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페이지 정도의 세미장편 정도로 분류된다. 집중하면 3~4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2016년 10월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나온지 2년이 되어간다. 간혹 이 책의 소문을 언뜻 들을 기회가 그간 많았으나,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어로 이슈가 되는 적이 많고, 주요 포탈의 게시판에서도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논쟁을 댓글들로 읽으면서 흥미를 잃었기에 읽지 않고 지나갔다.

최근 이 책의 내용을 원작으로 드라마화가 결정되고, 그 드라마에 여주인공에 내정된 여배우의 SNS가 집중포화를 당하면서 결국 SNS를 폐쇄하고 말았다. 그 사태를 보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리도 남자(난 60년대 말에 태어나 80년대 후반 대학을 나온 전형적 386세대의 남자이다)들에게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의 약자로서 여성의 사회적 차별을 과장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과도한 여성들의 피해의식에 대한 조롱조의 의미이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슈가 되는가에 결국 최근에 읽어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내용을 꼴페미로 규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82년생의 김지영의씨의 삶은 40년대에 태어나서 나의 어머니가 되신 세대들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닮아있다는 것은 같다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는 다르나 조선시대부터 유구히 내려온 남아선호와 사회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차별받는 프레임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40년대의 여성과 80년대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로 상승한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 사회 기저에 흐르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차별의 프레임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남자로서,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학교를 다니고,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해온 남자인 나의 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도 책에서 나오는 김지영씨의 경험과 고민은 대부분 충분히 공감되는 내용이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최대한 그녀의 삶의 모습을 진솔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묘사하려 노력했다고 느낀다. 또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차별 받는 혹은 손해를 받는 주요한 에피소드에서는 객관적인 인용(기사와 같은)의 출처를 밝혀서 최소한의 객관성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그런 수고로움을 하는 것을 별로 보지는 못했다. 이런 노력의 이면에는 여성작가로서 이 소설이 그저 하나의 페미니스트 소설로 한계 지워져버리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로서 작동하지 않았나 한다.

이 소설의 명확한 주제가 사회,관습,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거에는 그것이 차별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던)을 구체화시키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드물게 맥락이 튀면서 "아,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좀 심하다."라는 대목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주어진 주제에 대해 사실을 재구성하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생경함 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남자인 내가 여성의 삶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이해의 모자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여성의 삶과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남자들이 알 수 없는 여성들의 내밀하고 복잡한 마음의 일단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남편과 아내, 혹은 애인 사이에서도, 혹은 아들과 어머니가, 혹은 딸과 어머니가 같이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좋은 내용이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젠더의 대립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 변화하는 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그 때문에 남녀간의 대립이 점점 심화되어가는 지금, 이 책의 내용이 더욱 소중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작가는 중년 남자 의사를 통해 아직 이 사회의 남성들이 여성의 문제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마무리로서 약간의 여운과 아쉬움도 남긴 하지만 남성들의 시각을 바라보는 여자의 느낌이 이런거구나 하는 어느 선 같은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의 서평에 어느 여성학자의 글이 있는데, 사실 좀 너무 이 책의 내용을 사회적 차별에 대한 젠더 대립으로 몰고 가는 듯 해서 안타까운 면이 있었다. 책의 마지막 서평이 도리어 이 책을 둘러싼 논란을 키우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

책의 내용중, 임신을 한 김지영씨에게 지하철에서 여자 대학생이 상처를 주는 부분이 있다. 서평을 쓴 여성학자도 도리어 이 책의 수준과 내용을 서평을 통해 도리어 폄훼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는 젠더의 대립보다는 한 여성으로서 김지영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안타까움만이 짙게 묻어나온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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