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의 전작인 '나쁜 사마리안'이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는 읽다가 말았는데 이유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재미없는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 때문에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 책은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주제로 넘어가는 현란한 기술에 깜빡 속아넘어가는 덕분인지 재밋게 읽었다.

 이 책 덕분에 현대의 주류경제학이 미국이고 미국의 주류경제학은 신고전학파라는 사실도 리마인드하게 됐고, 저자는 이러한 획일주의적 경제학이 싫어서 다양한 경제학 담론이 살아있던 시대의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그간 경제학에서 알게 모르게 선입견처럼 가지고 있던 사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장하준 교수의 다른 책도 다시 한번 시도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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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많은 이론에서 필수 사회 서비스로 간주하는 의료, 교육, 상하수도, 대중교통, 전기, 주거 등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있다면, 그 이론은 '1인1표'라는 미눚 사회의 원칙을 축소하고 '1원1표'라는 시장 논리를 확장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p75

 지난 150여 년에 걸쳐 자본주의가 좀 더 인간적이 된 거은 오로지 자유 시장적 시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신성불가침으로 여겼던 자산 소유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우리는 자산 소유자들의 경제적 자유가 대중의 정치적/사회적 자유와 충돌할 때 후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민주 헌법, 인권법, 평화로운 시위에 대한 법적 보호 등이 그 예다. 자산 소유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수많은 법 - 노예 제도와 연한 계약 노동의 금지, 노동자의 파업 권리 보호, 복지 국가 설립, 공해 물질을 배출할 자유 제한 등 - 을 도입했다.

 

p88. 가난의 근본적 원인

 이처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한다면 그들의 빈곤이 근면성 부족 때문일 수가 없다. 문제는 생산성이다. 이들이 부자 나라 국민보다 인생의 훨씬 더 긴 기간, 훨씬 더 오래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만큼 많이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은 생산성이 그만큼 높지 않아서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성이 낮은 것은 교육 수준, 건강 등 노동자 개인의 능력이나 조건과 크게 상관이 없다. 노동력의 질은 전문직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직종에서는 생산성의 차이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종에서 가난한 나라 노동자와 부자 나라 노동자의 개인적 생산성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점은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이민 온 사람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민을 왔다고 갑자기 없던 기술이 생기거나 건강이 급격히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 그들의 생산성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더 양질의 사회 기반 시절 infrastructure(전기, 교통, 인터넷 등)과 더 잘 기능하는 사회적 체제(경제 정책, 법률 체계 등)를 기반으로 해서 더 잘 운영되는 생산 시설(공장, 사무실, 가게, 농장 등)에서 더 나은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양실조에 걸린 당나귀를 타고 애를 쓰던 기수가 갑자기 좋은 혈통의 경주마를 타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기수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누가 경주에서 이기는가는 만흔 부분 기수가 탄 말이 결정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왜 덜 생산적인 테크놀로지와 사회 체제를 갖게 되었고, 그 결과로 낮은 생산성밖에 달성하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를 이 짧은 장에서 만족스럽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저부가가치 1차 상품 생산에 특화된 구조를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 식민주의 역사의 잔재, 만성적 정치 분열, 엘리트 계층의 무능력(비생산적인 지주, 역동적이지 못한 자본가 계급, 비전 없고 부패한 정치 지도자), 부자 나라에 유리하도록 편성된 국제 경제 체제 등은 굵직한 이유들 중에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역사적/정치적/테크놀로지적 문제 때문이고, 이는 그들이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열심히 일할 마음이 없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p99. 페루의 번영을 이끈 작은 생선

 멸치는 풍부한 맛뿐 아니라 한때 풍부한 부를 가져다주는 고마운 생선이기도 했다. 이 작은 생선은 19세기 중반 페루가 누린 경제적 번영의 원인이었다. 페루가 멸치를 수출해서 돈을 번 건 아니었다. 당시 페루는 바닷새의 구아노guano(마른 새똥)을 수출해서 국가적 번영을 누렸다. 구아노는 질산염과 인이 풍부하고 냄새가 그다지 역겹지 않아서 인기 높은 비료였을 뿐 아니라 화약의 핵심 재료인 질산칼륨이 들어 있어서 화약 제조에도 사용되었다.

 페루의 구아노는 태평양 연안의 섬들에 모여 사는 새들인 가마우지와 부비booby(얼가니새)의 배설물이다. 이 새들의 주된 양식은 생선, 특히 칠레 남쪽에서부터 페루 북쪽을 잇는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의 영양소 풍부한 훔볼트 해류를 타고 이동하는 멸치들이다. 훔볼트 해류는 프로이센 왕국의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훔볼트는 1902년 에콰도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침보라소 화산(6262미터)을 올라 당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을 뿐 아니라 페루산 구아노의 장점을 최초로 유럽에 알린 사람들 중 하나다. 구아노가 페루 경제에서 너무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경제사를 다루는 사람들은 '구아노기'(1840년대~1880년대)라는 용어를 쓴다.

 구아노가 중요한 역할을 한 나라는 페루만이 아니었다. 1856년 미국 의회는 '구아노제도법Guano Islands Act'을 통과시켜서 아무도 살지 않고 다른 나라 정부의 관할 아래 있지 않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구아노가 있는 섬은 미국 시민이 점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 덕분에 미국은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100개가 넘는 섬을 점거해서 페루산 구아노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영국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 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도 구아노가 쌓인 섬들을 점거했다.

 구아노로 인한 페루의 경제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호황이 시작된 지 30여 년쯤 지나자 과다 채취로 인해 구아노 수출이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1870년 대규모 칠레 초석(질산나트륨) 매장지가 발견되면서 구아노 수출의 쇠락으로 인한 영향이 한동안 상쇄되었다. 초석은 비료, 화약 제조에 사용될 뿐 아니라 육류 보전에까지 쓰이는 질산염이 풍부한 광물질이다. 그러나 페루의 번영은 초석전쟁Saltpetre War이라고도 부르는 남아메리카 태평양전쟁(1879~1883년)과 함께 끝이 났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볼리비아 해안 지역 전부(그 결과 볼리비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 되었다)와 페루 남부 해안 지역의 절반 가량을 점령했다. 그 지역에는 대량의 초석이 매장되어 있고 구아노도 많아서 칠레는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1909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에서 질소를 분리하는 기술을 발명했다. 고압 전류를 사용해 암모니아를 만들고 거기서 인공 비료를 만드는 기술이었다. 말하자면 하버가 글자 그대로 허공에서 인공 비료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그 덕에 그는 191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독가스를 개발한 일로 악명이 높아서 그에게 노벨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점잖은 자리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하버가 발명한 기술은 또 다른 독일의 과학자 카를 보슈에 의해 상용화되었다. 보슈가 일하던 '바스프BASF'는 '바덴에 있는 아닐린과 소다 만드는 공장'이라는 뜻의 바디셰 아닐린 운트 소다 파브리크Badische Anilin und Soda Fabrik의 약자로, 하버가 개발한 기술을 사들인 회사다. 오늘날 '하버-보슈법'이라 부르는 이 기술은 인공 비료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해서 구아노를 비료계의 황제 자리에서 추출하고 말았다. 구아노보다 더 중요한 질산염의 공급원인 초석 또한 가치가 없어졌다. 구아노와 초석에서 추출한 칠레의 천연 질산염 생산량은 1925년 250만 톤이었던 것이 1934년에는 불과 80만 톤으로 줄어들었다.

 

p107

 역사를 살펴보면 높은 생활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오직 산업화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 혁신과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주된 근원인 제조업 분야를 발달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산업화를 통해 생산 능력을 더 높이면 자연이 우리에게 가하는 제약을 '마법처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칠흑처럼 새까만 석탄에서 선명하기 그지없는 새빨간 염료를 뽑아내고, 허공에서 비료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다른 나라를 침공하지 않고도 땅을 몇 배로 늘리는 것이 마법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기에 더해 이런 능력을 갖추고 나면 긴 기간 동안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초석과 같은 재생 불가능한 광물 천연자원, 또는 멸치를 먹고 사는 새들의 분비물로 만들어진 페루의 구아노처럼 재생 가능하지만 과잉 채취로 결국 늘 '바닥이 나고야 마는' 천연자원과는 달리 한번 습득한 기술이나 능력은 고갈되지 않기 때문이다.

 

p116.  싱크 최대 수출국 일본은 어떻게 경제 강국으로 거듭났을까

 현대에 들어서면서 최대 실크 생산국은 한때 일본이었다. 일본은 7세기에 한국에서 양잠술을 도입한 이래 매우 긴 견직물 방적 역사를 지니고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 이 부문을 크게 키웠다. 1950년대 일본은 세게 최대 실크 수출국이었고, 실크 관련 상품은 일본의 최대 수출 품목이었다.

 일본인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 및 유럽 국가들과 철강, 조선, 자동차, 화학, 전자를 비롯한 기타 '선진' 공업 부문에서도 대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기술 면에서 뒤쳐진 일본이 그런 부문에서 국제적으로 경쟁을 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높은 관세, 다시 말해 수입품에 높은 세금을 물리는 한편, 보호 사업 부문에서는 외국 기업들이 일본 내에서 영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법으로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국내 제조업자를 보호했다. 이에 더해 당시 정부의 엄격한 규제 아래 있던 은행들로 하여금 수익성이 좋은 주택 담보 대출이나 소비자 금융, 또는 이보다는 수익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실크 산업 부문보다 '선진' 공업 부문의 국내 기업들에 우선적으로 대출하도록 만들었다.

 일본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이런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본은 철강이나 자동차 같은 건 수입으로 조달하고 실크를 비롯한 방직 산업처럼 이미 잘하고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고 지적했다. 비효율적인 부문의 기업들, 가령 토요타나 닛산 같은 자동차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외국산 차에 관세를 부과하면 소비자는 더 나은 외국산 차를 사기 위해 국제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거나 품질이 낮고 미운 일본산 차를 사야 하는 손해를 봐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자동차 생산 기업처럼 비효율적인 산업 부문에 은행 대출을 하도록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을 하면 실크 산업처럼 더 효율적인 부문에 돈을 투자해서 같은 자본으로 훨씬 더 큰 이윤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는 흠 잡을 데가 없이 맞는 주장이다. 한 나라의 생산 능력을 고정된 것이라 생각하면 말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나라든 생산 능력은 변화할 수 있고, 현재 잘하지 못하는 것을 나중에는 잘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지만 - 더 나은 기계, 노동자의 기술 습득, 테크놀로지 연구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일본의 자동차, 철강, 전자 등 수많은 산업 분야에서 일어났다. 1950년대에는 국제 시장에서 경쟁할 꿈도 꾸지 못했던 산업 분야 중 많은 수가 1980년대에 들어설 무렵에는 세계 1위에 등극해 있었다. 한 나라의 생산 능력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는 데는 적어도 20여 년이 걸린다. 이 말은 자유 무역 환경에서는 이런 변화가 생길 수 없다는 뜻이다. 자유 무역 체제에서는 신생 산업 부문의 비효율적인 초보 기업들이 우월하고 규모가 큰 외국 경쟁 업체들에 순식간에 전멸당하고 말기 때문이다.

 

p120

 그렇다고 해서 유치 산업 보호 정책이 반드시 성공적인 경제 발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유치 산업 또한 잘못 키우면 '성숙'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과도한 보호 정책을 쓰는 바람에 국내 기업들이 태만해졌고, 시간이 흐른 후에도 보호 정책을 줄이지 않아 생산성을 향상시킬 동기 부여를 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유치 산업 정책을 가장 기술적으로 운용한 일본과 한국 같은 나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호 정책을 단계적으로 줄여서 그런 위험을 피했다. 자녀가 성장해 감에 따라 보호의 손길을 차차 거두고 더 많은 책임을 자녀에게 주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치 산업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한때 경제적 새우였던 나라들 - 18세기의 영국과 19세기의 미국, 독일, 스웨덴, 20세기의 일본, 핀란드, 한국 - 은 오늘날 세계 경제의 고래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p230

 복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나라의 시민(그리고 장기 거주자) 모두가 동일한 보험 패키지를 대량 구매를 통해 싼값에 에 구입한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을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바로 부자 나라 중 보편적 공공 의료 보험 제도가 없는 유일한 나라인 미국과 다른 부자 나라들의 의료 비용을 비교해 보면 된다.

 GDP에 대한 비율로 볼 때 미국인은 비슷한 경제 수준의 다른 부자 나라 시민에 비해 적어도 40퍼센트 이상, 많으면 2.5배 정도를 의료비에 더 쓴다(미국은 GDP 대비 17퍼센트인데 반해 아일랜드는 6.8퍼센트, 스위스는 12퍼센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건강 지표는 선진국 중 최악이어서 다른 부자 나라들에 비해 미국에서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비용이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이유 한 가지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조각조각 분산되어 있어서 의료 제도가 더 잘 통합되어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공동 구매를 통해 얻는 혜택을 보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 전체 시스템을 통한 '대량 구입' 디스카운트를 받는 대신 모든 병원은 개별적으로 약과 의료 장비를 구입해야 하며, 의료 보험 회사들은(이윤 추구 기업이므로 더 높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데 더해) '규모의 경제' 혜택을 볼 수 있는 통합된 시스템 대신 각각 시스템을 운영하는 비용을 들여야 한다.

p246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 오래도록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개인의 필요와 역량은 무시한 채 결과와 기회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이다. 좌파는 모든 사람에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마다 다른 필요와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반면에 우파는 기회의 평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개인 간의 역량이 어느 정도는 균등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것은 부모 세대가 상당한 정도로 결과의 평등을 누려야 가능한데, 그렇게 되려면 소득을 (하향) 재분배하고,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기초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

 채식주의자에게 닭고기 기내식을 주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하는 항공사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승객들의 여러 가지 취향과 필요를 모두 맞추어 주는 다양한 기내식을 제공하지만 표가 너무 비싸서 극소수만이 이용할 수 있는 항공사 또한 원치 않는다.

 

p255

 가장 널리 쓰이는 경제 척도인 GDP는 시장에서 교환되는 것만 포함한다.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모든 측정법과 마찬가지로 GDP도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극도의 '자본주의적' 관점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뭔가가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결정할 때 시장에서 어떤 가격에 거래가 되는지를 기준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는 관점이다.

 시장활동만을 계산하는 관행은 경제 활동의 엄청나게 큰 부분을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농업 생산물의 큰 부분이 계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많은 농민이 가지가 기른 작물을 팔지 않고 일정량을 소비하는데 농산물 생산량에서 이 부분은 시장에서 교환되지 않으므로 GDP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행해지는 돌봄 노동 역시 이런 식으로 시장에 기초해 생산량을 측정하면 부자 나라와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그들의 학습을 도와주고,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며, 음식을 만들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그에 더해 가정을 꾸려 나가는 일(미국의 사회학자인 앨리슨 대민저Allison Daminger가 '인지 노동cognitive labour'이라고 부르는 활동) 말이다. 이런 활동을 시장 가격으로 환산하면 GDP의 30~40퍼센트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GDP에 전혀 포함되지 않고 있다.

 간단한 사고 실험으로도 시장 밖에서 벌어지는 돌봄 노동을 경제 활동으로 치지 않는 관행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2명의 엄마가 자녀를 교환해서 상대방의 아이를 돌봐 준 다음 베이비시터에게 지불하는 금액을 서로에게 지불한다면(같은 금액을 주고받는다면) 두사람의 재정 상태와 아이 돌보는 시간에는 아무 변화가 없지만 GDP는 올라갈 것이다. 개념적으로 생각해도 돌봄 노동 없이는 경제는 말할 것ㄱ도 없고 애초에 인간 사회 자체가 존재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보수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 중에는 여성이 큰 비율을 차지한다. 따라서 돌봄 노동을 경제 활동으로 계산하지 않으면 여성이 우리 경제 - 그리고 사회 - 에 하는 공헌이 과소 평가될 수밖에 없다.

 

p281. 시장이나 개인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모든 기술적 가능성과 모든 생활 방식 변화를 실현하더라도 지방 정부, 중앙 정부, 국제기구가 지역적/전국적인 대규모의 공공사업을 벌이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국가 간 협력을 도모하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시장을 통한 우대나 장려책, 개인적인 선택 등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 개발의 경우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그린 테크놀로지를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냥 시장에 맡겨 두면 기후 변화와 싸우고 대처하는 데 필요한 수 많은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 말 것이다. 이는 민간 기업들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단기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끊임없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고, 설상가상으로 이 압박은 금융 규제 완화로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린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고 사용해도 그 혜택이 가시화되기까지는 몇십 년이 걸리는 경우가 태반이며 심지어 그보다 더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간 부문의 기업들은 몇 년은 고사하고 분기마다 가시화된 실적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기술 개발을 주저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민간 부문이 이러헥 근시안적으로 경영하는 경향이 심하기 때문에 신기술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나 그렇게 개발된 신기술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항상 정부가 강력한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이 방면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IT와 바이오테크놀로지 개발로, 둘 다 초기에는 미국 정부가 저의 전액을 지원했다. 실패할 위험이 매우 크고 수익을 내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 부문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다수 국가, 중국, 브라질 등에서 태양 발전, 조력 발전 같은 저탄소 에너지 기술이 상당한 규모로 개발되어 사용되어 온 것은 정부 개입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들이 온실가스를 최소한으로 배출하고 기후 변화로 인한 부작용에 대처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게 하는 공적 조치도 중요하다. 시장은 1인 1표가 아니라 1원 1표를 원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버려 두면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쪽으로 투자가 몰리기 마련이다. 이 말은 가난한 나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들 - 농산물과 공산품 생산에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기후 변화 적응' 기술 등 - 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투자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기술의 개발과 개발도상국으로의 이전을 보조금으로 주거나 심지어 무료로 지원하기 위한 공적 조치가 필요하다. 개발도상국들은 기후 변화를 초래한 장본인이 아닌데도 기후 변화의 여파로 훨씬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모든 조치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일부 개발도상국은 글자 그대로 해수면 아래로 사라질 위기에까지 처해 있지 않은가.

 각 개인이 진정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생활 방식을 유지 할 수 있으려면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정부 정책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어떨 때는 개인적으로 행동을 바꾸고 싶어도 대부분의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선행 투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외벽 단열, 이중 창문, 열펌프 설치 등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도 남겠지만 당장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투자를 하는 데 정부의 보조금과 대출 정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후 변화와 같은 시스템의 문제를 시장 환경에서 개인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맡겨 두는 것은 불공평할 뿐 아니라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공적 조치가 필요하다. '친환경 식생활greener eating' 운동이 아주 좋은 예다. 식품 판매업자에게 각 상품의 탄소 발자국을 완전히 공개하도록 요구해서 소비자가 '올바른 식료품 쇼핑'을 하도록 유도하고, 공해를 많이 발생시키는 식품을 시장에서 추출하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진배없다. 우선 그런 정보가 완전 공개가 된다 해도 소비자는 구매하는 식품 하나하나의 탄소 발자국 정보를 모두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선택을 할 만한 시간이나 정신적 여유가 없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정부가 최소한의 환경 기준을 정립해 놓지 않으면 더 심한 오염을 유발하는 판매업자가 더 값싼 식품을 제공해서 경쟁 업체들은 시장에서 몰아내는 식의 '바닥치기 경쟁race to the bottom' 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p295. 자본주의 발달의 정점, 유한 책임 제도

 이제는 유한 책임제가 일반적 표준이 되었지만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왕 - 절대 왕정이 끝난 다음에는 정부 - 이 허락하는 특권이었고, 오직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위험 부담이 높은 장거리 교역이나 식민지 확장 같은 사업만 이런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런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하는데도 유한 책임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비판자 중 한 사람이었던 이른바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유한 책임 회사 제도가 경영자들이 "다른 사람의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하도록 허용한다고 비난했다. 이런 식으로 자금을 모은 기업의 경영자들은 기업을 100퍼센트 감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과도한 모험을 하려는 성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흠잠을 데가 없이 완벽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한 책임제 덕분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때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자본을 모으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자본주의의 패망을 예상했던 카를 마르크스가 유한 책임 회사야말로 '자본주의의 발달이 정점을 찍어서 나온 제도'라고 칭송했던 것이다. 물론 이 발언에는 자본주의가 더 빨리 발전할수록 사회주의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으리라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그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완전히 발달한 다음에야 사회주의가 도래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마르크스가 이런 선언을 한 직후, 대규모 투자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한 '중화학 공업' - 제철 및 철강, 기계, 화학 공업, 제약 등 - 이 출현하면서 유한 책임 횟하가 더욱 절실해졌다. 장거리 항해나 식민지 사업뿐 아니라 주요 산업의 대부분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지면서 유한 책임제를 사례별로 심사해서 허용해 주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19세기 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유한 책임 회사 설립이 특혜가 아닌 권리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때 이후 유한 책임 회사는 자본주의 발달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p296. 성장의 원동력에서 성장의 장애물로

 그러나 한대 경제 성장의 강력한 도구였던 이 제도가 최근에는 성장의 장애물로 변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친 금융 규제 완화로 인해 주주들은 자기네가 법적으로 소유한 기업에 장기 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른 방식으로 투자해서 수익을 창출한 기회가 너무나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영국을 예로 들자면 주주들의 주식 보유 기간이 1960년대에 5년이었던 것이 요즘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투자한 돈을 1년도 되기 전에 거둬들이는 사람이 그 기업을 공동으로 소유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전문 경영인들은 배당금과 주식 환매(자사주 매입)등을 통해 기업 이윤 중 극도로 높은 비율을 주주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주주들에게 돌아간 기업 이윤 비율은 1980년대에는 절반 이하였지만 지난 10~20년 사이 이 수치가 90~95퍼센트로 치솟았다. 기업의 유보 이윤이 기업 투자의 주된원천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변화는 기업의 투자 능력, 특히 장기간을 기다려야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능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유한 책임제라는 제도를 개선해서 해로운 부작용은 제한하면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때가 되었다.

 무엇보다 유한 책임 제도는 장기간 주식 보유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투표권을 주식 보유 기간과 연동해서 장기 투자를 한 주주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테뉴어 보팅tenure voting'이라 부른다.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매우 희석된 형태에 그치고 있다. 이 테뉴어 보팅 제도를 훨씬 더 강화해서 주식을 보유한 햇수마다 1표씩 더 주는 방법 등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장기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혜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주주들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 여기에는 주식 장기 보유자들까지 포함된다. 대신 기업의 운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경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 부품 조달 업체, 기어비 위치한 지역의 지방 정부 등이 모두 해당한다. 주주들의 문제는 장기 투자자라 할지라도 언제든 주식을 팔고 기업을 떠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주주들보다 움직임이 훨씬 자유롭지 못한 주주 이외에 '이해관계자'들에게 일정 부분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은 이른바 기업의 '소유주'들보다 기업의 장기적 미래에 더 큰 관심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준다느 의미다.

 마지막이자 앞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주주들이 자기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장기적 미래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점이다. 투기 성향이 강한 일부 금융 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서 '치고 빠지는 식의 투자' 기회를 줄이고 장기 투자를 할 동기 부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p308

 자동화로 일자리를 위협받는 건 딸기 수확 노동자만이 아니다. 요즘은 신문, 라디오, TV 어디서든 인간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체하고,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보도를 피할 수가 없다.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는 인공 지능AI 기술의 발달로 더 고조되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손과 근육 뿐 아니라 두뇌마저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까지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불안감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예 중 하나가 <파이낸셜타임스>가 2017년 공개한 '로봇이 당신의 일을 할 수 있을까? Can a robot do your job?'라는 앱이다.

 자동화로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늘, 적어도 지난 2세기 반 동안은 항상 존재해 왔던 현상이다. 그리고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지면에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 경제학자, 경제 전문가 등은 줄곧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절약하는 기술 도입에 저항하는 것은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짓이라 꾸짖어 왔다. 그랬던 기자들과 논평가들이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일자리 자동화의 영향에 대해 걱정을 늘어놓는걸까?

 계급적 위선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 오지 않는가? 전문가 계급에 속한 이들은 자기네 일이 자동화의 물결에서 안전하다고 확신할 때는 새 기술의 도입에 거부감을 보이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러다이트Luddite'라 쉽게 비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동화가 그들과 그들의 친구들 - 의사, 법조인, 회계사, 금융인, 교사, 심지어 저널리스트까지 - 이 속한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하자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 심지어 로봇이 자기네 분야 전체를 완전히 대체해 버릴 수도 있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뒤늦게 맛보고 있는 것이다.

 

p325

 스위스가 탈산업 경제post-industrial economy의 모범으로 제조업보다는 금융과 고급 관광 상품 같은 서비스 산업을 통해 번영을 이룬 나라라는 것이다. 

 1970년대에 시작된 이 탈산업 시대 담론은 인간은 잘살게 될수록 더 세련된 것을 원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개념에 기초한다. 일단 사람들이 배를 채우고 나면 농업이 사양길에 접어든다. 옷과 가구처럼 다른 필요가 충족된 후에는 더 높은 차원의 소비재, 예를 들면 전자 제품이나 자동차 등으로 눈을 돌린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물건들을 가진 후에는 소비자의 수요가 외식, 공연, 관광, 금융 서비스 등의 서비스 부문으로 향한다. 이 시점이 되면 산업 분야는 위축되기 시작하고 서비스 부문이 경제의 주인공이 되면서 인류 경제 발달 단계 중 하나인 탈산업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탈산업 시대에 대한 이런 식의 시각은 1990년대에 힘을 얻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부자 나라 경제 체제에서 생산과 고용 어느 쪽으로 따져도 제조업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서비스 부문의 역할이 커지는 현상이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탈산업화'라고 한다. 중국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산업 국가로 부상하면서 탈산업 사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제조업은 중국과 같은 저기술, 저임금 국가가 담당하는 산업인 반면 금융, IT,  서비스, 경영 컨설팅 같은 고급 서비스에 미래가 있고, 특히 부자 나라들은 이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논의에서 스위스는 가끔 함께 등장하는 싱가포르와 더불어 서비스 부문을 특화해서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증거로 제시된곤 한다. 이런 논리에 설득당하고 스위스나 싱가포르에서 영감을 얻은 인도, 르완다와 같은 일부 개발도상국은 산업화 과정을 아예 건너뛰고 고부가가치 서비스에 특화해서 이를 수출하는 방법으로 경제를 개발하겠다는 시도를 해 오기까지 했다.

 

탈산업 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스위스는 사실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 정도가 높은 나라로, 1인당 제조업 생산량 세계 1위를 자랑한다. '메이드 인 스위스'라고 적힌 상품이 많이 보이지 않는 건 부분적으로 스위스가 작은 나라여서이기도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생산재'라고 부르는 기계, 정밀 장비, 산업용 화학 물질 등 우리 같은 보통 소비자가 접할 수 없는 물건들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탈산업 사회의 성공담으로 꼽히는 또 다른 나라인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산업화된 국가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위스와 싱가포르를 예로 들어 서비스 중심의 탈산업 경제의 장점을 선전하는 것은 뭐랄까, 해변 휴양지를 광고하면서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모델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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