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다 다카시,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중.
회피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일은 자신의 인생에 주체성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자기 맘대로 될 만큼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무수한 인과의 사슬과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다. 아무리 당신이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관리하려 해도 온갖 우발적인 요소와 타인의 행동에 의해 영향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망하는 것,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우리는 인생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우리의 의지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자신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기회의 대부분은 그렇게 우연히 나타난다. 중요한 점은 기회가 왔을 때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라듐 발건으로 유명해졌으며 노벨 물리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마리 퀴리는 알려진 바와 같이 힘들게 물리학을 배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가 평생을 바친 학문에 이르는 과정은 한없이 아득한 것이었다. 마리는 당시 러시아의 점령지였던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는데, 그때만 해도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파리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이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니와 동생들의 교육비도 고려해야만 했으므로 아버지의 경제력만으로는 그녀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마리는 더부살이 가정교사를 하며 언니와 동생들의 학비를 송금하는 길을 선택했다. 언젠가는 자신도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송금을 하고 나면 자신을 위해 남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마리는 총명한 여성이었지만 소극적인 성격에다 자신을 드러내는 유형이 아니었다. 오히려 언니 쪽이 더 사교적이고 적극적이었다. 마리는 뒤에 숨어서 가족을 지원하는 쪽을 선택했다.
더부살이 가정교사로 일하는 동안 청초한 아름다움과 총명함을 겸비한 마리를 그 집 장남이자 바르샤바 대학의 학생이었던 카미지에시 조라프스키가 보고 첫눈에 반했고, 마침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어머니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만다. 가난한 하급 귀족 출신인 마리가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열렬히 사랑을 속삭였던 카지미에시도 처음 열정은 어딘가 사라지고 마리를 지켜주지도 못한 채 결혼 이야기는 흐지부지되었다. 가정교사는 예전처럼 계속 하라고는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일한다는 것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그 상황이 계속되었더라면 천하의 마리 퀴리라 해도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독학으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가정교사인 채 결혼도 하지 못하고 늙어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때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파리에서 의사와 결혼한 언니로부터 편지가 온 것이다. 거기에는 '이번에는 마리 네 차례야. 파리로 오거라.'라는 말이 씌어 있었다. 그런데 배려심이 깊던 마리는 처음에 그것을 거절하고 만다. 사실 마리는 아직도 카지미에시를 단념하지 못하고 몰래 편지를 주고받았고 여행지에서 몰래 만났다. 하지만 이 만남이 마리의 운명을 결정했다. 카지미에시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마리는 진절머리를 냈고, 마침내 두 사람은 완전히 헤어진 것이다. 마리는 파리로 가고 싶다는 답장을 보냈다.
마리가 이때 신혼인 언니와 형부에게 부담을 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파리행을 거부했다면, 이루어질 가망이 없는 사랑을 계속 간직했더라면, 그녀가 공부할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끝나버리자 마리는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됐고, 그것은 인생을 뒤바꿀 계기가 되었다.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한 멋진 나날들, 남편과의 만남, 방사선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대성공 등등이 그 계기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또 언니가 의사와 결혼한 이후 생활이 안정되었다는 점도 마리가 사랑을 끝내고 파리로 간 이유 중 하나였다. 이렇듯 운명이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원래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한다.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것도 외부의 목소리였다. 마리의 경우 자신이 파리로 나가 공부하고 싶어 한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만들어준 것은 언니의 편지였고, 슬픈 사랑의 결말이었다.
그러나 바라던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에 응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마리 퀴리조차도 아슬아슬하게 기회를 놓칠 뻔했다. 운명이 자신에게 무엇을 시키려고 하는가. 그런 관점에서 상황을 돌아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느꼈다면 순순히 그것을 따라야 한다.
실패하지 않을까, 잘 안 되지 않을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싶어 겨우 찾아온 운명의 목소리에 귀를 막지 않아야 한다. 하늘의 뜻이라는 순간이 평생 몇 번인가는 있다. 그때는 일단 해보는 것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회피형 인간은 지금의 상황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다는 교착 상태에 빠지기 쉽지만 외부에서 손을 잡아당겨 주면 의외로 움직인다. 만약 누군가가 손을 내민다면 그것에 순순히 매달려보자. 꼼짝도 않고, 아무것도 바꿔보려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