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에 관한 에피소드 집. 꽤 재미있다.

 

--------------------------

 

 p39

 사람들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에서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상이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부모는 백식을 접종하지 않았을 때 아이가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될 경우 느끼는 책임감보다, 백신에 접종했는데 아이가 부작용으로 사망하게 되었을 경우 느끼는 책임감을 훨씬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죠. 그래서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피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을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 또는 '무편향 편향'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선 이러한 부작위 편향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있는데,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의 다음 경구가 이를 잘 웅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동의 오류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기업은 실패의 비용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하지만 실패는 비싼게 아니다.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기업에 있어서 가장 큰 비용은 무행동의 오류다."

 

p178

 시카고 대학과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경제학자들은 이와 관련해서 2015년 <젠더 정체성과 가족 내 상대 소득>이라는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미국 부부를 대상으로 배우자 간 상대 소득을 조사했더니, 예상대로 남편의 소득이 높은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남편이 아내보다 약간 더 버는 경우는 매우 많았으나, 반대로 아내가 남편보다 약간 더 버는 경우는 이례적으로 적었다는 점입니다.

 연구팀은 교육,, 직업 등을 고려할 때 아내가 의도적으로 남편보다 적게 벌려는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실증했습니다. 아내는 남편보다 더 많이 벌 기회가 있더라도 아예 취업을 하지 않거나 노동시간을 줄여 대응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남편보다 아내가 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아내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남편은 노동시간을 줄여 가사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당연히 '합리적' 행동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보다 더 벌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자리 잡고 있는 탓에 아내가 소득이 높을 경우 남편은 불편해하고 아내는 미안함을 느껴 오히려 아내가 가사에 쓰는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 리어나도 버스틴(Leonardo Bursztyn) 교수가 프린스턴대학과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들과 함께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다니는 여학생들을 상대로 수행한 연구도 흥미롭습니다. 이들이 2017년 발표한 <아내처럼 연기하기 : 결혼시장 인센티브와 노동시장 투자>라는 논문에 의하면, 미혼 여학생들은 시험이나 숙제성적에 있어서는 기혼 여학생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으나 사례연구 경쟁 등 공개된 참여형 과제에선 기혼 여학생에 비해 성적이 낮았다고 합니다. 미혼 여학생들의 경우, 능력과 야망이 시험이나 숙제로는 주변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공개 참여형 과제에서는 모두에게 드러나게 되므로 동료 남학생(연인 또는 배우자후보)에게 나쁜 신호를 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혼 여학생들은 이런 시그널 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고, 남학생들은 시험이든 공개 참여형 과제든 모두 미혼과 기혼 간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연구자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경력개발센터에 본인의 희망 연봉, 노동시간, 포부 등을 등록하게 하면서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그들이 작성한 내용을 경력개발센터 가이드만 볼 것이라고 알려줬고, 다른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가이드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회람할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남학생 및 기혼 여학생들의 경우 회람 공개를 기준으로 나눈 두 그룹이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혼 여학생들의 경우, 가이드만 회람하는 그룹에 비해 다른 학생들도 함께 회람하는 그룹은 희망 연봉을 평균 1만 8,000달러 낮추었고 희망 주당 노동시간도 네 시간 줄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보면 유리천장은 우리의 일상 의식 속에도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리천장이란 법과 제도만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고, 남성과 여성 모두가 일상에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218. 팩트체크가 오히려 가짜뉴스를 부각시킨다?

 

 미국 마트머스대학의 브랜던 나이핸(Brendan Nyhan)과 영국 엑서터대학의 제이슨 라이플러(Jason Reifler) 교수는 팩트체크가 별 효과과 없고 심지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0년 <사실 교정이 실패하는 경우>라는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두 사람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험을 막기 위해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가짜뉴스)를 보여준 뒤, 이 중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당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보고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효과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랐습니다. 애초 이라크전쟁에 더 회의적이었던 진보 성향 사람들의 경우, 예상대로 팩트체크를 통해 가짜뉴스를 신뢰하는 비율이 낮아졌지만(18→3퍼센트), 보수 성향 사람들한테서는 반대로 가짜뉴스를 신뢰하는 비율이 오히려 높아졌습니다(32→64퍼센트). 이외에 '세율 인하가 세수를 더 늘렸다는 주장(가짜뉴스)'과 오히려 '세수를 대폭 줄였다는 사실(팩트체크)'를 놓고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p221. 팩트체크보다 중요한 건 언론의 신뢰 회복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짜뉴스 확산의 가장 큰 자양분은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입니다. 장기간에 걸친 공영방송의 공정성 하락, 끊이지 않는 '기레기 논쟁'등을 고려할 때 우리는 가짜뉴스 확산에 대해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제 비교를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부설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의 '뉴스 신뢰도 국제비교'에 의하면, 한국은 조사 대상 28개국 중 그리스와 더불어 최하위였고, 글로벌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미디어 만족도 조사에서도 37개 대상국 중 36위였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표 21-4]에서 보듯이 전문 언론기관(기존 언론사, 온라인 언론사 등) 신뢰도와, 내용의 질을 확인하기 어려운 플랫폼(SNS 및 각종 검색 서비스 등) 신뢰도 사이의 격차도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면 한국이 낮은 편입니다.

 

p224. 국가의 정책은 부자의 선호도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는 '1인 1표'라고 하는 보통 · 평등선거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신분, 성별, 재산 등과 무관하게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하여 자신을 대변할 정치인 선출에 참여합니다. 만약 불평등이 심해진다면 경제적으로 곤궁하게 된 다수의 유권자들은 불평등을 완화할 정책을 내놓는 정치인을 선출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불평등은 끝없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선에서 규율되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민주주의의 1인 1표 원칙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모든 사람의 이해가 균일하게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헌법학자 로버트 달(Robert A. Dahl)은 1961년 그의 저서 《누가 지배하는가(Who Governs?)》에서 "모든 성인이 투표할 수 있는 나라, 하지만 지식, 재산, 사회적 신분, 관료와의 관계 등 모든 자원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나라, 과연 이런 나라는 누가 지배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

 이 분야 연구에서 최근 화제가 된 인물은 미국 프린스턴대하긔 마틴 길렌스(Martin Gilens)와 노스웨스턴대학의 벤저민 페이지(Benjamin I. Page) 교수였습니다. 이들은 1981~2002년 미국에서 시도된 중요 정책 1,779건 중 현실에서 구현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여 어떤 요인이 정책의 실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했습니다.

 

 [표 22-1 Ⓐ]를 보면 일반인(중위소득 집단)들의 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는 정책의 실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일반인들이 거의 지지하지 않는 정책이나,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정책이나 모두 30퍼센트 정도 실현되었습니다. 반면 부유층(소득 상위 10퍼센트 집단)의 지지가 높은 정책일수록 실현되는 정도가 뚜렷이 높아졌습니다. 이들이 거의 지지하지 않은 정책의 실현 비율은 5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정책은 실현 비율이 60퍼센트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정책은 일반인들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의 선호에 반응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렌스와 페이지 교수는 미국의 중요한 이익단체들이 각 정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도 조사했습니다. [표 22-1 Ⓑ]를 보면 지지하는 이익단체가 많고 반대하는 이익단체가 적을수록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재계의 이익단체(예를 들면 미국총기협회)와 대중 이익단체(노조 등)을 구분하여 살펴보았는데, 전자가 압도적으로 영향력이 컸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정책에는 이익단체의 영향이 작동하며 그 핵심에 재계 이익단체가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p228

 

 [표22-3]의 기부자 항목을 보시면 상원의원의 정책 성향과 해당 상원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부자의 정책 성향 사이의 거리가 0에 가깝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의원과 기부자의 정책에 대한 성향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 즉 의원이 기부자의 정책 성향에 따라 의안 투표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원들은 심지어 자신의 지역구에서 실제로 자신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정책 성향보다도 기부자의 정책 성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전체 투표자(즉 다른 후보를 찍은 경우를 포함)의 정책 성향에 대해서는 반영도가 매우 낮아서(즉 거리가 멀어서), 전체 국민의 정책 성향과의 거리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여러 정치학자들의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미국에서 부유층의 돈이 정치에 더 많이 흘러들어 가고 있고, 이를 통해 의원들이 부자들의 의견을 더 많이 따르게 되며, 그 결과 최종적으로 부유층이 원하는 대로 정책이 결정되는 경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현상이 미국만의 일일까요? 유럽의 경우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돈이 정치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미국 텍사스대학의 데릭 엡(Derek A. Epp)과 포르투갈 리스본대학의 인히쿠 보르게투(Enrico Borgehtto)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유럽의 불평등과 임법 의제>라는 연구에 의하면 유럽에서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불평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제적 이슈들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것이 부유층의 정치적 영향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의 정치 기부금을 제한하라

 

 한국에서는 금권정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데, 정치자금이 과거에 주로 불법적인 방식으로 모집되었기에 연구가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벌들이 저마다 수백억씩 현금을 내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캠프에 전달한 초유의 '차떼기' 사건이 있었던 게 2002년이었고, 금액은 크게 차이가 났지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캠프도 불법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정치자금은 음지에서 움직였습니다.

 그 후 2003년 여야 합의로 대대적인 정치자금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정치자금 모금의 한도가 대폭 축소되었고,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습니다.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24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경우 공식 통계상으로는 금지된 것으로 분류되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민간단체인 슈퍼정치위원회(super political action committee)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얼마든지 법인 자금이 정치권에 흘러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의 정치자금법은 대체로 양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법적인 경로로 전달되는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2018년 노회찬 의원이 안타깝게 세상을 뜬 뒤 일부에서 진보 진영에 불리한 정치자금법을 개혁하자는 얘기가 커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현재 법이 원외의 정치 신인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하고, 국고보조금 배분 시 비교섭 단체를 소홀히 다루기 때문에 손을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혹시라도 정치자금법 개혁을 빌미로 정치자금 총액 한도가 대폭 늘어나거나, 부유층과 기업이 정치 기부금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재산과 소득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는 일이고, 아마도 고 노회찬 의원께서 가장 바라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