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에도 써놨듯이 그간의 도올 선생님의 책이 어렵다는 불만(?)이 많아서 작심하고 쉽게 쓰셨다고 한다.

쉽긴 하다. 선생 글의 특징인 기나긴 서론과 말미에 축약된 주제의 구성은 역시 변함이 없다.

반야심경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의 불교와의 인연, 그리고 반야심경을 이해하기 위한 불교사적인 배경 지식,

한국 근대사의 불교의 모습과 그런 모습에 이르기까지 조선사에 흐르는 한국 불교의 전통에 이르기까지 막힘없이 술술 풀어나가는 선생의 이야기 솜씨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바가 있다.

선생님의 불교 관련 서적이 금강경 강해,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3권)의 2책(권수로는 4권)이 있었는데 이 책으로 어느 정도 불교에 대한 선생의 생각도 정리가 된 듯 하다.

개인적으론 선생이 아직 힘이 있으실 때, 조선역사에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사상사를 한 번 정리해주시면 좋겠다라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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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엄마의 공안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용옥아! 왔구나!" 그 말씀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아들 용옥이만 보였지, 승복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 순간 종교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41. 서산의 입적시

 팔십년전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전에는 거시기가 난 줄 알았는데

 팔십 년을 지나고 보니 내가 거시기로구나!"

아주 간단하고 간결한 명제입니다. 자기 자신의 화상(畵像 )을 놓고 하는 말이니 거시기는 객체화된 "자기Ego"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나의 모습이 나의 밖에 객체로서 걸려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인식이 자기 "밖"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어 철들고 보니 여기 살아있는 나가 곧 거시기, 즉 거시기는 주체적인 나의 투영일 뿐, 영원히 살아있는 실상은 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p43. 거시기와 예수, 거시기의 철학

 거시기를 "예수"로 바꾸어 놓고 보아도 똑같습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상이 신앙의 대상으로서 거시기화 되어 있는 것입ㄴ니다. 그러나 신앙의 궁극에 도달한 자는 깨달을 것입니다. 예수가 나의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곧 예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죠. 내가 곧 십자가를 멘 예수가 될 때에만이 그리스도(=구세)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p68. 사람이 없다.

 깨달음이란 타인에게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전한다는 것은, 타인이 나의 깨달음과 같은 경지에 있을 때 그 깨달음의 경지가 스스로 이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나의 깨달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공감의 전입이 가능한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그만큼 경허의 깨달음은 지존한 것이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이것은 진정 성우 경허의 대오의 경지를 나타내는 확철한 고독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p82. 머슴살이 김 서방, 이 서방이 모두 부처님이외다.

 "절간에 재물이 쌓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외다. 이 돈으로 인근 30리 굶주린 백성들에게 양식을 나눠주시는 것이, 훗날 강 선생님께서 극락왕생하시는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사님, 저도 이 천장사 부처님께 시주를 해서 복을 좀 지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은 이 천장사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머슴살이 하는 김 서방, 이 서방, 농사직소 사는 박 첨지, 서 첨지, 이들이 다 부처님이오이다.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께 시주하는 것과 똑같은 것, 머슴이나 하인이나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시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불공입니다."

p131. 아트만이 없다=실체가 없다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아(我)는 서양철학언어를 빌리면 "실체Substance"에 해당됩니다. 아주 간닪히 얘기하면 모든 사물을 실체가 없다. 즉 자기동일적 분별태가 없다. 모든 사물은 본질이 없다. 실체라는 것은 "아래에sub-" "놓인 것stance"이라는 의미이니까,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 본체, 영원한 이데아를 의미합니다. 모든 존재하는 사물에는 그러한 아트만이 없다는 것이죠.

p136. 무전연기와 환멸연기

 유전연기流轉緣起(생성적 인과) :  고제苦諦 과果 / 집제集諦 인因

 환멸연기還滅緣起(소멸적 인과) : 멸제滅諦  과果 / 도제道諦 인因

 p139. 불교사의 특징 : 전대의 이론을 포섭하여 발전

 사성제의 진리이론도 매우 간단한 듯이 보입니다. 인생은 고통스럽고, 그 고통에는 집적된 원인이 있고, 그 집착을 없애면 열반적정에 든다. 그런데 그 멸집滅執에 8가지 방법이 있다. 그 8가지 방법을 요약하면, 계.정.혜 삼학이다.

계戒 sila : 정어定語  정업定業  정명定命

samadhi : 정념定念 정정正定                  이 모두를 실행하는 정정진正精進

혜慧 panna : 정견定見 정사유正思惟`

p142. 자기 삶의 화두만 유효하다.

 득도라는 것은 오직 자기 삶의 느낌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느낌의 심화는 "혜"의 공부에서 생기는 것이지 "간화看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삼학에 이미 선종과 교종이 다 들어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대장경이 다 들어있는 것이죠.

p153.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지명 하나, 인명 하나, 나라이름 하나를 그냥 적당히 넘어가면 생동하는 역사의 흐름의 핵을 유실하게 됩니다. 

P155.

 이러한 확대과정에 역행하여 극도의 축약화작업이 이루어집닏. 그리고 이 축약은 단순한 축약이 아니라 단행본으로서 자체의 유기적 독립성을 갖는 단일경전이 되는 것이죠. 이 반야경 중에서 독립적 단일경전으로 대표적인 것이 <금강경>과 <반야심경>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따로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두 경전은 동일한 반야경전그룹 내의 두 이벤트일 뿐입니다. <금강경>도 <금강반야바라밀경>이고 <반야심경>도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입니다. 둘 다 "반야바라밀"이라는 주제를 설파한 경전들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금강경>은 현장의 <대반야경>체제 속에 편입되어 있는데 반해(600권 중에 577권이 <금강경>이다), <반야심경>은 극히 짧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반야경>에 포섭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만큼 <반야심경>은 독자적 성격이 강했다고 말할 수 있지요.

P179. 기독교역사는 대승기독교를 허락치 않았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도 일정한 권위의 틀 속에서만 머문 것이고 진정한 대승의 종교혁명을 이룩하지 못했습니다. 아나밥티스트들Anabaptists(자각적이지 못한 유아세례는 무효라는 것을 주장한 사람들)의 주장도 수용하지 못하고 박해했으며, 토마스 뮌처Thomas Muntzer, 1489~1525(종교개혁시대의 래디칼한 신비주의 설교자. 루터에 반대)의, 성경은 단지 과거의 영적 체험의 잔재일 뿐, 그것이 내 마음속에서 영적 생명력을 갖지 않는 한 휴지쪽일 뿐이라는 주장을 이단으로 간주했습니다. 뮌처는 비참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되었습니다.

P186. 6바라밀의 등장

 새로운 대승의 실천원리가 이른바 "6바라밀六波羅蜜 "(육도六度)이라고 하는 것이죠. 1)보시布施 2)지계持戒 3)인욕忍辱 4)정진精進 5)선정禪定 6)지혜智慧(혹은 智惠)라는 것인데, 250계율과 같은 것에 비하면 매우 일반화 되고 추상화 되고 유연성 있는 원칙이 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6번째의 지혜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반야"인데, 6바라밀은 반야의 바라밀에서 완성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서 앞의 5바라밀은 제6바라밀을 위한 전 단계에 불과한 것이죠.

p190.

 타율적 계율이 느슨하게 되면 인간의 자율적 지혜는 고도의 자기 조절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인간이 자율적 자기컨트롤 능력이 없을 때는 당연히 타이트한 계율 속에서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대승의 발전은 계율의 느슨함을 초래함과 동시에 지혜의 특별한 수행, 특별한 자각적 바라밀다, 완성의 길을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p192.

 결국 "지혜의 완성" "지혜의 배를 타고 피안으로 고해를 건너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바로 아상我相을 죽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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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원문(나무위키 + 도올선생 해석)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을 건너느니라.

(도올) 관자재보살께서 심원한 반야의 완성을 실천하실 때에 오온이 다 공이라는 것을 비추어 깨달으시고, 일체의 고액을 뛰어넘으셨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도 그러하니라.

(도올) 사리자여! 오온개공이라는 말이 과연 무엇이겠느냐? 색이 공에 다르지 않고, 공이 색이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나머지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는 뜻이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형태는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도올) 사리자여! 지금 내가 깨달은 세계, 반야의 완성을 통해 조견한 세계, 제법이 공한 이 모습의 세계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다.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고 감각ㆍ생각ㆍ행동ㆍ의식도 없으며,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無意識界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무의식계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도,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도올) 그러므로 공의 모습 속에는 색도 없고, 수도 없고, 상도 없고, 행도 없고, 식도 없다. 따라서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고, 또한 안식계에서 의식계에 이르는 모든 식계도 없다.

無無明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멸집도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다. 

(도올) 뿐만이냐! 싯달타께서 깨달으셨다고 하는 12연기의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도 없다. 이렇게 12연기의 부정은 노사의 현실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니 노사도 없고 노사가 사라진다는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러한 12연기를 요약적으로 표현한 고.집.멸.도 또한 없는 것이다.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무소득이기 때문이다.

(도올) 앎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다. 반야 그 자체가 무소득이기 때문이다!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도올) 보리살타 즉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다.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는 고로, 공포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도된 의식과 꿈같은 생각들을 멀리 벗어나 버리고, 끝내 열반에 도달한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무상의 정등각을 얻는다.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고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도올)그러므로 그대들은 다음의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반야바라밀다야말로 크게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더 이상 없는 주문이며, 비견할 바 없는 뛰어난 주문이라는 것을! 이 주문이야말로 일체의 고를 제거할 수 있다. 진실한 것이요,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니 이러하니라.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깨달음을 이루자

(도올)마지막으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겠습니다. 곧 그 주문은 다음과 같이 설하여집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추가 해석)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

=>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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