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기득권의 성립기원과 그들의 사고방식 그리고 왜 민주정부를 흔들고 있는가에 대한 것을 설명한다.

일독의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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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서구 사회에서 '보수'는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세력으로 상대적으로 부유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반면, '진보'는 현재 체제를 급진적으로 개혁하자는 논리로 상대적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대변한다. 근대 산업사회 이후에도 계급적 구분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서구 사회에서 계급적 이해관계의 차이로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만든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자민족 중심주의 연장선에서 제국주의적 성향이 있었던 서구 사회는 식민지 경험이 없다. 따라서 서구 사회에서는 보수가 유지해야 할 질서는 외세로부터 국가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밑에 깔려 있다. 국가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한 부유층(기득권자)의 이익도 보장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서구 사회의 진보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 이익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이 먼저 약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철저한 처벌에 보수와 진보의 견해차가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

 그러나 한국 사회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된 냉전체제와 그것의 산물로서 탄생한 반공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남한에서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반공은 사실상 '국시國是'였다. 일본과 남한에서 반공은 민족주의 색채를 가진 보수도 일부 공유했으나, 기본적으로 일본에서는 제국주의 전범 집단인 극우세력이, 남한에서는 친일세력이 주도했다. 이들이 미국에 없었다면 일본과 남한에서 각각 '전범'과 '친일 부역자'라는 측면에서 청산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기에 미국의 냉전 전략에 자신을 더욱 일체화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동북아에서 냉전체제는 (사라졌어야 할) 일본의 극우세력과 그것의 쌍생아인 남한의 친일세력을 정치적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차이라면 일본에서는 극우세력이 공산주의 세력과 공존한 것이고, 남한에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등 좌파가 발을 붙일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후 한반도에서는 좌파와 우파(극우 친일세력)가 물리적으로 분리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후 민족주의적 색채를 갖는 보수와 극우가 절대적 지배 블록을 형성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은 기본적으로 극우세력이고, 그들을 이어온 '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민주주의 색채를 가진 보수와 극우가 결합한 정권이거나 극우세력이 주도한 정권이었다. 양자는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공유했다.

 이처럼 한국 보수세력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본적으로 친일이라는 기원에 도달하게 된다.이런 이유로 엄밀하게 서구 사회를 설명하는 '보수'로 '한국 보수'를 정의할 수 없다. 일본의 극우세력이나 서구 사회의 극우세력 등과도 또 다른 한국의 보수세력은 자신의 사익을 국익이나 공동체 이익보다 우선하는 매판적 성격을 띤 집단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공적 자원을 자신의 사익 추구에 스스럼없이 활용하거나 부정부패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이유도 친일세력의 후예라는 '원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p88

 한국 보수세력의 기득권은 박정희 정권에서 구조화되기 시작했다. 장기집권에 대한 박정희의 권력욕은 부정부패와 불공정한 부패로 얼룩진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한일 수교와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얻은 수출과 경제성장,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재벌)의 유착을 동반한 경제성장은 한국 사회에 불공정을 공공하게 구조화했다. 손실은 사회화(국민에게 부담)시키고 이익은 사유화한 전형적인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였다.

 박정희는 장기집권을 위해 완벽한 국민 통제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군사적 관점으로 국가와 사회를 재구성했다. 이른바 병영국가다. 병영국가의 효과적 작동을 위해서는 관료 통제가 필수였다. 많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빨갱이'로 낙인찍는 등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을 비국민, 반국민으로 규정해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시켰다. 또한, 주민등록번호와 국민교육헌장 도입, 영화 상영시 애국가 제창 등 '국민의 의식과 정신 개혁'이란 목표 아래 국민의 자유를 통제 대상으로 설정했다. 사회 공동체에 대한 연대감이나 정의감 등을 위축시켜 사회 공동체를 파편화시킴으로써 국민을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는 동물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심한 처벌을 매개로 한 집중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 방식은 독특함을 가진 고유한 존재들을 공장의 상품처럼 똑같은 인간으로 찍내는 방식이었다. 인간의 자발성을 완전히 거세해 지배하는 '총체적 지배' 방식이었다. 이렇게 국민은 파편화, 원자화됐다. 민주화 이후 꾸준히 개선됐다고는 하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협력, 타인에 대한 신뢰, 연대감, 창의적 아이디어, 차이와 다양성, 소통과 공감 역량의 빈곤이라는 문제의 기원도 따지고 보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군사정권의 종언 후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 운용을 정부 주도에서 시장 주도로 전환하면서 '군부독재'(국가 통제)를 '시장독재'로 치환시켰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사회 자산'인 재벌기업이 재벌총수라는 개인의 배타적 소유물로 전환됐다. 또 1994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함ㅇ로써 경제관료의 권한을 크게 강화했고, 외환위기의 원인인 '자발적 금융화'(세계화)로 금융 자본의 세상이 되면서 (사실상 내치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권한이 집중/강화된) 경제관료가 금융자본의 도구로 전락했다. 금융 자본의 논리가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이른바 '모피아 문제'가 부상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기원한다. 요컨대, 군부독재의 종언으로 (군부 권력의 목표를 실해하던 도구에서 벗어나 법치 공간의 '자율성'을 확보한) 경제관료 그리고 (국민과 여론 통제의 수단 역할을 했던) 검찰과 사법부, 언론, 하계 등이 (국가 통제에서 해방된) 재벌자본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배구조로서 재구성된 것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p124

 한국은 2020년 2분기에 -3.25%로 OECD 회원국 중 성장률 면에서 사실상 1등을 했다. 2020년 1분기 -1.3%에 이어 성장률이 곤두박질친 이유는 수출이 1년 전과 비교해 20.3%나 감소하며 성장률을 -6.3%나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이때 수출 급락을 방어한 것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중심이 된 내수였다. 민간소비 0.5% 증가를 바탕으로 내수를 1.1% 끌어올렸다.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의 소비가 위축되면서 소비-유통-생산 등으로 연결된 경제 생태계가 파괴되는 와중에 소멸성 지역화폐 방식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민간소비를 끌어올린 것이다.

 소멸성 지역화폐는 경제 효율성, 소득 재분배, 지역경제 활성화등 '일석삼조' 효과를 만들어냈다. 특히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소상공인의 매출(수입)을 지원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반대하며 선별 지급을 주장하는 이들의 대표적 논리가 피해를 본 계층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정의롭다는 주장이다. 

 

 소멸성 지역화폐에 의한 전 국민 지원금은 최종적으로 소상공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자영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선별 지원 효과도 강화한다. 게다가 선별 지원도 충분하지 않았다. 소상공인은 영업 제한으로 임대료 등 비용 측면과 매출 감소라는 수입 측면에서 양쪽의 손실이 발생하지만, 정부의 선별 지원금은 비용 측면의 지원에만 집중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지역에서 기한 내 소진해야 하는' 소멸성 지역화폐에 의한 전 국민 지원금은 모두 소상공인의 수입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소상공인의 손실에 대한 지원 효과가 확실하다.

 

p125. 전 국민 재나지원금을 막으려는 '그들'의 진짜 속내

 사실 지역화폐 자체는 우리가 처음은 아니지만, 소멸성 지역화폐는 사실상 우리가 처음이다. 유례없는 팬데믹에 대응한 새로운 경제 문법으로 이재명 전 지사에 의해 경기도에서 최초로 시행된 정책이다. 소멸성 지역화폐의 효과를 과소평가하는 경제 전문가들은 팬데믹 이전 세상과 이후 세상이 전혀 다르다고 떠들면서도 여전히 팬데믹 이전 세상을 위해서 만들어진 고릿적 경제정책의 관점으로 소멸성 지역화폐를 바라본다. 21세기형 재난에 따른 경제충격을 20세기 경기침체 때 처방책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경기침체 처방책이 효과가 있었다면, 이를테면 천문학적 재정지출과 중앙은행의 통화량 공급 등에도 2020년 2분기 전통적인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곤두박질친 것을 뭐라 설명할 수 있는가?

 이처럼 효과가 검증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부패 기득권세력은 왜 반대하는 것일까? 바로 K-방역을 무너뜨리려는 이유와 정확히 같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다수 국민에게 보편복지나 기본소득의 효용성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본질적으로 '돈의 배분'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구 사회에서 1970녀대 후반부터 복지국가는 위기를 맞았다. 금융자본의 논리로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려는 금융자본은 (어려운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경제적 효용성이 좋다는 논리를 도덕적으로 포장해) 선별복지를 전면화했다. 그러나 선별복지의 진짜 목적은 정부 재정지출의 최소화에 있다. 인류 역사에서 어려운 사람에 대한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진 적은 없다. 정부 재정지출을 최소화하면 세금도 줄일 수 있고, 그로 발생한 감세의 혜택이 부유층에게 집중된다. 즉, 선별복지는 경제적 약자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부유층에 대한 지원을 없애자는 논리지만, 역설적으로 부유층에 대한 혜택을 크게 늘려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보편복지로 부유층이 입는 혜택보다 보편복지의 재원 마련에 부유층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더 크기 때문이다. 공적 자원조차 사익 추구에 활용하는 한국의 보수세력이 보편복지를 싫어하는 궁극적인 이유다. 개혁 정부의 재정자원 사용을 싫어하는 논리와 똑같다.

 전 국민 지원금을 (부유층을 배제하고) 선별해 지원하자는 말은 논리적 정당성도 없다. 선별 지원을 내세우는 쪽은 소득이 높거나 부유한 사람까지 왜 국가가 지원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일편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는 기만적인 주장이다. 핵심은 현실 세계에서 코로나19 재난 이전에도 소득이나 자산 불평등은 존재했고, 재난이 끝난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재난 이후에도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지원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할 것인가? 또한 선별 지원의 기준이 되는 88% 혹은 심지어 80% 수치에 대해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왜일까? 이들의 진짜 목적이 수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별복지 논리가 무너지지 않게 방어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별 지원 기준에 포함되는 사람 중에는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도 소득 감소가 없는 대기업 정규직-공무원-공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포함돼 있다. 선별 지원 논리에 따르면 이들에게 왜 지원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심지어 선별 지원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 중에 코로나19 재난 상황으로 오히려 소득이 감소한 사람이 있는데, 이들의 소득이 조금 높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도 설명을 하지 못한다. 선별 기준이 갖는 모호함이나 기술적 어려움, 지급 후 소득의 역전 등 무수한 문제가 있음에도 '선별'을 방어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재명 전 지사의 "재원이 문제라면 지원 기준의 문제가 있는 88%에게 25만 원 지급하는 것 말고 모두에게 22만 원 지급하자."라는 제안이 무시된 이유다. 요컨대, 전 국민 지원과 선별 지원이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선별 지원이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또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어느 면으로 보나 효율적임에도 반대하는 이유는 보편복지나 기본소득의 논리가 강화되고, '재정지출 최소화' 원칙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기본소득이 세금을 거두어 납세자인 국민에게 바로 돌려준다는 점에서 재정자원의 독점 권한을 갖는 재정 관료의 이해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기득권층에게 부유층의 부담이 증가하는 보편복지가 달가울 리 없다.

 

p130

 일본에서 아베노믹스(구로다의 양적/질적 완화)가 시작될 때 일본 은행의 자산은 GDP 대비 32.8%였던 데 비해, 2021년 2분기 132%까지 증가했다. 2018년부터 일본은 줄곧 돈을 찍어내도 경제 규모가 성장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져 있다. GDP 대비 정부채무의 이자 부담만 해도 이미 경상성장률(=실질 성장률+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미국 연준의 자산 규모도 금융위기 전 GDP 대비 5.9%에서 팬데민 직전인 2019년 말 19.5%로, 그리고 팬데믹 이후 2021년 2분기에 36.7%까지 증가했다. 만약 한 번 더 새로운 감염병이 발발한다면 연준 자산 규모는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까? 문제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아무리 풀어도 보통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평등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동원할 자원이 고갈된 상황에 이르렀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의 진짜 이유도 군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만약 한 번 더 새로운 감염병이 유행한다면 급전직하하는 성장률로 정부채무의 이자 부담을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p158

 금융과 재정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금융의 영역에서는 '1원 1표'의 시장원리가 작동하기에 사회적 통제가 없으면 공공성(자금중개 기능)이 약화하고, 빈익ㅂㄴ 부익부를 심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한다. 게다가 금융과 달리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해야 하는 재정이 선출 권력에 의해 작동하지 않을 때 금융의 탈선과 불평등 열차는 폭주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재정 민주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재정자원의 배분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기재부의 권한을 재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재부는 사실상 모든 권한을 장악하고 있다. 기재부 권한으로 규정돼 있는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은 기재부가 사실상의 청와대임을 의미한다. 내치를 담당하는 국무총리의 손발 노릇을 하는 국무조정실장(차관급)을 항상 기재부 출신이 장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권한이다. 재정자원 확보의 핵심수단인 세금 업무와 재정자원의 배분 권한인 예산과 기금에 대한 모든 권한(편성, 집행, 성과 관리)을 갖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 절대적인 부동산 세제나 공공임대주택 관련 기금이 모두 모피아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한 집중은 군부독재가 종식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군부 독재 체제에서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이원체제였다. 경제기획원은 국가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종합계획의 수립,운용과 투자 계획의 조정,예산의 편성과 그 집행의 관리, 중앙행정기관의 기획 조정과 집행의 심사 분석, 물가안정 시책 및 대외 경제정책의 조정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다. 이와 비교해 재무부는 화폐,금융,국채,정부 회계,조세,외국환,대외 경제협력,국유 재산 및 전매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다. 그러던 것이 김영삼 정부 출범 후 경제기획원(1994년 12월 폐지)과 재무부가 재정 경제원으로 통합됐다. 문제는 청와대로 가야 할 경제기획원이 재무부로 넘어간 것이다. 단일한 경제관료 세력이 공적 자원과 권한을 사유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권한을 독점한 경제관료는 자신의 사익 추구를 위해 시장의 자본과 결탁했다. 한편,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기획원 폐지와 더불어 한국은행 독립성 강화도 동시에 진행됐는데, 이는 한국은행을 시장자본에 넘긴 것이다. 한국은행의 권한을 가진 금융통화위원 7인 중 3인이 기재부 그리고 1인이 자본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한국은행 역시 시장자본에 넘어간 것이다.

 공적 자원과 권한이 엘리트의 사익 추구와 시장자본의 소유물로 전락하면서 재정자원은 기업(자본) 중심으로 배분되고, 조세체계는 부유층에 대한 혜택이 집중되는 한편, 금융 시스템에서 공공성은 사라져 오직 수익성만 추구하는 등 보통사라의 삶을 피폐화시켰다. 여기에 한국 은행은 재벌과 금융 자본을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해왔다. 금융 안정(금융 불균형)의 핵심 문제로 지적되는 소득 불평등에 관심 없는 것도 이때문이다. 경제관료 엘리트에게 집중된 권한은 정부조직의 장악으로 이어지고, 퇴임 후 민간 금융회사나 로펌이나 재벌기업 등에 재취업해 로비스트로 활동한다. 실제로 이들은 퇴임 후 은행연합회, 저축은행중앙회, 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한국거래소 등에 재취업해 사실상 정책 로비 및 외풍 차단기 노릇을 수행한다. 삼성전자나 대형 로펌 등에도 마찬가지로 진출한다. 따라서 기재부와 금융위 그리고 한국은행 등이 본래의 공적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재정 및 금융 민주화의 출발점이고, 이를 통해 보통사람이 재정 및 금융자원에 접근할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없는 한 경제적 취약계층이 채무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 뿐 아니라 가계채무와 부동산시장의 경착률은 불가피하다.

 

p162

 2019년 기준 토지를 소유한 법인기업의 상위 1%가 기업이 소유한 전체 토지의 73.3%를 가졌다는 것만 봐도 이 형태가 잘 드러난다.

 이 같은 부의 축적 방식은 가계도 예외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혁신 역량의 부족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의 높은 기대수익으로 상위층 가계도 부동산에 뛰어든다. 상위 1% 가계가 전체 토지의 30%, 상위 5%가 전체 토지의 절반이 넘는 55.4%를, 그리고 상위 10% 가계가 전체 토지의 69.1%를 차지할 정도로 토지 소유의 불평등은 절망적이다. '절망적'이라 표현한 이유는 하위 약 40%는 토지 1평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토지 소유의 지니계수만 0.8이 넘어선 지경이다. 토지 소유의 불평등은 토지 소유의 집중이 심했던 19세기 조선 말 사회보다 훨씬 심하다. 지속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p181

 기재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사반대하는 것은 대한민국 특권층의 뿌리를 흔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팬데믹 재난 상황에서 일회성으로 그쳤다면 한국 사회의 특권층이 결사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기본 소득으로 발전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ㅇ다. 기본소득은 보편복지의 성격을 갖는다. 보편복지는 (부유층이 지지하는) 재정지출 최소주의와 항상 충돌해왔다. 금융화와 신자유주의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에 보편복지가 공격을 받으면서 서구의 복지국가는 위기를 맞이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전국 차원의 기본복지인 '21세기형 보편복지'가 한국에서 부활한 것이다. 기본소득은 여러 장점 중에서도 최저임금 인상률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의 경우 사회임금(정부이전소득)이 턱없이 낮고 시장임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저임금노동자의 생계 조건을 고려했을 때 최저임금 인상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영업을 포함한 저임금에 의존하는 저부가가치 사업장이 광범위한 상태에서 높은 최저 임금 인상은 이들의 어려움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저임금노동자에게 소득을 보전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최저 임금 인상률을 완화할 수 있는 효과를 불러온다.

 둘째, 기본소득이 21세기형 보편복지인 이유는 기본소득 자체가 재정 민주주의와 조세 시스템의 개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재정은 중앙집중식 배분 시스템에 기초한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등이 거둔 세금을 정부나 의회 등이 배분을 결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재정자원의 배분은 기재부의 권한이었고, 이 권한으로 기재부는 정부조직에서 가장 힘이 강한 조직이 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지역구 예산 배정을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까지 조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징수한 세금을 모두 국민에게 균등하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재부의 과도한 재정자원 배분 권한을 줄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기본소득은 기재부의 기득권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재정자원의 배분 권한을 국민이 회수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도입은 세계 최초의 재정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지역사회의 소상공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는 재벌(유통) 자본의 이익과 충돌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시장에서 힘이 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모피아에게 지역사회의 소상공인은 구조조정의 대상일 뿐이다. 자본보다 더 자본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모피아에게 지역화폐는 거추장스러운 대상일 뿐이다. 실제로 1차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을 때 대형유통업체는 매출이 감소했다. 2차 지원금이 1차와 같은 방식으로 지급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던 사실상의 이유다. 반면에 자영업자 단체는 적극 지지했다. 기존의 어느 골목상권 보호 대책보다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지역화폐는 기재부나 한국은행 등에서도 기피한다. 기재부는 기존에 사용하는 온누리상품권이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사용하는) 온누리상품권보다 사용 범위가 넓은 지역화폐 사용이 확산할 경우 온누리상품권 사업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온누리상품권에 애착을 갖는 것일까? 온누리상품권과 지역 화폐의 차이의 본질은 중앙정부 발행의 상품권이라는 점에 있다.중앙정부가 발행하는 한 그에 필요한 재정자원의 배분 권한을 장악하고 있는 기재부의 권한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온누리상품권 발행 기관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의 준정부기관이지만 현재의 조봉환 이사장은 기재부 국장 출신이다. 온누리상품권 예산 배분 권한을 이용해 타 부서(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장 자리까지 챙기는 기재부의 권한을 보여주는 사례다.

 무엇보다 지역화폐의 효능감이 확산할수록 지역사회의 부가 지역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 공공은행 같은) 지역 금융의 수요가 증대할 수 있다. 이는 (지역에서 금융자원을 추출해 서울 등 대도시에 투입하는) 기존 금융자본의 이익 축소로 이어질 뿐 아니라, 한국은행의 통화공급 독점력도 약화시킬 수 있다. 기재부가 조세재정 연구원이나 한국개발연구원 등 산하 국책기관에 기획용역을 발주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지역화폐 효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체감을 통해 효과를 확인한 많은 국민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 팩트다.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가 단기간 내에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p188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또다시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겁박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외환위기를 당했던 1997년 국가채무, 정확히 표현하면 정부채무는 GDP 대비 10%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전후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S&P기준으로) AA-에서, 투자를 권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매우 투기적인 수준의 B+로 추락했다. 무려 10등급이 하락한 것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신용등급은 AA로 위에서 3번째 등급까지 상승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국가신용등급이 11단계나 올라가는 동안 정부채무가 거의 5배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점이다. 국가신용등급과 정부채무 간 상관성이 없다는 사실은 주요 선진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같은 개방도가 높고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에도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정부채무가 급증했으나 항상 최고등급인 AAA를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채무는 1990년대 70% 미만에서 현재는 거의 2배 수준인 130%대까지 증가했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지속하고, 외환보유고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 관점에서 볼 때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이유는 경상수지 적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적자 부분을 금융시장 개방으로 유입된 외화로 막았는데, 그렇게 금융시장에 투자했던 외국인이 자금을 일시에 회수하면서 외화 유동성에 급격한 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p192

 매년 5월에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대통령 주재로 열린다. 재정은 국가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핵심 자원이다. 국정 방향이나 목표 등에 따라 재정 운용이 결정된다. 2019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이 '과감한 재정정책'을 주문하자 이 자리에서 홍남기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의 마지노선을 40%로 본다."라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에서는 장관이 대통령에게 '고언'을 드렸다고 두둔했는데, 특권층 카르텔의 공동전선을 펼친 것일 뿐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은 107%, 일본은 220%, OECD 평균이 113%인데, 우리나라는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OECD 평균 수치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미국과 일본 등은 기축통화국이라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며 반박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질문은 합리적이었다. 40%라는 수치는 경제학의 족보는 물론이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사용한 적이 없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마지노선이라 완강하게 주장했던 40% 선이 일찍이 무너졌는데 대한민국에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p199. '나랏돈'이 쌓인다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모피아는 왜 재정지출 최소화에 목매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피아의 탄생 배경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고동성장기는 군부독재의 통치 기간이었다. 당시 경제 엘리트 관료는 군부독재라는 물리적 폭력에 기반한 권력의 도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런데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가 집권하면서 구도에서 주요한 3가지 변화가 발생했다.

 첫째,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문민화를 진행하면서 국가 주도를 '악'으로 규정하고, 경제의 국가 주도를 시장 주도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자산인 재벌기업을 재벌총수의 배타적인 개인 소유물로 전락시켰다. 재벌기업은 대주주뿐만 아니라 (한국의 고도성장에서 정책금융이 결정적 역할을 했듯이) 사회 전체가 키운 것이었다. 기업경영이 부실화될 때 재정이나 한국은행의 특별융자 등이 투입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군부 권력이 공공연히 재벌에게 정치자금을 요구할 수 있던 것이다. 재벌이 재벌 총수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권력이 만들어주었다는 인식이 깔려 있던 것이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재벌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포기하고, 권력을 시장에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삐가 풀린 재벌자본이 시장 권력의 중심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자본이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향이지만, 한국의 자본은 기존의 주요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과 비교해 부의 축적에서 정당성이 부족하다. 실제로 선진국의 자본은 '혁신'이 부의 축적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꽤 있으나, 한국의 자본은 재벌을 생각하면 '정경유착' 이미지가 연상되듯이 혁신보다는 불공정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 사실이다. 불공정은 국민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재벌 중심 경제 시스템의 특징을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로 규정하는 이유다.

 둘째, 세계화로 알려진 '자발적 금융화'를 추진했다. 미국 월가와 워싱턴이 추진한 자본자유화와 그에 따른 금융시장 개방 압박이 한국에도 1980년대 후반부터 밀려왔다. 압박을 받은 군부 정권에서는 점진적 개방을 추진했는데, 김영삼 정부에서는 '압박'에 의한 개방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적극적 개방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자발적 금융화'라고 표현한 이유다. 당시 추진했던 OECD 가입도 적극적 금융시장 개방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지나치게 금융에 대해 무지했고, 그 결과로 외환위기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자발적 금융화와 더불어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금융시장의 완전 개방으로 한극의 금융 부분은 월가(자본) 논리로 재구성됐다. 시장 권력이 국내 재발자본과 해외 금융자본으로 재편됐다.

 셋째, 김영삼 정부는 국가 주도로 경제를 운영할 때 군부 권력의 목표를 기획할, 즉 국가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을 경제기획원을 해체하고, 재무부에 통합시켰다. 중장기 발전전략부터 예산과 기금 배분, 세제, 화폐와 외환 등 경제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가진 공룡 경제관료 조직인 재정경제원이 등장한 것이다. 경제 중심의 국가 운영에서 재정경제원은 사실상 내치와 관련된 대부분 권한을 장악했다. 군부 권력처럼 자신들을 통제했던 국가권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새롭게 부상한 시장 권력인 재벌자본 및 금융자본과 결합했다. 재벌 대기업과 금융자본 등의 이해 논리가 경제관료에게 내재화됐고, 이들이 바로 '모피아'로 발전한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 재벌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던 경제관료는 퇴임 후 재벌 대기업이나 민간 금융기관 그리고 이들을 고객으로 삼고 있는 대형 로펌 등으로 이동해서 로비스트 역할을 수행한다. 은행자본의 이익단체인 은행연합회 회장, 2금융권의 대표적인 저축은행 이익단체인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카드회사들의 이익단체인 여신전문협회 회장, 손해보험협회 회장, 심지어 자본시장 이해관계자들을 회원사로 가진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이 모두 기재부 혹은 기재부와 사실상 한 몸인 금융위원회 출신이다. 재벌 대기업도 다를 바가 없다. 김영삼 정부 때 재정경제원 장관을 하고,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한 한승수나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원 장관을 한 한덕수 등은 김앤장의 사실상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고문직을 수행한 것을 상기하면 된다. 김영삼 정부에서 재경원 출신으로 강만수와 더불어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외환위기 주범 중 한 명으로 지목됐던 윤중현은 김앤장 고문으로 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장관으로 화렿게 돌아왔다. 또한,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노동부 장관, 기재부 장관을 하며 이명박과 처음과 끝을 같이 했던 박재완은 공직을 떠난 후 (이건희 사면의 공로를 인정받아?) 현재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모피아는 새로운 권력인 재벌 및 금융자본과 사실상 한 몸이 되어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구조의 중심에 있다. 모피아가 재정지출 최소주으(재정안정주의)를 추구하는 이유도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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