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태평양 전쟁에 끌려간, 지금은 할머니가 되신, 당시 10대에서 20대의 조선의 처자들을 종군위안부라고 부르고 그에 대한 일본의 사과등의 문제가 지속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속칭 정신대(挺身隊)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유는, 청년들이 모두 전쟁에 차출되어 군수물자를 생산할 공장에서 일할 인원이 모자라자, 일본은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女子挺身勤勞令)을 공포하여 여성인력을 차출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차출된 여성들중 젊은여자들은 전투의 최전선으로 끌려가 군인들의 위안부가 되었으며, 당시 많은 여성들이 성병등으로 희생되었고, 45년 태평양 전쟁의 종전이후에 부끄러운 마음에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동남아등지에서 숨어서 여생을 보낸 인원들이 20만명 가량이다.

挺身이라는 의미는 전쟁터와 같은 위험한 곳에서 선봉에 서서 공을 세운다는 의미가 있다. 즉, 국가가 위급한 순간에 있으니 앞장서 나라를 지키라는 독려가 그 단어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나라가 없는 설움속에 식민지의 백성으로서 자신을 노예로 여기는 주인의 국가를 위해 억지로 전쟁의 선봉에 서기를 강요받고 희생받은 것도 서러운 그들이 차마 더렵혀진 몸이 부끄러워 고국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돌아온 이들은 수십년간 이웃과 정부의 무관심에 힘들게 살아왔으며, 그나마 남은 100여명 남짓도 호호 할머니가 다 되어 이제 천국에서 먼저 간 이들과 만날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해방이 70년도 더 지났건만, 이러한 애끓는 할머니들의 한마저도 풀어주지 못하고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나라를 독립이 됐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노릇이다.


 몇 일전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 역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직장인이 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젊은이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은 "아 회사에 늦게 간다고 전화해야 하는데" 였다고 한다. 그는 불과 죽기 수 십초전에도 그가 내려야 하는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 출입구와 스크린도어의 불과 한뼘 정도 되는 공간에 갖힌 채 죽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걱정보다는 회사에 늦는게 더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지하철에서 출입구에 몸이나 옷, 가방이 끼어서 나는 사고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한다. 나도 회사에 다니던 때에는 1년에 서너번씩은 출퇴근길에 실제로 그런 사고상황을 목격하기도 하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일은 겪어 본 적은 없다.

 실제로 이번 사고도 그 정황을 살펴보면 1,2가지의 에러와 이 회사원이 스크린 도어가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그 회사가 있는 김포공항역에 내리려 고집하지 말고 지하철 문이 열렸을 때 지하철로 다시 들어가서(어차피 회사 좀 늦으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다음 역까지 가는 여유만 가졌어도 충분히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고였다. 그렇다고 이를 회사에 늦으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스크린도어가 열리겠지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이 젊은이가 미련했던 탓이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지하철을 모는 기관사의 입장에서 보면 승객의 신고가 들어온 시점에서 지하철 출입구를 30여초간 열어놨으며, 이미 스크린 도어가 닫혀있는 상황에서 승강장을 모니터링하는 CCTV는 정상으로 보이니, 당연히 승객이 지하철안으로 다시 들어갔겠지라는 마음으로 문을 닫고 지하철을 운행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지점이다.(운행 매뉴얼상 실제 사고가 발생했던 현장을 실제로 기관사 혹은 역무원이 가서 확인을 해야 하는 지침이 있느냐 하는 것은 확인중이라 한다.)


 기관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승객이 타고 있는 러시아워시의 지하철 운행이라는 측면과 CCTV를 통해서는 이상이 없다는 부분을 확인하고 출발한 부분에서도 내 개인적으론 충분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지하철이 계속 확장되고 서울지하철 공사(요즘은 이것도 복잡해서 어디는 도시고속철도 공사라는데서 관리하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는 지하철공사의 재정이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어서(지하철 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 비용에 대한 이자를 내느라 그렇게 됐다고 하는데 이것도 사실상 믿을 순 없는 이야기다), 이러한 재정상태의 개선을 위하여 그간 20년간 이상의 구조조정을 거쳤다고 한다. 그 결과, 주로 인원감축 및 외주화, 비정규직 증가(우리나라의 대부분이 기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를 통한 인건비 절감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돈은 절감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과거 출퇴근 러시아워시 승강장에 보이던 역무원들은 다들 사라지고, 그 자리를 스크린도어라는 것으로 대부분 대체한 상태이다. 그나마 있는 역무원들도 대부분은 승객의 안전을 위한 승강장의 순찰 같은 업무가 아닌, 부정승차에 대한 감시를 위해 개찰구에서 누가 태그 안하고 그냥 출입하는 사람들은 없나를 보기 위해 가뜩이나 피곤한 눈에 핏대를 세워 사람들을 두리번 거릴 따름이다.

 즉, 이번 사고는 현대의 기업화된 모든 조직에서 최상의 명제가 된 "효율적인 운용" - 여기서 효율이란 결국 최소비용에 의한 최대의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경제적인 효율을 의미한다. - 이라는 시스템의 철학(?)하에서 인간의 목숨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보여주는 일화일 뿐이다.

 1년에 1,2명 죽는 사람의 목숨보다는 기업의 이익 수십억이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비정한 현대사회의 현실이다. 그러한 한 가정의 가장이 사망한다면 그가 운좋게도(?) 그에 대한 대안으로 보험회사의 생명보험에라도 가입이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의 남은 목숨값 10~20여억원이 그 가족에게 전달되는 것이 자본주의가 개인의 사망에 보내는 최대의 조의가 되버린 것이다.

이것은 한,두사람의 최고 권력자 혹은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시스템을 인정하고 그러한 철학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기반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한 바로 우리 모두가 그에 대한 책임자이다. 나도 이러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한 하나의 개인으로서, 지하철에서 뜻하지 않게 운명을 달리하게 된 그 젊은이에게 심심한 조의를 보낸다.



책을 하나 살게 있어서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득템하게 된 올재 클래식 동주열국지. 올재클래식으로 나온 책중에 좋은게 많아서 몇번이나 사려고 했지만 워낙 가성비가 뛰어나 인기가 많아서 그간 산적이 없는데 이처럼 연이 닿으니 손 쉽게도 들어온다. 열심히 봐야지.

현대에 들어와서 부가 국가 및 국민 전체에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일부에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되어 간다. 

그 이유는

첫째. 생산성 증가의 결과가 일부 직종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로 현대화에 성공한 대부분의 국가의 생산성은 증가해왔다. 하지만 그 생산성의 증가가 곧바로 임금의 상승에 반영되는데는 직종 및 직업에 따른 차별이 행해져왔다.

현대에 있어서는 첨단과학기술 종사자, 금융업 등 소위 고도의 전문적 직능을 갖고 있는 직업군의 임금이 타업종과 대비해서 수십~수백배에 이를만큼 격차가 있으며, 또한 같은 직업군내에서도 소위 최고수준의 임원(CEO등)과 일반 사원의 연봉차 역시 이 정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즉, 개인적 능력차에 따라 임금격차가 과거에 비해 워낙 크기 때문에 이에 따른 부의 집중화가 발생하다.


두번째. 저금리로 인해 자본 레버리지를 이용할 줄 아느냐에 의해 부의 차이가 발생한다.

브레튼우즈 협정을 닉슨이 무효화시킨 이후, 전세계는 지속적인 유동성 증가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한 통화의 팽창으로 인해 돈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지만, 1998년과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노선의 유동성 팽창에 의한 경기침체 활성화라는 조치가 지속적으로 취해지면서 금리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존의 돈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절하되며, 부를 늘리기 위해서는 돈을 은행에 저축하는 이보다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무언가에 투자 혹은 사업을 하는 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경제가 바뀌어버렸다.

즉, 빛을 빌려 그것으로 무언가에 투자하는 이들이 결국은 위너가 되는 그런 양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실하게 직장에 다니면서 한푼두푼 착실히 저축하는 것으로 그럭저럭 삶을 꾸려갈 수 있었던 1960년대 이후의 서민들의 삶은, 2008년 이후로는 그저 꿈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아직도 시냇가 건너 동구밖에는 과일이 주렁 걸린 나무들이 있고,  

오후 햇살이 익어가는 갈대밭 뒤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철길이 있던 시절, 

동네 구멍가게의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지루한 노래에 장단 맞춰 흥얼거리는 아지메.

다방구와 술래잡기로 먼지를 뽀얗게 쓴 어린 얼굴들에는 땀방울이 흘러 뗏국물 자욱을 내고,

이윽고 붉은 노을이 먼 산에 걸릴라치면, 골목에는 한줄기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 이에 땀을 식히고

재잘대던 아이들은 하나둘 병아리 마냥 각자 집으로 쪼르르 돌아가버렸다. 

집 마당에 들어서면 흰 솜뭉치같은 강아지가 방방거리고 꼬리를 흔들고,

엄마의 몸에서는 고소한 밥 내음이 살랑거리고 있다.

  

"어린 아이의 하루와 한 해는 농밀하다. 점과 점의 틈새에서 다시 무수한 점이 빽빽하게 차있을 만큼 밀도가 높고, 정상적인 시간이 착실한 속도로 착착 진행된다. 어린 아이는 순응성이 뛰어나고 후회를 알지 못하는 생활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간 일은 냉혹할 만큼 싹둑 잘라내고, 하루하루 다가오는 광채나 변화에 지조라고는 없을 만큼 대담하게 전진하고 변화해 간다.

 그들에게는 '그냥 어쩌다보니 지나가는 시간' 같은 건 없다.


 어른의 하루와 한 해는 덤덤하다. 단선 선로처럼 앞뒤로 오락가락하다가 떠민 것처럼 휩쓸려간다. 전진인지 후퇴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모양새로 슬로모션을 '빨리 감기'한 듯한 시간이 달리가 그린 시계처럼 움직인다. 

 순응성은 떨어지고 뒤를 자꾸 돌아보고 과거를 좀체 끊지 못하고 광채를 추구하는 눈동자는 흐려지고 변화는 좋아하지 않고 멈춰서고 변화의 빛이라고는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지나가는 시간'이 덧없이 흘러간다."

-릴리 프랭크, 도쿄가족 중-


-Salvador Dali,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MoMA, New York.-


시간이란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지만, 이미 인간은 4차원의 시공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본능적으로 시간이 누구에게나 같은 것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달리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이 1931년이니 그가 과학쪽에 조예는 깊지 않았을지라도 당시에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아인슈타인이나 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해 조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그림에서 그러한 영향을 받았다고는 단정할 수 없게지만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처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고 부단히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그래도 하루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서 칠흙같은 어둠이 세상을 덮기라도 하면 조금은 초조해지고 조금은 미안해지는 이 희미한 우울함만은 어쩔수가 없는 일이다.




댄브라운의 인페르노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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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랭던이었다. "케케묵은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다윈의 이론을 배우며 자라난 나로서는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촉진하려는 시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로버트" 시에나가 여전히 강력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유전공학은 진화 과정을 촉진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것 자체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전개 과정의 일부라고요! 당신은 버트런드 조브리스트라는 사람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진화'라는 사실을 잊고 있어요. 그의 탁월한 지능이야말로 다윈이 설명한 바로 그 과정의 산물이에요.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온 진화의 일부라는 거죠. 유전학에 대한 버트런드의 남다른 통찰력은 어느 순간 신의 성스러운 영감 때문에 번쩍하고 나타난 게 아니에요. 수많은 세월을 두고 축적되어온 지성의 진보가 그런 천재를 만들어낸 거에요."

 시에나의 그 말은 랭던을 또 한 번 깊은 상념으로 밀어 넣었다.

"다윈주의자라면 누구나 자연이 인구를 일정한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한 사건들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거에요." 시에나의 논리는 거침이 없었다. "흑사병, 기근, 대홍수, 다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이렇게 물어보면 어때요? 이번에는 자연이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낸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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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생물학은 왓슨의  DNA의 나선구조의 발견, 그리고 그 이후 게놈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생물을 유전자레벨에서 재정의할 수 있는 기술을 인간에게 선사하였다. 물리학에서 상대론과 양자역학의 이론 체계의 수립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첨단 과학들은 과거 우리가 신의 영역으로 치부했던 범우주적 시스템이 돌아가는 원리에 인간이 접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윈이 자연선택이라 했던 그러한 선택을 우리 인간은 이제 우리의 손으로 직접 콘트롤하고 수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의미이다. 

유전자 조작에 대해 아직까지도 종교나 도덕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신의 뜻에 반한다거나, 윤리원칙에 입각했을때 비인간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있으나 결국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인간은 결국 진화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길을 택할 것은 현대의 기술의 발전과정을 지켜봤을때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장애가 없어지고, 불치병이 없어질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는데 그 수혜를 거부할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러한 좋은 면과 마찬가지로, 인구의 증가로 인해(과거 지구 생태학적 관점에서 지구의 환경이 순환하면서 견딜 수 있는 인구의 맥시멈이 200억이라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그 출처는 확실치 않다. 아마 만화였을지도.) 결국은 지구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최대치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며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도 늘어나고 출생율에 비해 사망율이 줄어들게 되면서 결국 인구는 우리가 사는 터전인 지구가 견딜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하는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우리의 기술로 인구를 억제하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게 단순히 피임약이나 콘돔과 같은 걸로 해결된다면 다행이겠지만 말이다.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 내용이 통계청에서 발표되었다.

통계청에 가보면 볼 수 있다.



그 data를 근거로 서울, 경기 지역의 인구/가구, 주택 규모에 대한 러프한 분석을 해봤다.

가구 증가에 따른 주택공급을 보면 서울은 몇 만호 정도를 초과공급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구 1천명당 주택수(미국 410, 일본 473)를 보면 우리나라 평균인 320에 비해 38이 모자란 282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 역시 평균에 비해 낮긴 마찬가지.

인구가 지속적으로 수도권에 몰리고 있고, 1, 2인가구 증가에 따라 소형주택의 니즈가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결국, 아직도 서울,경기 지역에 집이 한참 모자르다는 결론이 나온다. 서울,경기 집값이 비싼건 어쩔 수 없는 시장의 법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경제학자가 그랬다고 한다. 가장 현명한 건 돈이다.
현명한 사람은 돈의 흐름을 따른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결과는 매우 정리가 잘 되어있다. 부동산등 인구와 관련된 경제내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꼭 봐야할 기초자료가 된다.

작년 9월에 발표한 뉴스테이법에 의해서 재개발 연한이 30년으로 줄어든 부분에 의해 서울, 경기지역의 30년 이상 주택도 재개발/재건축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중요한 수치이다.



"옛 서독의 풍요와 달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2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옛 동독의 낮은 경제 수준이 있습니다."


"한국은 일찍이 중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전달받았고, 기원후 700년경에 단일 중앙정부 하에 통일되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은 오래전부터 복잡한 제도를 경험했습니다. 현재 북한의 악독한 정부는 그런 역사적 이점을 헛되이 날려버렸습니다. 그러나 남한은 달랐습니다. 40년에 가까운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후로도 1950년대에 여전히 가난했지만 한국은 제도적인 측면에서 부국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입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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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하는 형태로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진 이후 3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옛 동독 지역은 서독에 비해 아직까지 낮은 경제수준이며, 같은 국가이긴 하지만 이러한 부의 차이는 심각한 사회갈등을 초래하고 있으며 이것은 독일 정치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전에 했던 '통일은 대박'이라는 이야기는 우리의 정치권(적어도 새누리)이 통일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유아기적인 환상에 젖어있나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남과 북이 어떻게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비젼이 있었다. 이러한 비젼에서 "햇볕정책"이라는 일련의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구체적으로 북한과의 대화창구를 확대하고 경제협력으로 남북의 교류를 활성화하여 남과 북의 실질적인 상호협력을 구체화하고, 50여년간의 분단으로 인해 꽁꽁 얼어붙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불씨를 살리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이전 정권의 뜻을 이어받아 실질적인 남북 경협 사업을 현실화하여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통해 남북간의 교류 채널을 다변화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본의 아니게 자본주의의 실험에 들게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들리는 얘기로는 김정일이 죽으면서 가장 후회하고 김정은에게 유언으로 지시했던 내용중 하나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라 한다. 김정일은 돈 맛을 본 인민들이 자본주의에 물드는 것이 결국 자신의 집안의 독재에 큰 부담이 될 것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직접 자신이 남한의 대통령과 협의한 내용을 아무리 막나가는 정권이라 해도 그냥 파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전전긍긍했다는 의미다.)

 어찌되었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통해 남측과 지속적으로 언로가 열리게 되면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북한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커다란 축벽도 조그만 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에 의해서 붕괴되듯이 개성공단과 금강산이라는 채널을 통해 흘러들어가는 자본주의의 물줄기는 중장기적으론 북한의 경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김씨 일가의 독재에는 가장 큰 위협요소였던 것이다.

 지금의 남과 북의 관계처럼 김대중 정권 이전, 무려 40여년간 남과 북은 변변한 핫라인조차 없이 시시때때로 휴전이 언제 끝나고 전쟁이 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대치관계를 지속해왔다.

사실 이것은 북한만의 의도는 아니고, 남한도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을 통한 긴장유발을 정권유지에 이용했던 탓도 있다. 어찌 보면 남과 북 모두 정권유지를 위해 암묵적인 합의하에 서로간에 전쟁분위기를 띄워 긴장을 유지하고 그를 통해 사회분위기를 경색시키고 국민들은 들러리처럼 그런 분위기에서 남에서는 북한을 적대시하고, 북에서는 남한을 적대시하는 장면을 연출해왔다. 특히 그런 분위기는 꼭 선거 직전에 대규모의 간첩단 검거나 북한의 포사격(최근에는 원폭 실험)을 통해 고조되곤 한다.


 현재 북한의 체제의 경직성과 분위기로 봐선 북한 내부에서 무언가 내란같은게 나서 체제가 무너지길 바라는 것은 남한에서 다시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이가 나타나서 쿠데타가 나길 바라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주변국가들로서도 남과 북의 대치로 인한 완충지역이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좋은 마당에 자기들로서는 별 득도 안되게 남과 북을 통일시킬 이유가 만무하다. 즉 남과 북이 통일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남자와 여자가 결혼할때 제일 중요한 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구애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구애를 하려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해야 한다. 즉 지금 남과 북이 통일되기 위해서는 남한이 적극적으로 통일을 바라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지금 입장으로 봐서 남한이 남자의 역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명박도 그렇고 박근혜도 그렇고, 결국은 새누리라는 정권의 속성이긴 하지만 현재의 여권은 전혀 통일에 대해 의지가 없는 정치집단이다. 아니 의지가 없다기보다는 통일을 강력히 반대하는 집단이라는 것이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지난 9년간 남한정부가 그 이전에 문민정부에서 이룩해놓은 북한과의 협력체제를 붕괴시킨 것을 그래도 관심있게 본 사람이라면 그 정도 눈치는 있을 것이다)


 내가 볼땐 더불어 민주도 뭐 그리 통일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집단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사실상 통일은 현 시점에서 전혀 대박이 아니다. 아마 통일이 되기 위해 과거 '햇볕정책'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정책을 수십년 추진해서 실제 통일이 된다 해도 60년 이상 낙후된 북한의 경제적인 부분을 부흥시키고, 김씨 일가 독재체제에 사상훈련을 받아온 북한의 3000만의 쌩또라이들(그들은 3000만명의 광신도랑 다를바가 없다)을 민주주의 국민으로 재교육시키는데만 또 수십년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통일은 대박'을 외치며 언제어디서나 입고있는 옷색깔이나 이슈로 만드는 순진무구한 대통령을 뽑아주는 순진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통일은 언감생심이 아닐까 싶다.

아래 기사는 얼마전 출시된 삼상의 갤럭시노트7 의 배터리 결함으로 인한 리콜 이후 삼성 주가의 향방에 대한 미래에셋의 예측을 나타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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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기자 = 미래에셋증권이 배터리 결함으로 갤럭시노트7의 전량 리콜을 결정한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9일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하고 목표주가는 기존 175만원에서 190원으로 높였다. 실적 추정치 상향과 가치평가 기준 연도를 2016년에서 내년으로 변경한 것이 목표가 상향의 근거라고 설명했다.

갤럭시노트7의 전량 리콜 결정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 증권사 도현우 연구원은 "이미 시장에 풀린 갤럭시노트7 300만대를 모두 교환해줄 경우 삼성전자에 부담이 되는 금액은 최대 8천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며 "하지만 교환해주고 받은 제품을 수리해서 리퍼폰으로 판매하거나 부품으로 재활용할 경우 실제로 들어가는 금액은 이보다 적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 연구원은 "빠른 리콜 결정으로 오히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이전보다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며 "최근 애플이 발표한 아이폰7이 전작과 크게 변화된 점이 없어 흥행을 보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삼성전자 실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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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은 좀 더 기다려봐야겠지만, 삼성의 발빠른 리콜 대응이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다는 하나의 예라고 하겠다. 이건희 시절인 1995년 구미 휴대폰 사업부에서 당시 애니콜로 대표되던 삼성 휴대폰의 결함이 시장에서 발견되었고, 당시 제품 전량을 리콜해서 500억원 상당의 제품을 모두 불태웠던 경험이 삼성엔 있다. 당시 이 건으로 인해 삼성=품질이라는 이미지가 소비자에게 각인되었으며 이로 인해 무형으로 얻은 소득은 현재 삼성을 만드는 밑바탕이 되었다.

금번 갤노트7의 배터리 결함에 해당하는 물량은 글로벌 250만대이며 이중 실제 소비자에게 팔린 물건은 100만대로 대당 가격 100만원 정도로 볼때 글로벌 1조에 해당하는 양으로 물론 어느정도 타격은 있겠지만 삼성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보인다.

이번 사태에서 삼성이 전격적으로 리콜 결정을 한데는 삼성의 사원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전해진다. 삼성이 초기에 배터리 교환으로 대응의 가닥을 잡고 있을때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삼성의 제품을 산 고객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교환만이 이번 사태에 고객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다라는 의견이 사내 인트라넷에 올라왔고 이 의견에 대해 동조하는 댓글이 수없이 올라왔다고 한다. 이에 고무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최고경영층에서 전량 리콜로 결정을 내렸고 이에 대해 현재 발빠른 추후조치가 진행중이다.

모든 기업은 흥망성쇄를 거치게 되어 있다. 시장에서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는 철칙이다. 산업혁명 이후 글로벌로 100년이 넘게 대기업이 유지된 예가 전세계적으로 단 1개밖에 없다는(GE). 산업의 역사가 서구에 비해 짧은 우리의 경우에도 50년을 넘어가는 기업을 손에 꼽을 정도이며 이 중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일류기업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업은 아마도 삼성이나 LG 정도가 유일할 것으로 보며, 그 규모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에서 삼성이 경제계에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기업이 흥하면서 곧 위기가 시작되는데 그것은 바로 규모의 비대화에서 시작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규모가 비대해지면 그 조직의 대응은 늦어지며 스피드가 곧 생명인 현대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바로 규모의 비대화에 의한 조직의 경색을 버티지 못하고 망하는 회사가 태반이며 망하진 않더라도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추고 정체된 체, 시름시름 버티다가 수년 혹은 수십년내로 망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조직의 비대화에 의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 바로 혁신(Innovation)이다.

혁신이란 것은 한마디로 비유하자면 사람이 살을 빼는 것과 비슷하다. 운동선수가 자신의 종목에서 최선의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그 종목에 필요한 근육, 심폐능력, 지구력, 순발력등을 키워 자신의 몸을 최적화시키면서 외적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하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운동선수가 그러한 훈련을 거치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인데, 수백, 수천, 수만, 현대에는 수십만까지 모인 하나의 거대 조직이 다양한 사업적 요구사항이 시시각각 빛의 속도로 바뀌어가는 현대의 시장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조직의 속도,체력,순발력을 키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사람'이다. 결국 기업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의 움직임과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을 그 기업이 가졌는가가 기업이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가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다.

삼성이 현재 지속적 성장의 와중에서도 성장통을 견뎌가며 계속 속도를 높이고 체력을 키울 수 있는 배경에는 바로 혁신을 모티베이션하는 주요한 엔진이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부인에게는 그리 쉽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삼성은 그것을 95년에도 잠시 보여줬고, 2016년에도 잠시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여준다고 보여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아는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은 갖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나, 한 번 놓치면 다시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든 기업이든 일류가 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일본의 철학자 - 고교 졸업후 독자적인 철학을 정립한 일본의 철학자라고 함.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일상의 어렵지 않은 주제를 다룬 수필 형식이라고 할까?


아직 국내에 번역되진 않았다.(그리 주류는 아닌 듯)


맘에 드는 내용을 발췌 번역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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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사회는 여러 가지 '시간을 단축하는 기계'를 만들어왔다. 세탁기나 전자레인지 등도그중 하나일 것이고 공장에서는 새로운 기계가 생산 시간을 계속 단축한다. (중략) 비행기는 한 시간 정도면 국내 어디든 갈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내고 슈퍼마켓도 쇼핑 시간을 단축하는 역할을 완수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에는 예전의 몇 분의 일의 시간에 같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시간을 단축하는 기계'가 늘어남에 따라 꺼꾸로 현대인들은 바빠져 시간 여유를 잃게 되었다. 예전에는연말에 선물을 들고 신세 진 분의 댁을 방문하는 여유가 있었는데 요즘은 택배로 보낼 준비를 하는 것조차번거로울 정도다.

 그런 점에서 현대는 불쾌한 사회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제 사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여유가 없는 것이나쁜 일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요인마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 환경이 열악해지는것은 경제적으로 모두 비즈니스 기회가 될 수 있다. 가령, 자유롭게 새로운 비즈니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펼쳐지는 것을 경제면의 자유라고 한다면 사람들에게 여유가 없는 것도 경제의 자유를 발전시켜 나가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현대인이 바쁘게 사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점차 과정을 묻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 관련 있을 것이다. 마치 결과가 정답이면 그걸로 그만인 시험처럼 그것이 어떤 인간관계 속에서 만들어져 어떤 과정을 거쳐 손에 넣은 것인가 하는 사실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었다. 가능한 한 빨리 결과를 손에 넣는 것이 가치가 된 것이다. 이렇게 과정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간주하게 되어 누구나 시간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려는 발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합리적으로 시간을 관리했음에도 시간 여유는 생기지 않았다. 반대로 한가해야 할 시간조차 시간에 지배되어 계속해서 시간에 쫓기는 오늘날의 상황이 생겨났다. 아마도 시간을 더 합리적으로 관리하면 여유 라는 자유도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나 그것을 손에 넣는 과정등에 시간을 뛰어넘는 가치를 발견하는 사회야말로 인간적인 여유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http://ppss.kr/archives/36576

오카다 다카시,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중.


 회피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일은 자신의 인생에 주체성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자기 맘대로 될 만큼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무수한 인과의 사슬과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다. 아무리 당신이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관리하려 해도 온갖 우발적인 요소와 타인의 행동에 의해 영향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망하는 것,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우리는 인생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우리의 의지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자신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기회의 대부분은 그렇게 우연히 나타난다. 중요한 점은 기회가 왔을 때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라듐 발건으로 유명해졌으며 노벨 물리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마리 퀴리는 알려진 바와 같이 힘들게 물리학을 배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가 평생을 바친 학문에 이르는 과정은 한없이 아득한 것이었다. 마리는 당시 러시아의 점령지였던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는데, 그때만 해도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파리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이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니와 동생들의 교육비도 고려해야만 했으므로 아버지의 경제력만으로는 그녀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마리는 더부살이 가정교사를 하며 언니와 동생들의 학비를 송금하는 길을 선택했다. 언젠가는 자신도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송금을 하고 나면 자신을 위해 남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마리는 총명한 여성이었지만 소극적인 성격에다 자신을 드러내는 유형이 아니었다. 오히려 언니 쪽이 더 사교적이고 적극적이었다. 마리는 뒤에 숨어서 가족을 지원하는 쪽을 선택했다.


 더부살이 가정교사로 일하는 동안 청초한 아름다움과 총명함을 겸비한 마리를 그 집 장남이자 바르샤바 대학의 학생이었던 카미지에시 조라프스키가 보고 첫눈에 반했고, 마침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어머니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만다. 가난한 하급 귀족 출신인 마리가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열렬히 사랑을 속삭였던 카지미에시도 처음 열정은 어딘가 사라지고 마리를 지켜주지도 못한 채 결혼 이야기는 흐지부지되었다. 가정교사는 예전처럼 계속 하라고는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일한다는 것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그 상황이 계속되었더라면 천하의 마리 퀴리라 해도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독학으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가정교사인 채 결혼도 하지 못하고 늙어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때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파리에서 의사와 결혼한 언니로부터 편지가 온 것이다. 거기에는 '이번에는 마리 네 차례야. 파리로 오거라.'라는 말이 씌어 있었다. 그런데 배려심이 깊던 마리는 처음에 그것을 거절하고 만다. 사실 마리는 아직도 카지미에시를 단념하지 못하고 몰래 편지를 주고받았고 여행지에서 몰래 만났다. 하지만 이 만남이 마리의 운명을 결정했다. 카지미에시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마리는 진절머리를 냈고, 마침내 두 사람은 완전히 헤어진 것이다. 마리는 파리로 가고 싶다는 답장을 보냈다.


 마리가 이때 신혼인 언니와 형부에게 부담을 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파리행을 거부했다면, 이루어질 가망이 없는 사랑을 계속 간직했더라면, 그녀가 공부할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끝나버리자 마리는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됐고, 그것은 인생을 뒤바꿀 계기가 되었다.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한 멋진 나날들, 남편과의 만남, 방사선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대성공 등등이 그 계기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또 언니가 의사와 결혼한 이후 생활이 안정되었다는 점도 마리가 사랑을 끝내고 파리로 간 이유 중 하나였다. 이렇듯 운명이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원래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한다.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것도 외부의 목소리였다. 마리의 경우 자신이 파리로 나가 공부하고 싶어 한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만들어준 것은 언니의 편지였고, 슬픈 사랑의 결말이었다.


 그러나 바라던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에 응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마리 퀴리조차도 아슬아슬하게 기회를 놓칠 뻔했다. 운명이 자신에게 무엇을 시키려고 하는가. 그런 관점에서 상황을 돌아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느꼈다면 순순히 그것을 따라야 한다.


 실패하지 않을까, 잘 안 되지 않을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싶어 겨우 찾아온 운명의 목소리에 귀를 막지 않아야 한다. 하늘의 뜻이라는 순간이 평생 몇 번인가는 있다. 그때는 일단 해보는 것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회피형 인간은 지금의 상황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다는 교착 상태에 빠지기 쉽지만 외부에서 손을 잡아당겨 주면 의외로 움직인다. 만약 누군가가 손을 내민다면 그것에 순순히 매달려보자. 꼼짝도 않고, 아무것도 바꿔보려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愛情得了痛苦, 愛情失了痛苦"

애정은 얻어도 아픔과 괴로움이요, 잃어도 아픔과 괴로움이다.

세상만사가 다 애정으로 이루어진 드라마요.


사랑은 靜的인 것의 극치이다

 
 한국에서 '엘리트'라는 단어가 갖는 독특한 위상 못지않게, 한국의 교육기관과 기업 역시 다른 나라와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소수의 인재가 나머지를 먹여 살린다"는 구호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사실 이 주장은 서구 사회에서는 감히 입 밖에 내놓을 수 없는 '무엄한 말'이다.

 이 말은 사실과도 거리가 멀다.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는 '인재'들이 먹여 살려야 하는 '밥벌레 집단'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삶을 가능케 해주는 터전이다. 평범한 시민들은 그 '인재'들이 속한 교육기관에 물적,인적 토대를 제공하고, 그들이 일하는 기업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사주고 투자하며, 끊임없이 아이디어와 노동력을 공급해주고
있다.

 오히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리는 셈이다.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리는가'의 문제는 단순한 수사학의 차원이 아니다. 이는 한 사회에서 기업과 학교가 져야 할 책임을 규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대학이 사회 없이 존속할 수 없다면 그들의 얻은 이익의 '사회 환원'은 '자선 행위'가 아니라 마땅히 되돌려주어야 할 빚을 갚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시민들이 한 달만 물건을 사주지 않아도 도산할 기업들이 도리어 '국민들을 먹여 살린다'고주장하거나 지역사회의 도움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교육기관들이 지역 주민들을 이방인 취급해오지 않았던가.

 감사의 주체와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로부터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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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시민의 역량을 집중시켜 기득권에 대한 반발을 해 본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 서구와 차별화 되는 이러한 점이 합리성보다는 情에 치우치는, 진보와 개혁보다는 보수의논리에 치우치는 담론이 상기와 같은 논의를 막고 호도해왔으며, 서민 자신들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점에서'엘리트'주의가 대한민국에서 먹히고 있다는 것은 바로 대다수 국민인 '서민' 자신들의 탓이라고 할 수 밖에는 없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날 우리의 나로호도 같이 산화되었다.

과학과 국력의 발전은 일개 개인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무식하고 몰상식한 것이 아니다.

무수한 개인의 피땀을 집단의 지성의 힘으로 융합하고 쌓아올려야 하는 진정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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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arkoz.com/zboard/view.php?id=images2&no=90036





어제 지구로 귀환한 일본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

그 기록입니다. 마지막까지 읽다보면 울컥할지도...



2003년 5월 9일 13시 29분 25초 발사


2004년 5월 19일 15시 22분 지구 스윙바이(swing-by:행성 인력을 이용한 궤도 수정및 재추진)

이온엔진 전력가동상태로 고도 3700km를 핀포인트로 통과. 소행성 이토카와를 향해 출발.


2005년 2월 18일 원일점 통과


2005년 7월 31일 리액션 휠 1기 고장, 남은 2기를 이용한 자세유지기능으로 전환


2005년 8월 24일 이토카와 접근준비. 엔진정지


2005년 9월 4일 이토카와 촬영성공


2005년 9월 12일 이토카와 상공 20km에서 정지


2005년 10월 2일 리액션 휠 1기 추가 고장


2005년 11월 4일 강하 리허설 이상발생. 중지.


2005년 11월 9일 재리허설로 고도 70m까지 접근. 개발자의 이름이 들어간 타겟마커 정상 분리.


2005년 11월 12일 3번째 리허설로 고도 55m까지 접근. 

미니 탐사기 미네르바를 방출하지만 이토카와에 투하실패. 미네르바 소실.


2005년 11월 20일 샘플 수집 미션 결행.


상공 40m에서 88만명분의 서명이 담긴 타겟마커 분리. 이토카와에 무사안착.

자율모드로 강하중 센서가 이상을 감지후 중지.

중지후 상승시 센서가 이상을 감지하여 상승중지.

강하도 상승도 못하는 상태로 이토카와 표면에 거칠게 바운드.

바운드후 자세를 제어하려하지만 실패. 일시적 자세제어 불능상태가 됨.

이토카와에 연착륙. 일시적 통신두절.

예상밖의 상황으로 인해 자율행동이 불가능해짐.

표면온도 섭씨 100도가 넘는 환경 속에서 30분간 머뭄.

지구상으로부터의 지령으로 스러스터를 기동시켜 이륙.

소행성에서 비상한 세계첫 탐사기가 됨.


2005년 11월 26일 두번째 샘플 회수 미션 결행.


초속 9cm로 천천히 이토카와에 강하.

터치다운 성공. 샘플 수집에 성공했는지는 불명.

이륙시 스러스터B계에서 연료누설.


2005년 11월 27일 하야부사에 대한 자세 제어 명령 실패.

동일, 누설된 연료의 기화에 의한 온도저하로 배터리 방전.

동일, 시스템의 광범위 전원계통 리셋.

동일, 자세제어 스러스터의 모든 출력 저하. 자세제어곤란에 이름.


2005년 11월 28일 통신두절되나 익일 비컨 통신 회복.


2005년 12월 2일 이온엔진의 재기동을 시도하지만 본격시동실패.


2005년 12월 3일 하야부사의 자세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을 확인.

긴급 자세제어 프로그램 개발착수.


2005년 12월 4일 제논가스 분사에 의한 자세제어 성공.


2005년 12월 8일 자세제어 스러스터계에 또다시 연료누설발생. 

자세제어 불가능. 전 화학 스러스터 손실.


2005년 12월 9일 통신 두절.


2006년 1월 23일 하야부사로부터의 비컨 신호 수신.


2006년 2월 25일 8bps로 통신 성공.


2006년 3월 4일 34bps로 통신 성공.


2006년 5월 31일 엔진B및D의 기동시험성공.


2006년 7월 태양광압을 이용한 스핀 안정상태로 이행. 동월, 리튬 이온 배터리 재충전개시.


2007년 1월 17일 시료용기를 귀환캡슐에 격납.


2007년 4월 25일 지구로의 귀환을 위해 이토카와 출발. 기능불완전다수. 그러나 항행에 지장은 없음.


2007년 7월 28일 이온엔진C복구. 이후 C의 단독운전 전환.


2007년 10월 18일 귀로 제 1차 궤도 변경 완료.


2008년 2월 28일 세번째의 원일점 통과.


2009년 2월 4일 리액션휠 재기동. 동일 이온엔진 D를 재점화. 귀로 제2차 궤도 변경개시.


2009년 8월 13일 8시 30분 메모리 에러. 그러나 항행에 지장없음.


2009년 9월 10일 네번째 원일점 통과.


2009년 9월 26일 이온엔진 재점화. 동력비행 재개.


2009년 11월 4일 중화기 열화로 인해 엔진D정지. 추력부족에 의해 귀환불능상태에 빠짐.


2009년 11월 20일 이온엔진A와 B 2대를 1대로 운용. 지구 귀환 재개.


2010년 3월 귀로 제2차 궤도변경완료.


2010년 4월 지구귀환을 위한 정밀 유도 개시.


2010년 6월 14일 지구귀환. 고도 20만km에서 지구귀환 캡슐 분리.


캡슐은 초속 12km로 대기권돌입. 호주 우메라 사막에 귀환.


하야부사도 캡슐을 쫓아 대기권으로 돌입. 


소행성 돌입 시뮬레이션을 실시하며 소각폐기.


그 임무와 생애를 마침.



하야부사가 마지막으로 본 지구


P.S

우주개발사가 다 그렇듯 꽤 극적인 과정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관련 컨텐츠가 연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캐릭터물도 있지만 그건 패스하고

아래는 JAXA에서 배포한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UCC입니다.

영상, 음악, 스토리 모두 잘 어우러져서 볼만합니다



"미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지난버린 것 같았다."

- 편혜영 통조림 공장 中-

곱씹을수록 씁쓸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글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19/2010041902012.html

4.19의거날 당나라의 한선교 씹쌔가 헛소리를 지껄이더니, 결국 가카의 맘에 안드는건
이렇게 하나둘씩 사라지고 마는 슬픈 세상이다.

나 어릴때, 박통과 전통시절 위정자가 맘에 안들면 방송국, 대기업, 수많은 개인들이 그냥 한칼에 날라가는
무서운 세상이었는데, 민주주의 10년을 뒤로하고, 다시 이 꼴을 봐야 하다니, 참으로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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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006011800353&sec_id=540101

개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2일 마지막 녹화… 누리꾼 외압설 제기
하경헌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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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대사로 현시대를 비판적으로 풍자했던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코너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하 나술세)이 2일 녹화를 마지막으로 폐지된다. 그동안 코너가 방송되지 않을때 마다 외압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네티즌을 비롯한 시청자들은 드디어 올것이 온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술세'는 경찰 지구대를 배경으로 취객 두 명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는 내용으로 그동안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된 사람이 외치는 일종의 저항을 패러디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성광이 외치는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냐""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외침에 관객들은 물론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하며 씁쓸한 웃음을 터뜨려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 코너는 지난 4월19일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국회 문광위에서 김인규 KBS 사장에게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대사가 가장 찝찝한 부분"이라고 지적하면서 외압설에 시달려왔다. 이후 제작진은 "박성광의 대사를 고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결국 폐지의 수순을 밟게 됐다.

박성광 역시 폐지를 예상한 듯 지난달 26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주 개콘 나술세 통편집… 이유가 뭘까. 많이 터졌는데. 이유가 궁금해!!!"라고 밝힌 후 "감독님 생각에 재미가 없으신 듯, 감독님 맘에 들도록 재밌게 다시 짜야죠"라고 밝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제작진은 자연스러운 코너의 교체라는 입장이다. '개콘'의 박중민CP는 스포츠칸과의 통화에서 "최근 박성광의 코너와 관련해 많은 추측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외압이 있었다면 그 즈음 폐지가 결정돼야 하지 않겠나. 제작진이 교체시기가 됐다고 판단해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콘'은 전임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김인규 사장에 이르기까지 시사풍자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조기폐지 수순을 밟고 있어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해 '봉숭아학당'에 MB를 성대모사한 개그맨 안윤상이 조기 하차했고, 박영진이 짠 풍자개그 '뿌레땅 뿌르국' 역시 조기 폐지의 수순을 겪었다. 누리꾼들은 "'나술세'보다 훨씬 재미없는 코너와 개그맨들도 장수하는데 '나술세'의 폐지는 납득하기 힘들다" "외압이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하경헌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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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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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인 학생입니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 나이엔 수능을 위해서 늦게 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합니다.
그 날도 동생은 어김없이 자율학습에 지친 몸을 이끌고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어둑한 골목길을 따라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며 아파트에 다 다를 때쯤, 등 뒤로
낯선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아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동생은 피곤해서 예민한 탓이라고 자신을 달래며 아파트 앞까지
도착했습니다.

일은 겹친다고 마침 그 날은 엘리베이터 점검 날.
오후에 끝이 나기로 했었지만 어째서인지 내일까지도 점검이 이어져 어쩔 수
없이 계단으로 자신의 집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답니다.

몇 층을 오른 뒤 다음 층을 오르기 위해 걸음을 내 딛는 순간,
무언가 이상한 걸 느꼈습니다.

분명 계단을 오르는 건 자신 밖에 없는 것 같은데,
발걸음 소리가 엇박으로 나고 있던 것입니다.

동생은 이상한 느낌에 걸음을 멈추고 계단 옆의 틈새로 아래를 봤습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두 층 밑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분명 사람이 없다면 껴져있을 텐데…….

아까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답니다.
하지만 자신과 점점 좁혀오는 걸음 소리에 겁에 질려 급하게 계단을 빠져나와
살려달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동생 집은 복도 끝에 있어서 한참 뛰어가는데, 그 순간 '철컥'하고 잠기는
현관문 소리와 체인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 것도 한 두 집이 아니라
그 층에 있는 여러 집에서 철컥, 하는…… 현관문을 재점검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동생은 집에 무사히 들어갔지만, 자길 뒤따라오는 발걸음 소리보다
이웃들의 현관문을 다시 잠그는 소리가 더 무서웠다고 합니다.

http://thering.co.kr/2027

First Communion(1895~96)
(Primera Comunion)
유화, 피카소 미술관, 바르셀로나

피카소는 라 코루냐 예술학교에 입학했던, 11살때부터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14살때
그리기 시작했으며, 색조,구성,기술에 있어 거장의 솜씨가 엿보인다.

피카소는 이후에 "나는 15살때 이미 벨라스케스처럼 그림을
그렸으며,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리는데 80년이 걸렸다"
라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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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in blue(1901)
(Mujer en Azul)
유화 133x100 cm,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20세 약관의 나이에, 정형화된 화풍을 탈피하기 시작
했으며, 마드리드의 성 페르난도 미술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주르바노 거리에서 스튜디오를 설립하였으며,
여기서 그의 혁명적인 색채에 대한 아이디어를 그림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국립예술전에 출품되었으나 심사위원들에 의해 탈락되었으며 이후로 오랫동안 잊혀진 채로 남아있었다.

모델의 신비로운 눈, 표현, 화려한 드레스와 투톤의 배경색이 새로운 자연주의 영향아래서, 새로운 형식의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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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La Vida,1903)
유화, 클리블랜드 미술관

청색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깡마른 형상, 알콜중독자, 걸인, 창녀와 같은 극빈계층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엘그레코의 스타일을 연상케 한다.

이 그림은 바로셀로나에서 그려졌으며, 젊은 커플, 아이를 안은
여인, 배경의 벌거벗은 인물들은 노년기의 외로움을 향한 인생유전을 묘사하고 있으며, 청색시대의 특징인 우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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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gedy(La Tragedia, 1903)
유화, 105x69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다른 청색시대의 작품이다. 이 시기의 작품은 우울함, 비극, 불행에 휩싸인 가족을 보여줌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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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of Acrobats
(Familia de Saltimbanquis, 1905)
유화, 213x229 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핑크의 시기의 작품이다.
피카소는 서커스와 곡예를 종종
다루었다. 선과 색조가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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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Toilette(1906)

유화, 알브라이트 녹스 아트 갤러리, 버팔로.

핑크의 시대 중기작품으로, 마티스와 같은 그에게 영향을
준 다른 작가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피카소는 여전히 두가지
색조의 단순한 배경을 즐겨 사용하고 있으며, 구상도 동일
하다. 그러나 색의 사용을 바꿈으로해서 그림을 완전히 다르게
보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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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rem(El Harem, 1906)
유화, 154.3x109.5cm
클리블랜드 미술관, 오하이오

핑크의 시대에 속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아비뇽의
여인들과의 관련성을 생각케 하는 작품이다.
허큘레스를 연상하는 남자는 와인을 마시면서 욕망의
대상으로 여성들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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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의 여인들
Les Demoiselles D'Avignon(1907)
유화,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뉴욕

원시적이며 고전적인, 그리스와 아프리카의 영향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개념의 화법, 큐비즘.
이 새로운 화풍의 첫번째 작품으로,
후에 수많은 화가들이 이 화풍을 모방하게 된다. 여성누드화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부드러움과 섬세함은
급격하게 거친각도와 평면으로 변화되었으며, 이 시기 대부분의 비평가로부터 외면되었다.

이 작품으로부터 시작된 큐비즘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운동의 하나이다. 

왼쪽의 여성의 얼굴로부터는 매우 뚜렷한 원시성을 엿볼 수 있는 반면,
중앙의 두 여인의 모습은 이베리안 여인들의 전형적인 얼굴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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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Life(Dead Bird, 1912)
유화, 46x65cm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

큐비즘;혼란스러운 형태, 앵글들, 수없이 중첩된 평면들..
제목인 죽은새는 매우 찾기 어렵고, 깃털들은 서로 다른 평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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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ead Flute(La Flauta de Pan, 1923)
유화, 205x174.5cm
피카소 박물관, 파리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그의 미술세계는 더욱
고전적이고 실체적인 개념으로 변모되었다.
구상으로의 회귀와 인체를 다시 다루고 있다.
인물과 커다란 석조구조물로 된 배경은 그리스적인 고전미를 보여주지만, 지중해적인 풍광을
더하고 있다. 이 시기 피카소는 큐비즘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시도를 하였으며, 그의 창조적인
천재성에 의해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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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ruments de musique sur une
table(1925)
유화,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피카소는 미로와 친분을 가졌는데, 그림에서도 그러한 면이 많이 투영되고 있다.
이 그림도 그러한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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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te et pallette(1925)
유화, 54x65.5cm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이 그림은 정물화의 간단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배경과 주요대상들의 조화를
매우 공격적인 선으로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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