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골든아워 2권, 기울어진배 에피소드 中)
(배경 설명 : 세월호 사건 당일, 긴급 구조 헬기를 타고 아주대학병원에서 진도 사건 현장으로 내려간 상황. 이 글에서 나는 이국종 교수를 의미함. 이 글에서 이국종 교수는 선박에 대해 상당항 해박한 지식을 기술하는데, 그 이유는 이국종 교수가 해군 출신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봐야 했다. 우리가 내려오는 동안 승객들이 다 구조된 것인지, 아니면 수면 위에 부상자들이 있는데 비행고도가 높아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 하늘에 떠서는 알 수 없었다.(중략)
뒤집어진 배 주위를 선회하며 배 쪽으로 가까지 다가가던 이상민이 갑자기 사고 해역 상공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 무슨 일입니까? 왜 강하하지 않습니까!
- 상황실과 관제탐에서 계속 경고가 들어오고 있어요!
사고 해역 상공 관할은 해양경찰이 맡았고, 다른 헬리콥터들의 진입은 충돌 사고 위험을 높인다며 밖으로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 위에는 우리뿐이었으므로 나는 그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다.(중략)
김승룡은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 그럼 혹시 배 안에 사람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핏발 선 눈갈로부터 김승룡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 지금 각 정부 부처마다 정보 공유가 전혀 안 되고 있습니다. 여객선 규모로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탔을 것 같은데 몇 명이 타고 있었는지, 몇 명이 구조됐는지 전혀 정보가 없습니다.
그도 많이 답답해 보였다. 지역의 소방서장조차 이 정도밖에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내가 더 알아볼 수도 없을 것이었다.
부도 바로 옆 나대지에는 소방방재청 헬리콥터는 물론이고, 경찰청의 헬리콥터와 보건복지부의 헬리콥터가 '비행하지 않고' 착륙해 있었다. 앉아있는 헬리콥터들이 마치 철새 도래지에 집결해 있는 철새들같아 보였다. 여객선의 규모가 크다면 승객이 많을 것이었고, 승객이 많다면 모두를 완벽히 구조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사고 지점의 외곽 해역에도 수색이 필요하니 그쪽에라도 투입되어야 할 국보급 헬리콥터들이었다. 사고 해역 근처에는 한 대도 보이지 않던 기체들이 항구 옆 나대지에 이렇게 모여 앉아 있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도열한 헬리콥터들의 값을 합치면 수천억원어치가 넘을 것이고, 그 수는 대한민국 소방항공대 전력의 절반에 가까웠다.
항구 한쪽에는 민간 병원 의료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보내온 지역 보건소 의료진, 소방대원들과 육군 병력들이 한 데 뒤섞여 있었다. 팽목항 부둣가는 장터처럼 북적거렸고, 바다는 무섭도록 고요했다. 가라않는 배에서 구조작업을 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 분주한 항구에서는 사고의 실체를 그림자조차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 기이함에 섬뜩해졌다.
AW-139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인파 속에서 중앙구조단 김민수 기장과 항공대원들을 보았다. 몇몇은 수난구조복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만나 누가 사고 해역 영공의 비행을 금지시켰는지, 수난구조복장을 한 구조대원들이 왜 육상에 있는지, 모두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상민을 채근해 AW-139에 올라탔다. 사고 해역 영공으로 진입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가라앉는 배 주위르 헤매다 항공유가 바닥을 보였다. 인근의 진도나 목포의 해양경찰 기지 또는 공항에서 급유를 받으려 했지만 모두 '공식적 절차'가 미리 통보되지 않아서 불가하다는 답변만 보내왔다. 서신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우리는 다급하게 급유지를 찾았다. 간신이 기름을 '얻어 쓸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사고 해역으로부터 까마득히 떨어져 있는 내륙 산간의 산림청 소속 항공 관리소였다.
- 이런 빌어먹을....
내 입에서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나는 기가 막혀 서신철에게 물었다.
- 아니 목포에 공항도 있지 않습니까? 바다를 수색해야 할 우리가 왜 산악지대까지 갑니까?
서신철이 씁쓸하게 말했다.
- 행정 절차가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중략)
나는 해군 2함대 의무대장 박영진 소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군이 가진 정보를 얻어보려 했으나 박영지도 정확한 인명피해 상황을 알지 못했다. 그는 다만 한국 해군과 미 해군의 투입 현황을 알려주었다. 타 해역에서 작전 중이던 독도함을 비롯한 해군의 주력 함정들이 사고 해역으로 급히 변침했고, 해군 UDT들이 투입된다고 했다. 쌍용훈련(한미 연합상륙훈련)을 마치고 미 7합대 모항으로 복귀하던 USS 본험리처드(Bonhomme Richard)함에서 MH-60 시호크(Seahawk) 구조 헬리콥터들을 출동시켜 지원을 시작했다고도 알려왔다.
독도함은 한국 해군에 단 한 대뿐인 경(輕)항공모함 역할이 가능한 다목적 상륙함이고, USS 본험리처드함 같은 미국의 초대형 상륙 강습함들은 강력한 공격형 무기인 동시에 웬만한 지역 병원을 능가하는 수술실 설비와 병원선 기능까지 완벽히 갖추고 있다. 특히 USS 본험리처드함은 많은 해병대원들이 작정 중 받을 수 있는 모든 피해 가능성이 고려된, 가장 뛰어난 구조 능력을 지닌 함이었다. 박영진의 말은 가장 최고 전력을 투입한다는 의미였고, 그것은 해군 수뇌부도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울리가 다시 바다로 날아들었을 때 여객선은 함수 부분의 푸른 바닥만 힘겹게 물 위로 내놓고 있었다. 기진한 배가 익사 직전 겨우 숨구멍이라도 내놓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내 마음은 급했으나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달랐다.
- 교수님, 여전히 사고 해역에서 빨리 나가라는 명령만 합니다. 더는 비행이 힘들 것 같아요.
(중략)
연락이 닿은 해군본부 의무과장 유동기 중령은 선박 안에 승객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심각히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미 해군 USS 본험리처드함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초대형 함정들까지 동원되어 구조에 나섰다고 했고, 다른 쪽의 말들은 구조작전이 순조롭지 않음을 의미했다. 지원은 많다고 전해지는데 해상과 영공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탄 AW-139 외에 가라앉고 있는 배 위로 비행하는 헬리콥터는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고, 가라앉고 있는 선체를 해상계류시키거나 잡아두는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선체를 부수면서 들어가는 작업도 하지 않는 현장 상황은 의아하기만 했다. 서신철은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 더는 우리가 할 일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중략)
오후 4시를 넘어가자 사고 해역이나 인근 도서 지역 어디에서도 새로운 구조 대상 여객이 발견되지 않았다. 2시 반에 학생들을 싣고 온 선박이 마지막이었다. 그사이 뒤집어져 푸른 뱃가죽을 드러낸 여객선의 밑창은 더 많이 가라앉은 듯 보였다. 그렇게 많이 투입됐다던 한미 해군 구조 자산들이 현장 해역에 특별히 보이지 않은 채로 구조작업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의 승객이 구조된 것 같았고, 사고 해상에 더 이상의 표류 승객도 존재하지 않았다.
떠날 채비를 할 때 진도체육관에 생존자들이 모여 있다는 말이 들렸다. 우리는 헬리콥터를 체육관 바로 옆 잔디밭에 착륙시켰다. 이상민이 더는 장시간 이곳에서 대기할 수 없고 경기 소방항공대로 복귀해야 한다고 했다. 이곳이 아마도 마지막 착륙지점이 될 것이었다.
체육관은 규모가 컸고 새로 지은 듯했다. 깨끗한 외관과 높은 천정은 웅장해 보였다. 반듯한 매트가 중앙에 마련된 실내에는 구조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걱정과 불안이 체육관 안에 가득했다. 가장자리에는 지역 보건소와 관공소, 군부대 등에서 나온 사람들이 부스를 설치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구조된 사람들 전부인가요?
- 저희들도 잘 모릅니다.
- 혹시라도 구조되지 못하고 누락된 사람들에 대해서 구조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까?
- 지금 막 도착해서 알지 못합니다.
- 그럼 지금 사고 해역 현장과 이곳 통신을 담당하는 분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 글쎄요....
대답은 한결같았다. '윗선으로부터 단지 이곳에 가라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들은 통일된 지휘 체계 안에 있지 않았고, 누가 자신들을 지휘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각자 소속된 조직 상부에서 내려오는 파편적인 집합 명령에 따라 모인 것뿐이었다.
(중략)
우리는 각자 흩어져 환자를 찾았다 구조자들은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었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정보를 학생들에게서 들었다.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 수만 적어도 300여 명이라는 것. 체육관에 모인 학생 대부분은 침몰 초기에 구조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멈춰 서서 체육관 안을 둘러보았다. 대충 보아도 이 안의 구조자는 300명에 한참 못 미쳤다. 다른 곳에 임시 대피처가 마련되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어디에 얼마나 많은 승객들이 구조되어 대피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중략)
저녁 7시가 다 되어 병원에 도착했다. (중략) 헬리콥터에서 내린 노인 환자를 이동용 침대에 싣고 이동할 때 김태연이 뒤따라와 말을 건냈다. 표정이 어두웠다.
- 교수님. 정말 큰일 났어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닌에요.
- 뭐가요? 빨리 말하세요!
나는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화를 감출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하는 일 없이 하늘만 오가다 복귀한 참이다. 무책임한 말들 속에서 극심하게 지쳐 있었다. 더 큰일 날 것도 없어 보였다. 김태연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 확실치는 않지만, 승객들 중 적어도 200명 이상이 아직 선체 안에 있는 것 같답니다.
(중략) 경기도 보건국의 6급 주무관인 김태연이 다루고 생성하는 정보는 도지사에게 직접 보고가 올라가는 정보들이니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금 들은 말은 현실감이 없어 명확히 머리에 꽂히지 않았다.
- 뭐라고요?
내가 다시 물었으나 김태연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다가와 있던 정경원이 대신했다.
- 적어도 그 배에 승객이 400명 이상 타고 있었던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중 구조된 인원이 불과 200명에도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적어도 200여 명 이상이 아직 배 안에 있는 게 맞습니다.
(중략)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 내가 비행하고 있을 때 이미 큰 구조작업도 더는 없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다는 거야?
정경원은 말없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김태연을 쳐다보자 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시 정경원을 응시했다.
- 정 교수, 이게 말이야.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체 내에 있었다면, 내가 바로 그 위를 비행하고 있었는데 배로 들어가든 부수든 간에 뭔가 사람들을 끄집어내려고 했을 거 아냐? 한미 해군이 모두 출동했다고 들었는데 그 선박 주위는 정말 조용했다고. 어느 정도 구조가 된 거 아니었어?
정경원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 정말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4월16일 하루 종일 들은 말이었다. 하긴 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죽도록 비행하고 엄한 이착륙만 하다가 어깨만 아파져 돌아왔다. 현장에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책임자라고 나서는 자도 없었다. 현장에 직접 있다가 온 나도 알 수 없었으므로 병원에 있던 정경원이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 현재는 이미 날이 저문 데다 선체가 뒤집어져 본격적인 구조 활동은 힘든 모양입니다. 지금 관계기관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경원은 따라오면서 말했으나 잘 들리지 않았다. 명확한 건 한 가지였다. '회의만 죽도록 하겠구나. 정작 현장에서는 항공유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산림청까지 기어 들어갔는데.' 그러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 정 교수, 거기 지금 수온이 몇 도인지 알아? 이제 10도쯤일거야. 그 정도 수온에서 몸이 잠기면 몇 시간이나 견딜 수 있지?
정경원은 말이 없었다. 그는 길어야 3시간이라는 말을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 그나마 구명조끼라도 입고 바다에 떠 있어야 저체온증 얘길라도 할 것 아니야? 배는 뒤집어져서 거의 가라앉았다고.
나는 정경원에게 함수 밑창의 일부분만이 간신히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200여 명이 정말 그 안에 있다면 이미 많은 수가 죽었거나 곧 죽을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버텨도 10분 이상 숨을 참지 못한다. 여객선은 전투함이 아니다. 수백 개의 격실 구조로 이루어진 전투함정과 달리 개방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 선체가 뒤집어졌으므로 바닷물은 선체 구석구석을 쉽게 파고들 것이다. 그런 배 안에 남은 승객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중략)
그 와중에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현수엽 과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심각했다.
- 내일 중앙응급의료센터의 현장 지휘소를 보내겠습니다.
'길어야 3시간'과 '내일'의 간극을 현수엽이라고 모를까. 나는 '내일' 앞에 생략되어 있는 수많은 절차들을 떠올렸고 '어쩔 수 없는'이라는 상황을 생각했다. 지금은 이해보다 무력한 분노가 차올랐다. 나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 이미 현장은 그런 의료 수요가 필요한 시점을 넘어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중략)
배가 수면 아래로 완전히 잠겼다. 정부의 많은 부처들은 바다 밑으로 배가 사라지고 나서야 분주해졌다. 구조작업의 가장 중요한 시점을 속절없이 보내버렸다. (중략)
나는 아직 선체에 에어 포켓(Air Pocket)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들으며 저체온증에 대한 내 상식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16일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해도 머리 한쪽에서 어제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사고 당일 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던 때, 나는 바다 위 상공에서 영공을 벗어나라는 경고만 들었다. 대부분의 헬리콥터들이 지상에 주기되어 있었고 미 해군까지 동원된 구조팀들은 현장에 들어오지 못했다. 항구는 여러 곳에서 급파된 의료진으로 분주했으나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 현장을 아는 사람도 상황을 파악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지휘자도 지시도 없는 그저 아비규환의 광경이었다. 그런데 배가 다 가라앉고 나니 모든 것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중략)
현장에서 제일 신경 쓰는 사람들은 오열하는 가족들이라고 했다. 물 밑에 있는 대부분이 아이들일 것이므로, 물 밖의 가족들 대부분이 그 부모들ㄹ일 것이다. 어린 자식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바다 아래에 수장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덤덤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없는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을 것이나 대부분은 알게 될 것있어다. 아이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중략)
세월호 침몰을 두고 '드물게' 발생한 국가적 재난이라며 모두가 흥분했다. 나는 그것이 진정 드물게 발생한 재난인지, 드물게 발생한 일이라 국가의 대응이 이따위였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이든 국가든 진정한 내공은 위기 때 발휘되기 마련이다.
(중략)
세월호 침몰 당시, 쌍용훈련을 마치고 미 7함대로 복귀하던 USS 본험리처드함은 최정예 해상 구조대원과 구명보트까지 장착한 특수 헬리콥터 MH-60 시호크 몇 대를 사고 해역으로 신속하게 출동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사고 해역 영공 진입 불허 방침으로 회항했다고 들었다. 나는 우리와 같은 시간에 사고 해역을 비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미 해군의 시호크가 왜 보이지 않았는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한국 정부는 사고 다음 날 그들에게 사고 해역으로부터 17마일(약 27킬로미터) 떨어진 해역을 배정했고, 생존자 구조 임무가 아닌 사체 수거 임무를 맡겼다고 했다. USS 본험리처드함은 별다른 성과 없이 사고 주위 해역의 수색 작업을 종료하고 4월22일 미7함대로 돌아갔다.
USS 본험리처드함이 사고해역에서 벗어날 때, 몇몇 미 해군 사관들이 함미 갑판으로 나와 서서 세월호 침몰 지점을 향해 마지막 경례를 했다고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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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세월호 사고가 난지 5년이 지났다. 어떤 이들은 이제 세월호 사고는 됐다. 고만 이 정도로 마무리해야 한다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알고 있듯, 당시의 상황을 직접 목격했던 이국종 교수의 이 책의 내용처럼 세월호 침몰 이후에 구조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는 세월호 사고와 같은 재난상황에서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면피성 답변을 내어놓으면서 자신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드러냈고, 국가의 운영을 맡을 능력이 없다는 자백을 하면서도, 대통령 이하 그 누구도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월호가 촉매가 되어, 청와대의 무능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박근혜와 새누리의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만은 아직도 세월의 선장과 그 선원 몇명이 유죄를 받았고, 당시 사고 해역담당으로 나와있던 해경의 중간 간부 하나가 이 일로 징역을 언도받은 외에 그 어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정부의 고위인사가 이 세월호 문제로 문책 혹은 사법적 처리를 받은 바가 없다.
실질적으로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 문제는 그 근본원인을 알 수 없는 채로 왜 30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차가운 바다속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그 누구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아이를 잃은 부모중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모든 생업을 포기하고 이 일에만 매달려 있는 실정이다.
세월호 사태가 마무리 되기 위해서는 2가지의 전제 조건이 해결되어야 한다.
1. 세월호가 침몰한 이유
2. 세월호가 가라앉고 3시간 남짓 있었던 골든아워 기간에 왜 구조활동이 없었는지. 아니 구조활동이 없었던 정도가 아니라 주변 해역에서 있던 자발적 어민들의 구조와 한미 해군이 사고 해역으로 긴급 출동해서 구조활동을 펼치려 했던 것을 청와대가 왜 막았는지에 대한 이유.
바로 이 두가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서는 세월호 사태는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