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개인적으로 인구감소에 대한 이슈에 관심이 간다. 더 자세하게는 인구감소의 영향이 경제성장을 저하시킬까 하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인구의 감소는 노동력 손실로 이어져 경제하강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 같다는 선입견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항상 있어왔는데, 이 책은 꼭 그렇지는 않다라는 것을 데이터와 현재까지의 경제적 발전의 역사과정을 통해서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제는 "人口と日本經濟 長壽,イノベ-ション,經濟成長" "인구와 일본경제 : 장수, 이노베이션, 경제성장"으로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요약하자면 인구는 경제성장의 하나의 요인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은 인구, 즉 노동력 자체보다는 이노베이션에 의해 노동생산성의 향상 혹은 경제(생산,소비) 구조의 변화에 의한 것이 더 크다는 내용이다.
200페이지 남짓의 짧은내용(저자도 이론서라기보다는 에세이라고 표현했다)이라, 경제적 이론보다는 직관적인 그래프와 상식적인 내용 위주로 쉽게 풀어나간다.
세계 최저 출생율로 인한 인구감소가 점차 가시화되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추어서도 많은 참고가 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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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
인구 억제는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맬서스는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심과 그로 인한 만혼화, 비혼화가 인구를 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억제는 분명 사회적으로 가난한 계층에서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많은 남녀 하인들이 미혼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미혼자 수를 전체 인구로 나눈 '미혼율'을 밝혀내면 그 나라의 인구가 증가하는지 혹은 감소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어디까지나 미혼율은 인구의 '증감'과 연관된 것이지 인구의 많고 적은 '수준'과는 관련이 없다고도 했다.
여기서부터 구빈법 개혁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다. 구빈법을 개혁해 급부 수준을 인상하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맬서스는 급부 수준이 인상되면 빈곤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일시적으로는 향상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효과가 크면 클수록 인구가 증가하고, 결국 이들의 생활은 이전과 변함없는 비참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소득을 재분배한들 식량의 총공급량이 변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그들의 생활은 개선될 리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맬서스는 가족을 제대로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증가해 인구가 늘어나면 결국에는 굶주림, 질병 등으로 인해 인구가 억제되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계속해서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러한 비참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애초에 가난한 사람들이 가족 부양의 어려움을 자각하고 결혼을 포기함으로써 인구가 억제되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이다.
맬서스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논리는 『인구론』의 중반부에 요약되어 있다. "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식량에 의해 제어된다. 식량이 많아지면 인구도 늘어난다. 인구 증가를 부추기는 힘을 억제하고 현실 속 인구와 식량의 공급 수준을 적절히 조정할 수 있는 건 빈곤과 악덕이다." 이러한 맬서스의 논의는 이후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에 의해 매도당한다.
p50
번영의 시대였던 19세기에 부의 불평등은 저축의 증가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만약 한 나라가 창출하는 부를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한다면 사람들은 이를 전부 소비해버리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저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유 있는 부자들이 저축을 하고 그것이 자본 축적으로 이어지면서 경제 사회가 진보한다. 즉 불평등은 인간 사회가 진보하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것이 19세기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이었다.
p90
우선 공급의 측면을 보자. 노동자 수가 감소하면 만들 수 있는 제품의 수도 감소한다. 이는 이해하기 쉬운 이론이자 부정할 여지가 없는 '불변의 논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사실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 있다. 한 국가에서 1년간 생산되는 모든 물건 및 서비스 가치(정확히는 '부가가치')의 총계를 나타내는 것이 GDP(국내총생산)인데 그 성장률은 결코 노동력 인구의 증가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표2-6>은 1870년부터 100년간 일본 인구와 실질 GDP의 변화를 비교한 것이다. 전후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표의 오른쪽을 보면 상승세가 두드러지는데, 축적을 바꾸어 왼쪽만 보면 전전戰前에도 GDP와 인구 성장 사이에 매우 큰 괴리가 보인다. 메이지 시대(1868~1912)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150년 동안 경제 성장과 인구는 겨의 관계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괴리된 모습을 보였다.
경제 성장률과 인구 증가율의 차이야말로 '노동 생산성'의 성장과 다름이 없다. 노동 생산성의 향상은 대략 '1인당 소득'의 성장을 의미한다. 노동력 인구가 변함없더라도(혹은 조금 감소하더라도) 한 명의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증가하면(즉 노동 생산성이 상승하면) 경제 성장률은 플러스가 된다.
한 국가에서 노동 생산성 상승을 야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새로운 설비와 기계를 투입하는 '자본 축적'과 넓은 의미에서의 '기술 진보', 즉 '이노베이션'이다.
p108
2012년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제3차 산업 혁명'이라는 특집 기사를 냈다. 선진국의 제조업 현장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으로 확산되었으나 이제는 3D 프린터 등이 등장하면서 물건을 만들 때 필요한 인간의 노동량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코노미스트』 특집에서는 애플의 아이패드 소매가격 499달러 중 제조 비용(판매료 및 인건비)은 187달러이며, 그중 중국에서의 노동 비용은 8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물론 산업에 따라 생산량에서 노동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어쨋든 간에 21세기에는 '값싼 노동력'이 별다른 이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새로운 물건을 팔 시장과 가까운 곳에서 만들 때의 이점이 더 커진다. 이로써 제조 현장은 또다시 선진국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한다.
p194
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밀은 자신의 이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인간에게 최선의 상태란 아무도 가난하지 않을뿐더러 누구도 부유해질 생각이 없고, 부유해지려는 타인의 노력을 보고도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않는 상태다. -정치 경제학 원리-
인간에게 있어서 항상 다른 인간과 접촉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고독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고독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고독, 즉 때때로 혼자가 되는 일은 인간이 자신의 생각 및 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없어선 안 될 부분이다.
p213
안타깝게도 현재 일본 경제는 퇴영적退嬰的이다 <표4-5>는 저축, 즉 수입과 지출 차액의 추이를 가계, 기업, 정부 등 부문별로 살펴본 것이다. 이제는 기업이 가계를 넘어 일본 경제에서 가장 큰 순 저축 주체가 되었다. 이를 자본주의 경제 본래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가계가 저축을 하고 기업이 마이너스 저축, 즉 빚을 내어 투자했다. 기업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뀐 것은 시대가 아니라 기업이다.
슘페터는, 이노베이션을 떠맡아야 할 주체는 본질적으로 금전적 이익을 물론이거니와 미래를 향해 스스로의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인스 역시, 기업의 설비 투자란 아문센이 개썰매를 타고 남극을 향했듯이 결국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에 의한 것이라며 건전한 낙천주의를 잃어버리고 합리적인 계산에만 매달리는 기업은 쇠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경제의 미래는 일본 기업이 '인구 감소 비관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서도 아마 비슷한 자료를 찾을 수 있을것 같긴 한데 찾지는 못했다. 경제지 기사를 참고해보면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예상된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03/146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