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이들이 잘 알다시피 비행기를 발명한 이는 미국의 라이트 형제이다. 라이트 형제는 1899년부터 비행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여 1903년에 세계최초로 동력을 이용한 유인 비행에 성공한다. 이후 1908년에 최초의 상업비행을 성공함으로 인해 세계인들에게 비행기의 발명자로서 그들의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그 시기에 비행기에 대한 연구개발을 수행한 이들은 라이트 형제만이 아니었다. 특히 근대에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무인 비행을 최초로 성공시킨 이는 사무엘 랭리(Samuel Langley)이다.

현재에는 아는이가 거의 없는 사무엘 랭리는 대학시절 건축, 토목학을 전공하고 이후 천문학과 물리학을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에 펜실베니아의 웨스턴 대학의 천문학 및 물리학 교수와 스미소니언 협회 회장을 역임한 당대의 최고 엘리트였다.

그는 60살이 넘은 나이에 당시 기술의 발전으로 당시 이론적으로만 가능했던 비행기의 실용화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자 연구개발에 뛰어들어 1896년에 세계최초로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무인 비행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와 발명가(라이트 형제를 포함)는 치열한 개발경쟁을 벌였고(라이트 형제도 초기에 비행기의 개발에 사무엘 랭리로부터 설계개념등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등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1899년부터 1902년까지 미국와 유럽에서 몇 십차례에 걸친 시험비행을 여러 연구개발팀이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를 거듭해왔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세계최초로 유인 비행을 성공하였으며, 1년여의 개발성공에 대한 논란을 거쳐서 라이트형제가 세계최초로 유인비행을 성공시킨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사실 당시 과학계에서는 세계최초의 비행을 성공시킬 이로 사무엘 랭리를 대부분의 사람이 예상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미 전단계인 무인 비행을 성공시켰고, 천문,물리학의 박사에다가 저명한 대학의 교수이자, 미국의 저명 과학아카데미인 스미소니안 협회의 회장이라는 배경에 일반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무리가 없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시골의 촌뜨기인 라이트형제는 오직 하늘을 날고 싶다는 어린시절의 꿈에서 촉발된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의 노력과 반복되는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개선을 거듭하면서 결국 세계최초로 유인 비행에 성공하게 된다.

사무엘 랭리는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비행을 성공하자, 이후 비행기 개발에 대한 열정을 잃는다.(사실 나이도 많이 들었다.) 
그에겐 세계 최초의 비행기 개발자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기에 더 이상의 개발동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라이트 형제는 5년간의 추가 개발을 거쳐, 유인 비행기의 안정성(세계 최초의 비행 이후, 검증 비행에서 몇 차례 사고가 나면서 인명사고가 발생한다.)을 높이면서 1908년에는 최초의 대중공개 비행에 성공하면서 전세계에 비행기 발명자로서 라이트 형제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또한 1909년 세계 최초로 상업비행기 회사를 설립하고, 1910년에는 비행기를 이용한 상업화물의 운송비행을 시작하고, 1910년부터 1916년 사이에 라이트 형제 비행기 훈련학교에서 115명의 비행조종사들을 배출한다.

랭리와 라이트 형제와의 차이는 비행기 개발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있었다. 랭리는 세계 최초의 비행기 개발자라는 명성이 필요했고,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비행기 개발은 하나의 작은 목표였다는 점이다.

진정한 꿈이란 나를 바꾸고, 주변을 바꾸며,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당신의 꿈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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