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오르고 난 후, 검찰과 언론의 잔혹한 사냥을 당했던 2년 간의 기록.

사법개혁의 당위성, 사법 기득권의 반발의 자세한 내막, 검찰과 언론의 막가파식 수사와 가짜뉴스의 공조를 통해

한 가정을 조리돌림하는 잔혹함을 담담하게(하지만 필자인 조국 장관 본인은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기술한다.

이 시대의 화두인 언론개혁과 검찰개혁에 대해 조금이라도 그 진상을 알고 싶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중간 중간 가슴 아픈 이야기들도 많고, 사법개혁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 제도적 보완점 들을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의 관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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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4

 필명 '이소룡'으로 책을 낸 조성식 전 <신동아> 기자의 진단이다.

 

 "윤 총장은 검찰 안팎에서 지지만큼이나 원성도 샀다. 보수 성향이 강한 검사들 눈에는 진보정권에서 출세한 윤 총장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윤 총장으로서는 검사들의 반감을 달래고 조직을 안정적으로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가뜩이나 여권이 환호하는 적폐수사로 정치적 중립성까지 의심받는 터였다. 윤 총장은 자신의 표현대로 뼛속 깊이 보수주의자다. 검찰에 강한 불신을 가진 진보주의자 조국 전 장관과는 한 상에서 마주 앉을 수 없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검찰개혁을 설계하고 주도한 조국은 검사들에게 공공의 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국 수사는 다목적 카드였다. 친정권 검찰이라는 오해를 벗소, 정의로운 검찰 이미지도 과시하고, 검찰개혁 흐름도 견제하고, 검찰 내부 불만도 다독이고."

 

p91

 

해명 1 : 나는 왜 <죽창가>를 올렸는가

 2019년 7월 26일 민정수석 퇴임 이전, 나는 우리 대법원의 2012년 및 2018년 강제징용 노동자 판결을 옹호하고 일본 정부를 비판한 것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 특히 7월 13일 당시 인기 있던 SBS 드라마 <녹두꽃> 마지막 회를 보다가 <죽창가>가 배경음악으로 나와서 이를 간략히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장관 지명 후에 공격 소재가 되었다. 이에 항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 입장은 ①일본과 조선은 합법적으로 한 나라가 되었다. ②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었다. ③한국 대법원 판결을 이를 무시했고, 이를 방치한 문재인 정부는 잘못이다. ④이렇듯 한국이 국가 간의 약속을 어겨 일본 기업에 피해를 주므로 '수출규제'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민정수석실에서는 이 판결이 미치는 영향과 대책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와 관련 부서에 회람했다. 대법원 판결을 옹호하면서 일본 정부 입장에 맞서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일부 한국 정치인과 언론은 이러한 일본 정부 입장에 반박하기는 커녕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동조하면서 한국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를 매도하는 데 앞장섰다. 대법원 판결이 공연히 한일 관계에 분란을 일으켰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많았다. 희한하다. 일본의 양심적 법률가들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지지했는데 말이다. 대표적으로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주장을 보자.

 "요즘 상황은 한국의 대법관들이 첫 단추를 이상하게 끼우는 바람에 비롯된 측면이 있다. 2012년 판결문의 취지 '1919년 한국이 건립되었으니 1919~45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는 국제법적으로는 전제 불성립의 오류로서 국제사회에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민족적 감성을 앞세운 주관주의적인 오류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한국은 국제법상 일본에 승전국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배상권을 행사할 수 없는 관계였다. 사정이 이렇게 명백한데도 2018년의 대법관들은 법적인 배상 청구권을 기어이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 사고는 대법원이 치고 고통은 국민이 속절없이 당하는 형국이다."

 

 어이가 없었다. 일본 극우파의 논리를 한국에 전파하는 책 <반일종족주의>의 공동저자로 <강제징용은 허구>라는 글을 쓴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의 최대 일간지 <문예춘추> 특별판 '저주받은 한일관계'에 <징용공(徵用工) 판결은 역사 날조다>라는 글을 싫었다. 분노가 일어났다. 통상적으로 '우파'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법인데, 한국에서는 정반대다. 이러한 사람들을 '토왜(土倭)'가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사법)주권이 타국, 특히 과거 우리의 주권 침탈국이었던 일본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거나 이를 옹호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협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나 관련 부처가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박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민정수석 개인자격으로라도 싸움을 벌이고, 이후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겠다고 판단했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이 예상되었지만, 점검해본 결과 이겨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거의 유일하게 나의 의도적 공격 취지를 알아채고 옹호한 사람은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말했다.

 "(일본에 대한) 공격을 (여당에서) 아무도 안 하니 '열혈 청년' 조 수석이 나선 것이다. 조 수석이 일부 비판을 받는다 해도 조국을 위해서, 대통령을 위해서 한마디한 것이다. 조 수석마저 안하면 지금 (대일 여론전을) 누가 하느냐."

 깊이 감사했다. 당시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일련의 글 가운데 핵심은 다음과 같다. 먼저 7월 20일에 올린 글이다.

 

 "법학에서 '배상(賠償)'과 '보상(補償)'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자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후자는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다. 근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이 점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해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법률보좌가 업무 중 하나인 민정수석으로서(그 이전에 법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법학자로서), 이하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1.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를 받았지만, 당시에도 지금도 일본은 위안부, 강제징용 등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그러므로 이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은 것이 아니다.

 2.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는 ①1965년 한일 협정으로 받은 자금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포함되어 있을 뿐, 이들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②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다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안 되지만, 한국인 개인이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함을 확인했다.

 3. 2012년 대법원(제1부, 김능환 대법관 주심)이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라는 취지로 파기 환송해 신일본제철(현 일본제철)에 대한 '배상'의 길이 열린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었으나, 2018년 확정된다.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 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경제전쟁'을 도발하면서 맨 처음 내세웠던 것이 한국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이었다. "1965년 일본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한 것 아니냐"라는 식의 표피적 질문을 하기 전에, 이상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본의 한국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느냐가 모든 사안의 뿌리다.

 다음은 7월 22일에 올린 글이다.

 

 "일본 국력, 분명 한국 국력보다 위다. 그러나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 외교력 포함 현재 한국의 국력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병탄(倂呑)을 당한 1910년과는 말할 것도 없다. 법적, 외교적 쟁투를 피할 수 없는 국면에는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한다. 국민적 지지가 필요하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당시 양국 정부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청구권'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 단적인 예다. 협정 체결자인 시나 에쓰사부로 당시 일본 외상은 일본 정부가 제공한 5억 달러는 '배상'이 아니라, '독립 축하금'이라고 참의원에서 발언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덜 알려졌지만, 일본 정부는 미쓰비시가 중국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대해 '배상' 성격의 '화해금'을 지급하는 것을 허용했다. 왜 한국 강제징용 노동자에게는 배상을 거부하냐고? 조선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징용'도 없었다고 강변하므로 배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이 불법임을 선언한 2012년과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의 의의는 너무도 중요하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것ㄱ이다. 1965년 협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한일 간 '무역전쟁'의 신속한 종결을 위해 외교와 협상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2012년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몰각(沒却), 부정하면 헌법 위반자가 된다.

 당시 일본 정부가 '무역전쟁'을 개시했을 때, 야당과 언론은 한국의 패배를 예견하고 대법원 판결과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4개월밖에 못 버틴다" 운운한 <조선일보> 기사가 생각난다. 야당과 언론은 내가 '반일선동'을 한다고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다. 일본 언론은 나를 '대일 초강경파'라고 불렀다.

 2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가 망했는가? 전혀 아닌 것이 확인되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핵심인 불화수소 가운데 액체불화수소는 100% 국산화에 성공했다. 오히려 일본 기업이 타격을 받았다는 일본 내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국산화의 길은 멀다. 무역을 포함해 일본과의 관계도 더 개방적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주권을 흔드는 일본의 행태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이 없어야 한다. 감히 말하자면, 되돌아보아도 당시 나의 '대일 강경노선'이 명분과 실리 모두에서 오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p283. 검찰은 죽을 때까지 찌른다

 

 장관 사직 후 검찰은 나를 소환조사했다. 서울중앙지검은 2019년 11월 14일과 21일 그리고 12월 11일 나를 소환했는데, 나는 진술거부건을 행사했다. 내가 뭐라고 해명하건 검찰은 정경심 교수의 '공범'으로 기소를 정해두었기에 진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일치된 권고였다. 오래전 일이고 대부분 내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관여하지도 않은 일인데, 불완전한 기억에 따라 진술했다가 추후 조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점이 나오면 검찰은 언론에 흘려서 "거짓말했다"라는 공격을 받도록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3장에서 보앗지만, 2019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검찰개혁법안이 2022년 1월 발효되기 전까지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은 '번관면전 조서'에 준하는 강력한 효력을 가진다. 검사 앞에서 한 말을 법정에서 변경하면 법정 진술이 우선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말 바꾸기'한 사람이 되어 신빙성을 의심받게 된다.

 금태섭 전 의원이 2006년 서울중앙지검 검사 시절 <한겨레>에 <현직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칼럼을 쓰면서 제1원칙으로 진술거부를 권한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점을 찾아내서 수사에 대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파멸로 이끄는 길에 한 걸음을 내닫는 것이다. 공개가 원칙인 재판과는 달리 수사를 받는 피의자는 충분한 정보도 없이 어둠 속에서 헤매야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행동하면 상처를 입는다. 수사기관의 행동에 섣불리 대응하지 않고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피의자의 권리이며 이러한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현명하게 수사를 받는 제1의 원칙이다."

 

 진술거부권이 헌법적 기본권(헌법 제12조 2항)임은 명백하나 검찰 조사실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의사 표시를 하면 신문을 즉각 중단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경우 일본의 예에 따라 몇 시간이고 신문을 감수하고 앉아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미란다(Miranda) 원칙'은 체포와 신문 시에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해야 하는 원칙 정도로 이해되고 있지만, 이 원칙의 또 다른 핵심은 피의자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신문이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조사 시 나는 이 점을 밝히며 신문 중단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장시간 신문에 진술거부 의사를 반복해서 밝히며 앉아 있어야 했다. 이러한 관행은 헌법 위반이라고 생각한다.

 얼토당토않은 추궁이나 유도 질문을 받으면 피의자는 답변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되어 중간에 진술거부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나는 논문과 강의에서 강조했던 이 권리를 제대로 실천할 순간이 왔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법리적 측면과 별도로, 나는 가족에 대한 전면적/전방위적 저인망 수사에 대한 진술거부를 통해서라도 검찰에 항의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멸문'을 꾀하는 수사에 대해 시민으로서 항의할 방법은 진술거부밖에 없었기에.

 내가 진술거부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언론과 야당은 일제히 맹비난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패스트트랙 사건 경찰 수사에서 진술거부를 했을 때와는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시민이 자신에게 보장된 헌법적 기본권을 행사했다고 비난하는 것 자체가 반헌법적인 행태였다.

 

p286. 사전구속영장 청구

 서울중앙지검은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로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을 거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2019년 12월 23일 서울동부지검은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관련 감찰무마 의혹을 이유로 나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경심 교수를 구속하는 데 성공했지만 관련 혐의로 나까지 구속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검찰은 '유재수 사건'으로 나의 구속을 시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검이 중심이 되어 서울중앙지검과 동부지검의 행보를 조율했을 것이고, 나에 대해 공적 업무상의 비리로 영장을 청구해야 명문이 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유재수 사건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2017년 10월 말 11월 초 민정수석실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청와대 특별감반(이하 '특감반')이 금융위원회 유재수 금용정책국장의 비리 제보를 받았음을 나에게 보고했고, 나는 감찰을 지시했다. 박 비서관으로부터 유 국장이 '구명' 운동을 벌이고 있음을 보고받은 후에도 감찰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참여정부 인사들과 연이 있는 백원우 민정비서관에게 상황을 점검해보라고 지시했고, 백 비서관은 상황을 점검한 후 나아게 보고했다. 검찰은 이를 유 국장의 '구명 로비'에 백 비서관이 호응한 것이라고 규정했지만, 이는 민정비서관의 통상적 '업무'였다. 만약 내가 유 국장을 봐주려고 생각했다면, 감찰 계속을 지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유 국장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며, 내가 이 사람을 봐주어야 할 이유도 봐주어서 얻을 이익도 없었다.

 감찰을 통해 확인했던 유 국장의 비리는 골프채, 골프텔, 기사 딸린 차량 서비스 이용 등이었는데, 이는 2019년 검찰의 강제수사를 통해 밝혀진 비리와 큰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덜 알려져 있지만, 특감반은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7조에 따라 - 강제수사권과 징계권은 없고 - '비리 첩보 수집'과 '사실관계 확인' 권한만을 갖는다. 특감반 조사와 검찰 조사가 차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검찰과 언론은 이를 무시하고 검찰이 밝힌 것을 청와대가 덮었다는 식으로 비판했다.

 영장청구 소식을 접하고 "검찰은 죽을 때까지 찌른다"는 속언이 떠올랐다. 구속된 상태에서 소환조사를 받게 되면 정신적/육체적으로 위촉/약화되어 결국에는 자포자기하고 검사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대중적으로 '구속=유죄'라는 관념이 유포되어 있고, 이러한 인식은 이후 재판에도 영향을 미친다. 구속을 해두어야 이후 수사/기소/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고 검찰은 판단했을 것이다.

 2019년 12월 23일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나에 대한 사전영장 청구 서면 브리핑에서 밝혔다.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실은 수사권이 없어서 유재수 본인의 동의하에서만 감찰 조사를 할 수 있었고, 본인이 조사를 거부해 당시 확인된 비위 혐의를 소속 기관에 통보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검찰수사를 의뢰할지 소속 시관에 통보해 인사조치를 할지는 민정수석실의 판단 권한이며, 청와대가 이러한 정무적 판단과 결정을 일일이 검찰의 허락을 받고 일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유재수 사건의 출발은 검찰수사관 출신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의 고발이었다. 김 씨는 청와대 내부 감찰로 자신의 비리가 발견되어 징계 및 수사 의뢰가 이루어지자, "민정수석실에서 민간인을 사찰했다"라는 허무맹라한 주장을 했다. 이에 야당과 보수언론은 청와대에 대해 파상공세를 펼쳤다. 특감반 책임자인 박형철 비서관은 직접 청와대 춘추관에 나가 브리핑을 하면서 억울해 눈물까지 흘렸다.

 야당은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등 법안 처리르 놓고 민정 수석의 국회출석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은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지만, '김용균법'의 연내 통과를 위해서라면 출석하라"라고 지시하셨다. 12월 27일 아침 대통령께서는 국회 상황을 한병도 정무수석에게 보고받은 후, 나에게 짧게 질문하셨다. "나갈 준비되어 있지요?" 나느 답했다. "네, 잘 준비해서 나가겠습니다." 대통령께 "또박또박 답변하면 됩니다"라고 격려해주셨다.

 2018년 12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자 야당 의원들이 유재수 사건과 관련해서 '민간인 사찰' '별건 감찰' 여부를 추궁했고,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해명했다.

(2021년 1월 8일, 김태우 씨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로 청와대의 직권남용이 없었음이 확인되었다)

 당시만 해도 유재수 사건은 주변적인 사안이었다. 그런데 2019년 2월 김태우 씨는 유재수 사건을 이유로 나를 고발했다. 김 씨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문재인 정부 공격에 나섰고, 2020년 4.15 총선에서는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특감반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나는 유재수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17년 10월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감반의 감찰이 있은 후 유재수 국장을 사직토록 했기에 상황이 종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p290. 사냥의 최종 목표

 특감반이 포착한 비리 가운데 유 국장은 차량 제공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대가성을 강력히 부인했고, 이후 감찰에 불응하고 병가를 낸 후 연락을 끈혹 잠적했다. 청와대 특별감찰은 대상자의 동의에 기초해서만 진행되는 것이고, 공직자가 청와대 특별감찰을 거부하는 일은 드물었기에 당황스러웠다. 청와대 특감반은 강제수사권이 없어서 감찰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 국장이 감찰을 받고 있고 이후 병가를 냈다는 사실은 금융위원회는 물론 관가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공무원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청와대로부터 감찰을 받았다는 것은 순식간에 알려지기 마련이다.

 이 상태에서 나는 박형철 비서관에게 감찰 결과 및 복수의 조치 의견을 보고받았다. 특감반 업무 관례상 조치의견은 감찰이 종결되거나 불능상태에 빠져 마무리할 때 기재된다. 당시 백원우 비서관은 "빨리 잘라 국정부담을 덜어야 한다. 고위직은 옷 벗기는 것이 최고의 징계다"라는 의견을 피력했고, 박형철 비서관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정치인 출신과 검사 출신 비서관의 감감에는 차이가 있었다.

 나는 두 의견을 청취한 후 유 국장이 현직을 유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유 국장의 비리와 상응한 인사조치 필요를 금융위원회에 알릴 것을 결정했다. 민정수석실은 유 국장에 대한 징계권이 없으므로, 징계 여부를 금융위원회가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민정수석으로 감찰 '중단'을 지시한 것이 아니라, 대상자의 감찰 불응으로 감찰이 '불능'상태가 된 상황에서 최종 조치를 결정한 것이었다. 특감반은 강제수사권이 없기에 감찰에 불응하는 사람을 특감반이 강제로 추가 조사할 방법은 없고, 만약 그렇게 하면 불법이 된다.

 당시 박 비서관에게 이인걸 특별감찰반장이 조치 결정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특감반 업무의 한계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박 비서관도 자신의 의견이 체택되지 않아 불만이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특별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특별감찰의 시작/전개/종결에 대한 최종 권한은 민정수석에게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 비서관은 법정 증인신문에서 유재수 사건의 처리 방향에 이견이 있었지만, 최종 판단 권한은 민정수석에게 있었고 민정수석실에는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사표 처리 결정을 수용했다고 진술했다.

 2019년 11월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유재수 국장의 비리가 더 드러났지만, 나는 강제수사권이 없는 청와대 특감반의 감찰 결과에 기초해 위의 조치를 하는 것이 나의 정무적 재량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2017년 하반기 나의 주된 관심은 국정원/검찰/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 2018년 1월 14일 이 방안을 춘추관에서 내가 직접 발표했다 - 이 사안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고 있지도 않았다. 유재수 사건은 당시 민정수석이 결재하는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기에 비중을 두고 처리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유 국장 감찰 중단 상황에서 박 비서관의 의견에 따라 이 사건을 아예 수사기관에 넘겼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라는 후회를 한다. 형사처벌은 '최후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소신과 판단이 이후 검찰이 내게 칼을 들이대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2019년 9월 6일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종료 후, 검찰이 유재수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미래통합당 김도흡 의원은 2019년 10월 7일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전직 특감반원(김태우 씨)의 진술을 거론하며 유재수 사건을 부각했다. 검사 출신 김 의원의 언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추후 공판 과정에서 알게 되었지만, 검찰은 감찰반원들을 차례차례 불러 감찰이 강제로 '중단'되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얻어내고 있었다. 검찰의 수사 방식은 최종 목표를 정해놓고 밑에서부터 차례차례 올라가면서 최종 목표에 불리한 진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당시 검찰수사관 출신 특감반원들에게 나는 쓸모없는 카드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내는 구속되었고 본인도 피의자가 된 전직 상관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와 같은 특감반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내용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검찰 출신 변호사 지인들은 내 가족 관련 수사에서 나온 혐의로는 나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기 어려우니, 유재수 사건을 끄집어내 영장을 청구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한 지인의 말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검찰은 특수부 엘리트 검찰 술신으로 윤석열 총장이 아끼던 우병우 민정수석도 구속했다. 따라서 조국 수석 사건은 더 가혹하게 할 것이다."

 검찰이 벌이고 있던 사냥의 최종 목표는 나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배우자와 동생을 구속시킨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유재수 사건을 김경수 경남도지사, 윤건영 청외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천경득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과 연결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권력형 비리 프레임이 가동된 것이다. 이 세 사람이 기소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나에게 영장을 청구한 동부지검의 검사장은 조남관이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에 근무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원 감찰실장으로 발탁되어 국정원 개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부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면서, '조 검사장이 청와대 특감반 근무를 한 사람이라 특감반 역할과 한계, 민정수석의 권한 등을 잘 알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조남관도 윤석열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넘임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아는 놈이 이랬으니 참 악랄한 넘이다]

 이런 마음을 주변 법률가 친구와 지인에게 드러냈더니, 그들의 조언은 한결같았다.

 "순진한 생각하지 마라. 검사는 검사일 뿐이다. 조직이 결정하면 집행한다. 기대하면 실망만 커진다."

 내가 2019년 8월 9일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된 후 검찰은 나를 최종 목표로 가족 전체에 대한 '사냥'을 전개했고, 기필코 나를 '우리'에 가두고자 했다. 어떤 명목으로건 나를 구속시켜 유죄 낙인을 찍고 방어권을 무력화시켜 결국 나를 정신적/심리적으로 붕괴시키려는 검찰의 의지는 분명했다. 검찰이 들이대는 칼날의 번뜩이는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p294. 최악의 크리스마스

 영장청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나는 '급난지붕'(急難之朋), 즉 급박한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줄 친구와 지인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이미 배우자가 구속되었는데 나마저 구속된다면, 연로하신 어머니와 자식들을 챙겨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책임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을 준 이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법률가 친구와 지인들은 터무니없는 영장청구이니 발부될 리 만무다하도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 개월 동안 검찰발 언론 보도를 통해 유죄확증을 각인시키는 여론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판사도 여론의 영향을 받는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어머니와 자식들에게는 마음 굳게 먹으라고 당부했다. 12월 24일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정경심 교수를 면회하고 창살 너머 사색이 된 얼굴을 보면서 마음을 더 굳게 먹으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내 삶에서 최악의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변론을 맡고 있던 변호사들은 크리스마스 휴일을 반납하고 영장실질심사를 준비해야 했다. 특히 대학 동기인 법무법인 LKB의 김종근 대표변호사는 오래전 예약해둔 가족 해외여행까지 포기하고 영장실질심사 준비를 이끌어주었다.

 12월 26일 아침, 집을 나섰다. 걱정 가득한 어머니와 자식들의 눈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학 동기 법무법인 예강의 김진수 대표변호사 사무실에서 동부지검으로 출발했다. 동부지검에 도착해서는 동부지검이 준비한 차를 타고 10시 5분쯤 동부지법 입구에 내려 걸어 들어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김 변호사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동부지법 근처는 응원의 목소리와 비난의 목소리가 뒤섞여 난리였다. 걸어 들어가는 왼편에서 "장관님, 힘네세요"라는 우렁찬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프로레슬러로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김남훈 씨가 서 있었다. 고마웠다. 눈으로만 인사를 하고 포토라인 쪽으로 걸어 들어가 말했다.

 

 "122일입니다. 첫 강제수사 후 122일째입니다. 그동안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검찰의 끝이 없는 전방위적 수사를 견디고 견뎠습니다. 혹독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검찰의 영장 신청 내용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오늘 법정에서 판사님께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철저히 법리에 기초한 판단이 있으리라고 희망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권덕진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주재하는 영장실질심사는 오전 10시 30분쯤 시작해 점심을 거르고 오후 2시 50분쯤 종료했다. 영장실질심사에서는 검찰 측이 제출한 수사자료가 판사에게 제출되지만, 변호인 측은 이 자료를 보지 못하고 대응해야 하기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검찰의 언론 플레이로 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담당 판사에게도 전파된 상황이었다. 검찰 측은 집요하게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장이 발부되어야 자신들이 벌인 수사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변호인단은 검찰 측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은 물론 법리적으로도 잘못되었다고 강력히 반박했다. LKB의 김종근, 이승엽 변호사는 수사내용의 법리적 잘못을 하나하나 치밀하게 비판했고, 예강의 김진수 변호사는 과거 유사한 직권남용 사례를 제시하면서 구속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다산의 김칠준 변호사는 누구의 권리가 방해되었는지가 불분명함을 지적했다. 법정은 긴장으로 팽팽했다.

 

p296. '우리'에 갇히다

 심사가 종료된 후 나는 동부구치소로 입감되었다. 동생이 이미 구속되어 있는 장소였다. 동부지법을 떠날 때 변호인들이 "기각될거라고 봅니다. 힘내십시오"라고 말해주었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부구치소로 들어가 하늘색 수감자용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하얀 고무신을 신었다. 얼마 전 교정업무의 최고책임자였던 전직 법무부장관으로서 참담한 심정이었다. 교정직원들의 표정이 묘했다. 늦은 점심으로 컵라면이 나왔는데, 몇 젓가락 뜨다 말았다. 이후 6층 맨 구석 독방으로 들어갔다. 철문히 닫혔고,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1993년 6월 23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서울구치소에 갇힌 경험이 있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구치소 독방 크기는 비슷할텐데, 더 좁게 느껴졌다. 1993년에는 '반정부' 운동 참여로 구속되었고, 2019년에는 고위공무원의 '직권남용' 혐의로 갇힌 것이라 기묘한 감정이 일었다. 1993년에는 검찰 공안라인이, 2019년에는 검찰 특수라인이 영장청구의 주도자였다. 1993년 검찰은 극우 보수적 정치관으로 무장한 채 체제의 수호자로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는 선봉에 서 있었다면, 2019년 검찰은 조직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언론과 야당과 손잡고 문재인 정부와 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다.

 6층 독방에서도 동부구치소 주변 찬반 집회 소리가 들렸다. "조국 수호"와 "조국 구속"의 함성이 섞여서 들렸다. 많은 지지자들이 실질심사가 진행되는 내내 구호를 외치고 있음을 알았다. 중간중간 부부젤라 소리가 들려왔다. 답답한 시간이었지만, '이분들의 마음을 생각하자' '무너져선 안 된다'라고 되뇌었다. 집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을 어머니와 자식들을 생각했다. 서울 구치소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정경심 교수와 동부구치소 어느 방에서 내 소식을 듣고 마음 졸이고 있을 동생을 떠올렸다.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준 친애하는 벗과 동지들을 생각했다. 추후 동영상을 통해 당일 추운 날씨에 심야까지 나를 응원해주며 고생하신 분들의 모습을 보았다. 가슴이 찡하고 목이 울컥했다.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막막한 10시간이 지나고 27일 새벽 1시가 되기 전 영장이 기각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겨진 양복을 찾아서 입고 컴컴한 복도를 지나 새벽 1시 30분쯤 구치소를 나왔다. '우리'에서 풀려난 것이다. 나 때문에 늦게까지 수고한 구치소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구치소 문을 나서는데, 담장 바깥에서 일부가 나를 향해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언론사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평소 이웃으로 친교를 나누던 구승희,구관희 씨 형제가 자동차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구치소를 빠져나오자, 나를 응원하는 분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찡했다.

 아파트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동네 주민 몇 분이 나와서 위로와 격려 인사를 해주셨다. 집에서는 어머니와 딸, 아들이 환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씩 안아주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26일 저녁부터 가족들과 함께 있어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 독주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마셨다. 새벽 3시쯤 그분들이 돌아간 후 잠을 청했다. 그러나 긴장이 풀리지 않은 데다가, 여전히 갇혀 있는 정 교수와 동생을 생각하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생애 가장 긴 하루가 그렇게 끝났다.

 <한겨레> 이재성 기자가 12월 26일 당일 '인권연대' 소식지에 쓴 글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늑대가 된 검찰에게 가장 큰 천적은 이른바 '검찰개혁 세력'이다. 그대로 뒀다간 검찰이 사냥을 못하게 되거나 번식이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게 조국은 호랑이 새끼 같은 존재였다. 더 크기 전에 물어 죽여야 했다. 조국 하나를 잡기 위해 청와대와 총리실, 기획재정부, 경찰청 등 가리지 않고 들이닥쳤다. 전국의 검찰 조직을 총동원해 넉 달 동안 뒤진 끝에 고작 '감찰 무마' 직권 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채용 비리 혐의를 받은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 등에게는 구속영장의 ㄱ자도 꺼내지 않은 검찰이다. 표적수사이자 문어발식 별건수사일 뿐 아니라 친검 편파 수사로서 검찰 흑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p299. 직권 남용죄의 남용

 나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중앙지검은 12월 31일 나를 불구속 기소했고, 서울동부지검은 다음 해 1월 17일 추가로 기소했다. 나는 피고인이 되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형사법 교수, 민정수석, 법무부장관 등을 역임한 사람이 형사피고인이 된 것이다. 얄궂은 운명이었다.

 2019년 12월 31일 서울중앙지검 기소 후 변호인단은 입장문을 배포했다.

 

 "오늘 서울중앙지검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공직자윤리법 위반, 형법상 위계공무집행방애 및 업무방해, 뇌물수수, 증거은닉 및 위조 교사 등으로 기소했습니다.

 법무부장관 지명 이후 검찰이 조 전 장관을 최종 목표로 정해놓고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총력을 기울여 벌인 수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초라한 결과입니다.

 이번 기소는 검찰의 상상과 허구에 기초한 정치적 기소입니다. 기소내용도 검찰이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 끝에 어떻게 해서든 조 전 장관을 피고인으로 세우겠다는 억지기소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입시비리, 사모펀드 관련한 검찰의 기소내용은 조 전 장관이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기소내용을 모두 알고 의논하면서 도와주었다는 추측과 의심에 기초한 것입니다. 조 전 장관이 증거은닉과 위조를 교사했다는 혐의와 조 전 장관의 딸이 받은 부산대 의전원 장학금이 뇌물이라는 기소내용도 검찰의 상상일 뿐입니다.

 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수사내용이나 오늘 기소된 내용은 모두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비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하나하나 반박하고 조 전 장관의 무죄를 밝혀나가겠습니다.

 끝으로 법치국가에서 범죄혐의에 대한 실체적인 진실과 유무죄는 재판정에 합법적인 증거들이 모두 제출되고, 검사와 피고인이 대등한 지위에서 공방을 벌인 후, 재판부의 판결을 통해서 비로소 확정됩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조 전 장관과 가족들은 수사과정에서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사실과 추측이 무차별적으로 보도됨으로써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앞으로는 근거 없는 추측성 기사를 자제해주실 것을 다시 한번 당부드립니다.

 2020년 1월 17일 서울동부지검 기소 후 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작년 12월 31일 서울중앙지검에 이어, 오늘은 서울동부지검이 저를 기소했습니다. 법무부장관 지명 이후 시작된, 저를 최종 표적으로 하는 가족 전체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적 총력수사가 마무리된 것입니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더라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민정수석의 지위를 활용해 이익을 챙긴 '권력형 비리' 혐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족 관련 문제에서 '공정의 가치'가 철두철미 구현되지 못한 점이 확인되었던 바, 도덕적 책임을 통감합니다. 사후적으로 볼 때, 민정수석으로서 정무적 판단에 미흡함도 있었습니다. 이유 불문하고, 전직 민정수석이자 법무부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고, 국정 운영에 부담을 초래한 점을 자성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법적 책임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사실과 법리에 따라 철저히 다투고자 합니다. 장관 재직 시 검찰수사에 대해 어떠한 개입도 어떠한 항변도 하지 않고 묵묵히 감수했지만, 이제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신을 방어할 것입니다.

 '결론을 정해둔 수사'에 맞서 전면적으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혐의에 대해 검찰은 저를 피고인으로 만들어놓았지만, 법정에서 하나하나 반박하겠습니다. 감찰 종료 후 보고를 받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조치를 결정한 것이 직권남용이라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그 허구성을 밝힐 것입니다.

 학자/민정수석/법무부장관으로서 염원하고 추진했던 권력 기관 개혁이 차례차례 성사되고 있기에 기쁘지만, 이를 피고인으로 지켜보아야 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날벼락처럼 들이닥친 비운이지만, 지치지 않고 싸우겠습니다. 송구하고 삼사합니다."

 

 사실 검찰은 2019년 3월 김은경 환경부장관에 대해서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후 2020년 12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두 장관에 대한 영장은 모두 기각되었다. 내 사건의 경우 1심 재판부가 유재ㅜ 사건에 대한 공판을 마무리한 상태다.

 제8장에서 보겠지만, 문재인 정부의 세 장관에 대한 검찰의 태도를 종합하면, 정권교체 후 산하기관 인사에 대한 장관이 개입(김은경), 감찰 종료 후 조치에 대한 민정수석의 재량 판단(조국), 원전 폐쇄에 대한 장관의 정책 판단(백운규) 등에 대해 형사처벌의 칼을 들이대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개입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 검찰에 의한 '직권남용죄의 남용'이었다.

 피고인이 되어 재판을 준비하고 재판에 출석하는 일은 힘들었다. 오래전 일이라 나에게 유리한 증거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고, 무슨 이유인지 검찰에 가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 사람들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걱정도 되었고 화도 났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금언을 되새기며 결의를 다진다.

 

 "날 수 없다면, 뛰어라, 뛸 수 없다면, 걸어라. 걸을 수 없다면, 기어라.

 모든 수단을 다 써서 계속 전진하라."

 

 현재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재판은 진행 중이다. 정경심 교수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2심이 진행 중이다. 나도 피고인이라는 굴레를 쓰고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장관직을 끝까지 고사하고 학교로 돌아갔어야 했다는 후회를 여러 번 한다. 

 그러나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대법원 판결까지 얼마가 걸릴 지 모르지만, 사실과 법리에 기초해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철저히 다툴 것이다. 나의 정무적/도덕적 불찰과 실수는 사과할 것이다.

 

p335. 계속된 문재인 정부 타격 수사

 울산 사건 외에 몇 가지 사건을 더 보자.

 첫째. '라임/옵티머스 사건'이 있다. 검찰은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회유해,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통해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얻어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김 전 회장은 변호인을 통해 "A 변호사가 여당 정치인들과 강기정 수석을 잡아주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보고한 후 보석으로 재판받게 해주겠다고 말했다"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공개했다.

 강수석은 격분해 이러한 검찰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결국 검찰은 강 수석을 기소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표적수사였다. 강 수석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 이건을 중심으로 해서 문 재인 대통령의 권력, 민주당 정부와 한번 싸움을 걸어봐서 잘되면 공수처 문제 이런 것도 무력화가 될 거고 안 돼도 최소한의 손해볼 일은 없지 않느냐(라고 검찰이 생각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강 수석 외에도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권 인사 연루 의혹이 검찰발로 계속 보도되었다. 이 세 사람에 대해서는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째. 김은경 환경부장관 사건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규정했다.

 청와대가 밝혔듯이,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이전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 임원(공공기관장 330명 + 상임감사 90여 명) 대부분이 임기를 마치거나 적법한 사유와 절차로 퇴직했다. 김은경 장관 사건에서 사표를 제출했다는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3명 역시 상당수가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처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운영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2008년 3월, 유인촌 문화부장관은 실명을 거론하면서 노무현 정부에 의해 임명된 산하기관장과 단체장들의 사퇴를 노골적으로 종용했다.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산하기관장들 가운데 이명박 정부와 이념이나 철학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도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임기가 남았다고 해서 끝까지 있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강조했다. 보수언론 역시 사퇴 촉구 사설을 썼다. 유 장관은 한 번도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김은경 장관은 환경부 산하 임원교체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어 법정구속되었으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셋째. '월성 1호 폐쇄 사건'에서 검찰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월성 1호 원전의 경제성을 일부러 낮게 평가하도록 만들고 한국수력원자력에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는 혐의였다. 영장은 기각되었으나, 조만간 불구속기소할 것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온다. 영장 청구 전후 백 장관 외에 당시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연루 의혹이 계속 흘러나와 보도되었다. 검찰수사의 최종 목표는 언제나 청와대였다.

 탈원전정책 또는 에너지전환정책이 세계적 추세이자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으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이를 추진할 의무를 진다는 점, 원전 폐쇄를 결정하는 데는 경제성 외에 안정성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검찰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타격을 주기 위한 수사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출국금지 사건이다.

 제 3장에서 보았지만, 은폐되었던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별장 성 접대 의혹이 다시 불거지고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가 무산되어 결국 유죄판결이 내려진 후, 검찰은 출국금지 절차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이유로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영장이 기각되자 불구속기소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김학의를 알아보고 제 때 출국을 막아낸 담당자를 칭찬해도 모자랄 상황에 처벌이라니, 주객전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검찰은 2021년 4.7 재보궐선거 직전에는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가 청와대의 기획인 양 언론 플레이를 했다. 2019년 3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버닝썬 사건과 김 전 차관의 별장 성 접대 의혹 및 고 장자연 씨 사건등 세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을 두고, 당시 이광철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김 전 차관 사건을 부각해 버닝썬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 행정관의 관여가 전혀 없었음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불법적 음모를 꾸몄다는 낙인을 찍으려는 것이 검찰의 의도임이 분명했다.

 다섯째. 4.7 재보궐 선거가 끝나자 대전고검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한 재수사명령을 내렸다. 김 전 실장이 공정위원장이던 2018년 3월 유선주 전 공정위 국장이 공정위 전원회의 합의 과정이 담긴 녹음기록(파일)이 파기된 것을 이유로 김 전 실장을 고발했다. 대전지검은 "회의 종료 후에 이뤄지는 '합의'는 회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합의 과정의 녹음은 실무자의 업무 편의를 위한 것이라 녹음기록의 필요성이 소멸한 뒤 폐기하라고 지시한 것이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각하했다. 그러나 검찰은 다시 뚜껑을 연 것이다.

 2020년 12월에는 비검찰 출신이기는 하지만, 현직 검사장급 간부가 '검찰 쿠데타론'에 힘을 실었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윤석열 총장 징계 사유 가운데 하나인 '채널A 사건' 감찰 및 수사 방해 의혹과 관련해 법무부 조사를 받으며 다음과 같이 진술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군대에 의한 무력 쿠데타가 아니라 검찰수사를 통한 쿠데타를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윤 총장은 총선에서 야당이 이길 것으로 생각한 듯하고 이 사건은 한동훈 검사장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총장이 같이 한 것이다."

 대검 감찰부장으로서 검찰 내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고 있는 한 부장이 이 정도의 진술을 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p339. 피해자 윤석열?

 보수언론과 야당은 추미애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여권이 윤석열 총장을 감찰하고 징계를 청구하는 등 괴롭혀서 윤 총장이 어쩔 수 없이 정치를 하게 되었다는 논리를 만들어 전파하고 있다. 윤석열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윤 총장이 울산 사건을 위시한 일련의 문재인 정부 공격 수사를 지휘했고, 제3장에서 본 한명숙 총리 관련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과 채널A 사건 등에서 드러난 검사 비리에 대한 감찰을 철저하게 막았다는 점은 조명하지 않는다.

 윤 총장은 '조국 수사' 착수 시점에는 '권력형 비리'라고 생각하고 수사를 진행했을 것이라 믿는다.[조국 장관이 말을 곱게 한 것일 뿐이라고 믿는다. 윤 석열은 처음부터 검찰개혁이라는 기치를 들고 법무부장관에 오는 조국을 찍어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을 뿐이다] 압수수색 후에는 '조국펀드설'이 근거 없음을 알았지만, 일수불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조직의 자존심은 물론 윤 총장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검찰과 검찰총장은 '무오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확전에 확전을 거듭했고, 조국 수사를 넘어 문재인 정부를 총공격하는 수사를 벌였다. 수사를 통해 "택군(澤君)의 시간"을 연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진영이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윤석열은 '공격자'였다. 윤 총장은 수구보수진영의 환호와 구애를 받았고, 차츰차츰 검찰총장을 넘어 '미래 권력'으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했다고 추론한다. '택군'을 넘어 '군주'가 되기로 한 것이다. 박용현 <한겨레> 전 편집장의 비유를 빌리면, 윤 총장은 스포츠 시즌 중 경쟁 팀 사이에 판정 시비로 다툼이 생기자 한 팀을 위한 편파 판정을 하고는 그 팀의 감독으로 변신했다. 

 일본 '록히드 뇌물 사건' 주임검사로 일본 전후 28대 검사총장을 역임한 요시나가 유스케는 경고한 바 있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한다면 검찰 파쇼가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2019년 하반기 이후 한국 검찰은 윤석열 총장의 지휘 아래 이러한 경고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다. 검/언/정 카르텔을 활용하고 선택적 정의를 집행하면서 검찰은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쥐락펴락을 반복했다.

 한국 검찰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선출된 권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심지어 교체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고, 실천해왔다. 검찰은 '곧 죽을 권력'에 대해서 결정적 일격을 가하고 '새로운 권력'을 세우는 데 일조해 조직의 이익을 보전하는 수사와 기소를 벌여왔다. '곧 죽을 권력'이라고 판단하면, '죽여야 할 권력'이 되는 법이다. 이 과정에서 검/언/정 카르텔이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했다.

 

p341.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사 권력

다른 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검찰,법조 쿠데타'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타리 <위기의 민주주의>는 브라질에서 룰라 대통령이 어떻게 구속되는지, 후임자 지우마 대통령이 어떻게 탄핵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결정적 역할을 한 세르지우 모루 연방 판사(한국의 검사와 유사한 역할)는 '세차(洗車) 작전'으로 불린 수사를 했다. 이 수사와 기소로 룰라, 지우마 두 대통령이 이끌던 '노동당' 정부가 무너지고, 극우파 정치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했으며 모루는 법무부장관으로 발탁된다. 이후 모루는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불화로 사임했고, 현재는 2022년 대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고려대 임혁백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브라질 민주주의 위기의 특징은 검찰과 사법부의 법 기술자들이 법적 수단과 장치를 동원해, 보이지도 않고 의식할 수도 없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야금야금 민주적 제도와 규범을 침식해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는 사법 쿠데타라는 것이다. 브라질의 신흥 민주주의는 과거처럼 군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는 것이 아니라, 사법권력과 법률지식을 동원한 검찰과 언론에 의해 소리 없이 스텔스적인 방식으로 전복되고 있다."

 룰라는 실형 선고를 받고 복역하다가 대법원 심리에 들어가면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 '세차 작전'에서 모루와 연방검사들이 룰라 기소에 앞서 텔레그램을 이용한 비밀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2021년 3월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모루의 재판 진행과 판결이 부당하고 수사과정에서 수집한 룰라 관련 증거를 재판에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렸고, 4월 15일 연방대법원 전원회의는 룰라에 대한 실형 선고 무효 결정을 다수 의견으로 재확인했다.

 한편, <한겨레> 정의길 선임기자는 이집트에서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무바라크 체재에서 자리잡은 검사와 판사들의 집요한 공격에 의해 무너지고 결국 옥사하게 된 상황을 개탄하면서, "조국 사태와 무르시의 죽음에서 기시감"을 느낀다고 했다. 정 기자는 경고했다.

 "장관 청문회 직전에 그 후보자와 가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펼치고, 거의 사돈의 팔촌까지 털어서 별건 혐의를 찾았다. 검찰개혁을 초래하게 된 검찰의 행태에 대해서는 한마디 반성의 목소리가 없고, 검찰개혁은 검찰 독립성을 해친다는 집단적임 목소리만 들린다. 급기야, 검찰 수장이 자신의 직위를 놓고 행정 소송을 내면서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서슴없이 연출한다. 이 모두가 검찰의 합법적 권한이기는 하다. 또한, 트럼프 세력과 이집트 '법치 세력'들이 보여준 자의적이고 과도한 법적 권한과 수단의 행사이기도 하다. 국가 형벌권에 대한 권한을 자의적이고 과도하게 행사하는 집단의 행태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장기간에 걸쳐 진행하는 연성 쿠데타로 귀결될 것이다."

 2019년 하반기 이후 윤석열 검찰이 진행한 수사를 검찰 쿠데타 또는 검란이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검찰이 문재인 정부를 타격하는 수사를 집요하게 벌였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브라질이나 이집트의 사례 이외에, 윤석열 총장의 모습에서 미국 FBI 초대국장 존 에드가 후버의 모습을 보았다. 후버는 48년 동안 FBI 국장 자리에 있으면서 트루먼, 닉슨, 케네디 등 대통령을 협박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대통령도 후버의 눈치를 봐야 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국외 첩보를 전담하는 CIA를 창설한 것도 후버의 막강한 권력을 막기 위함이었다.

 후버는 선출되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그는 수사권 남용을 넘어 허위정보를 언론에 흘려 무고한 사람들을 탄압했다. 사회주의 성향의 유명 여배우 진 세버그가 사산한 아이의 생부가 흑인 좌파단체 '블랙 팬더당' 당원이라는 허위정보를 유포해 그녀를 자살하게 만든 사건은 대표적인 악례다(그녀는 아이의 장례식장에 몰려든 기자들에게 관 뚜껑을 열어 죽은 아이의 피부색이 흰색임을 공개해야 했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인데 검찰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는 사람들에게 후버의 예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대의민주주의 바깥에 있는 수사권력은 언제든지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p353

 권위주의 체제 종식 이후 군부,국정원,기무사,경찰 등 권력 기관은 자신들의 과오로 인해 '외과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개혁의 무풍지대가 되었다. 오히려 검찰은 독접하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선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막강한 '살아 있는 권력'이 되었다. 검찰의 권한을 건드리지 않는 집권 세력에게는 적극 협조하고, 검찰 출신 법무부장관이나 민정수석의 수사지휘는 군소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집권세력에 대해서는 '범정'(개검 '수사정보기획관실'의 약칭) 캐비닛을 열어 집요한 수사로 흠집을 내고, 집단으로 저항했다. 영화 <더킹>에서 '전략수사1부' 검사들이 사건 파일로 가득 찬 방에서 수사할 사건을 고르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검찰권력 관련 사안에서는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기소가 암묵적 행동준칙이었다.

 윤석열 총장은 검찰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일어나자, 2020년 11월 이후 '국민의 검찰론'을 꺼냈다. '국민의 검찰론'의 요체는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권한을 수권했기에 국민에게만 '직접'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검찰이 형식적으로 대통령 산하 행정부의 일부지만, 검찰은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이 통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 또는 받을 필요가 없다는 함의가 숨어 있다. '왕권신수설' 느낌을 주는 '검권민수설'이다.

 이는 극히 위험한 반헌법적 논리다. 대한민국 헌법체제에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직접' 받은 사람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밖에 없다. 그 외의 사람은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민주적 정당성'이 없다. 검찰권은 애초에 국민으로부터 직접 부여된 적이 없다. 국민은 검찰총장을 선거로 뽑은 적이 없다. 그는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검찰총장의 정당성은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에서 파생했을 뿐이다. 따라서 검찰총장은 국민에게 책임지기 이전에,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에게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

 

p364

 2016년경 나는 <한겨레> 김의겸 기자(현 열린민주당 의원)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기자가 나에게 "정권교체가 안 되면 어쩌지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면 15년 연속 보수집권이 되는 건데, 세상과 등지고 책 읽고 논문 쓰면서 살아야지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 기자도 "나도 정치부 기자는 그만두고 문화부로 가야겠네요"라고 말했다. 이에 나는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양갔을 때 왜 물고기만 연구하며 <자산어보>를 썼는지 이해가 간다"라고 덧붙였다.

 이 역시 자기 예언이었을까. 정권교체를 이루고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직을 수행했지만, 2019년 하반기 이후 나는 정약전의 처지가 되었고 그 마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김의겸 기자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근무하던 중 전세금, 부인 퇴직금, 은행대출 등을 모아 흑석동 건물을 샀다가 '부동산투기' 공격을 받고 사퇴했다. 그는 이 건물을 팔고 세금을 낸 후 남은 3억 7,000만 원을 기부했지만, 부동산투기 낙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흑석동 건물 앞에서 김 대변인을 규탄하던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 박덕흠 의원이 있었다. 박 의원은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와 상가, 창고, 임야 등을 포함해 총 289억 원(신고가액)의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그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피감기관으로부터 수천억 원대 공사를 수주하고 엄청난 이익을 얻은 정황이 드러나자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그렇지만 박 의원에 대한 언론의 조명과 비판은 미미했고, 김 대변인을 향한 '선택적 분노'는 여전했다. 김진애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김 대변인은 의원직을 승계하게 되어 '유배'가 풀렸다. 시련을 이겨낸 김의겸 의원의 활약을 조용히 기원한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종을 냈던 그가 의정활동에서도 특종을 내리라 믿는다.

 2021년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되어 아들과 보러 갔다가, 영화가 끝나자 아들이 말했다. "우리 집 이야기 같네요." '멸문지화' 그리고 이를 극복해가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영화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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