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비서관의 경우는 정치인도 아니고 이 책의 내용도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일종의 회고록이므로 에세이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

난 도서의 분류를 할때 교보문고 사이트의 분류를 참고하는데 회고록 류의 도서를 분류할때의 분류를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예를 들어서 이건희 회고록은 경제/경영으로 분류가 되고, 이해찬 회고록은 정치, 김지하 회고록은 에세이로 분류가 된다.

이 기준을 보면 인물에 의해서 도서의 카테고리가 정리되는 것이다. 그럼 조용필이 회고록을 쓰면 연예로 분류가 되고 차범근이 회고록을 쓰면 스포츠로 분류가 되나? 웃기는 일이다.

책의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 재임 5년간 의전비서관으로 크고 작은 국가행사와 대통령 행사를 준비하면서 겪은 뒷 얘기들로 이루어져있다.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비서관 시절 의전을 준비하면서의 고민의 과정들이 진솔하게 소개되어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탁 비서관의 애정과 존경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대한민국 대통령 의전에 대한 입문서이자 대한민국의 지금이 있기까지의 영웅들에 대한 헌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큰 덕목은 재밋다는 점이다. 사실 누군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쓴 책은 남들이 보기엔 재미가 없고 아부성으로 비칠 위험이 큰데 실제로 일어난 일의 뒷 이야기보니 위화감이 없이 재밋고 간혹 감동적인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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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탄소 중립 선언 흑백 연설 - 방송법 위반 고발 사건

2020년 10월 방영된 대한민국 탄소중립선언 방송으로 이 영상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장면 초입에서 컬러로 흑백으로 화면이 서서히 바뀌어간다.

이 영상의 의도는 컬러 화면 대비 1/4의 데이터를 소모하는 흑백 화면을 통해 온실가스를 덜 소비하자는 탄소 중립 의지를 환기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흑백 영상을 트집잡아서 국힘이 탁 비서관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책에 이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 있긴 한데 말도 안되는 억지라 굳이 소개하지 않는다. 국힘의 억지 고발,고소가 대한민국 사회에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고 있으며 선의와 창의력을 제약하고 있다. 쳐죽일 넘들이다.

 

p33 대통령의 '퇴근길 맥주 한잔'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 가장 많이 제안됐던 일정은 바로 '퇴근길 한잔'이었다. 저간의 사정을 잘 모르기는 대통령도 마찬가지여서 이따금 "왜 퇴근길 한잔 일정을 준비하지 않느냐"는 야단도 여러 번 맞았다.

 그러던 어느날, 기적처럼 대통령이 '한잔'할 수 있는 날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주는 신기하게도 정무적으로 큰 부담이 없는 한 주였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도 않았고, 외교적인 문제도 없었고, 격렬한 시위도 없었고, 민생과 관련한 이렇다 할 큰 이슈도 없던 날이었다. 그날 '퇴근길 한잔'의 장소로 직장인들이 많은 광화문의 어느 호프집을 선택했다.

 수입 맥주만 파는 호프집이라는 점이 마음에 좀 걸리긴 했지만, 그것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경호처도 사전에 점검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 꼭 대통령과 근접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안전을 확보했고, 가게 사장님과도 이야기가 잘 되어 우리 때문에 손해 보게 될 매출은 행사가 끝난 뒤 비서관들이 가서 벌충해 주기로 했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회사원, 구직자, 공무원, 직장맘 등 다양한 사람을 선별해 초청했고 현장에서 동석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합석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대통령이 등장했고, 조마조마했지만 초청한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가 시작됐다. 분위기가 좋아서 이내 옆 테이블과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다들 대통령과의 '퇴근길 한잔'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합석을 원하시면 함께하자고 권유했고, 실제로 꽤 많은 사람이 대통령 주변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주로 최저임금 문제, 워라벨에 대한 고민,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이야기들이 시민들의 주 관심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일정은 큰 사고 없이 다들 기분 좋게 한잔하고 끝이 났다.

의전팀과 경호팀은 내내 식은땀을 흘렸지만, 대통령도 참석자들도 모두 즐거운 자리였다며 마지막 잔을 하고 헤여졌다. 그리고 대통령은 떠나면서 한 말씀하셨다.

 "그래 이렇게 만나서 한잔씩 하면 좋지요. 매달 한 번은 합시다."

 경호처장은 딴 곳을 바라보았고,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맥줏집 매상을 올려 주기 위해 오래도록 자리에 앉아있었다.

 

p38 남수단에서 온 유소년 축구단

 이 영상에서 남수단 유소년 축구단을 접견하는 일정은 이 날 당일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이 바쁜 일정 중간에 잠시 접견 후 기념 사진 촬영을 하는 아주 짧은 일정이었는데, 축구단 아이들이 깜짝 공연을 준비한다. 이에 문 대통령이 화답으로 잠시 격려 말씀을 해주시는데 문제는 남수단 아이들은 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본문 발췌)

 노래가 끝나자 대통령은 박수를 치셨다. 다행히 크게 당황하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속으로 '그래 이만하면 큰 사고는 아니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대통령에게 말씀드렸다.

 "이제 이동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이 말씀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노래 선물을 받았으니 뭔가 격려 말씀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대한민국도 전쟁의 아픔을 겪었지만 힘겨운 과정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태석 신부님이 나온 경남고등학교 선배고, 이 신부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설치됐는데 저도 그 동상 설치에 참여했습니다. 이 신부가 봉사의 삶을 바친 남수단 어린이들을 만나 반갑습니다. 열심히 해서 세계 많은 나라, 어린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이때까지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말씀을 마쳤는데도 선수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통역이 없었다.'

 원래 사진 촬영만 예정되어 있어 근접 통역을 배치할 이유가 없었고, 그래서 현장에 대통령 말씀을 남수단어로 통역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대통령은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는 감독님을 바라보고, 감독님은 신부님을, 신부님은 다시 우리를 바라보았다. 너무나 길게 느껴진 몇 초가 흐르고, 우리는 유일한 희망인 신부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부님, 대통령님 말씀을 전해주시죠."
 "...."

 모두가 신부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신부님이 조심스럽게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땡큐 베리 머치, 씨 유 어게인."

 다시 몇 시간 같은 몇 초가 흘렀고, 대통령에게 말씀드렸다.

 "대통령님, 이제 이동하셔야 할 시간입니다."

 

p154 육군 중사 김기억 - 2018년 63주년 현충일 추념식

 국가 기념식의 첫 번째 과제는 '그날'의 의미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다.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그날에 담긴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서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야기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수록 그날의 의미는 잊히지 않고 기억되며 살아 숨 쉬게 된다.

 그러나 60년이 넘는 세월 속에 사람도, 이야기도 다 흘러갔다. 단단했던 슬픔도 씻기고 기억도 이내 사라져갔다. 현충일을 다시 공감할 수 있는 날로 만들기 위해서는 슬픔의 이야기를 찾아야 했다.

 이전까지 현충일 추념식은 대부분 서울 현충원에서 열렸다. 변화를 주고자 전국 국립묘지들을 살펴보았다. 

 대전 현충원을 답사하던 중 현충원장의 안내에 따라 무연고 묘역을 둘러보게 됐다. 무연고 묘역은 다른 묘역과는 달리 울긋불긋한 꽃들이 묘비마다 꽂혀 있었다. 오히려 더 화려해 보이는 그곳이 무연고 묘역일지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그 꽃들은 모두 조화였다. 현충원장은 찾아와서 헌화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조화라도 꽂아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가족이 찾아오는 묘역보다 더 화려하게 보였던 것이다.

 대전 현충원장은 화려한 조화가 있던 어느 비석 앞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비석 앞에 서자마자 현충원장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울컥했다. 묘비에 각인된 글자 때문이었다.

 육군중사 김기억,
 1931년에 태어나 1953년 5월 3일 양구에서 전사

 단단한 묘비에 더 단단하게 새겨져 있는 글자 하나하나가 우리를 때렸다. 고 김기억 중사는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전사했다. 그의 생몰 연도와 전사 기록이 묘비 측면에 새겨져 있었다. 그의 이름도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듯 단단히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부모와 가족은 모두 사망하고, 이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연고 묘가 되었다.

 

p159 오희옥 애국지사의 올드 랭 사인

'70년간 이어져온 국가 기념식이기에 의전에 있어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포상자인 독립지사 중 사연이 있는 분을 찾던 중 오희옥(당시 92세) 지사를 추천받았다. 식 초입에 애국가를 제창하게 되는데 이 선창을 애국지사가 하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행사 전날 리허설 시간에 지사님에게 애국가를 불러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원래는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연습 겸 해볼 요량이었는데 마침 국방부 관현악단이 잠시 휴식 중이라 연주를 할 수가 없었다. 

"지사님, 지금 반주가 없는데 몇 소절만 그냥 해보실래요?"
"어, 그럼 애국가 부르면 되는거지?"

오 지사는 숨도 고르지 않고 바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희옥 애국지사가 부른 애국가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아니라 올드 랭 사인 애국가였다. 우리 애국가에 곡조가 없을 때 스코틀랜드 민요에 가사를 붙여 불렀던 애국가, 독립운동가 애국가로 알려진 그 멜로디였다.'

(감상)

일의 의미를 곰곰히 되새기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상징하는 결정적 장면들이 연출된다. 
탁현민 비서관은 이 책에서 또 방송에서 이런 내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의 과정을 요구하지, 그 결과를 요구하진 않는다."
요즘 대한민국이 시끄러운 것은 리더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과를 정해놓고 과정을 거기에 끼워맞추다 보니 거기선 우리의 상식과 논리에 부합하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가 없고 감동은 커녕 수긍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에는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 교육의 진짜 의미는 답을 찾는 스킬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다.
이 세상 현실에서 발생하는 주요한 문제들은 모두 기존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것들이다(아주 드물게 패러다임을 바꾸는 정말 새로운 문제가 튀어나올 때도 있는데 보통 그러한 새로운 문제는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천재들에 의해 해결된다).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문제의 의미와 맥락을 찾아내서 상황에 맞는 과정을 밟아나가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이고 상황에 맞는 올바른 답을 찾아나갈 수 있다.
하지만 답을 찾는 스킬만 익힌 질 낮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기존의 방법론만을 답습하다가 운이 좋을때는 답을 찾을 때도 있겠지만, 보통은 어이없는 답을 찾아 상황을 망칠 뿐이다. 
치열한 의미의 성찰과 그 과정을 통해 의미있는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의미있는 인생이 거쳐나가야 할 유일한 왕도이고, 그것이 바로 교육이 추구해야 할 모범이다.

오 지사는 숨도 고르지 않고 바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희옥 애국지사가 부른 애국가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아니라 올드 랭 사인 애국가였다. 우리 애국가에 곡조가 없을 때 스코틀랜드 민요에 가사를 붙여 불렀던 애국가, 독립운동가 애국가로 알려진 그 멜로디였다.'

p169 어린이날 100주년 - 대통령 특별 지시 사항

행사가 끝나자 국민소통수석실과 몇몇 기자들의 연락을 받았다. '대통령 메시지'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반드시 들어가야 했을 대통령 당부라든지, 어린이날 복지와 교육 문제 같은 정책 사안들에 대한 언급 없이 그냥 놀기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도 알고 있었다. 마지막 놀이가 끝나고 함께 둘러앉아 꿈과 미래를 이야기했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가 가지고 있는 어린이 정책 같은 것을 할아버지 버전으로 이야기하는 그런 대목이 있어야 했다. 아마 그것이 저녁 뉴스가 됐을 것이다. 우리도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보고를 드렸었다. 그러나 행사 며칠 전 대통령은 그러한 계획을 다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 알겠는데, 한 가지는 하지 마세요. 내가 아이들 앞에서 뭔가 연설을 한다거나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는 거는 하지 맙시다. 좋아하지도 않을 거고 나도 하루 아이들과 놀면 충분합니다. 같이 하루 즐겁게 놀면 됐습니다. 절대 내가 말을 해야 하는 순서는 넣지 마세요."

 

p203 피스메이커 - 73주년 국군의날 기념식

백문이 불여일견. 기념식 대미인 피스메이커 작전을 보면 정말 국뽕이 차오른다.

 

p218 청년의 날(with BTS) - 2020년 제1회 청년의 날

 

첫 번째 청년의 날 메신저로 누구를 선정해야 할까? 많은 의견과 토론, 조사를 거쳤지만 결과는 같았다. BTS였다. 많은 의견과 토론, 조사를 거쳤지만 결과는 같았다. BTS였다. 가장 성공한 아이돌, 세계적인 아티스트, 한국 문화를 세계 문화로 확장한 아이콘, 대한민국 청년을 대표하는 데 이만한 인물이 없었다. 

 하지만 우려되는 지점도 있었다. 바로 그 완벽함이 걱정이었다. 그들의 성공이 오늘날 청년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을까? 동시대 청년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성공한 이들의 모습을 보는 청년의 마음이 과연 좋기만 할까? 서로 너무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아닐까? 여기에 더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BTS가 과연 행상에 올 수는 있을까? 행사에 와서 노래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아티스트가 부담 없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러 고민과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고민을 해결할 방법은 문제와 마주하는 것이니 일단 그들을 찾아가 묻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무척 바빴다. 일정을 조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정을 조정하기 전에 그들이 메신저로 나서 준다면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지부터 정리해야 했다.

 "완벽한 성공, 멋진 현실과 미래를 가진 BTS가, 어렵고 힘들어하는 청년에게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을까요?"

 그들이 이 질문을 두고 즉답을 피했던 이유에는 일정 문제도 있었겠지만, 행사 참석으로 인한 효과와 파장은 어떠할지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얼마 후 BTS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우리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과정을 이야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답을 찾아서 온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을 뿐이거든요. 그 노력과 과정에 대해 멤버들의 생각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p223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내내 외면받던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정상화됐다. 임기 첫해부터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아버지를 잃은 딸이 편지 읽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딸을 안아주었다. 생방송 중이었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참석자들과 시청하던 국민들은 그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함께 울었다.

 

p231 영웅에게 - 70주년 6.25 전쟁 기념식

 누군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연출적으로 가장 완벽했던 행사는 무엇이었나요?"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70주년 6.25 전쟁 기념식 <영웅에게> 입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기념식 시작은 전 세계 정상들의 6.25 70주년 기념 영상 메시지부터였다. 아마도 건국 이래 처음이었을 것이다. 미국,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등 모든 참전 국가와 의료 지원 국가의 대통령, 총리 등 국가수반의 영상 메시지를 받았다.

 정상들의 영상 메시지 다음은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싣고 온 공군 공중 급유기와 드론을 사용한 '미디어 파사드'였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물 외벽에 빔프로젝터로 영상을 구현하는 것을 말하지만, 이날은 유해를 싣고 온 비행기 동체에 영상을 투사하고 비행기 위로 드론을 연출해 입체감을 더했다. 투사된 영상은 70년의 세월을 거쳐 이제야 조국 땅에 도착한 6.25 전사들의 여정이었다.

 

 유해 안치가 끝난 후 6.25 참전 용사이자 고인들과 함께 싸웠던 이등중사 유영봉 님의 복귀 신고가 있었다. 147분의 유해 앞에서 유영봉 님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러나 고인들을 대신해 힘찬 목소리로 대통령과 국민에게 복귀 신고를 했다.

 "이등중사 유영봉 외 147명은 조국으로 복귀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행상 프로그램에 이제 막 군에서 제대한 20대 배우 유승호의 편지를 넣었던 까닭은 기념식을 준비하며 전사자들의 나이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세 살.... 겨우 20대 초반에 나라를 위해 가족과 헤어져 전쟁 한가운데로 뛰어든 이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두렵고 무섭지 않았을까? 춥고 배고프지 않았을까?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용감하게 만들고 목숨을 다해 싸우게 했을까? 알 것도 같고 끝내 모를 것도 같았다. 이 들을 수 없는 대답을 같은 나이의 청년을 통해 묻고 싶었다.

 그래서 유승호 배우에게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탁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것이 아닌 당신과 같은 20대 청년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허락하신다면 나는 당신을 친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나와 같은 나이에 전쟁터로 갔던 친구여."

 

 애석하게도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과 몇몇 보수  매체들은, 행사에 쓰인 공군기가 실제 유해를 실어 온 기체와 다르다며, 행사를 위해 유해를 욕보였다고 헐뜯기 바빴다. 그러나 사실은 해외 수송 후 방역을 위해 기체를 바꾸었을 뿐이다.  비난 중 압권은 애국가 도입부에 쓰인 변주가 북한의 애국가와 비슷하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이었다. 그 대목에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한 집단의 정치 수준과 음악 수준은 같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p250 102년만에 다시 외친 대한독립 만세 - 102주년 3.1절 기념식

(이 날 비가 엄청 왔다)

 대통령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임우철 애국지사 담요가 비에 젖은 바닥에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것을 본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임우철 지사에게 새 담요를 가져다드리라고 하셨고, 얼른 뛰어가 임우철 지사에게 새 담요를 덮어드렸다. 임우철 지사는 그해 세상을 떠나셔서 그날 기념식이 지사님의 마지막 3.1절 기념식이 됐다.

 

 그즈음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폄훼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사회 부적응자'라는 허무맹랑한 비난이었다. 많은 사람이 분노했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후손을 제대로 예우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았다. 우리는 행사 사회자로 전문 진행자와 함께 독립유공자 가족인 이재화 씨를 선정했다. 이재화 씨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알려진 시인 이상화 선생의 후손이었다.

(다시 한번 이상화 님의 이 시를 음미해보았다. 슬프고도 비장하며 아름다운 시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비는 기념식이 진행되면서 더욱 거세졌지만 우리는 준비한 모든 순서를 빠짐없이 진행했다.

 3.1 운동과 애국지사들을 위해 첼리스트 홍진호의 특별한 연주도 준비했다. <대니 보이의 아리랑>이라는 곡이었다. <대니 보이의 아리랑>은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와 우리 민요 <아리랑>을 엮은 곡이었다. 굳이 <대니 보이>를 엮은 이유는 이 곡이 일제강점기에 희생된 위인, 열사, 무명 영웅 들을 추도하는 노랫말이 붙여져 <선현추도가>로도 불린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기념식 마지막 순서는 가수 정인과 헤리티지 합창단의 <대한이 살았다> 합창과 각 대학 의과대학생들의 만세 삼창이었다.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탑골공원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그렇게 101년 만에 탑골공원에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p268 하와이에서 서울로 - 2021년 한미유해상호인수식(영웅의 귀환)

 

 애초 2021년 한미유해상호인수식에 대통령의 참석은 고려되지 않았었다. 그 기간에 대통령은 뉴욕에서 재임 중 마지막 유엔총회에 참석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총회 참석뿐만 아니라 다른 정상들과의 정상회담, 경제 관련 회의, 대한민국 백신 허브 국가 관련 일정 등이 준비되고 있었다.

 또한 UN총회에서 전 세계 정상들을 대표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게 됐기 때문에 하와이 일정은 아무래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유엔총회 참석 일정 중에는 미래 세대를 위한 대통령 특사로 임명된 BTS도 함께 방미해 유엔에서 전 세계 청년들을 대표해 연설할 계획이 있었다. 아울러 대통령과 함께 미국 언론과 인터뷰할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한미유해상호인수식 참석을 결정하셨다. 뉴욕 일정을 조정해 하루를 줄이고, 밤늦게 하와이에 도착한 후 다음 날 인수식을 끝내자마자 서울로 돌아오자는 것이었다. 이 경우 대통령이 쉴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 여러 비서관이 반대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한미 상호 간 유해 인수인계 준비가 끝났고, 마침 미국에 있는데 직접 가서 그분들을 모시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며 하와이 일정을 결정하셨다.

 이 일정은 실무적인 부담도 컸다. 유엔과 뉴욕 일정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별도로 한 팀을 더 꾸려 하와이 일정까지 준비해야 했다. 서울에 도착해 대통령을 현충원으로 모실때까지 국내 행사와도 일정을 연계해야 했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현지 행사가 끝나면 대통령은 공군 1호기로 복귀하고, 유해는 우리 공군 공중급유기를 통해 모셔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하와이로 출발하기 직전 인수받은 68구 유해 중 고 김석주 일병과 고 정환조 일병 두 분의 신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두 분 모두 6.25 전쟁 당시 미 7사단 카투사로 복무하다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는 이 두 분을 서울에서 온 유족과 함께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모시기로 했다.

 

 유해가 기내에 오르자 공군 1호기 기장은 기내 방송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특별히 김석주, 정환조 일병 두 분 영웅과 유가족을 고국으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을 기다리셨을 두 분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분의 영웅을 모신 공군 1호기는 잠시 후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를 출발,대한민국 서울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대통령은 1호기가 이륙하자 잠시 후 유해를 모신 좌석을 찾아가 아무 말씀 없이 태극기가 관포된 관을 바라보셨다. 유해를 운구하러 고 김석주 일병의 외증손녀인 김혜수 소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셨다. 그렇게 두 분의 유해를 모신 공군 1호기와 나머지 유해를 모신 공중 급유기는 약 10시간 비행 뒤 한국방공식별구역에 진입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내 방송이 나왔다.

 "공군 1호기는 잠시 후 대한민국 영공에 진입할 예정입니다. 영웅들의 귀환을 맞이하기 위해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편대가 호위 비행을 시작하겠습니다."

 공군 1호기 옆으로 F-15K 4대가 공중 호위 비행을 실시했다. 경례와 함께 4대의 엄호기에서는 영웅들의 귀환을 환영하는 21발의 플레어가 발사됐다.

 "영웅의 귀환을 마중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배님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국가 수호 임무는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고국의 품에서 편히 잠드시길 바라겠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선배님들을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

 

p274 장국의 귀환 - 여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

(이 공식영상 외에 홍범도 장군 귀환의 맞추어 조정웅 배우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다큐가 있다. 그 영상도 추천한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인 여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은 서거 101주년만에 이루어졌다.

 실은 이전 정부에서도 유해를 봉환받으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카자흐스탄에 요청한 적이 있었으나 당시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한 카자흐스탄이 거절했고, 이후 북한 정부가 홍범도 장군 유해를 봉환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대한민국 정부 입장을 고려해 거절했다는 말을 카자흐스탄 관계자에게서 들었다. 

 그러던 중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홍범도 장군 유행 봉환을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토카예프 대통령은 흔쾌히 그 요청을 수락하면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사업은 결실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카자흐스탄 국경이 봉쇄되고 국내 사정도 어려워지면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은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어느 정도 관리되기 시작하면서 2021년 8월 토카예프 대통령 국빈 방문이 재추진됐다. 봉환 사업도 다시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날 추모곡은 가수 하현상이 불렀다. <바람이 되어>였다. 이 곡은 독립운동과 의병 역사를 다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OST중 한 곡이었다. "바람이 되어 그대 곁에 머물겠다"는 가사가 불릴 때,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관을 덮은 태극기가 펄럭이던 장면은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드라마 속 장면 같았다.

 

p373 최고의 순방, 최고의 회담 -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초청 미국 공식 방문

 

미국 명예훈장 수여식에 양국 정상이 참석했던 장면도 큰 화제가 됐다.

명예훈장은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무공 훈장이다. 처음 미국으로부터 이 일정을 제안받았을 때는 감이 오지 않았다. 우리 태극무공훈장 수여식에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훈장을 받는 분이 누구인지 들으니 우리도 양국 대통령이 함께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장을 받게 된 랠프 퍼켓 쥬니어 대령은 한국전의 영웅이었다. 청천강 전투 때 미 특수부대 제8레인저 중대를 지휘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날 수여식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갖는 1호 훈장 수여식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 있는 자리에 한국 대통령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은 대단히 사려 깊은 제안이었다. 미국은 그 자리에서 우리 대통령의 연설도 부탁했다. 

 "대령님은 아까 제게, 당시 한국은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섰고,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함께 지켜준 미국 참전 용사들의 그 힘으로 오늘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랠프 퍼켓 대령님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p400 휘모리 - 2021년 유럽 순방

 행사 가제 '휘모리'는 로마 교황청 방문, G20, COP26, 헝가리 국빈 방문, V4(비셰그라드 4개국 그룹 :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까지 총 7박 9일간의 여정이었다.

COP26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120개 나라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이 참여한 역대급 국제회의다. 거기서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오전 8시 개회식부터 당일 저녁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주최 리셉션까지 참석해야 하는 종일 일정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면 밤 10시가 되어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통령의 체력적인 부담이 엄청났다. 게다가 당일 아침 개회식에 참석하려면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출발해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주최 측은 회의장 안에 정상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고 설명했지만, 믿기 어려웠다.

 '정상들을 포함해 500명 정도가 그 안에 있을 텐데 개회식 끝나고 30분 이내에 500명의 식사가 가능하다고?'

 부속비서관과 상의해 도시락을 준비해 가기로 했다.

 새벽부터 회의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정상들이 얼마나 많은지 여기저기서 정상들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 천지였다. 그 틈을 비집고 가까스로 라운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대통령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고, 평생을 외교관으로 살았던 정의용 장관도 마차가지였다.

 "아이고, 이거 정말 대단하네."

 다들 처음 보는 풍경에 놀랐다. 시간이 되어 대통령은 개회식 참석을 위해 자리를 떠나셨고, 주최 측이 준비했다던 음식을 찾기 시작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누군가 메뉴가 적힌 종이를 하나 주고 갔다. 거기에는 음식 메뉴가 1번부터 10번까지 적혀있었다. 주문하면 가져다준다는 설명이었다. '주문하면 그때부터 조리해서 30분 이내에 500명을 먹일 수 있다고?' 말도 안되는 계획이었다.

 "장관님, 이거 음식 지금 주문해도 절대 시간 못 맞출 것 같아요."

 "어, 그래. 내가 봐도 그러네. 어떻게 하지."

 "일단 도시락 가져왔으니까 이거부터 꺼내 놓고 주문은 주문대로 하죠."

 "그래 뭘 주문하지. 대통령이 뭘 좋아하시지?"

 "아뇨, 그냥 1번부터 10번까지 다 주문하죠. 뭐든 먼저 한두가지는 나오겠죠."

 우리는 10가지 음식을 모두 주문해 놓고 대통령을 기다렸다. 잠시 후 개회식을 마친 대통령이 나오셨다. 다음 세션까지는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여기저기서 의전비서관들과 외교부 장관들이 분주했다. 어떻게든 자국 정상을 챙겨야 하는데 음식이 나오지 않으니 다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해 온 도시락을 조용히 꺼냈다. 옆 테이블의 캐나다, 콜롬비아 그리고 또 다른 몇 개의 나라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준비해 온 음식들과 보욘병에 가져온 차를 따라 대통령에게 드렸다. 그리고 잠시 옆에 비켜서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 음식들, 그거 어디서 난 건가?"

 "우리는 음식이 늦을 것 같아 도시락을 싸 왔다."

 "아, 우리도 싸 올 걸 그랬다. 좋겠다."

 "어, 부럽지. 부러울 거야."

 정상들은 잠시 후 다시 세션에 들어가야 했고, 그때까지도 음식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음식은 첫 번째 세션이 시작될 때 쯤에야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나라 정상이 굶은 채로 회의장으로 향했다. 정상들이 회의장에 들어가자 각 나라 의전비서관들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음식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어느 나라나 똑같았다. 우리 자리에도 대통령이 들어가시고 나서야 10가지 음식이 쌓였다. 마치 한정식처럼.

 COP26 마지막 일정은 보리스 총리 주최 리셉션이었다. 회의장과 리셉션 장소가 떨어져 있어 정상은 단체 버스로, 수행원은 별도 버스로 이동하도록 안내받았다. 아침부터 개회식과 세션 등으로 정상들은 다들 지쳐있는 상태였다. 영국으로서는 주최국이어서 리셉션을 개최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너무 무리한 계획이었다.

 게다가 다들 수행원과 떨어져 버스를 타라니 그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대통령만 혼자 버스에 모셔드리고, 통역, 경호와 함께 버스 옆에 서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면 우리도 뒤따라갈 생각이었다. 다른 정상들도 하나, 둘 버스에 올랐다.

 그때 대통령이 탄 버스에서 큰 소리가 났다. 어느 정상 한 분이 통역도 버스에 못 태운다고 하니 버럭 화를 낸 것이었다. 당황한 영국 담당자가 "그럼 통역을 태우세요"라고 했지만 이미 그 나라 통역은 먼저 따로 이동한 다음이었다. 우리는 그 북새통에 슬며시 우리 통역 손을 잡아끌어 버스에 태웠다. 이따 보자는 말과 함께.

 지친 정상들의 리셉션 기념 촬영이 끝나고, 각국은 눈치껏 자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처음 리셉션 장소에 도착했을 때, 영국 담당관과 이야기해서 차량을 이미 바깥쪽에 주차해 놓았었다. 담당관들은 영국 공무원들이지만 마치 우리 수행원처럼 일해주었다. 눈치도 빠르고 '척'하면 알아들었다.

 리셉션이 끝나면 이 많은 정상이 한꺼번에 나가려고 할 텐데, 그렇다면 승패(?)는 차량의 주차 위치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빠져나가려면 바로 움직여야 했다. 조금만 늦어도 다른 정상들 차량이 우리 차 앞을 막을 것 같았다. 대통령에게 가서 말씀드렸다.

 "차를 빼놓았습니다. 지금 움직이셔야 합니다."

 대통령도 힘드셨는지 바로 따라나섰다. 대통령 뒤로 유엔 사무총장과 여러 정상이 따라나섰다. 차량 대기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차량이 곧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대기 지점에서는 이미 몇몇 정상들이 나오지 않는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 순서와 달리 우리 차량이 먼저 나온다는 안내가 나오자,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아세안 국가 어느 총리가 자국 의전관(인 듯)을 정말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구박하기 시작했다. 저분 이러다 오늘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괜히 미안했다. 그때 뒤에서 따라오던 어느 국제기구 수장도 우리 대통령을 보며 말했다.

 "정말 힘드네요. 한국에서 했으면 이렇게 힘들게 안 했을 텐데..."

 우리 대통령 들으라고 한 말이겠지만 듣기는 좋았다. 대통령도 그 수장에게 오늘 고생 많으셨다며 인사를 했다. 이윽고 가장 먼저 우리 차량이 도착했다. 우리는 뿌듯한 마음으로 대통령을 차량으로 모셨다. 차를 타고 나오는데 100대가 넘는 차량이 주차장 입구에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보았다. COP26  마지막 밤이었다. 차량 불빛들이 아름다웠다. 

 

p414 마지막 순방 샤프란 - 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중동과 아프리카 순방은 수행원들의 무덤이라느 말이 있다. 절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통령의 2022년 마지막 순방은 UEA,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로 확정됐다. 시작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출발 전 국힘의힘에서 순방 관련 일정을 논평 형식으로 발표했다. 공동 발표일이 정해져 있음에도 일방적으로, 그것도 정부 공식 발표가 아니라 특정 정당에서 일정을 공개한 것은 대단히 심각한 외교적 결례였다. 상대 국가에서 문제 삼을 수도 있을만한 사안이었다.

 

 

 사우디에서는 대통령도 여사님도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특히 여사님은 몸이 심각하게 좋지 않아 일정을 전부 취소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사님은 주치의에게 약을 타 드시면서까지 일정을 소화하셨고, 결국 사우디를 떠나기 전날 크게 앓아누우셨다. 어디에다가 말할 수도 없으니 더 답답했고 여사님께도 죄송했다.

 

 중동-아프리카 국가들의 국빈 행사가 이런 식(협의된 일정의 변경 등 돌발 상황이 잦음, 주로 윗 사람의 기분에 좌우)이라면, 마지막 남은 순방지인 이집트가 정말 걱정이었다.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간으로 늦은 오후였다. 도착하자마자 여사님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니 역시 좋지 않았다. 2부속 비서관과 여사님 일정을 취소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 이집트 일정을 점검했다.

 우려했던 대로 현지 선발대는 애를 먹고 있었다. 이집트 측은 사소하지만 사전에 합의한 내용에서 달라진 것들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크고 작은 일정들에 혼선이 생겼다. 하지만 이집트에서는 한 가지만 해결된다면 의전 관련한 것들이야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었다. K9 자주포 수출 건이었다.

 그것 때문에 방사청장이 전에 없이 공식 수행원이 되어 함께 온 것이고, 이집트는 대통령 방문 중에 결정하겠다는 약속도 했던 터였다. 실제로 관련 계약 체결을 위한 행사 장소까지 우리와 협의를 끝낸 상태였다. 하지만 이집트가 정말로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이집트 정상회담 양측 기자회견과 공식 오찬이 어어지는 동안 이집트와 우리의 협상은 엎치락뒤치락했다. 나중에 들으니 양 정상은 정상들대로, 실무자들은 실무자들대로 협상하고 있었는데, 협상이 깨졌다가 붙었다가를 되풀이했다고 한다. 이틀 내내 그런 상황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 이집트는 피라미드를 가지 않겠다는 우리에게 방문을 집요하게 권했다. 자신들에게는 가장 자랑스러운 유적이고 이제껏 모든 해외 정상이 방문했는데, 왜 가지 않으려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우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피라미드 방문이 한가하게 여행이나 다닌다고 비난받을 소지가 있기도 했지만, 대통령은 회담과 협상으로 시간을 낼 수가 없었고, 여사님은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공개 일정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집트가 끝까지 강권하자 결국 여사님은 아픈 몸을 이끌고 피라미드를 방문했다.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후 여사님의 피라미드 방문을 두고 국민의힘과 보수 매체들이 떠들 때, 그때라도 사정을 말했어야 하는데 그래 봐야 믿지도 않을 테니, '그래, 그냥 아무 말이나 해라'하고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당시 조중동을 보수언론에서 김정숙 여사 피라미드 방문을 두고 엄청 씹었었다. 쓰레기들이다. 윤석열이 2022년 6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시 김건희의 지인이 미리 프랑스 파리를 거쳐 대통령 순방단에 합류했던 사실이 있고, 그 이후 김건희 까르띠에 팔찌등 명품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김건희 지인이 프랑스에 미리 가서 명품 쇼핑을 대신해준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그런 소식에 대해서는 조중동은 함구한다. 조중동이 쓰레기인 이유는 꼴통들의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쳐닫으면서 진보측의 티끌만한 의혹에도 소설을 써대는 그 얄량함 때문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45470#home

 

김정숙 여사 피라미드 방문…청와대, 이집트에 비밀 요청 | 중앙일보

청와대가 일정을 일부러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www.joongang.co.kr

 

 대통령은 떠나는 날까지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다. 방사청장에게 부담 주는 말을 절대 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어려운 협상을 하고 있는데, 대통령 순방 성과를 내야 하니 결론을 달라고 채근하면 그게 다 부담이다. 그러니 아예 아무 말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뜨끔했다. 사실 "대통령이 이집트까지 갔는데 계약을 하지 못하면 빈손으로 귀국했다고 할 게 뻔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결론을 지어 주십시오"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렇게 정색하고 주의를 주시니, 아무 소리 못 하고 그저 '방사청장님 파이팅'만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K9 자주포 수출 건은 우리가 이집트를 떠날 때까지 결론을 못 낸 체 돌아오게 됐다. 방사청장은 침울해했고, 우리는 돌아가서 시달릴 일이 걱정이었다.

(어떤 협상이든 급한 쪽이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이때 본인의 치적에만 급급해서 방사청장 등 관계자에게 계약을 독촉했다면 우리는 불리한 조건에 계약을 했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본인의 치적보단 국익을 우선시한다면 이런 자세가 당연하다. 하지만 석열이는? 이 새끼는 그런 걸 모른다는 걸 지난 10개월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새끼는 대한민국의 국익은 어떻게 됐든 자신의 치적과 겉모냥에만 급급한 천박한 새끼다)

 1월22일 10시 21분, 공군 1호기가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마지막 순방이 끝났다는 안도보다는 곧 야당에 시달릴 일을 예감하며 서둘러 짐을 챙겨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방사청장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이집트에서 연락이 왔는데 다시 와 달랍니다. 아마 계약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이요? 아, 참 할 말이 없네요. 그럼 다시 가셔야겠네요."

 "내일 다시 이집트로 갑니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되겠죠."

 "네, 청장님.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파이팅."

 아니나 다를까 돌아온 다음 날부터 국민의힘과 보수 매체들은 "대통령 빈손 귀국, 빈손 외교"라며 신나게 떠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내리는 비를 맞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귀국한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카이로에서 기다리던 소식이 날아왔다.

 'K9 자주포 이집트 수출 마침내 성사, 사상 최대 2조 원 계약 체결.'

 

이 책의 에필로그는 청와대 직원들이 준비한 조촐한 서프라이즈 퇴임 행사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 자정에 청와대를 개방하겠다는 윤석열의 만행으로 문대통령은 그날 처음으로 퇴근을 하셨고, 일반 시민들이 그 자리에 함께 하며 대통령을 배웅해 드렸다.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께서 퇴장하시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송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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