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2002년 작품으로 장편으로서는 10번째(내 기준으론) 작품에 해당한다.

그의 작품은 초기부터 양이라든가 어떤 매개체로서 의인화된 동물들이 등장하는 등 약간은 초현실적인 경향을 띄는 작품들이 있는데 아마도 이때까지의 작품중 가장 상징적이며 초현실적인 장치들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품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도 이전의 작품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측면이 있다.

첫번째 읽었을때는 이 작품에 대해 거의 이해한 바가 없었는데(내용 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몇 년이 지난뒤 2번째 읽게되자 내용은 선명히 머리에 들어온다는 느낌이 있다.

일명 까마귀 소년과 동행하는 가명의 15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의 가출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출생의 비밀과 그에 얽힌 저주로부터 도망치려는 소년과 함께, 60살이 넘은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일그러진 인상의 나카타라는 노인사이의 에피소드가 병행교차하면서(이런 구조는 무라카미 소설 구조에서 몇 몇 작품에 보이는 친숙한 구조) 이야기가 진행된다.

서로 완전히 상관이 없던 것 같은 2개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같은 공간과 시간내로 이어지면서 독자의 몰입이 극대화되는 효과도 물론 있긴 하지만, 그 상징들간의 연관성을 명확히 이해하기란 사실상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다. 특히 이 소설의 경우는 그러한 장치,상징들간의 연관성이 소설에도 등장하는 말처럼 "그것은 말로서 설명되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이다." 과 같은 성질을 어느 정도는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독자마다의 개별성과의 작용에 의해 그것은 소설에 쓰여져 있는 활자로서의 공통적인 매개체를 통하긴 하지만, 공통적인 내용이 독자마다의 개별성과 작용하여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독자간의 교감에는 독자적인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듯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을 읽는 도중에는 전혀 이 소설의 내용에 대해 거부감이라든가 충격적이라 할 만한 부분은 없었는데, 영화화를 한다는 가정하에 보니 소설대로 영화를 만든다면 절대적으로 18세 관람불가가 될 수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문자로서 활자화된 매체에 의해 가려진건지 아니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문체때문에 가려진건지는 사실상 확실친 않다.

한꺼번에 확 하고 읽혀지는 작품은 아닌 듯 하다. 적어도 1,2번은 더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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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14. 세번째 완독 후.


 이 작품의 표면적 주인공은 다무라 카프카라는 소년이지만, 현실의 이야기를 구동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나카타 노인, 극후반부에서는 호시노 청년이 더욱 비중있게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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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p79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먼 옛날의 신화 세계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었어"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어?"

 "모릅니다" 하고 나는 대답한다.

 "옛날에는 세계가, 남자와 여자가 오늘날같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남자와 남자가 또는 남자와 여자가, 그 밖에도 여자와 여자가 한 몸으로 등이 맞붙어 있어서 마주 보지는 못하고, 서로 등짝이 딱 붙은 채 살아가는 세 종류의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애당초 인간은 오늘날과는 달리, 두 사람이 한 몸으로 붙어 있게 만들어졌었다는 거지. 그래도 모두 만족하고 아무 말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하느님이 칼을 써서 그 모든 사람들을 반쪽씩 두 사람으로 갈라놓았어. 모든 살마을 두 조각 내 버렸다는 거지. 그 결과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칼에 맞아 생긴 일직선으로 된 흔적이 등짝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요행히 제대로 자기 짝을 찾게 되면 해피엔딩의 사랑이 되지만, 영영 찾지 못하거나 찾았다 싶어 결합했는데 아니다 싶으면 다시 영원한 이별이 된다는 그럴듯한 얘기지. 그 결과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만이 있게 되어서, 사람들은 원래 한 몸으로 붙어 있던 반쪽을 찾아 우왕좌왕하면서 인생을 보내게 되었대."


p163


 "나카타 상, 여기는 참으로 폭력적인 세계입니다. 아무도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부디 그 사실을 잊지 마세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다고는 할 수 없지요. 고양이나 인간이나 말이에요."


p200

 아이들의 마음은 부드러워서 여러 형태로 삐뚤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삐뚤어지고 굳어진 것은 좀처럼 원상태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두 번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p207

 "하지만 인간은 무엇인가에 스스로를 밀착해 살아가는 존재지"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너도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하고 있을 거야. 괴테가 말하듯, 세계의 만물은 메타포거든."


p215

 요컨대 어떤 종류의 불완전함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p256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고,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모두 내 얼굴을 노려보고 손가락질을 해댄다. 기억에 없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없다, 고 나는 주장한다. 거기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것조차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말한다. "누가 그 꿈의 본래 소유자이든, 너는 그 꿈을 공유했다. 그러니까 꿈속에서 행해진 일에 대해 너는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그 꿈은 네 영혼의 어두운 통로를 통해서 숨어 들어온 것이니까."

 히틀러의 거대하게 일그러진 꿈속에, 어쩔 수 없이 말려 들어간 아돌프 아이히만 중령과 마찬가지로.


p258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하지만 널 알다가도 모르겠어. 그런 건 잠자코 마음대로 상상하면 되잖아? 일일이 내 허락을 받지 않아도, 네가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그런 걸 나는 어차피 알 수 없으니까 말야."

 아니, 그렇지 않다. 내가 무엇을 상상하는가는 이 세계에서 어쩌면 대단히 중요한 일인 것이다.


p285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하고 조니 워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규칙일세.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눈을 감아도 사태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으니까. 눈을 감았다고 해서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아니, 오히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사태는 더 악화되어 있을 거라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걸세. 나카타 상. 눈을 똑바로 떠야 하네. 눈을 감는 것은 약자가 하는 짓이야.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비겁한 자가 하는 짓이란 말일세. 자네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단 말이야. 똑딱똑딱하고."


p346

 젠더라는 말은 애당초 문법상의 성별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저는 신체적인 성차性差를 가리킬 경우는 역시 섹스라고 표현하는 쪽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젠더'는 오용입니다. 

==> 페미니즘에 대한 무라카미의 냉소?


p384


 "거기에는 아이러니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아이러니?"

 오시마 상은 내 눈을 들여다본다. "자, 내 말 잘 들어. 다무라 카프카 군. 네가 지금 느끼는 것은 수많은 그리스 비극의 동기가 되기도 한 거야. 인간이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인간을 선택한다. 그것이 그리스 비극의 근본을 이루는 세계관이지. 그리고 그 비극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하고 있는 것이지만 -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사자의 결점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사자의 장점을 지렛대로 해서 그 비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거야. 내가 말하는 걸 알 수 있겠어? 다시 말하면 인간은 각자가 지닌 결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질美質 즉, 타고난 장점이나 아름다운 성질에 의해서 더욱 커다란 비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거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그 뚜렷한 본보기라고 볼 수 있어. 오이디푸스 왕의 경우, 게으름이나 우둔한 때문이 아니라 그 용감성과 정직함 때문에 그의 비극은 초래되었거든. 거기에 불가피하게 아이러니가 생겨나는 거야."

 "그러나 구원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이 없을 수도 있어. 그러나 아이러니가 인간을 깊고 크게 만들거든. 그것이 더욱 높은 차원의 구원을 향한 입구가 되지. 거기에서 보편적인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어.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 비극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예술의 하나의 원형이 되고 있는 거야. 다시 되풀이하게 되지만, 세계의 만물은 은유라고 하든 메타포거든, 누구나 실제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는 메타포라는 장치를 통해서 아이러니를 받아들인다. ㅣ그리고 스스로를 깊게 그리고 넓게 다져나간다는 얘기야."


p389

 나는 말한다. "예언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울지도 몰라요. 아버지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얘기를 되풀이해서 나한테 들려주었어요. 마치 내 의식에 끌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겨 넣듯이 말이죠."


(하권)

p43


 나도 열다섯 살 무렵에는 어딘가 다른 세계에 가고 싶어했지" 하고 사에키 상은 미소 지으며 말한다. "어느 누구의 손도 미치지 않는 곳으로. 시간의 흐름이 없는 곳으로."

 "하지만 이 세계에 그런 장소는 없습니다."

 "그래, 맞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사물이 계속 훼손되고, 마음이 계속 변하고,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계에서."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듯 한참 입을 다문다. 그리고 다시 계속한다. "그렇지만 나도 열다섯 살 때에는 그런 장소가 세계의 어딘가에 꼭 있을 것으로 생각했거든. 그런 다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를,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사에키 상은 고독했습니까, 열다섯 살 때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랬지. 나는 고독했어. 외톨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척 고독했어. 왜냐하면 내가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때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나는 시간의 흐름이 없는 장소에 들어가고 싶었던 거야.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나이를 먹고 싶습니다."

 사에키 상은 거리를 조금 두고 내 표정을 읽는다. "다무라 군은 틀림없이 나보다 강하고 독립심이 있는 거야. 그 무렵의 나는 다만 현실 도피의 환상을 품고 있을 뿐이었거든. 하지만 다무라 군은 현실에 맞서서 싸우고 있어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지."


p91

 

 "자네도 참 답답한 인간이군. 계시란 그런 거란 말일세" 하고 샌더스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계시란 일상성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것일세. 계시 없는 인생이 무슨 인생이란 말인가! 다만 관찰하는 이성에서 행위하는 이성으로 뛰어 옮겨 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나, 이 얼간이 같은 친구야?"


p113


 "이보게, 호시노 짱, 신이라는 건 인간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라네. 특히 이 일본에서는 좋건 나쁘건 간에 신은 어디까지나 융통무애融通無碍한 것이네. 그 증거로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신이었던 천황이, 점령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이제 신 노릇은 그만두시오' 라는 지시를 받자, '네, 이제 나는 보통 인간입니다' 라고 하며, 1946년 이후부터는 신이 아니게 되었네. 일본의 신이라는 것은 그 정도로 조정이 가능한 것일세. 싸구려 파이프를 물고 선글라스를 낀 미국 군인의 몇 마디 지시에 존재 방식이 달라져버리거든. 그만큼 초포스트모던한 존재지.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걸세.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관. 좁게는 일본의 천황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


p168

 "다무라 카프카 군, 이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 같은 건 원하지 않아. 원하고 있다고 믿을 뿐이지. 모든 것은 환상이야. 만약 정말로 자유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무척 난감해할걸. 잘 기억해 두라고. 사람들은 실제로는 부자유를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야."

 "오시마 상도요?"

 ""응. 나도 부자유를 좋아하지. 물론 정도껏이긴 하지만"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장 자크 루소는 인류가 울타리를 만들었을 때 문명이 태어났다고 정의했지. 그야말로 예리한 관찰력이라고 할 수 있어. 그의 말대로 모든 문명은 울타리로 구획된 부자유의 산물이야.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아보리지니(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만은 별개지. 그들은 울타리가 없는 문명을 17세기까지 유지하고 있었거든. 그들은 나면서부터 자유인이었어. 마음 내킬 때 마음 내키는 곳에 가서 마음 내키는 일을 할 수가 있었지. 그들은 인생은 문자 그대로 돌아다니는 것이었어.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은 그들 삶의 깊은 메타포였지. 영국인이 건너와서 가축을 가두기 위한 울타리를 만들었을 때, 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 그리고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반사회적이고 위험한 존재로서 황야로 추방되었지. 그러니까 너도 가능한 한 주의하는 게 좋아, 다무라 카프카 군. 결국 이 세계에서는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인간이 유효하게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것을 부정하면 넌 황야로 추방당하게 돼."


p207

 우리들이 모두 멸망하고 상실되어 가는 것은, 세계의 구조 자체가 멸망과 상실의 터전 위에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지. 우리의 존재는 그 원리의 그림자놀이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 바람은 불지, 미친듯이 불어대는 강한 바람이 있고,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잇어. 그러나 모든 바람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사라져.


p227

 "이봐요, 아저씨" 하고 청년이 말했다. "그 녀석들은 나카타 상이 그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면, 그 내용은 다 빼버리고 적당히 공술서를 날조한다구. 즉 자기네들이 적당히 이야기를 만들어낸단 말이야. 예를 들면, 도둑질을 하러 집에 들어갔더니, 사람이 있어서 부엌칼을 집어 들고 찔러 죽였다느니 뭐니 하고 말야. 그렇게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로 만들어버리거든. 진실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그 녀석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거지. 자기들의 검거율을 높이기 위해 범인을 날조해 내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거든. 그리고 나카타 상은 교도소나 경비가 엄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될 거야. 둘 다 끔찍한 곳이지. 아마 거기서 평생 나올 수 없을 걸. 어차피 제대로 된 변호사를 고용할 돈도 없을 테니까, 형식적으로 별 볼일 없는 삼류 국선 변호사가 붙을 뿐이지. 그렇게 될 게 뻔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에세이.


책 제목의 라오스와 함께 보스톤, 핀란드, 그리스, 구마모토등에 대한 여행기가 재미를 더한다.


아주 쉽게 술술 읽히는 부담이 전혀 없는 그런 책이다.

(

원제와 번역제목과는 약간은 틀리다. 별 문제는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약간 소설을 읽고나면 그 뉘앙스와 느낌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일본어 원서의 표지 디자인과  원제가 낫다는 느낌이 든다.


색채를 가지지 않은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 


이 소설은 확실한 성장소설이다. 아무래로 그의 소설 그것도 장편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일단 주인공의 이름은 다자키 쓰쿠루, 한자로는 

多崎つくる :  多崎는 많을 다에 험할 기, 즉 인생의 많은 기복을 의미한다고 본다.


つくる는 일본어 발음으로 2가지의 한자가 가능하다. 創(창), 作(작)

소설에도 내용이 나오지만, 아버지가 이 이름을 지어주면서 쓰쿠루의 한자를 고민하다가 결국 作으로 지어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내용에 이어서 볼테르의 창의력이란 사려 깊은 모방이다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 내용은 하루키의 창의력이 있는 사람과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에 있어서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를 고백한 내용으로도 보인다. 그렇다고 창의력보다는 무엇을 만드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인생의 무게가 더 가볍다고도 볼 수 없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이름에서 보이듯이 많은 험한 기복을 겪으면서 무언가를 만들 운명을 타고 난 듯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건 결국 일반적인 인간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나고야에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쓰쿠루는 고등학교 시절 4명의 단짝 친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4명의 친구는, 청소년기 뿐 아니라 다자키의 36년 인생을 통틀어서 거의 유일한 친구들이며 또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들이다. 또한 친구라는 설정으로 타자로서 위치하지만 그것은 다자키 내부에 위치한 4명의 친구의 개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2명의 남자친구는 아카마쓰 게이(赤松慶), 오우미 요시오(靑海悅夫)
2명의 여자친구는 시라네 유즈키(白根柚木), 구로노 에리(黑埜惠理)

각각 이름에 색이 들어가 있으며 이는 4명의 친구의 어떤 개성을 의미한다.
조금 더 들어가서 보면 아카마쓰 게이는 이름 자체에 그의 속성을 의미하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친구들도 그 이름 자체에 소설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들이 다 들어가 있다.

아카마쓰 게이는 적송과 같은 굳건함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고, 오우미 요시오는 시원한 여름바다와 같은 이미지와 삶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갖는 사내로, 구로노 에리는 거친 들판에서도 자신이 가진 운과 이성으로 잘 대처하나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으며, 비운의 시라네 유즈키는 이상주의적인 성격에 자신의 뿌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 나무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물론 작가가 이런 설명을 한 건 아니지만 소설의 내용과 이름과의 관계를 보면 작가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런 이름을 디자인한 것으로 강력히 유추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소설은 기존의 어떠한 하루키의 장편보다도 친절한 메타포와 전개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조금 어렵다거나 맞지 않는 사람들은 이 작품으로 먼저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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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10일 재독.

하이다와 사라의 내용이 좀 더 자세히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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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0.

 그의 이름은 하이다였다. 하이다 후미아키(灰田文紹).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여기에도 색이 있는 인간이 있다.'라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미스터 그레이. 회색은 물론 눈에 잘 안 띄는 색깔이기는 하지만.

p74.

 본명은 한자로 쓰면 '多崎作' 이지만 공식적인 문서가 아닌 한 '多崎つくる'라고 썼고 친구들도 그의 이름을 그렇게 알았다. 어머니와 두 누나만이 그를 '사코'나 '사쿠 짱'이라 불렀다. 그편이 일상적으로 부르기 쉬웠기 때문이다.

 이름을 지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실제로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첫아들 이름을 '쓰쿠루'라 지어 둔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른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 어떤 형태가 있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행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장소에서 살아온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어떤 계시 같은 것을 어떤 시점에 받았는지도 모른다. 소리 없는 천둥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번개가 '쓰쿠루'라는 말을 그의 뇌리에 새겨 넣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다. 쓰쿠루에게도 또는 다른 누구에게도.

 다만 '쓰쿠루'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한자를 '創'으로 하느냐 '作'으로 하느냐에 대해서는 아버지도 많이 망설였던 것 같다. 읽을 때는 똑같은 발음이라도 글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어머니는 '創'을 추천했지만 며칠이나 숙고를 거듭한 끝에 아버지는 보다 온건한 '作'을 선택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어머니는 그때 일을 떠올리고는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創'이라는 글자가 이름에 들어가면 인생의 짐이 꽤 무거워질지도 모른다고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발음이 똑같이 '쓰쿠루'라도  '作'으로 하는 쪽이 본인에게 가볍지 않을까 하고. 어쨌든 네 이름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정말 신중하게 생각했어. 첫아들이라서 더욱 그랬을 거야.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친밀하게 지낸 기억은 거의 없었지만, 아버지의 견해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多崎創'보다는  '多崎作'가 분명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자신의 내면에서 독창적인 요소 따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그렇지만 그 덕분에 '인생의 짐'이 많이 가벼워졌느냐 하면, 쓰쿠루는 거기에 대한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이름 덕분에 짊어져야 할 집의 형상이 약간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게는 과연 어떨까?
 아무튼 그렇게 하여 그는 '다자키 쓰쿠루'라는 하나의 인격이 되었다. 그 이전의 그는 무이며 이름이 없는 미명의 혼돈에 지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겨우 숨을 몰아쉬며 울음을 터뜨리는 3킬로그램이 안 되는 분홍색 살덩어리였다. 먼저 이름이 주어졌다. 그다음에 의식과 기억이 생기고 이어서 자아가 형성되었다. 이름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다자키 도시오'였다. 그야말로 그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多崎利男'. 온갖 곳에서 이익을 올리는 남자. 무일푼으로 우뚝 일어서서 부동산업에 몸을 던져 일본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폐암으로 고통받다가 예순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 이야기이다. 쓰쿠루가 하이다를 만났을 무렵, 아버지는 아직 건재했고 하루에 필터 없는 담배를 50개피나 피우면서 도심지의 고급 주택을 열정적이며 공격적으로 매매했다. 부동산 거품은 이미 꺼져 버렸지만 그는 그 리스크를 어느 정도 예상하여 이익을 분산해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해 나갔기에 그 시점에서는 아직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았다. 폐에서도 불길한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p85.

 창의력이란 사려 깊은 모방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현실주의자 볼테르가 한 말이에요.

p104.

 미도리카와는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흠, 분명 재능이란 건 때때로 유쾌하기는 해. 폼도 나고 남의 눈을 끌기도 하고 잘만 하면 돈이 되기도 해. 여자도 붙어. 그야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 하지만 재능이란 말이야, 하이다. 육체와 의식의 강인한 집중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기능을 발휘해. 뇌의 어느 부분에서 나사가 하나만 빠지거나, 아니면 육체의 어딘가 연결선 하나만 툭 끊어지면, 집중 같은 건 새벽 안개처럼 사라져 버려. 예를 들어 어금니 하나가 욱신거리기만 해도, 어깨가 심하게 걸리기만 해도, 피아노는 제대로 칠 수가 없어. 사실이야. 난 실제로 그런 걸 체험했으니까. 고작 충치 하나 때문에, 뭉친 어깨 근육 때문에 모든 아름다운 비전과 울림이 휙 사라져 버려. 사람의 육체란 이렇게 나약하고 물러. 육체란 놈은 무섭게 복잡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고, 사소한 것에도 자주 상처를 입어. 그리고 한번 고장이 나 버리면 대부분 회복이 어려워. 충치나 뭉친 근육쯤은 아마도 쉽게 고칠 수 있을 테지만, 못 고치는 것도 잔뜩 있지. 그렇게 한 치 앞도 모르는 허약한 기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재증에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겠어?

 "물론 재능이란 덧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걸 최후의 순간까지 지탱하는 인간은 거의 없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거기서 태어나는 것은 가끔씩 정신의 위대한 도약을 이루어냅니다. 개인을 넘어 보편적인, 거의 독립적인 현상으로서."
 미도리카와는 거기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런 다음 말했다.
 
 "모짜르트와 슈베르트는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그 음악은 영원히 살아 있다. 하려는 말이 그런 건가?"
 
 "예를 들자면 그렇습니다."

 "그런 재능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거야. 그리고 많은 경우 그들은 생명을 갉아먹어서 너무 이른 죽음을 맞이하는 걸로 천재의 대가를 치르지. 그런 목숨을 건 거래 같은거야. 거래 상대가 신인지 악마인지, 거기까지는 몰라도."

p134.

 아카마스 게이(赤松慶)
 오우미 요시오(靑海悅夫) 
 시라네 유즈키(白根柚木)  
 구로노 에리(黒埜恵理)

p140.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쓰쿠루는 생각했다. 이건 꿈이 아니다. 환영도 아니다. 분명 현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현실이 가져야 할 무게가 없었다.

p238.

 "그런 시로를 앞에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게 솔직히 말해 나에게는 꽤 괴로운 일이었어. 옛날에는 거기 있었던 뜨거운 뭔가를,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그 비범한 것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 그것이 더는 내 마음을 떨리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재떨이 위에서 담배가 연기를 피워 올렸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때 시로는 이제 막 서른이 된 참이었어. 말할 것도 없이 아직은 늙을 나이가 아니야. 나를 만났을 때 그 애는 아주 소박한 차림새였어. 머리카락을 뒤에서 하나로 묶고 화장기도 거의 없었어. 아니 그런 건 크게 상관없어. 표면적이고 사소한 거야. 중요한 건 시로는 그때 벌써 생명력이 가져다주는 자연스러운 광채를 잃어버렸다는 거야. 그 애가 성격적으로는 내향적인 타입이었지만 중심에는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활발히 움직이는 뭔가가 있었어. 그 빛과 열기가 여기저기 틈을 찾아서 마구 바깥으로 새어 나왔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렇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런 건 이미 사라지고 없었어. 마치 누군가가 뒤로 돌아 들어가서 플러그를 뽑아 버린 것처럼. 예전에 그 애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싱싱한 물기를 머금게 했던 특유의 겉모습이 그땐 오히려 애처롭게 보였던 거야. 나이 문제가 아니야. 나이를 먹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고. 시로가 누군가에게 목을 졸려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정말로 안타까웠고 진심으로 불쌍했어. 어떤 사정이 있었든 그런 식으로 죽기를 바라지 않았어. 그렇지만 동시에 이런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어. 그 애는 육체적으로 살해되기 전에 어떤 의미에서 생명을 빼앗긴 상태였다고."

 아카는 재떨이의 담배를 집어 들어 깊이 연기를 들이켜고 눈을 감았다.

 "그 애는 내 마음에 아주 깊은 구멍을 하나 뚫어 놓았고, 그 구멍은 아직도 메워지지 않았어."

p245

 "내가 신입 사원 연수 세미나에서 처음에 늘 내뱉는 말이야. 나는 먼저 세미나실 안을 휘익 둘러보고 적당히 한 수강생을 지목해서 일어서게 해.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자, 여기 자네한테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하나씩 잇어. 먼저 나쁜 뉴스. 지금 자네의 손톱 또는 발톱을 펜치로 뽑으려 한다. 안됐지만 이미 결정 난 일이다. 절대 뒤집을 수 없다.' 그런 다음 나는 가방에서 아주 무섭게 생긴 커다란 펜치를 꺼내 보여 줘.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그놈을 보여 주지. 그리고 말해. '다음은 좋은 뉴스. 좋은 뉴스란, 손톱을 뽑을 건지 발톱을 뽑을 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거야. 자, 어느 쪽으로 할 텐가. 10초 내에 결정해야 해. 만일 스스로 어느 한쪽을 정하지 않으면 손과 발 두 쪽을 다 뽑아 버릴 거야.' 나는 펜치를 손에 든 채 10초를 카운터해. '발로 하겠습니다.' 거의 8초가 지나서 그 친구가 말해. '좋아, 그럼 발로 정해졌어. 지금부터 이놈으로 자네 발톱을 뽑도록 하지. 그 전에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어. 왜 손톱이 아니라 발톱을 선택했지?' 내가 물어봐. 상대는 이렇게 대답해.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아픈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니까 할 수 없이 발톱으로 한 겁니다.' 난 그 친구와 따스한 악수를 나누고 이렇게 말해. '진짜 인생에 온 걸 환영해.'라고. 웰컴 투 리얼 라이프(Welcome to real life)"

p363.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서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p378.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어. 나도 너도. 그리고 살아남은 인간에게는 살아남은 인간으로서 질 수밖에 없는 책무가 있어. 그건, 가능한 한 이대로 확고하게 여기에서 살아가는 거야. 설령 온갖 일들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해도."

p381.

 "혹시 네가 텅 빈 그릇이라 해도 그거면 충분하잖아. 만약에 그렇다 해도 넌 정말 멋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그릇이야.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그런 건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렇게 생각 안 해? 네 말대로라면, 정말 아름다운 그릇이 되면 되잖아.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그 안에 뭔가를 넣고 싶어지는 확실히 호감이 가는 그릇으로."

p388.

 포장도로에 나서자마자 갓길에 차를 대고 시동을 끄고 핸들에 엎드린 채 눈을 감았다. 심장의 고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에 몸의 중심 가까이에 차갑고 딱딱한 것이, 1년 내내 녹지 않는 동토의 중심부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것이 가슴의 통증과 숨 막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자기 안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태 그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것은 올바른 가슴 아픔이며 올바른 숨 막힘이었다. 그것은 그가 확실히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앞으로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 내야 한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p428.
 
 낙원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다.


릴리 프랭키의 자서전적 소설이라곤 하지만, 거의 자서전에 가까울거라고 본다.


일본어 원제는 

東京タワー―オカンとボクと、時々、オトン 로서, 오깡(엄마)이나 오똥(아빠)는 큐슈쪽

사투리인듯하다. 영화도 순 사투리 투성이라 자막없인 알아듣기 힘들다.


이 소설은 아주 통속적이며, 다들 어디선가 들어봤을법한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그런데도 희안하게도 그 이야기에 울림이 있는 것은 통속적이지만 바로 우리 모두가 근원적으로 갖고 있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이 소설속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상투적인 내용인 저자와 어머니와의 추억이 나와 어머니와의 추억으로 감정이입되면서 페이지를 넘기며 켜켜히 쌓여만가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조금만 건드려도 나오는 수도꼭지마냥 눈물이 한방울 한방울씩 눈가를 타고 흐른다.

도쿄로 대변되는 현대 메트로시티를 살아가는 고향을 잃은 대도시인으로서의 나와, 마음의 고향을 상징하는 어머니와의 따뜻한 일상, 그리고 그러한 따스함을 간직한채 죽음을 맞이하는 어머니와의 이별등이 치유의 눈물로서 가슴을 타고 흐른다.

사실상 이글을 소설로 냉정하게 따지자면 개인적으론 그리 높은 점수는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잘난 어머니든 못난 어머니든 어머니는 모두 위대한 어머니인 점에선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잘났든 못났든 하나의 어머니와 같은 그런 책이다.


3개의 단편이 연작을 이룬 중편 소설의 형태를 갖고 있다.

1편인 채식주의자, 2편인 몽고반점은 극의 재미와 긴장이 계속 유지되지만

3부인 나무 불꽃은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영혜를 대신해서 언니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 부분이 무언가 극의 긴장을 많이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원제는 태엽감는 새 크로니클(연대기)로서 일종의 대하소설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3개의 세대에 걸쳐서 언뜻 보기엔 전혀 상관이 없는 에피소드를 태엽감는 새라는 매개체를 통해하나의 주제로 엮으려는 의도를 저자는 가지고 있던 듯 하다.

몇 년전에 보고, 이번에 2번째로 이 소설을 읽었더니 그런 얼개가 조금 보인다.

개인적으로 보고 느낀바로는 이 책은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의 변주와 같다는 느낌(거의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랄까)이다. 

상실의 시대에 비해서는 비관적인 부분은 많이 순화되었으며, 낙관적인 부분은 보다 현실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정말 재밋는 소설이다. 무언가 엄청나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재밋다기보다는 그냥앞으로의 전개가 어찌될지에 대해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긴장감이 엔딩까지 꾸준히 유지된다고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읽을 수록 단순하게 무엇이라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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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는 3권으로 나왔음. 1권. 도둑까치,  2. 예언하는 새, 3권. 새 잡이 사내. 


이 책은 번역본으로 문학사상사의 윤성원 번역과 민음사의 김난주 번역이 있음.


내가 본 책은 1994년에 나온 문학사상사 윤성원 번역인데 4권짜리로 나왔다. 그런데 요즘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양장판본과는 좀 차이가 난다.

요즘 나온 책은 1권, 도둑까치, 2권. 예언하는 새 3권,4권이 새 잡이 사내 1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994년 판본은 1권. 작은 삶, 큰 의미, 2권. 욕망의 뿌리, 3권. 나는 누구인가, 4권. 나는 누구인가/태엽감는 새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다.


내용상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번역의 차이를 보기 위해 민음사 판본을 나중에 함 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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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작은 삶, 큰 의미


p26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사무소를 그만두었다. 그만두고 무엇을 하겠다는 뚜렷한 희망이나 전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집에 처박혀서 사법 시험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귀찮은 일이었으며, 더군다나 지금에 와서 변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앞으로 그 사무소에서 그 일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만일 그만둔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오래 있게 되면 내 인생은 아마도 거기에서 어느결에 끝나 버리게 될 것이다. 여하튼 나는 벌써 서른이 된 것이다.


p94

 그것은 무의미한 고행과 잔인한 고문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행위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나에게는 그들이 신주쿠 역 정도의 길이가 되는 식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p96

 「법률이라는 것은 요컨대 지구상의 사상을 지배하는 것이야. 음은 음이며, 양은 양이라는 세계지. 나는 나며, 그는 그라는 세계. '나는 나, 그는 그며, 늦가을.' 그러나 당신은 거기에 속해 있지 않아. 당신이 속해 있는 곳은 그 위 아니면 그 아래야.」


p97

 나를 버릴 때 나는 존재한다구. (무아, 노자적 사고)


p99

 「흐름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 하지만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려야 한다구. 그동안은 죽은 셈치면 돼.」


p217

 「그렇지만, 그러니까 무엇을 하고 싶냐고 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거야. 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그렇지만 이것을 꼭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은 없는 거야. 그것이 지금 나의 문제지.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것 말이야.」


p294

 나는 한쪽 팔과 12년이라는 귀중한 세월을 잃고 일본으로 돌아왔소. 히로시마에 돌아왔을 때, 부모님과 여동생은 이미 없었소. 여동생은 징용으로 끌려가 히로시마 시내의 공장에서 일하다가 원폭 투하로 죽었소. 아버지도 그때 마침 동생을 만나러 가겼다가 역시 숨을 거두셨소.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몸져누워서 1947년에 돌아가셨소. 좀전에 이야기했듯이, 내가 내심 혼약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여성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오. 묘지에는 내 묘가 있었소. 나에게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오. 나는 내가 정말 텅 빈 듯 느껴졌소. 여기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소. 그후 후 지금까지, 나는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오. 나는 사회 과목 선생이 되어 고등학교에서 지리와 역사를 가르쳤소. 그러나 살아 있었다고는 할 수 없소. 나는 나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역할을 하나 또 하나 해왔던 것뿐이오. 나에게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학생들과의 사이에서도 인간적인 인연 같은 것은 없었고, 학생들과의 사이에서도 인간적인 인연 같은 것은 없었소.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소.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던 것이오. 눈을 감으면 살아 있는 채로 가죽이 벗져겨 간 야마모토의 모습이 떠올랐소. 여러 번 꿈을 꾸었소. 야마모토는 내 꿈속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가죽이 벗겨지고 빨간 살덩어리로 변해 갔소. 그의 비통한 비명을 또렷이 들을 수 있었소. 그리고 나는 몇 번이고 내가 우물 바닥에서 살아 있는 채로 완전히 썩어 버리는 꿈을 꾸었소. 때로는 그것이 현실이고, 이러고 있는 내 인생이 꿈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소.


 혼다 씨가 하르하 강에서 내가 중국 대륙에서 죽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듣고 나는 기뻣소. 믿고 믿지 않고는 둘째치고 그때의 나는 어떤 것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오. 아마 혼다 씨는 그것을 알고 내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가르쳐 주었을 거요. 그러나 실제로 거기에는 기쁨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소. 일본에 돌아온 후 나는 계속 빈 껍질처럼 살았소. 그리고 빈 껍질처럼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것은 정말로 산 것이 아니오. 빈 껍질의 마음과 빈 껍질의 육체가 만들어 내는 것은, 빈 껍질의 인생에 불과하오. 내가 오카다 씨에게 이해받고 싶은 것은 실은 그것뿐이오.


 「그럼 미마야 선생님은 귀국하고 나서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나는 물어보았다.

 「물론입니다」 하고 마미야 중위는 말했다. 「아내도 없고, 친형제도 없소. 정말이지 나 혼자입니다.」

 

 나는 조금 망설이고 나서 어떻게 질문해 보았다. 「선생님은 혼다 씨의 예언 같은 것을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마미야 중위는 잠깐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오. 혼다 씨는 그것을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오. 나는 그것을 듣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오. 혼다 씨가 그때 말했듯이, 운명이라는 것은 나중에 뒤돌아보는 것이지 미리 아는 것은 아닐 것이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금에 와서는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요. 지금 나는 단지 살아간다는 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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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욕망의 뿌리


p65

 그러나 사실이라든가 진실이라든가 하는 말 그 자체가 지금 나에게는 그렇게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의 편지 속에서 가장 강하게 마음을 끌었던 것은 문장 속에 담겨 있는 안타까움이었다.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고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안타까움이었다.


p96

 "왜 그렇게 해파리를 좋아하죠?" 하고 나는 물어 보았다.

 "글쎄요, 그냥 귀엽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요, 아까 가만히 해파리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어요. 우리가 보고 있는 광경은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요.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것이 세계다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진짜 세계는 더욱 어둡고 깊은 곳에 있고, 그 대부분은 해파리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죠. 우리가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을 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구 표면의 3분의 2가 바다고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해면이라는 단지 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그 피부 아래 정말로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몰라요."


p110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지바 현의 작은 도시에 갔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동안 나는 어떤 의미에서 다른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집까지 바래다 주고 방으로 돌아와 혼자 바닥에 뒹굴며 천장을 바라보자 그 변화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여기에 있는 나는 '새로운 나'고 두 번 다시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내가 이제 순수하지 않다고 하는 인식이었다.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죄책감이라든가 자책감은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잘못을 범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일로 자신을 질책할 생각은 없었다. 질책하거나 질책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그것은 내가 냉정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물리적인' 사실이었다.


p323

 어쩌면 나는 패배할지도 모른다. 나는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있는 힘을 다했지만 이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잃어버린 후일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폐허의 재를 허무하게 손에 쥐고 있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인지도 모른다. 내 편에 내기를 걸 사람은 이 주위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상관없어" 하고 나는 작지만 단호한 소리로 거기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이것만은 분명해. 적어도 나에게는 기다려야 할 것이 있고, 찾아내야 할 것이 있어."

 그리고 나는 숨을 죽이고 줄곧 귀를 기울였다. 거기에 있을 작은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물보라와 음악, 사람들의 웃음 소리 저편에 있는, 그 소리 없는 미미한 울림을 나의 귀는 듣는다. 거기에서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찾고 있다. 소리가 되지 않는 소리로, 말이 되지 않는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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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나는 누구인가


p41

 만일 돈에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돈이 아니다. 돈이라는 것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두운 밤과도 같은 그 무명성이고 놀라워 숨을 죽일 만큼 압도적인 호환성인 것이다.


p178

 오히려 나는 그렇게 개미처럼 한눈도 팔지 않고 일을 함으로써 점점 '참다운 자신에게 가까이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드는 거예요. 뭐라고 할까요,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중심에 다가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내가 '약간 이상'하다고 말한 것은 이런 점입니다.



제목에 끌려서 본 책.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자꾸 이리저리 신경쓸게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그런 상황은 나 자신이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우유부단하다거나 누구나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한다고 느끼는 사람, 그것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같은 생각이 드는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저자가 쓴 또 다른 작품인(먼저 나왔다)나는 생겨먹은대로 살기로 했다도 보려고 하는 중이다.


이 책은 자서전이 아니라서 아마 자전적 에세이라고 쓴 것 같은데, 

제목처럼 소설가로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소설가가 된 계기와 직업인으로서 프로작가가 된 이후로 어떻게 소설을 쓰고 있고, 글을 짓는 입장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조금 더 그의 세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중에서도 써있는데, 그 자신은 자신의 소설이 형식면에서나 내용적으로 나이가 들 수록 더욱 충실해(혹은 더욱 충실해지려는 의도를 가지고)지는 중이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도 꼭 연대기적으로 그런 건 아닌 듯 하다. 

개인적 느낌으로는 태엽감는 새나 1Q84는 글의 느낌이 아주 농밀해서 읽다보면 무언가 끈끈한 작가의 땀과 기름이 배어나오는 것 같은 감상이 있는데 반해 여자 없는 남자들이나 댄스댄스댄스 이런 작품들은 그러한 밀도적인 느낌이 덜하다. 

확실히 무라카미 라디오같은 소설 중간중간 쓰는 에세이집은 밀도라기보다는 기분전환으로 쓴다는 하루키의 이야기처럼 아주 가벼운 깃털이나 봄날의 아침햇살처럼 가볍고도 유쾌한 느낌이 강하다.

밀도적인 면보다는 부피 혹은 작품의 세계의 넓이라고 할까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있어서는 태엽감는 새 이후로는 그렇게 확장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마도 내실을 기하는 그런 시기일까?

이 아저씨의 이 책도 아마 몇 년에 걸쳐서 꾸준히 1,2편씩 써오던것 같은데, 이 책을 보면서 가장 큰 수확은 뭐니뭐니해도 소설을 쓰는 그의 모습이 아주 구체적으로 나온다는데 있다.

하루하루 직장을 다니면서 꾸준히 밥벌이를 하는 샐러리맨처럼 딱 틀에 박힌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하루도 만만치 않게 빡빡해보이긴 한다. 다른 점은 샐러리맨은 대부분 마지 못해 회사를 다니지만 그는 하루하루를 아주 행복하게 농밀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의 다음 소설은 한 2년 이상은 기다려야 될 듯 하다.

이 책을 보고나니 태엽감는 새가 다시 보고 싶어져서 읽기 시작했다.



주식의 가치 산정에 대해 간단하고도 원칙에 입각한 방식을 제시하고, 주식투자를 하는 기초적인 방법과 마음가짐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다. 아마도 주식입문서로서 이만한 책은 없지 않나 싶다.


마지막에 주식투자에 필요한 7가지 습관은 항상 명심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이 사람이 올해 책을 또 하나 냈는데, 재밋을 듯.

10년후 세계가 망해도,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금 익혀야 할 것들.

조만간 국내에도 나오길 기대한다.



그냥 우연히 도서관에서 1달전에 댄브라운의 로스트심벌이 눈에 띄어서 읽었고, 본 김에

댄브라운 작품을 다 보자는 마음으로 인페르노를 보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중 가장 흥미로운(마지막 반전이 거의 예상 가능하지 않고 임팩트가 강하다는 측면에서) 다빈치 코드가 역시 대중적으로 가장 재밋다는 평이고 그 다음이 악마와 천사 일 듯하다.

인페르노는 내용이 농밀하다고 해야 하나, 쉽게 읽혀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특히 베네치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복잡하기도 하고 무언가 조잡한 느낌도 든다. 클라이맥스로 가는 터키 이스탄블을 배경으로 하는 사건들은 전개도 빠르고 좀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후반부의 이스탄블 내용을 보면서 실제 이스탄불 여행을 갔다온 덕분에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톱카프, 보스포러서, 에레바탄 사라이, 갈라타 사라이 등 유명한 지명등이 익숙해서 더 쉽게 느껴진 부분도 있는 듯 하다.

후반부를 보면서 이것도 영화로 만들면 평균 이상은 되겠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올해 10월에 마침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톰 행크스도 이제 많이 늙어서 랭던으로서는 거의 마지막 출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로스트 심볼은 아직 영화화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현대의 인구문제에 얽힌 환경오염 등과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부분을 주제로 꽤 흥미롭게 이야기가 얽혀있긴 한데, 너무 반전에 치중해서 그런지 꼬다꼬다 마지막은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도 있긴하다.

이태리의 피렌체, 터키의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배경만으로도 영화는 반쯤 먹고 들어갈 듯하다.


소설의 결말과 동일하게 끝날지도 의문시되긴 하고, 시에나 역으로 누가 나오는지도 궁금하다.

둘다 소설에선 엄청난 미남, 미녀로 나오는데.




타짜에 보면 타짜가 되기 위해서 탈이 좋아야 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성공적인 직장인이라기 보다 성공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선 거의 어쩔 수 없이(금수저를 제외하곤) 직장을 다녀야 하지만, 직장에서 얽매이는 사축(회사의 가축)이 되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심해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신입, 약간은 매너리즘에 빠진, 2,3년차, 혹은 10년 이상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사축이 되어가고 있는 직장인 모두에게 신선한 청량제가 될만한 좋은 책이다.


국가의 부의 기원을 지리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에 의해 분석한 내용을 다룸.

200여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강의를 기본으로 작성된 원고를 책으로 만든 것이라 읽는데 크게 어렵지 않다.

현재 국가의 부의 기원에 대해 다방면의 요소로 책을 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기본이 된 것 같다.

이 분의 인사이트는 꽤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작년 9.1 부동산 대책으로 나온 일명 뉴스테이에 대한 해설과 이에 의한 부동산 시장의 변화에 대해서 자세히 전망한 책. 상세한 데이타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간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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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부동산 문제 특히 선대인등 진보쪽이 주장하는 인구가 감소하면서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빠지면서 일본과 같은 폭락이 올거라는 주장에 대해 반대되는 입장을 데이타를 기반으로 분석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신규 제도인 뉴스테이를 통해 현재 임대주택의 주요 공급자인 개인의 역할이 기업으로 이전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핵심이다.


주택보급율이라는 부분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수준을 나타낸 부분이 인상적.


앞으로의 부동산 시장 특히 임대시장을 둘러싼 부분에 있어서 기업의 역할의 증대등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중요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 집을 사야 하나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한 번은 봐두면 좋을 내용이다.


멘사퍼즐을 검색하다가 나온 책. 멘사 회장의 이야기라고 해서 호기심이 당겨서 봤다.

2시간 정도면 읽을 정도로 내용은 별게 없다. 

정신력, 선입견, 마음가짐 등 마음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긍정적인 마음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겠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싶어서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주인공 빅터가 고난을 거쳐가면서 겪은 경험들 속에서 점점 강해져가는 것 그것이 인생의 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릴때 보면 좋을 것 같다.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에 이은 로버트 랭던이 주인공인 시리즈의 3번째 작품

천사와 악마의 배경이 로마 교황청과 베드로 성당, 다빈치 코드가 루브르와 프랑스가 주 무대라면 이 작품은 미국 워싱턴이 주 무대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상징과 신화에 얽힌 수수께끼들은 미국 워싱턴의 오래된 건물들과 엮어서 풀어가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다빈치 코드처럼 깔끔한 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그래도 읽을만한 정도이다.

다빈치코드의 마지막 반전이랄까 마리아와 관련된 부분이 꽤 참신하고 기억에 남았는데,

이 작품은 그렇게 깔끔한 반전이 되진 않았다. 

한 여름 킬링타임용으론 무리가 없겠다.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양자역학의 기본개념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면서 원자의 구조를 일반인에게 쉽게 가르쳐주겠다는 의도로 이 책을 만들었다는 서문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그리 성공적이라고 보기엔 힘들다.

특히 파동방정식이 나오면서는 뭐 아마 대부분의 비전공자들은 아.. 그렇구나 하고 책을 덮을듯하다.

전공자가 개념을 잡기 위해서 전공책과 비교하면서 개념이 안잡히는 부분에 대한 참고서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일반인을 위한 물리라는 건 사실 파인만의 일반인을 위한 물리강의에서도 그리 쉽게는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2,3번은 봐야 할 듯 하다.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세계적인 거장인 안도 다다오가 자신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기술했다.

자신이 크게 영향을 받았던 르코르뷔지에에 대한 에피소드 등과 젊은 시절의 방황 그리고 건축에 대한 그의 철학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 내용의 진솔함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매우 훌륭하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몇몇 그의 작품은 직접 가서 보고 싶다.


 조르주 페렉의 데뷔작.

본인의 경험을 그대로 녹여낸 내용으로 20대 초반의 젊은 연인(부부?)인 실비아와 제롬이 사회로 나와 욕망에 휘둘리는 모습을 매우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묘사했다.

페렉은 1936년 폴란드 태생 유태인으로, 아버지는 4살때 전사하셨고, 어머니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부유한 고모에게 입양되어 프랑스에서 자라났다.

사물들에 나오는 것처럼 튀니지 스팍에서 프랑스어 교사로도 지냈다고 한다.

페렉의 세대를 지배한 실존주의 사조는 칸트와 하이데거의 관념론에 대한 반발(이 관념론이 나치의 사상적 배경이 된 것에 반발하여)이었으며 그의 소설에도 이러한 실존적 사조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사물들을 읽다보면 상당히 세밀한 묘사가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의 만연체(연상하기가 힘들다)로 되어 있어 읽기가 힘든데, 그러한 부분은 그냥 지나쳐서 줄거리만을 따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첨엔 통독, 나중에 정독하면 좋을 듯)


상당히 세밀하지만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묘사는 역으로 독자의 자유도를 넓혀주고 감정의 깊이를 객관화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한다.(주인공의 허영과 그 허영을 제한된 수입으로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찌질함을 쇼핑하는 모습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채울 수 없는 세속에 대한 욕망하기에 지친 젊은이의 일탈과 그 일탈에서 해답을 못찾고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답답한 결말일 수도 있다.


이 후속 작품에 해당하는 것이 잠자는 남자인데 사물들에서 다 해보지 못한 일탈을 좀 더 깊이 있게 한다는 느낌이긴 한데 이미 사물들에서 나온 결론에서 더 발전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읽을때는 재미가 없는데 생각해보면 무언가 자꾸 생각해볼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존 쿳시의 부커상 및 노벨문학상 수상작.


보통 노벨상을 받은 작품은 어렵고 재미가 없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 작품은 매우 재밋고 술술 잘 읽힌다.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다.


남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중년의 교수를 주인공으로 여러가지 남아공의 사회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제목인  Disgrace를 추락으로 표현한건 좀 과한 의역이지 싶다. 그저 불명예, 수치 정도로 번역했어도 됐을듯)


매우 건조한 문체지만 간결하고 중요한 갈등부에서 인물들간의 대화를 통해 작가의 견해를 친절하게 드러내준다.


이 작품 이후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읽는 중인데 이것도 꽤 재밋다.



 Go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1998년 데뷔작품.

Go와 Fly daddy Fly는 아마 10년전쯤에 본 것 같다.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생각이 나서 보게 됐는데 역시 재밋다.


풋풋한 고등학교 시절, 문제아로 낙인찍혔지만 그 나름의 건강함과 싱그러운 청춘들의

학창시절에 있을 법한 무모하지만 순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작품활동이 뜸한 듯 한데 새 책도 좀 나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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