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의 후유증은 세월호만큼 이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겨놓을거다.

국힘 이것들은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항상 정권을 잡을때마다 사회적인 큰 참사가 발생하는거다.

해동 육룡이 ᄂᆞᄅᆞ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고성이 동부ᄒᆞ시니

불휘 기픈 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뮐ᄊᆡ 곶됴코 여름 하ᄂᆞ니

ᄉᆡ미 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 그츨ᄊᆡ 내히 이러 바ᄅᆞ래 가ᄂᆞ니

 

 

천세 우희 미리 정ᄒᆞ샨 한수북에 누인개국ᄒᆞ샤 복년이 ᄀᆞᇫ업스시니
성신이 니ᅀᆞ샤도 경천근민ᄒᆞ샤ᅀᅡ 더욱 구드시리이다
님금하 아ᄅᆞ쇼셔 낙수에 산행 가이셔 하나빌 미드니잇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14/0001244001?sid1=001 

 

윤 대통령, 北 무인기 침범에 文정부 비판 "대응 훈련 전무"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군용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사건은 전임 문재인 정부 때부터 대응 훈련이 전무했기 때문이라며, 북한의 선의와 군사 합의에만 의존한 대북정책은 위험하다고 날

n.news.naver.com

 

윤석열 취임 이후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 대한민국 국군의 대응은 눈뜨고는 보지 못할 정도의 처참한 수준이다.

왜 그럴까?

단순하다. 국방안보 시스템이 다 망가졌기 때문이다. 왜?

조금만 생각해보면 된다. 왜 국방안보 시스템이 망가졌는가?

석열이가 취임하자마자 한 일이 무엇인가? 국방부 건물을 빼앗은거다.

국방부 건물을 빼앗은 효과는? 국방안보의 핵심 인프라와 최상의 인적 네트워크를 일거에 다 붕괴시켜버렸다.

그러니 국방안보 능력이 무력화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윤석열이 청와대에 가기 싫다고 무계획으로 국방부 건물을 빼앗고 거기에 입주한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들을 전부 아작을 내서 대한민국 국방안보 시스템이 지금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다.

이번 무인기 사태로 그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고 이것은 국가위기 상황이다. 

윤석열 바로 니가 대한민국 국방안보의 공백을 초래한 범인이다.

https://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85884 

 

김만배 부인 "남편 현재 매우 위중한 상황" - 대경일보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 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병원으로 이송된 걸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위중한 상황이라고 김씨 부인의 말을 인용해 문화일보가 보도했다.16일 문화일보 인터

www.dkilbo.com

 

김만배씨가 자살 시도를 했고 그로 인해 매우 위중한 상태라는 기사다.

기사중 이런 내용이 있다.

'김 씨는 지난 14일 오전 2시부터 4시, 오후 1시 총 3회에 걸쳐 6차례에 걸쳐 자신의 차 안에서 흉기로 자신의 목과 가슴 부위를 여러 차례 찔러 자해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

김만배씨가 자살을 하려 했고 11시간 동안 목과 가슴을 6차례 찔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는가? 자살을 하려는데 일단 목을 찔러서 죽으려 했는데 안죽으니까 2시간쯤 있다가 또 가슴을 찌르고 그래도 안죽으니까 9시간이 지나서 또 자신을 찔렀다는 것이다. 김만배씨가 무슨 터미네이터인가?

https://www.nocutnews.co.kr/news/5859893

 

"이재명 측에 돈 준 장소도 몰라" 남욱 법정증언 직격한 김만배

5일 대장동 공판…김만배, 연일 남욱 증언 신빙성 문제삼아

www.nocutnews.co.kr

최근 대장동 사건에서 김만배씨가 이슈가 된 이유는 남욱이 김만배로부터 이재명에게 돈이 전달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는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만배씨는 남욱의 이 증언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남욱은 구속전인 작년 이재명은 씨알도 안먹히는 사람이다라는 인터뷰를 통해 이재명에게는 대장동 자금이 간 적이 없다는 증언을 한 적이 있다. 구속 1년이 지나서 최근에 증언을 바꿨는데 그 직후 석방된 정황에서 증언을 바꾸는 댓가로 구속에서 풀려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남욱의 증언대로 김만배씨가 이재명 대표에게 돈을 건내주었다는 증언이 나오면 검찰은 이재명을 수사선상에 올릴 수가 있는데 김만배는 이재명에게 돈을 준적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와중에 김만배씨의 자살 사건이 터져나왔고, 그 자살 정황 자체가 너무나도 부자연스럽다. 누군가에게 작업을 당했다라고 보는게 더 자연스럽다.

만약 김만배씨가 여기서 죽게 되면 누가 가장 유리할까? 바로 그넘이 범인일 것이다.

이재명? 윤석열?

대장동 사건을 계속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너무 쉬운 문제다. 

범죄자가 대통령이 되서 대한민국이 풍전등화 상태에 놓여있다.

 

이 정도 스펙이면 미국 아이비리그 면접관들을 줄세우고 싸대기를 쳐대도 될 정도의 능력자임.

한동훈도 대단하지만 그 딸은 더 대단한 듯.

노래 좋다.

부디 편히 쉬시길.

윤석열, 이상민 이것들은 사람 새끼들이 아니다.

http://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26 

 

‘조금박해’는 왜 그럴까 2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지난번 칼럼이 좀 시끄러웠기에 한 번 더 쓴다. ‘조금박해’는 하나의 현상이다. 비평할 가치가 있다. 지난번 글을 「조금박해1」, 이 글은 「조금박해2」라고 하자. 필요하면 「조금박해3」도

www.mindlenews.com

지난번 칼럼이 좀 시끄러웠기에 한 번 더 쓴다. ‘조금박해’는 하나의 현상이다. 비평할 가치가 있다. 지난번 글을 「조금박해1」, 이 글은 「조금박해2」라고 하자. 필요하면 「조금박해3」도 쓸 생각이다. 어떤 기자들이 「조금박해1」에 없는 말을 지어내 보도했고 관련자들이 즉각 반응했다. ‘진보논객’에서 ‘친윤논객’으로 전향한 대학교수도 한 마디 보탰다. 어떤 신문과 방송은 늘 하던 ‘제목장사’를 했다. 놀라거나 화낼 필요는 없다. 그런 것도 ‘조금박해 현상’의 일부다.

밥과 비평 사이

「조금박해1」에 대한 관련자와 제3자의 반응을 일일이 평하지는 않겠다. 논쟁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토론할 만한 쟁점을 내놓지 않아서다. 조금박해와 기자들은 내가 제기한 문제의 핵심을 외면했다. 독해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논쟁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내가 글을 잘못 쓴 탓일지도 모르니 초점을 가리는 곁가지를 정리하자.

첫째, 왜 칼럼을 쓰는가? 시민들이 보라고 쓴다. 비평의 대상이 된 사람도 독자일 수 있지만 특별히 고려하지는 않는다. 「조금박해1」을 쓸 때 조금박해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낱 칼럼 따위로 사람의 생각을 어찌 바꾸겠는가. 누가 뭐라 해도 조금박해는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자신을 비판한 칼럼을 읽고 성찰하는 정치인은 극히 드물다. 대개는 씨근덕거리며 욕을 한다. 그게 정상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비평가한테 화를 내서 좋을 건 없다. 화난 티를 내지 말고 유권자의 호감을 얻는 데 도움 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나랏일 하는 정치인은 감수해야 하는 ‘불공정’이다.

둘째, 어떤 정치인이 달라지기를 기대할 때는 어떻게 하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편지를 쓰기도 한다. 여의치 않으면 문자나 톡을 보낸다. 젊은 사람이면 만날 때 내가 밥값을 낸다. 그래 놓고서 칼럼으로 까는 건 뭐냐고 항변하지 말라. 기대가 있으면 만나고 없으면 비평한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주권자의 권한과 비평가의 정체성을 절충한다. 누구나 그렇게 하는 건 아니다. 대통령에 대한 비평을 대통령이 보라고 쓰는 칼럼니스트도 있다. 불러달라고 대통령에게 소리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언론 자유를 빙자해 대통령의 정적과 비판자에게 대놓고 침을 뱉는다. 그렇게 해서 어떤 이는 대통령의 참모가 되었고 어떤 이는 여당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슬기로운 비평생활’이다.

비평가의 책임과 마이크 파워

셋째, 비평가는 무엇을 책임지는가? 비평가는 자신의 논리와 관점에 대해 책임을 진다. 나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와 평가에 도움을 주려고 칼럼을 쓴다. 내 시각과 논리와 해석이 옳다는 증거는 없다. 세상의 여러 견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만 논리의 정합성과 철학의 일관성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니 비평가인 내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말라.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 경험이 있는 비평가일 뿐이다. 유권자로서 민주당을 지지한다. 하지만 당원은 아니다. 민주당에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도 없고 하지도 않았다. 민주당이 내가 하라는 대로 무언가를 한 일은 과거에 없었고, 지금 없으며, 앞으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유시민 때문에 민주당이 잘 되었느니 어쩌니, 민주당을 얼마나 사랑하느니 마니 하는 말은 접어두시라. 나는 그런 것에 관여하지 않는다.

넷째, 마이크 파워를 키우는 게 비난할 일인가? 아니다. 마이크 파워는 말과 글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치인이든 비평가든 작가든, 마이크 파워는 누구나 원한다. 마이크 파워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을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나는 조금박해의 의도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이 유명해지려고 민주당에 ‘쓴소리’를 한다고 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조금박해1」을 왜곡해서 내가 그렇게 말한 것처럼 쓴 것이다.

나는 조금박해가 옳은 일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라 생각한다. 달리 판단할 근거가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대중의 신뢰를 받아야 할 정치인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예컨대, 유시민에게 관심을 끊은 지 오래고 유시민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도 못한다면서 「조금박해1」을 반박하면 득 될 것이 없다. 귀는 막고 입만 여는 정치인이라는 오해를 받기 딱 좋다. 자신을 비판한다고 해서 독재자 아니냐며 발끈할 거라면 남한테 툭하면 사퇴하라고 소리치는 행위만큼은 그만두어야 한다. 젊은이가 그렇게 하면 더 이상해 보인다.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비평가더러 짠하다느니 불쌍하다느니 따사로운 말을 하는 것도 현명하지 않다. 성정이 야비하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 충고로 오해하지 마시라. 남이 듣게 말하는 건 충고일 수 없다. 비평가의 직업병이 도져서 하는 말이다.

 


조금박해가 외면한 것

어떤 민주당 정치인이 있다. 그는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는 말과 행동을 했다. 그렇지만 옳고 그름을 가리는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게 아님을 안다. 독선에 빠지지 않으려고 여론을 살핀다. 그래서 언론 보도를 본다. 언론이 여론을 반영하고 또 여론을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문방송이 긍정적으로 보도했고 기사 건수도 많았다. 자신을 가리켜 비주류나 소수파가 아니라 ‘소신파’라고 했다. 진영논리가 판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소신파’가 오만과 독선에 빠진 의회 다수당을 건강하게 만들고 우리 정치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는 믿음을 품고 신문과 인터뷰하고 방송에 출연한다. 그러자 우호적인 기사가 더 많이 나왔다. 정신 건강을 위해 당원과 시민들이 쓴 문자나 댓글은 보지 않는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당을 망치는 ‘악성 팬덤’이라고 훈계한다. ‘악성 팬덤’에서 민주당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태운다.

나는 조금박해의 언행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들이 민주당의 다수파를 공격하거나 주류 정치인을 공격해서 이익을 얻었는가? 그렇지 않다. 손해만 보았다.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떨어졌고 당직 선거에서 참패했다. 문자폭탄과 악성댓글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렸다. 그런데도 왜 줄기차게 ‘쓴소리 노선’을 밀고 갈까?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박지현 씨가 자신의 마이크 파워가 누구 못지않다고 말하는 걸 듣고서야 나는 그걸 깨달았다. 그래서 「조금박해1」에서 박지현 씨를 함께 다루었던 것이다.

나는 언론사의 90퍼센트가 ‘친윤석열’인 상황에서 그래도 되느냐고 물었다. 기자들은 그 질문을 못 본 척했고 조금박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을 50:50으로 지지했고 최근 민주당의 지지율은 국힘 지지율보다 적어도 낮지 않다. 그런데 언론은 90퍼센트가 ‘친윤석열’ ‘친국힘’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 보도량이 많다고 해서 마이크 파워가 크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 아닌가? 언론이 우호적으로 보도한다고 해서 옳은 일을 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가? 비난 문자를 보내는 당원들이 옳을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가? 지난번에도 이렇게 물어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다 내 잘못이다.

신문 방송의 정치적 사유화

친윤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리한 일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나는 공영방송과 극소수 신문을 제외한 온오프라인 신문 방송이 거의 다 친윤이라 본다. 친윤언론이 90퍼센트라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난여름 어느 새벽 대통령이 강남의 술집에 있었다는 의혹이나 대통령 부인의 주가조작 의혹을 대하는 언론의 행태를 보면 그 정도로 추산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날 새벽 술집에 있지 않았다면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이 부재증명을 하면 된다. 2003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의원은 내가 2002년 12월 대선 직전 중국 북경의 북한대사관에 가서 이회창 씨 부친 관련 자료를 받아 나왔다고 폭로했다. 목격자가 있다면서 ‘친북세력이 국회까지 들어와 암약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나는 중국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음을 출입국기록과 여권으로 즉각 증명했고 김무성 의원은 사과했다. 고소 고발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공직자는 때로 부당한 의혹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도 부당한 의혹 제기에는 그렇게 대응하면 된다. 일정표, 자택 CCTV, 휴대전화 접속기록 등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재증명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부재증명을 요구하거나 사실 여부를 심층 취재하는 신문 방송은 거의 없다. 국회에서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의원을 비난하고 제보자와 「더탐사」의 신뢰성을 공격하는 기사만 앞을 다투어 쏟아낸다. 수사기관이 언론사인 「더탐사」를 마구잡이 압수수색해도 일절 비판하지 않는다. 대통령 부인의 주가조작 의혹은 한술 더 뜬다. 탐사전문 매체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거나 다른 피고인 재판에서 중대한 범죄 혐의가 드러나도 친윤언론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는 신문 방송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친윤언론은 또한 야당 대표를 정치적 시체 안치실로 보내기 위해 검찰 조직을 총동원해 벌이는 ‘정적 제거 수사’에 적극 협력한다. 법률적 사실적으로 별 가치가 없는 ‘카더라 발언’을 중대한 사실인 양 포장해 비리의 증거가 나온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어떻다는 게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언론이 대부분 친윤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뉴스를 소비하자는 것이다.

언론사는 대부분 사기업이다. 언론사의 대주주들은 대한민국 0.0001퍼센트 부자이며 최고 특권층이다. 대기업이 큰손 광고주다. 대주주와 광고주가 ‘친국힘’ ‘친윤석열’이니 경영진과 데스크도 당연히 그런 사람들로 붐빈다. 그들은 국힘당이 부자와 강자의 이익을 지킨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안다. 국힘당을 지지하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기자는 상사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회사원이다. 기자가 자본과 정치권력에 맞서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예전의 신문 방송은 사회의 공론장을 자처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이젠 그런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신문 방송의 정치적 사유화’로 이해한다.

대주주와 경영진이 정치적으로도 사유화한 신문 방송은 민주당을 적으로 간주한다. 민주당에 해가 되는 정보는 사실이 아니어도 최대한 키우고 대통령과 여당에 해가 되는 정보는 사실이라도 무시한다. 민주당 정치인과 진보 지식인에 대해서는 부정적 기사만 낸다. 민주당을 포함해 진보진영에 발끝이라도 걸쳤던 사람 가운데 자기네가 원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특별히 우대한다. 귀순자를 내세워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들은 민주당을 북한 정권만큼 싫어하는 듯하다. 친윤언론에게 조금박해는 북한 내에서 김정은을 비판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용도로 조금박해의 말과 행동을 소비한다.

다시 말한다. 나는 조금박해가 ‘이적행동’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고 믿는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조금박해의 주관적 동기와 무관하게 친윤언론이 조금박해를 자기 목적 달성에 활용하려고 ‘조금박해 현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친윤언론은 내가 박지현과 조금박해의 인격을 공격한 것처럼 조작하고, 그에 대한 관련자와 제3자의 반응을 다루는 기사를 냈다. 이 글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나 기사를 써도 ‘신문 방송의 정치적 사유화’ 문제는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데 오백 원을 건다. 조금박해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도 오백 원을 건다. 그러다 돈 천 원을 잃으면?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다.

사족을 하나 달자. 나더러 ‘맛이 갔다’고 한 ‘친윤논객’에 대해서는 비평하지 않겠다. 그는 사실과 데이터를 무시한다.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판단한다. 글과 말로 감정을 배설한다. 친윤언론이 그것을 퍼나른다. 배설물을 어찌 비평하겠는가. 피하는 게 유일한 대책이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www.mindlenews.com)

 

http://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4 

 

박지현과 '조금박해'는 왜 그럴까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언론에서의 마이크 파워나 유명세로 따진다면 제가 그 두 분께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직후 짧은 기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박지현 씨는 7월 7일 KBS 라디

www.mindlenews.com

 

“언론에서의 마이크 파워나 유명세로 따진다면 제가 그 두 분께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직후 짧은 기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박지현 씨는 7월 7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행자가 “박지현이 본인을 이준석이나 김동연 급으로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한 김남국 의원의 말을 인용해 질문하자 내놓은 대답이었다. 포털 뉴스의 대문에 관련 기사가 걸린 것을 보고 KBS가 제공한 대담 전문을 찾아 전후 맥락을 살펴보았다. 

박지현과 ‘조금박해’

머릿속에 번쩍 불이 켜졌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박지현 씨는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구나.’ 박지현 씨만 이해한 게 아니다. 대다수 신문방송이 ‘민주당의 소신파’라고 한 ‘조금박해’의 생각과 감정과 사고방식을 이해할 실마리도 찾았다. ‘조금박해’는 20대 국회에서 고비마다 민주당의 당론과 다른 주장을 하곤 했던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의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금’은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자 민주당을 떠났고 ‘해’는 재선에 실패해 원외 정치인이 되었지만 ‘조’와 ‘박’은 21대 국회에서도 활약하는 중이다. 지위는 달라졌지만 민주당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태도는 여전하다. 어떻게 아느냐고? 모를 수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민주당과 민주당의 정치인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기자들이 거의 비슷한 기사를 앞다투어 쏟아내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조금박해’와 사적 인연이 없어서 속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고달프다고 하는 당내 비주류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직접 듣지 못했다. 왜 그랬고 왜 여전히 그러는지, 언론 보도나 인터뷰를 보아도 알기 어려웠다. 박지현 씨가 솔직하게 말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혼자 혀를 끌끌 차기도 했고 속으로 욕을 하기도 했다. 잘못했다. 미안하다. 그래도 면전에서 욕하진 않았으니 용서해 주기 바란다. 나는 박지현 씨와 ‘조금박해’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혹시 비판할 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비판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겠다. 

마이크 파워와 유명세

마이크 파워는 말의 힘 또는 말의 영향력이다. 자신의 마이크 파워가 이준석이나 김동연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박지현 씨의 주장은 맞는 것인가? 예전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유명세가 두 사람 못지않다는 주장은 어떤가? 그건 반대다. 예전에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 두 가지를 종합하면 이렇게 된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박지현은 마이크 파워가 강했고, 아주 유명해진 후의 박지현은 마이크 파워가 약하다.”

마이크 파워와 유명세는 다르다. 관계는 있지만 늘 같은 쪽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박지현 씨는 그걸 모른다. 박지현의 마이크 파워는 대학생 때 했던 ‘추적단 불꽃’ 활동의 성과에서 생겼다. 박지현은 2019년부터 텔레그램 n번방에 잠입해 실체를 추적함으로써 경찰이 다음해 조주빈을 비롯한 주범들을 체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는 그때 박지현이 보여준 용기와 신념과 능력에 대해 크고 변함없는 존경심을 지니고 있다.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독자는 국민일보가 연재한 시리즈를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2022년 1월 이재명 후보 선대위는 그런 업적을 보고 박지현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겸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그때까지 ‘익명의 활동가’였던 박지현은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청년 세대와 여성의 존엄과 정치적 요구를 체현한 신진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박지현은 선거 막판 다양한 여성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진 2030 여성의 정치적 궐기와 결집에 동력을 제공함으로써 대선의 승패를 바꿀 뻔했다. 그런 마이크 파워가 유명해서 생긴 건 아니었다. 그때 박지현은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가 아니었다. 뭘 좀 아는 사람이나 박지현을 알았다.

박지현 씨는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되면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명해졌다. 이런저런 사유로 이재명, 최강욱, 김의겸 등 민주당의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자신에게 당대표 출마 자격을 특별하게 부여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주당 지도부를 공격했을 때는 언론이 엄청난 양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마이크 파워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앞에서 소개한 KBS 라디오 대담은 수많은 기사를 낳았지만 댓글이 많지 않았다. KBS가 공식 유튜브에 올린 15분짜리 영상도 재생 횟수가 매우 적었다. 

한마디로 오늘의 박지현에게 대중은 관심이 없다.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정치인의 말은 힘을 가질 수 없다. 박지현 씨는 그저 언론에서 시끄러운 정치인일 뿐이다. 그런데도 왜 자신의 마이크 파워가 이준석이나 김동연 못지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착각이다. 언론에 많이 나오면 마이크 파워가 크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착각을 하는 이유는 뭘까? 정치 경험이 빈약한 박지현 개인만 놓고 보면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조금박해’와 묶어서 살필 경우에는 기울어진 언론 지형이 주요한 원인으로 떠오른다. 

‘조금박해’를 위한 ‘쓴소리’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내가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난했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톨릭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로, 한 톨의 사심도 없이, 오로지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복리를 중심에 두고, 매우 훌륭하게 국정을 운영했다고 판단한다. 이재명 대표는 남다른 노력으로 불운을 딛고 세속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대한민국을 복지사회로 만들겠다는 이상을 가슴에 안고, 날마다 더 배우고 생각하며 발전해 가는 정치인이라고 본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기자들은 보도할 가치가 없다고 할 것이다. 보도한다고 해도 원래 친문재인 친이재명인 사람이 아부성 발언을 했다고 조롱하는 게 전부일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이유를 들어서든 문재인과 이재명과 민주당을 비난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사실의 근거가 없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해도 아무런 검증을 하지 않고 내 말을 그대로 중계할 것이다. 비슷비슷한 기사를 하루에 수백 개씩 쏟아낼 것이다. 기자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 민주당에 해가 된다고 보거나 해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라야 그들한테는 보도 가치가 있다. 내가 언론 보도가 많을수록 마이크 파워가 크다고 믿는다고 하자. 그런 의미의 마이크 파워를 키우는 게 내 목표라고 하자. 나는 그 목표를 손쉽게 이루는 방법을 안다. 문재인과 이재명과 민주당에 해가 될 말을 하는 것이다. 말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언론이 알아서 다 해준다.

어쩐지 익숙한 장면 같지 않은가. 한때 넓은 의미의 진보 진영에서 활동했던 교수, 회계사, 변호사, 평론가들이 그런 방식으로 마이크 파워는 없지만 시끄럽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언론의 총아가 되었다. 언론이 왜 이런지는 다른 기회에 이야기하겠다.    

‘조금박해’의 언행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박지현 씨와 비슷한 착각을 하고 있다. 무슨 나쁜 마음을 먹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오로지 민주당에 해가 되는 말과 행동만 하는 것도 아니다. 가끔 그런 말을 할 뿐인데도 언론이 그것만 대서특필하니까 오로지 그런 일만 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것이다. 기자들은 그들이 근거가 없거나 논리에 어긋나는 말을 해도, 심지어 민주주의 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해도 비판하지 않는다. ‘쓴소리’ ‘소신’ ‘용기’ 같이 멋진 말로 치장해준다. 정치하는 사람이 어찌 유혹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조금박해’의 모든 행동을 용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민주당과 민주당의 다른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처럼 다른 정치인이나 시민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폭력적 팬덤’이니 어쩌니 하는 ‘폭력적 언어’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배척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만 더 하자.

‘조’는 국민의힘 후보를 당선시킬 수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표를 준 유권자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활동할 경우 다음 총선에서 어떤 경쟁자가 경선에 참가해 노선투쟁의 기치를 들고 지역구의 민주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조의 퇴출’을 호소하는 사태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금’은 후보 경선에서 졌다고 당을 나가 정치적 반대 진영으로 가는 반칙을 저질렀다. 그래놓고도 민주당에 ‘충고’라는 걸 하고 기자들은 그걸 ‘쓴소리’라고 보도한다. 앞으로는 충고 말고 공격을 하는 게 그나마 덜 위선적이지 않을까? 

‘박’은 ‘쓴소리’ 전문 ‘소신파’로 대선후보 경선과 당 대표 선거에 나가서 참혹한 수준의 득표를 했다. 시끄럽게 한다고 해서 마이크 파워가 생기는 게 아님을 이젠 알 때가 되었지 않았는가. 

‘해’는 지역구가 부산이라 어지간히 ‘쓴소리’를 해도 지지자들이 양해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아예 없는 건 아님을 한번쯤은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50:50 vs. 90:10

우리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을 거의 50:50으로 지지했다. 그런데 언론은 어림잡아 90퍼센트가 친윤석열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뿐 아니라 문화일보를 비롯한 다른 신문사들과 거의 모든 경제신문, 뉴시스를 위시한 민간 통신사들이 대부분 그렇다. 나머지 10퍼센트가 공영방송을 포함한 중립 성향 언론사들이다. 친민주당 또는 친이재명 성향 신문 방송은 찾아보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자기편이 아니라고 MBC를 적대시한다. 확실하게 편들어주지 않는다고 YTN의 공공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려 한다. 김어준이 ‘쓴소리’를 많이 한다고 교통방송의 돈줄을 끊었다.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태도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대했다. 

언론 지형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기적을 이룬 나라’임을 실감한다. 대한민국의 기적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이 윤석열과 팽팽한 대결을 한 것도,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30퍼센트 수준인 것도,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 지지율에 뒤지지 않는 것도 모두 기적같은 일이다. 민주당에 ‘조금박해’와 비슷한 언행을 하는 정치인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기적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같아서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모이는 시민들한테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일종의 자구책으로 낙관주의를 선택했다. 현실이 어둡고 혼돈스러운데 생각마저 비관적이면 이 정권의 기나긴 시간을 어찌 멀쩡한 상태로 견뎌내겠는가.


김어준 공장장이 그간 홀로 국힘과 꼴통들의 공격에서 잘 버텨왔다.

일제시대라면 독립투사가 되었을 사람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졸라 땡큐 김총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86323&CMPT_CD=P0001&utm_campaign=daum_news&utm_source=daum&utm_medium=daumnews 

 

깨발랄 지현, 하늘의 별이 되다... "넘 슬퍼하지 마 난 행복했어"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27살 김지현씨의 삶, 꿈, 바람

www.ohmynews.com

 

김지현님의 유튭 vlog중 에피소드.

 

애도와 조문은 희생당하신 분들의 생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유족들과 슬픔을 나누는 과정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는 그러한 모든 과정이 사라졌다. 그것이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이다. 이태원 참사는 그 참사의 가해 당사자도 그리고 2차 가해도 모두 정부가 저질렀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우리가 들어서 많이 알고 있는 법의 근본사상을 이루는 고전들에 대해 그 핵심을 설명한 책.

재밋고 유익하다.

----------------------

 

p20 

 정치 참여는 '의무'



 루소는 <사회계약론> 1부 도입부에서 정치 참여의 당위성을 강조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나 봅니다. "네가 뭔데 정치 이야기를 해?"라는 식이죠.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군주도 아니고 입법자도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 관한 글을 쓴다. 내 의견이 공적인 일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아무리 미미하다고 해도 나는 한 자유국가의 시민이자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 그것[공무]에 관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으므로 거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의무 역시 당연히 갖게 된다.'

 권위주의 체제 시절에는 시민들이 정치를 이야기하면 "네 일이나 잘해"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교사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이나 잘 가르치지"라는 야유를 받았죠. 노동자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면 "물건이나 잘 만들어 팔지"라는 구박이 돌아왔습니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경우는 정치 과정에 참여한 이후 "교수가 전공 강의나 하지 왜 정치 이야기를 해?"라는 비난을 많이 들었습니다. '폴리페서'라는 딱지도 붙었죠.

 만약 이런 식으로 '네 일이나 잘하라'는 요청을 따르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정치에 관심을 끊고 학교 캠퍼스에 틀여박혀 있거나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만 하고 농민이 논밭에서 농사만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정치는 특성 사람,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민주공화국은 이 나라의 주인이 바로 우리라는 뜻입니다. 나라 운영의 원리와 방향을 정하는 것이 정치인데, 나라의 주인이 그러한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루소는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한편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마!"라는 윽박지름과 함께 "정치가 너와 무슨 상관이야?"라는 어리석은 질문도 있습니다. 루소가 살던 시대에도 그랬나 봅니다. 루소는 이렇게 답합니다.  

 '누군가가 나랏일에 관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나라는 끝장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나라의 주인이 나랏일에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는 것이죠. 정치는 한 나라의 운명과 주권자 국민의 삶의 방향을 좌우합니다. 예를 들면 정치는 납세자, 즉 우리에게 얼마의 세금을 걷을지 결정합니다. '슈퍼리치'로 불리는 '초부자'들을 대상으로 증세를 할지 감세를 할지 정합니다.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데,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유지할지 아니면 폐지할지도 결정합니다. 재벌 등 대기업이 내는 법인세를 인상할지 인하할지도 정합니다. 최근 유럽연합은 석유,천연가스,석탄을 생산/정제하는 기업들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막대한 이윤을 얻게 되자 1400억 유로(약 200조 원) 규모의 횡재세(windfall tax)를 부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치는 또한 우리가 내는 세금의 사용처를 정합니다. 예컨대 4대강 사업에 돈을 쓸지, 아니면 '무상급식', '무상보육', '전국민고용보험' 실시에 돈을 쓸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세금을 냈는데 4대강 사업에 쓰여 강을 '녹차 라테'로 만들어 버리면 화가 나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자원외교는 깡통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몇조 원이 들어갔다는 것 아닙니까? 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을 다 합한 액수를 우리나라 인구로 나눠보니 1인당 200만 원, 가구당 약 1000만 원을 부담한 셈이더군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 쓰레기통을 구입했는데, 한 개에 약 90만 원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이뤄지는 일입니다.

 

p75

 삼권분립의 의미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그것을 함부로 쓰기 마련이다. 이 점을 지금까지의 경험이 알려주는 바이다.  사람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본질에 따라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

 

p81

 몽테스키외는 법관의 역할을 제한하려고 했습니다.

 판결은 명백히 정해져 있는 법률 조문에 불과할 정도로 일정해야 한다. 만약 판결이 한 재판관의 개인적 견해라면 사람들은 책임져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법권은 이를테면 없음이나 다름없다. 인민의 재판관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법의 문구를 선언하는 입에 불과하다.

p84

 <범죄와 형벌>에서 베카리아는 배심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지한 자는 감각으로 판단하지만, 전문가는 학설과 의견으로 판단한다. 전자의 판단이 후자의 판단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안내자이다. 재판관은 유죄판결에 익숙해져 있으며, 모든 것을 그의 전문지식에서 빌려온 인위적 개념요소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재판관의 학식보다는 보통 사람의 상식이 증거판단을 잘못할 가능성이 더 적다. 법을 아는 일이 전문 학문이 아닌 나라는 얼마나 행복한가! 누구나 그와 동등한 이웃 시민들로부터 재판받도록 하고 있는 법제는 정말 경탄할 만하다.

 

p88

 <법의 정신> 제29편 '법을 만드는 방법'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 정리했습니다. 몽테스키외는 그리스, 로마, 프랑스의 예를 들면서 여러 가지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차례로 보겠습니다.

 첫째, "입법자의 의도에 어긋나는 법"을 만들어선 안된다. 입법자는 입법의 목적과 결과가 반대로 나올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법의 문체는 간단해야 한다." "법의 문체는 쉬워야 한다."

 셋째, "법의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관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법에서 사물의 관념을 확정했을 때는 결코 모호한 표현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법의 표현이 모호하고 불명확하면 필연적으로 해석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법을 준수해야 하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허가되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권력이 재량을 갖게 되고, 시민의 자유는 위태로워집니다. 이 원칙은 현대 법률용어로 '명확성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이 원칙은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에서도 강조됩니다.

 

p94

 법은 만들어지지만 풍속은 제시된다. 후자는 좀 더 일반 정신에서 유래하고, 전자는 좀 더 특수한 제도에서 유래한다. 풍속이나 생활양식을 바꾸고자 할 때에는 그것을 법에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전체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것은 다른 풍속, 다른 생활양식에 따라서 변경하는 편이 낫다. 그러므로 군주가 그 국민에게 큰 변화를 일으키고자 할 때엔, 법으로써 설정된 것은 법에 따라 개혁하고, 생활양식으로 형성된 것은 생활양식에 따라 변경해야 한다. 생활양식으로 바꿔야 할 것을 법에 따라서 변경한다는 것은 매우 나쁜 정책이다.

 '법'과 '풍속'을 구분하면서, 법을 통해 생활양식을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말라는 충고입니다. 그러면서 서구식 근대화와 강력한 국가 건설을 추진했던 러시아의 표토르 1세가 사람들이 도시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의 길이를 무릎까지로 제한한 법을 만든 것은 "폭정과도 같았다"라고 비판합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남성이 장발이거나 여성이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경범죄처벌법상 '범죄'로 규정되었습니다. 경찰관들이 거리에서 가위와 자를 들고 지나가는 남성들의 머리카락 길이를 재고,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쟀어요. 머리와 치마 길이가 규정을 초과하면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폭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p169

 베카리아는 '범죄'와 '종교적 죄악'이 다르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근대 형법학이 출발합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에서 '죄악'이라고 비난하는 행위가 있잖아요? 종교별로 '죄악'의 범위에 차이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악'중 형법상 '범죄'인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 절도, 강간 등은 '죄악'이기도 하고 '범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교를 하는 간통adultery은 '죄악'으로 분류되지만,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범죄'가 아닙니다. 중세에는 간통도 '범죄'로 처벌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통은 오랫동안 범죄로 규정되었지만 201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폐지되었습니다. 간통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범죄로 처벌해서는 안되다는 것입니다. 배우자와의 사랑이 식고 혼인이 파탄으로 가는 상태에 있는 사람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혼외성교를 한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 오랜 논쟁이 있었는데, 드디어 마무리된 것입니다.

 한편 중세 기독교에서는 '자살', 미혼 남녀의 성교인 '사통私通 fornication'을 '죄악'으로 분류했고 당시 이 행위는 '범죄'로 처벌되었지만,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를 '범죄'로 규정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물론 혼전순결 서약을 하는 사람들의 의사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근대 형법의 기본은 종교와 법의 구별, 죄악과 범죄의 구별, 도덕과 법의 구별입니다. 베카리아가 바로 이 점을 갈파했던 것입니다. "종교적 죄악은 신이 벌하는 영역이다"라는 말에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종교적 죄악'은 같은 종교 공동체에서 비난을 받습니다. 신부님, 목사님, 스님이 질책을 하실 것이고, 동료 신도들이 책망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는 국가가 바로 개입합니다.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등 강제처분을 하고, 검찰이 기소하면 법원이 판결해서 형벌을 부과하죠. 이 모든 과정은 국가 기록으로 남습니다. '종교적 죄악'과 '범죄'를 구분하지 못하면, 전자의 경우에도 국가가 강제력을 행사해 개입하게 됩니다. 이는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p285

 -존스튜어트 밀-

 진리란, 스스로 사색하지 않고 오로지 타인의 주장에 맹종할 뿐인 사람들의 진실한 의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적절한 연구와 준비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류에 의해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제가 재직하고 있는 서울대는 머리 좋고 성실하고 시험 잘 치는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곳입니다. 저는 수업 중에 농반진반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대부분 '주체사상'에 따라 성실하게 생활하면서 북한에서 제일 좋은 대학인 김일성 종합대학에 성공적으로 입학해 아침저녁으로 '수령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것입니다."

 

p294

 밀은 "개성에 대한 일반인의 무관심", "집단 속에 매몰된 개인"이라는 현상, "모든 개인을 공인된 표준에 합치시키려고 노력하는 경향"을 개탄합니다. 그는 당시 영국 사람들이 타인에 관련된 사항만이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도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이 나의 성격과 성향에 맞는가? 또는 무엇이 내 속에 있는 최고 최선의 것으로 하여금 공정하게 그 힘을 발휘하게 하여 그것을 성장 발달하게 하는 것일까?"라고 묻지 않고, 반대로 "무엇이 나의 지위에 적합한가? 나와 같은 신분으로 같은 수입을 얻는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또 (더욱 나쁘게도) 나보다 높은 신분과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보통 어떤 일을 하는가?"를 자문하고 있다고 평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인간은 각자 자신만의 기질, 취향, 꿈, 욕구,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나 여론이 이를 특정 기준에 따라 획일화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억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른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어린이에 대해서도 그런 경향에 따라 훈육하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붕어빵 찍듯이 사람을 찍어내고 싶은 것입니다. 일제의 지배와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 경험이 있다 보니 이런 현상이 고착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밀은 말합니다.

 

 인간성을 위협하는 위험은 개인적 충동과 선호의 과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에 있다. 진보의 원칙은, 그것이 자유를 사랑하는 형태든 개량을 사랑하는 형태든, 관습의 지배에는 반대하고, 적어도 관습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요구한다. 하나의 인민은, 일정 기간 진보적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정지한다. 언제 정지하는가? 그것은 개성을 갖지 못할 때다.

 

p298

청중 : 책을 읽으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일은 개인의 자유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촛불 집회/시위가 열렸을 때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피해를 줬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상황에서는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억압받아도 되는 걸까요?

 

조국 : 중요한 쟁점입니다. 법률적 용어를 사용하면, '기본권의 서열'이라는 확립된 법리가 있습니다. 최상위는 생명입니다. 그다음 순위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정신적 자유입니다. 그다음은 신체의 자유이고, 그 아래는 재산권입니다. 이 서열에서는 위의 것을 위해서는 아래의 것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촛불 집회/시위가 열리면 그 주위에 있는 상인들이 장사를 못하거나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재산적 이익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법리에 따르면 상인 분들이 감수해야 합니다. 물론 집회/시위 참가자가 이 상점에 불을 지르거나 물건을 파손했다고 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블랙팬서는 1대 블랙팬서인 채드윅 보즈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구상해놨던 스토리가 엄청 꼬인듯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과 각본가의 당혹감이 느껴지는 듯 하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영화는 지극히 산만하며 어떤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의문스럽다.

블랙팬서 3가 나올까? 싶다. 

1958년생. 

1000이라는 숫자에 꽤 집착하는 듯.

제자의 이름은 지공, 인공. 인공이 최측근 제자인 신씨.

지공 본인 등판.

자서전도 냈다고 함.

2004년 부산에서 홍익인간의 이념을 내건 해동신선도라는 종교의 교주가 되어 

강연을 카세트테이프로 냄. 싼마이 티가 확 난다.

그마저도 5년만에 해체되는데 이유는 여신도랑 정을 통해서.

2010년에 간통죄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이후 2015년 간통죄가 위헌판결을 받으면서 무죄가 됨.

너튜브에 의하면 전과17범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되진 않는다.

수제자인 인공 신씨와 함께 새로운 종교단체 설립.

인류의 스승이라 칭하며 유튜브에서 활발히 활동 중.

본인이 한 말을 교정해서 다른 사람이 타이핑을 해주는 거니까 사실 천공이 쓴 책이라곤 할 수 있음. 원래 유명작가들도 구술만 하고 타이피스트가 받아쓰는 형태로 작업하는 사람들도 있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한글도 깨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이야기. 

여기서 웃기면서도 소름 끼치는 포인트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사로 탄탄대로를 걷고 검찰총장까지 지내고 대통령이 된 대한민국 최상층의 기득권이 일자무식의 사이비 무당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것임. 

흥국이 형님 어쩌다 이리 되셨누.

기업으로부터도 기부금을 받은 이력이 있음.

꽤 규모가 있는 기업인 듯. 

얼마전 천공은 거액의 기부를 하기도.

이 공개행사에도 MBC 기자가 가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강력한 디펜스 및 빤스런.

최근 정법시대 회원 39명이 천공이 개인적으로 회비를 유용한다는 의혹을 들어 회비 반납요구를 하자,

정치적 모략이라고 주장.

구라가 뭐 환타지 수준이네. 구라친 넘도 문제지만 저런 구라에 속는 사람들도 뭐 문제가 많다.

비선실세로 박근혜가 탄핵된게 얼마 안됐는데 다시 나라가 이런 꼬라지로 가는 걸 보면 한심스럽다.

그러나 답변은 없음. 

위 토론회 몇일 뒤 YTN에서 천공과 인터뷰를 진행.

위 인터뷰 후 다시 토론회에서 설전이 오감.

이래서 윤석열이 유승민을 죽이려고 이를 아득바득 가는 것일 듯.

천공이 말을 하자마자, 다음날 아래와 같이 윤석열이 발언.

대선공약 1호였던 소통을 위해서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던 윤석열. 하지만 사무실은 용산으로 이전.

현재 해당 기사들은 다 삭제된 상태.

여기까지 오면 이건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지... 무당에 놀아나는 나라.

사무실을 찾아가봤지만 만날 수 없었고 전화로도 연락이 안됨.

공개강연이 있어서 신청.

그러나 참가인 정보를 보내서 MBC기자임을 알자 곧바로 환불해줌.

그래도 혹시 몰라 공개강연 장소에 가봄.

강연장소에서 5시간 기다려 어렵게 천공을 보게 됨.

빤스런.

수소문 끝에 주변인을 찾게 됨. 천공 밑에서 2014년부터 6년간 강연제작과 출판관련 일을 한 사람을 찾음.

그러다 갈등으로 2년 전에 천공을 떠남.

또 다른 측근 A씨의 증언.

원안에 있는 인물은 천공의 제자인 신씨. 김건희가 신씨와 연락을 해서 조언을 구하면 천공은 유튜브의 강의라는 형태로 그에 대한 답변을 한다는 측근의 제보.

천공이 말하면 즉각 실행.

 

-2부에서 계속-

아주 훌륭하다.

영화 말미에 보니 2013년 대한민국 시나리오 공모전 선정작이라는 크레딧이 있던데 구성과 스토리가 탄탄하다.

인조반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뼈대로 픽션을 가미한 역사픽션이다.

류준열과 유해진 두 주연의 연기가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조연은 소현세자의 세자빈인 강빈역을 맡은 조윤서 배우였다. 응답하라 1994에서의 애정이 이후에 오랜만에 봤는데, 응사에서 애정이 등장신의 임팩트는 컸지만 워낙 비중이 작기도 한 단역이고 연기가 워낙 발연기라 그런지 그 이후에 방송에서 보이질 않았다.

출연 씬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꽤 중요한 장면에서 연기가 인상에 남는다.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 하긴 응사 이후 10년이 지났으니 연기력이 안늘면 배우하기 힘들겠지.

 

오랜만에 괜찮은 한국영화를 봐서 기분이 좋다.

ㅣㄴ

 

금일 (2022년 11월20일) 대구에서 열린 신천지 10만 신입성도 수료식.

코로나 초기만 해도 대구 신천지발 코로나 확신 이슈로 인해서 전국민들에게 사이비로 악명이 높았지만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후 신천지과 관련된 대부분의 고소,고발건들이 다 무죄가 나고 있으며 교세가 확장중이다.

특히 대선에서 신천지가 국힘과 윤석열을 지지하는 세력과 댓글부대로 활동했다는 내부고발과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대선이 끝난 이후로는 조용해졌다.

아마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정확한 사정은 몰라도 관계성은 대충 짐작이 갈거다.

10만 신입성도 수료식도 아주 창대하게 치뤄졌다. 북한도 저보다는 잘할 것 같진 않다.

아주 대단한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 중에 이번에 윤석열을 찍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을 자격이 없다고 난 생각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