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 자체가 아닌 응용분야에 대한 범용 해설서 같은 책.

양자컴퓨터가 과학 및 기술적으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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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5

 자연의 지능은 하향식으로 창조되지 않는다.

 브룩스는 갓 태어난 새끼 동물은 곧바로 걸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계속 넘어지면서 어렵게 배워나가는 것이다. 자연의 키워드는 바로 '시행착오'였다.

 이것은 음악 교사가 재능 있는 학생에게 해주는 조언과 비슷하다. 카네기홀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창조물은 시행착오를 통해 세상을 파악해나가는 일종의 학습기계로서, 실수를 저지를수록 성공에 점점 가까워진다. 

 이것이 바로 '상향식 접근법'으로, 일단 무턱대고 부딪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이 어른을 흉내내면서 세상을 배워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는 자는 동안 끊임없이 옹알이를 한다. 아이가 자는 동안 소리를 녹음했다가 나중에 들오보면 알 수 있다. 깨어 있을 때 들은 소리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p248

 인공지능이 정체기를 겪고 있는 이유는 컴퓨터의 성능이 그 뒤를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뿐만 아니라 학습기계와 패턴인식, 검색엔진, 로봇공학 등도 비슷한 한계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양자컴퓨터가 도입되면 정체 상태를 벗어나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디지털 컴퓨터는 한 번에 1비트씩 계산하는 반면, 양자컴퓨터는 거대한 큐비트 배열을 동시에 계산할 수 있으므로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떨어져서 풀 수 없는 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252

 단백질 분자의 접힘 문제도 이와 동일한 원리로 해결할 수 있다. 즉, 아미노산의 모든 가능한 배열 중 에너지가 가장 낮은 배열을 찾으면 된다. 이것은 등산 중인 사람이 계곡의 가장 낮은 배열을 찾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처음에 등산객은 모든 방향으로 경사진 정도를 확인한 후, 고도가 제일 빠르게 낮아지는 방향을 선택하여 한 걸음 이동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조금 전에 했던 행동을 똑같이 반복하여 또 한 걸음 이동하고... 이런 식으로 내려가다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도 지금 보다 고도가 높아지는 지점'에 도달하면 그곳이 바로 고도가 최저인 지점이다.

 에너지가 가장 낮은 아미노산 배열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는데, 구체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일단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문제를 단순화시켜야 한다. 분자 내부에서는 전자와 원자핵의 파동함수가 복잡한 상호작용을 교환하고 있는데, 이 모든 요인을 고려해서 디지털 컴퓨터로 계산한다면 다음 섹에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소한 요인들(전자와 원자핵의 상호작용, 전자끼리의 상호작용 등)은 과감하게 무시하는 게 좋다.

 이제 프로그램이 준비되었으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차례다. 첫째, 다양한 아미노산을 이어붙여서 커다란 배열을 만든다. 이것은 단백질의 형태를 흉내낸 '장난감 모형'에 해당한다. 특정 원자들이 결합할 때 형성되는 각도는 주최 측이 제공한 기본정보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로부터 단백질의 형태에 대한 초기 근사치를 얻을 수 있다.

 둘째, 선택한 배열에서 전하분포에 의한 에너지 결합이 이동하는 방식을 알고 있으므로(이 정보도 기본으로 제공됨), 이로부터 단백질 분자의 총에너지를 계산한다.

 셋째, 선택한 결합을 조금 비틀거나 회전시켜서 동일한 계산을 수행한 후, 이전의 에너지와 비교하여 작은 쪽을 선택한다. 이것은 등산객이 각 지점에서 모든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어보는 것과 같다.

 넷째, 에너지가 이전보다 커지는 배열을 모두 버리고, 작아지는 배열만 유지한다. 그러면 컴퓨터는 원자가 이렇게 이동해야 분자의 에너지가 작아지는지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미노산의 배열을 비틀거나 통째로 바꿔서 동일한 과정을 반복한다. 단계마다 에너지가 감소하는 아미노산 배열을 찾아나가다보면, 결국 에너지가 가장 낮은 배열에 도달하게 된다.

 원자의 위치를 계속 바꾸면서 목적지로 접근하려면 엄청난 양의 계산을 수행해야 하는데, 지금의 디지털 컴퓨터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자잘한 요인들을 과감하게 무시한 채 컴퓨터를 가동하여 몇 시간, 또는 며칠 안에 단순화된 버전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처음에는 한마디로 참담함, 그 자체였다. 컴퓨터가 예측한 분자는 X선으로 알아낸 실제 모양과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컴퓨터 학습 프로그램이 정교해짐에 따라 결과도 점차 개선되었다.

 지난 2021년에 '구글과 손을 잡고 알파고를 개발했던 딥마인드가 알파폴드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무려 35만 종에 달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해독했다'는 뉴스가 터져나왔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25만 종의 단백질까지 새로 발견했다고 한다. 인간유전체 프로젝트에 나열된 단백질 2만 개의 3차원 구조가 밝혀진 것이다. 뉴스에 발표된 목록에는 쥐와 초파리, 그리고 대장균에서 발견된 단백질도 포함되어 있었다. 딥마인드 창업자는 학계에 알려진 모든 단백질을 포함하여 총 1억 개가 넘는 단백질의 데이터베이스를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근사적 방법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과가 X선 결정학으로 얻은 결과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슈슈뢰딩거 방정식에서 많은 항을 삭제한 채 계산을 수행했는데 실제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으니, 이들의 근사법은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p274

 일반적으로 염색체의 길이는 세포가 분열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진다. 예를 들어 피부세포는 60번쯤 재생된 후 노화를 겪다가 결국 죽은 세포가 된다. 방금 언급한 숫자 '60'을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라 하는데, 세포가 죽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즉, 세포에는 죽을 때를 알려주는 생체시계가 내장되어 있다.

 

p390

 코펜하겐 해석이나 다세계 해석 말고 또 다른 해석은 없을까? 있다. 주어진 계(고양이)의 파동함수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붕괴된다는 '결어긋남이론decoherence theory'이 바로 그것이다. 즉, 외부 환경은 이미 결어긋남 상태에 있기 때문에, 고양이의 파동함수가 외부환경과 조금이라도 닿기만 하면 곧바로 붕괴된다는 거이다.

 결어긋남이론을 도입해도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은 간단하게 해결된다. 이 문제에 '역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유는 상자의 뚜껑을 열지 않는 한 고양이의 생사 여부를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인 답(코펜하겐 해석의 결론)은 '뚜껑을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지도, 죽지도 않은 중첩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어긋남이론에 의하면 고양이의 몸을 구성하는 원자는 상자 속의 공기 원자와 이미 닿았기 때문에 뚜껑을 열기 전에 고양이의 파동함수가 분리되고, 따라서 고양이의 상태도 뚜껑을 열기 전에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

 양자역학의 정설로 통하는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고양이의 상태는 상자의 뚜껑을 열어서 관측을 시도할 때에만 분리된다decohered. 그러나 결어긋남이론에 의하면 고양이의 파동함수가 공기 분자와 닿으면서 붕괴되기 때문에, 고양이의 상태는 뚜껑을 열지 않아도 분리된다. 즉, 결어긋남이론에서는 파동을 붕괴시키는 원인이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관찰자'에서 '상자 내부의 공기'로 대체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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