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일 읽은 소감은 과연 현상과 그 해석은 실무전문가가 제일 낫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는 실무전문가로서는 해결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나갔다.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도 많은 복마전이 도사리고 있고 이미 기형화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즉 병들어 있는 것이다. 병든 부분을 낫게 하려면 몸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 즉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돈이 있는 사람이나 돈이 없는 사람이나(또는 중간에 있는 사람), 즉 모든 국민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마치 국민연금 문제처럼).
지도자(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대통령을 의미하겠지)는 제대로 된 전문가 그룹과의 심도 있는 토의를 통해서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한민국의 부동산 정책이 추구할 방향을 일단 정하고 이를 국민들과 컨센서를 맞춰야 한다. 그리고 이 컨센서스로 도출된 방향과 그 정책들은 효과가 나타날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간에 당연히 어디가 아플 것이고 국민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칠 수 있지만 그걸 넘겨야 한다. 그럴 의지와 실행력을 갖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매우 힘든 일이다. 어찌 보면 국민연금 개혁은 부동산 문제에 비하면 난이도가 절반도 되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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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3
문재인 정부가 보유세를 제대로 올리지 않아서 집값이 폭등했다는 사람들조차, 고가/다주택자만 올리자는 포퓰리즘에 포획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유세를 강화하자는 것은 "고가/다주택자만 보유세를 올리자"는 것과 사실상 동의어다. 이렇게 해서는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이 '징벌적'이라는 반발을 달랠 방법이 없다. 또 어디까지가 고가/다주택인가? 서울 아파트의 대부분이 종부세에 해당하는 상황이 되자 서둘러 세금을 낮추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비싸고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비례적으로 이를 많이 내는 것과 누진적으로 많이 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여러 주택을 전국적으로 합산해서 훨씬 더 많이 내게 하는 것은 한국만 시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여러 채를 가지고 임대하는 경우 과다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하다. 이것이 임대사업자 등록시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종부세를 면제해준 이유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다주택자에게 세금 혜택을 주었다는 비난이 이어졌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보유세를 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시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 부동산 소유자의 부담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치적으로 이것을 감당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금방 다시 깍아주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해서 전체 주택의 95%에 대한 재산세율을 낮췄다. 물론 이재명 후보가 주장했던 모든 토지를 과세 대상으로 하는 국토보유세는 이를 모두 올리되 저가주택 소유자에게 대해서는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조삼모사이며 결과는 같다. 결코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명문에 집착한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목표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
내가 부동산 정책에 관여할 때까지 바로 이 대목에서 이른바 개혁주의자들과 입장이 달랐다. "보유세는 집값을 잡는 세금이 아니다"는 김동연 부총리의 발언(국회 답변, 2018년 8월 27일)은 내 생각과 같았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미국이 역설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많이 오른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나라는 유동성 때무닝고, 우리는 세금이 낮아서 그런가?
따라서 보유세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현실적 목표가 필요하다. 우리 보유세는 역사적으로 '고가/다주택'을 차등적으로 높게 과세하는 체제가 굳어져 있다. 대다수 국민들의 보유세 부담을 높이려는 시도는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이 유일했지만,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세금은 역사성과 경로의존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혁, 반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먼저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취득세 비중이 왜 높을까? 부동산 구입 시 내는 세금이라 조세 저항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득세를 선납 보유세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조세 저항이 큰 보유세의 몇 해분을 일시에 받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결국 보유세는 아파트, 단독주택, 상가, 토지 등 부동산의 종류와 소재 지역에 따른 과세 형평성을 단계별로 높여가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부담을 높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화가 나 있다고 고가/다주택만 올리려 해보지만, 그 고가의 기준 설정 때문에 다시 갈팡질팡했던 것이 2019년 말부터 2021년 중반까지 정부/여당의 모습이었다. 실제 종부세를 강화했더니 서울 아파트의 반 이상이 그 대상이 되었고, 이에 놀란 정부와 민주당은 서둘러 세금을 다시 낮추려 허둥지둥했다. 특히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이전에 종부세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p146.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 구상은 이렇다. "모든 토지에 대해 국토보유세를 물려서 실효세율을 1%로 하게 되면 약 50조 원의 재원이 발생하는데, 이를 재원으로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그럼 전체 토지 소유자의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하지만, 90%는 기본소득으로 돌려받는 것이 더 많게 된다. 또 실수요자나 업무용의 경우 감면하고, 고령자 등에게는 과세 이연할 수 있다. 사람별로 전국의 소유 토지를 합산해서 누진 과세하므로, 결국 고가/과다 토지 보유자만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일반 국민은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2017년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 추진을 준비하면서, 심지어 경기도만이라도 시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다양한 우려를 받게 되자 "90%의 국민은 이득이다"는 점을 강조함녀서, 이를 반대하는 것은 악성 언론과 부패 정치 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라고 항변한다(2021.11.15)
그러나 우려가 계속되자 "국민들이 동의한다면"이란 전제를 달고 한발 물러서게 된다(2021.11.30). 이후 이재명 후보는 공시가격 현실화로 재산세가 크게 늘어나서 서민들의 피해가 예상되므로 공시가격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정부에 요구한다(2021.12.20). 이와 함께 2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중과 완화 필요성도 언급하게 된다(2021.12.12). 국토보유세 정신은 온데간데없게 된다. 그러나 지지층의 반발이 우려되자, 며칠 뒤에는 세금이라는 이미지를 반대로 적용해서 토지이익배당금재로 이름을 바꾸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2021.12.28).
이재명 후보의 국토보유세는 이 책이 강조하고 있는 전형저긴 보유세 포퓰리즘 사례다. 포장을 어떻게 하든, 고가/과다 보유자만 올리자는 것이 그것이다. 실무적으로도 토지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소출은 거의 없는 산지, 녹지에 대해서도 1% 세금을 매기자는 것인기, 또 농지나 공장용지 같은 생산용도 토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선거운동이 본격화되고 보유세 관련 여론이 악화되자 그동안 국토보유세를 강조해오던 정신과는 반대로 가고 말았다. 선거 캠프 내부에서는 당선 이후 추진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를 정당화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보유세 1%'는 이렇게 편법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p207
이명박 대통령식 반값 아파트였던 토지 임대부 보금자리주택은 정권 차원의 대대적인 추진에도 불구하고, 서초구 우면동(358가구)과 강남구 자곡동(402가구)에서 단 두 차례 760가구만 공급되었을 뿐이다.
김헌동 사장(현 SH공사 사장, 과거 경실련 본부장으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은 이명박 정부 당시 보금자리주택 반값 아파트 공급 때문에 강남 집값이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을 가장 잘했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궤변이다. 노무현 정부 동안 쌓인 거품, 그동안 누적된 공급 물량이 금융위기 이후 조정받았기 때문에 가격이 내린 것이다.
(감상) 사실 내가 저 당시(2012년도에서 2013년도) 서초,양재,우면,강남 일대의 부동산에 관심이 있어서 어느 정도 가격 동향을 알고 있다. 일단 내 경험상으로는 저 당시 우면동과 자곡동에 풀려나온 보금자리주택 물량으로 인해서 주변 아파트 시세에는 영향을 미쳤다. 보금자리주택과 비슷한 수준의 20~30평대 아파트의 경우 당시 1억까지 하락한 아파트도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https://www.mk.co.kr/news/realestate/8019630
당시 완공되서 입주가 시작된 보금자리주택의 영향으로 강남의 부동산값이 영향을 받자 당시 막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의 보금자리주택 계획을 백지화시킨다.
https://www.nocutnews.co.kr/news/1013431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명박의 보금자리주택이 계획대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150만호 건설이 이루어졌으면 부동산 특히 대한민국 부동산 시세를 견인하는 아파트 가격의 거품은 많이 걷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p229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주택의 금융화의 대표적인 현상은 금융을 매개로 한 자가 소유 열풍이다.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자가 소유가 늘어나 2000년대 초 정점에 이르렀는데, 특히 미국, 영국의 경우 10여 년 동안 5%p 이상 증가했다. 이때 자가 소유 확대를 견인한 것이 금융권의 장기주택담보대출, 즉 모기지였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을 매개로 증가한 자가 소유는 2008년 금융위기 전후 한계에 달하면서 자가율은 상당수 국가에서 정체되고 있다. 특히 미국, 영국은 늘어났던 자가율이 과거보다 더 낮아져버렸다. 이 과정에서 소득과 비교해 대출을 무리하게 받은 가구들이 집을 차압당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모기지는 금융산업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이었지만, 이런 대단위 모기지 시대가 '금융의 저주'를 불러온 것이다.
이처럼 과다한 모기지 시대는 역설적으로 자가 소유의 한계를 가져왔다. 낮은 금리의 모기지가 더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거꾸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초래하면서 집값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청년층과 소수 인종 가구들은 자가 소유율이 현격히 떨어졌다. 자가 소유 열풍이 역설적으로 세대별 격차와 소득 계층별 불평등을 확대한 것이다. 미국, 영국은 물론이고 북유럽 국가들조차 과도한 금융화의 결과로 집값과 임대료가 급등하고, 소득 대비 부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 되면서 주택시장이 불안정하고 취약하게 변해버렸다.
p230. 임대로 살 수밖에 없는 세대 VS 임대업자 세대
대다수 선진국에서 자가 소유의 한계가 드러나는 가운데, 그동안 핵심적인 주택 정책이었던 공공임대주택마저 후퇴하는 중이다. 1990년대부터 대부분의 선진국은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축소하거나 심지어 기존에 있던 물량까지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임대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세대·계층이 늘어나고 고착화되고 있다. 영국을 예로 들면, 2003년에는 자가율이 70%였던 것이 2015년에는 64%로 줄어들었는데, 같은 기간 35세 이하의 경우는 50.3%에서 28.9%로 자가율이 급감했다. 반면 민간임대에 사는 비율은 27.2%에서 50.4%로 급증했다. <그림 11-1>은 영국, 미국의 세대별 자가거주율 변화를 나타낸 것으로 중·고령 세대를 제외하면 자가율이 빠르게 내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서방 선진국 외에도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10년 정도 통계에서는 이런 추세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떤 세대에서도 자가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뚜렷하지 않다. 40대에서는 눈에 띄게 늘어나기도 했다. 이는 주거실태조사의 통계적 문제 때문일 수도 있는데, 다른 연구에서는 이른바 에코 세대인 30대까지는 과거보다 자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많다. 다만 소득 계층별로는 중상위층과 하위층 간 자가율 차이는 분명하다. 특히 저소득층 중 노령 가구를 제외할 경우 청년층 자가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늘어난 민간임대 수요는 누가 공급할까? 영국의 경우 1998년과 비교해 2015년에는 민간임대업자의 수와 그들이 제공하는 주택이 모두 두 배로 늘었다. 이들 대다수는 1960~1970년대에 출생한 고도성장 세대로 임대주택 구입용(Buy-to-let) 모기지 등을 활용해서 추가로 주택을 구입했다. 일본의 경우도 55세 이상의 26%는 다주택 소유자들이다. 공공임대주택 거주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인 네덜란드도 금융위기 이후 다주택자가 빠르게 늘어나 암스테르담 20%, 마하스트리트 27%를 넘을 정도다. 이런 추가 주택을 통한 소득 보충은 영국,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복지국가뿐 아니라, 복지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북부 유럽 국가들에서도 연금 보충 차원에서 확산되고 있다.
다수이 1980~1990년대에 출생한 청년층들이 '임대로 살 수밖에 없는 세대(generation rent)'가 되었다면 1960~1970년대에 출생한 세대들은 '임대업자 세대(generation landlord)'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임대업자 세대는 자신의 돈이 아니라 금융을 활용해서 집을 늘리는 중이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에서 "서브프라임이 무너뜨린 잔해 위에서 더 강하고 금융화된 민간임대업자 시대"가 출현한 것이다. 결국 고도성장 세대와 저성장 세대가 주택자산을 매개로 세대 간에 현격한 격차를 보이게 되어싸. 그러나 이는 세대간 문제에 그치지 않고 세대 내 격차로 확대된다. 젊은 세대 중에서 부모가 능력이 있는 경우 부모 지원, 즉 '엄마 아빠 은행'을 활용하여 주택을 구입하거나 심지어 임대사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민간임대 확대는 개인 임대업에 머물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임대사업 기관 투자가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금융권 대출을 이용하거나 헤지펀드, 리츠 등을 통해 주택에 투자한다. 캐나다에서는 금융화된 임대사업자들이 전체 캐나다 아파트의 10%를 소유하고 있다. 1999년 조사에서는 전혀 없던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소형 1인 가구용 임대주택 리츠, 독일에서는 등록 부동산투자운영 회사가 확대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금융위기로 압류된 수십만 채를 리츠가 사들여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 미국, 호주도 마찬가지로, 더 전문적으로 금융화된 투자자들이 출현했다. 2000년대 이후 완화된 임대차 규제는 민간임대시장을 더욱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임차인은 더 나쁜 상황에 빠지고, 여러 곳에서 임대료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특히 금융화가 강하게 진행된 나라일수록 소득 증가보다 임대료 증가 속도가 훨씬 빨라서 주거비 부담이 커졌다.
이렇게 민간임대주택이 금융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주택의 금융화 단계가 시작되었다. 종전 금융을 활용한 단기 거래 중심의 주택 투자가 '금융화 1.0'이라고 한다면, 운용 수익을 계속 얻기 위한 장기 민간임대사업은 '금융화 2.0'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거와 달리 임대 부분이 금융화의 최전선에 등장함으로써 '임대' 주택의 금융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p274. 전 세계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주택의 금융화다.
집값 불안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 경기 순환과 주기적인 거품 형성과 붕괴는 거의 모든 선진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다. 특히 최근 20년 동안은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집값의 급등락이 반복되고 있다. 기억에 생생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뒤이은 2008년 금융위기는 주택 거품이 촉발제였다. 당시 '대공황 이후 최대 거품 붕괴'라고 했지만 부동산 거품은 10년 만에 오히려 이전보다 더 커져버렸다. 게다가 코로나19로 풀린 돈들은 부동산으로 더 몰렸다. 최근 중국에 부상하고 있는 경제위기도 본질은 부동산 거품에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주택의 금융화 현상이 전면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원래 주택은 생활 필수품이면서 투자 수단이라는 양면성이 있었는데, 2000년대부터 주택의 금융화 현상이 확산되면서 상품 성격이 더 강화되었다. 과잉 자본이 부동산에 몰릴 수 있는 물꼬가 활짝 열린 셈이다. 그만큼 유동성과 금융의 영향이 부동산시장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집값 불안과 세대·계층 간 주택 문제의 양극화가 만성화되었다. 임대로 살 수밖에 없는 세대와 임대업자 세대가 고착화되는 신주거계급 시대가 출현한 셈이다.
따라서 집값 급등락은 과거의 부동산 경기순환으로만 이해할 수 없고, 후기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차원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도 우리나라 특유의 문제와 더불어 세계적인 주택금융화 현상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제때 효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부동산 과잉 수요를 유발하는 금융화 현상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과거 경험에 따른 수요 관리, 공급 확대의 정책 패키지로는 너무 커져버린 유동성과 금융화 현상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 문제의 핵심 요인과 부차 요인을 혼동하면 안 된다. 핵심은 넘치는 돈이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이며, 공급, 세제, 그리고 청약제도 등 한국적인 제도들은 부차적인 요인이다. 그런 점에서 주택의 금융화 시대에 대응하는 금융 정책의 새로운 차원이 요구되고 있다.
p285. 이제 정부는 집값 잡겠다는 약속을 하지 말자
이미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동향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주택이 점점 더 투자 상품화되는 주택금융화 경향과 전 세계적인 유동성 상황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우리 주택문제가 갖는 보편적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우리 특유의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전세제도가 그렇다. 강한 가족주의는 전세제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만큼 주택 문제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이 높고, 이는 특유의 평등주의가 더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집값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해왔고, 가격 안정을 위한 것이라면 무리한 시장 개입도 주저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는 민심을 달래는 차원에서, 또 시장과의 심리전 차원에서 집값, 특히 강남 아파트값을 잡겠다고 공헌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약속이나 호언장담은 여지없이 헛말이 되고 만다. 전 세계 선진국 중에서 정부 수반이 집값을 잡겠다고 얘기하거나 집값을 못 잡았다고 사과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제 정부에서 집값을 잡겠다는 말을 기대하지 말자. 정확한 시장 상황이나 정책 계획을 밝히는 등 필요한 일만 하게 하자. 시장에는 시장의 일이 있듯이, 정부는 자신들의 몫을 하면 된다. 형평성 있는 세제와 개발이익환수 체제만 작동한다면, 굳이 강남 아파트값에 전전긍긍하며 심리전을 펼 필요는 없다. 여기다 좋은 주택이 빨리 공급될 수 있도록 택지 공급과 도시계획 인센티브 관리만 하면 된다. 주거복지를 튼튼히 구축해서 주거 취약계증을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다. 나머지 약속은 기대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