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을 통제하는 것은 제도화될 수 없다. 이것이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의 한 부분이 되는 순간 더 이상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칙센트미하이, 몰입: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체득(體得)되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그 생각과 행동의 작동상태를 들여다보면 모두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그런 미묘한 차이를 우리는 말로 잘 표현하진 못하지만 사람들간의 그러한 차이를 통틀어 '개성'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하고, 오랜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서로의 반응의 그러한 미묘한 차이에 대해, "원래 얘는 그런 사람이야"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그렇다고 여기는 어떠한 광의의 범주(category)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가치판단을 통해 선악과 호오(好惡)를 구별하는 것에는 미세한 혹은 꽤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특히나 종교와 정치적 주제가 그런 경향이 큰 것 같다)
예를 들어, 김연아 같은 초일류의 경우, 후배 일류급 선수들의 훈련 상황을 지켜보면서 무언가 잘 안풀릴 때, 그녀만의 체득된 경험을 통해 주는 원포인트 레슨이 후배가 초일류로 도약하는데 어떤 실마리를 줄 수도 있긴 하지만, 그가 초일류가 되는 깨달음은 그 후로도 수 많은 시행착오를 통한 반복된 실패와 성공의 줄다리기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실제로 아무리 스승이 좋아도 제자의 노력과 자질이 모자라면 청출어람이라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모방해서 그 수준에 미치는 것만해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 수준에 도달한 후 또 한번 뛰어 넘는 것은 미지의 영역이며 리스크를 감당할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극한의 노력과 의식을 쏟아부어 무언가를 깨닫고 희열에 이르는 순간을 우리는 간혹가다가 드물게 맛보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깨달음은 휘발적(Volatile)이다.
인간이 하나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그에 해당하는 뇌 부분의 뉴런들이 활성화 되면서 뉴런간의 시냅스 연결이 이루어지고 습득의 반복(보통 암기과정)을 통해 시냅스의 연결이 강화되어 장기적이며 동시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수준으로 도달하게 된다.
체득이라는 과정은 이런 뉴런간의 연결이 인체의 신체부위와의 상호작용이 동시적인 수준까지 이른 레벨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수영선수가 물에서 자연스럽게 수영을 하고, 축구선수가 극한의 중요한 돌파순간에 마르세이유턴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위대한 시인과 음악가가 시상/악상을 천상의 언어와 음악으로 표현하듯이-
그렇기에 어떠한 제도와 사회적 노력으로도 천재와 초일류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되지도 않을 일-예를 들어 과학분야에서의 노벨상 프로젝트 같은거-에 괜한 돈을 쓰는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을 만들지 않는 것도 명심할 일이다.
즉, 사회의 융통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좋은 일은 그것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무언가 캠페인을 벌이는 것 같은 쓸데 없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를 위해 무엇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수 있다라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