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자서전이 아니라서 아마 자전적 에세이라고 쓴 것 같은데, 

제목처럼 소설가로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소설가가 된 계기와 직업인으로서 프로작가가 된 이후로 어떻게 소설을 쓰고 있고, 글을 짓는 입장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조금 더 그의 세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중에서도 써있는데, 그 자신은 자신의 소설이 형식면에서나 내용적으로 나이가 들 수록 더욱 충실해(혹은 더욱 충실해지려는 의도를 가지고)지는 중이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도 꼭 연대기적으로 그런 건 아닌 듯 하다. 

개인적 느낌으로는 태엽감는 새나 1Q84는 글의 느낌이 아주 농밀해서 읽다보면 무언가 끈끈한 작가의 땀과 기름이 배어나오는 것 같은 감상이 있는데 반해 여자 없는 남자들이나 댄스댄스댄스 이런 작품들은 그러한 밀도적인 느낌이 덜하다. 

확실히 무라카미 라디오같은 소설 중간중간 쓰는 에세이집은 밀도라기보다는 기분전환으로 쓴다는 하루키의 이야기처럼 아주 가벼운 깃털이나 봄날의 아침햇살처럼 가볍고도 유쾌한 느낌이 강하다.

밀도적인 면보다는 부피 혹은 작품의 세계의 넓이라고 할까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있어서는 태엽감는 새 이후로는 그렇게 확장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마도 내실을 기하는 그런 시기일까?

이 아저씨의 이 책도 아마 몇 년에 걸쳐서 꾸준히 1,2편씩 써오던것 같은데, 이 책을 보면서 가장 큰 수확은 뭐니뭐니해도 소설을 쓰는 그의 모습이 아주 구체적으로 나온다는데 있다.

하루하루 직장을 다니면서 꾸준히 밥벌이를 하는 샐러리맨처럼 딱 틀에 박힌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하루도 만만치 않게 빡빡해보이긴 한다. 다른 점은 샐러리맨은 대부분 마지 못해 회사를 다니지만 그는 하루하루를 아주 행복하게 농밀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의 다음 소설은 한 2년 이상은 기다려야 될 듯 하다.

이 책을 보고나니 태엽감는 새가 다시 보고 싶어져서 읽기 시작했다.



주식의 가치 산정에 대해 간단하고도 원칙에 입각한 방식을 제시하고, 주식투자를 하는 기초적인 방법과 마음가짐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다. 아마도 주식입문서로서 이만한 책은 없지 않나 싶다.


마지막에 주식투자에 필요한 7가지 습관은 항상 명심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이 사람이 올해 책을 또 하나 냈는데, 재밋을 듯.

10년후 세계가 망해도,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금 익혀야 할 것들.

조만간 국내에도 나오길 기대한다.



그냥 우연히 도서관에서 1달전에 댄브라운의 로스트심벌이 눈에 띄어서 읽었고, 본 김에

댄브라운 작품을 다 보자는 마음으로 인페르노를 보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중 가장 흥미로운(마지막 반전이 거의 예상 가능하지 않고 임팩트가 강하다는 측면에서) 다빈치 코드가 역시 대중적으로 가장 재밋다는 평이고 그 다음이 악마와 천사 일 듯하다.

인페르노는 내용이 농밀하다고 해야 하나, 쉽게 읽혀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특히 베네치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복잡하기도 하고 무언가 조잡한 느낌도 든다. 클라이맥스로 가는 터키 이스탄블을 배경으로 하는 사건들은 전개도 빠르고 좀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후반부의 이스탄블 내용을 보면서 실제 이스탄불 여행을 갔다온 덕분에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톱카프, 보스포러서, 에레바탄 사라이, 갈라타 사라이 등 유명한 지명등이 익숙해서 더 쉽게 느껴진 부분도 있는 듯 하다.

후반부를 보면서 이것도 영화로 만들면 평균 이상은 되겠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올해 10월에 마침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톰 행크스도 이제 많이 늙어서 랭던으로서는 거의 마지막 출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로스트 심볼은 아직 영화화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현대의 인구문제에 얽힌 환경오염 등과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부분을 주제로 꽤 흥미롭게 이야기가 얽혀있긴 한데, 너무 반전에 치중해서 그런지 꼬다꼬다 마지막은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도 있긴하다.

이태리의 피렌체, 터키의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배경만으로도 영화는 반쯤 먹고 들어갈 듯하다.


소설의 결말과 동일하게 끝날지도 의문시되긴 하고, 시에나 역으로 누가 나오는지도 궁금하다.

둘다 소설에선 엄청난 미남, 미녀로 나오는데.




타짜에 보면 타짜가 되기 위해서 탈이 좋아야 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성공적인 직장인이라기 보다 성공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선 거의 어쩔 수 없이(금수저를 제외하곤) 직장을 다녀야 하지만, 직장에서 얽매이는 사축(회사의 가축)이 되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심해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신입, 약간은 매너리즘에 빠진, 2,3년차, 혹은 10년 이상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사축이 되어가고 있는 직장인 모두에게 신선한 청량제가 될만한 좋은 책이다.


국가의 부의 기원을 지리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에 의해 분석한 내용을 다룸.

200여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강의를 기본으로 작성된 원고를 책으로 만든 것이라 읽는데 크게 어렵지 않다.

현재 국가의 부의 기원에 대해 다방면의 요소로 책을 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기본이 된 것 같다.

이 분의 인사이트는 꽤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작년 9.1 부동산 대책으로 나온 일명 뉴스테이에 대한 해설과 이에 의한 부동산 시장의 변화에 대해서 자세히 전망한 책. 상세한 데이타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간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책.

----------------------------------------------------




기존의 부동산 문제 특히 선대인등 진보쪽이 주장하는 인구가 감소하면서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빠지면서 일본과 같은 폭락이 올거라는 주장에 대해 반대되는 입장을 데이타를 기반으로 분석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신규 제도인 뉴스테이를 통해 현재 임대주택의 주요 공급자인 개인의 역할이 기업으로 이전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핵심이다.


주택보급율이라는 부분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수준을 나타낸 부분이 인상적.


앞으로의 부동산 시장 특히 임대시장을 둘러싼 부분에 있어서 기업의 역할의 증대등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중요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 집을 사야 하나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한 번은 봐두면 좋을 내용이다.


멘사퍼즐을 검색하다가 나온 책. 멘사 회장의 이야기라고 해서 호기심이 당겨서 봤다.

2시간 정도면 읽을 정도로 내용은 별게 없다. 

정신력, 선입견, 마음가짐 등 마음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긍정적인 마음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겠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싶어서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주인공 빅터가 고난을 거쳐가면서 겪은 경험들 속에서 점점 강해져가는 것 그것이 인생의 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릴때 보면 좋을 것 같다.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에 이은 로버트 랭던이 주인공인 시리즈의 3번째 작품

천사와 악마의 배경이 로마 교황청과 베드로 성당, 다빈치 코드가 루브르와 프랑스가 주 무대라면 이 작품은 미국 워싱턴이 주 무대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상징과 신화에 얽힌 수수께끼들은 미국 워싱턴의 오래된 건물들과 엮어서 풀어가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다빈치 코드처럼 깔끔한 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그래도 읽을만한 정도이다.

다빈치코드의 마지막 반전이랄까 마리아와 관련된 부분이 꽤 참신하고 기억에 남았는데,

이 작품은 그렇게 깔끔한 반전이 되진 않았다. 

한 여름 킬링타임용으론 무리가 없겠다.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양자역학의 기본개념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면서 원자의 구조를 일반인에게 쉽게 가르쳐주겠다는 의도로 이 책을 만들었다는 서문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그리 성공적이라고 보기엔 힘들다.

특히 파동방정식이 나오면서는 뭐 아마 대부분의 비전공자들은 아.. 그렇구나 하고 책을 덮을듯하다.

전공자가 개념을 잡기 위해서 전공책과 비교하면서 개념이 안잡히는 부분에 대한 참고서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일반인을 위한 물리라는 건 사실 파인만의 일반인을 위한 물리강의에서도 그리 쉽게는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2,3번은 봐야 할 듯 하다.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세계적인 거장인 안도 다다오가 자신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기술했다.

자신이 크게 영향을 받았던 르코르뷔지에에 대한 에피소드 등과 젊은 시절의 방황 그리고 건축에 대한 그의 철학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 내용의 진솔함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매우 훌륭하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몇몇 그의 작품은 직접 가서 보고 싶다.


 조르주 페렉의 데뷔작.

본인의 경험을 그대로 녹여낸 내용으로 20대 초반의 젊은 연인(부부?)인 실비아와 제롬이 사회로 나와 욕망에 휘둘리는 모습을 매우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묘사했다.

페렉은 1936년 폴란드 태생 유태인으로, 아버지는 4살때 전사하셨고, 어머니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부유한 고모에게 입양되어 프랑스에서 자라났다.

사물들에 나오는 것처럼 튀니지 스팍에서 프랑스어 교사로도 지냈다고 한다.

페렉의 세대를 지배한 실존주의 사조는 칸트와 하이데거의 관념론에 대한 반발(이 관념론이 나치의 사상적 배경이 된 것에 반발하여)이었으며 그의 소설에도 이러한 실존적 사조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사물들을 읽다보면 상당히 세밀한 묘사가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의 만연체(연상하기가 힘들다)로 되어 있어 읽기가 힘든데, 그러한 부분은 그냥 지나쳐서 줄거리만을 따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첨엔 통독, 나중에 정독하면 좋을 듯)


상당히 세밀하지만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묘사는 역으로 독자의 자유도를 넓혀주고 감정의 깊이를 객관화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한다.(주인공의 허영과 그 허영을 제한된 수입으로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찌질함을 쇼핑하는 모습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채울 수 없는 세속에 대한 욕망하기에 지친 젊은이의 일탈과 그 일탈에서 해답을 못찾고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답답한 결말일 수도 있다.


이 후속 작품에 해당하는 것이 잠자는 남자인데 사물들에서 다 해보지 못한 일탈을 좀 더 깊이 있게 한다는 느낌이긴 한데 이미 사물들에서 나온 결론에서 더 발전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읽을때는 재미가 없는데 생각해보면 무언가 자꾸 생각해볼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존 쿳시의 부커상 및 노벨문학상 수상작.


보통 노벨상을 받은 작품은 어렵고 재미가 없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 작품은 매우 재밋고 술술 잘 읽힌다.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다.


남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중년의 교수를 주인공으로 여러가지 남아공의 사회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제목인  Disgrace를 추락으로 표현한건 좀 과한 의역이지 싶다. 그저 불명예, 수치 정도로 번역했어도 됐을듯)


매우 건조한 문체지만 간결하고 중요한 갈등부에서 인물들간의 대화를 통해 작가의 견해를 친절하게 드러내준다.


이 작품 이후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읽는 중인데 이것도 꽤 재밋다.



 Go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1998년 데뷔작품.

Go와 Fly daddy Fly는 아마 10년전쯤에 본 것 같다.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생각이 나서 보게 됐는데 역시 재밋다.


풋풋한 고등학교 시절, 문제아로 낙인찍혔지만 그 나름의 건강함과 싱그러운 청춘들의

학창시절에 있을 법한 무모하지만 순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작품활동이 뜸한 듯 한데 새 책도 좀 나왔으면 싶다.



 당신의 비전은 마음을 들여다볼 때만 분명해진다. 밖을 바라보는 자는 공상에 빠지고,

안을 바라보는 자는 스스로 깨어난다.

 

- 칼 융 -

 






-----------------------



p56

 

 하루나 일주일쯤 나침반을 따라가 보라. 그리고 인생이라고 하는 거대한 사막 안에 있을지라도 자신이 걷고 있는 사막의 이름을 불러 보고, 존재 방법, 살아가는 방법의 방향을 선택하라. 그리고 한동안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내가 점점 나의 사막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라. 궁극적으로 사막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사막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없는 것이다. 



p65

 

 사하라 사막에서 꼭 오아시스에 멀추어 쉬어야 할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마지막으로 오아시스에서는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인생을 산이 아니라 사막으로 보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뿐 아니라 중요한 관계까지도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상하게도 멈추어 쉬고 활력을 되찾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쉬지 않고 계속 가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버리고 나면, 중간에 쉬어가며 여행할 때보다 회복하는 데 네 배 정도의 시간이 든다.

 

 

 더 많이 쉴 수록 더 많이 갈 수 있다. 유목민들은 우리들이 잊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있다. 더 자주 멈출수록 생의 사막에 더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것을.



 

 쉬지 않고 정상으로 치닫게 만드는 열병때문에 우리는 주어진 일을 해치운다. 하지만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지 않으면 인생의 사막, 변화의 사막은 우리에게 그 대가를 치루게 한다.






p80

 

 사막 전체를 한꺼번에 기름진 정원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슬픔과 외로움이 사막의 일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마사지건 절친한 친구와의 짧은 대화건 잠깐의 휴식을 취하면 그것이 작은 물줄기가 되어 먼지 날리는 사막을 적셔 준다.





p86


 변화의 사막을 건너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 나머지 우리는 점차 배우자나 사랑하는 연인 또는 동료나 아이들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직장을 잃거나, 이혼을 하거나, 중년의 위기를 맞거나, 금전적인 걱정거리가 있을 때 또는 퇴직 후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려 할 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자기의 사막을 건너는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상을 향한 열병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데 필요한 오아시스를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일을 마치고 나면,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시간이 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막은 한없이 계속된다. 사막을 다 건너 저편에 다다를 때쯤이면 무시하고 지나온 관계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사막에 있다면 그 무엇보다도 오아시스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오아시스에서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p88

 

 사막에 숨어 있는 비밀의 오아시스처럼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오아시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고,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발견된다. 우연히 오아시스를 마주쳤을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오아시스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p96


 길이 끝나는 순간부터 사하라 사막과 인생의 사막이 정말 험난해진다. 우리는 자기가 건너고 있는 사막의 존재를 망각한 채 일차선 고속도로 위를 질주한다. 그러다가 인생이 갑자기 멈추어 서면 그때부터 여행에, 특히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변화의 사막에서 막히게 되는 이유는 는 탄탄한 땅에서 운전할 때 필요한 기술이 부드러운 변화의 모래 위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p98


 갇히는 것은 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인생의 깊은 부분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도 갇혀 본 경험이 없다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갇히게 되면 여러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막히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잘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p104

 

 예전에 이런 만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머리를 벽에 세게 부딪힐 때는 항상 무릎을 구부려라." 꼼짝달싹 못하게 된 상황에서 밀어붙이는 것은 벽에 대고 머리를 찧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며 상황만 더욱 나빠질 뿐이다. 벽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무릎을 구부리는 것과 같은 행동 하나로 허리를 다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밀어붙이기를 멈추지 않는 한 새로운 변화는 오지 않는다.



p108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압축 공기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감정적인 고양 또한 필요한 것이다. 심지어 목표, 프로젝트 그리고 도전 상황과 같은 인생의 은유적인 산들의 정상을 정복하는 데에도 감정적인 고양, 심리적인 자극, 정열의 불길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에서 부딪치는 문제는 공기 부족이 아니라 공기 과잉 현상이다. 네 바퀴가 달린 자동차조차 매가리없이 구덩이에 쳐박혀 버린다. 이 상태에서 페달을 밟으면 더 깊이 박힐 뿐이다.


 사하라에도 죽음의 구역이 있다. 이 죽음의 구역은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기온이 52도 이상 되는 곳에서 모래를 치우고 랜드로버 차량을 미는 일은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 차량을 구덩이에서 빼내려고 하다가 12시간 만에 탈수 현상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있다.


 변화의 사막에서 우리 안의 일부가 죽어 버릴 수도 있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거나 너무 심하게 밀어붙이면 열정, 진지함, 약속, 이 모든 것이 시들거나 죽어 버릴 수 있다. 쥐었던 것을 놓고 변화하지 못하면 생동감도 죽는다. 인생의 사막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오래 머물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체된 상황은 바로 우리의 자신만만한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내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에 또 다른 역설이 존재한다.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고 차의 높이를 낮춰라. 그러면 차가 모래 위로 올라설 수 있다. 우리도 우리의 자아에서 언제 그리고 어떻게 공기를 빼야 할지 알게 되면 굉장한 상승을 맛볼 수 있다. 우리의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면 현실 세상과 좀더 가까워지고 좀더 인간적이 될 수 있다. 장뤽이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는 자기의 미슐랭 바퀴에서 공기를 빼기 전에 먼저 한 일은 자아에서 공기를 빼는 일이었다. 자기의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의 고집 때문에 일행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p130

  

 인생의 사막에서 다른 차에 깃발을 흔들어 구조 신호를 보내야 할 이유는 많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그것이 감정적인 자양분과 육체적인 힘이 되어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사막을 건너 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서로 교류하고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데 길잡이가 되어 줄 내부의 나침반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다른 사람의 배신을 용서하고, 나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철이 들고, 상실감에 슬퍼하고, 퇴직 이후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자신의 사막의 중심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 어떤 종류의 도움이 필요한가? 단순한 도음이 구조를 받아야 할 상황으로 커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되도록 빨리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다.
















 

----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수많은 성가신 벽들이 허물어져, 사는 것이 더 쉬워지고 편리해졌다. 우리는 이제 팩스와 인터넷을 사용해 집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

....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오아시스를 정의하고 보호해 주었던 천연의 보호장벽을 많이 상실했다. 집에서 하는 작업 때문에 식탁이 서류로 뒤덮이고 새벽 3시에도 업무와 관련된 전화가 걸려온다. 휴가를 즐기거나 골프를 치는 중에도 휴대전화가 울린다. 디지털 혁명 덕분에 우리는 고객이나, 동료, 아이들과 항상 가까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텔레마케터들과 스팸 메일 살포자들은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고, 언제 집에 있고, 어떻게 해야 연락이 되는지 훤희 꿰고 있다. '벽이 무너졌다'는 포스트모던 세계의 슬로건이다. 그것은 또한 세상이 천천히 돌아가는 일과 휴식간에 경계가 좀더 뚜렸했던 시절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

 

 번영을 위해 내달리는 와중에 우리는 영어에서 두 글자로 된 가장 강력한 단어, 'No'를 잃어버렸다.

 

----

 

 지금 건너고 있는 사막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어떤 종류의 오아시스가 필요한 걸까? 잠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매주 마사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침반 바늘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나 배우자와 또는 오래된 친구와 의미있는 시간을 갖고 싶은 건 아닐까?

 

----

 

 그리고 나서는 오아시스를 침해하는 야만인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친구나 친척, 동료, 아이들, 직장상사, 고객, 의무, 프로젝트, 해야 할 일, 완벽주의적인 성격 등...

 

----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만의 오아시스를 보호할 벽을 세운다. 사막과 오아시스를 구분 짓는 분명한 경계선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각오를 해야 한다.

 

----

 

오아시스의 필요성을 믿지 않는 비신도들이 여러분을 시험메 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아시스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일부는 이교도이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해치는 최악의 야만인이 될 수도 있다. '아니오'라고 하지 못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오아시스에 걸어 놓은 빗장을 풀어 주는 것과 같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습성에 젖어 있는 내 안에서는, 다음 사막을 건널 때까지 오아시스에서 쉬지 않고 계속 가다 보면 나중에 훨씬

더 멋진 휴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속삭임이 들린다. 그렇다. 유목민 복장을 한 산악인이 가장 위험한 야만인이다.

 

 

---

 우리는 혼자가 되어야 할 순간에조차 그 생각만으로도 두려워 몸을 떤다. 또는 서로 신의를 지키는 친밀한 관계를 두려워할 수도 있다. 공기를 빼야 할 상황을 피하기도 한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29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한 기업가를 만난 적이 있다. 오아시스에서 멈출 수 없었던 이 사람은 항상 과로 상태였고 회사는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휴가를 가면 회사가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상의 국경선에서 빠지는 함정은 제3장에서 기술했던 정체 상태와는 다르다,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되면 종종 두렵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데 대한 좌절감, 지루함, 분노 같은 감정이 따라온다. 하지만 허상의 국경선은 항상 두려움을 낳는다. 이 두려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과 연관되어 있고, 이 잘못된 믿음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에 저항할 용기나 통찰력이 없다면, 그 둘이 합세하여 우리를 사막 한가운데에 가두어 버릴 수도 있다.

 

 허상의 국경선은 허상처럼 보이지 않고, 진짜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 국경선을 건너면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을 그 반대이다. 그 국경선을 넘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때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언젠가는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거라고 경고를 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 진실의 순간을 회피하고 두려워해왔지만 그것은 어느새 다가와 우리의 뒷덜미를 잡는다.

 

----------

 

 

"몰라, 내 안의 일부에서는 여기 영원히 머물고 싶다고 하고, 또 다른 일부는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대."

 

---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신기하게도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나는 슬픔은 저쪽으로 몰아내고 행복에만 매달리고 싶었다.

 

-----

 


 

날개와 발톱이 있다면

당신은 새 - 여자

 

꼬리와 지느러미가 있다면

당신은 물고기 - 여자

 

몸이 조금씩 변해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물에 비친 모습을 보았지

당신은 머리를 빗어내리며 노래를 불렀지

 

물거품처럼 떠가는 노래

오래전 당신이 부르던 노래

아기를 업어 재우며 부르던 노래

슬픔의 베틀 앞에 앉아 부르던 노래

 

피에서 솟구친 노래는 어떻게 떨어져내리나

모래언덕을 잃어버린 파도는 어떻게 출렁거리나

 

사랑을 잃고

그 때문에 목소리마저 잃은 당신

침묵이 가장 무거운 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도 있었지

 

더 이상 노래를 보르지 않아도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

 

낡은 거푸집을 헤치고 날아오르느라

날개가 부러진 흔적이 있다면

당신은 새 - 여자

 

찢긴 지느러미를 지니고 있다면

당신은 물고기 - 여자

 

-----------------------------------------

 

어떠한 흔적과 상처들이 남아 이리도 이 시가 내 가슴을 때리는가.

2010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 우수상 수상작 중 하나.

대상작품 박민규의 아침의 문은 작품의 스케일이나 박민규류라고 할 수 있는 언어적 유희와 플롯의
자기 완결성, 심리적 클라이막스등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으나,

윤성희의 매일매일 초승달 쪽이 나에겐 임팩트가 있었다.

자기에게는 너무 큰 신발을 신고 "이 신발에 발이 맞으면 언니들을 찾아나설거야"라고 되뇌이는
셋째의 고독이 가슴 가득히 느껴졌다.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따뜻했던 과거의 아련함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위풍당당 개청춘 中

 영혼을 배제한 경제학이 가르치는 건 '부자가 되는 방법'이고,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존 러스킨이 말하는 진짜 경제학은 항상 인간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떤 가치란 항시 노동의 결과다. 노동이란 "인간의 생명이 그 반대쪽 상대와 싸우는 것이다. 이 생명이라는 말에는 인간의 지력과 영혼과 체력이 포함되어 있고, 그것이 의문이나 곤란, 시련이나 물질력과 싸운다."

 그래서 어떤 가치에도 인간에 의해 생산된 것은 그만큼의 "생명이 소비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학은그 소비된 노동량에 따라 가치를 결정하는 동시에, 쓸데없는 생산에 노동이 투입되지 않도록 가치판단을 내려주는 일까지해야 한다는 신선한 주장도 한다. 말하자면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이천 쌀과 사람을 죽이는 스커드 미사일의 생산가치를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략)

...

제 3세계 어린이의 인건비가 아무리 저렴해도 그곳에서 외투를 생산하는 건 러스킨의 경제학에선 옳지 않은 일인 것이다. 앞서 말한 루이비통 뱅글 같은 것들은 인간의 생명을 위한 의식주처럼 꼭 필요한 품목이 아니기에 무가치한 것인데, 그것의 생산에 일정한 노동, 즉 생명이 낭비되고 있으니 몰가치한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것은 실제 가치에 비해 무척이나 높은 가격이 결정되어 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사기 위해 노동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신선한 생명을 소비하고 있으므로 생명파괴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투가 다가와서 "난 2명의 사람이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난 70명의 사람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도가 다르다.

-----------------------------

우연히 본 책에서 뜻하지 않은 깊이를 보는 것은 예전 우리의 조상이 과일이 떨어진 웅덩이에서 과실주를 발견한 기쁨과 비견될 만하다.




주저흔  

                       김경주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이 뒤집어 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 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졌다기보단
어쩐지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김경주 시집 기담中 발췌-



 ***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고, 그리 예쁜 소녀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는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어느날 두 사람은 길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랐잖아,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이야. 네가 믿지 않을지는 몰라도,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라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인걸.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하고 있던 그대로야. 마치 꿈만 같아"라고 소녀는 소년에게 말한다.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 질리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이야기를 계속한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자신이 100퍼센트의 상대를 찾고, 그 100퍼센트의 상대가 자신을 찾아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에 약간의, 극히 사소한 의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좋은 것일까하는......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이렇게 말한다.
 "이봐, 다시 한 번만 시험해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정말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라며, 언젠가 반드시 어디선가 다시 만날 게 틀림없어.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역시 서로가 100퍼센트라면, 그 때 바로 결혼하자. 알겠어?"
 "좋아"라고 소녀는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시험해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였으니까. 그리고 상투적인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희롱하게 된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그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 주일간 사경을 헤맨 끝에, 옛날 기억들을 깡그리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의 머릿속은 어린 시절 D.H.로렌스의 저금통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명하고 참을성 있는 소년,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다시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우체국에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75퍼센트의 연애나,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소년은 서른두 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 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뒷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가고, 소녀는 속달용 우편을 사기 위해 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해 간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스쳐 지나간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 비춘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의 기억의 빛은 너무나도 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서로를 스쳐 지나, 그대로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만다.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