣었고 스페인은 이제 막 탐험한 땅으로 문명과 거리가 있던 아메리카 대륙을 손에 넣었다. 그렇게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세계를 둘로 나누어 지배하기 시작했다.

 교황의 중재 노력으로 문제가 표면적으로 해결된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보기에 이는 공정하지 않은 처사였기에 전 유럽이 부글부글 들끓었다. 포르투갈, 스페인 독주 체제에 불만을 품고 카톨릭 질서에 반기를 드는 나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카톨릭에서 멀어진 것은 네덜란드와 영국이었다.

 이후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을 야금야금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정복한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 그 탓에 지금도 중남미의 많은 나라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데 남미에서는 유일하게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포르투갈 탐험대가 정복한 브라질이 경계선 동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라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은 것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제패한 스페인의 야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나라는 서방항로 개척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여 아시아에 진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무렵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평양을 건넌 인물이 바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다. 묘하게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일주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이론을 증명한 마젤란은 포르투갈 사람이면서 스페인 왕의 명령을 받아 태평양을 횡단했다. '태평양'과 '마젤란해협'은 마젤란의 세계 일주 덕분에 붙여진 이름이다. 마젤란은 탐험 도중에 벌어진 필리핀 막탄섬 부족과 싸움에서 사망하는 바람에 임무를 완수하지는 못했으나 그의 부하들이 장장 3년이 넘는 긴 항해 끝에 꿈에 그리던 세계 일주 임무를 완수해냈다.

 

p90

 

 후추는 고기를 오래 보존하는 데 필요했으나 단지 이 용도 때문에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팔린 것은 아니었다. 사실 사치스러운 식생활을 즐긴 귀족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가축의 먹이만 충분히 확보해두면 굳이 가축을 미리 도축해 보관해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귀족이나 상류층에서 후추의 인기가 치솟고 그에 따라 엄청난 가격이 형성된 데는 사실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자신의 높은 지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목적이 더 크게 작용했다. 이는 설탕이 귀하던 시절에 사람들이 설탕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기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항해 기술이 발달하면서 후추를 대신할 만한 여러 종류의 향신료가 유럽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과거에 금과 맞먹는 엄청난 가격에 팔리던 후추 가격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수요 vs. 공급 법칙에 따라 공급이 넘쳐나면 가격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후추 가격이 내려가고 대중화하면서 동인도회사는 후추를 대신할 돈벌이 수단으로 삼을 만한 새로운 교역품을 찾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 그 과정에 동인도회사가 찾은 것이 바로 동양의 '차'다.

 

p139

  차가 유행하기 전 영국에서는 아라비아반도에서 들여온 커피를 즐겨 마셨다. 당시 거리의 커피하우스는 거의 전적으로 남성 전유물이었다. 당시 거리의 커피하우스는 거의 전적으로 남성 전유물이었다. 그러자 커피하우스에 갈 수 없었던 여성들 사시에 티파티 열풍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이윽고 커피하우스를 대신해 여성들을 위한 '티가든'이 등장했다. 남녀 간의 만남을 원한 남성들이 티가든에 드나들면서 커피하우스는 차츰 손님이 줄다가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p145

 독립운동의 주축을 이룬 이들은 어떤 지역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었을까? 그전까지 차를 즐겨 마시던 부유한 미국 북부 사람들이었다. 미국 남부는 산업혁명으로 발달한 영국의 면직물 산업 덕분에 면화 수출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당시 미국 남부 경제는 영국 없이는 오래 지탱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에 따라 영국 의존에서 벗어난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하는 북부와 면화 재배를 지속하기 위해 영국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자 했던 남부 사이에 대립의 골이 점점 더 깊어졌다.

 그 갈등이 폭발한 사건이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이다. 영국에서 홍차를 수입할 수 없었던 미국은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자국에서 차를 생산하려 했으나 남북전쟁 때문에 차 재배는 어중간한 시도로 끝나고 말았다.

 

p149

 열대 지방은 병충해가 많은 편이라 아삼종은 항균작용을 지닌 카페인 함유량이 많다. 녹차는 아미노산의 감칠맛을 즐기는 음료이고 홍차는 카페인의 씁쓸한 맛을 음미하는 음료이므로 아삼종은 홍차에 적합하다.

 

p158. 인간의 중노동을 먹고 자라는 잔혹한 식물, 사탕수수

 

 사탕수수가 재배되기 전 대부분 농업은 노예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탕수수는 달랐다. 사탕수수를 수확하는 일은 엄청난 강도의 노동을 수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다른 농업에도 어느 정도 중노동이 필요하기는 했다.

 벼농사를 예를 들어보자. 논에 벼를 심어 쌀을 생산하자면 모를 심기 전 과정만 해도 땅을 갈아엎어야 하고 갈아엎은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거나 흙덩이를 잘게 부수어야 했다. 이런 일을 사람이 직접 하려면 엄청난 중노동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일찌감치 소와 같은 힘센 가축의 힘을 빌려 쟁기질하고 써레질함으로써 혹독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식물 사탕수수는 벼와 다르다. 수확할 때 만만치 않은 중노동이 요구되지만 벼농사에서처럼 가축을 동원할 수 없었다. 모종을 심는 일에서부터 기르고 수확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해내야 했다. 20세기 들어서서 기계를 개발할 때까지 사탕수수 농사에 들어가는 노동력은 고스란히 인력으로 충당해야 했다.

 사탕수수 농업은 농사 자체에도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가지만 수확이 끝난 뒤 설탕을 정제하는 과정에도 만만치 않은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사탕수수 줄기 안에는 설탕 성분을 저장한 부분이 있다. 수확하고 나면 줄기 안의 그 부분이 차츰 딱딱하게 굳어간다. 처음에 농부들은 사탕수수 줄기가 굳기 전 신선한 상태에서 가열 과정을 거쳐 추출해야 한다고 생각해 수확한 사탕수수를 다발로 묶어 보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량의 사탕수수를 한꺼번에 수확해 한 차례 정제 과정을 거쳐 설탕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러자니 사탕수수를 한번에 수확하기 위해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했다. 한꺼번에 수확하고 한꺼번에 정제해야 하는 이런 특성 때문에 사탕수수는 쉬엄쉬엄 재배할 수 없는 작물이었다. 여기에 더해 이 녹록지 않은 과정을 수시로 반복해야 했다.

 이는 여유롭고 느긋하게 일하며 전원생활을 즐기는 목가적인 농업과는 거리가 먼 생산 방식이다. 이 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사람들은 사탕수수밭을 대규모로 조성했다. 무엇보다 수확한 다음 곧바로 정제해야 했기에 다른 작물처럼 시장에 판매하고 난 뒤 가공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결국 사탕수수를 생산과 동시에 정제하는 공장이 세워졌다. 공장이 문을 열자 쉴 새 없이 설탕을 생산하는 일만 남았는데 이 일련의 과정을 플랜테이션이라 부른다.

 플랜테이션이 대량의 집중적이고도 지속적인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런 터라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처음에 전쟁 포로를 사탕수수 농업 및 정제 과정에 투입했다. 그러다가 전쟁 포로로는 엄청난 일손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점차 노예 노동력으로 대체했다.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입자물리 이론을 전공한 분이다.

 책의 내용을 보면 분류상으론 에세이라고 봐야 할 듯 하다. 그래도 과학적인 주제가 뼈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과학으로 분류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내용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이 평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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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

 현재 인류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크기는 약 465억 광년으로 그 안에는 우리 은하 같은 다른 은하들이 대략 1조 개 정도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 약간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현재까지 밝혀진 최신 천체물리 이론으로 보면 빅뱅은 138억년 전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주의 크기는 465억 광년이라면 무언가 좀 모순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는 우주의 팽창 속도가 외곽으로 갈수록 점점 빨라지기 때문이다. 팽창 우주론에서 관측결과와 이론적 계산에 의하면, 우주의 최외각 - 물론 팽창 우주론에선 그런 개념은 없지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가정하면 - 의 속도는 광속을 능가한다. 이로 인해 우주의 크기가 우주 탄생후 지난 시간보다 크다고 해도 모순은 없다) 

 아주 터무니없이 먼 곳을 의미하는 유행어가 된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에서 겨우 250만 광년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웃' 은하일 뿐이다.

 이 거대한 우주는 점점 더 팽창하고 있다. 우주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크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클 것이라는 얘기다. 꺼꾸로 말해서 백만 년 전에는 지금보다 작았고 십억 년 전에는 훨씬 작았다. 시간을 더 거슬러 가면 우리는 결국 태초의 순간에 도달한다. 138억 년 전의 어느 때, 우주의 모든 것이 한데 몰려 엄청나게 높은 밀도와 온도를 가지고 있던 우주는 대폭발을 일으켰다.

 

p44

  우주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의 천체는 바로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물체가 너무 무거워서 시공간이 휘어지다 못해 구멍이 난 것이다. 그리고 이 블랙홀이 벌이는 극한의 상황은 두 블랙홀이 서로 충돌하여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2015년 9월에 라이고에서 발견한 중력파는 태양 질량의 36배와 29배인 두 블랙홀이 충돌하여 62배 질량의 블랙홀 하나로 합쳐지면서 나온 것이다. 이 중력파가 가지고 나온 에너지는 태양 질량의 3배에 달한다. 즉, 우주에서 태양 세 개가 증발하면서 그 모든 것이 중력파로 바뀐 것이다. 순간 최대 방출 에너지로 보자면 관측 가능한 우주 전체에서 나오는 모든 빛 에너지의 50배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이 엄청난 에너지가 우주 전역에 방출되었다. 그중 극히 일부가 13억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우주를 여행하여 지구에 도착하였다. 그 신호가 라이고 검출기를 0.15초 동안 머리카락 굵기의 20조 분의 1만큼 움직였을 때, 인류가 놓치지 않고 그것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 신호의 세부 모양을 보고 13억 년 전 두 블랙홀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임을 일반 상대성이론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13억 년과 0.15초, 13억 광년과 머리카락 굵기의 20조 분의 1. 이 두 극한의 시간과 거리가 100년 전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연결되었다. 이것이 중력파 검출의 의미다.

 

p76

 당대의 많은 물리학자는 치열한 논쟁을 거듭했다. 크게 두 파로 나뉘었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옳은 결론이라는 파와 절대로 그럴 리 없다는 파. 전자에 속하는 물리학자는 코펜하겐 학파라 부른다. 보어, 하이젠베르크, 보른, 파울리 등이 이에 속한다. 후자에 속하는 물리학자는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드브로이, 플랑크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양자역학 발전 과정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중에서 절반이 완성된 양자역학의 결론을 거부한 것이다.

 

p129

 과학적 세계관은 주입식 교육이나 선행교육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중요하고 수능에도 잘 나오는 실험의 방법과 결과를 통째로 외운다고 하여 형성되지도 않는다. 어설프더라도 정해진 답을 강요받지 않고 학생 각자가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며 실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토론하는 경험을 함으로써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다. 시험 점수를 잘 받게 하는 수업은 교육이 아니라 시험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비판 정신의 싹을 잘라내는 것이며 과학적 세계관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2008년에도 기후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전혀 없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큰 이슈가 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이 내용이 과장이 섞인 것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2020년인 지금에선 이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현실(그 당시로는 다가올 미래)을 너무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있기까지 하다.

 코로나19로 전세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이지만, 다가올 미래에(그것이 100년 후, 혹은 1만년 후든) 인류가 겪게 될 가장 큰 위기는 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에 대한 대책은 어떤 개인이나 한 국가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며, 오직 인류의 연대와 공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이미 인류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파멸은 이미 정해진 미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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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온난화의 급습으로 가장 먼저 티핑포인트를 넘어설 곳은 북극이다. 지금 북극의 기온 상승폭은 지구 전체의 상승폭보다 두 배나 높다. 알래스카와 시베리아의 온난화 속도가 특히 빠르다. 이들 지역에서는 지난 50년 동안 수은주가 2~3℃나 상승했다.

 그로 인한 영향은 이미 심각한 상태이다. 알래스카 배로의 경우 해빙(解氷) 시점이 1950년대에 비해 평균 열흘 정도 빨라졌으며, 이끼 말고 별로 나던 게 없던 툰드라 지대에서 관목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 있는 과학자들은 노스슬로프 일대 지하의 얼음쐐기(ice wedge)가 갑자기 녹으면서 곳곳에 연못이 생겨나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것들은 적어도 지난 3,000년 동안 얼어 있었다. 이는 이전에 비해 지금의 기온 변화폭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말해준다.

 

 

p59

 티핑포인트에 가까워지고 있다. 흰 눈에 덮인 얼음은 햇빛의 80퍼센트 이상을 반사한다. 반면 푸른 빛깔의 바다는 햇빛의 95퍼센트를 흡수한다. 그러면 지구의 대기온도는 상승하고, 그 결과 다시 얼음이 녹는다. 일단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그 과정은 빠르게 자기강화적이 된다. 즉 얼음이 녹아 바다 면적이 넓어지면 그만큼 더 많으 햇빛을 흡수하게 되고, 그러면 기온의 상승폭이 커져 다음 겨울에 얼음을 만들기가 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북극해 얼음의 티핑포인트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기후 모델마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온난화의 일정한 단계를 넘어서면 북극해 얼음이 완전히 붕괴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예측이 일치한다.

 

p60

 그렇다면 북극해의 얼음이 왜 그리 중요할까?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얼음이 없다면 북극의 상징적인 동물인 북극곰이나 바다표범도 멸종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극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집에도 그 영향이 있을 것이다. 콜로라도에 있는 국립빙설자료센터(Snow and Ice Data Center)의 수석연구원 테드 스캠보스의 말처럼 "북극해의 얼음이 사라지면 지구 전체의 날씨도 크게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세계 기후의 작동 방식 때문에 불가피한 변화이다. 대부분의 중위도권 날씨는 추운 극지방과 더운 적도지방의 기온 격차에 영향을 받는다. 영국이 1년 내내 비가 오는 것은 두 상반된 기단(氣團)의 불안정한 경계인 극전선(polar front)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미국 동쪽 해안에 몰아치는 강한 북동풍도 비슷한 경우이다. 그런데 북극이 따뜻해지면 이런 기온의 격차가 줄 것이다. 그리고 북반구의 경우 기후대들이 극지방 쪽으로 이동하면서 기온 격차가 일어나는 구역도 북상할 것이다. 그러면 비바람이 잦은 영국의 콘월이나 웨일스 같은 지역이 몇 주 혹은 몇 달씩 무풍지대인 건조 지역으로 바뀔 수 있다. 스코틀랜드만이 비가 많고 습한 날씨를 무기한 견뎌야 할 가능성이 높다. 2장에서 다루겠지만, 미국 서부에도 가문 날씨가 이어질 수 있는데, 이는 인류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추측으로만 치부될 게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의 위성관측 자료에 의하면, 남반구와 북반구의 제트기류가 1º 씩 각각 남극 쪽과 북극 쪽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고위도의 이런 풍도(風道:대륙권 상층부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바람의 좁은 통로)가 두 기단 사이의 경계를 나타낸다고 할 때, 그것이 점점 이동한다는 것은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세계의 전형적인 기후대의 위치가 이미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p88

 이산화탄소는 물에 녹으면 탄산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탄산수를 마실 때 톡 쏘는 느낌을 받는 것은 바로 그 탄산 때문이다. 그런 탄산수가 바다 전체에 녹아든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인간은 이미 바다의 알칼리성을 0.1pH만큼 줄여놓고 말았다. 카네기 연구소의 지구생태분과 교수 캔 칼데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이산화탄소 유입량은 정상치보다 50배 정도 많습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100년 안에 해양의 pH가 8.2에서 7.7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수치 같지만 pH가 0.5 떨어진다는 것은 산성도가 다섯배 올라간다는 뜻이다. 더구나 바닷물은 아주 느리게 순환하기 때문에, 설령 - 온난화의 파급효과에 대한 인류의 자각으로 - 대기의 이산화탄소 수치가 안정되더라도 그 영향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p94

 그런 점에서 2003년 여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 전역을 모니터링한 결과, 높은 기온과 심한 가뭄의 이중 스트레스 때문에 광합성 작용이 약화되면서 대륙 전역의 식물성장 속도가 30퍼센트나 떨어졌다고 한다. 북유럽의 너도밤나무 숲에서 지중해 연안의 소나무와 참나무 숲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식물 성장은 더뎌지거나 중단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신, 그것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유럽의 식물들이 추가로 약 5억 톤의 탄소를 내뿜기 시작했는데, 이는 지구의 화석연료 전체 배출량의 12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중요한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현상'이다. 기온이 올라감으로써 - 특히 폭염으로 인한 재난 발생 시에 - 숲과 토양의 탄소 배출량도 늘어나 온난화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유럽과 광범위한 지역에서 장기간 지속될 경우 지구 온난화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한다.

 

p105

 그러나 IPCC의 예상보다 빨리 빙상들이 붕괴될 수 있다는 핸슨의 주장에는 탄탄한 물리학적 근거들이 있다. 지난 빙하기 말미에 빙상이 빠르게 해체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핸슨은 '알베도플림(albedoflip)'이라는 과정을 소개했다. 이 과정을 오늘날 다시 겪을 경우, 세계의 빙상은 기존의 예측보다 훨씬 빨리 파괴될 수 있다. 알베도플립은 간단하게 설명된다. 눈과 얼음은 녹으면서 촉촉해지는데, 이때 그 표면은 빛깔이 더 짙어지면서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한다. 그러면 표면의 온도가 상승하고, 전형적인 양의 되먹임에 따라 녹는 면적도 크게 늘어난다. 핸슨의 주장에 따르면 알베도플립 때문에 빙상의 해체가 - 수천 년이 걸리는 보다 장중한 과정이 아닌 - "폭발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실제로 그린란드와 남극 서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여름철에 엄청난 양의 얼음이 녹고 있는 것을 볼때, 눈의 입자가 녹아서 짙어지는 이러한 "격발 메커니즘(trigger mechanism)"은 벌써 가동되기 시작했다고 핸슨은 말한다.

 

p107

 북극의 온난화를 모든 사람이 꺼리는 것은 아니다. 그린란드 빙상이 흘러내려 지구 최북단의 기후가 변해야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 팻 브로도 그런 기대를 품은 사람들 중 하나이다. 미국의 사업가인 그는 1997년 캐나다 북부의 황량한 마을 처칠의 항구를 7달러에 사들였다.

 이 마을은 '북극곰의 수도'라 불리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1,000명 정도의 마을 주민들의 삶은 혹독한 것이었다. 하지만 브로가 보기에 호황기가 목전에 다가와 있었다. 북극의 얼음이 녹는다면 보잘것없던 작은 마를 처칠은 아시아와 유럽과 북아메리카 사이를 연결해주는 항로의 중요한 허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항로가 열릴 때쯤이면 북금곰의 수도 처칠은 새로운 경제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p133

 생물다양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미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생물다양성에서 고유의 가치를 찾는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 인간사회는 근본적으로 자연 생태계에 의존하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TV 앞에서 인스턴트 식품을 퍼먹는 도시거주민들에게는 낯선 얘기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생선에서 땔나무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관대하게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준다. 세균이 유기물을 분해하지 않으면 흙에서 농작물이 자랄 수 없다. 나무나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하지 않으면 공기는 우리가 숨 쉴 만한 것이 못된다. 우리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많은 약들은 식물과 동물에서 나는 천연물질을 원료로 한다. 그런 물질들 중에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게 더 많다. 생명은 지구의 영양분이 순환하는 것을 조절하기도 한다. 예컨대 바다에 사는 유기물들이 수백만 년에 걸쳐 여분의 탄소를 분비하여 석회암이나 백악층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오래전에 금성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금성은 대기의 96퍼센트가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지표면의 기온이 자그마치 500℃ - 납이 녹을 정도 - 나 되기에 생명이 살 수 없다.

 이러한 생태계의 역할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과학기술로 대체할 수도 있다. 일례로 수경재배를 들 수 있다. 이는 뿌리를 내리게 해주는 진짜 흙 대신 합성수지와 각종 화합물질을 이용하여 식물을 재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생태계는 너무나 복잡한 그물망이어서 우리는 생태계 내에서 벌어지는 살아 있는 것들의 상호작용을 다시 만들거나 대체할 수 있다고 상상하기는 커녕, 그런 것들의 상당수를 이해조차 할 수 없다. 한때 과학자들은 바이오스피어투(Biosphere-2)라는 밀폐된 인공의 세계를 만들려고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애리조나 사막에 짓는 거대한 온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실패했다. 밀폐된 온실 속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갔을 때 바이오스피어투의 주민들은 숨을 헐떡이며 나름의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생태계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명은 우리가 계속 살 수 있도록 해주는데도 우리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며 생명을 파괴한다.

 

p149

 이번 세기의 온난화는 산업혁명의 태동 이후 배출된 온실가스가 누적된 결과이다(스티븐슨의 '로켓호' 같은 초기의 증기기관차가 석탄을 때면서 방대한 탄소를 발생시켰는데, 그 탄소가 아직도 지구를 덥히고 있다고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가 만약 내일 당장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지구가 전보다 더워진 상태에서 다시 열평형에 도달하려면 여러 세기가 걸릴 것이다. 지금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플라이오세 수준이라고 해서 기온도 그때와 같기를 기대한다면, 주전자 물이 당장 끓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일이다.

 희망은 있다. 만약 우리가 이산화탄소 주전자 물의 불을 당장 끌 경우, 적어도 한 세기 동안은 지구기온이 3℃까지는 상승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지금의 수치대로 이산화탄소 방출량이 계속해서 증가한다면, 2050년에 지구기온은 3℃ 이상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며 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p150

 엘니뇨는 기압의 진동(oscillation)에 의해 태평양 해류가 따뜻해지는 현상으로, 세계의 날씨에 대혼란을 가져온다. 엘니뇨는 '그리스도의 아이'라는 뜻으로 페루의 어민이 붙인 이름이다. 평균 이상의 따뜻한 해수로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현상이 크리스마스 무렵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엘니뇨의 출현이나 그것이 끼치는 피해에 대해서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이를테면 1,000년 전 페루의 해안 사막지대에 있던 모체 문명은 엘니뇨로 인한 가뭄 때문에 멸망한 것으로 유명하다. 1912년의 엘니뇨는 타이타닉 호의 침몰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타이타닉 호가 최고속도로 운항을 하고 있을 때, 빙산들은 평소보다 훨씬 남하하여 항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엘니뇨로 생긴 폭풍우가 빙산들의 위치를 이동시켜 놓았던 것이다.

 엘니뇨는 태평양의 날씨 패턴을 역전시켜버렸다. 이를테면 페루의 아타카마 사막에는 홍수를 일으키고,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가뭄을 일으킴으로써 지구 전체에 '원격상관(teleconnection: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생긴 현상들이 서로 관련이 있는 경우)'이라는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긍정적인 점으로는, 미국 북동부의 겨울이 온화해지는 것과 대서양 적도권역의 윈드시어가 커지면서 카리브 해의 허리케인의 기가 꺽이는 것을 들 수 있다. 반면 아마존에서 파푸아뉴기니에 이르는 삼림지대에서는 가뭄이 닥치면서 파멸적인 화재가 발생하고, 남아프리카에서는 비가 너무 안 내리면서 식량 수확량이 줄어 기근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엘니뇨가 촉발한 가뭄으로 19세기 영국령 인도에서는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130년 동안의 강수량 기록을 보면, 인도에서 몬순이 약해지면서 생긴 심각한 가뭄들이 늘 엘니뇨와 상관있었음을 알 수 있다.

 

p157

 해들리 센터의 기후 모델은 아마존 일대에 엄청난 가뭄이 닥치리라고 예고한다. 하지만 일부 다른 모델들은 변화가 덜할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모델들은 강수량이 증가할 것이라고도 한다. 무엇이 옳은가는 더 없이 중요한 문제이다. 이곳 생테계의 면적은 700만 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생물다양성의 보고로서 전체 생물권의 1차 생산자-식물의 광합성 생산물-중 10분의 1의 양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데스 산맥의 눈 녹은 물과 계절에 따른 계절에 따른 억수 같은 비(지역에 따라 한 해 강수량이 2.5미터가 넘기도 한다)가 흘러내려 이루어진 아마존 강은 바다 전체로 흘러드는 물의 20퍼센트를 품고 있다. 이는 미시시피 강 강수량의 열 배에 달하는 양이다. 이러한 물이 갖는 에너지는 전 지구적 날씨의 순환에 막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과학 저술가 피너 버냐드가 설명하듯이 "수력 엔진으로서 아마존 유역이 하는 기능은 오늘날 기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아마존은 온난화와 상관없이 이미 곤경에 처해 있다. 프랑스 국토 면적과 맞먹는 50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숲이 소를 방목하거나 콩을 대량으로 재배하기 위해 벌채되었다. 지난 50년 동안 숲을 잠식하며 터전을 잡은 인구수가 열 배는 늘었으며, 브라질 정부가 원시림을 파고 들며 도로를 낼 때마다 그 주변에서는 생선뼈 모양으로 숲이 잘려나갔다. 땅에 굶주린 50만 명의 농민들이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브라질의 마지막 거대 야생지에 몰려들면서 화전 농업을 하는 것도 심각한 위협이다. 벌목꾼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횡행하자 그린피스가 아마존 벌목 행위의 80퍼센트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항의했다. 그러자 브라질 정부는 사실을 부인하는 대신 두 손 들고 인정해버렸다.

 해들리 센터의 모델에 따르면 모든 파괴가 내일 당장 멈추더라도 지구 기온이 2℃ 상승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으면 아마존 우림지대의 미래는 절망적이라고 한다. 세상이 이 중대한 티핑포인트를 넘어서면 아마존 북동부 지역에서 파멸의 해일이 시작되어 대륙의 남부와 서부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2100년이면 강수량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기온은 사하라 사막 수준인 평균 38℃까지 상승할 수 있다. 생태계 전체가 붕괴되면 아마존 유역에는 대표적 식물이 하나도 남지 않는 사실상의 사막이 될 것이며, 가장 자리에 풀밭과 초지만이 조금 남을 것이라고 한다.

 

p172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마야의 붕괴를 생태적 과잉의 고전적 사례로 든다. 고도로 발달한 사회가 자원적 기반 이상으로 발전을 추구할 경우 가뭄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p228

 한국에서는 강수량이 4분의 1 정도 증가하겠지만 육지의 기온도 6℃ 정도 높아지면서 물 증발량도 크게 늘어나 땅이 전보다 더 건조해진다고 한다.

 4℃ 상승의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다름 아닌 뜨거운 날씨이다. 상상도 못할 정도의 열파가 육지를 휩쓸면 인류는 일찍이 경험해본 적 없는 무더위를 맛보게 될 것이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그 무렵 유럽의 기온은 지금의 중동과 비슷해진다. 사하라 사막은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심장부를 관통하여 북상할 것이다. 경작지가 남아 있더라도 폭우 때문에 침식이 가속화되어, 한때 비옥하던 땅이 텍사스 평원 같은 협곡 많은 황무지로 변할 수 있다. 세계의 식량공급 능력이 곤두박질치면서, 인류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할 것이다.

 

p230

 현재 북극의 얼어붙은 토양에는 약 5,000억 톤 정도의 탄소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북극의 땅이 녹기 시작하면 탄소의 상당량이 배출될 수밖에 없다. 호수나 습지의 물이 빠지면서 흙이 말라붙는 곳에서는 흙 속의 세균이 분해를 시작ㅎ라면서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올라오고, 흙이 많이 젖어 있어서 산화성 분해가 어려운 곳에서는 혐기성(嫌氣性) 세균이 침투하여 막대한 양의 메탄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 메탄이 기후변화에 단기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이산화탄소보다 강력하다. 다른 곳에서는 탄소가 물속으로 바로 녹아들어가 강, 호수, 북극해에서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배출될 수 있다. 캐나다의 영구동토층이 녹는 속도를 연구한 미국의 생태학자 필 캐밀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북극 냉장고의 플러그를 뽑아버렸습니다. 이제 안에 들어 있던 것이 전부 썩기 시작할겁니다.

 

p266

 다량의 탄소는 바다 밑바닥에서 썩어가는 플랑크톤 잔해의 형태로 퇴적되는 짙은 유기물 진흙의 층을 이룬다. 이런 탄소의 일부는 지질학적 과정으로 '요리'되고, 암석의 작은 구멍을 통해 압착되어 저장되는데, 이것은 현대의 인류에게 아주 친숙한 물질이다. 바로 석유이다.

 이러한 고대의 탄소순환 작용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오래전 지구는 대기의 지나치게 높은 이산화탄소 수치를 낮춰 지구기온을 견딜 만한 정도로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물 중 많은 양이 인류가 지금 에너지를 얻기 위해 석ㄷ탄, 석유, 가스를 태움으로써 대기 중으로 돌려보내려고 애쓰는 바로 그 탄소이다(화석연료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더구나 인류는 홍합이나 굴, 플랑크톤에 비해 탄소의 위치를 옮기는 데 훨씬 더 효율적인 동물이다. 말하자면 백악기의 생명체들이 수천만 년 동안 격리시키느라 애쓴 것보다 100만 배는 빨리 탄소를 배출시킬 수 있는 것이다.

 

p303

 1인당 탄소 배출량이 국가별로 크게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감축 비율을 일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예컨대 인도는 지금 1인당 약 1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으며, 중국은 4톤을, 미국은 12톤을 배출한다. 이들 국가가 전부 똑같이 60퍼센트 감축을 받아들인다면 기본적으로 불평등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인도는 0.4톤을, 중국은 1.6톤을, 미국은 8톤을 배출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불평등을 고착시키면 불공정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성공적인 배출협약의 기초를 다지기가 힘들다.

 

 그러면 어떤 협약이 일률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유일한 논리적 해답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인류공동자산협회(Global Commons Institute)가 제안한 '축소수렴방식(Contraction and Convergence)'이다. 즉 부유한 나라들이 기후협약에 참여하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불평등했던 만큼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다. 축소수렴방식에 따르면, 모든 국가들은 약속한 날까지 1인당 배출 할당량이 일치하도록 수렴해야 하며, 지구 전체의 배출량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축소한다는 맥락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부유한 나라까지 포함하여 모두가 생존하면서 가난한 나라가 평등을 얻는 이러한 거래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1인당 탄소 배출량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미국에서는 지구 평균에 비해 감축 비율이 훨씬 높아야 하며, 축소수렴방식의 성격에 따라 2030년까지 85퍼센트는 줄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배출 허용량에 관한 국제시장이 형성되어 가난한 나라들이 사용하지 않은 할당량은 부유한 나라들에게 팔도록 함으로써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탄소 배출권 거래로 인한 수익은 빈곤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가난한 나라들이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발전 방식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

 

p307

 

 유타 대학교의 제프리 듀크스는 화석연료 의존도와 관련된 계산으로 처음으로 해본 이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얻어낸 수치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휘발유 1미국갤런, 즉 3.78리터가 태곳적 바다에서 만들어지기 위해서 식물성 재료가 90톤 정도 필요하다는 계산을 해냈다(기름을 넣을 때마다 생각해보도록 하자). 지구 전체로 계산해볼 때, 인류 사회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통해 매년 그 옛날 태양열 400년 치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인류가 태양 에너지만을 소비할 수 있었다면, 에너지 사용량을 엄청나게 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문명이 과거에 마련한 단 한 번의 에너지 보조금(수백만 년에 걸쳐 식물의 광합성으로 형성된 화석연료의 형태)에 의존해 살고 있으며, 그 의존도가 얼마나 큰지를 드러내준다. 우리가 지금 1년마다 사용하는 화석 연료의 양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간으로 따질 때 100만년에 해당하는 것일 수 있다. 동물들 중에 특이하게도 인류는 석유, 석탄, 가스의 형태로 저장된 화학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매년 한정된 태양 에너지 예산이 부과하는 생태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이 매년 한정되게 내려주는 보조금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석유를 먹고 사는 셈이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는 인류에게 오늘날의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다른 동물들은 먹이와 포식자 등의 관계에 따라 수가 조절되는 생태계의 제약 내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호모사피엔스는 이러한 생태적 구속을 벗어던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들판에서 기르는 것이나, 숲에서 캐내는 것에서 식량자원을 제한받지 않는다. 기계화된 농경과 장거리 수송을 통해 화석연료를 먹을 것으로 전환한다. 천연가스를 써서 질소비료를 만들고, 석유의 힘으로 트랙터나 콤바인을 움직여 사람이 하던 노동의 대부분을 대체한다. 사과술을 마셔가며 근육의 힘으로 일하던 수백 명의 몫을 석유를 먹는 콤바인 단 한 대가 해낸다. 사과술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바이오 연료인 셈이다.

 

p312

 기후변화는 고전적인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개인적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이지만, 이를 모두가 되풀이하면 사회적인 차원에서 재앙이 되는 것이다. 이 개념을 주창한 개릿 하딘은 목초지를 공유하는 소 치는 사람들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한다. 소 치는 사람 각자는 공유지에서 소 한 마리를 추가함으로써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하려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식으로 행동한다면, 과잉방목을 초해라여 공유지는 절단난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 부인이 필수적이라고 하딘은 말한다. "개인이 일부로서 몸담고 있는 사회 전체는 피해를 보더라도, 개인은 사실을 부인하는 능력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이익을 본다."

 

p314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지금 서구사회의 경제 시스템 전체가 부인이라는, 특히 자원의 유한성에 대한 부인이라는 바탕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지구가 제공해주는 모든 자원이 자유재(free goods)라는 범주에 든다는 듯이, 경제과정의 시초부터 거의 마술처럼 나타나는 것이라는 듯이 가르친다(노벨상 수상자인 교수들도 그렇게 믿는 것 같다). 인류라는 종을 지탱해주는 생태계의 모든 서비스를 포함하는 이 자유재들은 경제적으로는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며, 기존 경제의 계산에서 제외된다. 국민경제 성공의 잣대가 되는 표준적인 국민총생산(GDP)은 그런 과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생산과 소비의 가치를 합산한다. 그래서 기존의 경제학 이론은 창조적 회계라는 절묘한 솜씨를 발휘하여 자원의 고갈을 부의 축적으로 계산한다. 이런 식의 논리는 자기 계좌에 든 돈을 다 써버리면서 그것을 소득으로 계산하는 것과 흡사하다. 어리석은 짓 같지만 그것이 우리 경제 전체를 떠받치는 논리이다.

 이런 사회적 역기능을 염두에 둔다면, 경제와 사회 전체가 행하는 방해를 무릅쓰고 개인이 기후변화에 맞서 뭔가를 하지 않는다고 탓하는 것은 부당하다. 가수 밥 딜런은 1963년 흑인 인권운동가 메드거 에버스를 쏴 죽인 남부 백인이 "그들 게임의 일개 졸(卒)일 뿐"이라고 노래했다. 우리 모두도 그렇다. 각자가 지구온난화라는 게임의 졸이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다. 완전히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졸들을 움직이는 집단적인 손은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분 소설은 영화로만 봤기 때문에 실제로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몇몇 작품을 언급하는데, 살렘스 롯이나 미래의 묵시록 같은 책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읽어본 글쓰기에 대한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있는데, 소설에 대한 기본적인 작법에 대한 생각은 놀랍도록 동일하다(물론 표현은 틀리다). 

이 2명의 작가 말고도, 창작에 대한 생각은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도 동일한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으로 조각을 만들어낼 때, 그는 조각상의 원형을 미리 생각하고 대리석을 깍아나가면서 형태를 다듬는 것이 아니라, 대리석 원석 속에 숨어있는 형태를 드러내게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스티븐 킹의 표현으로는 내용을 낚아올린다고 쓰고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의식속에서 꺼낸다(일상의 1층, 무의식의 지하, 그리고 더 깊은 무의식의 지하 2층을 그런식으로 이야기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어떤 경지에 이른 이들은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가지게 되며 그 정수를 그들만의 표현으로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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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4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그렇듯이 작가도 처음에는 등장 인물에 대하여 그릇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이에 버금가는 깨달음은, 정서적으로 또는 상상력의 측면에서 까다롭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작품을 중단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이다. 때로는 쓰기 싫어도 계속 써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형편없는 작품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한다.

 

p124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p129

 글쓰기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여루분은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고 흥분이나 희망을 느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절망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들을 결코 완벽하게 종이에 옮겨적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여러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때려눕힐 태세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어서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있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서 시작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경박한 자세는 곤란하다. 다시 말하겠다. '경박한 마음으로 백지를 대해서는 안 된다.'

 

p182

 재능은 연습이라는 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자신에게서 어떤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눈이 빠질 정도로 몰두하게 마련이다. 들어주는 (또는 읽어주는, 또는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밖에만 나가면 용감하게 공연을 펼친다. 창조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환희라고 해도 좋다. 그것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야구공을 때리거나 400미터 경주를 뛰는 일뿐만 아니라 독서나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정말 독서와 창작을 좋아하고 또한 적성에도 맞는다면, 내가 권하는 정력적인 독서 및 창작 계획도 - 날마다 4~6시간 -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벌써 실천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싶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하라.

 독서가 정말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독서를 통하여 창작의 과정에 친숙해지고 또한 그 과정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작가의 나라에 입국하는 각종 서류와 증명서를 갖추는 셈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 (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써먹은 것은 무엇이고 아직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진부한 것은 무엇이고 새로운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지면에서 죽여가는 (혹은 죽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것들ㅇ르 알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이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p228

 소설의 다른 요소들이 모두 그렇듯이, 좋은 대화문의 비결도 진실이다. 등장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솔직하게 쓸 때 여러분은 상당량의 비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나는 매주 빠짐없이 최소한 한 통씩의 (대개는 그 이상의) 성난 편지를 받는다. 입이 더럽다느니, 고루하다느니, 동성애를 혐오한다느니, 흉악하다느니, 경솔하다느니, 혹은 아예 미친 놈이라면서 나를 비난하는 편지들이다. 그 사람들이 열받는 이유는 대부분이 대화문 속의 어떤 말 때문이다. 이를테면 '쓰벌, 이 차에서 빨리 내리자니까' 라든지, '우리 동네에서는 깜둥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단다'라든지,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이 염병할 새꺄!' 따위가 문제인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부디 편히 잠드소소> 욕설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으셨다. '무식한 사람들이 쓰는 말' 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고기를 태우거나 망치질을 하다가 엄지손가락을 회되게 내리치거나 하면 대뜸 '이런 제기랄!' 하고 소리치셨다. 마찬가지로 개가 비싼 카펫에 구토를 하거나 지나가는 자동차가 흙탕물을 튀기거나 할 때는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비슷한 말을 내뱉게 될 것이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많은 것이 진실에 담겨 있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가 붉은 손수레에 대한 시에서 하고 싶었던 말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점잖은 사람들은 '제기랄' 같은 단어를 싫어할 테고, 아마 여러분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쓰게 될 때가 있다. 세상의 어떤 아이도 엄마한테 달려가서 여동생이 욕조 안에서 '배변했다' 고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응가했다' 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똥 쌌다' 고 말하기가 쉬울 것이다(아이들에게도 듣는 귀는 있으니까).

 

p242

 언젠가 헤밍웨이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 옳은 말이다.

 

p247

 소설을 쓸 때 여러분은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확인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일이 다 끝나면 멀찌감치 물러서서 숲을 보아야 한다. 

 

p253

 이같은 일들은 폭력을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인간의 뿌리 깊은 본성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미래의 묵시록》의 주제가 되었고, 수정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그 생각은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p333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그 순간만 넘기면 모든 것이 차츰 나아진다.

1997년의 홍콩 조류독감(H5N1)의 발생을 모티브로, 독감 바이러스에 관련된 사람들이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을 추적하는 이야기.

과거의 전염병을 추적하는 것의 어려움을 생생히 느낄 수 있고, 지금의 코로나19 상황이라 더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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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5

 분자생물학과 제약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날에조차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들, 특히 독감은 대체로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 분자생물학자들이 독감 바이러스의 내부 기작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간단한 독감 바이러스 안에는 8개로 분절된 RNA 유전자뿐이며, 감염시킬 수 잇는 세포 없이 바이러스만 놓아두면 몇 시간 안에 죽어 버린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십여 년 전에 알아냈다. 독감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아냈다. 전자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독감 바이러스는 조그만 공 또는 달걀 모양의 입자들이다. 때로는 긴 막대형을 띠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도 알고 있다. 독감 바이러스 입자들은 단백질 지지대가 박힌 매끄러운 지질막에 싸여 있으며 내부에는 RNA 유전자 분절들이 들어 있다. 또한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투해 들으가 자기 자신을 복제한 다음, 바이러스 외피에서 튀어나온 수백 개의 예리한 단백질 침을 이용해 세포를 깨고 다시 퍼져 나오는 과정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왜 인간 독감 바이러스가 허파 세포만을 감염시키는지도 알고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들을 만드는 동안 단백질을 분해하는 데에 필요한 효소가 인체 내에서는 오직 허파에만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드이 모르는 것은 페니실린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독감 백신을 만드는 방법이다. 유행성 독감과 싸우는 가장 좋은 길을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할 독감 균주를 미리 알아서 제약 회사들이 독감의 등장 시기에 맞추어 백신을 생산해 배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1918년 독감이 치명적인 독성을 발휘한 이유를 안다면 제약 회사들은 그 독감 또는 그것과 유사한 독감이 다시 나타났을 때 인류를 지키기에 충분한 백신을 대량으로 비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918년 독감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 독감의 마지막 희생자들은 1918년에 사망했고 바이러스도 같이 가져가 버렸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그것을 끝일 것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허파의 부드러운 조직 속에서 살며 허파는 주인이 사망하면 거의 즉시 부패해 버린다. 아니, 바이러스는 시체의 허파가 부패하기도 전에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1918년 독감에는 평범한 구석이라곤 없었다. 그리하여 거의 백 년이 지난 후에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1918년 독감으로 사망한 수백만 명 가운데 세 사람에게서 떼어 낸 허파 조직 속에 독감 바이러스가 남아 있는 것이 밝혀졌다.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일종의 로제타석처럼 말이다. 이 세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날 당시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그들만이 21세의 세계를 구할 단서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p120

 아무래도 독감 바이러슨 1918년 독감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엄습 사이에 어디론가 갔다가 살인 균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독감 바이러스가 간 곳은 동물의 몸속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몇몇 사람들은 생각했다.

 쇼프는 또 하나의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는 오랫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될 의견이었다. 그는 돼재의 폐흡충이 독감 바이러스의 중간 숙주이며, 바이러스는 그곳에서 휴면하고 있다가 밖으로 나와 유행병을 일으킨다고 했다. 또한 1918년 독감의 치명적인 두 번째 엄습은 첫 번째 엄습을 일으킨 원인 바이러스와 동일하거나 아주 가까운 연관 관계에 있는 바이러스 때문이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본질적으로 쇼프는 그 바이러스가 1918년 가을에 전혀 변하지 않은 채로 다시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에 감염된 사람들이 두 번째로부터 보호받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엄습 사이의 차이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식객, 그러니까 독감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오랜 숙적인 파이퍼균이었다. 쇼프는 1918년 독감의 두 번째 엄습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독감으로 죽은 것은 그들이 바이러스와, 바이러스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파이퍼균 양쪽 모두에 감염되었디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오늘날 이 이론은 거의 폐기되어 과거의 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파이퍼균은 이제 아이들에게 뇌막염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알려져 있고 이 균을 막아낼 항생제도 있다. 그러나 쇼프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지닌 유산을 남겨 놓았다. 우선 그의 연구는 독감 연구를 위한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는 돼지 독감 바이러스를 찾아 냈으며 돼지 독감과 1918년 인간 독감 사이의 관련성을 밝혔고 1918년 독감 바이러스가 돼지의 몸속에 살아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동시에 쇼프의 연구는, 비록 그의 탓은 아니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엄청난 정책 사고를 낳은 원인이 되었다. 1976년, 돼지 독감에 대한 그의 이론 때문에 미국 정부는 모든 미국인에게 돼지 독감 예방 접종을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자들의 충고에 따라 포드 대통령이 내린 결정이었다. 한 젊은 장교가 돼지 독감에 걸려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1918년 독감과 같은 치명적인 독감이 인간에게 퍼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순식간에 일었다.

 결국 돼지 독감 전염병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록 당시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은 돼지 독감 백신이 마비와 피로, 기타 만성 질병에 이르기까지 오만 가지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확신했고 수백수천의 소송이 제기되었다. 중단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돼지 독감 예방 캠페인은 독감 백신 자체에 대한 일반적 불신을 낳았고, 과학자들은 양치기 소년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과학자들은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그 사건은 1918년 독감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위험에 대하여 과학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고 크로스비는 말했다. 돼지 독감 재앙 이후, 1918년 독감은 바이러스학자들에게는 "피해야 할 뭔가"가 되었다고 크로스비는 덧붙였다.

 

p167

 독감 바이러스는 두 종류의 단백질을 이용해 세포 안으로 들어가고 빠져 나온다. 하나는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으로 적혈구의 응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다. 헤마글루티닌은 바이러스가 세포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하나는 뉴라미니데이즈(neuraminidase, ? 내 기억으로는 뉴라미니다아제 로 읽을 것 같아서 찾아보니 국내용어에서 dase는 다아제로 읽는다. 번역가는 과학기술원 생물공학을 졸업한 사람이니 용어를 잘못 알았을리는 없을 것 같고, 찾아보니 영어권에서는 데이즈로 읽는다. 원어 발음 그대로 실렸다)로 세포 안에서 만들어진 바이러스들이 세포를 깨고 나가게 해 준다.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데이즈는 독감 바이러스의 외피에 돌출해 있어서(요즘 코로라19로 전세계인들이 이 바이러스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돌출된 외피의 돌기를 스파이크spike라고 부른다) 바이러스 침입을 박는 신체 면역 체계의 표적이 된다.

 독감 바이러스의 균주를 나누는 기준은 헤마글루티닌(H)과 뉴라미니데이즈(N), 두 가지의 단백질이다. 과학자들은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데이즈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균주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46년 전 세계에 유행한 균주는 H1N1이었다. 다음번에 바이러스가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대규모로 유행하게 된 것은 1956년으로, 이때의 균주는 H2N2였다. 1968년에 유행한 독감은 1956년 바이러스에서 헤마글루티닌만 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었다. 그래서 이 바이러스는 H3N2라고 명명되었다.

 침입한 바이러스와 면역 체계 사이의 전쟁에서 백혈구 세포는 독감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데이즈 단백질에 결합하여 항체를 생산하다. 하지만 새로운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가 신체에 처음으로 침입한 경우에는 면역 체계가 독감 바이러스를 막을 항체를 충분히 생산할 때까지 며칠이 걸릴 수 있다. 반면에 해당 독감 바이러스가 전에 침입한 적이 있을 때에는 면역 체계가 즉시 항체를 생산하여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킨다. 독감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이나 뉴라미니데이즈에 큰 변이가 생긴 경우에 독감 환자들은 바이러스의 횡보를 고스란히 당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대규모 유행병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체는 독감에 대항하는 또 다른 방어 무기를 갖고 있다. 1957년에 발견된 이 물질을 독감 바이러스를 비롯하여 여타 바이러스를 죽이는 일종의 체내 항생 물질이다. 인터페론이라고 명명된 이 단백질은 백혈구에서 나온다. 백혈구는 바이러스로부터 세포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아서 세포가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다양한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촉진시킨다. 그런 단백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RNA 인산화 효소(phosphokinase RNA)인 PKR이다. PKR은 바이러스가 자기 자신을 복제할 때 RNA를 유전자 재료로 사용하는 것을 막는다.

 

p294

 웹스터 박사는 사상 최악의 유행성 독감인 1918년 독감이 조류독감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류독감이 사람을 감염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화되어야 했다. 말하자면 전염성이 강한 조류독감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허파 세포에서 증식할 수 있는 형질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웹스터는 바로 그 핵심적인 단계가 주로 돼지의 몸속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돼지는 새와 인간을 이어 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데 조류 독감 균주와 인간 독감 균주는 둘 다 돼지의 체내에서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인간 독감과 조류 독감에 동시에 감염된 불운한 돼지는 일종의 배양기 역할을 한다. 돼지의 몸속에서 두 가지 유형의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가 재조합 되어 새로운 혼성 바이러스를 만들면 이 바이러스는 조류 독감의 유전자를 일부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새로 등장한 바이러스는 이 전에 존재한 어떤 바이러스보다 위험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유행병이 등장할 무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 가설에 대한 증거로써 웹스터는 1918년 바이러스가 조류에서 시작해 돼지로 이동하고 그 다음에 인간을 감염시켰기 때문에 1918년 독감이 발생했던 시기를 거쳤던 사람들은 돼지 독감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독감 바이러스로는 유일하게 분리된 바 있는 1957년의 아시아 독감과 1968년의 홍콩 독감의 바이러스가 조류에서 간접적으로 온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있었다.(그 이전의 유행병들은 바이러스학자들이 독감 균주를 분석하는 방법을 모를 때에 일어났고 그 이후로는 아직 대규모 유행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케네디 쇼트리지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시아는 독감의 진원지라는 것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특히 오리의 몸속에 많이 산다. 오리는 남아시아에 편재한다. 오리는 위험한 바이러스 균주들의 저장소 역할을 하며 오리 몸속의 독감 바이러스는 중국 농부들이 고안한 영리한 농사법에 의해 인간 독감으로 전환된다. 이 농사법이 독감 균주들로 하여금 오리에서 돼지로, 그리고 사람에게로 이동할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17세기 초, 중국 남부 지방의 농부들은 벼농사를 지으면서 논에서 잡초와 해충을 제거하는 동시에 오리에게 먹이를 주는 방법을 발견했다. 벼가 자라는 도안 농부들은 물이 찬 논에 오리를 풀어놓는다. 오리들은 벌레를 잡아먹고 잡초도 뜯어먹는다. 그러나 벼는 건드리지 않는다. 벼가 익기 시작하면 농부들은 오리를 논에서 몰아내 수로나 연목으로 가게 한다. 벼를 수확하면 농부들은 마른 논에 오리들을 다시 풀어놓는다. 그곳에서 오리들은 따에 떨어진 낱알을 주워 먹는다. 이제 오리는 잡아먹힐 준비가 된다.

 문제는 농부들이 오리와 함께 돼지도 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리를 키우면 부지불식 간에 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로 옮겨 가게 된다."라고 쇼트리지는 말했다.

 쇼트리지는 대규모 유행성 독감이 언제나 아시아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벼농사와 오리 그리고 돼지가 공존하는 남부 아시아에서 말이다. "역사적 기록들은 언제나 이 지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제 홍콩에서 사망한 어린아이의 표본 분석 기록을 보면서 콕스 박사는 유례 없이 두려운 가능성을 담은 사건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에 독감 바이러스가 하나 있다. 이 바이러스는 홍콩에서 왔다. 이것은 조류 독감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알려진 다른 조류 독감과는 달리 이 바이러스는 돼지 단계를 훌쩍 건너뛴 것처럼 보였다.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데이즈 단백질이 돼지 독감이 아니라 조류 독감 특유의 단백질이었기 때문이었다.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그리고 사망했다.

 

 

p390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 유전자가 단서를 제공하리라는 것이 첫 번째 희망이었다. 결국 이 유전자는 독감 바이러스의 표면에 돌출해 있는 두 가지 단백질 중 하나였다. 이것은 바이러스가 숙주의 세포 안으로 들어갈 때 사용하는 단백질로서 인체의 면역 체계가 독감과 싸울 때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독감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 단백질을 봉쇄하는 것이다.

 헤마글루티닌 단백질은 독감 바이러스가 사람의 허파에서만 증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감 바이러스가 세포를 감염시킬 때 헤마글루티닌 단백질의 커다란 전구체를 만드는데 이 전구체는 숙주 세포내 효소에 의해 둘로 나뉘어야 한다. 그리고 이 효소는 오직 인간의 허파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독감 바이러스는 허파 세포 속에서만 증식할 수 있다.

 1918년 독감에 대한 첫 번째 가설은 전구체 단백질이 허파 세포 이외의 세포 효소에 의해 쪼개질 수 있도록 헤마글루티닌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났으리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독감은 다른 신체 조직과 기관들에도 침입할 수 있게 되어 치명적인 병독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가 뇌 세포에도 침입하여 기면성 뇌엽을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토벤버거와 앤 레이드는 1918년 독감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 유전자 염기 서열을 신중하게 짜 맞추면서 너무 큰 희망을 품지 않으려고 애썼다. 만약 첫 번째 가설이 옳은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너무 쉬운 일이 될 터였다.

 어쨌거나 실망스럽게도 헤마글루티닌 단백질의 분할지점은 완벽하게 평번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 2월 16일, 그들은 《미국 국립과학 아카데미 논문집》에서 헤마글루티닌 유전자의 염기 서열을 밝히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바이러스가 뇌 세포나 신체의 다른 조직에 전파되었다 해도 그게 헤마글루티닌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은 아니었다.

 첫 번째 가설이 배제되자 토벤버거는 또 하나의 인기 있는 가설로 이동했다. 뉴라미니데이즈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에 바이러스가 허파 밖 다른 신체 기관으로 퍼져 나올 수 있었다는 가설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생쥐 실험에서 나왔다. 생쥐는 일반적으로 독감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생쥐의 뇌에 인간 독감 바이러스를 직접 주사하자 바이러스의 뉴라미니데이즈 유전자가 결국에는 돌연변이를 일으켜 치명적인 뇌염을 일으켰다. 결론은, 1918년 독감이 유사한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의 뇌에서 증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폰 에코노모의 기면성 뇌염과 1918년 독감의 치명적 병독성을 하나로 묶는 흥미로운 가설이었다.

 이 돌연변이 덕분에 뇌 세포 효소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독감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 단백질을 쪼개고 결국에는 헤마글루티닌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한 것과 동일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생쥐를 감염시키는 뉴라미니데이즈 돌연변이는 대단히 특이한 경우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독감 바이러스에서는 보고된 바가 없었다. 그러나 1918년 독감에서 그러한 돌연변이가 일어나 치명적인 독감이 되었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에 토벤버거와 레이드는 헤마글루티닌 유전자 분석을 마치자마자 뉴라미니데이즈 유전자를 분석해 보았다.

 하지만 토벤버거와 레이드는 뉴라미니데이즈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났다는 증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바이러스가 허파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리라는 가설을 지지할 만한 어떤 분자생물학적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알려진 돌연변이들에 대해 조사해 보았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특이한 유형의 돌연변이를 찾고 있다."라고 토벤버거는 말했다.

 

p395

 한편 사람을 죽이는 능력이 너무나 뛰어난 1918년 독감은 독감 바이러스들에게서도 가장 먼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에 어떤 돌연변이가 일어나든 덜 치명적인 쪽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토벤버거는 말했다. 1918년 독감은 완벽하게 균형 상태에 있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아주 조금만 변화를 주어도 더 평범한 독감 바이러스 쪽으로 추가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이 바이러스의 유례가 없는 치명적인 맹독성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면역성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연결해 볼 때 1918년 독감 바이러스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토벤버거는 말했다. 바이러스는 병독성이 덜한 쪽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소멸했을 것이다.

 

 

 

 현대 물리학을 개척한 20세기 위대한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에 대한 이야기.

저자는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인데, 물리학자의 평전을 쓴다는 건 생뚱맞은 데가 있다.

서론에서 바로 밝히지만, 저자의 아버지인 멜빈 슈워츠가 중성미자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1962년)해서, 198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슈워츠 외에 슈워츠의 스승인 잭 스타인버거와 또 다른 한명인 레온 레더만이 같은 공로로 공동 수상한다.

스승인 잭 스타인버거(스타인버거는 페르미의 직계 제자로 그에게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슈워츠에게 박사과정을 페르미에게서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슈워츠는 콜럼비아 대학을 떠나서 시카고로 가는 것을 꺼려서, 콜롬비아에서 스타인버거에게서 박사과정을 받게 된다(그래도 거기서 연구한 중성미자로 노벨상을 받았으니).

 멜빈 슈워츠의 아들인 저자 데이비드 슈워츠는 아버지 멜빈의 사망 이후, 7년이 지나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다른 물리학자들과 나눈 서신을 발견하다. 그 서신의 내용 중에 엔리코 페르미와 관련된 내용이 있었고, 이에 흥미를 가진 저자는 페르미에 대해서 알아보게 된다.

 그것을 계기로 페르미에 대한 내용을 집필하기로 계획했다는 것이다.

 천재는 흥미를 돋구는 주제 중의 하나이며, 특별히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한 유명한 사람과 관련된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동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동기와 흥미를 가지고 책을 써볼까 생각할 순 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한 정성과 애정이 없었다면 이런 내용을 정리하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만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은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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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9

 학생이건 교수건 페르미의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이 희귀한 정신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년쯤 뒤에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자주 일어날 일을 예견하듯이, 교수들은 직접적인 방법으로 풀리지 않는 방정식이 있으면 페르미를 불렀다. 그는 교수가 고심했던 해법을 향해 꾸준히 다가서서 풀어냈다. 앞으로 계속 그와 함께하게 되는 특이한 습관도 생겼다. 생각에 빠지면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물건(분필, 연필, 어떨 때는 주머니칼)이나 들고 무심코 만지작거리게 된 것이다. 그는 주머니칼로 자기의 오른쪽 관자놀이 근처를 실수로 베었고, 이때 생긴 흉터는 나중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p77

 1922년 10월, 두 사람이 페르미의 장래에 대해 의논하기로 한 날에 무솔리니의 지지자들이 로마에서 행진했다. 총리는 국왕에게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도록 탄원했는데, 이것은 입헌군주제였던 이탈리아에서 왕만이 할 수 있는 조치였다. 코르비노와 페르미는 상황을 주시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 라우라 페르미에 따르면, 두 사람은 왕이 포고문에 서명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코르비노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파시즘 신봉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혐오감을 표현했지만, 왕이 서명하면 긴 피의 내전이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페르미는 왕이 내각의 권고에 거의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왕이 내각을 거스를 것 같습니까?" 페르미는 노회한 코르비노에게 물었다.

 "왕은 각료들이 하자는 대로 하고 결코 나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코르비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왕이 포고문에 서명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면 여전히 희망이 있군요." 젊은 동료가 말했다. 페르미는 분명히 코르비노를 오해했다.

 "희망?" 그는 대답했다. "어떤 희망? 구원이 아니야. 왕이 서명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 독재 정권이 들어설 거야." 코르비노가 옳았다. 왕은 이탈리아에 긴 내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서명을 거부했고, 일주일 만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총리가 되었으며, 코르비노가 예측한 대로 21년 동안 이어질 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p94

 파울리는 일찍부터 수학과 물리학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뮌헨 대학교에서 위대한 이론가 아르놀트 조머펠트에게 배웠는데, 조머펠트는 파울리가 뮌헨에 왔을 때 이미 더 가르칠 게 거의 없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페르미처럼 파울리도 상대성이론으로 과학에 첫 번째 기여를 했고, 16세의 나이에 이 주제로 논문을 썼다. 파울리는 상대성이론에 대해 그가 쓴 글이 독일의 수학 백과 사전에 실리면서 대학생 시절에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페르미와 마찬가지로 신동이었고, 페르미처럼 키도 작아 165센티미터 정도였다. 그러나 거의 모든 면에서 파울리는 페르미와 정반대였다. 페르미는 몸이 단단하지만, 아담했고, 외모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파울리는 통통했고 비만에 가까웠지만, 매혹적인 눈과 감각적인 입술로 어두운 매력이 있었다. 페르미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파울리는 무척 많이 마셨고, 알코올 중독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다. 페르미는 습관적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파울리는 그 반대였고, 카페나 카바레에서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뮌헨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파울리는 뮌헨 슈바빙 지역의 작가, 음악가 등 예술가들과 어울려 지냈다. 반면에 페르미가 물리학 외에 가장 탐닉한 활동은 등산이었다.

 페르미는 이론과 실험 모두에 재능이 있었다. 이론가로서 파울리가 페르미보다 더 재능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실험가로서 재앙이었다. 물리학자들은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분명히 파울리가 근처에 와 있을 거라고 농담을 했다. 파울리의 독설은 전설적이었고, 페르미에게는 전혀 없는 면모였다. 파울리는 '독설가'라는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어떤 동료를 보고 "너무 젊은데도 이미 너무 안 유명하다"고 모욕적인 평가를 했다. 그는 한때 페르미를 "양자 엔지니어"라고 조롱했다. 유달리 애매하고 사변적인 이론 논문에 대해 그는 "너무 엉망이라 심지어 틀리지도 못했다"는 유명한 비판을 남겼다. 그는 절친한 친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바보"라고 즐겨 불렀다. 젊은 시절에는 영국의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에게 이 연로한 학자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추구하는 연구가 물리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대놓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이 뮌헨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을 때, 파울리는 이 위대한 인물의 강연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아인슈타인 교수가 방금 한 말은 들리는 것처럼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p100

 디랙은 어떤 의미에서 파울리와 정반대였다. 오늘날의 우리는 그가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고통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사교성이 심하게 부족했고, 대화할 때 말을 극단적으로 곧이곧대로 이해했다. 한 번은 그가 하이젠베르크에게 사람들이 왜 춤을 추는지 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멋진 여자가 있으면 즐겁다"고 대답했고, 디랙은 한참 생각하다가 "하지만 어떻게 여자들이 멋있을지 미리 알지?"라고 말했다.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디랙이 칠판에 쓴 방정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으나 대답하지 않기도 했는데, 그 학생의 말은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나중에 해명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동료들은 시간당 한 단어를 말하는 것을 '1디랙'이라는 단위로 정의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공격적으로 비종교적이었다. 1927년 솔베이 학술회의에서 벌어진 한 유명한 대화에서 젊은 물리학자들은 철학과 종교에 대해 토론했다. 하이젠베르크의 회상에 따르면, 디랙은 그의 기준으로는 물리학자의 세계에 종교는 설 자리가 없다고 열렬히 주장했다. 대화 내내 침묵했던 파울리는 "우리의 친구 디랙은 종교가 있는데, '신은 없고, 디랙은 그분의 사도다'라는 게 교리일세"라고 말했다. 하이젠베르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크게 웃었고, 디랙 자신이 가장 크게 웃었다고 한다.

 

 

 

p161

 페르미는 디랙의 방법을 철저히 이해했지만, 이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2년을 보냈다. 위그너가 말했듯이, 그는 디랙의 접근 방식의 수학적 복잡성에 완전히 익숙했지만 이것을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더 단순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수학적 복합성 때문이 아니었다. 페르미는 뛰어난 수학자였고,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에 견줄 만했다. 오히려, 페르미의 거의 모든 위대한 업적이 그렇듯이, 단순화하려는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교육적인 이유였다. 

 그는 동료들과 학생들 앞에서 이 주제를 천천히 체계적으로 풀어나가면서 청중이 각 단계를 잘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이 연습의 목적은 자료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함을 사랑하는 물리학자의 기질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다면 자기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디랙에게는 이런 목적이 없었고, 그는 매우 드문 수준의 논문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썼다. 페르미는 디랙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서, 이상한 물리학자의 복잡한 개념과 이국적인 기법을 이해하기 위해 애쓸 생각조차 하지 않을 물리학자들에게 제공해주었다.

 

 

p163

 1920년 후반에 일련의 매우 정밀한 실험의 결과로 베타선 '위기'가 생겼다. 베타붕괴는 물리학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보존 법칙을 어기는 것처럼 보였다. 중심적인 보존 법칙 중의 하나가 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모든 물리적인 과정에서 들어가는 에너지와 나오는 에너지가 같아야 한다. 그러나 베타선 방출은 이 법칙을 어기는 것 같았다. 에너지가 보존된다면, 방출된 베타입자의 에너지는 매우 좁은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베타선 방출 과정은 모두 똑같으므로 베타입자의 에너지는 모두 같아야 하지만, 실제로 방출된 베타입자의 에너지를 측정해보면 예측보다 상당히 넒은 에너지 대역에 퍼져 있었다. 이것은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야구 연습장의 피칭 머신이 항상 똑같은 속력으로 똑같은 방향으로 공을 던지도록 설정되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갑자기 공이 무작위로 다른 속력으로 나온다면, 기계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몇몇 물리학자들은 이 증거에 항복했고, 이 특정한 상황에서는 분명히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보어도 이렇게 생각했고, 1931년 로마에서 열린 코르비노의 페르미 주최의 학술회의에서 이러한 모험을 감행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물리학자들에게는 재앙인 대담한 결론을 내렸다. 러더퍼드는 보어의 결론을 완강히 거부했지만, 에너지 보존의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베타선을 설명하는 대안을 제시한 것은 상상력이 넘치는 파울리뿐이다.

 파울리는 특유의 대담성으로 전자와 함께 다른 입자가 방출된다고 제안했다. 이 입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질량이 너무 작아서(어쩌면 0일 수도 있다) 거의 탐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1930년 12월 독일 튀빙겐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처음으로 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그는 이 가상 입자를 '중성자neutron'라고 불렀고, 이 입자가 베타붕괴에서 관찰되지 않은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며, 따라서 에너지 보존 법칙은 깨지지 않는다고 제안했다.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중성자라고 부르는 입자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2년 뒤에 제임스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하며 엄청난 충격을 일으켰고, 이때 페르미와 그의 팀은 파울리의 가설적 입자를 '중성미자neutrino'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파울리의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리학자들 중 일부는 저명한 물리학자의 말을 빌려, 베타선 방출 문제에 대해 이런 견해를 가졌다. "그냥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신설된 세금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보어의 편을 들어, 보이지도 않고 엄청난 거리를 방해 없이 통과하는 입자라는 아이디어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중성입자가 있다고 하기보다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다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무도 전자와 중성미자가 방출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자와 중성미자가 언제나 핵 속에 있고, 적절한 자극만 주면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아니면 어떻게든 핵 안에서 만들어진 다음에 바로 방출될까?

 

 원자핵 속에 중성자가 들어 있다는 채드윅의 발견이 단서가 되었다. 광자의 생성과 소멸을 기술하는 디랙의 양자전자기역학이 두 번째 단서였다. 요르단과 위그너의 2차 양자화가 세 번째 단서가 되었다. 파울리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페르미는 4년 동안 배운 모든 것을 베타선 문제에 적용했다. 1933년 후반과 1934년 초에 독일과 이탈리아의 학술지에 실린 그의 논문 <베타선에 대한 잠정적인 이론 A Tentative Theory of Beta Rays>에서 페르미는 이 주제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밝혔다. 80년이 지난 지금, 이것은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페르미는 양자 상호작용이 하나 더 있다고 제안했다. 이 상호작용은 입자들이 서로 매우 가까이 있을 때만 일어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약한' 상호작용이라고 부른다. 이 상호작용은 중성자를 양성자로, 양성자를 중성자로 바꾼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새로운 입자가 생성되어 높은 에너지로 핵에서 탈출한다.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면 전자와 반중성미자가 방출된다.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면 양전하를 띈 전자(양전자)와 중성미자가 방출된다. 방출된 입자의 에너지 총합은 항상 같지만 각각의 입자가 가지는 에너지는 양자장 이론의 직접적인 결과인 양자 규칙에 따라 달라진다. 전자와 중성미자(그리고 대응되는 반물질 입자들)는 그 전에는 핵 안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방출되는 순간에 생성된다. 중성미자 또는 반중성미자가 물질과 상호작용할 가능성을 이 이론으로 계산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너무 낮아서 중성미자는 물질과 전혀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면서 수백만 킬로미터를 달려갈 수 있다. 

 

 이 논문의 성립과 발표에는 흥미로운 내막이 있다. 페르미는 1933년 후반까지 이 연구를 진행했다. 베타선 방출 문제는 페르미가 참석한 1933년 10월 솔베이 학술회의의 주요 관심사였고, 학술회의 기간 동안 페르미와 파울리는 파울리의 중성미자 아이디어에 대해 깊이 논의했다. 그해 크리스마스쯤에 페르미는 그룹의 스키 휴가 때 로마의 동료들에게 주요 아이디어를 편하게 설명할 만큼 충분히 발전시켰다. 이 휴가 직후에 페르미는 영국 학술지 <네이처>에 이 논문을 보냈다고 세그레는 말한다. 로마 그룹이 히틀러가 부상하면서 독일의 학술지를 보이콧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그레에 따르면 검토자 한 사람이 이 논문이 너무 "사변적"이라고 보았고, <네이처>가 논문을 거절했다. 이에 페르미는 논문을 이탈리아의 학술지 <누오보 시멘토>와 독일의 <물리학 저널>에 보냈고, 두 학술지가 모두 이 논문을 게재했다. 이 이야기는 논문에 얽힌 이야기들 중에서도 워낙 중요해서 위키피디아에는 나중에 <네이처>가 이 논문을 거절한 것은 가장 터무니없는 편집자의 실수 중 하나라고 공개적으로 후회했다고 쓰여 있기도 하다.

 

 사실, 논문 거절을 후회한다는 공식적인 언급은 네이처 후속 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검토자가 쓴 거절 편지를 네이처 기록 보관소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십 년 전에 새로운 사무실로 이사하면서 모든 기록이 파기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가들은 이 이야기 전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네이처>는 당시에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짧은 노트만 게재를 허용했고, 새로운 양자장 이론에 대한 상세한 발표를 위한 지면이 아니었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페르미가 투고했을 법한 더 그럴듯한 영국의 학술지는 <런던 왕립학회 회보>다 양자전기역학에 대해 디랙이 쓴 초기의 중요한 논문들이 모두 여기에 실렸으므로, 페르미가 베타붕괴 논문을 제출했다면 이 학술지에 체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 역사가들은 페르미가 독일의 연구자들, 특히 보른,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누구보다 파울리가 자신의 논문을 먼저 읽기를 원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가 독일 학술지에는 아무것도 싣지 말아야 한다는 젊은 동료들을 의식해서 선의의 거짓말(제출했지만 <네이처>가 거절했다)로 상황을 모면하면서 자기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논문의 실제 출판 내막이 무엇이든, 물리학 공동체의 즉각적인 반응은 신통치 않았따. 파울리와 위그너는 이 논물을 높이 평가했다. 페르미는 디랙의 양자장 체계 전체를 자기의 사고에 통합했고, 이것을 베타선 방출 문제에 독창적으로 적용했다. 문제는 이 이론을 실험으로 검증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중성미자는 탐지하기가 불가능해 보였고, 페르미조차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의심했다. 그는 양자전기역학을 완전히 익혔고, 겉보기에 완전히 다른 현상을 이 이론에 사용된 수학을 설명하면서 개인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 논문의 진가는 몇십 년 뒤에야 제대로 알려지게 된다. 이것은 자연의 근본적인 힘이 한 가지 더 있다는 최초의 암시였다. 약력 또는 약한 상호작용이라고 보르는 이 힘은 중력, 전자기력, 강력과 함께 자연의 네 번째 근본적인 힘으로 알려지게 된다. 10개가 넘는 노벨상과 물리학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 몇 가지가 여기에서 나왔다.

 1970년대에, 나중에 페르미가 시카고 대학교에서 가르친 제자 첸닝양(Chen Ning Yang)이 페르미의 동료이자 친구인 유진 위그너에게 물리학자들이 페르미의 가장 중요한 공헌이 무엇이라고 기억할지 물어보았다. 위그너는 베타선 방출 논문이 페르미의 가장 중요한 연구라고 말했다. 양은 동의하지 않았고, 페르미온의 생성/소멸 연산자와 함께 2차 양자화를 발명한 사람은 바로 요르단과 위그너 본인이라고 지적했다. 위그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지.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물리학에서 실제로 쓰일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네." 베타붕괴 논문이 페르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는 위그너의 평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p183

 여름방학을 앞두고 페르미와 팀은 주기율표의 원소들을 계속 조사했고, 마침내 가장 무거운 원소인 토륨과 우라늄에 이르렀다. 가장 무거운 원소에 중성자를 포격하면 더 무거운 원소, 이른바 초우라늄 원소가 생성될 거ㅓㅅ이라는 생각이 물리학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미는 팀이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고스티노는 더 가벼운 부산물을 찾아내는 과정을 진행했다. 주기율표의 밑으로 내려가면서 납까지 찾기로 했고, 납보다 더 가벼운 원소는 생성될 수 없다고 가정했다. 그는 아무 원소도 찾지 못했고,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팀이 잠정적으로 도달한 결론은(다고스티노가 부산물을 깨끗하게 분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저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실제로 새로운 무거운 원소가 생성ㅇ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화학자 이다 노다크 Ida Noddack 만이 초우라늄 가설은 틀렸다고 주정했고, 페르미가 실제로 한 일은 우라늄 핵을 훨씬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개서 납보다 가벼운 원소를 만들어 낸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그녀의 제안은 무시되었는데, 주로 그녀를 비롯해서 어느 누구도 그러한 사건을 설명하는 메커니즘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잠정적인 결론은 확고한 결론으로 뒤바뀌었다. 여름휴가가 시작될 때쯤, 코르비노가 린체이 아카데미 강연에서 섣부르게 페르미와 그의 팀이 초우라늄 원소를 발견했다고 열정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 연설은 이탈리아와 전 세계 신문의 머리기사로 보도되었다. 코르비노는 연설을 하기 전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고, 불확실한 결론이 최종 결론으로 발표되자 페르미는 충격을 받았다. 신중한 페르미는 결과를 절대적으로 확신할 때만 발표하는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고, 결과가 틀린 것으로 판명되면 자기의 명성을 망칠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잠 못 이루는 하룻밤을 보냈다. 스승이자 이탈리아에서 핵심적인 후원자였던 코르비노와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는 어려웠다. 다음 날 아침에 그는 코르비노에게 직접 자기의 걱정을 말했다.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코르비노는 그 발표의 중요성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짜릿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잊힐 수 없었다. 페르미가 그 발견을 믿고 싶어했는지 스승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스스로 완벽하게 부인한 적은 없었다. 5년 뒤에 노벨상 위원회는 느린중성자와 초우라늄 원소의 발견을 언급하면서 페르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주었다. 바로 그 순간에 베를린에서 리제 마이트너, 오토 한, 프리츠 슈트라스만으로 구성된 훌륭한 팀이 페르미 팀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밝혀냈다. 페르미는 초우라늄 원소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우라늄 원소를 쪼갠 것이었다.

 

p185

 

 아주 드물게, 자연은 우리에게 커튼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짝 엿보게 해준다. 1934년 10월 18일에, 아말디와 폰테코르보가 그런 기회를 허락받았다.

 둘은 먼저 은을 중성자로 포격해보았다. 은의 알려진 반감기는 2.3분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표준으로 삼아서 다른 정량적인 측정을 진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제에 봉착했다. 은 과녁에 대한 중성자 방출원의 효과가 방출원에서 과녁까지의 거리뿐만 아니라 과녁ㅇ에 방출원을 놓은 탁자에도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대리석 탁자에서 실험을 했을 때는 나무 탁자를 쓸 때보다 방사능이 상당히 약했다. 이것은 전혀 부풀리지 않더라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왜 방사능의 세기가 방출원과 과녁을 놓은 탁자에 영향을 받을까? 아말디와 폰테코르보는 다음 날까지 측정을 계속했다. 토요일인 1934년 10월 20일까지도 이 이상한 현상은 사라지기를 거부했고, 그들은 페르미에게 이 수수께끼를 가져갔다.

 

 

 

.....

 

 

결과는 놀라웠다. 은의 방사능 세기를 파라핀이 없을 때보다 훨씬 강했고, 이제까지 연구팀이 측정한 어떤 경우보다도 더 강했다.

 파라핀의 효과를 확인한 뒤에, 페르미는 팀이 점심 식사를 하러 가야한다고 했다(중대한 실험 중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처음이었고, 마지막은 아니었다). 그는 늘 습관에 충실했지만, 이번 휴식은 오전에 목격한 이상한 효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오후 3시, 팀이 원기를 회복해서 멈췄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준비를 마치고 실험실로 돌아왔을 때, 페르미는 이 현상을 이해하고 그의 통찰을 나눌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페르미의 첫 번째 관찰은 파라핀에 탄화수소가 매우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파라핀의 많은 부분이 수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두 번째 관찰은 수소 핵이 중성자와 질량이 거의 똑같고, 다른 무거운 핵들은 질량이 두 배, 세배, 다섯 배 또는 심지어 수백 배가 된다는 것이었다. 중성자가 수소 원자에 부딪히면 속력이 크게 줄어든다.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 당구공을 생각하자. 당구공을 쳐서 다른 당구공을 때리면, 두 공 사이에 운동에너지가 나눠지고, 원래의 공은 과녁 공에 운동에너지를 나눠주어 속력이 느려지며, 과녁 공은 충돌의 영향을 상당히 이동한다. 이번에 탁구공으로 볼링공을 때린다고 하자. 볼링공은 거의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고, 탁구공의 에너지는 볼링공에 거의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탁구공이 볼링공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이다. 탁구공은 볼링공에 충돌하고도 거의 느려지지 않고, 충돌하기 전과 거의 같은 속력으로 튕겨 나온다.

 이와 비슷하게, 수소 함량이 많은 물질은 무거운 원소의  함량이 많은 물질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중성자를 느리게 한다. 그다음 질문은 이렇다. 왜 중성자를 느리게 하면 과녁 원소의 방사능이 커지는가? 이것이 점심시간 동안에 페르미가 깨달은 수수께끼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고속일 때 중성자는 핵 속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느린 중성자는 핵 속으로 들어가기도 쉽고, 내부에서 충돌하다가 거깅에서 멈출 확률도 높아서, 핵의 불안정성을 높여서 방사능을 일으킨다. 이것은 사실 에너지가 높은 중성자가 과녁의 방사능을 더 높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정반대였다.

 

 페르미의 아이디어는 파라핀 실험의 결과를 설명했다. 나무 탁자에는 대리석 탁자보다 수소 원자가 많으므로 아말디와 폰테코르보가 본 비정상적인 결과를 낳는다. 또한 파라핀처럼 수소가 많은 물질이 방출원과 과녁 사이에 놓이면, 훨씬 더 많은 중성자가 느려진다. 

 이 관찰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실온에서 수소가 더 많이 들어 있는 물질로 실험을 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구내에 물이 있었다. 로마 대학교 물리학과 건물 뒤뜰에는 금붕어 연못이 있었다. 출처가 의심스러운 이야기에 따르면, 그룹은 건물 밖으로 나가서 페르미가 연못의 물을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매체로 사용해서 실험을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물의 효과는 파라핀보다 더 강했다. 역사는 금붕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기록하지 않았다.

 

p190

 느린 중성자의 효과를 발견한 다음에, 그룹은 즉시 1934년 3월부터 했던 실험을 반복하면서 각각의 원소에 느린중성자를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쬐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았다. 1934년 말에 페르미는 그 효과를 이해했다고 확신했다. 1935년 2월에 그는 느린중성자 연구를 요약한 비교적 긴 논문을 왕립학회에 제출했다. 그는 또한 중성자와 핵의 충돌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종이에 계산하는 방식으로 원시적인 형태의 모의실험을 했는데, 나중에 로스앨러모스에서 1세대 컴퓨터를 사용해서 이 작업을 계속하게 된다. 이것은 중성자가 특정한 과녁을 때릴 때 물질을 뚫고 들어가는 각 단계에 대해서 확률에 따라 중성자의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그는 종이와 연필을 사용해서 모의실험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주어진 확률에 따른 결과의 분포를 분석할 수 있었다. 카지노에서 하는 도박처럼 우연이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중에 '몬테카를로' 방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은 페르미가 기여한 지속적으로 매우 널리 사용된 유용한 분석 방법 중 하나다. 묘하게도 페르미는 이 새로운 분석 방법이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전자 컴퓨터가 크게 발전해서 몬테카를로 모의실험이 훨씬 쉬워질 것을 페르미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단지 여러 해가 지난 뒤인 전쟁 중에 세그레에게 자기가 그런 계산을 해봤다고 말했을 뿐이다.

 1934년은 로마 학파 최괴의 해라고 할 수 있다. 페르미와 그의 팀은 7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에 부족한 재정 지원과 원시적인 장비만으로 방사능과 원자핵을 탐구했다. 그들의 장비는 분명히 버클리의 로런스 팀이 사용할 수 있는 정도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격하는 중성자를 감속시키면 방사능이 더 많이 유도된다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들은 물리학계의 다른 연구팀들이 실험을 재현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상세한 데이터를 만들었다. 페르미는 실험 프로그램을 강력히 밀어붙여서 베를린, 파리, 버클리, 케임브리지를 비롯해서 모든 경쟁자에 앞서서 지속적인 중요성을 지닌 결과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5년쯤 뒤에 일어날 역사적인 드라마의 무대를 만들었고, 그는 이 드라마의 주역이 된다. 크게 보아 세계를 위해서는 다행스럽게도, 페르미나 그의 팀은 당시에는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성취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p198

 이제 로마의 물리학 연구는 더 이상 순수한 재미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물리학에서 순수한 재미를 찾았던 페르미였지만, 그때부터 적어도 10년 동안은 물리학이 순수한 즐거움일 수 없었다. 페르미 자신의 노력으로 제2차세계대전을 끝낸 뒤에도, 물리학은 다시는 초기의 순수한 즐거움이 되지 못했다.

 

p309

 아르곤 팀에 새로 들어온 사람 중에는 페르미의 비범한 능력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직접보지는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눈앞에서 페르미의 능력을 보고 당연히 감명을 받았다. 루이스 앨버레즈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1930년대 초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콤프턴의 제자로서 앨버레즈가 했던 연구는 페르미가 도착할 때쯤에는 시카고 대학교의 전설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학위를 받은 뒤에 시카고를 떠나 버클리의 로런스 팀에 들어가서 사이클로트론으로 중요한 실험을 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앨버레즈는 영국과 MIT에서 레이더 개발에 참여했고, 1943년 여름에 아르곤으로 와서는 CP-2에 기어오르면서 리비와 함께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인 새로운 계측 장치 설계와 제작 일을 했다.

 앨버레즈는 결코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페르미를 처음 만난 경험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특히 가치가 있다. 그는 아르곤 연구소의 카페테리아에서 페르미, 마셜 부부, 허버터 앤더슨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중성자가 엑스선과 비슷한 굴절 법칙을 따를 수도 있다는 점을 토론했다. 페르미가 엑스선 굴절의 정확한 공식을 기억할 수 없다고 마하자, 앨버레즈는 콤프턴과 앨리슨이 쓴 엑스선 회절에 관한 고전적인 교과서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앨버레즈는 옆방에 그 책이 있는 것을 봤다면서 자기가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페르미는 그런 수고를 할 필요 없다고 자기가 공식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앨버레즈는 페르미가 했던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콤프턴 밑에서 배우면서 나는 엑스선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 보았지만, 기본 원리에서 출발해서 굴절률 공식을 유도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엔리코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고전 전자기장 방정식을 칠판에 쓴 다음에 여섯 단계에 걸쳐 공식을 유도했다. 이 묘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엔리코가 책을 보면서 그래도 베껴 쓰듯이 일정한 속도로 한 줄 한 줄 써내려갔다는 것이다. 그날 밤에 나는 집에서 공식을 똑같이 유도해보았는데, 그 일은 꽤 재미있었다. 어떤 단계는 아주 쉬워서 내가 엔리코보다 더 빨리 유도할 수 있을 정도였고, 어떤 단계는 너무 어려워서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엔리코는 쉬운 단계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속도로 어려운 단계를 해냈다.

 

 두 사람은 나중에 좋은 친구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버클리로 돌아간 앨버레즈는 가끔 페르미에게 최근 졸업생을 버클리 대학교에 박사후연구원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페르미는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페르미를 처음 보는 미국의 젊은 물리학자들은 까다로운 문제를 척척 해결해내는 그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앨버레즈 세대의(페르미보다 약 10년쯤 젊은) 뛰어난 물리학자들은 하이젠베르크와 디랙 같은 페르미의 유럽 동료들과 가까이 있으면서 연구해본 적이 없었다. 이들과 가장 비슷한 살마으로, 1920년대 후반에 유럽 스타일의 이론물리학을 미국으로 가져온 버클리 대학교의 오펜하이머가 있었다. 양자론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 연구하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페르미를 직접 겪어본 미국의 젊은 물리학자들이 점점 많아졌고, 그들은 앨버레즈의 경외감을 공유했다.

 이러한 경외감은 젊은 세대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1954년에 열린 페르미의 추도식에서 새뮤얼 앨리슨은 핸퍼드행 기차에서 콤프턴이 페르미와 나눈 잡담을 회고했다. 그는 페르미에게 자기가 안데스산맥에서 우주선 연구를 할 때 시계가 잘 맞지 않았다고 말했고, "여기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고 결국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다"고 하면서 페르미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페르미는 곧바로 호주머니에서 연필, 종이, 계산자를 꺼내 들었고, 몇 분 뒤에 그 현상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계의 오차까지 추정했다. 콤프턴의 오랜 조력자였던 앨리슨은 콤프턴이 감탄하는 모습을 결코 잊어버릴 수 없었다.

 

p336

 파인먼은 페르미의 명성 따위에는 아무런 감명을 받지 못했지만, 계산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 때문에 이 이탈리아 이민자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러 해 뒤에 그는 페르미를 처음 만났던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는 그와 회의를 했는데, 그때 나는 어떤 계산을 해서 결과를 얻은 상태였다. 계산이 너무 정교해서 매우 어려웠다. 이런 일에 능숙했던 나는 언제나 계산에서 어떤 값이 나와야 하는지 알 수 있었고, 계산에서 왜 그런 값이 나오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너무 복잡해서 왜 그런 값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페르미에게 이런 문제를 풀고 있다고 말했고,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잠깐, 자네가 결과를 말해주기 전에, 내가 먼저 생각해보겠네. 이건 이런 식으로 될 것 같고(그가 옳았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이건 이렇게 될 거야. 그래서 이것이 완벽하게 분명한 설명이지."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는 나보다 열 배나 더 잘했다. 이 일은 나에게 큰 교훈이었다.

 

p338

 페르미는 노이만의 수학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몇 년 뒤에, 전쟁이 끝나고 로스앨러모스에서 여름 연구를 마치고 돌아온 페르미는 시카고 대학교 교수 클럽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동료들에게 노이만이 특히 까다로운 수학 문제를 거장의 솜씨로 풀어낸 이야기를 했다. 페르미의 젊은 동료 물리학자 코트니 라이트에 따르면, 페르미는 그가 이 문제를 풀 때 자신이 했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쟁기에 앉은 파리가 '우리가 밭을 갈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

 

p342

 추는 젊은 아내와 함께 주최한 파티에 페르미가 참석했던 일을 회상했다. 추는 둥글게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로 가위를 넘겨주는 파티 게임을 제안했다. 가위를 받은 사람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으면 가위를 접은 채로 건네주고, 다리를 꼬지 않았으면 가위를 벌린 채로 넘겨준다. 몇몇 사람들은 그 비밀을 알고 있었고, 나머지는 게임을 지켜보면서 추측으로 알아내야 했다. 가위가 여러 번 돌아갔지만 페르미는 규칙을 알아내지 못해서 안달했다. 규칙을 일찍 알아낸 라우라가 좌절감에 빠진 남편에게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페르미는 결국 너무 화가 나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아내와 함께 일찍 자리를 떠났다. 추는 당황했지만, 페르미는 이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 추는 시카고 대학교로 갔고, 페르미의 대학원생이 되었다.

 더 큰 파티에서는 스퀘어 댄스를 출 때도 있었는데, 페르미 가족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최초의 핵분열 무기의 퓨즈 장치를 개발한 물리학자 로버트 브로드의 부인 버니스는 이 기간 동안 자주 만났던 스퀘어 댄스 그룹을 이끈 사람 중 하나다. 나중에 그녀는 페르미 가족이 초보자를 가르치는 자리에 온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처음에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했는데, 복잡한 춤 동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조금 지나서 라우가와 넬라가 댄스에 동참했지만 엔리코는 여전히 움직임을 연구하면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목소리로 자기가 스퀘어 댄스에 합류할 준비가 되면 말해주겠다고 했는데, 춤을 자세히 보면서 동작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그가 내게 와서, 내가 직접 파트너가 되어준다면 끼어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스퀘어 댄스를 이끄는 커플이 되겠다는 것이었는데, 처음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거절할 수도 없었고, 그대로 음악이 시작되었다. 그는 정확한 박자로 나를 인도했고, 어떤 동작을 해야 언제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그때나 그 이후나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춤을 즐겼다고 말하지 않겠다. 가장 잘하는 사람들도 늘 실수를 하는데 그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긴장을 풀고 즐기라는 충고도 했다. 그는 관대하게 웃었지만, 나는 그가 발이 아니라 머리로 춤을 춘다는 것을 알았다.

 

 그도 결국에는 스퀘어 댄스를 즐기는 법을 익혔고, 아주 잘 익혀서 전쟁이 끝난뒤에 시카고 시절에 페르미 가족이 연 많은 파티에서 스퀘어 댄스는 붙박이 행사가 되었다.

 

p345

 이제 페르미는 임계점에 도달한 정확한 순간에 빠른중성자를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초기 중성자 공급 장치'를 설계하려고 했지만, 이런 시도는 폭탄의 물리학을 담당한 그룹의 책임자 로버트 바커를 난처하게 했다. 바커는 존경받는 실험가였고, 전쟁 뒤에도 길고 성공적인 경력을 쌓게 된다. 페르미와 바커는 서로 크게 존경했지만, 바커는 페르미가 조금 골칫거리가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페르미는 초기 중성자 공급 장치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지만, 바커가 보기에는 모두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페르미가 이 장치 때문에 바커의 속을 썩이기는 했지만 나중에도 둘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이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생각에 페르미는 자기가 그 아버지라고 불리게 될 이 엄청난 물건이 점점 더 거대한 무기가 되어가는 것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했던 듯 하다. 그는 그 점을 끔찍하게 걱정한 것 같다. (...) 그는 초기 중성자 공급 장치뿐만 아니라 전체 프로젝트에 대해 걱정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들여다볼 수 있는 일이 초기 중성자 공급 장치를 개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집중했고, 그 일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또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동작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는 온갖 것을 다 검토했고, 하루 뒤나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나 또는 베테를 붙들고 그 중성자 공급 방법이 왜 동작하지 않는지에 대해 새로운 이유를 대곤 했다.

 

 

 바커의 추측대로 페르미는 프로젝트의 엄청난 함의를 마침내 이해하고 문제 해결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방법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실제로 페르미가 완전한 연쇄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수의 중성자를 장치가 파괴되기 전에 방출시키는 일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쩔쩔맸을 수도 있다. 어쨌든, 바커와 오펜하이머는 1943년 말에서 1944년 초에 메사의 거주자로 도착한 닐스 보어와 그의 아들 오게 Auge Bohr 에게 이 일을 할당했다. 바커는 보어 부자의 설계를 페르미가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았고, 그가 옳았다. 덴마크의 부자는 며칠 동안 고심한 끝에 우아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페르미가 로마에서 사용했던 중성자 방출원을 공 모양으로 만든 이 장치는 "성게"라고 불렸고, 플루토늄 공 안쪽에 설치된 이 장치가 내폭의 엄청난 압력을 받으면 파괴되기 전에 중성자 10~100개를 방출한다. 이 정도의 중성자만으로도 플루토늄 구 전체에서 완전한 폭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우아한 해결책을 본 페르미는 그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p347

 독일과의 전쟁은 1945년 4월 말에 끝났다. 5월 2일에 독일 의사당 건물에 소련 국기가 내걸렸다. 연합군의 가장 중요한 유럽의 적을 실질적으로 물리쳤고, 이와 함께 하이젠베르크와 그의 동료들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사라졌다.

 제러미 번스타인이 결론적으로 보여주듯이, 독일은 핵무기를 만드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중수를 감속재로 사용한다는 최초의 결정으로 그들의 프로젝트는 시작하자마자 끝장이 날 운명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나중에 프로젝트를 지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듯이 말했지만, 오늘날 역사가들 사이의 합의는 이 설명이 얼마간 자기 변명이라고 본다. 덧붙여 독일인들이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하기로 했을 때, 그들이 사용한 흑연은 불순물이 너무 많아서 감속재로서의 성능이 크게 떨어졌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들은 우라늄의 임계질량을 매우 크게 잡았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유지되는 연쇄 반응조차 성취하지 못했다.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자 맨해튼 프로젝트의 본질이 크게 바뀌었다. 페르미를 포함해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많은 과학자가 보기에 이 프로젝트를 계속해야 할 정당성이 사라졌다. 최초의 핵무기를 만드는 경쟁에서 독일이 탈락했다. 미래를 내다볼 때, 일본이 원자폭탄을 가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속 연구소의 과학자들, 그중에서 특히 제임스 프랑크와 레오 실라르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진행을 늦추거나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고 보았고, 폭탄을 개발했다고 해도 일본에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로스앨러모스의 과학자들은 시카고의 과학자들의 동요가 커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일부는 이러한 불안감에 동조했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군부의 생각은 달랐다. 그로브스는 핵무기의 완성을 독려하려고 했고, 이 길이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는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며, 핵무기의 효율성을 평가해보고 싶어했다. 새로운 대통령 해리 트루먼 주변에 있는, 프로젝트를 잘 아는 소수의 인사들(가장 주목할 만한 사람은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 이었다)도 그로브스와 생각이 같았다. 취임하고 나서야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된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헨리 스팀슨 장과은 5월 말에 네 핵심 과학자, 아서 콤프턴, 페르미, 로런스, 오펜하이머를 워싱턴으로 불렀다. 그들은 핵무기 프로젝트 전체의 미래에 대해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조어을 담당하는 '임시 위원회'에 조언을 하게 되었다. 스팀슨이 위원장을 맡은 이 임시 위원회는 정부의 최고위급 민간 관료와 군부 지도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팀슨의 펜타곤 사무실에서 열린 이 회의는 아침 10시쯤 시작해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되었고, 오후 늦게 끝났다. 콤프턴은 나중에 회고록에서 이 모임에 대해 회상했다. 회의에서는 프로젝트의 현재 상황, 핵무기의 효과에 대한 추정,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사용한다면 언제 할 것인지, 소련에는 어떻게 알릴 것인지, 전쟁이 끝난 뒤의 비밀 유지 방법,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점심 식사 중에 콤프턴과 로런스가 일본의 정치와 군사 지도부를 초청해서 폭발 시범을 보이는 방안을 지지했다. 폭발 시험의 경험이 너무 극적이어서 일본인들이 재빨리 평화를 위한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있었다. 오펜하이머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는 폭탄을 일본에 떨어뜨리기를 원했다. 그는 저항하는 일본이 항복할 만큼 시범이 극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핵무기가 재래식 폭격보다 특히 더 비인간적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이미 도쿄를 포함한 일본의 대도시들이 폭격으로 초토화되었고, 약 20만 명이 죽었다.

 오펜하이머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회의에 참석한 정치 지도자들은 전쟁을 빨리 끝내거나 후속 침공을 쉽게 하거나 어떤 목적으로든 일본에 핵무기를 쓰는 쪽으로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그들의 의견상, 가장 빠른 방법은 군수품을 생산하는 일본의 주요 도시에 극적으로 폭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즉각적인 미래에 폭탄을 하나 또는 둘 정도만 만들 ㅅ 있는데, 폭탄 하나를 단순한 시범용으로 소모하는 것에 명확히 반대했다. 시범용으로 하나를 쓴다면 남은 무기가 단 하나뿐인데 일본 사람들이 시범을 보고도 기대했던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시범에서 폭탄이 불발이라도 되면 문제가 더 악화되리라.

 

 

 

 

 

......

 

 물론 가장 큰 아이러니는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그룹의 권고안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크의 보고서와 실라르드의 청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측근들은 정치적, 군사적 고려를 바탕으로 일본의 도시들에 무기를 사용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유일한 문제는 폭탄을 투하할 도시를 선정하는 일이었다. 젊을 때 일본을 여행한 스팀슨은 장엄한 문화 수도인 교토를 잠재적 타격 목표에서 제외했지만, 다른 모든 도시를 똑같이 대했다.

 

 과학자들은 1945년 7월과 8월에 이루어진 결정에 그들이 한 역할을 두고 오랫동안 애를 태웠다. 더 강하게 나갔어야 했을까? 더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했을까? 그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워싱턴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이러나 저러나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p360

 앨리슨도 나중에 그날(첫 핵실험의 날, 1945년 7월16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해 회상했다. 가는 길에 타이어가 터져서 앨리슨은 페르미를 남겨두고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가까운 정비소로 향했다. 그러나 앨리슨이 수리 장비를 구하기도 전에 페르미가 차를 몰고 쫓아왔다. 마침 지나가는 물리학자가 아르곤 가스통을 갖고 있어서, 바퀴에 아르곤 가스를 채웠다고 페르미가 말해주었다. 안전하지만 아주 비싼 기체를 자동차 바퀴에 넣는 일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p361

 1945년 7월 24일에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트루먼은 스탈린에게 새로운 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트루먼은 미국 쪽 통역관이나 이 일을 증언해줄 배석자도 없이 혼자 스탈린에게 말했다. 트루먼에 따르면 스탈린이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 소련 독재자는 대통령에게 축하를 전하면서 일본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을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스탈린은 트리니티(핵무기의 암호명)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파이얼스의 동료 클라우스 푹스가 소련에게 원자폭탄 개발에 관한 소식을 넘겨주고 있었고, 새로운 무기의 재료가 우라늄이 아니라 플루토늄이라는 정보도 그를 통해 소련으로 넘어갔다. 이 정보로 소련은 원자폭탄 개발을 몇 년 앞당길 수 있었다.

 

p405

 파인먼, 슈빙거, (신이치) 토모나가의 연구를 조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젊은 이론가 프리먼 다이슨에게도 페르미의 파이온-양성자 산란 연구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다이슨은 코넬 대학교의 조교수였고, 작은 그룹의 대학원생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들은 파이온-양성자 상호작용의 이론적 계산을 양자전기역학의 분석에 성공적으로 사용했던 기법으로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파이온-양성자 상호작용에 관련된 힘은 양자전기역학의 힘보다 훨씬 강하지만, 다이슨과 그의 학생들은 이 점을 중시하지 않고 계산해서 페르미가 시카고 사이클로트론으로 얻은 것과 꽤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그들은 몇 년에 걸친 연구로 이런 결과를 얻었고, 이것을 완성한 1953년 봄에 다이슨은 코넬에서 시카고까지 버스를 타고 페르미에게 결과를 보여주러 갔다.

 다이슨은 페르미에게 열정적으로 자기 연구를 보여주려고 했다. 한동안 사담을 나누다가, 페르미가 다이슨의 결과를 보자고 했다. 다이슨은 50여 년이 지난 2004년에 페르미의 판단에 대해 회고했다. 페르미는 이렇게 말했다. "이론물리학 계산을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계산의 대상이 되는 과정에 대한 명료한 물리학적 그림(모델)이 있어야 해. 또 다른 방법은, 상세하고 자기충족적인 수학적 형식론이 있어야 하지. 자네의 연구에는 둘 다 없군."

 

 다이슨은 깜짝 놀라서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했다. 페르미는 다이슨이 사용한 수학적 기법이 풀려고 하는 문제에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가 자신의 결과가 페르미의 1951~1952년 실험에서 측정한 값에 매우 가깝다고 반박하자, 페르미는 다이슨의 계산에는 임의적인 매개 변수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페르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친구 노이만은 매개 변수가 넷이면 코끼리도 키워 맞출 수 있고, 다섯이면 코끼리가 코를 흔들게 할 수도 있다고 했지." 이 말을 듣고 다이슨은 코넬로 돌아가서 몇 년에 걸친 연구 결과가 페르미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슬픈 소식을 학생들에게 전했다.

 다이슨은 이 일을 회상하면서 쓰라려하기보다는 막다른 골목인 줄 모르고 계속 달려가는 시간 낭비를 막아준 페르미에게 감사해했다.

 

 "50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우리는 분명히 페르미가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한 힘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발견은 쿼크였다. 중간자와 양성자는 쿼크를 담는 작은 자루이다. 머레이 겔만이 쿼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강한 힘에 대한 어떤 이론도 적합하지 못했다. 페르미는 쿼크에 대해 전혀 몰랐고, 쿼크가 발견되기 전에 죽었다. 그러나 그는 1950년대의 중간자 이론에 뭔가 핵심적인 것이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리고 이론과 실험의 불일치가 아니라 페르미의 직관이, 나와 학생들이 막다른 골목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p453

 노벨상 수상자가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에게 준 영향을 연구한 사회학자 해리엇 저커먼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페르미가 독보적이라고 지적한다. 페르미에게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이 결론은 더 확실해진다. 그의 직계 학생 중에서 다섯 사람(체임벌린, 프리드먼, 리, 세그레, 스타인버거)이 노벨상을 받았다. 크로닌과 양도 노벨상을 받았는데, 페르미의 공식적인 제자는 아니지만 둘 다 페르미에게 받은 영향을 인정했다. 다른 많은 사람도 물리학 분야에서 유명해졌고, 중요한 경력을 쌓았다. 이것은 놀라운 기록이고, 조머펠트와 러더퍼드 정도만 여기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밸런타인 텔레그디는 시카고 시절 페르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교육이었다고 평가했다. 그가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p468

 울람은 메트로폴리스와 함께 갔던 마지막 방문 뒤에, 눈물을 흘리면서 소크라테스가 죽었을 때 플라톤이 했던 말을 메트로폴리스에게 했다. "이제 가장 현명한 사람이 죽는다."

 

p469

 그의 두 친구 찬드라세카르와 울람은 페르미의 죽음과 페르미의 위대한 친구 존 폰 노이만이 2년이 조금 지난 뒤에 똑같이 53세에 맞이한 죽음을 비교하는 긴 글을 썼다. 노이만은 자기의 뛰어난 수학적 정신이 죽음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노이만은 유대교를 따르지 않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어하는 약혼녀를 위해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노이만은 카톨릭 신앙을 편안함과 위안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지만, 카톨릭은 그에게 게 둘 다 제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비해 페르미는 드문 평정심으로 자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대개는 현실적으로 얼마간 비판적이었던 평소의 인생관 속에서 받아들였다. 페르미에게는 과학이 종교의 기능을 완전히 대신했다. 그는 살았던 것과 똑같이 죽었으며,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사색을 할 필요가 없었다. 페르미로서는 자기의 삶은 그의 비범한 정신이 꺼지는 순간에 끝나지만, 그의 업적은 계속 살아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다.

 

p473

 전체 경력을 뒤돌아볼 때 페르미는 몇 안 되는 사람만을 동료로 인정했고, 그들은 주로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현대물리학을 창시한 유럽 학자들이었다. 페르미를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반열에 두기는 어렵겠지만, 페르미는 스스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확신했다. 이것은 거만함이 전혀 섞이지 않은, 자기의 능력에 대한 건전한 판단이었다. 보른과 슈뢰딩거는 나이가 더 많았지만 페르미의 동료였고,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위그너, 베테, 디랙, 파울리, 그리고 어쩌면 텔러도 동료였다. 노이만은 확실히 동료였고, 울람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들이 페르미가 자기와 견줄 만하다고 여긴 사람들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이 그룹이 아니었고, 로런스도 마찬가지였다. 라비나 펠릭스 블로흐도 이 그룹에 들어갈 거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엘비레스, 겔만, 파인만 같은 사람들도 물리학에서 한 획을 그었지만 그들은 다음 세대였다.

 

현직 약사가 쓴 재밋는 약 이야기. 후속작인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를 먼저 보고 나서, 

이전작인 이 책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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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

 사람은 엽산 Vitamin B9을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해 잎이 무성한 채소, 간, 효모, 밀, 쇠고기 같은 식품을 먹어서 보충한다. 하지만 세균은 스스로 엽산을 만들 수 있다. 세균은 파라아미노벤조산PABA을 원료로 엽산을 만드는데, 설파제가 PABA와 구조가 유사하다. 설파제가 엽산을 만드는 세균의 효소에 결합하면,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엽산을 못 만들어서 세균이 죽는다.

 설파닐아마이드는 에탄올에 녹지 않아서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는 시럽이나 액상으로 만들 수 없었다.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설파제가 다이에틸렌 클라이콜 Diethylene glycol 에 녹는다는 것을 알아내 딸기향이 나는 시럽제로 만들ㅇㅆ다. 당시에는 규정이 엄격하지 않아 독성검사와 임상시험 없이 발매되었고, 약은 즉시 영업사원들에 의해 병원과 약국에 공급되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시럽제를 먹은 아이 107명이 사망한 거서이다. 사망한 아이들을 검사해보니 신장이 두 배로 커져 있었다. 신장 독성이 원인이었다. 시럽 개발자는 경찰이 오기 전 권총 자살을 하고 말았다.

 원인은 설파제가 아니라 다이에틸렌 글라이콜이었다. 이 용매가 신장을 망가뜨렸다. 이 사태로 인해 1938년 미국은 FDA 규제 법안을 발표해, 모드 의약품은 독성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시중에 팔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안전성이 강화된 미국 의약제도는 1961년 유럽에서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사고를 막는 초석이 되었다.

 

p54. 슈퍼세균의 반격

 

 항생제 덕분에 인류는 세균이 일으키는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치명적인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인간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최근의 일이다. 항생제는 감염증을 치료해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무분별한 사용으로 예기치 못한 역풍을 만났다. 슈퍼세균이 등장한 것이다.

 슈퍼세균이란 항생제 오남용으로 세균이 내성을 갖게 되면서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할 수 없는 균을 말한다. 의학용어로는 다약제 내성제균 multi drug resistant bacteria 으로 정의한다.

 1960년대에 항생제 메티실린 Methicillin 에 내성을 가진 세균(MRSA, 메티실린 내성 황생포도상구균)이 나왔다 이 내성균은 반코마이신 Vancomycin 이 나와 잡았다. 1980년대 말 반코마이신 내성균 VRE 이 나왔고, 1990년대 중반에는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VRSA 이 발견되었다. 아직은 VRSA균이 세계적으로 창궐하지 않지만, 위험을 예방하고자 반코마이신 처방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다행히 카바페넴 Cabapenem 이 1990년대 개발되어 반코마이신 내성균을 박멸할 수 있었다.

 카바페넴은 VRE균이나 VRSA균 같은 중증 세균 감염 치료에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카바페넴 항생제 사용이 늘면서 병원 감염의 흔한 원인균인 녹농균과 아시네토박터 Acinetobacter 균에서 카바페넴 내성률이 높아졌다. 이제는 카바페넴을 무력화시키는 장내 세균이 미국과 유럽에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내성 유전자를 가진 세균이 우리나라에도 이미 들어왔다. 초기에는 일부 병원이나 특정 지역에서 발견되었지만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카바페넴 내성균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인류가 보유한 마지막 카드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1년에 70만 명이 내성균 감염으로 사망한다. 2050년이 되면 1,000만 명 정도가 약제 내성으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생제 내성균이 인류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는 10년 동안 3,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게 개발한 항생제가 시장에 나와도 3~4년 내로 내성이 생기기 일쑤다. 문제는 제약회사가 어렵게 약을 개발해도 항생제는 치료 기간이 1~2주로 아주 짧다는 게 문제다. 혈압약이나 당뇨약처럼 꾸준히 먹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 사용하고 끝내기에 지속적인 수익이 되지 않는다. 제약회사들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꺼리는 이유다. 최후의 사태를 대비해 비축하는 항생제는 기존 항생제가 모두 듣지 않는 환자에게만 사용하기 때문에 처방될 기회가 적다.

 2000년 의약 분업을 도입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항생제의 오남용 근절이었다. 항생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처방을 받아야만 복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항생제를 처방받으면 반드시 마지막 한 알까지 연속적으로 먹어야 한다. 항생제 복용을 자의적으로 중단하면 정상 세균들에게 내성을 일으키는 기회를 준다.

 슈퍼세균은 치료가 어렵기에 예방이 최선이다. 불필요한 항생제 복용을 피하고 손 씻기를 잘하는 등 개인위생 관리가 중요하다. 더불어 국가적 차원의 새로운 항생제 개발로 슈퍼세균을 잡는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균과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p131

 스코틀랜드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프슨 James Simpson(1811~1870)은 우연히 클로로폼이 마취작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클로로폼은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 Justus von Liebig(1803~1873)가 1831년에 처음 합성한 물질이다. 에테르보다 마취 속도가 빠르고 인화성이 적다. 심프슨은 클로로폼으로 임신부를 마취시킨 다음 출산 수술을 했는데, 고통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종교계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신앙심 깊은 신자들이 성경 창세기 3장 16절을 가지고 심프슨을 공격했다.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하나님이 여자에게 출산의 고통을 더했는데, 클로로폼이 통증을 줄여 사탄의 도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출산의 고통을 통해 산모가 아이에게 헌신하는 모성애가 자라고 믿음이 강해진다고 믿었다. 따라서 클로로폼으로 산고를 줄이는 것은 신의 명령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이었다. 심프슨은 창세기 2장 21절로 대응했다. 하나님이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해서 갈빗대를 떼어내는 최초의 외과수술을 할 대 아담에게 깊은 잠을 자게 했다는 말로써 클로로폼 사용의 정당성을 펼폈다. 논란이 지속되다가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1853년 레오폴드 왕자와 1857년 비어트리스 공주의 출산 때 클로로폼으로 마취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빠르게 보급되었다.

 

p142. 수면마취 3총사

 

 케타민 Ketamine, 프로포폴, 미다졸람 Midazolam 은 간단한 수술을 할 때 사용하는 전신 마취제다. 이들을 수면마취 3총사라고 한다. 주사하면 빨리 잠이 들고 수면에서 깨는 시간도 빨라, 성형수술이나 내시경에 많이 사용한다. 그렇지만 환각을 일으키기도 해서 오남용되는 약이다.

 1962년 나온 케타민은 흰색 가루약으로 냄새가 없다. 수면을 유도해 치과 치료, 분만, 어린이 마취에 사용한다. 일반 마취제와 달리 뇌에 강하게 작용해 혈압이 올라가고 맥박이 빨라지는 특징이 있다. 환각작용이 있어 미국 클럽에서 마약으로 쓰기도 한다. 서울 강남에서도 속칭 '스페셜 케이 Special K' 라고 불리며 마약으로 쓰인다. LSD보다 효과가 강해 주사하면 30~45분, 코로 흡입하면 45~60분 동안 효과가 지속된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정신이 몽롱해지고 수면을 유도해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분류한다.

 1983년에 나온 프로포폴은 불안감을 없애면서 편안하게 잠들게 한다. 정맥주사하면 1분 안에 마취되고 약을 끊으면 2분 이내에 의식이 돌아온다. 마취에서 깨어나도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움 같은 증상이 거의 없다. 내시경과 성형수술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마취제다. 하지만 프로포폴을 맞으면 피로감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져 환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어 중독자가 많다 수면마취제임에도 마약류로 지정되었다.

 1976년 출시된 미다졸람은 주사 후 5분 정도 지나야 잠이 들어 수면 유도 시간이 느리다. 잠이 들면 15~80분 정도 수면이 유지된다. 근육주사도 가능하지만 보통 위내시경 검사 전에 정맥에 주사한다. 미다졸람은 수면, 불안 해소, 최면 등의 효과가 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당일 진료받는 외래환자 수술은 부드럽고 빠른 회복이 중요하다. 수면내시경 같은 짧은 마취에는 미다졸람이 좋다. 프로포폴 남용이 사회문제가 되자, 일부 성형외과는 프로포폴을 사용하지 않고, 환각 작용이 덜한 미다졸람을 사용한다고 광고한다.

 마취제 개발은 인류를 통증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남용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따라서 세 살 이하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전신 마취제를 반복 사용하거나 3시간 이상 장시간 쓰는 것은 피해야 한다. 어린이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p157

 보틀리눔톡신 Botulinum Toxin 은 상한 통조림에서 생기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 Clostridium Botulinum 세균이 만드는 독소다. 보툴리놈톡신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주요 물질로, 중독되면 호흡근 마비를 일으켜 사망할 수 있다.

 어른과 다르게 첫돌이 안 된 갓난아기는 면역력이 낮아 클로스트리디움 세균이 매우 위험하다. 이 세균이 아기의 장내에서 증식해 독소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꿀에는 클로스트리디움 세균이 있는 경우가 많아 아기에게 먹이는 것은 금기다. 보툴리눔톡신 중동이 영아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 꿀 속에 있는 보툴리눔균은 열에 강해 100℃에서 6시간 이상 가열해야 죽는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균을 없애기가 매우 어렵다.

 보툴리눔톡신은 1970년대 후반, 사시 치료에 처음 사용되었다. 치사량의 1,000분의 1 정도의 양을 주사하면 신경세포의 활동이 적당히 억제된다. 그러면 눈 근육이 마비되어 사시의 비정상적인 운동이 멈춘다. 보툴리눔톡신의 특징을 이용해 1989년 보톡스가 나왔다. 극소량의 보툴리눔톡신을 사람에게 주사하면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막아 근육이 퍼진다. 얼굴의 주름을 없애는 용도로 사용하면서 독이 약이 되었다.

 

p161. 베카론 살인사건

 

 베카론 Vecuronium은 수술에 사용하는 근이완제다. 호흡할 때 꼭 필요한 횡격막도 이완시키는 강력한 약으로, 수술하는 의료인만 취급하는 아주 특별한 약이다. 이런 베카론이 매스컴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2017년 3월 충남 당진에서 아내가 호흡 마비를 일으켰다며 남편이 119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구급대가 도착하니 의사였던 남편이 아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아내는 심정지로 사망했다. 병사로 처리되었던 이 사건을 아내의 언니가 경찰에 재조사를 요구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남편이 살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의대를 졸업한 남편은 병원을 운영하다 여러 불법을 저질러 폐업하고는 이혼을 한 상태였다. 그런 남편과 죽은 아내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나 재혼했고, 10억 원 가까운 재산을 가졌던 아내를 설득해 당진에 다시 성형외과를 개업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급기야 남편은 아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베카론 주사로 살인을 시도했으나 처음에는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에서 살인에 성공했다. 수면제로 아내를 잠들게 한 뒤 주사기로 아내의 팔에 베카론을 주사한 다음 밖으로 나가 외출한 것처럼 위장하고 30분 뒤 집으로 돌아와 119에 신고했던 것이다. 그러고는 대원들이 출동했을 때, 태연히 아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연기를 했다.

 베카론을 투여하면 환자는 2~3분 안에 스스로 호흡이 불가능해져 목을 졸린 것처럼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심장이 멎는다. 그래서 베카론을 주사할 때는 인공호흡기나 안전장치가 준비된 상태에서만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사형집행에 사용하기도 한다. 베카론은 투여한 후 4~5시간 지나면 분해돼 흔적이 남지 않아 병원에서도 의심하지 못했다. 법원은 남편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살인 전 이미 한 차례 살인미수가 있었던 데다, 의사만 구할 수 있는 약을 이용해, 의사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23일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구매한 의약품 목록이 공개되었다.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베카론 주사제를 구매한 내용이 나왔다. 청와대는 응급처치용 약품이라고 해명했지만, 수술에만 사용하는 약을 왜 구매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수술용 외에는 다른 용도가 없는데도 사들인 이유가 궁금하다.

 베카론은 고위험 약물이다. 이렇게 위험한 약들은 훨씬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마약류처럼 관리할 방안이 필요하다. 사건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으로 베카론으로 인한 사고가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p176

 힘들 때 단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장에 탈이 나기도 한다. 전혀 별개인 것 같은 장과 뇌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장은 사람의 감정도 조절한다.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90%가 장에서 분비된다. 행복은 뇌에서 느끼지만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기분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이 모자라면 우울증이 생긴다.

 세로토닌은 장 속 신경세포의 일종인 장 크롬화 친화성 세포에서 합성된다. 세로토닌을 만드는 원료물질이 많아 크롬염에 노란색으로 염색되는 세포다. 세로토닌을 만드는 장은 제2의 뇌라고 할 수 있다. 세로토닌은 기분을 좋게 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우울증을 예방한다. 장 내부의 정보는 주변 신경세포에 전달돼 뇌로 간다. 장과 뇌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장-뇌 연결축'이라고 한다. 장과 뇌 사이에는 생체신호를 주고받는 축이 있다. 아직 장-뇌 연결축 간의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장내 물질 세로토닌은 신경계, 면역계, 내분비계 및 대사 체계를 통해 뇌에 영향을 미친다. 대장이 감정까지 조절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최근 들어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육류 소비량이 급증해 대장암 발생이 높아졌다. 장이 심하게 나빠진 것이다. 육식을 많이 하면 소화되고 남은 단백질 찌꺼기가 장을 통과하여 점막을 손상시킨다. 지속적인 자극으로 장세포가 변형되고 용종이 발생해 심하면 암이 된다. 대장에 서식하는 유산균은 대장균 같은 부패세균 수를 감소시켜 암 발생을 낮춘다. 암을 일으키는 효소를 감소시키고 젖산을 만들어 pH를 낮춰 유해균을 몰아낸다.

 대부분의 암처럼 대장암도 3기, 4기로 갈수록 완치가 어렵기에 예방이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아 암을 초기에 발견하고, 암이 될 수 있는 용종을 미리미리 제거해야 한다. 검사만 잘 받아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장암 사망률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다. 또한 식생활도 중요한데, 육식을 줄이고 신선한 채소에 고기를 싸서 먹으면 식이섬유가 장을 보호한다.

 

p178

 러일전쟁(1904-1905)은 조선을 차지하려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다. 전쟁은 랴오둥반도와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일어났다. 청일전쟁 후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1905)에는 일본이 랴오둥반도를 차지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그러자 일본의 중국 진출을 반대한 러시아, 프랑스, 독일 3국이 일본을 압박해(삼국 간섭) 랴오둥반도를 중국에 반환하게 만들었다. 그 후 1896년 러청밀약으로 랴오둥반도는 다시 러시아에 넘어갔는데, 러시아가 만주로 남하하는 것을 경계한 일본이 러시아와 맞붙게 되었다.

 전쟁은 랴오둥반도 남단 여순항에 있던 러시아 함대를 일본 함대가 공격하면서 일어났다. 인천에 상륙한 일본군은 한반도 전역을 차지하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를 침공했다. 1905년 랴오둥반도의 중심지 선양에서 대규모 전투가 일어났는데, 막대한 물자와 수십만 인력을 투입한 일본 육군에서 갑자기 배탈, 설사가 유행했다. 만주의 나쁜 수질이 일으킨 것이다. 일왕은 효과적인 정장, 지사제를 공모했다. 여러 제약회사가 앞다투어 응모했는데, 다이코 신약에서 1902년 개발한 약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이 약이 군인들의 배탈, 설사를 치료했다. 전쟁 후 러시아를 정벌한 약이라 하여 정로환征露丸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정로환의 주성분은 크레오소트다. 크레오소트는 숯을 태워 나오는 페놀계 혼합물의 일종이다. 살균력이 강해 장 속의 세균을 죽여 배탈, 설사를 멈추게 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도 배탈, 설사 환자가 많았는데 마땅한 치료약이 없어 고생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 당시 일본은 정로환을 가정상비약으로 가지고 있을 만큼 널리 보급되었다.

 동성제약 창업주는 정로환을 국내에서 생산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성분 표시를 보고 그대로 제조했으나 잘 안 되었다. 그는 다이코 신약에 기술 제휴를 의뢰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고민 끝에 은퇴한 다이코 신약의 전임 공장장을 찾아갔다. 70대 노인이었던 전임 공장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말했다. 노인은 뜻밖의 말을 했다. "나는 평생 일만 해왔고. 동경 유곽에 한 번 데려다주면 원하는 것을 주겠고." 1주일 후 유곽에서 나온 노인은 정로환 제조법이 자세히 적힌 문서를 건넸다.

 

p188

 우리나라에서는 백미를 먹어도 반찬으로 김치가 빠지지 않는다. 김치 속에 들어 있는 마늘이 티아민을 보충해주어 각기병에 걸리는 경우가 없었다. 요즘도 피곤하면 마늘 주사를 맞는 경우가 있는데, 주성분이 티아민이다.

 

p233. 좁은 혈관은 어떻게 해서 넓어지는가?

 

 니트로글리세린은 그 후 수십 년간 협심증 치료제로 사용되었지만 어떻게 혈관에 작용하는지는 몰랐다. 1977년에야 니트로글리세린이 인체에서 산화질소 NO 를 만들어 혈관을 확장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UCLA 약리학 교수 루이스 이그나로는 혈관 세포 속에서 산화질소가 나와 혈관을 넓혀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혈관 속의 산화질소는 수 초 안에 사라지는 불안정한 기체다. 산화질소는 세포, 조직, 장기 등 모든 인체 시스템에 신호를 보낸다. 

 산화질소이 발견은 획기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생체 내에 작용하는 기체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자동차 배기가스나 담배 연기 중에 들어 있는 공해 물질도 산화질소의 일종이다. 공기 중에 있을 때는 해롭지만 혈관에서는 아주 유익하다. 산화질소는 모든 혈관에 작용한다. 협심증, 동맥경화증, 심부전, 뇌졸증, 당뇨병, 발기부전 및 기타 혈관 합병증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

 산화질소는 1992년 과학 잡지 <시이언스>에 '올해의 분자'로 선정되었다. 이그나로는 1998년 산화질소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산화질소는 혈관 유연성을 높여 혈류를 개선한다. 산화질소가 부족하면 혈관이 손상되고 혈액덩어리가 생겨 혈관이 막힌다. 그러면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심장마비, 당뇨에 걸리기 쉽다. 뇌의 특정 부위에 산화질소가 결핍되면 치매나 알츠하이머에 잘 걸린다. 혈액순환은 모든 세포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기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 혈액순환이 잘 되려면 혈관이 튼튼해야 하는데, 혈관이 막히지 않으려면 산화질소가 필요하다. 산화질소의 발견 덕에 발기부전 치료제가 나올 수 있었다

 의료용 니트로글리세린은 아주 작은 흰색 알약이다. 심장에 통증을 느끼는 협심증이 있을 때는 입으로 삼키는 것이 아니라 혀 밑에 넣어 사용한다. 그러면 삼키는 것보다 효과가 신속히 나타난다. 혀밑 침을 통해 전신에 흡수되는데, 간을 거치지 않고 속도가 빨라 위급상황에 유용하다. 이런 약을 설하정이라 한다.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은 절대 삼키면 안되니다.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을 사용하면 협심증을 앓는 환자 가운데 75%가 3~5분 이내에, 15%는 5~15분 이내에 가슴통증이 가라앉는다. 그래도 흉통이 있으면 5분 후에 다시 투여하고, 다시 흉통이 오면 5분 후에 세 번째 투여한다. 15분 이내 최대 3회 투여해도 통증이 지속되면 즉시 응급실에 가야 한다. 심장에 있는 관상동맥이 심하게 좁아진 상태이므로 니트로글리세린만으로는 치료가 되지 않는 응급상황이다.

 산화질소는 건강한 식습관과 적절한 운동, 산화질소를 만드는 영양소 섭취를 통해 양을 늘릴 수 있다. 산화질소의 공급은 아미노산을 통하는데, 아르기닌과 시트룰린이 있다. 아르기닌은 단백질 분해로 생긴다. 그래서 질 좋은 단백질 섭취가 필요하다. 수박, 멜론 같은 과일에 많이 들어 있는 시트룰린도 좋다. 운동도 효과적인데 숨이 찰 만큼 유산소운동을 하면 산화질소의 발생을 증가시킨다.

 

 길을 물어, 선禪으로 나아간 기록 정도의 의미가 될 듯. 김미루라는 이름 자체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인 도올 김용옥 선생의 따님이기도 하다. 나도 도올 선생께서 강연 등에서 몇 번 언급을 해서 알게 되었다.

 책의 장르는 여행 에세이라고 볼 수 있지만, 관광이라기보다는 해당 지역의 문화를 깊이 체험해보는 내용이 많아서 인문학적인 관점이 많이 녹아있다(그래서 인문으로 분류했다).

 사막과 낙타, 그리고 유목민이라는 테마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몇년 간 중동, 인도, 몽골지역의 사막,낙타와 유목민을 포함한 원주민과의 생활의 경험을 해당 지역의 풍광을 담은 자신과 함께 전하고 있다.

 글의 스타일은 아버지인 도올 선생과 굉장히 많이 닮아있는데, 도올 선생이 감수를 해주셨거나 아니면 저자 본인이 아버지의 책을 많이 읽었거나 대화를 자주 나누다 보니 그런 글의 스타일을 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용 자체가 쉽게 접해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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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4

 레바논에서 레이시즘은 클라시즘 classism, 즉 계급주의와 매우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이 현상은 그 나라에 편재하는 외국인 가정부무역에서 유래되는 것인데, 이것은 내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노예무역 이외의 딴 것이 아니었다. 가정부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공인된 제도는 가정이라는 밀폐된 환경 속에서 자행되는 통제되지 않는 학대를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레바논이라는 나라의 인구가 겨우 500만밖에는 되지 않는데 외국에서 이주한 가정부가 20만 이상이나 된다(전체 인구의 4% 정도). 레바논의 상류, 중상류, 그리고 중류가정조차도 대부분이 에티오피아, 케냐,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지에서 가정부를 고용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적 관행 때문에 가장 저열한 사회적 신분을 특정한 외관이나 국적에 자동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스리랑칸 Sri Lankan"이라는 말은 곧 레바논 자곤jargon으로 "하녀"를 의미한다. 

 독자들은 내가 베이루트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어떤 취급을 받게 되었는지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누군가의 필리피노 하녀로서 심부름 나온 사람으로 즉각적으로 취급되었다. 매우 크고 모던한 한 식료품 가게에서 올리브를 사기 위해 나는 줄을 서고 있었다. 나는 두 늙은 백인 앞에 서있었는데, 나를 제키고 그들은 먼저 서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사람이 서부된 후에야 비로소 서브되었던 것이다. 계산대에 있는 노인은 나에게 마치 개에게 명령하듯이 그의 손으로 "기다려"하고 손짓할 뿐이었다. 내가 불만을 토로하자, 입에 손가락을 대면서 "쉿"할 뿐이었다. 명백한 줄의 순서를 어기는 행위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체험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의 단순한 외관 때문에 내가 나에게 던져지는 그토록 낯뜨거운 레이시즘을 체험한다는 것은 진실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동아시아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니었다. 나의 얼굴이 보통 아시아 사람보다 다크 스킨톤인데다가 눈이 크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레바논 사람들은 전형적인 일본인이나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을 더 못사는 나라로부터 온 까무잡잡한 가사노동자들로부터 구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나를 보면 좀 이색적이라고 칭찬 비슷한 말을 던지곤 하는데, 바로 이놈의 "이색적 외관"이 이 레바논 지역에서는 전적으로 핸디캪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위에서 보면 제키다, 핸디캪 과 같이 표준어와 약간 다른 표기법이 있는데 저자인 김미루 씨가 미국에서 출생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중학시절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간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표준어에 약해서 그럴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이 통나무 출판사를 통해서 나왔고, 아마도 아버지인 도올 선생이 이 책을 어느 정도는 감수를 했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면 이러한 표기법은 표준어를 잘못 썼거나 오기라기보다는 도올 선생의 평소 표기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도올 선생의 표기법은 간혹 독특한 바가 있다.)

 

 내가 피부가 좀 더 하얗고 눈이 옆으로 찢어지고 광대뼈가 불거졌다면 나는 돈 많은 일본관광객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레바논 사람들은 나를 공경스럽게 대했을 것이다. 내가 이러한 나의 체험을 말하자, 한 레바논 친구가 이렇게 디펜드하는 것이다 : "여기 사람들이 특별히 레이시스트라고 말할 것은 없지. 그들이 판단하는 것은 사회적 계급이야. 네가 부자처럼 보이면 사람들이 널 잘 대접할 거야." 나는 이 새로운 설을 입증하기 위하여, 머리꼭대기부터 발끝까지 백만불 여인처럼 치장을 화려하게 하고 밤에 나가보았다. 그러나 이 작전은 결코 먹히질 않았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빠를 갔는데, 아이디카드를 보자고 한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나 혼자만이 유색인종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줄곧, 내가 아무리 잘 못을 입더라도 나 혼자만 체크당하는 수모를 계속 당해야만 했다. 여러 번 나는 문간 경비 어깨들이 내 미국여권을 보자마자 그들의 태도를 180도 바꾸는 사태를 체험했다. 약자에게 비열하고 강자에게 비굴한 중동문화의 한 측면을 나는 강렬하게 체험했다. 종교문화는 결코 인간에게 보편주의를 선사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종교가 인간의 구원을 외치면서 인간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구원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동방의 인문주의가 오히려 더 보편주의적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매우 화가 났다. 그래서 이 가정부문제를 보다 깊이 탐구했다. 그리고 많은 이민자 가정부들이 그들을 고용한 가정에서 못 견디고 가출을 하게 되면 결국 길거리에서 매춘이나 천직에 불법고용되어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베이루트에는 가정부조달 에이전시가 많이 있다. 누구든지 가정부를 고용하고 싶으면 조달소에 나타나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 가정부를 2년계약으로 고용하는 데는 서류작성과 비행기표를 포함하여 대략 2,000불이 든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식모를 구하는 데는 대략 1,500불이 든다. 그러나 이 돈은 양국의 에이전트들이 다 먹는 것이며 가정부 본인과는 무관하다. 본인은 그 나라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신청할 뿐이다. 그리고 계약대로 가정부가 도착하면 매울 샐러리가 지급되는데, 에티오피아 여자에게는 200불, 방글라데시 여자에게는 150불, 필리핀 여자에게는 250불 등등의 가격이 매겨져 있다.

 그런데 이 소녀들이 공식기구를 통하여 돈거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녀를 고용한 패밀리가 전적으로 모든 관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가정부들의 여권과 서류를 고용주가 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월급조차도 고용주의 변덕에 따라 보류되기도 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외국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일체의 노동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제도는 무제한의 혹사와 학대를 허용한다. 가정부들의 자살이 흔치않게 보도된다. 소녀들이 가정으로부터 도망치면, 그들은 여권을 포함한 모든 서류를 상실하기 때문에, 매춘과 같은 불법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레바논 가정의 고용주들이 월급을 꼬박 주었는데도 가정부가 도망쳤다고 투정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러한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여 불만과 불행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단지 그 자리를 새로운 가정부로 대치할 뿐이다. 그들은 소비성 상품에 불과한 것이다. 가정부조달 에이전트들은 그들의 가정부에 대해 이런 광고를 써붙이곤 한다: "신중히 선택된 메이드, 우울증에 걸리지 않음."

 일인당 GDP가 1만 9천 불 정도 되는 나라, 그런데 불합리한 종교의 교리가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나라, 그리고 오랜 내전으로 국가조직의 통제력이 와해된 나라, 이러한 모든 정황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인간불평등의 부조리에 대하여 아무런 기준도 만들지 않고 있다는 무책임한 사실도 쉽게 이해가 간다. 우리 한국문명의 대체적인 개화의 방향이 세계문명의 기준에서 볼 때, 탁월한 정도正道를 지향해왔다는 사실도 비교론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기독교 가정에도 이미 2년 동안 일하고 있었던, 방글라데시에서 온 19살의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나Rina였다. 리나는 방글라데시의 어느 시골 작은 마을에서 살았는데, 아주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고 임신시킨 남자는 도망가버렸다. 그런데다가 설상가상 엄마가 세상을 떴다. 그래서 리나는 자기의 애기를 언니집에 맡겼고 자신은 양육비를 벌기 위해 에이전시에 취직을 부탁한 모양이다. 에이전시는 리나가 단 한마디의 아랍어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임의적으로 레바논에 배정했던 것이다. 리나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아주 작고 어여쁜 얼굴을 한 매우 조용한 소녀였다. 그녀는 항상 수심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녀와 감정을 소통하려고 접근하면 때때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매일 새벽 일찍부터 저녁식사 후 설거지 때까지 하루종일 일했다.

 그런데 나에게 그토록 잘해주는 패밀리의 엄마, 다시 말해서 리나의 보스조차도 끊임없이 그녀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그 집안의 아이들, 이미 성년이 된 아이들이었지만, 그들도 허파가 터질 듯이 리나의 이름을 불러댔다. 벗어놓은 양말이 없어졌다든가, 자기들이 제일 좋아하는 셔츠가 사라졌다든가 하면서, 물론 리나의 처지는 레바논의 대부분의 가정부의 처지보다는 더 좋은 상태인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나는 그녀가 로보트나 집안의 부속품처럼 취급되는 모습을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이 도무지 소화해내기 어려웠다.

 

 그녀는 결사적으로 휴식이 필요할 때는 꼭 장롱 하나차럼 생긴 작은 그녀의 방으로 숨어버리곤 했다. 레바논의 가옥에는 식모방이 그렇게 코딱지만 하게 설계되어 있다. 나에게 그토록 친절하고 관대한 엄마, 나를 한가족처럼 생각해준 고마운 그 엄마도 나에게 여러 번 리나에 관해 불평을 토로했다: "우리는 리나가 여기 오기까지 모든 비용을 댔고, 매달 월급도 꼬박꼬박 주었지. 리나는 매달 언니집으로 송금을 해. 그 돈은 방글라데시에서는 큰 돈이라고, 나는 리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지. 지금은 아럽어까지 알아들을 수 있어. 그런데도 리나는 너무 멍청해! 아직도 항상 실수를 저지르고,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모른단 말이야!" 언젠가 리나가 부엌 한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벽을 쳐다보고 밥을 먹고 있었다. 남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글다데시 집에서 먹는 것처럼 밥을 손으로 꾹꾹 눌러 입에 넣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패밀리의 엄마는 그녀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저것 좀 보라구! 쟤는 개처럼 먹고 있잖아!" 문화적 관습에 대한 근원적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이다. 상대주의의 관용이야말로 보편주의의 기본원칙이라는 것을 전혀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는 그 집에 존경받는 게스트였고, 주제넘게 주인의 인식체계를 교정할 수 있는 포지션에 있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주인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패밀리의 한 친구인 젊은 레바논 청년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리나는 참 운이 좋아! 이 패밀리는 나이스해. 리나를 때리지는 않으니까." 그 무의식적인 말인즉슨, 레바논에서 가정부에 대한 체벌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너무도 충격을 받아 공포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나에게 그 청년은 계속 말을 이었다: "레바논의 가정부 상황은 일반적으로 정말 좋지 않아! 많은 소녀들이 학대받고 있지. 예를 들면 우리집 옆의 패밀리가 얼마 전에 바캉스를 떠났어. 그런데 그들의 메이드를 음식과 물도 공급해주지 않고 방에 감금해버렸단 말야. 그래서 내가 매일 가서 창문으로 먹을 것을 공급해주었지."

 

 그 청년의 언어는 나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내가 그 잔학무도한 장면을 직접 목도하지 않았다는 것만이 나의 위안이었다. 아무튼, 리나의 정황을 쳐다보면서 나는 내가 오랫동안 되씹지 않았던 오래 전의 감정, 내 존재의 내면에 깊숙이 숨겨져 있었던 그런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내가 영어단어를 매일매일 외우면서, 계속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나날들의 추억이 나를 휘감았다. 언젠가 나를 놀리고 멍청하게 만드는 아메리칸 키드들보다 내가 더 훌륭한 인물이 되고야 말리라는 굳은 맹세가 생각난 것이다. 그때 나는 불과 13살이었다. 영어 한 단어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카운티에 홀몸으로 왔던 것이다.

 

 미국의 공립중학교의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좀 사악한 종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내 얼굴에 대고 웃거나 심술궃은 행동을 마구 해댔다. 내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아시아의 소녀라는 오직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나는 이모집에 머물렀는데, 나의 이종사촌의 한국계 친구들조차도 나를 매우 귀찮은 존재로 여겼다. 물론 나 자신이 세련되지 못했고, 분위기를 쉽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나와 함께 어울리는 것을 아주 불쾌하게 여겼다. 나는 "FOB"라고 놀림을 당했는데, 그것은 "fresh off the boat"라는 뜻이다. 배에서 갓 내린 세상 물정을 모르는 촌놈이라는 뜻이다. 아시아계 미국아이들도 나를 "포브"라고 놀려만 댔던 것이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아주 이방의 먼 땅에서 완벽하게 고독한 단독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 느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인자하기 그지없는 이모의 배려가 있었고 또 사촌들과 같이 잘 지냈지만, 베드에 들어가기 전에 거의 매일 밤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의 리나에 대한 동정심, 아니 공감의 폭이 각별했다. 불과 17살의 어린 나이에 모든 사람이 경멸하는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이국의 땅에, 홀몸으로 내팽겨쳐진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다.

 

 어느날, 나는 리나가 부엌에 혼자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재빨리 나는 나의 랩탑컴퓨터를 가져다가 유튜브를 눌렀다. 나는 "방글라뮤직"을 찾아, 물항아리를 나르는 전통적 시골여인들도 분장한 가수들이 노래부르는 비디오 하나를 클릭했다. 노래가 터져나오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의 리나처럼 환희에 찬 모습을 어느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질 못했다. 리나는 홍조를 띠며 흥분 속에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리나는 그 노래를 완벽하게 암송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야말로 리나가 2년만에 자기 모국에서 온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느껴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리나에게는 인터넷이나 텔레비젼을 보는 것이 일체 허용되질 않았다. 물론 스마트폰도 가지고 있질 못했을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셀폰도 허락되질 않았다. 주인의 입회 아래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지상통신선으로 집에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것도 제한된 시간범위 내에서. 뮤직비디오를 쳐다본 후에 리나는 그녀가 잘 알고 있는 또 하나의 방글라 비디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은 일종의 코미디쇼였다. 우리가 같이 그것을 쳐다보고 있는 한참중에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리나는 재빨리 컴퓨터로부터 멀어져갔고, 빨리 그것 좀 꺼달라고 손짓을 했다.

 그때로부터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면 리나에게 방글라 텔레비젼을 틀어주었다. 물론 누가 나타나기 전에 재빨리 끌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리나는 나에게 깊은 애정을 표시하는 표정을 지었다. 2년만에 처음으로 그녀는 한 인간으로부터 아무런 격 없는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그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인간의 관계가 왜 그렇게 왜곡되어야만 하는지, 칼릴 지브란의 심오하고 아름다운 레토릭도 이 예전자의 고향에서 공허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내가 리나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을 때, 그녀의 도톰한 눈망울에는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숫자가 적힌 종이 한 쪽지를 건네주었다. 아마도 그것은 방글라데시 고향에 있는 자기 연락처였을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 번호로 그녀와 연락하는데 실패했다. 국가번호도 그렇고 자릿수가 도무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2년 후에 나는 그녀가 결국 가출하고 말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리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중동의 빠리"라는 베이루트의 추억이나 모든 기획이 나의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멀어져만 갔다. 중동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흥분되고, 가장 열광적이고, 가장 고상하고, 가장 음식이 맛있는 곳처럼 느껴졌던 나의 환상은 이 가정부무역의 문제로 인하여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알고보면 중동의 어디에서나 벌어지고 있다. 예수시절부터 "돌로 쳐죽이기" 린치가 공공연한 율법으로 자행되고, 지금도 "명예살인"이 사회규범으로 인지되는 그런 분위기, 결국 구약적 세계관에서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은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손가?

 인류문명의 진보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나의 다음 목적지 요르단에서는 나는 필리피노 하녀로 취급되는 일은 없었다. 요르단이라는 나라는 최소한 그토록 뻔뻔스러운 레이시즘이 설치는 분위기에 예속된 그런 문명의 나라는 아니었다.

 

p207

 나는 비록 죽이는 첫장면을 놓쳤지만, 나머지 과정,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끌어내고, 자르고, 요리하는 과정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 아침용으로 작은 고기조각과 간조각이 양파와 더불어 볶아졌고, 빵과 함께 식탁에 올려졌다. 점심과 저녁용으로는 뼈있는 고깃덩어리가 큰 통에 넣어지고 장작불에 몇시간 동안 계속 삶아졌다. 이때 들어가는 전통적 요르단 조미료는 "자미드jameed"라는 것인데 염소젖에서 얻은 치즈를 태양에 말린 것이다. 나는 이 전과정엣 참다운 베두인 삶을 느낄 수 있었고, 상품화된 치즈와 깡통채소에 실망한 후인지라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이날 찍은 비디오는 염소머리가 분해되고 창자가 꺼내어져 요리되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뉴욕갤러리에서 사진들과 함께 전시되었다. 

 많은 관객들, 특히 고상함을 자랑하는 한국부인들이 이런 살육장면은 전시장에서 안틀면 좋겠다고 나에게 항의하는 것이다. 교육상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비디오를 보면 아흐마드의 3살난 아들은 염소의 몸통 옆에서 아주 재미있게, 자연스럽게 놀고 있다. 베두인들은 걷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동물이 도추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난다. 이거은 우리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고기를 먹는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고기를 만드는 과정, 귀한 생명이 도축되는 과정, 귻이 축제의 일환으로 인식된다. 닭을 잡을 줄 모르면 닭을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에게 자식교육 운운하면서 항의한 부인들은 결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식들에게 고기를 많이 멕이는 여인들이다.

 고기를 먹는다고 하는 우리의 행위의 전체과정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교육적일까? 그것을 속이고 감추고, 오직 공장에서 생산된 최종적 고기상품만을 식탁에서 먹게만들고, 위생, 잔인, 살생, 백정놈들 운운하면서 고상한 삶의 가치를 구가하는 것이 교육적일까? 우리의 자녀들을 대량고기생산의 맹목적 소비자로 만드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아무 생각없이 불필요하게 과도하게 고기를 많이 먹는 병적인 인간들로 만드는 것이 이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더 바람직한 것일까? 수천년 지속되어온 "고기먹음"의 축제적 성격,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한, 생태순환적인 전과정을 인지하도록ㄱ 만드는 것이 더 정당하지 않을까? 과거에는 소곡기를 먹어도 일년에 한번이면 족했던 것이다. 인류 식생활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요청되는 시점인 것이다.

 

p234

 최상의 이미지는 최악의 환경에서 창조된다.

 

p239

 처음에는 소통의 부재를 언어장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랍어를 좀 할 수 있었고 또 바디 랭귀지를 습득하여 이야기할 수 있었다. 기실 내가 모르는 것은 그들의 언어가 아니라, 그들의 사유방식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추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주일이 지난 후로는, 나는 순결한 침묵에 매우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사유 그 자체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체류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나도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예술의 경지에 거의 도달핵가고 있었다.

 

p276

  맨해튼에서 보낸 2012년 가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나는 이때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다시 갈 것만을 구상하며 새로운 벤쳐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육신이 있는 곳에 나의 정신이 있질 않았다. 도시의 삶은 무의미하게만 보였다. 밖으로 외출할 때마다 왜 나는 꼭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 나를 실어야만 하는가? 트래픽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게 길 한복판에 갇혀 있을 땐, 왜 나는 택시미터에 올라가고만 있는 숫자를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파티룸에서 왜 나는 그들과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희희덕거리고만 있어야 하는가? 왜 철근콘크리트의 고층건물이 서있고, 아스팔트 깔린 대로들이 존재해야만 하는가? 왜 아는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만 하는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지간에 모두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너무 과도한 것뿐이었다. 내가 여행할 동안 향유할 수 없었던 사치들, 맛있는 해산물 요리라든가 끝없이 쏟아지는 더운물 샤워라든가 하는 것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화이트 데저트로 갈 꿈만 꾸고 있었다. 나의 작업이 진실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일단 벌려놓은 일은 마무리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p435

 내가 이 아이들에게 관해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된 것은, 이들이 항상 웃고 야외에서 즐겁게 논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 그리고 극히 단순한 오브젝트를 가지고 재미를 창조하면서 논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을 즐겁게 만드는 사태를 고안해낸다. 그리고 울거나 싸우거나 하는 법이 거의 없다. 도시문명의 아이들이 하루종일 울거나 찡얼거리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일례를 들자면, 어디서 볼펜 하나를 얻든지, 전등 하나를 얻든지 하면 그걸 가지고 수없는 종류의 오락을 끊임없이 지어내고 또 그것에 열중한다. 하룻밤은 나이가 좀 있는 소년이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의 손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놀이를 고안해냈다. 그 손바닥그림은 매우 정교했다. 나는 그가 손바닥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그 손바닥을 전등으로 비쳐주었는데 어두운 방에 모두가 옹기종기 웅크리고 있는 판에 집중된 스포트라이트가 생기고 또 그림이 그려지는 그 장면 자체가 매우 신비롭고 인간적인 훈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들은 그 그림을 그리는 소년이 여러 가지 패턴과 글자와 숫자를 쓰면서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비상하게 집중하고 웃곤 했다. 그 행위 자체가 위대한 연극이었다.

 낮에 밖에서 놀 때도 그러했다. 동네에는 단지 하나의 시소가 있을 뿐이었다. 새총처럼 쌍갈래 가지가 달려있는 나무 하나가 땅에 굳건히 박혀있다. 그리고 그 위로 기다란 통나무 하나가 횡으로 걸쳐져 있다. 이 시소는 결국 두 개의 큰 나무로 구성된 초라하기 그지없는 물건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나뭇가지에 매달려 끊임없이 다양한 놀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베키가 시소의 한 편에 남자아이들과 함께 타려고 하다가는 곧 땅에 떨어지곤 했다. 도시아이들 같으면 울면서 짜증을 낼 텐데, 베키는 웃고 또 웃으면서 천진난만하게 그곳에 기어이 올라타려는 노력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 순결한 시도와 웃음, 그리고 끊임없이 재미를 만들어낼 줄 아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문명사회에서 말하는 바 "교육"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인지, 더구나 "덕성교육, 인성교육"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깊은 반성을 자아낸다. 자연이 그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도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p493

 과거의 베두인들은 친구이든 낯선 이방인이든,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든 누구든지 텐트에 접근하기만 하면, 그들에게 마시고 먹을 것을 친절하게 제공했다. 사흘 동안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무조건 접대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손님들이 오면 염소 한 마리를 잡는 것이 관례였고, 전통적인 맛있는 커피를 달여 정성스럽게 대접했다. 모든 게스트는 커피를 세 컵까지는 달라고 할 수가 있었다. 세 컵 이상 달라는 게스트는 탐욕의 인간으로 낙인 찍혔다. 커피는 집안간의 원한문제 해결이라든가 결혼에 관해 합의할 때도 반드시 필수품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논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 가장 특이한 측면은 완벽하게 낯선 이방인일지라도, 본인이 얘기하지 않는 한, 도대체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질문을 제4일 까지는 던질 수 없었다. 오면 무조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한국인의 친절이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들의 친절이라는 것은 좀 제식적 · 율볍적 측면이 강하다. 그만큼 절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예지가 묻어나는 것이다.

 

 한 베두인 가정의 사례로 전해 내려오는 재미난 얘기가 있다. 한 가정에 남자가 왔는데 대접을 하다 보니 그가 자기 가족의 한 사람을 죽인 집안의 원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사람에게 염소 한 마리를 잡아 후대했고, 그들의 천막에서 3일 동안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제4일이 되는 날 그는 자기 갈길을 평온히 떠났다. 텐트의 주인은 자기 장남에게 곧 명한다. "따라가서 그를 죽이고 오라!"

 

 

 

저자의 직업은 약사이다. 약과 치료법에 대해 재밋게 쓰여진 책이다.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라는 전작과 이어지는 내용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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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는 이듬해 봄부터 전쟁에서 빠졌다. 독일은 러시아 전선에 투입했던 100만 명의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돌려 총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대량 살상 무기에 큰 타격을 입었다. 6월부터 유행한 스페인 독감에 당한 것이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복병과 미국의 참전으로 독일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1918~1920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앞당겨졌다. 종전 협상을 위해 파리에 온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마저 독감에 걸렸다. 윌슨은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에게 베르사유조약 체결을 위임했다. 가혹한 조건을 강요한 클레망소에 의해 독일은 식민지를 빼앗기고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야 했다. 단기간에 발생하는 엄청난 물가 상승 현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독일 경제는 파탄 났고 외세에 대한 분노가 커질 대로 커졌다.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상황에서 등장한 나치즘과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p28

 박쥐는 포유류 가운데 유일하게 날아다니는 동물이면서 군집 생활을 한다. 박쥐가 날개로 난다고 생각하지만, 해부학적으로 날개 부위는 '앞발'이다. 박쥐는 앞발의 피부 막으로 날아다닌다. 박쥐에 있는 바이러스는 137종이나 된다. 그중 사람에게 감염되는 인수공통 바이러스는 61종이다. 사람과 대다수 동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물질 인터페론을 생성해 대항하지만, 박쥐는 평소에도 인터페론을 만든다. 그래서 많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 특이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밤에 최대 350km 이상 비행하며 거의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는 박쥐는 체온이 40℃ 이상으로 다른 포유류에 비해 높다. 체온이 높으면 신진대사가 활발하고 면역력이 강해져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 박쥐는 바이러스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공존해 살아간다.

 

p29

 가금류나 돼지가 야생조류, 즉 철새의 분변으로 오염된 물을 마시면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들어가 증식한다. 조류독감에 걸린 가금류는 금방 죽지만, 돼지는 죽지 않고 오래 살아서 바이러스가 서로 섞인다. 여기에 돼지를 가까이에서 키우는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혼합된다. 돼지는 상부 호흡기에 조류에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용체와 사람에게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용체 모두를 가지고 있다. 즉 조류 인플루엔자도 걸리고 사람 인플루엔자도 걸려 바이러스가 동시에 섞이면 새로운 변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조류,돼지,사람 바이러스 유전자가 돼지 몸속에서 섞여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드는데, 이런 과정을 유전자 재편성이라고 한다.

 

p62. 오바마 정부의 딜레마 사후피임약

 매일 정해진 시간에 1정씩 먹어 임신을 예방하는 사전피임약과 달리, 사후 피임약은 성관계 뒤에 먹는다. 2002년 시판된 72시간(3일) 안에 먹는 약뿐 아니라 지금은 120시간(5일) 안에 복용하는 약도 나와 있다. 12시간 이내에 복용하면 90% 이상 피임 성공률이 나오고 24시간 이내는 약 80%, 72시간 이내는 60%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사전 피임약 성분은 2종류(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인데 반해, 사후 피임약은 단일성분(프로게스테론)이다. 3일 안에 먹는 약은 레보노르게스트렐(상품명 노레보원, 포스티노원), 5일 안에 먹는 약은 울리프리스탈(상품명 엘라원)이 있는데 고농도의 프로게스테론이 들어 있다. 2세대 피임약에서 레보노르게스트렐이 100ug 혹은 150ug이 있는데, 사후피임약은 1,500ug으로 10배 정도 양이 많다.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 가능하며, 월경주기 어느 때라도 사용할 수 있다. 복용 후 3시간 이내 구토하면, 바로 1정을 추가로 복용한다. 사후피임약은 쉽게 구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처방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의사 단체, 약 자체를 죄악시하는 종교 단체에 의해 종종 논란거리가 된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정부 때 큰 정치적 이슈였다.

 1999년 미국에서 이스라엘 제약회사 테바가 사후피임약 플랜 B를 출시했다. 처음에는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2001년부터 여성 단체는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과학자들은 안전성이 확보되었으므로 일반의약품으로 판매해도 문제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수적인 공화당 부시 정부는 응하지 않았고 2006년에 와서야 18세 이상만 처방 없이 살 수 있도록 바꾸었다. 그러다 2009년 오바마 정부는 17세 이상으로 나이를 낮췄다.

 2011년이 되어서야 미국 FDA는 "나이 제한을 없애고 플랜 B를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캐슬린 시벨리우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를 거부했다. 시벨리우스 장관은 11세 소녀도 10%는 임신할 수 있는데, 플랜 B의 안전성이 어린 여성에게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FDA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므로 장관이 결정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에 따라 내리는 FDA의 결정을 장관이 뒤집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 민주당은 진보적이이서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편인데,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의외였다. 여기에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임을 원했다. 17세 이상이라는 나이 제한을 유지함으로써 뜨거운 이슈였던 플랜 B 논란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나이 제한이 풀리면 부모 몰래 아이들이 플랜 B를 남용하게 된다는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논란은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다. 2013년 연방법원은 "시벨리우스 장관의 결정은 과학보다 정치를 앞세운 것이었다"며 플랜 B에 대한 나이 제한을 철폐하고 누구나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도록 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과학적 근거뿐 아니라 때로는 상식적 판단도 중요하다"며 버텼다. 오바마 정부는 나이 제한을 15세로 낮추는 것으로 타협하려 했지만, 법원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플랜 B는 2013년, 나이 제한 없이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약이 됐다.

 사후피임약은 응급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피임약 대용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몸에 무리를 줄 수 있어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사전피임약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다. 피임약은 광고만 보고 구입하기보다는 궁금한 것을 약사에게 문의하면 도움이 된다. 자궁 출혈, 혈전 위험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호르몬 종류와 함량에 따라 선택해서 복용하는 것이 유익하다.

 

p81

 남녀의 특징을 한 몸에 지닌 사람을 간성 혹은 인터섹스라고 한다. 염색체, 생식샘, 성호르몬, 성기 등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 정의와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성별 구분이 모호한 사람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사방지와 임성구지이다.

 세조 8년(1462), 왕은 당시 실세였던 역술가 이순지의 딸이 과부가 된 후 사방지라는 양성인兩性人 노비와 10년 동안 내연관계를 맺었다는 사헌부의 보고를 받았다. 사방지는 겉보기에는 여성이지만 남성 생식기를 가지고 있었다. 양반 자식으로 태어났던 사방지가 양성을 지닌 것을 보고 어머니는 여자 옷을 입히고 바느질을 가르치며 여자로 살도록 했다. 그러던 중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이 될 때 세조 편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방지 집안은 멸문되어 노비가 되었다. 사방지는 장성한 뒤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는데, 이때 이순지의 딸 이 씨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세종은 사방지를 불쌍히 여겨 벌을 내리지는 않았다. 대신 측근 이순지에게 처분을 맡겼다. 이순지는 사방지를 시골로 보냈다. 그렇지만 이 씨와 사방지의 관계는 계속되었다. 이순지가 죽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정승 한명회가 처벌을 주장하자 세조는 사방지를 관로비로 만들어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이로써 사방지와 이 씨의 관계도 끝나고 말았다.

 또 다른 예로 임성구지가 있다. 명종 3년(1548), 함경도 감사가 길주 지역에 사는 임성구지가 양의(남성과 여성 생식기)를 가져 시집도 가고 장가도 들었다고 보고했다. 처음에 여자로 살려고 시집갔지만, 첫날밤 그녀의 몸을 본 남편이 혼비백산했다. 새색시의 은밀한 부위에 생각지도 못한 남성의 성기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시집에서 쫓겨나온 임성구지는 남장을 했다. 남자 행세를 하면서 갈 곳 없이 떠돌다 마음 맞는 여자를 만나 장가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이중 행각은 얼마 후 들통이 났다. 관청에 끌려온 임성구지를 처리할 방법을 몰랐던 함경도 감사가 조정에 문의했다. 명종은 사방지 사례를 참고해 임성구지를 외진 곳으로 보내 다른 사람과 섞여 살지 못하게 했다.

 사방지와 임성구지처럼 남녀 생식기 모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양성구유 혹은 남녀한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아기가 이렇게 태어나면 주변에 숨기고 부모가 한 가지 성을 결정해 살아가기를 강요한다. 1950년대 미국에서도 이런 아이가 태어나면 병원에서 수술해 한쪽 성을 정해버렸다. 아이가 자라면 자신이 선택한 성이 아니라서 나중에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현상은 고대부터 드물게 있었는데, 신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나온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연못에서 수영하고 있을 때 호수의 요정 살마키스가 그를 유혹했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거부하자 살마키는 그의 몸을 칭칭 휘감은 후, 신에게 "우리 둘을 영원히 한 몸으로 만들어주세요"라고 빌었다. 그러자 둘은 남녀 양성을 가진 동체가 되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조각상을 보면 남녀 한 몸 모양인데, 그리스에서는 남녀 모두를 가졌다고 해서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녀의 성은 확실하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전체 인구의 1.7% 혹은 연구에 따라서는 0.018%가 간성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외부 생식기는 남성이지만 난소가 있거나, 외형은 여성이지만 잠복 고환이 있는 등 형태도 다양하다. 세메냐처럼 여성인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0.018%라 해도 현재 우리나라 5,100만 명 인구로 계산하면 9,000명이 넘는 사람이 간성이라는 의미다.

 2015년 국제연합은 간성 유아에 대한 생식기 수술 관행을 비판했다. 2017년 미국 휴먼 라이츠 워치 Human Rights Watch와 인터액트(간성 어린이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는 생식기 수술을 비난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미국 하원에 생식기 수술을 금지하라고 요구했다. 지금은 일방적으로 수술하지 않고 아이가 성장한 후 스스로 성을 선택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p252

 한때, 기생충은 박멸해야 하는 악이었지만 기생충이 거의 사라진 사회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이 늘어난 것이다. 1960~70년대는 위생상태가 나쁘고 상하수도 시설이 열악했다. 기생충이 창궐해서 대대적으로 퇴치했지만, 환경이 너무 깨끗해지자 과도한 면역반응이 일어났다.

 외부에서 들어온 기생충을 인체는 이물질로 인식한다. 면역세포가 기생충을 감시하며 관리하는 과정에서 면역체계가 강해졌는데, 이방인이었던 기생충이 갑자기 사라지자 혼란이 생겼다. 아토피, 천식, 비염같이 예전에는 드문 질환이 늘어났다. 3만 년 전 사람 몸속에서 회충이 발견될 만큼 사람과 기생충은 오랫동안 공생해왔다. 그래서 서로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균형을 이루며 살았다. 보기에는 흉측하지만 나름 기생하면서 면역을 튼튼하게 해준 공로가 있다.

 

 

 핵발전과 핵무기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핵물리학에 대한 설명이 전반부, 후반부는 핵발전과 핵무기의 기술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내용은 고등학교 수준 정도의 물리,화학적 기본지식만 가지고 있으면(아마도 그것도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이해할만한 내용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만도 않다. 저자가 J-PARC(Japan Proton Accelerator Research Complex, 일본 양성자 가속기 연구 복합센터)라는 고에너지 가속기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내용을 쉽게 설명할 뿐이지 내용 자체는 일반인이 쉽게 알지 못할만한 내용이다.

 원자력이라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입문서로서 추천할만한 내용이다.

 저자가 2019년에 핵병기(核兵器)라는 제목의 책을 내놨는데(아직 국내 미발매) 상당한 수준의 심화된 도서일 듯 해서 관심이 간다. 이것도 번역되서 나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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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7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아이오딘(요오드)를 마시시오!"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오딘-131은 이 반응처럼 우라늄-235의 핵분열 반응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까닭에 일정 기간 이상 가동된 원자로 안에 많이 있습니다.

 

       235U + n → (236U) → 103Y + 131I + 2n

 

 그리고 이 아이오딘-131은 베타선이라는 방사선을 방출하는 동위 원소(방사성 동위 원소)인데, 베타선은 알파선과 마찬가지로 내부 피폭의 영향이 큰 방사선입니다. 게다가 아이오딘은 화학적인 성질상 갑상선을 공격하기 때문에 위험하지요. 그런데 한편으로 천연에 존재하는 아이오딘의 대부분은 아이오딘-127이라는 방사선을 방출하지 않는 동위원소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미리 섭취해 갑상선에 충분히 축적되도록 만들면 방사성인 아이오딘-131을 흡입하더라도 갑상선에 쌓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아이오딘은 자원이 적은 나라로 알려진 일본의 귀중한 천연 자원입니다. 지하자원으로서는 세계 가채매장량(현재 확립된 기술을 사용해서 채산성을 확보하며 생산할 수 있는 양)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매장량이지요. 산출량도 세계 2위로, 그중 80퍼센트가 지바 현에서 채굴되고 있습니다. 미나미간토南關東 가스전田이라는 일본 최대의 가스전에서 채굴되고 있지요. 미나미간토 가스전은 지바 현과 도쿄에 걸쳐 있는 가스전으로 일본 국내 천연가스 매장량의 무려 90퍼센트를 차지하는 곳입니다만, 이 천연가스를 본격적으로 채굴하면 도쿄의 지반이 침하되어 도쿄가 괴멸되기 때문에 채굴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p93

 중성자의 속도가 느리면 원자핵이 쉽게 붙잡을 수 있지만 중성자의 속도가 빠르면 원자핵이 붙잡지 못해서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이 많아지지요. 중성자를 잡지 못하면 핵분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표5는 중성자의 대표적인 속도에 대한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기 쉬운 정도의 차이를 비교한 것입니다.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기 쉬운 정도는 '핵분열 단면적'이라고 부르는 값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중성자를 붙잡기 쉬운 정도뿐만 아니라 중성자를 붙잡았을 경우에 핵분열이 일어날 확률을 함께 나타내지요. 이 표를 보면 원자핵에 부딪히는 중성자의 속도에 따라 핵분열이 일어나는 비율이 상당히 달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이 이 점만을 생각해서 핵분열 반응을 효율적으로 실시하려 한다면 중성자의 속도가 느린 편이 좋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표5. 핵분열 단면적

중성자의 속도 핵분열 단면적
[m/sec] [x10^-28 m2]
2,200 585
20,000,000 1.2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면 질량 결손으로 방대한 에너지가 생기며 이것이 반응 후 물질의 운동 에너지가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중성자는 그 방대한 에너지를 받아 빠른 속도를 내지요. 그런데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할 때는 핵분열 반응으로 생겨난 이 중성자를 가지고 다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는 식의 연쇄 반응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서 연쇄 반응을 효율적으로 일으키기 위해서는 생겨난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린 아이나 젊은 사람들도 스마폰에 지나치게 노출되면 노안이 올 수 있다는 내용.

예방법과 대처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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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8

 스마트폰과 휴대전화가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을 다룬 학술논문이 전 세계적으로 만 건 이상 발표되었다. 나라에 따라서 언론이 광고주의 눈치를 보느라 이 문제를 되도록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지만, 2011년 WHO는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휴대전화를 '발암성을 지닌 유해 물릴'로 지정하기도 했다. 미국을 포함한 14개국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입증한 과학적 사실로 당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103

 눈에 핫팩을 하는 습관은 아주 좋다. 핫팩은 부작용도 없고 스마트폰 노안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바람직한 습관이다. 

 왜 핫팩을 하면 눈에 좋을까? 혈액순환이 좋아지거나 눈주위 근육에 쌓인 피로가 풀려서 일 수도 있고, 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핫팩을 추천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래위 속눈썹 뿌리 부분에는 속눈썹과 나란히 '마이봄선 Meibomian gland'이라는 분비샘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마이봄선은 지방을 분비하고 눈물 성분에 유분을 더한다. 또 유막을 형성해 눈알과 눈꺼풀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해주고, 눈물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준다. 마이봄선에서 분비되는 지질은 우리 눈에 필요한 천연 안약인 셈이다.

 그런데 마이봄선은 약간의 자극으로도 막힐 수 있다. 운 나쁘게 마이봄선에 세균이 침투하면 다래끼나 안구건조증, 안구 피로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평소 마이봄선이 막히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마이봄선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핫팩이다. 마이봄선의 지방이 녹아나는 온도는 약 40도이다. 욕조에 들어갔을 때 약간 뜨겁게 느껴지는 온도다.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수건을 목욕물에 적셔 눈 위에 올리면 마이봄선을 막고 있던 지방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꾸준히 핫팩을 하면 스마트폰 노안이 상당히 나아진다. 게다가 핫팩 덕분에 눈물이 덜 말라 안구건조증을 예방할 수도 있다.

 

불복종에 관하여(On Disobedience)중에서 4편의 에세이를 발췌했다. 번역이 매끄러워 이해하기 좋다.

특히 인류여 번성하라는 인본주의에 대한 헌사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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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리적 · 도덕적 문제로서의 불복종

 

p13

 자신의 양심에, 또 인본주의와 이성의 법칙에 복종하기 위해, 종교와 자유와 과학의 모든 순교자는 그들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자들에게 불복종해야 했다. 어떤 사람이 오로지 복종만 할 수 있고 불복종은 할 수 없다면 그는 노예다. 오로지 불복종만 할 수 있고 복종은 할 수 없다면 그는 반항꾼이다. 혁명가와 반항꾼은 다르다. 반항꾼은 분노와 실망, 억울함에 추동되어 행동할 뿐 신념이나 원칙의 이름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p18

 만약 어떤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시스템이 자유를 주창하면서 불복종을 억압한다면, 그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일 수 없다.

 

p19

 "감히 알고자 하라 sapere aude"는 원칙과 "모든 것을 의심하라 de omnibus est dubitandum"는 원칙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더욱 키워나가게 해주는 태도의 핵심적인 특징이었다.

 아돌프 아히히만은 우리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며,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그를 고발한 사람들이 제기한 바를 훨신 넘어서는 중요성을 가진다. 아히히만은 조직인組織人, organization man의 상징이다.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인간을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된, 소외된 alienated 관료의 상징이다. 그는 우리 모두의 상징이다. 우리는 아이히만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와 관련해 가장 무서운 사실은, 그가 저지른 일이 낱낱이 다 드러났고 심지어 그것을 본인 스스로 인정했는데도 그가 완전히 진심으로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같은 상황에 다시 처해진다면 분명히 그는 같은 짓을 다시 저지를 것이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조직인은 불복종의 역량을 잃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역사의 현 시점에, 의심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냐 문명의 종말이냐를 가를 모든 것일지 모른다.

 

 

2장. 예언자와 사제

 

p42

 하지만 과학이 삶에서 가치를 주는 순간들을 박탈한다면, 아무리 영리하고 정교하게 작동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을 절마의 길로 이끄는 것이며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것이다.

 

p50

 사람들 사이의 구분 중에 삶을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의 구분보다 더 뚜렷한 것은 없을 것이다. 죽음 애호는 인간만이 획득하는 특질이다. 인간은 지루함을 느끼게 될 수 있고 죽음을 사랑하게 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불능(성적 불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인 사람은 생을 창조할 수 없지만 생을 파괴함으로써 그것을 초월할 수는 있다. 삶 가운데서 죽음을 사랑하는 것은 궁극적인 도착증이다. 어떤 사람들은 진실로 죽음을 애호한다. 이들은 자신의 진짜 동기를 인식하지 못해서 자신의 야망이 생, 명예,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하지만, 실은 죽음을 애호하기 때문에 전쟁에 환호하고 전쟁을 촉진한다. 이런 사람은 아마 소수이겠지만,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을 내리지 않는 사람은 아주 많다. 이 선택에 직면했음으로 외면하기 위해 일상의 바쁨 속으로 숨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파괴를 환영하지는 않지만 생을 환영하지도 않는다. 전쟁에 열정적으로 반대하려면 꼭 필요한 생의 기쁨이 이들에게는 없다.

 

 

 

3장. 인류여 번성하라

 

p63

 오늘날 우리의 정치사상은 영적인 뿌리를 잃었고, 생활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 더 효율적인 정치 행정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로만 판단되는 편의적 방편의 문제가 됭ㅆ다. 정치사상은 인간의 심성과 열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뿌리를 잃고 공허한 껍데기가 되었고 편의에 따라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것이 되었다.

 

p66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는데, 실로 옳은 말이다. "모든 육체적, 정신적 감각은 이 모든 감각의 자기 소외에 의해, 즉 소유의 감각게 의해 잠식되었다.... 사적 소유는 우리를 너무나 멍청하고(생성의 능력에 있어서) 무력하게 만든 나머지 우리가 어떤 사물을 소유할 때만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자본의 형태로 존재할 때만,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소유했을 때만, 우리가 먹었을 때만, 우리가 마셨을 때만, 우리가 사용했을 때만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이 모든 부를 가지고서도 가난하다. 많이 소유하고는 있지만 우리의 존재가 너무나 하찮기 때문이다."

 

p70

 하지만 어떤 용어를 쓰든 옛 자본주의와 새 자본주의 사이에는 기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연대와 사랑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원칙, 인간의 의지와 비전과 계획이 아니라 비인격적 메커니즘인 시장이 사회의 삶을 조절해야 한다는 믿음 등이 그렇다. 자본주의는 사물(자본)을 삶(노동)보다 우위에 둔다. 권력은 행동이 아니라 소유에서 나온다.

 

p72

 마르크스주의적 형태와 그 밖의 많은 형태에서도 19세기 사회주의는 모든 이가 존엄한 인간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 물질적 조건을 만들려 했다. 자본이 노동을 이끌게 하기보다 노동이 자본의 방향을 설정하게 만들려 했다. 사회주의에서 노동과 자본은 단지 두 개의 경제적 범주가 아닝ㅆ다. 노동과 자본은 두 개의 원칙을 의미했다. 하나는 자본, 즉 축적된 사물, 소유의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 즉 삶과 인간의 힘, 존재하고 되어가는 것의 원칙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사물이 삶을 이끌고 소유가 존재보다 우위에 놓이며 과거가 현재를 이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관계를 뒤집고자 했다. 사회주의의 목적은 인간 해방이었다. 인간이 소외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다시 개인이 되기를, 인간이 동료 인간과, 또 자연과 새롭고 풍성하고 자생적인 관계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 사회주의의 목적은 인간이 자신을 묶은 속박과 비현실과 허구를 벗어버리고, 느끼고 사고할 수 있는 자신의 힘을 사용해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는 인간이 독립적이 되기를, 자신의 발로 설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그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를 자기 자신에게 의존할 때만", 그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사고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즉 세계와 맺는 모든 관계에서 전인격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개인성을 긍정할 때만",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자신의 개인성의 모든 장기와 기관들을 긍정하고 표현할 때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사회주의의 목적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융합이었다.

 

 

4장. 인본주의적 사회주의

 

p89

 현재의 중앙 집중적인 국가에서 완전하게 탈중심화된 사회 형태로 이행하려면 과도기가 필요하며 과도기에는 몇몇 중앙 계획과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러한 중앙 계획과 국가 개입이 관료주의를 심화하고 개인의 통합과 주도권을 약화하게 될 위험을 피하려면 1) 국가가 실질적으로 시민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하고, 2) 기업의 사회적, 정치적 권력이 깨뜨려져야 하며, 3) 탈중심적이고 자발적인 연합의 형태로 이뤄지는 모든 생산과 교역, 그리고 지역에서의 사회적, 문화적 활동들은 모두 (과도기가 끝난 다음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촉진되어야 한다.

 

p92

 탈중심화는 사회 전체의 삶을 규율하는 근본 원칙들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의사 결정을 소규모로 그리고 지역적인 수준에서 거주자의 손에 최대한 맡기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형태를 찾아내든 간에 (최면과 암시로 통제되는 로봇화된 대중이 아니라) 정보를 바탕으로 책임 있게 참여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과정으로서의 민주적 과정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 늘 본질적인 원칙이어야 한다.

 

 

 소설의 기본 구성은 중년 남성의 위기?를 하루키식으로 변주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파악하는 의미는, 국경의 남쪽은 일종의 파라다이스 혹은 오아시스를 의미하며, 태양의 서쪽은 사막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서는 사실 희망적인 부분은 거의 없어보이고, 아주 건조하다. 그것은 그것대로 하루키의 매력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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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

 이곳은 이미 새로운 세계이고, 일찍이 존재했던 세계로 통하는 배후의 문은 벌써 닫혀버렸다. 나는 이 새로운 나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어떻게든 나를 확립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p114

 우리는 이른바 운동권 세대로서,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전반에 거친 치열한 학원투쟁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였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았다.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건 전후 한 시기에 존재했던 이상주의를 배경으로 탐욕스럽게 살쪄가는 고도의, 보다 복잡하고 보다 세련된 자본주의의 논리에 맞서 주장했던 노(No)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인식했다. 그것은 전환기 사회의 격렬한 발열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세계는 이미, 더욱 고도의 자본주의 논리에 의하여 성립된 세계였다. 결국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세계에 꿀꺽 집어삼켜지고 만 것이다.

 

p226

 "하지메, 사진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그건 단지 그림자 같은 거야. 진짜 나는 다른 곳에 있어. 그런 건 사진에는 나오지 않아."

 

p243

 타인을 위해서 올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나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이었고, 나 자신을 위해 울기에는 너무 나이 들어 있었다.

 

 

 

 요즘들어 개인적으로 인구감소에 대한 이슈에 관심이 간다. 더 자세하게는 인구감소의 영향이 경제성장을 저하시킬까 하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인구의 감소는 노동력 손실로 이어져 경제하강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 같다는 선입견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항상 있어왔는데, 이 책은 꼭 그렇지는 않다라는 것을 데이터와 현재까지의 경제적 발전의 역사과정을 통해서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제는 "人口と日本經濟 長壽,イノベ-ション,經濟成長"   "인구와 일본경제 : 장수, 이노베이션, 경제성장"으로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요약하자면 인구는 경제성장의 하나의 요인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은 인구, 즉 노동력 자체보다는 이노베이션에 의해 노동생산성의 향상 혹은 경제(생산,소비) 구조의 변화에 의한 것이 더 크다는 내용이다.

 200페이지 남짓의 짧은내용(저자도 이론서라기보다는 에세이라고 표현했다)이라, 경제적 이론보다는 직관적인 그래프와 상식적인 내용 위주로 쉽게 풀어나간다.

 세계 최저 출생율로 인한 인구감소가 점차 가시화되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추어서도 많은 참고가 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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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

 인구 억제는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맬서스는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심과 그로 인한 만혼화, 비혼화가 인구를 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억제는 분명 사회적으로 가난한 계층에서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많은 남녀 하인들이 미혼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미혼자 수를 전체 인구로 나눈 '미혼율'을 밝혀내면 그 나라의 인구가 증가하는지 혹은 감소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어디까지나 미혼율은 인구의 '증감'과 연관된 것이지 인구의 많고 적은 '수준'과는 관련이 없다고도 했다.

 여기서부터 구빈법 개혁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다. 구빈법을 개혁해 급부 수준을 인상하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맬서스는 급부 수준이 인상되면 빈곤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일시적으로는 향상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효과가 크면 클수록 인구가 증가하고, 결국 이들의 생활은 이전과 변함없는 비참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소득을 재분배한들 식량의 총공급량이 변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그들의 생활은 개선될 리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맬서스는 가족을 제대로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증가해 인구가 늘어나면 결국에는 굶주림, 질병 등으로 인해 인구가 억제되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계속해서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러한 비참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애초에 가난한 사람들이 가족 부양의 어려움을 자각하고 결혼을 포기함으로써 인구가 억제되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이다.

 맬서스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논리는 『인구론』의 중반부에 요약되어 있다. "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식량에 의해 제어된다. 식량이 많아지면 인구도 늘어난다. 인구 증가를 부추기는 힘을 억제하고 현실 속 인구와 식량의 공급 수준을 적절히 조정할 수 있는 건 빈곤과 악덕이다." 이러한 맬서스의 논의는 이후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에 의해 매도당한다.

 

p50

 번영의 시대였던 19세기에 부의 불평등은 저축의 증가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만약 한 나라가 창출하는 부를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한다면 사람들은 이를 전부 소비해버리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저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유 있는 부자들이 저축을 하고 그것이 자본 축적으로 이어지면서 경제 사회가 진보한다. 즉 불평등은 인간 사회가 진보하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것이 19세기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이었다.

 

p90

 우선 공급의 측면을 보자. 노동자 수가 감소하면 만들 수 있는 제품의 수도 감소한다. 이는 이해하기 쉬운 이론이자 부정할 여지가 없는 '불변의 논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사실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 있다. 한 국가에서 1년간 생산되는 모든 물건 및 서비스 가치(정확히는 '부가가치')의 총계를 나타내는 것이 GDP(국내총생산)인데 그 성장률은 결코 노동력 인구의 증가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표2-6>은 1870년부터 100년간 일본 인구와 실질 GDP의 변화를 비교한 것이다. 전후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표의 오른쪽을 보면 상승세가 두드러지는데, 축적을 바꾸어 왼쪽만 보면 전전戰前에도 GDP와 인구 성장 사이에 매우 큰 괴리가 보인다. 메이지 시대(1868~1912)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150년 동안 경제 성장과 인구는 겨의 관계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괴리된 모습을 보였다. 

 경제 성장률과 인구 증가율의 차이야말로 '노동 생산성'의 성장과 다름이 없다. 노동 생산성의 향상은 대략 '1인당 소득'의 성장을 의미한다. 노동력 인구가 변함없더라도(혹은 조금 감소하더라도) 한 명의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증가하면(즉 노동 생산성이 상승하면) 경제 성장률은 플러스가 된다.

 

 

 한 국가에서 노동 생산성 상승을 야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새로운 설비와 기계를 투입하는 '자본 축적'과 넓은 의미에서의 '기술 진보', 즉 '이노베이션'이다.

 

p108

 2012년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제3차 산업 혁명'이라는 특집 기사를 냈다. 선진국의 제조업 현장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으로 확산되었으나 이제는 3D 프린터 등이 등장하면서 물건을 만들 때 필요한 인간의 노동량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코노미스트』 특집에서는 애플의 아이패드 소매가격 499달러 중 제조 비용(판매료 및 인건비)은 187달러이며, 그중 중국에서의 노동 비용은 8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물론 산업에 따라 생산량에서 노동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어쨋든 간에 21세기에는 '값싼 노동력'이 별다른 이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새로운 물건을 팔 시장과 가까운 곳에서 만들 때의 이점이 더 커진다. 이로써 제조 현장은 또다시 선진국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한다.

 

p194

 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밀은 자신의 이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인간에게 최선의 상태란 아무도 가난하지 않을뿐더러 누구도 부유해질 생각이 없고, 부유해지려는 타인의 노력을 보고도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않는 상태다. -정치 경제학 원리-

 

 

 인간에게 있어서 항상 다른 인간과 접촉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고독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고독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고독, 즉 때때로 혼자가 되는 일은 인간이 자신의 생각 및 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없어선 안 될 부분이다.

 

p213

 

 안타깝게도 현재 일본 경제는 퇴영적退嬰的이다 <표4-5>는 저축, 즉 수입과 지출 차액의 추이를 가계, 기업, 정부 등 부문별로 살펴본 것이다. 이제는 기업이 가계를 넘어 일본 경제에서 가장 큰 순 저축 주체가 되었다. 이를 자본주의 경제 본래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가계가 저축을 하고 기업이 마이너스 저축, 즉 빚을 내어 투자했다. 기업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뀐 것은 시대가 아니라 기업이다.

 슘페터는, 이노베이션을 떠맡아야 할 주체는 본질적으로 금전적 이익을 물론이거니와 미래를 향해 스스로의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인스 역시, 기업의 설비 투자란 아문센이 개썰매를 타고 남극을 향했듯이 결국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에 의한 것이라며 건전한 낙천주의를 잃어버리고 합리적인 계산에만 매달리는 기업은 쇠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경제의 미래는 일본 기업이 '인구 감소 비관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서도 아마 비슷한 자료를 찾을 수 있을것 같긴 한데 찾지는 못했다. 경제지 기사를 참고해보면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예상된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03/146682/

 

저축 많이 하는 기업들…작년 기업예금 증가율, 가계의 갑절 - 매일경제

기업예금 비중 2000년 26%→작년 30.5% vs 가계 59.8%→44.3% 투자의 주체로 알려진 기업의 예금 증가율이 저축 주체인 가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예금은행의 기

www.mk.co.kr

 

 

저자는 군론(Group theory)을 전공한 옥스포드대 수학교수이다. 저자의 이력만 보면 수학에 관한 내용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물리학, 논리학 그리고 수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 초반의 5개의 챕터는 상당한 깊이의 통찰로 양자론, 우주론, 상대성이론에 대한 수학적, 철학적 고찰을 보여준다.

초반 5개의 챕터만으로도 현대 물리학에 대한 상당히 알차고 수준높은 입문교양서가 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2개의 챕터에서는 논리학, 의식과 관련된 인공지능, 그리고 수학적 추론과 저자 본인의 수학적 연구테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식적인 전개가 있지는 않고 서술적이지만, 내가 수학적 지식이 짧아서 완벽히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뒤에 집중력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읽으면 이해할만한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과학 교양서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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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내가 기자들과 가장 자주 나눴던 대화는 대충 다음과 같다.

 

 기자 : 교수님은 어떤 종교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나 :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주세요.

 기자 :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 :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신'을 정확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정의를 내리시겠습니까?

 기자 : 그야 뭐....,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한 존재겠지요.

 나 : 정말 황당하네요. 그런 초월적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는 취급 가능한 대상의 존재 여부만을 알 수 있답니다!

 

p163. 최후의 단위 : 쿼크

 

 그 후 몇 명의 물리학자들이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SU(3)의 다차원 표현에 대응되는 패턴들을 여러 층으로 쌓았더니, 제일 꼭대기 층이 누락된 피라미드 형태가 된 것이다. 꼭대기에 간단한 삼각형이 놓이면 그림이 완성될 것 같았다. 삼각형은 3차원에 적용되는 SU(3) 대칭군의 가장 간단한 물리적 표현에 해당한다. 이 피라미드를 대칭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누락된 층으로부터 다른 층들을 순차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어떤 입자를 할당해야 하는지, 그것이 문제였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로버트 서버 Robert Seber 는 누락된 층에 해당하는 세 개의 입자들이 다른 층의 모든 입자를 구성하는 궁극적 기본 단위일 것으로 예측했다. 1963년의 어느 날, 그는 겔만과 점심 식사를 함께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고 겔만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그 입장의 전하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겔만은 냅킨을 탁자에 펼쳐놓고 몇 줄 끼적이더니 곧바로 답을 알아냈다. 그 입자의 전하는 양성자의 2/3이거나 -1/3이 되어야 했따. 겔만이 웃으면 말했다.

 "정말 희안한 입자인데요. That would be a funny quirk. "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발견된 그 어떤 입자도 전하가 분수인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입자의 전하는 양성자나 전자의 전하의 정수 배여야 했다.

 당시의 상황은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를 연상시킨다. 피타고라스는 모든 만물이 정수로 표현된다고 하늘같이 믿었다가 정수가 아닌 분수를 발견했고, 정수와 분수가 전부라고 생각했다가 무리수와 마주치지 않았던가. 20세기의 물리학자들도 모든 입자의 전하가 어떤 기본 단위의 정수 배라고 믿었다가 '분수 전하'라는 복병과 마주친 것이다. 처음에 겔만은 분수 전하에 회의적이었으나 그날 저녁부터 생각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 후에는 서버의 아이디어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자신이 진행 중인 연구를 '쿼크kworks'라고 불렀다. 이것은 그가 예전부터 '작고 흥미로운 것'을 칭할 때 즐겨 쓰던 그만의 은어였는데, 서버도 희안한 입자를 표현하는 데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겔만은 제임스 조이스의 실험적 소설 《피네간의 경야》를 읽다가 자신이 연구 중인 가상의 입자에 어울리는 이름을 발견했다. 이 책에는 트리스탄 신화의 바람둥이 마크 왕을 조롱하는 시가 등장하는데, 그중 한 구절이 눈에 띈 것이다.

 "마크 대왕에게 세번의 쿼크를! There quarks for Muster mark!"

 여기 나오는 '쿼크quark'는 자신이 만든 신조어 '쿼크kwork'와 발음도 비슷하고, 게다가 '3'이라는 숫자까지 명시되어 있으니 겔만에게는 더 없이 적절한 이름이었다.

 

p212

 관측 행위의 기이한 특성은 내 책상 위에서 붕괴되고 있는 우라늄에도 적용된다. 우라늄에서 복사(알파 입자)가 방출되는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초미세 감지기를 짧은 간격으로 계속해서 들이대면 우라늄은 마치 얼어붙은 얼음처럼 붕괴를 멈추고 현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물이 담긴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려놓고 계속 바라보면 절대로 끓지 않는다"는 속담에서 주전자를 우라늄으로 바꾼 양자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불안정한 입자를 계속 관찰하면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여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다. 이 현상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의 이름을 따서 '양자적 제논 효과'라 한다.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의 한순간을 포착한 스냅샷(정치영상)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화살은 움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p310

 미래에는 우주 배경 복사처럼 은하에서 방출된 빛도 가시광선 영역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데 어떤 이론을 세울 수 있겠는가? 우리의 먼 후손들은 고대 그리스의 우주관을 다시 수용할지도 모른다. 우리 은하는 우주에 홀로 고립되어 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우주의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고대의 선민의식도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잘 보존하여 후대에 전해주고 싶지만, 수십억 년 후까지 온전하게 전달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우주의 운명이 원래 그런 것을....

 

p347

 시간의 가장 작은 단위인 '초秒, second'는 현대에 이르러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1967년 이전까지는 지구의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를 통해 정의된 초 단위를 사용해왔는데, 값이 수시로 변하여 시간의 기본 단위로는 적절치 않았다. 예를 들어 6억 년 전에는 지구의 자전 주기가 22시간이었고 공전 주기는 거의 400일에 가까웠다. 그런데 바다의 조석 현상이 지구의 자전 에너지를 달에 전달하여 지구의 자전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달은 지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 지구의 공전 주기가 일정하지 않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도량형 학자들은 1967년에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시간의 척도를 우주에서 찾는 대신 운동이 한결같은 원자에서 찾기로 한 것이다. 이때 제정된 1초의 정의는 다음고 같다.

 

 절대 온도 0K에서 세슘 원자(Cs-133)가 바닥상태의 초미세 준위 사이에서 전이할 때 방출되는 복사(전자기파)의 주기의 9,192,631,770배를 1초로 정의한다.

 

p577

 "말할 수 없으면 침묵하라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

 비트겐슈타인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 등장하는 명언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패배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피해 의식에 빠져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이보다는 "알 수 없으면 상상력을 가동하라"는 말이 훨씬 생산적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던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을 탐구하기 위한 초석이다. 맥스웰은 "모든 과학의 발전은 완전한 무지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특히 수학을 연구하다 보면 이 말이 피부에 와 닿을 때가 많다. 문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답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끈기 있게 매달리면 결국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돌아온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은 "지식의 최대 적은 무지가 아니라 자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환상"이라고 했다.

 

 

 1독 : 내용은 대강 파악. 제대로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려면 1번 더 읽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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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중세 사회의 붕괴로 생겨난 인간의 불안이라는 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중세 사회에는 많은 위험이 존재했지만, 인간은 그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다고 느꼈다. 수백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인간은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물질적 부를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인간은 세계 곳곳에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했고, 최근에는 전체주의의 새로운 책동에 맞서 자신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내가 분석하여 보여주려는 것은 근대인이 아직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불안한 인간은 온갖 부류의 독재자드레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호의호식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p12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어려움은 인간의 지적 능력 발달이 감정 발달을 훨씬 앞지른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 인간과 현 상황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20세기에 살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심장은 아직도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독립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인간은 혼자이고 ,인간 자신을 빼고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권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뎌내려면 그들에게는 신화와 우상이 필요하다. 인간은 파괴성과 증오, 시샘과 복수심같은 무분별한 열정을 억누르고 힘과 돈, 독립 국가와 민족을 숭배한다. 인간은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 - 부처, 구약의 예언자들, 소크라테스, 예수, 무함마드 - 의 가르침에 말로만 경의를 표하면서, 그 가르침을 미신과 우상 숭배의 정글로 바꾸어버렸다. 지적 · 기술적 조숙과 감정적 퇴보 사이의 괴리로 말미암아 자신을 파괴할 위기에 놓인 인류는 그 위기에서 어떻게 자신을 구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본질적인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인식은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주고, 객관성과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이나마 높여준다. 가슴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어리석은 짓과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과 사고에 미치는 악영향을 겨우 한 세대 만에 극복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인간이 수십만 년에 걸친 인류 출현 이전의 역사에서 벗어나려면 아마 천 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 중대한 순간, 조금만 통찰력 - 객관성 - 을 강화하려면 인류의 생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학적이고 역동적인 사회심리학의 발달이 매우 중요하다. 물리학과 의학의 진보에서 생겨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심리학의 진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전체주의적 경향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전체주의 세력을 극복하려는 모든 행위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p21

 처음에는 권위주의 체제의 승리가 소수의 광기 때문이고, 그 광기 때문에 그들은 조만간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는 사람이 만핬다. 이탈리아인과 독일인은 민주주의를 충분히 오랫동안 훈련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들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만큼 정치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기다리면 된다고 우쭐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히틀러 같은 자들은 오로지 권모술수만으로 거대한 조직체인 국가를 지배하는 권력을 얻었고, 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순전히 힘으로만 나라를 통치하고 있으며, 국민은 의지라고는 전혀 업는 배신과 테러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도 당시 널리 퍼져 있던 환상, 어쩌면 모든 환상 중에서 가장 위험한 환상이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주장의 오류가 분면해졌다. 수백만의 독일인은 그들의 선조가 자유를 위해 싸운 것만큼 열정적으로 자유를 포기했다는 것, 그들은 자유를 원하기는커녕 자유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았다는 것, 나머지 수백만의 독일인은 거기에 무관심했으며 자유를 지키는 일이 싸우다 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탈리아나 독일에만 특유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근대국가가 직면한 문제라는 것도 우리는 인정한다. 인간의 자유를 위협하는 적들이 어떤 상징을 택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노골적인 파시즘의 이름이 아니라 반파시즘의 이름으로 자유를 공격한다고 해서 자유가 덜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존 듀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해외에 있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 태도와 우리 자신의 제도 속에는 외적인 권위와 규율, 획일성, 외국의 지도자에 대한 의존이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준 조건들이 존재하고, 바로 그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따라서 싸움터는 이곳, 우리 자신과 우리 제도의 내부에도 존재한다.

 

p25

 파시즘이 권력을 잡았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이 악에 대한 성향과 힘에 대한 욕망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 약자의 권리를 그렇게 무시하고 복종을 갈망할 수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화산이 분출하기 전에 땅이 울리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극소수뿐이었다. 니체는 19세기의 자기만족적인 낙관주의를 흔들어놓았고, 마르크스도 다른 방식으로 낙관주의를 뒤흔들었다. 또 다른 경고는 조금 나중에 프로이트한테서 나왔다. 확실히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 대다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지극히 소박한 생각밖에 갖고 있지 않았고, 그가 사회 문제에 심리학을 적용한 경우에는 대부분 그 해석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개인의 정서적 장애와 정신적 불안이라는 현상에 관심을 기울여, 우리를 화산 꼭대기로 데려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화구를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프로이트는 인간 행동의 여러 부분을 결정하는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힘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에서 그 전의 누구보다도 앞서 있었다. 근대 합리주의는 인간성을 이루는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부분의 존재를 도외시했지만, 근대 심리학에서 프로이트와 그의 후계자들은 그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부분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그 비합리적인 현상이 일정한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프로이트는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만이 아니라 꿈의 언어와 신체적 증상을 이해하는 법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의 성격 구조 전체만이 아니라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들도 개인이 외부 세계에서 받은 영향, 특히 어린 시절에 받은 영향에 대한 반응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그가 속해 있던 문화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것이 정해놓은 어떤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 한계는 환자에 대한 그의 이해까지도 제한하게 되었고, 그가 정상적인 개인을 이해하고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었다.

 이 책은 사회 과정 전반에서 심리적 요소들이 맡고 있는 역할을 강조하고, 이 분석은 프로이트의 기본적인 발견 - 특히 인간의 성격에서 무의식적인 힘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힘들이 외부의 영향에 얼마나 의존하는지에 관한 발견 - 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접근방식의 일반적인 원칙은 무엇이고, 이 원칙과 프로이트의 고전적인 개념은 어떻게 다른지를 처음부터 알려주는 편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성이 약하다는 전통적인 학설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기본적으로 양분하는 전통적인 믿음도 받아들였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회는 인간을 길들여야 하고, 인간이 생물학적 - 따라서 근절할 수 없는 - 충동을 직접 만족시키는 것을 어느 정도는 허락해야 한다. 하지만 대체로 사회는 인간의 기본적인 충동을 정화시키고 노련하게 억제해야 한다. 타고난 충동을 사회가 이렇게 억압하면, 그 결과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다. 즉 억압당한 충동이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노력으로 바뀌고, 그리하여 문화의 인간적 토대가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억압이 문화적 행동으로 바뀌는 이 이상한 변화를 승화(昇華)라고 불렀다. 억압의 정도가 개인이 승화시킬 수 있는 한계를 넘으면 개인은 신경증에 걸리고, 억압을 줄이는 것을 허락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개인의 충동을 만족시키는 것과 문화 사이에서 반비례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억압이 강할수록 문화가 발달한다(그리고 신경 장애에 걸릴 위험도 더 높아진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고정적이다. 개인은 사실상 변하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고, 사회가 개인의 자연스러운 충동에 더 강한 압력을 행사하거나(그래서 더 많은 승화를 강요하거나) 더 많은 만족을 허용하거나(그래서 문화를 희생시키거나) 할 때에만 개인도 변한다.

 이전의 심리학자들이 인정한 이른바 인간의 기본적 본능과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근대인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충동들을 반영한 것이었다. 프로이트에게는 그의 문화권에 속하는 개인이 인간을 대표했고, 근대 사회에 사는 인간 특유의 열정과 불안은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에 뿌리를 내린 영원한 힘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이 점을 실증하는 예를 많이 들 수 있지만(예를 들어 오늘날 현대인에게 널리 퍼져 있는 적개심의 사회적 토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여성들의 이른바 거세 콤플렉스 등),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 개념 전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한 실례를 한 가지만 더 제시하고 싶다. 프로이트는 언제나 개인을 타인들과 관련지어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생각하는 이 관계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타인들과 맺고 있는 독특한 경제적 관계와 비슷하다. 각자는 자기가 책임지고 개인주의적으로 자신을 위해 일하지 기본적으로 타인과 협력하여 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다. 그는 고객이나 고용주나 고용인이 될 타인을 필요로 한다. 그는 물건을 사고팔아야 하고, 남들과 주고받아야 한다. 상품 시장이든 노동 시장이든, 시장이 이 관계를 규제한다. 따라서 주로 혼자이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개인은 한 가지 목적 - 물건을 팔거나 사는 것 - 을 위한 수단으로 타인들과 경제저 관계를 맺는다. 인간관계에 대한 프로이트의 개념도 본질적으로는 이와 같다. 개인은 반드시 충족시킬 필요가 있는 생물학적 충동들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듯하다. 그 충동들은 만족시키기 위해 개인은 다른 '객체'와 관계를 맺고, 따라서 다른 개인들은 언제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 목적은 개인이 타인들과 접촉하기 전에 원래 자신에게서 비롯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시장과 비슷하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욕구를 서로 충족시켜주는 것이고, 여기서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된 분석은 프로이트의 관점과는 대조적이다. 심리학의 주요 문제는 이런저런 본능적 욕구 자체를 충족시키거나 좌절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개인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것이냐의 문제라는 가정, 그리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고정적인 게 아니라는 가정이 이 책에 제시된 분석의 기본 바탕이다. 한쪽에는 어떤 충동을 타고난 개인이 있고, 또 한쪽에는 개인과는 별도로 개인의 타고난 성향을 충족시키거나 좌절시키는 사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식욕 · 갈증 · 성욕처럼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욕구는 존재하지만, 사랑과 미움, 권력욕과 복종심, 관능적 쾌락에 대한 욕망 또는 두려움처럼 사람들의 성격에 차이를 가져오는 충동들은 모두 사회 과정의 산물이다. 인간의 가장 추악한 성향만이 아니라 가장 훌륭한 성향도 생물학적으로 고정된 인간 본성이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내는 사회 과정의 결과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는 개인을 억압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 물론 그 기능도 갖고 있기는 하지만 - 창조적인 기능도 갖고 있다. 인간의 본성, 열정과 불안은 문화적 산물이다. 사실 인간 자체가 인류의 부단한 노력이 낳은 가장 중요한 창조물이자 성취이고, 그 기록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인간의 창조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사회심리학의 과제다. 하나의 역사 시대에서 다음 역사 시대로 넘어갈 때 인간의 성격에 어떤 뚜렸한 변화가 일어나는 까닭은 무엇인가? 르네상스 정신은 왜 중세 정신과 다른가? 독점자본주의 시대 인간의 성격 구조는 왜 19세기 인간의 성격 구조와 다른가? 사회심리학은 좋든 나쁘든 새로운 능력과 새로운 열정이 생겨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를 들면 르네상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은 명성을 얻으려는 불타는 야망으로 가득 찼지만, 오늘날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욕망이 중세 사회의 인간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또한 전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도 같은 시대에 발달했다. 북유럽 국가에서는 16세기부터 인간이 일하고 싶은 욕망에 거의 강박적으로 사로잡혔다. 그 전에는 노예가 아닌 자유민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역사에 의해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회심리학의 영역이다. 열정과 욕망과 불안이 사회 과정의 '결과'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렇게 구체적인 형태를 이루게 된 인간의 에너지가 어떻게 '사회 과정을 형성하는 생산력'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사회심리학의 과제다. 따라서, 예컨대 명성과 성공을 얻고자 하는 갈망과 일하고 싶은 욕구는 근대 자본주의를 발달시킨 원동력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근대 자본주의는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며, 이 원동력과 그 밖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힘이 없었다면 인간은 근대 상공업 체제의 사회적 · 경제적 요구에 따라 행동할 있는 추진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p38

 인간의 본성이란 생물학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타고난 충동들의 총화도 아니고, 또한 순조롭게 적응해가는 문화 유형의 생명 없는 그림자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인간 진화의 산물이지만, 어떤 고유한 메커니즘과 법칙도 갖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는 고정 불변의 요소들이 있는데, 생리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필요성, 고립과 정신적 고독을 피해야 할 필요성이 그것이다. 개인은 어떤 사회 특유의 생산과 분배 체제에 뿌리를 둔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문화에 역동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행동과 검정을 유발하는 강력한 충동들이 수없이 생겨난다. 개인은 이 충동들을 의식할 수도 있고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욕구들은 강력하고 일단 생겨나면 충족시켜줄 것을 요구한다. 그것들은 강력한 영향력이 되어, 이번에는 반대로 사회 과정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 심리적 · 이념적 요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이 상호작용에 관하여 어떤 일반적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는 나중에 종교개혁과 파시즘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논할 것이다. 이 논의는 언제나 이 책의 주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될 터인데, 이 책의 ㅈ요 주제는 인간이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인간이 '개인' 되면 될수록, 자발적인 사랑과 생산적인 일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결합시키거나 아니면 자신의 자유와 개체적 자아의 본래 모습을 파괴하는 끈으로 세계와 자신을 묶어서 일종의 안전보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40

 개인이 원시적 유대관계에서 차츰 벗어나는 과정, 즉 '개체화(individuation)'라고 부를 수 있는 과정은 종교개혁부터 현재에 이르는 수세기 동안의 근대사에서 절정에 달한 듯하다.

 

p44

 개체화 과정의 다른 측면은 '고독의 증대'다. 원초적 유대는 외부 세계와의 기본적인 통합과 안도감을 준다. 아이가 그 세계에서 벗어날수록 자기가 혼자라는 것, 다른 모든 존재와 분리된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개인의 존재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강하고 힘센 세계, 때로는 위협적이고 위험하기도 한 세계와 이렇게 분리되는 것은 무력감과 불안감을 낳는다. 개별 행동의 가능성과 책임을 모른 채 세계의 일부로 남아 있는 동안은 세계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개인이 되면 혼자 서서, 세계가 지니고 있는 위험하고 압도적인 측면과 맞서야 한다.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고 외부 세계에 완전히 잠겨서 고독감과 무력감을 극복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총동과 거기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유대는 성장 과정 자체에서 끊어진 원초적 유대와는 다르다. 아이가 육체적으로는 결코 어머니 자궁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심리적으로는 절대로 개체화 과정을 뒤집을 수 없다. 그렇게 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복종의 성격을 띠고, 권위와 거기에 복종하는 아이 사이의 기본적인 모순은 결코 제거되지 않는다. 아이는 의식적으로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자아의 본래 모습과 힘을 포기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따라서 복종의 결과는 과거와는 정반대다. 복종은 아이의 불안을 늘리는 동시에 적개심과 반항심을 불러일으킨다. 아이가 적개심과 반항심을 품는 대상은 아이가 계속 의존하는, 또는 새로 의존하게 된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

 하지만 복종은 고독과 불안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또 다른 방법,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해소할 수 없는 갈등으로 끝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및 자연과 자발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관계는 개성을 없애지 않으면서 개인을 세계와 이어준다. 이런 종류의 관계 -  이 관계의 가장 중요한 표현은 사랑과 생산적인 이리다 - 는 인격 전체의 통합과 그 힘에 뿌리는 두고 있다. 따라서 자아 성장의 한계가 이 관계를 지배한다.

 

p46

 분리와 개체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자아도 그만큼 성장한다면, 아이는 조화롭게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개체화 과정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반면, 자아의 성장은 수많은 개인적 · 사회적 이유로 방해를 받는다. 이 두 경향의 차이는 참을 수 없는 고립감과 무력감을 낳고, 이것은 나중에 '도피의 메커니즘'으로 논할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이어진다.

 

p47

 인간은 태어났을 때는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무력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응은 본능의 결정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학습 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본능은 .... 고등동물, 특히 인간에게는 사라지는 범주는 아니라 해도 약해지는 범주다."

 

p53

 다른 측면 - 인간 본성의 악함을 강조하고, 개인의 무의미함과 무력함, 개인이 외적인 힘에 종속되어야 할 필요성 - 은 무시된다. 개인은 무가치하고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할 수 없고 외적인 힘에 복종할 필요가 있다는 이 생각은 히틀러 이데올로기의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히틀러의 이념은 개신교에 내재하는 고유의 자유와 도덕 원리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p65

 이 사실은 중세 사회에서 개인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점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카톨릭교회의 교리만이 아니라 세속의 법률에도 표현되어 있던 '경제 활동'에 관한 '윤리적 견해'가 그것이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토니의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 그의 견해는 중세를 이상화하거나 낭만화하려 든다고 의심받을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은 두 가지였다. "경제적 이익은 인생의 진정한 사업인 구원에 종속된다는 것. 경제활동은 인간 행위의 한 측면이며 인간 행위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도덕률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p69

 루터는 1524ㄴ녀에 <상거래와 고리대금업>이라는 팸플릿에서 독점 기업에 대한 중소 상인의 울분과 분노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들은 모든 상품을 장악하고 앞에서 언급한 모든 수법을 노골적으로 행사한다. 그들은 상품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거나 내리고, 마치 자기들이 신의 창조물 위에 군림하고 믿음과 사랑의 법칙에서 자유롭기라도 한 것처럼, 강꼬치고기가 물속의 작은 물고기들을 괴롭히듯이 모든 중소 상인을 억압하고 파멸시킨다." 루터의 이 말은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15세기와 16세기에 중산층이 부유한 독점가들에게 느꼈던 공포와 분노는 우리 시대에 중산층이 독점 기업과 강력한 자본가들에게 보이는 태도를 특징짓는 감정과 비슷한 점이 많다.

 

p88

 루터에게서 찾아볼 수 있듯이, '확실성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의 표현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회의를 극복하려는 욕구에 뿌리박고 있는 행동이다.' 루터의 해결책은 오늘날 수많은 개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루터와는 달리 신학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즉 그들은 고립된 개별적 자아를 제거하고, 개인 밖에 있는 압도적으로 강한 힘의 손에 쥐어진 도구가 됨으로써 확실성을 찾으려 한다. 루터에게 이 힘은 선이었고, 그는 절대적인 복종으로 확실성을 추구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회의를 어느 정도 침묵시키는 데 성공햇지만, 그 회의가 정말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죽는 날까지 회의의 공격을 받았고, 복종하려는 노력을 거듭하여 그 회의를 극복해야만 했다. 심리학적으로 믿음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믿음은 인류와의 내적 관계와 삶에 대한 긍정의 표현일 수도 있고, 개인의 고독과 삶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 뿌리를 둔 근본적인 회의감을 억제하려는 반작용의 형성일 수도 있다. 루터의 믿음은 그런 보상적 성질을 갖고 있었다.

 

p107

 '양심'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 앉혀놓은 노예 감독에 불과하다. 양심은 인간이 자신의 것이라 믿는 소망이나 폭표에 따라 행동하도록 몰아세우지만, 사실 그 소망이나 목표는 외부의 사회적 요구가 내면화한 것이다. 양심은 가혹하고 잔인하게 인간을 몰아붙이고, 쾌락과 행복을 금지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죄를 속죄하는 데 평생을 바치게 한다. 

 

 

 봉건사회라는 중세적 제체의 붕괴는 모든 사회 계급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개인이 홀로 남겨지고 고립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은 이제 자유로워졌다. 이 자유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인간은 그때까지 누렸던 안전성과 의심할 여지없는 소속감을 박탈당했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전을 추구하는 그를 만족시켰던 세계로부터 강제로 떨어져나왔다. 그는 고독과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도 있었고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어, 남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종류의 자유는 여러 사회 계급의 실제 생활 형편에 따라 서로 다른 무게를 가졌다.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부류만이 대두하는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아, 진정한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활동과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로 사업을 확장하고 정복하고 지배하고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 신흥 유산 귀족은 기존의 문벌 귀족과 함께 새로운 자유의 열매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개인이 주도권을 잡고 세상을 지배하는 새로운 느낌을 얻을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도 근본적인 불안전과 불안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신흥 자본가에게는 대체로 자유의 소극적인 의미보다 적극적인 의미가 더 지배적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귀족 사회의 토양에서 번영한 르네상스 문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르네상스 예술과 철학에는 물론 절망과 회의주의도 자주 표현되었지만, 인간의 존업성과 의지와 지배력이라는 새로운 정신이 표현되었다. 이처럼 개인의 활동과 의지의 힘을 강조한 것은 중세 말기에 카톨릭교회의 신학적 가르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권위에 저항하지 않고 그 지도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유의 적극적인 의미를 강조했고,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권리, 인간의 힘과 존엄성 그리고 의지의 자유를 강조했다.

 한편 하층계급인 도시 빈민과 특히 농민들은 자유에 대한 새로운 추구, 점점 심해지는 경제적 · 인간적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렬한 소망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잃을 것이 거의 없었지만 얻을 것은 많았다. 그들은 교리상의 시시콜콜한 면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보다는 성서의 기본 원칙인 우애와 정의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의 소망은 초기 기독교 특유의 비타협적 정신을 특징으로 하는 종교 운동과 수많은 정치적 반항에 적극적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중산층의 반응이었다. 자본주의의 발흥은 그들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중산층에 속하는 개개인은 16세기 초에는 아직 새로운 자유에서 힘과 안전을 많이 얻지 못했다. 자유는 힘과 자신감보다는 오히려 개인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느낌과 고독감을 가져왔다. 게다가 중산층은 로마 교회의 성직자를 비롯한 유산계급의 사치와 권력에 대한 불타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인의 무의미함과 부유층에 대한 분개를 표현했으며, 신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믿음을 파괴했으며, 자신과 타인을 경멸하고 불신하도록 가르쳤으며,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만들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세속 권력 앞에 굴복했으며, 세속 권력이 도덕적 원칙에 어긋나면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포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프로테스탄티즘은 유대-기독교 전통의 기초가 되었던 요소들을 버리고 만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교리가 제시한 개인과 신과 세계의 모습에서는, 개인이 느끼는 무의미함과 무력감은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마땅히' 그렇게 느껴야 한다는 믿음으로 그 느낌을 정당화했다.

 이렇게 새로운 종교적 교리는 평균적인 중산층의 느낌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 태로를 합리화하고 체계화하여 그 느낌을 더욱 확대하고 강화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교리는 그 이상의 일을 했다. 즉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도 개인에게 알려주었다. 자신의 무력함과 본성의 사악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애를 그 죗값으로 여기고, 극도로 자신을 비하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회의와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또한 신에게 완전 복종하면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적어도 신이 구원하기로 결정한 사람들 가운데 자기도 속해 있을 거라는 희망은 가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겁먹고 뿌리째 뽑혀 고립된 개인, 새로운 세계와 관계를 맺고 거기에 적응해야 하는 개인의 인간적 욕구에 대한 해답이었다. 경제적 · 사회적 변화로 생겨났고 종교적 신조로 더욱 강화된 새로운 성격 구조가 이번에는 꺼꾸로 사회적 · 경제적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 성격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던 바로 그 자질들 - 일하려는 충동, 절약하려는 열정, 가외의 개인적 힘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도구로 삼으려는 태도, 금욕주의, 강박적 의무감 - 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이 된 성격 특성들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근대의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에너지가 구체적인 형태로 형성된 것이 바로 그 특징들이었다. 그 특정한 형태를 취함으로써 인간의 에너지는 사회 과정에서 생산력의 하나가 되었다. 새로 형성된 성격 특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경제적 필요라는 관점에서 보면 유리했다. 그런 행동은 이 새로운 성격 유형의 요구와 불안에 대응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 원칙을 좀 더 일반적인 말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아질 것이다. 사회 과정은 개인의 생활양시, 즉 타인 및 일과의 관게를 결정함으로써 그의 성격 구조를 형성한다. 종교적이든 철학적이든 정치적읻든, 새로운 이념은 성격 구조의 이런 변화를 낳은 결과이고, 이렇게 바뀐 성격 구조에 호소하여 그것을 강화하고 충족하고 안정시킨다. 새로 형성된 성격 특성은 다시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사회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원래 그 성격 특성들은 새로운 경제력의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난 것이지만, 서서히 새로운 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강화하는 생산력이 되는 것이다.

 

p115

 예를 들면 우리는 신앙의 자유가 자유의 최후 승리라고 믿는다. 신앙의 자유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신을 숭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교회와 국가 권력에 대한 승리지만, 근대인은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개연성이 입증되지 않은 것을 믿는 내적 능력을 대부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p120

 중세의 사회 체제에서 자본은 인간의 하인이었지만, 근대의 사회 체제에서는 인간의 주인이 되었다. 중세의 세계에서 경제 활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목적은 삶 자체, 또는 카톨릭교회가 이해한 바와 같이 인간의 영적 구원이었다. 경제 활동은 필요한 것이고, 재물도 신의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지만, 모든 외적 활동은 삶의 목적을 촉진하는 경우에만 의미와 존엄성을 갖는다. 그 자체를 위한 경제 활동과 소유욕은 중세 사상가에게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근대 사상가에게는 오히려 그런 활동과 욕망이 없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본주의에서 경제 활동과 성공과 물질적 획득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자신의 행복이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 체제의 발전에 기여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된다. 인간은 경제라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 - 그가 자본을 많이 갖고 있다면 중요한 톱니가 되고, 자본을 갖고 있지 않다면 하찮은 톱니가 된다 - 가 되었지만, 항상 외부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톱니다. 인간을 초월한 목적에 자신을 이토록 기꺼이 바치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킨 것은 사실 프로테스탄티즘이었다. 물론 경제 활동의 이 같은 우월성을 인정하는 것만큼 루터나 칼뱅의 정신과 동떨어진 것은 없었지만, 그들은 신학적 가르침 속에서 인간의 정신적 척추인 존엄감과 자존심을 꺽어버리고 활동의 목적은 자기 자신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침으로써, 상황이 이런 식으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루터의 가르침에서 주된 요점의 하나는 그가 인간성의 사악함을 강조하고,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칼뱅도 인간의 사악함을 강조했고, 인간은 최대의 자신의 자존심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그의 사상 체계의 중심에 놓았다. 더 나아가 인간 생활의 목적은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설파했다. 그렇게 루터와 칼뱅은 심리적으로 인간이 근대 사회에서 맡아야 할 역할 - 자신이 무의히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목적이 아닌 목적을 위해서만 자신의 삶을 종속시킬 각오를 하는 것 - 을 준비시켰다. 인간은 일단 정의도 사랑도 상징하지 않는 신의 영광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존재가 되면, 경제적 기계 - 그리고 결국에는 '총통' - 의 하인 역할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개인을 경시하는 것은 자본 축적을 경제 활동의 목적으로 삼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특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은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그가 얻은 이익은 소비되지 않고 새 자본으로 투자된다. 이렇게 늘어난 자본은 새로운 이익을 가져오고, 이 이익은 다시 투자된다. 이익과 투자는 이렇게 다람쥐 쳇바튀 돌 듯 계속된다. 물론 사치를 위해 돈을 쓰거나 '과시적인 낭비'로 돈을 쓰는 자본가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대표자들은 소비가 아니라 일을 즐겼다. 자본을 소비하는 대신 축적하는 이 원칙은 우리의 근대 산업 체제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의 전제다. 사람이 일에 대해 금욕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또한 경제 체제의 생산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자신의 성과를 투자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연을 통제하는 일에서 이렇게 많은 진보를 이룩하지 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될 미래를 역사상 처음으로 마음속에 그릴 수 있게 된 것도 사회의 생산력이 이렇게 증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 축적 자체를 위해 일한다는 원칙이 객관적으로는 인류의 진보에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 해도, 주관적으로는 인간으로 하여금 초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일하게 만들었고, 인간을 자기가 만든 기계의 하인으로 전락시켰으며, 그리하여 자기가 보잘것없고 무력하다는 느낌을 인간에게 안겨주었다.

 

p127

 근대인은 자아를 최대한 주장하는 것이 특징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의 자아는 약해져서 전체 인격의 다른 부분은 모두 제외하고 전체 자아의 일부인 지성과 의지력으로 축소되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은 놀랄 만큼 강해졌지만, 사회는 자기가 창조한 그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생산 체계는 기술적 측면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사회적 측면에서는 비합리적이다. 경제 위기, 실업, 전쟁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건설했다. 공장과 집을 세우고, 자동차와 옷을 생산하고, 곡식과 과일을 지배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생산품에서 멀어졌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자기가 만든 세계의 주인이 아니다. 반대로 인간이 만든 시계가 그의 주인이 되었고, 그 주인 앞에 인간은 고개를 숙이고, 될 수 있는 한 아양을 떨며 속이려 애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 인간의 신이 되었다. 그는 자기 이익에 휘둘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구체적 능력을 가진 그의 전체적인 자아는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그 기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인간은 여전히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환상을 품지만, 일찍이 선조들이 신에 대해 의식적으로 느꼈던 무력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p129

 경제적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적 관계도 이런 소외의 성격을 띤다. 그 관계는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사물 사이의 관계와 같은 성격을 띤다. 하지만 서로 상대를 수단으로 이용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이런 정신을 보여주는 실례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파괴적인 것은 아마 개인과 그 자신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사람은 상품을 팔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팔고, 자신이 상품이라고 느낀다. 육체노동자는 자신의 육체적 에너지를 팔고, 상인과 의사와 사무원은 '인격'을 판다. 그들이 생산품이나 용역을 팔기 위해서는 '인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인격은 남의 마음에 드는 것이어야 하지만, 그 밖에도 소유자는 수많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는 에너지와 창의성, 그 밖에 자신의 특별한 지위가 요구하는 이런저런 것들을 갖추어야 한다.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이런 인간적 자질들의 가치, 나아가 그 존재 자체까지 결정하는 것은 시장이다. 어떤 사람이 제공하는 자질들이 아무 쓸모도 없으면 그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설령 사용 가치를 지니고 있더라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은 무가치한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자신감이나 '자아의식'은 남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는 표시일 뿐이다. 시장에서의 인기나 성공과는 관계없이 그의 가치를 확신하는 것은 '그'가 아니다. 남들이 그를 원하면 그는 쓸모 있는 인간이고, 인기가 없으면 쓸모없는 인간이다. 자기 평가가 이처럼 '인격'의 성공에 달려 있는 것이야말로 인기가 근대인에게 그토록 엄청난 중요성을 갖는 이유다. 어던 실제적인 문제에서 남보다 앞서가느냐 아니냐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또는 열등감의 구렁텅이에 빠지느냐 아니냐도 인기에 달려 있다.

 

p147

 이 점을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신경증적(neurotic)'이라는 용어와 '정상적인(normal)' 또는 '건강한(healthy)'이라는 용어를 잠깐 검토하는 것이 유용할 듯싶다.

 

 '정상적인' 또는 '건강한'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그 사회에서 맡아야 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정상적인 또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그가 그 특정한 사회에서 요구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의 재생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즉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건강 또는 정상적인 상태를 개인의 성장과 행복의 최고 단계로 생각한다.

 주어진 사회의 구조가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을 제공했다면, 두 관점이 일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포함하여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사회는 그렇지 않다. 개인의 성장이라는 목표 달성을 어느 정도나 촉진시키는지는 사회마다 다르지만, 사회의 원활한 기능과 개인의 완전한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 때문에 건강에 대한 두 개념을 뚜렷이 구별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사회적 필요의 지배를 받고, 또 하나는 개인 생활의 목표에 관한 규범과 가치관의 지배를 받는다.

 불행하게도 이 차이는 종종 무시된다. 정신과 의사들은 대부분 그들의 사회 구조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로 생각한다. 반면에 잘 적응하는 사람은 인간적 가치 척도의 관점에서 더 쓸모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우리가 정상적이라는 개념과 신경증적이라는 개념을 구별해서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즉 잘 적응한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인간적 가치라는 면에서는 신경증적인 사람보다 덜 건강한 경우가 많다. 그는 사회에 잘 적응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아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개성과 자연스러움은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반면에 신경증적인 사람은 자아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완전히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 그 특징을 묘사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개체적 자아를 구하려는 그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고, 그는 자신의 자아를 생산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신경증적 증상을 통해, 그리고 환상적인 생활로 물러가 그 속에서 구원을 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개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정상적인 사람보다는 덜 불구자다.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신경증 환자가 아니면서도 적응 과정에서 개성을 잃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신경증적인 사람에게 찍혀 있는 낙인은 아무 근거도 없는 것 같고, 신경증 환자를 사회적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만 그 낙인이 정당회되는 듯하다. 사회 전체에 관해서 말하면, '신경증적'이라는 용어는 이 후자의 의미로는 쓰일 수 없다.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 기능을 발휘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구성원들이 인격의 성장 과정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런 의미에서 신경증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신경증적'이라는 용어는 사회적 기능의 결핍을 나타낼 때 자주 쓰이기 때문에, 사회가 신경증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인간의 행복과 자기실현에 불리한 사회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p159

 프로이트는 오랫동안 이성적 공격이라는 현상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알프레드 아들러는 우리가 여기서 논하는 경향을 그의 사상 체계의 중심에 놓았다. 하지만 그것을 가학-피학증으로 다루지 않고 '열등감'과 '권력욕'으로 다루었다. 아들러는 이런 현상의 합리적인 측면만 보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비하하고 하찮게 만드는 비합리적인 경향에 대해 말하지만, 그는 열등감을 어린아이의 일반적인 무력함과 신체적 열등감 같은 실제적 열등성에 대한 적절한 반작용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권력욕을 타인을 지배하려는 비합리적인 충동의 표출이라고 생각하는 데 대해 아들러는 그것을 완전히 합리적인 결정 너머에 있는 것을 못 보고 있다. 그는 동기 부여의 복잡성에 대한 귀중한 통찰에 이바지했지만 항상 표면에만 남아 있을 뿐, 프로이트가 했던 것처럼 비합리적 충동의 심연 속으로 결코 내려가지 않았다.

 

p170

 확실히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은 순전히 물질적인 의미에서 우월한 힘의 표현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보다 '강한'것이다. 하지만 심리적 의미에서 보면 '권력욕은 강함이 아니라 오히려 약함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것은 개체적 자아가 홀로 서서 살아갈 수 없다는 표현이다. 그것은 진정한 힘이 부족할 때 2차적인 힘을 얻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p178

 하지만 권위주의적 성격자가 권위에 맞서 싸우는 것은 본질적으로 반항이다. 그것은 권위와 싸움으로써 자신을 주장하고 자신의 무력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복종에 대한 갈망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전히 존재한다. 권위주의적 성격자는 결코 '혁명가'가 아니다. 나는 그를 '반역자'라고 부르고 싶다. '급진주의'에서 극단적인 권위주의로 뭐라고 설명할 수 없게 표변하여 피상적인 관찰자를 당혹하게 만드는 개인과 정치 운동이 많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들은 전역적인 '반역자'다.

 

p202

 가짜 생각이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것의 허위성이 반드시 비논리적인 요소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행동이나 감정을 실제로 결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인 요소들이지만, 그것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근거에서 설명하려는 합리화에서 이것을 고찰할 수 있다. 합리화는 사실이나 논리적 사고의 법칙과 모순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합리화 그 자체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비합리성은 어떤 행동을 유발한 것처럼 위장한 동기가 실은 진짜 동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진술의 논리성을 판단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합리화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그 사람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동기도 고려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적극적 생각의 결과인 사고는 항상 새롭고 독창적이다. 독창적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 이제껏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외부 세계에서나 내부 세계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수단으로 사고를 이용했다는 의미에서 독창적인 것이다. 합리화에는 본질적으로 이같은 발견과 폭로의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 합리화는 단지 자신 속에 존재하는 감정적 편견을 확인해줄 뿐이다. 합리화는 현실을 통찰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을 기존의 현실과 조화시키려는 사후의 시도다.

 

p224

 1918년에 전승국들이 독일을 너무 가혹하게 대한 것이 나치즘이 대두한 주요 원인의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단서가 필요하다. 독일인 대다수가 강화조약이 부당하다고 느껴지만, 중산층은 몹시 분통하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에 노동자 계급은 별로 억울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구체제에 반대해왔으며, 그런 그들에게 패전은 구체제의 패배를 뜻했다. 그들은 전쟁 때 용감하게 싸웠던 만큼 부끄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느꼈다. 한편 군구제의 패배 덕분에 가능했던 혁명의 승리는 그들에게 경제적 · 정치적 · 인간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분노는 하류 중산층에 토대를 두고 있었는데, 그 국가주의적 분노는 사회적 열등감을 국가적 열등감에 투영한 하나의 합리화였다.

 이런 투영은 히틀러 개인의 성장 과정에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전형적인 하류 중산층의 대표자였고, 성공할 기회나 미래가 전혀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그는 낙오자의 신세를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나의 투쟁》에서 그는 젊은 시절 자기가 '보잘것없는 인간', '이름도 없는 인간'이었다고 자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그 자신의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국가의 상징 속에서 합리화시킬 수 있었다.

 

p239

 강자에 대한 사랑과 무력한 약자에 대한 증오는 가학-피학적 성격의 전형적인 특징이고, 이것은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정치적 행동을 대부분 설명해준다.

 

p249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아이들의 내적 독립성과 개성, 성장과 본래 모습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면, 훈련이 반드시 자발성을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교육이 성장기 아이들에게 부과할 수밖에 없는 제약은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고, 사실은 그것도 성장과 발전 과정을 뒷받침하는 조치다.

 

p251

 우리 사회에서 감정은 전반적으로 억압되어 있다. 창의적 사고가 - 다른 어떤 창조적 활동도 마찬가지지만 - 감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감정 없이 생각하고 감정 없이 생활하는 것이 하나의 이상적인 태도가 되어버렸다. '감정적'인 것이 불안정하거나 정신적으로 불균형한 것과 같은 뜻이 되어버렸다. 이 기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개인은 매우 약해졌다. 그의 생각은 빈곤해지고 단조로워졌다. 한편 감정은 완전히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인격의 지적인 측면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존재해야 한다. 그 결과는 값싸고 가식적인 감상성인데, 이 김상성을 가지고 영화와 대중가요는 감정에 굶주진 수백만 명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죽음을 부인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근본적인 측면 한 가지를 부인하고 있다. 우리 시대는 죽음과 고통에 대한 인식을 가장 강력한 삶의 자극제이자 인류가 서로 단결하는 토대로 삼고, 기쁨과 열정이 강렬함과 깊이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경험으로 삼기는커녕 개인에게 그 인식을 억압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억압이 항상 그렇듯이, 억압된 요소는 시야에서 사라져도 존재하기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죽음의 공포는 우리 사이에 불법으로 존재한다. 죽음의 공포는 아무리 그것을 부인하려고 애써도 여전히 살아 있지만,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불모 상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다른 경험들이 단조로워지는 원인이고, 삶에 널리 퍼져 있는 불안감의 원인이기도 하다.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미국 국민이 장례식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쓰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p255

 오늘날 쓰이는 교육 방법 가운데 독창적인 생각을 실제로 방해하는 몇 가지를 잠깐 언급하고 싶다. 하나는 사실에 대한 지식, 아니 그보다는 정보를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을 많이 알수록 현실도 잘 알 수 있다는 한심한 미신이 널리 퍼져 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산발적인 사실 수백 개를 학생들의 머릿속에 주입한다. 학생들은 점점 더 많은 사실을 배우는 데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기 때문에 생각할 짬이 거의 없어진다. 물론 사실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생각은 공허하고 허구적이다. 하지만 '정보'만으로는 정보가 없는 것만큼이나 생각을 방해할 수 있다.

 독창적인 생각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모든 진실을 상대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진실은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누군가가 진실을 발견하고 싶다고 말하면 오늘날의 '진보적인' 사상가들은 그를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전반적으로 주관적인 문제, 거의 취향에 따른 문제라고 주장된다. 과학적인 노력은 주관적인 요소에서 분리되어야 하고, 그 노력의 목적은 열정이나 관심을 배제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과학자는 마치 의사가 환자에게 접근할 때처럼 손을 소독하고 사실에 접근해야 한다. 상대주의는 경험주의나 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단어의 정확한 용법에 관심이 많다고 스스로 자랑하기도 하지만, 이 상대주의의 결과는 생각이 그 본질적인 자극 - 생각하는 사람의 소망과 관심 - 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 대신 생각은 '사실'을 기록하는 기계가 된다. 실제로 생각이 일반적으로 물질생활을 지배해야 할 필요성에서 발달해온 것처럼, 진실의 탐구도 개인과 사회 집단의 이해관계와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이해관계가 없다면 진실을 찾기 위한 자극제가 없어질 것이다. 진실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집단은 항상 존재하는데, 그들의 대표는 인류 사상의 선구자였다. 반대로 진실을 감추어야만 더 많은 이익을 얻는 집단도 존재하는데, 이 경우에만 이해관계가 진실을 잡는 데 해가 된다. 따라서 문제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진실에 대한 갈망이 모든 인간에게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진실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대한 환상은 혼자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유익한 지팡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팡이는 사람을 더욱 약하게 만들 뿐이다. 개인의 가장 큰 힘은 자신의 인격을 최대한 완성시키는 데 바탕을 둔다. 그것은 자신에게최대한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이간의 힘과 행복을 겨냥한 근본적인 명령의 하나다.

 

p263

 지도자가 흥분을 약속하고 개인의 삶에 의미와 질서를 준다는 정치적 기구와 상징을 제시하기만 하면,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문화를 토대부터 위협하는 위험이다. 자동인형 같은 인간의 절망은 파시즘과 정치적 목적을 키우기 좋은 비옥한 토양이다.

 

p265

 우리의 분석은 자유에서 새로운 의존으로 이어지는 불가피한 순환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것인가? 모든 원초적 유대로부터의 자유는 개인을 너무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는 새로운 유대 속으로 도피해야 할 것인가? '독립'은 '고립'과 같고 자유는 두려움과 같은 것일까? 혹은 개인이 독립된 자아로 존재하지만 고립되지는 않고 세상이나 타인이나 자연과 결합한 상태로 남아 있는 적극적인 자유라는 상태가 존재할까?

 우리는 긍정적인 대답이 있다고 믿는다. 자유가 성장하는 과정은 악순환을 이루지 않고, 인간은 자유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고, 비판적이지만 의심으로 가득 차지 않을 수도 있고, 독립적이지만 인류를 구성하는, 없어서는 안 될 일부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고 자기 자신이 됨으로써 이 적극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자아의 실현이란 무엇인가? 관념론 철학자들은 지적인 통찰을 통해서만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이성이 억누르고 감시할 수 있도록 인격을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분할한 결과 인간의 감정생활만이 아니라 지적 능력까지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성은 자신의 죄수인 본성을 감시하는 간수가 됨으로써 그 자신도 죄수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인격의 두 측면인 이성과 감정은 둘 다 절름발이가 되었다. 자아의 실현은 사고 작용만이 아니라 인격 전체의 실현을 통해, 즉 감정적 잠재력과 지적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 잠재력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지만, 겉으로 표현되는 만큼만 현실이 된다. 다시 말하면 '적극적인 자유는 통합된 인격의 자발적인 활동에 있는 것이다.'

 

p268

 자발적인 활동이 어째서 자유라는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는가? 앞에서 우리는 소극적인 자유가 개인을 고독한 존재로 만들고, 그래서 개인과 세계의 관계는 멀어지고 불신으로 가득 차며, 개인의 자아는 약해지고 끊임없이 위협받는다고 말햇다. 자발적인 활동은 인간이 본래 모습을 희생하지 않고 고독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자아를 자발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다시 세계와 - 인간과 자연 및 자신과 - 통합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런 자발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 사랑은 자신을 다른 사람 속에 용해시키는 것으로서의 사랑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소유하는 것으로서의 사랑도 아니다. 다른 사람을 자발적으로 긍정하는 것으로서의 사랑, 개체적 자아를 보존하는 것을 토대로 하여 그 개인을 다른 사람과 결합시키는 것으로서의 사랑이다. 사랑의 동적인 성질은 바로 이 양극성에 있다. 사랑은 분리를 극복하고 싶은 욕구에서 생겨나 완전한 일체로 이어진다. 하지만 개인이 제거되지는 않는다. 일은 자발성을 이루는 또 하나의 구성요소다. 이 일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방적 활동으로서의 일도 아니고, 부분적으로는 자연을 지배하고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생산품을 숭배하고 그 생산품으로 자연을 노예화하는 관계로서의 일도 아니고, 인간이 창조 행위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창조로서의 일이다. 사랑과 일에 적용되는 것은 모든 자발적 행동에도 적용된다. 감각적 쾌락을 자각하는 것이든 공동체의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든 자발적 행동에는 모두 적용된다. 그것은 자아의 개별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인간과 자연을 자아와 결합시킨다. 자유에 내재하는 기본적인 양분성, 즉 개성의 탄생과 고독의 고통은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더 높은 차원에서 해소된다.

 

p271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서로 다르게 태어나기도 한다. 이 차이의 토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생리적 · 정신적 장비다. 인간은 그 장비를 가지고 삶을 시작하고,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상황과 특별한 경험을 거기에 덧붙인다. 인격의 이러한 개인적 토대는 두 유기체가 육체적으로 결코 같지 않듯이 다른 누구와도 거의 같지 않다. 자아의 진정한 성장은 항상 이 특별한 토대 위에서의 성장이다. 그것은 유기적 성장이고, 오직 이 한 사람에게만 특유한 세포핵이 펼쳐지는 것이다.

 

p282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조건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의 하나는 계획 경제와 각 개인의 적극적인 협력이 상충하는 데에 있다. 큰 규모의 산업 체계처럼 넓은 범위의 계획 경제는 엄청난 규모의 중앙집권을 요구하고, 그 결과 이 집중화된 기구를 관리할 관료 체계가 필요해진다. 한편 각 개인과 전체 체계의 가장 작은 단위들이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협력하려면 많은 분권화가 필요하다. 상부의 계획이 하부의 적극적인 참여와 융합되지 않으면, 또한 사회생활의 물줄기가 밑에서 위로 끊임없이 흐르지 않으면 계획 경제는 다시 민중을 조종하는 체제로 변할 것이다. 중앙집권화와 분권화를 결합하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미 해결하여 자연을 거의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해준 기술적 문제 못지않게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또한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그들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이익을 돌볼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 제어하고 경제 기구를 인간의 행복이라는 목적에 종속시킬 때에만, 또한 인간이 사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에만 인간은 지금 자신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는 고독과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은 오늘날 가난에 시달리기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큰 기계의 톱니나 자동인형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삶이 공허해지고 무의미해졌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한다.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고 공세를 취하여 지난 수백 년 동안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목표로 삼았던 것을 실현해야만 모든 권위주의 체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간 정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하나의 신념, 생명과 진리에 대한 신념, 그리고 개체적 자아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실현으로서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만 허무주의의 세력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북유럽 방식의 보편복지로 가기 위해 보편증세가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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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이처럼 1990년대 스웨덴 노인들의 삶의 질이 상승한 것은 기업과 은행이 연쇄 도산을 하고 실업자가 발에 치이는 와중에 벌어진, 어떻게 보면 매우 비상식적인 사건이다. 모두 알다시피, 한국의 자살률이 IMF 사태 이후 오랫동안 OECD 1위에 머문 것은 끔찍하게 치솟은 노인 자살률 때문이다. 경제위기 이후 극명하게 갈린 두 나라 노인들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얻을 교훈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 앞서 착잡함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우리 사회의 가난한 노인들이 겪어야 했고, 또 지금도 변함없는 그 딱한 처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p43

 세금과 복지의 선진국이란, 사회구조적으로 구성한 한 명 한 명이 서로 긴밀한 도움을 주고받는 연대적 관계로 맺어지는 사회를 의미한다. 물론 이런 사회라고 해서 사악한 행동과 이기적 인간 군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연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에선 구성원 대다수가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사회구조에 편입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세금과 복지를 발전시킨 나라에서는 '선의 평범성'이 사회구조에 따라 자동적으로 실현된다. 한 사회에 속한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관과는 맞지 않더라도 사회구조가 그러하기에 따라야 할 삶의 규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세금과 복지의 후진국은, 거기에도 선한 행동과 이타적인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악의 평범성'이 사회구조에 따라 자동적으로 발현된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연대적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도움이 필요한 동료들을 비정하게 방치한다. 한국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나는 나와 당신의 세금이 우리 모두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를 희망한다. 이것은 사회의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그런 유토피아가 아니다. 세금과 복지를 튼튼히 한다는 것은 '기본을 해놓자'는 의미이지 이것만 잘되면 만사가 문제없다는 만병통치론이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가 이 기본에 충실할 때, 우리들의 세금은 짜증과 스트레스의 요인이 아닌 우리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63

 OECD 주요국 거의 모두가 한국에 비해 '1인당 GDP 대비 1인당 고등교육비'가 한결 높다는 것은 '한국의 등록금이 비싸다'는 인식에 오류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고등교육비는 정부든 가계든 누군가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만약 개별적인 학비 지출이 적고 정부 부담 교육비가 많은 유형의 나라들에서 한국처럼 각자 알아서 학비를 내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이들의 높은 '1인당 GDP 대비 1인당 고등교육비'를 고려할 때 부담 없이 싼 가격으로는 고등교육을 이수할 수 없다. 결국, 한국의 등록금이 비싸다는 것은 세금을 인상해 학비를 공동으로 지불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기 때문이지, 정말로 등록금이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은 아니다.

 그동안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났던 수준 미달의 대학들과 한국의 유달리 높은 대학 진학률, 그리고 지나치게 낮은 '1인당 GDP 대비 1인당 고등교육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무턱대고 등록금 인하를 주장해온 한국의 대학생 및 시민단체들은 관점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보편적인 세금인상을 터부시하는 가운데 본디 비싸기 마련이며, 여타 국가들에 비해 비싸다고 보기도 어려운 '학비'를 내려야 한다고 다분히 억지를 부려왔던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은 등록금이 비싸다는 아우성만을 받아들여 등록금 인상을 간접적으로 억제함으로써 고등교육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우리 사회는 아예 철저한 미국식을 택해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이 천정부지로 치솟도록 내버려둠으로써 대학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든가, 아니면 복지강국의 방식을 택하여 세금을 더 걷는 대신 개별 교육비 지출을 최소화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공적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한국의 후자의 방식을 택하려 한다면 대학 구조조정이 필수이다. 유달리 많은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여타 국가에 준하는 '1인당 GDP 대비 1인당 고등교육비'를 투입하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금의 누수이고 고등교육의 낭비이다. 증세를 통한 개별 학비의 최소화하는 대학 구조조정, 세금과 복지의 총체적인 개혁, 나아가 노동시장의 정상화까지 모두 한 세트로 추진돼야 한다.

 

p66 

 연 30조 원대의 사교육비가 쓰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대규모의 사교육비는 한국의 이례적인 소비 행태다. 막대한 사교육비가 전부 세금으로 납부돼야 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이로부터 일정 부분 보편 증세가 이뤄질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올바르다. 웬만해서 사교육비를 쓰지 않고 그것이 가구의 여유소득이 되며, 그 여유소득 중 일부를 세금으로 내어 복지를 발전시키는 사회가 합리적이다. "사교육에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것도 없고 노후도 대비하지 못할 지경"이라는 사연이 언론의 단골 기사로 올라오는 현실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이런 자해적인 소비 행태를 지속하느니 세금을 더 내고 복지 발전을 요구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도 모두에게도 이득이다. '사교육비 때문에 버겁다'는 헬조선적 션실이 아득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사교육비의 일부는 필히 세금으로 전환돼야 한다.

 

 

 

p155. 저급 정치인들은 조세저항을 먹고 자라난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자가 저렴한 비용을 지불할 때와 고액의 대가를 치를 경우 기대하는 품질은 천양지차다. 쉬운 예로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자 수십만 원대의 고급 음식점을 찾는 손님은 위생, 맛, 직원의 서비스, 장소의 시원함이나 따듯함, 쾌적하고 기분 좋은 인테리어와 분위기 등등 여러 가지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품질을 평가한다. 반면에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 먹는다면, 위생 상태에 예민해하지도 않고 추운 날씨도 개의치 않으며 기막힌 맛이나 호사스러운 서비스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세금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세금을 내는 국민은 그만큼 정치를 대하는 눈높이가 높아지고, 제발 정치에 관심 좀 가지라고 누가 타이르고 보채지 않아도 알아서 야무지게 정치를 감시하게 된다. 고가의 재화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그에 상응하는 고품질을 깐깐하게 따지듯, 높은 세금에 부응하는 고품질의 정치를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다. 이렇게 다져진 냉철하고 단호한 정치의식은 뛰어난 정치를 이끌어내는 거대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최정상의 복지국가에서 평범한 국민은 소득세, 사회보험료 등 수입에서 원천 징수되는 세금에다 소비할 때 납부하는 간접세를 더해, 세금이 충실하게 복지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생활수준이 현저히 떨어질 만큼 무거운 부담을 진다. 세금이 잘못 쓰여 복지에 차질이라도 생긴다면, 나라가 발칵 뒤집힐 만한 정치 지형이 조성돼 있다.

 반면 한국인들은 직접세에 간접세까지 죄다 더해도 어느 소득계층이건 자신의 소득 단계가 달라지지는 않게끔 세금을 낸다. 세금이 작으니 복지도 작고, 복지강국과는 달리 세금과 복지에 따라 삶의 조건이 좌우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늘 세금이 줄줄 새고 복지가 부족하다고 불만이지만, 콕 집어 이 때문에 정치판을 갈아엎기는 어려운 정황이다. 국민으로서는 이래저래 답답한 환경이지만 저급 정치인들에겐 한국 같은 꿀단지가 따로 없다. 높은 조세저항과 낮은 세금은 팍팍한 삶의 근원인 동시에, 정치에 대한 허술한 감시망의 토양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올리는 일은 흔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조세 문명이 발달한 현시대에 이런 사고는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 정치의 기강을 바로잡는 세금의 위력을 감안할 때 증세는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언제 어느 때나 정치는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고, 그들에게 있어 '얼마든지 세금을 늘리라는 국민'처럼 무섭고 불편한 존재도 찾기 힘들다. '진짜' 세금폭탄을 얻어맞는 복지강국의 국민은 사소한 낭비나 비리에도 냉혹한 심판을 내린다. 한국 국민도 만만찮은 세금 출혈을 감수한다면 복지가 잘 굴러가는지, 정치인들이 일을 똑바로 하는지 '날마다 일상에서, 그냥 저절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게 된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정치에 대한 단속을 게을리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조세저항을 극복한 국민의 등장은 한국의 구태 정치인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물론, 세금이 폭증해야만 불량 정치인들이 철퇴를 맞고 정치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정치 후진국 한국에서 정치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또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은, 이미 앞선 국가들에서 검증을 마친,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대안이다. 평범한 소득층마저 '살벌하게' 세금을 내고 대다수 인생의 성패가 복지의 성패에 달려 있다면, 이것은 분명 우수한 정치를 안착시키는 단단한 기반이 된다.

 

 

p160. '낙수효과'와 '부자증세'는 거울에 비친 듯 닮아 있다.

 

 '낙수효과'의 기본 논리는 부자가 막대한 부를 자유로이 쓰도록 내버려둘 때 이들의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 나머지의 후생이 증대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자증세'는 낙수효과란 허구이므로 부자의 막대한 부를 세금으로 걷어 유용한 곳에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낙수효과와 부자증세는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대립일 뿐 실제로 이 둘은 공통된 성격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조세저항을 기저에 깔고 고약한 '대기주의'를 종용하며 자잘한 세수 증대를 내세운다. 복지 발전이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도 이들이 만나는 지점이다.

 부자증세가 왼쪽 버전의 '수동적 대기주의'라면 낙수효과는 그 오른쪽 버전의 쌍둥이다. 우측에서 수동적 대기주의를 조장하는 이들은 '부자나 기업이 돈을 풀어야 일자리가 창출되므로 그때까지 사람들은 참고 기다리는 게 상책'이라고 주장한다. 복지를 명분으로 세금을 올리거나 하면 경제 활력을 해치니까 괜한 간섭은 삼가라는 것이다. 낙수효과가 실현될 때까지 이제나저제나 인내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람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다.

 낙수효과란 이름의 조세저항을 뒷받침하기 위해 근거가 빈약하거나 협박이나 다름없는 논리까지 동원된다.

 

 "분배는 성장을 저해한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다간 나라 망한다."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오지 정부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부자의 세금이 오르면 투자 의욕이 감퇴되어 일자리가 사라지고 애꿎은 서민만 피해를 입는다."

 "부자와 기업이 투자를 확대해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히 세수가 증가하니(이렇게 늘어난 세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건 내 알 바 아니고) 억지로 세금을 인상할 이유가 없다."

 

 

 이 모든 주장들을 관통하는 것은 (부유층의) 조세저항이고, 낙수효과의 출발점도 조세저항의 정당성을 보이는 것이다.

 부자증세에 몰두하는 이들은 낙수효과와 반대 방향에서 시작하지만, 결론에서는 낙수효과와 똑같이 '수동적 대기주의'를 조장하고 (부자가 아닌 이들의) 조세저항을 옹호한다. 소수의 상위층만을 추궁하는 부자증세파는 '탐욕스러운 부자와 대기업이 내놓을 때까지 나머지는 나서지 말라'고 설교한다. 부유층에서 복지재원을 빼내 와야 사회정의가 실현되니 이에 어긋나는 행동은 자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부자증세로 조세 정의가 구현될 때까지 부자와 기업의 허물만을 욕하며 기다리는 것이 미덕이 된다.

 부자증세파는 흔히 부자와 기업을 악랄한 수탈자로, 나머지는 순결하고 가련한 피수탈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는 허상이지 사실이 아니다. 물론, 부자와 기업에게 많은 과오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됐든 뭐가 됐든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다수의 한국인이 날마다 실천하고 있는, 나보다 조금이라도 약자를 착취하는 이기적인 생활양식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사실상 부자증세파는 복지는 핑계고 단지 부자의 세금을 올리는, 그 자체에 함몰된 성격이 짙다. 부자증세로 걷히는 세금으로는 강력한 복지를 구축하는 데 턱없이 모자라다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또한 이들은 보편 증세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비판한다. 이들이 보기에 모두가 세금 분담에 협력하여 복지를 강화하는 것은 서민층과 중산층에 대한 강탈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부자증세의 윤리를 맹종하다 보면, 연대를 추구하는 자유의지에 따라 같이 사는 세상을 앞당기는 데 일익이 되고 싶을지라도 부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부도덕한 행동이 된다.

 표면적으로 '낙수효과'와 '부자증세'는 대립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가만 있으라'를 종용하여 사람들의 삶을 해친다는 측면에서 이 둘은 다르지 않다. 조세저항을 무리하게 두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해로운 논리를 전파한다는 점에서도 서로 닮아 있다. 충분한 세금의 확보를 가로막으며 복지 발전을 방해 한다는 점도 동일하다.

 낙수효과가 부유층의 조세저항을 합리화한다면, 부자증세는 부자가 아닌 이들의 조세저항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여기에 중첩되어 조세 정의의 확립을 명분으로 하는 또 다른 조세저항 합리화 논리가 완고하게 형성돼 있다. 무작정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조세 정의가 미흡한 상황에서 증세를 거부하는 것은 지당하다는 논리이다. 물론 세금이 올바르게 걷히고 쓰이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절대적인 선결 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도리어 조세 정의를 저해하는 발상이다. 누구나 증세에 동참하여 세금에 대한 주인의식이 고양될 때, '눈먼 돈'이 줄기 마련이고 '숨은 돈'도 드러나게 된다.

 세금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언제나 부자와 대기업을 타겟으로 한 '부자증세'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는다. 여기에는 내 돈은 허투루 쓰일지 모른다며 증세를 반대하는 이들이 부자의 돈은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런 인식으로는 조세 정의에 불만을 갖는 이들이 흡족해 할 만큼 그것이 개선될 리 만무하다.

 세금과 복지의 증대에 찬성하지만 그러기엔 신뢰가 부족하므로 보편 증세는 불가하다는 이들은, 애초에 세금이나 복지를 내심 반기지 않는 이들과 자신들을 다르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종내에는 양측의 입장이 만나 서로 의기투합을 한다. 한국에서는 오직 각자도생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간직한 채 말이다.

 

p168

 문제는 현 정부 여당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볼 때 한국의 가장 부실한 분야 중 하나는 조세와 복지인데, 현 정부 여당의 가장 취약점 중 하나도 바로 이 분야다. 장래 한국의 세금과 복지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개연성 있는 구상이 나온 게 없다. 앞으로 세금과 복지가 몰라보게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사람들에게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세금과 복지는 사회구조의 문제이자 삶에 직결되는 제도이므로 이 부문에 대한 기대가 미약하면 실제로 내 삶과 사회가 나이질 것이라는 기대도 위축된다.

 복지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최대 정파가 제자리를 찾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나의 삶도, 그리고 타인의 삶도 세금과 복지를 활용한다면 정말 달라질 것이라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p170

 문 대통령은 취임 2개월을 맞았을 때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며,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 중소기업에게는 증세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이니,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의 증세 화살표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기업과 부자들의 세 부담부터 늘리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보편 증세로 나가는 것이 순서"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보편 증세로 나아가는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맹점이 있기는 하나, '선 부자증세, 후 보편 증세'는 종종 볼 수 있는 단계적 증세론의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이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언급하자,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는 이에 대해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스스로 명예를 지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명예과세'"라고 명명했다. 김태년 당시 정책위의장은 "법인세 더 내면 기업이 사랑받을 수 있으니 '사랑과세'가 어떠냐"고 말했다. 그는 "초고소득자 증세로 세금을 더 내면 부자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존경과세'는 어떠냐"고도 덧붙였다.

 나는 이들의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사회는 돈이 없어도 누구나 병을 고치고 공짜로 대학원까지 갈 수 있는 복지강국이 아니다. 그렇게 풍성한 삶의 자유가 모두에게 보장되기 위해 모두가 성큼 자기 몫을 내어놓는 나라가, 내가 희망하는 세상이다. 그러한 복지 권리가 모두에게 부여되기 위해 일부 부유층만이 그 밑천을 내놔야 한다고 다그치는 나라는 별 울림도 끌림도 없다.

 나는 이제껏 가난한 이들까지 번듯한 집에서 살 수 있는 그런 복지를 원한 적이 없다. 노인들에게 80~90만 원씩 노후 연금을 지급하하는 복지국가 또한 내가 그려온 세상이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온갖 혜택을 선물해주는 나라가 아니라,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누구든 힘을 보태는 나라야말로 내가 희망하는 세상이다. 부자가 아니면, 나눔과 연대를 일단 모른 척하라고 닦달하는 사회는 흉하고 슬프다.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연대하며 살고자 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더 가진 이든, 덜 가진 이든 다 같이 대등하고 소중하다. 세금을 더 내고 복지를 늘리는 일에 부자가 아니니까 빠지라는 주문은, 빈부와 무관하게 고결한 이타심과 희생정신을 가진 모든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한국인들도 사람인데, 그래서 내 몫을 더 내어놓고 같이 살고픈 욕망을 품고 있을 텐데, 한국에는 그런 인간다운 본성을 거세하려는 자들이 판을 친다.

 먼저 대단한 상류층으로 성공부터 하라고, 그래야 세금을 더 낼 명예도 존경도 얻는 거라고 차별하는 자들이 득세한다. 세상이 아무리 삭막하게 시들어가도 무슨 갑부가 아니라면 그저 자기 것을 꽉 부여잡고 있으라고 쪼아대는 자들이 난무한다. 당신들은 부자가 아니니까 나누고 연대할 자격이 없는 거라고 천시하는 자들이 권세를 누린다. 그토록 집요한 혹세무민에 파묻힌 한국인들은 그들도 인간이기에 지닌 존엄한 연대심을 끊임없이 억눌리며 살아간다.

 

 

p180

 무상복지는, 그것을 성토하는 이들과 별개로, 복지를 표상하기에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우선, 처음부터 복지는 무상일 수 없다. 우리는 도로와 다리, 공원을 이용할 때 일반적으로 개별 요금을 내지 않지만 무상도로, 무상다리, 무상공원 같은 말을 전혀 쓰지 않는다. 세금이라는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무상국방과 무상치안을 논하지 않는 것처럼, 무상보육이니 무상급식이니 구태여 무상이라는 사족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공보육, 공공의료, 국공립 어린이집, 급식비 지원 확대 등으로 표현한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p182

 복지가 값진 것은 무상이라서가 아니라 세금이라는 무거운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복지의 한 단면에 불과한 '무상'을 복지의 정수인 양 규정하는 것은 올바른 복지의 의미를 정립하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p191

 그런데 특히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 경우 저소득자와 실업자에게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견해가 종종 사회민주당 내에서도 제기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실제로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소득이 많고 어떠한 사회적 혜택도 받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험들은 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히려 많은 연구들은 보편적 복지시스템이 자산조사를 중시하는 복지시스템보다 실제로 더 많은 혜택을 사회적으로 어려운 집단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만이 아동수당, 무상의료 또는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는다면, 나머지 사회집단들은 그러한 혜택이 가능한 한 값싸게 지급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이유를 들면서 급여의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급여는 자신들은 받지 못하는 것이고, 또 여기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나쁘다고 해도 자기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는 않기 때문이다(카를손. 잉바르 · 린드그랜. 안네마리네 2009/1996 : 139~141)

 

 

 장르는 소설의 형식을 취하지만 내용은 논픽션이다.

읽는 느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과 매우 유사하다. 그만큼 재밋기도 하다.

이 소설집은 선생께서 여기저기에 부탁 등을 받고 써주었던 당시의 소회, 에피소드를 모은 것으로, 책 말머리에도 쓰여 있지만 본인도 이 글을 내가 썼던건가 갸우뚱 거릴 정도로 본인에겐 잊혀진 글이라고 한다. 

무라카미도 장편을 쓰고 난 후의 휴식기에 정신적 휴식을 취하는 시기에 단편을 쓰거나 번역일을 하는 등의 가벼운 작업을 한다고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글들의 내용은 에피소드 지향적으로 논픽션이라는 점을 빼면 소설 그 자체의 성격을 가진다.

가볍게 읽을 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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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

 두 번째로 품은 닭이 "낙서落書"였다. 낙서는 봉혜의 7대손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고생을 했다. 봉혜의 씨가 말라, 봉혜의 적손들이 사는 지눌의 집에서 입양을 해왔는데, 기존의 패거리들에게 엄청 "왕따"를 당했다. 어려서부터 쪼임을 당했고, 모이를 먹을 때도 모이통에 대등하게 머리를 디밀지 못했다. 딴 놈들이 먹으면서 흐트러놓은 모이가 주변의 땅바닥에 떨어지면 빙글빙글 돌면서 재빨리 주워 먹곤 했다. 성경에도 시로페니키아의 여인이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있다(막7:28). 그 광경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일본의 중 · 고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극심한 왕따현상, 결국 우리나라까지 오염되고 말았지만, 그 왕따현상은 일본사회의 독특한 문화에서 유래하는 기풍이 아니라, 동물세계에서 아주 흔하게 목격되는 원초적 생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물세계의 원초성이 인간세의 도덕성보다 더 순박하고 아름다운 측면도 있지만, 인간세의 발전은 바로 약자를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한다고 하는 협동의 국면으로부터 그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 전기는 이미 수렵 · 채집경제사회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수렵은 공동체 성원의 협력(cooperation)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수렵으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니까 타인에 대한 복지나 관회關懷가 없으면 그것은 문명이라 말할 수 없다. 닭사회의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오히려 협력을 거부하는 문명 이전의 상태로 퇴락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인류사회의 한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문명퇴폐의 한 극상極相이다.

 

p147

 그러나 그 험난한 등반여정의 중간 길목에 있는 "깔딱고개"를 코앞에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깔딱고개만 넘으면 그래도 나머지 등반이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깔딱고개는 너무도 숨이 차서 못 넘을 수도 있다. 그러면 결국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깔딱고개란 본시 숨이 차도 무리해서라도 내친 걸음으로 힘차게 행보해야만 넘을 수 있는 것이다.

 

p198

 씨렉은 씨 섹션 c. section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씨 쎅션의 씨(c)는 "씨세리안cesarian"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로마의 황제 "씨이저"라는 말의 형용사형이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암시하는 아주 애매한 예수의 말이 나오고 있다. 여기 "가이사"는 영어 "씨이저"의 로마 원발음에 가까운표기이다. 이 "가이사"를 중국인들은 "개살凱撒"이라고 표기했다. 이것을 북경만다린으로 읽으면 "카이사"가 된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때만 해도 "씨쎅"이라는 말은 없었고 "개왕절개"라는 말만 있었다. 개왕凱王은 곧 씨이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제왕절개"라는 말도 썼다. 개왕凱王은 로마의 황제였으므로 "제왕帝王"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레코-로망 세계를 나이브한 공화체제에서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체제로 전환시킨 가이우스 줄리우스 씨이저Gaius Julius Ceaser라는 인물이 과연 씨쎅으로 태어났는가? 씨쎅의 발상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씨쎅은 과도한 출혈과 패혈증으로 반드시 산모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줄리우스 씨이저는 기원전 100년 7월 12일에 태어났다. 7월을 "줄라이July"라고 부르는 것은 씨이저의 탄생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본따서 명명한 달력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줄리우스 씨이저는 아버지는 조실했지만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씨이저의 산모는 죽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개왕절개의 신화는 엉터리인 것이다. 의학사학자들은 로마의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애기 낳다가 죽은 여자는 반드시 복부를 칼로 갈러보고 매장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것이 후대에 로마황제 씨이저의 칙령으로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개왕절개"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추론하기도 한다.

 

 

p371

 나를 떠받쳐 주었던 물리적 관계가 전혀 나의 존재를 보장해주는 실상이 아닌 허상이었다는 자각에 함몰한다. 그 자각의 결론은 심각한 고독감이다. 그런데 고독이란 인간의 관계없이는 불치의 병이다.

 

 

 일본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 어린 시절부터 정리에 마음을 쓰며 살아온 결과 정리 컨설턴트라는 장르를 개척해냈다.

이 책은 정리의 방법론을 다루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인생의 방법론을 다루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연히 읽게 됐는데 내용이 좋아서 저자의 유튜브 채널까지 찾아보게 됐다. 정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무언가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내 주변의 정리건, 내 마음의 정리 혹은 인생에 있어서 정리가 필요한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한국어 번역본은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인데, 원제는 인생이 설레는 정리의 마법이다. 별 차이가 없다고 느껴지겠지만, 책을 읽어보면 원어 그대로 '설레는' 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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