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물리학을 개척한 20세기 위대한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에 대한 이야기.

저자는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인데, 물리학자의 평전을 쓴다는 건 생뚱맞은 데가 있다.

서론에서 바로 밝히지만, 저자의 아버지인 멜빈 슈워츠가 중성미자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1962년)해서, 198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슈워츠 외에 슈워츠의 스승인 잭 스타인버거와 또 다른 한명인 레온 레더만이 같은 공로로 공동 수상한다.

스승인 잭 스타인버거(스타인버거는 페르미의 직계 제자로 그에게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슈워츠에게 박사과정을 페르미에게서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슈워츠는 콜럼비아 대학을 떠나서 시카고로 가는 것을 꺼려서, 콜롬비아에서 스타인버거에게서 박사과정을 받게 된다(그래도 거기서 연구한 중성미자로 노벨상을 받았으니).

 멜빈 슈워츠의 아들인 저자 데이비드 슈워츠는 아버지 멜빈의 사망 이후, 7년이 지나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다른 물리학자들과 나눈 서신을 발견하다. 그 서신의 내용 중에 엔리코 페르미와 관련된 내용이 있었고, 이에 흥미를 가진 저자는 페르미에 대해서 알아보게 된다.

 그것을 계기로 페르미에 대한 내용을 집필하기로 계획했다는 것이다.

 천재는 흥미를 돋구는 주제 중의 하나이며, 특별히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한 유명한 사람과 관련된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동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동기와 흥미를 가지고 책을 써볼까 생각할 순 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한 정성과 애정이 없었다면 이런 내용을 정리하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만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은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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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9

 학생이건 교수건 페르미의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이 희귀한 정신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년쯤 뒤에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자주 일어날 일을 예견하듯이, 교수들은 직접적인 방법으로 풀리지 않는 방정식이 있으면 페르미를 불렀다. 그는 교수가 고심했던 해법을 향해 꾸준히 다가서서 풀어냈다. 앞으로 계속 그와 함께하게 되는 특이한 습관도 생겼다. 생각에 빠지면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물건(분필, 연필, 어떨 때는 주머니칼)이나 들고 무심코 만지작거리게 된 것이다. 그는 주머니칼로 자기의 오른쪽 관자놀이 근처를 실수로 베었고, 이때 생긴 흉터는 나중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p77

 1922년 10월, 두 사람이 페르미의 장래에 대해 의논하기로 한 날에 무솔리니의 지지자들이 로마에서 행진했다. 총리는 국왕에게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도록 탄원했는데, 이것은 입헌군주제였던 이탈리아에서 왕만이 할 수 있는 조치였다. 코르비노와 페르미는 상황을 주시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 라우라 페르미에 따르면, 두 사람은 왕이 포고문에 서명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코르비노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파시즘 신봉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혐오감을 표현했지만, 왕이 서명하면 긴 피의 내전이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페르미는 왕이 내각의 권고에 거의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왕이 내각을 거스를 것 같습니까?" 페르미는 노회한 코르비노에게 물었다.

 "왕은 각료들이 하자는 대로 하고 결코 나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코르비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왕이 포고문에 서명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면 여전히 희망이 있군요." 젊은 동료가 말했다. 페르미는 분명히 코르비노를 오해했다.

 "희망?" 그는 대답했다. "어떤 희망? 구원이 아니야. 왕이 서명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 독재 정권이 들어설 거야." 코르비노가 옳았다. 왕은 이탈리아에 긴 내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서명을 거부했고, 일주일 만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총리가 되었으며, 코르비노가 예측한 대로 21년 동안 이어질 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p94

 파울리는 일찍부터 수학과 물리학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뮌헨 대학교에서 위대한 이론가 아르놀트 조머펠트에게 배웠는데, 조머펠트는 파울리가 뮌헨에 왔을 때 이미 더 가르칠 게 거의 없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페르미처럼 파울리도 상대성이론으로 과학에 첫 번째 기여를 했고, 16세의 나이에 이 주제로 논문을 썼다. 파울리는 상대성이론에 대해 그가 쓴 글이 독일의 수학 백과 사전에 실리면서 대학생 시절에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페르미와 마찬가지로 신동이었고, 페르미처럼 키도 작아 165센티미터 정도였다. 그러나 거의 모든 면에서 파울리는 페르미와 정반대였다. 페르미는 몸이 단단하지만, 아담했고, 외모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파울리는 통통했고 비만에 가까웠지만, 매혹적인 눈과 감각적인 입술로 어두운 매력이 있었다. 페르미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파울리는 무척 많이 마셨고, 알코올 중독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다. 페르미는 습관적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파울리는 그 반대였고, 카페나 카바레에서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뮌헨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파울리는 뮌헨 슈바빙 지역의 작가, 음악가 등 예술가들과 어울려 지냈다. 반면에 페르미가 물리학 외에 가장 탐닉한 활동은 등산이었다.

 페르미는 이론과 실험 모두에 재능이 있었다. 이론가로서 파울리가 페르미보다 더 재능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실험가로서 재앙이었다. 물리학자들은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분명히 파울리가 근처에 와 있을 거라고 농담을 했다. 파울리의 독설은 전설적이었고, 페르미에게는 전혀 없는 면모였다. 파울리는 '독설가'라는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어떤 동료를 보고 "너무 젊은데도 이미 너무 안 유명하다"고 모욕적인 평가를 했다. 그는 한때 페르미를 "양자 엔지니어"라고 조롱했다. 유달리 애매하고 사변적인 이론 논문에 대해 그는 "너무 엉망이라 심지어 틀리지도 못했다"는 유명한 비판을 남겼다. 그는 절친한 친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바보"라고 즐겨 불렀다. 젊은 시절에는 영국의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에게 이 연로한 학자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추구하는 연구가 물리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대놓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이 뮌헨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을 때, 파울리는 이 위대한 인물의 강연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아인슈타인 교수가 방금 한 말은 들리는 것처럼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p100

 디랙은 어떤 의미에서 파울리와 정반대였다. 오늘날의 우리는 그가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고통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사교성이 심하게 부족했고, 대화할 때 말을 극단적으로 곧이곧대로 이해했다. 한 번은 그가 하이젠베르크에게 사람들이 왜 춤을 추는지 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멋진 여자가 있으면 즐겁다"고 대답했고, 디랙은 한참 생각하다가 "하지만 어떻게 여자들이 멋있을지 미리 알지?"라고 말했다.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디랙이 칠판에 쓴 방정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으나 대답하지 않기도 했는데, 그 학생의 말은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나중에 해명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동료들은 시간당 한 단어를 말하는 것을 '1디랙'이라는 단위로 정의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공격적으로 비종교적이었다. 1927년 솔베이 학술회의에서 벌어진 한 유명한 대화에서 젊은 물리학자들은 철학과 종교에 대해 토론했다. 하이젠베르크의 회상에 따르면, 디랙은 그의 기준으로는 물리학자의 세계에 종교는 설 자리가 없다고 열렬히 주장했다. 대화 내내 침묵했던 파울리는 "우리의 친구 디랙은 종교가 있는데, '신은 없고, 디랙은 그분의 사도다'라는 게 교리일세"라고 말했다. 하이젠베르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크게 웃었고, 디랙 자신이 가장 크게 웃었다고 한다.

 

 

 

p161

 페르미는 디랙의 방법을 철저히 이해했지만, 이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2년을 보냈다. 위그너가 말했듯이, 그는 디랙의 접근 방식의 수학적 복잡성에 완전히 익숙했지만 이것을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더 단순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수학적 복합성 때문이 아니었다. 페르미는 뛰어난 수학자였고,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에 견줄 만했다. 오히려, 페르미의 거의 모든 위대한 업적이 그렇듯이, 단순화하려는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교육적인 이유였다. 

 그는 동료들과 학생들 앞에서 이 주제를 천천히 체계적으로 풀어나가면서 청중이 각 단계를 잘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이 연습의 목적은 자료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함을 사랑하는 물리학자의 기질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다면 자기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디랙에게는 이런 목적이 없었고, 그는 매우 드문 수준의 논문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썼다. 페르미는 디랙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서, 이상한 물리학자의 복잡한 개념과 이국적인 기법을 이해하기 위해 애쓸 생각조차 하지 않을 물리학자들에게 제공해주었다.

 

 

p163

 1920년 후반에 일련의 매우 정밀한 실험의 결과로 베타선 '위기'가 생겼다. 베타붕괴는 물리학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보존 법칙을 어기는 것처럼 보였다. 중심적인 보존 법칙 중의 하나가 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모든 물리적인 과정에서 들어가는 에너지와 나오는 에너지가 같아야 한다. 그러나 베타선 방출은 이 법칙을 어기는 것 같았다. 에너지가 보존된다면, 방출된 베타입자의 에너지는 매우 좁은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베타선 방출 과정은 모두 똑같으므로 베타입자의 에너지는 모두 같아야 하지만, 실제로 방출된 베타입자의 에너지를 측정해보면 예측보다 상당히 넒은 에너지 대역에 퍼져 있었다. 이것은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야구 연습장의 피칭 머신이 항상 똑같은 속력으로 똑같은 방향으로 공을 던지도록 설정되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갑자기 공이 무작위로 다른 속력으로 나온다면, 기계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몇몇 물리학자들은 이 증거에 항복했고, 이 특정한 상황에서는 분명히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보어도 이렇게 생각했고, 1931년 로마에서 열린 코르비노의 페르미 주최의 학술회의에서 이러한 모험을 감행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물리학자들에게는 재앙인 대담한 결론을 내렸다. 러더퍼드는 보어의 결론을 완강히 거부했지만, 에너지 보존의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베타선을 설명하는 대안을 제시한 것은 상상력이 넘치는 파울리뿐이다.

 파울리는 특유의 대담성으로 전자와 함께 다른 입자가 방출된다고 제안했다. 이 입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질량이 너무 작아서(어쩌면 0일 수도 있다) 거의 탐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1930년 12월 독일 튀빙겐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처음으로 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그는 이 가상 입자를 '중성자neutron'라고 불렀고, 이 입자가 베타붕괴에서 관찰되지 않은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며, 따라서 에너지 보존 법칙은 깨지지 않는다고 제안했다.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중성자라고 부르는 입자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2년 뒤에 제임스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하며 엄청난 충격을 일으켰고, 이때 페르미와 그의 팀은 파울리의 가설적 입자를 '중성미자neutrino'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파울리의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리학자들 중 일부는 저명한 물리학자의 말을 빌려, 베타선 방출 문제에 대해 이런 견해를 가졌다. "그냥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신설된 세금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보어의 편을 들어, 보이지도 않고 엄청난 거리를 방해 없이 통과하는 입자라는 아이디어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중성입자가 있다고 하기보다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다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무도 전자와 중성미자가 방출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자와 중성미자가 언제나 핵 속에 있고, 적절한 자극만 주면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아니면 어떻게든 핵 안에서 만들어진 다음에 바로 방출될까?

 

 원자핵 속에 중성자가 들어 있다는 채드윅의 발견이 단서가 되었다. 광자의 생성과 소멸을 기술하는 디랙의 양자전자기역학이 두 번째 단서였다. 요르단과 위그너의 2차 양자화가 세 번째 단서가 되었다. 파울리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페르미는 4년 동안 배운 모든 것을 베타선 문제에 적용했다. 1933년 후반과 1934년 초에 독일과 이탈리아의 학술지에 실린 그의 논문 <베타선에 대한 잠정적인 이론 A Tentative Theory of Beta Rays>에서 페르미는 이 주제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밝혔다. 80년이 지난 지금, 이것은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페르미는 양자 상호작용이 하나 더 있다고 제안했다. 이 상호작용은 입자들이 서로 매우 가까이 있을 때만 일어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약한' 상호작용이라고 부른다. 이 상호작용은 중성자를 양성자로, 양성자를 중성자로 바꾼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새로운 입자가 생성되어 높은 에너지로 핵에서 탈출한다.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면 전자와 반중성미자가 방출된다.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면 양전하를 띈 전자(양전자)와 중성미자가 방출된다. 방출된 입자의 에너지 총합은 항상 같지만 각각의 입자가 가지는 에너지는 양자장 이론의 직접적인 결과인 양자 규칙에 따라 달라진다. 전자와 중성미자(그리고 대응되는 반물질 입자들)는 그 전에는 핵 안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방출되는 순간에 생성된다. 중성미자 또는 반중성미자가 물질과 상호작용할 가능성을 이 이론으로 계산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너무 낮아서 중성미자는 물질과 전혀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면서 수백만 킬로미터를 달려갈 수 있다. 

 

 이 논문의 성립과 발표에는 흥미로운 내막이 있다. 페르미는 1933년 후반까지 이 연구를 진행했다. 베타선 방출 문제는 페르미가 참석한 1933년 10월 솔베이 학술회의의 주요 관심사였고, 학술회의 기간 동안 페르미와 파울리는 파울리의 중성미자 아이디어에 대해 깊이 논의했다. 그해 크리스마스쯤에 페르미는 그룹의 스키 휴가 때 로마의 동료들에게 주요 아이디어를 편하게 설명할 만큼 충분히 발전시켰다. 이 휴가 직후에 페르미는 영국 학술지 <네이처>에 이 논문을 보냈다고 세그레는 말한다. 로마 그룹이 히틀러가 부상하면서 독일의 학술지를 보이콧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그레에 따르면 검토자 한 사람이 이 논문이 너무 "사변적"이라고 보았고, <네이처>가 논문을 거절했다. 이에 페르미는 논문을 이탈리아의 학술지 <누오보 시멘토>와 독일의 <물리학 저널>에 보냈고, 두 학술지가 모두 이 논문을 게재했다. 이 이야기는 논문에 얽힌 이야기들 중에서도 워낙 중요해서 위키피디아에는 나중에 <네이처>가 이 논문을 거절한 것은 가장 터무니없는 편집자의 실수 중 하나라고 공개적으로 후회했다고 쓰여 있기도 하다.

 

 사실, 논문 거절을 후회한다는 공식적인 언급은 네이처 후속 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검토자가 쓴 거절 편지를 네이처 기록 보관소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십 년 전에 새로운 사무실로 이사하면서 모든 기록이 파기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가들은 이 이야기 전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네이처>는 당시에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짧은 노트만 게재를 허용했고, 새로운 양자장 이론에 대한 상세한 발표를 위한 지면이 아니었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페르미가 투고했을 법한 더 그럴듯한 영국의 학술지는 <런던 왕립학회 회보>다 양자전기역학에 대해 디랙이 쓴 초기의 중요한 논문들이 모두 여기에 실렸으므로, 페르미가 베타붕괴 논문을 제출했다면 이 학술지에 체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 역사가들은 페르미가 독일의 연구자들, 특히 보른,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누구보다 파울리가 자신의 논문을 먼저 읽기를 원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가 독일 학술지에는 아무것도 싣지 말아야 한다는 젊은 동료들을 의식해서 선의의 거짓말(제출했지만 <네이처>가 거절했다)로 상황을 모면하면서 자기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논문의 실제 출판 내막이 무엇이든, 물리학 공동체의 즉각적인 반응은 신통치 않았따. 파울리와 위그너는 이 논물을 높이 평가했다. 페르미는 디랙의 양자장 체계 전체를 자기의 사고에 통합했고, 이것을 베타선 방출 문제에 독창적으로 적용했다. 문제는 이 이론을 실험으로 검증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중성미자는 탐지하기가 불가능해 보였고, 페르미조차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의심했다. 그는 양자전기역학을 완전히 익혔고, 겉보기에 완전히 다른 현상을 이 이론에 사용된 수학을 설명하면서 개인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 논문의 진가는 몇십 년 뒤에야 제대로 알려지게 된다. 이것은 자연의 근본적인 힘이 한 가지 더 있다는 최초의 암시였다. 약력 또는 약한 상호작용이라고 보르는 이 힘은 중력, 전자기력, 강력과 함께 자연의 네 번째 근본적인 힘으로 알려지게 된다. 10개가 넘는 노벨상과 물리학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 몇 가지가 여기에서 나왔다.

 1970년대에, 나중에 페르미가 시카고 대학교에서 가르친 제자 첸닝양(Chen Ning Yang)이 페르미의 동료이자 친구인 유진 위그너에게 물리학자들이 페르미의 가장 중요한 공헌이 무엇이라고 기억할지 물어보았다. 위그너는 베타선 방출 논문이 페르미의 가장 중요한 연구라고 말했다. 양은 동의하지 않았고, 페르미온의 생성/소멸 연산자와 함께 2차 양자화를 발명한 사람은 바로 요르단과 위그너 본인이라고 지적했다. 위그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지.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물리학에서 실제로 쓰일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네." 베타붕괴 논문이 페르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는 위그너의 평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p183

 여름방학을 앞두고 페르미와 팀은 주기율표의 원소들을 계속 조사했고, 마침내 가장 무거운 원소인 토륨과 우라늄에 이르렀다. 가장 무거운 원소에 중성자를 포격하면 더 무거운 원소, 이른바 초우라늄 원소가 생성될 거ㅓㅅ이라는 생각이 물리학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미는 팀이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고스티노는 더 가벼운 부산물을 찾아내는 과정을 진행했다. 주기율표의 밑으로 내려가면서 납까지 찾기로 했고, 납보다 더 가벼운 원소는 생성될 수 없다고 가정했다. 그는 아무 원소도 찾지 못했고,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팀이 잠정적으로 도달한 결론은(다고스티노가 부산물을 깨끗하게 분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저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실제로 새로운 무거운 원소가 생성ㅇ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화학자 이다 노다크 Ida Noddack 만이 초우라늄 가설은 틀렸다고 주정했고, 페르미가 실제로 한 일은 우라늄 핵을 훨씬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개서 납보다 가벼운 원소를 만들어 낸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그녀의 제안은 무시되었는데, 주로 그녀를 비롯해서 어느 누구도 그러한 사건을 설명하는 메커니즘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잠정적인 결론은 확고한 결론으로 뒤바뀌었다. 여름휴가가 시작될 때쯤, 코르비노가 린체이 아카데미 강연에서 섣부르게 페르미와 그의 팀이 초우라늄 원소를 발견했다고 열정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 연설은 이탈리아와 전 세계 신문의 머리기사로 보도되었다. 코르비노는 연설을 하기 전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고, 불확실한 결론이 최종 결론으로 발표되자 페르미는 충격을 받았다. 신중한 페르미는 결과를 절대적으로 확신할 때만 발표하는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고, 결과가 틀린 것으로 판명되면 자기의 명성을 망칠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잠 못 이루는 하룻밤을 보냈다. 스승이자 이탈리아에서 핵심적인 후원자였던 코르비노와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는 어려웠다. 다음 날 아침에 그는 코르비노에게 직접 자기의 걱정을 말했다.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코르비노는 그 발표의 중요성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짜릿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잊힐 수 없었다. 페르미가 그 발견을 믿고 싶어했는지 스승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스스로 완벽하게 부인한 적은 없었다. 5년 뒤에 노벨상 위원회는 느린중성자와 초우라늄 원소의 발견을 언급하면서 페르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주었다. 바로 그 순간에 베를린에서 리제 마이트너, 오토 한, 프리츠 슈트라스만으로 구성된 훌륭한 팀이 페르미 팀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밝혀냈다. 페르미는 초우라늄 원소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우라늄 원소를 쪼갠 것이었다.

 

p185

 

 아주 드물게, 자연은 우리에게 커튼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짝 엿보게 해준다. 1934년 10월 18일에, 아말디와 폰테코르보가 그런 기회를 허락받았다.

 둘은 먼저 은을 중성자로 포격해보았다. 은의 알려진 반감기는 2.3분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표준으로 삼아서 다른 정량적인 측정을 진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제에 봉착했다. 은 과녁에 대한 중성자 방출원의 효과가 방출원에서 과녁까지의 거리뿐만 아니라 과녁ㅇ에 방출원을 놓은 탁자에도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대리석 탁자에서 실험을 했을 때는 나무 탁자를 쓸 때보다 방사능이 상당히 약했다. 이것은 전혀 부풀리지 않더라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왜 방사능의 세기가 방출원과 과녁을 놓은 탁자에 영향을 받을까? 아말디와 폰테코르보는 다음 날까지 측정을 계속했다. 토요일인 1934년 10월 20일까지도 이 이상한 현상은 사라지기를 거부했고, 그들은 페르미에게 이 수수께끼를 가져갔다.

 

 

 

.....

 

 

결과는 놀라웠다. 은의 방사능 세기를 파라핀이 없을 때보다 훨씬 강했고, 이제까지 연구팀이 측정한 어떤 경우보다도 더 강했다.

 파라핀의 효과를 확인한 뒤에, 페르미는 팀이 점심 식사를 하러 가야한다고 했다(중대한 실험 중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처음이었고, 마지막은 아니었다). 그는 늘 습관에 충실했지만, 이번 휴식은 오전에 목격한 이상한 효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오후 3시, 팀이 원기를 회복해서 멈췄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준비를 마치고 실험실로 돌아왔을 때, 페르미는 이 현상을 이해하고 그의 통찰을 나눌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페르미의 첫 번째 관찰은 파라핀에 탄화수소가 매우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파라핀의 많은 부분이 수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두 번째 관찰은 수소 핵이 중성자와 질량이 거의 똑같고, 다른 무거운 핵들은 질량이 두 배, 세배, 다섯 배 또는 심지어 수백 배가 된다는 것이었다. 중성자가 수소 원자에 부딪히면 속력이 크게 줄어든다.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 당구공을 생각하자. 당구공을 쳐서 다른 당구공을 때리면, 두 공 사이에 운동에너지가 나눠지고, 원래의 공은 과녁 공에 운동에너지를 나눠주어 속력이 느려지며, 과녁 공은 충돌의 영향을 상당히 이동한다. 이번에 탁구공으로 볼링공을 때린다고 하자. 볼링공은 거의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고, 탁구공의 에너지는 볼링공에 거의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탁구공이 볼링공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이다. 탁구공은 볼링공에 충돌하고도 거의 느려지지 않고, 충돌하기 전과 거의 같은 속력으로 튕겨 나온다.

 이와 비슷하게, 수소 함량이 많은 물질은 무거운 원소의  함량이 많은 물질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중성자를 느리게 한다. 그다음 질문은 이렇다. 왜 중성자를 느리게 하면 과녁 원소의 방사능이 커지는가? 이것이 점심시간 동안에 페르미가 깨달은 수수께끼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고속일 때 중성자는 핵 속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느린 중성자는 핵 속으로 들어가기도 쉽고, 내부에서 충돌하다가 거깅에서 멈출 확률도 높아서, 핵의 불안정성을 높여서 방사능을 일으킨다. 이것은 사실 에너지가 높은 중성자가 과녁의 방사능을 더 높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정반대였다.

 

 페르미의 아이디어는 파라핀 실험의 결과를 설명했다. 나무 탁자에는 대리석 탁자보다 수소 원자가 많으므로 아말디와 폰테코르보가 본 비정상적인 결과를 낳는다. 또한 파라핀처럼 수소가 많은 물질이 방출원과 과녁 사이에 놓이면, 훨씬 더 많은 중성자가 느려진다. 

 이 관찰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실온에서 수소가 더 많이 들어 있는 물질로 실험을 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구내에 물이 있었다. 로마 대학교 물리학과 건물 뒤뜰에는 금붕어 연못이 있었다. 출처가 의심스러운 이야기에 따르면, 그룹은 건물 밖으로 나가서 페르미가 연못의 물을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매체로 사용해서 실험을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물의 효과는 파라핀보다 더 강했다. 역사는 금붕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기록하지 않았다.

 

p190

 느린 중성자의 효과를 발견한 다음에, 그룹은 즉시 1934년 3월부터 했던 실험을 반복하면서 각각의 원소에 느린중성자를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쬐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았다. 1934년 말에 페르미는 그 효과를 이해했다고 확신했다. 1935년 2월에 그는 느린중성자 연구를 요약한 비교적 긴 논문을 왕립학회에 제출했다. 그는 또한 중성자와 핵의 충돌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종이에 계산하는 방식으로 원시적인 형태의 모의실험을 했는데, 나중에 로스앨러모스에서 1세대 컴퓨터를 사용해서 이 작업을 계속하게 된다. 이것은 중성자가 특정한 과녁을 때릴 때 물질을 뚫고 들어가는 각 단계에 대해서 확률에 따라 중성자의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그는 종이와 연필을 사용해서 모의실험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주어진 확률에 따른 결과의 분포를 분석할 수 있었다. 카지노에서 하는 도박처럼 우연이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중에 '몬테카를로' 방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은 페르미가 기여한 지속적으로 매우 널리 사용된 유용한 분석 방법 중 하나다. 묘하게도 페르미는 이 새로운 분석 방법이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전자 컴퓨터가 크게 발전해서 몬테카를로 모의실험이 훨씬 쉬워질 것을 페르미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단지 여러 해가 지난 뒤인 전쟁 중에 세그레에게 자기가 그런 계산을 해봤다고 말했을 뿐이다.

 1934년은 로마 학파 최괴의 해라고 할 수 있다. 페르미와 그의 팀은 7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에 부족한 재정 지원과 원시적인 장비만으로 방사능과 원자핵을 탐구했다. 그들의 장비는 분명히 버클리의 로런스 팀이 사용할 수 있는 정도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격하는 중성자를 감속시키면 방사능이 더 많이 유도된다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들은 물리학계의 다른 연구팀들이 실험을 재현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상세한 데이터를 만들었다. 페르미는 실험 프로그램을 강력히 밀어붙여서 베를린, 파리, 버클리, 케임브리지를 비롯해서 모든 경쟁자에 앞서서 지속적인 중요성을 지닌 결과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5년쯤 뒤에 일어날 역사적인 드라마의 무대를 만들었고, 그는 이 드라마의 주역이 된다. 크게 보아 세계를 위해서는 다행스럽게도, 페르미나 그의 팀은 당시에는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성취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p198

 이제 로마의 물리학 연구는 더 이상 순수한 재미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물리학에서 순수한 재미를 찾았던 페르미였지만, 그때부터 적어도 10년 동안은 물리학이 순수한 즐거움일 수 없었다. 페르미 자신의 노력으로 제2차세계대전을 끝낸 뒤에도, 물리학은 다시는 초기의 순수한 즐거움이 되지 못했다.

 

p309

 아르곤 팀에 새로 들어온 사람 중에는 페르미의 비범한 능력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직접보지는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눈앞에서 페르미의 능력을 보고 당연히 감명을 받았다. 루이스 앨버레즈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1930년대 초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콤프턴의 제자로서 앨버레즈가 했던 연구는 페르미가 도착할 때쯤에는 시카고 대학교의 전설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학위를 받은 뒤에 시카고를 떠나 버클리의 로런스 팀에 들어가서 사이클로트론으로 중요한 실험을 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앨버레즈는 영국과 MIT에서 레이더 개발에 참여했고, 1943년 여름에 아르곤으로 와서는 CP-2에 기어오르면서 리비와 함께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인 새로운 계측 장치 설계와 제작 일을 했다.

 앨버레즈는 결코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페르미를 처음 만난 경험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특히 가치가 있다. 그는 아르곤 연구소의 카페테리아에서 페르미, 마셜 부부, 허버터 앤더슨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중성자가 엑스선과 비슷한 굴절 법칙을 따를 수도 있다는 점을 토론했다. 페르미가 엑스선 굴절의 정확한 공식을 기억할 수 없다고 마하자, 앨버레즈는 콤프턴과 앨리슨이 쓴 엑스선 회절에 관한 고전적인 교과서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앨버레즈는 옆방에 그 책이 있는 것을 봤다면서 자기가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페르미는 그런 수고를 할 필요 없다고 자기가 공식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앨버레즈는 페르미가 했던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콤프턴 밑에서 배우면서 나는 엑스선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 보았지만, 기본 원리에서 출발해서 굴절률 공식을 유도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엔리코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고전 전자기장 방정식을 칠판에 쓴 다음에 여섯 단계에 걸쳐 공식을 유도했다. 이 묘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엔리코가 책을 보면서 그래도 베껴 쓰듯이 일정한 속도로 한 줄 한 줄 써내려갔다는 것이다. 그날 밤에 나는 집에서 공식을 똑같이 유도해보았는데, 그 일은 꽤 재미있었다. 어떤 단계는 아주 쉬워서 내가 엔리코보다 더 빨리 유도할 수 있을 정도였고, 어떤 단계는 너무 어려워서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엔리코는 쉬운 단계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속도로 어려운 단계를 해냈다.

 

 두 사람은 나중에 좋은 친구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버클리로 돌아간 앨버레즈는 가끔 페르미에게 최근 졸업생을 버클리 대학교에 박사후연구원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페르미는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페르미를 처음 보는 미국의 젊은 물리학자들은 까다로운 문제를 척척 해결해내는 그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앨버레즈 세대의(페르미보다 약 10년쯤 젊은) 뛰어난 물리학자들은 하이젠베르크와 디랙 같은 페르미의 유럽 동료들과 가까이 있으면서 연구해본 적이 없었다. 이들과 가장 비슷한 살마으로, 1920년대 후반에 유럽 스타일의 이론물리학을 미국으로 가져온 버클리 대학교의 오펜하이머가 있었다. 양자론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 연구하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페르미를 직접 겪어본 미국의 젊은 물리학자들이 점점 많아졌고, 그들은 앨버레즈의 경외감을 공유했다.

 이러한 경외감은 젊은 세대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1954년에 열린 페르미의 추도식에서 새뮤얼 앨리슨은 핸퍼드행 기차에서 콤프턴이 페르미와 나눈 잡담을 회고했다. 그는 페르미에게 자기가 안데스산맥에서 우주선 연구를 할 때 시계가 잘 맞지 않았다고 말했고, "여기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고 결국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다"고 하면서 페르미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페르미는 곧바로 호주머니에서 연필, 종이, 계산자를 꺼내 들었고, 몇 분 뒤에 그 현상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계의 오차까지 추정했다. 콤프턴의 오랜 조력자였던 앨리슨은 콤프턴이 감탄하는 모습을 결코 잊어버릴 수 없었다.

 

p336

 파인먼은 페르미의 명성 따위에는 아무런 감명을 받지 못했지만, 계산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 때문에 이 이탈리아 이민자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러 해 뒤에 그는 페르미를 처음 만났던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는 그와 회의를 했는데, 그때 나는 어떤 계산을 해서 결과를 얻은 상태였다. 계산이 너무 정교해서 매우 어려웠다. 이런 일에 능숙했던 나는 언제나 계산에서 어떤 값이 나와야 하는지 알 수 있었고, 계산에서 왜 그런 값이 나오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너무 복잡해서 왜 그런 값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페르미에게 이런 문제를 풀고 있다고 말했고,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잠깐, 자네가 결과를 말해주기 전에, 내가 먼저 생각해보겠네. 이건 이런 식으로 될 것 같고(그가 옳았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이건 이렇게 될 거야. 그래서 이것이 완벽하게 분명한 설명이지."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는 나보다 열 배나 더 잘했다. 이 일은 나에게 큰 교훈이었다.

 

p338

 페르미는 노이만의 수학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몇 년 뒤에, 전쟁이 끝나고 로스앨러모스에서 여름 연구를 마치고 돌아온 페르미는 시카고 대학교 교수 클럽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동료들에게 노이만이 특히 까다로운 수학 문제를 거장의 솜씨로 풀어낸 이야기를 했다. 페르미의 젊은 동료 물리학자 코트니 라이트에 따르면, 페르미는 그가 이 문제를 풀 때 자신이 했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쟁기에 앉은 파리가 '우리가 밭을 갈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

 

p342

 추는 젊은 아내와 함께 주최한 파티에 페르미가 참석했던 일을 회상했다. 추는 둥글게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로 가위를 넘겨주는 파티 게임을 제안했다. 가위를 받은 사람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으면 가위를 접은 채로 건네주고, 다리를 꼬지 않았으면 가위를 벌린 채로 넘겨준다. 몇몇 사람들은 그 비밀을 알고 있었고, 나머지는 게임을 지켜보면서 추측으로 알아내야 했다. 가위가 여러 번 돌아갔지만 페르미는 규칙을 알아내지 못해서 안달했다. 규칙을 일찍 알아낸 라우라가 좌절감에 빠진 남편에게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페르미는 결국 너무 화가 나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아내와 함께 일찍 자리를 떠났다. 추는 당황했지만, 페르미는 이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 추는 시카고 대학교로 갔고, 페르미의 대학원생이 되었다.

 더 큰 파티에서는 스퀘어 댄스를 출 때도 있었는데, 페르미 가족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최초의 핵분열 무기의 퓨즈 장치를 개발한 물리학자 로버트 브로드의 부인 버니스는 이 기간 동안 자주 만났던 스퀘어 댄스 그룹을 이끈 사람 중 하나다. 나중에 그녀는 페르미 가족이 초보자를 가르치는 자리에 온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처음에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했는데, 복잡한 춤 동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조금 지나서 라우가와 넬라가 댄스에 동참했지만 엔리코는 여전히 움직임을 연구하면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목소리로 자기가 스퀘어 댄스에 합류할 준비가 되면 말해주겠다고 했는데, 춤을 자세히 보면서 동작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그가 내게 와서, 내가 직접 파트너가 되어준다면 끼어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스퀘어 댄스를 이끄는 커플이 되겠다는 것이었는데, 처음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거절할 수도 없었고, 그대로 음악이 시작되었다. 그는 정확한 박자로 나를 인도했고, 어떤 동작을 해야 언제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그때나 그 이후나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춤을 즐겼다고 말하지 않겠다. 가장 잘하는 사람들도 늘 실수를 하는데 그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긴장을 풀고 즐기라는 충고도 했다. 그는 관대하게 웃었지만, 나는 그가 발이 아니라 머리로 춤을 춘다는 것을 알았다.

 

 그도 결국에는 스퀘어 댄스를 즐기는 법을 익혔고, 아주 잘 익혀서 전쟁이 끝난뒤에 시카고 시절에 페르미 가족이 연 많은 파티에서 스퀘어 댄스는 붙박이 행사가 되었다.

 

p345

 이제 페르미는 임계점에 도달한 정확한 순간에 빠른중성자를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초기 중성자 공급 장치'를 설계하려고 했지만, 이런 시도는 폭탄의 물리학을 담당한 그룹의 책임자 로버트 바커를 난처하게 했다. 바커는 존경받는 실험가였고, 전쟁 뒤에도 길고 성공적인 경력을 쌓게 된다. 페르미와 바커는 서로 크게 존경했지만, 바커는 페르미가 조금 골칫거리가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페르미는 초기 중성자 공급 장치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지만, 바커가 보기에는 모두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페르미가 이 장치 때문에 바커의 속을 썩이기는 했지만 나중에도 둘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이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생각에 페르미는 자기가 그 아버지라고 불리게 될 이 엄청난 물건이 점점 더 거대한 무기가 되어가는 것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했던 듯 하다. 그는 그 점을 끔찍하게 걱정한 것 같다. (...) 그는 초기 중성자 공급 장치뿐만 아니라 전체 프로젝트에 대해 걱정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들여다볼 수 있는 일이 초기 중성자 공급 장치를 개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집중했고, 그 일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또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동작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는 온갖 것을 다 검토했고, 하루 뒤나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나 또는 베테를 붙들고 그 중성자 공급 방법이 왜 동작하지 않는지에 대해 새로운 이유를 대곤 했다.

 

 

 바커의 추측대로 페르미는 프로젝트의 엄청난 함의를 마침내 이해하고 문제 해결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방법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실제로 페르미가 완전한 연쇄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수의 중성자를 장치가 파괴되기 전에 방출시키는 일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쩔쩔맸을 수도 있다. 어쨌든, 바커와 오펜하이머는 1943년 말에서 1944년 초에 메사의 거주자로 도착한 닐스 보어와 그의 아들 오게 Auge Bohr 에게 이 일을 할당했다. 바커는 보어 부자의 설계를 페르미가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았고, 그가 옳았다. 덴마크의 부자는 며칠 동안 고심한 끝에 우아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페르미가 로마에서 사용했던 중성자 방출원을 공 모양으로 만든 이 장치는 "성게"라고 불렸고, 플루토늄 공 안쪽에 설치된 이 장치가 내폭의 엄청난 압력을 받으면 파괴되기 전에 중성자 10~100개를 방출한다. 이 정도의 중성자만으로도 플루토늄 구 전체에서 완전한 폭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우아한 해결책을 본 페르미는 그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p347

 독일과의 전쟁은 1945년 4월 말에 끝났다. 5월 2일에 독일 의사당 건물에 소련 국기가 내걸렸다. 연합군의 가장 중요한 유럽의 적을 실질적으로 물리쳤고, 이와 함께 하이젠베르크와 그의 동료들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사라졌다.

 제러미 번스타인이 결론적으로 보여주듯이, 독일은 핵무기를 만드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중수를 감속재로 사용한다는 최초의 결정으로 그들의 프로젝트는 시작하자마자 끝장이 날 운명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나중에 프로젝트를 지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듯이 말했지만, 오늘날 역사가들 사이의 합의는 이 설명이 얼마간 자기 변명이라고 본다. 덧붙여 독일인들이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하기로 했을 때, 그들이 사용한 흑연은 불순물이 너무 많아서 감속재로서의 성능이 크게 떨어졌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들은 우라늄의 임계질량을 매우 크게 잡았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유지되는 연쇄 반응조차 성취하지 못했다.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자 맨해튼 프로젝트의 본질이 크게 바뀌었다. 페르미를 포함해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많은 과학자가 보기에 이 프로젝트를 계속해야 할 정당성이 사라졌다. 최초의 핵무기를 만드는 경쟁에서 독일이 탈락했다. 미래를 내다볼 때, 일본이 원자폭탄을 가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속 연구소의 과학자들, 그중에서 특히 제임스 프랑크와 레오 실라르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진행을 늦추거나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고 보았고, 폭탄을 개발했다고 해도 일본에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로스앨러모스의 과학자들은 시카고의 과학자들의 동요가 커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일부는 이러한 불안감에 동조했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군부의 생각은 달랐다. 그로브스는 핵무기의 완성을 독려하려고 했고, 이 길이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는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며, 핵무기의 효율성을 평가해보고 싶어했다. 새로운 대통령 해리 트루먼 주변에 있는, 프로젝트를 잘 아는 소수의 인사들(가장 주목할 만한 사람은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 이었다)도 그로브스와 생각이 같았다. 취임하고 나서야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된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헨리 스팀슨 장과은 5월 말에 네 핵심 과학자, 아서 콤프턴, 페르미, 로런스, 오펜하이머를 워싱턴으로 불렀다. 그들은 핵무기 프로젝트 전체의 미래에 대해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조어을 담당하는 '임시 위원회'에 조언을 하게 되었다. 스팀슨이 위원장을 맡은 이 임시 위원회는 정부의 최고위급 민간 관료와 군부 지도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팀슨의 펜타곤 사무실에서 열린 이 회의는 아침 10시쯤 시작해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되었고, 오후 늦게 끝났다. 콤프턴은 나중에 회고록에서 이 모임에 대해 회상했다. 회의에서는 프로젝트의 현재 상황, 핵무기의 효과에 대한 추정,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사용한다면 언제 할 것인지, 소련에는 어떻게 알릴 것인지, 전쟁이 끝난 뒤의 비밀 유지 방법,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점심 식사 중에 콤프턴과 로런스가 일본의 정치와 군사 지도부를 초청해서 폭발 시범을 보이는 방안을 지지했다. 폭발 시험의 경험이 너무 극적이어서 일본인들이 재빨리 평화를 위한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있었다. 오펜하이머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는 폭탄을 일본에 떨어뜨리기를 원했다. 그는 저항하는 일본이 항복할 만큼 시범이 극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핵무기가 재래식 폭격보다 특히 더 비인간적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이미 도쿄를 포함한 일본의 대도시들이 폭격으로 초토화되었고, 약 20만 명이 죽었다.

 오펜하이머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회의에 참석한 정치 지도자들은 전쟁을 빨리 끝내거나 후속 침공을 쉽게 하거나 어떤 목적으로든 일본에 핵무기를 쓰는 쪽으로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그들의 의견상, 가장 빠른 방법은 군수품을 생산하는 일본의 주요 도시에 극적으로 폭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즉각적인 미래에 폭탄을 하나 또는 둘 정도만 만들 ㅅ 있는데, 폭탄 하나를 단순한 시범용으로 소모하는 것에 명확히 반대했다. 시범용으로 하나를 쓴다면 남은 무기가 단 하나뿐인데 일본 사람들이 시범을 보고도 기대했던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시범에서 폭탄이 불발이라도 되면 문제가 더 악화되리라.

 

 

 

 

 

......

 

 물론 가장 큰 아이러니는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그룹의 권고안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크의 보고서와 실라르드의 청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측근들은 정치적, 군사적 고려를 바탕으로 일본의 도시들에 무기를 사용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유일한 문제는 폭탄을 투하할 도시를 선정하는 일이었다. 젊을 때 일본을 여행한 스팀슨은 장엄한 문화 수도인 교토를 잠재적 타격 목표에서 제외했지만, 다른 모든 도시를 똑같이 대했다.

 

 과학자들은 1945년 7월과 8월에 이루어진 결정에 그들이 한 역할을 두고 오랫동안 애를 태웠다. 더 강하게 나갔어야 했을까? 더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했을까? 그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워싱턴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이러나 저러나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p360

 앨리슨도 나중에 그날(첫 핵실험의 날, 1945년 7월16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해 회상했다. 가는 길에 타이어가 터져서 앨리슨은 페르미를 남겨두고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가까운 정비소로 향했다. 그러나 앨리슨이 수리 장비를 구하기도 전에 페르미가 차를 몰고 쫓아왔다. 마침 지나가는 물리학자가 아르곤 가스통을 갖고 있어서, 바퀴에 아르곤 가스를 채웠다고 페르미가 말해주었다. 안전하지만 아주 비싼 기체를 자동차 바퀴에 넣는 일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p361

 1945년 7월 24일에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트루먼은 스탈린에게 새로운 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트루먼은 미국 쪽 통역관이나 이 일을 증언해줄 배석자도 없이 혼자 스탈린에게 말했다. 트루먼에 따르면 스탈린이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 소련 독재자는 대통령에게 축하를 전하면서 일본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을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스탈린은 트리니티(핵무기의 암호명)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파이얼스의 동료 클라우스 푹스가 소련에게 원자폭탄 개발에 관한 소식을 넘겨주고 있었고, 새로운 무기의 재료가 우라늄이 아니라 플루토늄이라는 정보도 그를 통해 소련으로 넘어갔다. 이 정보로 소련은 원자폭탄 개발을 몇 년 앞당길 수 있었다.

 

p405

 파인먼, 슈빙거, (신이치) 토모나가의 연구를 조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젊은 이론가 프리먼 다이슨에게도 페르미의 파이온-양성자 산란 연구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다이슨은 코넬 대학교의 조교수였고, 작은 그룹의 대학원생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들은 파이온-양성자 상호작용의 이론적 계산을 양자전기역학의 분석에 성공적으로 사용했던 기법으로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파이온-양성자 상호작용에 관련된 힘은 양자전기역학의 힘보다 훨씬 강하지만, 다이슨과 그의 학생들은 이 점을 중시하지 않고 계산해서 페르미가 시카고 사이클로트론으로 얻은 것과 꽤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그들은 몇 년에 걸친 연구로 이런 결과를 얻었고, 이것을 완성한 1953년 봄에 다이슨은 코넬에서 시카고까지 버스를 타고 페르미에게 결과를 보여주러 갔다.

 다이슨은 페르미에게 열정적으로 자기 연구를 보여주려고 했다. 한동안 사담을 나누다가, 페르미가 다이슨의 결과를 보자고 했다. 다이슨은 50여 년이 지난 2004년에 페르미의 판단에 대해 회고했다. 페르미는 이렇게 말했다. "이론물리학 계산을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계산의 대상이 되는 과정에 대한 명료한 물리학적 그림(모델)이 있어야 해. 또 다른 방법은, 상세하고 자기충족적인 수학적 형식론이 있어야 하지. 자네의 연구에는 둘 다 없군."

 

 다이슨은 깜짝 놀라서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했다. 페르미는 다이슨이 사용한 수학적 기법이 풀려고 하는 문제에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가 자신의 결과가 페르미의 1951~1952년 실험에서 측정한 값에 매우 가깝다고 반박하자, 페르미는 다이슨의 계산에는 임의적인 매개 변수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페르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친구 노이만은 매개 변수가 넷이면 코끼리도 키워 맞출 수 있고, 다섯이면 코끼리가 코를 흔들게 할 수도 있다고 했지." 이 말을 듣고 다이슨은 코넬로 돌아가서 몇 년에 걸친 연구 결과가 페르미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슬픈 소식을 학생들에게 전했다.

 다이슨은 이 일을 회상하면서 쓰라려하기보다는 막다른 골목인 줄 모르고 계속 달려가는 시간 낭비를 막아준 페르미에게 감사해했다.

 

 "50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우리는 분명히 페르미가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한 힘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발견은 쿼크였다. 중간자와 양성자는 쿼크를 담는 작은 자루이다. 머레이 겔만이 쿼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강한 힘에 대한 어떤 이론도 적합하지 못했다. 페르미는 쿼크에 대해 전혀 몰랐고, 쿼크가 발견되기 전에 죽었다. 그러나 그는 1950년대의 중간자 이론에 뭔가 핵심적인 것이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리고 이론과 실험의 불일치가 아니라 페르미의 직관이, 나와 학생들이 막다른 골목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p453

 노벨상 수상자가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에게 준 영향을 연구한 사회학자 해리엇 저커먼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페르미가 독보적이라고 지적한다. 페르미에게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이 결론은 더 확실해진다. 그의 직계 학생 중에서 다섯 사람(체임벌린, 프리드먼, 리, 세그레, 스타인버거)이 노벨상을 받았다. 크로닌과 양도 노벨상을 받았는데, 페르미의 공식적인 제자는 아니지만 둘 다 페르미에게 받은 영향을 인정했다. 다른 많은 사람도 물리학 분야에서 유명해졌고, 중요한 경력을 쌓았다. 이것은 놀라운 기록이고, 조머펠트와 러더퍼드 정도만 여기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밸런타인 텔레그디는 시카고 시절 페르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교육이었다고 평가했다. 그가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p468

 울람은 메트로폴리스와 함께 갔던 마지막 방문 뒤에, 눈물을 흘리면서 소크라테스가 죽었을 때 플라톤이 했던 말을 메트로폴리스에게 했다. "이제 가장 현명한 사람이 죽는다."

 

p469

 그의 두 친구 찬드라세카르와 울람은 페르미의 죽음과 페르미의 위대한 친구 존 폰 노이만이 2년이 조금 지난 뒤에 똑같이 53세에 맞이한 죽음을 비교하는 긴 글을 썼다. 노이만은 자기의 뛰어난 수학적 정신이 죽음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노이만은 유대교를 따르지 않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어하는 약혼녀를 위해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노이만은 카톨릭 신앙을 편안함과 위안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지만, 카톨릭은 그에게 게 둘 다 제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비해 페르미는 드문 평정심으로 자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대개는 현실적으로 얼마간 비판적이었던 평소의 인생관 속에서 받아들였다. 페르미에게는 과학이 종교의 기능을 완전히 대신했다. 그는 살았던 것과 똑같이 죽었으며,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사색을 할 필요가 없었다. 페르미로서는 자기의 삶은 그의 비범한 정신이 꺼지는 순간에 끝나지만, 그의 업적은 계속 살아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다.

 

p473

 전체 경력을 뒤돌아볼 때 페르미는 몇 안 되는 사람만을 동료로 인정했고, 그들은 주로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현대물리학을 창시한 유럽 학자들이었다. 페르미를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반열에 두기는 어렵겠지만, 페르미는 스스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확신했다. 이것은 거만함이 전혀 섞이지 않은, 자기의 능력에 대한 건전한 판단이었다. 보른과 슈뢰딩거는 나이가 더 많았지만 페르미의 동료였고,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위그너, 베테, 디랙, 파울리, 그리고 어쩌면 텔러도 동료였다. 노이만은 확실히 동료였고, 울람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들이 페르미가 자기와 견줄 만하다고 여긴 사람들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이 그룹이 아니었고, 로런스도 마찬가지였다. 라비나 펠릭스 블로흐도 이 그룹에 들어갈 거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엘비레스, 겔만, 파인만 같은 사람들도 물리학에서 한 획을 그었지만 그들은 다음 세대였다.

 

현직 약사가 쓴 재밋는 약 이야기. 후속작인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를 먼저 보고 나서, 

이전작인 이 책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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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

 사람은 엽산 Vitamin B9을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해 잎이 무성한 채소, 간, 효모, 밀, 쇠고기 같은 식품을 먹어서 보충한다. 하지만 세균은 스스로 엽산을 만들 수 있다. 세균은 파라아미노벤조산PABA을 원료로 엽산을 만드는데, 설파제가 PABA와 구조가 유사하다. 설파제가 엽산을 만드는 세균의 효소에 결합하면,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엽산을 못 만들어서 세균이 죽는다.

 설파닐아마이드는 에탄올에 녹지 않아서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는 시럽이나 액상으로 만들 수 없었다.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설파제가 다이에틸렌 클라이콜 Diethylene glycol 에 녹는다는 것을 알아내 딸기향이 나는 시럽제로 만들ㅇㅆ다. 당시에는 규정이 엄격하지 않아 독성검사와 임상시험 없이 발매되었고, 약은 즉시 영업사원들에 의해 병원과 약국에 공급되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시럽제를 먹은 아이 107명이 사망한 거서이다. 사망한 아이들을 검사해보니 신장이 두 배로 커져 있었다. 신장 독성이 원인이었다. 시럽 개발자는 경찰이 오기 전 권총 자살을 하고 말았다.

 원인은 설파제가 아니라 다이에틸렌 글라이콜이었다. 이 용매가 신장을 망가뜨렸다. 이 사태로 인해 1938년 미국은 FDA 규제 법안을 발표해, 모드 의약품은 독성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시중에 팔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안전성이 강화된 미국 의약제도는 1961년 유럽에서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사고를 막는 초석이 되었다.

 

p54. 슈퍼세균의 반격

 

 항생제 덕분에 인류는 세균이 일으키는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치명적인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인간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최근의 일이다. 항생제는 감염증을 치료해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무분별한 사용으로 예기치 못한 역풍을 만났다. 슈퍼세균이 등장한 것이다.

 슈퍼세균이란 항생제 오남용으로 세균이 내성을 갖게 되면서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할 수 없는 균을 말한다. 의학용어로는 다약제 내성제균 multi drug resistant bacteria 으로 정의한다.

 1960년대에 항생제 메티실린 Methicillin 에 내성을 가진 세균(MRSA, 메티실린 내성 황생포도상구균)이 나왔다 이 내성균은 반코마이신 Vancomycin 이 나와 잡았다. 1980년대 말 반코마이신 내성균 VRE 이 나왔고, 1990년대 중반에는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VRSA 이 발견되었다. 아직은 VRSA균이 세계적으로 창궐하지 않지만, 위험을 예방하고자 반코마이신 처방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다행히 카바페넴 Cabapenem 이 1990년대 개발되어 반코마이신 내성균을 박멸할 수 있었다.

 카바페넴은 VRE균이나 VRSA균 같은 중증 세균 감염 치료에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카바페넴 항생제 사용이 늘면서 병원 감염의 흔한 원인균인 녹농균과 아시네토박터 Acinetobacter 균에서 카바페넴 내성률이 높아졌다. 이제는 카바페넴을 무력화시키는 장내 세균이 미국과 유럽에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내성 유전자를 가진 세균이 우리나라에도 이미 들어왔다. 초기에는 일부 병원이나 특정 지역에서 발견되었지만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카바페넴 내성균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인류가 보유한 마지막 카드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1년에 70만 명이 내성균 감염으로 사망한다. 2050년이 되면 1,000만 명 정도가 약제 내성으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생제 내성균이 인류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는 10년 동안 3,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게 개발한 항생제가 시장에 나와도 3~4년 내로 내성이 생기기 일쑤다. 문제는 제약회사가 어렵게 약을 개발해도 항생제는 치료 기간이 1~2주로 아주 짧다는 게 문제다. 혈압약이나 당뇨약처럼 꾸준히 먹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 사용하고 끝내기에 지속적인 수익이 되지 않는다. 제약회사들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꺼리는 이유다. 최후의 사태를 대비해 비축하는 항생제는 기존 항생제가 모두 듣지 않는 환자에게만 사용하기 때문에 처방될 기회가 적다.

 2000년 의약 분업을 도입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항생제의 오남용 근절이었다. 항생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처방을 받아야만 복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항생제를 처방받으면 반드시 마지막 한 알까지 연속적으로 먹어야 한다. 항생제 복용을 자의적으로 중단하면 정상 세균들에게 내성을 일으키는 기회를 준다.

 슈퍼세균은 치료가 어렵기에 예방이 최선이다. 불필요한 항생제 복용을 피하고 손 씻기를 잘하는 등 개인위생 관리가 중요하다. 더불어 국가적 차원의 새로운 항생제 개발로 슈퍼세균을 잡는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균과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p131

 스코틀랜드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프슨 James Simpson(1811~1870)은 우연히 클로로폼이 마취작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클로로폼은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 Justus von Liebig(1803~1873)가 1831년에 처음 합성한 물질이다. 에테르보다 마취 속도가 빠르고 인화성이 적다. 심프슨은 클로로폼으로 임신부를 마취시킨 다음 출산 수술을 했는데, 고통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종교계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신앙심 깊은 신자들이 성경 창세기 3장 16절을 가지고 심프슨을 공격했다.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하나님이 여자에게 출산의 고통을 더했는데, 클로로폼이 통증을 줄여 사탄의 도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출산의 고통을 통해 산모가 아이에게 헌신하는 모성애가 자라고 믿음이 강해진다고 믿었다. 따라서 클로로폼으로 산고를 줄이는 것은 신의 명령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이었다. 심프슨은 창세기 2장 21절로 대응했다. 하나님이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해서 갈빗대를 떼어내는 최초의 외과수술을 할 대 아담에게 깊은 잠을 자게 했다는 말로써 클로로폼 사용의 정당성을 펼폈다. 논란이 지속되다가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1853년 레오폴드 왕자와 1857년 비어트리스 공주의 출산 때 클로로폼으로 마취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빠르게 보급되었다.

 

p142. 수면마취 3총사

 

 케타민 Ketamine, 프로포폴, 미다졸람 Midazolam 은 간단한 수술을 할 때 사용하는 전신 마취제다. 이들을 수면마취 3총사라고 한다. 주사하면 빨리 잠이 들고 수면에서 깨는 시간도 빨라, 성형수술이나 내시경에 많이 사용한다. 그렇지만 환각을 일으키기도 해서 오남용되는 약이다.

 1962년 나온 케타민은 흰색 가루약으로 냄새가 없다. 수면을 유도해 치과 치료, 분만, 어린이 마취에 사용한다. 일반 마취제와 달리 뇌에 강하게 작용해 혈압이 올라가고 맥박이 빨라지는 특징이 있다. 환각작용이 있어 미국 클럽에서 마약으로 쓰기도 한다. 서울 강남에서도 속칭 '스페셜 케이 Special K' 라고 불리며 마약으로 쓰인다. LSD보다 효과가 강해 주사하면 30~45분, 코로 흡입하면 45~60분 동안 효과가 지속된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정신이 몽롱해지고 수면을 유도해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분류한다.

 1983년에 나온 프로포폴은 불안감을 없애면서 편안하게 잠들게 한다. 정맥주사하면 1분 안에 마취되고 약을 끊으면 2분 이내에 의식이 돌아온다. 마취에서 깨어나도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움 같은 증상이 거의 없다. 내시경과 성형수술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마취제다. 하지만 프로포폴을 맞으면 피로감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져 환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어 중독자가 많다 수면마취제임에도 마약류로 지정되었다.

 1976년 출시된 미다졸람은 주사 후 5분 정도 지나야 잠이 들어 수면 유도 시간이 느리다. 잠이 들면 15~80분 정도 수면이 유지된다. 근육주사도 가능하지만 보통 위내시경 검사 전에 정맥에 주사한다. 미다졸람은 수면, 불안 해소, 최면 등의 효과가 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당일 진료받는 외래환자 수술은 부드럽고 빠른 회복이 중요하다. 수면내시경 같은 짧은 마취에는 미다졸람이 좋다. 프로포폴 남용이 사회문제가 되자, 일부 성형외과는 프로포폴을 사용하지 않고, 환각 작용이 덜한 미다졸람을 사용한다고 광고한다.

 마취제 개발은 인류를 통증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남용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따라서 세 살 이하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전신 마취제를 반복 사용하거나 3시간 이상 장시간 쓰는 것은 피해야 한다. 어린이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p157

 보틀리눔톡신 Botulinum Toxin 은 상한 통조림에서 생기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 Clostridium Botulinum 세균이 만드는 독소다. 보툴리놈톡신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주요 물질로, 중독되면 호흡근 마비를 일으켜 사망할 수 있다.

 어른과 다르게 첫돌이 안 된 갓난아기는 면역력이 낮아 클로스트리디움 세균이 매우 위험하다. 이 세균이 아기의 장내에서 증식해 독소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꿀에는 클로스트리디움 세균이 있는 경우가 많아 아기에게 먹이는 것은 금기다. 보툴리눔톡신 중동이 영아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 꿀 속에 있는 보툴리눔균은 열에 강해 100℃에서 6시간 이상 가열해야 죽는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균을 없애기가 매우 어렵다.

 보툴리눔톡신은 1970년대 후반, 사시 치료에 처음 사용되었다. 치사량의 1,000분의 1 정도의 양을 주사하면 신경세포의 활동이 적당히 억제된다. 그러면 눈 근육이 마비되어 사시의 비정상적인 운동이 멈춘다. 보툴리눔톡신의 특징을 이용해 1989년 보톡스가 나왔다. 극소량의 보툴리눔톡신을 사람에게 주사하면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막아 근육이 퍼진다. 얼굴의 주름을 없애는 용도로 사용하면서 독이 약이 되었다.

 

p161. 베카론 살인사건

 

 베카론 Vecuronium은 수술에 사용하는 근이완제다. 호흡할 때 꼭 필요한 횡격막도 이완시키는 강력한 약으로, 수술하는 의료인만 취급하는 아주 특별한 약이다. 이런 베카론이 매스컴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2017년 3월 충남 당진에서 아내가 호흡 마비를 일으켰다며 남편이 119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구급대가 도착하니 의사였던 남편이 아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아내는 심정지로 사망했다. 병사로 처리되었던 이 사건을 아내의 언니가 경찰에 재조사를 요구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남편이 살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의대를 졸업한 남편은 병원을 운영하다 여러 불법을 저질러 폐업하고는 이혼을 한 상태였다. 그런 남편과 죽은 아내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나 재혼했고, 10억 원 가까운 재산을 가졌던 아내를 설득해 당진에 다시 성형외과를 개업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급기야 남편은 아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베카론 주사로 살인을 시도했으나 처음에는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에서 살인에 성공했다. 수면제로 아내를 잠들게 한 뒤 주사기로 아내의 팔에 베카론을 주사한 다음 밖으로 나가 외출한 것처럼 위장하고 30분 뒤 집으로 돌아와 119에 신고했던 것이다. 그러고는 대원들이 출동했을 때, 태연히 아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연기를 했다.

 베카론을 투여하면 환자는 2~3분 안에 스스로 호흡이 불가능해져 목을 졸린 것처럼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심장이 멎는다. 그래서 베카론을 주사할 때는 인공호흡기나 안전장치가 준비된 상태에서만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사형집행에 사용하기도 한다. 베카론은 투여한 후 4~5시간 지나면 분해돼 흔적이 남지 않아 병원에서도 의심하지 못했다. 법원은 남편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살인 전 이미 한 차례 살인미수가 있었던 데다, 의사만 구할 수 있는 약을 이용해, 의사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23일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구매한 의약품 목록이 공개되었다.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베카론 주사제를 구매한 내용이 나왔다. 청와대는 응급처치용 약품이라고 해명했지만, 수술에만 사용하는 약을 왜 구매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수술용 외에는 다른 용도가 없는데도 사들인 이유가 궁금하다.

 베카론은 고위험 약물이다. 이렇게 위험한 약들은 훨씬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마약류처럼 관리할 방안이 필요하다. 사건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으로 베카론으로 인한 사고가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p176

 힘들 때 단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장에 탈이 나기도 한다. 전혀 별개인 것 같은 장과 뇌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장은 사람의 감정도 조절한다.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90%가 장에서 분비된다. 행복은 뇌에서 느끼지만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기분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이 모자라면 우울증이 생긴다.

 세로토닌은 장 속 신경세포의 일종인 장 크롬화 친화성 세포에서 합성된다. 세로토닌을 만드는 원료물질이 많아 크롬염에 노란색으로 염색되는 세포다. 세로토닌을 만드는 장은 제2의 뇌라고 할 수 있다. 세로토닌은 기분을 좋게 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우울증을 예방한다. 장 내부의 정보는 주변 신경세포에 전달돼 뇌로 간다. 장과 뇌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장-뇌 연결축'이라고 한다. 장과 뇌 사이에는 생체신호를 주고받는 축이 있다. 아직 장-뇌 연결축 간의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장내 물질 세로토닌은 신경계, 면역계, 내분비계 및 대사 체계를 통해 뇌에 영향을 미친다. 대장이 감정까지 조절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최근 들어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육류 소비량이 급증해 대장암 발생이 높아졌다. 장이 심하게 나빠진 것이다. 육식을 많이 하면 소화되고 남은 단백질 찌꺼기가 장을 통과하여 점막을 손상시킨다. 지속적인 자극으로 장세포가 변형되고 용종이 발생해 심하면 암이 된다. 대장에 서식하는 유산균은 대장균 같은 부패세균 수를 감소시켜 암 발생을 낮춘다. 암을 일으키는 효소를 감소시키고 젖산을 만들어 pH를 낮춰 유해균을 몰아낸다.

 대부분의 암처럼 대장암도 3기, 4기로 갈수록 완치가 어렵기에 예방이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아 암을 초기에 발견하고, 암이 될 수 있는 용종을 미리미리 제거해야 한다. 검사만 잘 받아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장암 사망률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다. 또한 식생활도 중요한데, 육식을 줄이고 신선한 채소에 고기를 싸서 먹으면 식이섬유가 장을 보호한다.

 

p178

 러일전쟁(1904-1905)은 조선을 차지하려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다. 전쟁은 랴오둥반도와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일어났다. 청일전쟁 후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1905)에는 일본이 랴오둥반도를 차지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그러자 일본의 중국 진출을 반대한 러시아, 프랑스, 독일 3국이 일본을 압박해(삼국 간섭) 랴오둥반도를 중국에 반환하게 만들었다. 그 후 1896년 러청밀약으로 랴오둥반도는 다시 러시아에 넘어갔는데, 러시아가 만주로 남하하는 것을 경계한 일본이 러시아와 맞붙게 되었다.

 전쟁은 랴오둥반도 남단 여순항에 있던 러시아 함대를 일본 함대가 공격하면서 일어났다. 인천에 상륙한 일본군은 한반도 전역을 차지하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를 침공했다. 1905년 랴오둥반도의 중심지 선양에서 대규모 전투가 일어났는데, 막대한 물자와 수십만 인력을 투입한 일본 육군에서 갑자기 배탈, 설사가 유행했다. 만주의 나쁜 수질이 일으킨 것이다. 일왕은 효과적인 정장, 지사제를 공모했다. 여러 제약회사가 앞다투어 응모했는데, 다이코 신약에서 1902년 개발한 약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이 약이 군인들의 배탈, 설사를 치료했다. 전쟁 후 러시아를 정벌한 약이라 하여 정로환征露丸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정로환의 주성분은 크레오소트다. 크레오소트는 숯을 태워 나오는 페놀계 혼합물의 일종이다. 살균력이 강해 장 속의 세균을 죽여 배탈, 설사를 멈추게 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도 배탈, 설사 환자가 많았는데 마땅한 치료약이 없어 고생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 당시 일본은 정로환을 가정상비약으로 가지고 있을 만큼 널리 보급되었다.

 동성제약 창업주는 정로환을 국내에서 생산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성분 표시를 보고 그대로 제조했으나 잘 안 되었다. 그는 다이코 신약에 기술 제휴를 의뢰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고민 끝에 은퇴한 다이코 신약의 전임 공장장을 찾아갔다. 70대 노인이었던 전임 공장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말했다. 노인은 뜻밖의 말을 했다. "나는 평생 일만 해왔고. 동경 유곽에 한 번 데려다주면 원하는 것을 주겠고." 1주일 후 유곽에서 나온 노인은 정로환 제조법이 자세히 적힌 문서를 건넸다.

 

p188

 우리나라에서는 백미를 먹어도 반찬으로 김치가 빠지지 않는다. 김치 속에 들어 있는 마늘이 티아민을 보충해주어 각기병에 걸리는 경우가 없었다. 요즘도 피곤하면 마늘 주사를 맞는 경우가 있는데, 주성분이 티아민이다.

 

p233. 좁은 혈관은 어떻게 해서 넓어지는가?

 

 니트로글리세린은 그 후 수십 년간 협심증 치료제로 사용되었지만 어떻게 혈관에 작용하는지는 몰랐다. 1977년에야 니트로글리세린이 인체에서 산화질소 NO 를 만들어 혈관을 확장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UCLA 약리학 교수 루이스 이그나로는 혈관 세포 속에서 산화질소가 나와 혈관을 넓혀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혈관 속의 산화질소는 수 초 안에 사라지는 불안정한 기체다. 산화질소는 세포, 조직, 장기 등 모든 인체 시스템에 신호를 보낸다. 

 산화질소이 발견은 획기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생체 내에 작용하는 기체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자동차 배기가스나 담배 연기 중에 들어 있는 공해 물질도 산화질소의 일종이다. 공기 중에 있을 때는 해롭지만 혈관에서는 아주 유익하다. 산화질소는 모든 혈관에 작용한다. 협심증, 동맥경화증, 심부전, 뇌졸증, 당뇨병, 발기부전 및 기타 혈관 합병증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

 산화질소는 1992년 과학 잡지 <시이언스>에 '올해의 분자'로 선정되었다. 이그나로는 1998년 산화질소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산화질소는 혈관 유연성을 높여 혈류를 개선한다. 산화질소가 부족하면 혈관이 손상되고 혈액덩어리가 생겨 혈관이 막힌다. 그러면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심장마비, 당뇨에 걸리기 쉽다. 뇌의 특정 부위에 산화질소가 결핍되면 치매나 알츠하이머에 잘 걸린다. 혈액순환은 모든 세포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기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 혈액순환이 잘 되려면 혈관이 튼튼해야 하는데, 혈관이 막히지 않으려면 산화질소가 필요하다. 산화질소의 발견 덕에 발기부전 치료제가 나올 수 있었다

 의료용 니트로글리세린은 아주 작은 흰색 알약이다. 심장에 통증을 느끼는 협심증이 있을 때는 입으로 삼키는 것이 아니라 혀 밑에 넣어 사용한다. 그러면 삼키는 것보다 효과가 신속히 나타난다. 혀밑 침을 통해 전신에 흡수되는데, 간을 거치지 않고 속도가 빨라 위급상황에 유용하다. 이런 약을 설하정이라 한다.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은 절대 삼키면 안되니다.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을 사용하면 협심증을 앓는 환자 가운데 75%가 3~5분 이내에, 15%는 5~15분 이내에 가슴통증이 가라앉는다. 그래도 흉통이 있으면 5분 후에 다시 투여하고, 다시 흉통이 오면 5분 후에 세 번째 투여한다. 15분 이내 최대 3회 투여해도 통증이 지속되면 즉시 응급실에 가야 한다. 심장에 있는 관상동맥이 심하게 좁아진 상태이므로 니트로글리세린만으로는 치료가 되지 않는 응급상황이다.

 산화질소는 건강한 식습관과 적절한 운동, 산화질소를 만드는 영양소 섭취를 통해 양을 늘릴 수 있다. 산화질소의 공급은 아미노산을 통하는데, 아르기닌과 시트룰린이 있다. 아르기닌은 단백질 분해로 생긴다. 그래서 질 좋은 단백질 섭취가 필요하다. 수박, 멜론 같은 과일에 많이 들어 있는 시트룰린도 좋다. 운동도 효과적인데 숨이 찰 만큼 유산소운동을 하면 산화질소의 발생을 증가시킨다.

 

 길을 물어, 선禪으로 나아간 기록 정도의 의미가 될 듯. 김미루라는 이름 자체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인 도올 김용옥 선생의 따님이기도 하다. 나도 도올 선생께서 강연 등에서 몇 번 언급을 해서 알게 되었다.

 책의 장르는 여행 에세이라고 볼 수 있지만, 관광이라기보다는 해당 지역의 문화를 깊이 체험해보는 내용이 많아서 인문학적인 관점이 많이 녹아있다(그래서 인문으로 분류했다).

 사막과 낙타, 그리고 유목민이라는 테마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몇년 간 중동, 인도, 몽골지역의 사막,낙타와 유목민을 포함한 원주민과의 생활의 경험을 해당 지역의 풍광을 담은 자신과 함께 전하고 있다.

 글의 스타일은 아버지인 도올 선생과 굉장히 많이 닮아있는데, 도올 선생이 감수를 해주셨거나 아니면 저자 본인이 아버지의 책을 많이 읽었거나 대화를 자주 나누다 보니 그런 글의 스타일을 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용 자체가 쉽게 접해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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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4

 레바논에서 레이시즘은 클라시즘 classism, 즉 계급주의와 매우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이 현상은 그 나라에 편재하는 외국인 가정부무역에서 유래되는 것인데, 이것은 내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노예무역 이외의 딴 것이 아니었다. 가정부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공인된 제도는 가정이라는 밀폐된 환경 속에서 자행되는 통제되지 않는 학대를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레바논이라는 나라의 인구가 겨우 500만밖에는 되지 않는데 외국에서 이주한 가정부가 20만 이상이나 된다(전체 인구의 4% 정도). 레바논의 상류, 중상류, 그리고 중류가정조차도 대부분이 에티오피아, 케냐,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지에서 가정부를 고용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적 관행 때문에 가장 저열한 사회적 신분을 특정한 외관이나 국적에 자동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스리랑칸 Sri Lankan"이라는 말은 곧 레바논 자곤jargon으로 "하녀"를 의미한다. 

 독자들은 내가 베이루트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어떤 취급을 받게 되었는지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누군가의 필리피노 하녀로서 심부름 나온 사람으로 즉각적으로 취급되었다. 매우 크고 모던한 한 식료품 가게에서 올리브를 사기 위해 나는 줄을 서고 있었다. 나는 두 늙은 백인 앞에 서있었는데, 나를 제키고 그들은 먼저 서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사람이 서부된 후에야 비로소 서브되었던 것이다. 계산대에 있는 노인은 나에게 마치 개에게 명령하듯이 그의 손으로 "기다려"하고 손짓할 뿐이었다. 내가 불만을 토로하자, 입에 손가락을 대면서 "쉿"할 뿐이었다. 명백한 줄의 순서를 어기는 행위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체험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의 단순한 외관 때문에 내가 나에게 던져지는 그토록 낯뜨거운 레이시즘을 체험한다는 것은 진실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동아시아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니었다. 나의 얼굴이 보통 아시아 사람보다 다크 스킨톤인데다가 눈이 크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레바논 사람들은 전형적인 일본인이나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을 더 못사는 나라로부터 온 까무잡잡한 가사노동자들로부터 구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나를 보면 좀 이색적이라고 칭찬 비슷한 말을 던지곤 하는데, 바로 이놈의 "이색적 외관"이 이 레바논 지역에서는 전적으로 핸디캪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위에서 보면 제키다, 핸디캪 과 같이 표준어와 약간 다른 표기법이 있는데 저자인 김미루 씨가 미국에서 출생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중학시절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간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표준어에 약해서 그럴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이 통나무 출판사를 통해서 나왔고, 아마도 아버지인 도올 선생이 이 책을 어느 정도는 감수를 했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면 이러한 표기법은 표준어를 잘못 썼거나 오기라기보다는 도올 선생의 평소 표기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도올 선생의 표기법은 간혹 독특한 바가 있다.)

 

 내가 피부가 좀 더 하얗고 눈이 옆으로 찢어지고 광대뼈가 불거졌다면 나는 돈 많은 일본관광객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레바논 사람들은 나를 공경스럽게 대했을 것이다. 내가 이러한 나의 체험을 말하자, 한 레바논 친구가 이렇게 디펜드하는 것이다 : "여기 사람들이 특별히 레이시스트라고 말할 것은 없지. 그들이 판단하는 것은 사회적 계급이야. 네가 부자처럼 보이면 사람들이 널 잘 대접할 거야." 나는 이 새로운 설을 입증하기 위하여, 머리꼭대기부터 발끝까지 백만불 여인처럼 치장을 화려하게 하고 밤에 나가보았다. 그러나 이 작전은 결코 먹히질 않았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빠를 갔는데, 아이디카드를 보자고 한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나 혼자만이 유색인종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줄곧, 내가 아무리 잘 못을 입더라도 나 혼자만 체크당하는 수모를 계속 당해야만 했다. 여러 번 나는 문간 경비 어깨들이 내 미국여권을 보자마자 그들의 태도를 180도 바꾸는 사태를 체험했다. 약자에게 비열하고 강자에게 비굴한 중동문화의 한 측면을 나는 강렬하게 체험했다. 종교문화는 결코 인간에게 보편주의를 선사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종교가 인간의 구원을 외치면서 인간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구원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동방의 인문주의가 오히려 더 보편주의적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매우 화가 났다. 그래서 이 가정부문제를 보다 깊이 탐구했다. 그리고 많은 이민자 가정부들이 그들을 고용한 가정에서 못 견디고 가출을 하게 되면 결국 길거리에서 매춘이나 천직에 불법고용되어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베이루트에는 가정부조달 에이전시가 많이 있다. 누구든지 가정부를 고용하고 싶으면 조달소에 나타나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 가정부를 2년계약으로 고용하는 데는 서류작성과 비행기표를 포함하여 대략 2,000불이 든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식모를 구하는 데는 대략 1,500불이 든다. 그러나 이 돈은 양국의 에이전트들이 다 먹는 것이며 가정부 본인과는 무관하다. 본인은 그 나라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신청할 뿐이다. 그리고 계약대로 가정부가 도착하면 매울 샐러리가 지급되는데, 에티오피아 여자에게는 200불, 방글라데시 여자에게는 150불, 필리핀 여자에게는 250불 등등의 가격이 매겨져 있다.

 그런데 이 소녀들이 공식기구를 통하여 돈거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녀를 고용한 패밀리가 전적으로 모든 관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가정부들의 여권과 서류를 고용주가 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월급조차도 고용주의 변덕에 따라 보류되기도 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외국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일체의 노동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제도는 무제한의 혹사와 학대를 허용한다. 가정부들의 자살이 흔치않게 보도된다. 소녀들이 가정으로부터 도망치면, 그들은 여권을 포함한 모든 서류를 상실하기 때문에, 매춘과 같은 불법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레바논 가정의 고용주들이 월급을 꼬박 주었는데도 가정부가 도망쳤다고 투정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러한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여 불만과 불행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단지 그 자리를 새로운 가정부로 대치할 뿐이다. 그들은 소비성 상품에 불과한 것이다. 가정부조달 에이전트들은 그들의 가정부에 대해 이런 광고를 써붙이곤 한다: "신중히 선택된 메이드, 우울증에 걸리지 않음."

 일인당 GDP가 1만 9천 불 정도 되는 나라, 그런데 불합리한 종교의 교리가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나라, 그리고 오랜 내전으로 국가조직의 통제력이 와해된 나라, 이러한 모든 정황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인간불평등의 부조리에 대하여 아무런 기준도 만들지 않고 있다는 무책임한 사실도 쉽게 이해가 간다. 우리 한국문명의 대체적인 개화의 방향이 세계문명의 기준에서 볼 때, 탁월한 정도正道를 지향해왔다는 사실도 비교론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기독교 가정에도 이미 2년 동안 일하고 있었던, 방글라데시에서 온 19살의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나Rina였다. 리나는 방글라데시의 어느 시골 작은 마을에서 살았는데, 아주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고 임신시킨 남자는 도망가버렸다. 그런데다가 설상가상 엄마가 세상을 떴다. 그래서 리나는 자기의 애기를 언니집에 맡겼고 자신은 양육비를 벌기 위해 에이전시에 취직을 부탁한 모양이다. 에이전시는 리나가 단 한마디의 아랍어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임의적으로 레바논에 배정했던 것이다. 리나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아주 작고 어여쁜 얼굴을 한 매우 조용한 소녀였다. 그녀는 항상 수심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녀와 감정을 소통하려고 접근하면 때때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매일 새벽 일찍부터 저녁식사 후 설거지 때까지 하루종일 일했다.

 그런데 나에게 그토록 잘해주는 패밀리의 엄마, 다시 말해서 리나의 보스조차도 끊임없이 그녀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그 집안의 아이들, 이미 성년이 된 아이들이었지만, 그들도 허파가 터질 듯이 리나의 이름을 불러댔다. 벗어놓은 양말이 없어졌다든가, 자기들이 제일 좋아하는 셔츠가 사라졌다든가 하면서, 물론 리나의 처지는 레바논의 대부분의 가정부의 처지보다는 더 좋은 상태인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나는 그녀가 로보트나 집안의 부속품처럼 취급되는 모습을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이 도무지 소화해내기 어려웠다.

 

 그녀는 결사적으로 휴식이 필요할 때는 꼭 장롱 하나차럼 생긴 작은 그녀의 방으로 숨어버리곤 했다. 레바논의 가옥에는 식모방이 그렇게 코딱지만 하게 설계되어 있다. 나에게 그토록 친절하고 관대한 엄마, 나를 한가족처럼 생각해준 고마운 그 엄마도 나에게 여러 번 리나에 관해 불평을 토로했다: "우리는 리나가 여기 오기까지 모든 비용을 댔고, 매달 월급도 꼬박꼬박 주었지. 리나는 매달 언니집으로 송금을 해. 그 돈은 방글라데시에서는 큰 돈이라고, 나는 리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지. 지금은 아럽어까지 알아들을 수 있어. 그런데도 리나는 너무 멍청해! 아직도 항상 실수를 저지르고,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모른단 말이야!" 언젠가 리나가 부엌 한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벽을 쳐다보고 밥을 먹고 있었다. 남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글다데시 집에서 먹는 것처럼 밥을 손으로 꾹꾹 눌러 입에 넣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패밀리의 엄마는 그녀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저것 좀 보라구! 쟤는 개처럼 먹고 있잖아!" 문화적 관습에 대한 근원적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이다. 상대주의의 관용이야말로 보편주의의 기본원칙이라는 것을 전혀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는 그 집에 존경받는 게스트였고, 주제넘게 주인의 인식체계를 교정할 수 있는 포지션에 있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주인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패밀리의 한 친구인 젊은 레바논 청년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리나는 참 운이 좋아! 이 패밀리는 나이스해. 리나를 때리지는 않으니까." 그 무의식적인 말인즉슨, 레바논에서 가정부에 대한 체벌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너무도 충격을 받아 공포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나에게 그 청년은 계속 말을 이었다: "레바논의 가정부 상황은 일반적으로 정말 좋지 않아! 많은 소녀들이 학대받고 있지. 예를 들면 우리집 옆의 패밀리가 얼마 전에 바캉스를 떠났어. 그런데 그들의 메이드를 음식과 물도 공급해주지 않고 방에 감금해버렸단 말야. 그래서 내가 매일 가서 창문으로 먹을 것을 공급해주었지."

 

 그 청년의 언어는 나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내가 그 잔학무도한 장면을 직접 목도하지 않았다는 것만이 나의 위안이었다. 아무튼, 리나의 정황을 쳐다보면서 나는 내가 오랫동안 되씹지 않았던 오래 전의 감정, 내 존재의 내면에 깊숙이 숨겨져 있었던 그런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내가 영어단어를 매일매일 외우면서, 계속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나날들의 추억이 나를 휘감았다. 언젠가 나를 놀리고 멍청하게 만드는 아메리칸 키드들보다 내가 더 훌륭한 인물이 되고야 말리라는 굳은 맹세가 생각난 것이다. 그때 나는 불과 13살이었다. 영어 한 단어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카운티에 홀몸으로 왔던 것이다.

 

 미국의 공립중학교의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좀 사악한 종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내 얼굴에 대고 웃거나 심술궃은 행동을 마구 해댔다. 내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아시아의 소녀라는 오직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나는 이모집에 머물렀는데, 나의 이종사촌의 한국계 친구들조차도 나를 매우 귀찮은 존재로 여겼다. 물론 나 자신이 세련되지 못했고, 분위기를 쉽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나와 함께 어울리는 것을 아주 불쾌하게 여겼다. 나는 "FOB"라고 놀림을 당했는데, 그것은 "fresh off the boat"라는 뜻이다. 배에서 갓 내린 세상 물정을 모르는 촌놈이라는 뜻이다. 아시아계 미국아이들도 나를 "포브"라고 놀려만 댔던 것이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아주 이방의 먼 땅에서 완벽하게 고독한 단독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 느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인자하기 그지없는 이모의 배려가 있었고 또 사촌들과 같이 잘 지냈지만, 베드에 들어가기 전에 거의 매일 밤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의 리나에 대한 동정심, 아니 공감의 폭이 각별했다. 불과 17살의 어린 나이에 모든 사람이 경멸하는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이국의 땅에, 홀몸으로 내팽겨쳐진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다.

 

 어느날, 나는 리나가 부엌에 혼자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재빨리 나는 나의 랩탑컴퓨터를 가져다가 유튜브를 눌렀다. 나는 "방글라뮤직"을 찾아, 물항아리를 나르는 전통적 시골여인들도 분장한 가수들이 노래부르는 비디오 하나를 클릭했다. 노래가 터져나오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의 리나처럼 환희에 찬 모습을 어느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질 못했다. 리나는 홍조를 띠며 흥분 속에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리나는 그 노래를 완벽하게 암송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야말로 리나가 2년만에 자기 모국에서 온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느껴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리나에게는 인터넷이나 텔레비젼을 보는 것이 일체 허용되질 않았다. 물론 스마트폰도 가지고 있질 못했을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셀폰도 허락되질 않았다. 주인의 입회 아래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지상통신선으로 집에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것도 제한된 시간범위 내에서. 뮤직비디오를 쳐다본 후에 리나는 그녀가 잘 알고 있는 또 하나의 방글라 비디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은 일종의 코미디쇼였다. 우리가 같이 그것을 쳐다보고 있는 한참중에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리나는 재빨리 컴퓨터로부터 멀어져갔고, 빨리 그것 좀 꺼달라고 손짓을 했다.

 그때로부터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면 리나에게 방글라 텔레비젼을 틀어주었다. 물론 누가 나타나기 전에 재빨리 끌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리나는 나에게 깊은 애정을 표시하는 표정을 지었다. 2년만에 처음으로 그녀는 한 인간으로부터 아무런 격 없는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그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인간의 관계가 왜 그렇게 왜곡되어야만 하는지, 칼릴 지브란의 심오하고 아름다운 레토릭도 이 예전자의 고향에서 공허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내가 리나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을 때, 그녀의 도톰한 눈망울에는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숫자가 적힌 종이 한 쪽지를 건네주었다. 아마도 그것은 방글라데시 고향에 있는 자기 연락처였을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 번호로 그녀와 연락하는데 실패했다. 국가번호도 그렇고 자릿수가 도무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2년 후에 나는 그녀가 결국 가출하고 말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리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중동의 빠리"라는 베이루트의 추억이나 모든 기획이 나의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멀어져만 갔다. 중동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흥분되고, 가장 열광적이고, 가장 고상하고, 가장 음식이 맛있는 곳처럼 느껴졌던 나의 환상은 이 가정부무역의 문제로 인하여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알고보면 중동의 어디에서나 벌어지고 있다. 예수시절부터 "돌로 쳐죽이기" 린치가 공공연한 율법으로 자행되고, 지금도 "명예살인"이 사회규범으로 인지되는 그런 분위기, 결국 구약적 세계관에서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은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손가?

 인류문명의 진보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나의 다음 목적지 요르단에서는 나는 필리피노 하녀로 취급되는 일은 없었다. 요르단이라는 나라는 최소한 그토록 뻔뻔스러운 레이시즘이 설치는 분위기에 예속된 그런 문명의 나라는 아니었다.

 

p207

 나는 비록 죽이는 첫장면을 놓쳤지만, 나머지 과정,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끌어내고, 자르고, 요리하는 과정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 아침용으로 작은 고기조각과 간조각이 양파와 더불어 볶아졌고, 빵과 함께 식탁에 올려졌다. 점심과 저녁용으로는 뼈있는 고깃덩어리가 큰 통에 넣어지고 장작불에 몇시간 동안 계속 삶아졌다. 이때 들어가는 전통적 요르단 조미료는 "자미드jameed"라는 것인데 염소젖에서 얻은 치즈를 태양에 말린 것이다. 나는 이 전과정엣 참다운 베두인 삶을 느낄 수 있었고, 상품화된 치즈와 깡통채소에 실망한 후인지라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이날 찍은 비디오는 염소머리가 분해되고 창자가 꺼내어져 요리되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뉴욕갤러리에서 사진들과 함께 전시되었다. 

 많은 관객들, 특히 고상함을 자랑하는 한국부인들이 이런 살육장면은 전시장에서 안틀면 좋겠다고 나에게 항의하는 것이다. 교육상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비디오를 보면 아흐마드의 3살난 아들은 염소의 몸통 옆에서 아주 재미있게, 자연스럽게 놀고 있다. 베두인들은 걷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동물이 도추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난다. 이거은 우리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고기를 먹는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고기를 만드는 과정, 귀한 생명이 도축되는 과정, 귻이 축제의 일환으로 인식된다. 닭을 잡을 줄 모르면 닭을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에게 자식교육 운운하면서 항의한 부인들은 결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식들에게 고기를 많이 멕이는 여인들이다.

 고기를 먹는다고 하는 우리의 행위의 전체과정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교육적일까? 그것을 속이고 감추고, 오직 공장에서 생산된 최종적 고기상품만을 식탁에서 먹게만들고, 위생, 잔인, 살생, 백정놈들 운운하면서 고상한 삶의 가치를 구가하는 것이 교육적일까? 우리의 자녀들을 대량고기생산의 맹목적 소비자로 만드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아무 생각없이 불필요하게 과도하게 고기를 많이 먹는 병적인 인간들로 만드는 것이 이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더 바람직한 것일까? 수천년 지속되어온 "고기먹음"의 축제적 성격,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한, 생태순환적인 전과정을 인지하도록ㄱ 만드는 것이 더 정당하지 않을까? 과거에는 소곡기를 먹어도 일년에 한번이면 족했던 것이다. 인류 식생활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요청되는 시점인 것이다.

 

p234

 최상의 이미지는 최악의 환경에서 창조된다.

 

p239

 처음에는 소통의 부재를 언어장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랍어를 좀 할 수 있었고 또 바디 랭귀지를 습득하여 이야기할 수 있었다. 기실 내가 모르는 것은 그들의 언어가 아니라, 그들의 사유방식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추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주일이 지난 후로는, 나는 순결한 침묵에 매우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사유 그 자체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체류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나도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예술의 경지에 거의 도달핵가고 있었다.

 

p276

  맨해튼에서 보낸 2012년 가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나는 이때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다시 갈 것만을 구상하며 새로운 벤쳐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육신이 있는 곳에 나의 정신이 있질 않았다. 도시의 삶은 무의미하게만 보였다. 밖으로 외출할 때마다 왜 나는 꼭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 나를 실어야만 하는가? 트래픽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게 길 한복판에 갇혀 있을 땐, 왜 나는 택시미터에 올라가고만 있는 숫자를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파티룸에서 왜 나는 그들과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희희덕거리고만 있어야 하는가? 왜 철근콘크리트의 고층건물이 서있고, 아스팔트 깔린 대로들이 존재해야만 하는가? 왜 아는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만 하는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지간에 모두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너무 과도한 것뿐이었다. 내가 여행할 동안 향유할 수 없었던 사치들, 맛있는 해산물 요리라든가 끝없이 쏟아지는 더운물 샤워라든가 하는 것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화이트 데저트로 갈 꿈만 꾸고 있었다. 나의 작업이 진실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일단 벌려놓은 일은 마무리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p435

 내가 이 아이들에게 관해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된 것은, 이들이 항상 웃고 야외에서 즐겁게 논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 그리고 극히 단순한 오브젝트를 가지고 재미를 창조하면서 논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을 즐겁게 만드는 사태를 고안해낸다. 그리고 울거나 싸우거나 하는 법이 거의 없다. 도시문명의 아이들이 하루종일 울거나 찡얼거리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일례를 들자면, 어디서 볼펜 하나를 얻든지, 전등 하나를 얻든지 하면 그걸 가지고 수없는 종류의 오락을 끊임없이 지어내고 또 그것에 열중한다. 하룻밤은 나이가 좀 있는 소년이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의 손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놀이를 고안해냈다. 그 손바닥그림은 매우 정교했다. 나는 그가 손바닥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그 손바닥을 전등으로 비쳐주었는데 어두운 방에 모두가 옹기종기 웅크리고 있는 판에 집중된 스포트라이트가 생기고 또 그림이 그려지는 그 장면 자체가 매우 신비롭고 인간적인 훈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들은 그 그림을 그리는 소년이 여러 가지 패턴과 글자와 숫자를 쓰면서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비상하게 집중하고 웃곤 했다. 그 행위 자체가 위대한 연극이었다.

 낮에 밖에서 놀 때도 그러했다. 동네에는 단지 하나의 시소가 있을 뿐이었다. 새총처럼 쌍갈래 가지가 달려있는 나무 하나가 땅에 굳건히 박혀있다. 그리고 그 위로 기다란 통나무 하나가 횡으로 걸쳐져 있다. 이 시소는 결국 두 개의 큰 나무로 구성된 초라하기 그지없는 물건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나뭇가지에 매달려 끊임없이 다양한 놀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베키가 시소의 한 편에 남자아이들과 함께 타려고 하다가는 곧 땅에 떨어지곤 했다. 도시아이들 같으면 울면서 짜증을 낼 텐데, 베키는 웃고 또 웃으면서 천진난만하게 그곳에 기어이 올라타려는 노력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 순결한 시도와 웃음, 그리고 끊임없이 재미를 만들어낼 줄 아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문명사회에서 말하는 바 "교육"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인지, 더구나 "덕성교육, 인성교육"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깊은 반성을 자아낸다. 자연이 그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도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p493

 과거의 베두인들은 친구이든 낯선 이방인이든,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든 누구든지 텐트에 접근하기만 하면, 그들에게 마시고 먹을 것을 친절하게 제공했다. 사흘 동안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무조건 접대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손님들이 오면 염소 한 마리를 잡는 것이 관례였고, 전통적인 맛있는 커피를 달여 정성스럽게 대접했다. 모든 게스트는 커피를 세 컵까지는 달라고 할 수가 있었다. 세 컵 이상 달라는 게스트는 탐욕의 인간으로 낙인 찍혔다. 커피는 집안간의 원한문제 해결이라든가 결혼에 관해 합의할 때도 반드시 필수품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논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 가장 특이한 측면은 완벽하게 낯선 이방인일지라도, 본인이 얘기하지 않는 한, 도대체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질문을 제4일 까지는 던질 수 없었다. 오면 무조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한국인의 친절이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들의 친절이라는 것은 좀 제식적 · 율볍적 측면이 강하다. 그만큼 절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예지가 묻어나는 것이다.

 

 한 베두인 가정의 사례로 전해 내려오는 재미난 얘기가 있다. 한 가정에 남자가 왔는데 대접을 하다 보니 그가 자기 가족의 한 사람을 죽인 집안의 원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사람에게 염소 한 마리를 잡아 후대했고, 그들의 천막에서 3일 동안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제4일이 되는 날 그는 자기 갈길을 평온히 떠났다. 텐트의 주인은 자기 장남에게 곧 명한다. "따라가서 그를 죽이고 오라!"

 

 

 

저자의 직업은 약사이다. 약과 치료법에 대해 재밋게 쓰여진 책이다.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라는 전작과 이어지는 내용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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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는 이듬해 봄부터 전쟁에서 빠졌다. 독일은 러시아 전선에 투입했던 100만 명의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돌려 총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대량 살상 무기에 큰 타격을 입었다. 6월부터 유행한 스페인 독감에 당한 것이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복병과 미국의 참전으로 독일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1918~1920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앞당겨졌다. 종전 협상을 위해 파리에 온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마저 독감에 걸렸다. 윌슨은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에게 베르사유조약 체결을 위임했다. 가혹한 조건을 강요한 클레망소에 의해 독일은 식민지를 빼앗기고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야 했다. 단기간에 발생하는 엄청난 물가 상승 현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독일 경제는 파탄 났고 외세에 대한 분노가 커질 대로 커졌다.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상황에서 등장한 나치즘과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p28

 박쥐는 포유류 가운데 유일하게 날아다니는 동물이면서 군집 생활을 한다. 박쥐가 날개로 난다고 생각하지만, 해부학적으로 날개 부위는 '앞발'이다. 박쥐는 앞발의 피부 막으로 날아다닌다. 박쥐에 있는 바이러스는 137종이나 된다. 그중 사람에게 감염되는 인수공통 바이러스는 61종이다. 사람과 대다수 동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물질 인터페론을 생성해 대항하지만, 박쥐는 평소에도 인터페론을 만든다. 그래서 많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 특이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밤에 최대 350km 이상 비행하며 거의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는 박쥐는 체온이 40℃ 이상으로 다른 포유류에 비해 높다. 체온이 높으면 신진대사가 활발하고 면역력이 강해져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 박쥐는 바이러스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공존해 살아간다.

 

p29

 가금류나 돼지가 야생조류, 즉 철새의 분변으로 오염된 물을 마시면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들어가 증식한다. 조류독감에 걸린 가금류는 금방 죽지만, 돼지는 죽지 않고 오래 살아서 바이러스가 서로 섞인다. 여기에 돼지를 가까이에서 키우는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혼합된다. 돼지는 상부 호흡기에 조류에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용체와 사람에게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용체 모두를 가지고 있다. 즉 조류 인플루엔자도 걸리고 사람 인플루엔자도 걸려 바이러스가 동시에 섞이면 새로운 변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조류,돼지,사람 바이러스 유전자가 돼지 몸속에서 섞여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드는데, 이런 과정을 유전자 재편성이라고 한다.

 

p62. 오바마 정부의 딜레마 사후피임약

 매일 정해진 시간에 1정씩 먹어 임신을 예방하는 사전피임약과 달리, 사후 피임약은 성관계 뒤에 먹는다. 2002년 시판된 72시간(3일) 안에 먹는 약뿐 아니라 지금은 120시간(5일) 안에 복용하는 약도 나와 있다. 12시간 이내에 복용하면 90% 이상 피임 성공률이 나오고 24시간 이내는 약 80%, 72시간 이내는 60%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사전 피임약 성분은 2종류(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인데 반해, 사후 피임약은 단일성분(프로게스테론)이다. 3일 안에 먹는 약은 레보노르게스트렐(상품명 노레보원, 포스티노원), 5일 안에 먹는 약은 울리프리스탈(상품명 엘라원)이 있는데 고농도의 프로게스테론이 들어 있다. 2세대 피임약에서 레보노르게스트렐이 100ug 혹은 150ug이 있는데, 사후피임약은 1,500ug으로 10배 정도 양이 많다.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 가능하며, 월경주기 어느 때라도 사용할 수 있다. 복용 후 3시간 이내 구토하면, 바로 1정을 추가로 복용한다. 사후피임약은 쉽게 구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처방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의사 단체, 약 자체를 죄악시하는 종교 단체에 의해 종종 논란거리가 된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정부 때 큰 정치적 이슈였다.

 1999년 미국에서 이스라엘 제약회사 테바가 사후피임약 플랜 B를 출시했다. 처음에는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2001년부터 여성 단체는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과학자들은 안전성이 확보되었으므로 일반의약품으로 판매해도 문제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수적인 공화당 부시 정부는 응하지 않았고 2006년에 와서야 18세 이상만 처방 없이 살 수 있도록 바꾸었다. 그러다 2009년 오바마 정부는 17세 이상으로 나이를 낮췄다.

 2011년이 되어서야 미국 FDA는 "나이 제한을 없애고 플랜 B를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캐슬린 시벨리우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를 거부했다. 시벨리우스 장관은 11세 소녀도 10%는 임신할 수 있는데, 플랜 B의 안전성이 어린 여성에게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FDA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므로 장관이 결정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에 따라 내리는 FDA의 결정을 장관이 뒤집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 민주당은 진보적이이서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편인데,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의외였다. 여기에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임을 원했다. 17세 이상이라는 나이 제한을 유지함으로써 뜨거운 이슈였던 플랜 B 논란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나이 제한이 풀리면 부모 몰래 아이들이 플랜 B를 남용하게 된다는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논란은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다. 2013년 연방법원은 "시벨리우스 장관의 결정은 과학보다 정치를 앞세운 것이었다"며 플랜 B에 대한 나이 제한을 철폐하고 누구나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도록 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과학적 근거뿐 아니라 때로는 상식적 판단도 중요하다"며 버텼다. 오바마 정부는 나이 제한을 15세로 낮추는 것으로 타협하려 했지만, 법원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플랜 B는 2013년, 나이 제한 없이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약이 됐다.

 사후피임약은 응급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피임약 대용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몸에 무리를 줄 수 있어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사전피임약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다. 피임약은 광고만 보고 구입하기보다는 궁금한 것을 약사에게 문의하면 도움이 된다. 자궁 출혈, 혈전 위험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호르몬 종류와 함량에 따라 선택해서 복용하는 것이 유익하다.

 

p81

 남녀의 특징을 한 몸에 지닌 사람을 간성 혹은 인터섹스라고 한다. 염색체, 생식샘, 성호르몬, 성기 등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 정의와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성별 구분이 모호한 사람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사방지와 임성구지이다.

 세조 8년(1462), 왕은 당시 실세였던 역술가 이순지의 딸이 과부가 된 후 사방지라는 양성인兩性人 노비와 10년 동안 내연관계를 맺었다는 사헌부의 보고를 받았다. 사방지는 겉보기에는 여성이지만 남성 생식기를 가지고 있었다. 양반 자식으로 태어났던 사방지가 양성을 지닌 것을 보고 어머니는 여자 옷을 입히고 바느질을 가르치며 여자로 살도록 했다. 그러던 중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이 될 때 세조 편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방지 집안은 멸문되어 노비가 되었다. 사방지는 장성한 뒤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는데, 이때 이순지의 딸 이 씨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세종은 사방지를 불쌍히 여겨 벌을 내리지는 않았다. 대신 측근 이순지에게 처분을 맡겼다. 이순지는 사방지를 시골로 보냈다. 그렇지만 이 씨와 사방지의 관계는 계속되었다. 이순지가 죽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정승 한명회가 처벌을 주장하자 세조는 사방지를 관로비로 만들어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이로써 사방지와 이 씨의 관계도 끝나고 말았다.

 또 다른 예로 임성구지가 있다. 명종 3년(1548), 함경도 감사가 길주 지역에 사는 임성구지가 양의(남성과 여성 생식기)를 가져 시집도 가고 장가도 들었다고 보고했다. 처음에 여자로 살려고 시집갔지만, 첫날밤 그녀의 몸을 본 남편이 혼비백산했다. 새색시의 은밀한 부위에 생각지도 못한 남성의 성기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시집에서 쫓겨나온 임성구지는 남장을 했다. 남자 행세를 하면서 갈 곳 없이 떠돌다 마음 맞는 여자를 만나 장가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이중 행각은 얼마 후 들통이 났다. 관청에 끌려온 임성구지를 처리할 방법을 몰랐던 함경도 감사가 조정에 문의했다. 명종은 사방지 사례를 참고해 임성구지를 외진 곳으로 보내 다른 사람과 섞여 살지 못하게 했다.

 사방지와 임성구지처럼 남녀 생식기 모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양성구유 혹은 남녀한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아기가 이렇게 태어나면 주변에 숨기고 부모가 한 가지 성을 결정해 살아가기를 강요한다. 1950년대 미국에서도 이런 아이가 태어나면 병원에서 수술해 한쪽 성을 정해버렸다. 아이가 자라면 자신이 선택한 성이 아니라서 나중에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현상은 고대부터 드물게 있었는데, 신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나온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연못에서 수영하고 있을 때 호수의 요정 살마키스가 그를 유혹했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거부하자 살마키는 그의 몸을 칭칭 휘감은 후, 신에게 "우리 둘을 영원히 한 몸으로 만들어주세요"라고 빌었다. 그러자 둘은 남녀 양성을 가진 동체가 되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조각상을 보면 남녀 한 몸 모양인데, 그리스에서는 남녀 모두를 가졌다고 해서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녀의 성은 확실하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전체 인구의 1.7% 혹은 연구에 따라서는 0.018%가 간성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외부 생식기는 남성이지만 난소가 있거나, 외형은 여성이지만 잠복 고환이 있는 등 형태도 다양하다. 세메냐처럼 여성인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0.018%라 해도 현재 우리나라 5,100만 명 인구로 계산하면 9,000명이 넘는 사람이 간성이라는 의미다.

 2015년 국제연합은 간성 유아에 대한 생식기 수술 관행을 비판했다. 2017년 미국 휴먼 라이츠 워치 Human Rights Watch와 인터액트(간성 어린이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는 생식기 수술을 비난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미국 하원에 생식기 수술을 금지하라고 요구했다. 지금은 일방적으로 수술하지 않고 아이가 성장한 후 스스로 성을 선택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p252

 한때, 기생충은 박멸해야 하는 악이었지만 기생충이 거의 사라진 사회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이 늘어난 것이다. 1960~70년대는 위생상태가 나쁘고 상하수도 시설이 열악했다. 기생충이 창궐해서 대대적으로 퇴치했지만, 환경이 너무 깨끗해지자 과도한 면역반응이 일어났다.

 외부에서 들어온 기생충을 인체는 이물질로 인식한다. 면역세포가 기생충을 감시하며 관리하는 과정에서 면역체계가 강해졌는데, 이방인이었던 기생충이 갑자기 사라지자 혼란이 생겼다. 아토피, 천식, 비염같이 예전에는 드문 질환이 늘어났다. 3만 년 전 사람 몸속에서 회충이 발견될 만큼 사람과 기생충은 오랫동안 공생해왔다. 그래서 서로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균형을 이루며 살았다. 보기에는 흉측하지만 나름 기생하면서 면역을 튼튼하게 해준 공로가 있다.

 

 

 핵발전과 핵무기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핵물리학에 대한 설명이 전반부, 후반부는 핵발전과 핵무기의 기술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내용은 고등학교 수준 정도의 물리,화학적 기본지식만 가지고 있으면(아마도 그것도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이해할만한 내용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만도 않다. 저자가 J-PARC(Japan Proton Accelerator Research Complex, 일본 양성자 가속기 연구 복합센터)라는 고에너지 가속기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내용을 쉽게 설명할 뿐이지 내용 자체는 일반인이 쉽게 알지 못할만한 내용이다.

 원자력이라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입문서로서 추천할만한 내용이다.

 저자가 2019년에 핵병기(核兵器)라는 제목의 책을 내놨는데(아직 국내 미발매) 상당한 수준의 심화된 도서일 듯 해서 관심이 간다. 이것도 번역되서 나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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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7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아이오딘(요오드)를 마시시오!"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오딘-131은 이 반응처럼 우라늄-235의 핵분열 반응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까닭에 일정 기간 이상 가동된 원자로 안에 많이 있습니다.

 

       235U + n → (236U) → 103Y + 131I + 2n

 

 그리고 이 아이오딘-131은 베타선이라는 방사선을 방출하는 동위 원소(방사성 동위 원소)인데, 베타선은 알파선과 마찬가지로 내부 피폭의 영향이 큰 방사선입니다. 게다가 아이오딘은 화학적인 성질상 갑상선을 공격하기 때문에 위험하지요. 그런데 한편으로 천연에 존재하는 아이오딘의 대부분은 아이오딘-127이라는 방사선을 방출하지 않는 동위원소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미리 섭취해 갑상선에 충분히 축적되도록 만들면 방사성인 아이오딘-131을 흡입하더라도 갑상선에 쌓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아이오딘은 자원이 적은 나라로 알려진 일본의 귀중한 천연 자원입니다. 지하자원으로서는 세계 가채매장량(현재 확립된 기술을 사용해서 채산성을 확보하며 생산할 수 있는 양)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매장량이지요. 산출량도 세계 2위로, 그중 80퍼센트가 지바 현에서 채굴되고 있습니다. 미나미간토南關東 가스전田이라는 일본 최대의 가스전에서 채굴되고 있지요. 미나미간토 가스전은 지바 현과 도쿄에 걸쳐 있는 가스전으로 일본 국내 천연가스 매장량의 무려 90퍼센트를 차지하는 곳입니다만, 이 천연가스를 본격적으로 채굴하면 도쿄의 지반이 침하되어 도쿄가 괴멸되기 때문에 채굴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p93

 중성자의 속도가 느리면 원자핵이 쉽게 붙잡을 수 있지만 중성자의 속도가 빠르면 원자핵이 붙잡지 못해서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이 많아지지요. 중성자를 잡지 못하면 핵분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표5는 중성자의 대표적인 속도에 대한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기 쉬운 정도의 차이를 비교한 것입니다.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기 쉬운 정도는 '핵분열 단면적'이라고 부르는 값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중성자를 붙잡기 쉬운 정도뿐만 아니라 중성자를 붙잡았을 경우에 핵분열이 일어날 확률을 함께 나타내지요. 이 표를 보면 원자핵에 부딪히는 중성자의 속도에 따라 핵분열이 일어나는 비율이 상당히 달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이 이 점만을 생각해서 핵분열 반응을 효율적으로 실시하려 한다면 중성자의 속도가 느린 편이 좋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표5. 핵분열 단면적

중성자의 속도 핵분열 단면적
[m/sec] [x10^-28 m2]
2,200 585
20,000,000 1.2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면 질량 결손으로 방대한 에너지가 생기며 이것이 반응 후 물질의 운동 에너지가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중성자는 그 방대한 에너지를 받아 빠른 속도를 내지요. 그런데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할 때는 핵분열 반응으로 생겨난 이 중성자를 가지고 다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는 식의 연쇄 반응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서 연쇄 반응을 효율적으로 일으키기 위해서는 생겨난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린 아이나 젊은 사람들도 스마폰에 지나치게 노출되면 노안이 올 수 있다는 내용.

예방법과 대처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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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8

 스마트폰과 휴대전화가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을 다룬 학술논문이 전 세계적으로 만 건 이상 발표되었다. 나라에 따라서 언론이 광고주의 눈치를 보느라 이 문제를 되도록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지만, 2011년 WHO는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휴대전화를 '발암성을 지닌 유해 물릴'로 지정하기도 했다. 미국을 포함한 14개국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입증한 과학적 사실로 당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103

 눈에 핫팩을 하는 습관은 아주 좋다. 핫팩은 부작용도 없고 스마트폰 노안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바람직한 습관이다. 

 왜 핫팩을 하면 눈에 좋을까? 혈액순환이 좋아지거나 눈주위 근육에 쌓인 피로가 풀려서 일 수도 있고, 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핫팩을 추천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래위 속눈썹 뿌리 부분에는 속눈썹과 나란히 '마이봄선 Meibomian gland'이라는 분비샘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마이봄선은 지방을 분비하고 눈물 성분에 유분을 더한다. 또 유막을 형성해 눈알과 눈꺼풀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해주고, 눈물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준다. 마이봄선에서 분비되는 지질은 우리 눈에 필요한 천연 안약인 셈이다.

 그런데 마이봄선은 약간의 자극으로도 막힐 수 있다. 운 나쁘게 마이봄선에 세균이 침투하면 다래끼나 안구건조증, 안구 피로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평소 마이봄선이 막히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마이봄선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핫팩이다. 마이봄선의 지방이 녹아나는 온도는 약 40도이다. 욕조에 들어갔을 때 약간 뜨겁게 느껴지는 온도다.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수건을 목욕물에 적셔 눈 위에 올리면 마이봄선을 막고 있던 지방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꾸준히 핫팩을 하면 스마트폰 노안이 상당히 나아진다. 게다가 핫팩 덕분에 눈물이 덜 말라 안구건조증을 예방할 수도 있다.

 

불복종에 관하여(On Disobedience)중에서 4편의 에세이를 발췌했다. 번역이 매끄러워 이해하기 좋다.

특히 인류여 번성하라는 인본주의에 대한 헌사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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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리적 · 도덕적 문제로서의 불복종

 

p13

 자신의 양심에, 또 인본주의와 이성의 법칙에 복종하기 위해, 종교와 자유와 과학의 모든 순교자는 그들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자들에게 불복종해야 했다. 어떤 사람이 오로지 복종만 할 수 있고 불복종은 할 수 없다면 그는 노예다. 오로지 불복종만 할 수 있고 복종은 할 수 없다면 그는 반항꾼이다. 혁명가와 반항꾼은 다르다. 반항꾼은 분노와 실망, 억울함에 추동되어 행동할 뿐 신념이나 원칙의 이름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p18

 만약 어떤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시스템이 자유를 주창하면서 불복종을 억압한다면, 그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일 수 없다.

 

p19

 "감히 알고자 하라 sapere aude"는 원칙과 "모든 것을 의심하라 de omnibus est dubitandum"는 원칙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더욱 키워나가게 해주는 태도의 핵심적인 특징이었다.

 아돌프 아히히만은 우리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며,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그를 고발한 사람들이 제기한 바를 훨신 넘어서는 중요성을 가진다. 아히히만은 조직인組織人, organization man의 상징이다.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인간을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된, 소외된 alienated 관료의 상징이다. 그는 우리 모두의 상징이다. 우리는 아이히만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와 관련해 가장 무서운 사실은, 그가 저지른 일이 낱낱이 다 드러났고 심지어 그것을 본인 스스로 인정했는데도 그가 완전히 진심으로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같은 상황에 다시 처해진다면 분명히 그는 같은 짓을 다시 저지를 것이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조직인은 불복종의 역량을 잃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역사의 현 시점에, 의심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냐 문명의 종말이냐를 가를 모든 것일지 모른다.

 

 

2장. 예언자와 사제

 

p42

 하지만 과학이 삶에서 가치를 주는 순간들을 박탈한다면, 아무리 영리하고 정교하게 작동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을 절마의 길로 이끄는 것이며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것이다.

 

p50

 사람들 사이의 구분 중에 삶을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의 구분보다 더 뚜렷한 것은 없을 것이다. 죽음 애호는 인간만이 획득하는 특질이다. 인간은 지루함을 느끼게 될 수 있고 죽음을 사랑하게 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불능(성적 불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인 사람은 생을 창조할 수 없지만 생을 파괴함으로써 그것을 초월할 수는 있다. 삶 가운데서 죽음을 사랑하는 것은 궁극적인 도착증이다. 어떤 사람들은 진실로 죽음을 애호한다. 이들은 자신의 진짜 동기를 인식하지 못해서 자신의 야망이 생, 명예,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하지만, 실은 죽음을 애호하기 때문에 전쟁에 환호하고 전쟁을 촉진한다. 이런 사람은 아마 소수이겠지만,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을 내리지 않는 사람은 아주 많다. 이 선택에 직면했음으로 외면하기 위해 일상의 바쁨 속으로 숨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파괴를 환영하지는 않지만 생을 환영하지도 않는다. 전쟁에 열정적으로 반대하려면 꼭 필요한 생의 기쁨이 이들에게는 없다.

 

 

 

3장. 인류여 번성하라

 

p63

 오늘날 우리의 정치사상은 영적인 뿌리를 잃었고, 생활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 더 효율적인 정치 행정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로만 판단되는 편의적 방편의 문제가 됭ㅆ다. 정치사상은 인간의 심성과 열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뿌리를 잃고 공허한 껍데기가 되었고 편의에 따라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것이 되었다.

 

p66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는데, 실로 옳은 말이다. "모든 육체적, 정신적 감각은 이 모든 감각의 자기 소외에 의해, 즉 소유의 감각게 의해 잠식되었다.... 사적 소유는 우리를 너무나 멍청하고(생성의 능력에 있어서) 무력하게 만든 나머지 우리가 어떤 사물을 소유할 때만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자본의 형태로 존재할 때만,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소유했을 때만, 우리가 먹었을 때만, 우리가 마셨을 때만, 우리가 사용했을 때만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이 모든 부를 가지고서도 가난하다. 많이 소유하고는 있지만 우리의 존재가 너무나 하찮기 때문이다."

 

p70

 하지만 어떤 용어를 쓰든 옛 자본주의와 새 자본주의 사이에는 기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연대와 사랑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원칙, 인간의 의지와 비전과 계획이 아니라 비인격적 메커니즘인 시장이 사회의 삶을 조절해야 한다는 믿음 등이 그렇다. 자본주의는 사물(자본)을 삶(노동)보다 우위에 둔다. 권력은 행동이 아니라 소유에서 나온다.

 

p72

 마르크스주의적 형태와 그 밖의 많은 형태에서도 19세기 사회주의는 모든 이가 존엄한 인간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 물질적 조건을 만들려 했다. 자본이 노동을 이끌게 하기보다 노동이 자본의 방향을 설정하게 만들려 했다. 사회주의에서 노동과 자본은 단지 두 개의 경제적 범주가 아닝ㅆ다. 노동과 자본은 두 개의 원칙을 의미했다. 하나는 자본, 즉 축적된 사물, 소유의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 즉 삶과 인간의 힘, 존재하고 되어가는 것의 원칙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사물이 삶을 이끌고 소유가 존재보다 우위에 놓이며 과거가 현재를 이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관계를 뒤집고자 했다. 사회주의의 목적은 인간 해방이었다. 인간이 소외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다시 개인이 되기를, 인간이 동료 인간과, 또 자연과 새롭고 풍성하고 자생적인 관계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 사회주의의 목적은 인간이 자신을 묶은 속박과 비현실과 허구를 벗어버리고, 느끼고 사고할 수 있는 자신의 힘을 사용해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는 인간이 독립적이 되기를, 자신의 발로 설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그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를 자기 자신에게 의존할 때만", 그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사고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즉 세계와 맺는 모든 관계에서 전인격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개인성을 긍정할 때만",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자신의 개인성의 모든 장기와 기관들을 긍정하고 표현할 때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사회주의의 목적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융합이었다.

 

 

4장. 인본주의적 사회주의

 

p89

 현재의 중앙 집중적인 국가에서 완전하게 탈중심화된 사회 형태로 이행하려면 과도기가 필요하며 과도기에는 몇몇 중앙 계획과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러한 중앙 계획과 국가 개입이 관료주의를 심화하고 개인의 통합과 주도권을 약화하게 될 위험을 피하려면 1) 국가가 실질적으로 시민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하고, 2) 기업의 사회적, 정치적 권력이 깨뜨려져야 하며, 3) 탈중심적이고 자발적인 연합의 형태로 이뤄지는 모든 생산과 교역, 그리고 지역에서의 사회적, 문화적 활동들은 모두 (과도기가 끝난 다음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촉진되어야 한다.

 

p92

 탈중심화는 사회 전체의 삶을 규율하는 근본 원칙들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의사 결정을 소규모로 그리고 지역적인 수준에서 거주자의 손에 최대한 맡기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형태를 찾아내든 간에 (최면과 암시로 통제되는 로봇화된 대중이 아니라) 정보를 바탕으로 책임 있게 참여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과정으로서의 민주적 과정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 늘 본질적인 원칙이어야 한다.

 

 

 소설의 기본 구성은 중년 남성의 위기?를 하루키식으로 변주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파악하는 의미는, 국경의 남쪽은 일종의 파라다이스 혹은 오아시스를 의미하며, 태양의 서쪽은 사막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서는 사실 희망적인 부분은 거의 없어보이고, 아주 건조하다. 그것은 그것대로 하루키의 매력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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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

 이곳은 이미 새로운 세계이고, 일찍이 존재했던 세계로 통하는 배후의 문은 벌써 닫혀버렸다. 나는 이 새로운 나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어떻게든 나를 확립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p114

 우리는 이른바 운동권 세대로서,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전반에 거친 치열한 학원투쟁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였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았다.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건 전후 한 시기에 존재했던 이상주의를 배경으로 탐욕스럽게 살쪄가는 고도의, 보다 복잡하고 보다 세련된 자본주의의 논리에 맞서 주장했던 노(No)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인식했다. 그것은 전환기 사회의 격렬한 발열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세계는 이미, 더욱 고도의 자본주의 논리에 의하여 성립된 세계였다. 결국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세계에 꿀꺽 집어삼켜지고 만 것이다.

 

p226

 "하지메, 사진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그건 단지 그림자 같은 거야. 진짜 나는 다른 곳에 있어. 그런 건 사진에는 나오지 않아."

 

p243

 타인을 위해서 올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나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이었고, 나 자신을 위해 울기에는 너무 나이 들어 있었다.

 

 

 

 요즘들어 개인적으로 인구감소에 대한 이슈에 관심이 간다. 더 자세하게는 인구감소의 영향이 경제성장을 저하시킬까 하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인구의 감소는 노동력 손실로 이어져 경제하강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 같다는 선입견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항상 있어왔는데, 이 책은 꼭 그렇지는 않다라는 것을 데이터와 현재까지의 경제적 발전의 역사과정을 통해서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제는 "人口と日本經濟 長壽,イノベ-ション,經濟成長"   "인구와 일본경제 : 장수, 이노베이션, 경제성장"으로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요약하자면 인구는 경제성장의 하나의 요인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은 인구, 즉 노동력 자체보다는 이노베이션에 의해 노동생산성의 향상 혹은 경제(생산,소비) 구조의 변화에 의한 것이 더 크다는 내용이다.

 200페이지 남짓의 짧은내용(저자도 이론서라기보다는 에세이라고 표현했다)이라, 경제적 이론보다는 직관적인 그래프와 상식적인 내용 위주로 쉽게 풀어나간다.

 세계 최저 출생율로 인한 인구감소가 점차 가시화되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추어서도 많은 참고가 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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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

 인구 억제는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맬서스는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심과 그로 인한 만혼화, 비혼화가 인구를 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억제는 분명 사회적으로 가난한 계층에서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많은 남녀 하인들이 미혼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미혼자 수를 전체 인구로 나눈 '미혼율'을 밝혀내면 그 나라의 인구가 증가하는지 혹은 감소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어디까지나 미혼율은 인구의 '증감'과 연관된 것이지 인구의 많고 적은 '수준'과는 관련이 없다고도 했다.

 여기서부터 구빈법 개혁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다. 구빈법을 개혁해 급부 수준을 인상하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맬서스는 급부 수준이 인상되면 빈곤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일시적으로는 향상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효과가 크면 클수록 인구가 증가하고, 결국 이들의 생활은 이전과 변함없는 비참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소득을 재분배한들 식량의 총공급량이 변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그들의 생활은 개선될 리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맬서스는 가족을 제대로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증가해 인구가 늘어나면 결국에는 굶주림, 질병 등으로 인해 인구가 억제되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계속해서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러한 비참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애초에 가난한 사람들이 가족 부양의 어려움을 자각하고 결혼을 포기함으로써 인구가 억제되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이다.

 맬서스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논리는 『인구론』의 중반부에 요약되어 있다. "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식량에 의해 제어된다. 식량이 많아지면 인구도 늘어난다. 인구 증가를 부추기는 힘을 억제하고 현실 속 인구와 식량의 공급 수준을 적절히 조정할 수 있는 건 빈곤과 악덕이다." 이러한 맬서스의 논의는 이후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에 의해 매도당한다.

 

p50

 번영의 시대였던 19세기에 부의 불평등은 저축의 증가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만약 한 나라가 창출하는 부를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한다면 사람들은 이를 전부 소비해버리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저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유 있는 부자들이 저축을 하고 그것이 자본 축적으로 이어지면서 경제 사회가 진보한다. 즉 불평등은 인간 사회가 진보하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것이 19세기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이었다.

 

p90

 우선 공급의 측면을 보자. 노동자 수가 감소하면 만들 수 있는 제품의 수도 감소한다. 이는 이해하기 쉬운 이론이자 부정할 여지가 없는 '불변의 논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사실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 있다. 한 국가에서 1년간 생산되는 모든 물건 및 서비스 가치(정확히는 '부가가치')의 총계를 나타내는 것이 GDP(국내총생산)인데 그 성장률은 결코 노동력 인구의 증가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표2-6>은 1870년부터 100년간 일본 인구와 실질 GDP의 변화를 비교한 것이다. 전후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표의 오른쪽을 보면 상승세가 두드러지는데, 축적을 바꾸어 왼쪽만 보면 전전戰前에도 GDP와 인구 성장 사이에 매우 큰 괴리가 보인다. 메이지 시대(1868~1912)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150년 동안 경제 성장과 인구는 겨의 관계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괴리된 모습을 보였다. 

 경제 성장률과 인구 증가율의 차이야말로 '노동 생산성'의 성장과 다름이 없다. 노동 생산성의 향상은 대략 '1인당 소득'의 성장을 의미한다. 노동력 인구가 변함없더라도(혹은 조금 감소하더라도) 한 명의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증가하면(즉 노동 생산성이 상승하면) 경제 성장률은 플러스가 된다.

 

 

 한 국가에서 노동 생산성 상승을 야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새로운 설비와 기계를 투입하는 '자본 축적'과 넓은 의미에서의 '기술 진보', 즉 '이노베이션'이다.

 

p108

 2012년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제3차 산업 혁명'이라는 특집 기사를 냈다. 선진국의 제조업 현장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으로 확산되었으나 이제는 3D 프린터 등이 등장하면서 물건을 만들 때 필요한 인간의 노동량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코노미스트』 특집에서는 애플의 아이패드 소매가격 499달러 중 제조 비용(판매료 및 인건비)은 187달러이며, 그중 중국에서의 노동 비용은 8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물론 산업에 따라 생산량에서 노동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어쨋든 간에 21세기에는 '값싼 노동력'이 별다른 이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새로운 물건을 팔 시장과 가까운 곳에서 만들 때의 이점이 더 커진다. 이로써 제조 현장은 또다시 선진국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한다.

 

p194

 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밀은 자신의 이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인간에게 최선의 상태란 아무도 가난하지 않을뿐더러 누구도 부유해질 생각이 없고, 부유해지려는 타인의 노력을 보고도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않는 상태다. -정치 경제학 원리-

 

 

 인간에게 있어서 항상 다른 인간과 접촉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고독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고독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고독, 즉 때때로 혼자가 되는 일은 인간이 자신의 생각 및 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없어선 안 될 부분이다.

 

p213

 

 안타깝게도 현재 일본 경제는 퇴영적退嬰的이다 <표4-5>는 저축, 즉 수입과 지출 차액의 추이를 가계, 기업, 정부 등 부문별로 살펴본 것이다. 이제는 기업이 가계를 넘어 일본 경제에서 가장 큰 순 저축 주체가 되었다. 이를 자본주의 경제 본래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가계가 저축을 하고 기업이 마이너스 저축, 즉 빚을 내어 투자했다. 기업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뀐 것은 시대가 아니라 기업이다.

 슘페터는, 이노베이션을 떠맡아야 할 주체는 본질적으로 금전적 이익을 물론이거니와 미래를 향해 스스로의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인스 역시, 기업의 설비 투자란 아문센이 개썰매를 타고 남극을 향했듯이 결국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에 의한 것이라며 건전한 낙천주의를 잃어버리고 합리적인 계산에만 매달리는 기업은 쇠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경제의 미래는 일본 기업이 '인구 감소 비관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서도 아마 비슷한 자료를 찾을 수 있을것 같긴 한데 찾지는 못했다. 경제지 기사를 참고해보면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예상된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03/146682/

 

저축 많이 하는 기업들…작년 기업예금 증가율, 가계의 갑절 - 매일경제

기업예금 비중 2000년 26%→작년 30.5% vs 가계 59.8%→44.3% 투자의 주체로 알려진 기업의 예금 증가율이 저축 주체인 가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예금은행의 기

www.mk.co.kr

 

 

저자는 군론(Group theory)을 전공한 옥스포드대 수학교수이다. 저자의 이력만 보면 수학에 관한 내용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물리학, 논리학 그리고 수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 초반의 5개의 챕터는 상당한 깊이의 통찰로 양자론, 우주론, 상대성이론에 대한 수학적, 철학적 고찰을 보여준다.

초반 5개의 챕터만으로도 현대 물리학에 대한 상당히 알차고 수준높은 입문교양서가 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2개의 챕터에서는 논리학, 의식과 관련된 인공지능, 그리고 수학적 추론과 저자 본인의 수학적 연구테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식적인 전개가 있지는 않고 서술적이지만, 내가 수학적 지식이 짧아서 완벽히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뒤에 집중력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읽으면 이해할만한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과학 교양서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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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내가 기자들과 가장 자주 나눴던 대화는 대충 다음과 같다.

 

 기자 : 교수님은 어떤 종교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나 :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주세요.

 기자 :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 :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신'을 정확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정의를 내리시겠습니까?

 기자 : 그야 뭐....,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한 존재겠지요.

 나 : 정말 황당하네요. 그런 초월적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는 취급 가능한 대상의 존재 여부만을 알 수 있답니다!

 

p163. 최후의 단위 : 쿼크

 

 그 후 몇 명의 물리학자들이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SU(3)의 다차원 표현에 대응되는 패턴들을 여러 층으로 쌓았더니, 제일 꼭대기 층이 누락된 피라미드 형태가 된 것이다. 꼭대기에 간단한 삼각형이 놓이면 그림이 완성될 것 같았다. 삼각형은 3차원에 적용되는 SU(3) 대칭군의 가장 간단한 물리적 표현에 해당한다. 이 피라미드를 대칭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누락된 층으로부터 다른 층들을 순차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어떤 입자를 할당해야 하는지, 그것이 문제였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로버트 서버 Robert Seber 는 누락된 층에 해당하는 세 개의 입자들이 다른 층의 모든 입자를 구성하는 궁극적 기본 단위일 것으로 예측했다. 1963년의 어느 날, 그는 겔만과 점심 식사를 함께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고 겔만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그 입장의 전하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겔만은 냅킨을 탁자에 펼쳐놓고 몇 줄 끼적이더니 곧바로 답을 알아냈다. 그 입자의 전하는 양성자의 2/3이거나 -1/3이 되어야 했따. 겔만이 웃으면 말했다.

 "정말 희안한 입자인데요. That would be a funny quirk. "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발견된 그 어떤 입자도 전하가 분수인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입자의 전하는 양성자나 전자의 전하의 정수 배여야 했다.

 당시의 상황은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를 연상시킨다. 피타고라스는 모든 만물이 정수로 표현된다고 하늘같이 믿었다가 정수가 아닌 분수를 발견했고, 정수와 분수가 전부라고 생각했다가 무리수와 마주치지 않았던가. 20세기의 물리학자들도 모든 입자의 전하가 어떤 기본 단위의 정수 배라고 믿었다가 '분수 전하'라는 복병과 마주친 것이다. 처음에 겔만은 분수 전하에 회의적이었으나 그날 저녁부터 생각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 후에는 서버의 아이디어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자신이 진행 중인 연구를 '쿼크kworks'라고 불렀다. 이것은 그가 예전부터 '작고 흥미로운 것'을 칭할 때 즐겨 쓰던 그만의 은어였는데, 서버도 희안한 입자를 표현하는 데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겔만은 제임스 조이스의 실험적 소설 《피네간의 경야》를 읽다가 자신이 연구 중인 가상의 입자에 어울리는 이름을 발견했다. 이 책에는 트리스탄 신화의 바람둥이 마크 왕을 조롱하는 시가 등장하는데, 그중 한 구절이 눈에 띈 것이다.

 "마크 대왕에게 세번의 쿼크를! There quarks for Muster mark!"

 여기 나오는 '쿼크quark'는 자신이 만든 신조어 '쿼크kwork'와 발음도 비슷하고, 게다가 '3'이라는 숫자까지 명시되어 있으니 겔만에게는 더 없이 적절한 이름이었다.

 

p212

 관측 행위의 기이한 특성은 내 책상 위에서 붕괴되고 있는 우라늄에도 적용된다. 우라늄에서 복사(알파 입자)가 방출되는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초미세 감지기를 짧은 간격으로 계속해서 들이대면 우라늄은 마치 얼어붙은 얼음처럼 붕괴를 멈추고 현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물이 담긴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려놓고 계속 바라보면 절대로 끓지 않는다"는 속담에서 주전자를 우라늄으로 바꾼 양자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불안정한 입자를 계속 관찰하면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여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다. 이 현상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의 이름을 따서 '양자적 제논 효과'라 한다.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의 한순간을 포착한 스냅샷(정치영상)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화살은 움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p310

 미래에는 우주 배경 복사처럼 은하에서 방출된 빛도 가시광선 영역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데 어떤 이론을 세울 수 있겠는가? 우리의 먼 후손들은 고대 그리스의 우주관을 다시 수용할지도 모른다. 우리 은하는 우주에 홀로 고립되어 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우주의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고대의 선민의식도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잘 보존하여 후대에 전해주고 싶지만, 수십억 년 후까지 온전하게 전달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우주의 운명이 원래 그런 것을....

 

p347

 시간의 가장 작은 단위인 '초秒, second'는 현대에 이르러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1967년 이전까지는 지구의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를 통해 정의된 초 단위를 사용해왔는데, 값이 수시로 변하여 시간의 기본 단위로는 적절치 않았다. 예를 들어 6억 년 전에는 지구의 자전 주기가 22시간이었고 공전 주기는 거의 400일에 가까웠다. 그런데 바다의 조석 현상이 지구의 자전 에너지를 달에 전달하여 지구의 자전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달은 지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 지구의 공전 주기가 일정하지 않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도량형 학자들은 1967년에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시간의 척도를 우주에서 찾는 대신 운동이 한결같은 원자에서 찾기로 한 것이다. 이때 제정된 1초의 정의는 다음고 같다.

 

 절대 온도 0K에서 세슘 원자(Cs-133)가 바닥상태의 초미세 준위 사이에서 전이할 때 방출되는 복사(전자기파)의 주기의 9,192,631,770배를 1초로 정의한다.

 

p577

 "말할 수 없으면 침묵하라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

 비트겐슈타인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 등장하는 명언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패배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피해 의식에 빠져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이보다는 "알 수 없으면 상상력을 가동하라"는 말이 훨씬 생산적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던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을 탐구하기 위한 초석이다. 맥스웰은 "모든 과학의 발전은 완전한 무지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특히 수학을 연구하다 보면 이 말이 피부에 와 닿을 때가 많다. 문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답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끈기 있게 매달리면 결국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돌아온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은 "지식의 최대 적은 무지가 아니라 자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환상"이라고 했다.

 

 

 1독 : 내용은 대강 파악. 제대로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려면 1번 더 읽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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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어려움은 인간의 지적 능력 발달이 감정 발달을 훨씬 앞지른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 인간과 현 상황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20세기에 살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심장은 아직도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독립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인간은 혼자이고 ,인간 자신을 빼고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권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뎌내려면 그들에게는 신화와 우상이 필요하다. 인간은 파괴성과 증오, 시샘과 복수심같은 무분별한 열정을 억누르고 힘과 돈, 독립 국가와 민족을 숭배한다. 인간은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 - 부처, 구약의 예언자들, 소크라테스, 예수, 무함마드 - 의 가르침에 말로만 경의를 표하면서, 그 가르침을 미신과 우상 숭배의 정글로 바꾸어버렸다. 지적 · 기술적 조숙과 감정적 퇴보 사이의 괴리로 말미암아 자신을 파괴할 위기에 놓인 인류는 그 위기에서 어떻게 자신을 구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본질적인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인식은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주고, 객관성과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이나마 높여준다. 가슴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어리석은 짓과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과 사고에 미치는 악영향을 겨우 한 세대 만에 극복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인간이 수십만 년에 걸친 인류 출현 이전의 역사에서 벗어나려면 아마 천 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 중대한 순간, 조금만 통찰력 - 객관성 - 을 강화하려면 인류의 생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학적이고 역동적인 사회심리학의 발달이 매우 중요하다. 물리학과 의학의 진보에서 생겨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심리학의 진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p21

 존 듀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해외에 있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 태도와 우리 자신의 제도 속에는 외적인 권위와 규율, 획일성, 외국의 지도자에 대한 의존이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준 조건들이 존재하고, 바로 그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따라서 싸움터는 이곳, 우리 자신과 우리 제도의 내부에도 존재한다.

 

p25

 파시즘이 권력을 잡았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이 악에 대한 성향과 힘에 대한 욕망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 약자의 권리를 그렇게 무시하고 복종을 갈망할 수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화산이 분출하기 전에 땅이 울리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극소수뿐이었다. 니체는 19세기의 자기만족적인 낙관주의를 흔들어놓았고, 마르크스도 다른 방식으로 낙관주의를 뒤흔들었다. 또 다른 경고는 조금 나중에 프로이트한테서 나왔다. 확실히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 대다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지극히 소박한 생각밖에 갖고 있지 않았고, 그가 사회 문제에 심리학을 적용한 경우에는 대부분 그 해석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개인의 정서적 장애와 정신적 불안이라는 현상에 관심을 기울여, 우리를 화산 꼭대기로 데려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화구를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프로이트는 인간 행동의 여러 부분을 결정하는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힘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에서 그 전의 누구보다도 앞서 있었다. 근대 합리주의는 인간성을 이루는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부분의 존재를 도외시했지만, 근대 심리학에서 프로이트와 그의 후계자들은 그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부분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그 비합리적인 현상이 일정한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프로이트는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만이 아니라 꿈의 언어와 신체적 증상을 이해하는 법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의 성격 구조 전체만이 아니라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들도 개인이 외부 세계에서 받은 영향, 특히 어린 시절에 받은 영향에 대한 반응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그가 속해 있던 문화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것이 정해놓은 어떤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 한계는 환자에 대한 그의 이해까지도 제한하게 되었고, 그가 정상적인 개인을 이해하고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었다.

 이 책은 사회 과정 전반에서 심리적 요소들이 맡고 있는 역할을 강조하고, 이 분석은 프로이트의 기본적인 발견 - 특히 인간의 성격에서 무의식적인 힘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힘들이 외부의 영향에 얼마나 의존하는지에 관한 발견 - 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접근방식의 일반적인 원칙은 무엇이고, 이 원칙과 프로이트의 고전적인 개념은 어떻게 다른지를 처음부터 알려주는 편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성이 약하다는 전통적인 학설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기본적으로 양분하는 전통적인 믿음도 받아들였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회는 인간을 길들여야 하고, 인간이 생물학적 - 따라서 근절할 수 없는 - 충동을 직접 만족시키는 것을 어느 정도는 허락해야 한다. 하지만 대체로 사회는 인간의 기본적인 충동을 정화시키고 노련하게 억제해야 한다. 타고난 충동을 사회가 이렇게 억압하면, 그 결과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다. 즉 억압당한 충동이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노력으로 바뀌고, 그리하여 문화의 인간적 토대가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억압이 문화적 행동으로 바뀌는 이 이상한 변화를 승화(昇華)라고 불렀다. 억압의 정도가 개인이 승화시킬 수 있는 한계를 넘으면 개인은 신경증에 걸리고, 억압을 줄이는 것을 허락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개인의 충동을 만족시키는 것과 문화 사이에서 반비례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억압이 강할수록 문화가 발달한다(그리고 신경 장애에 걸릴 위험도 더 높아진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고정적이다. 개인은 사실상 변하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고, 사회가 개인의 자연스러운 충동에 더 강한 압력을 행사하거나(그래서 더 많은 승화를 강요하거나) 더 많은 만족을 허용하거나(그래서 문화를 희생시키거나) 할 때에만 개인도 변한다.

 이전의 심리학자들이 인정한 이른바 인간의 기본적 본능과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근대인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충동들을 반영한 것이었다. 프로이트에게는 그의 문화권에 속하는 개인이 인간을 대표했고, 근대 사회에 사는 인간 특유의 열정과 불안은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에 뿌리를 내린 영원한 힘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이 점을 실증하는 예를 많이 들 수 있지만(예를 들어 오늘날 현대인에게 널리 퍼져 있는 적개심의 사회적 토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여성들의 이른바 거세 콤플렉스 등),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 개념 전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한 실례를 한 가지만 더 제시하고 싶다. 프로이트는 언제나 개인을 타인들과 관련지어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생각하는 이 관계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타인들과 맺고 있는 독특한 경제적 관계와 비슷하다. 각자는 자기가 책임지고 개인주의적으로 자신을 위해 일하지 기본적으로 타인과 협력하여 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다. 그는 고객이나 고용주나 고용인이 될 타인을 필요로 한다. 그는 물건을 사고팔아야 하고, 남들과 주고받아야 한다. 상품 시장이든 노동 시장이든, 시장이 이 관계를 규제한다. 따라서 주로 혼자이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개인은 한 가지 목적 - 물건을 팔거나 사는 것 - 을 위한 수단으로 타인들과 경제저 관계를 맺는다. 인간관계에 대한 프로이트의 개념도 본질적으로는 이와 같다. 개인은 반드시 충족시킬 필요가 있는 생물학적 충동들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듯하다. 그 충동들은 만족시키기 위해 개인은 다른 '객체'와 관계를 맺고, 따라서 다른 개인들은 언제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 목적은 개인이 타인들과 접촉하기 전에 원래 자신에게서 비롯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시장과 비슷하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욕구를 서로 충족시켜주는 것이고, 여기서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된 분석은 프로이트의 관점과는 대조적이다. 심리학의 주요 문제는 이런저런 본능적 욕구 자체를 충족시키거나 좌절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개인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것이냐의 문제라는 가정, 그리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고정적인 게 아니라는 가정이 이 책에 제시된 분석의 기본 바탕이다. 한쪽에는 어떤 충동을 타고난 개인이 있고, 또 한쪽에는 개인과는 별도로 개인의 타고난 성향을 충족시키거나 좌절시키는 사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식욕 · 갈증 · 성욕처럼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욕구는 존재하지만, 사랑과 미움, 권력욕과 복종심, 관능적 쾌락에 대한 욕망 또는 두려움처럼 사람들의 성격에 차이를 가져오는 충동들은 모두 사회 과정의 산물이다. 인간의 가장 추악한 성향만이 아니라 가장 훌륭한 성향도 생물학적으로 고정된 인간 본성이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내는 사회 과정의 결과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는 개인을 억압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 물론 그 기능도 갖고 있기는 하지만 - 창조적인 기능도 갖고 있다. 인간의 본성, 열정과 불안은 문화적 산물이다. 사실 인간 자체가 인류의 부단한 노력이 낳은 가장 중요한 창조물이자 성취이고, 그 기록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인간의 창조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사회심리학의 과제다. 하나의 역사 시대에서 다음 역사 시대로 넘어갈 때 인간의 성격에 어떤 뚜렸한 변화가 일어나는 까닭은 무엇인가? 르네상스 정신은 왜 중세 정신과 다른가? 독점자본주의 시대 인간의 성격 구조는 왜 19세기 인간의 성격 구조와 다른가? 사회심리학은 좋든 나쁘든 새로운 능력과 새로운 열정이 생겨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를 들면 르네상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은 명성을 얻으려는 불타는 야망으로 가득 찼지만, 오늘날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욕망이 중세 사회의 인간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또한 전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도 같은 시대에 발달했다. 북유럽 국가에서는 16세기부터 인간이 일하고 싶은 욕망에 거의 강박적으로 사로잡혔다. 그 전에는 노예가 아닌 자유민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역사에 의해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회심리학의 영역이다. 열정과 욕망과 불안이 사회 과정의 '결과'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렇게 구체적인 형태를 이루게 된 인간의 에너지가 어떻게 '사회 과정을 형성하는 생산력'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사회심리학의 과제다. 따라서, 예컨대 명성과 성공을 얻고자 하는 갈망과 일하고 싶은 욕구는 근대 자본주의를 발달시킨 원동력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근대 자본주의는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며, 이 원동력과 그 밖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힘이 없었다면 인간은 근대 상공업 체제의 사회적 · 경제적 요구에 따라 행동할 있는 추진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p38

 인간의 본성이란 생물학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타고난 충동들의 총화도 아니고, 또한 순조롭게 적응해가는 문화 유형의 생명 없는 그림자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인간 진화의 산물이지만, 어떤 고유한 메커니즘과 법칙도 갖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는 고정 불변의 요소들이 있는데, 생리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필요성, 고립과 정신적 고독을 피해야 할 필요성이 그것이다. 개인은 어떤 사회 특유의 생산과 분배 체제에 뿌리를 둔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문화에 역동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행동과 검정을 유발하는 강력한 충동들이 수없이 생겨난다. 개인은 이 충동들을 의식할 수도 있고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욕구들은 강력하고 일단 생겨나면 충족시켜줄 것을 요구한다. 그것들은 강력한 영향력이 되어, 이번에는 반대로 사회 과정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 심리적 · 이념적 요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이 상호작용에 관하여 어떤 일반적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는 나중에 종교개혁과 파시즘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논할 것이다. 이 논의는 언제나 이 책의 주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될 터인데, 이 책의 ㅈ요 주제는 인간이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인간이 '개인' 되면 될수록, 자발적인 사랑과 생산적인 일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결합시키거나 아니면 자신의 자유와 개체적 자아의 본래 모습을 파괴하는 끈으로 세계와 자신을 묶어서 일종의 안전보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40

 개인이 원시적 유대관계에서 차츰 벗어나는 과정, 즉 '개체화(individuation)'라고 부를 수 있는 과정은 종교개혁부터 현재에 이르는 수세기 동안의 근대사에서 절정에 달한 듯하다.

 

p44

 개체화 과정의 다른 측면은 '고독의 증대'다. 원초적 유대는 외부 세계와의 기본적인 통합과 안도감을 준다. 아이가 그 세계에서 벗어날수록 자기가 혼자라는 것, 다른 모든 존재와 분리된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개인의 존재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강하고 힘센 세계, 때로는 위협적이고 위험하기도 한 세계와 이렇게 분리되는 것은 무력감과 불안감을 낳는다. 개별 행동의 가능성과 책임을 모른 채 세계의 일부로 남아 있는 동안은 세계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개인이 되면 혼자 서서, 세계가 지니고 있는 위험하고 압도적인 측면과 맞서야 한다.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고 외부 세계에 완전히 잠겨서 고독감과 무력감을 극복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총동과 거기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유대는 성장 과정 자체에서 끊어진 원초적 유대와는 다르다. 아이가 육체적으로는 결코 어머니 자궁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심리적으로는 절대로 개체화 과정을 뒤집을 수 없다. 그렇게 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복종의 성격을 띠고, 권위와 거기에 복종하는 아이 사이의 기본적인 모순은 결코 제거되지 않는다. 아이는 의식적으로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자아의 본래 모습과 힘을 포기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따라서 복종의 결과는 과거와는 정반대다. 복종은 아이의 불안을 늘리는 동시에 적개심과 반항심을 불러일으킨다. 아이가 적개심과 반항심을 품는 대상은 아이가 계속 의존하는, 또는 새로 의존하게 된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

 하지만 복종은 고독과 불안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또 다른 방법,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해소할 수 없는 갈등으로 끝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및 자연과 자발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관계는 개성을 없애지 않으면서 개인을 세계와 이어준다. 이런 종류의 관계 -  이 관계의 가장 중요한 표현은 사랑과 생산적인 이리다 - 는 인격 전체의 통합과 그 힘에 뿌리는 두고 있다. 따라서 자아 성장의 한계가 이 관계를 지배한다.

 

p46

 분리와 개체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자아도 그만큼 성장한다면, 아이는 조화롭게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개체화 과정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반면, 자아의 성장은 수많은 개인적 · 사회적 이유로 방해를 받는다. 이 두 경향의 차이는 참을 수 없는 고립감과 무력감을 낳고, 이것은 나중에 '도피의 메커니즘'으로 논할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이어진다.

 

p47

 인간은 태어났을 때는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무력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응은 본능의 결정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학습 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본능은 .... 고등동물, 특히 인간에게는 사라지는 범주는 아니라 해도 약해지는 범주다."

 

p53

 다른 측면 - 인간 본성의 악함을 강조하고, 개인의 무의미함과 무력함, 개인이 외적인 힘에 종속되어야 할 필요성 - 은 무시된다. 개인은 무가치하고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할 수 없고 외적인 힘에 복종할 필요가 있다는 이 생각은 히틀러 이데올로기의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히틀러의 이념은 개신교에 내재하는 고유의 자유와 도덕 원리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p65

 이 사실은 중세 사회에서 개인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점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카톨릭교회의 교리만이 아니라 세속의 법률에도 표현되어 있던 '경제 활동'에 관한 '윤리적 견해'가 그것이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토니의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 그의 견해는 중세를 이상화하거나 낭만화하려 든다고 의심받을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은 두 가지였다. "경제적 이익은 인생의 진정한 사업인 구원에 종속된다는 것. 경제활동은 인간 행위의 한 측면이며 인간 행위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도덕률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p69

 루터는 1524ㄴ녀에 <상거래와 고리대금업>이라는 팸플릿에서 독점 기업에 대한 중소 상인의 울분과 분노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들은 모든 상품을 장악하고 앞에서 언급한 모든 수법을 노골적으로 행사한다. 그들은 상품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거나 내리고, 마치 자기들이 신의 창조물 위에 군림하고 믿음과 사랑의 법칙에서 자유롭기라도 한 것처럼, 강꼬치고기가 물속의 작은 물고기들을 괴롭히듯이 모든 중소 상인을 억압하고 파멸시킨다." 루터의 이 말은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15세기와 16세기에 중산층이 부유한 독점가들에게 느꼈던 공포와 분노는 우리 시대에 중산층이 독점 기업과 강력한 자본가들에게 보이는 태도를 특징짓는 감정과 비슷한 점이 많다.

 

p88

 루터에게서 찾아볼 수 있듯이, '확실성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의 표현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회의를 극복하려는 욕구에 뿌리박고 있는 행동이다.' 루터의 해결책은 오늘날 수많은 개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루터와는 달리 신학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즉 그들은 고립된 개별적 자아를 제거하고, 개인 밖에 있는 압도적으로 강한 힘의 손에 쥐어진 도구가 됨으로써 확실성을 찾으려 한다. 루터에게 이 힘은 선이었고, 그는 절대적인 복종으로 확실성을 추구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회의를 어느 정도 침묵시키는 데 성공햇지만, 그 회의가 정말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죽는 날까지 회의의 공격을 받았고, 복종하려는 노력을 거듭하여 그 회의를 극복해야만 했다. 심리학적으로 믿음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믿음은 인류와의 내적 관계와 삶에 대한 긍정의 표현일 수도 있고, 개인의 고독과 삶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 뿌리를 둔 근본적인 회의감을 억제하려는 반작용의 형성일 수도 있다. 루터의 믿음은 그런 보상적 성질을 갖고 있었다.

 

p107

 '양심'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 앉혀놓은 노예 감독에 불과하다. 양심은 인간이 자신의 것이라 믿는 소망이나 폭표에 따라 행동하도록 몰아세우지만, 사실 그 소망이나 목표는 외부의 사회적 요구가 내면화한 것이다. 양심은 가혹하고 잔인하게 인간을 몰아붙이고, 쾌락과 행복을 금지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죄를 속죄하는 데 평생을 바치게 한다. 

 

 

 봉건사회라는 중세적 제체의 붕괴는 모든 사회 계급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개인이 홀로 남겨지고 고립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은 이제 자유로워졌다. 이 자유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인간은 그때까지 누렸던 안전성과 의심할 여지없는 소속감을 박탈당했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전을 추구하는 그를 만족시켰던 세계로부터 강제로 떨어져나왔다. 그는 고독과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도 있었고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어, 남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종류의 자유는 여러 사회 계급의 실제 생활 형편에 따라 서로 다른 무게를 가졌다.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부류만이 대두하는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아, 진정한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활동과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로 사업을 확장하고 정복하고 지배하고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 신흥 유산 귀족은 기존의 문벌 귀족과 함께 새로운 자유의 열매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개인이 주도권을 잡고 세상을 지배하는 새로운 느낌을 얻을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도 근본적인 불안전과 불안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신흥 자본가에게는 대체로 자유의 소극적인 의미보다 적극적인 의미가 더 지배적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귀족 사회의 토양에서 번영한 르네상스 문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르네상스 예술과 철학에는 물론 절망과 회의주의도 자주 표현되었지만, 인간의 존업성과 의지와 지배력이라는 새로운 정신이 표현되었다. 이처럼 개인의 활동과 의지의 힘을 강조한 것은 중세 말기에 카톨릭교회의 신학적 가르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권위에 저항하지 않고 그 지도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유의 적극적인 의미를 강조했고,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권리, 인간의 힘과 존엄성 그리고 의지의 자유를 강조했다.

 한편 하층계급인 도시 빈민과 특히 농민들은 자유에 대한 새로운 추구, 점점 심해지는 경제적 · 인간적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렬한 소망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잃을 것이 거의 없었지만 얻을 것은 많았다. 그들은 교리상의 시시콜콜한 면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보다는 성서의 기본 원칙인 우애와 정의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의 소망은 초기 기독교 특유의 비타협적 정신을 특징으로 하는 종교 운동과 수많은 정치적 반항에 적극적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중산층의 반응이었다. 자본주의의 발흥은 그들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중산층에 속하는 개개인은 16세기 초에는 아직 새로운 자유에서 힘과 안전을 많이 얻지 못했다. 자유는 힘과 자신감보다는 오히려 개인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느낌과 고독감을 가져왔다. 게다가 중산층은 로마 교회의 성직자를 비롯한 유산계급의 사치와 권력에 대한 불타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인의 무의미함과 부유층에 대한 분개를 표현했으며, 신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믿음을 파괴했으며, 자신과 타인을 경멸하고 불신하도록 가르쳤으며,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만들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세속 권력 앞에 굴복했으며, 세속 권력이 도덕적 원칙에 어긋나면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포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프로테스탄티즘은 유대-기독교 전통의 기초가 되었던 요소들을 버리고 만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교리가 제시한 개인과 신과 세계의 모습에서는, 개인이 느끼는 무의미함과 무력감은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마땅히' 그렇게 느껴야 한다는 믿음으로 그 느낌을 정당화했다.

 이렇게 새로운 종교적 교리는 평균적인 중산층의 느낌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 태로를 합리화하고 체계화하여 그 느낌을 더욱 확대하고 강화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교리는 그 이상의 일을 했다. 즉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도 개인에게 알려주었다. 자신의 무력함과 본성의 사악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애를 그 죗값으로 여기고, 극도로 자신을 비하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회의와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또한 신에게 완전 복종하면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적어도 신이 구원하기로 결정한 사람들 가운데 자기도 속해 있을 거라는 희망은 가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겁먹고 뿌리째 뽑혀 고립된 개인, 새로운 세계와 관계를 맺고 거기에 적응해야 하는 개인의 인간적 욕구에 대한 해답이었다. 경제적 · 사회적 변화로 생겨났고 종교적 신조로 더욱 강화된 새로운 성격 구조가 이번에는 꺼꾸로 사회적 · 경제적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 성격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던 바로 그 자질들 - 일하려는 충동, 절약하려는 열정, 가외의 개인적 힘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도구로 삼으려는 태도, 금욕주의, 강박적 의무감 - 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이 된 성격 특성들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근대의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에너지가 구체적인 형태로 형성된 것이 바로 그 특징들이었다. 그 특정한 형태를 취함으로써 인간의 에너지는 사회 과정에서 생산력의 하나가 되었다. 새로 형성된 성격 특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경제적 필요라는 관점에서 보면 유리했다. 그런 행동은 이 새로운 성격 유형의 요구와 불안에 대응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 원칙을 좀 더 일반적인 말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아질 것이다. 사회 과정은 개인의 생활양시, 즉 타인 및 일과의 관게를 결정함으로써 그의 성격 구조를 형성한다. 종교적이든 철학적이든 정치적읻든, 새로운 이념은 성격 구조의 이런 변화를 낳은 결과이고, 이렇게 바뀐 성격 구조에 호소하여 그것을 강화하고 충족하고 안정시킨다. 새로 형성된 성격 특성은 다시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사회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원래 그 성격 특성들은 새로운 경제력의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난 것이지만, 서서히 새로운 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강화하는 생산력이 되는 것이다.

 

p115

 예를 들면 우리는 신앙의 자유가 자유의 최후 승리라고 믿는다. 신앙의 자유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신을 숭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교회와 국가 권력에 대한 승리지만, 근대인은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개연성이 입증되지 않은 것을 믿는 내적 능력을 대부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p120

 중세의 사회 체제에서 자본은 인간의 하인이었지만, 근대의 사회 체제에서는 인간의 주인이 되었다. 중세의 세계에서 경제 활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목적은 삶 자체, 또는 카톨릭교회가 이해한 바와 같이 인간의 영적 구원이었다. 경제 활동은 필요한 것이고, 재물도 신의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지만, 모든 외적 활동은 삶의 목적을 촉진하는 경우에만 의미와 존엄성을 갖는다. 그 자체를 위한 경제 활동과 소유욕은 중세 사상가에게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근대 사상가에게는 오히려 그런 활동과 욕망이 없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본주의에서 경제 활동과 성공과 물질적 획득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자신의 행복이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 체제의 발전에 기여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된다. 인간은 경제라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 - 그가 자본을 많이 갖고 있다면 중요한 톱니가 되고, 자본을 갖고 있지 않다면 하찮은 톱니가 된다 - 가 되었지만, 항상 외부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톱니다. 인간을 초월한 목적에 자신을 이토록 기꺼이 바치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킨 것은 사실 프로테스탄티즘이었다. 물론 경제 활동의 이 같은 우월성을 인정하는 것만큼 루터나 칼뱅의 정신과 동떨어진 것은 없었지만, 그들은 신학적 가르침 속에서 인간의 정신적 척추인 존엄감과 자존심을 꺽어버리고 활동의 목적은 자기 자신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침으로써, 상황이 이런 식으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루터의 가르침에서 주된 요점의 하나는 그가 인간성의 사악함을 강조하고,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칼뱅도 인간의 사악함을 강조했고, 인간은 최대의 자신의 자존심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그의 사상 체계의 중심에 놓았다. 더 나아가 인간 생활의 목적은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설파했다. 그렇게 루터와 칼뱅은 심리적으로 인간이 근대 사회에서 맡아야 할 역할 - 자신이 무의히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목적이 아닌 목적을 위해서만 자신의 삶을 종속시킬 각오를 하는 것 - 을 준비시켰다. 인간은 일단 정의도 사랑도 상징하지 않는 신의 영광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존재가 되면, 경제적 기계 - 그리고 결국에는 '총통' - 의 하인 역할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개인을 경시하는 것은 자본 축적을 경제 활동의 목적으로 삼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특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은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그가 얻은 이익은 소비되지 않고 새 자본으로 투자된다. 이렇게 늘어난 자본은 새로운 이익을 가져오고, 이 이익은 다시 투자된다. 이익과 투자는 이렇게 다람쥐 쳇바튀 돌 듯 계속된다. 물론 사치를 위해 돈을 쓰거나 '과시적인 낭비'로 돈을 쓰는 자본가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대표자들은 소비가 아니라 일을 즐겼다. 자본을 소비하는 대신 축적하는 이 원칙은 우리의 근대 산업 체제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의 전제다. 사람이 일에 대해 금욕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또한 경제 체제의 생산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자신의 성과를 투자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연을 통제하는 일에서 이렇게 많은 진보를 이룩하지 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될 미래를 역사상 처음으로 마음속에 그릴 수 있게 된 것도 사회의 생산력이 이렇게 증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 축적 자체를 위해 일한다는 원칙이 객관적으로는 인류의 진보에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 해도, 주관적으로는 인간으로 하여금 초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일하게 만들었고, 인간을 자기가 만든 기계의 하인으로 전락시켰으며, 그리하여 자기가 보잘것없고 무력하다는 느낌을 인간에게 안겨주었다.

 

p127

 근대인은 자아를 최대한 주장하는 것이 특징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의 자아는 약해져서 전체 인격의 다른 부분은 모두 제외하고 전체 자아의 일부인 지성과 의지력으로 축소되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은 놀랄 만큼 강해졌지만, 사회는 자기가 창조한 그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생산 체계는 기술적 측면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사회적 측면에서는 비합리적이다. 경제 위기, 실업, 전쟁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건설했다. 공장과 집을 세우고, 자동차와 옷을 생산하고, 곡식과 과일을 지배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생산품에서 멀어졌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자기가 만든 세계의 주인이 아니다. 반대로 인간이 만든 시계가 그의 주인이 되었고, 그 주인 앞에 인간은 고개를 숙이고, 될 수 있는 한 아양을 떨며 속이려 애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 인간의 신이 되었다. 그는 자기 이익에 휘둘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구체적 능력을 가진 그의 전체적인 자아는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그 기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인간은 여전히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환상을 품지만, 일찍이 선조들이 신에 대해 의식적으로 느꼈던 무력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p129

 경제적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적 관계도 이런 소외의 성격을 띤다. 그 관계는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사물 사이의 관계와 같은 성격을 띤다. 하지만 서로 상대를 수단으로 이용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이런 정신을 보여주는 실례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파괴적인 것은 아마 개인과 그 자신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사람은 상품을 팔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팔고, 자신이 상품이라고 느낀다. 육체노동자는 자신의 육체적 에너지를 팔고, 상인과 의사와 사무원은 '인격'을 판다. 그들이 생산품이나 용역을 팔기 위해서는 '인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인격은 남의 마음에 드는 것이어야 하지만, 그 밖에도 소유자는 수많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는 에너지와 창의성, 그 밖에 자신의 특별한 지위가 요구하는 이런저런 것들을 갖추어야 한다.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이런 인간적 자질들의 가치, 나아가 그 존재 자체까지 결정하는 것은 시장이다. 어떤 사람이 제공하는 자질들이 아무 쓸모도 없으면 그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설령 사용 가치를 지니고 있더라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은 무가치한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자신감이나 '자아의식'은 남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는 표시일 뿐이다. 시장에서의 인기나 성공과는 관계없이 그의 가치를 확신하는 것은 '그'가 아니다. 남들이 그를 원하면 그는 쓸모 있는 인간이고, 인기가 없으면 쓸모없는 인간이다. 자기 평가가 이처럼 '인격'의 성공에 달려 있는 것이야말로 인기가 근대인에게 그토록 엄청난 중요성을 갖는 이유다. 어던 실제적인 문제에서 남보다 앞서가느냐 아니냐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또는 열등감의 구렁텅이에 빠지느냐 아니냐도 인기에 달려 있다.

 

p147

 이 점을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신경증적(neurotic)'이라는 용어와 '정상적인(normal)' 또는 '건강한(healthy)'이라는 용어를 잠깐 검토하는 것이 유용할 듯싶다.

 

 '정상적인' 또는 '건강한'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그 사회에서 맡아야 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정상적인 또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그가 그 특정한 사회에서 요구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의 재생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즉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건강 또는 정상적인 상태를 개인의 성장과 행복의 최고 단계로 생각한다.

 주어진 사회의 구조가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을 제공했다면, 두 관점이 일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포함하여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사회는 그렇지 않다. 개인의 성장이라는 목표 달성을 어느 정도나 촉진시키는지는 사회마다 다르지만, 사회의 원활한 기능과 개인의 완전한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 때문에 건강에 대한 두 개념을 뚜렷이 구별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사회적 필요의 지배를 받고, 또 하나는 개인 생활의 목표에 관한 규범과 가치관의 지배를 받는다.

 불행하게도 이 차이는 종종 무시된다. 정신과 의사들은 대부분 그들의 사회 구조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로 생각한다. 반면에 잘 적응하는 사람은 인간적 가치 척도의 관점에서 더 쓸모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우리가 정상적이라는 개념과 신경증적이라는 개념을 구별해서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즉 잘 적응한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인간적 가치라는 면에서는 신경증적인 사람보다 덜 건강한 경우가 많다. 그는 사회에 잘 적응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아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개성과 자연스러움은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반면에 신경증적인 사람은 자아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완전히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 그 특징을 묘사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개체적 자아를 구하려는 그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고, 그는 자신의 자아를 생산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신경증적 증상을 통해, 그리고 환상적인 생활로 물러가 그 속에서 구원을 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개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정상적인 사람보다는 덜 불구자다.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신경증 환자가 아니면서도 적응 과정에서 개성을 잃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신경증적인 사람에게 찍혀 있는 낙인은 아무 근거도 없는 것 같고, 신경증 환자를 사회적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만 그 낙인이 정당회되는 듯하다. 사회 전체에 관해서 말하면, '신경증적'이라는 용어는 이 후자의 의미로는 쓰일 수 없다.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 기능을 발휘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구성원들이 인격의 성장 과정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런 의미에서 신경증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신경증적'이라는 용어는 사회적 기능의 결핍을 나타낼 때 자주 쓰이기 때문에, 사회가 신경증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인간의 행복과 자기실현에 불리한 사회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p159

 프로이트는 오랫동안 이성적 공격이라는 현상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알프레드 아들러는 우리가 여기서 논하는 경향을 그의 사상 체계의 중심에 놓았다. 하지만 그것을 가학-피학증으로 다루지 않고 '열등감'과 '권력욕'으로 다루었다. 아들러는 이런 현상의 합리적인 측면만 보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비하하고 하찮게 만드는 비합리적인 경향에 대해 말하지만, 그는 열등감을 어린아이의 일반적인 무력함과 신체적 열등감 같은 실제적 열등성에 대한 적절한 반작용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권력욕을 타인을 지배하려는 비합리적인 충동의 표출이라고 생각하는 데 대해 아들러는 그것을 완전히 합리적인 결정 너머에 있는 것을 못 보고 있다. 그는 동기 부여의 복잡성에 대한 귀중한 통찰에 이바지했지만 항상 표면에만 남아 있을 뿐, 프로이트가 했던 것처럼 비합리적 충동의 심연 속으로 결코 내려가지 않았다.

 

p170

 확실히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은 순전히 물질적인 의미에서 우월한 힘의 표현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보다 '강한'것이다. 하지만 심리적 의미에서 보면 '권력욕은 강함이 아니라 오히려 약함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것은 개체적 자아가 홀로 서서 살아갈 수 없다는 표현이다. 그것은 진정한 힘이 부족할 때 2차적인 힘을 얻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p178

 하지만 권위주의적 성격자가 권위에 맞서 싸우는 것은 본질적으로 반항이다. 그것은 권위와 싸움으로써 자신을 주장하고 자신의 무력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복종에 대한 갈망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전히 존재한다. 권위주의적 성격자는 결코 '혁명가'가 아니다. 나는 그를 '반역자'라고 부르고 싶다. '급진주의'에서 극단적인 권위주의로 뭐라고 설명할 수 없게 표변하여 피상적인 관찰자를 당혹하게 만드는 개인과 정치 운동이 많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들은 전역적인 '반역자'다.

 

p202

 가짜 생각이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것의 허위성이 반드시 비논리적인 요소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행동이나 감정을 실제로 결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인 요소들이지만, 그것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근거에서 설명하려는 합리화에서 이것을 고찰할 수 있다. 합리화는 사실이나 논리적 사고의 법칙과 모순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합리화 그 자체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비합리성은 어떤 행동을 유발한 것처럼 위장한 동기가 실은 진짜 동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진술의 논리성을 판단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합리화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그 사람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동기도 고려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적극적 생각의 결과인 사고는 항상 새롭고 독창적이다. 독창적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 이제껏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외부 세계에서나 내부 세계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수단으로 사고를 이용했다는 의미에서 독창적인 것이다. 합리화에는 본질적으로 이같은 발견과 폭로의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 합리화는 단지 자신 속에 존재하는 감정적 편견을 확인해줄 뿐이다. 합리화는 현실을 통찰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을 기존의 현실과 조화시키려는 사후의 시도다.

 

p224

 1918년에 전승국들이 독일을 너무 가혹하게 대한 것이 나치즘이 대두한 주요 원인의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단서가 필요하다. 독일인 대다수가 강화조약이 부당하다고 느껴지만, 중산층은 몹시 분통하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에 노동자 계급은 별로 억울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구체제에 반대해왔으며, 그런 그들에게 패전은 구체제의 패배를 뜻했다. 그들은 전쟁 때 용감하게 싸웠던 만큼 부끄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느꼈다. 한편 군구제의 패배 덕분에 가능했던 혁명의 승리는 그들에게 경제적 · 정치적 · 인간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분노는 하류 중산층에 토대를 두고 있었는데, 그 국가주의적 분노는 사회적 열등감을 국가적 열등감에 투영한 하나의 합리화였다.

 이런 투영은 히틀러 개인의 성장 과정에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전형적인 하류 중산층의 대표자였고, 성공할 기회나 미래가 전혀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그는 낙오자의 신세를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나의 투쟁》에서 그는 젊은 시절 자기가 '보잘것없는 인간', '이름도 없는 인간'이었다고 자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그 자신의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국가의 상징 속에서 합리화시킬 수 있었다.

 

p239

 강자에 대한 사랑과 무력한 약자에 대한 증오는 가학-피학적 성격의 전형적인 특징이고, 이것은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정치적 행동을 대부분 설명해준다.

 

p249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아이들의 내적 독립성과 개성, 성장과 본래 모습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면, 훈련이 반드시 자발성을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교육이 성장기 아이들에게 부과할 수밖에 없는 제약은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고, 사실은 그것도 성장과 발전 과정을 뒷받침하는 조치다.

 

p251

 우리 사회에서 감정은 전반적으로 억압되어 있다. 창의적 사고가 - 다른 어떤 창조적 활동도 마찬가지지만 - 감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감정 없이 생각하고 감정 없이 생활하는 것이 하나의 이상적인 태도가 되어버렸다. '감정적'인 것이 불안정하거나 정신적으로 불균형한 것과 같은 뜻이 되어버렸다. 이 기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개인은 매우 약해졌다. 그의 생각은 빈곤해지고 단조로워졌다. 한편 감정은 완전히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인격의 지적인 측면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존재해야 한다. 그 결과는 값싸고 가식적인 감상성인데, 이 김상성을 가지고 영화와 대중가요는 감정에 굶주진 수백만 명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죽음을 부인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근본적인 측면 한 가지를 부인하고 있다. 우리 시대는 죽음과 고통에 대한 인식을 가장 강력한 삶의 자극제이자 인류가 서로 단결하는 토대로 삼고, 기쁨과 열정이 강렬함과 깊이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경험으로 삼기는커녕 개인에게 그 인식을 억압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억압이 항상 그렇듯이, 억압된 요소는 시야에서 사라져도 존재하기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죽음의 공포는 우리 사이에 불법으로 존재한다. 죽음의 공포는 아무리 그것을 부인하려고 애써도 여전히 살아 있지만,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불모 상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다른 경험들이 단조로워지는 원인이고, 삶에 널리 퍼져 있는 불안감의 원인이기도 하다.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미국 국민이 장례식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쓰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p255

 오늘날 쓰이는 교육 방법 가운데 독창적인 생각을 실제로 방해하는 몇 가지를 잠깐 언급하고 싶다. 하나는 사실에 대한 지식, 아니 그보다는 정보를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을 많이 알수록 현실도 잘 알 수 있다는 한심한 미신이 널리 퍼져 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산발적인 사실 수백 개를 학생들의 머릿속에 주입한다. 학생들은 점점 더 많은 사실을 배우는 데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기 때문에 생각할 짬이 거의 없어진다. 물론 사실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생각은 공허하고 허구적이다. 하지만 '정보'만으로는 정보가 없는 것만큼이나 생각을 방해할 수 있다.

 독창적인 생각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모든 진실을 상대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진실은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누군가가 진실을 발견하고 싶다고 말하면 오늘날의 '진보적인' 사상가들은 그를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전반적으로 주관적인 문제, 거의 취향에 따른 문제라고 주장된다. 과학적인 노력은 주관적인 요소에서 분리되어야 하고, 그 노력의 목적은 열정이나 관심을 배제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과학자는 마치 의사가 환자에게 접근할 때처럼 손을 소독하고 사실에 접근해야 한다. 상대주의는 경험주의나 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단어의 정확한 용법에 관심이 많다고 스스로 자랑하기도 하지만, 이 상대주의의 결과는 생각이 그 본질적인 자극 - 생각하는 사람의 소망과 관심 - 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 대신 생각은 '사실'을 기록하는 기계가 된다. 실제로 생각이 일반적으로 물질생활을 지배해야 할 필요성에서 발달해온 것처럼, 진실의 탐구도 개인과 사회 집단의 이해관계와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이해관계가 없다면 진실을 찾기 위한 자극제가 없어질 것이다. 진실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집단은 항상 존재하는데, 그들의 대표는 인류 사상의 선구자였다. 반대로 진실을 감추어야만 더 많은 이익을 얻는 집단도 존재하는데, 이 경우에만 이해관계가 진실을 잡는 데 해가 된다. 따라서 문제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진실에 대한 갈망이 모든 인간에게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진실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대한 환상은 혼자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유익한 지팡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팡이는 사람을 더욱 약하게 만들 뿐이다. 개인의 가장 큰 힘은 자신의 인격을 최대한 완성시키는 데 바탕을 둔다. 그것은 자신에게최대한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이간의 힘과 행복을 겨냥한 근본적인 명령의 하나다.

 

p263

 지도자가 흥분을 약속하고 개인의 삶에 의미와 질서를 준다는 정치적 기구와 상징을 제시하기만 하면,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문화를 토대부터 위협하는 위험이다. 자동인형 같은 인간의 절망은 파시즘과 정치적 목적을 키우기 좋은 비옥한 토양이다.

 

p265

 우리의 분석은 자유에서 새로운 의존으로 이어지는 불가피한 순환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것인가? 모든 원초적 유대로부터의 자유는 개인을 너무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는 새로운 유대 속으로 도피해야 할 것인가? '독립'은 '고립'과 같고 자유는 두려움과 같은 것일까? 혹은 개인이 독립된 자아로 존재하지만 고립되지는 않고 세상이나 타인이나 자연과 결합한 상태로 남아 있는 적극적인 자유라는 상태가 존재할까?

 우리는 긍정적인 대답이 있다고 믿는다. 자유가 성장하는 과정은 악순환을 이루지 않고, 인간은 자유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고, 비판적이지만 의심으로 가득 차지 않을 수도 있고, 독립적이지만 인류를 구성하는, 없어서는 안 될 일부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고 자기 자신이 됨으로써 이 적극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자아의 실현이란 무엇인가? 관념론 철학자들은 지적인 통찰을 통해서만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이성이 억누르고 감시할 수 있도록 인격을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분할한 결과 인간의 감정생활만이 아니라 지적 능력까지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성은 자신의 죄수인 본성을 감시하는 간수가 됨으로써 그 자신도 죄수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인격의 두 측면인 이성과 감정은 둘 다 절름발이가 되었다. 자아의 실현은 사고 작용만이 아니라 인격 전체의 실현을 통해, 즉 감정적 잠재력과 지적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 잠재력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지만, 겉으로 표현되는 만큼만 현실이 된다. 다시 말하면 '적극적인 자유는 통합된 인격의 자발적인 활동에 있는 것이다.'

 

p268

 자발적인 활동이 어째서 자유라는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는가? 앞에서 우리는 소극적인 자유가 개인을 고독한 존재로 만들고, 그래서 개인과 세계의 관계는 멀어지고 불신으로 가득 차며, 개인의 자아는 약해지고 끊임없이 위협받는다고 말햇다. 자발적인 활동은 인간이 본래 모습을 희생하지 않고 고독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자아를 자발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다시 세계와 - 인간과 자연 및 자신과 - 통합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런 자발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 사랑은 자신을 다른 사람 속에 용해시키는 것으로서의 사랑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소유하는 것으로서의 사랑도 아니다. 다른 사람을 자발적으로 긍정하는 것으로서의 사랑, 개체적 자아를 보존하는 것을 토대로 하여 그 개인을 다른 사람과 결합시키는 것으로서의 사랑이다. 사랑의 동적인 성질은 바로 이 양극성에 있다. 사랑은 분리를 극복하고 싶은 욕구에서 생겨나 완전한 일체로 이어진다. 하지만 개인이 제거되지는 않는다. 일은 자발성을 이루는 또 하나의 구성요소다. 이 일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방적 활동으로서의 일도 아니고, 부분적으로는 자연을 지배하고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생산품을 숭배하고 그 생산품으로 자연을 노예화하는 관계로서의 일도 아니고, 인간이 창조 행위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창조로서의 일이다. 사랑과 일에 적용되는 것은 모든 자발적 행동에도 적용된다. 감각적 쾌락을 자각하는 것이든 공동체의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든 자발적 행동에는 모두 적용된다. 그것은 자아의 개별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인간과 자연을 자아와 결합시킨다. 자유에 내재하는 기본적인 양분성, 즉 개성의 탄생과 고독의 고통은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더 높은 차원에서 해소된다.

 

p271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서로 다르게 태어나기도 한다. 이 차이의 토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생리적 · 정신적 장비다. 인간은 그 장비를 가지고 삶을 시작하고,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상황과 특별한 경험을 거기에 덧붙인다. 인격의 이러한 개인적 토대는 두 유기체가 육체적으로 결코 같지 않듯이 다른 누구와도 거의 같지 않다. 자아의 진정한 성장은 항상 이 특별한 토대 위에서의 성장이다. 그것은 유기적 성장이고, 오직 이 한 사람에게만 특유한 세포핵이 펼쳐지는 것이다.

 

p282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조건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의 하나는 계획 경제와 각 개인의 적극적인 협력이 상충하는 데에 있다. 큰 규모의 산업 체계처럼 넓은 범위의 계획 경제는 엄청난 규모의 중앙집권을 요구하고, 그 결과 이 집중화된 기구를 관리할 관료 체계가 필요해진다. 한편 각 개인과 전체 체계의 가장 작은 단위들이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협력하려면 많은 분권화가 필요하다. 상부의 계획이 하부의 적극적인 참여와 융합되지 않으면, 또한 사회생활의 물줄기가 밑에서 위로 끊임없이 흐르지 않으면 계획 경제는 다시 민중을 조종하는 체제로 변할 것이다. 중앙집권화와 분권화를 결합하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미 해결하여 자연을 거의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해준 기술적 문제 못지않게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또한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그들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이익을 돌볼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 제어하고 경제 기구를 인간의 행복이라는 목적에 종속시킬 때에만, 또한 인간이 사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에만 인간은 지금 자신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는 고독과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은 오늘날 가난에 시달리기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큰 기계의 톱니나 자동인형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삶이 공허해지고 무의미해졌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한다.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고 공세를 취하여 지난 수백 년 동안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목표로 삼았던 것을 실현해야만 모든 권위주의 체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간 정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하나의 신념, 생명과 진리에 대한 신념, 그리고 개체적 자아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실현으로서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만 허무주의의 세력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북유럽 방식의 보편복지로 가기 위해 보편증세가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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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이처럼 1990년대 스웨덴 노인들의 삶의 질이 상승한 것은 기업과 은행이 연쇄 도산을 하고 실업자가 발에 치이는 와중에 벌어진, 어떻게 보면 매우 비상식적인 사건이다. 모두 알다시피, 한국의 자살률이 IMF 사태 이후 오랫동안 OECD 1위에 머문 것은 끔찍하게 치솟은 노인 자살률 때문이다. 경제위기 이후 극명하게 갈린 두 나라 노인들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얻을 교훈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 앞서 착잡함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우리 사회의 가난한 노인들이 겪어야 했고, 또 지금도 변함없는 그 딱한 처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p43

 세금과 복지의 선진국이란, 사회구조적으로 구성한 한 명 한 명이 서로 긴밀한 도움을 주고받는 연대적 관계로 맺어지는 사회를 의미한다. 물론 이런 사회라고 해서 사악한 행동과 이기적 인간 군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연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에선 구성원 대다수가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사회구조에 편입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세금과 복지를 발전시킨 나라에서는 '선의 평범성'이 사회구조에 따라 자동적으로 실현된다. 한 사회에 속한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관과는 맞지 않더라도 사회구조가 그러하기에 따라야 할 삶의 규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세금과 복지의 후진국은, 거기에도 선한 행동과 이타적인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악의 평범성'이 사회구조에 따라 자동적으로 발현된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연대적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도움이 필요한 동료들을 비정하게 방치한다. 한국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나는 나와 당신의 세금이 우리 모두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를 희망한다. 이것은 사회의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그런 유토피아가 아니다. 세금과 복지를 튼튼히 한다는 것은 '기본을 해놓자'는 의미이지 이것만 잘되면 만사가 문제없다는 만병통치론이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가 이 기본에 충실할 때, 우리들의 세금은 짜증과 스트레스의 요인이 아닌 우리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63

 OECD 주요국 거의 모두가 한국에 비해 '1인당 GDP 대비 1인당 고등교육비'가 한결 높다는 것은 '한국의 등록금이 비싸다'는 인식에 오류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고등교육비는 정부든 가계든 누군가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만약 개별적인 학비 지출이 적고 정부 부담 교육비가 많은 유형의 나라들에서 한국처럼 각자 알아서 학비를 내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이들의 높은 '1인당 GDP 대비 1인당 고등교육비'를 고려할 때 부담 없이 싼 가격으로는 고등교육을 이수할 수 없다. 결국, 한국의 등록금이 비싸다는 것은 세금을 인상해 학비를 공동으로 지불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기 때문이지, 정말로 등록금이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은 아니다.

 그동안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났던 수준 미달의 대학들과 한국의 유달리 높은 대학 진학률, 그리고 지나치게 낮은 '1인당 GDP 대비 1인당 고등교육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무턱대고 등록금 인하를 주장해온 한국의 대학생 및 시민단체들은 관점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보편적인 세금인상을 터부시하는 가운데 본디 비싸기 마련이며, 여타 국가들에 비해 비싸다고 보기도 어려운 '학비'를 내려야 한다고 다분히 억지를 부려왔던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은 등록금이 비싸다는 아우성만을 받아들여 등록금 인상을 간접적으로 억제함으로써 고등교육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우리 사회는 아예 철저한 미국식을 택해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이 천정부지로 치솟도록 내버려둠으로써 대학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든가, 아니면 복지강국의 방식을 택하여 세금을 더 걷는 대신 개별 교육비 지출을 최소화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공적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한국의 후자의 방식을 택하려 한다면 대학 구조조정이 필수이다. 유달리 많은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여타 국가에 준하는 '1인당 GDP 대비 1인당 고등교육비'를 투입하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금의 누수이고 고등교육의 낭비이다. 증세를 통한 개별 학비의 최소화하는 대학 구조조정, 세금과 복지의 총체적인 개혁, 나아가 노동시장의 정상화까지 모두 한 세트로 추진돼야 한다.

 

p66 

 연 30조 원대의 사교육비가 쓰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대규모의 사교육비는 한국의 이례적인 소비 행태다. 막대한 사교육비가 전부 세금으로 납부돼야 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이로부터 일정 부분 보편 증세가 이뤄질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올바르다. 웬만해서 사교육비를 쓰지 않고 그것이 가구의 여유소득이 되며, 그 여유소득 중 일부를 세금으로 내어 복지를 발전시키는 사회가 합리적이다. "사교육에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것도 없고 노후도 대비하지 못할 지경"이라는 사연이 언론의 단골 기사로 올라오는 현실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이런 자해적인 소비 행태를 지속하느니 세금을 더 내고 복지 발전을 요구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도 모두에게도 이득이다. '사교육비 때문에 버겁다'는 헬조선적 션실이 아득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사교육비의 일부는 필히 세금으로 전환돼야 한다.

 

 

 

p155. 저급 정치인들은 조세저항을 먹고 자라난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자가 저렴한 비용을 지불할 때와 고액의 대가를 치를 경우 기대하는 품질은 천양지차다. 쉬운 예로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자 수십만 원대의 고급 음식점을 찾는 손님은 위생, 맛, 직원의 서비스, 장소의 시원함이나 따듯함, 쾌적하고 기분 좋은 인테리어와 분위기 등등 여러 가지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품질을 평가한다. 반면에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 먹는다면, 위생 상태에 예민해하지도 않고 추운 날씨도 개의치 않으며 기막힌 맛이나 호사스러운 서비스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세금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세금을 내는 국민은 그만큼 정치를 대하는 눈높이가 높아지고, 제발 정치에 관심 좀 가지라고 누가 타이르고 보채지 않아도 알아서 야무지게 정치를 감시하게 된다. 고가의 재화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그에 상응하는 고품질을 깐깐하게 따지듯, 높은 세금에 부응하는 고품질의 정치를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다. 이렇게 다져진 냉철하고 단호한 정치의식은 뛰어난 정치를 이끌어내는 거대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최정상의 복지국가에서 평범한 국민은 소득세, 사회보험료 등 수입에서 원천 징수되는 세금에다 소비할 때 납부하는 간접세를 더해, 세금이 충실하게 복지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생활수준이 현저히 떨어질 만큼 무거운 부담을 진다. 세금이 잘못 쓰여 복지에 차질이라도 생긴다면, 나라가 발칵 뒤집힐 만한 정치 지형이 조성돼 있다.

 반면 한국인들은 직접세에 간접세까지 죄다 더해도 어느 소득계층이건 자신의 소득 단계가 달라지지는 않게끔 세금을 낸다. 세금이 작으니 복지도 작고, 복지강국과는 달리 세금과 복지에 따라 삶의 조건이 좌우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늘 세금이 줄줄 새고 복지가 부족하다고 불만이지만, 콕 집어 이 때문에 정치판을 갈아엎기는 어려운 정황이다. 국민으로서는 이래저래 답답한 환경이지만 저급 정치인들에겐 한국 같은 꿀단지가 따로 없다. 높은 조세저항과 낮은 세금은 팍팍한 삶의 근원인 동시에, 정치에 대한 허술한 감시망의 토양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올리는 일은 흔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조세 문명이 발달한 현시대에 이런 사고는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 정치의 기강을 바로잡는 세금의 위력을 감안할 때 증세는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언제 어느 때나 정치는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고, 그들에게 있어 '얼마든지 세금을 늘리라는 국민'처럼 무섭고 불편한 존재도 찾기 힘들다. '진짜' 세금폭탄을 얻어맞는 복지강국의 국민은 사소한 낭비나 비리에도 냉혹한 심판을 내린다. 한국 국민도 만만찮은 세금 출혈을 감수한다면 복지가 잘 굴러가는지, 정치인들이 일을 똑바로 하는지 '날마다 일상에서, 그냥 저절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게 된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정치에 대한 단속을 게을리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조세저항을 극복한 국민의 등장은 한국의 구태 정치인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물론, 세금이 폭증해야만 불량 정치인들이 철퇴를 맞고 정치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정치 후진국 한국에서 정치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또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은, 이미 앞선 국가들에서 검증을 마친,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대안이다. 평범한 소득층마저 '살벌하게' 세금을 내고 대다수 인생의 성패가 복지의 성패에 달려 있다면, 이것은 분명 우수한 정치를 안착시키는 단단한 기반이 된다.

 

 

p160. '낙수효과'와 '부자증세'는 거울에 비친 듯 닮아 있다.

 

 '낙수효과'의 기본 논리는 부자가 막대한 부를 자유로이 쓰도록 내버려둘 때 이들의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 나머지의 후생이 증대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자증세'는 낙수효과란 허구이므로 부자의 막대한 부를 세금으로 걷어 유용한 곳에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낙수효과와 부자증세는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대립일 뿐 실제로 이 둘은 공통된 성격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조세저항을 기저에 깔고 고약한 '대기주의'를 종용하며 자잘한 세수 증대를 내세운다. 복지 발전이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도 이들이 만나는 지점이다.

 부자증세가 왼쪽 버전의 '수동적 대기주의'라면 낙수효과는 그 오른쪽 버전의 쌍둥이다. 우측에서 수동적 대기주의를 조장하는 이들은 '부자나 기업이 돈을 풀어야 일자리가 창출되므로 그때까지 사람들은 참고 기다리는 게 상책'이라고 주장한다. 복지를 명분으로 세금을 올리거나 하면 경제 활력을 해치니까 괜한 간섭은 삼가라는 것이다. 낙수효과가 실현될 때까지 이제나저제나 인내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람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다.

 낙수효과란 이름의 조세저항을 뒷받침하기 위해 근거가 빈약하거나 협박이나 다름없는 논리까지 동원된다.

 

 "분배는 성장을 저해한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다간 나라 망한다."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오지 정부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부자의 세금이 오르면 투자 의욕이 감퇴되어 일자리가 사라지고 애꿎은 서민만 피해를 입는다."

 "부자와 기업이 투자를 확대해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히 세수가 증가하니(이렇게 늘어난 세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건 내 알 바 아니고) 억지로 세금을 인상할 이유가 없다."

 

 

 이 모든 주장들을 관통하는 것은 (부유층의) 조세저항이고, 낙수효과의 출발점도 조세저항의 정당성을 보이는 것이다.

 부자증세에 몰두하는 이들은 낙수효과와 반대 방향에서 시작하지만, 결론에서는 낙수효과와 똑같이 '수동적 대기주의'를 조장하고 (부자가 아닌 이들의) 조세저항을 옹호한다. 소수의 상위층만을 추궁하는 부자증세파는 '탐욕스러운 부자와 대기업이 내놓을 때까지 나머지는 나서지 말라'고 설교한다. 부유층에서 복지재원을 빼내 와야 사회정의가 실현되니 이에 어긋나는 행동은 자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부자증세로 조세 정의가 구현될 때까지 부자와 기업의 허물만을 욕하며 기다리는 것이 미덕이 된다.

 부자증세파는 흔히 부자와 기업을 악랄한 수탈자로, 나머지는 순결하고 가련한 피수탈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는 허상이지 사실이 아니다. 물론, 부자와 기업에게 많은 과오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됐든 뭐가 됐든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다수의 한국인이 날마다 실천하고 있는, 나보다 조금이라도 약자를 착취하는 이기적인 생활양식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사실상 부자증세파는 복지는 핑계고 단지 부자의 세금을 올리는, 그 자체에 함몰된 성격이 짙다. 부자증세로 걷히는 세금으로는 강력한 복지를 구축하는 데 턱없이 모자라다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또한 이들은 보편 증세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비판한다. 이들이 보기에 모두가 세금 분담에 협력하여 복지를 강화하는 것은 서민층과 중산층에 대한 강탈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부자증세의 윤리를 맹종하다 보면, 연대를 추구하는 자유의지에 따라 같이 사는 세상을 앞당기는 데 일익이 되고 싶을지라도 부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부도덕한 행동이 된다.

 표면적으로 '낙수효과'와 '부자증세'는 대립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가만 있으라'를 종용하여 사람들의 삶을 해친다는 측면에서 이 둘은 다르지 않다. 조세저항을 무리하게 두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해로운 논리를 전파한다는 점에서도 서로 닮아 있다. 충분한 세금의 확보를 가로막으며 복지 발전을 방해 한다는 점도 동일하다.

 낙수효과가 부유층의 조세저항을 합리화한다면, 부자증세는 부자가 아닌 이들의 조세저항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여기에 중첩되어 조세 정의의 확립을 명분으로 하는 또 다른 조세저항 합리화 논리가 완고하게 형성돼 있다. 무작정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조세 정의가 미흡한 상황에서 증세를 거부하는 것은 지당하다는 논리이다. 물론 세금이 올바르게 걷히고 쓰이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절대적인 선결 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도리어 조세 정의를 저해하는 발상이다. 누구나 증세에 동참하여 세금에 대한 주인의식이 고양될 때, '눈먼 돈'이 줄기 마련이고 '숨은 돈'도 드러나게 된다.

 세금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언제나 부자와 대기업을 타겟으로 한 '부자증세'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는다. 여기에는 내 돈은 허투루 쓰일지 모른다며 증세를 반대하는 이들이 부자의 돈은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런 인식으로는 조세 정의에 불만을 갖는 이들이 흡족해 할 만큼 그것이 개선될 리 만무하다.

 세금과 복지의 증대에 찬성하지만 그러기엔 신뢰가 부족하므로 보편 증세는 불가하다는 이들은, 애초에 세금이나 복지를 내심 반기지 않는 이들과 자신들을 다르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종내에는 양측의 입장이 만나 서로 의기투합을 한다. 한국에서는 오직 각자도생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간직한 채 말이다.

 

p168

 문제는 현 정부 여당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볼 때 한국의 가장 부실한 분야 중 하나는 조세와 복지인데, 현 정부 여당의 가장 취약점 중 하나도 바로 이 분야다. 장래 한국의 세금과 복지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개연성 있는 구상이 나온 게 없다. 앞으로 세금과 복지가 몰라보게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사람들에게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세금과 복지는 사회구조의 문제이자 삶에 직결되는 제도이므로 이 부문에 대한 기대가 미약하면 실제로 내 삶과 사회가 나이질 것이라는 기대도 위축된다.

 복지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최대 정파가 제자리를 찾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나의 삶도, 그리고 타인의 삶도 세금과 복지를 활용한다면 정말 달라질 것이라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p170

 문 대통령은 취임 2개월을 맞았을 때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며,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 중소기업에게는 증세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이니,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의 증세 화살표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기업과 부자들의 세 부담부터 늘리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보편 증세로 나가는 것이 순서"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보편 증세로 나아가는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맹점이 있기는 하나, '선 부자증세, 후 보편 증세'는 종종 볼 수 있는 단계적 증세론의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이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언급하자,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는 이에 대해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스스로 명예를 지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명예과세'"라고 명명했다. 김태년 당시 정책위의장은 "법인세 더 내면 기업이 사랑받을 수 있으니 '사랑과세'가 어떠냐"고 말했다. 그는 "초고소득자 증세로 세금을 더 내면 부자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존경과세'는 어떠냐"고도 덧붙였다.

 나는 이들의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사회는 돈이 없어도 누구나 병을 고치고 공짜로 대학원까지 갈 수 있는 복지강국이 아니다. 그렇게 풍성한 삶의 자유가 모두에게 보장되기 위해 모두가 성큼 자기 몫을 내어놓는 나라가, 내가 희망하는 세상이다. 그러한 복지 권리가 모두에게 부여되기 위해 일부 부유층만이 그 밑천을 내놔야 한다고 다그치는 나라는 별 울림도 끌림도 없다.

 나는 이제껏 가난한 이들까지 번듯한 집에서 살 수 있는 그런 복지를 원한 적이 없다. 노인들에게 80~90만 원씩 노후 연금을 지급하하는 복지국가 또한 내가 그려온 세상이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온갖 혜택을 선물해주는 나라가 아니라,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누구든 힘을 보태는 나라야말로 내가 희망하는 세상이다. 부자가 아니면, 나눔과 연대를 일단 모른 척하라고 닦달하는 사회는 흉하고 슬프다.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연대하며 살고자 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더 가진 이든, 덜 가진 이든 다 같이 대등하고 소중하다. 세금을 더 내고 복지를 늘리는 일에 부자가 아니니까 빠지라는 주문은, 빈부와 무관하게 고결한 이타심과 희생정신을 가진 모든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한국인들도 사람인데, 그래서 내 몫을 더 내어놓고 같이 살고픈 욕망을 품고 있을 텐데, 한국에는 그런 인간다운 본성을 거세하려는 자들이 판을 친다.

 먼저 대단한 상류층으로 성공부터 하라고, 그래야 세금을 더 낼 명예도 존경도 얻는 거라고 차별하는 자들이 득세한다. 세상이 아무리 삭막하게 시들어가도 무슨 갑부가 아니라면 그저 자기 것을 꽉 부여잡고 있으라고 쪼아대는 자들이 난무한다. 당신들은 부자가 아니니까 나누고 연대할 자격이 없는 거라고 천시하는 자들이 권세를 누린다. 그토록 집요한 혹세무민에 파묻힌 한국인들은 그들도 인간이기에 지닌 존엄한 연대심을 끊임없이 억눌리며 살아간다.

 

 

p180

 무상복지는, 그것을 성토하는 이들과 별개로, 복지를 표상하기에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우선, 처음부터 복지는 무상일 수 없다. 우리는 도로와 다리, 공원을 이용할 때 일반적으로 개별 요금을 내지 않지만 무상도로, 무상다리, 무상공원 같은 말을 전혀 쓰지 않는다. 세금이라는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무상국방과 무상치안을 논하지 않는 것처럼, 무상보육이니 무상급식이니 구태여 무상이라는 사족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공보육, 공공의료, 국공립 어린이집, 급식비 지원 확대 등으로 표현한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p182

 복지가 값진 것은 무상이라서가 아니라 세금이라는 무거운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복지의 한 단면에 불과한 '무상'을 복지의 정수인 양 규정하는 것은 올바른 복지의 의미를 정립하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p191

 그런데 특히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 경우 저소득자와 실업자에게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견해가 종종 사회민주당 내에서도 제기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실제로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소득이 많고 어떠한 사회적 혜택도 받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험들은 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히려 많은 연구들은 보편적 복지시스템이 자산조사를 중시하는 복지시스템보다 실제로 더 많은 혜택을 사회적으로 어려운 집단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만이 아동수당, 무상의료 또는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는다면, 나머지 사회집단들은 그러한 혜택이 가능한 한 값싸게 지급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이유를 들면서 급여의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급여는 자신들은 받지 못하는 것이고, 또 여기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나쁘다고 해도 자기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는 않기 때문이다(카를손. 잉바르 · 린드그랜. 안네마리네 2009/1996 : 139~141)

 

 

 장르는 소설의 형식을 취하지만 내용은 논픽션이다.

읽는 느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과 매우 유사하다. 그만큼 재밋기도 하다.

이 소설집은 선생께서 여기저기에 부탁 등을 받고 써주었던 당시의 소회, 에피소드를 모은 것으로, 책 말머리에도 쓰여 있지만 본인도 이 글을 내가 썼던건가 갸우뚱 거릴 정도로 본인에겐 잊혀진 글이라고 한다. 

무라카미도 장편을 쓰고 난 후의 휴식기에 정신적 휴식을 취하는 시기에 단편을 쓰거나 번역일을 하는 등의 가벼운 작업을 한다고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글들의 내용은 에피소드 지향적으로 논픽션이라는 점을 빼면 소설 그 자체의 성격을 가진다.

가볍게 읽을 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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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

 두 번째로 품은 닭이 "낙서落書"였다. 낙서는 봉혜의 7대손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고생을 했다. 봉혜의 씨가 말라, 봉혜의 적손들이 사는 지눌의 집에서 입양을 해왔는데, 기존의 패거리들에게 엄청 "왕따"를 당했다. 어려서부터 쪼임을 당했고, 모이를 먹을 때도 모이통에 대등하게 머리를 디밀지 못했다. 딴 놈들이 먹으면서 흐트러놓은 모이가 주변의 땅바닥에 떨어지면 빙글빙글 돌면서 재빨리 주워 먹곤 했다. 성경에도 시로페니키아의 여인이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있다(막7:28). 그 광경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일본의 중 · 고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극심한 왕따현상, 결국 우리나라까지 오염되고 말았지만, 그 왕따현상은 일본사회의 독특한 문화에서 유래하는 기풍이 아니라, 동물세계에서 아주 흔하게 목격되는 원초적 생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물세계의 원초성이 인간세의 도덕성보다 더 순박하고 아름다운 측면도 있지만, 인간세의 발전은 바로 약자를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한다고 하는 협동의 국면으로부터 그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 전기는 이미 수렵 · 채집경제사회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수렵은 공동체 성원의 협력(cooperation)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수렵으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니까 타인에 대한 복지나 관회關懷가 없으면 그것은 문명이라 말할 수 없다. 닭사회의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오히려 협력을 거부하는 문명 이전의 상태로 퇴락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인류사회의 한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문명퇴폐의 한 극상極相이다.

 

p147

 그러나 그 험난한 등반여정의 중간 길목에 있는 "깔딱고개"를 코앞에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깔딱고개만 넘으면 그래도 나머지 등반이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깔딱고개는 너무도 숨이 차서 못 넘을 수도 있다. 그러면 결국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깔딱고개란 본시 숨이 차도 무리해서라도 내친 걸음으로 힘차게 행보해야만 넘을 수 있는 것이다.

 

p198

 씨렉은 씨 섹션 c. section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씨 쎅션의 씨(c)는 "씨세리안cesarian"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로마의 황제 "씨이저"라는 말의 형용사형이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암시하는 아주 애매한 예수의 말이 나오고 있다. 여기 "가이사"는 영어 "씨이저"의 로마 원발음에 가까운표기이다. 이 "가이사"를 중국인들은 "개살凱撒"이라고 표기했다. 이것을 북경만다린으로 읽으면 "카이사"가 된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때만 해도 "씨쎅"이라는 말은 없었고 "개왕절개"라는 말만 있었다. 개왕凱王은 곧 씨이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제왕절개"라는 말도 썼다. 개왕凱王은 로마의 황제였으므로 "제왕帝王"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레코-로망 세계를 나이브한 공화체제에서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체제로 전환시킨 가이우스 줄리우스 씨이저Gaius Julius Ceaser라는 인물이 과연 씨쎅으로 태어났는가? 씨쎅의 발상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씨쎅은 과도한 출혈과 패혈증으로 반드시 산모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줄리우스 씨이저는 기원전 100년 7월 12일에 태어났다. 7월을 "줄라이July"라고 부르는 것은 씨이저의 탄생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본따서 명명한 달력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줄리우스 씨이저는 아버지는 조실했지만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씨이저의 산모는 죽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개왕절개의 신화는 엉터리인 것이다. 의학사학자들은 로마의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애기 낳다가 죽은 여자는 반드시 복부를 칼로 갈러보고 매장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것이 후대에 로마황제 씨이저의 칙령으로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개왕절개"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추론하기도 한다.

 

 

p371

 나를 떠받쳐 주었던 물리적 관계가 전혀 나의 존재를 보장해주는 실상이 아닌 허상이었다는 자각에 함몰한다. 그 자각의 결론은 심각한 고독감이다. 그런데 고독이란 인간의 관계없이는 불치의 병이다.

 

 

 일본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 어린 시절부터 정리에 마음을 쓰며 살아온 결과 정리 컨설턴트라는 장르를 개척해냈다.

이 책은 정리의 방법론을 다루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인생의 방법론을 다루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연히 읽게 됐는데 내용이 좋아서 저자의 유튜브 채널까지 찾아보게 됐다. 정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무언가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내 주변의 정리건, 내 마음의 정리 혹은 인생에 있어서 정리가 필요한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한국어 번역본은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인데, 원제는 인생이 설레는 정리의 마법이다. 별 차이가 없다고 느껴지겠지만, 책을 읽어보면 원어 그대로 '설레는' 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경제전문 기자 박종훈과 애널리스트이자 경제전문가 홍춘욱의 대담집. 밀레니얼 세대가 맞이할 경제환경에 대해 교육, 취업, 재테크 - 저축, 주식, 보험, 부동산 -, 2명의 전문가의 의견을 교환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춘욱 씨의 책은 몇 권 읽어봤는데, 현업에서의 경험을 녹여낸 현상의 분석과 미래 예측에서는 배울 바가 많다. 이번 대담집의 파트너인 박종훈 기자도 홍춘욱 씨 못지 않은 내공이 느껴진다.

두 사람이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결의 해석을 보여주면서 균형이 잘 잡힌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경영서들이 잘못하면 꽤 딱딱하고 지루해지기 쉬운데, 이 2명의 대담자는 현재 밀레니얼 세대가 처한 여러가지 경제상황의 딜레마들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상호보완을 통해 구체적인 방향과 전략적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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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기술이 노동생산성을 압도하는 시대로의 전환

 

 홍춘욱 :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진입한 최근에는 기술 혁신의 속도가 사람을 압도하기 시작햇어요. 지난 20~30년간 저희 세대가 축적해온 지식과 생산성을 현재의 세대가 따라잡기 힘들어진 거에요. 학계에서는 이런 시대를 '숙련편향적 기술 진보Skill-Biased Technical Change-SBTC' 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숙련편향적 기술 진보로 인해 기존의 단순노무나 사무직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등의 고숙련 일자리만 증가하게 됩니다.

 정보통신혁명으로 저숙련 노동자들, 특히 일반 사무직이 실직과 임금 하락이라는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되었어요. 2006년 데이비드 오토 매사추세츠공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의 유명한 논문에서 1990~2000년 숙련 수준을 기준으로 양극단의 일자리는 모두 증가하고 중간 단계의 숙련도를 보이는 사무직 일자리만 줄어들었음을 입증했습니다. 실제로 이것이 2000년대 미국 중산층의 붕괴 원인으로 작동했다고도 하죠.

 증권 업계만 봐도, 예전에는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출신을 많이 뽑았지만 지금은 공과대 출신을 굉장히 선호해요. 파이썬, R 같은 통계 프로그램과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면 기업에서 앞다투어 데려간다는 말이죠. 이런 분들이 가는 대기업, 금융권, IT기업들은 20년 전에 비해 생산성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당연히 연봉도 높겠죠. 그런데 이런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아주 일부죠. 이런 인재가 되려면 준비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 많거든요.

 예전에는 웬만한 대학의 졸업장만 가지고 있어도 기업을 골라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취업에 성공한 이후에는 빠르게 회사내에서 업무 생산성을 높여갈 수 있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보통신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는데 왜 한국의 대학 졸업자들은 어려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공급 과잉'에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대학 정원의 확대, 더 나아가 새로운 대학의 설립으로 인해 대학 진학률이 60%까지 치솟았거든요.

 그 결과 대졸 임금 프리미엄은 계속 떨어지는 중입니다. 임금 프리미엄이란 고졸자에 비해 대졸자가 얼마나 많은 임금을 받는지를 측정한 것인데 최근에는 30% 이내로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졸업장보다는 숙련편향적인 기술을 지니고 있는지, 더 나아가 쉽게 습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진 것이죠.

 이렇게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진입하는 시기에 취업의 문이 좁아졌습니다. 더불어 취업 준비가 기간과 비용도 높아졌고요. 밀레니얼 세대가 갖는 압박감과 박탈감은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일부 정치인이나 재벌의 특혜 또는 채용 비리 등에 정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그토록 부르짖는 '공정함'에 대한 요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로서 역사상 가장 풍요롭게 자라났지만 마찬가지로 가장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그들의 부모 세대는 경험한 적이 없는 레이싱을 치르고 있죠. 그래서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국가 전체가 '3배' 더 잘살게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눈앞의 냉혹한 경쟁 사회가 더욱 실감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되던 시기에 사회에 진입한 부모 세대, 혹은 저희 같은 2차 베이비붐 세대는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때는 정말 열심히 했어. 너희들은 그러면 안 돼'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꼰대'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p70

 홍춘욱 : 내년에는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이 5%를 넘어설 거에요. 왜냐하면 2018년 단 한 해에만 외국인 순이동(유입-유출)이 무려 15만 6,000명에 이르렀거든요. 이들이 주 40시간씩 연 52주 연속으로 일했다고 치고, 최저 임금을 적용해보면 퇴직금까지 포함해서 약 2만 달러의 연 소득이 나와요. 최저 임금 인상의 수혜자는 역설적이게도 외국인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시아에서 이 정도 소득이면 한국, 일본, 대만 다음 가는 수준이거든요. 결국 한국의 저숙련 노동시장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p95

 박종훈 : 이런 점을 생각하면 국내 IT 산업의 미래가 상당히 밝을 것 같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바로 신규 산업에 대한 정부 정책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IT 산업과 관련해서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2007년에 제정된 '파견 근로자 보호법'입니다. 이 법의 취지는 '3D 업종'의 파견 근로자들을 보호하자는 것인데, 이 파견 근로자에 해당하는 업종(대통령령이 정하는 업종)에 희안하게도 IT 업계의 꽃이라는 '컴퓨터 관련 전문가'가 들어가 있어요. 이상해 보이죠?

 이렇게 된 원인은 간단합니다. 2007년 법이 제정될 당시 각 기업들에서 컴퓨터 관련 전문가, 특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었거든요. 당연히 이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그러자 관련 업계에서 정부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했어요. 파견 근로 업종에 이들을 포함시켜달라고요.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법으로 인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인력들의 임금 수준이 박스에 갇히게 됩니다. 저임금 3D 업종이 되어버린 거죠. 이들이 파견 근로가 가능한 업종이 되면서 기업은 낮은 임금으로 인재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의 살인적인 업무시간에 대해선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에요. 오죽하면 엔지니어를 '갈아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하겠어요.

 그런데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이나 구글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연봉은 평균 15만 달러에서 많게는 30만 달러를 훨씬 상회합니다. 근무시간도 그리 길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선 프로그래밍 인재를 조기에 양성하겠다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딩 교육 열풍이 불었는데, 정작 우수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모두 한국 기업을 떠나고 싶어하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국내 대기업과의 불공정 거래 관행도 문제입니다. 제가 수년간 기업 취재를 해왔잖아요. 그런데 제조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에 납품을 하거든요. 열심히 상품을 제작해서 납품을 하면 대기업이 설계도까지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상황이 적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설계도를 해당 대기업의 자회사에 넘겨서 생산하게 하는 것입니다. 애써 개발한 중소기업의 독자 기술이 헐값에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거죠. 이런 불공정 거래 행위가 발각되면 미국의 경우 징벌적 배상제도를 통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기술력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상당히 부실해요. 현장에는 정말 안타까운 상황들이 많습니다.

 

p173

 박종훈 : 그리고 저는 이 지점이 이전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구분 짓는 특징적인 성향이라고 봅니다. 이들에게는 소비든 취향이든 '주류'가 없어요. 그래서 국내 기업의 마케팅이 어려워지는 거죠. 뭔가가 '대세'라고 규정되는 순간, 그에 대한 열기가 가라앉죠. 대중적인 것을 선호하지 않는 '구별짓기 distinction'가 아주 활발하게 일어나거든요.

 예전에는 '골프 붐'이라고 하면 모두가 골프 연습장에 등록하고 골프채를 사서 필드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만이 알아보는 어떤 취향이 대중에게 번지는 걸 본 순간 오히려 그걸 그만두죠. '휘소가치揮少價値'가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희소가치가 아니라 휘소가치, 즉 휘발되어버리는 가치를 더 선호하죠. 아무리 경리단길이 '힙'해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곳을 찾는다 싶으면 익선동으로 발길을 옮기고요.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인기 있는 제품이나 분야가 생기겠지만 유행 주기가 짧기 때문에, 어느새 다른 쪽으로 인기가 넘어가요. '600만 명의 밀레니얼이 있으면 600만 개의 취향이 있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래서고요.

 

▶이러한 밀레니얼의 심리의 원인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럴 것 같다.

1. 자신들만이 발견한 힙한 곳이란 일단 가성비와 가심비가 높은 곳이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아지트. 하지만 대중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가격이 올라간다. 그러면서 가성비와 가심비는 떨어진다. 그러면 밀레니얼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된다.

2. 경리단길 등 소위 힙했던 곳도 대중이 몰리면서 대형 마케팅의 대상이 되버린다. 그러면 원래의 아기자기했던 그곳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왁자지껄한 메트로폴리탄의 화려하고 값 비싼 마케팅의 대상이 되버리면서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본래 그 장소의 가치를 힙하게 만들었던 가게들이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특히 밀레니얼 들은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p175

 홍춘욱 : 개별화된 취향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일종의 취향 공동체 같은 비즈니스가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돈을 내고' 함께 책을 읽는 커뮤니티인 트레바리죠. 이제는 동창회도, 동기 모임도 없는 시대인데, 나이, 출신 지역, 직업, 결혼 여부 등과 관계없이 오로지 취향을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 그것을 비즈니스 모토로 삼은 것이 정확하게 먹힌 겁니다.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에게 일종의 '살롱 문화'를 발견하는 시각들도 많거든요. 그들은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찾는 세대라는 거에요. 독서 커뮤니티 스타트업인 트레바리는 창업 3년 차인데 벌써 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앞으로도 취향 기반 비즈니스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일 거에요.

 

p185

 박종훈 : 미국 최최의 사회보장제 수혜자로 기록된 이다 메이 풀러Ida May Fuller는 1939년 은퇴한 다음 1975년 100세로 사망할 때까지 연금으로 생활하셨다고 해요. 이분이 납입한 사회보장세는 단 24.75달러였지만, 평생 받은 혜택은 총 2만 2,889달러였다고 합니다. 본인이 낸 돈의 무려 924배에 달하는 금액이었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결론적으로 예측과 설계가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의 연금제도는 연방보험료법에 따라 세율을 정했는데 이 연방보험세율이 1930년에는 2%였습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1%씩 분담하는 구조였죠. 2013년에는 이 세율이 15.3%까지 인상됩니다. 안타깝게도 이처럼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적연금은 첫 세대가 가장 큰 이득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1928년생 여성의 경우 수익비가 무려 72배, 즉 자신이 낸 돈의 72배를 가져간다고 합니다. 1948년생의 국민연금 기대 수익률은 27.2%로,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의 연평균 수익률(24%)을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1990년생 여성으로 내려오면 수익비가 3.14배로 뚝 떨어지고, 평균 수명이 여성보다 짧은 1990년 남성은 1.62배로 다시 반토막이 납니다.

 모든 국가가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것은 무엇보다 처음에 연금구조 자체를 후하게 설계한 탓도 있고, 출산율과 경제성장률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예측한 탓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설계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8년 1월 전두환 대통령은 선심성 국민연금을 내놓았습니다. 고작 소득의 3%, 직장인의 경우 1.5%만 내면 기존 소득의 무려 70%를 60세 이후 평생 보장하겠다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세대에게 베푼 선심성 정책의 부메랑을, 밀레니얼 세대, 더 나아가 Z세대를 포함한 미래 세대가 맞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웠겠죠. 지금 우리나라는 합계 출산율이 급속히 하락하고 있고 예전과 같은 경제성장도 어려워졌지만, 당시의 정부와 국민연금은 이런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었던 거죠. 현재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에 의하면, 2060년에는 소득의 29.3%를 납입해야 지금의 국민연금 체제가 유지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추계는 합계 출산율을 1.05로 계산한 것입니다. 2019년을 기준으로 합계 출산율은 0.977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소득의 30%를 납입해야 하는 시기는 2060년보다 앞당겨 질 거라는 추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소득의 30%까지 국민연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되는 일입니다. 더구나 세금도 내야 하고 건강보험료도 내야 하잖아요. 이렇게 되면 본인이 연금과 건강보험료를 100% 부담해야 하는 자영업자들 같은 경우, 돈을 벌어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다가 끝난다는 소리가 나오게 되는 거죠. 게다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건강보험료도 갈수록 가파르게 오를 겁니다. 끔찍한 예측이지만 2060년대에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연금 납부 대상자들은 소득의 3분의 2를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내는 시대를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예측들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터져 나오는 겁니다.

 결국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어야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연착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현재 소득의 20% 수준으로 연금을 납입합니다.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타협을 통해 현재의 9%대 납입률을 독일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미죠. 그게 아니라면, 소득 대체율을 기준의 40% 수준에서 25% 수준으로 낮출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연금구조의 현실화가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2000년대 이후 국민연금을 개혁하기 위한 수차례의 시도들이 있었지만 매번 정권들은 민심 이반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2007년 노후연금 지급액을 소득 대체율 60%에서 40%(2028년 기준)로 낮춘 덕분에 그나마 밀레니얼 세대의 미래 부담을 줄일 수는 있었지만, 그 대가로 노무현 정부는 당시 386 지지층에게 외면당했습니다. 결국 정부와 국민연금 개혁 당사자들이 보험료율 인상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사회적인 대타협을 이루는 일이 시대적 과제로 남았습니다.

 앞머리에 밀레닝ㄹ 세대 역시 국민연금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그렇다"라고 답했는데요, 이 대답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전 세대보다 보험료는 더 내고 연금은 덜 받게 되겠지만, 어쨋든 연금을 받을 수는 있다"가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입니다. 혹시라도 이 대답이 실망스러워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독자들에게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국민연금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이자 가장 안전한 금융상품입니다. 장기적으로 어느 민영 금융 회사가 국가보다 안전할까요? 심지어 연금이 일부 줄어들어도,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민영 연금보다 월등히 높거든요. 직장인이라면 더더욱 가입이 유리합니다. 회사가 절반을 부담해주기 때문에 납입 금액 대비 혜택의 비율이 더 높은 셈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 유의하실 점은, 현 제도가 소득 대체율 40% 수준을 보장하지만 이마저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40년인 분들을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입니다. 요새 같은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길어야 25년 정도 연금을 납부하거든요. 그럼 소득 대체율은 25%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입니다. 100만 원을 벌던 사람이 25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국민연금으로만 노후 자금을 계획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러므로 밀레니얼 세대는 국민연금과 함께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이라는 삼각 포트폴리오를 꾸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p227

 홍춘욱 : 제가 서울의 아파트를 구매하고 싶어하는 후배들한테 종종 해주는 이야기인데요, 일단 주택시장이 하나의 단일한 시장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제가 보기에 아파트 시장은 네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지금도 좋고 미래에도 좋을 시장이에요. 대표적인 곳이 강남입니다. 용산 일부 지역까지도 포함되죠. 왜냐하면 앞에서 박기자님이 언급했듯이 좋은 일자리가 모여 있는 곳에 고소득자들이 살거든요. 일종의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사람들을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강남(반포, 압구정, 도곡 등)이 180만 명, 광화문이 60~80만 명, 용산~마포가 30~40만 명 정도의 고소득자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고요. 당연히 그 주변은 최고의 거주지가 됩니다. 시장의 원리상 가격 또한 높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는 굉장히 좋았는데 미래 상황은 다소 불투명해 보이는 시장입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동탄 등과 같은 1,2기 신도시들입니다. 현재는 매우 살기가 좋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커뮤니티가 잘되어 있고, 교육 여건도 좋습니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가 결혼도 적게 하고 아이도 적게 낳는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특히 맞벌이 비중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비교적 도심과 멀어서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긴 힘든 거죠. 비록 광역철도 등으로 접근성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말이죠. 게다가 일산이나 분당 같은 1기 신도시는 이미 주택 노후화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재건축이 가능할까요? 변수가 너무 많고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사업이 되겠죠.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저는 밝지는 않다고 봅니다.

 세 번째는 과거에는 저평가되었지만 지금부터는 괜찮아질 수도 있는, 미래 가치가 비교적 높은 시장입니다. 대표적인 지역이 30년이 넘은 대단지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재건축 대상자들입니다. 목독, 상계동, 좀 더 확장하면 마포구와 금천구의 노후 아파트들이 여기 해당됩니다. 생각보다 이 지역들이 교통이 좋습니다. 신도시들과 다르죠. 게다가 재건축 사업의 조건이 준공 40년 이상의 아파트로 까다로워졌어도 상대적으로 그 기간에 임박한 지역들입니다. 그래서 미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죠. 주거 환경이 개선되면 교통이 좋기 때문에 충분히 시장가치가 뜁니다. 비록 지금은 노후 지역이지만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가 이 유형의 아파트 단지들을 공략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과거에도 좋지 않았고 미래에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시장입니다. 이 케이스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 유형의 아파트만 고르지 않으면 됩니다.

 당연히 제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은 시장은 세 번째가 되겠죠. 

 

 

p233

 박종훈 : 소위 '특공'이라고 부르는 신혼부부특별공급은 무주택 신혼부부가 일반 공급과의 청약 경쟁 없이 별도의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항간에 신혼부부 특공을 '부잣집 막내아들 특공'이라고 부르거든요. 왜냐하면 신혼부부 특공의 신청 자격이 너무나 비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혼인신고한 날로부터 만 7년 이내의 부부들 중에 전 세대원이 무주택자이면서 부부합산 소득이 전년도 기준으로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00%, 맞벌이의 경우 120% 이하를 충족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선공급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2018년 3인 이하 가구의 평균 소득은 세전 540만 1,814원(맞벌이 648만 2,177원)입니다. 연봉으로 게산할 겨우 외벌이는 약 6,500만 원, 맞벌이는 합산하여 약 7,600만 원 이상이면 신혼부부 우선공급을 신청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현재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 연봉이 평균 3,200만 원 정도이고, 요새 결혼들을 늦게 하니까 결혼할 당시의 연봉은 당연히 더 올랐을 겁니다. 이런 분들이 맞벌이를 하면 소득 구간을 훌쩍 넘어버려서 청약 자격이 없습니다.

 게다가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 가격이 어지간히 비싼 게 아니거든요. 7억 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는다고 가정해보죠.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만 7년 동안 열심히 벌어서 아이도 한 명 낳고, 부부 합산 소득이 월 600만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칩시다. 그중 절반만 쓰고 7년을 모은다고 해도 자산이 2억 6,000만 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럼 7억 원짜리 아파트 청약을 받으려면 대체 대출 비율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리고 대출은 어떻게 갚아나가죠? 제도의 취지를 생각할 때 상식적이지 않은 설계라는 거죠. 결국 누가 혜택을 볼 수 있을까요?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자산이 있는 부잣집 아들이나 혜택을 보는 특공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홍춘욱 : 이 청약제도의 신청 자격 조건을 설계한 정책입안자들은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2019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서울 인기 지역의 당첨 가점은 70점을 넘어섰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제도에요. 과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제도 자체가 '꼰대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도는 최소 조건만 갖추면 모두 신청할 수 있게 해서 '추첨방식'으로 선정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그리고 소득으로 조건을 만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산 조건을 걸어야죠. 적어도 이런 특공에 '금수저'들이 당첨되는 건 사회 정의에 맞지 않잖아요.

 그리고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에 대한 조건도 조금 풀어줘야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동거 커플이 늘어나고 비혼을 결심한 분들도 많아졌는데, 이들을 배제할 어떤 법적 근거도 없잖아요. 다만 이렇게 당첨되어서 아파트를 구매한 경우, 전매 제한 기간을 장기로 설정하면 투기나 시세 차익 우려도 사실상 사라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자격을 갖춘 분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겠죠? 그래서 실제로 '로또'처럼 지금보다 더 심한 광풍이 일 수도 있어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히려 간단합니다. 정부가 공공 분양 아파트를 더 많이 건설하면 되는 거죠. 그건 결국 건설 경기를 호전시키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겠지요.

 조건이 되면 청약으로 집을 구매하고 싶은 분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렇게 허들을 잔뜩 높여놓으면 다들 포기하고 구축 아파트 시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부가 그토록 붙잡고 싶어하는 서울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멉추지 않았던 겁니다. 참 답답한 제도에요.

 

p247

  홍춘욱 : 한국의 부문별 부채 흐름을 살펴보면, 한눈에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8년 명목 GDP의 74%에서 2018년에는 98%까지 늘어났죠.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단순히 가계부채가 증가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부채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인하하며 경지 부양 신호를 보냈더니 가계 부문만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고 기업이나 정부는 별로 돈을 안 썼다는 거죠. 결국 2015~2018년에는 집값 상승, 그리고 가계부채 증가로 경기의 급격한 위축을 막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경제 전체의 부채 규모가 급증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별 부채 규모를 살펴보면 한국은 높은 편이 아닙니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나라는 중국이죠. 중국의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는 2008년 142%에서 2018년 254%로 급증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IMF는 다음번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 가장 취약한 곳으로 중국의 기업 부문과 은행 부문을 지목한 바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로 늘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부채나 기업부채와의 밸런스가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시장의 숨통을 터줄 재정 정책을 펴는 동시에 기업의 투자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경기 부양을 위해 경직성 예산, 즉 매년 증액되는 공무원 호봉과 같은 비용 말고 비경직성 예산, 즉 경기 여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줄이고 늘릴 수 있는 예산을 더 키워야 한다는 거에요. 최근에 국토부가 경기도 신도시에 추진하고 있는 GTX 사업이 그런 예가 되겠죠.

 

p253

 홍춘욱 : 특히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입니다. 1달러에 대한 중국 위안화 환율이 7을 넘어서면서, 아시아 통화가 동반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인상(위안화 평가절하)한 이유는 '무역 분쟁' 때문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대규모 무역 흑자에 항의해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환율 조정으로 맞선 것이죠. 예를 들어 관세를 10% 부가했다면, 미국에서 중국산 제품의 가격은 10% 오르게 됩니다(물론 수입 업체가 제품 가격의 인상을 허용하지 않고 마진을 축소할 수도 있다). 이때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10% 인상해버리면, 중국 기업들은 관세 부과분만큼 달러로 표시된 제품 가격을 인하할 여력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미중 무역 분쟁이 격화될수록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한국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밀레니얼 세대에게 권하는 것은 일정 비율의 해외 투자입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달러를 사두는 거죠. 매달 일정 금액을 사둘 수도 있고, 은행에서 달러예금을 가입할 수도 있습니다. 

 

p267

 박종훈 : 그런데 기본적으로 암호화폐가 갖는 장기적인 약점은 상속이 불투명하다는 점입니다. 당연하게도 부동산은 물론, 예금이나 보험금 등 대부분의 자산은 얼마든지 상속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처럼 대부분의 나라가 돌아가신 분의 재산을 상속할 방법을 마련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암호화폐는 가상지갑에만 넣어둔 경우 완전히 공중에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 사례도 많고요.

 2013년 8월, 26세의 매슈 무디라는 청년이 경비행기를 타다가 추락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아버지인 마이클 무디는 아들이 생전에 비트코인 채굴에 열중했음을 알고 있었고, 수십, 수백억 원에 이르는 자산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비트코인을 끝까지 차지 못했습니다.

 또 2018년 4월에는 저명한 암호화폐 투자자인 머튜 멜론이 사망했는데요, 그는 사망 직전 <포브스>지가 선정한 암호화폐 억만장자 순위에서 5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포브스>지가 추정한 그의 암호화폐 자산은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2,000억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암호를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이 돈은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암호화폐 전문 분석 회사인 체이널리시스는 이 같은 이유로 이미 비트코인의 25%가 영원히 사라졌을 거라는 추정을 내놓았죠.

 비트코인은 64자리에 이르는 복잡한 키파일이 한 번만 발급됩니다. 다른 사이트처럼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할 때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재발급을 받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또한 생전에 가족등 타인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암호만 알려주면 암호화폐의 특성상 언제든 돈을 빼갈 수 있고, 추적이나 반환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암호화폐는 그 이름처럼 암호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암호를 알려주는 순간 사실상 증여를 해준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결국 예고된 죽음이 아니면 상속이 매우 까다롭고 암호화폐 자산은 영원히 가상세계에만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에 대한 보완책을 연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암호화폐가 세대를 넘어 영속적인 자산으로 계속 계승되어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기는 대목입니다.

 

 

p299

 박종훈 : 정년제도라는 것이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독일의 명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고안한 제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의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1880년 당시 독일은 100만 명이 넘어가던 극빈층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거든요. 그런데 가난한 고령층이 계속 일을 하면서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가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비스마르크 재상이 정년을 65세로 제한하는 대신 연금을 지급하고 청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만 당시 독일의 평균 수명이 65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이 제도의 설계에는 약간의 정치적 술수가 담겨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대죠. 박근혜 정부 시절 정년을 60세로 늘린 것이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정년이 적용되는 직장은 공기업과 대기업 생산직 정도라고 합니다. 일부 경제연구소나 언론에서 이전 세대는 주로 구산업에 종사하고, 청년들은 첨단IT기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으로 청년들의 손해는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정년이 보장되는 '그 직장'들이 청년들이 원하는 직장이잖아요. 그런 직장은 정년이 연장되면 청년을 적게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정년 연장으로 청년들의 손해는 없다는 주장은 정말 무책임한 것이죠.

 사실 정년 연장이 현실화되면 2차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고 공기업에 근무하는 저는 제일 수혜를 받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되겠죠. 그런데 그 대가로 제 자녀 세대의 미래가 희생당할 것이 정말 두렵습니다. 기성세대가 정년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을 계속 독점하게 되면, 결국 청년들의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정년 연장에는 치열한 세대 갈등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저는 정년 연장이나 연금 지급 시기 문제가 앞으로 유럽처럼 첨예한 사회 갈등 요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통통 튀는 트렌디 드라마처럼 시작했다가, 한자와 나오키 같은 비즈니스 심리 스릴러로 끝난다.

이 맥락의 변화가 너무 생경해서 같은 소설인가 싶을 정도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꽤 재밋었다.

워라벨이라는 주제는 그저 구색일 따름이고, 회사 생활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심리에 촛점이 맞춰져 있고 그것이 꽤 사실적이다. 한국적 사고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회사 생활이라는 것은 비슷한 면이 꽤 많구나라는 것도 알 수 있다.

 

 

NHK의 히트 다큐인 "욕망의 자본주의"의 2019년도 버젼을 정리한 내용.

책보다도 다큐멘타리쪽의 내용이 좀더 이해하기도 쉽고(편집의 영향) 핵심적인 내용에 접근성도 좋다.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미래의 변화를 여러 명의 전문가의 인터뷰를 통해서 구성한다.

책에는 5명의 패널들만 나오는데, 실제 다큐에서는 더 많은 인물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개인적으론 다큐 쪽이 더 좋다.

 

(NHK 욕망의 자본주의 2019 링크)

이 다큐의 나레이터의 목소리는 상당히 일본적이라고나 할까? 나레이터는 야쿠시마루 에츠코라는 여성으로 일본에서 꽤 유명한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가이다. 상당히 많은 음악가들과의 콜라보로도 유명하다.

https://www.dailymotion.com/video/x7010c0

 

BS1スペシャル「欲望の資本主義2019(前編)~偽りの個人主義を越えて~」20190103 - 動

後編 https://dai.ly/x7017yt 「ネット界の四天王」と呼ばれるGAFAを巡る議論が熱い。強大な力に国家の枠組み前提の市場経済が揺れている。仮想通貨をめぐる議論も沸騰、バーチャル経済時代の�

www.dailymo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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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1スペシャル「欲望の資本主義2019(後編)~偽りの個人主義を越えて~」(後編)20190103 - 動画 Dailymotion

前編 https://dai.ly/x7010c0 「ネット界の四天王」と呼ばれるGAFAを巡る議論が熱い。強大な力に国家の枠組み前提の市場経済が揺れている。仮想通貨をめぐる議論も沸騰、バーチャル経済時代の資本主義はどこへ行く?2017年富を生むルールの変化を捉え2018年社会構造に地殻変動が起きている現実に迫ってきた番組は次のステージへ。テクノロジーが社会を変える今、格差、分断を越え自由への道は?切迫感ある今問う、自由の形と資本主義の行く末は? 【出演】安田洋祐,スコット・ギャロウェイ,ユヴァル・ノア・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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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자본주의 앞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는가 ___ 유발 하라리 012

 

p26

 공산주의는 이용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의 수급을 단일한 중앙 관리자가 결정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선택을 개개인의 자유에 맡깁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한 자유를 가진 것, 이것이 자본주의의 성공 비결입니다.

 

p31

 일이 사라지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솔직히 노동자의 입장에서 모든 일이 항상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건 아니거든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지 않아도 먹고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일을 합니다. 하루에 10시간씩 슈퍼마켓 계산대 앞을 지키는 일이 꿈의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에요.

 저는 인공지능에 맞서 인간의 일을 지켜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봇에게 계산대 일을 빼앗겨도 괜찮아요. 오히려 이런 시대가 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일'이 아니라 '인간'일 것입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일들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니,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습니까? 다음 두 문제가 해결된다면 말이죠. 하나는 직업을 잃은 사람들을 어떻게 지탱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보편적 기본 소득제universal basic income 같은 대안들이 논의될 수 있겠죠.

 다른 하나는 인생의 의미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이제 당신은 매일같이 공장에 출근해 10시간씩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의식주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럼 남아도는 시간엔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기쁨과 의미를 일 대신 예술, 스포츠, 종교, 명상, 인간관계, 공동체 등에서 충족시키는 모델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직 시장에서 밀려나는 일로 갑론을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알고리즘에 맞서 인간의 실직을 막겠다는 계획은 실제 성공하기도 어려울 테고요. 오히려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을 지켜주는 방법을 고민하는 쪽이 더 현명합니다.

 일이 없는 세계를 대비하는 건 필요합니다. 보편적인 경제 안전망을 통해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지탱해주는 방안 등을 마련하지 않고 모든 것을 시장의 힘에 맡겨두면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요. 아마 부와 권력이 한 줌의 엘리트들에게 집중되고 사람들 대부분은 빈곤에 빠져 하루하루가 아주 힘들 겁니다. 위기가 본격적으로 분출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뭐든 해야 합니다. 그게 뭐가 되었든 지키는 대상은 일이 아니라 인간이어야 합니다.

 

p34

 기술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다만 기술이 너무 큰 힘을 갖게 되어 우리가 그 노예로 봉사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크게는 인간을 위해 기술을 봉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죠. 정부 차원에서는 유전자 조작 기술, 자유 무기 체계 Autonomous Weapon System AWS 같은 위험한 기술 개발을 규제해야 합니다. 개인 수준에서도 가령 스마트폰이 자신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하고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한 통제권을 알고리즘에 쉽사리 넘겨주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가능하게 만든 미래 사회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앞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선택권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는 그중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2. 거대 디지털 기업들은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___ 스콧 갤러웨이 040

 

p49

 아마존 같은 기업은 연방 정부나 주 정부로부터 세제 우대나 보조금 지원 등의 각종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저임금 ·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면서 생계 지원을 받을 정도로 가난합니다. GAFA(Google, Apple, Facebook, Apple)의 주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지나치게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쥐어짜고, 그 와중에 보조금과 세금 감면을 받으려고 분주히 뛰어다니면서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계 최고의 혁신가로 칭송받고 있지요.

 하나의 기업이 거대해져서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갖게 되면 온갖 부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세금 회피 문제입니다. 미국에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10년간 월마트가 낸 법인세는 640억 달러였지만, 아마존은 14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아마존은 장기 비전으로 투자자들을 매료시켜 막대한 자금을 저렴하게 빌리고, 벌어들이는 수익을 다른 사업에 재투자함으로써 법인세로 빠져나가는 돈을 절약해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들이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으면 소방관, 군인, 공무원 들에게 어떻게 월급을 주죠? 거대 IT 기업이 세제 지원 혜택을 누리는 동안, 작은 기업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면 됩니다! 세금 제도의 역진성逆進性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이런 상황은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미국의 정신에도 반하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p50

 많은 사람들이 GAFA가 고용을 창출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해 GAFA는 '소수의 고용'을 창출하고 '다수의 고용'을 파괴합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230억~250억 달러 규모의 수익을 추가로 내는 데는 2만 8000명의 고용이 더 필요합니다. 고학력 · 고스펙 친구들이 탐내는, 돈벌이가 좋은 고급 일자리입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광고 산업은 몇 년째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덴츠나 IPG, WPP 같은 업계 대기업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요, 이들이 250억 달러라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약 25만 명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2만 8000명을 고용해서 벌어들인 250억 달러는 다른 광고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25만 명의 고용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상황은 마치 5만 명을 수용하는 양키스타디움 다섯 곳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와 미디어 플래너Media Planner, 카피라이터Copywriter 등을 모이게 한 뒤, 페이스북과 구글이 "이제 당신들의 일자리는 없습니다"라는 해고 통지서를 내미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고용의 파괴'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전통적인 일자리들이 새로운 기술 직군에세 산 채로 잡아먹히고 있어요. GAFA는 고용의 창출자가 아니라 오히려 고용의 파괴자입니다

 

==> 이 주장은 사실 과거 산업혁명 당시의 러다이트 운동의 사상과도 비슷하다. GAFA가 전통적인 일자리를 파괴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혁신을 통해 시장의 원리가 바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기존 체제의 파괴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기업가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 조달이 매우 힘들다는 점입니다. 전자 상거래, 검색 엔진, 소셜 미디어, 컴퓨터 하드웨어 같은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해도 투자자들이 'GAFA와 경쟁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금을 조달받지 못해서 하루살이처럼 사라지는 신생 기업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혁신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혁신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최근 40년 동안 매일 생겨나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숫자가 절반가량 줄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놀랍게도, 지금보다 1970년대에 훨씬 더 많으 새로운 비즈니스가 등장했습니다.

 독점 기업은 혁신을 저해합니다. 이들은 투자자 자본과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입니다. 훗날 본인들을 성가시게 할 것 같은 잠재적 경쟁자는 매수해버립니다. 이런 현실에서 작은 회사가 성장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고령자의 곤궁한 삶이나 사람들의 마음속 평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화성을 탐사하는 것도 기업의 역할이 아닙니다. 모든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고 주주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GAFA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GAFA가 내세우는 이미지, 즉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가치를 옹호하며 공익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곧이곧대로 믿습니다. 그들은 자기네 제품과 서비스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수많은 추종자들은 그들을 본보기로 삼아야 하고 그들에게 무한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류 구제 등의 숭고한 비전을 내세운들 그런 이미지는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GAFA의 본질은 기업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수익 창출에 방해가 되는 사회적 책임은 교묘히 피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두뇌들과 세계 최대 규모의 자본이 한데 모여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대신 시가 총액을 높이고 돈을 벌어달 줄 아이템을 궁리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p65

 미국은 다소 길을 잃었습니다. 미국은 일찍부터 기회의 땅이었고, 경제 정책은 여러 백만장자millionaire를 만드는 걸 목표로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극소수의 조만장자trillionaire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목표가 바뀐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 명의 승자가 꿈같은 생활을 누리고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두르는 반면, 나머지 99명은 그 풍요로움을 눈으로만 구경하면서 한 줌의 부스러기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겠죠.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 자식이 다음 세대의 스티브 잡스라고 맹신하는 것처럼 보여요. 일종의 '대박'을 꿈꾸는 기묘한 복권 경제에 빠져 있는 거죠.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보세요, 당신의 아이는 스티브 잡스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인 전망입니다. 대신 우리는 1퍼센트가 엄청난 혜택을 독점하는 사회가 아니라, 나머지 99퍼센트가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아주 불편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말했듯, 이전의 미국은 보통 인간들을 사랑했습니다. 지금의 미국은 더 이상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우리 대부분은 평범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상황이 너무 나쁘게 돌아가고 있어요. 승자 독식 경제에서 평범한 우리는 하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거에요.

 예를 들어 원래 정부는 중소기업을 우대해 그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정반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정부 지원금이 신생 기업이 아니라 GAFA에게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사람에게 '축하합니다. 당첨금을 배로 드리지요' 하는 식입니다. 우리는 3억 5000만 명의 농노가 300만 명의 영주에게 종속된 사회를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p67

 도를 넘은 소득의 불평등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좋은 소식은, 역사를 보면 극단적인 소득의 불평등은 반드시 스스로 수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은, 극도로 심한 소득의 불평등을 수정해온 것은 전쟁, 기아, 혁명 중 하나였다는 사실입니다. 모두 피하고 싶은 일들이죠.

 오늘날 세계 경제는 이 세 가지 메커니즘 주 하나가 작동할 수 밖에 없는 상태로 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느린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극소수가 누리는 '멋진 삶'에서 배제된 수많은 사람들이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그들의 외침은 결국 위험한 선동 정치가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에 이르렀죠. 유럽의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 미래가 아주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지금부터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 외침이 당선시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교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동맹국은 미국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유럽과 일본 등과의 관계에 있어서, 일관성 없는 메시지로 인해 신뢰가 약해지고 말았죠. 미국은 고립주의를 표명하면서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닫힌 사회'를 지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말해도, 그 진실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현실이 참으로 우려스럽습니다. 우리의 동맹 관계는 세계의 평화를 지켰고 세계의 소득을 증가시켰으며 세계의 기아를 줄여왔습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가 함께 쟁취한, 훌륭한 성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파트너십이 위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p71

 적어도 미국은 거대 IT 기업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고용 파괴나 납세 회피, 반경쟁적 행위, 소셜 미디어의 정치적 이용과 가짜 뉴스 등 부정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들 기업에겐 긍정적인 면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거대 IT 기업이 만들어내는 고급 일자리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덕분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경쟁력은 한층 올라가게 됩니다. 미국 기업이 세계 시장의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자부심 역시 무시 못하죠.

 하지만 미국 밖에 있는 나라들은 이런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학이나 병원 중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이름으로 지어진 시설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거대 IT 기업들이 일본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만큼, 일본 정치인은 이들이 자국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거대 IT 기업이 일본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추진할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합니다.

 최근 중국의 행보는 흥미롭습니다. 중국은 거대 IT 기업을 자국에 유치해 지식과 기술을 훔친 후 유사한 회사를 설립하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검색 엔진과 독자적인 소셜 미디어 회사를 만들어서 국내에서 생기는 이익을 확보하는 방법인데요. 이 수법은 유럽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저는 가까운 미래에 유럽도 중국과 같은 수법으로 데이터 유출을 방어하려 들 거라고 예상합니다.

 참고로 영국은 거대 IT 기업이 총수익(매출액)에 과세하는 일명 '디지털세Digital Tax'를 실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구글은 영국에서 매년 70억 파운드를 벌어들였다고 추정되었으나, 그 대부분을 아일랜드에 있는 구글 유럽 본사로 귀속시켜서 법인세를 회피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법인세는 물리적 고정 사업장이 있어야 과세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한 거죠. 이 때문에 영국은 자국 내에서 실제 발생하는 총수익에 과세한다는 결정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3. 암호화폐는 어떻게 잠들어 있는 부를 깨우는가 ___ 찰스 호스킨슨 074

 

p90

 그럼 어떻게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없앨 수 있을까요? 이런 중개자는 블록체인을 이용한 '스마트 콘트랙트 smart contract' 로 간단하게 없앨 수 있어요. 스마트 콘트랙트란 '프로그래밍된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계약 내용이 자동 이행되는 시스템'으로, 제3자 없이 개인 간 직접 거래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그렇게 되면 시장을 독점하고 운전기사를 착취하는 중앙 집권화된 기업은 소멸하고 말 거에요.

 아무리 잘 나가는 사업이어도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신문업계가 좋은 사례입니다. 신문은 오랫동안 미디어 시장에서 큰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출현한 인터넷이, 신문사들이 따라온 전통적인 수익 및 유통 모델과 정면으로 충돌했지요. 처음에는 신문업계는 인터넷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매달, 매년 구독률이 떨어지고 나서야 자신들이 낡은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광고 수익과 구독 수익이 줄어든 신문사들은 현재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저는 '블록체인 기술이 반드시 GAFA를 무너뜨릴 것이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GAFA는 영리하며 적응력이 탁월합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이들 기업은 자신들과 고객과의 관련성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p92

 하지만 이제 개인 정보와 사생활 보호에 관한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프라이버시'가 새로운 사업 모델로 부상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최근 주목할 만한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브레이브 Brave'라는 웹브라우저인데요. 프로그램 언어인 자바스크립트의 아버지 브렌던 아이크 Brendan Eich 가 개발했습니다.

 브레이브는 보안과 프라이버시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이트 접속 정보나 구매 이력, 검색 이력을 서버에 저장하지 않으며 광고 추적기를 차단해 사용자의 익명성을 보장합니다. 광고를 허용함으로써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이용자에게는 보상으로 토큰을 줍니다. 이용자의 관심을 갖는 가치를 인정하고, 웹브라우저의 광고 수익을 나누는 것이죠. 브레이브는 최근 등장했지만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이미 수백만 명이나 이용하는 웹브라우저가 되었습니다. 조만간 구글의 크롬이나 모질라의 파이어폭스 같은 선발 주자들을 앞지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 새로운 기술이 5년 후, 10년 후에 가져올 변화에 기업들은 주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브레이브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다른 웹브라우저 회사들은 브레이브가 가진 능력과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GAFA도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이 제공해온 서비스의 바람직한 면은 그대로 두면서도 사용자가 포기할 것을 적게 만드는 방법 아니면 일시적으로 포기하더라도 탈퇴 시에는 사용자 권리를 되돌려주는 방법을 고안해내야 할 겁니다.

 계정을 삭제함과 동시에 프로필을 비롯해 나의 모든 디지털 흔적이 삭제되는 세계, 즉 '잊힐 권리가 있는 세계'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은 고객이 더 많은 권한을 갖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4. 좋은 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___ 장 티롤 106

 

p131

 저는 암호화폐가 사회에 무익하다고, 아니, 무익한 정도가 아니라 유해하다고 봅니다. 이유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 암호화폐는 돈세탁, 탈세, 암거래 등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불법 행위에 대해 정부가 통제할 제도적, 법적, 기술적 기반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둘째, 암호화폐 때문에 통화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의 시뇨리지seigniorage(화폐 주조 차익)가 줄어듭니다. 각국 중앙은행은 화폐를 발행할 때 이익을 얻고, 이것이 공공 부문의 수익이 되는데요. 간단히 설명하면 중앙은행은 민간 은행으로부터 국채를 사들이고 대금을 민간 은행에 지불하는 형태로 화폐를 발행합니다. 이때 국채에는 금리가 붙지만 현금에는 금리가 붙지 않는데 그 차액이 중앙은행의 이익이 됩니다. 그런데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가 확산되면 중앙은행에서 얻는 시뇨리지가 줄어들어서 공공 부문의 수익이 감소합니다.

 마지막은 금융 정책의 훼손 가능성입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점인데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는 각국 중앙은행이 시장에 통화를 대량으로 유통, 발행함으로써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하지만 민간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는 그 누구도 공급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암호화폐가 주거래 화폐인 상황에서는 이런 부양책을 쓸 수 없습니다.

 

 암호화폐는 거품이라고 하셨느데요. 현재 각국 통화도 금이나 은 등의 실물로 보증되지 않으며 고유의 내재 가치가 없는 불환 지폐입니다. 그럼 사실상 모두가 거품 아닌가요? 둘은 어떻게 다릅니까?

 

 둘 다 거품이라고 해도, 불환 지폐는 공급이 통제되며, 실제 사용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다시 말해, 각국의 불환 지폐는 실물 경제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민간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값을 치르거나 세금을 납부한다고 하면 모를까요. 개인적으로는 부디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가치의 등락이 너무 심해서 하루 사이 세수가 배로 늘었다가 반으로 줄어드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의 암호화폐는 실물 경제와 연동되어 있지 않고 섣부른 기대까지 더해 있어서 매우 불안정합니다. 그에 견주면 불환 지폐는 그 역사가 길고 가치도 비교적 안정적이죠. 둘은 근본적으로 달라요. 

 

p136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유가 경제의 전부이고, 시장 실패는 경제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듯합니다.

 

 시장이 잘 기능하면 경제학은 필요가 없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시장 실패를 연구하는 데 씁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시장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시장은 사람들의 기호를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도구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훌륭한 도구라는 말은 아닙니다.

 경제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익입니다. 시장은 공익에 이바지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닙니다. 따라서 공익에 해가 되는 시장에는 규제가 이뤄져야 맞습니다.

 자유방임주의와 자유주의는 같은 생각이 아닙니다. 제가 그리는 자유주의에선 자유에 책임이 수반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를 책임져야 해요.

 예를 들어 자유주의를 지지한다고 해서, 환경 보호도 개인의 자유에 전적으로 맡겨야 할까요? 오히려 경제학자들은 그런 자유방임주의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자유주의에서는 오염 제공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탄소세를 지지하는 거죠.

 문제는 시장 실패를 교정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방해를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금융 시장에서 규제를 철폐하고 상품 시장에서 보호주의와 고립주의를 강화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요, 이것은 잘못된 정치 개입의 전형입니다.

 사실 미국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단기적으로밖에 생각을 못 합니다. 트럼프의 경우, 길어 봐야 2년 정도 내다볼 걸요? 그들은 장기적인 시야로 정책을 보는 데 관심이 없어요. 오로지 다음 선거에 당선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5. 탈진실의 시대에 가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___ 마르쿠스 가브리엘 144

 

p152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은 우리가 이런 기업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매일 인터넷을 통해 메일을 주고받거나 뉴스를 읽거나 검색을 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데, 이 모든 행위는 부가 가치를 가진 데이터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사실은 '노동'에 가깝습니다. 덕분에 수십억 달러의 돈이 캘리포니아의 계좌로 들어가게 됩니다. 

 소셜 미디어는 카지노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를 클릭함으로써 '도박'에 참여합니다. 열심히 자기 팔로워를 모으고 게시물의 클릭 수나 조회 수를 올려서 '잭팟'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지요. 실제로 페이스북 인플루언서, 인스타그램 스타, 유명 유튜버는 큰돈을 법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은 도박 참가자가 아니라 도박판의 운영 관리자입니다. 카지노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카지노 주인인 것과 똑같은 이치죠. 게다가 소셜 미디어는 전 세계 어느 카지노보다도 불공평한 카지노입니다. 어떤 더러운 카지노보다 GAFA가 훨씬 더럽습니다.

 

p155

 진정한 저널리즘이란 쉬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백일하에 밝혀내는 것인데 지금은 비판적이지 않은 저널리즘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터넷 사회가 낳은 저널리즘의 위기입니다. 트럼프나 시진핑 같은 사람들이 언론에 비판적이어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저널리즘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저널리즘의 힘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려는 자세가 실종된 민주주의는 이미 민주주의로서 기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인터넷에서 뉴스를 읽거나 메일을 보내는 '노동'이 배후에 숨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저널리즘을 위기에 빠뜨리는 원동력으로 이용되며,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면 좋아합니다. 이러한 구조가 현대 사회를 위태롭게 하고 있어요.

 

 가짜 뉴스가 만연하여 탈진실 post truth 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는 사실과 진실을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야말로 탈진실을 만들어내는 원인입니다. 물론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전략적으로 진실을 숨기려고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설령 그러한 상황에 있더라도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짓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오늘날 정치는 탈진실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원래 민주주의 시스템은 '재화나 특권 등의 분배가 실현 가능하다고 믿으며, 그 실현 방안을 논의로 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이렇게 작동하지 않죠. 따라서 가치의 분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항의하거나 봉기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의사 결정을 '숨길'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탈진실입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주관적인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본질을 흐리는 일종의 속임수죠.

 이것은 다른 의미로 '완벽한' 속임수이기도 합니다. 거짓은 진실을 전제로 하므로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속임수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되거든요. 덕분에 정치인들은 마음껏 거짓말을 하고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합니다.

 

p162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지금 미국에는 두 종류의 이데올로기밖에 없어요. 바로 자연주의와 종교인데요. 트럼프는 그 둘을 완벽하게 구현한 사람이에요. 먼저, 그는 기독교 원리주의자(근본주의자)입니다. 또 진화론을 부정하고 우주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는 창조론자입니다.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기독교는 유물론적 자연관과 이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막스 베버Max Weber가 말한 세계의 '탈주술화Entzauberung'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독교를 포함한 유일신 종교에서는 오직 신만이 불가사의한 힘을 지녔다고 가르칩니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으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신이 만든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요. 고전적인 자연주의는 '신'과 '세계' 사이에 큰 질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현대의 자연주의는 '신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지만,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선상에 있는 이데올로기입니다. 다시 말해 전자는 신을, 후자는 세계 자체를 자연주의에 입각해 고찰하고자 했습니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주장입니다. 이러한 입장 위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없어요. 미국 문화는 이렇게 틀린 자연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은 분명합니다. 미국의 청교도 문화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원주민은 완전히 다른 자연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땅을 어머니로, 모든 동식물을 형제로 봤어요. 하지만 그들의 의미 있고 아름다운 자연관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공허하고 어두운 유물론적 자연관만이 남았죠. 예를 들면 그랜드캐니언이 그 모델입니다.

 미국인에게 현실이란 그랜드캐니언 같은, 이른바 '의미 없는 거대한 구멍'과 같습니다. 자연주의적 자연관이 허무주의nihilism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미국인의 행동 패턴은 이러한 '의미 없는 구멍'에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미국 문화는 일반적인 이미지보다 훨씬 종교색이 강하고, 그 정치 형태도 기독교 원리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미국이나 이슬람 원리주의 아래 있는 이란이나 비슷해요.

 

 

 경제와 관련해 자연주의와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으려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러려면 학문상 발견, 즉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학문과 기술은 이어져 있는 셈인데요. 학문상의 공적에 의해 새로운 기계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경제를 위해 쓰입니다.

 경제 활동의 존속과 제조 합리화를 목적으로 지식이 연구되는 셈인데요, 이때 가격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다른 형태의 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가격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앎이란, 우리들의 실재 체험입니다.

 

p165

 예를 들어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과 고전 소설을 읽는 것은 모두 만족감을 줍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보는 즉시 만족감을 주는 상품입니다. 그에 비해 고전 소설은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와 우연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곧바로 얻는 만족감과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만족감을 선사하죠.

 자연주의가 사회에 위험한 이유는 그 세계관이 자유나 우연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자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연은 양자론에서 말하는 소립자 수준에서나 존재합니다. 자연주의는 우리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 사고 방식입니다.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체험을 자연주의는 고찰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 체험을 자연과학적으로 탐구하려면, 그림을 보고 감동하거나 친구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중에 우리 뇌에 전극을 꽂고 뇌파나 영상을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간의 경험이란 그렇게 시각화해서 측정한 것 이상입니다.

 예를 들어 세 살 난 딸이 "숫자 3이 뭐야?" 하고 묻는다면 저는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보여줄 겁니다. 그럼 딸은 "아, 그렇구나. 하나, 둘, 셋. 이게 3이구나"라고 대답할 거에요. 하지만 자연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제 손가락 세 개는 '3'이 아닙니다. 세포, 소립자, 에너지 같은 이야기로 흘러가죠. 그러나 '세 개의 손가락'이 제게 의미하는 내용, 예를 들어 세 살 난 딸에게 나이를 가르쳐주었을 때의 추억 등은 현상을 구성 요소로 쪼개서 분석하는 방법으로 탐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어떠한 현상을 자연과학적으로 탐구한다는 건 잘게 분해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실험이란 어떤 측면에선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대형 하드론 충돌형 가속기LHC 안에서는 항상 물체가 기본 입자 수준으로 잘게 파괴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분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현실은 '상황'이라는 큰틀 안에서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p167

 자연주의가 경제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현대에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철학의 관점에서 말하면 우선 개념에 신경 쓰라고 조언하고 싶군요. 특히 자연주의에서 '사실을 가리려고 사용하는 단어'들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이것은 철학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가 '뭔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짜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단어는 사실 키워드이지 개념이 아닙니다. 참고로 개념과 키워드는 달라요. 개념은 진실에 가깝고, 키워드는 무기 같은 겁니다. 정치 토론을 보면 이런 키워드들이 상대를 공격하거나 비방하는 데 쓰입니다. 하지만 토론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를 만들어내느 거게요. 따라서 개념을 잘 이해해서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게 첫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철학은 사고방식을 바꿈으로써 현실을 바꿉니다. 특히 우리는 같은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파악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현실을 인식하다간 세간에 떠도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고 말 거에요.

 표면적인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변증법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어떤 '예측'에 대해 우선은 반대 방향에서 살펴보세요.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측면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 것'의 숨겨진 일면을 탐색해야 합니다.

 트럼프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 내용을 설명하는 데 트럼프만큼 완벽한 소재는 없거든요.

 글로벌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존재가 백악관에 앉아 있습니다. 덕분에 미국 경제는 잘 굴러가고 있지요. 트럼프는 세계적인 스타입니다. 전 세계 미디어가 앞다퉈 연일 트럼프에 관한 뉴스들을 송출하는 가운데 우리는 트럼프라는 인물을 충분히 아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뉴스 대부분이 정말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정보들입니다. 트럼프는 제대로 일을 하고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매일 귀에 들리는 뉴스는 '트럼프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골프 삼매경에 햄버거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흥미로운 사실은 대통령 자신이 이런 얼토당토않는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기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사물의 본질과 표면은 같지 않습니다. 표면에서는 '놀고먹는 트럼프'가 우리에게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백악관이 의도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심으려고 한다는 걸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고가 바로 변증법입니다. 그러므로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p171

 오늘날 우리는 인간적인 삶이 완전히 파괴될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100년 넘게 위험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어요. 현재의 소비문화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기란 불가능합니다. 커피와 빨대, 자동차와 휴대전화 등을 100억 명이 모두 원한다면 지구가 남아나겠습니까? 현 사회 모델이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p180

 뒤르켐은 '각자가 자신의 성격에 맞는 역할을 가지고 진정한 용역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분업'이라고 말하다.

 

p182

 그러나 이에 대해서 재미있는 '다른 의견'이 있다.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지주'이자 '시장 경제의 최대 옹호자' 하이에크가 애덤 스미스의 인간관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다음을 보자.

 

 애덤 스미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말한 개인주의에 대해 현재 퍼지고 있는 오해를 가장 잘 나타내는 예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애덤 스미스는 '경제인'이라는 요정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엄밀히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그들의 가정 혹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합리주의적 심리학으로 인해 그 가치를 해치고 있다. 물론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종류는 가정하지 않았다. 그의 견해에서는 인간은 원래 태만하고 게으르고 경솔하며 낭비를 좋아하는 존재로, 인간으로 하여금 목적과 수단을 합치시키고 경제적으로 혹은 주의 깊게 행동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환경의 힘뿐이라고 말하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 것조차 그가 가지고 있던 매우 복잡하고 현실적인 인간관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다.

 (중략) 스미스의 주된 관심은 인간이 최선의 상태에 있을 때 우연히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최악의 상태일 때 해를 끼칠 기회를 되도록 적게 하는 것에 있었다. 스미스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옹호한 개인주의의 주요 장점은 그 체제 아래서는 악인이 최소의 해밖에 끼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 체제를 운용할 선인을 우리가 발견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 기능이 좌우되는 사회 체제가 아니며, 또 모든 인간이 현재 그 이상으로 선량한 사람일 때 비로소 기능하는 사회체제도 아니다. 그렇지 않고 그것도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다양하고 복잡한, 때로는 선량하고 때로는 악인인, 또 때로는 총명하면서도 더 자주 어리석은 모습을 그대로 활용하는 사회 체제다. 스미스가 목표로 하는 것은 동시대 프랑스 사람들이 바란 것처럼 '선인과 현인'에게만 자유를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인정할 수 있는 체제였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개인주의와 경제질서」 -

 

p185

 뒤르켐은 120년도 더 전에 위기감을 표명한 대상은 산업사회뿐만 아니라 산업사회가 만드는 그림자, 즉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는 기계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생산라인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사고의 양식마저 심어주는 것을 경고했다. 그는 이런 부정적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본래의 도덕적인, 유기적 연대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 책은 우치다 타츠루가 한국에서 2014년부터 매년 1차씩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 8개의 강연의 내용을 묶어서 출간한 것이다. 교육관련 단체인 에듀니티가 주관을 하고 주로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기 때문에 교육과 관련된 우치타 타츠루의 견해를 중심으로 그 내용이 이루어져 있다.

각 강연이 유튜브로 올라와 있어서 같이 참고하면 좋다.

 

주로 한국의 교육현실에 대해 저자는 일본의 부정적 상황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반면교사적 내용 위주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교육에 대한 의견 자체도 있지만, 일본의 현재의 사회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 

 

 

(강연 Link)

2014 첫 번째 이야기.

1. 어른이 없는 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

 

2. 교육은 실패라는 말을 허용하지 않는다

 

2015. 두 번째 이야기

 

3.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4. 우치다식 공생의 필살기

 

2016/2017 세 번째 이야기

 

5. 교사단의 관점에서 교육 낯설게 보기

 

2018. 네 번째 이야기

6. 미래교육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2019. 다섯 번째 이야기

7. 교육과 계급 : 이 · 생 · 망 동지들에게

 

 

8. 어른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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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첫 번째 이야기.

1. 어른이 없는 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

p23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아이들의 성숙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것이 세계적인 문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금 성숙 모델을 잃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남성의 경우가 더욱 심각한데, 남자의 성숙에 참고할 만한 롤모델을 거의 상실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것은 가정 내 아버지의 역할입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가정에서 아버지의 지위가 극도록 낮아졌습니다.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이자 뛰어난 배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최근 20년간 딸에게 미움받는 역할을 연기한 것으로도 느껴지는 사실이지요. 바깥에서는 슈퍼 히어로인 남성들이 가정 안에서는 충분한 존경도 애정도 못 받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경향인 듯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점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p29

 아이러니하게도 부권제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미성숙하거나 인간성에 대한 이해다고 낮을수록 아이가 잘 성장했습니다. 정말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죠. 아버지가 미성숙하고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일수록 아이들은 성장할 기회를 얻었던 겁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한이 사라짐과 동시에 아이들은 망설일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p31

 아이들은 갈등 속에서 성장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서로 다른 성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다양한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전혀 다른 육아 전략을 지닌 어른들과 마주해야 합니다.

 

p33

 성숙의 반대말은 미숙이 아닌 트라우마입니다. 동일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체험하는 것, 아무리 새로운 일을 경험해도 과거의 기억이 변하지 않는 것이 트라우마입니다.

 성장이라는 말에 여러분 중 대다수는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이미지를 갖고 계실 것 같은데요, 사실 그렇지 ㅇ낳습니다. 성장을 뒤를 돌아보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의 의미가 변하는 것. 풍경이 변하고, 자신이 경험한 일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 그것이 성장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뒤를 보고 걸어갈 수 있을까요? 바로 등으로 느끼는 겁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콜링Calling 또는 보케이션vocation이라고 하는데 두 단어 모두 '소명'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들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소명은 그렇게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자기를 부르는 곳을 향해서 걸어가는 걸 말합니다. 성숭하는 아이란 여러 어른이 해주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들어야 할 목소리를 가려내 그 방향으로 걸어가는 아이입니다. 목소리가 하나밖에 들리지 않는 경우, 어른이 한 명뿐이거나 다른 어른들이 모두 침묵하는 상황은 결코 아이를 성장시키지 못합니다.

 

2. 교육은 실패라는 말을 허용하지 않는다.

 

p40.  교육은 사회공통자본이다.

 세상에는 종사자들의 멘탈리티가 변하지 않는 직업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사법과 의료는 정권의 변화나 경제 상황의 변화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사법적 판단이 바뀌면 안 됩니다. 경기가 좋아지거나 나빠짐에 따라 의료 내용이 달라지면 곤란합니다. 교육과 종교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집단이 살아남기 위해서 꼭 있어야 하는 것을 사회공통자본이라고 하지요. 첫 번째 사회공통자본은 자연환경입니다. 공기나 대지, 바다와 강, 숲 등입니다. 이게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정치 권력이나 기업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누구도 사유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는 사회 인프라입니다. 교통망, 상하수도, 통신망 등이 여기 해당합니다. 전기나 가스 같은 라이프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또한 없어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이런 것들은 정치나 경제에 종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직접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어선 안 됩니다. 사회공통자본은 전문가가 전문적인 지식에 기초해서 관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앞서 이야기한 사법, 의료와 교육입니다. 당연히 사회공통자본인 교육은 전문적인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전문가란 교사입니다.

 학교교육은 정치나 경제, 미디어 등과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학교교육의 시간은 굉장히 느리게 흐릅니다. 정치가 한 사람의 신념이나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오사카 시장에게 교육에 관여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교육이라는 사회공통자본의 특징은 실패라는 말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육정책을 실행해보고 몇 년뒤에서야 틀렸다는 말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틀렸으니 이번엔 다른 교육정책을 실시해보자는 태도는 허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들은 잘못된 교육을 받은 실패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공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특정 제품에 대해서라면 '제작법이 잘못되었다. 불량품이다'하고 폐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2015. 두 번째 이야기

2.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p72

 구체저긴 미군 기지 축소 프로그램이나 동아시아 공동체 계획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생각 자체가 금기입니다. 미국에서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일본인 스스로 한 일입니다. 만약 미국에서 대놓고 실각을 요구하면 내정간섭이 되지만 일본의 경우는 내정간섭조차 필요없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기분이 나빠지겠다 싶은 말을 총리대신이 꺼내면 온 일본의 관료들이 들고 일어나 발목을 잡으니까요. 하토야마 씨의 발목을 잡은 건 외무성과 방위성입니다. 미국은 공문서를 금방 공개해주는데, 당시 미일공동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외무성의 한 관료가 "조만간 하토야마 총리가 미군기지 축소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르니 절대 응하지 말아달라"라고, 일본 외무성의 관료가 미군에게 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하토야마 씨를 끌어내릴 때 일본 언론의 공격은 굉장했습니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라는 일본 3대 신문사를 비롯해서 수많은 언론이 사설을 통해 '하토야마는 머리가 이상하다'는 식의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저는 당시 하토야마 총리의 실각 과정을 보면서 일본이 상당히 이상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종속국으로서 주권의 회복, 국토의 회복을 바라서 그랬다고 하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일본인은 주권이나 국토 회복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일본인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지시하지 않아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발 멋고 나서는 모습이 일본 전체에 만연해 있습니다.

 

p75

 안전보장 관련법은 미국을 위해 전쟁하겠다는 법률입니다. 자위대원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나 수단에 가서 전쟁하면 일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미국의 국익은 올라갑니다. 자국 청년들 대신 일본 병사가 죽어주고 군비 부담도 해주니, 미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일본이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본의 이익이 되지 않는데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건데, 아베 정권의 경우 미국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인상을 주어 장기 집권을 약속받았죠. 이건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계속 시행해온 전략입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힘쓴다면 어떤 정권이라도 지지해줍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Ferdinand Emmanuel Edralin Marcos(임기:1965~1986),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Haji Mohammad Soeharto(임기:1967~1998), 베트남의 응오딘지엠Ngo Dinh Diem(임기 : 1955~1963)처럼 명백하게 비민주적인 정권들은 미국은 계속 지지해왔습니다. 그들의 통치 형태는 민주제도 아니었고, 미국의 건국이념과 공유할 만한 가치관도 전혀 없었습니다. 아베 역시 이번 안전보장 관련법의 채택으로 마르코스나 수하르토, 응오딘지엠과 똑같은 정치가가 된 것입니다. 자국민을 배신하고 자국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정치가 말입니다. 일본에서는 지금 국민의 40퍼센트가 그런 정치가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일본인에게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일 겁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 일본의 국제적 위상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국민이나 미래 세대보다도 현재 자신의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거죠.

 

p77

 TPP라는 게 있습니다.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는데 그게 실현되면 일본 농업은 괴멸할 겁니다. 일본의 농산물 가격이 국제 시장의 평균 가격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협정이 체결되면 일본 사람들은 일본 농산물을 사지 않고 외국산 농수산물을 구매할 것입니다. 저는 좀더 비관적으로 생각합니다만, 낙관적으로 봐도 일본 농업의 40퍼센트가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이나 정치가, 재계인은 외국의 값싼 농수산물이 들어오면 소비자들이 이익을 얻을 거라고 떠들어댑니다. 단기적인 면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장기적인 리스크는 어떻게 회피할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대로 멕시코는 캐나다, 미국과 FTA협약을 맺고 자유무역 체제가 되어 관세가 철폐되었습니다. 멕시코의 주식은 옥수수입니다. 그런데 미국산 옥수수가 멕시코산보다 훨씬 쌉니다. 당연히 멕시코의 소비자들은 미국산 옥수수를 선택했습니다. 계속 싼 물건이 들어오니 소비자들은 이익을 봤지만 대신 멕시코의 옥수수 농가는 괴멸했습니다. 얼마 후, 바이오매스 연료의 재료로 옥수수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옥수수 가격이 폭등했고, 멕시코 사람들은 옥수수를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더 이상 옥수수를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식을 먹을 수 없게 된 것이죠. 이게 2008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똑같은 일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농수산물은 상품으로 보이지만 실은 상품이 아닙니다. 그것 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원에서 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식량'입니다. 만약 이대로 일본의 농업이 괴멸하더라도 당장은 자동차 산업 등 다른 산업으로 번 돈으로 쌀이든 밀가루든 사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사먹을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전쟁이 일어나질도 모릅니다. 전염병이 퍼질 수도 있고, 테러가 있을 수도 있고요. 어쩌면 일본 경제력이 완전히 떨어져서 농수산물 수입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른 공업제품이라면 수입을 못하더라도 불편한 정도로 끝납니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더라도 불편한 걸로 끝입니다. 하지만 국내 농산물 생산이 중단되 상태에서 해외로부터의 유입이 끊어진다면 사람들은 굶게 됩니다. 식량을 두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TPP 논의에서 가장 화나는 부분이, 먹을거리를 상품으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식량은 상품이 아닙니다. 식량이라는 것은 공급히 윤택할 때는 상품으로 보이지만, 공급량이 일정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 상품이 아니게 됩니다. 어느 정도 경제가 잘 돌아갈 때는 상품으로 보이지만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순간 살기 위해 서로 빼앗게 되는 것이 식량입니다. 그런 것들을 상품으로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국제가보다 높은 비용이 들더라도 자급자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식량입니다. 농수산업 같은 1차 산업은 국미이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국제 가격보다 싸다 비싸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식량의 자급자족은 생존을 위한 보증입니다.

 식문화는 기본적으로 기아, 배고픔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라마다 다양한 식문화가 있지만, 어느 나라든 식문화의 기본은 기아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식문화의 역사는 먹지 못하는 것을 먹을거리로 만들기 위한 궁리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어떻게 먹나 싶은 것들을 다양한 궁리를 통해 먹을 수 있게 만들어온 과정입니다. 삶거나, 굽거나, 말리거나, 찌거나, 다지거나.... , 여러 방법을 동원해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 인류학적인 식문화의 역사입니다. 또한 인류는 집단마다 다른 것을 주식으로 삼아왔지요. 저쪽 집단이 고구마를 먹으면 이쪽이 바나나를 먹고, 이쪽이 밀을 먹으면 조쪽은 쌀을 먹는 식이죠. 기상 조건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의 대상에 모든 욕망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모든 인류가 밀을 주식으로 하는 상황에서 밀이 흉작이면 밀을 빼앗기 위한 살육이 일어날 겁니다. 그러나 고구마가 바나나, 콩 등을 주식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것으로 대체해 굶주림을 피할 수 있습니다.

 식료품을 상품으로 취급하기 시작하면 식문화의 다양성이 파괴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것을 먹으면 식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생산 비용이 낮아집니다. 식문화의 획일화 또한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인한 현상인 겁니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세계가 평평해진다고들 하는데, 평평해지는건 경제만이 아닙니다. 식생활도 평평해집니다. 일본이 TPP에 가입하면 일본 농수산업은 괴멸 상태에 빠질 텐데 그에 대한 위기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식료품 유입이 끊어졌을 때, 기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리스크를 피할 지 논의하자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앞서 평화보케, 70년의 평화에 젖어버린 현재 일본의 정치가나 관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만, 이 경우도 똑같습니다. 우리들이 우선적으로 지성을 활용해야 할 부분은 아무 일도 없을 때 어떻게 이익을 높이느냐가 아닙니다. 카타스트로프적인, 파국적인 상황이 찾아왔을 때 살아남을 방법입니다.

 

 

4. 우치다식 공생의 필살기.

p120 

 어른이라는 것은 결국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럴 수도 있지'하며 상대의 말에 이해와 공감을 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애주의자여서라거나 다른 사람에게 뭔가 줄 것이 있어서 타인을 받아들이는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공생하는 것,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공생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게 굉장한 노력을 요한다는 생각, 예외적인 소수만이 획득할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p122

 여러 먼에서 자신과 다른 집단이나 개인과 조우했을 때 다투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가 바로 공생의 매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집단과 집단이 만났을 때 싸움이 일어나고, 개인의 경우 배제당하게 됩니다. 가치관이나 언어, 종교 등이 전혀 다른 상대와도 공생할 수 있는 능력, 이런 능력은 어렸을 적부터 반드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대 사회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만, 공생의 매러를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아이들의 자기다움, 오리지널리티 등에 이상할 정도로 높은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공생의 매너를 배울 기회를 잃고, 어른들은 그걸 가르쳐야 한다는 문제의식조차 없다는 것이 이 시대에 일어나는 커다란 불행들의 원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병들어갈 때 나타나는 특유의 정신 상태가 있습니다. 무언가에 집착하고, 프라이드를 내세우고, 내가 가져야 할 것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보입니다. 사회 전체가 정신병자를 만들고 있는 건데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집착이죠.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입니다. 지금의 사회는 옷, 음식, 수집품 등에 대한 집착을 상당히 높게 평가합니다. 아마 사회적 요구 때문에 이렇게 된거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집착할수록 소비활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이겠죠.

 

p126

 사람들이 자신의 자아, '나다움'을 어떻게 설계할지 정할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처럼 어린아이들부터 중학생, 고등학생까지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역시 '자기 내면에 다양한 것이 혼재해도 괜찮다'라는 생각일 겁니다. 어느 아이에게도 품위 있는 면과 비루한 면모가 있고, 용감한 면과 비열한 면이 있으며, 향상심 있는 부분과 방종한 부분이 있고, 선량한 면과 사악한 면이 있습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 거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개성이란 것이 항상 수미일관적으로, 똑같은 것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려줘야 합니다.

 자아의 깊이라거나 넓이, 풍부함이야말로 개성이라는 것을 먼저 가르치는 것. 나는 이런 스타일의 옷밖에 입지 않는다거나 이런 음악밖에 듣지 않는다는 사람은 스스로를 개성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대량 생산된 상품을 그저 소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자신의 내면에 풍부한 개성의 단편을 지닌 아이들이야말로 이윽고 성숙한 시민이 되어 다양한 문화권으로부터 찾아오는, 다른 사회에서 방문하는 타자들에게 관대할 수 있는 기본적인 힘을 갖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2016 / 2017 세 번째 이야기.

5. 교사단의 관점에서 교육 낯설게 보기

 

p169

 작년 10월, 미국의 외교전문지 <Foreign Affairs>에 '일본 대학교육의 실패'라는 장문의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지난 25년간 일본에서 시행된 교육행정의 실패 증거가 제시돼 있었습니다.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일본 관료들의 특징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얼른 잊고 다음으로, 그것마저 실패하면 또다음으로 넘어가며 실패한 이유의 검증 작업은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동아시아 최고 수준이었던 일본의 고등교육은 중국, 타이완, 한국에 모두 뒤쳐져 선진국 최하위로 전락했습니다.

 각 나라의 연구력, 학술적 발신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표는 인구당 논문 수입니다. 이전 일본의 인구당 논문 수는 동아시아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2015년의 통계로는 OECD 37위, 선진국 최하위로 떨어졌습니다. 또 자주 비교되는 지표가 GDP 중 교육투자 비율, 교육계의 공적 지출 비용입니다. 여기서도 일본은 연속해서 선진국 최하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5년 연속 최하위입니다. 작년에 한 등수 올라서 최하위가 헝가리였는데 이번에 다시 일본이 최하위가 됐습니다. 나라가 고등교육에 투자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Foreign Affairs>의 기사에서는 이런 수치를 나열하며 일본의 학교교육, 고등교육이 이 정도로 추락한 이유로 여러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로 꼽은 것이 비평적 사고Critical Thinking의 결여였습니다. 비평적 사고란 세상을 비평적으로 보고 생각하며 주어진 명령이나 지시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대학은 '예스맨'만 키워낸다는 거죠. 두 번째가 이노베이션, 혁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혁신이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부분에 흥미를 갖는 지적 태도가 혁신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일본의 대학은 창의적 고안도 전통적인 기술들을 깨부술 힘도 없이 하나의 분야에서 경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거죠. 세 번째는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마인드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글로벌 마인드란 것은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해서 공동으로 작업하고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Foregin Affairs>는 일본의 학교교육이 이 세 가지가 결여된 채 정치 안정성, 사회 안정성을 위해서만 기능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윗사람 말에 무조건 따르고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며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굳어지는, 그런 인간들을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 고등교육기관의 학술적 발신력, 연구력이 선진국 최하위까지 떨어졌다는 거죠. 정말 단기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1990년대의 대학설치기준 대강화에 의해 대학들에게 자유선택권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등급을 매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모든 대학이 서로 모방하고, 비슷한 연구에, 교육내용을 체택해 정밀한 등급 매기기를 반복한 결과 일어난 일입니다.

 

p173

 저는 대학 교단에서 일본 대학의 학술적 생산력이 굉장히 높았던 시절과 완전히 사라진 시대를 모두 경험했습니다. 양쪽을 본 사람으로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등급 매기기에 몰두하는 일은 집단이 가진 힘을 저하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등급 매기기는 객관성과 정밀도를 요구합니다. 반면에 다양성은 부정됩니다. 모든 경쟁 상대가 똑같은 조건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비평적인 사고도, 혁신적인 발상도,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도 사라지게 됩니다. 

 

p174

 교육 이외의 분야나 다른 나라, 특히 한국에서 뚜렷하게 나타날 거라 생각하는 현상이 있는데요, 젊은 사람들 쪽에서 정밀한 등급 매기기를 요구하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지방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도쿄로 몰려듭니다. 한국의 경우는 서울이겠죠. 도쿄는 공기도 안 좋고 물가도 높으며 고용환경조차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젊은 사람들은 도쿄로 몰려듭니다. 모두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경쟁 상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평가의 정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시골 마을에서는 '너는 센스가 탁월하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납득하지 못합니다. 뮤지션이나 배우,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수많은 사람이 격렬한 경쟁을 반복하는 환경에 스스로 뛰어듭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이 아닌 모두가 하는 일이 젊은이를 끌어들이는 겁니다. 보통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물으면 '모처럼 태어난 인생이니 나만이 할 수 있는 하고 싶다'라고 할 법도 한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젊은이는 드뭅니다. 다들 남들이 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경쟁 상대가 많은 곳에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정밀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신기하게도 등급이 낮아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높은 평가'가 아니라 '정확한 평가'인 겁니다. 본인이 동세대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어떤 사회적 지위를 요구할 수 있을지, 얼마의 수입을 기대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수준의 배우자를 얻을 수 있는지 최대한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하죠.

 지금의 일본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답게 행동해라'라는 사회적 압력이 존재합니다. 사실 부모가 가난하고 말고는 아이의 개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어느 싱글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요, 아이가 학교에서 주변으로부터 받는 압력 때문에 늘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아이 본인의 개성은 그게 아닌데 말이죠. 가난한 집 아이는 가난뱅이답게 어두운 표정을 지으라는 사회적 압력이 굉장히 강한 겁니다. 빈곤층이 쾌활한 성격이나 오픈 마인드를 갖는 것을 주변에서 용납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처럼 오늘날의 일본인들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정밀한 등급 매기기를 요구하고, 자신의 지위에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를 빨리 알고 싶어 합니다.

 저는 일본이 가난한 시기에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가난한 사람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각자 개성이 있었고, 집이 가난하니까 음울하다거나 위축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1950년대의 아이들, 청년들 중에는 자신의 정확한 사회적 위치라든지 요구할 수 있는 지위, 가져도 될 야심, 기대할 수 있는 수입에 대해 빨리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금의 일본은 그때보다 훨씬 윤택합니다. 그런데도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 추구할 수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해 훨씬 좁은 가능성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나라가 쇠퇴하고 경제력이 약해진다고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21세기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인구가 감소하거나 경제 성장이 멈춰 정체되는 상황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은 예상했습니다만, 실제로 일어난 사회 변화는 제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정밀한 등급 매기기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모두 똑같은 일을 하는 사회가 출현한 겁니다.

 결국 일본의 문제는 인구 감소라든지 경제 성장의 침체와 같은 역사적 과정 속에서 어떻게 국력을 다시 높일지를 고미하는 방향이 아닌 등급 매기기와 차별, 균일화의 길로 달렸다는 점에 있습니다. 지금의 일본은 인구 감소 문제에서든 성장의 정체에 있어서든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니 말이죠. 당연히 경제 성장도 더이상은 없습니다. 몇 년 후면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공평하게 분배하느냐를 놓고 '정밀한 등급 매기기를 하자'는 주장이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식별 지표로 영어 회화 능력에 의한 차별화를 채택할 것입니다.

 영어 회화 능력을 중시하는 것은 그게 유용한 능력이라서가 아니라 간단히 차별화할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등급 매기기라는 것은 하나의 병폐입니다. 등급 매기기에 몰두하다 보면 사회의 활력이 점점 떨어집니다. 안 그래도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가 정체되는 상황에서 한층 국력을 저하시키는 그런 해결책을 택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일본의 실패 사례를 통해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저출산화, 고령화, 경제 침체..... 그런 상황 속에서 호흡하기 편한 사회를 유지하고 유쾌하고 살고자 한다면 가능한 다양한 삶의 방식을 허용해야 합니다. 경쟁해서는 안 됩니다.

 

2019 다섯 번째 이야기

 

교육과 계급 : 이 · 생 · 망 동지들에게

 

p243

 현재 한일관계가 지극히 악화된 원인의 99퍼센트는 일본 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만연한 혐한 감정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은 한마디로 질투심입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 이후 30년에 걸쳐 계속 국력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경쟁력이 정점에 달했던 1988년에는 일본의 1인당 GDP가 세계 2위였는데 30년이 지난 2018년에는 세계 26위였습니다. 2위에서 26위까지 일직선으로 급강하한 거죠. 그 외에도 대부분의 주요 경제 지표가 일본의 국력 저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교육에 대한 투자, GDP 대비 공교육 지출입니다. 이 항목에서 일본은 거의 20년간 OECD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술적 발신력의 지표로 자주 거론되는 인구당 논문 수 또한 한국, 대만, 중국, 싱가폴에 뒤쳐졌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 문화적 발신력이나 미래 사회에 대한 리더십이 뚝 떨어진 겁니다. 한마디로 미래 비전력이 완전히 쇠퇴했습니다.

 

p245

 1980년대 말의 일본인들은 돈으로 주권을 되사고 속국 신분에서 벗너알 수 있지 않을까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일본인은 그런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측에서 괌이나 티니안 등 태평양에 있는 섬에 비행장을 비롯한 제반 시설을 마련해줄 테니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철수시켜달라고 요구할 만큼 경제력이 실제로 있었으니까요. 1980년대 일본인만큼 돈의 전능성을 맹신했던 집단도 드물 겁니다. 일본인이 탐욕적이라든지 수전노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돈의 힘으로 국가주권을 되산다는 역사상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품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주권이나 국토를 전쟁이나 수완 좋은 외교적 교섭으로 회복한 사례는 있어도 돈으로 구입했다는 사례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고도 경제 성장 이후 일본인들이 경제 동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돈벌이에 필사적이었던 것은 풍족한 삶보다는 주권 회복을 바랐기 때문일 겁니다. 일본은 '일본국 헌법 제9조 2항'에 의해 전쟁을 포기한 상태였으며, 외교적인 힘도 없었습니다만, 돈만큼은 있었습니다. 그러니 돈으로 주권을 회복한단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되어 자국의 역량을 행사한다는 선택지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전 국민의 암묵적 합의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버블 경제는 1992년에 붕괴해버렸고, 급격한 경제 성장도 거기서 멈춰버렸습니다. 그 후로도 일본은 2010년까지 20년 가까이 GDP 세계 2위를 유지했습니다만, 우리는 이 시기를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에게 GDP에서 뒤쳐진 것이 2010년의 일입니다. 겉으로는 십수년에 걸쳐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일본은 표류 중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던 거죠. 일본인들이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30년에 걸쳐 유지해온 '어쨋든 부자가 되자', '우선 부자가 돼서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자'라는 암묵적 비전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던 중 일본에 고이즈미 준이치로라는 총리대신이 등장했습니다. 그의 인기는 굉장했습니다. 내각 수립 직후의 지지율이 90퍼센트를 넘었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과연 그에게 무엇을 기대한 걸까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제시한 것은 정치 대국이 되어서 미국과 대등한 관계even partner를 맺자는 전략이었습니다. 돈의 힘으로 국가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니, 이번에는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를 높임으로써 세계적인 대국이 되자고 생각한 거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에게 국제 사회를 향해 발신할 만한 메시지가 없었습니다.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이상적인 국제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지, 일본은 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결국 고이즈미 내각이 세계적인 정치 대국이 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미국의 모든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 조지 W. 부시라는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무능한 권력자였다는 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에게 행운이었습니다. 부시 지지율은 30퍼센트도 안 됐고, 그가 제시하는 정책에 대한 국제 사회의 평가 또한 지극히 낮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를 지지한 사람이 바로 고이즈미 준이치로였죠. 부시에게 있어서 고이즈미는 미국의 모든 정책을 지지해주는 극히 예외적이고 고마운, 보기 드문 파트너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의 파트너인 일본이 정치 대국으로 우뚝 서서 국제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2005년, 일본은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에 입후보했습니다. 이들 상임이사국은 중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의 5개국인데, 이를 확대하여 독일, 일본, 브라질을 추가시키자는 제안이 나왔고 일본이 여기에 응한 겁니다. 이 안은 결국 기각되었는데, 결정적인 이유는 일본이 상임이사국 취임을 지지하는 국가가 아시아에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도 중국도 일본을 지지하지 않았지요. 당시 많은 나라가 일본의 상임이사국 취임에 반대한 이유는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어봤자 미국 표가 하나 늘어날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정책을 모두 수용함으로써 어떻게든 상임이사국이 되어보려 했지만, 국제 사회는 미국과 똑같은 말밖에 하지 않는 나라가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세계 각국이 모델로 삼고자 하는 리더십이란 나름의 꿈이나 이상을 갖고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나라에서 나온 리더십일 겁니다. 강대국에 붙어서 아부하는 나라에서 그런 리더십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죠.

 이 2005년의 참패,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입 실패라는 사건은 일본인에게 있어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된다는 꿈과 굴지의 정치 대국이 되어 많은 나라에게 리더로 존경받는다는 꿈, 두 개의 꿈이 동시에 사라진 겁니다.

 그 후 15년 가까이 지났지만, 일본의 경제력이 회복될 기미도 국제적 위신을 확립하고 일본 고유의 리더십을 인정받을 만한 메시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돈도 없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습니다. 이것이 지난 15년간 일본의 국력이 급격하게 저하된 원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p258

 미국이라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동맹국에게 미눚제를 강요하지 않으며, 미국의 뜻에 따르기만 하면 통치 형태가 독재든 아니든, 얼마나 부패했든 일절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베트남의 괴뢰 정권이나 필리핀, 인도네시아, 칠레, 일본, 한국 등의 사례를 봐도 명백합니다. 민주적인 정치 체제는 동맹국의 조건이 아니며, 미국의 말만 잘 들으면 국내 통치를 어떤 형태로 하든 관여하지 않는 겁니다. 오히려 그 나라의 이익에 반하는 요구도 무리해가며 추진할 수 있는 강권적인 독재 체제를 선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지금 일본에서 이상할 정도로 만연한 혐한 감정, 특히 정부가 솔선해서 부추기고 있는 혐한 운동이 단순히 정서적인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방향성을 정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라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언론이 '한국은 민주화에 실패했다'거나 '경제가 붕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잃고 있다', '한국인들이 이분화되고 있다'는 등의 혐한 언설을 필사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민주화와 시장 경제의 조합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ㅡㄴ 메시지를 일본 국민에게 전하기 위함입니다.

 

p274

 주식회사라는 형태는 유한책임 체제입니다. 도산하면 끝이고, 경영자는 그 이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가의 도산이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도자의 실수로 국부를, 국토를, 주권을 잃고 국가가 붕괴한 다음에 '죄송하다'는 말로 끝낼 수는 없으니까요. 주식회사는 경영 방침이 잘못되더라도 도산하면 끝이지만 국가 정책이 잘못되었을 경우 나라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국민 모두가 수십, 수백 년에 걸쳐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국가는 무한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주식회사를 모델로 지자체나 학교, 국가 등의 제도를 설계해서는 안 됩니다.

 

 

어른을 찾습니다.

 

 

p292

 포퓰리즘의 근본은 현재 사회가 겪고 있는 불행이 단일한 원인으로 인한 것이라는 발상입니다. 이 단일한 원인, 제악의 근원을 제거하면 다시 사회 질서를 회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되찾을 거라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단순주의simplism나 음모사관(음모사론, Conspiracy Theory)이라고도 합니다.

 근대 음모사관은 프랑스혁명 직후에 태어났습니다. 프랑스혁명으로 특권을 빼앗긴 왕족이나 귀족들은 영국으로 도망쳤고, 이들은 매일 밤 런던의 클럽에 모여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영원할 것 같던 부르봉 왕조가 어떻게 하룻밤 만에 몰락했을까?'라는 주제로 논의를 계속했습니다. 그들에게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요인으로 인해 수많은 '재도적 피로'가 쌓이다가 동시에 터짐으로써 복수의 요소가 상호 작용하여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식의 해석은 불가능했습니다. 혁명이란 상황만 놓고 보면 단순한 하나의 정치적 사건에 불과하지만, 거기에 관여하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온갖 분야에서 동시에 이변이 일어났고, 그 징후를 경찰도 군대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이런 사실로부터 그들이 추론해낸 것은 정치, 경제, 언론, 학술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며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하룻밤 만에 체제를 뒤집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비밀결사'가 존재한다는 가설이었습니다. 부르봉 왕조을 무너뜨린 비밀결사가 존재한다는 하나의 스토리가 탄생한 겁니다. 그 뒤로는 비밀결사의 정체가 무엇일까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성당기사단(템플나이츠) 그리고 유대인 등이 흑막으로 지목됐습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존재라는 조건만 맞으면 뭐든 상관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프랑스혁명 후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은 것은 유대인이었습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유대인은 차례차례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템플나이츠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유대인은 실제로 나타나서 경제, 재계, 언론으로 진출하며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프랑스혁명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것이 프랑스에 살던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를 근거로 18,19세기의 이론가들은 프랑스혁명으로 이익을 본 것이 유대인이니 프랑스혁명을 계획한 것도 유대인이라는 식의 추론을 했습니다. 어떤 정치적 변화로 혜택을 본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들이 변화를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주장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없지만, 당시 사회 이론가들은 이 지극히 단순한 이론을 채택했습니다. 이것이 음모사관의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18세기 프랑스인들의 이런 망상이 훗날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져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의 학살로 귀결된 셈이니, '망상에 불과하다'라며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런 음모사관을 비판하기 어려운 이유는 언뜻 무작위하게 보이는 모든 사상의 배후에 하나의 단일 의지가 존재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일신교의 사고 구조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반유대주의는 기본적으로 일신교 문화권에만 존재합니다. 이슬람교라든지 힌두교, 유교 등 다양한 문화권이 있습니다만, 폭력적이라고 해야 마땅할 반유대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대표적인 일신교 기독교 문화권뿐입니다. 랜덤으로 보이는 사상의 배후에 단일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특히 일신교적 사고관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 지극히 당연한 발상입니다. 사실 정치적인 사건이든 경제적 변화든 문화적 사건이든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은 무수히 많은 요소의 상호 작용으로 일어나고, 단일한 작자author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렇게 믿음으로써 '단일한 작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지적인 부하가 상당히 줄어듭니다. 따라서 현재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만연하며 단순한 발상을 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단일한 작자나 사악한 의지를 가진 흑막이 모든 악행을 일으킨다는 음모론이 횡행하는 이유는 원인이 너무 복잡해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 지성이 있기 때문에, 변수가 늘어나면 그에 맞추어 자신의 방정식을 다원화하게 됩니다. 다차원방정식으로 다양한 변수를 풀어낼 수 있도록 진화하는 겁니다. 그러나 변수의 종류가 한계를 넘어서면 수중에 있는 방정식으로는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방벙식을 복잡화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지적 부하를 덜어내기 위해 단일의 작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사실은 본인도 믿지 않는 주장을 펼치며 가장 단순한 일차방정식으로 회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본과 한국을 포함해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만연하며 굉장히 단순한, 예를 들어 일본이라면 '전부 한국 탓이다', 유럽의 경우 '이슬람 난민이 만악의 근원이다', 영국은 'EU가 원인이다', 미국에서는 '멕시코 난민 탓이다'라는 식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해답에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밎지 않으면서도 지지를 보내며 모여들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유아화되면서 어른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엄밀하게 보자면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변화가 완만하게 일어나며 변수가 차근차근 늘어난다면 인간도 거기에 맞추어 스스로를 복잡화시키고 지성을 고도화함으로써 문제에 대처할 수 있지만, 변수의 증가가 일정 수준을 넘어 가속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p298

  현재 일본의 인구는 약 1억 2700만 명인데, 81년 후인 2100년에는 5000만으로 감소할 것이라 예상되고 있습니다. 81년 만에 7700만 명, 해마다 약 90만 명이 줄어드는 거죠. 동시에 고령화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구 5000만 명 중 4할은 노년층일 것입니다. 그게 어떤 사회일지 예측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한국도 곧 일본을 뒤따라서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입니다. 중국은 현재 인구가 약 14억에 달합니다만, 앞으로 수년 내에 15억을 정점으로 급격한 인구 감소가 시작되어 2050년 정도에는 7억 명으로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중국은 인구와 함께 경제력이 늘어나며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지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만, 얼마 뒤면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내수 시장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대처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아직 아무 계획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p302

 어느 경제학자의 정의에 따르면, 윤택한 사회란 필요한 것이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장소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굳이 경제가 성장하지 않더라도, 인구가 늘어나지 않더라도 필요한 것을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장소에서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곳은 윤택한 사회이고, 그런 사회를 어떻게 설계하고 유지할지를 고민하면 됩니다.

 

 

p306

 대안적 사실 altenative facts 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여한 청중이 오바마 대통령 때보다 적다는 여론이 일자 백악관에서 이를 부정하며 많은 청중이 참여했다는 증거로 가짜 사진과 수치를 근거로 제시했다가 발각된 사건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왜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했을까 묻는 기자의 질문에 보도관이 "거짓말이 아니라 대안적 사실을 제시한 것"이라고 대답해서 조롱거리가 됐죠. 이런 대답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당신에게 세상이 그렇게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주관적인 관점에 불과하다. 물론 내가 보는 것도 주관적인 관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를, 나는 나의 세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에 대해 흥미로운 설명을 하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계 미국인 사회학자 미치코 가쿠타니의 <진실의 끝>인데요, 현재 미국이 언론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한 이 책에서 그는 1970년대에 유행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이야기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져온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가 각자의 성별이나 국적, 종교, 이데올로기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실제로 인간의 모든 인식은 계급이나 성별, 종교, 인종에 따라 치우칠 수밖에 없지요. 여기서 객관적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계급이나 성별, 이데올로기나 종교에 의한 편견으로 인해 특히나 더 비틀린 세계상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왜곡된 세계를 보고 있으니 전부 평등하다는 겁니다. 누구나 '그건 네 주관이야. 나한테 그렇게 안 보여'라고 반박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게 포스트모더니즘이 탄생시킨 무시무시한 사고방식인데,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퍼지면서 타인의 의견을 개인의 주관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비판으로서 성립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객관적인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서 주관적인 의견에 대해 틀렸다고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발상에 기초한 '진실은 없다'는 원리주의에 저항할 방법이라고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알겠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는 식의 반응뿐입니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듣다 보니 닭살이 돋았다든지, 속이 쓰리다는 비판밖에 할 수 없는 거죠.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진실이 사라진 상황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은 그런 지극히 신체적인 반응뿐입니다.

 

인구 감소 시대를 맞은 일본의 미래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의 의견과 대담을 모은 책.

일본의 인구감소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한국보다 20년 앞서 이런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미 현실로 진행중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침이 된다.

대부분은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맨 마지막인 뜨거운 근대는 끝났다에서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매우 편협하고, 일본 중심적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일본 주도의 외교전략 외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일본의 근시안적 사고는 2019년부터 본격화된 남북 화해와 북미협상의 장에서 일본이 표면적으로나 물밑으로나 협상의 훼방을 놓은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는 동아시아의 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즉, 일본은 진보나 보수나 북한 핵문제와 이와 관련한 외교적 해법에 있어서, 일본이 주도해야 한다는 아집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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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p9  서론 문명사적 규모의 문제에 직면한 미래 예측 _ 우치다 타츠루

p47. 1. 인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로 살펴보는 인구동태와 종의 생존 전략 _ 이케다 기요히코

p77 2. 두뇌자본주의가 온다 - 저출생보다 심각한 인공지능시대의 문제 _ 이노우에 도모히로

p107 3. 인구 감소의 실상과 미래의 희망 - 간단한 통계수치로 '공기'의 지배에서 탈출할 수 있다 _ 모타니 고스케

p135 4. 인구 감소가 초래하는 윤리 대전환의 시대 - 무연의 세계에 유연의 장소를 만들자 _ 히라카와 가쓰미

p159 5. 축소사회는 하나도 즐겁지 않다 - 유럽의 사례로 보는 미래 세대를 위한 대책 _ 브레디 미카코

p183 6. 건축이 도시와 지방을 살릴 수 있다 - 따뜻하고 번잡한 거리 만들기 프로젝트 _ 구마 겐고

p201 7.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없는 자치단체는 사라진다 - 문화를 통한 사회포섭의 권유 _ 히라타 오리자

p225 8. 도시와 비장, 먹거리로 연결되다 - '관계인구'를 창출한 공동체 혁명 _ 다카하시 히로유키

p253 9. 인구 예측 그래프의 덫 - 저출생을 둘러싼 여론의 배경에 존재하는 '경영자 시선' _ 오다지마 다카시

p271 10. 뜨거운 근대는 끝났다 - '사양의 일본'을 위한 현명한 안전보장 전망 _ 강상중

 

 

p19

 "파국적 사태(catastrophe)가 과거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파국적 사태가 미래에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명제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 이후) 분명히 영미 지성인의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연성에 불과합니다. 개연성의 전망에 주관적인 희망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앵글로 · 색슨 문화권의 지성인이 생각하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상식이 아닙니다. 일본의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일어날 확률이 낮은 파국적 사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가 일본의 전통입니다.

 

p23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25명의 피고인 전원은 "나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주사변에 대해서도, 중국과의 전쟁에 대해서도, 태평양전쟁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은 "다른 선택안이 없었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는 만주사변, 중국에서의 군사행동, 3국 동맹, 미국과의 전쟁에 대해서 전부 개인적으로는 반대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에 기가 막힌 검찰관은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은 본인이 반대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기관에서 잇달아 중요한 직위로 나아갈 수 있었냐고 추궁했습니다. 그러자 고이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일본인의 방식은 자신의 의견은 의견, 논의는 논의입니다. 만약 국가정책이 결정되었다면, 그 국가정책에 따라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과된 종래의 관습이며 또한 존중받는 방식입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이 증언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현실'이라는 대상을 진행형으로 만들어내거나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지 것,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어디선가 발생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피고인들은 전쟁지도부라는 중요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전쟁이라는 현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천재지변처럼 '어디선가 발생해서 찾아온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압도적인 현실에 적응하는 것 말고는 "선택 안이 없었다"고 변명한 것입니다.

 전쟁이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라면, 어떤 이념과 계획에 의거하여 전쟁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어디선가 발생해서 찾아온' 천재지변과 같은 종류의 파국이라면, 누구에게도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다소 부정적으로 해석해보면, 저는 패색이 짙어진 이후에는 전쟁지도부 사람들은 오히려 '전쟁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주력 부대를 잃어 이미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그 시점에서 강화교섭을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지였습니다(실제로 기도 고이치木戶幸一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등은 평화공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강화 조건으로 일본제국의 존속을 인정해주는 대신, 만주 · 한반도 · 대만 등 식민지를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누가 무엇을 위해서 이런 무모한 전쟁을 시작했는가? 국익을 손상시킨 자는 누구인가?" 라는 엄중한 책임추궁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통치기구가 제대로 기능하고, 국민 생활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언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전쟁지도부에게 책임을 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피고석에 세워진 사람의 상당수는 일본인이 직접 재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제어불능 상태가 되고, 통치기구가 와해되고,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우왕좌왕 도망가고, 정치적 의견을 논할 기회나 대화의 기회도 사라지면 사태가 너무나 파국적이기 때문에 일본인이 직접 전쟁 책임을 추궁할 기회는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일단 파국적 현실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 이상, '자신의 의견은 의견, 논의는 논의'로서 한쪽으로 치워둔 채, 살아남은 사람끼리 손을 맞잡고 국가를 재건하는 사업에 착수하는 것이 '부과된 종래의 관습이며 또한 존중받는 방식'이 됩니다. 일억총참회一億總懺悔'는 그런 의미입니다. 지금의 파국은 천재지변이니 그런 아수라장에서 "누구의 책임이다"라는 천박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직접 패전 처리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는(책임을 추궁당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천재지변과 같은 파국이 찾아올 때까지(또는 '가미카제神風'의 도움으로 지도부의 무위무책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승리가 찾아올 때까지) 손을 쓰지 않고 기다립니다. 이러한 병적인 심리기제는 태평양전쟁 패전 무렵에만 나타난 특징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대로 일본 사화에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일본의 지도층은 인구 감소가 어떤 '최악의 사태'를 초해라며,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지금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관적인 미래를 생각하면 사고가 정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근거 없는 이상행복감에 가까운 망상에 빠져 있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판단할 뿐입니다.

 낙관적인 상태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통계자료를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위험 가능성을 낮게 예측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지혜'가 잘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적당한 거짓말이나 변명이 생각나는 한, 얼마 동안 자기 자신은 지위를 보전할 수 있고 이익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관적인 미래를 예측하고 입에 담는 순간, 그때까지의 실패와 부작위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고 필요한 대책을 세울 것을 강요당합니다.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고 그런 일을 떠맡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비관적인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빨리 실패를 인정하고 사회 전체에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노력한 인가에게 오히려 책임을 추궁합니다. 집중적으로 비난 공격을 쏟아 붓고, 사죄와 해명을 요구하고, '확실하게 책임'을 지라며 위협합니다. 이것이 일본 사회의 방식입니다.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좋은 일'을 했지만 개인에게는 전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실패는 인정하지 말고, "모두 최상의 상태입니다"라고 계속 거짓말을 하면서 책임을 뒤로 미루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거품경제 시절의 은행경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은행경영자는 불량채권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재임 기간에 사건화되어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문제를 뒤로 미루고 퇴직금 전액을 받아 도망쳐 은행이 파산할 때까지 문제를 방치했습니다. 빨리 실패를 인정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보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를 파국적으로 만드는 편이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모든 사화에는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 어느 정도 존재합니다. 이런 인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이 통치기구의 요직을 차지하는 체계는 분명히 병들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일본 사회는 심각하게 병들어 있습니다.

 

p53

 재미있는 사실은 살아남아 현대인의 선조가 된 것은 호모사피엔스 여성과 네안데르탈인 남성의 혼혈이라는 점이다. 호모사피엔스 남성과 네안데르텔인 여성의 혼혈 계열과 순수혈통을 유지한 호포사피엔스 집단(만약 실제로 존재햇다면)은 멸종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는 이유는 현대인에게 당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흔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에게서만 물려받는다. 현대인의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도 네안데르탈인 여성은 나오지 않는다.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호모사피엔스 여성에게 귀착된다. 한편 핵 DNA에 네안데르탈인에서 물려받은 인자가 들어 있는 것은 우리 조상에게 네안데르탈인 남성과 호모사피엔스 여성의 혼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갓난아이는 어머니가 소속된 집단에서 자랐을 것이다. 호포사피엔스 남성과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혼혈로 태어난 자손은 네안데르탈인의 멸망과 운명을 함께했음에 틀림없다.

 

p68

 자본주의는 비용과 이익의 차이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노동자의 임금은 가장 중요한 비용이기 때문에 자본가는 가능한 이것을 싸게 억제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얻은 이윤은 자본가의 부로 축적된다. 결과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않는 한 소수의 자산가와 대다수의 가난뱅이라는 사회구조가 진행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권력은 자본가와 결탁해 이러한 과정을 추진하는 정치제도를 정비하는 데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국민국가가 성립되고 민주주의적 정치제도가 조금이라도 갖춰진 국가에서는 선거권을 가진 대다수의 국민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본가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체계는 상당한 통제를 받게 된다. 당연히 자본가는 국민국가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생략하고 간단히 요약하면 그 결과 세계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국가체계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본을 움직여 자원과 노동자를 최저 비용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인구와 자원이 계속 증가해야 한다. 자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이다. 국경에 얽매이지 않고 노동력과 물자를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풍족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농업도 어업도 제조업도 에너지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자본주의는 에너지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구는 어떨까? 싼 노동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노동인구가 많을수록 좋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 정권은 세계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세계자본주의에게 봉사하는 일만 생각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아베 정권이 "저출생이 진행되면 일본은 소멸한다. 원자력발전을 중단하면 에너지 부족으로 생활이 불가능해진다"고 국민을 협박하며 세계자본주의의 연명을 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국가 또는 국민을 지킨다는 표어 아래 실은 국민과 함께 일본이라는 나라를 세계자본주의에 팔아넘기기 위한 정교한 속임수가 진행되고 있다.

 

p94 순수 기계화 경제와 제2의 대분기

 제4차 산업혁명은 벽에 부딪힌 성숙 단계 국가의 경제 성장을 해결해줄지 모른다. 범용 인공지능을 비롯해 인공지능 · 로봇 등의 기계가 인간 노동의 대부분을 대체하면 <도표 4> (인공지능과 로봇에 기술을 입력하여 기계를 운용하여 생산하고 이 생산품이 소비되는 공급 체인, 즉 인간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 와 같은 생산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투입요소는 인공지능 · 로봇을 포함한 기계뿐이며 노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러한 경제를 '순수 로봇 경제'라고 불렀지만 여기에서는 '순수 기계화 경제'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순수 기계화 경제에서는 기계만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한다. 그러나 인간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상품과 기술의 개발, 생산 활동의 경영관리 등은 여전히 인간의 일로 남아 있다.

 

 순수 기계화 경제에 대한 수리모형(AK모형)을 만들어 분석해보면 성장률 자체가 매년 상승한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기계화 경제의 정상定常상태에서는 매년 거의 일정한 비율로 1인당 소득이 성장하지만, 순수 기계화 경제에서는 성장률 자체가 매년 성장한다.

 따라서 만약 범용인공지능을 도입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가 있다면 <도표 5>(인공지능 도입국가의 경제 성장률이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점점 높아지게 되는)에 나타난 것처럼 경제 성장률에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기에 나타나는 이러한 분기를 '제2차 대분기'라고 부르겠다. 

 

p97 제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는 위험성

 최초의 대분기에서 일본은 늦게나마 상승노선을 걸을 수 있었다. 덕분에 20세기를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제2의 대분기에서도 상승노선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제4차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앞서 나가는 다른 국가들에게 선두를 뺏긴다면 경제적 수탈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제3차 산업혁명에서 일본은 열세에 몰렸다. 그래서 일본인은 현재 구글이나 MS,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미국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많은 수익이 미국 기업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에서는 더 많은 수익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 공업과 서비스업 등의 모든 산업에서 인공지능 · 로봇이 이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수탈보다 더 위험한 것은 군사력의 차이가 벌어지는 일이다. 일본의 제2의 대분기에서 정체노선을 걷고 주변 국가들은 상승노선을 걷게 될 경우, 결과적으로 군사력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국토와 국민을 방어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에서는 지력이 관건이다. 

 

 딥마인드Deep Mind는 원래 영국 회사였지만 2014년에 구글이 4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사들였다. 

 

2014년 당시 딥마인드의 사원은 100명도 되지 않았다. 보유한 공장이나 자산도 없었다. 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를 비롯한 사원들의 두뇌에 4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p126

 첫째, ①이 ② 보다 작아진 국가는 일본만이 아니다. - ① 2010년 시점에서 살고 있던 10~14세 인구, ② 2010년 시점에서 살고 있던 60~64세 인구, 새로 태어나는 인구가 고령화 인구에 비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 다음에 제시하는 통계수치는 국제연합 인구부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세계 각국의 2015년 인구추계와 향후의 예측(중위 추계, 이민을 받는 사례)에 준거해 조사했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거느린 중국도 몇 년 전부터 동일한 상태에 돌입했다. 한국과 대만도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도 동북아시아 정도로 급속한 전개는 아니지만 저출생 경향이 시작되고 있다. 여전히 명확하게  ①이 ② 보다 큰 국가는 인도에서 중근동, 아프리카에 걸친 지역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 유럽이나 동북아시아처럼 변해갈 것이다.

 

 참고로 2020년 이후에는 세계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고령자 절대인구수의 증가가 멈춘다(수도권은 유일하게 계속 증가하지만 지방은 일제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에 비해 구미 국가들은 여전히 증가하고 중국, 한국, 대만은 구미 국가들의 규모를 크게 상회하는 급증이 계속된다. 한편 생산연령인구의 경우 일본은 세계 다른 국가들보다 20년 이상 일찍 1995년에 정점을 맞이했지만, 중국, 한국, 대만도 2015년을 정점으로 감소로 전환되고, 구미 국가들도 증가가 거의 정지한다. 일본만 상황이 나쁘다는 말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공기'가 사실과 연동되어 개선될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세상에는 "이민을 받아들이면 아이가 늘어날 것이다"라는 공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량의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과 싱가포르에서도 이미 어린이의 절대인구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육아에 돈이 드는 출생률이 낮은 지역으로 이민을 온 이민자는 그곳의 선주자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도쿄에서 저출생이 진행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왠지 "이민자는 아무리 어려운 조건에서도 아이를 낳아 수가 늘어난다"는 공기 같은 선입견이 존재한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러한 그릇된 견해를 고치도록 주의해야 한다.

 세계는 자동적인 저출생, 그 결과로 만들어진 인류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승자는 지구환경과 그것에 뿌리를 둔 미래 세대, 패자는 인구 증가에 의존하며 불로소득을 늘려온 금융투자가가 될 것이다.

 

p129

 이번에는 2015년 국세조사의 실제 수치를 살펴보자. 먼저 일본 전체의 차세대 재생력은 68퍼센트다(각 지역에 1~2퍼센트 미만으로 존재하는 연령미회답자는 연령회답자의 비율에 따라 나누었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는 대략 신세대의 3분의 2 정도만 아이가 태어난다. 매년 출생수는 현재 약 100만 명이다. 신세대가 30퍼센트 감소하는 30년 뒤에도 이러한 출생 상황이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출생수는 70만 명 미만이 된다는 계산이다. 대단히 대략적인 계산이지만, 70만 명의 출생자의 평균수명을 80년으로 가정하면 70만 명 X 80년 = 5,600만 명. 다시 말해 출생자수 70만 명/년이라는 것은 일본의 총 인구가 6천만 명 이하로 줄어드는 수준이다. 참고로 단카이 주니어가 태어난 1970년대 전반에는 매년 20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현재 상태는 딱 그 절반, 30년 이후에는 3분의 1이라는 계산이 된다.

 

 <도표 4>에는 각 행정구역의 차세대 재생력을 나타냈다. 오키나와의 93퍼센트를 필두로 명확히 서쪽지방이 높고 동쪽지방이 낮은 모습을 보인다.

 도표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대도시 가운데 가장 상황이 나은 곳은 히로시마시(75퍼센트)로 기타큐슈시가 뒤를 잇고 있다. 그 밖의 도시는 60퍼센트 전후의 수준으로 정체되어 있다. 도쿄특별구는 52퍼센트다. 일본 전국에서 모여든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절반 정도 다음 세대를 남기지 않는 진정한 블랙홀 상태다.

 그러나 도쿄가 망해도 일본이 망하는 것은 아니다. 차세대 재생력이 100퍼센트가 넘는 지역자치단체, 다시 말해 신세대의 인구수와 비슷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아이들이 태어나는 지역이 일본 전국에 오키나와현을 중심으로 40곳이나 있다. 차세대 재생력이 90퍼센트라도 당장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24세 이하와 40세 이상도 출산하기 때문에 합계특수출생률은 2에 가깝다). 90퍼센트까지 기준을 내리면 110곳의 지역이 해당된다. 그런데 그 상당수는 멀리 떨어진 외딴섬이나 산간과소지역이다. 과소지역은 아이들이 적다는 안이한 선입견이 있다. 물론 그런 과소지역도 많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다시 말해 아이를 키우는 젊은 세대를 소중히 여기는 과소지역도 분명히 존재한다.

 똑같은 일본인이 만들어가는 현대 일본 사회 속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물론 일본인의 DNA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생활방식과 생활환경의 변화다. 생활환경만 바로잡으면 아이는 다시 늘어난다. 왜냐하면 DNA는 원래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DNA 본래의 잠재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인구 감소를 불필요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생활환경의 개선이라고는 했지만, 오키나와처럼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는 지역도 인터넷이 보급되어 있고 24시간 영업점도 많다. 모든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종종 오해를 받는 부분인데 "여자는 결혼해야지"라는 사회적 압박 정도의 경우, 아키타현을 필두로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고 여겨지는 동북지방은 출생률이 낮고, 결혼에 대한 압박이 적은 오키나와는 수치가 높다. 이런 사실에서도 추론할 수 있듯이 사회적 압박은 관련이 없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고쳐야 할 부분만 개선해나가면 자유와 인권도 완전히 지키면서 다음 세대가 성장할 환경을 부활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차세대를 재생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해결책은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상관없다. 남의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우는 부모가 늘어나도 차세대 재생력은 올라간다. "모든 여성이 아이를 두 명씩 낳는다"가 아니라 세 명이라도 네 명이라도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가 늘어나는 것이 평균 출생률을 끌어올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아이들을 키울 때 생기는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남서지역 섬들을 필두로 서일본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차세대 재생력이 높은 자치단체에는 다자녀가정을 성심껏 도와주는 사회적 기풍이 남아있다. 아무래도 도시지역과 동일본은 이와 같은 서로 돕는 전통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추론된다.

 도쿄의 차세대 재생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후기고령자의 절대인구수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폭적인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인력도 예산도 잉여토지도 전부 고령자 의료복지 쪽으로 돌리고 있는데다가, 처음부터 식비와 집세와 교육비가 너무 비싸서 아이를 한 명 더 낳는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유요한 방법은 원하는 만큼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생활비가 저렴하고 서로 돕는 기풍이 남아 있는 지방으로 아이를 원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을 많이 보내는 것이다. 이것만이 일본의 소멸을 가능한 뒤로 미룰 수 있으며, 언젠가는 역전의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비책이다.

 

p143

 인구 감소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귀결로 이해해야 한다.

 

p147

 결혼 연령의 상승과 태평양전쟁 이후에 전개된 가족 형태의 변화(권위주의적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및 시장화의 진전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장화의 진전이야말로 가족 형태의 변화를 초해란 요인이었다. 시장화와 핵가족화는 결혼해서 가족을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일본인의 가족관을 바꿔놓았다. 돈만 있으면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족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안전보장이었다. 그러나 시장화의 진전으로 많은 사람들은 돈이야말로 안전보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시장화의 진전을 통해서 권위주의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개인이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다. 시장화는 일본 민주주의의 진전을 후원한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혼화는 자유와 발전의 대가라고 볼 수 있다.

 시장화는 무연화無緣化이기도 하다. 이는 유연有緣 공동체의 윤리 개념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 확장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결혼을 기패해서 결혼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포함한 유연공동체에서 자청해서 도망가고 있는 것이가. 그 결과 유연공동체인 일본의 권위주의적 직계가족의 해체가 진행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소비사회의 진전으로 결혼의 득실을 계산하는 윤리가 정착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글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이해타산만 생각하면 주부는 타산이 맞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해타산만 따지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학비와 식비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가 어떻든 결혼 연령의 상승은 태평양전쟁 이후에 전개된 발전(무연화 · 시장화)의 귀결이다. 나는 결혼 연령 사승에 대한 대책으로 일본의 권위주의적 직계가족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설령 그럴 생각이 있어도 그것은 불가능한 논의다.

 하지만 결혼은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주부'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이해타산적 윤리는 바꿀 수도 있다.

 

 

저출생 대책

 

 만약 만혼화에서 조혼화로 방향을 전환하기 어렵다면 가능한 저출생 대책 정책은 하나밖에 없다.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저출생을 둘러싼 상황을 저출산이 개선되지 않는 일본과 한국, 어느 정도 제어에 성공한 유럽을 비교해 살펴보면 현저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혼외자녀의 비율이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혼외자녀 비율은 50퍼센트가 넘는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 일본과 비슷한 가족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독일의 경우도 35퍼센트다.

 이에 비해 일본의 혼외자녀 비율은 아예 자릿수가 다르다. 겨우 2.3퍼센트에 불과하다. 한국은 더 낮은 1.9퍼센트다. 다시 말해 유교적 윤리에 사로잡힌 아시아에서는 법률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일이 거의 금기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일본의 저출생 대책은 혼인장려와 육아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저출생 대책은 일본과 한국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따. 법률혼으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어도 동등한 법적보호와 사회적 신용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혼인장려와 육아지원과 같은 개인생활 분야에는 정치권력이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히려 인권확대와 생활권 확보 쪽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럽 선진국이 혼외자녀의 출산을 장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럽에서는 법률혼으로 묶이지 않은 새로운 가족공동체가 현실화되고 있다. 법률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족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사회에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다.

 

 

 프랑스 다음으로 혼외자녀 비율이 높은 스웨덴에서는 1987년 시점에서 동거인을 보호하는 동거법Sambolagen이 성립되었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경우 모두 결혼 연령이 내려가서 인구 감소가 멈춘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여성 초혼 연령은 30세가 넘으며 계속 떨어지지 않고 있다.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외적인 강제 또는 촉진을 통해서 결혼 연령을 끌어내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고, 정치권력이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외자녀 비율이 50퍼센트가 넘어가면 출생률과 결혼의 상관관계는 지극히 희박해진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처럼 혼외자녀 비율이 대단히 낮다면 출생률은 평균 결혼 연령과 강한 상관관계를 갖게 된다.

 일본의 경우, 가족형태는 유교적 가치관이 농후한 권위주의적 대가족이 붕괴되고 핵가족화되었지만, 혼외자녀를 낳는 것을 금기시하는 가치관만은 계속 남아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나 부부별성夫婦別姓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과 비슷한 문제다.

 

 일본과 한국에서 인구 감소에 제동을 걸거나 또는 정상화된 사회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그것이 육아지원이나 육아급부금처럼 대중요법적인 대처(이런 대처를 추진하는 자체는 두 팔 벌려 찬성하지만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 구조(가족구성)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윤리의 변화가 바로 그 열쇠다.

 그렇다면 사회 구조와 윤리의 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는 저출생이라는 현상 그 자체가 사회 구조를 바꾸고 윤리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연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저출생과 고령화는 생산성의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해타산에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효율화를 위해서 사회를 분석해 비효율적인 부분을 잘라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비관용적인 격차사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p154

 현대 사회의 문제는 원래 유통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돈이라는 부富가 한 곳으로 집중되어, 국가에 의한 분배기능이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전미 하위 50퍼센트의 총 자산이 최고소득자 세 명의 합계자산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은 확실히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전계게의 하위 50퍼센트의 자산이 최고소득자 여덟 명의 자산과 거의 비슷하다는 상황 역시 화폐경제의 혹독하고 무자비한 폭력성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 화폐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도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화폐경제의 윤리와 교환경제의 윤리가 부의 편재偏在(쏠림 현상)를 촉진하고, 사회를 분단시키고, 사람을 고립시키는 벡터를 갖는다면, 부를 편재遍在(널리 퍼짐)하게 만들고, 사회를 포섭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벡터로 대치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이에 대한 간단한 해답은 없지만 문제를 풀 열쇠라면 있다. 열쇠는 화폐경제 이전의 윤리다.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증여론Essai sur le don>에 따르면 화폐경제 이전의 경제 윤리는 현재의 등가교환의 윤리와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반대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체적인 급부체계를 채용하고 있는 문명화 이전의 부족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물건은 자신의 것이라는 윤리, 증여를 받으면 등가물로 답례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윤리가 일반적이었다. 오늘날에도 국가가 없는 로마족(집시)은 타인의 물건은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누이트족은 등가교환적인 개념보다 잡은 사냥감을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사유제와 등가교환성이 만들어내는 윤리는 통용되지 않는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화폐경제 이전의 전체적인 급부의 윤리가 현대 일본 사회에도 남아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렇게 '살아남은 윤리'가 미래 세계의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현대 사화에서는 통용되는 등가교환의 윤리는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 된다" 또는 "빌린 것은 갚아야 한다" 등이다. 그러나 부모자식 관계나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는 이러한 윤리가 채용되지 않은 채 답례 없는 증여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피를 나눈 가족 사이에 등가교환의 윤리를 채용한다면 부모 자식 관계는 상당히 불편해질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렇지 않게 생전증여를 한다.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무상으로 양육하는 것은 의무다. 현대인은 이러한 무상증여의 윤리를 등가교환의 윤리와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부모자식과 형제라는 혈연가족이나 강한 동료의식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내부에서는 무상증여의 윤리가 일반적이고, 외부와의 교환에는 등가교환의 윤리를 사용한다. 실은 우리는 우리가 어째서 윤리를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그것은 '관계'다. '빚'을 진 상태는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청산될 때까지는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은 관계가 유지된다는 의미다. 꺼꾸로 말하면 청산이 끝났다는 것은 관계가 끝났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관계의 청산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원동력이다. 관계의 청산은 상품과 화폐의 거래이며, 이 거래를 늘려나가는 것이 경제적 성장이기 때문이다. 대차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거래의 정지를 의미한다.

 

 

 공동체의 운영기준은 득실이 아니라 규칙이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배제되어 공동체 밖으로 추방당한다.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시장市場이었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도피처였던 시장의 가치관이 유연有緣의 장소를 잠식해버렸다는 것이다. 오래된 규칙을 해체하며 합리적인 판단을 우선으로 여기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근대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때의 합리성은 바로 금전합리성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최적화하는 합리성이 아니다. 금전합리성을 추구하면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 그 자체를 훼손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해와 온난화는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시장화는 무연화와 거의 같은 뜻이다. 공동체 내부에는 시장이 생기지 않는다. 인간사회는 원래 공동체적이고 상호부조적이었다. 공동체적이라는 것은 이해타산이 아닌 다른 가치관에 의해서 운영된다는 뜻이다.

 무연의 세계의 유연의 장소를 만드는 것이 인구 감소 사회의 유일한 사회 설계일 것이다. 우선은 민영화되면서 파괴된 사회공통자본을 재생시킨다. 도시지역에 가족을 대체할 수 있는 공생장소를 만든다. 인류사적인 상호부조의 윤리를 다시 세운다.

 이것들이 이루어진다면 인구 감소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닐 것이다.

 

p174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국가는 빚을 갚을 수 없다"는 토마 피케티의 말과도 호응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부 정치가들은 '투자보다는 지출 삭감'으로 나랏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

 폴 크루그먼은 그것이 단순한 착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크루그먼은 "가정 형편이 어려울 때는 가계 씀씀이를 줄이듯이, 국가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도 재정을 줄이는 것이 왕도"라고 일반인은 물론이고 지식인까지 맹목적으로 믿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금융완화와 재정지출을 실시하면 고용이 창출되어 수요가 확대된다"는 것은 경제학적 기본 상식이다. 그러나 "쓰는 것보다 모은 것이 경제적으로 좋은 상태"라는 가계 씀씀이 감각으로 국가 재정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정치가는 설사 그 생각이 잘못됐다고 알고 있어도 지지를 얻기 위해서 그런 말을 꺼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재정의 균형을 맞춰서 나랏빚을 갚는다"라는 듣기 좋은 표현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구실이 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작은 정부)를 추진하기 위한 그럴듯한 핑계다. 대부분의 영국 경제학자가 긴축재정은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대기업의 지도자들은 정반대 입장을 취한다. 가능한 정부가 작아져서 시장의 일은 시장에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이 대기업의 본심이기 때문이다. 긴축재정을 추진하는 보수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 부유층과 대기업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왠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게 보이는 빚을 갚기 위한 정치'는 사실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데 가담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 빚을 남기지 않기"는 커녕 반대로 늘리고 있다는 모순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p176

 1929년 월가의 대폭락이 불러일으킨 세계대공황을 접한 두 나라는 완전히 정반대의 경제정책을 실시했다. 독일의 바이마르 정부는 불황으로 세수가 감소하므로 재정균형을 지향해야 한다고 맹신하고 계속 재정지출을 삭감했다. 따라서 불황이 멈추지 않고 많은 실업자를 만들어냈다. 그런 상황에서 대규모 정부지출로 국민의 고용을 창출할 것을 약소하는 나치스가 등장해서 국민을 열광시켰다. 어째서인지 지금도 많은 사람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나치스를 낳았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바이마르 정권이 지폐를 지나치게 많이 찍어내서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1920년대 중반쯤 진정되었다. 나치를 낳은 것은 디플레이션과 긴축재정이었다.

 한편 미국은 같은 시기에 금융정책과 재정지출로 경제를 확대시키는 뉴딜정책을 실시했다. 불황이라고 재정지출을 줄이지 않고, 반대로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서 국민의 고용을 창출하는 대담한 반 긴축적 정책을 취했다. 나치스의 경제정책과 뉴딜정책의 유사성은 세계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다시 말해 독일의 바이마르 정권이 불황에 대응하는 경제정책에 실패했기 때문에 파시스트가 대두하게 된 것이다.

 

p188 1970년대의 반전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장 확대의 시대가 영원히 계속되는 일은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1960~1975)이 20세기 체계의 종언을 상징했고, 일본에서는 오사카 만국박람회(1970)가 종언의 지표가 되었다. 1970년을 경계로 다양한 사회적 지표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인구 증가 곡선이 반전되고, 저출생 · 고령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제조업을 대신해 서비스업이 대두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다. 현대의 저성장 · 저출생 · 고령화 사회는 이미 1970년대에 조짐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다른 전개를 맞이했다. 미국에서 중후장대산업은 일찌감치 주역의 자리에서 내려와 조연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곳은 과거 시대를 선도한 주역을 언제까지나 대접해주는 미적지근한 곳이었다. 무사를 온존하는 풍토가 그래도 20세기가 되도록 잔존하고 있었다.

 일본의 건설한업은 1970년대 이후에도 조연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경제의 주역이었던 그들은 정치와의 결탁을 통해서 70년대 이후에도 주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사집단의 결속력과 집단주의는 강력한 득표장치로 기능하며 1970년대 이후의 일본 정치에서 주역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득표장치가 장기적으로 계속 가능하려면 건축공사를 끊임없이 발주해야만 한다. 이것이 1970년대 이후로 일본 정치의 숨겨진 목표가 되었다.

 건설을 위한 명목은 시대와 함께 변했다. 1970년대 이전에는 경제 성장과 주택공급이 명목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복지, 환경, 안전, 안심이었다. 각각의 시대에 걸맞은 듣기 좋은 명목이 선택되었다. 그러나 득표 체계의 존속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명목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다. 그 명목으로 무엇인가를 건설하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다면 무사는 행복할 뿐이다. 무사는 그렇게 성장과 확대의 시대가 종언된 1970년대 이후에도 에도시대의 무사가 정치와 결탁한 것돠 마찬가지로 시대의 정치와 성공적으로 공모하면서 사회 지도자라는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우연까지 무사의 셩명 연장을 도와주었다. 1995년 한신 대지진,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라는 두 번의 대지진이 일본을 덮쳤다. 대지진 피해의 복구와 부흥이 국가 목표가 되면서 무사는 새로운 활약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게다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겹쳤다. 우연이 몇 번이나 무사의 편을 들고 있다.

 

 

p209

 선진국의 노숙자는 태어날 때부터 노숙자인 사람은 없다. 어떤 이유 때문에 사회에서 도중에 낙오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경제적 이유만으로는 노숙자가 되지 않는다.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생활보호를 받으면 된다. 어떤 정신적 이유가 더해져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노숙자가 된다.

 그런 사람들이 예술이나 운동을 접하고 1천 명 가운데 세 명이나 다섯 명이라도 살아갈 기력과 노동의욕을 되찾는다면, 이것은 대단히 저렴한 노숙자 대책이다. 무료급식만으로는 당장의 목숨을 구할 수는 있어도 발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는다. 노숙자를 만들어내는 원인의 하나가 인간 정신적인 측면에 있는 이상, 그것을 개선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노숙자 프로젝트는 내 주변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례도 있다.

 내가 경영하는 고마바 아고라극장은 몇 년 전부터 고용보험 수급자에게 대폭적인 할인을 실시하고 있다. 실은 이것도 유럽의 모든 극장과 미술관에서 당연히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다. 학생 할인과 장애인 할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업자 할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이와는 반대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고용보험 수급자가 평일 낮에 극장이나 영화관을 찾으면 구직활동을 게을리 하고 있다는 이유로 고용보험 지급을 중단해 버리는 정책. 또는 생활보호세대의 구성원이 극장에 가면 뒤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사회 분위기.

 

p212

 그렇기에 우리는 사고방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실업 중인 사람이 평일 낮에 영화관이나 극장에 찾아주면 "실업 중인데도 극장을 찾아줘서 고마워요.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어서 고마워요. 그렇게 하는 편이 최종적으로 행정과 사회의 비용도 위험요소도 경감되니까요"라고 말이다. 또한 생활보호세대가 콘서트홀에 오면 "생활이 어려운데도 음악을 들으러 와줘서 고마워요. 집에 틀어박혀 있지 않아서 고마워요"라고 생각하는 사회를 만드는 편이 최종적으로 사회전체의 부담이 경감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문화를 통한 사회포섭'이라고 부른다.

 일본은 예로부터 지연과 혈연이 강한 사회였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체계는 태평양전쟁 이후에 붕괴되었고 기업 사회가 그것을 대체했다. 사택에 살고, 사원운동회에 참가하고, 사원여행을 즐기고, 기업연금의 보장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일생을 마친다고 믿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기업은 이제 노동자를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기업사회 또는 그에 대한 믿음은 붕괴되었다. 뒤돌아보면 옛날의 좋았던 지연 · 혈연형 사회(라는 것도 역시 환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때의 유행어였던 '무연사회'의 정체다.

 게다가 일본에는 마지막 안전망인 종교도 없다. 유럽의 노숙자는 정말 힘들 때는 교회를 찾을 수 있지만 일본에는 그런 종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일본은 세계 선진국 중에서 가장 인간이 고립되기 쉬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p229

 애초에 지금의 먹거리 가격이 적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먹거리의 생산 현장에서는 1차 산업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농부와 어부가 점점 줄고 있다.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이 먹고 살 수 없다니, 정말 이상한 이야기다. 식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싼 가격을 강요당하자, 생산자가 충분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상태가 오래 이어졌다. 먹거리 가격이 내려가면 소비자에게는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생산자가 계속 줄어든다면 결국 일부 부유층만이 일본 국내산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실제로 먹거리 가격이 지나치게 내려가면 국민의 생명과 건강도 위협받게 된다. 끊이지 않는 식품 위조 문제의 근원에는 1엔이라도 저렴한 음식을 선택하는 소비 행동이 생산과정이 보이지 않는 먹거리의 대량 제조를 초래한다는 부분도 부정할 수 없다. 2007년 식품가공회사 미트호프의 가공육 위장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회사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반액 할인을 좋아하는 소비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싼 냉동식품을 좋다고 구매하는 소비자도 나쁘다"고 말해 세간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했다,

 확실히 위조는 나쁜 일이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미트호프 사장의 발언은 우리가 먹거리를 선택할 때 '저렴함'을 판단기준으로 삼은 것이 생산과정의 블랙박스화를 초래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먹거리의 안전을 위한 비용을 소비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식품 위조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2017년 구마모토에서 만난 여의사는 병원을 찾는 환자를 줄이기 위해서 채소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현대인은 평소 식생활을 신경 쓰지 않고, 안전을 위한 돈도 쓰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병에 걸려 거액을 의료비로 쓰다가 결국 병상에 누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도 많다. 이왕 같은 돈을 쓴다면 부정적 비용이 아니라 안전한 먹거리를 구매하는 긍정적 비용을 선택해 건강 수명을 늘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우리 자신의 소비 행동을 바꾸는 것은 백세시대에 걸맞은 저비용의 의식동원醫食同源 사회 만들기로 이어진다.

 

p238

 내가 태어나기기 얼마 전인 1970년 1,035만 명이었던 농업종사자는 2016년에 192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참고 대한민국 현황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41226.html)

 

192만 명 가운데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125만 명, 39세 이하는 겨우 12만 명 뿐이다. 또한 연령별로 살펴봤을 때, 이농비용이 가장 높은 연령은 39세 이하다.

 내가 현의원으로 재직하던 때부터 이러한 감소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수치가 눈앞에 제시하는 현실을 현장에서 보고 들으면서, 지금까지 먹거리의 생산에 관한 문제를 남의 일처럼 생각하던 자신을 깨달았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알갈 수 없다. 다시 말해 모든 국민은 식생활 문제의 당사자이지만, 1차 생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먹거리가 없어져 곤란한 쪽이 소비자라면, 생산자 혼자 머리를 싸매고 후계자 부족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도 당사자라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격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소비행동을 해온 우리는 1차 산업을 쇠퇴시긴 간접적인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낙농과 쌀농사 등의 현장을 체험하면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영향력 아래서 생며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통감했다. 생물이기 때문에 병에 걸리고 죽기도 한다. 악천후로 인해 그동안의 막대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농부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경외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농부는 자연에서 배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 · 기술 ·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지역 사람들이 지금까지 축적한 지혜 · 기술 · 판단력이라는 경험치는 일종의 과학이기도 하다. 농부의 경험치를 활용한 생산활동은 자연을 인간의 먹거리로 바꾸기 위한 작은 과학small-science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일본인은 농촌을 떠났다. 뜻대로 되지 않는 자연과 타인, 지역사회 등의 번거로운 관계를 버리고 도시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번거로움에서 해방되는 대신, 자연이나 지역사회와의 관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지혜 · 기술 · 판단력을 포기했다. 생활의 풍요로움을 원자력발전과 유전자공학 등의 거대과학big-science에 맡기고, 행정 · 과학기술 · 경제에 모든 것을 일임한 채, 관객석 위에서 강 건너 불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런 삶에는 공동체의 생활을 자신의 지혜와 창의적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기쁨과 감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 지역의 과제를 해결하는 마음가짐을 잃고, 사회를 만들어가는 당사자가 아니라 '손님'이 되어버렸다.

 주인 의식을 상실한 1억 총관객사회에 활력이 생겨날 리가 없다. 생산인구는 줄어들고, 수요부족으로 경제가 침체되고, 세수입도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행재정 자원이 축소되고, 고령자 부양이라는 부담이 핵가족을 덮치던 그때, 풍요의 기반이었던 원자력이라는 거대 과학이 폭주해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성장을 추구한 결과, 오히려 근원적 위험요소를 구조적으로 떠안아버리는 사회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하는 '위험사회'의 개미지옥 자체다.

 지역과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1억 총관객사회는 '고비용 사회'이기도 하다. 고립이 진행될수록 1인당 생활유지 비용이 증가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경제와 과학기술의 힘에만 의존한다면, 좀더 심각한 '위험사회'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활과 사회에서 '관계의 힘'을 되살려야 한다.

 자연과 타인,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되살리는 것은 우리가 관객석에서 무대로 내려와 각자 생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힘으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쪽으로 돌아간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편이 훨씬 즐겁기 때문에 내려가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주체적으로 참가하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모습은 직접 생활을 만들어나가는 기쁨과 감동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되찾는 일임과 동시에 재해 · 경제 위기 · 질병 등의 요소에 취약한 '위험사회'에 대비하는 일이다. 생산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그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p277

 19세기 중반 에도시대 말기의 인구는 약 3,000만 명, 1870년대 메이지시대 초기는 약 3,500만 명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 동안, 전쟁으로 인한 감소가 있었지만 일본의 인구는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영국과 프랑스가 같은 기간에 약 1.5배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일본의 인구 증가율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알 수 있다. 일본과 비슷한 근대화 과정을 거쳤으며 전쟁도 체험한 독일의 경우도 영국과 프랑스보다는 증가율이 높지만 일본 정도는 아니다.

 미국은 이민국이기 때문에 일본의 단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일본의 증가율을 월등히 상회하는 국가는 한국이다. 그러나 한국은 '압축 근대'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뜨거운 근대'를 단기간에 편파적인 형태로 통과했다. 그러다보니 출생률은 일본보다 낮아 저출생 · 고령화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결국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 동안, 세계적으로도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들은 인구 감소 경향으로 변하고 있다.

 마가 복음을 베이스로, 예수 1인칭 관점을 가정하여 쓴 예수의 공생애 일대기.

당연히 저자인 김용옥 선생이 바라보는 예수에 대한 관점이 녹아들어 있다. 

도올 선생의 과거 기독교 저작들과 영상 강의를 들어본 이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들이 있다.

예수에게서 신화적 부분을 싸악 걷어내고 인간적인 관점과 심리에서 접근했다고 보면 이해가 된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신의 자식으로 죽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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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20세기의 서구의 가장 위대한 성서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루돌프 불트만은 이와같이 말했습니다: "바울의 담론을 통해서도, 어떠한 복음서의 기술을 통해서도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에 관한 진실은 알려질 길이 없다. 그 모든 담론이 이미 초대교회의 케리그마적 담론이며, 초대교회는 종말론적인 회중이다. 이미 신화 속에 갇힌 사람들이다." 세상사람들이 불트만을 진보적 신학자로서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철저히 성서의 신화적 기술을 비신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의 신화적 세계관을 오늘 과학적 세계관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합리주의정신을 표방했기 때문입니다.

 

p44

 내가 세례 요한을 만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 몇 가지를 얘기해둘 것이 있습니다. 나는 갈릴리 나자렛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의 어머니 마리아는 매우 평범한 여인이며, 결코 성모聖母라고 컬트화 될 수 있는 그런 여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중동 지역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까만 보자기를 쓴 보통의 여인,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의 그리스도됨을 원한다면 그 신령성을 나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가족을 장식물로 삼아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짓입니다. 마리아는 아람어로 마리암Mariam인데 그것을 희랍어로 적으면 마리아Mαρια가 됩니다.

 나의 엄마 마리아는 나의 아버지 요셉과 결혼하여 아들을 다섯 명, 딸을 셋 낳았습니다. 나는 8남매 중 둘째입니다. 그러니까 맏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처녀잉태 같은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문명의 로컬 컬트와 결합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의 문화전통이니까 부정 · 긍정의 논란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나 예수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진지하게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유치한 논의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

 

p66

 마가는 세례 요한의 사상과 나의 사상의 다른 점을 단적으로 "물의 세례"와 "성령(프뉴마 πνεμα)의 세례"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1:8). 마태는 "성령의 세례"라는 말 대신에 "성령과 불(퓌르 πνρ)의 세례"라는 말을 썼습니다(마 3:11). 누가도 "성령과 불의 세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눅 3:16).

 "프뉴마"라는 것은 본시 "숨"을 의미합니다. 동양언어에도 "기氣"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는 신령한 그 무엇이면서도 우주 전체에 깔려있는 물질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는 결국 숨breath입니다. 숨은 콧구멍을 들락거리는 공기, 바람이기도 하죠. 숨은 곧 생명의 근원, 증거이기도 합니다. 내가 쓰는 헬라문명권 언어의 이 프뉴마는 동양의 기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것은 숨이며, 바람이며, 호흡이며, 생명이며, 신적 영감 divine inspiration이며, 신의 영이며 사람의 영입니다. 물의 세례는 매우 구체적인 물질적 접촉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세례를 의미하지만, 영의 세례, 즉 기의 세례는 생명의 토탈한 뒤바뀜, 전 인격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불"은 물질을 대변한 말이 아니라, 프뉴마의 신생新生의 뜨거움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물의 세례보다는 불의 세례 한 차원 높은 어떤 영적 트랜스포메이션spiritual transformation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나의 사상과 세례 요한의 사상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균열이 생기면 결국 이별하게 됩니다. 이별하게 된다는 것은 나 예수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아주 쉽게 말하자면 나는 세례 요한 밑에서 공부하면서 세례 요한보다 더 상위권의 비젼을 획득하고 그와는 다른 길을 개척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 시점이 아주 오묘했습니다. 내가 세례 요한과 결별하게 되는 시점 그 즈음에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마캐루스성채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운동은 통치자 안티파스를 위협할 정도의 사회적 셰력을 형성하였고, 그것은 그의 전성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세례 요한의 터무니없는 몰락을 목격하면서, 나의 영적 세례운동은 정치적 세력을 형성해서는 아니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p125

 그런데 마가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예수는 천국의 비밀을 사람들이 함부로 쉽게 알아차릴 수 없도록 비유로 말하였다."(4:11). 마가는 훌륭한 작가이지만, 이 말만은 매우 그릇된 생각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호반에 앉아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누구든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로 말한 것입니다.

 

9장. 비유는 상식적 민중의 담론이다.

 

 우선 비유가 무엇일까요? 비유는 헬라말로 "파라볼레παραβολη"라고 하는 것인데, "파라"는 "나란히", "함께"라는 뜻이고, "볼레"는 "던지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가지 말을 하고 있는데 또 하나의 말이 동시에 나란히 던져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여태까지 나는 파라볼레의 어법을 계속 활용해왔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어찌 사탄이 사탄을 궤멸시킬 수 있겠는가," "잔치집에 온 신랑친구들이 어찌 신랑과 함께 있는 단식을 할 수 있으랴!"는 등등, 한 가지 말의 이면에 또 하나의 말이 있었다는 얘기지요.

 "씨 뿌리는 자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면에 "천국의 비밀"이 같이 얘기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비유담론은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복합적으로 많은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죠.

 비유는 민중의 언어입니다. 조선말에 "속담"이라는 말이 있지요. "속담"이란 "세속의 이야기"라는 뜻이죠. 즉 "민중의 이야기 방식"이라는 뜻이죠. 속담은 짧은 경구警句라 할지라도 파라볼레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속담의 특징은 적재적소에  쓰이면 누구든지 쉽게 알아듣는다는 것이죠. 그것은 "카이로스(타이밍)의 예술"이지요.

 

p230

 먼저 성전에 오는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 것은 정결한 코셔기준the kosher requirements에 맞는 동물을 희생으로 써야 합니다. 그런데 희생 동물은 순례자가 아무리 깨끗이 길러서 가지고 와도 코셔검사를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성전회랑에서 파는 동물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패구조 때문이죠.

 사실 성실한 본인이 잘 키운 것이 제일 깨끗할 텐데 그러면 성전에는 우수리가 안 떨어집니다. 성전회랑에는 파는 동물은 자기가 기른 것이나 시중에서 파는 것의 보통 몇 배를 호가합니다.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그 가격을 안 낼 수가 없습니다. 제사를 지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못 지내면 야훼의 축복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일년 동안 집안운수가 꽝이 된다고 생각하니 안 낼 수도 없죠. 10원에 해결될 것을 100원에 내야만 하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성전입니다. 90원을 착복한 상인의 이문의 대부분은 다시 제사장들, 사두개인, 서기관, 그리고 궁극적으로 산헤드린의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환전상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에서 쓰는 돈은 세속적인 로마화폐를 쓸 수가 없습니다. 모든 튀리안화폐the Tyrian currency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 튀리안화폐가 있어야 성전세를 낼 수 있고 또 성전에서 행하는 여러가지 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환전하는 데도 상식적인 환율의 몇 배가 되는 환율이 적용되는 것이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헤롯성전이 AD 66년에 완성되었을 때, 그해 유월절에만 자그마치 25만 5천 6백 마리의 양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예수살렘성전의 제식규모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환전과 희생동물매매의 수익은 천문학적 숫자에 달합니다. 나는 이 부패의 연결고리를 방관할 수가 없었습니다. 갈릴리 민중의 고초의 근본원인이 이러한 종교조직과 율법과 그릇된 신관에 그 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종교혁명, 정치혁명, 사회혁명의 한 고리라도 내 힘으로 달성해야겠다는 신념, 그 신념을 고취시키는 하나님의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어는 누구도 이 나의 갈망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처럼 맥없이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민중의 마음에 확고한 씨를 뿌리지 않으면 내가 말하는 천국은 도래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첩격이 갈릴리 촌구석에서 행하는 이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전을 뒤엎는 사회적 행위, 상식적 행위, 사람들의 마음을 경이롭게 만드는 의로운 거사에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닫고 있었습니다. 힐링이 기적이 아니라 힐링을 가능케 하는 민중의 마음이 기적이라고 나는 말했습니다. 그 믿음의 궁극적 행태는 율법의 전승 그 자체를 단절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종교적 하이어라키를 전복시켜야 평등한 세상이 오고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나는 갈리리 촌놈에 불과합니다. 나는 서른댓 살의 청년에 불과합니다. 나를 마술사로 그리고, 나를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노인처럼 그리는데 정말 나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만을 세상은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피 끓는 청년이고, 근원적인 사회변화를 꾀하는 운동가입니다.

 나는 그 거대한 헤롯성전에 들어서자마자 닥치는 대로 사고 팔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며 환전상들의 탁자를 다 엎어버리고, 비둘기장수들, 희생양을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었습니다(11:15). 그리고 제사기구들을 나르느라고 성전뜰을 왔다갔다 하는 것도 금지시켰습니다. 이것은 성전제사 자체를 금지시키는 반유대교적 행동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갈릴리 촌놈입니다. 아무리 메시아 운운한다 할지라도 로마병정의 칼자루에 간단히 목이 날아갈  그런 연약한 존재입니다. 어떻게 갈릴리 촌놈인, 서른댓 살의, 아무 조직배경도 없는 청년이 이 무시무시한 대성전에서 이러한 난동을 부릴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이런 행위가 용인될 수 있었고 가능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채찍까지 휘둘렀습니다. 폭력적인 힘까지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크게 소리쳤습니다.

 

 "성서에 하나님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조용한 집이 되어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a den of robbers로 만들었구나!"

 

 나는 이 거대한 예루살렘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 규정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나의 언행이 용납될 수 있었을까요?

 만약 이 예루살렘성전이 로마군대가 직접 관장하는 곳이었다고 한다면 나는 초반에 바로 살해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는 다신론적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지역의 총교생활에 관해 매우 관용적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로마는 헤롯왕가를 통한 간접통치방식을 취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반자치구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제기한 반종교적 행위는 로마권력자들의 입장에서는 강 건너 불이었습니다.자기들이 직접 다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유대교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나의 행위는 반역이었습니다. 마가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의 언행을 듣고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모의하였다."

 

 그런데 왜 목 죽였을까요? 여기에 복음서가 기록하지 않은 중요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군중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종교적 당국은 내가 민중의 마음을 얻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민중이 예수의 가르침에 감탄하였다"(11:18)

 

 다시 말해서 나의 성전전복행위는 나 홀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민중이 마음으로 성원했고 나와 같이 행동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내가 환전상들의 탁자를 뒤엎어 동전이 여기저기 흩어질 때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통쾌했겠습니까? 마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석양이 뉘엿뉘엿할 때야 예수와 제자들은 성밖으로 나갔다."

 

다시 말해서 나의 전복행위는 하루종일 계속된 것입니다. 그 35에이커 면적을 커버하는 회랑을 뒤엎는 작업은 하루종일 진행된 민중항쟁의 대사건이었습니다. 나느 성공했습니다. 나는 이제 진정한 패션Passion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새로운 약속의 임재를 위하여 구약을 말소시키는 깨끗한 청소를 단행한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예루살렘 이틀째의 하룻일이었습니다. 나는 이날 밤도 베다니에서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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