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페렉의 데뷔작.

본인의 경험을 그대로 녹여낸 내용으로 20대 초반의 젊은 연인(부부?)인 실비아와 제롬이 사회로 나와 욕망에 휘둘리는 모습을 매우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묘사했다.

페렉은 1936년 폴란드 태생 유태인으로, 아버지는 4살때 전사하셨고, 어머니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부유한 고모에게 입양되어 프랑스에서 자라났다.

사물들에 나오는 것처럼 튀니지 스팍에서 프랑스어 교사로도 지냈다고 한다.

페렉의 세대를 지배한 실존주의 사조는 칸트와 하이데거의 관념론에 대한 반발(이 관념론이 나치의 사상적 배경이 된 것에 반발하여)이었으며 그의 소설에도 이러한 실존적 사조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사물들을 읽다보면 상당히 세밀한 묘사가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의 만연체(연상하기가 힘들다)로 되어 있어 읽기가 힘든데, 그러한 부분은 그냥 지나쳐서 줄거리만을 따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첨엔 통독, 나중에 정독하면 좋을 듯)


상당히 세밀하지만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묘사는 역으로 독자의 자유도를 넓혀주고 감정의 깊이를 객관화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한다.(주인공의 허영과 그 허영을 제한된 수입으로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찌질함을 쇼핑하는 모습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채울 수 없는 세속에 대한 욕망하기에 지친 젊은이의 일탈과 그 일탈에서 해답을 못찾고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답답한 결말일 수도 있다.


이 후속 작품에 해당하는 것이 잠자는 남자인데 사물들에서 다 해보지 못한 일탈을 좀 더 깊이 있게 한다는 느낌이긴 한데 이미 사물들에서 나온 결론에서 더 발전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읽을때는 재미가 없는데 생각해보면 무언가 자꾸 생각해볼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존 쿳시의 부커상 및 노벨문학상 수상작.


보통 노벨상을 받은 작품은 어렵고 재미가 없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 작품은 매우 재밋고 술술 잘 읽힌다.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다.


남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중년의 교수를 주인공으로 여러가지 남아공의 사회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제목인  Disgrace를 추락으로 표현한건 좀 과한 의역이지 싶다. 그저 불명예, 수치 정도로 번역했어도 됐을듯)


매우 건조한 문체지만 간결하고 중요한 갈등부에서 인물들간의 대화를 통해 작가의 견해를 친절하게 드러내준다.


이 작품 이후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읽는 중인데 이것도 꽤 재밋다.



 Go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1998년 데뷔작품.

Go와 Fly daddy Fly는 아마 10년전쯤에 본 것 같다.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생각이 나서 보게 됐는데 역시 재밋다.


풋풋한 고등학교 시절, 문제아로 낙인찍혔지만 그 나름의 건강함과 싱그러운 청춘들의

학창시절에 있을 법한 무모하지만 순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작품활동이 뜸한 듯 한데 새 책도 좀 나왔으면 싶다.



2010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 우수상 수상작 중 하나.

대상작품 박민규의 아침의 문은 작품의 스케일이나 박민규류라고 할 수 있는 언어적 유희와 플롯의
자기 완결성, 심리적 클라이막스등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으나,

윤성희의 매일매일 초승달 쪽이 나에겐 임팩트가 있었다.

자기에게는 너무 큰 신발을 신고 "이 신발에 발이 맞으면 언니들을 찾아나설거야"라고 되뇌이는
셋째의 고독이 가슴 가득히 느껴졌다.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따뜻했던 과거의 아련함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고, 그리 예쁜 소녀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는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어느날 두 사람은 길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랐잖아,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이야. 네가 믿지 않을지는 몰라도,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라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인걸.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하고 있던 그대로야. 마치 꿈만 같아"라고 소녀는 소년에게 말한다.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 질리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이야기를 계속한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자신이 100퍼센트의 상대를 찾고, 그 100퍼센트의 상대가 자신을 찾아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에 약간의, 극히 사소한 의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좋은 것일까하는......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이렇게 말한다.
 "이봐, 다시 한 번만 시험해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정말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라며, 언젠가 반드시 어디선가 다시 만날 게 틀림없어.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역시 서로가 100퍼센트라면, 그 때 바로 결혼하자. 알겠어?"
 "좋아"라고 소녀는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시험해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였으니까. 그리고 상투적인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희롱하게 된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그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 주일간 사경을 헤맨 끝에, 옛날 기억들을 깡그리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의 머릿속은 어린 시절 D.H.로렌스의 저금통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명하고 참을성 있는 소년,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다시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우체국에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75퍼센트의 연애나,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소년은 서른두 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 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뒷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가고, 소녀는 속달용 우편을 사기 위해 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해 간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스쳐 지나간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 비춘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의 기억의 빛은 너무나도 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서로를 스쳐 지나, 그대로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만다.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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