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성립의 역사와 가장 근본되는 개념에 대한 입문서.
저자의 이전 작품인 화학 이야기가 꽤 괜찮아서 찾아 읽어봤다. 이 책도 꽤 괜찮다.
입자 이중성에 대한 실험 설명과 쿼크로 들어가면서부터 약간 어려워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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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어쩌면 영의 이중 슬릿 실험 결과를 광자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빛 방출기가 기관총처럼 빛을 연속해서 쏘면, 빛 입자들이 공중에서 서로 충돌하여 얼룩말 무늬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이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광자들이 이중 슬릿을 통과할 때 상호 작용할 가능성을 제것하는 것이다. 광자를 기관총으로 난사하는 대신, 저격용 소총으로 하나씩 하나씩 발사해야 한다.
이 실험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수년간 고안되었는데, 그중 1994년 히타치 직원인 도노무라 아키라가 수행한 실험이 단연 돋보였다. 탱크, 냉장고, 마사지 기계를 생산하는 기업 히타치는 최고로 정밀한 이중 슬릿 실험에 관련된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
도노무라가 구성한 실험의 세부 내용은 토머스 영이 했던 실험과 상당히 다르지만 목표는 같으므로 여러분이 이해하기 단순하고 편하도록 동일 용어로 설명하려 한다. 실제로는 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
도노무라의 실험에서 빛 방출기는 두 개의 슬릿을 향해 광자를 발사하며 빛의 세기를 강하거나 약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방출기 맞은편에 설치된 검출기 스크린은 무언가가 부딪히면 빛을 내는 물질로 만들어져 있어서 광자가 닿는 곳마다 빛의 흔적이 새겨졌다.
이전에 영이 했던 것처럼 도노무라가 빛을 뭉텅이로 쏘자 예상했던 얼룩말 무늬가 얻어졌는데, 방출기 세기를 낮추어 한 번에 광자 한 알씩 쏘자 심각할 정도로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처음 몇 분 동안은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광자는 하나씩 날아가 슬릿을 통과하고 검출기 스크린에 무작위로 부딪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스크린 가운데에 점으로 이루어진 띄무늬가 형성되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도노무라 아키라가 이중 슬릿을 향해 전자 한개씩을 방출한 실험 영상)
입자가 하나씩 발사되는 상황에서는 이 같은 무늬가 그려질 수 없다. 얼룩말 무늬는 슬릿을 통과한 광자가 다른 슬릿을 통과한 다른 광자와 섞여야만 나타난다. 광자를 하나씩 발사하면 다른 광자와 섞일 수 없다. 광자를 간섭하는 존재가 없는데, 어떻게 간섭무늬가 형성되는 것일까? 광자는 어떠헤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는 것일까?
p41
전자와 양성자는 반대 전하를 띠고, 반대되는 전하는 서로를 끌어당긴다고 하는데, 원자에서는 왜 전자가 핵을 향해 소용돌이를 그리며 끌려간 끝에 수축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원자는 왜 파괴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보어는 양자 에너지 원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에너지 준위가 가장 낮은 껍질을 채운 전자, 즉 핵에서 가장 가까운 전자는 에너지 사다리의 가장 아래쪽 가로대에 놓여 있다. 만약 그 전자가 핵을 향해 안쪽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허용되지 않는 에너지 값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가장 안쪽 껍질에 자리를 잡고 나서 에너지를 잃는 유일한 방법은 사다리에서 벗어나 원자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전자 입장에서는 핵을 향해 움직이고 싶을 수 있지만, 양자 에너지 원리가 전하의 인력 규칙에 앞선다.
p51
하이젠베르크는 현실 세계의 물리에는 무지하기로 악명 높았는데, 박사학위 중 구두시험에서 간단한 배터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질문받았으나 전혀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물리학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수학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하이젠베르크는 1920년에 아르놀트 조머펠트에게 고용되었다. 조머펠트는 보어가 원자 이론을 고안하는 데 도움을 준 물리학자 중 한 명이었다.
조머펠트는 하이젠베르크에게 빛의 분해능에 관한 난제를 수학으로 계산하라는 과제를 주었는데, 하이젠베르크가 2주 만에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하이젠베르크가 가져온 답이 너무나도 복잡한 나머지 조머펠트는 그렇게 빨리 답을 얻기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라 판단하고 그 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일이 있고 몇 달 후 하이젠베르크보다 이름이 알려져 있었던 물리학자 알프레트 란데가 그와 정확히 같은 답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일을 겪고 나서 하이젠베르크는 양자 연구의 세계적인 요새로 빠르게 성장한 덴마크의 코펜하겐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닐스 보어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하이젠베르크는 조머펠트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아 실망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일하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자리를 옮긴 후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의 수제자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하이젠베르크 인생의 후반기에는 다양한 논란이 불거졌다. 나치즘이 유럽 전역에 퍼지자 많은 과학자가 공습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유럽에 남아 나치에 고용되어 원자 폭탄 제조를 도왔다.
일부 역사학자는 하이젠베르크가 내부에서 원폭 제조를 방해했다고도 주장한다. 전쟁 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원자 폭탄을 어떻게 제조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치는 원폭 제조에 실패했다. 어쩌면 하이젠베르크는 원폭 제조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지만, 나치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와 보어가 주고받은 편지들이 2002년에 공개되면서, 두 사람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편지 내용상 하이젠베르크는 순탄하게 원폭 제조를 연구하고 있었으나 그와 함께 일할 유능한 팀원들이 없고(훌륭한 과학자들은 미국에 있었다), 하이젠베르크 자신은 연구실 사정에 밝지 않아 프로젝트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짐작건대 실험실의 모든 장비가 배터리로 작동했을 것이다.
이 시기의 하이젠베르크가 윤리적 측면에서 어떠한 입장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유대인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연구 업적을 알리다가 곤경에 처했지만, 어머니 덕분에 심각한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알다시피 하이젠베르크의 어머니는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의 어머니인 힘러 여사와 가까운 사이였는데, 하이젠베르크가 곤경에 처하자 친구 힘러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 아들 좀 내버려 두라고 네 아들에게 전해!"라는 의견을 효율적으로 전달했다.
p210
칼 앤더슨은 우주에서 끊임없이 지구로 떨어지는 입자 파편인 우주선cosmic ray을 연구하면서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전자를 세고 있었다. 계산한 결과, 입자 대부분은 예측한 대로 정확하게 거동했으나 이들 입장 중 15개는 자석 주변에서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 앤더슨이 관찰한 그 입자 15개가 양전하를 띤 전자였다. 우주에서 온 반물질.
반전자는 '양전자positron'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반대 전하를 지닌 양성자와 중성자는 실망스럽게도 반양성자anti-proton와 반중성자anti-neutron로 불렸는데, 중성자가 어떻게 반대 전하를 지닐 수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반중성자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논할 예정이다.
QED덕분에 우리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해졌다. 다루어야 할 입자와 장이 각각 일곱 개나 생겼기 때문이다. 양성자, 반양성자, 중성자, 반중성자, 전자, 양전자, 광자.
광자는 반물질이 없는데, 이는 파인만이 말한 시간 역행 관점에서 보면 완벽하게 이치에 맞는다. 반물질이 시간을 거슬러 가는 일반 물질과 같다면, 광자는 시간을 경험하지 않으므로 광자의 반입자는 자기 자신이다.
이미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보았듯이, 시간은 우주에서의 제한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느려지는데 광자는 이미 그 제한속도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시간 개념을 갖지 않는다. 광자가 시간의 순행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시간의 역행도 느끼지 못함을 의미한다.
p223
쿼크는 겔만이 개념을 제안하고 수년이 지난 후 렙톤(전자, 뮤온, 타우온)을 중성자에 쏘아 경로를 추적하는 실험 도중 발견되었다. 중성자가 '중성자장'의 단일 물질 덩어리라면, 전자는 날카로운 각도로 튕겨 나올 것이다. 그런데 겔만이 예상한 대로 중성자가 하위 입자인 쿼크로 구성되어 있다면, 렙톤은 쿼크의 부분 전하에 의해 궤도를 벗어나며 굴절될 것이다.
실험 결과는 겔만의 예측과 일치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종류의 입자와 핵을 다루는 양자장 이론이 제안되었다.
양정자와 중성자는 세 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그 주변으로 수천 개의 가상 쿼크가 생긴다. 여기서 일정하게 유지되는 세 개의 쿼크를 '드러난 쿼크valence quarks'라 부르며 이들이 입자의 전체적인 정체성을 결정한다.
쿼크에는 전하가 있으므로 광자장과 상호 작용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양전하인 두 개의 위 쿼크가 왜 서로 밀어내지 않는지는 의문이다. 또, 같은 전하를 지닌 두 개의 입자는 절대로 붙어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왜 모든 원자의 핵은 형성되는 순간 저절로 산산조각 나지 않는지 궁금해진다.
일본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는 전자기력보다 훨씬 강하고, 양성자와 중성자를 한데 묶을 뿐만 아니라 양성자를 하나의 입자로 유지해주는 힘을 제안했다. 이 힘은 상당히 강해서 전하 반발력도 이겨낼 수 있으므로, 유카와는 그 힘에 '강력strong forc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자기력과 강력은 힘의 규모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따. 전자기적 상호 작용은 원자 주위의 전자를 이동시키거나 화학 반응, 이를테면 불을 붙이는 반응을 일으킨다. 반면 강력에서 비롯된 에너지는 원자핵 중심부에서 움직이는 양성자, 중성자와 관련 있다. 강력은 핵폭발을 일으킨다.
전자기력은 모든 입자가 광자장에 결합하고 가상 광자를 통해 소통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강력도 쿼크가 결합할 수 있는 고유의 장을 가져야 한다. 겔만은 이를 글론장gluon field이라 불렀다.
그럼 이제 글루온장에 어울리는 특성이 필요하다. 입자가 광자장에 결합하는 능력을 우리는 전하라고 부른다. 겔만은 쿼크가 글루온장에 결합하도록 해주는 특성의 명칭을 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이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색colour'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파인먼의 전자와 광자에 관한 양자장 이론은 양자전기역학이었으므로, 겔만은 쿼크와 글루온을 다루는 자신의 이론에 색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크로마chroma'를 따서 '양자색역학quantum chromodynamic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p238
이론물리학자들은 어느 가설에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낼까? 입자와 입자장, 그리고 그들 사이의 상호 작용은 너무 많은데 누군가 제안한 방정식이 이치에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새로운 물리학 법칙을 만드는 과정에 기반이 되는 법칙이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그 궁극의 법칙은 역사상 가장 탁월한 물리학자였으나 충격적일 정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물리학자가 세웠다. 아말리에 에미 뇌터Amalie Emmy Noether.
뇌터는 20세기 초 독일 에를랑겐대학에서 청강 허가를 받은 두 여성 중 한 명이었는데, 듣고 싶은 수업이 있을 때마다 강사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뇌터의 성별은 그녀가 수학 공부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뇌터가 발표한 탁월한 논문은 존경받는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의 관심을 끌었다.
뇌터는 힐베르트의 도움을 받아 괴팅겐대학에서 강사 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그 대학의 유일한 여성 직원이 되었다. 직책상 무보수로 일해야 했으며 힐베르트의 이름으로 된 강의에서만 가르칠 수 있었으나, 어쨌든 그녀는 학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마침내 상황이 반전된 것은 뇌터가 이론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되는 원리인 '뇌터의 정리Noether's theorem'을 고안한 이후다. 어떤 면에서 애석한 일이지만, 여성인 뇌터가 다른 학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으려면 세상의 모든 남성 물리학자로부터 승리를 거두어야만 했다. 그런 상황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남성 물리학자들에게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뇌터는 QED와 QCD의 주춧돌로 작용하며 학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준 뇌터의 정리를 발표해 모든 남성 물리학자들보다 한 수 위임을 보였고, 아인슈타인 조차 규명하지 못한 상대성이론의 퍼즐을 풀었다.
뇌터의 정리는 물리학자들이 '대칭성'이라 부르는 개념을 발견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 개념을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어떠한 사건이나 입자를 연구할 때 우리는 운동에너지(이동)와 위치에너지(장에너지의 에너지)를 알려주는 방정식을 쓴다. 이 두 에너지의 차이를 라그랑지안(Lagrangian)또는 라그랑쥬 함수라 하는데 모든 물리학 법칙에 이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연구하는 대상이나 조건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강한 자석 근처에서 실험하거나 입자의 질량을 변화시킨다면, 라그장지안은 그대로이거나 변화할 것이다. 우리가 일으킨 변화가 라그랑지안을 바꾸지 않는다면 모든 방정식도 같은 형태로 남을 것이며, 우리는 이 상황을 이론에 '대칭성이 있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우리가 일으킨 변화가 라그랑지안에 변화를 준다면 방정식 역시 변화할 것이고, 우리는 그 이론에 '깨진 대칭성broken symmetry이 있다'라고 말한다.
뇌터의 정리는 이론에 대칭성이 있다면, 입자에도 마찬가지로 보존되는 특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여러분이 입자를 들고 살펴보다가 오른쪽으로 1미터 이동했다고 치자. 입자도 여러분과 함께 이동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이론에는 위치 대칭성이 있다.
뇌터의 정리에 따르면 이 같은 위치 변화는 추진력이 있는 입자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한 결과인데, 추진력은 보존되어야 하며 생성/파괴될 수 없다. 또 서로 충돌하는 입자들은 상대에게 운동량을 전달하지만, 충돌 전후의 운동량 총량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보존된다.
뇌터의 정리는 또한 우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입자를 전진시켜도 물리 법칙은 변화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리 법칙은 시간에 대칭적이므로 그 시간 흐름을 따라가며 보존되는 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특성이 에너지인 것으로 밝혀졌다. 에밀리 뒤샤틀레가 에너지는 생성/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증명했지만, 뇌터의 정리가 보다 근본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전하도 마찬가지로 보존량이며 입자의 파동함수가 진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빛을 구성하는 광자는 언제나 물질과 반물질 입자를 동시에 생성한다. 전하가 보존량이므로, 전하를 지니지 않는 광자는 전자를 생성할 때마다 반전자도 생성해 전체 전하를 0으로 유지한다. 이들은 보존량의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뇌터의 정리는 물리 법칙 테두리 안에서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거나, 그럴 수 없는 특성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따라서 양자장 이론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알아내려 한 디랙, 파인만, 겔만에게는 뇌터의 정리가 꼭 필요했다. 뇌터가 물리학 법칙을 떠받치는 법칙을 가르쳐주었으며, 그 법칙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뇌터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나치즘이 대두되는 동안 독일에서 추방당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이주한 뒤에 그녀를 여왕처럼 생각하고 좋아해주는 과학계로부터 받아들여졌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많이 늦긴 했지만 뇌터는 인정받게 되었으며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아인슈타인은 <뉴욕 타임스> 부고문에서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기 시작한 이래 가장 훌륭한 천재 수학자"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