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아 줌으로 해서 대한민국이 겪는 고통과 망가져 가는 부분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정치적 방법들이 있는가를 차근차근 생각한 내용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윤석열은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합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선출한 합법적 대통령이다. 그러므로 윤석열이 잘못한 데 대한 책임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윤석열을 안찍은 사람들도 찍은 사람들 못지 않은 다수이다. 그러나 그게 민주주의다. 윤석열을 뽑지 않은 이들도 연대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망하는 최악의 사태가 와도 그 책임은 결국 윤석열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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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

 정치의 목적은 위대하지만 일상은 남루하다. 정치인은 이 역설을 견뎌야 한다. 그럴 의지가 없으면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다. 오직 정치를 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이상을 품었거나, 정치 말고는 달리 충족할 수단이 없는 욕망에 사로잡혔거나, 둘 중 하나라야 정치의 남루한 일상을 감내할 수 있다. 나는 둘 모두 아니었다. 십 년을 하고서야 알았다 그래서 정치를 "떠났다. 정치비평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이다. 구설이 따르지만 정치에 비하면 지극히 사소한 위험이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느낄 때 가끔 공영방송이나 유튜브 비평 프로그램에 나가서 말을 한다.

 

 진보 정치는 더 큰 위험이 따른다. 노무현 대통령과 노회찬 의원을 생각해 보라. 노무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평가와 해석을 내놓았다. 나는 어느 시민의 블로그에서 본 문장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의도하지 않았던 오류에 대해 죽음으로 책임진 사람.' 이 해석이 노무현의 선택을 모든 면에서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받아들였다.

 노회찬이 삶을 거두었을 때는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탄식했다. 완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어야 한다면 누가 감히 진보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나는 이렇게 말을 건냈다. "대표님, 걱정해야 할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다 해도 괜찮아요. 다 던져 버리고 같이 낚시 다녀요. 시간 지나면 방송도 함께 하고요. 그러면 되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완벽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서 나는 그를 좋아했다. 오류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소위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도 무서웠다. 노회찬이 떠나고 일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또다시 늦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참전했다. 윤석열과 싸우다가 본의 아니게 범했던 오류를 약점 삼아 검찰이 역공했다. 한동훈 검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1심과 2심 법원이 벌금형을 주었다. 대법원이 판결을 뒤집지 않아도 마음의 상처를 입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정도야 뭐, 하며 넘길 수 있다. 이기려고 참전했던 게 아니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 그러나 법무부장관 조국이 패배하는 싸움을 견뎌내는 데 힘이 되고 싶어서 나름대로 있는 힘을 다했다.

 조국의 법대 친구들이 이런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나중에 들었다. "국아, 저들은 '공소권 없음' 결정을 원한다는 걸 잊지 마." 조국을 볼 때마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이었다. 검찰은 노무현과 노회찬에 대한 수사를 '공소권 없음' 결정으로 종결했다.

 윤석열은 조국 가족을 사냥함으로써 보수 세력의 정권 교체 요구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검찰총장으로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한 실적을 내세워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다. 가신이나 다름없었던 한동훈을 법무부장관과 국힘당 비대위원장에 앉혔다. 그는 '사모펀드 비리'를 용납할 수 없다면서 수사를 시작했지만 권력형 비리를 찾지 못하자 조국과 가족의 '완벽하게 합법적이지는 않았고 완전하게 선하지 못했던' 일상을 들추어냈다. 기자들은 특종 정보로 조종해 위선자 낙인을 찍었다. '불완전한 선'을 위선이라고 비난하는 방법으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의제를 차지했다. 권력을 장악한 다음에는 선한 척조차 하지 않고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둘렀다. 

 2022년 3월 9일, 한국 유권자는 '위선'이 싫다고 악을 선택했다.

 

p116

 정치인은 언론에 의존했다. 언론인에게 잘 보이려 했다. 언론에 굴복하고 굴종했다. 그것을 거부하고 대결한 정치인은 노무현이 처음이었다. 결국 언론이 검찰과 손잡고 그를 죽였다.

 

p171

 용산 대통령실 도청 의혹 처리 과정을 보라. 미국 언론은 2023년 4월 미국 정부가 국가 비밀문서를 유출한 용의자를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비밀문서에는 대한민국 정부에 관한 정보도 있었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155밀리 포탄을 제공했다. 2022년 10만 발을 판매했고, 2023년에는 50만 발을 빌려주기로 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산 포탄을 직접 우크라이나에 주었는지, 아니면 미군이 창고에 있던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주고 한국 포탄으로 재고를 채웠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어쨌든 분쟁지역에 살상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의 외교 원칙을 파기하고서도 국민에게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아무 해명을 하지 않았다.

 비밀문서에는 포탄 제공 사실보다 더 민감한 정보가 있었다. 대통령실 외교안보팀 핵심이었던 안보실장과 외교비서관이 그 문제를 두고 나눈 대화에 관한 정보였다. 미국 정부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과거 청와대 평화 · 군비통제비서관과 외교부 차관으로 일하면서 미국을 상대한 경험이 있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최종건 교수가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설명했다. 그 문서에는 'TS/SI-G/OC/NF'라는 분류코드가 있었다.

 유출 문서는 미국 합동참모본부 보고서였다. 분류코드의 TS는 '최고비밀등급(Top Secret)'이고, SI는 '통신을 가로채' 얻은 정보라는 표시다. G는 '국가원수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OC는 '문서 작성자가 정보를 가공해(Originator Controlled)' 출처를 감추었다는 것이고, NF는 '동맹국을 포함해 어떤 나라와도 정보를 공유하지 말라(Not releasable to Foreign nationals)'는 지시다.

 대통령을 자문하는 합참의 최고 등급 비밀문서 분류코드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것은 미국 정보기관이 대한민국 대통령실 외교안보 책임자들의 전화 통화나 대화를 도청(盜聽)했다는 증거다. 언론은 '도 · 감청'이라는 말을 사용해 문제의 본질을 감추려 했다. 감청(監聽)은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받아 누군가의 통신을 엿듣는 행위를 말한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 참모들의 통신을 몰래 엿들은 행위는 감청이 될 수 없다. 미국 정보기관은 용산 대통령실을 도총했다. 대한민국의 법률을 짓밟고 주권을 훼손했다.

(비슷한 요지의 글이 민들레 뉴스에 올라온 적이 있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42

 

사대(事大)와 사대주의(事大主義)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미국 정부가 비밀문서 유출 용의자를 체포했다. 문서 유출 사건 자체는 미국 정부의 일이다. 우리하고는 관계가 없다. 그런데 이제 더는 비밀이 아닌 그

www.mindlenews.com

 

p270

 어느 쪽이 이길까? 나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나 정의가 이긴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싸움은 강한 자가 이긴다. 이긴자가 의롭지 않으면 불의가 판을 친다. 어떤 불의는 한 세대가 흘러도 바로잡지 못한다. 정의도 가끔은 이긴다. 역사를 보면 그렇다. 이번 싸움은 윤석열이 진다. 그는 강하지 않다. 강하다고 착각해서 강한 척을 할 뿐이다. 유능하지도 않다.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 몰라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국민이 불신하고 미워하는 대통령의 권력은 역사의 밀물이 들면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2천여 년 전 사마천은 『사기』의 「백이숙제열전」에서 '하늘의 도'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그러나 도척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 도당을 모아 천하를 더럽혔는데도 천수를 누렸다. 나는 의심한다. 하늘의 도는 과연 있는가." 중국 춘추 시대 강도 도척과 고결하게 산 백이 · 숙제를 비교해 세상의 부조리를 개탄한 것이다. 

 사마천의 심정에 공감한다. 하늘의 도 따위는 없다. 천벌 같은 것도 없다. 하지만 무력이 권력의 향방을 결정했던 시대는 지나갔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바다가 배를 엎어버리듯 민심이 권력을 뒤엎는 세상이다. 도는 하늘에 있지 않다. 사람의 마음에, 사람의 관계에, 사람의 본성에 있다. 윤석열의 권력은 국민이 주었다. 그 권력을 국민이 다시 빼앗을 수 있다.

 

p278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17일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호텔 민주당 전국의원회 사무실에 괴한이 침입해 도청기를 설치했다가 들킨 데서 시작해 1974년 8월 9일 닉슨의 사임으로 끝난 정치적 소용돌이를 통칭한다. 특검 수사, 언론의 닉슨 연루 의혹 폭로, 상원 특별 위원회 청문회, 백악과 대통령 집무실의 녹음테이프 존재 확인, 특별검사의 닉슨 소환과 닉슨의 특별검사 해임 시도, 사법 방해 · 권력 남용 · 의회모독 혐의를 사유로 한 연방 하원의 세 차례 탄핵 권고 결의, 공화당 상원의원 일부의 탄핵 찬성, 그리고 대통령의 사퇴까지 워터게이트는 우여곡절 많은 드라마였다.

 닉슨은 사퇴를 강요당했다. 사퇴하지 않으면 상원이 탄핵하고 법원이 중형을 내릴 것이라는 걸 알았다. 백악관 집무실 바닥에 앉아 권력을 빼앗긴 알파 메일 침팬지처럼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위를 보며 울었지만 닉슨은 현명한 결정을 했다.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는 닉슨의 모든 범죄 혐의에 대해 '놀리 프로시콰이(nolle prosequi), 항구적 불기소 특별사면)'를 선언했다. 닉슨은 조사도 재판도 받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피했다.

 

 사실상 강제된 사퇴라 할지라도 대통령의 사임을 원한다면 상응하는 이익을 주어야 한다. 미국과 같은 제도가 있었으면 박근혜도 국회가 탄핵하기 전에 사임했을지 모른다. 야당은 특검법안과 함께 사면법 개정안도 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나는 판단한다. 퇴로를 열어주고 탄핵을 추진하는 게 현명한 전략이다.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데, 대통령이 그냥 물러날 리 있겠는가.

 정치인 김대중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춘향이의 한은 이 도령을 만나서 푸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의 목적은 무능하고 부적합한 공무원을 파면하고 일 잘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그 자리에 세우는 것이다. 누구를 감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p284

 국민이 사임을 원할 때는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과 헌법 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지 않고 물러나는 것이 좋다. 그런 결단을 북돋우려면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사면법을 개정해 미국식 '놀리 프로시콰이'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감옥에 보내야 마땅한 악당을 풀어준다고 비난하지 말라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이 제도는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만 사면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해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의 잘못도 함께 사면하는 제도다. 주권자인 국민이 후임 대통령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사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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