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청소년 시절에 독서라는 걸 거의 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시절에 가끔 머리를 식힐 때 헤세의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수레바퀴 밑에서를 떠올리면 상큼한 사과쥬스의 향이 여전히 느껴지고,  데미안은 웬지 모르게 수척하고 날카로운 하얀 얼굴이 떠오른다. 헤세라는 작가에 대한 인상은 조금은 나르시스적이며 나약한 지식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선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기존에 읽었던 작품들이 헤세의 전성기와 그 이후의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나는 헤세의 중후반기에 대한 인상만을 가졌던 것 같다.

 이 작품은 낭만과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고색창연하지만 아직 전쟁(1차 대전)의 위협이 가시화되기 이전, 유럽에 평화가 공기와 같이 감돌고 이러한 여유에 의해 인간과 사랑에 대한 탐구에만 젊음의 고민이 집중되던 시절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카멘친트의 유소년기부터 중장년기까지의 30~40년 정도를 담아낸 듯 보이지만, 이 소설은 헤세가 26살에 쓴 소설이기에 그 내부에 흐르는 정서는 격렬하면서도 따뜻하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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