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어보면 옛날 우리의 아이들은 정말로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시기에는 친구들과 희로애락을 다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리고 자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너무 울컥하고 가슴이 먹먹하여 더는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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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빨간 알사탕 하나
장에 다녀오신 할머니가 모시 손수건에 싸 꼬옥 품고 온 빨간 알사탕 한 알을 입에 넣어주셨다.
"와아 달다 할무니, 겁나게 다요. 세상에서 젤 달고 맛있다아."
볼이 불룩한 알사탕을 빨며 나는 황홀감에 소리쳤다.
처음 먹어 본 알사탕의 단맛은 며칠이 지나도록 내 입 속과 몸 안을 굴러다녔다. 할머니가 잘 익은 대추알을 줘도, 붉은 홍시랑 몰캉한 다래알을 입에 넣어줘도 "아 거시기 알사탕 참 달고 맛있었는디라" 온통 알사탕 생각뿐이었다.
신식 알사탕의 강렬한 단맛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혓바닥을 물들인 빨간 색소만큼이나 진득하니 나를 끌어당겼다.
흰 눈이 내리고 문풍지 바람이 차운 밤, 처마 아래 매달은 대바구니에서 인절미를 꺼내 화롯불에 구워 호호 불어 조청에 찍어 입에 넣어주던 할머니가 그랬다.
"아가 맛있냐. 수수조청 맛이 어떠냐."
"달고 맛나요, 근디요 알사탕이 더 달고 맛나요. 최고랑께요."
문득 할머니가 침묵하는 걸 느끼며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챈 순간, 알사탕 맛을 본 이래의 내 말과 일련의 일들이 스쳐갔다.
그랬다. 할머니는 곶감이든 떡이든 엿이든 어디선가 선물 받은 그 달고 맛난 것들을 자기 입에 넣지 않고 품고 와 내 입에 넣어주셨는데, "근디 알사탕이 더 달고 맛난디라. 그 빨간 알사탕이..." 흘린 듯이 말해왔던 나는 그만, 구수한 인절미와 달근한 수수조청을 씹으며 울먹였다.
다른 때 같으면 "아가 울지 마라" 품에 안아주실 텐데, 울먹이는 나를 기냥 두고 구부정히 마주 앉아 아무 말도 없는 할머니가 낯설고 멀어지고, 할머니와 나 사이의 어떤 끈이 끊어져 버린 듯 아득했다.
이윽고 할머니가 "아가, 이리 오니라" 울먹이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물그릇을 들어 마시게 했다.
"평아, 알사탕이 달고 맛나지야? 그란디 말이다. 산과 들과 바다와 꽃과 나무가 길러준 것들도 다 제맛이 있지야. 알사탕이 아무리 달고 맛나다 해도 말이다. 그것은 독한 것이제. 유순하고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을 무감하게 가려버리제. 다른 맛들과 나름의 단맛을 가리고 밀어내 부는 건 좋은 것이 아니제. 알사탕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져 불고, 네 몸이 상하고 무디어져 분단다. 그리하믄 사는 맛과 얼이 흐려져 사람 베리게 되는 것이제.
"야아, 할머니, 알겠어라."
"우리 평이는 겨울이면 동백꽃을 쪼옥 쪼옥 빰시롱 '달고 향나고 시원하게 맛나다' 했는디, 올해 동백꽃 맛은 어쩌드냐아. 나는 말이다, 아가. 네 입에 넣어줄 벼꽃도 깨꽃도 감자꽃도 아욱꽃도 녹두꽃도 오이꽃도 가지꽃도 다 이쁘고 장하고 고맙기만 하니라. 이 할무니한텐 세상에서 우리 평이가 젤 이쁘고 귀한 꽃이다만 다른 아그들도 다 나름으로 어여쁜 꽃으로 보인단다. 아가, 최고로 단 것에 홀리고 눈멀고 그 하나에만 쓸려가지 말그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 품에 꼬옥 안겼다.
다음 해 문풍지 우는 화롯불 곁에 할무니, 우리 할무니는 아니 계셨다. 나는 돌아가신 할무니가 그리워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하얀 눈 위에 작은 내 발자국이 총총히 따라왔다.
동백나무 아래 붉고 선연한 동백꽃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으스스 떨면서 언 손으로 동백꽃을 한 줌 가득 주워 쪼옥 쪼옥 빨아먹으며 눈길을 걸었다.
"아가, 맛이 어떠하냐?"
"순하고 맑고 시려요. 달고 향그럽고 맛나요, 할무니."
p54
성서는 복음서라는데, 나에게 성서는 울음의 책이었다. 호세 신부님과 함께 더듬더듬 성서를 읽어나갈 때 내 가슴에 박히는 건 눈물과 탄식과 수난과 죽음이었다. 그랬다. 세상의 큰 울음을 통하지 않고는 복음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울음이야말로 복음이었다. 눈물이야말로 은총이었다.
가난하고 불운하고 슬픈 눈을 가진 예수. 그는 고난받으면서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사랑이 처음이자 전부라고,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었다. 애통하고 분노하고 울면서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다 이루었다' 기꺼이 죽어간 예수가 좋았고, 눈물의 사제인 호세 신부님이 좋았다.
p57. 빗속의 등불들
가을비를 앞두고 다들 벼 수확에 쫓겨서 부지깽이도 나설 만큼 분주한 때였다.
일손을 구하지 못한 어머니는 혼자 겨우 벼를 베어 논바닥에 뉘어놓고는 묶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급히 저녁을 지어 먹고 다시 논으로 나가 볏단을 묶어 세우는데, 꾸물거리는 하늘에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애써 베어 둔 벼가 빗물에 잠겨 들고 있었다. 탈진한 어머니는 벼를 묶어 세우느라 안간힘이었다.
들녘은 어둡고 빗줄기는 거세고 발은 푹푹 빠지고 나락은 젖어 무겁기만 했다. 애가 탄 나는 어찌해 볼라고 볏단을 붙들고 힘을 써 봤으나 이렇게 작고 약한 내가 원망스럽고 아부지 없는 서러움이 차갑게 파고들었다.
그때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일렁였다. 불빛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자 나는 도깨비불인가, 더럭 겁이 났다. 어둠 속에 점점 커지는 불빛 사이로 "가스파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쏟아지는 빗발을 뚫고 등불과 낫을 든 흰옷의 행렬이 보였다. 동강공소에 다니는 저 건너 마을 형 누나들과 어른들이었다.
동네 사람들도 친척들도 이런저런 나름의 일들로 도울 여력이 없었는데, 우리 집 사정을 아는 신자들이 비가 쏟아지자 서로 소식을 들리고 의견을 모아 여기 먼 마을까지 나선 것이다.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젊은 엄니가 이 작은 논 세마지기에 다섯 아이 생계를 걸고 사는 걸 알기에, 자기들 수확을 뒤로 한 채 십리 밤길을 달려온 것이다.
어머니와 신자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인사를 나누고 일렁이는 횃불 아래 비에 젖은 얼굴들이 빛나고 있었다.
"하이고 장해라. 엄니랑 벼를 다 베어놓았구나이."
그러더니 논바닥의 나락을 세워 짚으로 묶고, 볏단을 지고 논두렁에다 옮겨 둥글게 쌓고, 함께 성가를 부르며 날랜 손길로 일을 해나가는 것이었다.
차가운 빗속에 몸에 돋는 소름과 하얀 입김, 가슴을 데우는 뜨거운 온기, 어둠 속에 일렁이는 등불과 노동의 춤사위 같은 긴 그림자, 빗소리를 타고 울리는 성가 소리...
일을 마치고 어두운 밤길로 점점이 멀어져 가는 등불을 바라보며 어머니와 나는 빗줄기 속에서 성호를 그었다.
p75. 나의 첫 요리
나의 첫 번째 요리는 여덟 살 때, 그러니까 그날 정오에, 느닷없이 해버렸다.
모내기를 앞두고서 동네 일손을 구해 우리 논에 써레질을 하는 날이었다.
"일손은 잘 멕여아지야. 작은아들, 오늘 나 좀 도와주시제."
엄니가 뜨끈한 가마솥에 쌀밥을 안쳐두고 매콤새콤한 서대회 감을 손질해 살강(선반)에 올려두는 사이, 나는 동강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아다 찬물에 담가두고, 갯벌 바다가 어부네에 가서 갓 잡은 커다란 갯장어 두 마리를 대바구니에 담아 끙끙 이고 왔다.
"애썻다. 인자 아궁이에 불을 지피그라. 불티 안 날리게 은근히 때야 쓴다이."
"걱정 마시씨요. 싸릿가지랑 솔잎으로만 곱다시 불 땔께라."
엄니는 부뚜막 위에 된장 한 그릇, 조선파 한 다발, 어슷이 썬 무우, 여린 호박잎이랑 들깨 순이랑 토란 줄기, 절구에 굵게 빻은 고춧가루랑 마늘이랑 생강, 부엌 시루에서 기른 숙주 한 바구니를 가지런히 준비해 두고선 큰 도마를 꺼내 내 다리만큼이나 굵은 갯장어를 다듬고 토막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갯장어가 꿀틀, 한순간에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엄니의 손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몸서리가 치고 난 얼어붙어 버렸다.
으음, 엄니가 신음을 토하더니 한참이나 감은 눈을 번쩍 뜨고 작으나 단호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평아, 정신 차리자. 바가지에 물을 떠라. 여기 손에 부어라. 잘혔다. 방에 가 횟대에 걸어둔 옷 내오니라. 이 치마랑 저고리 벗기고 입혀라. 되었다."
"엄니.... 얼굴에 피..."
나는 엄니가 쓴 머릿수건을 풀어 후다닥 물에 적셔 이마와 볼에 튄 피를 닦았다. 엄니 얼굴빛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파랗게 떨려 더럭 겁이 났다. 엄니는 피 흐르는 손을 감싸 위로 치켜든 채 우뚝 서너디 말했다.
"평아, 내 말 잘 들어라. 물이 끓으면 이 장어를 넣어라. 솥뚜껑이 들썩이고 김이 오르면 여그 된장과 파를 넣고 호박잎과 야채를 넣어라. 마지막에 고춧가루랑 양념을 넣어라. 간을 잘 잡아야 쓴다. 서대회는 고루 잘 무치고 막걸리 식초는 논에 가져가서 마지막에 넣어라. 알겄냐. 다들 일 나갔을 테니 논밭에 가서 작은 엄니나 아랫집 순덕이 누나를 찾아라. 엄니가 급한 일로 출타했다 허고 늦지 않게 일손들 밥 내가그라. 알았지야, 평아, 해낼 수 있겄지야?"
나는 아직 부들부들 떰시롱 애써 씩씩하게 대답했다.
"알았어라, 다 해낼께라. 근디 엄니 혼자 가실라고라..."
엄니는 팔꿈치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움켜쥔 채 날랜 걸음으로 마당을 질러 멀리 떨어진 면 소재 의원으로 가는 것이었다.
혼자 남겨진 나는 겁에 질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귓속에서 잉잉잉 벌이 날고 가슴에 우두두 말이 달리고 엄니의 피 묻은 얼굴만 아른거렸다. 나는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시고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타닥타닥 가마솥이 끓을 때, 엄니가 불러준 순서대로 기억을 불러내며 장어 요리를 시작했다.
"하이고 하느님, 울 엄니 살려주씨요. 울 엄니가 안 불쌍하요. 아부지 델꼬 가 불더니 울 엄니까지 뭔 죄다요. 좀 살려주시씨요."
울며 기도하며 엄니가 맡긴 요리를 마쳤다. 그러고는 숨이 차도록 달려나가 아랫집 순덕이 누나를 찾았다.
"누나 얼러 씼으씨요. 바쁘요이."
나는 논흙투성이인 누나에게 두레박 물을 막 부어주며 재촉했다. 부엌으로 와서 국 맛을 본 누나가 둥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옴마야, 간이 딱 맞네. 맛나게 끓였네잉. 엄니가 한 거보다 평이가 더 맛있게 해부렸네이."
누나는 속도 모르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밥 늦겄소. 싸게싸게 챙기잔께라."
누나와 나는 고봉밥을 담고 김치를 썰고 국통과 그릇을 날래게 챙겨 논가 키 큰 버드나무 아래 밥을 차리고 일손들을 불렀다.
"엄니는 으디 가고 평이랑 순덕이냐?"
"아 공소에 신부님이... 그 눈 파란 신부님이 급하게 불러서라."
나는 애써 둘러댔다.
"하야, 귀헌 장어국이네. 나가 오늘 뭔 복이다냐아."
"하이고야 맛나네. 간도 딱 맞고 입에 착착 감기네잉."
"흐미, 요 새콤매콤 달근한 서대회 맛 좀 보소. 씨원한 동강 막걸리랑. 이 맛에 나가 여그 살제잉. 아 행복지다."
"하여튼 니 엄니 음식 솜씨는 천하제일이여."
나는 엄니가 빈 자리에 마치 내가 우리 집안의 가장이나 되는 양 뒷짐을 지고 힘을 담아 말을 했다.
"맛나게들 많이 많이 드시씨요. 우리 논에 정성 좀 많이 들여 주씨요잉."
어른들이 하하하 웃으면서 나를 놀리고 순덕이 누나도 "아따아따, 쫌 있으면 장가 보내달라겄다야" 호호호 웃음을 날렸다.
나는 집에 돌아와 설거지를 마치고 엄니를 기다렸다. 해가 저물녘에야 엄니가 핼쓱한 얼굴로 작아져서 돌아왔다. 기름 떨어진 호롱불처럼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평아, 이른 대로 했느냐?"
"예, 걱정 마씨요. 다 잘 되었써라."
나는 잽싸게 방으로 달려가 요를 펴고 베개를 놓았다. 그리고 핏자국이 말라붙은 옷저고리를 벗겨주었다. 자리에 누운 엄니가 눈을 감고 신음하더니 하얗게 마른 입술로 더듬거렸다.
"손은 붙였다. 스무 바늘쯤 꿰맸다. 피를 많이 흘려 도중에 어질했으나 다 잘되었다. 감사하다. 오 하느님, 성모님..." 그러고는 스르르 잠에 들었다.
나는 살금살금 들락거리며 내가 아파 누웠을 때 엄니가 해준 것들을 떠올리며 수건을 적셔 이마의 땀을 닦고 따끈한 물로 발을 닦고 팔 자루를 데워 배 위에 얹었다. 그리고 엄니의 낡은 기도문을 펼쳐 읽으며 울먹였다.
엄니가 깨어났을 때 솥 안 더운 물 위에 놓아둔 장어국과 밥을 내왔다. 벽에 기대앉아 상을 받은 엄니가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많이 컸네..."하셨다. 나는 머쓱한 데다 시린 마음이 들킬세라 "아따 얼른 수저나 뜨씨요" 해버렸다.
엄니는 따끈한 장어국을 맛보더니, 밥을 말더니, 점점 빠르게 드시는 거였다.
"맛나네, 잘했네. 아들 밥상을 다 받아보네... 속없이 맛있네."
밥을 다 드신 엄니는 또 잠이 들었다.
울 엄니가 크게 베인 손을 움켜쥐고 핏방울 떨구며 홀로 먼 황톳길을 걸어가던 꿈같이 어질하고 절박했던 그날 이후, 나에게 요리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기치 않은 어느 날, 준비도 연습도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사건이 벌어지면, 울며 기도하며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주어지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꼭 해내야만 하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그날 정오에 시작되었다.
생각할 때마다 아뜩하고 목이 메이는 나의 첫 요리, 내 인생의 첫 요리.
p98
나는 홀로된 울 엄니의 젊음을 먹고 눈물을 먹고 기도를 먹고 어서어서 자라났는데, 엄니의 가르침대로 엄미가 바쳐준 사랑의 힘으로 이렇게 자라났는데, 엄니한테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한 번은 자랑이고 싶었는데, 한 번도 그러지 못해서... 이제는 그럴 수도 없어서... 엄니 미안해.
p100
다음 날부터 산과 들과 바닷가를 누비며 꽃씨를 받으러 다녔다. 고이고이 받은 꽃씨들을 종류별로 한지 봉투에 넣고 꽃 그림을 그리고 꽃 이름을 쓰고, 지끈으로 묶어 서랍에 넣어두었다.
고광꽃 참나리 분꽃 앵꽃 꿩의다리 초롱꽃 패랭이 봉선화 솔체 접시꽃 백일홍 금낭화 붓꽃 하늘매발톱 도라지꽃 구절초 채송화 과꽃 치자 동백꽃 산국화 작약 할미꽃 해당화... 하나하나 봉투가 채워질수록 내 가슴도 부풀었다.
p179 흰 고무신 한 켤레
우리 집 댓돌 위엔 늘 커다란 흰 고무신 한 켤레가 단정히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아침이면 살아생전의 아버지가 신던 흰 고무신을 깨끗이 닦아 댓돌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논으로 밭으로 품앗이를 나가셨다.
학교에 다녀오면 맨 먼저 날 반기는 건 아버지의 흰 고무신이었다. 나는 등에 비껴 맨 책보를 풀어놓고 마루에 걸터 앉아 흰 고무신에 작은 발을 가만히 넣어보곤 했다. 고무신은 내 두발을 포개 넣어도 남을 만큼 컸다.
그 해는 가뭄이 심해 다들 보릿고개 넘기가 힘들었다. 나는 속없이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고 어지러웠다. 해당화가 붉게 피어 향기를 날리던 날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흰 고무신을 씻어 댓돌 위에 놓아두고 멀리로 돈을 벌러 떠나셨다.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가 없었다. 텅 빈 집안이 처음으로 무서웠다. 밤이면 뒷산에서 여우 울음소리가 들리고 막내 여동생은 대숲 바람 소리에도 내 작은 품을 파고들며 엄마 엄마 부르다 잠이 들곤 했다.
댓돌 위에 늘 희게 빛나던 고무신은 하루하루 흙먼지에 빛바래 갔다.
가을 운동회를 마치고 공책 세 권을 상으로 받아 들고 풀 죽은 걸음으로 집으로 왔다. 마당에 들어서니 댓돌 위 고무신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엄마다!
엄니이~ 소리치며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 엄니가 목화꽃처럼 웃고 계셨다. 깨끗이 씻긴 막내는 엄니 품에서 카스텔라 빵을 볼이 미어지게 물고 있었다. 엄니는 긴 머리를 말아 비녀를 꽂던 쪽 찐 머리를 짧게 잘라 파마를 했고 볼위 야위어선지 더 쓸쓸해 보였다.
어머니는 매일 아버지의 고무신을 닦아 댓돌 위에 놓았다.
"아부지가 집에 돌아오면 양복이랑 구두를 벗고 말이다, 이 흰 고무신을 신고 흙마당을 거닐 때가 젤 좋다고 웃곤 했지야. 집안에 어른의 흰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있어야 든든 안 하냐아."
사흘 뒤 엄니는 서둘러 가을걷이를 마치고 다시 떠나야 했다. 엄니를 배웅하러 나간 우물가 정자나무 아래에서 동생은 엄니에게 안 떨어지려고 울며 몸부림을 쳤다. 나는 동구 밖 넘어 신작로를 걸어가는 엄니의 뒷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막내의 손을 꽉 쥐고 울지 않았다.
눈물 젖은 동생을 데리고 걸어오는 골목길이 이렇게 길고 먼지 처음 알앗다. 집에 오자마자 동생 얼굴을 씻기고 방에 데려가 뉘었다. 학교 간 누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어두워 오는 집안에 나 혼자였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엄니가 깨끗이 닦아놓고 간 흰 고무신에 가만히 발을 넣었다. 발등에 물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계절이 흐르고 첫눈이 내리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흙먼지에 뿌옇던 고무신이 댓돌 위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엄마다! 나는 한달음에 뛰어가 문고리를 당기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니이~ 불렀다. 없었다. 방안이 썰렁했다. 막내만 혼자 집을 보다 아기 노루처럼 잠들어 있었다.
나는 슬픔과 배반감에 입술을 깨문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어린 막내 동생도 엄니가 그리웠던 것이다. 그래서 고무신을 하얗게 닦아 놓았던 것이다.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골목을 지나 들길을 지나 방죽길을 숨이 터져라 내달렸다. 눈물이 차가웠다. 돌멩이를 집어 들고 들판으로 하늘로 바다로 내던졌다. 새 떼가 날아오르며 갈대밭이 몸을 떨었다. 나는 못 견디게 쓸쓸하고 슬퍼져서 황톳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흙마당을 쓸고 얼굴을 씻고 아버지의 흰 고무신을 깨끗이 닦아 댓돌 위에 놓아두었다. 그러고는 아무도 없을 때면 마루에 앉아 살며시 내 작을 발을 고무신에 넣어보곤 했다. 어서어서 내 발이 커져서 아부지 고무신에 맞기를, 흰 고무신을 신고 웃으며 걷는 듬직한 아들이 되고 오빠가 되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