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말 대선을 앞둔 시점, 어느 음식점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쯤 겪었던 일이다.

 약간 쌀쌀한 날씨와 전날의 숙취를 다스리기 위해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 순두부 찌개를 하나
시켜놓고, 안팎의 기온차로 얇게 성애가 낀 창밖으로 완연한 가을색으로 물드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40대 중반쯤 되었을까 머리와 수염은 덥수룩하고, 꽤 오랜동안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음직한 흑먼지에
빛이 바랜 남색 작업복 점퍼와 가죽은 군데군데 트고, 역시 흙먼지에 원래의 색깔이 무엇일지 가늠하기도
힘든 목이 긴 작업화를 신은 남자 하나가 초등학교 4,5학년쯤 됨직한 아이 하나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아이에게는 볶음밥, 그리고 자신은 라면과 김밥 하나를 주문을 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는 옆자리에 놓여있는 신문을 펼쳐들면서, 자신에게 하는 소리인지 아이에게 하는 소리인지 

 "빨갱이 새끼들이 나라를 운영하니까, 나라가 이 모양 이꼴인거여, 어여 선거가 끝나서 빨갱이 새끼들을
  몰아내야혀. 이 놈의 새끼들이 북한에 다 퍼주는 바람에 경기가 아주 다 죽어버렸어." 

.....
얼마뒤, 나는 시킨 순두부 찌개를 맛있게 먹고 나가면서 계산을 하는 길에 자기 아버지가 시켜준 볶음밥과
반찬으로 나온 단무지를 곁들여 맛있게 먹고 있는 사내아이의 약간은 초췌한 얼굴을 뒤로하고, 아직은 햇살이
따스한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리로 나왔으며, 그 이후로도 그 일에 대해 별 기억이 없었다가,
문득, 최근 초등학생 급식문제에 대해 이슈가 되었을 때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빨갱이를 싫어하는 그 아버지의 바램대로 경기가 살아나, 학교에서 맛있는 급식을
먹고 있을까? 그리고 그 아버지도 좀 형편이 나아져셔, 이제는 훌쩍 중학생 정도가 되었을 아이에게 삼겹살이라도
사주고 있을지... 그 분 바램대로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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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 중에서 발췌

 대구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의 일이다. 어느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인사를 갔는데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역시 수수한 분위기를 지닌 여성 유권자 한 분이 나를 붙잡고 힐난을 했다. 지난 정권이 세금을 너무 올려놔서 힘들어 죽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대화가 이어졌다.

 "아이구, 정말 힘드신가 봐요. 작년에 세금을 얼마나 내셨나요?"
 "하여튼 많이 냈어요. 얼만지는 모르겠네."
 "무슨 세금을 내셨죠?"
 "글쎄, 그것도 기억이 안 나네...."
 "법인세는 아닐 것이고, 소득세? 근로소득이나 종합소득이 얼마나 되셨나요?"
 "그런 건 안 냈어요."
 "부가가치세는 따로 내는 게 아니니까? 혹시 주민세?"
 "맞아요. 그거 냈어요."
 "소득세를 따로 내지 않으셨으면 소득세할 주민세는 해당이 안 될 것이고....
  지자체에서 걷는 주민세 말이군요. 그런데 그건 옛날부터 5,000원이고 지난 정부에서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그 여성은 확신에 찬 어조로 반격했다.

 "그거 말고도 많이 냈어요. 수도세, 전기세... 아휴,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모른다니까. 세금 폭탄이야, 폭탄!"

 선출되지도 않았고 교체될 일도 없는 최강 권력 보수 언론, 그들이 퍼뜨린 '잃어버린 10년론'과 '세금 폭탄론'
의 위력은 이렇게 컸다. 그날 나를 힐난했던 그 여성은 보수 정권의 감세 정책에서 단 한 푼의 이익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종부세도 소득세도 법인세도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세입 감소에 맞추어
세출을 삭감하고, 그로 인해 공공 서비스와 사회 서비스가 감축되면 많든 적든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국민을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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