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툭 떨어지네.

칼날 하나.

땅에는 먹먹한 피가 베누나.

왜냐하면 죽음은 인생의 유일한 최고의 발명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변화의 대리인입니다. 젊은이를 위하여 노인은 사라집니다.

-스티븐 잡스, 스탠포드 졸업 연설중-

구글이 2013년 설립한 Calico라는 회사의 비젼은 '죽음(death)에 대한 모든 것'이며 목표는 '죽음의 극복'이다.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이런 목표는 만화나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우린 이미 구글의 다른 자회사인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바둑의 최고수인 이세돌을 1년전 4:1로 이기고, 그 1년후인 올해 현재 인간계 랭킹 1위인 커제를 3:0으로 바르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기 때문에 마냥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회사의 설립을 비현실적인 하나의 해프닝만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회의적 사고와 그로부터 연역되는 서양의 사상체계가 그와는 또 다른 사상의 체계로서 평행하게 수천년을 이어온 동양의 지혜와의 자웅속에서 근대를 열어가는 질적인 우위를 점한 유일한 이유는 무지속에서 현상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의미를 추출하며 그 의미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학적 방법론을 발견한데 있다.

그로부터 3천여년의 시간이 흘러 뉴톤과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그, 보어, 허블, 괴델, 비트겐슈타인 등 수 많은 세기의 천재들의 등장에 힘입어 21세기 인류의 지혜는 물리적으로 무한의 우주와 초미세의 쿼크들의 세계를 아우르게 되었고, 상상의 산물인 지적구조에 이르러서는 추상적으로는 이미 그 끝간데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현실적으로 이용되기에는 이제 인간의 사고의 알고리즘을 벤치마킹하여 알파고와 같은 유사인간적 사고를 하는 결과물까지 내놓기에 이르렀다.

근대의 과학의 발전은 결국 신을 절대적 위치에서 끌어내렸으며, 과학과 인본주의의 결합을 통해 인간은 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우뚝 서게 되었다. 하지만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는 오만해진 우리 인간들에게 유일한 진리중 하나인 죽음에 대한 인식은 인류가 지구상에서 자신을 인지하기 시작한 수십만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화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사실이 깨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비쳐지는 사건이 한번이라도 인류에게 목격되는 날(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이긴 당일을 한번 되돌아보자)이 온다면, 그것은 인간세상에 어떤 의미에서 말세가 도래한 것과 같은 두려움과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될 것이다.

Catastrophe 혹은 Armageddon이라 불리웠던 이벤트, 또는 현재 Singularity라 정의되어지는 것은 어쩌면 같은 사건에 대해 그 의미를 다르게 두는 용어일지도 모른다.


6 Things You Should Never Do After a Workout

You just finished an awesome and sweaty workout – great job! But working out is just a small component of a healthy lifestyle and your efforts could easily be sabotaged if you’re not making smart and healthy decisions after your workout is done.

지금 막 한창 운동을 마치고 흠뻑 땀에 젖어 있는 당신-잘했다! 그러나 운동은 단지 건강한 인생을 위한 자그마한 부분이며 운동을 마친 후 현명하고 건강한 조치들을 취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노력은 헛된 것이 되기 쉽다.

Do you have a healthy post-workout routine that is fostering the results you want? Or are you giving yourself too much credit for completing a workout and thinking that nothing else matters as long as you got your workout in? Working out is part of a healthy lifestyle and you’ll get the results you want when you are consistent and smart in your approach.

당신은 운동을 통해 얻으려는 효과를 보장하는 건강한 운동후 루틴을 가지고 있는가? 또는 당신은 운동을 하는 한 다른 것들은 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과신하고 있진 않은가? 운동은 건강한 인생을 위한 하나의 부분이며, 운동과 마찬가지로 생활속에서 지속적이며 현명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할때에만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Woman is training in the gym with a medicine ball

Never make these mistakes after a workout:

1. Forget to hydrate : 수분보충을 잊어버림

Most people are walking around chronically dehydrated. You should be drinking water constantly. How much? Approximately 30-35 ml per kg of body weight per day, plus an extra 500-1000 ml for every hour of exercise. This is especially important if you sweat a lot! Stay hydrated before, during and especially after your workout.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동중 만성적 탈수상태에 있다. 물은 항상 마셔야 한다. 얼마나? 하루에 몸무게 kg당 30~35ml가 필요하며, 이에 더해 1시간의 운동시간동안 500~1000ml가 필요하다.(체중 80킬로이고 1일 1시간 운동을 한다면, 최소 2.4l+0.5l=2.9l에서 최대 2.8l+1l=3.8l 의 물이 필요하다). 땀을 많이 흘린다면 운동전, 운동중, 그리고 특별히 운동후 수분보충에 신경 써줘야 한다.

2. Eat an unhealthy calorie bomb : 칼로리 폭탄을 섭취하기.

You cannot outtrain a bad diet! The only people that can really get away with eating “whatever they want” are professional athletes. They are training for hours and hours a day and have a metabolism built like a piping-hot furnace. But for the rest of us normal people with normal jobs and lives – what we eat after we work out is really critical to reaching our goals. Give your body easy-to-digest protein and carbohydrates and a little bit of healthy fat so it can start repairing your muscles and replenishing lost nutrients as soon as possible. A great post-workout meal would be these loaded sweet potato skins or this post-workout protein shake (without protein powder!). Choose one of these instead of a giant burger and fries or something else equally as heavy and high in fat.

나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운동으로 당해낼 수 없다. 먹고 싶은 것을 다 먹고도 괜찮은 사람은 직업적인 운동선수밖에는 없다. 그들은 매일매일 수많은 시간을 운동을 하고, 뜨끈뜨끈한 용광로와 같은 엄청난 신진대사 신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직업과 삶을 사는 보통사람인 우리에게는 운동후 무엇을 먹느냐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중요하다. 소화되기 쉬운 단백질, 탄수화물과 건강에 좋은 지방 조금을 섭취함으로써 근손실을 방지하고 소모된 영양을 가능한 단시간에 보충할 수 있다. 훌륭한 운동후 식사로 loaded sweet potato skins-고구마를 속을 파내서 갈은 다음, 거기에 우유,베이컨등을 더해 다시 속을 채워 쪄낸 요리 - 나 운동후 단백질 쉐이크-바나나,아몬드우유,피넛버터,코코아분말,바닐라 갈은것 등을 넣어서 믹서기로 쉐이크-가 좋다. 커다란 햄버거와 감자튀김 혹은 이와 비슷한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보다는 이런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라.

3. Forget to stretch : 스트레칭을 잊기

I say this time and time again, your warm-up and your cool-down are part of your workout. Your muscles will respond so much better when you treat them well and take the time for post-workout recovery stretching.

항상 이야기하지만, 워밍업과 쿨다운은 운동의 한 부분이다. 운동후 회복 스트레칭에 시간을 할애할 수록 당신의 근육은 훨씬 더 잘 반응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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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Not clean your space or rerack your weights (especially if you’re at a gym) : 운동후 정리하지 않기(특히 헬스장에서)

Clean up your area (whether you’re at home or at the gym). Tripping over a weight at home is not fun (I’ve done it!), so be sure to tidy up. But, this is especially important if you’re doing some bodyweight training or weight training at the gym. Please wipe your sweat up off the mat or machine and make sure that you put your weights back where you found them. There’s nothing worse than stepping up to the squat rack and having to unload all the weights from the previous person – be considerate!

주위를 정돈하라(집이든 헬스장이든). 집에서 운동기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즐겁지 않다, 그러니 확실히 치워둬라. 그러나 장소가 헬스장이고 당신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중이라면 더욱 중요하다. 운동매트나 기구를 이용한 후에는 꼭 땀을 닦도록 하고, 운동기구에 당신이 걸어놓은 무게추는 다시 빼도록 하라. 스콰트 랙을 하기 위해 이전 사람이 걸어놓은 무게추를 다 떼어야 하는 것처럼 기분 나쁜 일은 없다 - 주의하도록 해라.

Two men stretching in the gym

5. Think that fitting in a workout means you can be lazy the rest of the day : 운동을 했으니 나머지 시간은 게을러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Just because you worked out doesn’t mean you’re free to just sit around the rest of the day. Make movement a part of your lifestyle and take the stairs, get up from your desk every hour to grab a glass of water, take a walking break instead of a sitting one and get up to talk with a coworker instead of just emailing or messaging them. That extra NEAT (non-exercise activity thermogenesis) is really important!

당신이 운동을 했다고 해서 그 외 시간은 그저 앉아서 빈둥거려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움직이는 것은 당신의 삶의 한 부분이다. 계단을 이용하고, 한잔의 물을 마시기 위해 매시간마다 책상에서 일어나고, 앉기보다는 일어나서 쉬고, 이메일로 동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직접 가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라.  과외의 NEAT(비운동 행동시 에너지 소모)는 정말 중요하다.


6. Forget to track it or post about it :) :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을 잊기

Fitness tracking allows you to track your progress along the way! And, you never know who will get motivated to change their life when they see you’ve shared an activity tracked with your Runtastic or Results app or a selfie with your Results group! We know this is not for everyone but perhaps you’ll inspire a friend to lace up their sneakers or try a bodyweight training workout.

운동기록은 당신의 변화를 기록한다. 당신이 기록하고 보존한 기록들을 통해 다른 누군가가 영감을 받고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킬지 모른다. 항상 기록하고 보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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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these no-go’s the next time you head out (or stay in) for a workout. Our bodies are amazing and you can really get incredible results if you treat it well and make the right post-workout choices.

Do you have anything you want to add to this list? We would love to hear about it in the comments below.

***

Lunden Souza

Lunden Souza

Lunden Souza is a Certified Personal Trainer, Fitness Nutrition Specialist & the Runtastic Fitness Coach. This California native started out as an at-home personal trainer in Orange County, California for 5 years, then moved to work at Runtastic headquarters in Austria in March 2014. She inspires Runtastics worldwide with weekly fitness, nutrition and wellness tips via the Runtastic Fitness Channel on YouTube. She loves to do yoga, cook, run in the sun and go for long bike rides listening to her favorite podca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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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세돌과의 대국 이후, 1년만에 중국 기사 커제와 알파고간의 대국이 최근에 있었다. 특히 마지막 3국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커제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1975년생인 이창호는 1984년에 당대 최고의 현역기사였던 조훈현 9단의 내제자가 되어 고향인 전주를 떠나 연희동 스승의 집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내제자가 된 이후 이창호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면서 1990년에 스승과의 3번째(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도전기에서 3:2로 스승의 제국(당시 조훈현은 국내의 거의 모든 기전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다.)을 허물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창호와 조훈현의 공식기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은 198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열린 최고위전 결승 1국이다. 이 시합에서 당시 14살의 이창호는 불과 50여수만에 돌을 던졌다. 당시의 대국상황을 볼때 이창호가 약간 포석에서 밀리긴 했으나 스승 조훈현에 비해 그렇게 비세는 아니었기때문에 돌을 던질 정도는 아니었다라는 것이 당시 대국을 검토하던 다른 전문기사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당시의 대국 현장에 있던 원로 기사의 "창호가 스승에게 첫 공식대국을 둔 문안인사가 아니었겠나?"라는 증언이 있었다. 당시 조훈현 9단은 이창호와의 최고위전뿐 아니라 다른 타이틀 방어를 위해 연일 대국을 이어가고 있던 때였으며, 당시 몸살감기가 심하여 컨디션도 안좋던 시절이었다. 어린 이창호는 그런 스승의 건강이 염려스럽기도 하고, 스승과의 첫번째 공식대국이기도 한 것을 고려해 50 수 정도의 지도만 받고 스승에게 예를 갖추었던 것이다.

인간을 교육함에 있어서, 재능과 기술보다도 인성을 중요시하는 것은 동양의 교육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아무리 재능과 기술이 뛰어나도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끈기, 성실, 존중, 명예와 같은 인성의 부분이 훨씬 삶에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대목이다.

이후 1990년 이창호가 스승에게 첫 타이틀전을 획득했을때 복기하는 현장의 모습은 이랬다. 피곤한 얼굴로 장미 담배를 힘없이 물고 바둑판 위를 손으로 이리저리 가리키면서 혀를 차는 조훈현 9단앞에서, 이창호는 마치 죄를 지은 어린이마냥 무릎을 꿇고 귀가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이창호가 패자로 착각할만한 모습이었다.

인간다움이란 것은 언뜻 이성적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기고서도 기쁘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졌지만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대견하기도 한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들. 사실상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1+1=2라는 이성적인 결론보다는 1+1=3이되고 10이 되는 비이성적인 대응이 훨씬 중요할때가 많은 법이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이성적인 틀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이리도 복잡다단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커제에게 무뚝뚝하게 오로지 착실하고 비정하게 이기는 수만을 뚜벅뚜벅 두어가는 알파고를 보면서,
아! A.I가 인간을 알아가려면 아직도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인간을 닮는 것이 A.I의 완성이라 한다면, 한방울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때야말로 A.I가 완성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단세포로부터 지능이 있는 생명에 이르기까지 진화의 과정을 밟는 과정에서 유기적 생명체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이제 우주라는 다음 목적지로 인간의 탐색의 장(場)을 넓히기 위해서 현대적인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A.I와 로봇기술의 발전과 인간이 우주로 또한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에 의해 A.I, 로봇, 인간의 융합이 어느시점에선가는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무기질로 둘러싸인 지적존재는 그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합당한가?라는 질문을 뛰어넘어, 인류가 무한한 우주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 DNA에 의한 진화의 역사는 끝나고, 인류의 의지를 통한 지적설계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아마도 그 흐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나고 만 것이 아닐까 싶다.

인류는 결국 지적능력과 그 정신적 구조물을 통한 바벨탑을 세우든가, 아니면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 초월하든가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까지의 인류의 발전의 원동력은 도덕, 윤리, 사랑과 같은 가치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호기심-미지에 대한 열망, 두려움을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모험정신이 발전의 선두에서 인류의 문명을 이끌어 왔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는 탓이다.

호모 데우스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소설과 영화에서 봐오던 SF세계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다.


8 Tips for Keeping Your Desired Weight

Have you lost weight with Runtastic and the new Results training app? Congratulations! You can be proud of yourself. There are a couple of tricks to keep the lost pounds from returning, so you can maintain your new desired weight permanently.

1. Stay active
Have you lost weight over the last weeks and want to maintain your new weight permanently? To avoid falling back into old habits, it is important to stay active and stick with your fitness routine. You should get 150 minutes of activity every week – that’s about 20 minutes per day.

계속 움직여라

지난 주에 뺀 몸무게를 유지하고 싶다면, 옛 습관으로 돌아가지 말고 계속 움직이고 운동 루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한주에 150분의 운동이 필요하며 이것은 하루에 20분 정도의 시간에 해당한다.

young woman doing Sit-Ups

2. Monitoring is good, but feeling well is better
Have you reached your goal and would love to maintain it in the long run? Of course, you do! Stepping on the scale is one good way to monitor your weight, but it shouldn’t become part of your daily routine. Listen to your body instead and focus on your personal well-being.

지속적인 관리는 좋다, 그러나 좋은 느낌이 낫다.

목표에 도달했는가와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을 원하는가? 물론이다. 매일 몸무게를 재는 것은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이 일상의 습관이 될 필요는 없다. 대신에 당신의 몸의 반응과 개인적인 웰빙에 집중하라.

3. Choose the right foods
You shouldn’t feel like you always have to choose between the double cream and the light version. When grocery shopping, pay attention to the ingredients of your food. The shorter the list, the better. Foods in their natural state are the best way to eat healthy. Have you ever heard of clean eating? Avoid products with a lot of fat and sugar and opt for alternatives. Choosing low-fat turkey instead of salami saves calories, without sacrificing taste – because you should still enjoy eating.

올바른 음식을 선택하라.

더블크림과 크림을 뺀 것 사이에서 항상 고민할 필요는 없다. 식재료 구입시 그 성분에 집중하라. 리스트가 짧을 수록 좋다. 자연 그대로의 음식이 건강에 최선이다. 깨끗한 먹거리라는 걸 들어봤는가? 지방과 설당이 들은 음식을 피하고,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하라. 살라미 대신에 저지방 칠면소를 선택하라, 맛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며, 맛을 즐기는 것 역시 중요하다.


Assorted fresh vegetables with dip, selective focus

4. Watch out for old habits
Not everyone manages to stay slim in the long run. People often catch themselves falling back into their old routines… Hold on to your newfound happiness. If you don’t want to give into old habits, you have to remain steadfast. It’s not always hunger that makes you reach for those fatty snacks and sugary sweets, but habit, too.

습관을 경계하라.

모두가 슬림함을 오랫동안 유지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습관으로 인해 예전으로 돌아간다. 새로 찾은 행복을 유지하라. 예전 습관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목표를 변함없이 유지해야 한다. 기름진 스낵과 달콤한 것들로부터 멀어지려고 할뿐만 아니라,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

5. Cook yourself
Convenience foods often contain lots of calories and more sugar and fat than you would like. To cut down on calories and do something good for your health, try cooking at home with fresh ingredients.

요리해 먹어라.

간편식은 많은 칼로리와 당신이 원하는 것보다 많은 설탕과 지방을 갖고 있다. 칼로리를 적게 하고 당신의 건간에 좋게 하려면 신선한 재료로 집에서 요리하도록 해야 한다.

A cropped shot of a woman chopping a variety of fresh fruit in her kitchen

6. Focus on relaxation and sleep
Too much stress at work and at home is not good for your figure. In stressful situations, your body produces hormones that promote fat storage. As you probably know, when we are stressed, we reach for unhealthy snacks. Make sure to give your body the time and relaxation it needs to recover.

휴식과 잠에 집중하라. 

직장과 집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신의 외모에 좋지 않다. 스트레스가 만읂 상황에서 당신의 몸은 지방 저장을 촉진하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당신이 아는 것 처럼,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때 몸에 안좋은 과자에 손을 대게 된다. 당신의 몸이 회복할 수 있게 시간과 휴식을 줘라.

7. Take your time eating
People who rush through lunch often end up eating more than they need to satisfy their hunger. Take your time when you eat and chew thoroughly. A study has found that slow eaters consume up to 10% less calories. The reason is simple: It takes about 20 minutes before the signal reaches our brain telling it we are full. If you eat too fast, you will continue to eat long after reaching the point of fullness.

천천히 먹어라.

급하게 먹는 사람은 공복을 해소하기 위한 것보다 많이 먹는다. 완전히 씹어서 먹도록 천천히 먹는다. 연구에 따르면 천천히 먹는 사람은 10% 정도를 덜먹게 된다. 우리의 두뇌는 포만감을 느끼는데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너무 빨리 먹으면 이미 포만감이 들만큼 먹은 후에도 더 먹게 된다.

8. Eating too little is counterproductive
Many people think that cutting back on how much they eat can help them maintain their weight permanently, but this is a fallacy. A minimum amount of energy is necessary for your body to function properly. If your body does not get the energy it requires, it will lower its energy needs. By eating too little, you lower your basal metabolic rate. As soon as you begin eating more food again, your body will start to crave the extra calories. Before you know it, you will start putting on weight rapidly – say hello to another victim of the yo-yo effect. Balanced meals, sufficient protein and regular training help you keep your basal metabolic rate steady and avoid the dreaded yo-yo effect. Skipping meals, thank God, is not the solution!

너무 적게 먹는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만읂 이들이 평소 양에 비해 적게 먹는 것이 몸무게를 적게 유지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틀린 사실이다. 몸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한 적정량이 있으며, 몸이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얻지 못하면, 에너지 소비를 낮추는 방향으로 몸이 변한다. 너무 적게 먹게 되면 신진대사가 감소하고, 그 후에 다시 많이 먹게 되면 더 많은 에너지가 몸에 쌓이게 된다. 요요를 막기 위해서는 균형잡힌 식단과 충분한 단백실을 먹으면서 운동을 통해 신진대사를 유지하여야만 요요를 막을 수 있다. 식사를 거르는 것은 절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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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tastic Results. Time for a transformation!
#Runtastic #Results #RR


(원본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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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MENT

7 KEYS TO PROPER RUNNING MECHANICS

By adidas 1 year ago

It’s easy to zone out when you run, leaving stress in the dust and doing something beneficial for your physical and mental health. Just don’t dream off to a land where mechanics don’t matter. Paying attention to technique will help you perform better and reduce your risk for common running ailments. Staying mindful of your body mechanics will save energy and reduce unnecessary movement to help you run stronger, with greater power and a more efficient stride, says Craig Friedman, vice president of the performance innovation team at EXOS.

Assess your posture and stride rate using the seven keys that follow, courtesy of Friedman. You don’t need to focus on these coaching cues the entire time, but check in with yourself about every 10 minutes. This will help you run with intention, which alone will instantly improve your mechanics.

1. Pull your toes up.

Most running injuries occur by running with your toes pointed down toward the ground. Aim to land through the middle of your arch by keeping your toes pulled up. Think about sliding your heel back and up underneath your butt. This will put you in the proper position to land on the balls of your feet.

2. Don’t overstride.

Your feet should land beneath your hips, not out in front of your body. One way to avoid overstriding: Speed up your stride rate. If you’re running with a faster stride rate, you’ll pick your feet up and put them down quickly, making it very hard to overstride. Your feet should strike the ground roughly 170-180 times a minute.

3. Keep your torso engaged.

Your abdominal muscles should stay flexed if you’re running tall. Try lifting your head as far away from your tailbone as possible to maximize the muscle contraction and train your core while you run. Another way to think about it: Focus on running tall as if a string was pulling your hips forward.

4. Relax the iron fist.

Keep your hands lightly cupped, but don’t make a fist. Fists cause your forearms to tense up, which impedes proper shoulder motion. Also, be careful not to tense your fingers and slice through the air. This could cause your arms to move in a circular action instead of moving forward.

5. Keep your shoulders back and down.

There’s a tendency to hunch over as you get tired. Resist it by keeping your shoulders back and down so your chest is lifted. Move your arms from your shoulder, like a pendulum, so your elbow angle remains the same.

6. Look for an angle.

Keep your elbows fixed at right angles (bent 90 degrees) and pulled close toward your body. Don’t allow them to flare out. Your arm action will be more efficient.

7. Eyes up.

Keep your head up and your eyes fixed on the horizon to stay tall and upright while you run.


By EXOS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0년 예루살렘 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당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소인 가자 지구에 행한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1천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양민이 죽은 사건으로, 이 상을 수상해야 하느냐라는 문제로 일본 국내에서 꽤 논란이 있었다.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상을 수상하기로 수락하고, 예루살렘에서 상을 수상후 알과 벽이라는 주제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였다.

 수상 소감은 개인적으로 감명이 깊었으며, 그 주제는 힘없는 인간 개개인은 알과 같이 연약한 존재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벽(사회, 국가와 같은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의미)에 의해 연약한 인간이 벽에 부딪혀 다치고 죽어가는 아이러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인간 개개인은 알과 알로서 서로의 소통을 통해 우리가 만든 벽에 부여한 비인간적 요소들을 타파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갈파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이야기하는 성경의 제1의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글귀의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고도화된 문명을 통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대한 벽들로 이루어진 유형과 무형의 공간속에서 있으며, 그러한 벽이 없이는 사실상 생존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이미 우리는 돌아갈 자연을 잃어버린 실낙원의 세계를 영원히 살아가야 할 숙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라카미는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틀려도, 나는 알 편에 설 것입니다."라면서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이 아닌, 약자의 편, 인간의 편에 서겠다는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이미 알에 대해 벽은 절대적인 강자이며, 그 벽에 부여된 권위와 힘에 의해 알을 언제라도 깨뜨려버릴 수 있는 절대성에 의해 아무리 선한 의지라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인간의 위협이 될 수 있기때문에 자신은 무조건 알 편에 서겠다는 인간으로서의 주체적 의지를 갈파했다.

 현실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 '알'이며, 무엇이 '벽'인지에 대해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을까? 또한 그것이 구분된다고 해서 자신있게 '알'의 편에 설 수 있을까?

 100 여년전 이 땅에, 팽창하는 제국주의의 기치 아래, 서구 열강을 위시한 일제의 강점이 시작되었으며,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을사오적과 같은 일제의 힘이란는 '벽'에 무릎을 꿇은 일단의 조선의 힘을 갖고 있던 기득권 세력의 '알'들에 의해 500여년을 이어온 조선이 이땅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조선이라는 거대한 '벽'에 의해 보호되던 무수한 선량한 '알'들이 희생되었다.


 영화 밀정을 보면 위대한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을 모델로 한 독립운동가 리더인 정채산(이병헌 분)의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한다.’

 이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할지라도, 그 희생을 우리는 계속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희생을 통해 다른 잠자는 '알'들을 깨워서 우리가 만들어올린 이 부조리하고 잘못된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내가 만약 저 시대에 태어나, 도저히 깨기가 불가능한 '벽'에 도전하는 '알'이 되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과연 내가 자신있게 전 '알'의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는 회의적이다. 나와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그 불가능한 일을 했기에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의를 오늘날까지도 기리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무수한 희생과 희생을 통해 임시정부의 대의가 점점 한민족의 대중에게 스며들고, 기회가 무르익는 시기에 미국의 참전과 러시아의 가세로 급속하게 세를 잃은 독일과 일본의 연합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은 임시정부와 독립군의 주체적인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 이후 2차 대전의 승전팀인 연합군의 힘의 논리에 의해 남과 북은 양분되고, 남한의 정부는 미국의 간택을 받은 친일세력으로 수립되면서, 수많은 한민족의 구심점이 되었던 '알'의 편에 서있던 주체적인 독립 세력은 일제라는 '벽'의 편에 서던 기회주의적 '친일'세력에 의해 도리어 숙청되는 잔인하지만 슬픈 역사가 70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 역사의 주된 줄거리이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인간으로서 '벽'이 가진 힘이 '알'에게 횡포와 잔인함이 될때 그것에 맞서려고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 인지상정이 행동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내가 인간이라는 자각과 그 인간성을 지키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내가 비록 '벽'에 항거하다가 깨질 수 있는 '알'이지만, 그것이 내가 '알'로서 가져야 할 인간의 숙명이며 그것이 내가 인간이라는 자각을 가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 깨달을 때만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대비되는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인간사회에서도 흔치 않은 '형이상학적' 행동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용기 있는 행동을 바람직하고 옳은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매트릭스에서는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약은 진실된 현실, 파란약은 매트릭스에서의 삶이라고 하면서 선택하라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자유며, 자신이 주는 것은 단지 진실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네오는 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빨간약을 먹었지만 우리 모두가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실제로 사이퍼는 그 진실을 견디지 못하고 스미스요원에게 자신을 다시 매트릭스로 넣어달라며 딜을 하기도 한다.

 내가 네오인지, 아니면 사이퍼인지를 알기 위해선 계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무엇이 '벽'인지 그리고 무엇이 '알'인지를 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혜 뒤에 비로서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만이 인간은 '알'로서의 자각에 이를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의 문제는 해방후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제시대의 교육시스템의 잔재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

식민지 국민으로서 우리의 교육은 그들이 원하는 인재의 양성, 즉 시키면 시키는데로 한다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교육을 그 원형으로 한다. 

소위 말하는 주입식교육을 현재의 사회의 주역인 7080세대까지도 그대로 수정없이 받아왔다. 

경제 발전기에 대학교육을 받은 인재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덕목은 지혜로운 노동자보다는 지식이 있고, 자기의 분야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며, 야근과 주말근무등을 마다하지 않을 성실(?)한 노동자였다. 


사측에서 시키면 별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지시를 따르고 과제를 수행하는 인재를 이 사회는 원했던 것이고, 교육은 그 요구에 잘 부응해왔다.


그러다가 경제와 사회가 발전하면서 지속적으로 기업과 사회는 업그레이드된 퀄리티의 인재를 요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석사와 박사 그리고 유학을 갔는냐 안갔느냐에 의해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고학력 요구사회로 변모해왔다. 이러한 세태는 90년대 이후 가속화되기 시작했으며 90년대말과 2000년대 중반 2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고급일자리는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학력인플레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우리사회의 고학력자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80년대 말 이후부터 교육의 근간이 되는 대학입시 시스템을 불과 몇 년의 주기로 파행적으로 변경해오고 있다. 그 행태는 파행적이긴 하나, 그 방향은 2가지로 요약된다. 

대학이 면접시 고등학교에서의 성적인 내신과 수능성적으로 평소의 학습능력에 검증하고, 입시과정에서 논술로 사고의 역량을 검증하는 방향이다.


중,고교 과정을 통해 사지/오지선다형의 선택형 문제의 정답을 외우는 기술및 지식습득 방식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얼마나 자신의 역량으로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느냐는 사고의 힘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이지만 아직도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생각의 힘보다는 지식의 축적에 포커스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목고가 됐든, 일반고가 됐든, 중/고교를 입시제를 부활하든, 아니면 모두 뺑뺑이를 돌리든 그 형식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최소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혹은 공자의 "예(禮)", 또는 맹자의 "인(仁)"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 친구랑 충분히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을 가진 인간을 만드는데 주안점을 두는 교육이라면 충분하다.

1+1=2라든가, 미적분이라든가, 뉴톤의 법칙, 영어의 5형식, 화학의 공유결합, DNA와 염기서열, 이런 과학적 지식에 대해서는 이미 대학교육의 AP(전단계)로서의 교육은 충분히 넘칠 지경으로 우리의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그 흔한 노벨물리,화학,의학 상 수상자가 한명도 안나오는 이유는 소위 '성공한 인생'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를 가는 똑똑한 아이들은 많으나, 나는 무엇을 하며 나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는 지혜로운 아이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미덕은 다양성 속에 통합된 민의를 도출하는데 있다(unity in diversity).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수 십억년 전부터 진화의 흐름을 이어오며 꾸준히 생존하고 있는 있는 근본 바탕에는 종내(種來) 혹은 종간(種間)의 다양성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해로운 것은 제거해가는 자연선택의 원리가 있다. 


다윈이 발견한 자연선택의 원리는 인간이 규율로서 정해놓은 의도적인 옳고 그름, 즉 선과 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진화란 자연속에서 종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유전자 풀에서 대립인자들간의 경쟁을 통해 어떤 대립인자가 사느냐 죽느냐의 결과가 확률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한 확률적 축적에 의해 거대한 분기의 방향이 결정되며, 분기의 축적을 통해 지금과 같은 생물의 다양성이 확보된 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생물학적 진화에 덧붙여 문명적 진화라는 개념이 더해진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류의 문명은 '밈(meme)'이라는 문화적 유전자들이 대중문화의 Pool속에서 가장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문화적 결정들에 의해 분기된 문명의 결정들의 축적이라고 했다.

오늘의 탄핵 결정은 그간 대한민국의 문명적 발달과정에서 '친일'과 '독재', 그리고 '반민주'와 '부정부패'라는 문명의 어두운 '밈'들에 대항해 '정의'와 '자유', 그리고 '진리'라는 '밈'들이 또 한 번 승리한다는 문명사의 자연선택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물( water)이 대부분의 물질에 대해 수용액으로 작용하는 이유를 파고들어가보면 분자구조상의 이유때문이다. 수소원자와 산소원자는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공유결합(covalent bonding)이라는 것을 한다. 화학식으로 나타내자면 H-O-H의 결함을 이루는데 글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실제의 결합구조를 보면 수소와 수소원자 104.5도(그림 참고)를 이루도록 되어 있다. 원자의 최외각을 도는 전자로 인해서 생기는 차이 때문이다.(양자역학적 표현으로는 전자는 확률분포로 이루어진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ㅋㅋㅋ -_-;;). CO2와 같이 카본계 공유결합은 구조상으로도 직선(linear)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전하의 balance가 공간적으로도 중성을 가지게 되지만, H2O는 굽은(bent)된 구조(+전자의 운동)에 의해 물분자 전체적으로 봤을때 (+)전하와 (-)전하가 국지화(localized)되어 쌍극자(dipole)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쌍극자에 의해 대부분의 (친수성)물질에 대해 O원자가 가지는 (-)전하는 물질의 (+)전하에, H원자가 가지는 (+)전하는 물질의 (-)전하를 끌어당김으로 인해서 소금(NaCl, 이온결합)과 같은 물질을 녹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상식적이면서도 생명을 유지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메카니즘에는 이렇듯 가장 초미세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근본원리가 담겨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인쉬타인은 그간 물리학에서 밝혀진 4개의 힘(강력,약력,전자기력,중력)에 대한 대통합 이론(GUT)를 위해 말년의 20여년간을 힘써왔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후 여러학자들의 노력으로 강력,약력,전자기력까지의 통합은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는 중력의 통합을 증명해내지 못한 상태이다.

아인쉬타인이 GUT에 매달린 이유중 하나는, 코펜하겐학회로부터 물리학계에서 인정된 미세세계의 양자역학적 해석(통계가 불가분 들어갈 수 밖에 없다)에 대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학자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주상수를 도입하는 등 기존의 물리학적 체계(아이러니하게도 그 체계의 아주 중요한 일부를 그가 세웠는데도 불구하고)에 대한 사고를 넓히기 위해 씨름해왔지만 결국은 이에 실패하고는 말년을 꽤 우울하게 보냈던 것 같다.

노자에,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다. 그 뒤에 이어지는 글이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狗)라 하여
만물을 대하는데 있어 똥강아지풀을 대하듯이 한다로 합쳐 풀어보면, 천지(신)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인자한 구석이 없다. 모든 만물을 대하기를 다 풀강아지처럼 업신(혹은 꺼꾸로 다 공경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개울가에 핀 똥강아지풀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문맥상 어색하니까 업신여긴다고 보는게 이해하기 편하다)여긴다는 것으로, 모든 만물의 귀천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최근에 종영된 '찬란하고 쓸쓸하神 도깨비'라는 드라마에서 도깨비가 되기 전 고려의 상장군인 김신(공유가 맡은 역)에게 이미 죽은 선왕(先王)이 자신의 병세가 깊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유언을 남긴다. 유언의 내용은, 자신의 이복동생이자 앞으로 왕위를 잊게 될 왕여(이동욱이 맡은 역)를 자신이 항상 홀대하였는데 그 뜻은 "내가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았다 전하라"였다. 이 말은 그가 나의 이복동생이지만 내가 그를 마음으로는 사랑하였으나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궁궐에서(왕인 본인도 결국은 오랜 시간동안 서서히 독살당해왔다.) 그 사랑하는 마음을 표했다가는 어떤 변을 당할지 염려스러워 부러 거리를 둔 것이다.

(도깨비의 상왕의 유언장면, 이 분 여기 한컷 나오신다. 묵념)


신이 만약 있다면, 이 세상을 움직이는 단 하나(혹은 몇개 정도의) 근본적인 원칙만을 세워두고 이 세상을 스스로 움직이게 놔뒀을 것이라는 것이 노자의 천지불인에 담겨진 사상이다. 서양은 하나님이라는 신의 존재를 인격신으로 주로 묘사하는 것에 익숙한 문화이다. 이런 배경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격신의 개념의 이야기들이 많다. 


2003년 개봉한 짐캐리 주연의 '브루수 올마이티<Bruce Almighty>' 같은 영화에서 보면, 하나님(모건 프리먼)이 잠시 휴가를 간 사이 그의 업무를 대신 맡은 짐 캐리가 세상 모든 사람의 기도를 다 들어주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로 인해 복권 1등 당첨된 사람이 부지기수로 등장해서 결국 복권1등 당첨이라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되어버리게 된다.

(브루스 올마이티의 명장면, 커피로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장면을 패러디)


이미 니체가 근대에 와서 이야기했듯이 "신"은 너무나도 복잡해지고 다양해졌으며 발전한 세계에 관여하기에는 너무나 낡고 유약한 개념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혹은 만물)이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 신이란 그 인간(혹은 만물)이 살아갈 세상이 존재할 단초만을 제공하는 어떤 씨앗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신다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신은 있다, 없다의 문제에서 다툴 쟁점이 아니라, 이제는 그가 던진 단초로부터 파생된 문제들에 대해 만물이 수십억년간 이룩해온 결과와 업적만으로도 이 세상엔 너무나도 알아야하고, 해야할 일들이 많다.





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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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연작)


포근한 솜이불 속에서 엄마의 가슴팍에 안겨 자고 있는 아기의 볼을

살살 건드려보고 싶기도 하고,


꽃샘추위에  아직은 냉기가 가시지 않은 처녀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이른 봄향기에 취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 밤이 쉬이 감에,  나는 안타까와.. 

더 새빨갛게 타버리지 못함이 못내 아쉬워 시뻐얼건 내 땀구녕을 한껏

열고 마지막 누런 한숨을 목놓아 쉬고 있다.


새벽 닭소리와 벌겋게 떠오르는 동녁하늘에 내 몸이 산산히 부서져가

재만 남아 고갯짓 겨우 하니 바싹 마른 몸에 내리우는 이슬 한방울에

밤새 먼지낀 얼굴을 닦이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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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35킬로를 넘어가면 소화기관에 축적된 에너지는 모두 연소되고, 

이후는 내장과 근육에 축적된 에너지를 사용하는 사점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이르면 보통의 사람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피로로 인해 달리는 행위 자체에 회의가 들게 되어 결국은 더 이상의 달리기를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하는 구간이라고 한다.


이 지점을 넘어서 말 그대로 극한의 고통속의 달리는 마라토너들의 얼굴을 자세하게 볼 기회는 별로 없다. 우연히도 황영조 선수가 우승한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대회 영상을 보면서 골인점을 통과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고통을 참으며 무엇을 위해 한순간 한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짜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일그러진 얼굴이 이렇게 아름다운질 새삼 깨달았다.

유명한 매슬로의 인간의 욕구 5단계설에서 상위의 욕구인 4단계가 존경욕구, 5단계가 자아실현욕구라고 한다.

4단계의 존경욕구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충족되는 욕구이다. 일반적으로 40대 이상이 되면  자기가 속한 집단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고 선임자로서의 존경과 가족에게도서 가장으로의 권위등을 갖게 되어 자연스럽게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어진다.

더욱이 선출직인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등을 통해 정치에 길에 나서게 된 이들은 아주 강력한 자부심을 갖게 될것이다. 그러한 선출 자체를 통해 얻는 자부심과 기쁨은 4단계의 존경욕구와 5단계의 자아실현욕구에 대한 충족감은 일반적인 회사에서 승진하는 것과는 비교과 안되는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를 듯할 기쁨일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충족감은 삶의 엄청난 모티베이션이 된다. 실로 이 정도의 강력한 정신적 충일감은 마약을 복용하는 순간과도 비교될 것이다.

마라토너들이 나이가 들어가며 격한 운동이 주는 육체적 손상(무릎연골 파손, 부정맥, 심근 손상, 폐손상)의 위험으로 의사가 더 이상 마라톤을 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권유를 한다. 그래도 이를 무시하고 진통약을 먹어가면서까지 마라톤을 계속하는 이들이 많다.


그 이유는 마라토너들이 말하는 런너스 하이라는 현상때문이라고 한다.


고통스러운 뜀뛰기의 고통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몸이 생존을 위해 고통의 극한치를 높여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 누적된 고통이 후반에 이르러 어떠한 사점(dead point)를 지나게 되면 이때는 도리어 몸은 비상사태를 감지하고 뇌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천연 호르몬인 엔돌핀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이 되면 고통은 기쁨으로 바뀌며, 천근만근이던 몸은 달리기를 처음 할때보다 훨씬 가벼운 상태로 변하는 런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하게 된다.

마라톤은 말 그대로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해당하는 거리를 자신의 힘으로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런너스 하이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이 마라톤 선수가 이번 대회가 내 생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1등을 해야겠다는 말도 안되는 비정상적인 목표를 잡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평소 마라콘 풀코스를 4시간 정도 되야 들어오는 선수가 세계기록인 2시간대를 목표로 말 그대로 전력질주를 하다가 런너스 하이는 커녕 초반 몇 킬로를 뛰다가 심장이 터져서 죽고 말 것이다.

보통 이걸 무협적인 용어로는 주화입마라고 한다.

남들에게 존경받고, 자아를 실현하려는 욕구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하나 그 욕구에 앞서 하나의 단서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은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데 있지만 그 에너지를 넘어서 쏟아부으면 대천명을 하기 전에 자기의 수명 자체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박근혜의 탄핵이 임박해진 지금, 2017년 대선이 기정 사실화 되가고 있는 시점에서, 여기 저기서 내가 이번 레이스에서 1등을 하겠다고 이미 주화입마에 빠져있는 정치인들이 보인다. 


그 사람들의 평소에 행보를 보면서 저 사람만은 망가지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이들마저도 대통령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저렇게 휘청거리는 걸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진 마성이 엄청나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

나는 정상적인 마라톤 경기를 보고 싶을 뿐이다. 그 누구도 아스팔트 위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다.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진인사 대천명의 마음으로 레이스에 나가기 전에 시장통에 가서 민심도 좀 읽고, 내가 냉정하게 몇 등 정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등수라도 유지하려면 내가 어떻게 뛰어야 할지를 사우나 냉탕에 들어가서 머리를 푹 식히며 차분하게 생각들 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유시민이 권하는 글쓰기를 위한 전략적 독서목록 32권

1.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문예출판사)
2.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3.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 읽었음.
4.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 읽었음.
5. 리처드 파이만 강의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학 이야기> (승산)
6.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 반쯤 읽다 말았음.
7.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다락원)
8.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우물이있는집)
9. 스티븐 핑커 외 <마음의 과학> (와이즈베리)
10.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바오) -> 생각만 하다가 못읽었음.
11. 신영복 <강의> (돌베개)
12. 아널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동서문화사)
13.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한국경제신문사) -> 읽다 말다가,, 반쯤 읽었음.
14.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 책은 20년째 소장중.
15.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문예출판사)
16.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홍신문화사)
17.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18.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 읽다 말았음.
19.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문학사상) -> 일었음.
20.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어크로스)
21.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갈라파코스)
22.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23.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홍신문화사)
24.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25.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26.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책세상)
27.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 역시 읽다 말았음. 소장해야 할 책으로 생각함.
28. 케이트 밀렛 <性 정치학> (이후)
29.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서해문집)
30.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 역시 소장해야 할 책. 안읽었음.
31.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은행나무)
32.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내가 보기에 여기 나열된 32권은 모두 소장을 필히 해야 할 책들이다. 한,두번 읽어서 그 내용을 깨우칠 만한 글들이 아니다.

문득 창문밖으로 드는 햇살이 싱그럽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온 다음날, 그간 겨울의 찌든때에 간만에 몸을 불린 유리창에 걸린 물방울속에 맺힌 햇빛 한올한올이 다정하다. 숨쉬는 공기의 여전한 매캐함 속에서 그래도 봄의 예감이 드는지 나이든 이들의 무표정 속에서도 어린 처자들의 볼에는 자그마한 홍조가 피어오르고 그 새빨간 입술에서는 경쾌한 조잘거림이 노란 빛으로 묻어나온다.

이 찬란한 순간이 아름다운건 이 모든 것이 곧 쉬이 갈 줄을 아는 중년의 지혜때문인가? 우리는 덧없는 영원을 추구할 뿐, 순간순간 영원히 지속되어지는 찰나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들에겐 그 미세한 지속됨의 안타까움으로, 보지 못하는 이들에겐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을 뿐이다.

어릴 적 시장통을 같이 걷던 엄마의 젊을 적 미스코리아같은 모습은 빛바랜 액자속에서만 그 빛을 발하고, 꽃미남이던 아버지는 결혼식 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과거의 아름다움들은 이제 본인의 기억속에선 흩어진 파편들로만 남아있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 슬픈 공룡의 발자욱을 어느 바닷가에서 처음 보던 젊은 날, 괜시리 센치해져서 떨어뜨린 눈물의 부끄러움이 어느새 추억이라는 이름이 되버린 걸 알기도 전에, 남들에게 보이는 깊은 주름외엔 더 남길게 없기에 이젠 슬프지도 않다.

만주로, 간도로, 연해주로 가고픈 발길은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체 나는 오늘도 제자리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꿈꾼다.




감정과 실패, 그리고 행복 찾기에 관하여

-2008년 6월15일 스탠퍼드 대학



 Thank you, President Hennessy, and to the trustees and the faculty, to all of the parents and grandparents, to you, the Stanford graduates. Thank you for letting me share this amazing day with you.

 I need to begin be letting everyone in on a little secret. The secret is that Kirby Bumpus, Stanford Class of '08, is my god-daughter. So I was thrilled when President Hennessy asked me to be your Commencement speaker, because this is the first time I've been allowed on campus since Kirby's been here.

 감사합니다, 헤네시 총장님, 대학 이사진과 교직원, 부모님과 조부모님들, 그리고 졸업생 여러분. 이렇게 멋진날에 제가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모든 분께 작은 비밀 한 가지로 시작하려 합니다. 그 비밀은 이번 졸업생 중의 한명인 커비 범퍼스가 바로 제 대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네시 총장님이 제게 졸업 축사를 부탁하셨을 때 전 몹시 감격했습니다. 커비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이 교정에 올 수 있었으니까요.

 You see, Kirby's a very smart girl. She wants people to get to know her on her own terms, she says- not is terms of who she knows. So, she never wants anyone who's first meeting her to know that I know her and she knows me. So, when she first came to Stanford for new student orientation with her mom. I hear that they arrived and everybody was so welcoming, and somebody came up to Kirby and they said, "Oh my god, that's Gayle King!" Because a lot of people know Gayle King as my BFF.

 아시는 것처럼 커비는 매우 똑똑한 여학생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맥으로서가 아니라 본인의 참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저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법이 없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커비가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스탠포드에 왔을 때, 전 모든 이들이 모든 사람들이 반가워했고 그 중에 누군가 커비에게 다가와 "세상에, 저 사람 게일 킹이잖아!"라고 했답니다. 제 절친인 게일을 아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And so somebody comes up to Kirby, and they say, "Oh my god, is that Gayle King?" And Kirby's like, "Uh-huh, She's my mom." And so the person says, "Oh my god, does it mean, like, you know Oprah Winfrey?" And Kirby says, "Sort of."

 I said, "Sort of? You sort of know me?" Well, I have photographic proof. I have pictures which I can e-mail to you all of Kirby riding horsey with me on all fours. So, I more than sort of know Kirby Bumpus. And I'm so happy to be here, just happy that I finally, after four years, get to see her room. There's really nowhere else I'd rather be, because I'm so proud of Kirby, who grauates today with two degrees, one in human bio and the other in psychology. Love you, Kirby Cakes! That's how well I know her. I can call her Cakes.

 누군가 커비에게 "오, 저 사람 게일 킹 아냐?"라고 하면 커비는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응 우리 어머니야." 그러면 그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하죠. "세상에, 그럼 너 오프라 윈프리도 알겠네?" 그러면 커비는 "그렇다고 할 수 있지."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고? 우리가 고작 그 정도니?"라고 커비에 이야기했죠. 저와 커비가 가깝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습니다. 전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께 제가 팔을 짚고 엎드려서 커비를 등에 태운 사진을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저와 커비 범퍼스는 아는 정도는 넘는 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여기에 온 것이 행복합니다. 4년 만에 커비의 방을 구경하게 되어 행복할 따름입니다. 커비를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제가 정말로 가보고 싶었던 곳이거든요. 커비는 오늘 인간생물학과 심리학에서 2개의 학위를 받습니다. "사랑한다 커비 케이크(멋진 여자를 지칭하는 애칭). 저는 커비를 케이크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친합니다. 

 And so proud of her mother and father, who helped her get through this time, and her brother, Will. I really had nothing to do with her graduating from Stanford, but every time anybody's asked me in the past couple of weeks what I was doing. I would say, "I'm getting ready to go to Stanford."

 I just love saying "Stanford." Because the truth is, I know I would have never gotten my degree at all, cause I didn't go to Stanford.

 그리고 지금껏 커비를 도와준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남동생 윌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사실 그녀가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지난 몇 주 동안 누군가 제게 뭐하며 지내내고 물을 때마다 "스탠퍼드에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냥 '스탠퍼드'를 입에 올린다는게 좋습니다. 스탠퍼드에 다니지 않았으니 평생 스탠퍼드 학위를 따지는 못하겠지만요.

 I went to Tennessee State University. But I never would have gotten my diploma at all, because I was supposed to graduate back in 1975, but I was short one credit. And I figured, I'm just going to forget it, cause, you know, I'm not going to march with my class. Because by that point, I was already on television. I'd been in television since I was 19 and a sophomore. Granted, I was the only television anchor person that had an 11 o'clock curfew doing the 10 o'clock news. Seriously, my dad was like, "Well, that news is over at 10:30. Be home by 11."

 저는 테네시 주립대학교에 다녔습니다. 1975년에 졸업할 예정이었지만 한 학점이 모자라 학위를 받지 못햇습니다. 그때 저는 학위 따위는 그냥 잊자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교수가 될 생각도 없었고 사실 그 무렵에 이미 텔레비젼에 출연하고 있었으니까요. 대학 2학년이던 19살때부터 텔레비젼에 출연했습니다. 저는 10시 뉴스를 진행하고 11까지 집에 돌아가야 하는 유일한 텔레비젼 앵커였습니다. 아버지는 정말로 이렇게 말씀하셨죠. "뉴스가 10시30분에 끝나니까 11까지는 집에 오도록 해라."

 But that didn't matter to me, because I was earning a living. I was on my way. So, I thought, I'm going to let this college thing go and I only had one credit short. But, my father, from that time on and four years after, was always on my case, because I did not graduate.

 He'd say, "Oprah Gail" - that's my middle name - "I don't know what you're gonna do without the degree." And I'd say, "But, Dad, I have my own television show." And he'd say, "Well, I still don't know what you're going to do without that degree." And I'd say, "But, Dad, now I'm a talk show host." He'd say, "I don't know how you're going to get another job without that degree."

 학점은 제가 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 이미 돈벌이를 하고 있었고, 내 진로를 찾은거였지요. 그래서 대학문제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고작 한 학점이 모라잔 것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졸업을 하지 않았기에 이후 몇 년 동안 항상 대학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아버기는 이렇게 말하곤 하셨죠. "오프라 게일"-제 중간이름입니다.-"대학 학위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구나." 그러면 전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전 지금 제 텔레비젼 쇼를 진행하고 있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또 이렇게 말씀을 하시죠. "음 그래도 대학 학위도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럼 전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전 지금 토크쇼의 진행자에요." 그러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학위도 없이 다른 일자리를 어떻게 구할지 난 정말 모르겠구나."라고요.

 So, in 1987, Tennessee State University invited me back to speak at their commencement. By then, I had my own show, was nationally syndicated. I'd made a movie, had been nominated for an Oscar and founded my company, Harpo. But I told them, I cannot come and give a speech unless I can earn one more credit, because my dad's still saying I'm not going to get anywhere without that degree.

 So, I finished my course work, I turned in my final paper and I got the degree. And my dad was very proud. And I know that, if anything happens, that one credit will be my salvation.

 그런 와중에, 1987년, 테네시 주립대학교에서 졸업식 축사에 저를 초청해주었습니다. 당시 제 토크쇼(오프라 윈프리 쇼)는 전국적으로 방송되고 있었고, 제가 만든 영화는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있었으며, 전 저의 회사인 하포(오프라의 철자를 반대로 함)를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학점을 더 따기 전까지는 갈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여전히 제가 학위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제 학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제출했으며,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매우 자랑스러워하셨죠. 저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한 학점이 제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을 믿습니다.

 But I also know why my dad was insisting on that diploma, because, as B.B.King put it, "The beautiful thing about learning is that nobody can take that away from you." And learning is really in the broadest sense what I want to talk about today, because your education, of course, isn't ending here. In many ways, it's only just begun.

 아버지가 학위를 그렇게나 고집하셨던 것은, 비비킹이 말했듯이, "배움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아무도 그것을 당신에게 빼앗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움이야말로 넓은 의미에서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배움이란 것은, 당연하게도,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여러분의 배움은 이제 막 시작인 것입니다.

 The world has so many lessons to teach you. I consider the world, this Earth, to be like a school and our life the classrooms. And sometimes here in this Planet Earth school the lessons often come dressed up as detours or roadblocks. And sometimes as fullblown crises. And the secret I've learned to getting ahead is being open to the lessons, lessons from the grandest university of all, that is, the universe itself.

 세상엔 여러분을 가츠칠 수많은 교훈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 즉 지구는 학교와 같은 곳으로 우리의 인생은 교실과 같습니다. 때로는 여기 이 지구라는 교실에서 가르침은 종종 우회로나 장애물로서 나타나곤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파괴적인 위기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 교훈을 헤쳐나가면서 얻은 비밀은 이 위대한 대학, 즉 이 세상의 가르침에 언제나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It's being able to walk through life eager and open to self-improvement and that which is going to best help you evolve, cause that's really why we're here, to evolve as human beings. To grow into more of ourselves, always moving to the next level of understanding, the next level of compassion and growth.

 I think about one of the greatest compliment I've ever received. I interviewed with a reporter when I was first starting out in Chicago. And then many years later, I saw the same reporter. And she said to me, "You know what? You really haven't changed. You've just become more of yourself."

 자기개발의 기회를 가지고, 여러분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도움이 되는 일을 하도록 간절히 소망하고 그것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왔습니다.(정확히 해석하지 않으면 이 문장은 의미를 파악하기 매우 힘들다. (현재의)우리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다음 단계의 이해와 다음 단계의 정열 그리고 성장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전 이제껏 제가 받아본 최선의 찬사에 대해 생각합니다. 시카고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한 리포터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후에 전 그 리포터를 다시 만났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저에게, "알아요? 당신은 진짜 변하지 않았어요. 더 훌륭해졌을 뿐이에요."

 And that is really what we're all trying to do, become more of ourselves. And I believe that there's a lesson in almost everything that you do and every experience. and getting the lesson is how you move forward. It's how you enrich your spirit. And trust me. I know that inner wisdom is more precious than wealth. The more you spend it, the more you gain.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목표입니다. 더 훌륭해지는 일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과 경험에 교훈이 있으며 그 교훈을 얻으면서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갈거라는 걸 믿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할겁니다. 그리고 절 믿으세요. 전 내면의 지혜가 돈보다도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지혜는 쓰면 쓸수록 더 많은 지혜를 여러분에게 얻게 해줄 겁니다.

 So, today, I just want to share a few lessons?meaning three?that I've learned in my journey so far. And aren't you glad? Don't you hate it when somebody says, "I'm going to share a few," and it's 10 lessons later? And, you're like, "Listen, this is my graduation. This is not about you." So, it's only going to be three. 

자,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몇 가지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인생의 여정에서 배웠던 세 가지 교훈입니다. 기쁘죠? 누군가 몇 가지 말한다고 해놓고 10가지를 말하면 싫죠? 여러분들은 이럴 겁니다. “이거보세요, 제가 졸업하는 거라고요. 당신이 아니고요.” 그래서 세 가지만 말하려고 합니다.  

The three lessons that have had the greatest impact on my life have to do with feelings, with failure and with finding happiness.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세 가지 교훈은 직감과 실패 그리고 행복을 찾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A year after I left college, I was given the opportunity to co-anchor the 6 o'clock news in Baltimore, because the whole goal in the media at the time I was coming up was you try to move to larger markets. And Baltimore was a much larger market than Nashville. So, getting the 6 o'clock news co-anchor job at 22 was such a big deal. It felt like the biggest deal in the world at the time. 

전 대학을 떠난 지 일 년 뒤 발티모어에서 6시 뉴스 공동 앵커를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출연할 당시 방송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발티모어는 나쉬빌보다 훨씬 규모가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2살에 그곳에서 6시 공동앵커를 맡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죠.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And I was so proud, because I was finally going to have my chance to be like Barbara Walters, which is who I had been trying to emulate since the start of my TV career. So, I was 22 years old, making $22,000 a year. And it's where I met my best friend, Gayle, who was an intern at the same TV station. And once we became friends, we'd say, "Ohmigod, I can't believe it! You're making $22,000 and you're only 22. Imagine when you're 40 and you're making $40,000!" 

전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마침내 바바라 월터스 앵커처럼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TV에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를 따라하려고 애썼습니다. 전 22살에 연봉 2만 2천 달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서 인턴사원이었던 지금 저의 가장 친한 친구 게일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맙소사, 믿을 수가 없어! 22살 밖에 안됐는데 2만 2천달러를 벌다니! 마흔 살이 되면 4만 달러를 번다고 상상해봐!”라고 하곤 했습니다. 

 When I turned 40, I was so glad that didn't happen. 

제가 40살이 됐을 때 그렇게 되지 않아서 매우 기뻤습니다. 

So, here I am, 22, making $22,000 a year and, yet, it didn't feel right. It didn't feel right. The first sign, as President Hennessy was saying, was when they tried to change my name. The news director said to me at the time, "Nobody's going to remember Oprah. So, we want to change your name. We've come up with a name we think that people will remember and people will like. It's a friendly name: Suzie." 

22살이었던 제가 그곳에서 한 해에 2만 2천 달러를 벌면서도 무언가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맞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헤네시 총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첫 번째 이유는 방송국에서 제 이름을 바꾸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뉴스 감독님이 제게 “아무도 오프라를 기억하지 못할거야. 그러니까 이름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사람들이 기억하고 좋아할 만한 이름을 생각했는데 친근하게 수지 어때요?”라고 하셨습니다. 

Hi, Suzie. Very friendly. You can't be angry with Suzie. Remember Suzie. But my name wasn't Suzie. And, you know, I'd grown up not really loving my name, because when you're looking for your little name on the lunch boxes and the license plate tags, you're never going to find Oprah. 

안녕 수지. 매우 친근하죠. 수지에겐 아무도 화를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수지를 기억할 겁니다. 하지만 제 이름은 수지가 아니었습니다. 전 자라면서 제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도시락 통이나 열쇠고리를 찾을 수는 있어도 오프라라고 쓰여 있는 것은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So, I grew up not loving the name, but once I was asked to change it, I thought, well, it is my name and do I look like a Suzie to you? So, I thought, no, it doesn't feel right. I'm not going to change my name. And if people remember it or not, that's OK. 

그래서 전 제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라고 하니 글쎄, 이건 내 이름인데 그리고 수지가 나한테 어울릴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했습니다. 이건 내게 맞지 않다고 말이죠. 전 이름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괜찮았습니다. 

And then they said they didn't like the way I looked. This was in 1976, when your boss could call you in and say, "I don't like the way you look." Now that would be called a lawsuit, but back then they could just say, "I don't like the way you look." Which, in case some of you in the back, if you can't tell, is nothing like Barbara Walters. So, they sent me to a salon where they gave me a perm, and after a few days all my hair fell out and I had to shave my head. And then they really didn't like the way I looked. 

그리고 방송국에서는 제 외모에 대해서도 맘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1976년에 여러분의 상사가 여러분을 불러서는 “외모가 맘에 안 드는군.”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지금이라면 소송감이지만 그 당시에는 외모가 맘에 안 든다고 그냥 내뱉을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여러분들 중 몇몇이 당시로 돌아간다면 바바라 월터스와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한마디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는 저에게 미용실로 가서 파마를 하라고 했습니다. 몇일이 지나고 저는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고 머리를 아예 밀어야 했습니다. 그러자 방송국에서는 제 외모가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Because now I am black and bald and sitting on TV. Not a pretty picture. 

제가 흑인인데다가 삭발을 하고서는 TV에 앉아있으니 썩 보기 좋진 않았겠죠. 

But even worse than being bald, I really hated, hated, hated being sent to report on other people's tragedies as a part of my daily duty, knowing that I was just expected to observe, when everything in my instinct told me that I should be doing something, I should be lending a hand. 

제가 삭발을 한 것보다 더욱 싫었던 것은 제가 매일 다른 사람들의 비극적인 소식을 전달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바라만 봐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의 모든 본능은 제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도움의 손을 내밀어야한다고요. 

So, as President Hennessy said, I'd cover a fire and then I'd go back and I'd try to give the victims blankets. And I wouldn't be able to sleep at night because of all the things I was covering during the day. 

헤네시 총장님께서 말하셨듯이 저는 화재 사건을 보도하고 나서 희생자들에게 돌아가 담요를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날마다 보도하는 모든 사건들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도 없었습니다. 

And, meanwhile, I was trying to sit gracefully like Barbara and make myself talk like Barbara. And I thought, well, I could make a pretty goofy Barbara. And if I could figure out how to be myself, I could be a pretty good Oprah. I was trying to sound elegant like Barbara. And sometimes I didn't read my copy, because something inside me said, this should be spontaneous. So, I wanted to get the news as I was giving it to the people. So, sometimes, I wouldn't read my copy and it would be, like, six people on a pileup on I-40. Oh, my goodness. 

반면 저는 바바라 월터스 앵커처럼 우아하게 앉아서 말하려고 스스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바라를 따라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내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한다면 훌륭한 오프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바라처럼 우아하게 발음하려고 노력했고 가끔 대본을 따라서 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내면에서 즉흥적으로 해야 한다고 소리쳤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뉴스를 사람들에게 보도하면서 저도 그 뉴스를 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가끔은 마치 머릿속 고속도로에서 6중 추돌사고가 난 듯해서 대본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맙소사. 

And sometimes I wouldn't read the copy?because I wanted to be spontaneous?and I'd come across a list of words I didn't know and I'd mispronounce. And one day I was reading copy and I called Canada "ca nada." And I decided, this Barbara thing's not going too well. I should try being myself. 

간혹 저는 즉흥적으로 하려고 대본대로 읽지 않고 목록에 있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잘못 발음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대본을 읽는 데 캐나다를 ‘카 나다’로 발음한 적도 있었습니다. 전 바바라를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다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But at the same time, my dad was saying, "Oprah Gail, this is an opportunity of a lifetime. You better keep that job." And my boss was saying, "This is the nightly news. You're an anchor, not a social worker. Just do your job." 

당시 아버지는 제게 “오프라 게일, 이건 일생의 기회야. 이 일을 계속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상사는 “이건 메인 뉴스야. 당신은 사회 복지사가 아니라 앵커라고. 당신이 일을 전념하세요.”라고 했습니다. 

So, I was juggling these messages of expectation and obligation and feeling really miserable with myself. I'd go home at night and fill up my journals, 'cause I've kept a journal since I was 15?so I now have volumes of journals. So, I'd go home at night and fill up my journals about how miserable I was and frustrated. Then I'd eat my anxiety. That's where I learned that habit.

저는 이런 기대와 의무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정말 제 스스로 처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전 집에 가서 일기를 쓰곤 했습니다. 전 15살 때부터 일기를 써왔기 때문에 지금은 일기장이 몇 권 됩니다. 전 집에서 제가 얼마나 비참하고 좌절하고 있는지를 일기장에 기록했습니다. 그리고선 제 갈망을 집어삼켰습니다. 그런 습관을 이 때 배우게 된 것이죠. 

And after eight months, I lost that job. They said I was too emotional. I was too much. But since they didn't want to pay out the contract, they put me on a talk show in Baltimore. And the moment I sat down on that show, the moment I did, I felt like I'd come home. I realized that TV could be more than just a playground, but a platform for service, for helping other people lift their lives. And the moment I sat down, doing that talk show, it felt like breathing. It felt right. And that's where everything that followed for me began. 

8개월 뒤 저는 앵커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방송국 측에서는 제가 과도하게 감정적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위약금을 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저를 토크쇼로 배정했습니다. 그 때 그 쇼에 앉아서 저는 마치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TV가 단순한 놀이터일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람들을 돕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앉아서 토크쇼를 진행할 때 비로소 숨을 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옳다고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왔던 모든 것이 시작된 계기입니다. 

And I got that lesson. When you're doing the work you're meant to do, it feels right and every day is a bonus, regardless of what you're getting paid. 

그리고 저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때 이것이 옳다고 느껴질 것이고 얼마를 버는지에 상관없이 하루하루가 보너스라는 것이죠. 

It's true. And how do you know when you're doing something right? How do you know that? It feels so. What I know now is that feelings are really your GPS system for life. When you're supposed to do something or not supposed to do something, your emotional guidance system lets you know. The trick is to learn to check your ego at the door and start checking your gut instead. Every right decision I've made?every right decision I've ever made?has come from my gut. And every wrong decision I've ever made was a result of me not listening to the greater voice of myself. 

이건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이걸 어떻게 아냐고요? 이건 느껴지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직감이 여러분들의 삶에 위치 추적 장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여러분의 감정적 안내 시스템이 판단을 하게 해줍니다. 이 방법은 시작하기 전에 자아를 확인하는 것을 배우고, 시작하고 나서는 대신에 여러분의 배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제가 내렸던 옳은 결정들은 저의 배짱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제가 했던 옳지 않은 결정들은 모두 제가 스스로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을 때 내린 것이었습니다. 

If it doesn't feel right, don't do it. That's the lesson. And that lesson alone will save you, my friends, a lot of grief. Even doubt means don't. This is what I've learned. There are many times when you don't know what to do. When you don't know what to do, get still, get very still, until you do know what to do. 

옳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교훈입니다. 그리고 이 교훈 하나가 여러분, 저의 친구들을 많은 슬픔으로부터 지켜줄 것입니다. 의심이 간다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배운 교훈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냥 가만히, 아주 가만히 계십시오. 여러분이 뭘 할지 알기 전까지는 말이죠.

And when you do get still and let your internal motivation be the driver, not only will your personal life improve, but you will gain a competitive edge in the working world as well. Because, as Daniel Pink writes in his best-seller, A Whole New Mind, we're entering a whole new age. And he calls it the Conceptual Age, where traits that set people apart today are going to come from our hearts?right brain?as well as our heads. It's no longer just the logical, linear, rules-based thinking that matters, he says. It's also empathy and joyfulness and purpose, inner traits that have transcendent worth. 

여러분이 가만히 기다리면서 내면의 동기가 이끌어주기를 기다린다면 여러분 개인의 삶이 발전될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경쟁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 핑크의 베스트셀러 ‘새로운 세계가 온다’에 쓰여 있는 것처럼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것을 ‘관념적 시대’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서로 분류하는 특징은 우리의 마음, 우뇌와 머리로부터 오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에 말에 따르면 그것은 더 이상 논리적이지 않고 1차적이지 않으며 규칙에 지배되지 않은 시대입니다. 감정적이고 즐거우며 훌륭한 가치를 지닌 내면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These qualities bloom when we're doing what we love, when we're involving the wholeness of ourselves in our work, both our expertise and our emotion. 

이러한 성향은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자신의 일에 완전히 몰두할 때 우리의 전문성과 감정을 자라나게 합니다. 

So, I say to you, forget about the fast lane. If you really want to fly, just harness your power to your passion. Honor your calling. Everybody has one. Trust your heart and success will come to you. 

지름길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정말 날고 싶다면 여러분의 열정의 힘을 기르세요. 스스로의 외침에 귀 기울이세요. 모든 사람들은 하나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믿는다면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So, how do I define success? Let me tell you, money's pretty nice. I'm not going to stand up here and tell you that it's not about money, 'cause money is very nice. I like money. It's good for buying things. 

그럼, 전 성공을 무엇이라 정의할까요? 분명히, 돈은 멋진것입니다. 난 여기에 서서 돈은 별거 아냐라도 고상한 척은 하지 않을겁니다. 왜냐하면 돈은 정말 좋은거거든요. 전 돈을 좋아합니다. 물건을 살때 그것은 꼭 필요한 겁니다. 

But having a lot of money does not automatically make you a successful person. What you want is money and meaning. You want your work to be meaningful. Because meaning is what brings the real richness to your life. What you really want is to be surrounded by people you trust and treasure and by people who cherish you. That's when you're really rich. 

하지만 돈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여러분이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돈과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 있는 것이길 원합니다. 의미라는 것이 여러분의 삶에 진정으로 풍요를 가져다주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신뢰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여러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주변해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부자입니다. 

So, lesson one, follow your feelings. If it feels right, move forward. If it doesn't feel right, don't do it. 

첫 번째 교훈은, 항상 마음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맞다’라는 느낌이 들면 밀어붙이고 그렇지 않다면 하지 마세요.  

Now I want to talk a little bit about failings, because nobody's journey is seamless or smooth. We all stumble. We all have setbacks. If things go wrong, you hit a dead end?as you will?it's just life's way of saying time to change course. So, ask every failure?this is what I do with every failure, every crisis, every difficult time?I say, what is this here to teach me? And as soon as you get the lesson, you get to move on. If you really get the lesson, you pass and you don't have to repeat the class. If you don't get the lesson, it shows up wearing another pair of pants?or skirt?to give you some remedial work. 

자, 이제 실패에 대해 조금 말씀을 드릴게요. 그 누구의 삶도 흠집 없이 순탄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비틀거리며 고난을 맞기도 하죠. 일이 잘못되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겁니다. 그,. 그건 바로 삶의 방향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인생이 말해주는 겁니다. 그러니 실패할 때마다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저는 그렇게 합니다. 모든 어려움, 고난, 힘든 시기에 저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려고 왔을까?' 라고 물어요. 그리고 교훈을 얻자마자 여러분은 발전하게 됩니다. 만약 진정한 교훈을 얻는다면 여러분은 그 고난을 이수했으며 재수강할 필요가 없어요. 만약 교훈을 얻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 나타날 거예요. 여러분에게 보충할 수 있는 숙제를 주기위해서 말이죠.  

And what I've found is that difficulties come when you don't pay attention to life's whisper, because life always whispers to you first. And if you ignore the whisper, sooner or later you'll get a scream. Whatever you resist persists. But, if you ask the right question?not why is this happening, but what is this here to teach me??it puts you in the place and space to get the lesson you need. 

또 제가 알게 된 것은, 어려움은 여러분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오며 그때 인생이 속삭입니다. 네, 인생은 당신에게 먼저 속삭입니다. 그때 여러분이 그 속삭임을 무시하면 언젠가는 그것이 외침으로 변하죠. 여러분이 저항하는 것은 지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옳은 질문을 하세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가 아닌 '이것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를요. 이것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그래야 당신에게 필요한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My friend Eckhart Tolle, who's written this wonderful book called A New Earth that's all about letting the awareness of who you are stimulate everything that you do, he puts it like this: He says, don't react against a bad situation; merge with that situation instead. And the solution will arise from the challenge. Because surrendering yourself doesn't mean giving up; it means acting with responsibility.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의 도익에 대한 자각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지구’라는 아주 훌륭한 책을 쓴 저의 지인인 에크호트 톨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 반응하지 말고 그 상황과 함께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 해결책은 도전에서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순순히 따르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Many of you know that, as President Hennessy said, I started this school in Africa. And I founded the school, where I'm trying to give South African girls a shot at a future like yours?Stanford. And I spent five years making sure that school would be as beautiful as the students. I wanted every girl to feel her worth reflected in her surroundings. So, I checked every blueprint, I picked every pillow. I was looking at the grout in between the bricks. I knew every thread count of the sheets. I chose every girl from the villages, from nine provinces. And yet, last fall, I was faced with a crisis I had never anticipated. I was told that one of the dorm matrons was suspected of sexual abuse. 

헤네시 총장님이 말씀하시고 또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저는 아프리카에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저는 남아공 소녀들에게도 스탠포드와 같은 멋진 미래를 주고 싶었습니다. 학교가 학생들만큼 아름다울 수 있도록 5년이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좋은 환경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죠. 그래서 제가 직접 모든 청사진을 점검하고 베개도 직접 골랐습니다. 벽돌사이에 들어가는 메지도 살펴보았죠. 심지어 침대보가 몇 수 인지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9개의 지방에서 소녀들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저는 예상치 못한 위기와 직면했습니다. 기숙사 사감 중 한 명이 성추행 용의자라는 것이었죠. 

That was, as you can imagine, devastating news. First, I cried?actually, I sobbed?for about half an hour. And then I said, let's get to it; that's all you get, a half an hour. You need to focus on the now, what you need to do now. So, I contacted a child trauma specialist. I put together a team of investigators. I made sure the girls had counseling and support. And Gayle and I got on a plane and flew to South Africa. 

그것은 정말 악몽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전 그 소식을 듣자마자 30분간 흐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울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30분 동안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당시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동 전문 심리 치유 상담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조사팀을 꾸려 여학생들이 확실하게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모든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게일과 함께 남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And the whole time I kept asking that question: What is this here to teach me? And, as difficult as that experience has been, I got a lot of lessons. I understand now the mistakes I made, because I had been paying attention to all of the wrong things. I'd built that school from the outside in, when what really mattered was the inside out. 

비행기 안에서 저는 계속 제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이 상황이 나에게 가르치려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런 경험은 정말 가슴 아팠지만 저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요하지 않은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이러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학교의 외부적인 것에만 신경을 썼었죠.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실을 다지는 것이었습니다. 

So, it's a lesson that applies to all of our lives as a whole. What matters most is what's inside. What matters most is the sense of integrity, of quality and beauty. I got that lesson. And what I know is that the girls came away with something, too. They have emerged from this more resilient and knowing that their voices have power.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이라는 이 교훈은 우리들 모든 삶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됨됨이, 삶의 질, 아름다움과 같은 가치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학생들도 여기로부터 무언가를 배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일에 대처하는 힘이 생겼고 자신의 목소리가 힘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And their resilience and spirit have given me more than I could ever give to them, which leads me to my final lesson?the one about finding happiness?which we could talk about all day, but I know you have other wacky things to do. 

그 아이들이 보여준 회복력과 정신력은 제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이었고 이것이 제가 말하려고 하는 마지막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행복 찾기’입니다. 이것에 관해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여러분들에게도 다른 할 일이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Not a small topic this is, finding happiness. But in some ways I think it's the simplest of all. Gwendolyn Brooks wrote a poem for her children. It's called "Speech to the Young : Speech to the Progress-Toward." And she says at the end, "Live not for battles won. / Live not for the-end-of-the-song. / Live in the along." She's saying, like Eckhart Tolle, that you have to live for the present. You have to be in the moment. Whatever has happened to you in your past has no power over this present moment, because life is now.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작은 주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간단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웬도린 브룩스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쓴 시 ‘젊은이에게 고함 - 전진할 이에게 고함’의 마지막에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살지 말아라, 결과를 위해 살지 말라, 과정을 위해 살아라.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녀는 앞서 말한 에크호트 톨처럼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순간에 있어야합니다. 인생은 현재형이기 때문에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현재에서 그것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But I think she's also saying, be a part of something. Don't live for yourself alone. This is what I know for sure: In order to be truly happy, you must live along with and you have to stand for something larger than yourself. Because life is a reciprocal exchange. To move forward you have to give back. And to me, that is the greatest lesson of life. To be happy, you have to give something back. 

그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라는 말도 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라는 것이죠. 이것은 어려분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상호 교환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베풀어야 합니다. 저에게 이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교훈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 베풀어야합니다. 

I know you know that, because that's a lesson that's woven into the very fabric of this university. It's a lesson that Jane and Leland Stanford got and one they've bequeathed to you. Because all of you know the story of how this great school came to be, how the Stanfords lost their only child to typhoid at the age of 15. They had every right and they had every reason to turn their backs against the world at that time, but instead, they channeled their grief and their pain into an act of grace. Within a year of their son's death, they had made the founding grant for this great school, pledging to do for other people's children what they were not able to do for their own boy. 

이런 정신은 이미 이 대학에 뿌리 깊게 내려있기 때문에 이미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교훈은 이 대학을 설립한 스탠포드 부부가 깨달았던 것이고 또한 여러분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학교가 어떻게 설립 되었는지, 스탠포드 부부가 어떻게 해서 15살 난 외동아들을 장티푸스로 잃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당시 이들 부부는 세상에 등을 돌릴 충분한 권리와 이유가 있었지만 대신 그 슬픔과 고통을 선행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낸 그 해에 이들 부부가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들의 자녀에게 베풀기 위해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The lesson here is clear, and that is, if you're hurting, you need to help somebody ease their hurt. If you're in pain, help somebody else's pain. And when you're in a mess, you get yourself out of the mess helping somebody out of theirs. And in the process, you get to become a member of what I call the greatest fellowship of all, the sorority of compassion and the fraternity of service. 

여기서 교훈은 명확해집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주세요. 고통 받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세요.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다면 다른 사람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면서 여러분 스스로도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분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러분은 제가 말하는 ‘위대한 동반자’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봉사정신을 가진 모임이죠. 

The Stanfords had suffered the worst thing any mom and dad can ever endure, yet they understood that helping others is the way we help ourselves. And this wisdom is increasingly supported by scientific and sociological research. It's no longer just woo-woo soft-skills talk. There's actually a helper's high, a spiritual surge you gain from serving others. So, if you want to feel good, you have to go out and do some good. 

스탠포드 부부는 다른 부모들이 견뎌왔던 것 중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자신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는 점점 과학적, 사회적 연구가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것은 더 이상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느낌을 얻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좋은 일을 하세요. 

But when you do good, I hope you strive for more than just the good feeling that service provides, because I know this for sure, that doing good actually makes you better. So, whatever field you choose, if you operate from the paradigm of service, I know your life will have more value and you will be happy. 

그런데 여러분이 좋은 일을 한다면 봉사를 함으로써 그것이 주는 좋은 느낌 그 이상의 것을 위해 노력하길 바랍니다. 선행은 확실히 여러분을 변화시켜주니까요. 어떤 분야를 선택하든 봉사 정신으로 임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분명 더 가치 있어질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행복해질 겁니다.  

I was always happy doing my talk show, but that happiness reached a depth of fulfillment, of joy, that I really can't describe to you or measure when I stopped just being on TV and looking at TV as a job and decided to use television, to use it and not have it use me, to use it as a platform to serve my viewers. That alone changed the trajectory of my success. 

전 토크쇼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제가 단순히 TV에 출연하고 TV를 일로써 이용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청자들에게 봉사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자 그 행복은 성취와 기쁨의 깊이에 다다르고 이것은 여러분에게 설명하거나 측정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성공의 궤도가 바뀐 것이지요. 

So, I know this?that whether you're an actor, you offer your talent in the way that most inspires art. If you're an anatomist, you look at your gift as knowledge and service to healing. Whether you've been called, as so many of you here today getting doctorates and other degrees, to the professions of business, law, engineering, humanities, science, medicine, if you choose to offer your skills and talent in service, when you choose the paradigm of service, looking at life through that paradigm, it turns everything you do from a job into a gift. And I know you haven't spent all this time at Stanford just to go out and get a job.

여러분이 만약 배우라면 예술에 가장 큰 영감을 줄 수 있는 배우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부학자라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지식과 봉사의 수단이라 여길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박사 학위를 받는데 경영학, 법학, 공학, 인문학, 과학, 약학 등 그 어느 분야에 있다고 해도 봉사 정신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여러분의 기술과 재능으로 이를 행한다면, 여러분의 직업은 선물로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단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스탠포드에서 이런 시간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You've been enriched in countless ways. There's no better way to make your mark on the world and to share that abundance with others. My constant prayer for myself is to be used in service for the greater good. 

여러분이야말로 정말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그 풍요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더 좋은 일에 봉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So, let me end with one of my favorite quotes from Martin Luther King. Dr. King said, "Not everybody can be famous." And I don't know, but everybody today seems to want to be famous. 

이제 마지막으로 마틴 루터킹 목사의 명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야기의 끝을 맺고자 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유명해질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잘은 몰라도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 유명해지기를 원합니다. 

But fame is a trip. People follow you to the bathroom, listen to you pee. It's just?try to pee quietly. It doesn't matter, they come out and say, "Ohmigod, it's you. You peed." 

That's the fame trip, so I don't know if you want that. 

하지만 유명세는 짧은 여행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화장실까지 쫓아와 여러분이 아무리 조용히 소변을 보려 해도 그 소리를 듣고 ‘어머나 소변 본 사람이 당신이었군요.’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이라는 짧은 여행입니다. 이래도 여러분이 유명해지길 바랄지는 모르겠습니다.  

So, Dr. King said, "Not everybody can be famous. But everybody can be great, because greatness is determined by service." Those of you who are history scholars may know the rest of that passage. He said, "You don't have to have a college degree to serve. You don't have to make your subject and verb agree to serve. You don't have to know about Plato or Aristotle to serve. You don't have to know Einstein's theory of relativity to serve. You don't have to know the second theory of thermodynamics in physics to serve. You only need a heart full of grace and a soul generated by love." 

마틴 루터킹 목사는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유명해질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위대해 질 수는 있다. 왜냐하면 위대함은 봉사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것의 나머지 구절도 알 것입니다. 그는 ’봉사하기 위해 대학 학위를 가질 필요는 없다. 봉사하기 위해 표준어를 구사할 필요도 없고 봉사하기 위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알 필요가 없다. 또한 봉사하기 위해 아인슈테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열역학 제 2법칙을 알 필요가 없다. 은혜에 충반한 가슴과 사랑으로 가득찬 영혼만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In a few moments, you'll all be officially Stanford's '08. 

잠시 후 여러분은 공식적으로 2008년도 스탠포드 졸업생이 됩니다.  

You have the heart and the smarts to go with it. And it's up to you to decide, really, where will you now use those gifts? You've got the diploma, so go out and get the lessons, 'cause I know great things are sure to come. 

여러분은 그에 걸 맞는 마음과 명석함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결정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재능을 어디다 사용하시겠습니까? 학위를 받았으니 바깥세상으로 나가 교훈을 얻으십시오. 왜냐하면 반드시 좋은 일들이 올 테니까요. 

You know, I've always believed that everything is better when you share it, so before I go, I wanted to share a graduation gift with you. Underneath your seats you'll find two of my favorite books. Eckhart Tolle's A New Earth is my current book club selection. Our New Earth webcast has been downloaded 30 million times with that book. And Daniel Pink's A Whole New Mind: Why Right-Brainers Will Rule the Future has reassured me I'm in the right direction.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함께 나눌 때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제가 가기 전 여러분과 작은 졸업 선물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의자 밑에 제가 좋아하는 책 2권이 놓여 있습니다. 에크홀트 톨의 새로운 지구라는 책은 현재 저의 북클럽에서 선정된 책입니다. 이 책의 웹캐스트는 3000만 건이나 다운로드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책 다니엘 핑크의 ‘새로운 미래가 온다. - 왜 우뇌를 가진 자가 미래를 지배하는가’는 제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지 확인시켜준 책이었습니다. 

I really wanted to give you cars but I just couldn't pull that off! Congratulations, '08! 

Thank you. Thank you. 

여러분에게 차를 주면 좋았겠지만 그건 제 능력 밖입니다. 축하합니다. 08년도 졸업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지네.

가무에 능한 민족이라는 역사적 기록이 사실인듯. 

한민족의 DNA에는 춤이 흐르는 듯.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의 졸업식에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대학을 졸업한 적이 없으며, 솔직히 말해 이것이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참가한 것입니다. 오늘 전 제 인생의 3가지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단지 그것뿐. 별일도 아닙니다. 단지 3가지의 이야기일뿐이죠.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전 리드칼리지를 6개월 다니고 중퇴를 했지만, 이후 완전히 그만둘때까지 18개월동안 더 청강을 하며 대학에 머물렀습니다. 근데 제가 왜 중퇴를 했을까요? 첫번째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그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합니다. 젊은 시절 미혼의 대학졸업생이었던 제 생물학적 어머니는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저를 대학졸업자에게 입양시켜야겠다고 아주 강하게 느꼈고, 그래서 제가 태어날때 변호사와 그의 아내에 의해 입양되도록 모든것이 준비되어있었습니다. 단지 제가 세상에 나왔을때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딸을 원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래서 대기자명단에 있던 우리 부모님은 한밤중에 "우린 기대했던것과 달리 아들을 낳았어요, 그래도 괜찮으세요?"라는 전화를 받았었죠. 그들은 "물론이죠"라고 답했습니다. 저의 생물학적 어머니는 나중에야 저의 어머니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입양 서류에 서명하는 것을 거절했죠. 그녀는 몇 달 후에, 저의 부모님들이 제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듣고서야 누그러졌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17년 후 전 대학에 갔습니다. 하지만 전 순진하게 스탠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계급이었던 부모님의 모든 저축은 제 대학등록금으로 들어갔습니다. 6개월 후, 전 대학에서 가치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싶은지 몰랐고, 대학이 어떻게 그것을 구체화하는데 도움을 줄건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대학에 저의 부모님이 평생을 모은 돈을 사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전 중퇴를 결심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당시엔 꽤 무서웠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제가 한 최고의 결정중 하나였습니다. 중퇴하자마자 저는 흥미가 전혀없는 필수과목 수강을 관둘 수 있었고, 제가 보기에 흥미로운 수업들만 청강을 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그것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전 기숙사방도 없어서, 친구집 마루바닦에서 자고, 콜라병을 반환하고 받은 5센트 동전을 모아 음식을 사먹었으며,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하레 크리쉬나 사원에서 주는 근사한 식사를 먹기 위해 마을을 가로질러 7마일을 걷곤 했습니다. 전 그 식사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우연히 만났던 많은 것들이 나중에 값어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의 예를 들려드리겠습니다.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s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리드대학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서예 수업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캠퍼스 곳곳에 있는 포스터들과 서랍에 붙어있는 라벨들은 아름다운 손글씨로 쓰여져있었습니다. 저는 중퇴했고, 정규과정을 들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는지 배우기 위해 서예수업을 들었습니다. 전 세리프와 산스 세리프활자체를 배웠고, 빈공간과 활자들의 배치에 따라 공간미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위대한 조판들이 어떻게 위대해지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 예술적으로 미묘한 방식이었으며, 전 그것에 매혹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10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 10 years later.

이것이 제 인생에서 어떤 실제적인 쓰임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10년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도시 컴퓨터를 디지안했을 때, 그것이 저에게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맥에 서예를 접목했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첫번째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대학에서 그 한개의 과목을 청강하지 않았다면 맥은 절대로 다양한 서체들과 공간에 비례하는 활자체들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윈도우(마이크로소프트)는 맥을 카피한 겄이기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활자체를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중퇴하지 않았다면, 서예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떠한 개인용 컴퓨터들도 환상적인 활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확실히 제가 대학때 앞을 바라보며 그 사건들(dots)을 연결하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10년후 되돌아보면 그것은 아주아주 명백한 것이었죠.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다시 말하자면, 앞을 내다보고 점들을 연결할 순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며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미래에 그 점들이 어떻게든 연결될거라 믿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 당신의 근성, 운명, 인생, 업 - 무엇이 됐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야말로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이것이 제 인생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제 2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잃어버림에 관한 것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전 행운아였죠. 제 삶의 이른 시기에 전 사랑하는 일을 발견했습니다. 워즈(니악)와 전 20살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애플을 설립했습니다. 우린 열심히 했고, 10년만에 차고에서 우리 둘이 시작한 애플은 4천명 이상의 종업원을 가진 20억불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막 우리의 최고의 작품 매킨토시를 1년전에 발표했었고, 전 30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회사에서 짤렸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만든 회사에서 짤릴수가 있죠? 그게, 애플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제가 생각하기에 나와 함께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한 사람을 고용했고, 첫 일년동안은 일이 잘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젼들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우리는 사이가 틀어졌고, 이사회는 그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30살때 전 쫓겨났습니다. 그것은 매우 공개적인 축출이었습니다. 내가 집중해왔던 성인으로서의 모든 삶이 사라져버렸고,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몇 달간 전 도대체 무엇을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전 지난 세대의 사업가정신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느꼈고, 그건 저를 지나쳐갔던 바톤을 놓친 것만 같았습니다. 전 데이비드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서, 그렇게 형편없이 일을 망친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전 아주 공개적으로 망했고, 심지어는 밸리(실리콘밸리)에서 도망쳐야겠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 내가 했던 일을 여여전히 사랑했다는 사실 -  천천히 저를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에서의 사태가 그 사실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죠. 전 쫓겨났지만, 여전히 사랑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당시 전 알지못햇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저에게 일어난 일 중 최고의 사건 중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성공의 무거움이 다시 초심자가 되는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일에 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전 제 인생의 가장 창의적인 시기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그 다음 5년간, 전 NeXT라는 회사와, 또 다른 Pixar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내가 되는 굉장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토이 스토리는 현재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만화영화입니다. 이 놀라운 사태의 전환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매입했고, 전 애플로 복귀했으며, 넥스트에서 개발된 기술은 애플의 부흥을 이끈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전 함께 훌륭한 가족을 가지게 됐죠.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전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들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약을 먹는 것은 무섭지만, 환자에게는 필요한 것이기도 하죠. 때로는 인생에서 벽돌이 당신의 머리를 때리기도 합니다. 신념을 잃지 마세요. 전 제가 사랑하는 것만이 저를 계속 전진하게 하는 유일한 것이라 확신합니다. 당신이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의 연인뿐만 아니라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은 당신의 인생의 큰 부분을 채워주게 될 것이고,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을 당신이 진정 위대한 일이라 믿는 것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아직 그것을 찾지 못했다면, 꾸준히 살펴보십시요. 정착하지 마십시요.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이듯이, 당신이 그것을 찾았을때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관계가 그렇듯, 그것은 해가 가면 갈수록 더욱 나아지게 될 것입니다. 고로 당신은 그것을 찾을때까지 꾸준히 살펴보고, 정착하지 마십시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제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제가 17살때, 전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읽었습니다. "만일 당신의 매일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당신이 걷던 그 길이 옳았음이 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저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이후로 전 33년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내가 하려는 일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 대답이 "아니오"라고 몇날 몇일을 계속되면, 전 무엇인가 바뀌어야 할때라는 걸 깨닫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난 곧 죽게 될거야라는 사실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에 나를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요. 거의 모든것 - 모든 외적인 기대, 모든 긍지, 모든 실패나 당혹감에 대한 공포-이 죽음앞에서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단지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가만 남습니다.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만이 당신이 무엇인가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의 덫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기억하십시요. 당신은 이미 발가벗겨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1년 전, 전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30분에 스캔을 했고(CT를 찍었고), 저의 췌장에 종양이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전 췌장이 무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는 그것은 거의 확실하게 치료불가능한 암의 형태라고 했으며,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를 더 살 수 있을거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에게 의례 하는 규정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 주변을 정리하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10년간 당신이 할 것을 당신의 아이들에게 몇 달동안 전달해주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신변의 모든 것을 잘 정리해두어, 당신의 가족을 가능한 편하게 해주라는 것을 의미했죠. 그것은 작별인사를 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전 하루종일 진단을 받았습니다. 늦은 밤 전 생검을 받았고, 내시경을 목으로 집어넣고 위를 통해 장으로 들어간 후, 바늘로 췌장의 암덩어리로터 세포들을 체취했습니다. 전 차분했지만, 같이 있던 아내는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검사를 했던 의사들이 울기 시작했다고 말해줬습니다. 왜냐하면 제 췌장암이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매우 희귀한 종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수술을 받았고 아직까지 멀쩡합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것이 제가 죽음과 가장 가까이 대면한 순간이었으며, 앞으로도 몇 십년간 동안 가장 가까운 것이길 바랍니다. 그것을 경험했기에, 전 죽음이 유용하다는 것을 단순한 지적개념으로만 알았을때보다 좀 더 확실히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아무도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심지어 천국을 가기 원하는 이들조차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운명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인생의 유일한 최고의 발명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변화의 대리인입니다. 젊은이를 위하여 노인은 사라집니다. 지금 당장의 젊은이는 여러분이지만, 언젠가 멀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점차로 늙어가고 사라져갑니다. 너무 극적이라 미안하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당신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다른 이들의 삶을 사느라 허비하지 마십시요. 타인의 생각에 빠져 사는 교조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요. 다른 이들의 의견이 당신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묵살하도록 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세요. 그것들은 어떻게든 당신이 진정 되고자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고 있습니다. 그외의 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어렸을때, 또래들에겐 성경과도 같은 지구 전체의 카탈로그라는 끝내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여기서 멀지 않은 멘로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그의 시적 감성으로 책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1960년대 말, 개인컴퓨터와 전자출판 이전이라, 이 책은 타자기와 가위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건 마치 종이로 만든 구글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구글이 나오기 35년전이죠. 그것은 이상적이었고, 깔끔한 도구와 위대한 개념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지구 전체의 카타로그를 몇 판인가 만들었고, 책의 운명이 다할 때쯤 마지막 판을 발행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고, 전 여러분 정도의 나이였죠. 최종판의 뒷 표지는 이른아침의 시골길의 사진이었고,  모험심이 가득한 날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만날 곳 같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언제나 갈망하고, 우직하라."라고 씌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전한 마지막 인사말이었습니다. 언제나 갈망하고, 우직하라. 전 제 자신이 항상 그러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 여러분께, 제가 여러분을 위해 바랍니다.

언제나 갈망하고, 우직하라.

Thank you all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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