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도대체 왜 2015년에 에버랜드의 땅값은 폭등을 해야만 했는가?

2014년 5월 이건희가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이재용은 그룹 승계를 어서 서둘러야 하는데 그것은 삼성그룹 최대자산을 가진 삼성전자의 경영권과 관계가 있다. 삼성그룹은 순환출자의 고리를 아직 끊지 못했다. 그래서 각 계열사별로 서로간의 주식을 보유하면서 계열사들이 서로를 서로가 소유하는 형태로 되어 있고, 그중 삼성전자의 최대지분은 삼성생명이 7%, 삼성물산이 4%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삼성그룹의 후계자인 이재용은 제일모직을 통해 삼성생명의 주식은 가지고 있으나, 삼성물산의 주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이재용은 삼성계열사중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이며, 제일모직의 가장 큰 자산은 에버랜드이다. 이재용은 삼성전자의 지배권을 갖기 위해 삼성물산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삼성물산을 확보할 수 없기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시나리오를 계획한다.

 

그래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하는데, 이때 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3주의 비율로 합병을 하려고 한다. 즉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에 비해 3배 비싼 가격으로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에 비해 3배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시 실제로 경영데이터를 살펴보면 삼성물산이 도리어 3배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제일모직이 3배 더 비싸다라는 구라를 합리화하기 위한 작전이 시행된다.

제일모직에 장부상 나타나지 않는 숨겨진 가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에버랜드의 땅과 에버랜드의 차세대 사업계획이다.

 

 

그 이후 모든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는 작업을 실시하고 이것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때 모든 증권사중 유일하게 한화투자증권에서 이 합병은 삼성물산의 일방적 손해(당연하지)이므로 합병하면 안된다는 보고서를 낸다.

 

그래서 삼성의 장충기 당시 사장은 한화그룹에 이 합병반대 보고서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시하고, 주진형 사장을 짜르라는 압력을 한화에 넣고, 실제로 주사장은 짤렸다.(씨바 삼성은 다른 재벌의 계열사 사장도 짜를 수 있는 힘이 있다..라는)

 

또한 당시 에버랜드는 향후 에버랜드를 미국의 디즈니랜드와 같은 복합 테마파크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그리고 용인시와 테마파크 개발에 따른 상호 협조(용인시에 세금혜택등을 요청하는 것임)에 대한 MOU를 체결한다.

 

이런 작전끝에(당시 이 외에 국민연금도 관련되있으며, 삼성은 광고까지 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는 외국계 회사를 매판자본으로 광고하고 삼성을 지켜달라는 지금 생각하면 국민을 개병신으로 아는 젓같은 광고를. 근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개병신이 맞았고, 그런줄 알았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뤄지고, 국민연금은 8천억의 손해를 보았다. 이로서 이재용은 삼성전자의 최대 지분을 확보하고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받는다.

그 직후, 에버랜드는 테마파크 건설 계획을 취소한다.(이런걸 보통 사기라고 한다.)

 

그리고 한창 꿈에 부풀었던 용인시 공무원의 볼맨 인터뷰. 사기당했으니 기분이 좋을리 없다.

국가와 국민을 향한 대규모 사기극을 통해 삼성을 얌얌해버리신 이재용. 아웅 맛있어.

 

이를 통해 이재용이 삼성의 경영권을 확보한 것을 숫자로 살펴본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전 이재용은 삼성전자의 지분 0.57%를 소유하고 있었다.

 

제일모직은 삼성생명의 지분 19.34%를 소유하고 있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6%를 확보하고 있다. 또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 4.06%를 소유하고 있다. 제일모직을 통해 이재용이 소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6%에 삼성물산 4.06%를 확보하면 안정적으로 삼성전자를 이재용이 지배할 수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이재용은 자기 돈(현재 개인재산은 7조 정도 있음) 한푼도 안들이고 삼성전자 지분 4.06%(7조 이상)을 날름 먹을 수 있었다.

 

삼성은 이때 제일모직의 자산가치를 의도적으로 올릴 이유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고 한다.(삼성은 거짓말쟁이~~)

 

그리고 내일(3/20) 뉴스에서는 여기서 국민연금이 한 역할에 대해서 보도하겠다는 SBS. 이 정도면 삼성과 전쟁을 선포하겠다는 건데. 졸라 장하다 SBS.

엉아가 이제부터 SBS 사랑한다.

-국민연금 편으로 Continue-

 

2015년 에버랜드의 공시지가가 급 상승한다.

 

 

표준지를 1곳에서 7곳으로 바꾸는 감정평가 방법을 변경후, 에버랜드의 공시지가는 370%로 상승한다.

 

 

 

 

 

 

 

 

나름 세상을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무언가 아다리가 딱딱 맞는, 짜고 치는 고스톱같다는 느낌이 팍 온다.

 

4부 Continue -

1994년부터 에버랜드 땅값(공시지가)의 추이를 살펴본다.

 

20년간 에버랜드의 땅값은 주변 비슷한 조건의 땅값에 비해 매우 낮게 평가됨.

 

94년 1제곱미터당 9만8천원이던 에버랜드 주변 삼성소유 땅값은 3만6천원으로 1/3로 떨어진다.(공시지가가 떨어지는 일은 매우 드문 일. 1998년과 2008년 세계경제위기당시 부동산이 폭락하면서 공시지가가 떨어진 일은 있긴 있으나 이 정도로 1/3로 떨어지는 일은 없음) 

 

 

3부에서 -Continue-

2018년 3월19일 SBS 8시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하여,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얼마전 집행유예로 풀려났음.

그 이유는 이재용이 박근혜에게 건넨 뇌물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시절 이재용이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하는데 있어서 정부로부터 어떠한

특혜도 받은 사실이 없기때문에, 삼성 승계작업에 대해 박근혜 정부로부터 도움을 얻기 위해 돈을 건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일단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으며, 이때문에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8천억의 손해를 봤다. 너무나 뻔한 이 정도의 증거도 인정하지 않는 판사새끼들도 다 한패)

어쨋든.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SBS에서는 이재용이 삼성을 어떻게 승계받았는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장 처음 눈길을 둔 곳이 에버랜드 주변땅이다.(SBS 매우 칭찬해~~, 앞으로 삼성의 광고가 다 끊길텐데 SBS에 후원이라도 해야되겠다.)

 

에버랜드 주변의 땅값에 대해 1994년부터 20년간 땅값의 추이를 살펴봤더니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음.

1994년에서 1995년에는 공시지가가 하락하고, 2014년에서 2015년에는 공시지가가 폭등함.

에버랜드 주변으로 이건희와 삼성물산이 소유한 경기도의 땅은 어마어마함.

 

 

2014년 에버랜드 주변의 삼성소유 땅의 공시지가는 1제곱미터당 85,000원(평당으로 따지면 280,000원)

비슷한 조건의 다른 공원주변의 땅을 비교한 결과 에버랜드의 브랜드 가치에 비해 현격하게 저평가되어있음.

 

일반적으로 공시지가는 낮을수록 좋음. 세금이 적게 나가니까. 그래서 공시지가를 되도록 낮게 받기 위해서 민원도 제기하기도 함. 하지만 이것은 주변과의 형평성에 맞추어서 국가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냥 국가가 공시하는 대로 받아들이는게 일반적임. 삼성이니까 관리가 가능.

 

1부는 여기서 끝. 4부까지 이어짐. (1/4) -Continue-

박용수씨의 자살 현장을 다시 찾기 위해 북한산을 찾아간 제작진. 박용수씨가 올라간 경로의 산 입구에 카운팅기가 설치된 것을 발견함.(현재 모든 공식적인 북한산 출입구엔 저 카운팅기가 다 설치되어 있음, 향후에는 고성능 CCTV설치도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임)

 

당일 박용수씨가 올라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에 입산기록에는 3명이 카운팅 된 것으로 나옴.

사실 이게 결정적 증거가 될 순 없음. 왜냐 그 시간에 진짜로 따로 박용수씨 말고 산에 오른 2사람이 있을수도 있음. 하지만 정황상 2011년 9월7일은 평일(수요일)로 일반적으로 산에 많은 사람이 가는 날도 아니고 저쪽 입구가 사람의 출입이 다른곳에 비해 많은 곳이 아님.

 

모든 의혹이 없이 성실히 검토를 했다고 하시는 우리의 믿음직한 검사님. 이런 좋은 검사님이 지금은 어디 더 좋은 자리 가셨는지 꼭 알아봐서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려줬으면 하는게  SBS에 바라는 바임.

 

9월6일 발생한 사건에 대해, 피의자 박용수씨의 전 숙소인 싹 청소가 다 된 여관방에 10월5일에 가서 박용수씨가 칼을 산 것으로 추정되는 신용카드 영수증을 찾아내는 놀라운 창조증거를 행하신 대한민국 경찰의 신통방통한 능력. 게다가 10월7일 종료되는 사건에 이리도 세심한 증거 맞추기를 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한민국 경찰로서는 보기힘든 이 꼼꼼함에는 웬지 평소의 경찰과는 다른 향기를 느낀다.

 

 

 

다른 이의 증언. 박용철의 보디가드였던 폭력배중 한명이 지인과 나누는 대화를 녹음한 내용.

(이런거 도대체 어떻게 제보를 받는지 이것도 아마 주진우로부터 나왔을 것으로 예상함)

 

이 녹취록에서 박용철을 죽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이 사람은 현재 행방불명 상태라고 함.

 

(간략 요약)

1. 2008년 9월6일 북한산에서 두구의 시체가 발견. 한명은 50세의 박용철(키 185, 105킬로, 유도등으로 다져진 몸매, 폭력배 출신)씨로 칼과 망치로 난자 및 난타당한 사체로 발견. 52세의 박용수(키 165, 55킬로, 온순한 성격의 일반인)씨는 그 곳에서 3킬로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근처에서 목을 멘체 발견됨. 경찰 수사 결과 사촌지간인 두명은 돈 문제로 다투다가 52세의 박용수가 사촌동생인 박용철을 칼과 망치로 살해후 자신은 그 죄책감으로 목을 멘 것으로 발표하여 마무리.

2. 살해당한 박용철은 9월27일 박지만-신동욱간의 맞고소 사건의 주요 증인으로 2차 출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으며, 여기서 박지만에게 매우 불리한 증거를 제출하겠다는 증언을 1차 출석시 발언한 상태임.

3. 박용철과 박용수를 서로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기획했던 것으로 의심할만한 상당한 정황이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한 상황이며 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증인들이 현재 죽거나 행방불명인 상태임.

 

4. SBS는 방송 말미에 상당히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넣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음. 아마 경찰이 재수사등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깔 수도 있을 듯 함.

 

이 에피소드를 보니 내부자들의 스케일을 뛰어넘고 아수라의 폭력성을 뛰어넘습니다.

이제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같은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영화 관련 종사자들은 참 고민이 깊지 싶습니다. 

 

(끝)

 

 

범죄심리학적 견지에서 이 사건은 기획되었다는 전문가의 의견.

 

5년간 침묵했던 박용철씨의 유가족들의 증언.

여기서 어떤 사람이냐는 것은 박지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상됨.

 

 

박용철씨는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로 17대 대선의 경선에 나갔던 2007년도부터 박근혜의 경호업무등의 일을 도와주러 귀국함. 

박정희의 둘째딸이자 박근혜의 동생인 박근영씨는 2007년 초 당시 백석대 교수였던 14살 연하의 신동욱씨와 약혼을 한다. 이후 당시 육영재단의 이사였던 박근영씨와 함께 신동욱씨가 육영재단의 일에 관여하면서 박근혜,박지만씨와 박근영씨와의 관계가 매우 악화되었다. 이로 인한 갈등은 폭력사태를 가져왔으며 그 폭력사태를 주도한 것이 바로 박지만 혹은 박근혜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예상되는 박용철씨였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박용철은 권력을 등에 업은 조폭이었음.

장부상으로는 그냥 휴지조각인 재단인 것 처럼 나오지만 실제 육영재단은 자산가치 2조 이상이 되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음.

 

건물만 해도 수천억은 족히 넘게 생겼음.

현재는 육영재단의 운영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서울시 교육청의 아주 한가하신 관계자분과의 인터뷰. 이런 한심한 새끼들한테 우리의 세금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참 가슴이 아프다 정말.

내가 육영재단이나 어린이 대공원을 한번도 놀러가보질 못했는데 이 건물 보니 함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봄에는 육영수씨가 좋아했다는 백목련이 장관이라고 한다던데.

 

2008년부터 박근혜씨의 미니홈피에 박씨남매를 비난하는 신동욱씨의 글이 계속적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내가 볼때 이때 신동욱씨가 아마 박씨 남매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로 까불었던 듯.

 

이 당시 부인 박근영을 믿고 까부는 신동욱을 손보기 위해 박용철을 필두로 조직폭력배가 동원되어 육영재단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박근영과 신동욱을 육영재단에서 축출했으며 이에 공이 있는 박용철이 1년 정도 육영재단의 관장을 시키기도 했으나, 깜이 되지 않았던지 곧바로 다른 이에 의해 교체되었다. 이에 서운함을 느낀 박용철이 주위에 불만을 이야기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신동욱을 제거하기 위해 공작이 들어감. 박근영과 약혼한지 몇 달 안된 때 신동욱씨한테 박근혜 캠프에서 박근혜가 중국 재경부장관을 만나러 가는데 동행하자는 제안이 들어옴.

약혼자인 박근영은 무언가 꺼림칙한걸 느꼈는지 가지말라고 적극적으로 만류했는데 신동욱씨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중국으로 감.(예나 지금이나 남자는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함)

 

신동욱을 중국 청도로 데려가서 곧바로 술집으로 데려가서 거기서 마약류를 섞은 술로 만취하게 만듬. 그리고 만취한 신동욱을 술집여자가 호텔로 데려갔으며 그 이후 박용철이 신동욱을 죽이러 호텔방을 급습했으나 중간에 정신을 차린 신동욱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호텔창문을 통해 탈출해서 목숨을 건짐. 그러니까 박근혜,박지만 측에서 육영재단을 둘러싼 이권문제로 박근영의 약혼자이자 미래의 남편일 신동욱씨를 죽이려 했다는 추정을 할 수 있음. 

 

 

신동욱은 이후 박지만을 자신을 살해교사했다는 혐의로 고소했고, 박지만은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신동욱을 맞고소한 상태. 그러나 증거부족으로 신동욱이 도리어 감방에 갈 위기에 처했고 이때 박용철이 박지만으로부터 팽 당한후 이에 앙심을 품고 신동욱 사건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 증거인 (박지만과의 통화내용으로 추정되는)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고 법원에서 증언함.

그리고 그 녹취록을 가지고 박지만과 막후 협상을 시도(20억을 달라고 했다는 박용철 변호인의 증언이 아래에 있음)

 

 

신동욱씨의 변호인측에서는 박용철씨를 증인으로 신청했고 그가 녹취록을 밝히겠다고 해서 그의 증인출석을 재차 요구하여 차기 재판일정인 9월27일을 기다리는 중 9월7일 박용철씨가 사건으로 사망함.

 

 

박용수씨가 사건 일주일전부터 아주 고민이 많고 수심이 가득찬 얼굴이었더라는 여관 주인 및 주변인들의 증언.

 

경찰에서는 사고 직후 유가족에게 박용철씨의 태블릿PC와 휴대폰을 조사차원에서 증거로 확보하였으며 조사후 유족에게 돌려준다고 했는데, 최종적으로 태블릿 PC는 돌려줬으나 녹취록등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휴대폰은 원래부터 발견되지 않았다고 함.

(예상)

1. 실제 박용철/박용수를 살해기획한 제3자가 수거해감.

2. 경찰이 확보후 빼돌리고 돌려주지 않음.

3. 북한산 산신령이 가져감.

 

이 집안 사람들이 어법이 좀 우주의 운을 좋아해서 그런지 잘 알아듣기가 힘든데 어쨋든 박용철의 사망과 자기 박지만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 인 듯 함.

그래서 박지만씨한테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찾아가봄. 그러나 문전박대

 

 

여기서 새로운 제보자 등장. 취재진은 두바이로 날라간다. 두바이에서 웬지 예전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듣던 내용이 다시 생각났다.

주진우와 김어준이 보인다. 이 취재는 원래 주진우가 계속 팠던 내용으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었다.

그러니까 박용철씨가 녹취록으로 박지만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려 할때 그 협상을 했던 이는 박지만 본인이 아니라 바로 최순실의 전남편인 정윤회라는 것.

 

 

또 하나의 결정적 제보. 박용철이 죽기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핵심 증거를 조선족 지인들에게 맡겨놓았으며 그것의 현재 소재를 알고 있는 인물이 나타남.

 

 

박용철이 실제 박지만과 협상당시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옆에 조폭들을 신변안전을 위해 끼고 다녔는데 이때 다녔던 조폭중에서도 질이 안좋아서 개인적으로도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할 놈을 가족들에게 얘기해줌.

박용철이 사망전에 보디가드로 데리고 다니던 사람들이 박용철 사망후에 참고인 조사를 받았고 이때 박용철과 박용수가 서로 사이가 안좋았다고 증언한 참고인들은 모두 방송국 인터뷰 요청을 거절함. 

또한 가장 질이 안좋았던 조폭이었던 사람은 방송국에서 추적한 결과, 박용철 사망후 1년정도 되는 시점에서 사망했는데 사망사유가 컵라면을 먹다가 평소 앓고 있던 천신이 발작해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고 함. 사람이 죽을라면 접시물에 코를 박고도 죽을 수 있다지만 이 사건에는 왜 이리 사람들이 이리 쉽게 죽는지 참. 기가 안좋은가?

 

하여간 참으로 많은 관련자들이 모두 입을 다물거나, 이상한 이유로 죽거나.. 모 그럼

 

3부에서 계속.

 

 

 

 

 

 

 

 

 

 

내용이 상당히 복잡함.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원본 동영상을 볼 것을 추천함.

 

2011년 9월6일 새벽.

키 185센티, 100킬로그램의 거구의 남자가 북한산 수유분소 입구에서 칼에 난자당한 후 둔기로 머리가 내려쳐진 상태의 처참한 시체로 발견됨.

 

발견된 시체는 박용철씨(당시 50)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위원의 경호원이기도 했었음.

 

또한 당일 박용철의 시체 발견 지점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근처에서 박용철의 사촌형인 박용수(당시 52세)가 목을 맨체 발견됨. 박용수는 키 168정도에 몸무게 55킬로 정도의 호리호리한 체격.

 

박용철과 박용수는 박정희 대통령의 둘째형인 박무희의 증손자로 서로 사촌지간이며, 박근혜에게는 오촌조카임.

 

목을 멘 박용수의 가방에서는 회칼이 발견되며, 박용수의 하의에서는 혈흔이 발견되고 이후 수사에서 이 혈흔은 박용철의 것으로 밝혀짐.

평소 박용수씨가 9개월 전부터 박용철씨를 죽여버린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는 담당형사.

박용철씨가 박용수씨한테 1억여원 정도를 빌려썼다고 하는 지인의 증언.

여기까지는 돈문제로 생긴 불화로 인한 사촌간의 다툼으로 인해 발생한 우발적인 살인사건의 모양새임.

 

법의학자등 각종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이 사건이 일반적 사건과 다름을 설명.

 

평소 박씨 사촌형제 2명을 다 잘아는 육영재단 관계자의 증언.

박용철을 육영재단 사태에서 폭력사태에 개입했던 폭력배 출신으로 유도등의 운동으로 다져진 건장한 체격. 박용수씨는 완전 샌님 스타일로 돈도 없이 독신으로 여관방을 전전하며 살던 사람. 1억이라는 돈을 빌려줄 능력도 없음. 또한 박용철과 박용수는 사촌지간으로는 드물게 매우 친하게 지냈다는 친척들의 증언이 있음.

 

사건 당일 저녁에 술을 먹은 두 사람을 태우고 박용철의 차를 몬 대리운전 기사의 증언.

원래는 박용철의 집인 일산으로 가려다 중간에 방향을 바꿔서 4.19탑쪽으로 행선지를 바꿈.

4.19탑 근처 수유동에 있는 여관에 박용수씨가 장기투숙을 했었음. 아마 여관으로 행선지를 바꾸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을 듯. 

(예상 살해 시나리오)

1. 박용수씨가 술에 취한채 참든 박용철씨를 차안에서 8번을 찔러서 살해후에, 차안에서 끌어내서 아스팔트 바닥에 눕힌 후 망치로 머리를 수 차례 가격하여 마무리.(아래 사진의 설명처럼 외소한 체격의 박용수씨가 할만하지 않다.)

2. 박용수씨가 차안에 있는 박용철씨를 찌르자, 박용철씨가 잠에서 깨면서 차밖으로 도주. 이것을 따라가면서 찔러서 살해후 망치로 머리를 가격하여 마무리.

- 박용철씨는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싸움이라고는 전혀 못하는 박용수씨가 아무리 칼을 들고 있다고 해도 쉽게 제압하기는 상식적으로 어려울 듯.

2개의 시나리오 모두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박용철의 부검결과 알콜 이외 졸피뎀과 디아제팜이라는 강력한 신경안정제(수면제등으로 사용) 성분이 검출됨. 그러니 이 사람이 아무리 싸움에 날고 겨도 강력한 신경안정제를 코끼리도 잠들만큼 먹었으니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게 이해됨.

 

그런데, 이 신경안정제를 가해자로 추정되는 박용수씨도 먹었음!! 게다가 신경안정데 먹고 사람 죽이고, 새벽의 산길을 1시간 걸어가 목을 매고 자살함. 졸려 죽겠는데 그냥 박용수 죽인 그 근처로 산 입구라 목을 맬 나무가 많은데 1시간 넘게 산길을 고생스럽게 올라가서 자살함. 힘들게?

또한 둘이 같이 술을 먹었다고 하는 강남구의 룸싸롱이라는 스텝이라는 상호의 바가 없음.

 

2차로 간 노래방은 실제로 있었고 거기 업주랑도 인터뷰함.

박용수에게서 발견되는 박용철의 혈흔, 그리고 박용철의 손톱등에서 발견되는 혈흔 이런 것으로 봐선 박용수가 박용철을 죽였다는 정황상의 증거는 충분해서 법의학적으로는 제3자가 있다는 추론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법의학자의 증언.

그런데 박용철의 혈액검사에서 발견된 졸피뎀으로 봐선 아무리 칼로 쑤셔도 이 사람이 반항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박용철의 손톱에서 혈흔이 발견된 것도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임. 즉 이 사건 자체가 여기저기 이상한 의문 투성이임.

박용수씨가 거주한 여관주인과 자주 이용한 세탁소 주인의 증언을 통해 박용수씨가 자살을 할만한 그런 인상이 전혀 없었다고 함.

 

 

프로파일러를 통한 조사 및 범죄심리학자의 의견등 자살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가지게 함.

박용수씨가 자살한 위치는 용암문. 박용철씨의 시체 발견 장소는 여기 지도에는 안나오는데,

4.19탑 근처 아카데미 하우스쪽의 수유분소에 위치함. 거리상으로 산길로 3킬로 정도이며 보통 날씨좋은 날 건장한 성인이 가도 1시간30분정도 걸리는 거리. 게다가 이 사람이 간 시간은 새벽시간으로 깜깜해서 사람이 일단 잘 안가는 시간.

 

 

실제 박용수씨의 유서에 대한 필적감정 결과 본인의 것인지 확실치 않다고 국과수에서 결론내림

 

또한 자신의 시체의 화장을 매형에게 부탁한다고 해놨는데, 그 매형이라는 사람과는 수년간 전혀 연락도 안한 사이라는 점.

 

 

또한 자살한 박용수씨의 위장에서 체 소화되지 않은 알약이 나왔는데 그 용도는 소화제였음.

캡슐알약은 먹자마자 위액에 녹기 때문에 저렇게 위액에 녹지 않고 부검후 나왔다는 것은 목을 메기 직전 10분내로 소화제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됨. 자살하려는 사람이 속이 더부룩해서 소화제를 먹고 목을 맸다? 사람은 워낙 복잡한 동물이니까.. 뭔들 말이 안되겠냐마는... 자살하려는 사람이 속이 더부룩할걸 걱정해서 사람을 죽인후에 소화제를 챙겨서 산길을 1시간반을 올랐다?

 

 

여하튼 이런 모든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사건을 지휘한 강북경찰서에서는 이례적으로 본 건을 신속하게 처리하여 1달후인 10월7일 이 사건을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후, 자신은 산으로 올라가서 자살한 것으로 종결하고 시체는 화장하여 처리함. 이후 당시 강북경찰서장이었던 김영일은 이 사건을 조속히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았던 건지(?)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의 공천을 받고 전북 익산(갑)에 출마했으나 낙마한다. 

 

이후부터는 이 사건의 의혹에 관해 파헤쳐본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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