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2. 4. 오전 2:05 제출됨 <직원 인증>
오늘 우리 당원들이 선출한 후보의 TV토론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대한민국 보수 정당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의 엘리트들의 모인 곳이라는 자부심을 당원들과 그 지지자들에게 항상 심어주었다.
'보수는 부패할지언정 유능하다'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일 만큼 대한민국 국민들은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대한민국 보수 정당이 유능하고 똑똑하다는 것만큼은 누구나 인정해왔다.
대한민국 보수 정당을 집권하게 만든 힘은 유능함에 있었다. 깨끗하고 도덕적일지언정 무능하고, 수천만 명의 국민들을 이끌어나갈 능력이 없는 세력에게 이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국민들의 절박한 마음이 대한민국 보수 정당을 집권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고, 우리의 존재 이유였다.
그래서 대한민국 보수 정당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쇄신을 통해 행정고시 출신 고위 관료, 사법고시 출신 판검사와 변호사, 성공한 기업가, 학계에서 존경받는 교수, 대중의 지지를 받는 언론인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엘리트들을 발굴하고 영입하고자 노력해왔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보수 정당은 유능한가?
대한민국 보수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는가?
대한민국 보수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오늘 온 국민이 지켜보는 TV토론 자리에서 자신의 무능함과 무지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주택 청약 만점 기준을 묻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대해 잘못된 수치를 언급해 조롱을 당한 것은 물론, 본인이 화두를 던져온 에너지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RE100의 기본개념조차 알지 못해서 'RE100이 뭐죠?'라고 되묻는 등 함량 미달의 후보,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되지 않은 후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참담했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인 보수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대학 시절 술만 마시고 놀기만 했던 운동권 세력에게 되려 '무능하고 무지하다'며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정말 부끄럽고 민망해서 어디론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당원들의 반응이었다. '소주 이즈백은 아는데 RE100은 뭐냐'는 황당한 반응부터 '나도 모른다'며 자신들의 무지함을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고, 무능과 무지를 드러낸 후보를 필사적으로 옹호하는 모습까지. 우리 당이 저 무능한 당과 뭐가 다른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광기 속에 나는 탄식했다.
OO당 시절부터 벌써 10년,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대한민국 정치 세력 가운데 우리가 가장 유능하다는 그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건만, 이제는 나도 그만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 보수 정당은 이제 더이상 유능하지도, 똑똑하지도 않다.
우리 당과 후보는 그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 그 하나에 기대고 있을 뿐, 무능하고 무지한, 아니 무식한 우리의 후보는 정권교체 그 이후의 대한민국에 대해서 어떠한 희망도,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유능한 정치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한 최소한의 의자(아마 의지의 오타겠지?)도 잃어버렸다. 그저 우리 후보를 향해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당원들과 지지자들만 남았을 뿐, 우리 당의 미래는 매우 암담하다.
우리 당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유능함과 똑똑함을 자부심으로 여겨왔던 우리 당이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오늘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