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항상 좋은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고, 소재가 좋을수록 대서특필하게 된다는 속성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언론이 항상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때는 긍정적인 기사를 쓰지만 어떤 경우에 헐뜯는 기사가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순전히 사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사가 나가면 항상 손해보다는 이득이 많기 마련이다.

수치로 보아도 명백하다. 뉴욕 타임스에 1쪽짜리 전면광고를 하려면 4만 달러가 든다. 그래도 독자들은 광고 내용을 의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가 내 사업에 관해 다소 호의적인 기사를 한 줄이라도 쓰면 돈 한 푼 들지 않았지만 그 효과는 4만 달러 이상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비판적인 기사일지라도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도날드 트럼프, 협상의 기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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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경선과정과 대통령 취임초부터의 파격적인 행동으로 항상 언론의 중심에 있어왔다. 화이트 앵그리(white angry)로 대변되는 열렬한 지지자만큼이나 열렬한 반대자들도 많았다.

지지와 반대의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지자들이나 반대파들 모두에게 트럼프는 대통령답다기 보다는 광대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쳐져왔다.

과도한 쇼맨십과 트위터(twitter)를 통해 미국의 주요 정책 사항들을 독단적으로 공개해서 백악관의 참모진들을 아연실색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과도하게 보였던 행동은 그의 사업가 시절부터 연마한 그의 협상의 철학에서 기인한 일관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공화당 경선과정과 대선레이스에서도 그는 불리할 때마다 상황에 끌려가지 않고, 도리어 판을 뒤엎는 모험(당시에는 엄청난 무리수로 보이는)을 감행함으로써 그의 지지자들을 결집해냄으로 해서(반대파는 최소한 증가하지 않아다.) 결국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평소 "목표는 과도하게 높게 잡고, 그것을 향해 그저 전진할 뿐이다"라는 사업철학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지금의 행보 역시 그런 '과도한 목표'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점에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과도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달성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무언가 남들이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판세를 뒤흔들면서 자기의 페이스로 상황을 이끌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혁신(innovation)의 가장 근본적인 방법론이기도 하다.

기존에 우리가 보아온 정치인들은 대부분 형성된 여론에 추이에 따라 자신들의 정책전략과 기조를 수정해가면서 현실과 타협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대의민주주의 정치가 가진 장점이면서도 한계이기도 하다.

미국과 같은 강력한 대통령제(대통령제는 여당이 다수당이 되기만 하면 어떤 면에서는 전제왕정보다 강력하다)하에서, 트럼프와 같은 인물은 매우 위협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공화당, 민주당을 모두 가리지 않고 트럼프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미국과 같은 삼권분립의 철학이 확고한 정치제도하에서 트럼프처럼 개성이 확고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을 좋아할리가 없다. 미국 뿐 아니라 이것은 전세계 어느 정치체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3년 간 트럼프는 좌충우돌하면서 자신이 미국 정치스타일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로 미국정치를 길들여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의 스타일이 대한민국의 현재 정치상황에 득이 되는 것이 그래서 참으로 다행이다.

어쨋든 현재로 봐선 다음 대선에서도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이 대한민국에게는 여러모로 유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유리함의 전제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의 향배가 대한민국의 명운을 걸만큼 중요하다.

2019년 6월30일 전격적인 남북미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갖가지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와중에서 일부 중도 및 진보로 분류되는 언론에서조차 약간은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는 것을 봤다. 예를 들어 경향신문 같은 경우는 이번 판문점 회담이 북한과 미국의 정상간에만 무게가 실려 한국의 그간 촉진자 혹은 중재자로서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성의 논조가 드러난다.

현재 냉정하게 우리 대한민국의 처지가 어떤지 한번 생각해봤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입장을 보자면, 북한은 우리에게 결혼(통일)을 하고 싶은 신부와 같다.

왜 남한이 북한과 결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반대할 이유는 산더미와 같고, 동의할 이유는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그 한가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남북한의 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할 길이 없다.(물론 이 문장에서 나의 워딩은 약간의 과장은 있긴 하지만, 박근혜가 얘기한 통일은 대박이란 나이브한 통일대박론과 같은 순진한 환상론도 위험한 일이다.)

남한은 결혼 이전에 승낙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많은데, 현재로선 가장 중요한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하지만 이 결혼에선 시어머니인 미국뿐 아니라, 장모인 중국과 장인인 러시아 그리고 시누이인 일본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그런데 이런 첩첩산중이 있는데다가, 최종적 결혼 상대인 북한은 까탈스럽기 그지 없다.

보통 남자가 여자에게 반해서 결혼을 하려는 이유는, 여자가 매우 이쁘거나 여자 집안이 돈이 많거나, 아니면 여자가 능력이 엄청나거나의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여자는 (앞으로 살도 빼고, 치장도 하고, 공부도 시켜 보면 마이 페어 레이디처럼 대박이 될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어설픈 시골촌뜨기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고, 집안에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여자 본인이 남자의 구애에 대해 조금 마음을 여는 듯은 하지만, 아직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남자의 주변 친지와 친구들은 남자에게, "네가 뭐가 모자라서 그런 촌뜨기랑 결혼을 하려고 이 난리를 피는게냐?"라며 연일 성화를 하고 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웬만큼 지각이 있고, 현실을 아는 남자는 여자에 대한 생각을 접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이 모든 엿같은 어려움을 무릎쓰고 이 결혼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미친 결혼을 성공한 사례가 역사적으로 딱 한 번 있었다. 29년전 베를린에서 동독과 서독이 드라마틱한 여정을 거쳐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고, 향후 20여 년간 이 결혼으로 인한 휴유증으로 나라가 삐걱거리는 경험을 맛보았다.

이 결혼은 우리 세대가 좋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나올 우리의 자식 세대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결혼을 향해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마음은 눈물겨운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정을 십분 이해하는 대한민국의 친척과 친지들은들은 웬만하면 딴지를 걸지 마라. 앞으로 우리가 꽃길로 가기 전에 넘어야 할 인고와 고난의 길이 여전히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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