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과 그 장애물. 궁극적으로 이로 인해 야기될 식량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

 이미 정해진 미래인 기후위기와 식량위기에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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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

 1914년 8월 2일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 바로 다음 날, 프란츠 카프카는 체코 프라하에서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오후 수영 강습소.

 후세의 역사가들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하는 일도 동시개 최고의 지성인에게는 그저 그런 일상으로 인식된다. 수백만 명이 죽게 될 전쟁과 오후의 수영 강습은 같은 비중으로 취급된다. 

 역사가 일어나는 순간에도 인간은 현재를 체험한다. 그 당시의 사람들도 역사적 사건을 중대하게 인식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시대의 비극조차 사후에나 이해된다.

 

p22

 아직도 기후가 변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물론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는 데 그나마 위안을 느끼낟. 그리고 기후가 정말 변할 것인지를 묻는다. 하지만 논점이 틀렸다. 지금의 기후는 30년 전 부모들이 젊었던 시절의 기후와는 전혀 다르다. 앞으로 30년은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보지 못한 전혀 다른 지구를 경험할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그 변화를 언제 깨달을 것인가이다. 이미 강원도 철원에서 사과가 재배되고 제주도의 한라봉은 남해안까지 올랐왔다. 

 

 이미 변해버린 것을 부여잡고 변화가 언제 올지를 묻는 사람에게 변했다는 것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다. <기후전쟁>의 저자 하랄트 벨처는 이를 '지시 프레임reference frame'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미디어나 주변을 통해 더 자주 특정 정보를 접하게 되면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적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바탕 교체baseline shift'현상을 겪게 된다. '바탕 교체'는 나란히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면서 마치 정지해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방향을 안내하는 '지시 프레임'을 변화시킨다.

 

 기후변화만 그런 것도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가 위해하다는 정부 발표는 몇몇 학자들의 불완전한 연구 결과로 희석되었다. 언론은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 사실과 거짓 앞에서 진실의 편에 서기보다는 기계적 중립을 선택한다. 논란은 커져가고 결국 지루한 법적 공방을 거쳐 사실이 인정될 때까지 피해는 확산된다. 미국의 담배 소송에서 벌어졌던 일이고 우리나라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p25

 나는 IPCC 제4차 보고서AR4를 체택하는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과학적인 결과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런데 실제 회의장 분위기는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회의에서는 과학자들이 제출한 요약 보고서를 회의장 앞 스크린에 띄우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분해하면서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지를 따져 물었다. 어떤 날은 조동사 하나를 선택하는 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예를 들면, 과학자들이 쓴 "기후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라는 표현은 협상가들의 지루한 다툼을 거치면서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약간 있다"라는 정도로 완화되었다. "화석연료가 원인이다"라는 문장은 "온실가스 증가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라는 정도로 바뀌었다. 가능하면 화석연료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주로 러시아, 중국 그리고 미국의 대표들이 기후변화가 영향은 있지만 아직은 불확실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유럽 대표단는 과학자들의 표현을 그대로 남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 이런 논쟁이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IPCC는 과학자의 모임이지만 정부 간 협의체로 불리고, 요약본 한 문장 한 문장은 국가간 협약만큼의 힘을 갖는다.

 

p26

 IPCC는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적용하더라도, 늦어도 2040년에는 1.5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3년 전의 'IPCC 특별보고서'에 비해 그 시기가 10 년 앞당겨졌다. 어쩌면 2030년에 FIFA 월드컵이 개최디ㅗ기 전에 이미 1.5도의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전 인류가 열심히 노력하면 2100년 정도에는 다시 사람이 살 만한 지구가 될 수 있다는 평가 결과를 제시했다.

 이 뉴스를 훑어보면서 어쩌면 올해가 내가 살아갈 시간 중 가장 시원하 해였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며칠 후 요약본의 원문을 구해 읽었다. 첫 느낌은 "봐, 우리 과학자들이 하는 말이 맞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제6차 보고서에서는 이전 보고서의 기후 모델에서 예측한 그대로 지구 평균기온이 올라갔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리고 이전 보고서서 했던 처럼 다시 한번 경고했다.

 "인간의 영향이 대기, 바다, 육지를 온난화시켰다는 것은 명백하다. 대기,해양, 빙권 그리고 생물권에 광범위하고 급격한 변화가 생겼다. 기후 시스템의 여러 측면을 고려하더라도최근에 벌어진 기후 시스템 전반에서 일어난 변화의 규모는 수 세기에서 수천 년에 걸쳐 전례가 없는 수준이다.

 

p31

 육지와 해양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의 56%만 흡수했고, 이 비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이 흡수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거의 2배를 배출하고 있다.

 이렇게 배출된 온실가스는 지구의 평균기온을 1.4도까지 올렸다. 그렇지만 화석연료의 연소 중에 배출된 미세먼지와 매연 등 에어로졸이 햇볕을 차단해 0.3도만큼 지구의 온도를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1.1도만큼 상승했다. 

 

p32

 기후 과학자들은 가장 이상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경우부터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를 바꾸고 친환경적인 경제 발전 경로를 택하는 경우 등 여러 가지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가정해 미래 기후를 예측한다. 우리는 이것을 '기후변화 시나리오'라고 부른다. 기후변화 시나리오는 이상적인 경로부터 현재처럼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경로까지 다섯 개의 시나리오로 미래를 예측한다. 그중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불가능한 가장 이상적인 경제 발전 경로(SSPI-1.9)를 전세계가 택한 경우에도 100년 전(1850~1900)과 비교해 100년 후(2081~2100)에는 1~1.8도(최적 추정 1.4도)가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다섯 개 시나리오 중 가장 현실적인 목표로 생각되는 중간 경로(SSP2-4.5)를 택했을 때, 2.1~3.5도(최적 추정 2.7도)가 상승한다. 이미 1.5도의 목표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파리협약에서 합의한 파국을 막기 위한 2도도 가뿐히 넘는다. 가장 높은 시나리오 SSP5-8.5의 경우에는 3.3~5.7도(최적 추정 4.4도)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에서 있었던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일어났던 수준이다.

 그럼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인 2.5도 상승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렇게 설명하면 느낌이 바로 올지도 모르겠다. 최근 300만 년의 지구 역사 중 가장 높은 평균 기온을 금세기 말에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1.5도의 상승에서 멈추려면 어떤 경로를 따라야 할까? 안타깝게도 가장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던 SSPI-1.9의 경로이다.

 1.1도가 상승한 세계는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과 산불의 증가, 열대성 저기압의 강도와 빈도의 증가, 북극의 해빙, 빙하와 영구 동토층의 감소를 나타내며 인간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1.5도의 세상은 우리가 결코 견딜 만하다고 느끼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이상적인 미래이다.

 

p195

 가끔 탄소중립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다.

 "혹시 탄소중립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무슨 제재가 있나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이렇게 대답한다.

 "파리협약에서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떤 제재도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도하는 표정이 스쳐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더 한마디 덧붙이고 싶어진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가능한 방법을 찾을 것인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설사 탄소중립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서 목표치와 비슷하게 맞춰야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p230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농축수산물이 자국 소비량의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식량 공급만의 안저성은 매우 취약한 것이다. 농경지가 별로 없는 싱가포르는 식량자급율을 2030년까지 30퍼센트까지 높이는 '30 바이by 30'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주로 어류 양식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특이한 것은 무려 170개국에서 식품을 수입한다는 사실이다. 전략적 수입선 다변화의 결과이다. 싱가포르가 이런 다변화 정책을 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물 공급 협정에 따라 전체 물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공급받는다. 그런데 말레이시아는 여러 번 물 공급 협정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위협해 싱가포르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식량 역시 일부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경우 같은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경제 상황을 겪고 있지만, 곧 다가올 기후 위기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피해일 수 있다. 식량을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싱가포르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p247

 우리나라 농업은 경제 수준에 비해 낙후되어 있다. 경제는 선진국인데 농업은 개발도상국 수준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 책의 목적이 우리나라 농업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왜 그런지 간략히만 설명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선진국의 농업 발전 과정을 보면 농장 규모는 커지고 농업 인구는 줄어드는 과정이었다. 농기계가 도입되면서 한 명의 농부가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아프리카의 농업 현장을 방문했을 때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넓은 땅을 가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경영하는 농경지 면적은 1~2헥타르에 불과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작물이나 영농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규모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가당 경지면적은 1.08헥타르이다. 전형적인 개발도상국형 농업이다. 반면에 네덜란드와 독일의 농장 규모는 대체로 30헥타르를 넘어간다. 물론 농가 수로는 5헥타르 미만의 소농이 절반 이상을 넘어가지만, 실제 농업 생산에서 담당하는 비중은 5퍼센트 내외에 불과하다. 반면에 50헥타르 이상을 경작하는 대농은 5퍼센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농업 생산 비중은 50퍼센트를 크게 상회한다. 일본은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농업 구조였지만 지금은 유럽과 비슷한 구조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농가의 규모가 문제가 되는 것은 생산성을 높이고 농업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밀 농업기술을 적용하려 해도 투자 대비 효율성을 얻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농촌의 공동화와 고령화로 농기계 역할이 더 중요해졌지만 투자 대비 효율성의 문제로 농기계에 대한 투자 역시 지체되면서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도 심각해졌다. 영농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들녘 단위 농업경영체 육성처럼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지니는 농업에 대한 인식의 한계에 다다른다. 농사를 하나의 사업으로 보기보다는 삶의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다.

 

p313

 유럽이 처한 상황과 자연환경 조건 역시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 우리는 힘들게 해야 겨우 비슷하게라도 할 수 있다. 유럽은 멈추면 쉬어가는 환경이지만, 우리 농업은 멈추면 넘어진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이렇게 빠르고 혁신적인 국가로 만들어온 배경이기도 하겠지만 끊임없이 인재를 갈아넣어야 지속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온 것이 대견하게 느껴지지만 언제까지 가능할까라는 우려도 든다.

 

p315

  재생에너지 전환에 가장 열심인 독일은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를 코페르니쿠스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그 코페르니쿠스의 추진 전략 수립을 위한 프로젝트에 아리아드네의 이름을 붙였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미궁을 헤쳐나가 지구온난화라는 괴물을 잡기 위해서는 길을 안내할 아리아드네의 실이 다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 프로젝트의 추진을 위해 26개 파트너가 참여하는 컨소시옴을 구성하고 과학, 정치, 비즈니스 등 다방면에 대한 연구와 시민 사회단체 간 공동 학습 과정을 통해 에너지 전환의 방향을 설정한다. 그런데 내가 놀랐던 것은 다른 데 있었다. 독일은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아리아드네 프로젝트, 즉 기후 위기 대응 에너지 전환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연구에 3년간 400억 원을 지원한다는 것을 봤을 때이다. 우리나라는 걸핏하면 2000만 원, 삼 개월에서 육 개월짜리 정책 분석 또는 대안 개발 과제를 발주한다. 수의계약 범위를 넘지 않기 위해서이다. 많아도 1억 원 정도의 정책 과제만 보다가 3000만 유로라는 수치는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p327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새로운 과학은 당대의 반대론자들을 설득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자들이 모두 죽은 후 새로운 세대에게 수용되면서 승리를 거두는 법"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역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기후변화를 초래한 것은 우리 세대이지만 우리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가 정치적 의사 결정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기후 위기도 해결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p331

 농장주의 평균 연령은 67세를 넘어가고 40세 이하는 1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대로 가면 이미 낮은 식량자급률마저 지키는 것이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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