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교의 경전인 ‘숫타니타파<Sutta Nipāta>’에 나와있는 운문의 유명한 후렴구이다. 성경의 공관복음(共觀福音, 마태오,마르코,루카의 3복음서)이 예수님의 말씀의 구전을 모았듯이, ‘숫타니타파’도 부처님의 말씀 구전의 모음집이다.
무소의 뿔 부분은 파격과 큰 깨달음을 주는 내용으로, 총 31개의 절구이며, 그 시작과 끝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그 어느것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보기 드물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말씀들은 불교의 핵심교리인 해탈을 위해 끊어야 하는 온갖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홀로 정진하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특별히 출가를 하여 스님이나 신부님(혹은 수녀님)이 걷는 구도의 길을 가고자 하는게 아니라면,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가족을 이루고 직장을 다니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이런 일상인으로 무작정 홀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려는 데는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184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산부인과 의사인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당시 임산부들은 아이를 낳고 산욕열에 걸려 사망하는 일이 많았다. 제멜바이스의 병원은 일반외과 병동과 산부인과 병동이 나뉘어져 있었다. 때로는 산부인과 병동이 인원이 차게 되면, 일반외과 병동에 산부인과 환자(주로 임산부)가 입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와중에 제멜바이스는 일반외과 병동과 산부인과 병동의 입원 환자들의 산욕열 발생률이 차이가 나는 걸 알게 되었다. 제벨바이스는 이 사실에 주목하여, 일반외과 병동과 산부인과 병동에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조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외과병동과 달리 산부인과 병동에서는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손을 자주 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세척이 감염을 막는다는 사실에 주목한 제멜바이스는, 그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몇가지의 방법으로 손세척을 시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물보다는 클로르 석회수가 산욕열 예방에 효과가 좋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곧 제멜바이스는 병원내에서 환자를 진료/치료하기 전에 손세척을 의무화하였고, 그 결과로 산욕열 발생율이 18%에서 1.2%로 감소하였다.
제멜바이스는 이 사실을 곧 의사동료들에게 알려주었고, 모든 병원에서 진료전 손씻기를 할 것을 제안하였다. 현대의 우리로서는 일견 상식적으로 보이는 이 제안에 대해 당시 의사동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제멜바이스의 발견에 사용된 방법과 데이터의 의문을 제기하였고, 어떤 이들은 상류사회의 신사들인 의사들이 손이 더럽다는 가정 자체가 인격을 모독하는 비도덕적인 비열한 행위라며 제멜바이스를 비난했다. 이와 같은 동료들의 반발과 비난에도 제멜바이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동료의사들은 그를 돌팔이로 매도하고 의료계에서 추방했다. 이 충격으로 제멜바이스는 끝내 1865년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그곳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하게 된다.
1859년 파스퇴르는 연구를 통해 공기중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균)의 존재를 예견하였다.
1865년 영국의 외과의사 조셉 리스터는 파스퇴르의 연구로부터, 외과적 수술에 의해 발생한 상처의 부패와 화농화가 공기중에 있는 작은 미생물이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미생물이 상처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그 미생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하였고, 시행착오 끝에 석탄산으로 세척하는 방법이 상처의 부패와 화농화를 막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세척방법을 수술에 적용후에 외과 수술후 수술부위가 썩어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게 되었다.
1875년 영국의 존 틴달이 세균의 존재를 실험으로 증명함으로써 의료분야에서 소독이라는 개념이 과학적으로 뒷받침되었다.
이후 제멜바이스의 명예는 회복되었고 그는 현대의학에 있어서 수술전 손세척의 개척자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참고적으로 병원의 현대적인 손세척 과정(베타딘을 이용하고 손세척시 가운을 착용하는 표준 프로시쥬어를 사용하는)은 1970년이 되서야 미국에서 확립되었다.
제멜바이스의 명예는 회복되었지만 그가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외롭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긴 했지만 그에 따른 리스크를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대의 상식으로 보면 제멜바이스의 사례는 명확히 제멜바이스가 옳은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보면 새로운 발견은 당시의 관습과 상식에 반하는 것이 많고 대부분 역풍을 맞게 된다. 전통적인 패러다임을 반대하거나 의문시하는 주장은 공격을 받기 마련이다.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이순신, 세종대왕, 마틴루터, 그리고 예수님과 부처님이 그렇다. 그리고 예로 든 이 모든 이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면서 겸비했던 덕목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와 ‘근성’이었다. 그들은 용기있게 주장했고, 반대에 부딪혀도 근성있게 버텨냈다.
갈릴레오는 법정을 나가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고, 이순신 장군께서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며 역사를 바꾸는 ‘근성’을 보이셨다.
강한자가 남는 것이 아니라, 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그 어떠한 순간에도 밀고나가는 용기와 멈추지 않을 근성이 필요하다.
현대는 패러다임 파괴의 시대이다. 오늘의 패러다임이 내일은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낡은 것이 되고 폐기된다. 세상은 점점 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만 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그 시대의 상식과 관습은 우리에게 멈추라는 경고를 한다.
그러기에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이들이라면 더욱 <용기>와 <근성>을 가지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