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2002년 작품으로 장편으로서는 10번째(내 기준으론) 작품에 해당한다.

그의 작품은 초기부터 양이라든가 어떤 매개체로서 의인화된 동물들이 등장하는 등 약간은 초현실적인 경향을 띄는 작품들이 있는데 아마도 이때까지의 작품중 가장 상징적이며 초현실적인 장치들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품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도 이전의 작품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측면이 있다.

첫번째 읽었을때는 이 작품에 대해 거의 이해한 바가 없었는데(내용 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몇 년이 지난뒤 2번째 읽게되자 내용은 선명히 머리에 들어온다는 느낌이 있다.

일명 까마귀 소년과 동행하는 가명의 15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의 가출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출생의 비밀과 그에 얽힌 저주로부터 도망치려는 소년과 함께, 60살이 넘은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일그러진 인상의 나카타라는 노인사이의 에피소드가 병행교차하면서(이런 구조는 무라카미 소설 구조에서 몇 몇 작품에 보이는 친숙한 구조) 이야기가 진행된다.

서로 완전히 상관이 없던 것 같은 2개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같은 공간과 시간내로 이어지면서 독자의 몰입이 극대화되는 효과도 물론 있긴 하지만, 그 상징들간의 연관성을 명확히 이해하기란 사실상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다. 특히 이 소설의 경우는 그러한 장치,상징들간의 연관성이 소설에도 등장하는 말처럼 "그것은 말로서 설명되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이다." 과 같은 성질을 어느 정도는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독자마다의 개별성과의 작용에 의해 그것은 소설에 쓰여져 있는 활자로서의 공통적인 매개체를 통하긴 하지만, 공통적인 내용이 독자마다의 개별성과 작용하여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독자간의 교감에는 독자적인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듯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을 읽는 도중에는 전혀 이 소설의 내용에 대해 거부감이라든가 충격적이라 할 만한 부분은 없었는데, 영화화를 한다는 가정하에 보니 소설대로 영화를 만든다면 절대적으로 18세 관람불가가 될 수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문자로서 활자화된 매체에 의해 가려진건지 아니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문체때문에 가려진건지는 사실상 확실친 않다.

한꺼번에 확 하고 읽혀지는 작품은 아닌 듯 하다. 적어도 1,2번은 더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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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14. 세번째 완독 후.


 이 작품의 표면적 주인공은 다무라 카프카라는 소년이지만, 현실의 이야기를 구동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나카타 노인, 극후반부에서는 호시노 청년이 더욱 비중있게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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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p79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먼 옛날의 신화 세계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었어"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어?"

 "모릅니다" 하고 나는 대답한다.

 "옛날에는 세계가, 남자와 여자가 오늘날같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남자와 남자가 또는 남자와 여자가, 그 밖에도 여자와 여자가 한 몸으로 등이 맞붙어 있어서 마주 보지는 못하고, 서로 등짝이 딱 붙은 채 살아가는 세 종류의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애당초 인간은 오늘날과는 달리, 두 사람이 한 몸으로 붙어 있게 만들어졌었다는 거지. 그래도 모두 만족하고 아무 말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하느님이 칼을 써서 그 모든 사람들을 반쪽씩 두 사람으로 갈라놓았어. 모든 살마을 두 조각 내 버렸다는 거지. 그 결과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칼에 맞아 생긴 일직선으로 된 흔적이 등짝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요행히 제대로 자기 짝을 찾게 되면 해피엔딩의 사랑이 되지만, 영영 찾지 못하거나 찾았다 싶어 결합했는데 아니다 싶으면 다시 영원한 이별이 된다는 그럴듯한 얘기지. 그 결과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만이 있게 되어서, 사람들은 원래 한 몸으로 붙어 있던 반쪽을 찾아 우왕좌왕하면서 인생을 보내게 되었대."


p163


 "나카타 상, 여기는 참으로 폭력적인 세계입니다. 아무도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부디 그 사실을 잊지 마세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다고는 할 수 없지요. 고양이나 인간이나 말이에요."


p200

 아이들의 마음은 부드러워서 여러 형태로 삐뚤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삐뚤어지고 굳어진 것은 좀처럼 원상태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두 번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p207

 "하지만 인간은 무엇인가에 스스로를 밀착해 살아가는 존재지"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너도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하고 있을 거야. 괴테가 말하듯, 세계의 만물은 메타포거든."


p215

 요컨대 어떤 종류의 불완전함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p256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고,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모두 내 얼굴을 노려보고 손가락질을 해댄다. 기억에 없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없다, 고 나는 주장한다. 거기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것조차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말한다. "누가 그 꿈의 본래 소유자이든, 너는 그 꿈을 공유했다. 그러니까 꿈속에서 행해진 일에 대해 너는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그 꿈은 네 영혼의 어두운 통로를 통해서 숨어 들어온 것이니까."

 히틀러의 거대하게 일그러진 꿈속에, 어쩔 수 없이 말려 들어간 아돌프 아이히만 중령과 마찬가지로.


p258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하지만 널 알다가도 모르겠어. 그런 건 잠자코 마음대로 상상하면 되잖아? 일일이 내 허락을 받지 않아도, 네가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그런 걸 나는 어차피 알 수 없으니까 말야."

 아니, 그렇지 않다. 내가 무엇을 상상하는가는 이 세계에서 어쩌면 대단히 중요한 일인 것이다.


p285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하고 조니 워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규칙일세.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눈을 감아도 사태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으니까. 눈을 감았다고 해서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아니, 오히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사태는 더 악화되어 있을 거라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걸세. 나카타 상. 눈을 똑바로 떠야 하네. 눈을 감는 것은 약자가 하는 짓이야.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비겁한 자가 하는 짓이란 말일세. 자네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단 말이야. 똑딱똑딱하고."


p346

 젠더라는 말은 애당초 문법상의 성별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저는 신체적인 성차性差를 가리킬 경우는 역시 섹스라고 표현하는 쪽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젠더'는 오용입니다. 

==> 페미니즘에 대한 무라카미의 냉소?


p384


 "거기에는 아이러니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아이러니?"

 오시마 상은 내 눈을 들여다본다. "자, 내 말 잘 들어. 다무라 카프카 군. 네가 지금 느끼는 것은 수많은 그리스 비극의 동기가 되기도 한 거야. 인간이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인간을 선택한다. 그것이 그리스 비극의 근본을 이루는 세계관이지. 그리고 그 비극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하고 있는 것이지만 -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사자의 결점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사자의 장점을 지렛대로 해서 그 비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거야. 내가 말하는 걸 알 수 있겠어? 다시 말하면 인간은 각자가 지닌 결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질美質 즉, 타고난 장점이나 아름다운 성질에 의해서 더욱 커다란 비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거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그 뚜렷한 본보기라고 볼 수 있어. 오이디푸스 왕의 경우, 게으름이나 우둔한 때문이 아니라 그 용감성과 정직함 때문에 그의 비극은 초래되었거든. 거기에 불가피하게 아이러니가 생겨나는 거야."

 "그러나 구원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이 없을 수도 있어. 그러나 아이러니가 인간을 깊고 크게 만들거든. 그것이 더욱 높은 차원의 구원을 향한 입구가 되지. 거기에서 보편적인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어.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 비극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예술의 하나의 원형이 되고 있는 거야. 다시 되풀이하게 되지만, 세계의 만물은 은유라고 하든 메타포거든, 누구나 실제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는 메타포라는 장치를 통해서 아이러니를 받아들인다. ㅣ그리고 스스로를 깊게 그리고 넓게 다져나간다는 얘기야."


p389

 나는 말한다. "예언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울지도 몰라요. 아버지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얘기를 되풀이해서 나한테 들려주었어요. 마치 내 의식에 끌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겨 넣듯이 말이죠."


(하권)

p43


 나도 열다섯 살 무렵에는 어딘가 다른 세계에 가고 싶어했지" 하고 사에키 상은 미소 지으며 말한다. "어느 누구의 손도 미치지 않는 곳으로. 시간의 흐름이 없는 곳으로."

 "하지만 이 세계에 그런 장소는 없습니다."

 "그래, 맞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사물이 계속 훼손되고, 마음이 계속 변하고,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계에서."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듯 한참 입을 다문다. 그리고 다시 계속한다. "그렇지만 나도 열다섯 살 때에는 그런 장소가 세계의 어딘가에 꼭 있을 것으로 생각했거든. 그런 다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를,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사에키 상은 고독했습니까, 열다섯 살 때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랬지. 나는 고독했어. 외톨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척 고독했어. 왜냐하면 내가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때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나는 시간의 흐름이 없는 장소에 들어가고 싶었던 거야.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나이를 먹고 싶습니다."

 사에키 상은 거리를 조금 두고 내 표정을 읽는다. "다무라 군은 틀림없이 나보다 강하고 독립심이 있는 거야. 그 무렵의 나는 다만 현실 도피의 환상을 품고 있을 뿐이었거든. 하지만 다무라 군은 현실에 맞서서 싸우고 있어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지."


p91

 

 "자네도 참 답답한 인간이군. 계시란 그런 거란 말일세" 하고 샌더스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계시란 일상성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것일세. 계시 없는 인생이 무슨 인생이란 말인가! 다만 관찰하는 이성에서 행위하는 이성으로 뛰어 옮겨 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나, 이 얼간이 같은 친구야?"


p113


 "이보게, 호시노 짱, 신이라는 건 인간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라네. 특히 이 일본에서는 좋건 나쁘건 간에 신은 어디까지나 융통무애融通無碍한 것이네. 그 증거로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신이었던 천황이, 점령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이제 신 노릇은 그만두시오' 라는 지시를 받자, '네, 이제 나는 보통 인간입니다' 라고 하며, 1946년 이후부터는 신이 아니게 되었네. 일본의 신이라는 것은 그 정도로 조정이 가능한 것일세. 싸구려 파이프를 물고 선글라스를 낀 미국 군인의 몇 마디 지시에 존재 방식이 달라져버리거든. 그만큼 초포스트모던한 존재지.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걸세.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관. 좁게는 일본의 천황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


p168

 "다무라 카프카 군, 이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 같은 건 원하지 않아. 원하고 있다고 믿을 뿐이지. 모든 것은 환상이야. 만약 정말로 자유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무척 난감해할걸. 잘 기억해 두라고. 사람들은 실제로는 부자유를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야."

 "오시마 상도요?"

 ""응. 나도 부자유를 좋아하지. 물론 정도껏이긴 하지만"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장 자크 루소는 인류가 울타리를 만들었을 때 문명이 태어났다고 정의했지. 그야말로 예리한 관찰력이라고 할 수 있어. 그의 말대로 모든 문명은 울타리로 구획된 부자유의 산물이야.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아보리지니(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만은 별개지. 그들은 울타리가 없는 문명을 17세기까지 유지하고 있었거든. 그들은 나면서부터 자유인이었어. 마음 내킬 때 마음 내키는 곳에 가서 마음 내키는 일을 할 수가 있었지. 그들은 인생은 문자 그대로 돌아다니는 것이었어.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은 그들 삶의 깊은 메타포였지. 영국인이 건너와서 가축을 가두기 위한 울타리를 만들었을 때, 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 그리고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반사회적이고 위험한 존재로서 황야로 추방되었지. 그러니까 너도 가능한 한 주의하는 게 좋아, 다무라 카프카 군. 결국 이 세계에서는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인간이 유효하게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것을 부정하면 넌 황야로 추방당하게 돼."


p207

 우리들이 모두 멸망하고 상실되어 가는 것은, 세계의 구조 자체가 멸망과 상실의 터전 위에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지. 우리의 존재는 그 원리의 그림자놀이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 바람은 불지, 미친듯이 불어대는 강한 바람이 있고,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잇어. 그러나 모든 바람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사라져.


p227

 "이봐요, 아저씨" 하고 청년이 말했다. "그 녀석들은 나카타 상이 그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면, 그 내용은 다 빼버리고 적당히 공술서를 날조한다구. 즉 자기네들이 적당히 이야기를 만들어낸단 말이야. 예를 들면, 도둑질을 하러 집에 들어갔더니, 사람이 있어서 부엌칼을 집어 들고 찔러 죽였다느니 뭐니 하고 말야. 그렇게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로 만들어버리거든. 진실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그 녀석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거지. 자기들의 검거율을 높이기 위해 범인을 날조해 내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거든. 그리고 나카타 상은 교도소나 경비가 엄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될 거야. 둘 다 끔찍한 곳이지. 아마 거기서 평생 나올 수 없을 걸. 어차피 제대로 된 변호사를 고용할 돈도 없을 테니까, 형식적으로 별 볼일 없는 삼류 국선 변호사가 붙을 뿐이지. 그렇게 될 게 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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