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태엽감는 새 크로니클(연대기)로서 일종의 대하소설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3개의 세대에 걸쳐서 언뜻 보기엔 전혀 상관이 없는 에피소드를 태엽감는 새라는 매개체를 통해하나의 주제로 엮으려는 의도를 저자는 가지고 있던 듯 하다.
몇 년전에 보고, 이번에 2번째로 이 소설을 읽었더니 그런 얼개가 조금 보인다.
개인적으로 보고 느낀바로는 이 책은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의 변주와 같다는 느낌(거의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랄까)이다.
상실의 시대에 비해서는 비관적인 부분은 많이 순화되었으며, 낙관적인 부분은 보다 현실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정말 재밋는 소설이다. 무언가 엄청나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재밋다기보다는 그냥앞으로의 전개가 어찌될지에 대해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긴장감이 엔딩까지 꾸준히 유지된다고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읽을 수록 단순하게 무엇이라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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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는 3권으로 나왔음. 1권. 도둑까치, 2. 예언하는 새, 3권. 새 잡이 사내.
이 책은 번역본으로 문학사상사의 윤성원 번역과 민음사의 김난주 번역이 있음.
내가 본 책은 1994년에 나온 문학사상사 윤성원 번역인데 4권짜리로 나왔다. 그런데 요즘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양장판본과는 좀 차이가 난다.
요즘 나온 책은 1권, 도둑까치, 2권. 예언하는 새 3권,4권이 새 잡이 사내 1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994년 판본은 1권. 작은 삶, 큰 의미, 2권. 욕망의 뿌리, 3권. 나는 누구인가, 4권. 나는 누구인가/태엽감는 새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다.
내용상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번역의 차이를 보기 위해 민음사 판본을 나중에 함 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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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작은 삶, 큰 의미
p26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사무소를 그만두었다. 그만두고 무엇을 하겠다는 뚜렷한 희망이나 전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집에 처박혀서 사법 시험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귀찮은 일이었으며, 더군다나 지금에 와서 변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앞으로 그 사무소에서 그 일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만일 그만둔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오래 있게 되면 내 인생은 아마도 거기에서 어느결에 끝나 버리게 될 것이다. 여하튼 나는 벌써 서른이 된 것이다.
p94
그것은 무의미한 고행과 잔인한 고문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행위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나에게는 그들이 신주쿠 역 정도의 길이가 되는 식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p96
「법률이라는 것은 요컨대 지구상의 사상을 지배하는 것이야. 음은 음이며, 양은 양이라는 세계지. 나는 나며, 그는 그라는 세계. '나는 나, 그는 그며, 늦가을.' 그러나 당신은 거기에 속해 있지 않아. 당신이 속해 있는 곳은 그 위 아니면 그 아래야.」
p97
나를 버릴 때 나는 존재한다구. (무아, 노자적 사고)
p99
「흐름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 하지만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려야 한다구. 그동안은 죽은 셈치면 돼.」
p217
「그렇지만, 그러니까 무엇을 하고 싶냐고 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거야. 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그렇지만 이것을 꼭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은 없는 거야. 그것이 지금 나의 문제지.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것 말이야.」
p294
나는 한쪽 팔과 12년이라는 귀중한 세월을 잃고 일본으로 돌아왔소. 히로시마에 돌아왔을 때, 부모님과 여동생은 이미 없었소. 여동생은 징용으로 끌려가 히로시마 시내의 공장에서 일하다가 원폭 투하로 죽었소. 아버지도 그때 마침 동생을 만나러 가겼다가 역시 숨을 거두셨소.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몸져누워서 1947년에 돌아가셨소. 좀전에 이야기했듯이, 내가 내심 혼약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여성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오. 묘지에는 내 묘가 있었소. 나에게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오. 나는 내가 정말 텅 빈 듯 느껴졌소. 여기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소. 그후 후 지금까지, 나는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오. 나는 사회 과목 선생이 되어 고등학교에서 지리와 역사를 가르쳤소. 그러나 살아 있었다고는 할 수 없소. 나는 나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역할을 하나 또 하나 해왔던 것뿐이오. 나에게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학생들과의 사이에서도 인간적인 인연 같은 것은 없었고, 학생들과의 사이에서도 인간적인 인연 같은 것은 없었소.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소.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던 것이오. 눈을 감으면 살아 있는 채로 가죽이 벗져겨 간 야마모토의 모습이 떠올랐소. 여러 번 꿈을 꾸었소. 야마모토는 내 꿈속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가죽이 벗겨지고 빨간 살덩어리로 변해 갔소. 그의 비통한 비명을 또렷이 들을 수 있었소. 그리고 나는 몇 번이고 내가 우물 바닥에서 살아 있는 채로 완전히 썩어 버리는 꿈을 꾸었소. 때로는 그것이 현실이고, 이러고 있는 내 인생이 꿈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소.
혼다 씨가 하르하 강에서 내가 중국 대륙에서 죽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듣고 나는 기뻣소. 믿고 믿지 않고는 둘째치고 그때의 나는 어떤 것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오. 아마 혼다 씨는 그것을 알고 내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가르쳐 주었을 거요. 그러나 실제로 거기에는 기쁨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소. 일본에 돌아온 후 나는 계속 빈 껍질처럼 살았소. 그리고 빈 껍질처럼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것은 정말로 산 것이 아니오. 빈 껍질의 마음과 빈 껍질의 육체가 만들어 내는 것은, 빈 껍질의 인생에 불과하오. 내가 오카다 씨에게 이해받고 싶은 것은 실은 그것뿐이오.
「그럼 미마야 선생님은 귀국하고 나서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나는 물어보았다.
「물론입니다」 하고 마미야 중위는 말했다. 「아내도 없고, 친형제도 없소. 정말이지 나 혼자입니다.」
나는 조금 망설이고 나서 어떻게 질문해 보았다. 「선생님은 혼다 씨의 예언 같은 것을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마미야 중위는 잠깐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오. 혼다 씨는 그것을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오. 나는 그것을 듣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오. 혼다 씨가 그때 말했듯이, 운명이라는 것은 나중에 뒤돌아보는 것이지 미리 아는 것은 아닐 것이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금에 와서는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요. 지금 나는 단지 살아간다는 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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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욕망의 뿌리
p65
그러나 사실이라든가 진실이라든가 하는 말 그 자체가 지금 나에게는 그렇게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의 편지 속에서 가장 강하게 마음을 끌었던 것은 문장 속에 담겨 있는 안타까움이었다.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고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안타까움이었다.
p96
"왜 그렇게 해파리를 좋아하죠?" 하고 나는 물어 보았다.
"글쎄요, 그냥 귀엽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요, 아까 가만히 해파리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어요. 우리가 보고 있는 광경은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요.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것이 세계다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진짜 세계는 더욱 어둡고 깊은 곳에 있고, 그 대부분은 해파리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죠. 우리가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을 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구 표면의 3분의 2가 바다고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해면이라는 단지 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그 피부 아래 정말로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몰라요."
p110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지바 현의 작은 도시에 갔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동안 나는 어떤 의미에서 다른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집까지 바래다 주고 방으로 돌아와 혼자 바닥에 뒹굴며 천장을 바라보자 그 변화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여기에 있는 나는 '새로운 나'고 두 번 다시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내가 이제 순수하지 않다고 하는 인식이었다.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죄책감이라든가 자책감은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잘못을 범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일로 자신을 질책할 생각은 없었다. 질책하거나 질책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그것은 내가 냉정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물리적인' 사실이었다.
p323
어쩌면 나는 패배할지도 모른다. 나는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있는 힘을 다했지만 이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잃어버린 후일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폐허의 재를 허무하게 손에 쥐고 있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인지도 모른다. 내 편에 내기를 걸 사람은 이 주위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상관없어" 하고 나는 작지만 단호한 소리로 거기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이것만은 분명해. 적어도 나에게는 기다려야 할 것이 있고, 찾아내야 할 것이 있어."
그리고 나는 숨을 죽이고 줄곧 귀를 기울였다. 거기에 있을 작은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물보라와 음악, 사람들의 웃음 소리 저편에 있는, 그 소리 없는 미미한 울림을 나의 귀는 듣는다. 거기에서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찾고 있다. 소리가 되지 않는 소리로, 말이 되지 않는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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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나는 누구인가
p41
만일 돈에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돈이 아니다. 돈이라는 것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두운 밤과도 같은 그 무명성이고 놀라워 숨을 죽일 만큼 압도적인 호환성인 것이다.
p178
오히려 나는 그렇게 개미처럼 한눈도 팔지 않고 일을 함으로써 점점 '참다운 자신에게 가까이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드는 거예요. 뭐라고 할까요,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중심에 다가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내가 '약간 이상'하다고 말한 것은 이런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