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손병관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정리한 책. 이 사안의 심각성과 사회적 파장, 페미니즘의 성역화 등으로 인해 기사화되지 못한 내용들을 포함해서 이 사건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자료들을 폭넓게 제시한다.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어느 정도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준다.

 

이 책을 읽고 난 감상은, 참 더럽게 엮였다라는 생각이다. 박원순도 그렇고 잔디라는 가명의 여성분도 그렇고.

이 세상은 선의만으로 살아가기엔 참 어려운 세상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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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

 많은 사람이 서울시장 자리를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생각하지만, 박 시장이 처음부터 대선을 의식했던 것은 아니다. 

 취임 6개월 시점(2012년 4월 26일)에 한 기자가 "이명박 시장 하면 청계천이 떠오르는데, 박 시장은 임기 안에 꼭 이루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그는 "아무것도 안 한 시장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박 시장은 2013년 3월 14일 페이스북에 당시 발언의 취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전의 시장들은 임기 중에 뭔가 뚜렷한 사업으로 인상을 남겨서 재선이나 더 큰 선거에 나가고자 했으며, 그러다 보니 무리하게 되어 많은 문제점들이 생기곤 했다. 시민의 삶은 경제부터 문화까지 너무나 다양한 분야가 있다. 시장이 어느 것 하나 소홀하면 안 되는 것인데 한두 개의 업무만 집중하다 보니 다른 분야는 방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임기 내내 "한 게 없다"는 비판에 시달렸지만, 박 시장의 이런 안목이 임기 마지막 해에 빛을 발하기도 했다.

 박원순은 시민 처지에서 공공의료 문제를 들여다본 최초의 서울시장이었다. 시민들에게 각인될 '랜드마크'에 집착한 시장이라면 공공의료라는 무형의 가치에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는 공공의료 인프라 차원에서 시립병원 12곳을 운영하는데, 매년 1,000억 원 가까운 세금이 들어간다. 특히 서울의료원에 마련된 격리음압병상은 서울시의회가 열릴 때마다 '혈세 낭비', '활용도가 떨어진다'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박 시장은 그런 지적이 나올 때마다 "가난한 사람은 어디서 치료받으란 말이냐", "시립병원들이 적자지만, 시민이 낸 세금을 시민에게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그의 선견지명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서을의 코로나 사태 첫 3개월(1월23일~4월24일) 동안 서울 확진자의 71%(628명 중 446명)를 시립병원 4곳에서 치료했다. 서울의 공공의료 인프라가 받쳐준 덕에 '빅4' 대형병원들도 코로나19 병상 확보의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일상 진료를 지속할 수 있었다.

 

 

p37

 기자는 2017년 12월 8일 박 시장을 인터뷰했다. 그는 3선 도전 질문에 "이미 다 알고 있다면서요?"라며 허허 웃었다.

 박 시장이 마음을 굳히자 시장실 참모들도 "시장에게 여의도 정치가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례는 아니다. 박 시장에게는 '박원순의 길이 있는 것 아니냐"며 3선 도전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박 시장은 이듬해 5월 10일 상반기 직원 조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심경을 직접 밝혔다.

 "저도 사실 시장을 한 번 더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서울시장을 두 번 하나 세 번 하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죠.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렇게(3선 불출마) 권했습니다. 그런데, 출마를 고민하게 된 것은 우리가 시작했던 많은 비전과 실험들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전국화되고 있는데 이런 모멘텀을 이어아야 하지 않나? 비록 나에게는 정치적으로 도움이 안 되더라도 적어도 시민들이 원한다면 (3선 시정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또 있었다. 서울시 산하기관, 유관단체에 터 잡은 일부 참모들은 그가 서울시청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이로 인한 무언의 압박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적인 박원순계 박홍근 의원(서울 중랑을)의 말이다.

 "2014년 지방선거 때 박 시장을 따로 만나 대선 나가면 돕겠다고 말씀드린 사이다. 가능성 크지 않은 줄 알면서도 2017년 대선도 도왔고, 2018년 지방선거에도 3선은 나가지 말라고 끝까지 고집했다. 처음에는 찬반 의견 팽팽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 시장 마음이 3선으로 기울더라. 박 시장이 내게 전화로 최종 결심을 밝혔을 때 내가 '시장님, 돕기는 하겠지만 대권에서 멀어지신 겁니다'라고 답한 기억이 난다. 지금 일을 생각하면, 내가 그때 확실히 말렸어야 한다는 후회가 든다."

 

p43

 2020년 7월 10일 새벽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부고 기사를 마감한 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점심 무렵 깨어나 보니 이미 많은 일이 벌어진 상태였다. 인터넷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전문'이라는 출처 불명의 글이 퍼지고 있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진위가 불분명한 루머가 그럴듯한 가공이 입혀지는 가짜뉴스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문제의 글은 서울시청과 시장실 내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작품치고는 너무 정교했다. 훗날 이 글은 피해자가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작성한 '1차 진술서'라는 것이 밝혀졌다.

 

p44

 박 시장이 2022년 대선 도전을 염두에 두고 기용한 '마지막 비서 실장' 고한석이었다. 재직 기간은 100여 일 남짓에 불과했지만 나와는 뭔가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그는 안희정이 충남지사 시절 보수성향의 재향군인회를 우군으로 삼아 충청권의 맹주로 올라선 것에 착안해 박 시장의 역사관을 바꾸 보려고 했다. 내가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공과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자 고 실장이 "그걸 설득시키기가 참으로 어렵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민주당 사람들에게는 그 부분이 어렵더라. 중국은 마오쩌둥이고, 우리나라는 박정희다. 이른바 민주화 세대가 박정희의 공을 거의 인정 안 하려고 한다. 그 점에서는 안희정이 탁월한 지점이 있었던 거다. 박 시장과도 그 얘기를 오래 했지만, 정책보다 더 어려운 게 역사관을 바꾸는 거였다. 어느 정도 필요성을 수윽하면서도 나아가지 못했다. 자기 입으로 공론화할 경우에 닥칠 파장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도 최근 들어서 시장이 뭔가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p45

 피해자에 대해 "내 입으로 말해줄 수는 없다"고 버티던 S가 병원담길을 걸어가면서 슬쩍 운을 뗐다. "시장실 데스크 앞에 있던 00이 기억 안 나나? 시장실 자주 왔으면 아마 기억날 텐데."

 그 순간 2018년 지방선거가 끝난 6월 27일 시장을 접견할 때 집무실을 드나들던 비서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무렵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계 수사관들은 박원순 사건의 참고인으로 불려온 시장실 전/현직 직원들 앞에서 그 비서를 '김잔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잔디에 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p46. '2차 가해' 논란 속에서

 7월 13일은 박 시장의 시신이 서울을 떠나 경남 창녕의 선영에 안장되는 날이었다.

 그날 오전 10시경 박 시장의 유해가 서울추모공원에 도착했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과 허영 의원, 민병덕 의원, 문석진 서대문구창과 김주명, 오성규 전 서울시 비서실장 등 박 시장과 인연이 깊었던 6명이 화장로까지 운구를 맡았다.

 그와 동시에 일부 여성단체들이 서울 은평구 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예고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의 마지막 길을 전송하려고 모인 조문객들의 얼굴이 하나둘 굳어갔다.

 몇몇 사람이 이때 피해자와 김재련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11시 40분 경 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변호사가 전화를 받지 않자 "통화를 하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11시 44분에는 비서실장을 지낸 김주명이 참지 못하고 피해자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장례 둘째 나에도 김주명은 피해자에게 "필요할 때 힘이 돼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피해자도 "저를 나무라시고 원망하실 줄 알았는데 너무 죄송하다"는 답신을 보낸 상황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성폭력상담소는 3일 후 발표한 공동 입장문에서 "서울시 전/현직 직원 중 7월 8일 이후 피해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이들이 있다"며 "너를 지지한다면서 정치적 진영론에,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고 '조언'하고 힘들어겠다고 위로하며 기자회견은 아닌 것 같다고 만류했다"라고 폭로했다.

 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김주명이었다. 사건 발생 석 달이 지난 후 만난 기자에게 그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여줬다. 장문의 메시지는 시장의 죽음 이후 피해자의 심경을 담고 있다.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내용이라 전문을 공개한다.

 

 김주명 : 네가 얼마나 큰 상처와 아픔을 겪었는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 무능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네가 나를 신뢰한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를 비난하는 소리 조금도 신경 쓰지 마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네 걱정을 하고 있다. 너를 이용하려는 부추김에도 흔들리지 말아라. 네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선택을 하렴. 마음의 소리를 따르고 기도의 응답을 구하렴.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진영 싸움에 휩쓸려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유불리를 따라 너를 이용할 뿐이다. 네 삶이 끝없는 싸움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고통이 승화될 길은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이다.

 특히 오늘 시장님을 보내는 날인데 법률대리인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그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오늘 시장님을 떠나보래고 한 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잔디 : 실장님.. 저는 정치도 모르고 진영도 몰라요. 최근에 있었던 일을 아시겠지만, 그 일로 제 트라우마가 폭발했던 것은 맞아요. 실장님께서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시장실에서 이 악물로 참으며 웃으며 지냈던 시간을 누군가 손가락질하는 것이나 저를 살인자 취급하는 사람들 때문에 충동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여전히 시장님의 작고가 저의 결정과 무관하길 바라고, 혹여 관계가 있더라도 무책임하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었어요.

 저희 가족은 시장님의 유서 중 '모두'에 저와 제 가족이 포함된다고 믿으려고 해요. 그렇다면 과연 시장님께서 이 일을 묻어두려고 하셨을까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유서에 제 이름을 남기지 안흔 것조차, 저를 위한 마음이었다고 생각하시는 선한 분이세요. 그런 가족들이 저 때문에 힘들어하잖아요. 유명하고 대단하신 시장님과 그분의 가족들, 지인들만 명예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보잘것 없는 저희 자고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어요.

 저는 어떠한 계획으로 증거를 모은 것도 아니었어요. 참아 내다 힘들 때 겨우 주변에 작은 목소리 한 번씩 내던 거였어요.

 저는 시장님께서 혹여 저의 고소 사실로 그러한 선택을 하셨다고 하더라도 지금 저의 선택을 지지하리라 믿어요. 어쩌면 시장님게서 어디엔가 살아계시고 북녘으로 넘어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해요.

 이 일을 시장님과 저 둘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우리 모두는 미숙했어요. 그걸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 모두처럼 또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절대로 지금도 그때에도 시장님을 해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악의가 없었어요. 저는 저를 지키려고 한 거였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시장님을 추모하며 두 가지 문구가 떠오르더라고요. 정의가 강물처럼,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시장님을 애도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장님 죄송해요. 기자회견 이후에도 저를 만나고 싶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주명 : 어떤 가족도 보잘것없는 가족은 없어. 가족의 소중함. 너를 보면 느낀 적이 많지. 모든 걸 덮자는 것도 아니야. 다만 오늘 하루만 피하면 안 될까?

 잔디 : 그 일정은 제가 정한 것이 아니라 어려울 것 같아요.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께서도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염려하셔서 오늘로 정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죄송해요.. ㅠㅠ

(개인적감상 : 잔디라는 분의 글에서 보면 심리적으로 거의 패닉에 가까운 상태에서 쓴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논리는 거의 찾아볼 길 없고 중언부언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보다는 주변에 떠넘기거나 의지하는 그런 글이다. 가련한 느낌이 든다)

 

 김주명은 훗날 경찰 조사에서 "그날은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이었다. 진상규명이든 뭐든 (기자회견은) 그날 하루만 피하면 되다고 생각했다" 고 회고했다. (개인감상 : 당연한 말이다. 굳이 발인날 기자회견을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박원순 나쁜놈 정도의 선빵 효과? 정말 진상을 밝히고 싶으면 피고인이 죽은 마당에 그들이 주장하는 확실한 증거를 제출하고 정당한 절차로 재판을 진행하면 될 일이다. 그런 합법적 절차를 마다하고 주요 피의자가 죽은 마당에 굳이 여론전으로 가겠다는 건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참모 X도 "설령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더라도 오늘 하루는 마음껏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오후 2시 기자회견은 예정대로 열렸다. 지금까지도 온 사회를 흔들어놓은 쟁점들이 모두 이 자리에서 배태됐다.

 "피해자는 부서 변경을 요청했으나 시장이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박 전 시장은 본인의 속옷 차림 사진을 전송하고, 비밀 텔레그램 방을 개설할 것을 요구하고, 음란한 문자를 발송하는 등 점점 수위는 심각해졌고, 심지어 부서 변동이 이뤄진 이후에도 개인적 연락이 지속됐다."(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피해자는 박 시장을 통신매체이용 음란, 업무상위력에 의한 추행 그리고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개인감상 : 이후에 난 어떤 매체에서도 이때 주장한 음란한 문자에 대해 증거를 제시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p59

 여성단체들의 요구사항 중 눈에 띄는 것이 더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언론에 피해자에 대한 일방적인 코멘트를 중단하고, 언론 인터뷰 시 전/현직 직급과 부서를 밝히라."

 나는 이것을 언론과 취재원 양쪽에 대한 압박으로 받아들였다. 이 또한 나중에 밝히겠지만, 내가 만난 취재원 중에는 익명을 전제로 시장실 시절 얘기를 해준 경우가 많았다.

 기사 신뢰성을 위해 취재원을 밝히는 것이 합당하지만,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취재원들이 볼 피해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신원 공개'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피해자 측이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신원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런 식의 압박은 동시다발로 밀려왔고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서실장 반응들을 담은 기사 부제 <"일 잘하고 밝은 친구" 증언도>는 나중에 수정됐다.

 비서실장들은 모두 피해자의 업무 능력 자체는 높이 평가했다. 피해자의 기자회견으로 자신들의 책임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원인 제공자에 대한 호평이 이례적이어서 기사에 "일 잘하고 밝았다",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비셔였고 시장실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존재"라는 평을 넣었다.

 그런데 노조 공보위를 중심으로 일부 후배 기자들이 "피해자의 성격을 굳이 묘사할 필요가 있냐"는 문제 제기를 편집국장에서 했다고 한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추론해보자면 ▲ 피해자의 성격을 묘사하는 것을 '2차 가해'의 범주에 들어간 것으로 이해하거나 ▲ 비서실장들의 호평 이면에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했던 게 아닌가 싶다.

 또한, 공보위는 7월 16일 "사건의 성격, 과거 보도 사례 등을 살펴 볼 때 이번 사건 역시 '피해자'라고 호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며 상근기자의 취재, 편집 과정에서는 '피해자' 용어를 사용해달라고 권고했다.

 공보위 권고가 강제성은 없었지만 내 입장도 명확했다.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가해자가 인정하거나 또는 법정에서 확정되지 않는 한 진실을 다투는 사람은 '고소인'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p71. 시장실 사람들, 말문을 열다

 여성단체들의 보이콧으로 서울시 차원의 진상조사는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7월 22일 오후 "민관 합동조사단 구성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통해 조사를 의뢰할 경우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변호사와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7월 28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인권위 직권 조사를 촉구하는 '보랏빛 우산 퍼포먼스'를 벌이며 한껏 기세를 올렸다.

 서울시 발표 직전 7월 22일 오전 11시에는 피해자 지원단체의 2차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의 핵심은 피해자가 시장으로부터 당한 성폭력 피해를 알리며 도움을 구한 서울시 직원이 20명이라는 것.

 "(피해자가) 정확하게 얼마나 자세히 말했냐"는 질문에 김재련 변화사는 "피해자가 (2019년) 부서 이동 전에 17명, 이동 후에 3명에게 말했다. 이 중에는 피해자보다 높은 직급,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책임 있는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인사담당자가 포함됐다"고 부연 설명했다.

 송란희 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박원순의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권력에 의해 은폐, 비호, 지속된 조직적 범죄"라고 규정했다.

  이 2차 기자회견으로 박원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종전까지는 박 시장의 은밀한 사생활이거나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개인의 일탈로 치부될 수 있었는데, 직원들의 피해 호소 묵살은 조직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 무렵 취재를 거부하거나 '노 코멘트'로 일관하던 시장실 일부 직원들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사태 초기 시장실 직원들은 '수인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피해자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이들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피해자 주장에 반신반의하면서도 혹시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들은 극도록 말을 아꼈다. 마치 공범 혐의를 받고 별도로 격리된 두 죄수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대처가 현명한 선택인지 몰라서 번민하는 상황이었다.

 서울시장실에서 경력을 쌓거나 박 시장의 정치적 동지를 자처했던 '박원순계' 의원 10명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기동민, 김원이, 남인순, 민병덕, 박홍근, 박상혁, 윤준병, 천준호, 최종윤, 허영이 그들이다.

 '윤준병 사태'는 이들을 더더욱 얼어붙게 했다. 윤준병 의원은 서울시에서만 3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행정1부시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여러 가지 사업들을 의욕적으로 벌이려는 박 시장에게 '늘공' 입장에서 행정적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설명해주는 게 그의 일이었다. 생전 박 시장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윤준병 말대로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라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윤준병 의원은 2020년 7월 13일 오후 박 시장의 유해를 고향에 묻고 오면서 피해자의 기자회견 뉴스를 접했다.

 윤준병은 페이스북에 "행정1부시장으로 근무하면서 피해자를 보아왔고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었다. 침실,속옷 등 언어의 상징조작에 의해 오해 가능성에 대처하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썼다.

 이 글을 놓고 "피해자 말을 의심하는 거냐"는 비판 기사들이 쏟아졌다. 2020년 7월 16일 가로세로연구소의 강용석 변호사는 역대 비서실장들을 추행 방조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로 고발하면서 윤 의원도 끼워 넣었다.

 그렇게 피해자의 '피해 호소 20명' 주장이 나오면서 시장실 사람들은 '성추행 공범' 이미지를 덮어쓰게 됐고, 이들은 더더욱 입단속을 경계하게 됐다. 나의 취재가 더욱 어려워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피해자 지목으로 경찰서를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자 이들 사이에서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피해자가 해도 너무 한다"는 비판론이 부상했다.

 시장실에서 1년 6개월간 근무했던 Y는 박 시장이 사망한 직후부터 피해자를 지지하는 쪽이었다. 그가 그로부터 다섯 달이 지난 뒤 해준 얘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세연 강용석의 고발은 없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일이 많은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12월 26일 '2차 가해 반대' 공동성명 건으로 잔디와 통화할 일 있었는데, 잔디가 하는 말이 '동료들에게 법적인 책미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 기억이 100% 정확할 수 없지 않나? 피해자 말에도 사실이 아닌 게 끼어이쏙, 동료들 말도 마찬가지일 거다. 만약 경찰 조사가 아니라 사적으로 만나서 얘기했다면 동료들도 '네 사정이 그런 줄 몰랐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경찰을 매개체로 말이 오가면서 양쪽 모두 전면전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됐다"

 

기자 : 가세연 고발이 피해자의 뜻과는 무관했다고 보는 거냐?

Y : 그렇다.

기자 : 가세연 고발에 이어 김재련 변호사가 '피해 호소인 20명'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그걸 피해자의 의지로 받아들였는데?

Y: 그것도 사실이다. 다만, 돌이켜보면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그렇게 안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 없었을 거다. 그런면에서 비극적이라고 본다.

 

 어쨌든 그동안 알고 지내던 시장실 사람들도 기자의 전화를 피하는 등 이 시기 취재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p76

 그래서 나는 일반직과 별정직을 가리지 않고 '시장실 직원 20명'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결과물이 7월 31일 저녁에 출고된 <서울시청 6층 사람들 "성추행 방조? 난 들은 적 없다">이다. 일단 기사 내용을 전재하겠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직권조사를 시작한 가운데, 성추행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조사 또는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서울시청 '6층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방조 의혹에 대해 피해자의 호소를 들은 적 없다고 말했다. 관련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고 유족 측의 요청으로 박 전 시장의 휴대폰 포렌식도 중단된 상태에서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라 진상규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오마이뉴스>는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이들 입장을 듣기 위해 피해자가 시장실에 근무하기 시작한 2015년 7월부터 올해까지 5년 동안 서울시청 6층에서 근무한 공무원 20명과 접촉했다. 6층은 박 전 시장의 업무를 돕는 시장실, 행정부시장실, 정무부시장실, 정무수석실, 소통전략실, 정책보좌관실, 젠더특보실, 공보특보실 등이 모여있다.

 김재련 변호사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은 13일 기자회견 이후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적 괴롭힘, 인사 고충을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보 조치를 취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6층 사람들'의 추행 방조 혐의를 주장해왔다. 성폭력상담소는 16일 보도자료에서 "2016년 1월부터 매 반기별 인사이동을 요청함. 번번이 좌절된 끝에 2019년 7월 근무지 이동 후, 2020년 2월 다시 비서 업무 요청이 왔다"고 전했고, 김 변호사는 지난 22일 '2차 기자회견'에서 '피해자가 기억하는 내용만 해도 부서 이동 전에 17명, 이동 후에 3명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6층에서 근무하는 시장 보좌진들은 40~50명에 이른다.

<오마이뉴스>가 접촉했던 20명이 피해자 측이 지목한 20명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피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했거나 시장 결재 때문에 수시로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관계로, 최소한 참고인 조사가 유력한 인물들이다. 일부는 이미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박 전 시장이 기용한 별정직과 공채 출신의 일반직이 모두 포함돼 있다.

 사건 초기에는 취재에 잘 응하지 않던 이들은 하나둘씩 자신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피해자가 박 전 시장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그로부터 인사이동을 요청하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조사 또는 수사 국면에서는 엇갈리는 진술을 넘어서는 증거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취재에 응한 이들의 핵심 발언을 추려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김주명(2017년 3월~2018년 7월 비서실장)

"고소인이 불편해하는 낌새를 못 느꼈고, 심지어 (2019년 7월 시장실을) 그만두는 순간까지도 몰랐다."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아느냐?

"고소인과는 올해 3월까지도 통화를 하는 사이였다. 그(고소인)는 시장실 최장기 근무자였고, 내가 아는 '최고의 비서'였다. 이 정도만 얘기하겠다."

 

△ 오성규(2018년 7월~2020년 4월 비서실장)

"비서에게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 비서실의 최고책임자인 나 같은 사람에게 직접 얘기를 했겠냐. 2019년 11월 14일 안부를 묻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주고받은 이후 내가 고소인에게 연락을 한 적도, 고소인이 내게 연락을 한 적도 없다. 지난 2월 시장실 데스크 여비서 2명을 순차적으로 바꿔야 할 상황이 발생했지만, 그때도 내가 고소인을 찾을 일은 없었다.

△ 박 전 시장의 핵심 참모 A씨(남)

"하루 한두 번은 시장실에 들어갔는데, 지금 같은 얘기가 나올 줄을 까맣게 몰랐다. 고소인이 얼굴을 찌푸리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느낌은 없었다."

△ 고소인의 직속 상관 B씨(남)

"고소인이 얘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 사실을 몰랐다 고소인이 근무하는 동안 데스크에서 함께 일했던 여비서 2명은 계속 바뀌었다. 당사자가 요청하면 바꿔주는데 피해자는 공식적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

- 혹시 상사가 남자라서, 어려워서 얘기를 못 한 건 아닌가.

"다른 직원들은 나가겠다고 해서 바꿔줬는데, 왜 그 직원만 얘기를 안 했을까? 그 친구로부터 요청받은 게 없었다.

△ 별정직 공무원 C씨(시장실 떠난 후에도 피해자와 가끔 연락하고 만남)

"고소인이 박 시장과의 관계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한 적이 없다. 반대로 내 앞에서 자랑한 기억은 난다."

△ 일반직 공무원 D씨

"워낙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니 박 전 시장이 고소인을 편하게 생각했던 것은 맞다. 고소인도 근무 기간에 서울시장의 비서로 일한다는 자긍심을 숨기지 않았다. 데스크는 9급이나 8급이 주로 맡아왔는데 7급으로 승진한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 서울시 관계자(6급 이하 공무원 인사 담당)

"2월에 시장실로부터 (비서를 고소인으로 충원해달라는) 그런 요청을 받은 바 없다."

△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2018~2019년 서울시 행정1부시장)

"본부장 시절 박 시장의 결재를 기다리는데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피해자가 시장실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밖에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센스가 있었다.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 고소인으로부터도 불편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이 기사를 올린 것은 7월 29일 오전 9시 25분이지만, 최종 출고는 7월 31일 오후 7시 30분에 이뤄졌다. 내부 검토에만 이틀 반이 걸렸다는 얘기다.

 "피해자가 20명에게 피해를 호소했다"는 주장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사실이라면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 몇 명은 그 20명 중에 반드시 끼어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서울시청 6층에는 시장 업무를 돕는 시장실은 물론이고 행정부시장실, 정무부시장실, 정무수석실, 소통전략실, 정책보좌관실, 젠더특보실, 공보특보실 등이 모여있었다. 모두가 시장실과 밀접한 업무 연관성이 있었고, 이들은 집무실 데스크 앞에 있던 피해자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피해자로부터 박 전 시장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인사이동을 요청하는 얘기를 들은 바가 없다"고 답했다.

 7월 한 달 내내 언론들이 피해자 주장만 대서특필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피해자가 경찰 조사에서는 피해 사실을 알렸다고 구체적으로 지목한 사람들도 있었던 만큼 사건 초기 이들의 진술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기사 한 꼭지를 쓰려고 취재한 20명의 반응을 취합하는 것은 나로서는 전무후무한 시도였다. 7월 29일 오전 기사를 쓴 뒤 봉은사 3재에 참석했던 나를 편집국장은 광화문 회사로 불러들여 "일체의 해설 없이 직원들 얘기만 그대로 보도하자"고 제안했다.

 7월 16일 가세연 강용석의 '강제추행 방조' 고발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오성규, 김주명, 윤준병의 경우 "실명으로 보도해도 좋다"는 허락을 어렵사리 받아냈는데 기자의 시각이 반영될 수 있는 일체의 해설을 지우라는 얘기였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박원순 사건과 관련한 엄청난 양의 논평들을 쏟아냈다. 이 중에서 정의당의 논평 몇 건은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이런 성희롱 사안이 벌어지게 된 서울시의 '구조'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일탈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조직화된 구조적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문제는 사실 광범위하게 법률적으로 의율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라 서울시 관행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주 심각할 것이다. 바로 그 문제를 정확히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배복주 여성본부장)

 

 "성폭력 문제는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여성가족부 장관은 부처의 취지와 목적을 똑바로 인식해 제 역할을 다하길 바란다."

 

 "서울시가 모범적으로 공들여서 성희롱, 성폭력 방지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이게 왜 현장에서 먹통이었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성희롱, 성폭력 가선처리 매뉴얼이 최고 권력자 앞에서 작동이 멈췄다는 것에 대해서 서울시는 뼈아픈 반성과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는 정의당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서울시장실 사람들 얘기도 들어보고 판단하라"고 조언했지만,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해가 바뀌자 김종철 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것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조사하고 발표한 사람이 배복주였다.

 정의당 주장대로 성폭력은 개인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일까? 그렇다면, 당 대표의 문제에 대해 정의당에는 어디까지 책임을 물려야 할까?

 

p93

 잔디와 근무 기간이 2년 가까이 겹쳤던 여성 D의 말이다.

 

 "시장실에 들어올 때 마음에 없이 억지로 왔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데, 그럴 리 없을 거에요. 시장실 근무는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엄청 많아요. 따라서 오기 싫다는 사람이 들어 올 수가 없다는 것은 나도 경험했죠. 피해자 또래의 시청 직원 중에 '시장실 일이 많아서 꺼림칙했지만 승진과 인사에는 도움 될 것 같아서 경험 쌓는 차원에서 왔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일단 시장실에 들어와도 적응 못 하는 사람들은 후임자 정해지는 대로 그때그때 내보내 주곤 했어요."

 D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시장에게 결재받으러 가면 데스크 비서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때마다 잔디는 약간 비음 섞인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하며 반갑게 맞아줬던 기억이 납니다. 함게 있던 비서들에 대해서는 잔디만큼의 기억이 없어요. 그래서 '비서가 성추행 고소했다'는 뉴스가 처음 나왔을 때 다들 잔디가 아니라 또 다른 친구를 떠올렸을 거에요."

 역시 시장실을 자주 드나들었던 별정직 E와 L, T는 피해자가 박 시장에게 넥타이를 매주는 모습을 기억했다. E의 얘기다.

 "박 시장이 행사 때마다 넥타이를 고쳐 매야 하는데 피해자가 시장 목에 넥타이를 직접 매줬어요. (다름 사람들은 그렇게 안했나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 목에 넥타이 걸어서 매듭 만든 다음에 시장에게 전해주기만 했죠."

 L의 기억은 이렇다.

 "내가 보고하는 와중에 잔디가 시장에게 '외부행사 나가야 한다'며 넥타이를 매어주는 데 그 모습이 아내가 남편 넥타이 매주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또 한번은 잔디가 넥타이 매주려는 것을 시장이 '이건 내가 할 수 있다'고 뿌리치는 것을 봤어요. 그걸 보고 다른 참모들에게 '잔디가 시장실에 너무 오래 있었으니 내보낼 때가 아니냐'는 의견을 준 적이 있습니다.

 

T는 "내가 지켜보는 자리에서도 잔디가 시장의 넥타이를 고쳐매 주더라. 시장 몸에 손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었다"고 말했다.

 B와 C는 시장 관련 영상 촬영 업무를 했다. C의 증언이다.

 "우리 팀이 일을 하다 보면 시장의 몸에 마이크를 장착할 때가 많은데, B가 마이크를 주면 시장이 직접 장착하곤 했어요. 그런데 피해자는 밖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걸 보면 달려와서 본인이 시장 몸에 마이크를 채워주곤 했죠."

 어쨌든 2015년 시장실 입성 이후 2016년 하반기까지 피해자가 박 시장과 관련해 특별히 문제 제기한 흔적은 드러나지 않았다.

 2016년 2월 25일 피해자가 박 시장에게 보낸 손편지에는 당시 시장에게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랑스러운 박원순 시장님께 드려요.

 시장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작년에 첫 발령을 받고 공무원이 된 지 4개월 만에 시장님을 모시게 되어서 얼마나 무섭고 떨리는 마음이 들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시장님게서 늘 잘 가르쳐주시고, 웃음으로 대해주셔서 항상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답니다. 서울시 공무원으로서, 또 한편으로는 서울시민으로서 시장님의 생각이나 정책, 사소한 행동들 모두 존경스럽고 그런 부분들을 저도 본받아 좋은 공무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장님이 계시기에, 우리 서울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그러니까 꼭 건강하셔야 돼요! 비서실, 아니 서울시 통틀어서 제일 건강하시지만, 건강하실 때 관리하셔야돼요.

 시장님 생신 축하드리고 사랑합니다.

 시장실 막내 잔디 올림

 

 그러나 피해자는 "2016년 1월 당시 5급 비서관에게 전보 요청을 했고 같은 해 11월 인사담당자에게 전보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 측은 "인권위와 경찰 등에 증거를 제출했다. 그중 일부"라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다.

 기자는 박 시장의 수행비서관을 3년 6개월간 지낸 A를 여러 차례 만났다. 일반직 공무원이었더 A는 박 시장이 외부로 출타할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박 시장이 시장실에 머무는 동안에는 피해자가 시장의 일정을 관리하고, 밖에 있을 때는 A가 피해자가 하던 일을 맡았기 때문에 시장실 그 누구보다도 업무 연관성이 높았다. 두 사람이 함께 근무한 기간은 2년 6개월이 겹쳤다. 다음은 A와의 일문일답이다.

 

기자 : 피해자는 6개월마다 부서를 옮겨달라는 요청했다는데, 그 정도 빈도면 수행비서관도 알았을 것 같다.

A : 인사 문제 상담을 자주 한 편이다. 나에게는 자기가 언제 나가는 게 좋을지, 어느 타이밍이 좋을지를 물었다.

기자 : 피해자가 전보를 원했다는 뜻인가?

A : 본인이 남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남고, 그게 아니면 떠나는 것 아니냐? 나가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면 다 내보내 줬다. 시장이 각별하게 생각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아무리 시장이라도 나가겠다고 강하게 얘기하는 직원을 막을 방법이 없다. 옆자리에서 같이 일한 비서 3명은 차례로 다 나갔다. 그 친구들도 안 나갔다면 내가 이런 얘기하지도 않는다.

기자 : 피해자가 일 잘한다고 인정받았고, '시장실 업무를 굉장히 좋아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A :  그건 맞다. 시장실 4년 동안 9급에서 7급으로 승진해서 나갔다. 원래부터 7급 달면 나가려고 했었다. 9급, 8급으로 밖에 나가면 허드렛일 하는 부서에서 고생할 수도 있으니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잔디가 시장실 직원들에게 '비서 이상의 비서'로 강렬한 인상을 줬다는 점이다.

 CBS 기자 출신인 김주명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장은 2017년 7월부터 박 시장의 미디어 특보(8개월), 비서실장(1년 2개월)으로 잔디와 함께 일했다. 그는 8월 13일 서울시경에서 3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피의자 조사에서 잔디를 이렇게 평가했다.

 "<오마이뉴스> 인터뷰에도 말했지만 '최고의 비서'다. 굉장히 자부심도 있었고 자기 일을 즐거워하면서 했다. 따로 내가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주문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장이 외신 보도를 직접 챙기고 스크랩도 하는 등 자료 관리를 꼼꼼히 하는 편이었다. 시장이 그런 일을 할 때 나는 도와준 적이 없는데 잔디는 자기 일이 아닌데도 시장을 도와드리곤 했다.

 잔디는 내 비서 일도 했다. 내가 '직원들 격려 좀 해야겠다'고 하면 나에게 '어느 부서가 일을 잘해서 좋은 기사가 나갔다'는 식으로 팁을 줬다. 그러면 내가 시장 명의로 피자를 보내곤 했다. 비서실장인 내가 알아야 할 기사가 있으면 텔레그램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경찰이 '비서실에서 잔디가 하는 일이 뭐냐'고 묻자 김 전 실장은 이렇게 답했다.

 "가장 핵심적인 일은 시장 일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시장의 하루 일정이 20개가 넘는다. 10분 단위로 면담, 회의가 잡혀있다. 그런데 면담자들은 그 10분도 짧게 느껴서 가능한 한 오래 하려고 하는데 그때 누군가 들어가서 면담을 종료시켜야 한다. 저와 잔디, 그리고 같이 일하는 비서 3명이 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시장 일정이 많으니까 하루에도 방문객들이 아주 많다. 그분들을 응대하는 일들이 저와 비서 2명이 주로 했던 일들이다."

 "박시장이 잔디를 대하는 태도는 어땠나?"

 "신뢰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일정을 중간에 자르는 게 쉽지가 않다. 그런데 그 일을 잘했다. 시장은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좋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

 

p104

 피해자가 선임으로 올라선 뒤 만난 3명과는 갈등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6층 동료 직원의 말이다.

 

 "데스크 여비서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피해자 스스로 '나는 젊은 꼰대다', '완벽주의자'라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윗분들이 그런 스타일을 좋아해도 옆 사람은 굉장히 피곤하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후임 비서들이 '동기끼리 잘 부탁해요'라는 식으로 편하게 다가가면 피해자는 '내가 선임인데 동기 얘기가 왜 나오냐'고 받아쳤다. 피해자가 내게 '어떻게 선임인 나에게 감히 이런 식으로 대하지'라는 식의 불평을 종종 하곤 했다.

 데스크 비서들을 제외하곤 박 시장은 물론이고 여타 직원들과의 관계는 비교적 원만했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2016년에 이어 2017년 2월 15일에도 시장에게 '생일 축하' 편지를 보냈다.

 

 

 반짝반짝 빛나는 박원순 시장님께

 

 시장님 안녕하세요. 저 잔디에요^^

 시장님을 모시면서 벌써 이렇게 두 번째로 생신을 축하드리게 되었어요.

 제가 2015년 7월에 처음 시장실에 왔으니, 기간은 2년이 채되지 않지만 벌써 세해째 시장님을 모시고 있네요.

 시장님, 항상 정신없고 바쁘신 일정 속에 힘드실텐데도 뵐 때마다 한번이라도 더 웃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얼마나 기쁘고 힘이 나는지 몰라요. 시장님을 곁에서 지켜보면 참으로 힘이 납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주시는 분이세요.

 아주 짧은 시간이 주어질지라도 모든 일에 집중하시는 능력과 매순간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서 뜨거운 열정과 놀라운 능력을 느낍니다. 또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습니다.

 식사도 거르시고 화장실도 못가시며 지키고 계신 우리 서울과 꿈이라는 꽃봉오리. 긴 겨울 지난 곧 활짝 필 때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시장님 생신 축하드려요.

 2017. 2. 15 잔디 올림

 

(...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무섭다.)

 

p106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김문수, 안철수 두 경쟁자를 가볍게 제압한 박 시장은 7월 7일 세계도시정상회의 참석차 3박 4일 싱가포르 출장길에 나선다.

 오성규 전 비서실장이 2020년 12월 3일 국가인권위에 보낸 의견서에 싱가포르 현지의 A와 피해자가 7월 9일 오후에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했다.

 

피해자 : 저 한 번은 데리고 가셔야 하는 것 아니예요? 팀장님이 힘 써주세요... ㅋㅋㅋㅋ 시장님은 백퍼 데려간다고 하는데.. 에스파뇰 몰라~~

A : 국제과에 물어보니 이렇게 준비 중이야. 스페인 어때요?

피해자 : 짱좋 ㅠㅠㅠㅠ 제발 플리즈

A : 세뇨리따~~ 이건 아닌가? ㅋㅋ

피해자 : 승진이고 뭐고 순방 부심 한번 ㅋㅋㅋ

 

의견서 발표 다음날 <중앙일보> 온라인판에 피해자 측의 반박 기사가 실렸다. 김재련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는 박 전 시장과 함께 해외 출장을 가게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박 전 시장과 함께 해외 출장을 떠난 비서관 중 한 명이 출장 사진을 피해자에게 보내며 '너도 다음에 가게 해달라고 하라'라고 해 해외에 간 것에 대한 부러움을 표시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이 같은 대화 내용이 들어있는 메시지 내용 앞부분을 오히려 실장 측이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측이 편집 의혹을 제기한 만큼 둘의 대화가 어떤 맥락에서 시작됐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오성규는 "두 사람의 사적 대화이기 때문에 그걸 공개할 수는 없다. 둘이 다른 사람들 험담한 내용도 있는데 그런 걸 어떻게 다 보여주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말했다.

 

 "대화 내용을 다시 봐라. 부러운 마음에 그냥 한 얘기가 아니라 스페인이라는 목적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잖은가? 편집이라니 황당하다. 지원단체들은 그동안 피해자 측 주장을 내보내면서 자기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편집하지 않았나? 우리에게 편집 운운하는 것은 자기들이 그동안 해온 행동을 스스로 부정하는거다."

 어쨌든 A가 피해자에게 알려준 대로 박 시장은 9월 27일부터 9박 11일 동안 스페인이 포함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그러나 피해자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박 시장의 해외 출장에 여러 차례 동행했던 서울시 일반직 공무원의 말이다.

 "매년 서너 차례 시장의 해외 순방 일정이 잡히지만, 시장실 늘공 중에서는 수행비서관만 같이 갔다. 해외에서는 시장 일정이 훨씬 촘촘하게 짜이고 수행원들의 업무도 그만큼 세분되는데, 시장실에 배정된 인원은 1명이기 때문이다. 해외 출장은 시장실 아무개가 따라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시장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박 시장이 유럽 출장에 앞서 한 달간 옥탑방살이를 할 때도 피해자는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삼양동에서 시장 부부와 숙식을 함께 하다시피 했던 L은 "2018년 8월 초순 잔디가 퇴근 후 서너 명의 직원들과 함께 작은 화분을 사 들고 찾아온 적이 있다. 삼양동이면 집도 먼 편인데 굳이 올 필요가 있나 싶었다"고 말했다.

 

p115

 그러던 차에 나타난 사람이 일반직 공무원 B(여성)였다. 시장실에서 2년 9개월간 일했던 B는 공무원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잔디와는 막역한 사이였다.

 시장실의 별정직들은 "우리 얘기보다는 잔디가 마음을 터놓고 얘기했던 일반직 공무원들 얘기를 들어보라"는 조언을 하곤 했다. B는 그런 조건에 부합한 사람이었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 7월 18일 경찰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9월 11일 나는 "사건이 터지기 전 잔디가 카카오톡 프로파일에 박 시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고, 그걸 본 B가 '둘이 너무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해가 바뀌자 "박원순이 피해자에게 문자나 사진을 보낸 것이 확인됐다"는 발표가 계속 나왔다.

 

 2021년 1월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 조성필 부장판사가 이른바 '4월 사건' 가해자 Z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박원순이 서울 시장 근무 1년 반 이후부터 야한 문자와 속옷 차림의 사진 등을 보냈고, (피해자는) '냄새가 맡고 싶다', '몸매가 멋있다', '사진 보내달라'는 등의 문자를 받았다"고 말했고, 같은 해 1월 25일 국가인권위도 "박 시장이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낸 것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인권위는 "피해자로부터 들었다거나 메시지를 직접 보았다는 참고인들의 진술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발표로 박원순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로부터 피해 사실을 인지한 동료들은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들의 얘기가 중요하다고 보지만, 판사와 인권위 모두 이 부분은 입을 다물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목격자 B는 국가기관들의 발표가 나오기 전에 나의 의문점을 풀어준 사람이다.

 2020년 10월 13일 오전 나는 B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는 글'에서 나는 취재원 50명의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지만, 취재에 불응한 사람들은 뺀 수다. 그중에 여러 차례 설득 끝에 취재에 응하기로 해놓고 만나기로 한 날 인터뷰 장소에 나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많은 취재원이 "아직도 그 사건 생각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당신이 믿을 만한 기자라는 것을 내가 어찌 알겠냐"는 등의 이유를 들어 사양했다.

 다행히도 기자와 면식이 전혀 없는 B는 "시장실에 대해 억측이 많은 상황에서 관련 기사를 꾸준히 쓰는 기자"로 나를 인지하고 있었다. B는 10일 간격으로 두 차례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줬다. 다음은 B와의 문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B : 박 시장이 3선 출마하려고 사퇴한다(2018년 5월 14일)는 얘기가 나와서 시장실이 어수선한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청 공무원드른 자체 행정포털망에 접속해서 사용하는 PC용 메신저와 텔레그램 둘 다 사용하는데, 피해자가 사내 메신저로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냐'고 말을 걸었다.

기자 : 잔디가 사내 메신저로 불렀을 때 특별한 얘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B : 그런 건 아니다. 평소에도 고민 상담을 자주 했는데, 그날은 보안을 의식한다는 느낌은 들었다. 6층 접견실에서 얘기할 수도 있지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 공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안 오는 7층의 한적한 공간, 화장실 옆 벤치로 이동했다. 피해자가 내게 텔레그램을 보여주길래 그 내용을 얼핏 봤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하는 말이 '안희정 사건으로 시끄러운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할까 봐 걱정된다. 시장이 나를 손녀딸처럼 예쁘게 생각한다는 것을 나는 아니까 괜찮은데'라고 말했다. 시장의 스마트폰은 다른 사람들도 업무상 볼 수 있지 않냐는 뉘앙스였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박 시장의 3선 도전 때문에 시장이 의지하던 참모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었다. 그러나 잔디에 대한 (시장의) 의존 심리가 더 강해졌던 게 아닐까 싶다.

기자 :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할 수 있는 메시지가 뭐였나?

B : 제일 마음에 걸렸던 표현은 '잔디 냄새 좋아 킁킁'. 또 하나는 업무지시 등의 별다른 이유 없이 밤에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 그 외 나머지는 친근감을 표현하는 메시지들이었다. 그러나 피해자와 시장이 허물없이 편하게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거슬리지는 않았다. 시장이 피해자에게 보낸 다른 사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본 사진은 다른 지인들에게도 보낸 적 있는 러닝셔츠 입은 사진이었다.

기자 : 두 사람의 메시지 전송이 빈번했나?

B :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피해자가 '메시지를 빈번하게 보낸 날이 있는데, 이날은 시장님이 혹시 술을 드신 게 아닌가 싶어서 아무개 비서관에게 이날 술을 많이 드셨는지 물어봤다'고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정확한 기억이 없다.

 답을 했다면 '시장실에 오래 근무를 하기도 했으니 부서를 이동하거나,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지 않았나 싶다. 피해자 답변도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알겠다' 정도로 답하지 않았을까? 이런 대화가 10분 안팎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기자 : 이때의 대화 내용은 박 시장이 죽은 후 떠오른 거냐. 피해자의 지목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돼서 떠오른 거냐?

B : 그 전부터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기억이지만, 크게 담아둔 것은 아니었다.

기자 : 이 문제로 나중에 얘기를 더 하지 않았나?

B : 그게 문제가 됐다면 피해자가 나에게 얘기를 했을 텐데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진로 문제 등 다른 주제로 나와 몇 차례 상담했고, 몇 번 식사도 했는데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내색하지 않았다. 시장이 3선하고 돌아온 후에는 시장실이 엄청나게 바빴다. 바로 옥탑방 한 달 살이 나가셨고, 돌아온 후에는 후속대책 내놓느라고.

 

 B는 시장실을 떠난 이후인 2019년 3월 28일에도 김주명, H 등과 함께 무교동에서 만찬을 한 적이 있다. B는 "우리는 떠난 상황이라 피해자가 시장실 분위기를 전해줬는데, 그때도 박 시장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B의 "둘의 관계는 두 사람만 아는 거지만 언론이 너무 편향적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며 "이 사건이 권력에 의해 진실이 은폐됐다는 식으로 얘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한 얘기도 '잔디 냄새가 좋아 킁킁'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달아주진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전화 통화가 끝난 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피해자가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20명을 찾아 나선 후 석 달 동안 내가 만난 시장실 직원들은 "들은 바 없다"라는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시장에게 입은 피해로 추정되는 말을 실제로 들은 사람을 찾아낸 것이다. B가 전해준 2018년 잔디의 전언에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해는 '미두'라는 성폭력 고발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던 시기였다. 박 시장이 타운홀 미팅에서 "추석 때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고 눈물을 쏟았다"는 기사를 본 모 시인이 "2014년 박원순 캠프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2월 2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일이 있었다.

 같은 해 3월 5일 안희정 충남지사의 수행비서를 지낸 김지은 씨가 JTBC 인터뷰에서 안 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해 큰 파문이 일었다. 3월 10일 박 시장은 시인을 시장실로 불러 위로했고, 그는 이틀 뒤 페이스북에 "시장님을 뵙고 오니 그간 마음고생으로 얻은 상처가 많이 치유됐다"는 글을 올렸다.

 2018년 시장실 직원들 모두가 안희정 사건과 이 사건을 지켜봤고, 이 사건들이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했다. 만약 박 시장이 잔디에게 심각한 성폭력을 저질렀다면 그로서도 용기를 낼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잔디는 B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희정 사건으로 시끄러운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할까 봐 걱정된다. 시장이 나를 손녀딸처럼 예쁘게 생각한다는 것을 나는 아니까 괜찮은데"

 박 시장과 잔디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안다. 그러나 당시 잔디가 시장이 자신에게 한 행동이 안희정의 그것과는 다르다. 손녀딸처럼 생각한다고 인식했다는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그해 5월 14일은 박 시장의 직무가 정지되고 3선에 도전하기 위해 서울시장 예비후보를 등록한 날이었다. 잔디는 이날 시장에게 이런 편지를 건넸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원순 시장님께!

 

 시장님~~ 오랜만에 편지를 드리네요.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니까 시장님께 작게나마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요~

 

 시장님 순방 기간이 길어봐야 8~9일 정도였는데... 이렇게 한달 동안이나 못 뵌다는 생각을 하니 참 마음이 뻥 뚫린 것같고 가끔은 울컥하는 느낌까지 드네요. 더 나은 서울,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러 나가시는데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시장님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가까이서 챙겨드리지 못하고, 또 시장님께서 재미있는 농담을 해주시는 것과 셀카 찍는 일들을 한달 도안 못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아쉽고 슬퍼요 ㅜ.ㅜ

 그래도 시장님! 저는 소원이 있어요. 제 소원을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시장님께서 작년 초에 대선을 준비하실 때 하셨던 말씀이 참 기억에 남아요. 그때 말씀하시길 '5년 후 손주 손을 잡고 광화문광장을 거니는 삶을 살고싶다. 그런 대통령을 꿈꾼다고 하셨거든요.

 시장님. 저는 정말로 제 삶에 있어서 박원순이라는 '시대의 리더'와 함께 했다는 그 사실 하나로 너무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해요. 그렇지만 제 소원은 여기가 끝이 아니라, 이 시대에 다시 없을 소중한 박원순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을 바꾸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우리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누린 그 이후에..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마지막까지 훌륭한 리더로 인전받고 모두가 존경받는 지도자로 칭송받는 그날을 꿈꿔요.

 시장님은 너무도 현명하고 지혜로우시며 새로운 생각과 놀라운 추진력으로 이미 저명하시잖아요~!! 꼭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더불어 시장님~ 제 소원 이뤄주시려면 건강도 잘 챙기셔야되는 거 아시지요??? 약 잘 드시고요 차에서 잠깐씩 쪽잠 꼭 주무시고~ 전화는 너무 많이 하지마세요 ㅋㅋㅋ

 시장님, 한달 뒤 옥수수랑 수박 잘 길러놓을게요. 힘내시고! 사랑합니다!

 2018. 5. 14 시장실 잔디 드림

 

민경국이 12월 23일 오후 2시 13분 이 편지를 공개하자 여성단체와 일부 언론은 피해자 이름을 공개했다며 '2차 가해' 공세를 가했다. 민경국은 같은 날 2시 14분에 나를 비롯해 몇몇 기자에게 카카오톡으로 자기 페이스북을 봐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공개된 편지에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민경국이 "언론이 기초적인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사실과 다르게 내가 피해자의 실명을 노출한 것처럼 기사화하였고,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항의하자 <한겨레>의 경우 다음날 "피해자 지원단체의 문제제기에 타당한 점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반영했지만 사실관계에 틀린 점이 있었다"며 사과했다.

 이 편지가 논란이 되자 이런 반응도 나왔다.

 "최근 박원순 전 수일시장의 생일을 앞두고 만들었던 롤링페이저와 편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왔다. 모두가 똑같이 종이에 편지를 써서 고리에 한데 묶은 카드 모음, 그 뻔한 모양의 생일 축하 메시지조차 누군가에게는 특별해 보였나 보다."

 나는 시장실의 몇몇 직원들에게 "박 시장에게 보내는 롤링페이퍼를 쓴 적이 있냐"고 물었다.

 별정직 D는 "박 시장만이 아니라 시장실 떠나는 직원에게 남아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이별의 말을 적어주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고 말했고, 같은 별정직 M도 "2018년 말에서 2019년 새해로 넘어가는 시기에 한 번은 써 본 것 같다. 돌아가면서 한 줄 쓰는 거라서 큰 부담은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시기에 근무했던 R은 "연말연시엔 신년사 작업하느라 그런 것에 응할 짬이 없었고, 시장 생일에는 써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 중 일부는 "누군가 시장 생일 축하 동영상을 찍자고 제안해서 카메라 앞에서 덕담을 건넨 기억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처럼 박 시장에게 손편지를 써서 전했다는 직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p148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6월 16일 노사모 총회에 보낸 영상메시지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곱씹어봐도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시민이 깨어있고, 조직화되어야 한다. 내가 만난 '박원순 시장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이었다.

 한편으로는 나날이 값이 뛰는 서울의 집은 언제 살 것이고, 자녀 교육은 어떻게 시킬 것이며, 이민 가서 살기 좋은 나라가 어디일까를 꿈꾸는 '소시민들'이었다.

 이들 모두는 "박원순 사건에 대해 부풀려진 얘기들을 바로잡고 싶다"는 대의명분과 "그러한 행동이 나에게 작게나마 불이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나 대신 누가 해줬으면..."이라는 도피심리 사이에서 번민했다.

 왜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느냐고 그들을 책망할 수도 없다. '20년 기자질' 하는 동안 나는 수많은 유형의 취재원들을 만났다. 각자에게 '소우주'라고 할 만한 사연들이 있었고, 나는 잘잘못을 가리는 판관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다는 소명을 거스르진 않았다.

 

p143

 박 시장 사건이 논란이 된 후 박 시장과 잔디의 생전 모습이 담긴 동영상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9월 17일 <열린공감TV>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생일 동영상1', 9월 18일 <고발뉴스TV>가 올린 '생일 동영상 2'와 '재래시장 동영상'이 그것이다.

(생일 동영상1)

 

'생일 동영상 1'에는 2019년 3월 26일 잔디가 시장실에서 박 시장과 함께 생일 케이크를 자르는 모습이 담겼다. 이때 시장 옆에 자리 잡은 잔디가 오성규 비서실장 등 다른 직원들에게도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면서 박 시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20여 명이 이 모습을 지켜봤다. 김우영 정무부시장은 이와 관련해 "내가 구청장을 8년 했지만, 부하 직원이 내 어깨에 손 올린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아무리 편하게 대해도 대부분의 구청 직원들은 나와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생일동영상2, 재래시장 동영상)

 

'생일 동영상 2'에서 잔디는 시장실 동료들과 함께 "저희는 시장님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에요. 언제나 힘내시구요. 지금처럼 밝고 건강하게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재래시장 동영상'에는 야외공간에 나란히 앉은 박 시장과 잔디가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한 모습이 담겨있다.

 C는 이날 현장에 우연히 동행했던 사람이다. 동영상이 촬영된 2018년 10월 29일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마지막 날이었다.

 "올해 국감 잘 마무리됐으니 남은 직원들끼리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우리 방에서는 나만 남아 있다가 시장 일행을 따라갔죠. 그날은 데스크 비서 두 명 포함해서 6~7명이 같이 움지였는데, 박 시장이 시장으로 걸어가면서 '일전에 고쳐놓으라고 했던 보도블록 아직도 안 해놨다'고 한마디 한 기억이 나요."

 C는 틈나는 대로 시장의 일상적인 모습을 사진 또는 동영상으로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는 일을 맡았다. 여느 때와 같은 회식 자리였지만, 박 시장을 알아보는 시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C는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시장에게 계속 인사를 걸었고, 나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뗄 수 없었어요. 그런데 잔디가 갑자기 '시장님, 저의 사진 찍어요'라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에게 안기는 포즈를 취했어요. 시장은 30분 정도 우리와 함께 있다가 다른 일정을 이유로 헤어졌습니다."

 

p219

이듬해 1월 14일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Z는 징역 3년6개월(법정구속)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이라는 중형을 받았다. 이 사건의 성폭력 증거 채취를 위한 정액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건 당일 깨어나 30분 동안 샤워를 한 점 등을 들어 "Z가 피해자와 강제로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Z는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최근 이 항소 2심의 결과가 나왔는데 1심과 동일한 형량을 확정한다. 이 재판결과가 좀 황당한게 성관계를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게 아니라,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한 점이다. 즉 피해 사실을 증명한게 아니라, 가해자가 가해를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없다라는 논리다. 이런 논리가 통용되는 세상이라면 남자들은 여자를 데리고 모텔을 들어가려면 인생을 걸어야 될 수도 있다. 모텔 들어가기 전에 합의서라도 받아야 되고, 들어가선 동영상으로 증거라도 남겨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p296

 박원순 사건 후 내가 하도 답답해서 여성단체연합 간부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게도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 간부가 말하길, 단체에서 마련한 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에게 확인하지 않는다'고 되어있다고 답하더라. 나도 여성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그 말을 듣고 '그렇다면 그 매뉴얼이 이상하네'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더라."

 

 우리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검찰, 경찰, 그리고 국정원의 일방적 '주장'을 그래도 받아들여 간첩으로 확정한 사람들이 재심 끝에 혐의를 푸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피해자 얘기만 듣고 박원순의 혐의를 확정하기에는 논거가 너무 빈약하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시선으로 시작된 '피해자' 호칭은 어떤 식으로든 가해자를 만들어내고 이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는 혐의를 따져보기 전에 죄인의 낙인을 받는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언론계가 무책임한 담론을 확대 재생산해 결과적으로 대중의 혼란을 증폭시켰다는 점에서 박원순 사건을 '2020 언론 대참사'라고 명명해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일부 기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온 페미니즘의 서사,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피해자다움'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p312

 1990년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흥망성쇠를 멀찌감치서 목도한 뒤부터 어떠한 이념 세례도 나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했다. 페미니즘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견이지만, 모든 운동 노선은 '마틴 루서 킹의 길'과 '맬컴 엑스의 길'이 있다고 본다.

 1960년대 미국 흑인들의 온전한 시민권을 회복하는 방안을 놓고 전자는 린드 존슨 대통령이라는 리버럴 성향의 백인들을 포섭해 민권법을 개정하는 길을, 후자는 '흑인 해방'을 위한 흑인 국가의 건설을 대안으로 각각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실질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끌어 낸 것은 마틴 루서 킹의 온건 노선이었지, 맬컴 엑스[멜컴 액스라니가 좀 어색하네.  말콤 엑스로 워낙 많이 들어서]의 '사이다 해법'이 아니었다. "백인들은 죽어도 흑인을 이해하지 못해"라는 식의 언설은 운동의 주체들에게 자기 위안을 줬을지는 모르지만, 운동의 확장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데아'가 강한 분들에게는 유쾌하게 들리지 않을 얘기지만, 언젠가는 나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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