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왜 그가 위대한 대통령이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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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 서문
식민지의 역사는 외세에 의한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이어졌고, 그 아픔이 지금까지도 우리 삶을 규정짓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는 여전히 역사에 대한 반성과 절치부심이 부족합니다. 친일청산을 제대로 못했고, 분단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평화를 이루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대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절치부심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가 가진 문제의식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와 안보 분야의 성과를 자랑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닙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백서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나는 문재인 정부가 어떤 구상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했으며, 어떤 마음자세로 외교·국방·보훈·방산 정책을 다루었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미중 간의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면서 우리 외교의 여건이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거기에 더해 전략적 모호성을 버린 현 정부의 과도하게 이념적인 태도가 우리 외교의 어려움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위기는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이 걱정이지만, 우리 정부의 과한 대응도 함께 걱정됩니다. 무엇보다 큰 걱정은,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도 대화를 통해 위기를 낮추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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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첫 순방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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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최종건 : 취임한 지 불과 50일도 안 된 6월 28일에 3박5일 일정으로 미국을 가십니다. 돌아오자마 7월 5일에 독일로 가서 G20 정상회의에 참가하시고요. 정상외교를 하는 데 국내 민주주의의 발전(촛불혁명으로 인한 무혈혁명에 의한 박근혜 탄핵과 선거에 의한 합법적이 정권 교체를 의미)이 이떤 도움을 줬습니까?
문재인 : 처음 외교무대에 나가면 낯설죠. 서먹함이 있고요. 나는 그런 어려움이 거의 없었다 할 정도로 해외 정상들이 친근하게 다가왔어요. 그들이 느낀 한국 국민의 저력과 성숙함, 기적 같은 민주주의의 회복, 그런 것이 세계 민주주의의 희망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한국과 나에 대한 큰 호의로 나타났던 거죠. 그래서 처음 외교무대에 나가면서 별로 어색하지 않게 다른 정상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었어요. 결국 우리 국민의 힘이죠. 피플파워, 내가 그것을 대표하고 있었기에 그만큼 더 당당할 수 있었고, 대접받을 수 있었습니다. 외교를 하는 동안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과 도덕성, 문화 같은 소프트파워가 국제무대에서 큰 호감으로 작용하고, 그것이 외교의 힘이 된다는 사실을 늘 느꼈습니다.
최종건 : 대통령이 되신 후에 '아, 왜 하필 트럼프야?'하는 생각은 안하셨습니까? 트럼프가 가지고 있는 대외적인 명성(?)이 있지 않습니까? 좀 거칠고 기존의 정치인들과 다르고요.
문재인 : 우리만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나라에 특별했어요. 공화당이지만 공화당의 주류와도 다르고요. 그래서 다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려움을 겪었어요. 게다가 괴팍한 성격이라고 알려져 있었지요. 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 많은 선물 보따리를 가져갔는데도 대접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우리도 첫 대면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긴장했죠.
접근할 수 있는 인맥이 없었어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다리가 될 만한 인맥이 있기 마련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얼굴이어서 전혀 없었던 거죠. 그래서 트럼프란 사람을 알기 위해 <거래의 기술> 등 그의 저서를 대충 다 읽어봤어요.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매우 잘 대해주었어요. 첫 통화도 정중했고요. 처음에는 공격적인 질문을 몇 가지 하더니 내 대답이 괜찮았는지 굉장히 친근하게 대했어요.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가 "문 대통령과 케미스트리가 정말 잘 맞는다. 최상의 '케미'다"라고 여러 번 이야기할 정도였죠.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내게는 동맹외교의 파트너로서 아주 잘 맞는 편이었습니다. 무례하고 거칠다는 평가도 있지만, 나는 그가 솔직해서 좋았습니다. 웃는 얼굴을 하지만 행동은 달라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오히려 상대하기 힘들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요구를 솔직히 말했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듯이 내가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한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었습니다.
p32
문재인 : 처음 미국을 방문할 때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처럼 거창한 선물 보따리를 가져갈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니, 말하자면 진정성을 가지고 미국을 대하기로 했던 거죠. 우리가 준비한 것은 미국 도착 첫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참배하고, 거기서 메시지를 내는 거였어요. 그것이 미국에 준 최고의 마음의 선물이 됐죠.
장진호 전투는 위대한 승리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미국으로서는 굉장히 아픈 전투였습니다. 미군이 6·25 전쟁 동안 3만 5000명 정도 전사했는데 10분의 1 정도가 장진호 전투에서 발생했거든요. 두만강 유역까지 전진했다가 중공군의 갑작스러운 개입으로 대규모 후퇴 작전이 벌어졌고, 이어서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 흥남에 집결한 많은 병력과 피난민을 해상으로 철숫기키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내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받지만, 그 과정에서 미군들이 영하 30~40도의 혹한과 큰 어려움을 겪은 참혹한 전투였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잊힌 전투'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한국의 신임 대통령이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서 그 전투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그 전투를 겪은 분들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면서 한미가 혈맹관계라는 사실에 대한 공감을 다시 일깨운 것이지죠. 내 가족의 이야기와 결부시켜 호소력 있게 이야기하고자 했던 건데, 큰 효과를 거뒀습니다.
최종건 : 나중에 들어보니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과, 아버지가 6·25 전쟁 참전 용사였던 펜스 부통령은 대통령님이 백악관에 도착하시기 전에 연설문을 다 읽어봤다고 합니다. 그게 상당히 중요한 기획이었던 것 같아요.
문재인 : 그 연설문을 당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사전에 맥매스터 안보보좌관을 통해서 트럼프 대통령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게 대단히 훌륭하고 감동적인 연설이었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날 행사와 연설은 장진호 전투를 치른 미 해병 1사단에서 라이브로 중계됐어요. 그것이 미국의 군 쪽에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고, 좀 어려울 수도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좋은 분위기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죠. 대선을 치르면서 외교 로드맵을 마련할 때 방미 첫 일정으로 구상해두었던 건데, 의도했던 대로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p49
최종건 : 당시 제가 평화기획비서관으로서 제재 담당이었는데요. 대통령님의 생각을 시민사회나 학계와 소통했는데, 시민사회는 국제제재나 미국의 제재를 앞세우다 보면 남과 북 사이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반론했습니다.
문재인 : 그렇죠, 맞는 말이에요. 그래서 답답한 것이 사실이죠. 앞에서도 말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때는 그런 제재의 틀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남북 간에 마음껏 합의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2018년 판문점과 평양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아주 풍성하고 실용적인 합의를 이루어냈어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어요. 결국은 제재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죠. 답답하고 아쉽습니다. 화도 나고요. 그렇지만 남북 간에 저지르듯이 할 수는 없는 거에요. 미국이나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우리가 북한을 견인하듯이 미국도 우리가 견인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거죠. 실제로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지 않았다면 거의 가능했던 거 아닌가요? 우리가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정상을 봤죠. 정상을 봤고... 언젠가 다시 노력이 재개된다면 그때는 정상에 오를 거라고 믿습니다.
진보 진영의 비판은 다분히 결과론적인 비판이죠. 그러나 평화라는 것은 끊임없는 과정이에요. 이루지 못한 부분을 갖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이루어낸 부분을 평가해야죠. 진보 진영은 민주정부가 이룬 개혁의 성과를 당연한 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기득권 질서를 바꾼다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 과정과 성과가 온당하게 평가 되어야죠. 많은 개혁과 성과를 거두고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장을 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당시 진보 진영은 실패한 정부로 규정하는 평가의 오류를 범한 바가 있습니다.
p55. 하노이 북미회담 노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뒷얘기
문재인 :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나중에 내게 후회하는 말을 하며 미안해했어요. 자신은 수용할 생각이 있었는데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아주 강하게 반대했고, 그래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당신 생각은 어떻소 물어보니 폼페이오도 볼턴에게 동조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거에요. 아마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다음에 다시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죠. 말하자면 다음에 더 유리한 거래를 하고자 했을 수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후 미국이 대선 국면에 들어서고 또 코로나 상황이 되고 하면서 다시 기회가 오지 않았던 거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으로 제안한 판문점 삼자회동으로 한번 흐름을 바꿔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고요.
그거 참... 두고두고 통탄스러운 일이죠. 북한도 북미회담이 시작된 이후로는, 북미회담을 통해서 제재를 해결하고 그 속에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이 함께 해결되는 프로세스를 바랐던 것인데, 지금 지나고 보니 그거라도 해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아주 크죠.
p60
문재인 : 박근혜 정부 때 주한미국대사였던 리퍼트 Mark Lippert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아무런 이견이 없는 동맹이 건강한 동맹이 아니라 이견을 마하고 서로 토의하는 것이 건강한 동맹이다." 내가 경험해봐도 우리가 합리적인 제안을 하면 미국이 수용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뭔가 요구할 때도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면 그렇지 않다고 반대 의견을 분명히 이야기하면 미국에서 수긍을 합니다. 면전에서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을 꼭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첫 번째 정상회담 때 미사일 지침 해제에 합의한 후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개정 문제를 제기햇어요. 당신들 너무 협상도 잘하고 장사도 잘한다. FTA 하고 나니까 한국만 덕을 많이 보고 미국은 적자를 본다고요. 예상됐던 일이어서 내가 공부를 미리 하고 갔어요. 그래서 한미 FTA 이후에 오히려 한미 간 적자폭이 줄어들었다. 또 근래 적자가 개선되고 있다. 그래서 이게 우리만 혜택 보는 것이 아니라 미국도 혜택을 봐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있다고 이야기했죠. 그래도 어쨋든 한국이 계속 흑자를 보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양국 간에 워킹그룹을 만들어서 한미 FTA의 성과에 대해 함께 검증을 해보자. 그러고서 논의하자고요. 이렇게 내가 제안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수긍하는 겁니다. 더 이상 무리한 주장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 검증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개정으로 그칠 수 있었지요.
사드 문제 같은 경우도, 그냥 기존에 들어온 사드는 우리가 전 정부의 합의를 존중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되 환경영향평가 등 우리가 국내법 절차를 거쳐야 하고, 추가 배치는 우리와 합의 없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미국도 우리 의견을 수용했죠.
최종건 : 네, 결국은 그때 우리 대내외적인 토킹 포인트가 민주주의적 절차를 지킨다는 거였고, 미국도 우리의 국내법 절차를 당연히 존중한다는 것이었어요. 미국도 이런저런 협의를 하거나 협상을 할 때 자기네가 좀 궁해지면 미국 국내법을 이야기하거든요. 우리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국내법을 어긴 대통령을 우리가 탄핵시킨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도 마찬가지죠. 이 두 사안은 어쨌든 전 정부가 했기 때문에 우리가 좀 불편했어요. 내용도 마음에 안 들었고, 여러 가지 실질적인 피해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대통령님은 외교의 연속성을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대통령으로서 어려운 결단이었어요. 사드 배치에 비판적이었던 진영, 그리고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에 매우 비판적이었던 진영에서는 몹시 실망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왜 그렇게 연속성을 중요하게 여기신 겁니까?
문재인 : 나도 반대했던 입장이니 비판을 이해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부 간에 합의했으면, 개인적으로 반대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다음 정부에서 합의를 그냥 깨뜨릴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드에 대해서는 이미 대선 때 공약을 수정했어요. 내가 야당 대표일 때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선 때는 사드의 효용성과 관련 국내법 절차에 대해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죠. 대통령이 됐을 때 입장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어요.
진보 진영에서는 왜 야당 때 주장했던 것처럼 선명하게 철회하지 않냐 이야기할 수 있고, 반대로 미국 측에서는 사드 배치를 철회하는 쪽으로 가는 거 아니냐고 의구심을 가질 수 있었겠죠. 그때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고 다시 가져가라고 할 수 는 있었겠지만, 만약 그렇게 했다면 한미동맹에 큰 균열이 생기는 거죠. 그것을 국민들이 동의할 리가 없고요. 그렇게 되면 평화프로세스를 힘 있게 추진하기는 불가능해지죠. 그러면 대한민국의 국제적이 신뢰도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p69
최종건 : 저는 기억나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님! 내가 사는 트럼프타워에 LG TV만 있어요. 한국은 우리가 지켜주는 사이에 LG TV 같은 거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파는데 우리는 무역적자가 많잖아요!"라고 하니까, 그때 대통령님이 "그 LG TV 다 텍사스에서 만드는 겁니다. 메이드 인 텍사스! 그러니까 그거 자랑하고 다니셔도 됩니다!"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반론하지 못하더라고요. 트럼프 대통려이 자기 식대로 계속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할 때는 대통령님이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에 미국이 한 전쟁에 다 나갔어요. 그래서 우리가 피로 맺은 혈맹입니다.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우리가 유일하죠!" 하면서 대응하셨어요.
우리 정부 출범 당시에, 트럼프-문재인 조합이 2018년에 보여준 것처럼 그렇게 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하고 케미가 맞는다, 말이 통할 것 같다고 느꼈던 포인트나 시기가 언제쯤이었나요?
문재인 : 첫 번째 정상회담 때 뜻밖에 잘 통했어요. 트럼프 대통령 측근 참모들이 신기하다고 이야기했어요. 트럼프 대통령이 나와 스타일이 전혀 다른데, 어떻게 그렇게 케미가 잘 맞냐고... 트럼프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했죠.
최종건 : 2017년 2월에 맬컴 턴불 호주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려고 전화했는데... 트럼프가, 그들은 통역 없이 영어로 얘기했을 거 아닙니까, 전화를 확 끊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 화가 나서 그랬다는 거죠. 그런 게 알려져서 독일 메르켈 총리도 나한테 "어휴! 트럼프, 김정은 그 두 터프가이를 어떻게 서로 마주 앉혔어요? 비법이 뭡니까?"라고 묻기도 했어요.
p78
문재인 :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외교의 협소함, 그걸 우리가 넘어서야겠다는 비판적인 목표의식이 있었고요. 미국뿐 아니라 EU 및 ASEAN과의 관계,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루 발전시키는 균형외교를 해야겠다는 외교 철학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대선을 준비할 때부터 대통령 취임 즉시 그쪽 지역에도 특사를 보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어요. 그 구상대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뿐 아니라 ASEAN과 EU에도 특사를 보냈습니다. 마침 당시 김희중 대주교님이 바티칸 가는 길에 자청해주셔서 바티칸에도 김희중 대주교님을 특사로 보냈고요. 그 특사 외교가 바티칸과의 외교관계를 크게 발전시킨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교황님과 바티칸의 지원을 받는 데 큰 도움이 됐죠.
최종건 : 균형외교가 왜 중요한가요? 균형외교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문재인 : 균형외교는 세계 모든 나라가 추구하는 것이에요. 특히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조건 때문에 균형외교가 중요합니다. 미·중·일·러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런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우리는 역사상 많은 외침을 겪었죠. 지금의 남북분단도 외세에 의해 초래된 것이고요. 그래서 우리에게 균형외교는 안보를 위해서나 경제를 위해서나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국가 생존전략입니다. 그런데 과거 역사에서, 또한 근래에 와서도 편향된 이념에 사로잡힌 편중외교 또는 사대외교로 국난을 초래하곤 한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죠.
균형외교는 외교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 면에서도 중국 편중을 벗어나 포스트 중국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매우 중요하 국정과제였습니다. 한편으로 매우 엄중했던 안보위기 또는 전쟁위기 상황을 평화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평화프로세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죠.
균형외교라고 하면 보통 미국과 중국을 놓고 생각하는데, 더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ASEAN 국가 가운데는 북한과 오랫동안 수교해온 나라가 여럿 있어서 그들의 적극적인 지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에 큰 힘이 됩니다. 실제로 싱가포르와 베트남은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의 장소를 제공해 큰 기여를 했죠.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는 남북한 유일하게 함께 참여하는 다자안보협의체이기도 합니다. 신북방국가들도 북한과 전통 우방국들입니다. 러시아는 6자회담 참가국이지요. 몽골도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남북대화의 중재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고, 북미정상회담 장소 제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EU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죠. 우리 정부의 균형외교는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신남방국가, 신북방국가, EU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최근에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고배를 마셨죠. 국제기구의 수장이나 이사국이 되기 위해서 또는 UN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되거나 세계대회를 유치하려면 경쟁해야 하고 투표로 결정하게 되는데, 그때 든든한 지지 세력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프랑스 같은 경우,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의 지지를 받기 때문에 늘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경쟁우위에 서게 되죠. 그런 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친구 국가를 많이 확보하는 것, 그것이 국가의 경쟁력이 되니까요.
한편으로 우리가 남북관계 발전, 화해협력, 평화공존 정책에서 구상했던 것이 한반도가 갖는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를 살려서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량국가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말한 교량국가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경험을 살려 개도국들과 선진국들을 잇는 가교국가가 되자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북쪽으로는 북한을 거쳐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북방국가들과 신북방정책을, 남쪽으로는 해양을 통해 ASEAN 및 인도와 신남방정책을 펼쳣어요. 그런 외교적인 큰 그림을 가지고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추진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외교적인 상상력의 확대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해요.
p86
문재인 : 남북 간의 대화를 위해 필요 때문에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거나 유예하거나 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과거 노태우 정부 때 팀 스피릿 훈련을 중단한 것이 있었지요. 그 같은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이후 남북합의의 출발점이 된 1991년 남북기본 합의서가 만들어질 수 있었죠.
그런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전환시키고 또 거기에 북한이 참가하게끔 유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기간만이라도 한미연합훈련을 유예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가 대두됐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례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의 훈련이기 때문에 정세 변동과 무관하게 중단 없이 계속돼야 한다는 인식이 한미 양국의 군 쪽에서 강했습니다.
청와대 참모들도 의견이 갈렸기 때문에 내가 결단을 해야 했어요. 정례적인 군사훈련을 함으로써 얻는 안보상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평창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대전환시키고 거기에 북한이 참가하게 해서, 2017년 1년간 지속됐던 전쟁위기를 불식하고 평화 국면으로 전환해내는 것이 안보 면에서 보더라도 훨씬 가치가 크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했던 거죠.
결국 한미연합훈련 유예 방침이 2018년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의 유화적인 신년사부터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까지 국면의 대전환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요.
최종건 : 저는 당시 군비통제비서관이어서 훈련을 유예하자는 청와대 목소리의 한 부분이었는데요, 브룩스 당시 한미연합사 사령관도 모든 옵션을 다 검토하고 있었는데, 북한이 평창에 온 것은 연합훈련 유예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한미연합사 사령관으로서 한반도 안보를 관리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군의 관점에서도 긴장관계가 고조되는 것보다 아무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면 부담이 줄어드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미국 사람들이 브룩스 사령관을 두고 온건파라고 얘기하진 않거든요. 오히려 더 강경한 군인인데 그런 군인들도 평화 혹은 평화적인 환경을 더 선호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문재인 : 그렇게 하기 위해서, 취임 직후부터 길게 내다보면서 안보와 국방을 중시하는 여러 행보를 계속해왔습니다. 취임 직후 한미연합사를 방문한다거나 우리 합동참모본부와 국방부를 방문하기도 하고,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는 평택미군기지를 방문해 거기서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하고 장병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죠. 현무미사일 발사시험을 참관하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맞서 우리 역시 상응하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공중폭격 훈련을 실시하는 등 강력하게 맞대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헤 안보를 중시함녀서 강한 국방, 강한 한미동맹, 강력한 연합방위 대세를 강조하는 행보를 축적해놓았기 때문에 연합훈련을 유예한다는 결단을 크게 저항받지 않고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종건 ; 저도 자료를 찾아봤는데요, 대통령님의 당시 언어가 어느 보수 대통령보다 강했습니다. 이를테면 2017년 9월 3일 북한이 핵실험을 했습니다. 수소탄 시험에 완전 성공했다고 하고요. 그때 대통령님이 NSC 전체회의를 주관하셨는데, "심대하고 엄중한 도전이다.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선택은 북의 몫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자멸이다"라고 강력하게 규탄하는 말씀을 하셨어요.
9월 15일 북한이 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합니다. 그때도 대통령님은 NSC 전체회의를 주관하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는 것이 안보와 경제발전을 보장받는 진정한 길이다"라고 강조하시고,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셨습니다.
9월 17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두 분 정상은 그간 미국이 취한 대북한 압박과 제재 정책 그리고 한미가 8월 7일 강원도 마차진에서 공동으로 미사일을 대응 발사한 것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동시에 북한은 곧 대화로 나와야 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도자료로 냈습니다.
이렇게 한미 간의 신뢰 구축과 연합훈련 유예 발표가 합쳐져서 북한이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사람들은 2018년에 시작한 것으로 보지만, 전쟁의 기운이 가장 높았던 시기에 시작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p99. 혼밥 논란과 공공외교
최종건 : 한미 신뢰와 한중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 나누고 있는데요, 이 표현을 아십니까? '문재인 대통령 아침세트' 베이징의 식당에 가면 문재인 대통령 아침세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님이 방중하셨을 때 일종의 공공외교 차원으로 베이징 시민이 일상적으로 가는 아침 식당에서 조찬을 하셨습니다. 그게 어이없게도 혼밥 논란으로 퍼집니다. 그런데 한 번도 거기에 대해서 말씀을 안 하셨거든요.
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17121835317
https://m.blog.naver.com/wlgusthgus36/221317815800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의 서민식당을 방문한 것은 친서민 이미지를 위한 계획적인 행보인데 조선이 이걸 비틀어서 혼밥으로 중국정부에게 홀대받았다며 매도하는 프레임을 잡았으며 이게 꼴통보수들을 통해서 널리 퍼지게 됨.
문재인 : 우리 스스로 수준을 떨어뜨리는 이야기지요. 예를 들면,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에 가서 쌀국숫집을 방문해 서민적인 음식을 먹고 하는 것은 베트남 국민에게 다가가 마음을 얻으려는 큰 성의 아닙니까? 외교는 상대 국가와 그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무슨 관광 명소를 방문하는 것보다 대중적인 시장을 찾아간다든지 또는 서민들의 식당을 방문해서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는 행보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는거죠.
더구나 해외순방 때 오찬이나 만찬은 외교 일정 속에 들어갈 때가 많지만 아침은 원래 숙소에서 따로 먹는 건데, 그 시간에 서민 식당을 이용하는 비공식 외교를 한 것이지요. 서민식당 이용은 중국에서만 한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와 베트남 등에서도 여러 번 시도했어요. 그것이 현지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아서 지금도 중국 식당에서는 그때 내가 먹은 음식이 '문재인 대통령 아침세트'라는 메뉴로 만들어져 많이 팔리고 있고, 내가 앉았던 좌석도 표시해놓았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중국 여행을 다녀온 분이 사진을 찍어 왔는데, 그 식당은 그 때문에 장사가 잘돼서 크게 확장했다고 하고, 4면 벽에 우리 일행이 식사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게시했더군요. 그런데 그것을 혼밥 논란으로 만들어버리니까, 우리 외교를 굉장히 후지게 전락시키는 거죠. 기본적으로 공부가 부족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게 사실 진짜 외교임)
https://m.blog.naver.com/seungohhan/221236589918
p109
문재인 : 미국 중심 외교를 하다가 냉전이 무너지는 시기를 맞아 공산권과 수교하고 1991년에 남북한 UN 동시 가입을 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외교정책에서 그야말로 대전환을 한 겁니다. 북방정책을 통해서 우리 외교가 다변화된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우리가 개방통상국가로 나아가면서 중진국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죠. 당시 진보 진영에서는 남북한 UN 동시 가입이 분단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을 했는데, 그런 인식 때문에 국제법적으로 두 국가가 된 남북한의 관게에 대한 담론이 발전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어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로 남북관계에 획기적 전환도 있었고요. 결국은 남북기본합의서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2018년 판문점과 평양에서의 남북정상선언으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아쉬운 것은, 북방정책을 통해서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할 당시 우리는 소련, 중국, 동구권과 수교를 했지만, 북한은 미국이나 일본과 관계 정상화를 못한 것이죠. 당시 한국 정부가 견제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멀리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결국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남북 간에 한국의 비교우위가 더 커지게 됐죠. 우리로서는 좋은 점이었지만, 한국의 비교우위가 커질수록 북한이 비대칭 전력인 핵과 미사일 개발로 나가게 된 측면이 있는 것이죠. 그렇게 보면 당시 북한도 미국, 일본과 수교해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용인하고 이끌어주는 더 통 큰 정책을 펼쳤다면, 남북 관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쨋든 우리가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서 경제협력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북한을 거쳐서 북방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철도가 러시아나 중국의 철도와 이어져서 유럽까지 갈 수 있는 철도협력이나,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배관을 통해서 북한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오게 하는 에너지협력 등 우리의 경제영역이 북한을 지나 대륙으로, 북방으로 뻗어가는 그런 시대가 우리가 꿈꾸는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EU의 역사처럼 동북아 철도공동체와 에너지공동체가 다자안보체제로 발전해가는 큰 구상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가 고구려시대처럼 영토상으로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경제력이나 문화가 대륙까지 미치는 시대를 다시 복원한다는 면에서도 가슴 뛰는 일이지요. 신북방정책의 대상 국가들,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우리와 인종적으로 근친성이 있습니다. 500만 고려인이 살고 있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절실히 바라고 있어서, 우리의 경제성장 경험이나 모델을 공유할 수 나라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