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심 교수와의 면회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아내와 함께한 일정은 서울 구치소로 정경심 교수를 면회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해야 할 도리였는데 미국에 있고 코로나로 인한 면회제한까지 있다 보니 제 때에 도리를 못했습니다. 

 저와 정경심 교수는 “지방대 학생들도 좋은 지도교수 만나서 열심히 노력하면 서울의 명문대 학생 못지 않은 성공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동양대 학생에게 주고 꼭 이루게 해주자는 목적에 의기투합하여 많은 일들을 함께 한 소중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정경심 교수는 겨울방학 마다 약 20여명의 동양대 학생들을 이끌고 저희 대학을 방문하여 학생들과 동고동락을 하며 헌신적으로 그들을 지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올해 드디어 결실을 맺어 그 중의 한 명이자 졸업 후에도 정경심교수의 지도를 꾸준히 받았던 한 학생은 동양대 출신으로는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올 해 미국의 명문 주립대학에  정식교수로 부임하기도 했습니다.


 면회 예약 시간이 되어 아내와 함께 서울 구치소에 차를 주차하고 면회 장소인 민원실로 행하는 짧은 거리를 걸으면서 만감이 교차했고 어떤 말을 해야 위로와 힘이 될 찌 몰라서 참 많이 긴장을 하였습니다. 면회시간이 되어 유리창 너머로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하고 휠체어를 탄 채로 들어오는 정경심 교수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내는 면회 내내 제 손을 꽉 잡으며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 노력했고요. 이러한 저희 부부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정경심 교수는 “다들 저를 보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는데 저는 괜찮다”고 하면서 면회시간 내내 애써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 주어 저희 부부의 마음이 더욱 아렸습니다. 

 정경심 교수의 모습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야위었습니다. 무엇보다 허리와 등의 2차례의 수술 후 반드시 요구되는 물리 치료를 위한 형집행정지 신청이 불허되어 하지가 마비가 되고 다리 힘을 잃어 걷지를 못해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냉방시설이 전혀 없는 구치소의 고열로 인해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고 부어 있었습니다. 수건을 찬물에 적셔서 몸에 둘러 체온을 낮추고 있는데 전기가 자주 나가 그나마 있는 선풍기도 사용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원래부터 문제가 심한 오른쪽 눈에 결막염이 생겨 두터운 안대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슬퍼하는 저희 부부의 모습을 보더니 “임교수님 내외분 면회 온다는 소식 듣고 오늘은 나름 머리도 손질하고 나왔어요” 라고 밝게 웃어 주시더니 구치소 생활 근황도 전해 주셨습니다. 지난 3년간의 수감생활 동안 하나님을 믿게 되어 카톨릭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환경을 주셨을까?”를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감사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양대 교수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영문학자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부부와의 추억을 떠 올리며 좋은 지인들과 함께 식사하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도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랑했던 제자들의 소식을 나누며 변함없는 제자 사랑의 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법정에서 사실과 다른 불리한 증언을 하고나서 이제 와서 후회하고 진술을 번복하고 싶어하는 제자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 할 때는 같은 교수로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게 늘 입버릇처럼 “우리 **가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을 돕는 것이 나의 기쁨이라고” 말할 정도로 무척이나 아꼈던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정경심 교수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는 “언젠가는 교수님이 학생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훌륭한 교수 였는지 사람들이 알아줄 수 있는 날이 꼭 올 테니 힘 내세요”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짧은 면회시간이 마치 쏜살처럼 지나가고 1분 남았다는 안내가 나오니 아내와 정경심 교수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을 맞대고 눈물을 글성이며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시간이 되어 마이크가 끊어져 소리가 안 들리고 교도관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정경심 교수는 얼른 종이에 무언가를 써서 창에 붙여 보여 주었습니다. “고마워요”라는 작별인사 였습니다.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던 정경심 교수가 마지막 눈인사 까지 하고 교도관이 휠체어를 돌려세우고 떠나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내는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염없이 우는 아내를 안아 보듬어 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오늘 저희 부부가 본 정경심 교수의 모습은 가슴이 아파 어쩔 줄 모르는 저희 부부를 배려하여 면회시간 내내 힘을 내어 웃는 모습을 보였지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약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법은 잘 모르지만 관련 규정과 교정 실무에 의하면 형기의 65-70%가 지나면 통상 가석방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4년의 형기 중 이미 3년을 채운 정경심 교수의 경우 서울구치소 차원에서는 가석방 대상자로 선정되어 법무부에 심사가 의뢰되었으나 불허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정경심 교수는 허리, 등, 눈, 머리 등 여러 곳이 매우 심각하게 아픈 상황이라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여 이미 대국민 사과의 메시지도 낸 상태입니다. 

 정부가 이제는 다른 어떤 고려도 없이 자연인 정경심의 관점에서 형집행 일시정지 던지, 가석방이던 사면이던 어떤 형식으로 라도 정경심 교수가 구치소에서 나오게 되어 더 늦기 전에 질병을 제대로 치료 받고 궁극적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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