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버지에 대한 짧은 추억. 그리고 대동아전쟁기를 살아온 아버지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인이 겪은 전쟁이 개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한편의 에피소드를 제공한다.
굉장히 짧은 분량이지만 함축된 메시지는 매우 농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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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p49
이 시기에 중국 대륙에서는, 초년병이나 보충병을 살인 행위에 길들이기 위해 포로로 잡은 중국 병사를 죽이라고 명령하는 일이 흔했던 것 같다. 요시다 유타카가 쓴 <일본군 병사>에 다름와 같은 문장이 있다.
후지다 시게루는 1938년 말부터 1939년에 걸쳐 기병 제28연대장으로서, 연대 장교 전원에게 '병사를 전장에 적응케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살인이다. 즉 담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이에 포로를 사용하면 된다. 4월에 초년병이 보충될 예정이니, 최대한 빨리 기회를 만들어 초년병을 전장에 적응케 하고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에는 총살보다 척살刺殺이 효과적이다' 하고 훈시했다고 회상했다.
저항하지 않는 포로를 살해하는 것은 당연히 국제법에 위반되는 비인도적인 행위지만, 당시 일본군에게는 아주 당연한 발상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일본군 전투 부대에는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다. 1938년에서 1939년은 아버지가 초년병으로 중국 대륙에 건너가 있었던 바로 그 시기이다. 그 같은 행위를 하급 병사가 강요했다 한들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살해는 대부분 총검에 의한 척살인 것 같은데, 아버지가 그때 처형에는 군도가 사용되었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쨋거나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 - 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 -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儀式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p62
하지만 당시의 나는, 책상에 들러붙어 주어진 과제를 하고 시험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받는 것보다,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듣고, 밖에 나가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마작을 하거나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이 옳았다고, 지금은 확신을 갖고 단언할 수 있지만.