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는 소설의 형식을 취하지만 내용은 논픽션이다.

읽는 느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과 매우 유사하다. 그만큼 재밋기도 하다.

이 소설집은 선생께서 여기저기에 부탁 등을 받고 써주었던 당시의 소회, 에피소드를 모은 것으로, 책 말머리에도 쓰여 있지만 본인도 이 글을 내가 썼던건가 갸우뚱 거릴 정도로 본인에겐 잊혀진 글이라고 한다. 

무라카미도 장편을 쓰고 난 후의 휴식기에 정신적 휴식을 취하는 시기에 단편을 쓰거나 번역일을 하는 등의 가벼운 작업을 한다고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글들의 내용은 에피소드 지향적으로 논픽션이라는 점을 빼면 소설 그 자체의 성격을 가진다.

가볍게 읽을 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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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

 두 번째로 품은 닭이 "낙서落書"였다. 낙서는 봉혜의 7대손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고생을 했다. 봉혜의 씨가 말라, 봉혜의 적손들이 사는 지눌의 집에서 입양을 해왔는데, 기존의 패거리들에게 엄청 "왕따"를 당했다. 어려서부터 쪼임을 당했고, 모이를 먹을 때도 모이통에 대등하게 머리를 디밀지 못했다. 딴 놈들이 먹으면서 흐트러놓은 모이가 주변의 땅바닥에 떨어지면 빙글빙글 돌면서 재빨리 주워 먹곤 했다. 성경에도 시로페니키아의 여인이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있다(막7:28). 그 광경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일본의 중 · 고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극심한 왕따현상, 결국 우리나라까지 오염되고 말았지만, 그 왕따현상은 일본사회의 독특한 문화에서 유래하는 기풍이 아니라, 동물세계에서 아주 흔하게 목격되는 원초적 생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물세계의 원초성이 인간세의 도덕성보다 더 순박하고 아름다운 측면도 있지만, 인간세의 발전은 바로 약자를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한다고 하는 협동의 국면으로부터 그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 전기는 이미 수렵 · 채집경제사회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수렵은 공동체 성원의 협력(cooperation)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수렵으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니까 타인에 대한 복지나 관회關懷가 없으면 그것은 문명이라 말할 수 없다. 닭사회의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오히려 협력을 거부하는 문명 이전의 상태로 퇴락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인류사회의 한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문명퇴폐의 한 극상極相이다.

 

p147

 그러나 그 험난한 등반여정의 중간 길목에 있는 "깔딱고개"를 코앞에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깔딱고개만 넘으면 그래도 나머지 등반이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깔딱고개는 너무도 숨이 차서 못 넘을 수도 있다. 그러면 결국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깔딱고개란 본시 숨이 차도 무리해서라도 내친 걸음으로 힘차게 행보해야만 넘을 수 있는 것이다.

 

p198

 씨렉은 씨 섹션 c. section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씨 쎅션의 씨(c)는 "씨세리안cesarian"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로마의 황제 "씨이저"라는 말의 형용사형이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암시하는 아주 애매한 예수의 말이 나오고 있다. 여기 "가이사"는 영어 "씨이저"의 로마 원발음에 가까운표기이다. 이 "가이사"를 중국인들은 "개살凱撒"이라고 표기했다. 이것을 북경만다린으로 읽으면 "카이사"가 된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때만 해도 "씨쎅"이라는 말은 없었고 "개왕절개"라는 말만 있었다. 개왕凱王은 곧 씨이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제왕절개"라는 말도 썼다. 개왕凱王은 로마의 황제였으므로 "제왕帝王"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레코-로망 세계를 나이브한 공화체제에서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체제로 전환시킨 가이우스 줄리우스 씨이저Gaius Julius Ceaser라는 인물이 과연 씨쎅으로 태어났는가? 씨쎅의 발상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씨쎅은 과도한 출혈과 패혈증으로 반드시 산모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줄리우스 씨이저는 기원전 100년 7월 12일에 태어났다. 7월을 "줄라이July"라고 부르는 것은 씨이저의 탄생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본따서 명명한 달력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줄리우스 씨이저는 아버지는 조실했지만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씨이저의 산모는 죽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개왕절개의 신화는 엉터리인 것이다. 의학사학자들은 로마의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애기 낳다가 죽은 여자는 반드시 복부를 칼로 갈러보고 매장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것이 후대에 로마황제 씨이저의 칙령으로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개왕절개"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추론하기도 한다.

 

 

p371

 나를 떠받쳐 주었던 물리적 관계가 전혀 나의 존재를 보장해주는 실상이 아닌 허상이었다는 자각에 함몰한다. 그 자각의 결론은 심각한 고독감이다. 그런데 고독이란 인간의 관계없이는 불치의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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