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라, 네 안에는 물리학과 생물학뿐만 아니라 화학 천문학까지 들어 있지. 너는 지금까지 사람이 밝혀낸 한도 내에서 우주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을 것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재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본문 일부 발췌)


이 소설을 보게 된 계기는 최근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때문이다. 

엔딩장면, 퀘벡의 언덕 묘비 옆에서 한낮의 태양을 받으며 책을 보고 있던 도깨비. 그리고 그 뒤에 민들레 씨앗을 불며 그를 바라보며 "찾았다"라고 하는 은탁의 환생. 

이 장면에서 도깨비인 공유가 읽고 있던 책이 바로 이 한 스푼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구병모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첫 작품으로 위저드 베이커리를 보고 두 번째로 이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이 작품의 대강의 줄거리는,

변두리의 허름한 주택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명정. 그는 아내를 잃고 하나뿐인 아들도 외국여자와 결혼하여 타국에서 생활중 비행기 사고로 잃게 된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아들이 남긴 유품이 배달되는데, 그것은 외국의 어느 벤처기업에서 만든 A.I(인공지능) 휴머노이드였다. 휴머노이드에게 외아들의 남동생이 태어나면 지어주려 했던 '은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세탁소에서 살게 된다.

'은결'은 17살의 외모로 디자인된 남성형 휴머노이드로, 거의 인간과 흡사한 피부조직등을 가진 최신형이었으나 해당 벤처기업이 파산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부품조달이나 A/S등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같은 골목에 살고 있는 이웃, 세주(은결의 초기 셋팅을 도와준 젊은 영어학원 강사), 시호와 준교(어릴때부터 이 골목에 살고 있는 소꿉친구이자 우여곡절 끝에 나중에 결혼한다)를 통해 은결은 세상과 소통을 하기 시작한다.

명정은 휴머노이드인 하지만 '은결'에게 자신의 아들과 같은 감정을 갖기 시작하고 이를 내색하진 않지만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여생을 은결에게 인간의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차츰 은결은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얻은 방대한 경험정보를 DB화하여 디지탈화된 정보들로부터 인간의 언어, 감정, 느낌, 맥락 등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자신조차도 이것이 무엇인지 분류하지 못하는 정보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인간의 희로애락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는 듯이 보이는 수준이 되었을때 명정은 인간으로서의 수명이 다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명정은 자신이 떠난 후의 '은결'의 남겨진 처지를 염려하여 이웃의 준교(대학생 졸업반이며, 군대말기, 그리고 대학원을 준비중인)와 의논하여 '은결'을 대학의 연구실에 양도하려 한다.

명정의 장례식이 끝난 후, 그의 유언장을 읽던 은결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작가의 전작인 위저드 베이커리도 SF(라기 보다는)나 환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성장소설이다. 이 작품도 A.I인 은결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나의 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하게 이야기의 촛점이 '은결'에게 맞춰져 있지는 않다. '은결'은 이야기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주로 관찰자 입장에서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느낌,반응등을 보면서 그가 인간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정보를 습득하는 장면이 훨씬 많다. 따라서 명정,세주,시호,준교등 주요한 주변 등장 인물들의 일상과 그들의 20여년간의 인생의 주요사건, 변화들을 '은결'의 눈을 통해 접하게 된다.

그 속에서 독자는 '은결'의 반응과 그에 따른 맥락을 자신(인간)의 생각,느낌등과 비교하게 된다.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했던 '은결'의 배움의 더딘 과정을 지나서 어느덧 인간화되어가는 '은결'의 반응은 작가의 의도했던 부분 같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소설은 '은결'이 인간의 언어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명정이 죽고 난 후, 은결의 반응은 과거 A.I의 주제를 다루었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이미 A.I에 대한 주제는 1950년대 이후부터 미국의 SF작품에서 다루어졌던 익숙한 주제라 그리 새로울 건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알파고 신드롬 이후 재점화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속에서 나온 소설이다. 

그래도 한국적인 정서속에서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A.I가 과연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습득해갈 것인가를 맥락적 측면에서 이해하려 시도했던 부분은 꽤 참고가 될 만하다.

250페이지 분량 정도로 하루이틀이면 충분히 읽을만하며 내용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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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와 연계해서 생각해보면, 불멸의 삶을 사는 도깨비와, A.I인 은결의 삶에는 무언가 매칭되는 부분이 있다. 과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나 이 소설을 보면서 생각났던 바이센테니얼 맨-바이센테니얼 맨은 1999년에 개봉되었고, A.I는 2001년에 개봉되었다. A.I에도 바이센테니얼 맨의 주인공인 로빈 윌리엄스가 단연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난 본 기억이 없다. A.I도 다시 한 번 봐야겠다.-에서처럼 A.I라는 존재도 휴머노이드를 구성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이루는 메모리반도체라는 부분은 영구적이라고까지 이야기하진 못하겠지만 적절한 A/S와 교체만 이루어지면 이론적으론 인간의 수명의 수배에서 수십배까지 생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누구도 살아보지 못하는 영원의 삶, 원래 이것은 인간이 오랜 꿈의 궁극적인 형태가 아닐까 한다. 이승에서의 영생을 바라지 못하기에 우리는 종교 혹은 신이라는 이름을 빌려 이승 이후의 삶에서 영생과 구원이라는 형태의 희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긴 하다.

도깨비, A.I. 이런 것들은 결국 모두 인간의 고대로부터 가져왔던 영원불멸의 삶에 대한 하나의 희망태, 혹은 실현 가능할 것 같은 근미래의 그럴듯한 현실태로서 점점 구체화되가는 것인 것 같기도 하다. 영원의 삶이 실제 우리의 현실로 들어올 때 과연 인간의 존재-인간의 존재의 의의는 삶과 죽음의 대비에서 파생되는 존재에 대한 비존재의 대비에 있다.-란 것은 어떻게 재정의 되어야 할 것인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고통으로 인한 지옥의 재림으로 봐야 할 것인가? 인간이 과연 영원이라는 숙명,형벌,저주,축복,, 그 어떤 이름이 되었든 지난 수백만년간 어떤 생물도 극복하지 못했던 시간의 주술로부터 풀려난다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실존은 항상 현실과 이상을 앞선다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무거운 질문인 반면, 이미 인간은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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