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 시대를 맞은 일본의 미래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의 의견과 대담을 모은 책.

일본의 인구감소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한국보다 20년 앞서 이런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미 현실로 진행중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침이 된다.

대부분은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맨 마지막인 뜨거운 근대는 끝났다에서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매우 편협하고, 일본 중심적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일본 주도의 외교전략 외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일본의 근시안적 사고는 2019년부터 본격화된 남북 화해와 북미협상의 장에서 일본이 표면적으로나 물밑으로나 협상의 훼방을 놓은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는 동아시아의 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즉, 일본은 진보나 보수나 북한 핵문제와 이와 관련한 외교적 해법에 있어서, 일본이 주도해야 한다는 아집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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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p9  서론 문명사적 규모의 문제에 직면한 미래 예측 _ 우치다 타츠루

p47. 1. 인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로 살펴보는 인구동태와 종의 생존 전략 _ 이케다 기요히코

p77 2. 두뇌자본주의가 온다 - 저출생보다 심각한 인공지능시대의 문제 _ 이노우에 도모히로

p107 3. 인구 감소의 실상과 미래의 희망 - 간단한 통계수치로 '공기'의 지배에서 탈출할 수 있다 _ 모타니 고스케

p135 4. 인구 감소가 초래하는 윤리 대전환의 시대 - 무연의 세계에 유연의 장소를 만들자 _ 히라카와 가쓰미

p159 5. 축소사회는 하나도 즐겁지 않다 - 유럽의 사례로 보는 미래 세대를 위한 대책 _ 브레디 미카코

p183 6. 건축이 도시와 지방을 살릴 수 있다 - 따뜻하고 번잡한 거리 만들기 프로젝트 _ 구마 겐고

p201 7.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없는 자치단체는 사라진다 - 문화를 통한 사회포섭의 권유 _ 히라타 오리자

p225 8. 도시와 비장, 먹거리로 연결되다 - '관계인구'를 창출한 공동체 혁명 _ 다카하시 히로유키

p253 9. 인구 예측 그래프의 덫 - 저출생을 둘러싼 여론의 배경에 존재하는 '경영자 시선' _ 오다지마 다카시

p271 10. 뜨거운 근대는 끝났다 - '사양의 일본'을 위한 현명한 안전보장 전망 _ 강상중

 

 

p19

 "파국적 사태(catastrophe)가 과거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파국적 사태가 미래에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명제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 이후) 분명히 영미 지성인의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연성에 불과합니다. 개연성의 전망에 주관적인 희망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앵글로 · 색슨 문화권의 지성인이 생각하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상식이 아닙니다. 일본의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일어날 확률이 낮은 파국적 사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가 일본의 전통입니다.

 

p23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25명의 피고인 전원은 "나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주사변에 대해서도, 중국과의 전쟁에 대해서도, 태평양전쟁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은 "다른 선택안이 없었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는 만주사변, 중국에서의 군사행동, 3국 동맹, 미국과의 전쟁에 대해서 전부 개인적으로는 반대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에 기가 막힌 검찰관은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은 본인이 반대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기관에서 잇달아 중요한 직위로 나아갈 수 있었냐고 추궁했습니다. 그러자 고이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일본인의 방식은 자신의 의견은 의견, 논의는 논의입니다. 만약 국가정책이 결정되었다면, 그 국가정책에 따라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과된 종래의 관습이며 또한 존중받는 방식입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이 증언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현실'이라는 대상을 진행형으로 만들어내거나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지 것,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어디선가 발생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피고인들은 전쟁지도부라는 중요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전쟁이라는 현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천재지변처럼 '어디선가 발생해서 찾아온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압도적인 현실에 적응하는 것 말고는 "선택 안이 없었다"고 변명한 것입니다.

 전쟁이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라면, 어떤 이념과 계획에 의거하여 전쟁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어디선가 발생해서 찾아온' 천재지변과 같은 종류의 파국이라면, 누구에게도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다소 부정적으로 해석해보면, 저는 패색이 짙어진 이후에는 전쟁지도부 사람들은 오히려 '전쟁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주력 부대를 잃어 이미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그 시점에서 강화교섭을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지였습니다(실제로 기도 고이치木戶幸一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등은 평화공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강화 조건으로 일본제국의 존속을 인정해주는 대신, 만주 · 한반도 · 대만 등 식민지를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누가 무엇을 위해서 이런 무모한 전쟁을 시작했는가? 국익을 손상시킨 자는 누구인가?" 라는 엄중한 책임추궁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통치기구가 제대로 기능하고, 국민 생활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언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전쟁지도부에게 책임을 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피고석에 세워진 사람의 상당수는 일본인이 직접 재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제어불능 상태가 되고, 통치기구가 와해되고,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우왕좌왕 도망가고, 정치적 의견을 논할 기회나 대화의 기회도 사라지면 사태가 너무나 파국적이기 때문에 일본인이 직접 전쟁 책임을 추궁할 기회는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일단 파국적 현실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 이상, '자신의 의견은 의견, 논의는 논의'로서 한쪽으로 치워둔 채, 살아남은 사람끼리 손을 맞잡고 국가를 재건하는 사업에 착수하는 것이 '부과된 종래의 관습이며 또한 존중받는 방식'이 됩니다. 일억총참회一億總懺悔'는 그런 의미입니다. 지금의 파국은 천재지변이니 그런 아수라장에서 "누구의 책임이다"라는 천박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직접 패전 처리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는(책임을 추궁당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천재지변과 같은 파국이 찾아올 때까지(또는 '가미카제神風'의 도움으로 지도부의 무위무책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승리가 찾아올 때까지) 손을 쓰지 않고 기다립니다. 이러한 병적인 심리기제는 태평양전쟁 패전 무렵에만 나타난 특징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대로 일본 사화에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일본의 지도층은 인구 감소가 어떤 '최악의 사태'를 초해라며,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지금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관적인 미래를 생각하면 사고가 정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근거 없는 이상행복감에 가까운 망상에 빠져 있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판단할 뿐입니다.

 낙관적인 상태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통계자료를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위험 가능성을 낮게 예측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지혜'가 잘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적당한 거짓말이나 변명이 생각나는 한, 얼마 동안 자기 자신은 지위를 보전할 수 있고 이익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관적인 미래를 예측하고 입에 담는 순간, 그때까지의 실패와 부작위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고 필요한 대책을 세울 것을 강요당합니다.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고 그런 일을 떠맡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비관적인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빨리 실패를 인정하고 사회 전체에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노력한 인가에게 오히려 책임을 추궁합니다. 집중적으로 비난 공격을 쏟아 붓고, 사죄와 해명을 요구하고, '확실하게 책임'을 지라며 위협합니다. 이것이 일본 사회의 방식입니다.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좋은 일'을 했지만 개인에게는 전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실패는 인정하지 말고, "모두 최상의 상태입니다"라고 계속 거짓말을 하면서 책임을 뒤로 미루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거품경제 시절의 은행경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은행경영자는 불량채권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재임 기간에 사건화되어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문제를 뒤로 미루고 퇴직금 전액을 받아 도망쳐 은행이 파산할 때까지 문제를 방치했습니다. 빨리 실패를 인정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보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를 파국적으로 만드는 편이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모든 사화에는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 어느 정도 존재합니다. 이런 인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이 통치기구의 요직을 차지하는 체계는 분명히 병들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일본 사회는 심각하게 병들어 있습니다.

 

p53

 재미있는 사실은 살아남아 현대인의 선조가 된 것은 호모사피엔스 여성과 네안데르탈인 남성의 혼혈이라는 점이다. 호모사피엔스 남성과 네안데르텔인 여성의 혼혈 계열과 순수혈통을 유지한 호포사피엔스 집단(만약 실제로 존재햇다면)은 멸종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는 이유는 현대인에게 당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흔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에게서만 물려받는다. 현대인의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도 네안데르탈인 여성은 나오지 않는다.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호모사피엔스 여성에게 귀착된다. 한편 핵 DNA에 네안데르탈인에서 물려받은 인자가 들어 있는 것은 우리 조상에게 네안데르탈인 남성과 호모사피엔스 여성의 혼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갓난아이는 어머니가 소속된 집단에서 자랐을 것이다. 호포사피엔스 남성과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혼혈로 태어난 자손은 네안데르탈인의 멸망과 운명을 함께했음에 틀림없다.

 

p68

 자본주의는 비용과 이익의 차이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노동자의 임금은 가장 중요한 비용이기 때문에 자본가는 가능한 이것을 싸게 억제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얻은 이윤은 자본가의 부로 축적된다. 결과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않는 한 소수의 자산가와 대다수의 가난뱅이라는 사회구조가 진행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권력은 자본가와 결탁해 이러한 과정을 추진하는 정치제도를 정비하는 데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국민국가가 성립되고 민주주의적 정치제도가 조금이라도 갖춰진 국가에서는 선거권을 가진 대다수의 국민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본가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체계는 상당한 통제를 받게 된다. 당연히 자본가는 국민국가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생략하고 간단히 요약하면 그 결과 세계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국가체계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본을 움직여 자원과 노동자를 최저 비용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인구와 자원이 계속 증가해야 한다. 자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이다. 국경에 얽매이지 않고 노동력과 물자를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풍족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농업도 어업도 제조업도 에너지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자본주의는 에너지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구는 어떨까? 싼 노동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노동인구가 많을수록 좋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 정권은 세계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세계자본주의에게 봉사하는 일만 생각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아베 정권이 "저출생이 진행되면 일본은 소멸한다. 원자력발전을 중단하면 에너지 부족으로 생활이 불가능해진다"고 국민을 협박하며 세계자본주의의 연명을 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국가 또는 국민을 지킨다는 표어 아래 실은 국민과 함께 일본이라는 나라를 세계자본주의에 팔아넘기기 위한 정교한 속임수가 진행되고 있다.

 

p94 순수 기계화 경제와 제2의 대분기

 제4차 산업혁명은 벽에 부딪힌 성숙 단계 국가의 경제 성장을 해결해줄지 모른다. 범용 인공지능을 비롯해 인공지능 · 로봇 등의 기계가 인간 노동의 대부분을 대체하면 <도표 4> (인공지능과 로봇에 기술을 입력하여 기계를 운용하여 생산하고 이 생산품이 소비되는 공급 체인, 즉 인간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 와 같은 생산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투입요소는 인공지능 · 로봇을 포함한 기계뿐이며 노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러한 경제를 '순수 로봇 경제'라고 불렀지만 여기에서는 '순수 기계화 경제'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순수 기계화 경제에서는 기계만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한다. 그러나 인간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상품과 기술의 개발, 생산 활동의 경영관리 등은 여전히 인간의 일로 남아 있다.

 

 순수 기계화 경제에 대한 수리모형(AK모형)을 만들어 분석해보면 성장률 자체가 매년 상승한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기계화 경제의 정상定常상태에서는 매년 거의 일정한 비율로 1인당 소득이 성장하지만, 순수 기계화 경제에서는 성장률 자체가 매년 성장한다.

 따라서 만약 범용인공지능을 도입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가 있다면 <도표 5>(인공지능 도입국가의 경제 성장률이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점점 높아지게 되는)에 나타난 것처럼 경제 성장률에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기에 나타나는 이러한 분기를 '제2차 대분기'라고 부르겠다. 

 

p97 제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는 위험성

 최초의 대분기에서 일본은 늦게나마 상승노선을 걸을 수 있었다. 덕분에 20세기를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제2의 대분기에서도 상승노선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제4차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앞서 나가는 다른 국가들에게 선두를 뺏긴다면 경제적 수탈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제3차 산업혁명에서 일본은 열세에 몰렸다. 그래서 일본인은 현재 구글이나 MS,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미국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많은 수익이 미국 기업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에서는 더 많은 수익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 공업과 서비스업 등의 모든 산업에서 인공지능 · 로봇이 이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수탈보다 더 위험한 것은 군사력의 차이가 벌어지는 일이다. 일본의 제2의 대분기에서 정체노선을 걷고 주변 국가들은 상승노선을 걷게 될 경우, 결과적으로 군사력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국토와 국민을 방어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에서는 지력이 관건이다. 

 

 딥마인드Deep Mind는 원래 영국 회사였지만 2014년에 구글이 4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사들였다. 

 

2014년 당시 딥마인드의 사원은 100명도 되지 않았다. 보유한 공장이나 자산도 없었다. 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를 비롯한 사원들의 두뇌에 4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p126

 첫째, ①이 ② 보다 작아진 국가는 일본만이 아니다. - ① 2010년 시점에서 살고 있던 10~14세 인구, ② 2010년 시점에서 살고 있던 60~64세 인구, 새로 태어나는 인구가 고령화 인구에 비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 다음에 제시하는 통계수치는 국제연합 인구부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세계 각국의 2015년 인구추계와 향후의 예측(중위 추계, 이민을 받는 사례)에 준거해 조사했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거느린 중국도 몇 년 전부터 동일한 상태에 돌입했다. 한국과 대만도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도 동북아시아 정도로 급속한 전개는 아니지만 저출생 경향이 시작되고 있다. 여전히 명확하게  ①이 ② 보다 큰 국가는 인도에서 중근동, 아프리카에 걸친 지역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 유럽이나 동북아시아처럼 변해갈 것이다.

 

 참고로 2020년 이후에는 세계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고령자 절대인구수의 증가가 멈춘다(수도권은 유일하게 계속 증가하지만 지방은 일제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에 비해 구미 국가들은 여전히 증가하고 중국, 한국, 대만은 구미 국가들의 규모를 크게 상회하는 급증이 계속된다. 한편 생산연령인구의 경우 일본은 세계 다른 국가들보다 20년 이상 일찍 1995년에 정점을 맞이했지만, 중국, 한국, 대만도 2015년을 정점으로 감소로 전환되고, 구미 국가들도 증가가 거의 정지한다. 일본만 상황이 나쁘다는 말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공기'가 사실과 연동되어 개선될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세상에는 "이민을 받아들이면 아이가 늘어날 것이다"라는 공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량의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과 싱가포르에서도 이미 어린이의 절대인구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육아에 돈이 드는 출생률이 낮은 지역으로 이민을 온 이민자는 그곳의 선주자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도쿄에서 저출생이 진행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왠지 "이민자는 아무리 어려운 조건에서도 아이를 낳아 수가 늘어난다"는 공기 같은 선입견이 존재한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러한 그릇된 견해를 고치도록 주의해야 한다.

 세계는 자동적인 저출생, 그 결과로 만들어진 인류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승자는 지구환경과 그것에 뿌리를 둔 미래 세대, 패자는 인구 증가에 의존하며 불로소득을 늘려온 금융투자가가 될 것이다.

 

p129

 이번에는 2015년 국세조사의 실제 수치를 살펴보자. 먼저 일본 전체의 차세대 재생력은 68퍼센트다(각 지역에 1~2퍼센트 미만으로 존재하는 연령미회답자는 연령회답자의 비율에 따라 나누었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는 대략 신세대의 3분의 2 정도만 아이가 태어난다. 매년 출생수는 현재 약 100만 명이다. 신세대가 30퍼센트 감소하는 30년 뒤에도 이러한 출생 상황이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출생수는 70만 명 미만이 된다는 계산이다. 대단히 대략적인 계산이지만, 70만 명의 출생자의 평균수명을 80년으로 가정하면 70만 명 X 80년 = 5,600만 명. 다시 말해 출생자수 70만 명/년이라는 것은 일본의 총 인구가 6천만 명 이하로 줄어드는 수준이다. 참고로 단카이 주니어가 태어난 1970년대 전반에는 매년 20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현재 상태는 딱 그 절반, 30년 이후에는 3분의 1이라는 계산이 된다.

 

 <도표 4>에는 각 행정구역의 차세대 재생력을 나타냈다. 오키나와의 93퍼센트를 필두로 명확히 서쪽지방이 높고 동쪽지방이 낮은 모습을 보인다.

 도표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대도시 가운데 가장 상황이 나은 곳은 히로시마시(75퍼센트)로 기타큐슈시가 뒤를 잇고 있다. 그 밖의 도시는 60퍼센트 전후의 수준으로 정체되어 있다. 도쿄특별구는 52퍼센트다. 일본 전국에서 모여든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절반 정도 다음 세대를 남기지 않는 진정한 블랙홀 상태다.

 그러나 도쿄가 망해도 일본이 망하는 것은 아니다. 차세대 재생력이 100퍼센트가 넘는 지역자치단체, 다시 말해 신세대의 인구수와 비슷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아이들이 태어나는 지역이 일본 전국에 오키나와현을 중심으로 40곳이나 있다. 차세대 재생력이 90퍼센트라도 당장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24세 이하와 40세 이상도 출산하기 때문에 합계특수출생률은 2에 가깝다). 90퍼센트까지 기준을 내리면 110곳의 지역이 해당된다. 그런데 그 상당수는 멀리 떨어진 외딴섬이나 산간과소지역이다. 과소지역은 아이들이 적다는 안이한 선입견이 있다. 물론 그런 과소지역도 많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다시 말해 아이를 키우는 젊은 세대를 소중히 여기는 과소지역도 분명히 존재한다.

 똑같은 일본인이 만들어가는 현대 일본 사회 속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물론 일본인의 DNA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생활방식과 생활환경의 변화다. 생활환경만 바로잡으면 아이는 다시 늘어난다. 왜냐하면 DNA는 원래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DNA 본래의 잠재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인구 감소를 불필요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생활환경의 개선이라고는 했지만, 오키나와처럼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는 지역도 인터넷이 보급되어 있고 24시간 영업점도 많다. 모든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종종 오해를 받는 부분인데 "여자는 결혼해야지"라는 사회적 압박 정도의 경우, 아키타현을 필두로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고 여겨지는 동북지방은 출생률이 낮고, 결혼에 대한 압박이 적은 오키나와는 수치가 높다. 이런 사실에서도 추론할 수 있듯이 사회적 압박은 관련이 없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고쳐야 할 부분만 개선해나가면 자유와 인권도 완전히 지키면서 다음 세대가 성장할 환경을 부활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차세대를 재생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해결책은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상관없다. 남의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우는 부모가 늘어나도 차세대 재생력은 올라간다. "모든 여성이 아이를 두 명씩 낳는다"가 아니라 세 명이라도 네 명이라도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가 늘어나는 것이 평균 출생률을 끌어올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아이들을 키울 때 생기는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남서지역 섬들을 필두로 서일본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차세대 재생력이 높은 자치단체에는 다자녀가정을 성심껏 도와주는 사회적 기풍이 남아있다. 아무래도 도시지역과 동일본은 이와 같은 서로 돕는 전통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추론된다.

 도쿄의 차세대 재생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후기고령자의 절대인구수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폭적인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인력도 예산도 잉여토지도 전부 고령자 의료복지 쪽으로 돌리고 있는데다가, 처음부터 식비와 집세와 교육비가 너무 비싸서 아이를 한 명 더 낳는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유요한 방법은 원하는 만큼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생활비가 저렴하고 서로 돕는 기풍이 남아 있는 지방으로 아이를 원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을 많이 보내는 것이다. 이것만이 일본의 소멸을 가능한 뒤로 미룰 수 있으며, 언젠가는 역전의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비책이다.

 

p143

 인구 감소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귀결로 이해해야 한다.

 

p147

 결혼 연령의 상승과 태평양전쟁 이후에 전개된 가족 형태의 변화(권위주의적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및 시장화의 진전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장화의 진전이야말로 가족 형태의 변화를 초해란 요인이었다. 시장화와 핵가족화는 결혼해서 가족을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일본인의 가족관을 바꿔놓았다. 돈만 있으면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족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안전보장이었다. 그러나 시장화의 진전으로 많은 사람들은 돈이야말로 안전보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시장화의 진전을 통해서 권위주의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개인이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다. 시장화는 일본 민주주의의 진전을 후원한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혼화는 자유와 발전의 대가라고 볼 수 있다.

 시장화는 무연화無緣化이기도 하다. 이는 유연有緣 공동체의 윤리 개념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 확장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결혼을 기패해서 결혼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포함한 유연공동체에서 자청해서 도망가고 있는 것이가. 그 결과 유연공동체인 일본의 권위주의적 직계가족의 해체가 진행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소비사회의 진전으로 결혼의 득실을 계산하는 윤리가 정착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글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이해타산만 생각하면 주부는 타산이 맞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해타산만 따지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학비와 식비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가 어떻든 결혼 연령의 상승은 태평양전쟁 이후에 전개된 발전(무연화 · 시장화)의 귀결이다. 나는 결혼 연령 사승에 대한 대책으로 일본의 권위주의적 직계가족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설령 그럴 생각이 있어도 그것은 불가능한 논의다.

 하지만 결혼은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주부'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이해타산적 윤리는 바꿀 수도 있다.

 

 

저출생 대책

 

 만약 만혼화에서 조혼화로 방향을 전환하기 어렵다면 가능한 저출생 대책 정책은 하나밖에 없다.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저출생을 둘러싼 상황을 저출산이 개선되지 않는 일본과 한국, 어느 정도 제어에 성공한 유럽을 비교해 살펴보면 현저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혼외자녀의 비율이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혼외자녀 비율은 50퍼센트가 넘는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 일본과 비슷한 가족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독일의 경우도 35퍼센트다.

 이에 비해 일본의 혼외자녀 비율은 아예 자릿수가 다르다. 겨우 2.3퍼센트에 불과하다. 한국은 더 낮은 1.9퍼센트다. 다시 말해 유교적 윤리에 사로잡힌 아시아에서는 법률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일이 거의 금기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일본의 저출생 대책은 혼인장려와 육아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저출생 대책은 일본과 한국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따. 법률혼으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어도 동등한 법적보호와 사회적 신용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혼인장려와 육아지원과 같은 개인생활 분야에는 정치권력이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히려 인권확대와 생활권 확보 쪽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럽 선진국이 혼외자녀의 출산을 장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럽에서는 법률혼으로 묶이지 않은 새로운 가족공동체가 현실화되고 있다. 법률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족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사회에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다.

 

 

 프랑스 다음으로 혼외자녀 비율이 높은 스웨덴에서는 1987년 시점에서 동거인을 보호하는 동거법Sambolagen이 성립되었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경우 모두 결혼 연령이 내려가서 인구 감소가 멈춘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여성 초혼 연령은 30세가 넘으며 계속 떨어지지 않고 있다.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외적인 강제 또는 촉진을 통해서 결혼 연령을 끌어내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고, 정치권력이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외자녀 비율이 50퍼센트가 넘어가면 출생률과 결혼의 상관관계는 지극히 희박해진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처럼 혼외자녀 비율이 대단히 낮다면 출생률은 평균 결혼 연령과 강한 상관관계를 갖게 된다.

 일본의 경우, 가족형태는 유교적 가치관이 농후한 권위주의적 대가족이 붕괴되고 핵가족화되었지만, 혼외자녀를 낳는 것을 금기시하는 가치관만은 계속 남아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나 부부별성夫婦別姓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과 비슷한 문제다.

 

 일본과 한국에서 인구 감소에 제동을 걸거나 또는 정상화된 사회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그것이 육아지원이나 육아급부금처럼 대중요법적인 대처(이런 대처를 추진하는 자체는 두 팔 벌려 찬성하지만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 구조(가족구성)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윤리의 변화가 바로 그 열쇠다.

 그렇다면 사회 구조와 윤리의 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는 저출생이라는 현상 그 자체가 사회 구조를 바꾸고 윤리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연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저출생과 고령화는 생산성의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해타산에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효율화를 위해서 사회를 분석해 비효율적인 부분을 잘라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비관용적인 격차사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p154

 현대 사회의 문제는 원래 유통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돈이라는 부富가 한 곳으로 집중되어, 국가에 의한 분배기능이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전미 하위 50퍼센트의 총 자산이 최고소득자 세 명의 합계자산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은 확실히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전계게의 하위 50퍼센트의 자산이 최고소득자 여덟 명의 자산과 거의 비슷하다는 상황 역시 화폐경제의 혹독하고 무자비한 폭력성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 화폐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도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화폐경제의 윤리와 교환경제의 윤리가 부의 편재偏在(쏠림 현상)를 촉진하고, 사회를 분단시키고, 사람을 고립시키는 벡터를 갖는다면, 부를 편재遍在(널리 퍼짐)하게 만들고, 사회를 포섭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벡터로 대치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이에 대한 간단한 해답은 없지만 문제를 풀 열쇠라면 있다. 열쇠는 화폐경제 이전의 윤리다.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증여론Essai sur le don>에 따르면 화폐경제 이전의 경제 윤리는 현재의 등가교환의 윤리와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반대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체적인 급부체계를 채용하고 있는 문명화 이전의 부족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물건은 자신의 것이라는 윤리, 증여를 받으면 등가물로 답례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윤리가 일반적이었다. 오늘날에도 국가가 없는 로마족(집시)은 타인의 물건은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누이트족은 등가교환적인 개념보다 잡은 사냥감을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사유제와 등가교환성이 만들어내는 윤리는 통용되지 않는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화폐경제 이전의 전체적인 급부의 윤리가 현대 일본 사회에도 남아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렇게 '살아남은 윤리'가 미래 세계의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현대 사화에서는 통용되는 등가교환의 윤리는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 된다" 또는 "빌린 것은 갚아야 한다" 등이다. 그러나 부모자식 관계나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는 이러한 윤리가 채용되지 않은 채 답례 없는 증여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피를 나눈 가족 사이에 등가교환의 윤리를 채용한다면 부모 자식 관계는 상당히 불편해질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렇지 않게 생전증여를 한다.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무상으로 양육하는 것은 의무다. 현대인은 이러한 무상증여의 윤리를 등가교환의 윤리와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부모자식과 형제라는 혈연가족이나 강한 동료의식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내부에서는 무상증여의 윤리가 일반적이고, 외부와의 교환에는 등가교환의 윤리를 사용한다. 실은 우리는 우리가 어째서 윤리를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그것은 '관계'다. '빚'을 진 상태는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청산될 때까지는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은 관계가 유지된다는 의미다. 꺼꾸로 말하면 청산이 끝났다는 것은 관계가 끝났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관계의 청산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원동력이다. 관계의 청산은 상품과 화폐의 거래이며, 이 거래를 늘려나가는 것이 경제적 성장이기 때문이다. 대차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거래의 정지를 의미한다.

 

 

 공동체의 운영기준은 득실이 아니라 규칙이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배제되어 공동체 밖으로 추방당한다.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시장市場이었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도피처였던 시장의 가치관이 유연有緣의 장소를 잠식해버렸다는 것이다. 오래된 규칙을 해체하며 합리적인 판단을 우선으로 여기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근대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때의 합리성은 바로 금전합리성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최적화하는 합리성이 아니다. 금전합리성을 추구하면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 그 자체를 훼손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해와 온난화는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시장화는 무연화와 거의 같은 뜻이다. 공동체 내부에는 시장이 생기지 않는다. 인간사회는 원래 공동체적이고 상호부조적이었다. 공동체적이라는 것은 이해타산이 아닌 다른 가치관에 의해서 운영된다는 뜻이다.

 무연의 세계의 유연의 장소를 만드는 것이 인구 감소 사회의 유일한 사회 설계일 것이다. 우선은 민영화되면서 파괴된 사회공통자본을 재생시킨다. 도시지역에 가족을 대체할 수 있는 공생장소를 만든다. 인류사적인 상호부조의 윤리를 다시 세운다.

 이것들이 이루어진다면 인구 감소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닐 것이다.

 

p174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국가는 빚을 갚을 수 없다"는 토마 피케티의 말과도 호응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부 정치가들은 '투자보다는 지출 삭감'으로 나랏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

 폴 크루그먼은 그것이 단순한 착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크루그먼은 "가정 형편이 어려울 때는 가계 씀씀이를 줄이듯이, 국가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도 재정을 줄이는 것이 왕도"라고 일반인은 물론이고 지식인까지 맹목적으로 믿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금융완화와 재정지출을 실시하면 고용이 창출되어 수요가 확대된다"는 것은 경제학적 기본 상식이다. 그러나 "쓰는 것보다 모은 것이 경제적으로 좋은 상태"라는 가계 씀씀이 감각으로 국가 재정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정치가는 설사 그 생각이 잘못됐다고 알고 있어도 지지를 얻기 위해서 그런 말을 꺼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재정의 균형을 맞춰서 나랏빚을 갚는다"라는 듣기 좋은 표현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구실이 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작은 정부)를 추진하기 위한 그럴듯한 핑계다. 대부분의 영국 경제학자가 긴축재정은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대기업의 지도자들은 정반대 입장을 취한다. 가능한 정부가 작아져서 시장의 일은 시장에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이 대기업의 본심이기 때문이다. 긴축재정을 추진하는 보수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 부유층과 대기업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왠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게 보이는 빚을 갚기 위한 정치'는 사실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데 가담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 빚을 남기지 않기"는 커녕 반대로 늘리고 있다는 모순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p176

 1929년 월가의 대폭락이 불러일으킨 세계대공황을 접한 두 나라는 완전히 정반대의 경제정책을 실시했다. 독일의 바이마르 정부는 불황으로 세수가 감소하므로 재정균형을 지향해야 한다고 맹신하고 계속 재정지출을 삭감했다. 따라서 불황이 멈추지 않고 많은 실업자를 만들어냈다. 그런 상황에서 대규모 정부지출로 국민의 고용을 창출할 것을 약소하는 나치스가 등장해서 국민을 열광시켰다. 어째서인지 지금도 많은 사람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나치스를 낳았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바이마르 정권이 지폐를 지나치게 많이 찍어내서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1920년대 중반쯤 진정되었다. 나치를 낳은 것은 디플레이션과 긴축재정이었다.

 한편 미국은 같은 시기에 금융정책과 재정지출로 경제를 확대시키는 뉴딜정책을 실시했다. 불황이라고 재정지출을 줄이지 않고, 반대로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서 국민의 고용을 창출하는 대담한 반 긴축적 정책을 취했다. 나치스의 경제정책과 뉴딜정책의 유사성은 세계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다시 말해 독일의 바이마르 정권이 불황에 대응하는 경제정책에 실패했기 때문에 파시스트가 대두하게 된 것이다.

 

p188 1970년대의 반전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장 확대의 시대가 영원히 계속되는 일은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1960~1975)이 20세기 체계의 종언을 상징했고, 일본에서는 오사카 만국박람회(1970)가 종언의 지표가 되었다. 1970년을 경계로 다양한 사회적 지표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인구 증가 곡선이 반전되고, 저출생 · 고령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제조업을 대신해 서비스업이 대두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다. 현대의 저성장 · 저출생 · 고령화 사회는 이미 1970년대에 조짐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다른 전개를 맞이했다. 미국에서 중후장대산업은 일찌감치 주역의 자리에서 내려와 조연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곳은 과거 시대를 선도한 주역을 언제까지나 대접해주는 미적지근한 곳이었다. 무사를 온존하는 풍토가 그래도 20세기가 되도록 잔존하고 있었다.

 일본의 건설한업은 1970년대 이후에도 조연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경제의 주역이었던 그들은 정치와의 결탁을 통해서 70년대 이후에도 주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사집단의 결속력과 집단주의는 강력한 득표장치로 기능하며 1970년대 이후의 일본 정치에서 주역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득표장치가 장기적으로 계속 가능하려면 건축공사를 끊임없이 발주해야만 한다. 이것이 1970년대 이후로 일본 정치의 숨겨진 목표가 되었다.

 건설을 위한 명목은 시대와 함께 변했다. 1970년대 이전에는 경제 성장과 주택공급이 명목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복지, 환경, 안전, 안심이었다. 각각의 시대에 걸맞은 듣기 좋은 명목이 선택되었다. 그러나 득표 체계의 존속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명목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다. 그 명목으로 무엇인가를 건설하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다면 무사는 행복할 뿐이다. 무사는 그렇게 성장과 확대의 시대가 종언된 1970년대 이후에도 에도시대의 무사가 정치와 결탁한 것돠 마찬가지로 시대의 정치와 성공적으로 공모하면서 사회 지도자라는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우연까지 무사의 셩명 연장을 도와주었다. 1995년 한신 대지진,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라는 두 번의 대지진이 일본을 덮쳤다. 대지진 피해의 복구와 부흥이 국가 목표가 되면서 무사는 새로운 활약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게다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겹쳤다. 우연이 몇 번이나 무사의 편을 들고 있다.

 

 

p209

 선진국의 노숙자는 태어날 때부터 노숙자인 사람은 없다. 어떤 이유 때문에 사회에서 도중에 낙오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경제적 이유만으로는 노숙자가 되지 않는다.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생활보호를 받으면 된다. 어떤 정신적 이유가 더해져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노숙자가 된다.

 그런 사람들이 예술이나 운동을 접하고 1천 명 가운데 세 명이나 다섯 명이라도 살아갈 기력과 노동의욕을 되찾는다면, 이것은 대단히 저렴한 노숙자 대책이다. 무료급식만으로는 당장의 목숨을 구할 수는 있어도 발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는다. 노숙자를 만들어내는 원인의 하나가 인간 정신적인 측면에 있는 이상, 그것을 개선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노숙자 프로젝트는 내 주변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례도 있다.

 내가 경영하는 고마바 아고라극장은 몇 년 전부터 고용보험 수급자에게 대폭적인 할인을 실시하고 있다. 실은 이것도 유럽의 모든 극장과 미술관에서 당연히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다. 학생 할인과 장애인 할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업자 할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이와는 반대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고용보험 수급자가 평일 낮에 극장이나 영화관을 찾으면 구직활동을 게을리 하고 있다는 이유로 고용보험 지급을 중단해 버리는 정책. 또는 생활보호세대의 구성원이 극장에 가면 뒤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사회 분위기.

 

p212

 그렇기에 우리는 사고방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실업 중인 사람이 평일 낮에 영화관이나 극장에 찾아주면 "실업 중인데도 극장을 찾아줘서 고마워요.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어서 고마워요. 그렇게 하는 편이 최종적으로 행정과 사회의 비용도 위험요소도 경감되니까요"라고 말이다. 또한 생활보호세대가 콘서트홀에 오면 "생활이 어려운데도 음악을 들으러 와줘서 고마워요. 집에 틀어박혀 있지 않아서 고마워요"라고 생각하는 사회를 만드는 편이 최종적으로 사회전체의 부담이 경감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문화를 통한 사회포섭'이라고 부른다.

 일본은 예로부터 지연과 혈연이 강한 사회였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체계는 태평양전쟁 이후에 붕괴되었고 기업 사회가 그것을 대체했다. 사택에 살고, 사원운동회에 참가하고, 사원여행을 즐기고, 기업연금의 보장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일생을 마친다고 믿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기업은 이제 노동자를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기업사회 또는 그에 대한 믿음은 붕괴되었다. 뒤돌아보면 옛날의 좋았던 지연 · 혈연형 사회(라는 것도 역시 환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때의 유행어였던 '무연사회'의 정체다.

 게다가 일본에는 마지막 안전망인 종교도 없다. 유럽의 노숙자는 정말 힘들 때는 교회를 찾을 수 있지만 일본에는 그런 종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일본은 세계 선진국 중에서 가장 인간이 고립되기 쉬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p229

 애초에 지금의 먹거리 가격이 적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먹거리의 생산 현장에서는 1차 산업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농부와 어부가 점점 줄고 있다.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이 먹고 살 수 없다니, 정말 이상한 이야기다. 식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싼 가격을 강요당하자, 생산자가 충분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상태가 오래 이어졌다. 먹거리 가격이 내려가면 소비자에게는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생산자가 계속 줄어든다면 결국 일부 부유층만이 일본 국내산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실제로 먹거리 가격이 지나치게 내려가면 국민의 생명과 건강도 위협받게 된다. 끊이지 않는 식품 위조 문제의 근원에는 1엔이라도 저렴한 음식을 선택하는 소비 행동이 생산과정이 보이지 않는 먹거리의 대량 제조를 초래한다는 부분도 부정할 수 없다. 2007년 식품가공회사 미트호프의 가공육 위장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회사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반액 할인을 좋아하는 소비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싼 냉동식품을 좋다고 구매하는 소비자도 나쁘다"고 말해 세간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했다,

 확실히 위조는 나쁜 일이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미트호프 사장의 발언은 우리가 먹거리를 선택할 때 '저렴함'을 판단기준으로 삼은 것이 생산과정의 블랙박스화를 초래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먹거리의 안전을 위한 비용을 소비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식품 위조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2017년 구마모토에서 만난 여의사는 병원을 찾는 환자를 줄이기 위해서 채소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현대인은 평소 식생활을 신경 쓰지 않고, 안전을 위한 돈도 쓰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병에 걸려 거액을 의료비로 쓰다가 결국 병상에 누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도 많다. 이왕 같은 돈을 쓴다면 부정적 비용이 아니라 안전한 먹거리를 구매하는 긍정적 비용을 선택해 건강 수명을 늘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우리 자신의 소비 행동을 바꾸는 것은 백세시대에 걸맞은 저비용의 의식동원醫食同源 사회 만들기로 이어진다.

 

p238

 내가 태어나기기 얼마 전인 1970년 1,035만 명이었던 농업종사자는 2016년에 192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참고 대한민국 현황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41226.html)

 

192만 명 가운데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125만 명, 39세 이하는 겨우 12만 명 뿐이다. 또한 연령별로 살펴봤을 때, 이농비용이 가장 높은 연령은 39세 이하다.

 내가 현의원으로 재직하던 때부터 이러한 감소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수치가 눈앞에 제시하는 현실을 현장에서 보고 들으면서, 지금까지 먹거리의 생산에 관한 문제를 남의 일처럼 생각하던 자신을 깨달았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알갈 수 없다. 다시 말해 모든 국민은 식생활 문제의 당사자이지만, 1차 생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먹거리가 없어져 곤란한 쪽이 소비자라면, 생산자 혼자 머리를 싸매고 후계자 부족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도 당사자라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격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소비행동을 해온 우리는 1차 산업을 쇠퇴시긴 간접적인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낙농과 쌀농사 등의 현장을 체험하면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영향력 아래서 생며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통감했다. 생물이기 때문에 병에 걸리고 죽기도 한다. 악천후로 인해 그동안의 막대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농부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경외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농부는 자연에서 배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 · 기술 ·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지역 사람들이 지금까지 축적한 지혜 · 기술 · 판단력이라는 경험치는 일종의 과학이기도 하다. 농부의 경험치를 활용한 생산활동은 자연을 인간의 먹거리로 바꾸기 위한 작은 과학small-science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일본인은 농촌을 떠났다. 뜻대로 되지 않는 자연과 타인, 지역사회 등의 번거로운 관계를 버리고 도시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번거로움에서 해방되는 대신, 자연이나 지역사회와의 관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지혜 · 기술 · 판단력을 포기했다. 생활의 풍요로움을 원자력발전과 유전자공학 등의 거대과학big-science에 맡기고, 행정 · 과학기술 · 경제에 모든 것을 일임한 채, 관객석 위에서 강 건너 불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런 삶에는 공동체의 생활을 자신의 지혜와 창의적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기쁨과 감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 지역의 과제를 해결하는 마음가짐을 잃고, 사회를 만들어가는 당사자가 아니라 '손님'이 되어버렸다.

 주인 의식을 상실한 1억 총관객사회에 활력이 생겨날 리가 없다. 생산인구는 줄어들고, 수요부족으로 경제가 침체되고, 세수입도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행재정 자원이 축소되고, 고령자 부양이라는 부담이 핵가족을 덮치던 그때, 풍요의 기반이었던 원자력이라는 거대 과학이 폭주해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성장을 추구한 결과, 오히려 근원적 위험요소를 구조적으로 떠안아버리는 사회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하는 '위험사회'의 개미지옥 자체다.

 지역과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1억 총관객사회는 '고비용 사회'이기도 하다. 고립이 진행될수록 1인당 생활유지 비용이 증가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경제와 과학기술의 힘에만 의존한다면, 좀더 심각한 '위험사회'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활과 사회에서 '관계의 힘'을 되살려야 한다.

 자연과 타인,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되살리는 것은 우리가 관객석에서 무대로 내려와 각자 생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힘으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쪽으로 돌아간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편이 훨씬 즐겁기 때문에 내려가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주체적으로 참가하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모습은 직접 생활을 만들어나가는 기쁨과 감동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되찾는 일임과 동시에 재해 · 경제 위기 · 질병 등의 요소에 취약한 '위험사회'에 대비하는 일이다. 생산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그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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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중반 에도시대 말기의 인구는 약 3,000만 명, 1870년대 메이지시대 초기는 약 3,500만 명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 동안, 전쟁으로 인한 감소가 있었지만 일본의 인구는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영국과 프랑스가 같은 기간에 약 1.5배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일본의 인구 증가율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알 수 있다. 일본과 비슷한 근대화 과정을 거쳤으며 전쟁도 체험한 독일의 경우도 영국과 프랑스보다는 증가율이 높지만 일본 정도는 아니다.

 미국은 이민국이기 때문에 일본의 단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일본의 증가율을 월등히 상회하는 국가는 한국이다. 그러나 한국은 '압축 근대'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뜨거운 근대'를 단기간에 편파적인 형태로 통과했다. 그러다보니 출생률은 일본보다 낮아 저출생 · 고령화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결국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 동안, 세계적으로도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들은 인구 감소 경향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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