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문 기자 박종훈과 애널리스트이자 경제전문가 홍춘욱의 대담집. 밀레니얼 세대가 맞이할 경제환경에 대해 교육, 취업, 재테크 - 저축, 주식, 보험, 부동산 -, 2명의 전문가의 의견을 교환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춘욱 씨의 책은 몇 권 읽어봤는데, 현업에서의 경험을 녹여낸 현상의 분석과 미래 예측에서는 배울 바가 많다. 이번 대담집의 파트너인 박종훈 기자도 홍춘욱 씨 못지 않은 내공이 느껴진다.
두 사람이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결의 해석을 보여주면서 균형이 잘 잡힌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경영서들이 잘못하면 꽤 딱딱하고 지루해지기 쉬운데, 이 2명의 대담자는 현재 밀레니얼 세대가 처한 여러가지 경제상황의 딜레마들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상호보완을 통해 구체적인 방향과 전략적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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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기술이 노동생산성을 압도하는 시대로의 전환
홍춘욱 :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진입한 최근에는 기술 혁신의 속도가 사람을 압도하기 시작햇어요. 지난 20~30년간 저희 세대가 축적해온 지식과 생산성을 현재의 세대가 따라잡기 힘들어진 거에요. 학계에서는 이런 시대를 '숙련편향적 기술 진보Skill-Biased Technical Change-SBTC' 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숙련편향적 기술 진보로 인해 기존의 단순노무나 사무직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등의 고숙련 일자리만 증가하게 됩니다.
정보통신혁명으로 저숙련 노동자들, 특히 일반 사무직이 실직과 임금 하락이라는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되었어요. 2006년 데이비드 오토 매사추세츠공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의 유명한 논문에서 1990~2000년 숙련 수준을 기준으로 양극단의 일자리는 모두 증가하고 중간 단계의 숙련도를 보이는 사무직 일자리만 줄어들었음을 입증했습니다. 실제로 이것이 2000년대 미국 중산층의 붕괴 원인으로 작동했다고도 하죠.
증권 업계만 봐도, 예전에는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출신을 많이 뽑았지만 지금은 공과대 출신을 굉장히 선호해요. 파이썬, R 같은 통계 프로그램과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면 기업에서 앞다투어 데려간다는 말이죠. 이런 분들이 가는 대기업, 금융권, IT기업들은 20년 전에 비해 생산성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당연히 연봉도 높겠죠. 그런데 이런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아주 일부죠. 이런 인재가 되려면 준비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 많거든요.
예전에는 웬만한 대학의 졸업장만 가지고 있어도 기업을 골라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취업에 성공한 이후에는 빠르게 회사내에서 업무 생산성을 높여갈 수 있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보통신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는데 왜 한국의 대학 졸업자들은 어려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공급 과잉'에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대학 정원의 확대, 더 나아가 새로운 대학의 설립으로 인해 대학 진학률이 60%까지 치솟았거든요.
그 결과 대졸 임금 프리미엄은 계속 떨어지는 중입니다. 임금 프리미엄이란 고졸자에 비해 대졸자가 얼마나 많은 임금을 받는지를 측정한 것인데 최근에는 30% 이내로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졸업장보다는 숙련편향적인 기술을 지니고 있는지, 더 나아가 쉽게 습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진 것이죠.
이렇게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진입하는 시기에 취업의 문이 좁아졌습니다. 더불어 취업 준비가 기간과 비용도 높아졌고요. 밀레니얼 세대가 갖는 압박감과 박탈감은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일부 정치인이나 재벌의 특혜 또는 채용 비리 등에 정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그토록 부르짖는 '공정함'에 대한 요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로서 역사상 가장 풍요롭게 자라났지만 마찬가지로 가장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그들의 부모 세대는 경험한 적이 없는 레이싱을 치르고 있죠. 그래서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국가 전체가 '3배' 더 잘살게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눈앞의 냉혹한 경쟁 사회가 더욱 실감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되던 시기에 사회에 진입한 부모 세대, 혹은 저희 같은 2차 베이비붐 세대는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때는 정말 열심히 했어. 너희들은 그러면 안 돼'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꼰대'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p70
홍춘욱 : 내년에는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이 5%를 넘어설 거에요. 왜냐하면 2018년 단 한 해에만 외국인 순이동(유입-유출)이 무려 15만 6,000명에 이르렀거든요. 이들이 주 40시간씩 연 52주 연속으로 일했다고 치고, 최저 임금을 적용해보면 퇴직금까지 포함해서 약 2만 달러의 연 소득이 나와요. 최저 임금 인상의 수혜자는 역설적이게도 외국인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시아에서 이 정도 소득이면 한국, 일본, 대만 다음 가는 수준이거든요. 결국 한국의 저숙련 노동시장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p95
박종훈 : 이런 점을 생각하면 국내 IT 산업의 미래가 상당히 밝을 것 같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바로 신규 산업에 대한 정부 정책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IT 산업과 관련해서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2007년에 제정된 '파견 근로자 보호법'입니다. 이 법의 취지는 '3D 업종'의 파견 근로자들을 보호하자는 것인데, 이 파견 근로자에 해당하는 업종(대통령령이 정하는 업종)에 희안하게도 IT 업계의 꽃이라는 '컴퓨터 관련 전문가'가 들어가 있어요. 이상해 보이죠?
이렇게 된 원인은 간단합니다. 2007년 법이 제정될 당시 각 기업들에서 컴퓨터 관련 전문가, 특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었거든요. 당연히 이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그러자 관련 업계에서 정부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했어요. 파견 근로 업종에 이들을 포함시켜달라고요.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법으로 인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인력들의 임금 수준이 박스에 갇히게 됩니다. 저임금 3D 업종이 되어버린 거죠. 이들이 파견 근로가 가능한 업종이 되면서 기업은 낮은 임금으로 인재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의 살인적인 업무시간에 대해선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에요. 오죽하면 엔지니어를 '갈아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하겠어요.
그런데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이나 구글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연봉은 평균 15만 달러에서 많게는 30만 달러를 훨씬 상회합니다. 근무시간도 그리 길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선 프로그래밍 인재를 조기에 양성하겠다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딩 교육 열풍이 불었는데, 정작 우수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모두 한국 기업을 떠나고 싶어하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국내 대기업과의 불공정 거래 관행도 문제입니다. 제가 수년간 기업 취재를 해왔잖아요. 그런데 제조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에 납품을 하거든요. 열심히 상품을 제작해서 납품을 하면 대기업이 설계도까지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상황이 적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설계도를 해당 대기업의 자회사에 넘겨서 생산하게 하는 것입니다. 애써 개발한 중소기업의 독자 기술이 헐값에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거죠. 이런 불공정 거래 행위가 발각되면 미국의 경우 징벌적 배상제도를 통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기술력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상당히 부실해요. 현장에는 정말 안타까운 상황들이 많습니다.
p173
박종훈 : 그리고 저는 이 지점이 이전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구분 짓는 특징적인 성향이라고 봅니다. 이들에게는 소비든 취향이든 '주류'가 없어요. 그래서 국내 기업의 마케팅이 어려워지는 거죠. 뭔가가 '대세'라고 규정되는 순간, 그에 대한 열기가 가라앉죠. 대중적인 것을 선호하지 않는 '구별짓기 distinction'가 아주 활발하게 일어나거든요.
예전에는 '골프 붐'이라고 하면 모두가 골프 연습장에 등록하고 골프채를 사서 필드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만이 알아보는 어떤 취향이 대중에게 번지는 걸 본 순간 오히려 그걸 그만두죠. '휘소가치揮少價値'가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희소가치가 아니라 휘소가치, 즉 휘발되어버리는 가치를 더 선호하죠. 아무리 경리단길이 '힙'해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곳을 찾는다 싶으면 익선동으로 발길을 옮기고요.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인기 있는 제품이나 분야가 생기겠지만 유행 주기가 짧기 때문에, 어느새 다른 쪽으로 인기가 넘어가요. '600만 명의 밀레니얼이 있으면 600만 개의 취향이 있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래서고요.
▶이러한 밀레니얼의 심리의 원인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럴 것 같다.
1. 자신들만이 발견한 힙한 곳이란 일단 가성비와 가심비가 높은 곳이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아지트. 하지만 대중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가격이 올라간다. 그러면서 가성비와 가심비는 떨어진다. 그러면 밀레니얼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된다.
2. 경리단길 등 소위 힙했던 곳도 대중이 몰리면서 대형 마케팅의 대상이 되버린다. 그러면 원래의 아기자기했던 그곳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왁자지껄한 메트로폴리탄의 화려하고 값 비싼 마케팅의 대상이 되버리면서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본래 그 장소의 가치를 힙하게 만들었던 가게들이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특히 밀레니얼 들은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p175
홍춘욱 : 개별화된 취향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일종의 취향 공동체 같은 비즈니스가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돈을 내고' 함께 책을 읽는 커뮤니티인 트레바리죠. 이제는 동창회도, 동기 모임도 없는 시대인데, 나이, 출신 지역, 직업, 결혼 여부 등과 관계없이 오로지 취향을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 그것을 비즈니스 모토로 삼은 것이 정확하게 먹힌 겁니다.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에게 일종의 '살롱 문화'를 발견하는 시각들도 많거든요. 그들은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찾는 세대라는 거에요. 독서 커뮤니티 스타트업인 트레바리는 창업 3년 차인데 벌써 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앞으로도 취향 기반 비즈니스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일 거에요.
p185
박종훈 : 미국 최최의 사회보장제 수혜자로 기록된 이다 메이 풀러Ida May Fuller는 1939년 은퇴한 다음 1975년 100세로 사망할 때까지 연금으로 생활하셨다고 해요. 이분이 납입한 사회보장세는 단 24.75달러였지만, 평생 받은 혜택은 총 2만 2,889달러였다고 합니다. 본인이 낸 돈의 무려 924배에 달하는 금액이었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결론적으로 예측과 설계가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의 연금제도는 연방보험료법에 따라 세율을 정했는데 이 연방보험세율이 1930년에는 2%였습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1%씩 분담하는 구조였죠. 2013년에는 이 세율이 15.3%까지 인상됩니다. 안타깝게도 이처럼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적연금은 첫 세대가 가장 큰 이득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1928년생 여성의 경우 수익비가 무려 72배, 즉 자신이 낸 돈의 72배를 가져간다고 합니다. 1948년생의 국민연금 기대 수익률은 27.2%로,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의 연평균 수익률(24%)을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1990년생 여성으로 내려오면 수익비가 3.14배로 뚝 떨어지고, 평균 수명이 여성보다 짧은 1990년 남성은 1.62배로 다시 반토막이 납니다.
모든 국가가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것은 무엇보다 처음에 연금구조 자체를 후하게 설계한 탓도 있고, 출산율과 경제성장률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예측한 탓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설계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8년 1월 전두환 대통령은 선심성 국민연금을 내놓았습니다. 고작 소득의 3%, 직장인의 경우 1.5%만 내면 기존 소득의 무려 70%를 60세 이후 평생 보장하겠다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세대에게 베푼 선심성 정책의 부메랑을, 밀레니얼 세대, 더 나아가 Z세대를 포함한 미래 세대가 맞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웠겠죠. 지금 우리나라는 합계 출산율이 급속히 하락하고 있고 예전과 같은 경제성장도 어려워졌지만, 당시의 정부와 국민연금은 이런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었던 거죠. 현재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에 의하면, 2060년에는 소득의 29.3%를 납입해야 지금의 국민연금 체제가 유지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추계는 합계 출산율을 1.05로 계산한 것입니다. 2019년을 기준으로 합계 출산율은 0.977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소득의 30%를 납입해야 하는 시기는 2060년보다 앞당겨 질 거라는 추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소득의 30%까지 국민연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되는 일입니다. 더구나 세금도 내야 하고 건강보험료도 내야 하잖아요. 이렇게 되면 본인이 연금과 건강보험료를 100% 부담해야 하는 자영업자들 같은 경우, 돈을 벌어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다가 끝난다는 소리가 나오게 되는 거죠. 게다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건강보험료도 갈수록 가파르게 오를 겁니다. 끔찍한 예측이지만 2060년대에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연금 납부 대상자들은 소득의 3분의 2를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내는 시대를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예측들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터져 나오는 겁니다.
결국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어야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연착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현재 소득의 20% 수준으로 연금을 납입합니다.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타협을 통해 현재의 9%대 납입률을 독일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미죠. 그게 아니라면, 소득 대체율을 기준의 40% 수준에서 25% 수준으로 낮출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연금구조의 현실화가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2000년대 이후 국민연금을 개혁하기 위한 수차례의 시도들이 있었지만 매번 정권들은 민심 이반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2007년 노후연금 지급액을 소득 대체율 60%에서 40%(2028년 기준)로 낮춘 덕분에 그나마 밀레니얼 세대의 미래 부담을 줄일 수는 있었지만, 그 대가로 노무현 정부는 당시 386 지지층에게 외면당했습니다. 결국 정부와 국민연금 개혁 당사자들이 보험료율 인상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사회적인 대타협을 이루는 일이 시대적 과제로 남았습니다.
앞머리에 밀레닝ㄹ 세대 역시 국민연금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그렇다"라고 답했는데요, 이 대답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전 세대보다 보험료는 더 내고 연금은 덜 받게 되겠지만, 어쨋든 연금을 받을 수는 있다"가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입니다. 혹시라도 이 대답이 실망스러워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독자들에게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국민연금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이자 가장 안전한 금융상품입니다. 장기적으로 어느 민영 금융 회사가 국가보다 안전할까요? 심지어 연금이 일부 줄어들어도,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민영 연금보다 월등히 높거든요. 직장인이라면 더더욱 가입이 유리합니다. 회사가 절반을 부담해주기 때문에 납입 금액 대비 혜택의 비율이 더 높은 셈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 유의하실 점은, 현 제도가 소득 대체율 40% 수준을 보장하지만 이마저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40년인 분들을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입니다. 요새 같은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길어야 25년 정도 연금을 납부하거든요. 그럼 소득 대체율은 25%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입니다. 100만 원을 벌던 사람이 25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국민연금으로만 노후 자금을 계획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러므로 밀레니얼 세대는 국민연금과 함께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이라는 삼각 포트폴리오를 꾸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p227
홍춘욱 : 제가 서울의 아파트를 구매하고 싶어하는 후배들한테 종종 해주는 이야기인데요, 일단 주택시장이 하나의 단일한 시장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제가 보기에 아파트 시장은 네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지금도 좋고 미래에도 좋을 시장이에요. 대표적인 곳이 강남입니다. 용산 일부 지역까지도 포함되죠. 왜냐하면 앞에서 박기자님이 언급했듯이 좋은 일자리가 모여 있는 곳에 고소득자들이 살거든요. 일종의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사람들을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강남(반포, 압구정, 도곡 등)이 180만 명, 광화문이 60~80만 명, 용산~마포가 30~40만 명 정도의 고소득자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고요. 당연히 그 주변은 최고의 거주지가 됩니다. 시장의 원리상 가격 또한 높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는 굉장히 좋았는데 미래 상황은 다소 불투명해 보이는 시장입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동탄 등과 같은 1,2기 신도시들입니다. 현재는 매우 살기가 좋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커뮤니티가 잘되어 있고, 교육 여건도 좋습니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가 결혼도 적게 하고 아이도 적게 낳는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특히 맞벌이 비중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비교적 도심과 멀어서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긴 힘든 거죠. 비록 광역철도 등으로 접근성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말이죠. 게다가 일산이나 분당 같은 1기 신도시는 이미 주택 노후화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재건축이 가능할까요? 변수가 너무 많고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사업이 되겠죠.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저는 밝지는 않다고 봅니다.
세 번째는 과거에는 저평가되었지만 지금부터는 괜찮아질 수도 있는, 미래 가치가 비교적 높은 시장입니다. 대표적인 지역이 30년이 넘은 대단지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재건축 대상자들입니다. 목독, 상계동, 좀 더 확장하면 마포구와 금천구의 노후 아파트들이 여기 해당됩니다. 생각보다 이 지역들이 교통이 좋습니다. 신도시들과 다르죠. 게다가 재건축 사업의 조건이 준공 40년 이상의 아파트로 까다로워졌어도 상대적으로 그 기간에 임박한 지역들입니다. 그래서 미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죠. 주거 환경이 개선되면 교통이 좋기 때문에 충분히 시장가치가 뜁니다. 비록 지금은 노후 지역이지만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가 이 유형의 아파트 단지들을 공략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과거에도 좋지 않았고 미래에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시장입니다. 이 케이스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 유형의 아파트만 고르지 않으면 됩니다.
당연히 제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은 시장은 세 번째가 되겠죠.
p233
박종훈 : 소위 '특공'이라고 부르는 신혼부부특별공급은 무주택 신혼부부가 일반 공급과의 청약 경쟁 없이 별도의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항간에 신혼부부 특공을 '부잣집 막내아들 특공'이라고 부르거든요. 왜냐하면 신혼부부 특공의 신청 자격이 너무나 비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혼인신고한 날로부터 만 7년 이내의 부부들 중에 전 세대원이 무주택자이면서 부부합산 소득이 전년도 기준으로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00%, 맞벌이의 경우 120% 이하를 충족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선공급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2018년 3인 이하 가구의 평균 소득은 세전 540만 1,814원(맞벌이 648만 2,177원)입니다. 연봉으로 게산할 겨우 외벌이는 약 6,500만 원, 맞벌이는 합산하여 약 7,600만 원 이상이면 신혼부부 우선공급을 신청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현재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 연봉이 평균 3,200만 원 정도이고, 요새 결혼들을 늦게 하니까 결혼할 당시의 연봉은 당연히 더 올랐을 겁니다. 이런 분들이 맞벌이를 하면 소득 구간을 훌쩍 넘어버려서 청약 자격이 없습니다.
게다가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 가격이 어지간히 비싼 게 아니거든요. 7억 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는다고 가정해보죠.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만 7년 동안 열심히 벌어서 아이도 한 명 낳고, 부부 합산 소득이 월 600만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칩시다. 그중 절반만 쓰고 7년을 모은다고 해도 자산이 2억 6,000만 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럼 7억 원짜리 아파트 청약을 받으려면 대체 대출 비율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리고 대출은 어떻게 갚아나가죠? 제도의 취지를 생각할 때 상식적이지 않은 설계라는 거죠. 결국 누가 혜택을 볼 수 있을까요?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자산이 있는 부잣집 아들이나 혜택을 보는 특공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홍춘욱 : 이 청약제도의 신청 자격 조건을 설계한 정책입안자들은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2019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서울 인기 지역의 당첨 가점은 70점을 넘어섰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제도에요. 과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제도 자체가 '꼰대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도는 최소 조건만 갖추면 모두 신청할 수 있게 해서 '추첨방식'으로 선정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그리고 소득으로 조건을 만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산 조건을 걸어야죠. 적어도 이런 특공에 '금수저'들이 당첨되는 건 사회 정의에 맞지 않잖아요.
그리고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에 대한 조건도 조금 풀어줘야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동거 커플이 늘어나고 비혼을 결심한 분들도 많아졌는데, 이들을 배제할 어떤 법적 근거도 없잖아요. 다만 이렇게 당첨되어서 아파트를 구매한 경우, 전매 제한 기간을 장기로 설정하면 투기나 시세 차익 우려도 사실상 사라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자격을 갖춘 분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겠죠? 그래서 실제로 '로또'처럼 지금보다 더 심한 광풍이 일 수도 있어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히려 간단합니다. 정부가 공공 분양 아파트를 더 많이 건설하면 되는 거죠. 그건 결국 건설 경기를 호전시키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겠지요.
조건이 되면 청약으로 집을 구매하고 싶은 분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렇게 허들을 잔뜩 높여놓으면 다들 포기하고 구축 아파트 시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부가 그토록 붙잡고 싶어하는 서울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멉추지 않았던 겁니다. 참 답답한 제도에요.
p247
홍춘욱 : 한국의 부문별 부채 흐름을 살펴보면, 한눈에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8년 명목 GDP의 74%에서 2018년에는 98%까지 늘어났죠.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단순히 가계부채가 증가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부채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인하하며 경지 부양 신호를 보냈더니 가계 부문만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고 기업이나 정부는 별로 돈을 안 썼다는 거죠. 결국 2015~2018년에는 집값 상승, 그리고 가계부채 증가로 경기의 급격한 위축을 막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경제 전체의 부채 규모가 급증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별 부채 규모를 살펴보면 한국은 높은 편이 아닙니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나라는 중국이죠. 중국의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는 2008년 142%에서 2018년 254%로 급증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IMF는 다음번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 가장 취약한 곳으로 중국의 기업 부문과 은행 부문을 지목한 바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로 늘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부채나 기업부채와의 밸런스가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시장의 숨통을 터줄 재정 정책을 펴는 동시에 기업의 투자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경기 부양을 위해 경직성 예산, 즉 매년 증액되는 공무원 호봉과 같은 비용 말고 비경직성 예산, 즉 경기 여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줄이고 늘릴 수 있는 예산을 더 키워야 한다는 거에요. 최근에 국토부가 경기도 신도시에 추진하고 있는 GTX 사업이 그런 예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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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 특히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입니다. 1달러에 대한 중국 위안화 환율이 7을 넘어서면서, 아시아 통화가 동반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인상(위안화 평가절하)한 이유는 '무역 분쟁' 때문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대규모 무역 흑자에 항의해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환율 조정으로 맞선 것이죠. 예를 들어 관세를 10% 부가했다면, 미국에서 중국산 제품의 가격은 10% 오르게 됩니다(물론 수입 업체가 제품 가격의 인상을 허용하지 않고 마진을 축소할 수도 있다). 이때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10% 인상해버리면, 중국 기업들은 관세 부과분만큼 달러로 표시된 제품 가격을 인하할 여력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미중 무역 분쟁이 격화될수록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한국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밀레니얼 세대에게 권하는 것은 일정 비율의 해외 투자입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달러를 사두는 거죠. 매달 일정 금액을 사둘 수도 있고, 은행에서 달러예금을 가입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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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 그런데 기본적으로 암호화폐가 갖는 장기적인 약점은 상속이 불투명하다는 점입니다. 당연하게도 부동산은 물론, 예금이나 보험금 등 대부분의 자산은 얼마든지 상속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처럼 대부분의 나라가 돌아가신 분의 재산을 상속할 방법을 마련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암호화폐는 가상지갑에만 넣어둔 경우 완전히 공중에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 사례도 많고요.
2013년 8월, 26세의 매슈 무디라는 청년이 경비행기를 타다가 추락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아버지인 마이클 무디는 아들이 생전에 비트코인 채굴에 열중했음을 알고 있었고, 수십, 수백억 원에 이르는 자산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비트코인을 끝까지 차지 못했습니다.
또 2018년 4월에는 저명한 암호화폐 투자자인 머튜 멜론이 사망했는데요, 그는 사망 직전 <포브스>지가 선정한 암호화폐 억만장자 순위에서 5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포브스>지가 추정한 그의 암호화폐 자산은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2,000억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암호를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이 돈은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암호화폐 전문 분석 회사인 체이널리시스는 이 같은 이유로 이미 비트코인의 25%가 영원히 사라졌을 거라는 추정을 내놓았죠.
비트코인은 64자리에 이르는 복잡한 키파일이 한 번만 발급됩니다. 다른 사이트처럼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할 때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재발급을 받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또한 생전에 가족등 타인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암호만 알려주면 암호화폐의 특성상 언제든 돈을 빼갈 수 있고, 추적이나 반환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암호화폐는 그 이름처럼 암호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암호를 알려주는 순간 사실상 증여를 해준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결국 예고된 죽음이 아니면 상속이 매우 까다롭고 암호화폐 자산은 영원히 가상세계에만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에 대한 보완책을 연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암호화폐가 세대를 넘어 영속적인 자산으로 계속 계승되어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기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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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 정년제도라는 것이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독일의 명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고안한 제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의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1880년 당시 독일은 100만 명이 넘어가던 극빈층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거든요. 그런데 가난한 고령층이 계속 일을 하면서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가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비스마르크 재상이 정년을 65세로 제한하는 대신 연금을 지급하고 청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만 당시 독일의 평균 수명이 65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이 제도의 설계에는 약간의 정치적 술수가 담겨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대죠. 박근혜 정부 시절 정년을 60세로 늘린 것이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정년이 적용되는 직장은 공기업과 대기업 생산직 정도라고 합니다. 일부 경제연구소나 언론에서 이전 세대는 주로 구산업에 종사하고, 청년들은 첨단IT기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으로 청년들의 손해는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정년이 보장되는 '그 직장'들이 청년들이 원하는 직장이잖아요. 그런 직장은 정년이 연장되면 청년을 적게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정년 연장으로 청년들의 손해는 없다는 주장은 정말 무책임한 것이죠.
사실 정년 연장이 현실화되면 2차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고 공기업에 근무하는 저는 제일 수혜를 받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되겠죠. 그런데 그 대가로 제 자녀 세대의 미래가 희생당할 것이 정말 두렵습니다. 기성세대가 정년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을 계속 독점하게 되면, 결국 청년들의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정년 연장에는 치열한 세대 갈등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저는 정년 연장이나 연금 지급 시기 문제가 앞으로 유럽처럼 첨예한 사회 갈등 요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